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역할과 세력

 

1983. 4. 15. 금새

 

본문 : 롬6:20-23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 말은 죄의 움싹이라 말이 아니고 죄의 값이라  말입니다. 죄의 삯.

 죄는 어떤 것이 죄인고 하니 하나님이 내게 모든 복을 주시려고 할 때에 그  복을 주실 수 없도록 가로막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의 법칙을 당신이 어길 수 없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아무리 복을 주시고자 하시지마는 복을 줄 수 없는 그  죄가 가로막고 있으면 주시면 하나님에게 죄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못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복은 주시기를 심히 원하고 복을 주실 수  없는 죄가 가로막고 있고 이래서 어쩔 수 없어 그 가로막고 있는 죄의 그 값을,  죄에 대한 형벌을 예수님이 받으셔서 그 죄를 없애신 것입니다.

 어떤 죄악인가? 세 가지 죄악인데 하나는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계약을  어기는 죄요, 또 하나는 하나님이 자기를 주관하지 못하고 자기가 자기를  주장하는 자율 주관의 죄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불법이라 불의라 그렇게  말하고 하나님 말씀 어긴 것을 가리켜서 죄라 그렇게 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에게 속하여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아야 할 택자들인데 하나님을 떠나서  행동하는 그 죄입니다. 그러면 세 가지 죄악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심으로 그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칭의를 주신 것은 하나님으로 인하여서만 움직여지는 대신 행하심으로써 칭의를  주셨습니다. 칭의는 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칭의 준 것이 아니고 있는  전부를 다 생명까지 기울여 순종하는 것으로 칭의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또 화친도 형벌을 받음으로 화친이 되는 것 아니고 하나님과 화친하는 그  화친을 놓지 않고 그 화친을 계속 보존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저주하고 어떻게  해도 그 화친을 내어주지 않고 생명 다해서 죽기까지 화친을 붙들고 화친함으로  죽었습니다.

 이래 가지고 대속을 하신 것인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갖 축복을  주시고자 원하시는데 주실 수 없도록 죄가 가로막고 있는 이것이 안타까와  주님이 대속하셨기 때문에 택자들은 주님의 축복을 가로막고 있는 그 죄를  자기가 깨닫고 주님이 대속해 주신 것을 자기가 믿으면서 '주님이 이 죄를  대형으로 대속해 주셨사오니 내가 주님의 공로를 믿습니다. 주님이 내 죄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에 사죄 받아서 이 죄가 내게 오는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가로막지 못할 것을 내가 믿습니다. 이 죄를 대속해 주셨으니 이 죄와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할 때에 즉시 없어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 놓고 다시 죄를 제가 만들지 않으면 되는데 그렇게 마음으로  말로 해 놓고 또 죄를 만듭니다. 그러면 말해 놓은 것은 다 거짓되고 새로  가로막고 있는 그 죄가 그대로 있기 때문에 모든 축복이 가로막히고 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또 죄는 하나님과 나와의 이렇게 결합이 돼서 친밀히 하나님과 나와의 친밀히  돼서 친밀한 그런 신인 교제, 하나님과 사람이 친밀히 교제해서 하나가 되는,  둘이 하나가 되는 이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는 이 일이 안 되면 영생이 없습니다.  생명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사죄  칭의 새생명 받아 영이 중생된 그 때부터 생명은 받아 가졌습니다. 그 생명은  영생입니다. 그러나 그 생명이 행동할 때에 행동이 그 생명으로 인해서 산  행동이 될 때에 그 행동은 영생이 됩니다.

 우리의 언행심사, 말이나 행동이나 마음이나 생각이나 언행심사 그 것이  행동인데 언행심사가 하나님과 연결된 언행심사가 된 것은 다 영생이고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은 언행심사는 다 사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생은 하나님의 그 신격과 나의 그 인격이, 인격이라는 것은 지정의  회로애락을 가진 것이 인격인데 짐승에게는 비슷한 것 있지마는 짐승에게는  인격이 없습니다. 짐승을 탁월한 인격이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또 사람을 그런 인격으로 만드신 초인간의 것이 하나님의 신격입니다. 신격은  원형이 되고 우리 인격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신격을 닮은 그 모양대로 지음 받은  것이 인격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결합이 되는 것은 내 인격과 하나님의 신격이 강제로 하나님과  이렇게 한 덩어리 만드는 게 아니고 자유 의사를 가지고 자유롭게 내가 원해서  하나님과 인격 결합이 되는 것이 그것이 유기적 결합이라 그렇게 말들 합니다.

