2015.12.19 12:18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본문 : 계2:21-23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아레 아침에 '마음이 정결한 자가 복있다' 왜? '마음이 정결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 하는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사람도 참 층어리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다 같은 한 현실에서 다 같은 사실을 보나 그 사실을 보는 데에 대해서 깨달음은 각각 다릅니다. 그거는 사람이 층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그 사람 말이면 다인 줄 압니다. 말을 듣고서 그만 그대로 사람을 평가하고 접합니다. 그런 사람은 제일 마귀의 유혹을 잘 받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가 제일 어려운 사람도 있지마는 말하기가 제일 쉽기 때문에 말에 제일 거짓이 많습니다. 속은 안 그러면서 겉어머리로 꾀우는 것은 전부 말로 꾀우요.
이러기 때문에 말을 듣고서 그 사람을 말하는 대로 다 그런 줄로 알고 이렇게 따라가는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은 유혹의 멸망에서 벗어나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말만 들으면 그만 그걸 다로 여기는 사람 그 사람이 자기 구원을 낭패되고 또 마귀란 놈이 얼마든지 꼬우기를 좋아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까짓 그래 가서 말 몇 마디만 하면 휙 돌아올 것' 이래 버립니다.
말을 보고 사람을 지금 상대하는 그런 사람이 제일 어리석고 껍데기 사람이고 말보다도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말은 그런데 그 사람 행동을 봐야 되지 내가 말만 보고, 행동은 안 보고 말만 보고야 알 수가 있나?' '말을 암만 그 사람이 뭐 청산유수로 하고 말을 그 사람이 내게 대해서 뭐 어떻게 말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실지로 행동이 그런가?' 그 사람의 행동을 이렇게 살펴보고 행동을 보고서 '아, 그렇구나.' 행동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그런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말도 얼마든지 거짓되이 할 수 있소. 행동도 얼마든지 거짓되이 할 수 있소. 속에 사람은 죽이러 가면서 살리러 가는 척도 할 수 있습니다. 또 도적질하는 사람이 가장 정직한 척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말을 보고서 사람을 판단하는 것보다는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조금 슬기로운 사람이오. 행동보다도 그 사람의 일을 처리하는 일을 보고서 판단하는 사람이 조금 더 지혜로운 사람이오. 일에 대해서는 외식이 좀 적습니다. 일을 보고, '그 사람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나?' 행동이 아닌 일 말이요. 일. '사건 처리를 그 사람이 어떻게 하나?' 사건 처리를 보고서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것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을 살핍니다. '그 사람이 말도 그래 하고 행동도 그래 하고 일도 그래 하지마는 그 사람의 진심이 어떠한가? 그 사람 속에 마음이 어떠한가?' 그 마음을 살핍니다. 마음을 살펴. 마음을 살피는 사람 그 사람은 제법 지혜로운 사람이라서 사람에게 많이는 속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보고 살핍니다.
그보다는 마음 속에 그 사람의 뜻을 보고서 살핍니다. '저 사람이 지금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고, 사상을 가지고 있고, 목적을 가지고 있고, 지금 소망을 가지고 있고 하느냐?' 그 사람의 뜻을 살핍니다. 이만하면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이라 사람에게 잘 속지를 아니합니다.
지금 내가 몇 가지 말했어? 다섯 가지 말했어. 다섯 가지 가지고서 사람을 평가합니다. 이걸 평가해 보면 사람을 대략 바로 짐작할 수 있고 가운데는 아주 좋은 사람인데 그 사람이 말과 행동이 다를 때에서 거게서 의문을 가지게 되고, 또 행동과 일 처리가 다를 때에 의문을 가지게 되고, 또 그 모든 일 처리나 그런 거와 그 사람의 마음을 살필 때에 마음과 그와 다르게, 마음은 달리 하며 겉어머리는 그렇게 외식을 잘 합니다.
