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9 12:17
죄의 해독과 회개의 효력
1984. 3. 1. 목새벽
본문: 히브리서 12장 1절-2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자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죄로 규정지을 때에, 이거 죄다 죄 아니다. 의다 이렇게 그것을 판정을 지울 때에, 규정을 지울 때에, 똑똑히 그것을 규명 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준해 가지고 비판하고 평가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된 것이면 천하에 있는 종교들이 다 의라 해도 죄가 됩니다. 또 다른 이종교에서나 혹은 사회에서나 국가에서 이것은 죄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죄가 아니라 하면 죄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인간들의 지식이라 하는 것은 옳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혹 한 토막을 말할 때는 그게 반 거짓발입니다. 그것의 동기와 목적과 그 말을 한 이가 다 악령이 주권해 가지고 했기 때문에 전부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죄는 우리에게 참 큰 해독을 끼치는 죄악인데 사망이 뭘로 사망 당하느냐? 사망의 값은 죄입니다. 사망의 권세는 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악이 있으면 사망을 안 당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하에 모든 이종교들이 그 종교 저거가 만들어 놓은 그 법대로 해도 죄가 되기 때문에 다 사망을 당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첫째는 우리는 죄가 무엇인지 그것을 우리가 똑똑히 규명을 지어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 말씀을 어긴 것이 죄고, 또 어기지 안한 것이라도 자기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려고 애를 쓰다가 동기는 애를 썼지마는서도 부족해서 온전한 순종을 이루지 못했을 때에 그것도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것과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 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인간들이 죄라 한다고 거기에 대해서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 이 죄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죄 아니라고 한다고 그까짓 소리도 하나도 우리가 의지했다가는 안 됩니다. 큰일납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 죄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한다고 해도 그 순종이 부족한 그것이 죄입니다.
그런데, 이 죄라는 것은 어떤 결과를 내는고 하니 죄는 첫째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습니다. 마치 말하면, 식물에 햇볕을 가로 막으면 그 식물은 죽습니다. 식물에 오는 온도를 가로 막아 버리면 죽고 맙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햇볕이라 하면 햇볕없는 온상 속에서도 산다 하지마는 온상 그 모든 것이 태양의 열이 아니면 그것이 열이 없어집니다. 태양열이 없으면 이 땅에 있는 전기의 열도 없어 버립니다. 이거 없어 버립니다. 그거 다, 전부 다 거기에서 받아 나와 가지고서 되는 것입니다. 이 첫째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광명을 주시는 그런 광명이 없어지니까 그 사람은 어두워집니다. 마치 자기 눈에 조그만한 것이 가로막혀도 보이지 안하고, 자기 눈에는 조그만한 콩알만한 것이 가로 막았는데 그로 인해서 여러 수만 평을 볼 수 있는 수 만 평의 넓이를 볼 수 있는 그 넓이가 하나도 안 보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자기 사이를 죄가 들어 막기 때문에 모든 면에 대해서 무지한 자가 됩니다. 아무것도 바로 보지 못하는 무지한 자가 되기 때문에 죄를 가진 자는 자기 생각으로서는 옳다 그렇게 생각하고 경영하고 하는 일이라도 그 일이 완전히 소경이 하는 일이 돼서 눈 뜬 사람이 보면 전부이 제가 저 망할 짓만 자꾸 하고 있습니다.
이북에 김일성이라든지 공산주의 뭐 소련에 포프는 죽었지마는서도 그 공산주의 자들이 자기들 딴에는 이것 바로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전부이 자멸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멸망시킬 자를 전부 거기다가 쳐 넣어 가지고서 그런 사상으로 나가도록 하고 택자들도 그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택자들은 그 가운데 있었어도 반드시 반동을 하고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납득이 안 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는 지혜를 막습니다. 지혜를 가로 막고, 또 죄는 그 사람에게 옳은 능력을 없애 버립니다. 옳은 능력을 없애 버리고 자꾸 삐뚤어져서 망할 능력만 자꾸 발달돼 나갑니다. 어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자기 망치는 그런 힘만 자꾸 발달을 시키고, 자기에게 유익되게 할 그런 힘은 점점 박멸을 시켜 갑니다. 그러기에, 지혜를, 우리에게 옳은 지혜를 없애는 것이 죄요, 옳은 능력을 없애는 것이 죄요, 우리에게 있는 모든 온갖 실력 온갖 그 기능을 정 반대로 딱 삐뚤어지게 정 반대로 꺼꾸로 만들어 놓는 것이 그것이 죄입니다.
