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집


선지자선교회 1982년 2월 20일 토새

 

본문 : 고후 5:1-10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땅에 있는 무너질 우리의 장막집이 있고 하늘에 영원한 집 영원한 처소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집이라는 말과 처소라 말은 범위가 좁고 넓은 것뿐이지 다  같은 말입니다. 자기가 거처할 곳이 그것이 처소요 집입니다. 중생된 영으로  말하면 중생된 영의 집이 자기의 심령이요 또 자기의 몸입니다. 영육으로 된 그  사람의 처소라면 물질로 되어 있는 자기의 형편, 사정, 처지, 지위, 권세,  자기의 기능 그런 것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첫째로 중요한 것이 무너질 집 옮겨질 집 이것이 무엇 무엇인가 하는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다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사람이 그것을 만든 것은 다 무너질 집들입니다.

 그러기에 없어질 것 무너질 것 이것은 옮겨야 될 것, 이는 영원한 것 이것을  구별하는 것이 첫째 중요합니다. 이것은 무너질 장막집에 속한 것이냐 영원한 집  곧 하늘나라에 속한 것이냐 요것을 구별하는 것이 첫째 중요합니다. 이것을  혼돈하면 저는 속습니다.

 재산도, 지위도, 세상 지식도, 세상 기술도, 세상 명예도, 세상 건강도, 세상  젊음도, 세상 영광도, 쾌락도 전부 다 무너질 집들입니다. 장막집입니다.

무너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옮기면 옮길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택자에게는 장막집이나 불택자에게는 그것은 무너질 집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불택자의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아담에게 속한 것은 다 장막집입니다.

둘째아담에게 속한 것만이 하늘나라의 집 영원한 집입니다.

 요것을 단단히 구별해서 해놔야 신앙생활이 출발이 되지 이것 구별하지 못한  자의 신앙생활은 아직도 머뭇거리고 이것인지 저것인지 구별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다 헛일하고 맙니다. 요것을 고요히 가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내가 이것이 잘못되나 이것이 없어지나 이것이 깨지나 이것이 부족하나 해서 내  마음이 그리 기울어지고 탄식이 되고 갈망이 되어지고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는  다 일반입니다. 자기에게 탄식없는 사람 없고 간절없는 사람 없고 사모없는 사람  없고 힘쓰는 일 없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다 힘쓰고 사모합니다. 탄식도  합니다. 탄식은 이미 잘못된 걸 인하여 탄식과 앞으로도 잘할 수 없는 거기에  대한 탄식입니다.

 '나는 암만 해 봤자 이 일은 못할 터이니' 또 과거에 할 수 있었는데 잘못된  것, 앞으로 할 가망성이 없는 것 그런 것에 대해서 고민되는 그것을 말해서  탄식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과거에 이렇게 이렇게 했었더면 좋은데  후회가 된다.' 또 '나는 앞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면 좋지마는 그것을 내가 할  수가 없다' 하는 그런 마음에 근심 걱정되는 그게 탄식인데 탄식은 다 있습니다.

없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있는데, 그 탄식이 첫째아담에게 속한 그것에 대한 탄식인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대한 탄식인지 그것을 그저 버물거려 넘어 가지 말고 똑똑히 구별을  해야 합니다. 성도가 구별성이 없으면 벌써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 한가지라. 그것을 가리켜서 자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진실이 없는 사람도  그런 사람입니다. 진실은 참인 하나에 도달하기 전에는 마음놓지 아니하고 항상  연구의 과제로 미결로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구별해 가지고 제가 '아, 나도 저랬으면 좋겠다' 하는, 제가  부러워하는 것이, 제가 부러워하는 것이 장막집인지 영원한 처소인지, 자기가  없어서 탄식하고 걱정하는 것이 무너질 장막집에 대한 것인지, 자기가 지금 아주  심신을 기울여서 야단을 지기고 노력하는 그것이 무너질 장막집인지 영원한  하늘나라의 집인지, 다른 사람은 없는데 자기는 있고, 자기는 다른 사람보다  좋은 것이 마련 됐다고 어깨가 벌어지고 뒤로 저뻥하는 그것이 무너질 장막집을  인함인지 영원한 처소를 인함인지 이것을 잘 구별해야 됩니다.

