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인 평안

 

1985. 1. 28. 월새벽

 

본문 : 마태복음 14장 24절-29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 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  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 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온 세상이 다 이  말씀을 가지고 받고저 해도 받지도 못하고 가지지도 못한 말씀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런 사람은 철학자인데 얼마나 진리를 탐구한 사람이며 철저한  사람인가? 그 시대에 소크라테스를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고 합니다. 그만치 시간 관념에도 정확하고 모든 범사에 철저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자기 주관, 자기 생각, 인간의 타락한 그  원죄성, 인생이 인생을 중심으로 한 그것이 다 원죄인데 하나님 중심 돼야 될  게 인간 중심 되니까 아주 그게 틀리고 그것으로 사람이 죽는건데 그것만을  일생 동안 찾았고 그렇게 철저하게 애를 써도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지식을  그들이 얻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또 공자같은 이는 참 이 진리를 찾기 위해서, 인생에게 대해서 바른 이치,  인생에게 대해서 바른 길을 찾을라고 애를 얼마나 썼던지 그는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하룻밤이라도 그 사람을 꿈에라도 봐야 되지 꿈에라도 안 보면  불안해서 견디지를 못한 사람입니다. 이래서 그 분의 말에 삼 일 동안을 주공을  꿈에 보지 못했다고, 주공은 벌써 그때 죽은 사람이니까, 그들이 다 존경하는  위인이요 선배인데 삼 일 동안을 꿈에 보지 못했다고 얼마나 탄식을 했던지  그의 탄식한 것이 그의 전기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옳은 도리 인생의 옳은 도리를 찾을라고 애를 써도 그 분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비슷 비슷한 말을 했지마는  하나님이 열어 주지 아니하시니까 자기대로의,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일 것이다  저런 하나님일 것이다' 이렇게 인간 생각대로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말했지  하나님의 뜻과는 전적 상관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또 석가모니라는 사람은 인생의 정로를 찾을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지, 나는  그걸 보지는 안했는데, 책에 기록한 걸 봤는데, 그 사람이 인생의 정로를 찾기  위해서 한적한 곳에 가서 얼마나 움직이지 않는 부동 자세. 안 움직이고 딱  부동 자세로 이래 가지고 있기를 연습을 하면서 인생의 정로를 찾을려고 수양을  해서, 그의 앉았는 데에 소래고동이, 개울가에 있는 소래고동이가 그 몸에  올라와서 들어붙어서, 마치 바위돌같이 아무 움직이지 안하고 하루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움직이지 안하고 있으니까 이 별레들이 그거는 무슨 동물이 아니고  목석 같은 그런 것인 줄 알고 거기 들어붙기까지 했다고 그렇게. 뭐 그런  부처도 또 만들어 놓은 게 있답니다. 이래도 하나님이 열어 주시지 안하시니까  하나님의 지식을 그들이 받지를 못했고 조물주가 사람은 이런 것이니 이렇게  살아야 된다 하는 그 길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이랬는데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자유롭게 듣고 읽고 외우고 연구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배피 공로 때문이지 그 공로가  아니라면 어림도 없습니다. 공로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주셔서  알도록 이 하나님이. 지공 지성하신 하나님이 인생에게 하나님의 지식을 열어  주도록 하려는 이 일을 위해서 십자가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가리워져 가지고 이 계시가 오지 못하는 것을 뚫리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죄가 가리워져 있어서 잘못이,  하나님 앞에 잘못이 가리워져 있어서 오지 않는 그 잘못을 인간이 대신  형벌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사람 되셔 가지고서 대신  형벌받으심으로써 이 일이 겨우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 피는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하신 말씀은 예수님이 이렇게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이루어 놓으신 이 공로는 참 우리가 인격이 먹고 살 수 있는 인격의 양식이라  그말입니다.

