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9 12:15
죄의 성질과 죄를 벗어나는 법
1983. 11. 14. 월새.
본문 : 히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죄는 우리를 누르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를 누릅니다. 또 죄는 우리를 평강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되고 기쁘고 평안하고 자유로운 그 생활로 나가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는 것이 죄입니다. 또 우리의 마음이나 모든 생활이나 모든 행위를 위에서 억누르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가지고는 그 사람이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두 고는 평안하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법칙입니다. 또 죄를 두고는 자유하지를 못합니다.
이 법칙은 믿는 사람들뿐만 아니고 안 믿는 사람도 인생이라고 하면은 다 그러합니다. 하필 믿는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안 믿는 사람들도 그러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말씀을 똑똑히 들어야 전쟁을 이겨. 앞에 큰 전쟁을 둔 사람이 진리로 이기지 않으면 되는가요? 죄는 뭐인가? 죄는 별 해석을 붙일 것 없이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 된 것이 다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것이 죄라 그만 그렇게 생각하면 해석이 다 바로 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진 것, 무엇이든지 우리 생활에, 우리 행동에, 우리 마음 씀에 대해서 하나님의 이 말씀에 삐뚤어진 것은 전부가 다 죄입니다.
이것은 악령이 우리를 미혹을 시켜서 대단히 좋은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죄가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미혹을 받아 가지고 그 일을 저지릅니다.
저지르고 난 다음에는 차차 차차 그 일로 인해서 자기 마음이 눌리고 생각이 눌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할려고 할 때에 그것이 거리끼고 얽매여서 붙들려서 잘 안되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만 마음에 염려와 근심과 걱정과 고통으로 차차 차차 자꾸만 무거워집니다.
점점 무거워지고 점점 나중에는 '이래 해야 바로 하지 달리 해서는 안 되는데' 하는 것을 확실히 판정 지우고도 바른 자유의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붙들려서. 죄 그놈이 들어 붙들어서 그놈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왜 사람들이 이 죄에 눌리고 죄에 붙들려서, 참 평안하게 짐졌다가 짐을 벗으면, 무거운 짐을 졌다가 짐을 벗으면 그만 평안하고 기쁜 것처럼 이렇게 평안하고 기쁘게, 또 감옥에 갇혔던 사람이 거기에서 해방되면 참 자유롭고 이런 것처럼 평안하고 기쁘고 수월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데 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이 길을 걷지 못하고 공연히, 누가 들어서 그래 한게 아니라 제가 잘못해 가지고서 무거운 돛과 같은 돛을 짊어지고-덫이라 말은 여기에 뭐 표준어가 덫인지 나는 그것 모르겠는데 시골에서는, 시골말은 돛이라고 합니다. 족제비돛.
족제비돛이라고 커다란 돌로 가지고 이래 고아 가지고 놔 놓는데 그 안에 미끼를 조그만한 것 달아 놓습니다. 달아 놓으면 이 족제비 이놈이 그 미끼 그것 먹으려 하다가 미끼를 거머쥐고 딱 당기면 그만 큰 무거운 돌이 팍 내려오니까 탁 치여서 아주 납창갱이가 돼 가지고 죽습니다. 그러면 그걸 빼 가지고 나와 가지고 인제 껍질을 벗겨서 팝니다. 이게 덫인데.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것을 매력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깃을 하지마는 마지막에는 마지막에는 저를 눌러서 저를 치여 죽입니다. 꼼짝 못하게 치여 죽입니다.
또 그것이 이렇게 감옥에 해방 당한 것과 같은 이렇게 자유롭고 기쁘고 평안하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이 세계에서 자유 하지 못하고 붙들려 매여서 꼼짝 못하게, 마치 밧줄로 자기를 얽어맨 것처럼 이렇게 되어 지는 그것이 다 죄인데 하나님 말씀 삐뚤어지게 한 그것이 차차 커지고 짙어지면 그렇게 되는 건데 왜 이런 고통을 사람이 자취하느냐? 뭐 때문에 이런 고통을 제가 자취를 하느냐? 자취하는 이유는 어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입으려면 예수님이 이 네 가지를 사용해서 네 가지 방편으로 우리에게 구속을 주셨고, 당신도 자유 하신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이 네 가지 방편을 주시면서 '이래야 네 구원도 이루어지고 다른 사람에 구원도 네가 전달해 줄 수가 있다" 한 그 네 가지.