 이것이 구별없는 사람은 저는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줄 알았는데 가 보니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헛일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심판적으로  평가는 하는 것이 불가하지마는 자연계시적으로 판단은 바로 해야 됩니다.

자연계시적으로 판단한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것이 나에게 조물주와 모든  피조물들과 나와 내 구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보아서  내가 깨달아야 됩니다. 그것이 자연계시입니다.

 세상이 마구 떠들고, 영광이라고 떠들고 대환영식을 합니다. 어떤 강대국의  대통령이 자기 나라에 올 때에, 어떤 사람이 무엇을 했을 때에 아주 축하가  대단합니다. 자기는 그럴 때 '아, 저거는 무너지고 썩어지고 없어질, 무너져  없어질 장막집인 줄을 모르고 저렇게 모두 야단을 지기는구나.' 이러니까 그것  보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전부 마음이 바꿔집니다. '아, 참 영광돼 좋다 나도  저랬으면 좋겠다.' '우리는 아들 낳아 가지고 저런 아들 만들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의 탄식, 간절, 사모 이것이 그 무너질 장막집인 줄 모르고 거기에  다 기울여서 거기에 간절하고 탄식되고 욕망되고 사모되고 이래 됩니다.

 그럴 때에 신앙의 사람은 '참 탄식이다 - 그들 탄식과 다른 - 탄식이다. 무너질  장막집인 것을 저 사람들이 모르고 저 장막집에 저렇게 영광을 돌리고 욕망을,  탄식을, 간절을 가지니 이 구경을 한 사람들의 그 생애가 어데로 기울어 질까?'  참 탄식입니다.

 사람들이 비쭉거리면서 무시를 합니다. '저 집은 영원한 처소요 영원한 집인데  영원한 집인 저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인간들은 무시해 지내 보낸다. 참  불쌍하고 가련하다' 하는 것을 보는 눈이 이것이 성령의 눈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밝아진 눈이요,' 예수님에게 안약 사서 발라 밝아진 눈입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그의 만물관을 완전히 정확하게 한 그 만물관입니다.

 요새는 사람들이 이제 차리다 차리다 안돼서 육신의 강건 여기에 대해서는 참  전심 전력이 기울어 집니다. 이러다 보니까 인생의 가치는 전부 다 젊음에  있습니다. 인생의 가치는 젊음에 있소. 인생의 가치는 다 젊음에 있고, 인생의  가치는 건강에 있고, 인생의 가치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다 원시 못하는 근시자요 소경이기 때문에 무너질 땅에 있는  장막집인 것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고 '아, 저거는-자기에게 들어올 때에 -장막집, 무너질  장막집이로구나. 무너질 장막집 그집 아름답다마는 언제 무너질런지 모른다.

오늘도 무너질런지 모른다. 내일 무너질지 모른다.' 무너질 장막집에 안심하고  거처하는 자 불쌍하고, 무너질 장막집을 그를 높이 평가하고 심신이 거기 기울인  자, 기울어지는 자 불쌍합니다. 미인도 무너질 장막집이요 미남도 무너질  장막집, 아주 새파란 청년도 무너질 장막집, 세상에 큰 학벌을 가졌다고 날 뛰는  것도 무너질 장막집이요,  내가 어느 강대국의 제일 머리가 되는 사람이라 하고 우쭐거리는 것도 '야,  무너질 장막집 가지고 인기 끌지 말아라. 무너질 장막집에 정신 빠지지 말아라.