 그보다도 성신의 감화는 하나님이 직접 인생에게 감동시키시는 것인데,  하나님이 직접 사람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 영감입니다. 영감은, 하나님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사람에게 감화로 알려 주시는데 이 감화로 알려 주시는  그것이 영감입니다. 그러면 영감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직접 이렇게 알려 주시는  그것이 영감입니다. 이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 때문에 우리애 게  열려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 때문에 신구약 성경 말씀도 우리에게 왔고,  또 성령의 감화 감농도 우리에게 왔습니다. (저 뒤에 저거 ○○○ 선생 아니가?  ○○○ 선생 손 들어 봐. 와 졸고 있어?) 이것이 다 예수님의 공로로 왔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람들이 사색하는. 탐구하고 사색하는 도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열어 보이시는 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종교는 사색의  도요 탐구의 도요, 기독교는 계시의 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계시도 열 계(啓)자  보일 시(示)자, 열어 하나님이 열어 보여서 보는 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그렇츰 노력을 해도 탐구하고 궁구해도 어림도 없는데 예수님의 피공로  때문에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에게 완전 순종을 한 그 대행의 공로를  베푸시고, 또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죽기까지 이 화목을 위해서 역사하시다가  예수님의 생명이 끝났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죄인 사이에 가로막힌  것이 해결이 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공로 때문에 영감과 진리가 우리에게 왔고 또 우리에게 온  영감과 진리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우리에게 온 영감과 진리는 예수님의  피공로가 어떻게 우리에게 효력이 있고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충거하는  역사를 합니다. 그러면 피공로 때문에 이 두 가지 은혜가 우리에게 왔고. 이 두  가지 은혜는 예수님의 피공로를 우리에게 증거해서, 예수님의 피공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해결해서, 영원한 멸망을 해결했고, 영원한 생명을 해결해서  영생을 이루었고, 창조주 하나님과의 하나가 돼 가지고,  하나님과 결혼한다 하는 결혼은 하나님의 모든 좋은 거 다 가지고 우리에게  모든 더럽고 연약하고 어리석고 무지한 것 우리 것 다 가지고 둘이 합했다  그말입니다. 결혼했다 말은 합했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과  우리에게 있는 모든 더러운 것과 합해서, 하나님의 좋은 것은 우리 것이 되고  우리의 더러운 것은 하나님이 책임져야만 하는 그런 그 신비한 관계를 맺어진  것을 가리켜서 결혼이라, 결혼이라는 건 맺을 결(結)자 혼사 혼(婚)자 인데,  하나님과 우리와 맺어졌다 그말이오. 결혼이란 하나님과 우리가 맺어져서 하나  됐다 말이오. 하나 됐는데.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완전하시고 무한하신 것이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우리 것이 됐고 우리의 모든 더러운 것을 하나님이 다 책임 지셔서 형벌받을  것도 그분이 책임졌고, 가난할 것도 그분이 책임졌고, 천대 받을 것도 그분이  책임졌고, 낮아질 것도 그분이 책임졌고, 모든 더러운 것은 그분이 다  책임지시고 그분의 좋은 것은 다 우리 것이 되도록, 마치 그것을 그 비밀을  인간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남녀 결혼 하면은 남편의 모든 것이 아내 것이요  아내의 모든 것이 남편의 것이라. 아내가 잘못했으면 남편이 그 수치와 벌을  받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더러워지고 벌이라고 모듬매, 모듬매라고 온뒤비져서  이렇지마는서도 옛날, 저도 압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그때 제가 어려도, 한  칠십 몇 년 전인데, 그때는 아내가 잘못하면 그 남편을, 동네에다 동네에서  불러 놓고 '너거 아내가 이렇고 이런 일을 했으니 어떻게 할 것이냐?' '예,  제가, 형벌을 주면 제가 형벌을 당하겠습니다. 안 당할라 해도 안 됩니다. 그래  가지고 동네의 모듬벌이라고 모듬매, 모듬매라고 온 동네 사람들이 와 가지고서  의논해 가지고. '자 몇 대를 때려라' 하는 그런 판정 해 가지고서 남편이  동네의 모듬벌을 받는 것을 저도 보았고 들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이 피공로로 인해서 하나님과 우리와 원수된 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화합이 됐다 그말이오. 화합. 화합. 화합이 됐는데 무슨  화합이 됐느냐? 선악이 화합됐고, 존비가, 하나님은 높고 우리는 낮은데 존비가  화합됐고, 하나님은 귀하고 우리슨 천한데 귀천이 화합됐고, 하나님은  생명이시요 우리는 죽은 자들인데 생사가 화합됐고 이래 가지고 산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요 우리 기독자는 전부 다 하나님의 신부라.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결합된 이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하는 그  비밀이 성경으로 말씀해 놨고 인간의 이 부부 제도라는 이 형식을 가지고  우리에게 또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러면. 남편과 아내가 둘이 합해 가지고 아이를 낳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와 합해 가지고 우리도 자녀를 낳습니다. 자녀를 낳는 것은,  바울이 말하기를 내 참아들 디모데라고 이래 말했는데 바울은 결혼 안 했기  때문에 아들이 없습니다. 육체의 자녀를 안 낳았습니다. 결혼 안 했어요.

주님하고 결합되고 다시 주님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인간의 뭐 결혼이나 그런게  필요 없다 해서 안 했습니다. 그는 자녀가 없습니다. 그는 디모데를 가리켜서  내 참아들이라 말한 것은 하나님의 그 영감과 진리와,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와  바울의 그 충성의 순종과 이 둘이 결합돼 가지고서 디모데라 하는 그 믿음의  자녀를 낳은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이런 세상 것을 가지고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이  밀접한 비밀 이것을,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와는 항상 동거하고 걱정거리도,  걱정이 생기면 두 부부 같이 하지 않습니까? 영광도 남편 영광을 아내가 가지지  않습니까? 아내 수치를 남편이 가지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잘못된 모든 수치는 하나님이 영원히 책임을 지시고 하나님의 좋은 것은 다  우리 것이 된 이런 신비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결합된 이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대해서 우리는 밤낮 생각해야 된다.

'내 피는 참된 음료요 내 살은 참된 양식이라' 그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형 대행, 대신 형벌받고 대신 행하고 대신 화친을 한 이 십자가의 대속의 이  공로는, 이것은 우리의 영육의 양식이라 말입니다. 우리의 영육의 양식, 영육의  양식.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요, 영혼이 이 공로를 먹으면 살이 찌고 강건해지고  잘 큽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먹는데 어떻게 먹습니까? 입으로  먹습니까 마음으로 먹습니까? 뭘로 먹소? 예? 마음으로 먹습니다. 입으로 먹지  안하고 마음으로 먹습니다. 육신의 양식은 입으로 먹어야 되는데 이 인격의  양식은 마음으로 먹어야 됩니다.

