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1984. 10. 16 화새벽

 

본문 : 출애굽기 20장 4절 6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우상에 대해서 우리가 여러모로 해설을 들었습니다. 또 사랑에 대해서도 많은  해설을 들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더 해석하지를 않고 사랑과 순종과 시기의  미움과 대적에 대해서 약간 말하겠습니다.

 여기에 5절에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하는 여기  질투라 말은 미워한다는 말입니다. 미워한다는 말입니다. '미워하는 하나님인즉'  하는데, 미움도 여러 가지 미움이 있는데 물질로 인한 미움도 있고 또 자기를  반대해서 미워하는 그런 미움도 있고 한데 여기에는 이 미움은 무슨 미움인고  하니 시기의 미움입니다. 시기의 미움 여기에는 시기의 미움이라는 것을 성경에  많이 말했습니다.

 왜? 이것은 우리 사람들이 이런 형상 저런 형상 이런 형상이든지 자기가 취미로  만드는 것 좋습니나. 하나님도 좋아하십니다. 이런 것을 만들어 보고 저런 것을  만들어 보고, 이런 것을 만들어 묘한 것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거, 우리가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다 주면 그것 가지고 이렇게도 만들어 보고 저렇게도  만들어 보고 이렇게 저렇게 기뻐 즐거워하면서 노는 것을 그 부모는 기뻐서 뒤에  더 사다 줬으면 사다 줬지 거기에 대해서 분개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택자들을 모든 창조보다 뛰어나게 당신이  자존하신 분으로서 당신의 상대를 삼으실라고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이 우리가  된 것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그 상대로 삼아 가지고서. 그분은  자존하신 분이요 전지전능하신 분이요 모든 것의 대주재가 되시는 분이신데.

그러면. 그분이 우리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시는가, 어떻게 하실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는 그분이 말씀하신 것 가지고 우리가 다 알 수 없으나 그분이 실제로  사람 되셔 가지고 십자가에서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큰 사랑의 희생을  베푸셨고, 또 그분이 창조주이면서 이 피조물이 된 것. 우리가 우리 만든 것이  되기까지 그만치 상대를 위해서 낮아진다는 것 그런 것은 참 어려운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아무리 애처가라 할지라도 남편이 만든 무슨 도구나 연장이나 또  무슨 물건이나 아내를 위해서 그만치 제가 낮아지지를 못할 것이고 그만치  아내에게 자유롭게 쓰여질 수 있는 그런 자 되지 못합니다. 이거는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한 것입니다. 이랬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해서  이 사랑을 실상으로 베푸셨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기대했으며  얼마나 소망하시며 또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택자 우리들을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그 선물  그것을. 물론 주님이 주신 선물로 알고 잘 가지고 놀고 뭐 아끼고 하는 것은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마는 우리가 그 자기의 소지품에 대해서,  또 그 남편이 주는 무슨 부모가 주는 그 선물에 대해서 그 선물을 귀히 여기고  아끼는 것도 그저 할 수 있으나 그 선물이 어디서 어떻게 왔다는 그것을 모르고  아낀다는 것은 좀 그 선물을 베푼 사람에게는 좀 마음에 섭섭함이 될 것입니다.

'저거 내가 줬더니마는 내가 준 그것만 제가 좋아하고 기뻐할 줄 알지, 그것 준  나를 좋아하라고 나를 사랑하라고, 대우하라고, 나로 더불어 친근해라고 준  것인데' 그 준 분에게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이 그 관심이 그리만  기울어진다고 하면 매우 섭섭할 것이고 또 그 어리석음에 대해서 염려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리석어 지나쳐서 그것을 준 그 사랑하는 자로 바꾸어 가지게  될 때에는, 사랑하는 자, 이제 그게 없어도, 아내에게 자녀에게 무엇을 좀  줬더니마는 '이제는 부모 없어도. 이제는 남편 없어도 이것만 하면 살겠다,' 또  '이러니까 나는 남편에게 대해서 성심성의를 기울이는 것보다도 이것에 대해서  성심성의를 기울여야 되겠다. 나는 남편이야 어떻게 뭐 병이 들든지 어떻게  되든지 한다 할지라도 이것이 잘 보존되고 잘되면 내게는 문제가 없겠다.' 또  두려워하는 것이라든지 아끼는 것이라든지 좋아하는 것이라든지 뭐 바라는  것이라든지 의지하는 것이라든지 그 섬기는 모든 그런 것 또 이제는 복종하는  것도 그것에게 복종하는 것 이것을 만일 한다고 하면은 물론 그것을 준 자는  그것보다 큰데 그 큰 분을 버리고 그 사람이 준 그 사소한 거 그런 것에 대해서.