하나는 부자 되려는 것 이것을 버리고 자기는 가난만 찾습니다. 또 높아지고자 하는 이것을 버리고 이제는 낮아지기만을 힘씁니다. 자기가 무슨 죄를 지어 낮아지는 게 아니고 조심해서 죄는 짓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에 거리끼지 않도록 의무와 책임과 본분은 열심히 충성되게 하나님을 생각하고 자기 모든 생활을 다 결사적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은 일이면 결사적으로 하고, 결사적으로 하면서 가난해지기를 낮아지기를, 자기가 종되기를, 남을 다스려서 자기의 권위를 보이려고, 자기 위엄을 보이려고, 시위 행위, 자기의 위엄을 보이려고, 그래서 자기 정도 이상을 어떻게 긁어서라도 자기를과시하도록, 자기를 지나치게 다른 사람에게 위엄을 보이도록, 권위를 보이도록 이래 가지고 종노릇의 정반대인 상전 되려는, 왕이 되려는, 지배자가 되려는, 권위 인정을 받으려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위험을 보이려는 이것을 버리고 어쩌든지, 아예 딱 작정하기를 '나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여생을 살겠다. 하나님에게 복종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옳은 것에는 나는 인간에게 복종하겠다. 인간에게 복종하는 이 일이 제일 평안하고 인간에게 복종하려고 하니 하나님에게 죄가 되어지는 이거는 할 수 없으니까 내가 만들어서라도, 나를 지배하는 사람을 만들어서라도 나를 지배하는 사람, 나를 다스리는 사람-이렇게 해서 나는 사람에게 복종하는 세계에서 살겠다.'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할 수 없어 나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살고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이것만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서 나를 복종시키는 그 간접적인 복종, 간접적인 복종, 직접 복종만 아니고 하나님께 간접적인 복종은 인간을 통해서 복종하는 것이니까 인간을 통한 간접적인 복종, 직접적인 복종 나는 복종 세계에서 여생을 살겠다.' '나는 여생을 어떻게 하면 살까 살 구멍만 파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안하고 내게 있는 모든 내라는 이 모든 것을, 내라는 이 모든 권세나, 지위나, 또 모든 부패성이나 무엇이든지 나는 죽고 진리는 살고, 나는 죽고 주님은 살아나고 나는 죽고 다른 사람은 살아나고, 옳은 것으로 참된 것으로 이렇게 살기로 작정하고 이 걸음 걷겠다.' 하는 요 네 가지 방편을 우리의 생활의 방편으로 삼아서 가면 거리끼고 무거운 죄를 범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죄는 다 그것을 분석해서 보면 자기가 부하려 하는, 부하려 하는 자는 자기를 한없는 침륜과 멸망에 빠뜨린다고 말했습니다. 부하려 하는 것, 높아지려고 하는 것, 자기가 지배력을 가지고 자기를 위엄스럽게 하려는 것 어데서든지 다른 사람이야 진리야 하나님이야 어찌 됐든지 저만 살 구멍을 파는 이것 이것으로 인해서 다 생겨진 죄악이지 이 외에는 죄악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당한다 제 운수로 말미암아 당한다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사람들이 다 자기의 욕심, 부요하고자 하는 욕심,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 자기가 모든 것에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욕심, 진리야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됐든지 저만 살려는 그 살려는 욕심, 이 욕심에서 다 그런 것을 끌어오는 것이니까 이런 것을 벗어버려라.
그러기 때문에 이 정리하는 것은 벗어버리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자기가 이제까지 한 것 경제적으로나, 또 사회적으로나, 사회적이라 말은 자기가 사람들과의 관계되는 그런 모든 것을 총칭해서 사회적이라 말인데 사회적으로나, 또 무슨 인정적으로나, 인정적으로, 감정이나 무슨 정서적으로, 자기의 또 사업적으로, 자기의 모든 욕망인 그 욕망적으로나 모든 면에 있어서 잘못된 것이 있어서 그것에 마음이 눌려서 신앙을 자유하지 못하고, 그것에 마음이 눌려서 양심이 자유하지 못하고, 그놈에게 눌려 가지고 잠도 못 자고, 또 근심하고, 걱정하고 이래서 마음이 눌리고, 또 그 다음에는 양심이 눌리고, 그 다음에는 모든 자기의 자유가 눌리고, 활동이 눌리고 이래 되거든, 이런 게 됐으면, 그저 거기에서 또 악령은 꾀워 가지고 '네가 요렇게 요렇게 수단을 부리면 요리 된다.