 마음으로 먹으면 어떻게 먹습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하나씩  둘씩 차차 알아 나가는, 지식해 나가는 것으로서 먹습니다. 이 지성 이라는  우리속에 지성이라는 그 성품이 있는데, 뭘 알라고 하는 아는 지성으로  먹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감화라는 감화로 먹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사실로  확신하는 이 확신으로, 믿음으로 먹습니다. 확신으로 먹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하나만 먹으면 영양이 확 돌아오는데 하나 먹는 그 방편 하나 남은  것 뭐입니까? 저 ○ 뭐꼬? ○○ 선생 동생 뭐꼬? 하나 남은 거 뭘로 먹지? 하나  남은 거 뭘로 먹어야 되겠지? ○○○? 행함으로 먹어야 돼, 행함으로. 행하면,  행하면 그만 영양이 와 가지고서. 행하면 영양이 와 가지고 우리가 건강해지고  살이 찝니다. 영양이 오는데, 영양이 오면 힘이 힘이 생겨집니다.

강건해집니다. 커집니다. 그 힘이 무슨 힘이지요? 어떤 힘이지요? 지극히 큰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극히 큰 능력이 내 것이 되어집니다. 점점 와  가지고서.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모든 이종교는 사람이 찾아 헤매는 것이 이종교요  기독교는 하나님이 이렇게 주시는 것이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에 세상  이종교는 인간이 찾아 헤매는 것이 이종교요, 찾아서 헤매서 뭘 만났는가?  인간의 타락, 인간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인간 자기 중심으로 인해서  죽었는데, 하나님께 지음받은 것이 하나님 중심 안하고 자기 중심으로  죽었는데, 자기 중심인, 자기 중심, 인간 중심을 찾은 그것이 모든 이종교의  결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종교는 그 찾은 전체가 다 하나님과 원수되는 그것을 찾아서  원수되는 그 일을 점점 키우고 더 확고하게 하기 때문에 점점 사망에서  사망으로 깊이 빠져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계시록에  말씀하시기를 '사탄의 깊은 것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다른 짐을 지울 필요 가 없으니  이제 하는 대로 고대로 계속해라'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사탄의 깊은 것이  뭐입니까? 인간이 깊이 빠져서 죽는, 죽어도 얕은 물에 빠져 죽는 것 보다는  깊은 물에 빠져 죽는 것처럼 깊이 빠져 죽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게  뭐인가? 인간의 철학이요, 인간의 철학이요 인간의 모든 종교들이요  사상들입니다. 그런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지금 사는 고대로 살면 된다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인생은 죄로 말미암아 깜깜 어두워져서 지척을 분별 못 합니다. 지척을  분별 못 하는 것은 자기에게 한 가지 사건을 당하면은 당면한 사건을 요래야  될까 저래야 될까 모릅니다. 바로 알아서 처리하면은 바로 한 자욱 때놓은  것입니다. 꺼꾸로 알아서 고대로 처리하면은 자기가 스스로 망할 그 꺼꾸로의  길을 한 걸음 걸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이 하나님이 지척을 분별 못 하는 우리 들에게  하나님이 빛을 줬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발의 뭐이라 했습니까? 녜?  하나님의 말씀은 발의 뭐이라 했습니까? 발의 못이라 했습니까. 뭐이라  했습니까? 발의 등불이라 발의 등불이라 말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될 것을 모르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해야 될 것을 환하게 보여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 가지고 고대로  하나씩 둘씩 실행해서 이 말씀에게 복종해 본 사람이라야 이 말씀의 가치도  알고 또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갖다 주는 큰 구원도 받지 그렇지 않으면 못  받습니다.

 오늘 아침에 제가 요 성경 말씀을 본 것은, 제자들이, 그들이 왜 세상과 같은  갈릴리 바다를 주님이 명령하신 대로의 건너편으로 갈라고 할 때에 술술 잘  가다가 왜 바람 만나서 못 갔습니까?  가던 것은, 술술 잘 가던 것은, 그들 마음 속에 오병 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  나니까 그렇고 또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나니까 속에 그만 주님과 말씀 이 가득  찼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아무것도 안보이요. 여러분들도 그런 걸  느끼지 않습니까? 그저 영감으로 와도 참 하나님의 말씀의 은 혜를 받고 보면.

은혜를 받고 보면은 주님 외에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주님 외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저 '아 참 나도 주님으로 충만해야 되겠고,  우리 아내도 주님으로 충만해야 되겠고, 우리 남편도 주님으로 충만해야  되겠고, 우리 자녀들도 주님으로 충만해야 되겠다. 주님으로 충만 한 거 그  외에 아무것도 없다. 또 주님의 말씀 외에 좋은 게 없다' 이래 가지고 '주 음성  외에는' 뭐라 했습니까? '더 기쁨 없도다.' 이래서. 이 제자들이 주님과 주의  말씀이 제자들 마음에 가득 차 가지고서, 가득 찬, 이 마음에 찬 주님과 주의  말씀을 인해서, 인해서 배를 타니까 술술 갔습니다.

 오늘도 이것입니다. 그 사람이 주님과 주의 말씀인 이 진리로 가득 차  가지고서 거게 못 견뎌서 주님으로 인하여 주의 말씀으로 인하여서 움직인  생활에는 절대 실패가 없습니다.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럴 때에는 모든  주변에 있는 만가지가 다 해결입니다. 그러니까. 바다도 복종하니까 그들이 노  안 저어도 바람이, 또 물결이 슬렁슬렁 해서 배는 제 갈 대로 갔을 것입니다.