그것을 준 그분은 더 크신 분인데 더 크신 분 그분과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 그걸 줬는데 그분을 잊어버리고 그와 같이 하는 거는 그거는 미친  짓이요, 미친 여자요. 미친 사람이요 망령되고 그거 참 아주 어리석기가 짝이  없어서 불쌍하기는 불쌍하지마는 거기에 대해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 그런 것은  마음에 섭섭하기만 섭섭하고 괘씸하기만 괘씸하겠습니다. 섭섭하고 미움만  들겠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무슨 애정적인. 쌍방의 부부의 애정이 들어 가지고 있다고  하면은 그때는 미움이 아닙니다. 미움이 아니고 그거는 미움이 시기적인  미움입니다. 시기적인 미움, 이래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교회 사이에 신랑과  신부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것은 왼형이요, 이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인간의  그 애정적인 이 남녀 관계를 하나의 하나님의 이 원형을 나타내 알리는 모형으로  이렇게 부부라는 이 제도를 세워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부부는 그거는 모형이요 하나님과 교회와의 관계는 원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럴 때에 무슨. 무슨 선물이든지 왔을 때에 그걸 그 남편에게  대한 애정을 다 그리 쏟아 버린다고 하면 대단히 그것은 섭섭할 뿐만 아니라 그  미움은 시기적인 미움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꾸 둔해서. 심령이 둔해서 그런 걸로 말하면 잘 모를 것이고, 그  남편이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의 그 노고를 위해서 아주 참 그 아내가 안 해도 될  만한 그런 아주 능한, 지능에 능한 그런 일군을 들여세워 주고 또 그가 무슨  모를 때에 모르는 것을 알려 줄라고 하는 그런 무슨 가정교사를 데려서 주고. 또  그 아내가 모든 것이 모자라니까 가정교사를 들여세워서 모든 어학들을 공부를  시키고. 또 편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편리에 필요한 그런 모든 인물이나 또  모든 기계나 어떤 그 물질 그런 걸 다 들여서 아내를 위해서 모두 다 편리하도록  그렇게 해 줬습니다.

 또 동행에 불편하니까 아주 능숙한 기사를 들여서 자동차든지 뭐. 좀 있으면  지금 자동차라 하면은. 아주 자가용 자동차라 하면은 귀하지마는 조금 있으면은  자가용 비행기가 생길란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아마 자가용 비행기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조그만치라도 불편하면은 편리케 해 줄라고 이런 거 저런  것을 해서 그저 부족한 것이 발견되면 즉시 부족한 그것을 보충해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로 하여금 불편함이 조금도 없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자꾸 한편에서는 그렇게 구비해서 주는데, 이 상대방은 그것을 그렇게 하지  안하고 이제는 '내가 요거 있어서, 여기에 없어서 곤란하더니마는 요거 있으니까  이제는 이 남편에게 대해서 머리 안 숙여도 되겠다. 요 또 내가 요걸 알았으니까  남편에게 대해서 섬길게 아니라 일 대 일로 내가 상대해도 되겠다. 요거 요런 거  요거 다 구비되고 있으니까 이제는 남편이 죽어도 문제없겠다. 일 없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가지고 그런 사람으로 변화된다면 은혜를 베풀고  사랑을 베푼 그 남편이 얼마나 마음에 섭섭할 건가? 섭섭한 것을 그것으로 그칠  것인가? 그 사랑이 뜨거우며 뜨거운거만치 분함으로 뜨거워질 것이고, 그  분함으로 뜨거워지는 것이 나중에는 미움으로 뜨거워질 것이고, 미움으로  뜨거워지는 그것이 마지막에는 자기가 준 것을 자기 대신으로 삼는 그것에  대해서 아주 멸하려는, 그것을 그것을 깨트려 멸하려는 그런 멸살로.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남편 자기를 대신한 그것들을 자기 힘이 없으면 몰라도,  '아, 그거 내가 줬더니마는 속았다.' 그렇게 힘이 없으면 못 하지마는 힘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을 바싹 부숴서 다 파괴를 시켜서 아무것도 없이 발가벗겨서  아주 험하고 천한 자를 만드는 것이 다 우리 사람 각자들에게 들어 있는 그  인격성이요, 또 그것이 지능이요. 그것이 또 판단성이요, 그것이 모든 애정들의  가진 속성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하는 이것은  고 마지막 끝을 가리켜 말하는데 섭섭하고 분하고 괘씸하고 밉고. 그 자기 애인  그것이 아닌 애인이 지금 이 속하고 있는 그 간부. 그 간부 위치에 있는 그것을  대적해서 멸하려는 그런 성질에 속한 미움을 여기에 가리켜서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이라고 그렇게 발표했습니다.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그다음에는 이제 해석을 했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미워한다는 말은 벌써 하나님을 다 버렸다는 말이오.