또 그 사람의 마음보다도 그 사람의 뜻과 마음이 일치되지 못할 때는 그 사람은 경거망동하는 사람입니다. 진실로 뭐 마음은 그렇기는 그런데 속에 계획적인 그 뜻이 아무 일관되지를 못한 사람이 있어. 여게까지를 안 믿는 사람들이 보고 삽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에 여게 까지를 평가하고 사람들은 살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거게서 '그 사람이 보자, 소망이 어떠한가?'인제 안 믿는 사람들은 모르는 것이오. '소망이 어떠한가?' '그 사람이 정말로 하늘나라와 하나님에게 대해서 소망을 가졌나? 하나님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진 것이 어떠나?' 그것을 보고서 그것이 이제 말한 다섯 가지보다 뛰어납니다. 암만 다섯 가지가 실수가 있어도 하나님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든든하면 그 사람은 그 나머지기 다섯 가지는 차차 고쳐 갈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 지금 세상을 떴습니다. 그 사람이 뭐 행동으로 보면은 다른 사람들이 멸시하고 천대하고 개차반이라고 할 만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는 대심방이라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그렇게 한 집씩 심방을 했습니다. 지금은 수가 많고 해서 그걸 하지를 못하고 한 번인가 두 번인가 했었습니다. 한 번인가 두 번인가 했었는데 그때에 대심방 받을 때에 저거 집에는 내가 무슨 말씀을 줬는가 하는 그것을 제가 기억하고 있으면은 그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보면은 작년에 주던 말씀 올해 또 그 말씀이오. 고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때 내가 말하기를 그 참 행위가 아주 뭐 아이들 말로 개차반이라 할 만치 그렇게 허무한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 거게 있는 모든 지금 권사님들 거기 다 있었어. 지금 연로한 집사님들 다 있었소 대심방이니까.
그래 내가 어떤 집에 가 가지고, OOO권사님 집에 가 가지고 내가 말하기를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들의 그 신앙 행위를 옳다고 생각하지마는 여러분들이 멸시하고 있는 아무것이의 신앙이 여러분들의 신앙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그 사람은 죽을 때도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이오. 여러분들은 동행할 수 없습니다.
죽음 오면은 다 도망 쳐 버리고 주님 다 냅두고 예수 믿는 신앙 다 냅두고 다 도망칠 사람들이지 거게서 주님을 따라갈 그런 사람 아니다. 그러나 아무것이 그 사람은, 끝까지 따라갈 사람은 그 사람이 따라갈 사람이다. 세상에 도덕면으로 이런 거 저건 거 실수가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나 하나님께 대해서는 여러분들보다 앞섰습니다.' 내가 그런 말을 내가 했는데 그 기억을 하는지? OOO권사님 잘 기억성이 좋아요. 내가 한 말 기억해요? 기억하면 기억한다고 손을 들어 봐. 내가 거짓, 그래야 안 그렇다 하지. 그래 내가 그 말을 했었어.
오늘도 사람을 보는 것이 그렇게 껍데기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게 '나는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준다' 하시고 난 다음에 '마음과 뜻을 살피는 자인 줄 알아야 할지니라' 했는데, 그 위에 있는 것이 뭐이냐?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과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 그것을 가졌으면 그 밑에 거는 나빠도 결국은 차차 차차 고쳐서 따라갑니다. 그러나 그 말에 걸 아무리 잘해도 그 위에 것이 없으면 헛일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내가, 오래 됐어. 내가 처음에 여기 왔을 때에 떡 그 자리 일어나서, '사람은 전적 부패다'하는 그런 설교를 하니까 수락을 하지 안하고서 '글쎄 뭐 사람이 어찌 전적 부패해? 사람의 도덕이 뭐 얼마든지간에 다 할 수 있는데 전적 부패하다니 그럴 수 있을까?' 내가 그분에게 말하기를 '전적 부패하고 네 속에는 깨끗한 게 한 내끼도 없다.' 내가 그래, 처음에 와서. 그거 누구냐 하면은 OOO권사님이라. 그때 OOO권사님은 OO교파에서 제일 모범되는 참 성녀라고 할 만치 온 교역자들이, 다 목사들이 다 존대하고, 목사들 공동 숙소요.