 이랬는데, 그들의 방편이 배를 탄 어부들이기 때문에 배를 타고 이라니까 고만  노 젓다가, 노 젓다가 노 때문에 가는 줄 알았습니다. 노를 저어서 노를 저은  그것 때문에 가는 줄 아니까 자꾸 노만 열심히 저었지, 주님과 주의 말씀이  저희들 마음에 가득 차서 주님과 주의 말씀은, 말씀은 천지를 창조한 실력이요,  주님은 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라고 명령하신 주인이요, 이러기 때문에, 이는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도감독. 창조하신 외나 건설주 또 건설한 거 모든  기구, 모든 도구, 모든 장비 이것이 진리인데 이 둘이 인생 속에 가득히  찼으니까 어떻게 그로 인해서 지음받은 만물이 복종 안 하며 또 고가 호령쳐서  모든 거 된 그분이 계시는데 어떻게 그런 것이 순종하지 안했겠습니까? 이래서  가는데 그분들은 이것을 잊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요렇게 해 가지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분들이 몰라서 자기들 안에 꽉 채여 가지고 있는, 담뿍 속에 가득히 충만히  되어 있는,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주의 말씀 외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나는 이렇게 충만해진 그 능력이 이렇게 된다는 그것은 모르고 저거가 노를  젓고 행함으로 되는 줄로 이렇게 알다 보니까 자꾸 행하는 가운데에서 일이 안  되니까, 행하는 가운데에 애를 써서 일이 안 되니까 애를 쓰는 그거, 그것이 왜  안 되느냐?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안되는 그것을 그들이  몰랐다 말이오. 모르니까 자꾸 애만 씁니다.

 일이 안 되니까, 믿는 사람들이 뭘 일이 안 되니까 '아, 요거 내가 거짓말 안  해서 일이 안 됐는갑다. 예수 믿기 때문에 안 됐는가 보다.' 망령된 자는 제가  안 믿어서 안 된 줄을 모르고 안 된 것은 '봐라. 예수 예수 그래  쌓더니마는서도, 사람이 거짓말 안 하고 무슨 사업 하노? 거짓말 안 하고 자꾸  예수 예수 해 가지고 이게 안 되지 않느냐? 또 제일 요긴한 때, 다른 사람들은  다 주일날 장사하니까 모두 다 손님들이 오는데 주일날 문 딱 닫아 버리니까  손님 다 끊어지는 거 아니냐?' 자꾸 저거가 잘 못 해서 그런 줄 알고 자꾸  열심히 합니다. 열심히 해 봐라 망하지. 하나도 풍랑 때문에 못 갔습니다.

요것을 요렇게 해 가지고 우리에게 예수 믿는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 못한 것은, 못 가고 결국은 자기들에게 고통만 당했지 뭐 딴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그렇게 고통 가운데에 해결한 요걸 지금 오늘  아침에 말할려고 지금 아침에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모두 다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 많아. 이 주님과 말씀 버려서 사업 낭패된  사람, 자기 계획 낭패된 사람, 모두 자기 직장에서 낭패된 사람, 모든 공무원  관공서에서 낭패된 사람, 뭐 가정에 낭패된 사람 모두 다 낭패 된 사람이  많아서 이 주님과 주의 진리를 떠나고 제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제 힘으로 살면  될 줄 알고 하는 그것 때문에 낭패당한 일이 많은데, 제대로 해서, 제  욕심대로. 제 성질대로, 제 기분대로, 제 하고 싶은 대로, 주님에게 거슬리는  오만 일 다 해 가지고서 낭패가 돼서 아무리 골이 빠져 봤자 됩니까? 안  됩니다. 번다고 됩니까? 안 돼요. 전대 밑구멍 떨어진 데에 넋는 거와 같이  밑구멍을 뚫어 놓으면 암만 해 봤자 안 쌓입니다. 자꾸 벌면 벌수록 이 빚이 더  지고 곤란은 더 당합니다.

 이런, 이 제자들이 풍랑 만나 가지고 하나도 성장은 안 되고 전진도 안 되고  향상도 안 되고 좋아지지도 안하고 자꾸, 자꾸 매말라져 간다 그 말이오.

모든면이 말라져 가요. 이런데, 이런 형편을 당하고 있는 우리 교인들이니 이런  형편에서 해결되는 방편을 말하기 위해서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읽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제자들이 이렇게 놀라고 있는데, 먼저 고만 자기네들이 마음이  훈훈하고, 마음에 고만 '죽겠다 죽겠다' 지금 이렇게 다급한 그 모든 근심  걱정이 자기 마음속에 평안해지고, 평안해지는 이 평안은 주관적 평안입니다.

