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선지자선교회 1985년 7월 12일 금야 

 

본문 : 출애굽기 20장 4절∼6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 이계명에 대해서 여러 각도로 공부를 했습니다. 이번 돌아오는 주일 한번 더  이 공과를 유치반 중간반 일 이부에 공과로 삼아서 가르칠려고 합니다.

 이계명이든지 어떤 성구든지 한 성구를 여러 각도로 해석해서 가르치는 그  이유는 어디 있는고 하니. 하나님께서 그 진리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목적이  어디 있으며 또 우리가 그 목적을 이루어 가지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그런 것을 궁극적으로 소망해서 알도록 하기 위해서 이 모 저 모로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가르치는 거기에서 가르치는 목적의 그 중심되는 뜻이  무엇인가 그것을 찾을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가르치는 그 설교라면 설교 그것을  알고 외우고 하면 그것으로 다 된 줄 알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여러 수십 번  외우고 해도 자기는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될 수가  있습니다. 그 진리는 하나인데 그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이 각도로도 증거하고  저 각도로도 증거하는 것이니까 자기가 깨닫기도 이렇게 증거해 주시는 것은 그  속에 무엇을 중심으로 삼아서 주장되는 교훈으로 또 하나님의 욕망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똑똑히 파악해서 잡아야 됩니다.

 그러면, 자기가 가지고 난 다음에도 자기가 그것을 이제는 설교를 들으면서  깨닫고 또 자기가 명상하면서 깨닫고 그 보다도 자기가 실천을 해 보 면 또  깨달아지고 깨닫고 난 다음에, 자기가 이제 주님이 계시해 주신 이 계시의  중심되는 교훈이 무엇이며 이 계시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그것을 단단히 잡고  난 다음에는 잡은 그것을 교인들에게 알려 줄라고 할 때에 자기대로 뭐 이런  비유로도 알려 줄라고 노력을 할 수도 있고 또 저런 방편으로도 알려 주는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방편, 알리는 방편에 대해서는 농업이나 공업이나  상업이나 무슨 정치나 또 교육학이나 사회나 자연 만물이나 이런 것들을  얼마든지 그 가르치는 방편을 삼아 가지고 그렇게 해서, 가르치는 자는 그  교훈의 중심되는 하나님의 목적인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쳤어야 자기는  가르침의 성공을 했고, 그러면 가르치면 그것이 곧 피로 된 것이요 성령으로 된  것이요 진리로 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굳게 잡았으면 거기에는 진리도  동행하고 성령도 동행하고 피의 능력도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르치는 그것이 하나의 논리에만 있지 안하고 말에만 있지 안하고 영감과  능력에 있게 될 때에 그 영감과 능력은. 영감의 능력과 그 진리는 사람을 없는  가운데 만드시기를 이 능력이 만드셨기 때문에 만들어 놓은 것이 아무리 잘못  염색했다 할지라도 그 감염된 것을 다 탈색을 시켜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데에 그저 명령의 무엇이든지 강단의  명령하는 것이면 명령대로 그대로 복종하자 하는 그런, 설교를 들을 때에 그런  사람들이 있고,  또 설교를 들을 때에 물론 명령이면 그대로 복종해야 되지만 그 명령이 성경  같으면 그대로 받아서 복종하지만 사람이 성경을 가지고 가르치는 것이니까  성경처럼 그렇게 받아들일 수는 없으니까, 왜? 사람은 또 잘못 가르칠 수도  있으니 가르침을 받을 때에 그 가르치는 것이 과연 성경대로인가, 성경대로인가,  성경대로의 진리에 맞는가 성경대로의 진리에 맞지 않는가 그것을 대조해  가지고, 아무리 위에서 벽력같이 고함을 지르면서 호통을 치면서 행하라고  한다고 해도 그 큰 고함 소리나 아주 위엄스러운 그런 고함 소리에는 도무지  아무런 자극받지 안하고 동하지 아니하고 그 가르치는 것이 성경대로의 진리인가  진리 아닌가 거기에다가 가치를 두고 자기가. 아무리 들을 때에 뇌성 같은  우뢰같은 그건 소리를 한다 할지라도 자기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안할 때에는  그것은 하나의 의문의 과제 거리로 두고 거기에 대해서 순종할 마음은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 있고,  그러면 강하게 명령하면 거기에 따라서 복종하는 그런 사람이 있고, 또  명령하는 그거보다도 자기가 성경을 가지고, 자기가 아는 대로의 성경 진리  가지고 이리 저리 논해할 때에 성경대로의 가르침이라 이럴 때에 '아 성경대로의  이 가르침이니 이 가르침은 곧 성경이 나에게 가르침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아무리 큰 소리로 하든지 작은 소리로 하든지 더듬는 소리로 하든지 이 말은  성경의 가르침이니까 여기에는 복종을 해야 되겠다' 하는 복종할 책임성을 더  거기서 많이 가지는 그런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일호 이호까지를 해석했는데, 삼호에서 그렇게 말하는 데 '내가  영감 생활을 늘 내가 하고 있는데, 내가 영감 생활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듣는  데는 어짠지 '영감이 내게 와 가지고 역사하지 않는다, 내게 있는 영감에는  아무런 그런 부딪히지 안하고 그 영감과 관련이 있어서 역사 하심이 어짠지  없다.' 그러면, '소리를 들어도 아주 힘있는 소리이나 내가 아는 대로의 성경  진리에 맞지 일다. 내가 아는 성경 진리에 맞다' 거기서 다시 자기가 평가하고  복종 여하를 결정하는 사람 있고, '아. 이는 소리도 청청하게 하고 또 성경 모든  다른 모든 진리에 합치돼 있는 성경대로의 가르침이다. 그러니까, 이 가르침은  성경대로의 가르침인데 어짠지 내게 성신의 감화는 오지 않는다. 어짠지 영감에  대한 아무 작용이 없다' 또 그렇게 생각해서 자기에게 영감의 작용, 그러면,  영감의 작용이라는 것은 자기의 그 중생된 속의 영이 그 설교를 들을 때에 영이  새로와지고 영이 깨끗해지고 영이 그 말씀을 먹고 힘을 얻어서, 내가 겉으머리  무슨 시청각의 것이나 또 이성 비판의 것보다도 내 속에 진리와 영감으로 중생된  내 주격인 영이 그 말씀을 듣고 힘을 얻고 양식으로 먹고 소생되어진다 이제 그  면까지를 이래 생각해 가지고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처음에 어릴 때에는 물론 일호에도 깨달아 은혜받고, 또 그것보다는  이호에서 은혜받은 것이 좋고, 이호에서 은혜받는 것보다 삼호의 거기서 은혜가  되어져야 은혜로 삼고 그게 아니면 은혜로 삼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점점 성장돼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삼호되는 그 사람은 소리를 크게 지르는 것도 좋고  적게 지르는 것도 좋고 거기에는 상관 없고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가  되냐. 모든 말씀에 일치되고 배치되는 점이 없이 모든 성경 말씀과 다 일치가  되나 거기서 자기가 안심을 하고 받아들이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중생된 영과  영감에 대한 그 은혜를 자기가 받을라고 애를 쓰고 그 은혜를 받아서 새로워지고  안심하고 따라가는 그런 사람이 되면 말세에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바른 길을  걸어갈 수가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호의 이것도 좋지만 그 꺼풀에서 속에 알맹이 이호로  들어가야 되겠고, 이호의 알맹이에서 삼호의 알맹이로 들어가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전하는 것이 사람의  지식에 있지 안하고. 사람의 말에 있지 안하고 성신의 감화와 그 능력 있는 것을  내가 원한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하나님 말씀을 들은 그것이, 지식에 있지  안하고 하나님의 권능에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 그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이 계명에 대해서 여러 차례 증거했는데, 이번 공과에서 첫째로  학생들에게 가르칠 것은 모든 사람은 한 종류가 아니라 두 종류라 하는 것을  똑똑히 어릴 때에 인식을 시켜서 그 학생들이 '아, 사람은 이목구비 수족은 다  같아서 외형은 같지만 사람은 두 종류라고 하더라.' 그러면, 그 두 종류가  어디서부터 두 종류 됐는고? 그것이 아주 시발에서부터 두 종류가 돼 가지고  있고, 또 목적의 그 결과가 뚜렷히 두 종류이고, 중간에 생활해 가는 그 과정에  있어서도 뚜렷히 두 종류이나마 그 과정에서는 잘 판단하기가 어려워서 사람들이  혼돈되고 혼합돼 가지고 자기 길을 걷지 못하고 남의, 다른 이, 남의, 남의 길을  걸으면서 자기 구원을 이룰라고 하는 데에서 다 실패가 온다. 그러기 때문에,  택자와 불택자로 이렇게 시발을 말할 수 있는데 택자가 불택자의 그 생활 방편을  취하고 또 불택자가 혹 어리석게 믿는 사람에게 끌려 가지고 택자의 생활 방편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다 모순된 법칙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하는 건  말했습니다.