하나님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필요한게 아니라 자기에게 거칩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필요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거칠어서 방해물이  됩니다. 방해물이 되니까 '이 하나님이 없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 지경으로  나가는 그 태도를 가리켜서 '나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그러면, 이렇게 그 시기와 미움에 대한 대가는  시기와 미움에 대한 대가는 끝이 없는 것입니다. 시기와 미움에 대한 대가는 그  시기도, 시기도 그것이 끝이 없습니다. 미움도 그것이 끝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시기와 미움의 끝은 그 당자의 당자의 지능의 범위는 있어도, 당자의 지능의  범위는 있어도 끝은 없는 것입니다. 그 당자의 지능이 옅으면. 그것이 옅을  것이고 깊으면 그게 깊을 것이고 약하면 약할 것이고 만일 전능이라면 그 시기의  대적은 아주 전지적일 것이요 전능적일 것이 요 또 무한적일 것이요 영원적일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이 미움이 시기적인 미움이기  때문에, 미움은, 미움은 끝이 없습니다. 미움은 끝이 없다 미움은 끝이 없는데,  미움의 그 한계는 하나님의 당신의 그 범위에 따라서 끝이 있다 하나님의 범위가  유한하면 그 시기의 미움이 유한할 것이고 하나님의 그 모든 실력이 끝이 없는  영원 무한이라고 하면은 그 시기의 미움의 행동도 무한하게 된다 하는 그것을  여기에서 표현해서 나타낸 것입니다. 삼사 대가 내려가면 벌써 그와 상관없는 다  자유성 개별성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벌써 거기에서는 하나의 내음새도 나지  안할 만치 그만치 유전되어 내려가지를 안하기 때문에 삼사 대로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 끝은 없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 사랑도 그러합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그 사랑의 대가는 끝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가는 끝이 없고 순종의 대가는 끝이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가 사랑하는자라고 하면은 자기 힘이 적으면 적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사랑이라는 그 사랑이 끝이 없이 사랑하는 다 사랑하는 것으로써 전폭이 됐다고  하면 아무리 무식한자라도 그 상대방을 사랑함이 자기의 모든 것을 다해서  다해서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하면은 그 사랑하는 사랑의 역사도 끝이 없고 또  사랑하는 그 사랑의 대상이 사랑을 받는자가 그 사랑에 대해서 역사 하는 것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의 힘은 끝이 없다. 또 사랑의 대우는 끝이  없다, 사랑의 대우는 끝이 없다.

