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3 23:17
우상
1985. 12. 19 새벽
본문:출애굽기 20장 4절∼6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 십계명은 우리에게 중요한, 전 성경을 간추려서 강령으로 이렇게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좀 그 범위가 넓고 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대한 것을 우리가 충분히 바로 깨닫고 많이 또 연구도 하고 연습도 하고 해야 이 십계명을 원만히 지키는 사람이 됩니다.
우상은 무엇이든지 다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상은 깊이 말하면 하나님 한 분만이 모든 것의 주권을 가지고 계시는데, 하나님 한 분만이 모든 것에 대한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주권을 가지고 계시는데 하나님 한 분 외에 어떤 것에게 주권을 돌리든지 하면 그것이 곧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 알아 듣기가 어렵기 때문에 쉬운 말로 해서 자꾸 껍데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과 저 말이 모순된 거 같으나 차차 연구해 생각하면 그것이 모순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는 또 잘 들어서 그러면 그런 가운데에서 우상이 뭐이라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자기를 위해서 그것을 가지게 되면 우상이 됩니다. 자기를 위해서 가지게 되면 우상이 됩니다. 심지어 가정도 자기를 위해서 가지게 되면 우상이 됩니다. 돈도 우상이 됩니다. 명예도 지위도 권세도 모두가 다 우상이 됩니다.
자기의 지식도 지혜도 우상이 됩니다. 자기를 위해서 가지게 되면 우상이 됩니다.
그 우상은 내가 가진 그것이 우상이 됩니까 내가 우상이 됩니까? 내가 돈을 날 위해서 가지게 되면은 돈이 우상이 됩니까 내가 우상이 됩니까? 내가 만일 지위나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러면, 지위나 권세나 가졌으면 그 지위와 권세를 나를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 지위와 권세가 우상이 됩니까 내가 우상이 됩니까? 요게 판정이 안 됩니까? 판정이 안 되면 이제까지 한 말을 못 알아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자꾸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자꾸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인데, 거게는 지위나 돈이나 그런 것이 우상이 아닙니다. 뭐이 우상입니까? 내가 우상이 됩니다. 내가 우상이 됩니다. 그러기에, 무엇이든지 내 자신을 위해서 가지게 되면 내가 우상이 됩니다. 내가 우상이 된다 말은 하나님의 그 지위를 내가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것이든지 그 위하는 것은 주를 위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를 위하지 안하는 것은, 만일 주님을 위하지 아니하고 다른 어떤 것을 위하면, ‘아, 이것은 내가 이거 자녀를 위해서 가지고 있다. 이것은 가족을 위해서 가지고 있다’ 만일 위한다고 하면 그것이 우상이 됩니다. ‘내가 지금 알뜰히 해서 이렇게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이것은 우리 가족을 위해서다, 우리 가정을 위해서다’ 이라면, 그것이 다라면 그거는 우상이 돼 버리고 맙니다. 가정이 이제 우상이 됩니다. 자기가 어떤 것을 하든지 가지든지 할 때에 ‘이것은 우리 가정을 위해서 가지고 있다’ 고것뿐이라면 우상이 됩니다. 위에 그만 대가리가 없기 때문에 머리가 없기 때문에, 저거 가정이 머리이기 때문에 그게 우상이 됩니다. 고럴 대에, ‘아, 내가 주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이니 내가 가정의 빛되지 안하면 이것은 주님에게 욕이 되고 주님을 섬기는 일이 못 되고 영광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이 영광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이 가정을 위하여 이런 일을 해야 되겠다, 이런 수고를 해야 되겠다, 이런 노력을 해야 되겠다, 이런 것을 갖춰야 되겠다’ 이렇게 하면, 주님을 위하여 그 가정을 위하는 것이면 그것이 우상이 되지 안하고, 우상이 되지 안하고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됩니다.