주관적 평안,  주관적 평안이 뭘로써 주관적 평안이 생겨졌습니까? 뭘로써 그들이 어떻게  해서 주관적 평안이 생겨겼습니까? 요걸 알아야 돼. 어떻게 해서 그 들의  마음이 그만 평안해졌습니까? 어떻게 해서 근심 걱정이 차차 조금씩 조금씩  줄어지고 조금 평안해졌습니까? 어떤 사람은 조금 평안해졌고 어떤 사람은 많이  평안해졌고 베드로 같은 사람은 고만 평안해지기를 물 위에 훅 뛰어  내리기까지, 그까짓 거 물하나도 걱정 없이 그렇게까지 평안 하고 담대해졌으니  어떻게 돼 가지고 그렇게 됐습니까? 고걸 알아야 됩니다. 어떻게 돼 그렇지요?  예? 뭐입니까? 똑똑히 말해. 뭐 틀려도 배우는 사람이 틀리기도 예사지 뭐. 예?  하나님이 보여야지? 없는데 뭐 예? 주의 음성을 들었오. '내로라' 하는 그  음성에, '내다' 하는 주의 음성 들으니까 그만 그 제자들아, 물귀신인 줄 알고  그들이 지금 마지막으로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아우성을 쳤는데 '내로라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하라' 하는 고 주의 음성에 그만 그들의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이 평안한 것은 평안하다고 해 가지고 풍랑이 잔잔해졌습니까, 풍랑은 그대로  일고 있습니까? 어떻소? 예? 이걸 모르면 안 돼. 풍랑이 그쳤습니까? 그쳤오?  자, 그쳤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 안 그치고 풍랑 그대로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녜, 이거라요. 이거, 그대로 있었어요. 있었는데.

풍랑은 그대로 있었어. 자기 몸 밖에 있는 주위 환경이에 자기가 저질러 놓은  사건들은 그대로 지금 풍랑이 일고 있다 말이오. 저질러 놓은 사건들은 그대로  지금 이르고 '이놈 어디 갔노? 부도 났네. 이 놈 어디 갔노? 잡아야 되겠다.

이놈 어디 갔노? 죽여야 되겠다.' 이제 모든 자기가 잘못 저질러 가지고서 뭐  자기 경제에, 가정에, 사업에, 모든 가족에게 이거 다 일어난 이 모든 화는  그대로 있어. 그대로 있지마는 주의 음성 들으니까 주관적 평안을 가졌습니다.

어제 그거 다 가르쳐 놓은 것이오. 주관적 평안을 다 가졌습니다. 주관적  평안은 가겼지마는 자기 몸 밖에 있는 객관적인 이 평안은 아직까지 평안이  되지를 못했을니다. 주관적 평안만 됐지.

 이 주관적 평안이 된 거와 같이 우리가 그럴 때에는, 그럴 때에는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할라고 야단을 지기지 마십시오. 이래 가지고 공연히 제가 할라고  '이놈 때문에 내가 이 일이 됐다, 이놈이 우리 원수다, 아무것이 그놈 우리  원수다, 또 요것은 아무것이가 들어서 요 일을 빽 틀어 가지고서 안 되게 됐다.

이 사람에게 가서 교제를 해야 되겠다. 사귀어야 되겠다. 이것은 이놈이 들어  이랬으니까 어짜든지 그놈을 내가 어느 모퉁이라도 그놈의 단점이나 비를  발견해 가지고 이놈을 물고 늘어져야 되겠다.' 뭐 야고보서 4장에 보니까  싸우고 다투고 피를 흘리고 살인한다 했습니다. 이렇게, 혹독한 방법을 써 봤자  일은 안 돼. 야고보서 4장 1절 이하에 있어요.

 그런 방법 쓰지 말고, 여게 가르쳐 주신 대로 자기 주관적 평안이 되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는 객관적 평안으로 바다까지 잔잔해지지 안했습니까? 바다까지  잔잔해지지 안했오? 주관적 평안은, 주관적 평안은 어째 가지고 주관적 평안을  받았습니까? 아는 사람, 자, 답을 하지 말고 아는 사람 손 들어 봐. 와 또  아까는 다 들더니만 손을 안들어? 안다 하니까 뭐 교만해, 아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주관적 평안이 어떻게 해 가지고서 주관적 평안이 왔다 하는 것을 아는  사람, 아는 사람 다 손 들어요. 여기 아까 들었더니 안 드네? 다 알았는데 또  '아는 사람' 하니까 똑똑히 알지도 못하는 게 안다고 자랑처럼 그럴까 싶어서,  하나님 앞에 배울 때에는 어린 아이가 돼요. 돼야 돼요. 모두 알지 않소? 다  손들지 안했오? 주님의 음성을 들으니까, '내로라 두려워 말아라 안심하라' 이  음성을 듣고 나니까 평안해겼지

 그러면 오늘에는 주님의 음성이 뭐입니까? 주님의 그말 듣고 나니까  평안했는데 주님의 말이 뭐이며 음성이 뭐 입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 아니오?  그렇지 않소? 이러니까, 그런 문제 있거들랑, 내가 인간으로 더 불어 원수를  맺고 내가 요 꾀를 쓰고 조 꾀를 신고 더 죄를 더 지어서 거짓말을 더 하고  악독을 더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여가도 없고 모든 걸 다 하나님을 더  멀리 버리고 멀리 버리고 자꾸 멀어지고 야단 지기면 그럴수록이 해결이  됐습니다. 점점 더 심해 졌습니까? 점점 더 심해진 요것을 알고 여게서 배워  가지고 이와 같이 살아야 자기에게 효력이 오지 안 살면 효력이 옵니까?  주의 말씀을 듣고 나니까 해결이 됐으니 오늘의 주의 말씀은 성경입니다. 고만  그럴 때에는, 큰 것이든지 작은 것이든지 그럴 때에는 자기가 가만히 생각해서  '아, 이거 내가, 누구 때문에가 아니고 나 때문이다. 내가 잘못해서 내가 잘못  해서, 내가 잘못해서 잘못 저질러서' 내가 잘못 한 것은 삐뚤어진 것을 내가 한  그것도 내가 잘못이고 내가 바로 할 것을 바로 하지 안한 것도 잘못이고,  삐뚤어진 것을 내가 한 그것도 잘못이고, 내차 해야 뒈 걸 바로 해야 될 걸 안  한 것도 잘못이오. '내 잘못됨으로 모두가 이런 것이 일어났으니' 이래 될  터인데, 이 잘못된 것 때문에 일어난 것을 이거 회개할라고 하지는 안하고  나한테 신고함에 써 붙이기도, '목사님이 잘못 해서' 그런 사람도 이제 어떻게  구출하지 안한다고 이래 가지고서 '이게 기독교입니까 뭐입니까?' 말을 해  놨어. 그 사람도 사람 죽이는 사람이라. 사람 죽이는 사람이라. 회개 안 하면  하나님 앞에 아각에게 이른 아말렉 족속의 그 아각에게 이른 거와 같은 그런  화가 은다 그거요. 사람 죽이는 거라.