조렇게 거기에서 어떻게 하면 된다.' 그런 것을 하지 말고 정리하는 그 성경이 가르치는 방편은 그저 벗어버리라. 벗어버리라.
네가 벗으려고 하면은 네 부가 당장에 가난화되고, 또 네가 낮아지고, 네가 남에게 그만 참 천하게 종이 되어지고, 네가 절단이 나지고 하 지마는 그게 사는 것이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우리가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은 우리가 부해지는 것은 절대 인간에게 권리가 없습니다. 인간에게 맡겨 놓지를 안했습니다. 인간이 서둘러서 부가 된 것은 반드시 그 부는 자기를 눌러서 붙들어 매서 죽일, 자기와 자기 자손을 망칠 신앙과 육의 이 모든 영과 육의 모든 것을 누르고 뭉쳐서 죽일 그런 것이지 자기에게 참으로 유익한 부, 유익한 높음, 유익한 권세, 유익한 삶, 삶이라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만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하는 형제들아 네가 너에게 속지 마라. 각양 좋은 은혜와 온전한 선물이 어데서 오느냐? 하나님에게서 온다."' 하나님 아버지에게서만 오지 딴데서는 오지 않는다. 오는데 오는 길이 뭐이냐? 오는 길은 빛이라는 길을 통해서 온다. 빛이라는 길을 통해서 온다. 진리라는 길, 영감이라는 영감 진리를 통해서 너에게 오지 영감 진리를 통해서 오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런데 네가 무슨 진리를 어긋나서 무엇이 오리라, 영감을 떠나서 무엇이 오리라, 네 양심을 어겨서 오리라, 네 양심 통해서 오지 않는 것 하나도 없고 진리 통해서 영감 통해서 오지 않는 것 하나도 없다. 네게 필요한 모든 좋은 것은 부나 높음이나 주장이 되는 그 모든 주권이나 네 삶이나 그런 것은 순전히 하나님 아버지가 주권하고 계시고, 하나님 아버지가 주권하고 계시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악령에게-하나님께서 악령을 잡아 부리시는 하나님이신데-악령에게 네가, 낮아지고자 가난해지고자 또 종이 되고자 자기를 어데서든지 죽음만 찾는 이 자에게는 내가 줄 것이고, 이 자에게는 내가 줄 것이고 이것을 반대하는 자에게는 네가 그것을 관리해 줘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망하도록 해라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야심이 없는 줄 압니까? 하나님을 질투심이 없는 줄 압니까? 하나님은 시기심 없는 줄 압니까? 하나님이 네가 듣고 보고 깨달음으로 회개할까 내가 두려워한다" 회개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줄 압니까? 하다 하다 안 들으면 회개 안 하고 조게 가다가서 그대로 가다가 코가 깨지든지 박살이 나든지, 저만 박살날 게 아니라 박살나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다 보여 줘서 봐라, 이 행동하는 자가 요렇게 박살났다." 하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광고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꼭 하나님이 우리의 원형이오. 인간의 원형이오. 인간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께 다 있습니다. 다만 그분이 죄를 짓지 안하고 악을 행하지 안하시지 인간에게 악이나 죄나 모든 것이 그것도 다 하나님 그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가 자기는 자꾸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음과 자기 구원을 위해서 그저 가난해지려고 애쓰면 거기에는 죄가 없습니다. 평안합니다.
부하려고 하는 데서 죄가 되지 가난하려고 하는 데는 죄가 없습니다. 낮아지려고 하는 데는 죄가 없습니다. 거기는 죄가 용납 못 합니다. 그거는 다 자기만 희생되어져. 희생되어지는데 그렇게 해 가지고 자기가 희생돼 죽어야 참사람으로 살아납니다.