 그래서 택자의 법칙은 불택자의 법칙을 소멸하는 법칙이요 또 불택자의 법칙은  택자의 법칙을 소멸하지는 못하지만 택자의 법칙을 미러지게 할라고 유혹해서  실패케 하는 모든 법칙이라. 그러니까, 택자가 불택 자의 법칙을 걷는 것은 다  유혹받은 길이요 그것은 자기의 구원을 다 파괴하는 길이요, 또 불택자들도  택자의 걸음을 걷는 것은. 택자의 걸음은 전부 간추려 말하면 택자의 옳은 걸음,  마귀를 멸하고, 죄를 멸하고 사망을 멸해서 악령을 멸하고 악성을 멸하는 거,  멸하고. 악습을 멸하는 것인데, 이 불택자들은 그 사는 생애에서 건설해 나가는  것이 뭘 건설하는고 하니 악령의 건설을 이루고, 악성의 건설을 이루고, 악습의  건설을 이루는 것이 저거 성장이요, 저거 위대요 저거의 생애로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에 정죄받을 것을 만드는 것이, 정죄의 양을 채우는 것이  불택자들의 걸음인데 불택자가 택자의 걸음을 걸으면 그 걸 옳은 심판거리를  이것을 미리 없애 버려서 심판 거리를 다 삭감해 버리기 때문에, 저희에게 점점  연약해지고 빈약해지고 자꾸 이렇게 소멸되는 길이기 때문에 이게 다 이 편은 저  방편을 못 쓰고 저게는 이 방편을 쓰지 못하고 그렇게 상호 마찰된 방편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그것을 간단한 시간에 말하기 어려우나 그런 줄을 알고 가서  좀 깊이 새김질하면 그럴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이 믿음 법칙, 믿음 법칙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마귀를 부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법칙에 순종하는 것은 모든 뱀의 법칙을 다 소멸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정  모순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근본부터 두 종류요 마지막에 결말에 그 하나는 지옥이요  하나는 천국으로 그 결과가 두 종류인 것입니다. 이런데, 이 기독교 가운데서도  많이 속화도 되고 또 안 믿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려는 모든 선교 방편 또 전도  방편 거기서 하나님의 진리의 구별성있는 그 구별을 혼합시키는 그런 일로 돼  가지고 그렇게 모든 성경 교리와 신조가 다 혼탁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선교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어쩌든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그 면을  연구하기 때문에 거기서 거룩보다도 화평을 위주로 해서 나아가게 되고, 선교는  화평을 위주로 하고, 화평해 가지고 차차 차차 거룩을 향하여 찾아가자 그렇게  되는 선교학의 또 전도의 방편이고 기독교는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해  가지고 화평함과 거룩함이 둘이 합해서 하나가 되어져야 올바른 기독교를 이루는  것이지 화평하고 그 다음에 거룩할라고 하면 안 되니까 화평과 거룩의 그 양이  많든지 적든지 같이 둘이 하나 돼서 화평이 거룩이요 거룩이 화평이 돼 나가지  아니 하면 이것은 성공을 보지 못한다 하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는. 사람은 두 종류인데 근본부터 두 종류라 하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그러면, 근본부터 두 종류라면 그 근본이 뭐인가? 근본이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은 어디 기록돼 있는가? 그것은 에베소 1장  3절 이하에 보면 그 목적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 그것 하나님의 목적이요, 또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아름다운 광채. 광채는 어떤 광채를 입게 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함이라고 그렇게 그 광채를 말했습니다. 그 자체는 하나님의  친아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의 그 자체요 또 하나님의 아들의 그  광채는 영광의 찬송,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 목적의  광채입니다. 빛깔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 그 아들로 ,인해서 부모가  영광스럽고 부모가 존귀하고 그 부모가 아들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다 존대를 받고 호의감을 받고 이렇게. 하는 그것이 그 아들로서 부모가  영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는데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어진 우리들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얼마나 잘하던지 하늘에 있는 영물들에게  얼마나 잘하고 물질계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얼마나 잘하던지 우리의 그  하나님의 아들 노릇 하는 그것을 보고 모든 피조물들이 '참 하나님이 이와 같은  이 존재를 창조하셨으니 참 그분은 완전하시고 거룩하시다' 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돌릴 수 있도록 이런 광채가 있는 자를 만드실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그 형상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말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목적은 어떤 것인고 하니 하나님의  형상과 같은 자를 만드실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그 본체가 하나님의 본체와 같은 그런 완전하고 영원하고 불변할 수  있는 그 완전성을, 온전성 완전성을 가지는 그런 존재가 되도록 하나님이  만드실려는 것이 그것이 목적의 본체요 자체요, 또 그러면, 그 만들어 놓은 것이  영광의 광채로 말하면 어떻게 하는가? 모든 피조물들이 그것을 보고 '아, 이를  지으신 하나님이 어떠하시다는 것을 이들 보아서 알겠다' 이래 가지고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는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목적을 하나님 형상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하나님의 모형이니까, 하나님 같은 자가 되어지면 뭐 그는 광채도 있게 되는  것이고 또 그 자체는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라 해도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 그라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은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되게 하셨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그 광채는 어떠냐?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함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목적의 그 자체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목적의 실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의  그 자체로 되어 있는 것이요. 또 한 종류의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의 자체가  아니고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데에 거기에 협조되고 이용되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는 데에 필요있는 요소로, 목적을 이루는 데에 이용될 그 모든  요소로 지음 받은 것이 사람중에 한 종류인 것입니다. 요것을 단단해 구별해서  요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목적은 이렇게 정하셨는데,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 이렇게 참 심히 영광스러운 광채를 가진 하나님의 본체 같은 그런  자를 만드실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데, 그러면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 첫째로 예정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정된 그 모든 예정,  그러면, 예정이라면 하나님께서 처음에 목적 정하시고 난 다음에 모든 걸  예정하실 때에 그 예정은 단번 예정으로 어디까지 예정했는가? 이 세상  끝날까지의 예정했는가? 하늘나라의 몇 천 년 몇만 년까지 예정했는가? 그것이  아니고 그때로부터 영원을, 끝이 없는 영원을 예정하셨습니다. 영원을  예정하셔서 그 예정은 억억억억만년 할 게 아니라 영원히 가도 하나님이 단번에  예정하신 그 예정의 과정이 그대로 하나 하나 전개돼서 이루어 나가는 것이지  새로운 예정이 없습니다. 이 것이, 여기서 하나님의 속성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속성 중에 하나는 전지의 속성입니다. 지혜의 완전의  속성입니다.