 그럴 때에는 뭐라고 말해야 됩니까, 그 사람에게 대해서? 그 사람에게 대해서  뭐라고 말해야 되겠오? 목사가 들어서 그렇게 했다 해야 되겠오, 녜가 하나님  앞에 하지 말라는 일 했고 하라는 일 안 했고, 본인이 알거 라 말이오. 야 그런  계 아디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일 한 일 없나? 있다 그말이오. 안다 그거요.

그러면 그 사람이 알아요. 모든 사람이 다 '하지 말라는 일 네가 해서 그렇다.

고걸 회개해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당장 고쳐 주시지. 왜?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그걸 못 하시겠오, 못 하시기를? 이거는 하지 안하고 더 죄를, 더  망할라고 옆에 권한다 하는 것이 '이래도 목사가 가만히 보고 있다.' 목사  제까짓 게 무슨힘이 있오? 그 사람이 본인이 죄 지어 가지고 되어진 그 절단을  목사가 어떻게, 목사가 하나님이오? 목사가 할 권리가 없습니다. 실력이 없어.

본인이 안 할 걸 해서 주님이 노해 그러면 안 할 걸 '잘못했습니다.' 고걸  고치면 주님이 해 주시지 목사가 무슨 힘이 있오? 안 돼. 목사가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오. 또 자기가 할 일을 안 해서 그러면 할 일 하면 돼. 할 일을 하는데  안 됐으면 하지 말라는 일을 해서 그렇지. 둘 중에 하나지. 딴거 더듬을 게  없어. 하나님 앞에 계약해 놓고 계약하고 해 보지,  이래도 그런 것을 바로 지도를 못 합니다. 못 해. 그 비밀을 어떻게 지도하면  폭로가 되는데 그 뒤를 어떻게 감당할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그러니까  '어짜든지 하나님 앞에 기도 하십시오.' 기도하라는 그 말은 기도하면 깨닫게  되지 싶어서 기도하라는 것이오. ○○목사가 청량리 교회 있을 때에 옆구리에  병이 나 가지고 옆구리에 고름이 줄줄 나오는데 병원에 암만 다녀도 됩니까?  암만 다녀도 안돼요. 나는 하는 말이 그말이오.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신 것이니까 어짜든지 하나님께 기도 하십시오.' 그럴 때에 그 말은 무슨  말인지 내가 거짓말하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너를 고쳐 주실라고 하나님이  너를 고쳐 주실라고 하나님이 징계로 너에게 준 것이니까 네가 기도하면 깨달을  터이니까 기도하고 깨달으면 그것 당장 낫는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응하면 그만 낫는다' 그말이라 말이오. 그말이지마는서도 '네가 무슨 어떤 일을  해 가지고 그런 것이니까 그것을 고치고 이라면 낫는다' 그 말 하면은 개에게  진주 던진 거 같이 막 그러면 확 달라들 터이니까 '뭐? 사람을 이래 가지고  지금 공격만 하고' 달라들 터이니까 치료도 못 하고 도로 그 사람하고 나하고  원수만 질 터이니까 안 된다 그거요.

 오늘도 그런 사람 많아. 어째 그럴까? 알기 때문에. 모르고 '뉘 탈, 뉘 탈, 뉘  탈 때문에' 하지 안하고 그걸 알기 때문에, '어짜든지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안하시고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사랑하는 자에게는 징계를 주신다고 하셨으니 무엇인가  하나님의 요구가 계시지 않겠느냐 그걸 찾아서 기도해라' 이것 보다 더 좋은  말이 없다, 그말이오. 이런데 그럴 때에 엉뚱한 짓 하면은 더 망합니다.

 자, 해결이 뭐이요? 주의 말씀 듣는 것 아닙니까? 그거 가지고 됐어 그러니까,  자, 주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사건들, 모든 풍랑 이는 사건들이 해결됐습니까,  사건들은 그대로 있지마는서도 자기 주관이라는 자기 주관의 평안, 자기 주관  평안, 자기 마음에서 나온 자기 주관 평안. 주관 평안이 왔오, 객관적인 평안이  왔오? 주관 평안이 왔지마는 객관에는 그대로 일어나고 있어도 주관 펑안은  됐습니다. 주관 평안이 왔다고 여게 깨달은 사람 손 들어 보소. 녜 다 주관  평안이 안 왔오? 주관 평안이 오는 것은 방편이 그겁니다. 그럴 때에 자기가  자꾸 엉뚱한 짓 하지 말고, 누구 탓이라 누구 탓이라 이래 가지고서 싸움을  하다가 시비를 하다가 나중에는 미워서 살인해도 안 된다 했어. 안돼.