이것은 죄악이 높아지려고, 부해지려고, 자기가 주인 노릇 하려는, 자기는 언제든지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살려고만 애를 쓰는 요것 때문에 사람이 망쳐지고 죽어진, 죽고 멸망하게 된 요게서 구출하려고 오신 복음이기 때문에 복음은 그 정반대의 방편을 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 당신이 이 길 취함으로써 우리도 살았고 이 길 취함으로써 당신에게도 유익이 안 된 것 아닙니다. 보면, 죽기까지 복종함으로 이러므로 높여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하나 더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성부 성령의 가지신 것보다도 피조물로 인해서 가진 성부 성령에게 없는 이 영광스러운 존귀함이 있게 된 것은 예수님에게만 있게 됐습니다.-이것 들어요, 눈을 똑 뜨고! 이래도 자. 눈은 감고 꼭 하네. ○집사? 이래도 눈은 감고 자꾸 듣는 척하고 무슨 명상하는 것처럼. 안 돼, 그러면.
이렇게 사람들은 이것이 내가 부요해지는 것, 내가 높아지는 것, 내가 모든 사람을 다스리게 되고 주인이 되는 것, 또 내가 사는 것, 이것은, 영에나 육에나 사는 것 이것은 꼭 아버지 하나님 한 분에게만 매였습니다.
또 "빛들의 아버지에게로 말미암아 오느니라" '빛들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느니라" 야고보서에 똑똑히 말씀했습니다. 이런데 내가 어두운 일을 해 가지고 그 일이 이루어지고 어떤 인간을 통해서 어떤 방편을 통해서 그것이 온다고 생각하고 하면 옵니다. 오는 그것은 반드시 자기를 지금 치여 죽이기 위해서 마귀가 주는 것이니까 덫이요 그물입니다. 그것이 도적이 벌써 자기라는 행복에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얽매이고 무거운 죄를 우리는 벗어버려야 됩니다. 어떤 자기에게 어떤 명예가 희생되고, 자기의 지위가 어떻게 깨지고 자기의 위신이 어떻게 깨지고 그저 어떻게 되든지 이걸 벗어버리려고 애를 써야 되지, 거기에서도 마귀란 놈이 또 꾀웁니다. '여기에서도 내 위신이 조금 그래도 상하는 중에도 좀 위신이 덜 상하게. 내 지위가 덜 낮아지게.' 자기의 부가 좀 덜 깨지게 여기에서도 자기가 조금 살아나게 하려고 하는 여기에서 그 그물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기에서 무거운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발끈 결박시키는 그 감옥에서 자기는 벗어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모든 죄가 다시 말하면 자기 부인하는 데서 모든 무거운 죄와 얽매이는 죄가 벗어지게 되고 또 자기를 높이고 인정하고 자기를 키우려고 하는 데에서 인간의 멸망이 다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와 하나님과 바꿔서 하나님은 커지고 나는 작아지고, 하나님은 부해지고 나는 가난해지고, 하나님은 높아지고 나는 낮아지고 하나님은 점점 거기에서 나타나시고 나는 죽어지는 이 길만 취하면 하나님이 마구 들어부어 줍니다. 마구 들어부어 주요.
이런 이 행복의 비결이 있는데 어데서든지 벌써 자기가 '여기에서 내 좀 위엄을 보여 줘야 되겠다. 권위를 보여야 되겠다.' 할 때에 그걸 보이려고 하면은 벌써 어두움을 접해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높이고 행복되게 살리려고 영광스럽게 하려고 하면 벌써 그 생각할 그때부터 자기는 얽매이고 눌리는 함정 가운데로 끌려가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벗어버리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거리끼고 얽매이는 것 다 벗고 자유롭게, 얼마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얼마든지 살 수 있고, 하나님 말씀대로 아무데도 거리낄 것 없이 내가 하고 싶으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는데 내게 무엇인가 내 속에서라도 마음이나 생각이나 무슨 사건이 이것을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하면 그놈이 바로 죄니까 그놈을 어쩌든지 벗어버려야 됩니다.
돈이 깨져도 벗어버려야 되고, 명예가 깨져도 볏어버려야 되고, 지위가 깨져도 벗어버려야 되고, 내가 박살나도 벗어버려야 돼. 벗어버리면 자유가 있고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기 때문에 어데까지 내려가도 상관없습니다. 천길 만길 내려가도 당신이 올리려면 당장에 인류 중에 제일 상등으로도 올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내려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려가는 것이 힘드요.