그러기에, 죄를 범하되 무능한 사람보다 유능한 사람은 가속도로 망하고, 크게 망하고, 자기 당대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손 대까지 망하게 됩니다. 죄는 옳은 기능을 정 삐뚤어지게 만드는 것이 죄입니다. 또 죄는 우리에게 있는 그 평강을 차차 차차 가둡니다. 그 평강이, 예를 들면은 세계적인 평강을 그것을 한 지역적인 평강으로, 지역적인 평강을 한 가정적인 평강으로, 가정적인 평강을 자기 단일에 평강으로 이래 자꾸 축소시키 가지고서, 그러니까 자기 혼자 살면 하지마는서도 모든 존재와 살기 때문에 그 평강을 축소시키시까 자꾸 다른 세계를 접할수록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주는 평강은 이 우주적인 평강이 아니고 모든 존재적인 평강입니다. 하나님과 피조물, 천상 천하에 피조물과 다 연결을 시키 가지고서 평안이 되는 그 평안을 주는 것이 기독교의 평안입니다. 평안을 감옥에다가 가두고 기쁨도 감옥에 가둬서 자꾸 이 죄가 들어서 이런 걸 자꾸 좁혀 갑니다. 자꾸.
그러기 때문에 보는 면적도 좁아지고, 보는 면적이 좁아지고 또 생각하는 면적이 좁아지고, 또 자기가 소원하는 면적이 좁아지고 자꾸 좁아트립니다. 좁아트려서 처음에는, 하나 예를 든다면 욕심이 자기 혼자만 욕심하는 욕심이 아니고.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이 다 소유하고 있는 소원하고 있는 그 소원을 자기가 소원했는데 그 죄가 조그매씩 생겨지는 거기에서 하나님만 소원하는,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전 존재가 소원하던 것이, 하나님 잊어버리고 피조물만 소원하는 그 소원으로 차차 축소되고, 피조물의 소원하던 소원이 차차 차차 인류의 소원만, 인류의 소원이 자기 민족 자기 국가 소원만, 그것이 축소해서 자기 가정 소원만, 그게 축소돼서 자기 단독 소원만, 자기 혼자 소원만 가졌다가 그 소원이 또 축소됩니다.
축소되어 가지고 자기 속에 이 요소가 있고 저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 속에 여러가지 소욕이 있는데 다른 것 다 치워 버리고 물질 소욕이라는 그 소욕으로 딱 축소시켜 가지고 물질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도록 고렇게 좁혀트려 버리고 어떤 자는 명예 소욕에 딱 압축을 시켜서 딱 가둬 버리고, 어떤 사람은 어떤 못쓴 더러운 행락이나 정욕이나 그런 소욕으로 딱 압축을 시켜 버립니다.
이러니까 어떤 자는 뭐 춤추는 거기에 반해 가지고서 가정을 다 망쳐 버리고. 또 자녀고 뭐이고 생각지 안하고 이렇게 축소를 시켜 가지고서 그런데 소욕 그 욕심, 어떤 자는 모든 자기와 가정과 자기의 자손과 장래를 다 망치는 혹은 뭐 음욕이나 성욕 그런 것 그런 것으로써 자꾸 축소를 시킵니다. 자꾸 축소를 시켜 가지고서 마지막에는 자기 전체의 욕심도 하지 못하고 자기 속에 일부분적인 그것에 욕심으로 딱 축소를 시켜 가지고서 생각하는 것이나 소원하는 것이나 비판하는 것이나 느끼는 것이 고렇게 축소됩니다. 축소가 되니까 축소가 될수록 이것은 빠릅니다. 여러 면을 생각하면 그것이 그렇게 단행할 수 없지마는 한 면만 생각하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다 경거망동이 되고 또 그 타락이 빠릅니다. 타락이 빠르고 멸망에 고속으로 멸망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는 우리를 축소시켜서 감옥에 가둔다 하는 것을 우리가 언제든지 기억해야 됩니다.
죄는 우리를 압축시켜 가지고서 자꾸 좁으려트리고 좁으려트리고 자꾸 좁은대로 자꾸 몰아 넣어 가지고서 우리를 이렇게 가두게 된다. '죄는 우리를 가둔다' 요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되지 또 죄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습니다. 가로 막기 때문에 죄를 가지고는 성경 진리를 바로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그것 있으면 성경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자기 일에 대해서도 바로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죄는 모든 옳고 바른 그 빛을 가룬다. 옳고 바르고 참되고 깨끗하고 하는 그 빛을 가리워 버린다, 죄는 빛을 가룬다. 그것을 기억해야 되고,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다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시요 우리의 지혜시요 우리의 능력이신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죄가 들어서 가로막습니다.