 그때는 주의 음성 듣는 거 외에는 해결이 없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어 안  되거들랑 저 어데 부흥회 하는 데 가요. 부흥회도 잘못 찾아다니면 흘랑가지에  홀껴 가지고 죽습니다. 부흥회도 잘못 찾아가면, 내가 다른 진영 에 어떤  진영이 산 진영이고 어떤 진영이 죽은 진영인지 그걸 낱낱이 내가 알지도  못하고 또 알아도 말할 수 없고 이라기 때문에 안 되고, 우리 진영에서  부흥회하는 부흥회를 가십시오. 가 '가지고 일주일 동안. 닷새 동안이면 닷새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자기 심령에, 해결이 될 것입니다.

평안할 것입니다. '아, 요것 때문이다 요것 때문이다 요것 때문이다' 하고서 그  자리에서 다 하나님과의 문제를 해결 지우고 나서 보면 와서 보면은 그만 바람  잔잔할 수가 있고, 바람은 잔잔하지 안 해도 마음 가운데 주관적 평안은 가질  수가 있고, 주관적 평안을 가졌다가 마지막에' 자 그 바람이 물결이  잔잔해졌습니까, 안 잔잔해졌습니까? 마지막에 잔잔해졌오 안잔잔해졌오?  잔잔해졌습니다.

 잔잔해질 때에는 어떻게 하니까 잔잔해졌지요? 예? 주님이 배 안에 썩  들어오시니까 그만 물결이 저절로 사르르르르르 그만 잔잔해졌습니다. 주님  만나면 돼요, 주님 만나면.

 주님 만나서 주님 만족하면, 그 사람이 모가지를 졸라서, 모가지를 졸라서  죽일라고 '안 내면 너거 집이라도 어째라 뭣도 어째라' 요렇게 하던 그 사람  마음이 스르르 풀리고 그 사람이거짓말해 가지고 서로 죽이니 살리니  하나님에게 욕을 돌리고 막 원수가 돼지고 자꾸 이렇게 해서 거짓 말하던  사람이 주님이 턱 오시니까, 그 마음을 차고 앉으니까 겁이 나서 '어이구 내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내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내가 받고 안 받았다 했습니다.

내가 안 주고 줬다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감동시키면 그게 다 바로 돼서  돼진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모든 문제가 해결 돼.

 이 사람이 '나는 너하고 거래 안 할란다. 너 하고는 손을 뗄란다.' 손을 뗄라  했는데 주님이 떡 그래 가지고 주님 만나고 나니까, 주님이 능치 못 하심이  없으니 떡 오니까 그 사람 마음이 갑자기 변해져 가지고서 와 가지고서 ''자네  행실을 보면은 내가 다시는 자네하고는 거래를 안하지마는 서도 이제 내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어짠지 내 마음이 이상하게도 스르르 돌아지는 것이 '그래도  이거 죽는 자를 아주 죽여 되겠느냐? 내가 돌보지 안하면 어찌 되겠느냐?' 돌볼  마음이 있어서 그랬는데 그래 그 행사를 '회개를 하느냐" 이라니까 그 사람이  떡 말을 하는데 보니까 옛사람이 아니라. 말을 하는데 보니까 '아이구, 내가  아무 때 요것을 요래 했고 요래 했고 요래 했고 요라고 요라고 요래서 내가  당신에게 면이 없으니까 내가 이래 저래 말할 것 없습니다. 이거 순전히 내가  잘못해 가지고서 요렇게 거짓말도 했고 요걸 요렇게 해도 또 방종으로 돈을  벌로 썼고 또 요래 가지고서 요리 요리 해 가지고' 전부 제가 잘못해 가지고  됐다는 그걸 쏵 다 말하니까 하 이거 전주 이 사람이, 이 사장이 사람이 그말  척 듣고 보니까 속이 그만 체증이 사르르 내려오는 게 돈 받은 거보다 좋아.

좋아서 '야 됐다. 사람이 일생에 열 번 된다고, 백 번 된다고 하지 안하냐? 뭐  과거 생각지 말고, 네가 마음 가진 자세가 됐다. 그래 한번 힘써 한번 해  보자.' 아 이거 이 사람도 만나고 저 사람도 만나고 인인상사가 인간인데 이거  다 보니까 전부 다 봄동산이오. 해결이 여게 있는 것입니다.

 환난 만났을 때에 주관적 평안은 어데서 왔어요? 주의 말씀 들으니까 왔어.

자꾸 성경을 읽어. 사경회 하는 데 안 갈려면 성경을 자꾸 읽어요.