내려가기만 하면 올리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문제가 없고 가난해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부요하게 해 주시는 것은 문제가 없고, 내가 종만 되면 당신이 통치자로 세우신다는 것은 문제가 없고, 나는 자꾸 죽음만 찾으면은 하나님이 살려서 얼마든지 영육의 생명으로 충만케 하시기는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이게 이치에 딱 맞기 때문에 불신자도 실은 이 이치에 맞게 살아야 그게 살지 이걸 모르고 날뛰면 그만 그 사람은 실패합니다. 요 생명의-좁은 길 요 길을 발견한 사람은 불신자라도 성공이요 평강입니다. 요 길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벌로 덤비는 사람은 죽기 전에 반드시 그이에게 감옥에서 마지막에는 거기 치여서 죽는 그것을 당하고 말 것인 것입니다. 모든 이 사업가들이 부도가 난다 뭐 난, 다 해 가지고 망하는 것이 꼭 요 방편에서 망했지 요 방편을 떠나서 망하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말씀하시기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인내라 말은 참고 견디라 말인데 이러면 뭐 참고 견디면 내가 버린 부가, 나는 부를 버렸는데 조금 기다리면 하나님이 주신 부가 왔습니다. 나는 부를 버렸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부가 왔습니다. 부가 왔는데 나는 그 부를 취하지 안하게 거기에서 또 가난을 취합니다. 가난을 취하니까 부가 오고 가난을 취하니까 부가 오고 가난을 취하니까 부가 오고 자꾸 부는 오는데 나는 가난만 취하고, 가난을 취함으로 부가 오고, 낮아짐을 취함으로 자꾸 높음이 오고, 자기는 자꾸 종되기만 힘을 쓰는데 자꾸 자기는 주인이 되어지고 지배자가 되어지고 주권자가 되어지고, 자기는 죽기만 힘을 쓰는데 자꾸 살아나고 살아나고, 참 이것이 우리의 자유하는 이 복음입니다. 자유의 복음이요 생명의 복음입니다.
이러므로 인내하라, 참으라 그러면 좀 있으면 되는데 사람들이 조급해 가지고 제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통에 망칩니다. 사람을 접촉해도 '이 사람은 희망이 있나 없나?' 무슨 큰 자기에 얽매이고 무거운 죄에 붙들리고 눌려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이제는 희망이 있나 없나? 이제는 해결이 되겠나 안 되겠나?' 하는 것은 요 네 가지를 회개 못 하면 안 됩니다. 요 네 가지.
아직까지 그 속에 높아지려고 하는 그것이라도, 자기가 부해지려는 그것이라도, 자기 위신과, 자기 위신 지위 그것을 세우고자 하는 그것이 하나라도, 자기를 다문 아껴 자기를 살려야 되겠다 하는 그것이라도 있으면 헛일입니다.
담대히 이것을 벗어 집어던져 버려야 됩니다. 버리고 복음의 본질 본성대로 요것을 취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벌써 천국이요 평강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써 점점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인내로써 그저 계속, 오늘 그래서 당장 효력이 없다고 생각지 말고 또 계속하고 인내로써 자꾸 그저 뿍뿍 이 네 가지 걸음을 걷습니다. 죄를 벗어버리고 이 네 가지 걸음을 걷습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 달음질치자.
"믿음의 주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으로만 우리의 주가 됐고 "또 복종하는 것으로만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너머, 먼저 십자가의 고난이 오고 그 너머 자기에게 속한 자가 다 구원 얻고 모든 것이 성공되고 행복된, 죽음 너머 있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인하여" 십자가 너머 있는 즐거움을 인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달게 받았더니 마침내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것이 우리의 사는 길입니다.
왜 이 법칙이 우리에게 왔을까? 우리가 악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원죄성이 있고 본죄성이 있는 이 타락의 죄악성이 있기 때문에, 죄악성 이놈만 없으면 이런 모순된 법칙을 이용하지 안해도 되는데 이 죄악성이 있기 때문에 모순된 법칙은 죄악성 이놈 때문에 모순된 법 칙이오. 원죄 이놈 때문에 모순된 법칙입니다.