학교마다 학생회 있는 것은 전부 OOO권사님을 전부 고문으로 다 들여 새웠습니다. 다 그랬습니다. 이러니까 도덕면이야 뭐 흠이 없고 점이 없지. 없는데 하나님과 하늘에 대한 소망에 대해서는 흐미하다 그거요. 항상 세상 것만 거석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을라 하는 데는 흐미해. 이래 놓으니까 '이거 참 이해 못 한다' 이래 가지고, 내가 그라고 난 다음에 지금은 인제 그말을 아마 본인이 꼭 인정할 거라. 사람을 볼 때에 자꾸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은 '조것은 말이면 다인 줄 아는 그런 외식자다.' '조거는 얼마든지 거짓부리 할 수 있는, 속에 마음도 다르며 행동만 찰찰 그래 가지고서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행동으로 자기 전부인 줄 알고 하는 외식자다.' '저 사람은 사건 처리를 뭐' 사건 처리는 외식으로 잘 못 합니다. 사건 처리하는 것 보면 그 사람이 거의 보여지요.
그보다도 마음을 보면은, 그런 거는 못해도 마음은 깨끗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리석어 처세술이 없어 가지고 이래도 그 마음은 깨끗한 사람.
제일, 그 마음은 못된 마음 가진 것이 행동과 말과 일 처리 그런 거는 아주 찰찰하게 하는 그거 외식자인데 그자가 사람을 많이 죽일 자고 자신도 또 속아서 거게서 평생 그게 된 줄 알고 사는 사람이라. 그러니까 OOO권사님같이 그렇게 온 교계에서 다 존대해서 이렇소. (엄지 손가락을 올려보이심) 이렇게 여겼소. 또 그분을 다 신앙의 완전한 성녀로 다 보고 있습니다. 그뭐 학교마다 학생회 있는데 학생회마다 전부 그분을 고문으로 다 모셨어. 이런 분을 내가 제일 죄인 중에 죄인이라고 정죄하는 그 목사가 있을 수 없어. 그게 사람 살리는 거라. 모든 걸 속을 들여다 보고 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
안 믿는 사람들 '이 세상에 뭐, 톨스토이가 무슨 박애자고 무슨 공자 맹자가 뭐 어떻다.' 하는 그런 것을 볼 때 '네가 지옥에 제일 밑자리 갈 사람이다' 하는 것을 정죄할 그런 사람이, 모르면 못 한다 그거요. 속에 알맹이를 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거라. 마음과 그 모든 것이 다르면서 마음은 그러면서 속여 행동하는 것 있고, 마음은 좋은데 그게 안 돼서 그런 것 있고, 또 자기 소원의 뜻이라 하는 것은 자기 소원은 그게 참 소원은 소원인데 안 되는 거 있어. 소원은 의를 소원하는데 안 되는 거 있고 또 의를 행하는 것은 다른 사람 눈보고, 자기 명예보고, 자기 지위보고, 자기 권세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보고, 전부 외식 가지고 그래 꾸미는 그런 거 있다 그 말이오.
그것보다 여섯째가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향한 소망 그것이 있으면은, 그것이 있어서 그것에서 행동이 나온 것이면은 다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일 마지막은 뭐인고 하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제일 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하나님이 두려워서 행동이 시발되는 사람 하나님이 두려워서 행동이 시발되는 그런 사람이면 그래도 그 사람은 인정할 수 있고 어데든지 동행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지경에 이르러도 그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움으로써 행동이 시발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동행할 수도 있고, 같이 동역할 수 있고, 동사할 수도 있는 사람이오. 그게 없는 사람은 그거는 언제 날아가 버릴란지 모릅니다. 너 이해 돼?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거창 집회를 가는데 어짜든지 옥토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옥토가 되도록.