 그것은 강제가 아니고 자유 의사를 가지고 '하나님과 교제해서 결합되는 그  결합이기 때문에 강제 결합이 아니고, 자기가 몰라서 속혀서 결합된 것도  아니고, 또 어떤 그 미혹을 받아 가지고 결합된 것도 아니고, 자기의 자유  의사를 다 활용해 가지고 자기가 비판도 평가도 해서 하나님과 이렇게 결합되는  그것을 가리켜서 유기 결합이라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내가 결합이 되려고 할 때에 결합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결합할 때는 내 인격을 다 기울여, 내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내 인격  전부를 기울여서 당신에게 손을 잡아도 잡고, 말을 해도하고, 약속을 맺어도  맺고 이렇게,  내가 못나고 잘나고 강하고 약한 것은 상관이 없지마는 내 된 대로는 내가 다  기울여 당신을 이렇게 사귀고 당신을 교제하고 영접하고 해야 그 교제와 결합이  돼지지 아무리 능하다 할지라도 자기 마음은 딴데다 두고, 자기 뜻도 딴데다  두고, 자기 지금 소원은 딴데다가 두고 하나님을 사귀어 교제하려고 이와  같이하는 데는 사람 같으면 무지해서 그럴 수 있지마는 하나님은 전지 하시기  때문에 그런 것을 아시니 속일 수가 없고 속지 아니하고,  또 알고도 우리 사람은 교제하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범죄할 수  없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그 인격을 다 기울이지 아니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와 교제해서 한 인격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죄와 하나될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다 기울이지 않으면, 안한  그것은 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죄와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는 고로 결합이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혜롭기 때문에 우리가 속여서 결합할 수 없고 하나님은 지극히  공의로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속여서나 내가 속아 가지고서나  교제하려고 해도 그 결합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결합이 되면 무엇을 하는가? 하나님과 결합되면 결합되어  움직이는 것은 다 영생이 됩니다. 축복이 아니고 그것은 영 생입니다. 또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서 죄를 없이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는 죄를 자기가 없이 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오고 또  하나님과 결합이 될 때에 영생이 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욕 망하는 것이 축복과  영생이 우리의 욕망입니다. 그런데 축복을 가로막는 것은 죄요 또 영생하지  못하게 생명을 빼앗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결합되지 못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것도 가리켜서 잘못됐다고 해서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죄에는 축복을 가로막는 죄 또 하나님의 그 능력이, 완전한 능력이  와서 나를 완전케 움직여진 그 움직임은 영생인데 그 영생 이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를 회개하려고 애를 쓰는 것은 영생하지 못하게 하는 죄,  축복 받지 못하게 하는 죄 이런 죄를 우리가 없애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죄가 제일 처음에는 "욕심이 잉태하면 죄가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에 죄는 내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아니할 수  있는데, 어기지 아니할 수 있는데 내 욕심이 들어서 그것을 어기게 합니다.

 무슨 죄가 강제하지 않고 이러나 어쩐지 하나님에게 마음을 기울이려 하면 내  욕심이 들어서 하나님에게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고 어떤 물건이나 사람이나  사건이나 거게 내 마음이 기울어집니다. 또 하나님을 사모하려고 해도 그만  하나님 사모보다도 내 욕심이 들어서 땅에 있는 그것을 사모함으로 하나님  사모는 끊어져 버리고 그 사모로 돼 버립니다. 내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좋아하려고 해도 내 욕심이 들어서 하나님과 끊어서 그것으로 좋아하도록 그렇게  만듭니다.

 제일 처음에는 죄악의 배상이 힘이 없습니다. 죄악의 대상이 힘이 없는데 내  욕심이 들어서 그 죄악을 원해서 자꾸 친근히 합니다.

 어떤 사람은 뭐 물질이라든지, 또 무슨 예술이라든지, 어떤 일이라 든지, 어떤  사람이라든지, 내가 거게다가 마음이나 생각이나 뜻이나 또 정신이나 시간이나  그런 것을 기울이지 않으려면 안할 수 있고, 안 기울여도 거게서 무슨 압력이나  세력이나 강제나 그런 것 오는 것이 없는데, 다만 내가 자유하지마는 내 속에  있는 욕심이 들어서 자꾸 어쩐지 그리 기울어져 가지고 하나님의 법칙도 어기게  해서 복도 못 받게 하고, 또 하나님과 교제를 못하게 해서 영생도 얻지 못하도록  그렇게 만듭니다.