무너질 장막집에 종 노릇 하지 말아라. 무너질 장막집이다.' 세상이 보는 눈과  다른 눈이 우리에게 없으면 가련한 자입니다.

 영원한 집, 사람이 지은 것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  하늘에서 우리에게 지금 덧 입으라고 오는 영원한 처소, '의와 진리와 거룩으로  만든 새것을 입어라'  우리는 첫째 중요한 것이 무너질 장막집인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처소가 지금  덧 입으라고 우리에게 오고 있는 이것인지 이것을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아,  저게 좋다.' '얘! 그게 장막집인지, 무너질 장막집인지 하늘에서 오는 처소인지  똑똑히 봐.' '아이구 부럽다.' '오늘 무너질지 내일 무너질지 모르는 장막집인지  똑똑히 봐.' 하나님은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아이쿠' 근심 걱정 야단입니다.

첫째아담 안 믿는 사람들에게 있는 모든 것은 무너질 장막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다 없어집니다. 깨어집니다. 무너집니다.

 그러면 다음으로는 나는 어느 것에 소망이 있고 어느 것을 가치로 여겨, 어느  것은 가치로 여기지 아니하고 어느 것을 가치로 여기는가? 땅에 있는 장막집을  가치로 여기는가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가치로 여기는가 나는 어느 것을 지금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는가? 땅의 것은 가치로 하나도 여기지 않아. 하나도  여기지 않아. 왜?

 본문에 어서 떠나 주와 같이 있기를 원한다는 것 보면 떠나는 것은 장막집이  무너져야 떠나지. 장막집은 무너지기를 원합니다. 장막집은 무너지기를 원하요.

이게 있는지? 장막집 무너지기를 원하는지 장막집 안 무너지기 위해서 이것만을  노력하고 있는지? 내가 소망하는 것은 무엇이며 평가한는 것은 무엇이며 간절한  소원은 어느 집에 있으며, 하지 못한 것 못할 것 생각하니 탄식하는 탄식은 어느  집 때문인지? 어느 처소 때문인지? 어느 처소?'  어떤 사람은 땅위에서 부귀 영광 모든 존귀가, 모든 실력 모든 기술 능력이,  권세가 구비한 그 속에, 그게 자기 처소요. 그게 자기 형편이오. 그게 처지요.

좋은 처지 입고 좋은 형편 입고, 좋은 형편을 입어, 옷 입듯이. 좋은 처지를  입고 있어 좋은 분위기 좋은 환경, 튼튼하고 강한 분위기, 주위, 형편, 사정  속에 들어앉았는 사람은 영광이요 존귀, 이것도 있고 하늘의 영원한 것도  있습니다.

 세상은 하늘나라와 지옥의 그림자입니다. 지옥과 하늘나라는 실상입니다. 네가  세상에 아이쿠 불행이라 우는 게 있느냐? 그것의 실상이 있는 것이 지옥이요.

하늘나라다. 하늘나라는 후회가 없는 줄 압니까? 아니오. 후회가 제일 많은 곳이  하늘나라요. 그다음에 많은 곳은 지옥이오. 왜? 하늘나라에서도 못한 것 많아 기  차는데 지옥에 있는 사람보다 심령이 날카롭고 명철하고 환하기 때문에 땅위에서  불탈 풀과 나무와 짚으로만 집을 짓고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짓지 못해서  벌거벗은 자로, 하늘나라 가보니까 입은 권세도 하나도 없지 입은 실력도 하나도  없지 입은 지위도 하나도 없지 입은 모든 영광도 하나도 없지, 아무도 환영  안해. 영광도 없지, 마음에 입을 것도 없지, 영이 입을 것도 없지 타고 다닐  것도 없지 부릴 것도 없지 써먹을 것도 없지, 마음도 타고 다닐 것도 없지  써먹을 것도 없지 자기가 쓸 것도 없지, 아무도 환영도 협조도 바라보지도 않지.

