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적 세가지


선지자선교회 1985년 5월 9일 목전집회 

 

본문 : 사도행전 3장 1절∼13절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주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는데 그  약속하신 소망은 지극히 큰 것만치 이루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그 이루는  것을 우리 힘으로 이루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왜? 우리 힘으로는 이룰 만한  그런 쉬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은 주님이 이루어 놓으신 것을 우리들이  배정 받으면 되고 배정에 우리 각자들에게 나눠주신 것을 그것을 보수만 하면  되지 우리가 만들어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수하는 것은 다만 믿음뿐입니다. 다른 걸로는 안됩니다.

그러니까, 인정하고 그대로 그만 순종만 하면, 순종도 하나님의 욕구에 그  순종에 한계가 되어 있지 않고 우리 각자들에게 은혜 주신 그 은혜에 한계 돼  있습니다. 그 은혜에 한정 돼 있기 때문에 주님이 꼭 은혜 주시기를 주신 그  은혜만 하면 이룰 수 있도록 고렇게 해서 주님이 주셔서 받은 그 은혜 그것만  고만 투자하면 됩니다. 그 외의 것은 하나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읽고 들어 아는 것이 중요하고, 알고 난 다음에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고만 힘 주신 대로 있는 대로 행하면  됩니다 뭐 아무 어려울 것 없어. 행하면 돼요.

 이런데 제일 적은 뭐이 적이냐 하면 못 듣게 하고, 듣지를 못하게 하고 읽지를  못하게 하고 이래서 여기에도 못 오구로 아마 많은 방해들이 있었을 것이고 또  성경도 못 읽도록 하는 그것을 예사로이 제가 읽기 싫어서 안 읽는 줄 알지만  성경 읽기 싫을 때는 귀신이 와 가지고 우리를 그렇게 미혹을 해서 그런  것입니다. 읽지 못하도록 듣지 못하도록, 읽기 싫도록 듣기 싫도록 만드는 것이  악령의 일차 전법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들었든지 읽었든지 해서 알고 난 다음에는 그것을  거짓말이라 이렇게 믿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이차 전법입니다. 일차에 패전하면  이차에 마귀가 달라붙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믿지 못하게 하고 믿어지지  안하면 요게 귀신 붙었다, 요거는 원죄와 본죄가 들어서 이와 같이 하다 하는  것을 고걸 깨닫고 그때 그거 이기는 방법은 딴 거 없어요. 믿어지지 안 할 때는  '믿습니다' 하고 믿어 버리면 돼. 그만 그거 외에는, 뭐 그거 외에는 방편이  도무지 없습니다. 믿습니다 하면 돼 버려요. 인정하면 벌써 마귀는 패전을 두 번  했습니다. 뭐 두 번 꺼꾸러쳐 놓으면 까짓 놈 힘없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세 번째는 그대로 행하면 돼. 손으로 행하는 것도 있고  입으로 행하는 것도 있고 발로 행하는 것도 있고 마음으로 행하는 것도 있고 또  눈으로 행하는 것도 있고 또 피부로 행하는 것도 있어 피부로 행하는 것은 어떤  것이 피부로 행하는 것이지? 저 ○○○전도사, 피부로 행하는 거 어떤 게 피부로  행하는 것이지? 피부도 보면 압니다. 믿는지 안 믿는지 표가 나요. 표가 알아요.

제가 아무리 문제없다, 문제없다 하며 입으로는 문제없다고 큰소리 퉁퉁 쳐도  벌써 피부가 순종 안 합니다. 피부를 보니까 지금 뭐 기절될 지경이라. 기절될  지경. 그 피부 보니까 벌써 입으로는 '아이구, 그래 쌓으면 어짤고 어짤고' 이래  쌓아도 피부 보니까 피부는 벌써 평안하고 담대하고 안심하고 조금도 요동이  없어. 또 사랑하라 했는데 입으로는 원수를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해도  피부가 안 사랑하는 것이 환하게 나타나. 뭐 사랑한다 소리 안 해도 피부가  사랑한다는 게 나타나. 이러기 때문에. 피부로 순종하고 마음으로 순종하고 그  사람 성품으로 순종하고, 그 사람 감정으로 순종하고, 정신으로 순종하고,  수족으로 순종하고, 그런게 순종 아닙니까? 다 그러면 돼요.

 그런데, 여기에서 배운 가운데에 여러분들은 이거 어떤지 몰라도 나는 이  소리만 자꾸 하고 싶은데. 자꾸 하고 싶어요. 이래서, 평생 안 잊어버리고 항상  이것만 생각했으면 좋겠는데. 뭐? 불쌍한 사람 세 종류 또 복 있는 사람 두  종류, 불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데? 자 불쌍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구걸하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지. 그렇지 않소? 구걸하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라. 그거 뉘가 들어 놨으면 ''불쌍한 사람 그거 누가 모를까. '불쌍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지? 구걸하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지' 이러니까 참 설교도,  뭐 그거야 구걸하니까 거지니까 불쌍하지" 구걸해도 몸 건강하면 괜찮은데 뭐  불쌍한가? 우리까지는 내통하는 게 있다 그 말이오. 알겠소? 여기에 참석한  사람끼리는 내통하는 게 있어.