그러면 죄는 우리를 가둔다. 그러기 때문에 기쁨도 차차 갇혀서 넓은 면에 제 기쁨은 없고 아주 축소돼서 그 일면만 보고서 기뻐하는 것.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무슨 전문가 전공가가 있는데. 도시에서는 전문가, 전공가들이 있습니다.
전공가는 그것밖에 모릅니다. 고 사람은 모든 인격은 없애 버리고 고거는 한 기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인간을 기계로 만들고 있다.
공산주의만 인간을 기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십세기의 문화라 하는 것은 인간을 기계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거 자꾸 축소시킵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가둔다, 모든 빛을 가두워서 어둡게 만든다, 담을 싸서 가룬다, 축소시켜서 가룬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우리를 어떻게 하는고 하니 우리를 눌립니다. 우리를. 아주 무거운 돌로 가지고 그 사람을 눌리는 것처럼 모든 면을 그 사람을 기압을 주고, 압도합니다. 그 사람을 기압을 줘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눌리게 만듭니다.
눌리게 만들기 때문에, 그 눌리니까 그 눌리면 죽을 터이니까, 눌리게 만드니 안 눌리려고 있는 힘을 다 들여서 자기는 거기에 눌려 가지고 안 죽을라고 있는 힘을 다 기울이나 그 눌리는 것을 이기지 못 합니다. 이러니까, 눌리니까 안 눌리려고 있는 전심전력에 정성을 다 그리 기울입니다. 그리 기울여 가지고 자구 그리 기울이도록 해 가지고 차차 눌려서 압도해 가지고서 압사를 시켜 버립니다.
납작 눌려가지고 죽여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는 우리를 가둔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좋은 것을 가로 막아서 좋은 것이 오지 못하게 한다, 좋은 것은 다 하나님께서 부터 오는 것인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아 가지고서 그런 것이 오지 못하게 한다. 또 죄는 우리를 눌린다. 덫으로 눌리는 것.
그 전에 제가 어릴 때에 시골서 보면 쪽제비 잡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돌을 이래 커다란 걸 고아 가지고 그 안에다 밥을 달아서 밥을 떼어 물라고 딱 달라들면 탁 치면 고만 쪽제비가 거기에 눌려 가지고 납작하이 눌려 가지고 죽습니다. 이러면 그걸 녹혀 가지고서 잘 껍데기를 벗겨 가지고서 그때는 족제비 한 마리에 뭐 붓 만든다고서 아주 비쌌습니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 아주 유명하게 쪽제비 잘 잡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래 그렇는지 몰라도 쪽제비 잘 잡는다는 그 사람들의 자손이 다 망해 버려요 그 이상하다, 그러니까 그 포수 그런 것도 성경에 인제 그 뒤에 성경에 보니까 '그 피를 홀린 자는 그 피를 그에게 갚는다'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걸 보면 포수, 짐승 잡는 포수가 그 자손이 잘 안 됩니다. 또 짐승 같은 것 많이 잡는.
그런 사람들의 그 자손이 잘 안 돼요 그런데 그 어부로서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 그런 것은 하나님이 허락해 놓은 것인지 그물로 잡는 그거는 별로이 그 보응을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눌린다, 압사 시킨다. 가둔다, 눌린다, 가둔다 그리고 한 가지는 밧줄로 붙들어 맵니다. 밧줄로 붙들어 매어서. 죄는 밧줄입니다. 고래 잡는 그것이 요새는 고래를 그렇게 잡는지 그건 몰라도 옛날에는 고래를 잡을 때에 그 활을 가지고서 고래가 있은 걸 보고 활로 탕 놔서 쏘면 그 활이 가 가지고 고래에 고래 살에 가서 콱 박히면 고만 고래란 놈이 마구들고 달아 나면은 그 배가 잘 따라 갈 수 있도록, 못 따라 가면 침몰 돼 버립니다. 함부레 잘 따라 가게 만들어 가지고서 그 줄에 걸려 가지고 있으니 자꾸 따라 갑니다. 그러면 따라 가면 백리도 가고 천리도 가고 가다가는 고래 이놈이 인제 조금 머물고 있으면 그때 또 한 개를 더 쏴 가지고서 줄이 안 떨어지도록 탄탄하이 그래 만들어 가지고 그래 놓고는 그저 따라 다닙니다. 그러니 큰 놈 한 마리 만나면 한 달 만에도 잡고, 보름 만에도 잡고 돌아다니니까 그 줄이 있으니까 이놈이 암만 가지마는 서도 뒤에 딱 화살, 화살의 줄이 얽혀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딴데 가지 못하고 그 큰 고래가 가는 데로 배는 뒤에 따라 갈수 있기 때문에 고래는 배보다 훨씬 크니까 이렇게 줄줄줄 뒤에 따라 가면서 이라다가 마지막에는 기운이 없습니다. 기운이 없어 그때는 뭐 옆에서 암만 창으로 찔러도 그저 겨우 너굴너굴하지 아무 힘이 없다 말이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배가 그 놈을 끕니다. 배가 그 놈을 줄 있는 대로 슬슬 끌고 육지 가까운 데로 와 가지고서 그래 끌어 을려 가지고 잡습니다.