 그런고로 예정을 하시고 창조하셨는데, 그러면, 예정했다는 것은 자꾸 하사 두  가지 나타나는 것이요, 이 우주적으로 순서적으로 새로운 일이 전개 돼 나가는  것도 있고. 또 국가적으로 전개돼 나가는 것도 있고, 또 지역적으로 전개돼  나가는 것도 있고, 또 가정적으로 전개돼 나가는 것도 있고 또 개인적으로  전개돼 나가는 것도, 모든 순서 모든 전개. 이 시간. 이 시간에 있던 것 또 그  다음 시간 되니까 그 다음 시간에 또 새로운 것이 전개돼 나가는 것도 있고  그것이 계속돼 나가는 것도 있어서 모든 그 순서로 전개되는 그 모든 운동들,  그러면, 운동들. 그 예정은 예정대로의 모두 다 순서대로 전개돼 나가는 그 모든  운동들입니다. 그 순서의 운동 그것이 다 뭣을 위해서 하나님 예정하셨는가?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예정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예정한 데에. 예정하는 데에 그 예정은 이런 저런 그 수만은  예정들의 그 종류의 것으로써 전개돼서 그 예정이 하나 하나 점점 그 순서대로  이루어져 나가나, 그 모든 예정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예정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 예정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 예정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우주나 좁고 넓고 또 크고 작은 모든 이 순서의  전개가 하나님의 아들. 영광의 찬미, 그러면, 이걸 자꾸 해석할라고 하면 시간이  더디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 하면 둘로 아십시오 둘로. 하나님의 아들.

영광의 찬미. 또 한 말로 말하면 하나님과 꼭 같은 자. 하나님의 형상 이렇게도  말하면 그만 그거는 다시 더 말 안해도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있어야 그 다음 걸  말하지요. 이러니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그 모든 순서요 운동들이요  전개들입니다.