 불쌍한 사람은 구걸하는 사람이지. 불쌍한 사람이 몇인데? 셋이지. 복있는  사람이 몇인데? 복 있는 사람은 둘이지. 복있는 사람은 어떤 게 복있는  사람인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것이 그것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남에게 줄라면 줄 수 있고,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 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네게 준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서서 걸어가라 그라니까 그만 나아서 걸어갑니다. 참 세상이 믿지 못할  이거는 허무 맹랑한 소리 같지만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아주 신실한 권위  있는 말씀입니다.

 구걸하는 사람 요게 믿어져야 돼요. 알기야 다 잘 알지. 안 믿어지면 헛일이라.

구걸하는 사람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 외의 사람은 전부  구걸하는 사람이오. 그만. 그래 갈라 놓으면 돼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면 다 구걸하는 사람입니다. 뭐 대정치가도 구걸하는  사람, 박사도 구걸하는 사람, 재벌가도 구걸하는 사람, 예술가도 구걸하는 사람,  학자도 구걸하는 사람. 기술자도 구걸하는 사람. 그러면 그게 뭐인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기 전부 삼아서 살지 아니하고, 하늘에게나  땅에게나 뭐 천사든지 뭐이든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 있는 것은  뭐인데?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은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입니다. 모든  피조물.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피조물 그것의 혜택으로 살려고 그것의 혜택으로  살고 그것의 혜택만 바라보는 그자가 구걸하는 자입니다. 요렇게 요 정의를 내릴  때 요것이 믿어져야 복이 있지 안 믿어지면 헛일이라. 안 믿어지면. 지금 뭐  몰라서 이 말 합니까? 자꾸 믿어지라고 하는 것이지. 이 말하면 '에이고, 또  두번째 또 지루한 소리한다' 그 사람은 벌써 이 도리의 적이라. 그러면, '보자  믿나 안 믿나 보자.' 그 사실을 믿는다 말은 그렇게 인정을 하고 내가 그대로  사나 안 사나 그 말이오. 내가 믿나 안 믿나, 그 깨달음을 인정을 하고 그대로  사나 그 깨달음을 그대로 부인하나 하는 것입니다.

 이거 바깥에 교계에 나가 놓으면 굉장한 물의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막  들이댈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거 이단이다. 이거 없이 어찌 사나 저거 없이  어찌 사나?' 자꾸 막 들이댈 것이오. 이래도 성경이 말하기를 '네가 이것 저것  암만 욕심내 봤자 소용없다.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은 빛들의 아버지 한  분으로서만 오지 딴 데서는 오지 않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도  성경이거든. 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가 내게 붙어 있지 안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지는 둥치에서 나왔지 가지에게 필요한 것이 둥치에서  나온 거 외에 필요한 게 뭐 있습니까? 그 가지에 뭐이 붙어 있는데 둥치에서  나오지 안한 거 있으면 반드시 그 가지 해칠 것이지 유익 될 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꺼풀도 알맹이도 잎사귀도 꽃도 열매도 전부 둥치에서 얻은 거라,  둥치. 이게 뭐입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 한 분으로서만 얻어 가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주님이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아버지에게로는 나 아니고는 못 온다 이랬소. 아버지에게 모든 게 있거든.

아버지의 것을 받아 가지고 사는데 아버지의 것을 받는데는 내가 길이다.

아버지의 것을 받는 길은 나밖에 없다. 나를 통해야 된다. 진리다. 아버지의  것을 받는 이치는 내가 받는 그 이치다. 내가 받는 그 이치다. 아버지에게 받는  것은 나로 통해서만 받도록 하나님이 딱 인을 쳐 놨다. 뭐 이런 종교 저런 종교  이런 철학 이런 과학 그런 것으로 받는 게 아니고 인생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얻어지도록 딱 하나님이 결정을 지워 놨다. 요한복음  6장 27절에 보면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바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딱  결정했기 때문에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 얻을 길이 없어요.

 이래서, 아, 하나님 한 분에게서만, 우리의 구주가 되신 하나님 한 분에게서만  얻어 가지고 그 외에 다른 것에게는 소망이나, 얻어 가지지 않겠다 요렇게 말을  했지만 어떻게 세밀하고 복잡하고 어려운지 가다 보면 엉뚱한 사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가다 보면 엉뚱한 사람. 가다 보면 구걸하고 있소. 이번에 가 가지고  구걸하는 일 하지 안하고 복있는 사람의 생활을 해 보십시오. 할라고 하면 한  시간 하다가 고만 실패해 버리고, 만일 한 시간으로 토막을 지워 놨으면 여기 갈  사람 몇 없어. 고만 십 분 하다가 이십 분 하다가 오 분 하다가 다 뚝뚝 떨어질  건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셔서 아주 톰박 톰박을 아주 짧게 해 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는 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 하는데 그라면 칠칠은 사백  구십번이가? 하루 가 몇 분 됩니까? 누가 계산해 봤습니까? 삼만? 팔만 초로  말하면 그렇겠지 네. 그런데, 그러면, 초는 더 좋습니다. 일초로 동가리 동가리  해 놨어. 일초 고 동가리 됐으면 됐다 그만 딱 됐다. 또 일초 또 되면 됐지 일  초가 뭐 몇 개면 일 분 됩니까? 육십. 육십이면 일분 됩니까? 네 그러면, 육십  동가리 되면 일분 됐다. 또 일분이 또 육십 되면 또 한 시간 됐다.