원죄 이놈 때문에 모순된 법칙이기 때문에 원죄 이놈 때문에 모순되게 보여지고 모순된 법칙인데 원죄 이것 때문에 이런 것이니까 어쩌든지 이 법칙을 취해야 이것이 원죄 없을 때 바로 되는 것과 같은 그 법칙을 따라서 생명길을 걸어갈 수가 있지 그렇지 않하면 가지 못하기 때문에 이제 '나는 부패성이 내 속에 있다. 죄악성이 내 속에 있다. 악령이 마귀가 인간의 대가리를 이용해 가지고 인간의 모든 하나님에게 반대되는 지식을 인간에게 가뜩 넣어 준 이 지식이 내 속에도 있고 세상에 가득 찼다. 악령이 가득 찼다.' 이러기 때문에 악령 생각, 인간 지식, 또 자기에게 부패한 그 모든 자기 중심, 악성 악습, 악령의 이 악이라는 것 자기 중심이라는 것 이게 있기 때문에 이 모순 같이 보이지마는 그놈이 들어서 모순이지 그놈만 없이 하면 모순이 아니고 이것 바른 직통의 길이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쩌든지 자꾸 정리해 가면서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짤빡 하면 또 얽매입니다. 또 나를 누르는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또 범합니다. '자꾸 정리하자.' 있는 것 자꾸 정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다가 '이제는 다 정리됐다' 했으면 벌써 얽매이는 게 하나 둘 생겨집니다. 얽매이는 게 생겨집니다. 또 정리하고.
그저 정리할 것을 자꾸 평생 정리해서 모든 걸 자꾸 늘어놓지 말고 정리하려고만 애를 써 정리로만 나가게 되면은, 또 껍데기 정리 알맹이 정리, 이러니까 껍데기 정리하면 쩝데기 평안 껍데기 자유, 알맹이 정리하면 알맹이 평안 알맹이 자유, 인간이 알지도 못하는 높은 세계에 신령한 세계에서 얽매이는 것을 모두 다 벗어버리면 인간이 모르는 아주 고차원에 있는 평강 자유 기쁨 이것으로 점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참 세상이 모르는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 교회에 여기에 앞에 와서 항상 기도 많이 하고 있던 기도의 할머니가 세상을 떴습니다. ○○집사님이라고 그 기도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떠날 때까지도 그분은 하나님 말하니까 기뻐하고, 진리 말 하니까 기뻐하고, 목사님 말하면 자다가도 깜짝 놀라 깨면서 기뻐하고 긴장을 하더라고. 내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종이라고 해서 그런 것이오. 내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기 때문에.
아주 신앙의 사람인데 별세했습니다. 그래서 여덟시 삼십분까지 이리 오시면 출상예배에 참석할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나한테 신고가 이 석 장이나 들어왔습니다. 이 사람도 또 그렇다고 말하고 여기도 말하고. 제가 거기 가서 갈 것이고, 하기는 제가 참 묘지까지 꼭 가고 싶은데 내가 거기 가다가 다른 것 못 할까 해서 너무, 갔다가 도로 내가 하나님을 근심되게 할까 싶어 내가 갈지 안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출상 예배에는 제가 갑니다.
그러고 기도하는 기도회에 등록된 분이 삼천사백십일 명입니다. 그러고 어제 와서 기도한 분은 팔백육십일 명입니다. 점점 수가 올라갑니다.
어쩌든지 이 기도회로써, 이렇게 우리가 기도하면 이제는 '이 일을 어떻게 할까? 이 적화남침을 어떻게 할까?' 하는 이런 것이 기도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 평강을 그 사람에게 줄 것입니다. 이런 것도 문제가 없어. 이런 거는 껍데기 잠깐 벗고서 우리 속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이 평강과 자유와 기쁨이라는 것이 얼마든지 우리 속에 용솟음 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소망하는 자에게, '나를 바라는 자는 절대로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 당신에게 소망두고 하는 사람은 수치 안 당합니다. 어제밤에는 장로님이 아홉 분이 와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 , 아홉 장로님이 오셔서 기도하셨고 다른 분들은 또 다른 데서 기도하시고, 사정상 그런 분들은 어데서 기도하시든지 와서 회록에 적기는 꼭 도장을, 자기가 안 오면 다른 사람을 시켜서라도 꼭 찍어줬으면 모든 무리들에게 힘이 되겠습니다.
십 분 기도 후에 권찰회 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