나 오늘 아침에 좋은 거 하나 본 것은 우리 OOO권사님이 조끄맨한 요런 걸 뭘 하나 이래 새까만 걸 가지고 요래 가지고 자꾸 요 들여다 보고 있는데 그래 나는 뭐를 생각한 게 아니라 '조게 그래도 신앙 생활을 잘한다. 조게 아마 자기와 지금 자기가 걱정되는 사람을 지금 요 사람을 기록해 놓고 요걸 자꾸 기도를 해야 될 터인데 기도할 사람,' 우리 기도할 사람은 어떤 사람이 기도할 사람이요? 자기와 제일 먼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먼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면은 그 사람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속으로는 그 사람 망하기를 원하면서 겉어머리로 기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꾸 그래 기도하게 되면은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먼 사람 미워하는 사람을 자꾸 위해 기도합니다. 사랑이라 하는 것은 껍데기로 배어 들어가는 것도 있고 속에서 돼 나오는 것도 있어. 속으로 진정 사랑하면 그 사랑이 껍데기까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밉지마는 겉어머리로 자꾸 사랑하면 참말로 사랑이 돼집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자기 마누라가 자꾸 시어머니 죽기를 원하고 이라니까 '그놈의 할마이 죽여 버리자' 하면서 밤을 한 말을 사다가 자꾸 꾸어 주라 하고 그 서 말을 사가다서 서말째 거석하면서 '아마 덜 먹어 그렇다. 한 말만 더 먹으면 죽겠다.' 한 말 더 갖다 주니까 그 며느리가 '아이구, 시어머니 죽으면 안 된다고 이라면서 구워 주지 말자.' 하더랍니다. 그거 자꾸 밤을 구워 주는 가운데, 죽으라고 구워 줬지마는 실은 시어머니는 받아 먹으면서 그만 며느리하고 정이 들었다 그거요. 이해가 돼요? 사람이 자기가 자꾸 자기와 먼 사람을 위해서 그걸 거석해 놓고 요래 적어 놓고, 많으면 그거 적어 놓고서 그걸 이래 기도하고 또 자기가 지금 하나님 앞에 제일 기도해야 될 책임과 의무 가진 사람 그 사람을 또 적어 놓고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말하기를 '여기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이 자기 맡은 학생명단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자꾸 읽어라. 읽으면 돈벌이가 된다' 내가 그렇게 말했어.
그랬지? OOO이 마누라지? 왜 조노? 그래 '이 수첩을 보고 자꾸 읽으면 돈벌이 된다' 하는 그 말이 안 믿는 사람이 보면, 어떤 목사들은 보면 '그거 그래 가지고 자꾸 사람들을 꼬우는구나. 그래 가지고 주일학교 학생들 명단 보고 자꾸 심방하면 돈벌이 한다 하는 거로구나.' 아니 그말이 아니고, 그거 몰라 그래. 실은 봐서 '이 사람이 이러니까 이거 위해서 이런 기도해야 되겠다' 염려하고서 사람의 자꾸 나쁜 점을 보고 염려하고 좋게 되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하나님께 간구까지를 그렇게 하게 되면은,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라는 데에서 자신이 변화가 됩니다. 자신이 변화가 돼. 사람 변화되면 복은, 사람이 복을 따라가지 못하고 복을 잡지 못해. 복은 날래요. 복 못 받을 놈이 막 복을 '하, 여기 있다! 잡아라. 볼끈 잡아라.' 그러면 복 그놈은 벌써 날아가 버렸어. 복이 사람을 따르지 사람이 복을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라다 보면은 사람이 복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 주신다 그말 하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는 목사는 말 들으면 '이래 가지고 사람을 꼬우는구나' 이래 여길 거라.
자꾸 보니까 아침에 요래 수첩을 보고서 '아마 저게 아마 자기가 기도해야 될 그건 명단을 지금 살펴고 있는 게 아닌가?' 이래서 내 마음에 좋았어요.
자기 머리에도 기록해 가지고 있지마는 그거 다 잊어버리고 그거 기억하기 어려우니까 자기 기도해야 될 특별히 일호로 누구를 기도해야 되고 이호로 누구 기도해야 되고 그런 것을 수첩에다가 기록을 해 가지고 쭉 하는 사람이 복있습니다. 또 수첩을 안 해도 기도를 그렇게 해야 됩니다.
저는 사람 이름을 기억을 못 해요. 기억을 못 해저 그전에는 심방 다닐 때는 삽짝으로 기억해요, 삽짝으로. 삽짝으로 기억하는데 그러면 그 삽짝으로 그만 인제 이래 쭉, 그때 뭐 한 이삼백 명 될때는 다 기도를 할 수가 있어. 할 때는 그저 이래 이래. 한 이삼백 번 이래 모가지만 이렇게 하면 그만 다 기도 다 했어.