 그것이 차차 차차 시일이 가면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그래 말했습니다.

그것이 차차 차차 세월이 가고 짙어 가면 그것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그렇게  합니다. 자기 중심의 연습이라 그말이오. 자기 중심의 연습이라. 악습이 되어져  가면 그것이 차차 차차 세력을 가지게 뒵니다. 세력을 가져서 나중에는 그 죄가  어떻게 되느냐? 내게 있는 악령이 들어와 가지고 내게 성령의 소욕이 아닌 악한  욕심 그놈을 발동시켜 가지고 자꾸 그리 기울어지고 그 행위를 한번 두번 자꾸  많이 하도록 이렇게 하니까 내 속에 있는 악령이 준 악습 또 악성 이것도 점점  세력이 강해져 가고 또 내가 범죄하는 그 상대방, 돈이라든지 일이라든지  물건이라든지 사람이라든지 무슨 뭐 예술이나 어떤 것이라도 나중에는 그것이  점점 세력을 가지고,  내가 마음을 그리 기울이기는 싫고, 뜻도 기울이기기가 싫고, 시간도  기울이기가 싫고, 힘도 기울이기가 싫고 그 속에는 싫으면서도 그 세력이 강해  가지고 강압적으로 하기 때문에 거게 눌리고 꺾여서 눌려서 그것을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그런 단계에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내 안에 있는 악령이 준 그 욕심도 자라서 튼튼케 되고, 또 내가 한번  두번 그 일을 행해서 연습해 놓은 연습의 세력도 자라서 강하게 되고, 또  상대방인, 상대가 되는 사건이나 물건이나 무슨 사업이나 인간이나 그것이 차차  차차 뿌리박아 가지고 그 세력이 강해서 또 내가 자유하지 못하게 그렇게  됩니다.

 이러니까 제일 처음에는 자기 속에 있는 악령이 준 이 육체의 소욕, 육체의  소욕은 전부 악령이 준 것인데 성령의 소욕은 전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욕심이요 또 우리 선조 대대로 인간에게 받아 가지고 온 욕심, 안 믿는  사람들에게 있는 욕심 전부 하나도 빠짐 없이 그것, 전부 그것은 육체의  소욕입니다.

 중생된 우리에게 주님의 사죄를 받고 딱 작정한 그대로만 계속하면 육체의  소욕이 속에 없는데 그것이 자꾸 들어올라고 침범하니까 그 육체의 소욕을  하나씩 둘씩 용납해서 끌어들여 가지고 육체의 소욕 그것이 자기 아닌 자기인데  자기를 죽인 자기인데 자기처럼 인정해 가지고 그 욕심이 욕심하는 그것은  욕심은 제 욕심인 줄 알고 합니다.

 이래 가지고 제일 처음에는 축복과 영생을 하지 못하게 하는 그 활동을 내가  용납한 육체의 소욕 그놈이 혼자 활동합니다. 그때는 약할 때입니다. 혼자  활동을 하다가 그 다음에는 누가 합세를 하는고 하니 그 다음에는 악습이라는  한번 두번 연습해 놓은 그 버릇 그 습성 그것이 합동을 합니다. 또 버릇 그것이  합동을 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이 합동을 하느냐? 내가 범죄 함으로 만들어 놓은  사업, 사건, 인인 관계, 그 모든 상대, 내가 만들어 놓은 상대인 죄라는 그것이  세력을 가지고 합세를 합니다. 그러면 이 셋이 합세를 할 때에는 강해집니다.

합세할 때에 어떨 때는 자기 속에 있는 육체의 소욕, 그놈이 아닌 줄 알았기  때문에 육체의 소욕 이놈을 원수가 돼 가지고 육체의 소욕 이놈대로 안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하던 습성이 있어 가지고 버릇이 있어 가지고  버릇 그놈이 내 속으로는 육체의 소욕 이걸 버리고 '내가 물질 그까짓 것만  보고, 사업만 보고, 내가 그런 권세나 지위나 그런 것만 보고, 내가 명예나  보고, 또 내가 어떤 인간을 보고' 그래 하는 그것이 자기에게 아니고 현저히  축복과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배척합니다.