 요렇게 톰박톰박 해 가지고 우리를 요렇게 주도록 요렇게 하시는데, 고 구걸  생활하지 안하고 주님으로만 받아서 사는, 주님께만 받아서 살라고 작정하고  주님에게만 받아 살라고 받는 노력만 하고 또 주님에게만 받고 또 주님에게 받아  가지고 감사하고 이렇게만 사는 요 생애가 일 분 계속하다가 십 분 계속하다가  하루 계속하다가. 제법 하루가 계속한다면 굉장합니다, 하루가 계속한다면  여기에 하루 계속될 사람 있을까? 자 하루 계속할 수 있다고 한번 그런 마음에  '하루 동안 계속 못 해?' 하는 그런 자신 있는 사람 있으면 한번 손들어 봐요.

저기 하나 들었다. 잘 계속 하십시오. 네. 잘못하면 잘못 심사하기도 쉬워.

 그러면 이상합니다. 그러면, 가까운 데서부터, 그라면. 가까운 데서부터 복있는  사람은 뭐라 했어? 복있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있다가서 줄 쭐 따르고 막 이래  높이고 야단 났어. 나 혼자 골방에서 그라는데 다른 사람에게 벌써 감전이  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달라지요. 내가 할 수 없는 모든 공기가 달라지요.

인인성사에 모든 것들이 다 달라집니다. 다 달라져 이래서 복있는 두 사람이  당하는 것과 같은 고런 일을 꼭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라면, 우리는 공부도 안 하고 장사도 안 하고 이런 저런 사업도 안  하고 그래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해야 됩니까? 해야 됩니까? 그라면 뭐  주님에게 안 받고 사업, 사업하면 사업으로 살면 사업도 하고 또 예수의  이름에게 받기도 하고 그러면 두 가지 해야 될세요? 사업도 하고, 사업을 해야  됩니까 안해야 됩니까? 공부는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하, 그거 참  문제다. 안 해야 됩니다. 나는 나는 안 해야 됩니다 나는 안 해야 됩니다. 자  그래. 한번 세워 봅시다. 여러분들은 해야 되고 나는 안 해야 됩니다. 나는 안  해야 돼요. 공부도 안 해야 되고 사업도 안 해야 되고 아무것도 안 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에게만 받아서 예수님에게만 받을 그 그릇이나 준비하고  예수님에게 받을 준비나 하지 다른 거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모는 것다 해야 되고 나는 그런 거 하나도 안 하고 예수님에게 받을  준비 예수님에게 받는 거 그것만 하고 딴거 안 해야 된다 이라는데, 자, 이렇게  요 말로 가지고 이렇게 둘이 쎄우면 누가 이길란지 여기 판사 뉘가 없나? 판사  한번, ○○목사 한번 판단해 봐요. 뭐 주를 달거나 뭐 있는 가요. 어느 게  이기는가 판단하라 하는데? 안 해야 된다는 것이 절대 이깁니다. 절대 이겨요.

 그러면, 너는 학교 공부 안 하나? 아, 나 공부 안 한다. 이 자식이 학교 하루도  결석 안 하고 열심히 하더구만은 안해? 아, 나는 공부 안 한다. 내 공부하는 줄  아나? 그러면 너 뭐하노? 예수님에게 얻기 위해서 그분이 나를 잘 주시도록  그분의 비위 맞춘다. 지금. 그분이 날 잘 주실 수 있도록 그분에게 잘 보일라고  그분이 기뻐 즐거워서 잘 주실 수 있도록 나는 그분에게 받을 준비 그거하고  있지 나는 공부하는 사람 아니다. 뭐 받을 준비는, 뭐 할라고 그라면 너 학교  오노? 아니야. 나는 학생인데 나한테는 그 받을 준비를 네가 공부를 일등을 해야  내가 잘 준다 이랬기 때문에 받기 위해서 그래 내 일등을 할라고 애쓰는 것이지  공부 일등 그게 내 소망 아니다. 당신을 기쁘시게 하고 당신의 뜻을 이루어서  그분에게 축복 받을라고 하는 것뿐이다. 그분에게 축복 받을라고. 그분의  축복이면 다라. 그분의 축복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내가 공부 때문에 내가  하는 줄 아나?  너 지금 오늘 뭐 하지? 아! 나 축복 받을 준비한다. 나 지금 축복받는다. 너  축복 받으면 그 공장에서 지금 땀 줄줄 흘리면서 일하고 있어? 아 그게 그렇게  해야 주님이 축복해 주신다 하기 때문에 축복 받기 위해서 한다. 또 그렇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네. 그게 나는 공장에서 일 하는 거 그거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축복이다. 뭐 껍데기 돈 그런 거만 보는 줄 아나?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복을 주시도록 하기 위해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그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그분의 뜻을 땀기 위해서 내가 이것 저것을  하는데. 당신이 나에게 복을 주시되 이걸 하라 이걸 하라 할 때에 그거 하면  그거 받아 가지고 그대로 하고 보니까 복이 됐고 저거 하라 할 때 저거 할 때  복이 됐고 이러니까 그 하라 하는 대로 하면 하라는 대로 그거 했는데 뒤에 가서  보니까 복으로 다 복으로 성화돼지는 것을. 거룩하게 변화돼지는 것을 봤다.

이러니까 전부 이 세상에서 복 받기 위한 준비, 당신이 주시는 복으로 받아  가지는 것 그러면 그거 위해 하지 그분 떨어지고 그분 없이 필요하다 하는 그런  거는 내게는 하나도 없다. 그분 없이 필요하다는 그런 것은 내게 하나도 없다.