 그러면 그 전개들이니까 그 순서와 전개는 어떤 일을 하는가? 하나님의 목적을  성장시키는, 목적을 건설하는. 목적을 성장시키는 이 일을 하는 반면에 이  목적에 대해서, 그 목적을 성장시키는 한 부분도 있어서 목적이 성장되고 하나는  이 목적을 이렇게 방해하고 저렇게 방해하고 하는. 그 목적을 모두 방해하는  그런 것들이 있어서 방해하는 것이 방해하는 것이 이렇게 멸해지고 방해하는  것이 저렇게 멸해지고 목적을 방해하는 것이 멸해지는 것이 있고, 목적을  성취하는 데에 이용돼서 곧 그것이 들어서 목적 달성이 돼서 목적 건설이 되고  그 목적의 요소가 돼 가지고 목적의 그 자체 목적의 그 본체 그것이 되어지는  것도 있고. 목적을 이것을 위해서 이용당하는 것도 있고 또 목적을 해하는 거  같으나, 해하는 거 같으나, 모순 같으면서 일치되는 해하는 거 같으면서 이  목적을 이루는 데에 이용되는 것도 있고 그러면 목적을 이루는 데에 이용되는  것이 직접 이용되는 것도 있고 간접으로 이용되는 것도 있고 간간접으로  이용되는 것도 있고 목적을 방해하면서 방해하는 것으로서 목적을 위해서  이용당하는 것도 있고,  이렇게 저렇게 모든 존재들이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성경에 눈을 뜨고 보면 그  모든 움직임이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거는 요 모로 목적 달성에  이용되고 요거는 또 저 모로 목적 달성에 이용되고 요거는 목적 달성하는 이  목적을 이루는 그 방편을 반대함으로 그것이 바싹 부서짐으로써 또 목적이  이루어지니까 '보라. 이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깨진다' 하는 것으로 뭐  이렇게 저렇게 이 목적, 하나님과 같은 온전한 자를 만들려고 하니까 여기에  대해서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이용되는 그 방편과 종류가 백이라 천이라  만이라 억이라 그렇게 우리가 단순하게 헤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하나의 이 고기 덩어리의 사람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인간 과학이  들어서 오늘은 그 세포로 말하면 한 사람의 세포가 몇억억으로 셀 수 없다  이렇게 말을 하지만 또 그 보다 과학이 발달되면 측량 못 할 게 또 있을지  모른다 그말이오. 그렇게 이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깨끗해서 하나님의 친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고 모든 피조물 가운데에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는 이런 것을 만들라고 하니까 그 만드는데  만드는 방편이 얼마나 복잡하며 얼마나 세밀하며 얼마나 정확하며 얼마나  '거룩하며 진실할 것인가 우리가 이것도 얼마든지 좀 생각해 볼 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제 이만치 하면 속에 자기 믿음 있는 역량대로 거기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나, 그것을 그래 말하면 시간이 얼마든지 갈테니까 그만큼 두고.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예정은 있는 것입니다. 예정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순서가 나타날 때에 이 순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순서인데, 이 목적 달성을 위한 순서인데 자기가. 이 목적 달성을 위하는 순서로  되어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의 본체요 자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 달성의 본체 자체인 줄 알고 이 목적 달성이 이루어질라고 우리가 할  때에는 모든 예정은 다 나와 일치되어서 나의 구원을 돕는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내가 이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목적 본체라 목적  자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우리가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다른 것을 우리가 하게  되면. 내 소원과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 달성 본체이며 자체이면서 그게 될라고  하지 안하고 딴게 될라고 이래 할 때에는 하나님의 예정 모든 거와 나와는  마찰이 돼서 모든 예정은 그것을 다 깨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 목적 달성 이것만 하나 이루고 하나 조성하고 그 외의  거는 이 목적 달성에 이렇게 저렇게 방해하다가 깨지는 거 또 이용하고 깨지는  거 이런 것만 주 모아 가지고 이것이 유황불 구렁텅이로 마지막에 가고 마는  것인데, 믿는 성도들이 요게 입각해 가지고, 요 본체와 요 실체가 자기이기  때문에 고 실체로 살지 안하고 거기서 모순되게 요 외에 딴 목적이나 딴 욕망을  가지고 이렇게 살 때에는 그 사람의 생애는 모든 역사에 일어나는 모든 순서는  자기를 깨는 것이 되고 맙니다. 자기를 깨고, 그러면, 이 모든 역사 일어나는  순서는 택한 자들이 택한 자의 자체로 자라갈라고 할 때는 모든 것은 다 나를 내  본체가 이루어지도록 지체가 성립되도록 이루는 것이 되어지고 내가 이 본체와  목적인 이 자체성 이것을 버리고 딴걸로 나아갈 때에는 그 모든 전체가 나를  깨고 멸하는 것이 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택자가  하나님의 목적인 자체인 자체로 성장될라 할 때에는 모든 일어나는 전개되는  모든 순서가 내 자체 목적을 성장시키는 이 역사를 하고 내가 여기서 이탈되어서  이질적인 딴것을 내가 욕망하고 나아갈 때는 모든 것은 나를 집중적으로 사격해  가지고 나를 파괴시키는 것이 되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간단한 시간에 그렇게 쉽게 알기 어려운 것이니까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명상해 보면 인제 좀 빛이 오면 잘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목적 본체요 자체라. 나는 하나님이 예정할 때에도 나는 하나님의  목적의 그 본체가 되도록 예정하셨고 창조될 때도 하나님의 목적의 그 자체가  되도록 창조하셨고 또 하나님이 모든 섭리하실 때에도 나는 하나님의 목적의  자체 그 자체, 그 본체가 되어지도록 섭리하시니까 하나님의 예정 섭리나 창조  섭리나 그 모든 섭리나 이 하나님의 운동은 전부 나를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할라고 이와 같이 하고 있는데 내가 하나님의 아들 되게 되는 이 길로 내가,  걸어가면 모든 존재는 전부 나를 위하는 것이 되어지지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요 본체와 본질에서 이탈 돼 가지고 이질적으로 나가게 되면 모든 전개되는 모든  순서나 운동들이나 모든 지음을 받은 창조의 모든 존재들이나 또 하나님의  수많은 복잡하고 세밀한 그 섭리들이나 그 모든 것은 다 집합해서 나를 깨트리고  나를 집중으로 파괴시킴을 당하는 우리가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목적으로 하나님이 삼으시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셨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 하셨고 또 모든  창조도 나를 하나님의 아들 되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존재들을 창조하셨고 또  하나님이 이렇게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개별 섭리하시는 것도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 들과 영광의 찬미가 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또 보존하시는 것도 그렇게 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인 이 자체로 살 때에는 모든 예정도 나를 돕는 예정이  되고 모든 창조도 나를 위하는 창조가 되고 모든 하나님의 개별 섭리나 전체  섭리도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하는 이 섭리가 되어지게 하기 때문에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하는 것이 돼집니다. 나를 위하는 것이  되어지지만 내가 거기에서 이탈되면 모든 전체는 다 나를 집중적으로 사격해서  멸하는 것이 되어지는 이것은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범위가 넓기  때문에 성경에서 여기에 저게 많이 말씀했으나 사람들은 그만 가다가는 중간에  뻐끄러지고 마는 것인데,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으로 살게 되면, 그리스도의 것으로 산다 말은 우리가  목적 본체로 목적 자체로 산다 말입니다. 목적 본체로, 목적 자체로 우리가  욕망을 가지고 이 건설을 하기 위해서 건설하면 이 건설은 반석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창수와 바람이 불어도 조금도 상해되지 않는다 그 말은  이 세상 환난 죽음 환난 무궁세계의 음부의 지옥의 환난 이 모든 전쟁 환난 뭐  세상에 온갖 모든 피조물들의 어떤 모든 피해 그 모든 피해도 이것은 털끝만치도  피해를 주지 못하고 그것들에게 피해를 입지 않는다. 오히려 그로 인해서,  홍수가 나가고 나니까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뚜렷히 서고 다른 것은 다 강물에 다  씻겨 다 없어졌는데 뚱그레 있으니까 더 가치 있고 더 빛나고 더 모두 다  존귀해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보기에 유명해지고 눈에 환하게 띄어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비유와 마찬가지로 그와 같이 되어진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살지 안하고 이 목적을, 목적 자체인 것을 잊어버리고  이렇게 살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 말씀 계약 말씀대로 살지 안하고 자기의  주관의 법칙대로 이렇게 저렇게 해서 요 기회는 요게 요긴하니까 요래 살아야  되겠고 조 기회는 조게 요긴하니까 요래 살아야 되겠고 요 현실에는 요게 가치  있으니까 요걸 취해야 되겠고 조 현실에는 조게 가치 있어 취해야 된다고 하니까  아주 그때 그때 재빠르게 속빠르게 아주 이렇게 조화있게 기술있게 사는 것  같지만 그것이 말하자면 모래 위에 지은 거와 같이 모래 이것을 전부 다 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다 결국은 다 파산되고야 만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 자체라는 것을 우리가 잊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목적 자체라, 하나님 목적 본체라, 하나님 목적이 우리라.