 배척을 하는데, 배척을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이제까지 해 놓은 버릇, 연습,  구습, 버릇, 그 버릇이 그런 환경이 되면 그만 그 버릇이 그때 바짝 서둘러  가지고. 그 죄를 범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술을 안 먹으려고, 너무도 원통하고 해서 요 옷자락에다가  '내가 술 먹으면 개자식이다' 요래 딱 써놓고 요래 한번보고 '내가 술을 먹으면  개자식이다.' 요랬지마는 친구들이 와 가지고서 할 때 아 술 안 먹는다고  이랬지마는 그만 옆에 친구들한테 끌려서 술이 있으니까 술 먹던 습성이 돼서  그만 안 먹는다 하더니마는 강제로 이러니까 그 이제까지 먹던 그 습성이 들어서  먹고 싶어 못 견디겠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뭐 내가 뭐 취하지만 안하면 되지.

한 모금 마시고 말지.'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먹게 되고.

 어떤 사람이 그 말을, 나는 그것 보지 않았는데. 노름하는 사람이 요 똑  엄지손가락 가지고 요걸 쪽 요래 조우면서 요래 살며시 보면 요게 무슨 자가  나왔어야 요 지금 승리를 하는데 돈을 따는데 요 무슨 자인고 싶어서 간이  쫄막쫄막쫄막 하면서 요걸 요래 쫙 요래 보면 그만 그러다가 소원하는 글자가  나오면 막 주먹을 뚜드리고 야단을 치고 이제, 그 소원하는데 거게 신경이 막  기울여 가지고 이러다가 엉뚱한 자가 나오면 그만 딱 낭패라 말이오. 그 마귀란  놈은 신경을 거기다 어짜든지 기울여 가지고, 고기 낚는 그 낚시질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그 습성이, 내 마음으로는 원치 안하는데 습성 그놈이 들어서 나를  넘어지게 그렇게 만듭니다.

 그러다가 어떨 때는 자기 마음도 그 죄악을 배척을 하려 하고 또 자기 습성이  오는 것도 습성을 이겨냅니다. 습성을 이겨내는데 이제는 그 죄악의 대상이 강한  세력을 가지고 나옵니다. 강한 세력을. 이제까지 해 놓은 모든 인인 관계라든지,  사물 관계라든지, 모든 만들어 놓은 그것을 가리켜서 세상이라고도 말하고  사회라고도 말합니다. 그 세력이 강해 가지고 세력에 붙들려서 할 수가 없다  그거요.

 요전에 죽은 그 중, 한 오십여 년 중질 한 참선 중이-요새는 뭐 '스님' 하면  유식한 말로 알고 목사는 '목사님' 하면 무식한 걸로 알고, 목사는 욕을 해야  되고, 중은 그만 '중' 하면 상놈으로 알고 아주 '스님' 하면 그것은 양반 말인  줄 알아서 이상하게 돌아가 가지고 중들은 '스님' 한다 말이오. 중은 중이오.

스님이라 말은, 승이라 하는 승님이라 말은 중 승(僧) 자인데 거기다님을 붙인  것인데 중입니다. 중 승(僧)자요. '승님' 하는 것은 우리나라 말이 아니고 저  중국에서 나온 한자 번역입니다. 중 승(僧). 중 승(僧)자. 중님이라 하든지 그리  안하면 중이지.

 그런데 그 중이 죽을 때가 다 돼서 자기 친척 집에 와 가지고 '돌아서면 안  됩니까?' '내가 돌아설 수가 없어. 내가 돌아서지 못하도록, 내가 개종을 하지  못하도록 돼 가지고 있어.' 그것은 자기 불교 내에 이런 인연 저런 인연 벌써  인연이 맺어져 가지고 이런 지위도 있고, 이런 권세도 있고, 이런 또 약속도  있고, 이렇게 따르는 사람들도 있고 그 모두 조직되어 있는 그것이 끊을래야  끊을 수 없어서 '내가 길은 잘못 든 줄 알지마는 개종할래야 개종을 할 수가  없도록 돼 가지고 있어.' 하는 그것이 벌써 세력이 강한 것이라 그말이오.