그러기에, 무엇이든지 제일 머리를 주님으로 삼지 안하고 두지 안하면 그것이 다 우상이 됩니다. 고걸 꼭 기억 하십시오. 만일 자기가 자녀를 기를 때에도, 주 안에서 자녀를 길러라 하는 그 말이 자녀가 우상되지 못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백 세에 주어서 받았을 때에 그 백 세에 낳은 아들이니까 얼마나 귀중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그것을 시험했습니다. 번제로 드려라 이랄 때에 단 마음으로 번제를 드릴려고 제단 위에 놓고서 번제로 쓸라고 잡을라고 이와같이 칼을 들 때에 하나님께서 중단을 시키시고 ‘제사 드릴 그 제물은 네 뒤에 있다’ 보니까 뒤에 짐승이 걸려서 그것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라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제야 네가 나를 두려워하는 줄 알았다’ 그 말은 나를 네 하나님으로, 네 주로, 네 머리로 이렇게 삼고 백 세에 얻은 독자를 네가 위주로 중심으로 삼지를 안하는 걸 내가 알았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면, 이삭이 우상이 안 된 것을 하나님이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에 ‘아이구, 하나님 암만 그렇지마는 내가 하나님에게 벌을 받았으면 받고 하나님께 진노 받았으면 받았고 하나님을 섭섭하게 했으면 했지 내가 백 세에 얻은 이 아들은 내가 번제로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은 그것이 백 세에 얻은 이삭이 우상이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우상이 되든지 그거는 우상이 됩니다. 뭐인가 우상이 됩니다. 이 아들을 위해서, 아들 때문에 안 되겠다 이라면은 아들이 우상 되겠고, 내가 백 세에 얻은 아들인데 어떻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내가 이렇게 번제로 내놓을 수가 있겠느냐 하면은 자기가 우상이 됩니다.
무엇이든지 자기를 위해서 어떤 것이든지 가지든지 만들든지 하면은 그것이 우상 된다 하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또 내가 무엇을 만들었든지 가졌든지 했습니다.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든지 만들었든지 했습니다. 했으면 그것을, ‘이게 내게 복된데 이 복된 것을 내가 이것을 참 노력을 해 가지고 만들었다.’ 만든, 만든 자의 최고 권위자, 최고 권위자 최고 주격자. 그걸 만드는 데에 제일 주인공이 돼 가지고서 애를 쓰고서 그렇게 해 놓은 최고의 주격자가 자기라고 생각하면 자기가 우상이 돼 버립니다.
만든 우상이 됩니다. 어떤 무슨 자기가 일생 동안 공부를 해 가지고서 지식을 참 복된 지식을 가졌다든지 복된 기술을 가졌다든지 또 어떤 물건을 내가 가졌든지 할 때에 내게 복된 그것을 만든 이가 자기라고 생각하면 자기가 우상이 되고 어떤 사람이 만들어 줬다고 하면은 그 사람이 우상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모든 것을 만든 자의 우상입니다. 만든 자가, 만든 자의 우상, 만든 우상.
그러면, 어떤 것이, 내가 만든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셔 가지고서 그분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내가 이걸 만들었다, 또 어떤 사람이 나에게 배고플 때 밥을 줍니다. 밥을 줄 때에 ‘아, 이 사람이 나에게 밥을 줬다’ 요렇게만 생각하면은 그 사람이 나에게, 밥 준 그 사람이 내게 대해서 우상이 됩니다. ‘아, 이 밥은 이 사람이 내가 시장할 때에 밥을 주지마는’ 그 사람에게 감사하고, 그 사람은 하나님이 나에게 굶어 죽지 안하도록 밥을 이렇게 주셨는데 , 주님은 나에게 밥을 주셨고 그 사람은 주님이 나에게 밥을 주실 때에 은혜를 베푸는 그 은혜의 기관으로, 은혜의 기관으로 썼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 나에게 배고플 때에 밥을 준 데 대해서는 첫째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다음으로는 그 은혜를 내게 끼치는 데에 제일 수고한 은혜의 기관된 그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그러면, 요라면 우상 섬기는 것이 안 되고, 고만 위에 하나님이, 주님이 주신 그 주님을 떼 내 버리고 그것이 근본으로 능동으로 그것이 나에게 줬다고 그것이 나에게 은혜 주신 데에 대가리가 돼 버렸으면 고거 우상이 됩니다.
만든 것이든지, 만든 것이든지 또 나에게 무엇을 좋은 걸 주는 것이든지 그것이 주님이 아니시고 어떤 무엇이 근원이 된다고 하면은 그만 우상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상은, 근원을 하나님으로 삼고 주권을 하나님으로 삼고, 하나님 외에 어떤 것이라도 근원으로 삼든지 주권으로 삼으면 그 자체가 현재 우상이요 앞으로 점점 가면은 우상이 되어지고 맙니다.