 "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않으려 함이라" 벗은 자들로 나타날까 싶어서,  첫째아담에게 속한 땅에 있는 그런 것이 없는 데 대해서는 걱정이 하나도  안되는데 하늘에서 오는 이것을 오늘 덧입지 못해서 무궁세계인 하늘나라에  벌거벗은 자로 나타날까 해서 근심 걱정에 가득 눌리는 이건지 어디 눌리는지?  네 마음은 어데 눌리고 있느냐? 네 마음은 어디 지금 어느 집에 눌리고 있느냐?  어느 집에 갈망이 있느냐? 어느 집이 부러우냐? 어느 집에 이루지 못해서 탄식이  있느냐? 어느 집에 탄식이며 어느 집에 대한 간절이며 어느 집에 대한 사모이며  어느 집에 대해서 네 마음이 무거운 짐진 것과 같이 눌리고 있느냐? 어데  눌리느냐? 어데 대해서 담대하냐?  하늘에 있는 처소에 대해서야 말을 해도 참 아이들 말로 코똥도 안 낍니다.

'헤, 뭐 그까짓 게 있나?' 거기에 대해서는, 거거 대해서는 1년도 심신을 기울여  보지 못했어. 땅의 것을 마련하는 것처럼 한 달도 기울려 보지 못했어. 땅의  것을 마련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절한 사모와 탄식을 하루도 가져보지 못한  예수믿는 사람 가득 찼어요. 어리석지 맙시다.

 2절에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다 여긴 것은 그리스도안에 발견되는 것이 가장  귀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말했습니다. 이 변화가 없으면  예수믿는 사람 아닙니다. 이 변화가 없으면. 이 변화가 있는 자에게는 진리로  호령칠 수가 있어. 그에게 잘못된 것을 여지없이 책망할 수가 있어.

 이 바꿔지지 아니하고 땅에 있는 장막집 이걸, 장막집 늘 이게 영원한 줄 알고  사는 자에게야 땅에 속한 자인데 그에게 하늘의 것이 빈약한 것을 말하면 조롱만  하고 도리어, 개가 진주를 던지면 물고, 가치적으로 제게 필요없기 때문에  물려고 달려드는 것과 같이 그런 자에게는 말을 못해. 설설 추켜 올리기나 하지,  불쌍하고 가련한 땅에 있는 장막으로 제 처소를 삼고 '나는 줬다. 나는 누구보다  나는 튼튼하다' 하는 자, 땅에 있는 장막집 그것을 탁월한 하늘에서 오는 처소가  있습니다.

 3절에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저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저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벗고저  함이 아니라"  이렇게 땅에 있는 장막집을 무시하고 하늘에서 오는 영원한 처소를, 영원한  지위를, 땅에 있는 다른 사람은 가지지 못한, 땅에 있는 인간 지식의 집을 잘  구비해서 지어 가지고 있는데 이 집은 무너진다 모든 지식은 폐해진다. 이 집은  무너진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지식이 온다.

 땅에 있는 이 장막집에 대해서는 이렇게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 벗고저  함이냐? 벗고저 함이 아니라. 땅에 있는 장막집을 무시하는 것은 벗고저 함이  아니라. 이것은 불교모양으로 염세주의자가 아니라. 세상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벗고저 함이 아니라.

 왜? 그러면 왜 무가치하게 여겨? 이대로 있으면 가치없어 가치 없는 것이니까  벗어내 버리는가? 벗어내 버려도 하늘의 것을 입지는 못해. 이러니까 벗고저함이  아니요 덧입고저 함이라. 덧입는 요 비결을 알아야 됩니다. 덧입는 것.

 이러기 때문에 이제 모든 것에 대해서 담대해, 모든 것에 대해서 담대해.