 어떤 사람은 돈으로 인해서 있는데 돈이 벌써 나만 돌아서려 해도 안되는 것이  그 돈과의 관련련 사람들이 참 수십 명이요 수백 명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탁  그래 버리면 이제까지 수백 명을 이끌고 생활을 책임지고 나오다가 나 하나  그리한다고 그걸 척 끊어버리는 날이면 그 모든 사람들이 다 낭패가 되어지니까  그걸 할 수가 없다 하는 그건 벌써 자기가 만들어 놓은 그 죄악의 세력이 강해서  대상이 강해져 있는 것이라 말이오. 그래 가지고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죄악의 세력은 처음에는 욕심으로 시작할 때 그때는 내가 하면 되고  안해도 되는데 아주 그까짓 것은 쉬운 건데 한번 두번 이렇게 자꾸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하고 교제할 자가 하나님하고 떠나서 딴것을 교제하고, 하나님  생각할 때 딴것 생각하고,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같이 의논할 걸 딴 걸로 더불어  의논하고, 하나님과 같이 행해야 될 동행해야 될 터인데 딴 걸로 동행하고  이렇게 하는 그것이 처음에는 자기 욕심으로 더불어 욕심으로 인해서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데 그래 하다가 얼마 동안 하면 그 욕심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 무슨  세력이 합동합니까? 무슨 세력이 이제는 합동을 하요? 그렇게 그 짓 한, 한번  두번 연습해 놓은 그것이 내게 습성이 된다 말이오. '습성은 제이의 천성이  된다' 인간의 그 사람의 본성이 돼 버린다 그 말입니다. 한번 두 번 그것을 자꾸  연습을 해서 그래 놓으면 그만 그 사람의 본성처럼 돼 버려. 아주 강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술집으로 인해서 망한 사람이 술집에 가면 안 될 줄  알면서도 그저 앉았으면 들먹거려 쌓아서 아무래도 그 술집에 한번 착 한번,  술을 안 먹어도 한번 다녀와야 되지 안 다녀오면 못 견딘다 그거요.

 또 어떤 사람은 이웃에 마슬, 이웃 가는 사람은 또 이래 저녁 먹고 나면 못  견뎌. 이웃을 한번 쭉 둘러 사랑방이든지 그리 안하면 뭐 어데든지 거기 가서 삥  한번 둘러서 그 사람들 한번 쭉 만나고 이래와야 잠이 오지 만나기 전에는 못  견딘다 그거요. 그런 게 다 습성입니다.

 습성이 합세를 해 가지고 날뛰고, 그렇게 되면 벌써 상대방이 세력이  강해집니다. 사업이라도 그 사업의 세력이 강해지고, 지위라도 그 지 위의  세력이 강해지고, 또 권세라도 그러하고, 물질이라도 그러하고, 명예라도  그러하고, 또 사람이라도 그러하고, 벌써 상대방의 세력이 강해집니다. 강해지면  자기는 아무리 그것을 끊고자 하지마는 어떤 것은 생명이 딱 관련됐기 때문에  그걸 끊지 못한다 그말이오.

 어떤 그 정치가가 자기 자녀들이 '아무래도 이제 이 정권 가지고 있으면 생명이  위험하고 아버지의 소원대로 일도 되지도 안하고 이러니까 지금 그만 내놓는 게  좋습니다.' 그만치 정권 잡았으면 내놓으면 싶으고, 또 내놓고 싶고, 사실은  지금 자기 마음대로 하나도 하지도 못하고 밑에 있는 무리들이 들고 싸고 이래  가지고 자기 소견대로 하려고 하면 저거에게 피해가 오니까 마구 생명을 내놓고  달려들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자기는 그 지위를 내어놓으면 싶은 마음이 속으로 간절하고, 욕심도  거게는 이제 다 정리가 돼서 그까짓 거석하고, 또 습성도 '한번 정권 잡아  가지고 한번 해 보겠다' 하는 그런 습관이 없어지고 이제 그 정권을 내놓고  싶지마는 내놓으면 '이것 내놓으면 우리가 다 죽으니까, 이것 내놓으면 각하만  살려고 그랍니까? 만일 내놓으면 각하는 산다 할지라도 같이 움직였던 우리 적이  많은데 이 권세 내놓으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이러니까 죽으려면 같이  죽읍시다. 각하가 이것 내놓으면 우리는 의례히 죽는 것이니까 같이 죽지  뭐하려고 그라겠습니까?'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이것 내놓으면 우리 죽으니까 내놓으면 우리  손으로써 당신 각하는 죽여버립니다.' 이러니까 이건 생명 문제가 있으니까  꼼짝도 못하게 된다 그거요.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들과 제사장들 이 사람들이  자기들이 해 놓은 일이 틀린 줄 알고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 알지마는 만일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그렇게 말을 하면 저거 해놓은 교훈이 '너거가 그러면  이제까지 우리를 속인 교훈 하지 않았느냐?' 그때 몽둥이를 맞을 만하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할 수 없어서 예수님의 교훈이 틀렸다 틀렸다 이러다가 이제는 그만  그러다가 예수님을 죽여놨다 말이오. 그때는 교훈이 틀려 '우리가 몰라서  그렇다' 하면 자기네들 지위나 권세나 그 가르치는 교권이 깨질 것뿐이지 자기  목숨은 남아 있을 터인데 그것 안 깨지고 유지하려고 이러다가 마지막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리고 나니까 그때는 군인들이 와 가지고  '부활했습니다.' 하니까 확실히 알았지.