아직까지 여러분들이 어리기 때문에 여게 대한 말은 이거는 안 하려고 했으나, 이거는 좀 소화가 안 될란지 모르는데, 뭘 자기를 망쳤습니다. 해쳤습니다. 자기를 망치고 해쳤습니다. 해쳤을 때에 해친 것의 원인을 주님으로 두지 안하고 어떤 사람은, 누가 나를 해쳤다 하면은, 누가 나를 해쳤다 하면은 그 사람을 실은 우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내가 우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또 자기가 무슨 잘못해 가지고 죄를 지어서 망했습니다. 죄를 지어 망했으면 ‘아, 내가 들어서 죄를 지어 망했다’ 하는 고것도 자기를 화를 만든 대가리로 만든 것이니 고것도 자기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래 못 합니다. 깊이 면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범죄하는 것도 하나님 그분이 들어서 그분의 작용으로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에 어긋난 것이 그것이 우상이고, 하나님의 주권의 역사를 몇 가지로 배웠습니까? 하나님의 주권 몇 가지 주권을 배우고 있습니까? 손가락 한번 가리켜 보이소. 하나님의 몇 가지 주권을 우리가 배웠습니까? 하나님은 몇 가지 주권을 가지고 있다 배웠습니까? 이거, 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뭐인고 그래 한번 해 봐요 하나님의 주권 네 가지 한번 말해 봐요. 생 사 화 복? 그런데, 그것은 뒤에 열매이고, 결과이고, 하나님의 주권은 둘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둘, 둘인데, 하나는 뭐이지요? 주권 의지. 하나님의 주권 의지.
또 하나는 뭐 입니까? 주권의 능력, 모든 것을 주권 의지로 예정했고 주권 능력으로 모든 것을 성취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든 것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이 근원이신데, 지금 이 세상에는 근원을, 근원을, 하나님이 근원이신데 하나님을 근원으로 알지 안하고, 하나님을 근원으로 믿지 안하고 인정하지 안하고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이 근원이 되어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전부 그게 다 우상을 만드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요거 좀 어려운 말은 어려운 말인데 고라면, 자꾸 고걸 좀 생각해 보면 알아요.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일원론이 있고 이원론이 있고 또 삼원론이 있고 또 어떤 데는 만원론이 있습니다. 모든 것 이것의 근원은 이것이고 저것의 근원은 저것이고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범신론이라 이랍니다. 범신론. 유교는 범신론입니다. 일본 나라는 범신론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일본 나라가 범신론이라도 잘 되는데 잘 되는 것은 사람이 볼 때에 육이 잘되지, 일본 나라가 아주 복이 없는 것은 거게 기독교가 바른 기독교가 없습니다. 그 일종의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도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가 안 됩니다.
교회가 되나마 그 교회는 다 능력있는 교회가 되지 못하고, 왜정 말년에도 신사 참배 있을 때에 싹 다 졌습니다. 일본은 범신론이라 하면 이것도 신이다 저것도 신이다 이렇게 뭐 전부가 신이라, 모양 있는 거는 전부 다 신이라 이랍니다.