이라며 (목을 끄떡 끄떡 하심) '그집 그 그 그 그' 그라면 그 사람 다 보며 그 사람에 대해서는 이런 기도 저런 기도해서 기도를 한다 그 말이오.
그런데 이 이름 부를라 하면 힘이 들어요. 또 시간이 늦어요. 그저 '그집 그집' '그집' 이라 해도 또 힘이 들어요. 그저 '그 그 그 그' 이라면 다 돼요. 이래 다 그라며 기도를 해요.
그러니까 학생들도 그거 이름 다 부툴라 하면 힘들어. 그러니까 반사들이 이름 부르지 말고 안면을 봐요. 이래 아무것이 하면 이러면 그는 뚱뚱하게 생겼다 그는 얍실하개 생겼다 길다 해서 안면 알 수 있지 안해? 얼굴 한번 봐. 한번 보고 또 보고 보고 보고 보고 보고 '그 아이 그 아이 그 아이 그 아이' 이래 가다 보면 그 아이는 이런 기도했고 그 아이는 저런 기도했고 다 기도했다. 그라면 다 해 버려.
그 이름을 부를라 하면 더뎌 안 돼요.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해 보면 기도 이 말로 할라 하면 말 이거는 잘 못 따라가요. 말 이거는 둔해. 말보다 생각은 얼마나 빨라요.
그래서 나는 그런 수첩을 보는가 이래서 나는 대단히 마음이 기뻤어. 만일 그때 '뉘한테 돈받을 게 얼마인가?' 오늘 돈받을 게 얼마인가 그런 걸 생각하면 그거 참 불쌍한 사람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된다고서.
그래 가지고 어짜든지 요번 집회 가기 전에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해서 옥토 만들어 놓으면, 옥토만 만들어 놓으면 그 위에 떨어지는 건 전부 윽토에 뿌린 씨가 되면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내가 말은 안 해도 슬그머니 말 들어 보니까 아마 그런 것 같애. OO조사가 이번에 신학원 뭐 논문을 쓰는데, 논문 쓰는데 아마 그런 모양이라. 씨뿌린 설교를 아마 논문을 쓴 모양이라. 대번 논문이 통과됐대요. 내가 말은 안 해도 슬그머니 말 들어 보니까 아마 그런 것 같애. OO조사가 이번에 신학원 뭐 논문을 쓰는데, 논문 쓰는데 아마 그런 모양이라. 씨뿌린 설교를 아마 논문을 쓴 모양이라. 대번 논문이 통과됐대요. 그래 말하기를, 뭐 인제 이제 양사방 세계 다니면서 박사 학위 좀 받아야 되겠는데 그거 가서 그저 설교 하나나 둘이나 간추려 가지고서 써놓으면 전부 박사 논문은 통과 다 된다고, 다 되고 남아요, 실은 저희들이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논문을 가서 거석해 가지고 통과해 가지고서 석사 학위를 받았대요.
그러니까, 이거 참, 하나만 이래 잘 깨달아도 잡으면 다 살아요. 하나만 깨달아도.
오늘 아침에 가르치는 것도 이거, 오늘 아침에 몇 가지 배웠어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고? 일곱 가지. 일곱 가지인데 그것도 딱 거머쥐고, 거머쥐고 인생살이를 살아요. 딱 운전대를 거머쥐고, 요 운전대를 딱 거머쥐고, 운전기사가 벌써 가 가지고서 타고 보면 이랬다가 이랬다가 운전대 이래 돌리면 벌써 그거 위험한 사람이오. 왜? 이랬다가 이래 돌리는 건 이래 돌릴 때 너무 지내치게 돌렸기 때문에 필요 없는 걸 지내치게 돌렸기 때문에 얼른 또 이래 돌려야 된다 말이오. 고거 꼭 돌릴 만치만 돌리고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안해요. 그 차를 제가 아는 사람은 그저 운전대 딱 거머쥐고 이래 돌아갈 때도 돌아가면 이래 돌리지 안해요. 요래 가지고 마음만 그래 돌아갈라고 기울이면 벌써 손은 따라서 조그매 돌아갔다, 그만 됐고. 마음만 요래 해야겠다 조래 해야겠다 하면은 운전대는 가만 있어도 돼져요. 옆에 암만 봐야 운전대 돌리는 걸 못 봐. 그게 잘하는 사람이라. 그걸 이랬다가, 너무 돌리니까 또 이랬다가, 벌써 타 가지고서 차가 휘떡휘떡 하면은 위험해. 내려야 돼. 위험한 사람이라.