 알았지마는 그때 '과연 예수님이 메시아는 메시아다. 우리가 메시아를 죽였다.'  만일 제사장들이 말하면 그때 당장에 돌에 매장돼서 죽을 것이라 말이오. 그때는  인제 목숨이 그 아까워서 못했습니다. 죄악이 점점 커지면. 그러기에 죄악이라는  것은 차차 차차 세력이 강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제일 처음에는 죄가 회개하기 쉽고, 중간에는 조금 어렵고, 마지막에는  어려워서 생명을 내놓지 않으면 그 죄를 회개할 수 없는 그런 이제 강한  세력으로 옮겨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죄악을 하나님께서 그 전심 전력을 다 기울여 가지고 요 죄악을,  그 사람을 멸망시키는 그 죄악을 돌이키게 하려고 모든 하늘의 운동들이 다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있으니까, 전력 기울이고 있을 때에 자기도 전력을 기울여야, 기울 여서 나를  살려 주시려 하는 그 회개의 은혜를 받지 그렇지 않으면 회개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 그거요. 회개는 제가 하는 게 아니라 객관의 역사인데 받는 것은 제가  받아야 되기 때문에 자기의 주관을 다 기울이지 않으면 그 회개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는 축복을 가로막는 게 죄요 생명을 가로막는 것이 죄라, 영생을  가로막는 게 죄라. 축복을 가로막고 영생을 가로막는 것이 죄라.

 그런데 죄의 세력은 처음에는 마귀란 놈이 우리 속에 부패성을 넣어 줘 가지고  악성, 자기 중심인 악성, 자기 중심 그걸 악성이라 하는데 그것이 들어서 욕심을  내면 악성이 욕심 내는 그 욕심을 가리켜서 육체의 욕심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 욕심이 들어서 장난 삼아 시작한다 말이오. 욕심이 들어서 안해도 되지마는  그 욕심 그놈이 들어서 처음에는 제가 안해도 되지마는 아주, 제가 주권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 욕심 그놈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 이래 시작해 가지고, 그러면 그  다음에 연습이 되면 그 연습이라는 그 연습이 무섭습니다. 술 먹는 연습한 사람,  노름하는 연습한 사람, 또 춤추는 연습한 사람, 아닌 줄 알지마는 연습이라는 그  습성 그것이 강합니다. 또 그 습성이 협동을 합니다.

 욕심과 습성이 협동돼 가지고 하는 가운데에서 그 상대방인 물질이든지,  권세든지, 지위든지, 명예든지, 사람이든지, 무슨 정리든지 그 것이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말이오.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어.

 내가 며칠 전에 이상한 것을 봤는데 아주 황소가 살이 찌고 번들번들하게 좋은  황소입니다. 부리기 좋은 아주 큰 황소. 황소인데, 빼빼한 암소가 한 마리  있는데 암소 요게 뿔이 요래 나 가지고 끄트러기가 딱 요래 생겼어. 황소 뿔은  옆으로 이렇고 말이오.