 또 순종하는 것은 그것이 자기를 대우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뭐이냐? 순종  그것이 안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내가 상대방을 좋아해서,  그분을 내가 좋아하는 거, 그 자체를 내가 좋아하고, 내가 좋아해서 그를. 그저  내 좋아함과 내 모든 것이 그를 좋아해서 그에게 기울여져 있는 것을 가리켜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순종이라 하는 것은 그를 좋아서 그를 대우하는  것입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그가 이렇게 뭘 시켜 놨으니. 그가 나에게 요구하고  명령할 때에 그것을 내가 이행하고 순종하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요 또  상대방을 바라는 것이요, 상대방을 의지하는 것이요. 상대방을 어떻게 하면 좋게  기쁘게 할까하는 그런 행동을 가리켜서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도 다른 데서 잘 책임지지 못할지라도 자기에게 순종이 아무 섞인 것 없이  순종에 아무 섞인 것 없이 순종한다고 하면은 그에게 대해서 모든 것을 책임질  그런 힘이 나옵니다. 자기에게 대해서 아무 섞인 것 없이 무슨 기계적으로  방편적으로 무슨, 무슨 계획적으로, 무슨 복술적으로 이렇게 순종함이 아니고  상대방을 든든히 알고 믿고 의지하고 그에게 대해서 아무 다른 무엇이 잡것이  섞여 있지 않고 그저 그분을 든든히 믿음으로, 의지함으로, 든든히 참 믿고  의지하고 '그분이면' 하는 것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봄으로써 순종한다는 그  순종에 대해서는 그것은 아주 상대방을 그것을, 상대방을 대우하는 것이요 아는  것이요, 믿는 것이요, 의지하는 것이요, 그분을 좋게 하려는 자기로서의 하는 그  대우인 것입니다. 그게, 대우 그것이 순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순종이라는  것도, 순종의, 그 순종하는 자의 성질도, 순종하는 자의 성질도 그것이 깊고  끝이 없는 것이고, 또 순종하는 자에게 대해서 그 대가를 주는 그 대가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부모고 자식이지마는 어린 것이 아무것도 없이, 무슨 감각 없이 전적  그 부모에게만 모든 것을 맡겨놓고 그분의 해 주는 것만 무조건 끝이 없이  바라는 그 힘은 부모의, 부모의 그 지능이 있는 한 거기에는 무한한 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희망 없는 병신 아이가 있다고 하면, 아이가 있을 때에  부모가 그 옳은 정신이라 하면은 그에게 맡겨 놓고, 부모에게 맡겨놓고 딱  맡겨놓고 그만 바라고 있는 그것은 일생동안 병신이라도 자기가 늙어 죽어야지  늙어 죽기 전에는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악해서. 이 세상이  악해서 그러나 모든 하나님에게 지음을 받은 존재에 변질되지 안한, 변질되지  안하고 변성되지 안한. 지음을 받은 고 본질 본성 그대로 있는 것이라면 절대  그는 버리지 못합니다. 자기에게 그저 지능이 끝이 나야 그에게 대해서 봉사가  끝이 나지 지능이 끝나기 전에는 봉사가 끝이 못 나는 것입니다.

 또 이제 그러면서 그것이 좀 기능이 생겨 가지고서, 아무 감각 없이 그저 그만  턱 맡겨놓고만 있는 그 힘이 참 강하고, 또 거기에다가 제가 벌써 상대방을  알아서 순종하기로 하고 무엇을 말해도, 독약을 주고도 마시라고하면 마시고, 또  죽을 만치라도 저기 들어가 봐라하면 들어가고, 또 데이면 타서 죽을 거라도  저기 가서 한번 만져 봐라 하니까 예! 하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만지러 간다고  하면은 그 모든 잘못의 책임은 지도자 명령자에게 있는 것이고. 명령자가 자기와  기능을 가지고는 그와 같이하는 자에게. 그에게 혹 시험하는 그런 것이 있을는지  몰라도 그에게 대해서 자기에게 있는 모든 전부는 다 그를 위해서 기울여서  노력하고 싶은 그것이 하나님의 모형을 입은 인격성의 본능입니다. 인격성의  본능.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무조건 순종하는 그 순종에 대한, 순종에 대한  무조건의 순종은 나를 명령하는 그분을 무한적으로, 무한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바라고 든든하게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하는 생활이요, 그럴 때에 그  순종을 받는, 명령할 때에 그 명령대로 순종을 받는 그자는 순종하는 자에게  대해서는 자기에게 있는 지능을 전부를 다 기울여서 그에게 있는 대로는 다 그를  책임지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그것이 또 신성의 그 본능 그것은 원형이요  그 모형으로 지은 인격성의 모형적 본능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시기의, 미움의 대가도. 시기의 미움의 대가도. 끝이 없다, 그것은 그  당자의, 당자의 유한함에 따라서 그것이 유한해지지, 당자의 유한함에 따라서  시키면 암만 자기가 할라 해 봐도 능력이 그 이상은 없고 지혜가 그 이상은  없고, 암만 복수를 할라 해도 그 이상이 없어 못 하지 있는 대로는 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시기의 미움의 복수적 대가는 끝이 없다 다만 끝은 당자의 그  유한한 그것이 끝이지 당자가 무한하면은 그 끝은 무한하게 된다 하는 것을 여기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기에 대해서는 대적이나 복수성이 무한합니다.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님을 미워하고 대적하는 거기에  대해서 복수성은 인간에게는 인간에게도 다. 무한한데 인간에게는 그 당자가  유한하기 때문에 유한이 있지마는 하나님께서는 무한하기 때문에 무한이지 끝이  없습니다.