그분 떨어져서 그분 아니고 나에게 주는 그런 거는 하나도 없다. 그러면, 나는  그분에게만 받는다.

 자, 요 주장이 신앙이 요거 성경적입니까. 비성경적 입니까? 우리 저 ○장로  성경적이라? 또 보자. 똑똑한 장로 없나.? 저 똑똑한 장로 ○○○장로 그거  성경적이오? 모두 다 성경적이라네. 할렐루야! 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어.

할렐루야! 성경적이라. 여러분들, 요것이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이, 당신이 딿겠다 하는 자를, '내가 주를 딿겠습니다만 내가  은혜 받은 사은에 대해서는 부모에게 사은하는 게 제일 중요 한데 내가 부모가  죽어서 장사를 한다 하는데 마지막인데 가서 부모 장사를 지내고 와서  딿겠습니다' 이라니까, '먼저 가서 부모 장례 지내고 내가 와서 주님을  딿겠습니다' 하니까 주님이 야단쳤습니다. 허락 안 했어.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쫓으라 이랬어. 또 내가 먼저 가서 가족을,'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제일 중요한데. 이 세상 인간은 사은 생활 의무 생활  둘뿐인데, 책임 의무 생활에는 국가의 의무보다도 가족의 가정의 의무가 제일  큽니다. 그게 제일 큰 것이오. 옛날은 치우쳐 가지고 뭘 말했지만 가족 의무가  제일 큰데, '가족을 먼저 내가, 그래도 마지막 작별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먼저 가서 작별하고 뒤에 딿겠습니다' 하니까 주님이 야단쳤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 그 말하고 딱 끊어  버렸습니다.

 이제 이게 뭐입니까? 주님으로 인하여 살라,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라 주님으로  동하고 정하지 안하는 것은 전부 죄가 된다 이랬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분으로 동하고 정하지 안한 것은 전부 죄가 된다. 죄는 뭐이요? 삐뚤어진  것이지. 그러면 결과는 사망이지. 이렇지만 사람들이 에누리를 해 가지고  '그렇게 뭐 주님 한 분으로만 살라 하고 거기 속해 가지고 살라 했을까? 말로  그런 것이지 어떻게 그 한 분에게만 전부 속해 가지고 살수가 있겠느냐?' 이거는  인본의 말입니다. 아니오. 우리는 그분으로 인해서 언행 심사가 다 동하고  정하고, 또 모든 것도 그분에게 맡겨 놓고. 이러기 때문에, 이제 사활로 대속을  입은 사람은 '다시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게 하려 함이라' 자기 위해서 안  사는 것이니까 뭐 큰 것만 안 사는게 안 사는 겁니까? 부스러기 안 사는 거나 큰  거 안 사는 거나 안 사는 거 한가지지. 큰 것만 안 살고 부스러기는 살면  되는가? 크고 작고 부스러기까지도 전부 주만 위해서 살고 다시는 주님 외에  딴거 위해 살지 말라는 말씀 아닙니까? 이거 뭐 어려운 게 아니라 다 그런데  사람들 저거끼리 에누리를 해 가지고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나 그렇게 까지  했겠나' 그렇지 성경은 바로 보면 똑바로 다 돼 가지고 있어요. 아무나 알기  쉬워요.

 이러니까, 여기에서 참 자기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서 하든지. '너 뭐하노?  너 뭐하고 있노?' '주님 위하는 일 하고 있다.' '뭐 할라고 하고 있노?'  '주님에게 복 받을라고, 은혜 받을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 너 누가 시키더노?'  '주님이 시켜서 한다' 이거는 전부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한답니다. 밥 먹으면서도  '너 뭐 하노? 누가 시켜서 하노?'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한다' 이게 또 변소  간다면서도 '너 뭐 하노?'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한다' 이거는 미치괭이 모양으로  변소 가는 것도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한다 소변하는 것도 주님 시키는 대로 한다,  전부 주님시키는 대로 한다. 그게 거짓말이오? 그게 참된 말입니다.

 이러니까, 아나 모르나, 아나 모르나 우리에게 모두 이루어지는 거는 그분 혼자  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주지 안한 말씀 한 번이 없고 그분이 주지 안하는 식물  하나 먹는 게 없고 그분이 주지 안한 용변이 없고 소변이 없어. 이래 놓으니까  가끔 가다가 하나 보이지. 하나 보면 다 봤어. 나는 그걸 지금 생각해. ○○  목사님이 있다가서 떡 만나디만 '아이구, 목사님. 내가 참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소변 한번 할라 하면 똑 세 시간 기도합니다.' 세 시간 기도 한대요. 세 시간  기도하는데 눈도 딴데 보내지 안하고 '주여 주여, 소변 잘하게 해 주옵소서.

소변 잘 하게 해 주옵소서' 이래 가지고 소변 잘하게 해 달라고 그래 가지고 세  시간을 계속 기도 해 가지고 만일 세 시간 만에 소변 하는데 소변을 잘한다면  어떻게 감사하고 기쁜지 '주여,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그라고 나면 또,  그라고 나면 그 다음부터 소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소변 잘 누게 해 달라고 서  그래 기도했다고. 하나님께서 '이거 네 마음대로 되는 줄 아나?' 잠깐 떼  놓으니까 하나님 안 주면 소변 잘 되지 안 하면 죽을 지경이니 어짤 거라? 죽을  지경이니까,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그런 것입니다. 당신이 일초라도 몇  놓으면 우리는 죽어요. 절단 나 버려요. 전부 그에게 매여서 내가 뭐 그분을  향해서 움직이는 이까짓 거 몇 닢 푼치 됩니까? 내 영, 마음, 몸, 이 모든 소유  전체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것으로만 내가 일초라도 유지 되지 그게  아니면 일초도 유지 못 합니다. 이것이 근본이라.