 이랬는데 이게 와 가지고 황소하고 이렇게 자꾸 이래 싸우려고 찔걱찔걱  찔걱거리니까 그 마음에는 암소 그게 밉상이라 말이요, 보니. 내가 보니  밉상인데 황소가 그만 확 받아서 내던져 버리면 대번 직사할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자꾸 이라더니마는 이 조그만한 암소 요게 들어서 황소를 떠받아 가지고  그만 그 황소 그게 꼼짝 못하고 쿵 넘어가더니마는 보니까 눈이 힐거이 해  가지고 곧 다 죽어 가는 거라. 내가 보고 있다가 마음에 괘씸해서 이 큰 대  장대인가 대 몽둥이 여기 있어서 이걸 가지고 암소를 때려줬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놈이 도망을 쳐. 도망을 치더니마는 좀 있으니까, 이제 그놈이 안 오지 좀  있으니까 또 와 가지고 이 거의 죽은 황소 내나 눈이 힐거이 이래 가지고 있는데  거기 막-들이 떠받아 재껴.

 이러니까 내가 있다가 '이놈 안 됐다' 그때 그만 뚜드려서 거의 그만 죽게 돼  버렸어. 이러니까 어데로 갔는지 죽었는지 그걸 내가 모르겠어요. 그러고 난  다음에는 나에게 또 해석을 준다 말이요, 해석을. '이것은 어떤 사건이다. 어떤  사건이다. 누구와 누구의 사건이다.' 하는 그것을 또 나에게 알려 준다 말이오.

 그래 죄악이라 하는 것은 처음에는 내 욕심이 들어서 하고, 나중에는 연습한 그  습성이라 하는 습관이라는 그것이 협동을 하고, 그게 연습이라는 그것이 세력을  가지기까지 그것이 짙어 가면 그 대상이 이제는 강한 세력을 가지고 강압적인  죄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얽매이기 쉬운 죄,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라" 이렇게 말하는  것은 죄악이 처음에는 유혹을 하고, 그 다음에는 내가 취미 있고 내 연습에  끌려서 하게 되고, 그 시기를 지나가면 세력을 가지고 달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양 잃은 비유에 어깨에 메고 간다는 그 말씀을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닌 줄 알아도 자기 속에 욕심이 들어서 그놈이 들어서 그 짓을 하다가  그 다음에는 이제 그만 습관이 딱 돼 놓으면 변동 못해요. 또 그보다도 상대방의  세력이 벌써 강해 놓으면 그 세력에 눌려서 일생 동안을 종노릇합니다. 제가  회개할래야 회개 못합니다.  아닌 줄 알아도, 보십시오. 어떤 정권자가 그  정권을 내놓으면 싶으지마는 결국은 그 정권에서 죽고 말았다 말이오. 비참한  참사를 당하고 말았다 말이오.

 또 어떤 사업가가 마지막에 그게 싫고 이러지마는 어쩔 수 없어, 자기가  아무래도 늙어 죽어가면서도 가서 또 말 안하지 않을 수 없고 이러다가 마지막에  그 사업을 물고 사업에 눌려서 사업을 하다가 사업을 붙들고 죽는다 그말이오.

그렇게 그 세력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면 죄라는 것은 축복을 가로막는 역할 하는 죄, 또 영생을 가로막는 죄 이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죄인데 죄의 세력은 자기 욕심만이 처음에 시작하는  그때는 약하고, 거기다가 습관이 협동을 하면 강해지고 그것도 자기 안에  있습니다. 그것도 자기 하나 하면 됩니다.협동이 강해질 때까지도 자기 혼자만  안하면 돼요. 자기 혼자에게 달렸어, 자기 혼자에게 있어. 그러나 그것이 지내서  그 죄악의 대상이 강해서 벌써 그 세력이 강해지면 자기 전부는 안하려고 아무리  해도 그 세력에게 눌려서 꼼짝을 못하게 되는 그것이 그 죄악의 최고의 강한  세력인 것을 말합니다.

 이러니까 거기 대해서 회개하는 것은 어깨에 매여 온다, 전능자의 어깨에 메여  온다, 전능자의 품에 안겨 가는 것이다. 네가 어떤 것이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데는 네가 아니고 벌써 그렇게 일으켜서 감동을 주고  그렇게 하도록 한 그 세력이 전능하신 절대적인 세력이요 그 세력에 붙들린  것이기 때문에 그 네가 만들어 놓은 그 죄악의 대상의 세력이 어떻게 강하다  할지라도 염려하지 말고 전능한 능력은 그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담대히  돌이켜라 하는 그말이오.