우리가 하나님 목적입니다. 하나님 목적이 뭐인데? 하나님의 아들 창조주 지극히  크신 분이 이 피조물을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 닮는 게 아들 아닙니까? 새끼와 어미는 꼭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은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되어지니까 피조물 이 하나님은 보이지 안하니, 하나님은  보이지 안하니 그분이 어떤 분인지 모르나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보고 '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라. 너거  하는 걸보고, 너거 만들어 놓은 걸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찬미하도록 이렇게 광채로서는 이런 존재로 우리를 만들라고 하가 때문에,  우리가. 정말로 우리가 우리 자체가 뭐인지를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당신이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의 자체, 목적 자체가 우리요 목적의 그 본 체가  우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뭐. 목적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목적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는, 목적이, 하나님 목적이 뭐입니까? 하나님의 목적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 목적이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의 교회가 뭡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클 우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이 당신이 기대하시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광채는 영광의 찬미로. 영광의 찬미라 말은 우리로 인해서 하나님에게 우리를  보고, 우리를 보고 곧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피조물들이 알 수 있도록, 우리를  보고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도록 이런 위치에, 영광의 찬미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만들라 하니까, 하나님의 아들 된다는 것도 이것도  얼마나 실력 있으며 얼마나 자격 있는 것이며 또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  세상에도 보면 권세 있는 것은 다 시기하고 그라고 있는 것인데, 권세 쳐 놓고  시기 안 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다 시기합니다. 시기하는데, 우리가 모든  천상 천하 피조물 위에 뛰어나게 되며는 그들이 다 시기할 것 아닙니까? 시기할  것인데, 우리를 영광의 찬미라 그러니까 모든 피조물들이 다 우리를 보고  하나님에게 '아, 감사합니다. 참 이들을 만드신 걸 보니까 하나님은 얼마나  거룩하시고 얼마나 위대하시고 얼마나 참되시고 얼마나 사랑이시며 얼마나  화평이시며, 얼마나 긍휼이시며, 얼마나 인자이신 것을, 얼마나 희생의 봉사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찬미한다고 했으니까,  이런 존재가 우리가 되어지는 데에는 얼마나 이게 자체의 가치성이 얼마나  존귀합니까?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후서에는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줬다 그랬습니다. 그  이상 말할 수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 말하기를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줬다 이라기 때문에, 천군 천사들도 이것을 흔적을 똑똑히는 모르지만 은연중  흔적을 알고 난 다음에는 '아. 참 그 하나님의 목적 달성이 영광의 찬미인 그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 그들이 평생 소원하는 거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평생 보기를 소원하고 있으니까, 우리 자체가  이렇게 존귀한 줄 알아야, 우리가 존귀한 줄 알고 이 존귀한 자가 되어지는  데에는 뭣을 자체로서 감당 할 수 있는 그런 순서를 맺어야 될 거 아닙니까?  일본에서도 천황 일본 천황 폐하를 그것을 그들은 지금도 주장을 하고. 지금도  일본 나라는 천황 폐하를 제일로 모셔 가지고 거기에는 지금도 군왕주의입니다.