 이러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라, 베드로는 있다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은과  금은 없는 것입니까? 은과 금은 있어도 제 마음대로 못 써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이거는 언제든지 상용해서  상용 은혜. 상용 은혜, 항상 쓸 수 있는 은혜. 항상 쓸 수 있는 은혜라.

 그래서, 이거 건강이 좋기는 좋지만 건강보다 병이 좋은 것도 있어요. 나 요새  조금 건강해지니까. 좀 그때 한참 거석할 때는 뭐 앉아서 일어나면서도,  일어나면서도 '주여' 또 조금 목욕탕에 갈 때도 교회 내려올 때도 기도 굉장히  많이 합니다. '주여, 낙상되지 않게 해 주소서. 주여, 낙상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이게 계속이라. '주여 낙상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주여. 낙상되지  일게 해 주옵소서. 주여. 낙상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뭐 만일 안 붙들어 주면  대번 쿵 넘어가면 그만 절단 나 버리니까 자꾸 이랬는데, 몸이 건강해지니까  '주님 낙상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낙상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것이  뜨문 뜨문, 이게 가다 보면 잊어 버렸다 그 말이오. 잊어 버려서 '주님 낙상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그런데 이게 잊어버리는 것이 정상인가? 잊어버리는 게  정상인가? 그와 같이 계속 모든 정신과 마음과 지식이, 그러니까, 지식으로는  계속하고 있고 입술은 잘 계속 못 하고 정신은 계속하고 있고 입술로 하는 것은  계속이 잘 안 돼요.

 이러니까, 우리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로 베드로는 살았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는 소유했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소유한 것이 뭐 소유한 것이지요? 자, 한번  쳐봐요. 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소유한 것이 뭐 소유한 것이지? 예?  운동. 무슨 운동? 하나님이 영원 전 목적을 정하시고 목적 정하실 때 그때부터  시작된 운동이 그 운동이 차고 나와서 예정을 이루었고 또 그 운동이 예정하고  합해 가지고 창조를 이루었고 또 그 운동이 예정과 창조를 움직여 가지고 모든  보존과 모든 섭리를 이루었고 또 그 운동이 나와서 하나님이 사람 되게 하셨고  그 운동이 나와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게 했고, 하나님이 사람되는 거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것도 자꾸 생각해야 됩니다. 이래서 그만 속에 딱 베  가지고 있어.

 하나님이 날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 되셨는데. 뭐 이렇츰 낮아지셨는데, 뭘  낮아질 때 그래 가지고 낯을 못 들어. 주님이 날 위해 낮아졌으니 나는 얼마든지  낮아져도 달게 받고 내가 그렇츰 낮아져도 못 낮아질 게 없어. 주님이 죽으시고  다시 사람되시고 또 부활해서 사람되시고 또 이로 인해서 성령과 진리를  보내셔서 우리를. 자, 우리 영을 우리 영을 백년 장수로 살렸소 천년 장수로  살렸소? 몇 년 장수로 살렸지? ○선생 예? 뭐요? 영원? 영원 장수? 영원 장수가  있어? 영원 장수가 있어요? 일 년만 더 살게 한다 해도 그만 장수법이라 하면 막  야단이 나는데 영원 장수 믿는 자의 것이야, 믿는 자의 것. 안 믿어도 영원  장수는 예수님의 은혜로 주지만 믿지 않는 자는 효력은 못 봅니다. 안 죽고 살아  있기는 살아 있지만 삶의 효력은 못 봐. 효력을 누리지는 못해, 이만해도  영생하는 장수라면 뭐 이것 돈 가지고 바꾸겠소 뭐 가지고 바꾸겠소? 이만해도  세상 아무것 하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지.

 이렇게 하신 이 운동이, '그 운동 억세다.'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된 그 목적의  운동이 그 운동이 척 나오디만 영원을 예정을 척 하니만 그 운동이 창조를  하디만, 그 운동이 모든 것을 섭리를 하시디만 그 운동이 도성인신 하게  하시더니만 그 운동이 하나님이 죄인 나 위해서 죽으시고 살게 하시더니만, 그  운동이 영생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을 턱 만들더니만, 그 운동이 하늘과 땅의  것을 그 부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분의 것을 다 상속받아 가지고 내것이  되도록 만드실라고, 이 기업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할라고 하는 이 운동이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나는 가졌다. 가졌다는 말은 뭐 가졌다 말이오?  뭐 가졌다 말이지? 지나가 버렸어 제것이 아니라. 벌써 남의 것이라. 이제  구경만 들어. 제것이 아니라. 너무 그릇이 작으니까. 고것을 제것을 지금 가진  사람 있고, 그저 구경만 하는 사람 있고, 여기 천층 만층이라. 고것을 가진  사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름 그 운동, 그 운동을 베드로는 가졌어.