불교도 이것 범신론입니다. 이것도 신이다 저것도 신이다 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기에, 단군 신사도 이거 이렇게 신으로 삼아 가지고서, 국신으로 삼아 가지고 섬기자 하는 것이 이것이 불교에서 주장해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범신론, 유교도 범신론이요 또 불교도 범신론이요 나라도 범신론의 나라들이 있습니다. 애굽나라 그런 나라들은 다 범신론의 나라들입니다. 이러기에, 그 나라라고 해서 다는 아니지마는, 거게도 옳게 믿는 사람이 있지마는 범신론 국가에서는 유일신을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탈선돼서 유혹받기가 쉽습니다. 그런 나라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거, 세상의 의식주하면 그게 복이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의식주 그런 것이 암만 풍성하고 좋다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관련, 관계되는 이것이 잘못된다면 그들은 없어질 썩어진 것의 부요한 것이지 썩지 안할 영원한 것에 부요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들은, 범신론의 나라, 또 근원이 하나라는 일원으로 섬기지 않는 그런 나라, 그런 나라는 그것이 들어서 그 사람의 신앙 생활을 이렇게 미혹시켜서 넘어트리는 일이 많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일원론이라 말은 근본이 하나라 말이오. 근본이 하나라. 일원. 으뜸 원자, 한 일자, 일원론, 근원이 하나다 하는 것이 일원론이오. 그러기 때문에, 칼빈주의는 일원론을 말하고 또 기독교 가운데서도 우리 구원에 대해서도 일원론 말하는 교파가 있고 이원론 말하는 교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그저 자꾸 따져서 이렇게 하지 안하나 실은 그걸 따져 가지고 자기 신앙 생활 하지 안 하면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따져 가지고 신앙 생활 하는 사람은 일반으로 신앙 생활 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저게 틀렸다 이렇게 자꾸 틀렸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게, 루터가 개혁하지 안했습니까? 루터가 개혁했지마는 루터가 구원에 대해서는 이원론입니다. 구원에 대해서 이원론. 루터는, 루터는 이원론인데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데 우리 사람이 반대만 안 하면 구원 된다 하는 그것을 말했는데 그것도 구원에 대한 권리가 둘이라 이원론입니다. 여게는 이원론이지만 조금 다른 이원론입니다.
감리교라고 하는 알미니안주의, 감리교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둘이 합해서 구원이 된다 하는, 이거는 아주 이거는 이원론입니다. 아주 이원론이고, 루터파는 아주 이원론이 아니고 고 중간 것, 하나님이 구원은 주시는데 우리가 반대하지 안하면 그 구원을 우리가 다 받아 가질 수가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인간이 반대할 수 있다 하는 것이 그것이 루터파이기 때문에 그것도 구원의 권리에 대해서 이원이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교 이 칼빈주의는 일원론입니다. 하나님이 전적 은혜로 우리의 구원을 주시는 것인데 하나님이 주신 그 구원은 인간이 거부할 수도 없고 인간이 또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그 구원을 노력해 가지고서 가질 수도 없다, 전적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궁극적 은혜라, 뭐 시작으로부터 전체가 다 하나님의 은혜라 이렇게 믿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을 믿는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요것이 성경대로입니다. 요게 성경대로 된 것이오.
그러기에, 이것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죄 아닌 줄 아는데 죄를 범해서 자꾸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는 그런 일이 많습니다.
이러니까, 은혜를 베풀어 천 대까지 이른다 하는 그 말은, 은혜를 우리가 받는 기간이 많지 않습니까? 이것은 당장은 아니나 이것이 서서히 죄가 되어지고 서서히 의가 되어진다. 의도 이렇게, 모든 우상관에 대해서 바로 알게 되면은 이것이 처음에는 바로 아는 것이 효력이 대번에 없는 것 같아도 서서히 효력이 자꾸 생겨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되지 못하면은 그것이 죄가 당장 죄는 안 돼도 그것이 서서히 자꾸 죄가 되어진다 하는 그런 것을 그 안에 내포해 가지고 삼사 대까지, 천 대까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나를 위해서 가지든지 어떤 사람을 위해서 가지든지 하면은 그것이 우상의 위치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아주 타락해 가지고서 안 믿는, 안 믿을 때에 배암의 법을 배워 가지고 우리가, 그 배암의 법은 사망의 법인데 사망의 법을 배워 가지고 그렇게 사망하던 그 행위, 그러니까, 우리가 안 믿을 때에, ‘우리가 안 믿을 때에’ 하는 것은 지금 안 믿을 때에 하는 그 사람들, ‘안 믿을 때에’ 말하면 지금 안 믿는 사람 그 사람까지 다 통합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뒤에 오히려 섭섭해 하고 반발할 터이니까 그 사람들은 말하지 안하고 우리가 안 믿을 때에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 믿을 때나 지금 안 믿을 때의 사람이나 꼭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귀를 알아 들을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안 믿을 때에는 그것은 위하는 것이 사람을 위할 때도 있고, 나라를 위할 때도 있고, 뭘 위할 때도 있고 우리가 위하는 게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후에, 생명의 도를 받았기 때문에, 생명의 도는 뭐이냐 하면은 위하는 것도 뭐이든지 하나님과 연결이 없는 것은 다 그것은 죄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요 하나님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삐뚤어진 거 죄가 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삐뚤어졌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망하는데 당장은 안 망하나 삼사 대까지 내려가면서 망하게 된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위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우리가 그에게 복되게 위할 수 있습니다. 위할 수 있는데, 자녀도 위할 수 있고, 남편도, 아내도, 또 이웃도, 윈수도 다 전부 이래 모든, 모든 만물과 피조물을 우리가 다 위할 수 있습니다.