이랬는데, 천황 폐하의 지금 또 새로 계대를 이은 천황 폐하가 언제 나와 차지고  발표를 했는데 보니까 천황 폐하 그이가 발표한 것이 일본 나라에 있는 모든  정치가들의 발표보다도 뛰어났습니다. 내 그걸 보고 '야 이 천황 폐하 아들이 돼  가지고 천황 폐하를 계대할라고 하면 상당히 힘들겠구나' 그러니 그분이 공부도  많이 했고 모든 뭐 도덕면이나 종교면이나 모든 면을 겸전했어. 뭐 정치가들이  투쟁하고 하는 그런 말들은 들을 때에 그저 하나의 정치가로서는 그렇게  전투사라고는 볼 수 있지만 아무런 인간미에서는 가치 없어. 그들은 보니까  우리는 종교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군다나 기독자이기 때문에 그 이 참 인간을  초월한 인간 이상의 인간의 철학이라고도 하고 철학 이상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 신비한 비밀이라는 그 면에 비해서는 깜깜해요. 깜깜한데, 그 천황  폐하가 말하는 거 보니까 거기에까지를 다 생각하고 말했어. 이러니까, 그저  그냥 천황 폐하 앉혀 놓은 게 아니라 실력으로도 이는 참으로 그 나라의 모든  정치가들이 따라갈 수 없는 탁월한 수양을 가졌고 탁월한 지능을 가졌고 학식을  가졌고 많은 수양을 가졌다 하는 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 이런 것도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라고 하면 은  우리가 얼마나 실력을 갖춰야 될 것이며 얼마나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될 것이며  얼마나 모든 일에 참 연습하고 연단받고 연성해서 금을 불로 연단하는 것보다도  완전해서 순전히 완전자의 그의 것이 와 가지고 만들어진 완전 것. 모든  피조물을 탁월한 완전 것의 우리 자체가 되어져야 그 위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과연 완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천군 천사보다 그는 월등하게 탁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가치성으로 평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자체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하기 위해서 아들이  되되 이 세상에서 권력적으로만 일방적으로 그런 저급의 무력적으로만 된 것이  아니라 평가적으로 하나님 아들이 되어서 모든 피조물이 다 봐도 '아 저는 참  주라고 시인하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중보자라고, 과연 위에 중보자라고 칭할  만하다' 가치적으로 평가적으로 그들이 인정할 수 있어서, 예수님을 모든 땅  아래 있는 물 속에 있는 것들이 다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와 같은 자, 예수님과 꼭 같은 자가 되어지는 것이 우리라  말이오.

 그러니까, 이런 큰 소망을 가진 우리들인 것을 깨닫고, 또 우리를 우리 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개별적으로 다 섭리하시고 한 번 큰 웅쿠렁이에 빠졌다가서 이제 모든 근거부터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타락을 주시고 거기서 대속으로 영원한  대속으로 우리에게는 모든 부족한 것이 없이 어떤 흠점이라도 이 대속이면 능히  대속을 받고 남음이 있을 수 있도록 이렇게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우리를  다시 중생시켜 새생명으로 중생시키되 뭘로 중생시켰느냐? 예수님이 영원히 모든  전체를 대속했고, 영원히 대속했고 세밀히 대속했고, 구비하게 대속했고, 하나도  모자람이 없이 완전히 대속해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주신 완전한 이 대속.

모든 피조물이 다 환영할 수 있는 이 대속, 모든 피조물이 놀랠 만한 영광의  찬미가 될 수 있는 이 대속과 이 대속을 가지고 우리가 잘못 날뛰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이 대속을 가지고 움직일 때는 뭘로 움직이느냐? 이 대속을  가지고 움직일 때는 영감으로만 움직이고 진리로만 움직이니까 홈이 없는 우리라  말이오. 이 영감과 진리로만 움직이도록 영감과 진리의 힘으로 우리 가  살아났습니다.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는 피와 영감과 진리의 힘으로  살아났지마는서도 우리가 잘못하면 그게 아니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몹쓸 인간이 돼 가지고 이와 같이 있는 것이지, 우리 가  중생된 이 생명이나 이 힘은 굉장히, 이거 완전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소망적으로 지극히 큰 소망을 가진 것과 우리  자체 본체적으로 이렇게 심히 존영한 자로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과 예정에서  이루어져 가지고 있는 것과 창조에서부터도 이루어져 가지고 있는 것과 또  우리를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하여 중생된 것도 이와 같이 이루 어진 것과 또  모든 예정 모든 창조가 나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지는 이 일을 힘쓸 때에는  모든 예정이 다 내것이요 모든 창조가 내것이요 그것이 나를 위해서 있는 것으로  다 이렇게 되지만 내가 요게서 빽 삐툴어져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인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 이 형상,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일 하나님의 그 본체와 본체가  아니면서 본체와 같은 우리에게 보이게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그 형상,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입고 있던 고 인성과 같은 꼭 고와 같은 인성 요 인성을 우리가  가져서 살라고 이렇게 하면 모든 전부는 다 나를 집중적으로 다 위해서 나를  높이고 나를 위해서 이용되고 이러나 내가 요게서 이탈되면 그 모든 것은 나를  죽이고 이탈 된 것을 죽이고, 이탈된 것을 죽여야 목적으로 돌아설 거 아닙니까?  이러니까, 내가 요 자리를 떨어지면 모든 존재와 모든 순서는 나와 적이  되어지고 나를 소멸하는 게 되고 내가 여기 딱 입각만 되면 모든 존재는 나를  위한다는 요 진리를 굳게 잡고 요동치 않아야 됩니다. 요동치 안해야.