그것 모양으로 이 죄라는 것은 우리에게 악령의 그 무서운 우리 원수가 우리에게 대해서 죄의 화살을 가지고 탁 놓습니다. 죄 하나만 탁 지으면 그만침 벌써 그 줄에 매여 버렸습니다. 줄에 매이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 마귀가 끌고 갈라 하면 안 끌려 가니까, 배가 고래를 끌고 갈라 하면 고래가 안 끌려가니까 고래를 따라 갑니다. 따라 가다가 그 다음에 고래가 힘이 없으면 나중에 슬며시 끌어다가 끌면 이놈이 갑자기 힘이 없다가도 휙 그러며 또 한 번 달아나면 또 따라 갑니다.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 힘이 없으면 끌어내 가지고서 그걸 잡는 것처럼 우리에게 마귀의,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악령의 화전이라 화살이라 불화살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불화살이라.
이러니까, 마귀란 놈이 우리에게 무슨 죄든지 하나 범하게 해서 딱 범하면 그만침 벌써 마귀에게는 줄이 연결 됐습니다. 연결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 연결되고 난 다음에는 제 맘대로 하면 마귀가 뭐 그것 가지고서 지배를 못하지요.
이렇지마는 슬슬 따라 다니면서 우리의 기운을 약하게 만듭니다. 그 죄 때문에 하나님과에 자꾸 멀어지게 되지, 그 죄 때문에 우리의 심령이 어두워지지, 또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이나 소원이 자꾸 이래 좁아지게 되지. 사람이 점점 좁아지게 되고, 점점 어두워지게 되고. 점점 그 억압에 눌려서 자유하지 못하고, 여기에 저게 눌리게 안들고 그 다음에 또 화살로 이래 가지고서 줄을 얽어 만듭니다. 그래 가지고 나중에 한 가지 죄를 지으면 두 가지 짓게 됩니다. 두 가지 지으면 세 가지 짓게 되고, 자꾸 해서 하나님과에 그 관계는 점점 가로 막혀서 야물게 막히지, 그 사람은 모든 생각이나 소원이나 견해나 비판이나 모든 평가가 다 조브라지게 되지, 또 그 다음에는 또 우리에게 눌려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자꾸 악령과 우리와의 관계를 이렇게 줄을 매도록 이렇게 자꾸 만들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마지막에는 멸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정반대로 우리가 죄를 하나씩 회개하면 죄를 회개하면 그 사람이 아주 넓어집니다. 그 생각이 넓어지고 소원이 넓어지고 비판이 넓어지고 모든 비판이 넓어집니다. 죄를 하나 회개하면 넓어지고, 또 하나님과 그 사이가 조그매씩 틔어지기 때문에 그 빛을 보게 됩니다. 광명을 조그매씩 보게 되니까 조그매씩 밝아지고. 다는 안 되도 처음에 조그매씩이라도 좀 옳은 생각이 들어오고, 바른 생각이 들어오고, 좀 바른 깨달음이 나오고 바른 정신이 나오고, 바른 소원이 들고 이래서 차차 밝아지게 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차차 차차 자유가 있습니다. 눌리지 안하고 눌리는 마음이 없이 자유가 있습니다. 이 자유가 있기 때문에 활동하는 데에 힘이 나옵니다.