위하나, 위하나 그것이 그냥 고대로 고것만을 위하면 고것이, 내가 위하는 그것이 우상이 돼 버리고 맙니다. 우상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위하는데 우상이 안 되는 위함은 어떤 것이 우상이 안 되게 위함이 되는 것입니까? 어떻게 그걸 위하면은 우상이 안 됩니까? 어떻게 위하면? 예? 그걸 위하는 것은, 그거 위하는 것은 뭐 때문에 위하느냐? 그걸 위하는 것은 그걸 위함이 하나님 위함이 되기 때문에 요것을 위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위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서 하면 그게 우상이 안 되지마는 하나님 떼 내 버리고 고것만 위하는 거 돼 버리면 고것이 최고 절정이요 그 머리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고거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런 거 하나를 알게 되면 심령이 밝아져서 모든 자기 사리 판단에 바른 판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걸 자꾸 요래 여러 시간을 두고 말하는 것인데, 이리 말하고 저리 말하나 그거 아직까지 지금 거게 대해서 지금 확실히 잡지를 못하기 때문에 또 요 면으로 말하고 자꾸 이렇게 말을 해서 알릴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하는 것도 근원이 하나님에게 있어야 되지 하나님에게 있지 안하면, 그것이 어떤 걸 위하는 그것이 근원이 돼 버리면 고만 그 자체가, 그 자체가 우상이 되고 나는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되고 맙니다. 그런고로, 위하는 것의 원인도 하나라야 됩니다. 일원론이라야 됩니다. 하나라야 됩니다. 근원은 하나라야 된다 말이오. 위하는 근원도 하나님 한 분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내가, 과수원을 하는 사람이, 과수원을 하는 사람이 과실 나무 사과나무를 위해서 거름도 주고 또 김도 매고 이렇게 자꾸 북도 주고 사과나무를 위합니다. 사과나무, 사과나무 위하는 것이 저 위에 근원인 하나님 위함이 안 되면 안 됩니다. ‘이거 왜 그라느냐?’ `아, 이것을 부지런히 해서 이 사과가 잘 열어야 이 사과를 가지고 팔아 가지고서 우리 가족들이 밥을 먹고 살 수가 있다.
또 우리 가족들이 밥을 먹고 살아야 하나님을 위할 수가 있다.’ 그러면, 직접 위하는 거 간접으로 위하는 거 간간접으로 위하는 거, 그것을 많이 하니까 고만, 그전에 내가 말하기를, 일호로 위하는 거, 이 호로 위하는 거, 삼호로 위하는 거, 사호로 위하는 거, 오호로 위하는 거, 십 호로 위하는 거, 뭐 이십 호로 위하는 거 이렇게 위하는 것이 간간접으로 이것을 위함으로 이것이 돼 가지고 또 그게 되고 그게 되고 그게 되고 최고의 목적은 뭐이냐? 하나님 위해서 하는, 그 위하는 것의 근원이 하나님이 아니면 다 우상 섬기는 것이 되고, 우상이 되고 나는 우상 섬기는 자가 됩니다. 뭣을 위하든지 그 근원이 하나님을 위함이 아니면은 그 자체가 우상이 되고 나는 우상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요걸 단단히 기억하시고.