 정권자 그런 사람도 옆에서 마구 '각하여, 만일 그리되면 우리는 어찌됩니까?  만일 떡 하야를 해 버리고 하면 우리는 이제 다른 세력이 잡을 터이니까 잡으면  그때 우리는 다 모가지 날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같이 죽읍시다.' 하니까  생명이 아까와서 그랬다 말이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그 위치에서 '내가  이것 아닌 줄 알기 때문에 이것 내가 내놓는다. 너희가 아무리 한다 해도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내놓기 때문에 너거가 전부 다 달려들어 나를 죽이려 한다  할지라도 나를 죽이지 못한다. 나는 이 아닌 줄 알기 때문에 인제 그만 시기가  지나간 줄 알기 때문에 그만 두고 내놓는다.' 이렇게 담대히 회개할 수 있지마는  그걸 모르는 사람은 회개에 담력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전능자의 품에 안긴 것이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히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회개하면 내게 따른 수많은 사람들이 어찌되느냐?' 염려할 것 없어.

'내가 이것 회개하면 사업이 어찌되나?' 염려할 것 없어. '내가 이것 회개하면  가정이 어찌되나?' 염려할 것 없어. '내가 이것 회개하면 내 생명이 어찌되나?'  염려할 것 없습니다.

 그런고로 담대히 회개를 하고, 다음 시간에 계속합니다. 요걸 잊어버리지  않아야 다음 시간에 증거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고로 회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맺어지는 요것이기 때문에, 생명  관계가 맺어지고 축복 관계가 맺어지는 것, 축복 관계가 맺어지는 데는 자기의  인격은 다 안 기울여도 됩니다. 생명 관계에는 인격을 다 기울여야 돼.

 인격을 안 기울여도 축복 관계는 맺어지는데 인격을 기울이지 않으면 축복 받아  봐도 그 인격이 하나님과 결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받은 축복 가지고 누구하고  결합될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복이 들어서 화가 됩니다. 롯이 부자기 때문에 그  사람이 소돔 고모라성에 가 가지고 그렇게 비참하게 됐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296 죄에 대한 지식/ 마태복음 18장 5절-10절/ 1985. 10. 27.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2.19
1295 죄에 대한 지식/ 마태복음 18장 1절-35절/ 851027주전 선지자 2015.12.19
1294 죄에 대한 지식/ 고린도전서 15장 55절∼58절/ 810123금새 선지자 2015.12.19
1293 죄에 대한 지식/ 마태복음 18장 5절-30절/ 1985년 22 공과 선지자 2015.12.19
1292 죄의 값은 사망/ 로마서 6장 23절/ 84121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9
1291 죄의 결과는 사망이다/ 로마서 6장 23절/ 861217수새 선지자 2015.12.19
1290 죄의 성질, 범위, 결과/ 창세기 2장 15절-17절/ 820709금새 선지자 2015.12.19
1289 죄의 성질과 죄를 벗어나는 법/ 히브리서 12장 1절-2절/ 831114월새 선지자 2015.12.19
» 죄의 역할과 세력/ 로마서 6장 20절-23절/ 830415금새 선지자 2015.12.19
1287 죄의 해독과 회개의 효력/ 히브리서 12장 1절-2절/ 840301목새 선지자 2015.12.19
1286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요한계시록 2장 21절-23절/ 890802수새 선지자 2015.12.19
1285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마태복음 9장 9절-13절/ 1976년 5 공과 선지자 2015.12.19
1284 주 맞을 준비/ 벧후 3장 8절-13절/ 1979년 12공과 13공과 선지자 2015.12.19
1283 주 안에 있는 것/ 요한복음 15장 2절-7절/ 880913화새 선지자 2015.12.19
1282 주 안에서 하라/ 고린도전서 15장 50절-58절/ 810102금새 선지자 2015.12.19
1281 주 앞에 흠없는 사람/ 요한일서 3장 16절-24절/ 830609목새 선지자 2015.12.19
1280 주 앞에서 점도 없이/ 베드로후서 3장 14절-16절/ 881227화새 선지자 2015.12.19
1279 주관 믿음에서 / 누가복음 21장 33절-30절/ 881202금야 선지자 2015.12.19
1278 주관을 깨야 참 믿음/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851003목새 선지자 2015.12.19
1277 주관적인 평안/ 마태복음 14장 24절-29절/ 850128월새 선지자 201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