 그러니까. 말씀하시기를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는'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이 구속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주님을 사랑한다 해도 주님의 구속을 그것을  등한히 여기면 뭣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주님의 그  구속을 사랑한다는 말이요 주님의 대속을 사랑한다는 말이요 주님의 목적을  사랑한다는 말이요 주님의 목적인 본체 자체되는 것을 원하는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걸 사랑하고, 고 방편인 계명을 지키는 자. 고 방편인 피와 성령과 진리의 세  가지 운동인 그것을 지키는 자고 지키는 게 뭐냐? 이 세 가지로 살아났기 때문에  이 세 가지로 살아난 자가 이 세 가지로 사는 거, 우리가 살아난 거는 이 세  가지로 살아났습니다. 우리 힘은 무슨 힘입니까? 우리의 힘은 피의 힘이요  우리의 힘은 영감의 힘이요 우리의 힘은 진리의 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힘으로 우리가 요 자체로 살고 요 자체가 자라가는 요 방편으로 살면 은혜를  베풀되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 그 말은,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 먹이는 그것이  하늘나라의 법칙인데, 그와 같이 너 한 사람으로 인해서 그 천인 만인으로 뻗어  나가고 얼마든지 뻗어 나가서 영원 무궁토록 얼마든지 뻗어 나가서 요 한  사람으로서 이 생명 역사는 얼마든지 끝이 없이 퍼져 나갈 수가 있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걸 깨닫고 요것을 자기 소망으로 가진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요 소망을 가지고 요게 입각해서 요 본체로 요 자체로 자기가  살려고 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고 방편인 영감과 진리와 피의  역사를 떠나지 안하고 피와 영감과 진리에 붙들려서 고 역사대로 사는 것은  그것은 모든 순서와 모든 존재와 모든 섭리 그 전부가 이렇게 살려고 하는 요  자를 위해서 전부는 다 기울어지고 집중적으로 요 자를 위해서 있도록 돼 가지고  있고, 고 자리를 우리가 떠나면 전체는 우리를 망치고 우리를 깨트리는 것으로  되어져 있는 요 사실을 알고 요 자리를 요동치 않는 우리가 되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 오늘 새벽에인가, ○○○조사님이 설교를 했는데 내가 참 대단히  고맙게 여겼습니다. 그 사람 지금 어디 가면 아주 유명한 목사 됩니다. 유명한  목사 돼. 우리 진영에서 뭐 첫째 갈란지 둘째 갈란지 모르는 목사 돼. 왜?  하나라도 참 믿고 잡아야 됩니다. 믿고 잡아야 돼. 주님의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피와 살을 먹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있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산다는 그것을 깨닫고 깨닫고 하니까 자기가 말을 발표를 못 하니 그걸 또  말하니까 또 말해야 되겠고 또 말해야 되겠고 또 말하고 또 말하는데 또 말할  때마다 거기서 능력이 자꾸 나옵니다. 자꾸 나와.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믿는 자의 하나님입니다. 믿는 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당신이 문서 계시로 우리에게 이 윤곽적으로만  움싹으로만 나타냈고 움싹 뒤에 배후에는 무한하신 영감이 그 배후에 모든 걸  우리에게 수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고 그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니 이  사실을 인정하고, 인정하고 그대로 사는 자가 권능입니다. 그 외에는 딴게 없어  그게 믿음입니다.

 믿음이 뭐입니까? 믿음은 '아,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 아버지 아들로 이렇게  성장시킬라고. 영광의 찬미의 광채를 가지게 할라고 이렇게 모든 걸 예정하셨고  모든 걸 창조하셨다' 요 사실을 믿고,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 자라가는  이것이 나의 할 일이지 땅위에 온 천하를 다 해도 하나님 아들 되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내것인데 뭐 딴 걸 탐 할 게 있는가!' 요것을 믿고 요대로 살아  나가는 요것이 믿음입니다. 그런고로 믿음은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보고 좋아했지 딴 거 보고 좋아하지를 안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거창 집회를 위해서 미리 많이 기도합시다. 이번 대구 집회에서 믿는 자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능력을 요번에 책에다가 다 올렸습니다. 본인이 기록해 낸  그대로를 올렸습니다. 올렸는데. 그 원가가 천 이백 원 들었습니다. 그랬는데,  이백 원은 교회서 부담하고 천원 씩에 배부하는데. 각구역장들은 그걸 가지고 다  사지말고 한 구역에 두 권이나 이렇게 세 권이나 사 가지고 자꾸 회람을 하도록  하십시오. 읽어서, 왜? 읽으면 '아. 하나님이 과연 이렇게 하셨구나' 그거  모르면 그 사람에게 가서 물어 보십시오. 암병이 나았는가, 암병이 나았는가 그  병이 안 나았는가. 여기에도 위암병 나은 사람이 여기 있네, 얼굴 벌거이 저래  좋으네. 위암병이 들어 가지고 위암이 들어 가지고 죽느니 사느니 이랬는데 나아  가지고 저렇게 몸이 건강해졌네. 뭐 암병 나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면 나았는가 봐서 '아, 이러니까 하나님 바로 믿으면 암병도 나으니  그것보다모 하나님 바로 믿으면 내 마음 병 낫는 것은. 우리 마음 병이 얼마나  많이 들었습니까, 마음병이? 마음병에, 마음에 안 할 생각 안할 욕심 안 할 감정  안 할 취미 안 할 모든 습성 뭐 우리 마음에 마음병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몸에도 이런 행동 조런 행동 이런 습성 조런 습성 이런 행실 조런 행실  우리 몸에도 우리 몸에 행동의 병은 얼마나 많은지 마지막은 이거 뭐 암병이  들었다 반신불수가 됐다 문둥이가 됐다 하는 그거는 껍데기 병 중에 껍데기  병이오.