또 어떤 것을 내가 만들었든지 이제, 알아 듣기 쉬운 것은 내게 복된 것을 만들었다 하면 알아 듣기 쉽지마는 화된 것을 만들었다 하면은 그거는 알아 듣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일반 교계에서 부정하는 것입니다. 일반 교계에서 부정해요. 화되는 것을 만든 그것은, 화의 근원은 하나님이 아니라 이렇게 보는 것이 일반 교계의 조직 신학입니다. 여기 저 조직 신학의 이거 신학 박사가 저기 와서 앉았습니다. 목사님은, 우리 한국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가 가지고서 처음부터 밟아 올라가서 칠 년인가 팔 년을 계속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를 못합니다. 모두 한국에서 가서 대부분이 가 가지고 연구 기간에 가 가지고 잠깐 잠깐 이래 졸업하지 처음부터 일학년부터 쭉 계속해서 그렇게 공부한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별로이 없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은 지금 저 양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일원론으로, 근원이 하나 아니냐 이렇게 말은 해도 악의 근원은 하나님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요새 교계라 말이오. 제가 악의 근원도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신학 졸업할 때에 내가 그거, 의례히 반대할 줄 알지마는 아무래도 내가 이때 증거해야 되지 안 하면 안 되겠다 해서 졸업 논문을 쓸 때에 ‘악의 근원이 하나님이라. 의의 근원도 하나님이요 악의 근원도 하나님이라, 근원은 하나님 한 분뿐이라.’ 하나님의 일원론에 대해서 이와같이 이래 써 놨더니마는 그것을 발표를 하니까 그때 조직 신학 교수가 처음에 할 때는 좀 좋아하더니마는 이러니까 그만 깜짝 놀래 아이구 안 된다고 중단하라. 중지하라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이거 이라면 큰일 난다고서, 큰일 난다고 이렇게, 그 말이 맞아요. 그거는 교계에 나가면 사람들이 공연히 주목을 하고 말썽이 많기 때문에, 말썽이 많아도 옳은 것은 해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다 과거에도 보면 바로 깨달은 사람들이 다 돌에 맞아 죽고 다 죽임을 받았지마는 그래 가지고 그 뒤에 된 것입니다. 칼빈이 혼자 깨달은 게 아니라 칼빈 위에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순교를 당해도 옳은 걸 주장한 그런 것을 다 간추려서 똘똘 뭉쳐 가지고서 편집하신 이가 칼빈입니다. 그분이 다 혼자 깨달은 게 아니고.
이라기 때문에, 그러면, 나쁜 것도 그라면, 그거 좀 복잡하니 냅두고, 우리에게 좋은 거, 그거는 인제 깨달은 사람은 깨달아요 우리에게 좋은 것 복된 것 유익한 것, 유익한 그것을, 그것을 하나님 떼 놓고 어떤 게 만들었다, 내가 나를, 내 노력이 들어서 나를 복되게 만들었다, 또 어떤 사람이 이걸 만들어 줬다, 어떤 사람이 이걸 만들었다, 나에게 유익하고 좋은 것 그것을 만든 것이 하나님이 아니고 피조물이, 근원적으로 피조물이 만들었다고 하면은 고것이 우상이 돼 버립니다. 나는 우상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고 자체는, ‘이것은 부모가 만들었다.
이거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 그러면은 그거 우상이 되고, ‘이것은 내가 노력해 가지고서 내 기술을 만들어서 내가 이렇게 복되다. 이 기술은 내가 만들었다’ 그러면 누가 우상 됩니까? 누가 우상이 됩니까? 자신이 우상이 됩니다. 또 내가 만들었다 하고서 자기를 귀중히 여겨서 ‘나로서 뭐 능치 못할 게 없다’ 이것이 성경에 말하기를 스스로 섰다 하는 자입니다. 제가 스스로 섰다는 자. ‘이거 할 수 있다’ 제가 할 수 있다 하고서 저를 그렇게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고 자는, 하나님 떼 놓고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아니라도 제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제가 저를 우상을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저를 우상으로 만들든지 다른 걸 만들든지 모든 만드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근원이, 근원이 아니시고 하나님 외에 어떤 것이 그것이 근본적으로 그게 근원이다, 하나님 관계없이 이거는 단독 이 근원을 무엇으로, 사람으로 만들든지, 국가로 근원을 만들면은 그것이 우상이 됩니다.
만드는 우상, 만드는 우상, 또 위하는 우상, 만드는 우상 위하는 우상. 또, 어떤 것이 내게 유익이 됩니다. ‘아, 이거 기술은 내게 유익하다. 나에게 유익이 있다.