담대하다니? 무슨 담대해? 세상 것에 대해서 담대해졌어. 무너질 장막집에  대해서 담대해졌어. 왜? 무너질 장막집에 대해서 왜 담대해?  8절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원하는 바가 무엇인데? 담대함이 뭐인데? 땅에 있는 처소가 하늘에  있는 처소를 입는 것은 아무 때나 입을 수 있지만, 아무 때나 입을 수 있지만 참  입는 것은 한때뿐입니다. 참 입는 것은 한때 뿐이라.

 입는 것이 뭐인데? 하늘의 처소를 입는 것이 뭐인데? 없어질 것이 없어지지  않는 것으로 승격되는 것입니다. 모든 첫째아담에게 속한 것이 이것이 둘째아담  예수 그리스도화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덧입는 것이 무엇인가?  마치 베조각을 물을 들이면 흰 베조각인데 붉은물 들이면 그것은 완전히 붉어져  버렸습니다. 검정물 들이면 검어졌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해서 감화되고 동화되고 진리화되어서 물들이는  것처럼 하나님 화되고 진리 화되고 이것이 하늘의 것으로 덧입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의 모든 장막집이 진리화될 수 있고 영감화될 수 있습니다.

있지만 마지막 시간이 중요하지 영감과 진리화되어서 붉은물을 들여 놔도 약을  쓰면 근본 베조각같이 탈색이 되어 버립니다. 탈색이 돼 버려. 탈색시키는  기능이 마귀에게는 강합니다. 세상은 강하요. 아무리 그 사람이 이 시간 그  마음이 영감화되었다 해서, 영감화되어도 한 시간 뒤에 완전히 마귀화 될 수  있습니다. 마귀화될 수 있어.

 그러기에 떠나, "담대하여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라" 이것 영감화로 끝나  버려야 되지, 영감화로 끝나 버려야 되지, 진리화로 끝나 버려야 다시 변동이  없지 영감화로 끝나지 못하고 진리화로 끝나지 못한 것은 미결에 있기 때문에  뒤에 뭐이 될런지 몰라.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칠 수 있어.

 이러기 때문에 떠나는 데 대해서 담대가 끝나는 데 대해서 담대라. 끝나는 데  대해서 담대해 다니엘이 사자구덩이를 들어가게 되는 그 일에 왜 그가  담대했을까? 이 담대라. 영감화 진리화 하나님의 것으로 끝나 버렸으면 좋겠다.

왜? 끝나면 다시는 변동이 없어. 영원해. 다시는 탈색이 안돼. 다시는 변질이  안되지만 아직까지 다니엘은 사자구덩이에서 살아 나왔기 때문에 뒤가 어찌될지  몰라.

 노아가 노아 홍수 때에 끝났더라면, 그는 주님이 천하 의인이라고 했는데  끝났으면 됐을 터인데 그가 끝나지 아니하고 땅에 남았기 때문에 영감화  진리화된 것이 탈색될 때가 생겼습니다. 포도주 먹고 탈색이 됐어, 영감화  진리화가 세상화돼 버렸어. 그러기 때문에 둘째아들을 정죄한 큰 과오를 범했어.

그 후에는 노아의 행위를 의인이라 한 데 없어. 히브리 11장에 의인으로 나타낸  것은, 믿음의 생활했다는 것은 그 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홍수 이전을 말한  것이요 홍수 이후를 말한 것 아닙니다. 천하에 의인이 탈색이 돼 버렸어. 변질이  돼 버렸어. 내나 무너질 장막집으로 옮겨져 버렸어.