그거 모양으로 딱 오늘 아침에 일곱 가지 배운 요런 것도 운전대라. 사람이 걸어갈 도리기 때문에. 이 도리야, 도리라 말은 길 도(道)자 이치 리(理)자 길을 걸어가는 이치라. 이러니까 딱 거머쥐고 요래 가지고 딱 사람을 상대하면은 속지 안해.
'사람을 삼가라' 이러기 때문에 암만 외식해도 외식할수록이 저거는 저게 있으니까 더 지적할 수가 있고 더 말할 수가 있고 그 사람에게 당당히 말할 수가 있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듣고는 잡고 놓지 안해야 자기에게 생명이 되는 것이지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어제는 성경 공부 한 학생들이 이백사십 칠 명, 아주 귀한 일을 합니다. 반사 선생님은 공과를 외우고 체험할 것. 또 하루 삼십 분 기도 놓지 말 것, 그래 어제는 단체로 기도, 단체로 간 사람들이 어제 양산동 가 보니까 많이 왔다 하는데 여기 기록이 안 됐는데 단체로 기도하는 구역은 반드시 수위실에다가 기록을 해 주십시오. 수위실에다가 기록을 해 줘야 요거 발표를 하고, 발표하는 것이 '뭐 내 기도하러 간 것 다른 사람한테 광고할 게 뭐 있는가? 우리 구역에 기도한 걸.' 그런 게 아니고 제가 그래 함으로써 다른 구역이 '다른 구역들도 저래 기도하러 가는데 우리도 가야 되겠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기도하러 갈 그런 마음이 격발시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의로 격동을 시키면은 그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 말이오. '선을 격발케 하라' 하지 안했어? 선을 격발케 하라.
이러니까 기록 하는 게 좋아요.
또 보고도 교회 보고 하라 할 때에 '뭐 저거 교회 것을 남한테 자꾸 보고를 해 쌓고 있어?' 그자가 전부 복음 운동에 방해자라. 지금은 인제 그런 자는 없는데 그것도 보고하는 것도 안 할라고 어떻게 시비가 많은지 지금 근근히 하고 있어.
보고를 함으로 그래도 제 목회 하는 것이, 자꾸 써 낼라 하니까 이거 문제가 돼지니 조그마치라도 자기에게 독촉이 돼지고 재촉이 돼지니까 좋지 안해요?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라고 애를 써야 되지 누가 자기를 구원해 주요? 자신이 자신을 구원할라고 하지 안하면 망해. 또 다른 사람이 구원하는 데 협조해 주는 것도 구원을 받지도 안하면 그 사람은 뭐 망하고도 남지 어짤 거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제는 시원해서 잘 쳤는데 지금 이번 주간이 자꾸 이렇게 시원하게 되면 다음 주간에는 또 더운 것이 보통 이치인데 기도해야 돼요. 예배 볼 때 되게 더워 놓으면, 되게 더워 놓으면 은혜 받는 데 지장 있어요. 이러니까 하나님이 뭐 잘해 주시지마는 자꾸 좀 시원하게 해 달라고 또 기도해.
시원하게 해 달라고 또, 시원하게 해 달라 하다가 시원하게 안 해 주고 덥게 해 주면 낙심할 건가? 그러면 그때는 '시원하게 해 달라 했는데 안 해 주는 것보니까 이 더운 것이 꼭 내게 필요하기 때문에 더운 걸 주시는구나' 하는 그걸 깨닫고 확정을 지울 수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