또 내 지식은 유익하다, 내 직장은 나에게 유익하다. 내 사업은 나에게 유익하다.’ 어떤 그것이 나에게 유익을 준다. 복을 준다, 그렇게 해 주신다, 모든 것이 이게 나에게 유익을 준다 이라는데, 그것은, 나에게 유익을 주는 그것의 근원을, 그것의 근원을 주님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주님으로, 그 근원이 주님으로 돼 가지고 있는데 주님으로 근원을 삼지 안하고 그것은 이 물건이, 이 내 사업이, 내 이 회사, 이 회사가 나에게 복을 주고 유익을 준다 요라면은 고 회사가 우상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나에게 은혜를, 나에게 복을 베풀어 주는데, 복 주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서 복을 주셔야 되는 것이지, 내가 큰 회사가 됐습니다.
회사가 되면 ‘아, 하나님이 이 회사를 만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속으로, 그것을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진정 그걸 가지고 있는 것이 뭐이냐 하면 천 대까지 복을 받을 일이고 그것을 그렇게 안 하는 것이 망할 일이라 그말이오.
그러기게, 자꾸 변해 나갑니다. 이래 나가기 때문에, 또 자기에게 무슨 어떤 것이 나를 복되게 해 주셨습니다. 만든 우상이 있고, 복되게 해 주는 그것도 ‘이것이 단독이 나를 복 준다’ 하면 그것이 복 주는 원인이 됐기 때문에 그것이 우상이 돼 버립니다. ‘이게 암만 나에게 많이 있지마는 하나님이 이것을 나에게 복되게 해 주셔야 복되지 복되게 해 주시지 안하면 안 된다.’ ‘아, 이게, 이게 복을 준다.
복을 준다. 아, 복을 주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는데 복을 주시는 그 복을 나에게 운반해다가 주는 이 나에게 복의 도구요 복의 기관이다. 하나님이 나를 복을 주실 때에 이것이 도구요 기관이 됐다.’ 이러기 때문에 제일 먼저 하나님을 귀중히 이렇게 섬기고 그 다음으로 뭘 섬겨야 됩니까? 뭘 귀중히 여겨야 됩니까? 그 회사, 자기 사업을 귀중히 여겨야 되지 안해요? 그 사업을, 이 회사가 귀중하다.
또 사람이 날 크게 도와 줬습니다. 사람이 도와 줬으면 ‘이 사람은 날 돕는, 아주 참 나를 크게 도와 주는 분이다’ 이라는데 그 사람이 나를 도와 주는 데에, 위해 주는 데에, 도와 주는 데에 근원은 누가 도왔습니까? 하나님이 도왔고,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 다음으로는 그 사람을 위하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한다고 위하여야 합니까? 하나님이 나를 위하고 도와 주시는 이 은혜를 주시는데 그 은혜를 그 사람을 통해서, 그 사람을 도구로 삼아 가지고 나에게 주셨기 때문에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마는 그 은혜의 도구요 기관이기 때문에 하나님 다음으로서는 그걸 귀중히 여겨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위하는, 내가 위하는 것에 대해서 위함의 근원이 하나님이 아니면 우상이 되고, 나를 위해 주는, 나를 위해 주는, 내가 위함을 받은 데 대해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내가 받는데 대해서 나에게 주시는 그 근원이 하나님이 아니시면 또 우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무엇을 만든데, 제작에 대해서 그 제작 그것이 하나님이 근원으로 하나님이 그것을 뭐 사람을 통해서 만들 때도 있고, 나에게 결심을 통해서 만들 때도 있고 의지를 통해 만들 때도 있고 내 노력을 통해서 만들 때도 있는데, 내 노력과 의지 그것이 하나님이 안 주시면 안 됩니다. 그게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모든, 만들어진 것의 원인이 하나님이라, 만들어진 것의 원인이 하나님이라, 만들어진 그것이 나에게 복되게 이용이 돼야 될 때에, 복의 결과를 맺을 수 있게 할 때에, 복의 결과가 맺을 수 있게 하는 그 원인이 하나님이라. 또 내가 위하는 것도, 내가 위하는 것도 이런 것 저런 것 위하는 거 같지마는 실은 위하는 근원은 내가 하나님 위하는 것이지 이거 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요 우상이라 하는 데 대해서 여러분들이 지식을 똑똑히 가지고서 이렇게 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따져서 살면 껍데기 세상으로 사는 사람들은 ‘소용 없이 마찰한다’ 이래 가지고 그렇게, 의인을 고집장이라. 또 의인을 안하 무인자라, 의인을 또 독선자라 이렇게 사람들이 정죄해. 독선주의라 말은 저만 옳다 하고, 꼭 고걸 고집을 하니까, 그 안 하면 죄가 되기 때문에 그거 깨달은 사람은 그렇게 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고집쟁이라, 저만 홀로 선하다 한다, 또 그거는 유아 독존이라 이렇게 자꾸 말하는 그런 정죄를 받습니다.