 이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증거하려고 하는 것은 지난밤의 것을 증거해야  되겠다 하다가 아무래도 이것을 다시 한번 증거해야 되겠다 느껴져서 증거를  합니다.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덧입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천하 만물 영계 만물은 다 그의  것입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나 모든 것이 너희 것이요" 네것이 돼 가지고 있는데 네것 만들고 못 만드는  게 문제요 "너희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네가 그리스도의 것만  되면 이 모든 것은 너의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것 그리스도의 것 이것이 뭐이냐? 영감의 것 이것이 뭐이냐?  곧 진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것 되는 것. 진리와 영감의 것 하나님의  것이 되되 되었다가 배신해서 도망치는 것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돼지가  씻었다가 구렁텅이에 다시 들어갔다. 개가 토하였다가 도로 먹는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끝마친다 하는 것이니 영감과 진리의 것, 영감과  진리화되는데 이것이 좋은데 영감과 진리화 되되 영감과 진리화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좋다. 끝나지 않은 것은 이것은 뒤에 어떻게 변질될런지 모른다. 요것  하나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영감과 진리화로 끝나는 것이 요것이 네게 완전한 성공이기 때문에 네 모든  심신의 전 소원과 힘과 힘쓰는 것은 영감화 진리화되는 것을 원하되 영감과  진리화된 요것으로써 그것은 일단 끝나는 것, 끝나는 것은 세상에 안 있어야  끝나지. 영감과 진리화로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옮겨지는  것, 고문과 고형 가운데서 영감과 진리화로 네가 고문과 고형으로서 죽어  버리기를 원하라! 끝나기를 원하라! 이걸 원하라!  없어지는 데 대해서는 담대하고 탄식은 이것이 끝나지 못하고 다시 이게  변질될까 남아 있을까 하는 이 탄식과 너의 근심 걱정에 마음이 짐진 것같이  눌려지는 이 사람으로 살아라. 이 시간에서 살아라. 이 사상에서 살아라. 이  간절에서, 이 동행에서 여기서 살아라 말씀하는 이것을 오늘 아침에 증거해야  되겠다는 필요성을 느껴서 증거합니다. 끝나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염세주의자 아니오. 보배요. 끝나면 그만입니다. 끝날 그 시간에  이것화 되어야 이것이 온전한 것입니다. 아무리 지금 그화되어져도 앞으로  어떻게 변질될런지 몰라 노아같이 변질될런지 몰라. 다윗은 하나님이 그렇게  좋아했지만 그가 변질됐어. 변질됐으나 변질되고 난 다음에 다시 그가 본질로  돌아와 버렸어.

 이러기 때문에 끝나는 것 떠나는 것 이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담대가 있는지?  고문과 고형에서 '아, 눈이 빠졌으니 이는 변질할 수 없는 것으로 영감화  진리화되었다. 이 눈은 무궁세계에 내가 가지고 권위있게 쓰겠다. 얼마든지  영감으로 쓰겠고 진리로 쓰겠고 하나님으로 쓰여지는, 이는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노릇을 할 수 있다.'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곳간에서 옛것과 새것을 내오는 주인 같으니라"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비유한 것입니다. "주인 같으니라" 하나님  같다 그말이오. 막바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막바로 말하는 그것은  하늘나라의 것을 직접 주는 것이라. 받아라! 가지면 된다. 직접 주는 것이라.

공연히 제가 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것을 직접 내게 하나님이 직접  주는 그것이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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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우리의 직분과 자타 구원/ 고린도후서 4장 1절-6절/ 890106금새 선지자 2015.12.13
1944 우리의 집/ 고린도후서 5장 1절-10절/ 820221주전 선지자 2015.12.13
1943 우리의 집/ 고린도후서 5장 1절-10절/ 820215월새 선지자 2015.12.13
1942 우리의 집/ 고린도후서 5장 1절-10절/ 820214주후 선지자 2015.12.13
» 우리의 집/ 고린도후서 5장 1절-10절/ 820220토새 선지자 2015.12.13
1940 우리의 집/ 고린도후서 5장 1절-10절/ 820219금새 선지자 2015.12.13
1939 우리의 집/ 고린도후서 5장 1절-10절/ 820217수야 선지자 2015.12.13
1938 우리의 집/ 고린도후서 5장 1절-7절/ 820214주전 선지자 2015.12.13
1937 우리의 집/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820221주후 선지자 201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