 내가 어떤 사람에게 '네가 암말도 말고 기도원에 가 가지고서 성경을 읽어라.'  '얼마나 읽을 까요?' '신구약, 너는 지어 놓은 죄가 많기 때문에 신구약 열  독을 읽고 와야 되겠다.' 이게 벌써 삼십여 세가 되도록까지 성경 읽은 것이 한  번도 못 읽고 반 번도 못 읽었는데 이제 성경 열 독을 읽으라 하니까 그거  기막힐 일 아니오? 원첨 밖에서 하나님께서 다조차서 나오면 못 살고 죽을  지경이니까 꼼짝 못 하고 다섯 번 읽었어. 성경을, 신구약 성경을 오 독을 했어  오 독을 하니까, 벌써 오독만 해도 주관적인 평안이 왔다 말이지. '아, 이제야  나가면 문제가 없다.' 모두 근심 걱정 되는 게 겁도 없어지고 그거 다 해결될  것이 환하이 보여지고 이라니까 나왔다 말이오. '나오지 말아라 아직까지 때가  안 됐다. 다섯 번 더 읽고 나와라.' 다섯 번 더 읽고 나왔으면 자신도 변화됐고  환경도 변화됐고 다 변화됐으니까 그때부터는 그만 생명의 날이요 평안의  날이요 좋은 날만 남아 있을 터인데 반츰 읽고 왔으니까 반츰 해결 됐다가 반츰  그게 지나가 버리니까 다시 화가 일어나지 않소? 그전 화보다 큰 화는  아니지마는 서도 그전만 못한 그전의 반츰되는 화의 중량이 왔다 그거요.

수학적이라, 과학적이라. 그렇게 철두철미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라는 것은.

 이러니까 성경 읽고, 성경 읽고 주관적 평안이 오고 난 다음에 더 그 성경  말씀을 깨닫고 그대로 자꾸, 성경 말씀 깨닫고 난 디음에 자기가 잘 못된 것을  고치고 성경 말씀대로 자기가 자꾸 회개를 하고 하고 하니까 차차 차차 주님이  오십니다. 주님이 오시요. 주님이 오면 풍랑 잔잔해. 주님이 오십니다. 주님이  어디옵니까? 주님이 어디 오시요? 예? 주님이 어디 오십니까? 자꾸 성경 보고  회개하니까 주님이 어디 오시지요? 예? 우리 집에 오요 부산역에 오요? 자기  마음에 주님이 오십니다. 자기 마음에 주님이 오시니 이분이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요 전능자시요. 주님이 오십니다.

 주님이 오시고 나니까 언제 바람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가졌는데 풍랑은  잔잔해져 버렸오. 주님을 만나야 네가 네게 있는 문제가 해결이 되지 주님  만나지 안하고 이 사람 핑계 저 사람 핑계, 욕만 하고 돌아다니고 수근거리고  돌아다니면 되느냐! 안 된다 그말이오! 왜 회개를 안해 안 하기를! 주님 만나면  돼요. 주님의 말씀으로 자기 심령이 평안해. 심령은 죄가 들었는데 회개해야  평안하지 회개 안 하는데 평안해? 주의 음성을 들으면 평안하다는 것은, 주의  음성을 듣고 보니 요거 잘못됐다 저것 잘못됐다 하나 둘 회개하니까 심령이  평안합니다.

 여러분들, 회개하니까 마음이 평안해진, 회개함으로 그 심령이 평안해 진걸  경험한 사람 손들어 봐요. 회개하니까 그 마음이 평안해진 일 경험 한 사람. 다  경험했네요? 다 경험했어. 안한 사람 없을 거라. 이렇게 자꾸 회개하니까 자꾸  더 평안해지지. 평안해지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주님에게 대해서 갈급이 되지.

이제는 이런 거 저런 거 주님이 하지 말라는 그것만 탐을 내고 그것만 욕심냈던  자가 이제 주님에게 대해서만 갈급이 돼집니다. 주님에게 대한 갈급이 돼지니까  자꾸 주님을 청하니 주님이 내 마음 가운데 오시고 오시면 그분이 전능의  하나님이시오.

 그분이 오고 나서 보니까 나도 과거에 그런 모든 문제가, 마음의 평안을  가졌는데 나만 평안한 게 아니라 그라고 난 다음에 썩 나오고 보니까 모든  사람들도 변화가 돼 버렸어. 변화가 다 돼 버렸어. 사건이 변화 다 돼. 버렸어.

다른 사람이 자기를 보기를 딴 사람으로 본다 그거요. 또 그 사람들 자신들도  다 달라졌어. 하나님이 '들에 복을 준다' 그거 몸 밖에 아니오? 이와 같이  자기의 사업에서 자기의 직업에서 자기가 교제하고 있는 자기 사회에서 모두가  다 히;결이 다 됐어. 복 동산이 다 됐오. 이라고 나니까 일거리가 없는데 일이  자꾸 디리 채여. 돈벌이 할 것이 없는데 자꾸 돈벌이가 와서 이것도 하니까  돈벌이 저것도 돈벌이, 자꾸 생각보다도 자꾸 더 많은 큰 돈벌이가 되지요. 이  문제 저 문제 해결이 다 되지요. 주님 한 분 가지고 우리의 전부를 삼을 줄  알고, 삼으면 틀림이 있으며 부족함이 있느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런데 이 방편을 쓰지 안하고 주님이 미워하시는 마귀하고 친하고 이제 자기  중심으로 인간 중심으로 자꾸 이와 같이 나가니까 갈수록이 자꾸 화가 올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 말씀하신 말씀 요것을 단단히 듣고 놓지 말고 요 방법을 써  먹어요. 요 방법을 써야 효력이 나지.

 예수님 한 분이면 해결 안 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이거 공연이 아닙니다. 해  본 사람은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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