그 운동을, 그 운동을 가져서 그 운동은 제 운동이라. 그 운동의 능력은 제  능력이라. 그 운동이 하는 것은 다 제 것이라. 믿어집니까? 참 믿어진다면  이거는 성신의 능력이지 안 믿어지는 것입니다. 제 운동인데, 저만 가질 게  아니라, '자, 이 운동 이 운동 내가 가졌는데 너 줄께, 너 줄께. 일어나라'  하니까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 운동 가진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오. 예정이 내거라. 창조가 내거라. 하나님의 주권 섭리가 내거라. 죽고  사는 모든 게 내거라. 하늘과 땅의 것이 다 내거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도  내거라. 이러니까 부자이지. 복 있는 사람이지. 이런 소유권자에게 은과 금을  달라고 '은이 제일이지, 금이 제일이지, 지위가 제일이지, 권세가 제일이지'  하니까 기가 찬다 그 말이오. '나는 그런 썩은 거는 안 가졌다. 내게 있는  것으로 주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서서 걸어라,' 그분의  능력이 걸릴라 하니까 대번 걸리고 고칠라 하니까 대번 고칩니다. 이것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불쌍한 자, 불쌍한 자 안 되고. 자기가 은사층에. 지도층에 근원층에  있으면서 거기에 소속하고 피동 될 그 모든 지배받을 모든 자에게 구걸하는 것만  실컷 가르쳐요. 예수 그리스도는 소유하도록 하지 안하고 구걸하는 것만 실컷  가르쳐서 뭐 회사를 큰 아들에게는 회사 둘 주고 작은 아들에게는 회사 하나  주고 뭣이 어떻고 뭣이 어떻고 쭉 내려가는데 '흐음, 아이구 냄새야. 아이구  냄새야, 썩은 냄새야, 아이구 썩은 냄새야. 아주 썩은 냄새야' 썩은 것 그까짓  거 무슨 가치 있어서? 은과 금은 내게 없어.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마 이것  가지고 이게 제일이라고 그 지식을, 이 평가에 이게 제일이라고 평가시켜 놓고  사랑하는 아들이니까 '나도 이것으로 부요하니 너도 이것으로 부요해라' 이래  가지고 어짜든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거 아닌, 그거 아닌 거 그거  아닌 거는 뭐 모든 피조물로 인하여서 피조물 혜택으로 사는 것이지 피조물  혜택으로 사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라. 피조물 혜택으로 사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라. 이 조물주의 혜택으로 사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

 피조물 혜택은 뭐인데? 혜택은 뭣인데? 그게 내 건데, 뭐. 제 건데 이거는,  이거는 등기부에 내 것으로 딱 돼 가지고 있고 뭐 대장에 내것으로 돼 가지고  있고 또 계약으로 내것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네가 지금 전세 주고 내가 살고  있는데, '야, 너는, 창조주 대주재자의 그분의 주권적으로 내것 돼 가지고 있어.

창조적으로 내것 돼 가지고 있어. 대주재 그분이 나에게 줘서 내가 가지고  있어.' 이러니까, 그분의 세력하고 재판소 세력하고. 자, 무슨 대장 세력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소. '세력하고 세력 다툼 해 붙자' 그까짓 거 쏵 쓸어 버리면  아무것도 없어. 오늘 이것을 이렇게 평가하고 삽니다. 다 이렇게 평가하고 살아.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이 제일 욕심이 많습니다. 욕심이 크지 뭐. 그러니까  지저분한 그런 욕심을 가지지 안해 큰 욕심이야 생명을 내 놓아도 안 뺏깁니다.

어림이나 있습니까?  이러니까 여기에서 불쌍한 세 사람, 아, 불쌍한 하나는 아버지 엄마 선배 목사  모든 데에서 배운다는 게 구걸만 배웁니다. 배운다는 게 구걸만 배워. 구걸하는  것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얻는 것 그 외의 것만 장 배워, 그것만. '야 너  공부 잘해라. 너 대학원 나와야 된다. 너 박사가 돼야 된다 너 어떻게 해야  된다.' 가져 봤자 없어질 것, 받아봤자 없어질 것.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얻어 살지 안하고 그 모든 하나님의 종. 하나님이, 과학도 하나님의  종이요 모든 정치도 하나님의 종인데 하나님의 종에게 얻어 가지고 살라 하니까  그거 구걸이지 뭐이요? 그것만 실컷 받으니까 받는 자도 앉은뱅이도 부끄러운 거  앉은뱅이를 메다놓는 것도 불쌍한 것  이 앉은뱅이가 셋째로 불쌍해진 것은 이 가운데 와 가지고도, 이 가운데 와  가지고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제것 삼을 줄 모르고 돌아서지 못하고  여기에서도 내나 은금 달라고, 은금을 달라고, 은금을 줄까 싶어서 제가 손을  내미는 그것이, 앉은뱅이는 두 번 불쌍한 사람이라. 두 번 불쌍한 사람.

여기에도 불쌍한 자 어떻게 많은지 암만 설교를 그래 해도. 암만 해도 '말뿐이지  그 일이 되겠나?' 말뿐이면 말뿐인 구원 얻지, 실상이면 실상 구원 얻지.

말뿐이라? 아니오. 기독자의 생활은 다 올바로 믿어서 구원이 됐다는 고때만  건설구원이 되지. 고렇게 된 때만 건설구원이 되지 고렇게 안 되면 건설구원 안  됩니다. 고렇게 된 때만 건설구원 돼요. 고게 뭐이냐? 온전한 행위입니다. 고게  뭐입니까? 마음 다 목숨 다 힘 다 뜻 다 거기에 다 기울이고 나면 딴데 하나도  딴데 갈 데가 없어. 고렇게 된 고게 찰나면 찰나 일 분이면 일 분 하루면 하루  고것만 저는 구원입니다. 거기에서만 성화되지 딴데는 성화가 안 됩니다.