 그 반대로 사랑과 복종도, 사랑과 순종도 그 대가는 끝이 없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사랑을 얼마치 했으니까 얼마 대가라 하는 사랑하면 그 사랑에 대해서는  대가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서는 대가가 없습니다. 만일 사람도 자기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자기를 사랑한다면 참 둘이 다 사랑 한다며 거기에 대해서  자기의 지능은 끝이 없습니다. 있는 데까지는 자기가 다해서 상대방을 위하고  싶고 위할려고 노력을 하지마는, 사람은 유한하지마는 하나님은 무한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그 값은 끝이 없다 하는 것을 여기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많이 했다 할지라도 천 대까지 무슨 그게  내려갈 만치 뭐 있겠습니까? 이런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데 대해서  하나님이 만족해서 거기에 대한 참 고마움에 대해서 그 상대방을 사랑해서 그  대가라고 할 수 있는 그 은혜를 베푸는 데에는 끝이 없다, 천 대 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은 무한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천이라면 무한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끝이 없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여기에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제일 힘 있는게 뭐이냐? 제일 힘 있는  것이 자기가 있는 힘을 다해서 뭣을 일을 했다. 어떻게 충성했다 하는 그런 것은  다 힘이 있지마는, 어제 아침에 마태복음 20장 포도나무 일군 비유를 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와서 해 봤자 그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정당성 있는 대가만 치뤄 주면 됐지 아무런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늦게 들어온 일군은 '아, 아무도 날 써 주지 안하는데. 아무도  날 써 주지 안하는 아무 쓸모없는 나를, 나를 등용하신다.' 자기를 쓸모없다고,  상대방에서 자기를 등용하는 자에게 대해서 자기는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이것은 값이 끝이 없습니다. 이거 끝이 없오. 거기에는 한  데나리온 줬지마는 성경에는 무한입니다. 끝이 없어.

 아, 날 같은 이런 것을, 날 같은 이런 것을 인정해 주고 날 같은 이런 것을 써  주다니, 날 같은 이런 것을 상대해 주다니 하는, 자기 같은, 자기의 아주 부족한  그것을 상대방이 받아 준다는 거, 이 자기의 부족을 느껴서. 자기의 단점을  보는, 부족을 보는 거기에 대해서 그런 것을 하나님이 상대해 준다는 거기에  감사하는 그 감사도 끝이 없고 자기의 부족을 느끼는 거기에 대한 값도 끝이  없고, 또 '내가, 이러니 내가, 다른 사람들은 저래 하지마는 날 같은 걸  이랬으니까 내가 그저 시간도 없으니까 성심성의를 다 기울여서 해야 되겠다.'  정성을 다 기울인다는 그것도 끝이 없습니다. 그것도 대우에서 끝이 없어.

그라면서 '아, 날 같은 것이 무슨 보수를 받겠느냐. 대우를 받겠느냐, 나는  대우받을 것이 없다.' 대우를 바라지 아니하고 복종한다는 그것도 끝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먼저 된 자는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는 먼저  되었다고서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을 어제 아침에도 또 증거를  했었습니다.

 이랬는데, 오늘 아침에는 여기에 미움이라 하는 것은 시기의 미움입니다. 꼭  부부간에 이래 하는 거 같은 그 시기의 미움입니다. 이래서, 야고보서 4장에는  말씀하시기를. 4절에는 '성령이 시기하기까지라는 말을 너희가 헛된 줄로  아느뇨'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시기적 미움이요 또 아주 본 남편을 배반하고  간부에게로 돌아가는 거역입니다. 모든 것을 바꾸어서 우상으로 만드는 것은  그런 배척, 우상을 만드는 것은 그런 배척이요. 또 이러니까 거기에 대한 미움은  시기적 미움입니다. 시기적 미움이요 아주 간부적, 배신적 그런 배척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거는 끝이 없다, 하나님이, 사람들도 상대방에 대해서  복수하는 것은 끝이 없다, 하나님이 이런 여기에 끝이 없는 것을 가리켜서 삼사  대까지라. 삼사 대면 벌써 거기에 대한 영향의 냄새나 뭐 그런 거는 완전히  가셔졌습니다. 완전히 가셔졌기 때문에 억울하게. 애비의 지은 죄를 자식에게  갚는 법이 없다 하는 것을 에스겔서에 말씀하신 대로,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이  다 영향이 다 없어져서 그렇지 하나님이 거기에 대해서 복수성이라 하는 것은  끝이 없다는 것을 여기에 가리켜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 나를 사랑하고 내게 순종하는 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무리 어떤 제자보다도 하나님 말씀 순종하는 것보다  더 기쁜게 없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일이  없다. 그보다 더 귀한 것이 있겠느냐'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에게 이렇게 순종하는 거 이것은 거기에 대한 대가가 끝이 없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천 대까지라 천 대까지라 이것으로써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제일 부자가 누구냐? 부자가  누구냐? 아무것도 모르고 그분을 아무 의심 없이 전적 그분을 믿고 그분에게  맡기는 것이 이것이 제일 힘이 강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제일  만족하고. 하나님이 제일 힘드는 일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힘 드는 일은  이것이오. 그저 그에게 맡기는 거.