그라고 이제는 마귀와 자기와의 관련된 그 죄 하나를 회개하면 그만 그 줄이 하나, 낚시줄이 하나 낚시가 뽑아 버립니다. 낚시 하나를 재어서 빼 버리면 낚시에서 해방을 당하고 낚시 줄 하나 빼, 둘 빼, 셋 빼, 낚시를 다 빼 버렸으면 배가 고래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 무겁다는 것은 압도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고. 얽매인다는 것은 붙들어 맨다는 것을 말하고, 죄는 크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장벽을, 담을 친다. 가로 막히게 된다. 또 죄는 점점 감옥에 가둔다. 그래서 성경에,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렇게 요한 계시 1장 5절에는 해방이란 말을 해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해방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악의 장벽을 예수님이 없애기 위해서 오셨다. 우리는 죄의 밧줄에 매여 있는 그 매인 줄을 끊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셨다. 일생동안 죽기를 두려움으로 종 노릇하는 자를 놓아 주기 위해서 오셨다.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그런고로, 사람이 돈 벌이도 좋고 뭐 지위 권세도 좋은 줄 알지마는서도 사람이 기쁜 것은 이 죄를 하나씩 둘씩 정리해서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이 죄를 하나씩 둘씩 정리할 때에 우리에게는 우리가 넓어지고 커지고 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연결이 점점 견고하게 연결이 되어지고. 우리가 눌리는 우리를 눌리고 있는 그 모든 누르는 것을 다 벗어 내 버리기 때문에 아주 자유합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살라고 할 때에 붙들어 매는 줄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해도 이것 때문에 못 살고 저것 때문에 못 살고, 모두 다 죄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죄를 안 지을라 해도 하나 죄 지은 그것에게 붙들려 그것 때문에 자기는 죄 안 지을수 없는 자가 되어집니다.
그런고로 요번 기회에 우리가 어쩌든지 죄를 깨끗히 회개하고 참 주님의 그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주님의 피와 살과 우리의 피와 살이 연결될 수 있는 연결될 수 있는 그런 자기의 피와 살이로 깨끗이, 왜?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고해서 사함 받으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공로가 없으면 안 되지만 주님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됩니다. 되는 것은 우리가 자체가 완전되는 그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나름대로 자기대로의 주님이 주신 은혜가 있으니까 자기 각자들은 자기대로 깨달은 게 있습니다. 자기대로 깨달은 것이 있고, 자기대로 그 지능을 하나님이 준게 있어. 하나님이 주신 그것을 더해서 자기를 깨끗게 하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람의 깨끗과 저 사람의 깨끗이 다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 합격된 깨끗과 저 사람이 합격된 깨끗이 다릅니다. 이 사람이 이 사람으로서는 합격이 됐다 해도 저 사람에게는 주신 은혜가 더 많고 크기 때문에 그 사람의 깨끗은 이 사람의 깨끗 정도 가지고 안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음이 많은 사람은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인데 그 사람은 깨끗도 더 많이 더 깨끗해져야 합니다. 깨끗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하늘나라의 지위요, 권세요, 하늘나라에 그 모든 부강의 차이입니다. 영광의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번 기회에는 어쩌든지 우리 서부 교회가 뭐이 시대가 불경기라 하는 그 까짓 것도 아무 상관없어. 불경기도 상관없고 흉년 드는 것도 상관이 없고, 공산주의 되는 것도 상관없고, 뭐 어떤 일이 있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죄 문제만 해결해서 죄에서만 자유를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는 가운데 있게 하시는 그 분이 우리를 축복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낮은 자를 높이게 하시고 모든 원수를 다 저거 피를 먹고 취하도록 원수가 저거 손으로 저거를 다 살해하도록 멸망시키도록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밀접한 관계가 맺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이 발라지고, 소원이 발라지고, 비판이 발라지고, 평가가 발라지고, 계획이 발라지고, 바른 힘이 되고. 모든 관계에 바른 관계를 맺어지게 되고 이러니까, 우리가 요번 성찬 때에 자기를 깨끗게 해 가지고 이 성찬을 바로 먹으면 근본 이 기회를 인해서 우리 서부 교회는 크게 깨끗해 질 것이고, 또 주일 학교도 장년반도 부흥도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경제면이나 사업면이나 우리의 직장면이나 우리의 건강면이나 우리의 가정면이나 모든 면이 형통해서 아주 뛰어난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학개서에 '너희들이 기초를 쌓은 그날부터 그 과거와 그 후를 너희들이 한번 계산해 봐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거 성전 기초 쌓는 거와 한 가지인데, 우리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지금 이 큰 토막하나 만나 가지고서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금번에 이 일에 대해서 자기가 우리의 모든 생사 화복이 여기에 있다, 영육에 행 불행이 여기에 있다 하는 이것을 생각하고 깨끗이 해서 이 성찬에서 주님의 피와 자기 피, 주님의 살과 자기 살, 주님과 자기와의 밀접한 이 관계가 맺어진다고 하면 우리는 모든 것이 다 영과 육이 다 성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