 복있는 사람 뭘 달라 하니까 줘야 될 줄은 알지만 뭘 줘야 될꼬 하고 주목해서  보면서 주목해 보는 거, 이 사람에게 뭘 줘야되느냐 주목해 보는 것 사랑하는  아들에게 뭘 줘야 되겠느냐 주목해 보는 것, 사랑하는 이 후배에게 제자에게,  교인에게 뭘 줘야 되느냐 주목해 보는 것. 주목하는 데는 자기 주관대로 주목할  수도 있고. 불교대로 주목할 수 있고, 공산주의 사상대로 주목할 수도 있고  성경대로 주목할 수가 있지. 성경대로 주목해야 삐뚤어진 주목이 아니지.

성경대로 주목하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차지하도록 그렇게 해야  될까. 모든 피조물에게 속하고 피조물을 의지하고 피조물 바라보고 피조물을  따라서 피조물 비위 맞춰서 피조물에 딱 비위가 맞도록 딱 맞춰서 그래 사는 게  복일까, 그래 살면 찰떡 같이 세상에서 복있는 사람인데, 자, 그것은 실속이  있는 것입니까? 전도서 1장 1절에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아래서 수고한 것이 무엇이 자기에게 유익한고' 하는 그 헛되다는 것  속에 다 이거 든거요 안 든 거요? 예? 이거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안 든거  하나도 있습니까? 다 그 안에 들었소. 와 자기에게 유익이 없소? 고대 광실 높은  집도 짓고 '사장님 사장님, 각하 각하' 이래 쌓는데 왜 쓸데가 없어? 왜 쓸 데  없겠소? 언제 쓸 데 없습니까? 언제 쓸 데 없습니까? 세상을 떠날 때는 쓸데가  없어집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한 것이 무엇이  자기에게 유익한고' 한 것은 네 인생살이를 끝마치고 영원을 지금 출발해 가는데  인생살이 끝마칠 때에 너 가지고 갈 것 하나도 없어. 영원을 출발할 때 거기 가  보니까 하나도 없어 홍포 입은 부자 아무 것도 없어. 이것이 심령이 어두우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에 하나 보태면 둘 되는 그것보다도 이거는 너 확고한.

확고한 지식으로 우리에게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다 확고한  지식으로 다 들어 가지고 있소. 밤이나 낮이나 뭐 더듬어 봐야. 계산해 봐야  아는 게 아니라 알아져.

 이제 지금은 지나가지만 집에 돌아가거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은과 금은  있어도, 그러면, 우리는 다 아무것도 없다 말이오? 그것으로는 내 것으로  삼고있지 안해. 은과 금은 내게 없다 말은 내 소유로는 삼고 있지 않다 그  말이오. 내 소유로는 내 것으로는 삼고 있지 안해. 암만 대재벌이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것을 보관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지나는 동안에 이것 저것  하라고, 장거리 하라고, 시장 보라고 장거리 시장비 줬기 때문에 그거는 내 것  아니야. 그거는 주님이 보라 하는 대로 쓰라 하는 대로 쓰고 노비나 하고  그렇지. '야, 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거하고 이 세상에 우주하고 바꾸자.'  우주 안에 있는 거 모든 거 다 너 줄 터이니까 그거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하고 바꾸자 하면 바꿀 사람 많을 거로구먼. 바꿀 사람 많아.

 자, 우주를 다 준다해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하고 바꾸지 안할 사람  한번 손들어 봐. 아따, 좋은 소리한다. 참말로 이래면 됐으면 위대합니다.