 어린 아이가, 이거는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가 그저 지금, 예를 들면 간부로  더불어 살러 갈라 하니까 안 됐으니 이것을 갖다 내버릴라고 갖다 내버릴라고  이래 보듬고 가니까 그래도 저거 엄마라고 벙굿벙긋 웃으면서 자꾸 이라면서  이렇게, 그런데 그걸 척 놓고 떠난다는 그것은 아무리 독사 같은 여자라도 속에  마음이 아플 것이오. 또 인격성이 변질되고 환장되지 안하면 그거는 못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장하지 안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못 합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하지를 못합니다.

정상이 그 여자에게 조매라도 있으면은 그거는 절대 못 합니다. 데리고 갔으면  갔지 못한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에게 맡기는 이거, 이 힘이 하나님에게는 제일 힘드는  힘이요. 또 하나님으로 제일 책임을 지지 안하면 안 되는, 제일, 하나님께  대해서 우리는 제일 힘있는 것이 그분에게 무조건 맡기는 것입니다. 내 전 폭을  맡겨 놓는, 맡겨 놓는 거기는 당신의 전능의 전지의 그 모든 부요와 당신의  전부가 다 그를 책임지지 안하면 안 되도록 하는 제일 강한 힘이요, 그 다음에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 힘은 당신을 사랑하는 힘입니다. 셋째 힘은  당신에게 순종하는 힘입니다. 이 순종하는 힘, 넷째 하나 더 있다면  언제까지든지, 오 년이고 십 년이고 죽을 때까지 안 돼도 그분을, 떡 맡겨 놓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믿고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거. 인내, 기다리는 거 이  인내가 제일, 그 다음에는 인내가 힘 있습니다.

 첫째는 맡기는게 힘 있고, 그다음에는 그를 사랑하는게 힘 있고, 그다음에는  그에게 순종하는게 힘있고, 마지막에 하나 더 진다면 그저 끝없이 그분에게  기다리고 있는 거, 끝없이 기다리고 있는 거, 그러기에, 아브라함에게 대해 제일  믿음의 장점을 말하기를. 세상을 떠나고 삼 대까지나 약속하고도.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안했고 자기가 그렇츰 오래까지 살아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거하고  살았고 가나안을 받지 안했지마는 하나님 이 말씀하셨으니 나에게 틀림없이  주신다 하는 것을 바라고 믿고 떠났습니다. 의심하지 안하고 바라고 떠났소.

'아. 아마 더 좋은 거 주실라고 하는 것이지 주신다는 거 틀림없다' 하는 그  소망함이 끝이 없는 그 소망 그것을 아브라함의 전기의 제일 장점이라 그렇게  결론을 지워서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꾸만 지금 회개를 해서 고쳐야 됩니다. 우리는 참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야 되겠고, 또 우리에게 영감 주시는 대로 자꾸 가속도로 우리가  변화가 돼야 되지 변화 안 되면 안 됩니다.

 제가 밤에 자면서 꿈에 누구하고 둘이 성경을 연구를 하는데, 내가 도무지  성경에 모르는게 있어서 이는 참 둘이, 그 사람도 나에게 말하고 나도 그  사람에게 말하고 그렇게 서로 말을 하는데, 그분이 옥중에서 나온 그런.

옥중에서 나온 출옥 성도인데, 그분과 둘이 성경을 연구하면서 암만 봐야 그  연맥이 통하지 안하고 도무지 성경을 몰라서 답답한 꼴을 해서. 그분도 그라고  나도 그라고 성경을 몰라서 답답한 꼴을 보다가서 그렇게 퍼뜩 깨니까  꿈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대해서 참 좀 더 알아야 되고, 우리는 성경을 안다는 것이 너무  껍데기로 알고, 저도 다른 사람에게만 성경을 가르쳤지 성경을 내게 대해서는  가르치지 못하는 그 외식한 죄를 제가 요새는 너무 분해서 그렇게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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