 이러니까 알맹이 병을 고칠라고 애쓰는 자마다 다 껍데기 병을 다 고쳐 주셨어.

알맹이 병 고쳐 가지고 '내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하고 그대로  하면 돼 그만. '하겠습니다.' 하니까 병도 낫고 '그 하겠습니다. 했으니 네 속에  마음병 그게 나았다. 네가 이제까지는 고 못된 생각을 버리지 못했는데 내  생각을 내가 버립니다. 했으니까 고쳐졌다 다시는 더럽히지 말아라. 고 증거로,  증거로, 죄 사해 받은 것과 마음과 행동의 병 고침 받았다는 증거로 네 몸의 병  치료하는 것으로 이제 표시를 해 준다. 이러니까. 너는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죄를 지었으면 즉시 네가 회개하고 예수의 피의 공로에서 다시  일어서라' 이러니까, 결심을 하고 '내가 이런 행동은 다시 안 하겠습니다.'  했는데 그 행동 되거들랑은 얼른 '아이구, 주여, 내가 이 행동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주님이 내 이 행동을 다 사해 주고 고쳐 주셨는데 또 이 어두움에  개가 토했던 거 먹는 것 모양으로 또 들어갔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주여. 내가  이 행동 안합니다. 됐습니다. 안합니다.' 하니까 그 병이, 다시 그 악한 행동의  악령의 죄악의 역사가 오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이번에 병 고친 사람마다 그것을 밤낮으로 늘  생각하십시오. '아, 주님이 내게 와서 이 일을 하셨다. 그럴 때 내가 어떤  마음을 먹으니까 이렇게 해 주시더라. 이러니까, 주님이 고쳐 주셨으니 내가  다시 더러워졌을지라도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고쳐 회개하면 주님이 다  사해 준다고 하셨으니까 이제 나도 오늘 또 새로 새 맘 먹는다. 새로 고쳤다'  이래 가지고 더러운 자 되지 말고 깨끗한 자 되고, 어두운 자 되지 말고 광명한  자 되고, 믿음 없는 자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 되고 이래서 믿는 자 되고  하나님의 그 무한한 능력을 자기 능력으로 삼아 가지고 세상을 이기는, 죄를  이기는, 마귀를 이기는 이 능력의 생활을 해 나가 자 그말이오! 그거 때문에  이제 이 표적을 기록한 책을 냈습니다. 읽으면 서 자꾸 자기네들의 믿음을  소생시키십시오.

 이래서 성경에 보니까. 나도 십계명을 그 전에 몰랐습니다. 십계명 제일 처음에  말하기를 '너를 애굽 종노릇 되었던 데에서 인도하여 낸 나 여호와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을 하신다' 그러면, 십계명보다 먼저 뭐이냐? 십계명을 어떻게  지키느냐? 십계명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애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 기적의  능력으로 인도란 그것을 기억해야 십계명을 지키지 그거 기억 안 하면 십계명 못  지킨다 말이오. 그 기적을 기억한 사람은 십 계명을 지킬 수 있어. 십계명을  지킬라면 나중에 가서는 목숨 내놓을 일도 있고 원수가 태산 같은 원수도  있으니까 애굽에서 인도해낸 고 기적을 믿을 때에는 고 기적은 태산이. 뭐이며  왕이 뭐이며 나라가 뭐이며 사회가 뭐이며 인간이 많으면 뭐이며 사자가 뭐  뭐입니까? 그 모든 걸 다 능가 할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요것을  기억하라 하는 것을 십 계명 초두에 기록한 것을 나는 그 뜻을 올랐는데 요번에  그 진리를 발표되고 난 다음에 새로 내가 그 진리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이거는 자꾸 증거해야 되겠다 해서 그래 그 책을 만들어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 책 만드는 거 뭐 어떤 사람 말하기를 '아 백 목사' 백 목사가 그거 한 것  아니오. 여러분들이 다 믿음으로 됐지 고 고친 종류를 보면, 본인이 믿을 때에,  설교 듣고 믿을 때에 그때 나았지. 백 목사 기도할 때 나은 것도 있지만 그거는  몇 없어요. 믿을 때 나은 게 제일 많습니다. 제가 기도 할 때 나은 것은 뭐  거기에 보니까 육십 몇 개인가 칠십 몇 개인가 기도할 때 그때 나았다 하는데  그때 자기가 기도해도 자기가 믿었으니까 나았지 뭐 기도로 나았습니까, 어디?  기도로 나은 것도 있겠지만 그거는 자기들 기도나 내 기도나 똑 동등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 백 목사가 한 거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셨어.

하나님이 우리가 이 모인 대창골 집회를 하나님이 기뻐하셨다 하는 증거로 한  것이고 하나님이 대창골에 증거하는 그 설교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에 생명이 있다 영생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하신 말씀이다, 인간을 통  했지만 인간은 하나의 기계와 같은 것이고 하나님께서 하셨다 그것을 증거한  것이라는 증표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것을 구역에서 사 가지고 신앙을  소생시키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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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51215주새 선지자 2015.12.13
1912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51215주전 선지자 2015.12.13
1911 우상/ 요한계시록 14장 9절-12절/ 870419주새 선지자 2015.12.13
1910 우상/ 요한계시록 14장 9절-12절/ 870412주새 선지자 2015.12.13
1909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50707주전 선지자 2015.12.13
1908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50707주후 선지자 2015.12.13
1907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41016화새 선지자 2015.12.13
1906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50708교역자회 선지자 2015.12.13
1905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5절/ 850709화새 선지자 2015.12.13
1904 우상/ 출애굽기 20장 6절/ 850714주새 선지자 2015.12.13
1903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51222주전 선지자 2015.12.13
1902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51218수야 선지자 2015.12.13
1901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51219목새 선지자 2015.12.13
1900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51220금새 선지자 2015.12.13
1899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1982. 5. 2.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2.13
1898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01018토새 선지자 2015.12.13
1897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01015수새 선지자 201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