받으나, 우리가 모든 것의 근원, 내가 위하는, 내가 위하는 대상에, 내가 위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위하는, 내가 위하는 그 상대의 근원은 하나님이요 나에게 무엇을 해 줬는데, 만들어 주셨는데 만들어 준 것도 이 사람이 만들어 줘서 감사하지마는 실은 만들어 준 근원은 하나님이라. 또 나에게 그 모든 게 복된데, 복이 되는데, 이런 걸 통해서 복이 되어지는 나에게 재산이 있으면 복이 있다, 자기가, 지식이 자기에게 복을 줍니다. 기술이 복을 줍니다. 이 사람은 뭐 기술이 있으니까, 결혼할라 해도 그 사람 기술이 있으니까 박력있다, 장가를 잘 갑니다, 예를 들면은 말이지. 그러면, 자기에게 기술이 있으면, 지금 무슨 기술, 기술만 있으면 대가리 아니오? 기술만 있으면 떠들고, 기술만 있으면 하나님도 모릅니다.
‘내가 이 기술 가지면 내가 먹고 사는데’ 그게 가증입니다. 그 기술 있는데 그 기술이 나를 위한다고 생각하면, ‘내 이 기술 이것만 하면 먹고 산다’ 그라면은 그게 뭐이 됩니까? 기술이 우상이 됩니다. 자꾸 우상만 섬기니 제가 안 망할 수가 있소? 그러니까 그 심령이 강퍅해지고 어두워지고 악해지고 자꾸 교만해지고 이래 가지고 자꾸 망하는 줄 모르게 슬슬 망해 들어간다 말이오.
그러면, 내가 기술을 가졌습니다. 기술을 가졌는데, ‘아, 나는 이렇게 무슨 이 세상에 제일 두려워하고 높이하는 이 전자에 대한 아주 특수한 기술을 가졌다.’ 기술을 가졌으면 ‘이 기술만 하면 나는 먹고 산다. 기술이, 나는 이 기술이면 나를 밥 먹여 준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기술이 우상이 됩니다. 내가 아무리 이런 기술을 가졌어도 이 기술을 나에게 주신 이도 주님이 주셨고, ‘내가 공부해 그런데?’ `네가 공부해 그런데 뭐 주님이 줘?' ` 내가 공부하는 거 지혜나 총명이나 생명이나 건강이나 모든 주위 환경에 내가 모르는 거 백의 구십 구는 전부 하나님이 다 자본해서 줬고, 내가 아는 거, 내가 , 당신이 주시는 거 가지고서 이와같이 뭐 내가 노력을 하고 이랬지, 노력하는 그 힘이나 근원이 전부 다 당신이 주신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이걸 만든 것도 근원은 당신이시다. 또 이걸 만들어 가지고 있지마는 이게 나에게 복되게 활용이 되어지는 그것도 근원은 당신이다. 당신이 안 하면 안 된다’ 요렇게 믿는 것이 기독교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상에 대한 상식을 단단히 가지고 요걸 범하지 안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예수를 바로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자꾸 층어리가 있어서, 제일 처음에 껍데기에서 껍데기로 자꾸 이래 올라가 가지고서 이제 근원으로 나아가는데 근원에까지 안 가는 것은 그것은 다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근원에까지 다 가야 그게 바로 된 거라. 죄가 된다는 말은 삐뚤어졌다 그말이오.
계속해서 여게 대해서 증거를 하겠으니까 꼭 빠지지 말고 나와 가지고 알아야 되지 모르면 제가 지킬 리가 없는 것이고 구원을 이룰 리가 없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