위대합니다. 이라면 눈이 밝습니다 실상 바꿀 수 없는 허무한 것하고 영원한  가치하고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그거 정신이 옳은 정신이오 이게 옳은  정신이오. 이게 옳은 정신이라. 영이 살았고 힘이 있고 마음이 병이 치료돼서  이라는데 고만 이 산을 내려가 놓으면 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하고 회사  하나 하고도, 돈 천 원하고도 뭐 돈 백 원하고도 뭐 바꿀라 할건데 그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요번에 이 배운 거 이만해도 평생써요, 이만해도. 환난에서도  감옥에서도 사장 자리에서도 어디서라도 이만하면 다 돼. 어디서든지. 아,  불쌍한 사람 셋, 나는 불쌍한 사람되지 안할란다 행복된 사람 둘, 나는  여기에서도 행복된 사람으로 살란다. 이것만 그만 떡 그래 놓고 난 다음에 그  잔주는 눈 감고 생각하면서 해석을 해요. 이제 이래 가지고 나중에 능숙해서  자다 생각해도 뻐득뻐뜩 이 계산이 돼야 됩니다. 마귀란 놈이 요 보따리로 쓰고  조 보따리도 쓰고 요렇게 조렇게 오만 지혜를 가지고 써 가지고 서 '이거는  구걸하는 게 아니다 이거는 영원한 거다' 해도 '요거는 구걸이다' 하고 딱  정죄해서 버릴 수 있는 요런 사람이 우리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눈이  어두워 놓으니까 전혀 분별 못 해. 뭐이 뭐인지를 전혀 분별 못 해. 이래 분별  못 하니까 마귀가 제 혼자 독단 장난이라. 이것 제 마음대로라 뭐 못 하는 게  없어. 세상에 성도 꼬우기는 마귀가 지금 놀고 자고 있습니다. 일 할 게 없어  그거 꼬우기야 뭐 대번에 꼬아지는데  이번에 배운 요 다섯 가지 사람 요것만 꽉 잡고 여기에만 딱 맞추어서 전부  여기에만 딱 맞도록 해서 살라고 하면 힘이 들 것이요. 자기 연약한 것을 알게  될 것이요. 힘이 들어 이기고 나면 수입을 본 것을 확실히 자기가 알 것이요,  실패한 것도 알 것이요, 허무한 것도 알 것이요. 한참 그래 살고 보면, 살고  나서 세상을 눈을 감고 보면 솔로몬의 전도서가 나올 거라. 분주한데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네가 이 시공 세계에서 한 수고가  네게 무엇이 유익하냐? 너는 죽어 보지 안 했기 때문에 항상 죽음 이편만  생각하는데 죽음 너머 한번 계산해 봐라.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해서 우리  시야가 넓어져야 됩니다. 우리 눈이 길게 멀게 봐야 돼요. 깊이도 보고 높이도  보고, 이래서, 우리 눈이 뭐 소경 눈 뜬 것, 막 두꺼운 돋보기를 써야 보이는데  이제는 훌떡 벗고 볼 수 있는 그거 육의 눈 그것도 편리하고, 아무것도 안  보여서 뜨듬뜨듬 했는데 환하게 보이고 그것보다 마음의 병을 고쳐서 마음의  눈이 더 밝아져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우리 기독자들이 왜 기쁨을 못 얻느냐? 기쁨을 못 얻는 것은 기독자의  기쁨은 근심 속에 들었는데 근심 속에 들었는데 근심만 보고 도망치고 보니까  근심 없는 곳에 돌아다닌다고 하니까 기쁨과 평강을 만나지를 못해. 암만 제까짓  게 돌아다녀 보지. 예수로 인한 근심 걱정 고통을 피하지 안하고 이 속에 들었다  하더라 하고 주의 말씀대로 준행하면 그놈이 떡 갈라집니다. 주의 말씀대로  준행할라 하니까 '이 근심 걱정 속에 기어 들어 가거라.' 근심 걱정 속에 주의  말씀 인도를 따라서 쑥 들어가고 보니까 거기가 천국이라. 거기 기쁨과 평강이  많애.

 이러니까, 모두 다 십자가의 원수가 돼 있기 때문에 십자가로 인해서 얻어지는  모든 행복은 다 사람들이 가지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좀  여러분들, 우리가, 이 십자가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에게 거슬려지는 거슬려지는.

거슬려지는 그때에 자꾸 거슬리는 걸 피할라고만 돌아다니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거슬려 지거들랑 말씀으로 막 두드려 깨 가지고 툭 뚫고 들어가 봐요.

많은 사람이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철석거리는 파도 보고 그만 놀래서 그만 빠져  들어갑니다. '언덕을 떠나서' 첫째. 아담의 세계를 떠나서, 이 세상을 떠나서,  과학을 떠나서, 자기의 주관을 떠나서 다 맡겨 놓고 그분 인도하는 대로 척 따라  가면 비행기 탄 것 모양으로 모든 피조물을 발아래 밟은 높고 밝고 온전한 그  세계가 열리는데 그 세계가 열리니 거기 보니까 자유가 있고 좋은 거는 거기 다  있어  자,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 모든 산천 초목과 만물이 완전히 변해지는 꼴 한 번  길게는 구경 못 해도 변해지는 그런 구경, 보니까 모든 인간도 만물도 모든  존재가 영 보이는데 자기가 처음 볼 때와 달리 이렇게 아주 변화되어서 이렇게  보여지는 그런 평생 못 보던 그런 세계를 한번 봐 본 사람 한 번 이상 봐 본  사람 한 번 손들어 보십시오. 남반에는 더러 있는데 여반에는 아주 없구먼.

이상합니다. 모든 것이 변해. 만물이 확 변해져. 아주 변해져. 낙망의 것은  소망의 것으로 변해지고 미움의 것은 사랑으로 변해지고 모든 좋은 것은 다  더러운 것으로 변해지고 사람들이 싫다고 집어 던지는 십자가는 다 승리와  평강으로 변해지고 이렇게 변해지는 세계를 여러분들이 봐야 됩니다.

 이 말은 자꾸 해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 뭐 있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있다. 이 이름 너 줄  터이니까, 너 주면 너는 어짜고? 이 이름은 억만 명에게 줘도 줄수록 내게는 더  많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 성질이지. 세상 거는 주면 없어져 버려요.

그러니까 안 줄라 하지. 줄수록 많아져 줘 봐라. 나사렛 세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니까 병이 나아 버렸어  나는 과연 나사렛 예수 그리스로의 이름을 가진 자인지 내가 가졌으면 나도  쓰기에 부족하게 가졌는지, 가졌다고만 하지 실상 내 자유대로 하나도 쓰지는  못하는 이름으로만 내가 가지고 있는 자인지, 근근히 나 쓰기에 족한지 다른  사람에게도 얼마든지 나누어 줄 수 있도록 가졌는지 아마 이것도 요번에 듣고  나가면 어떤 사람은 요거 하나 가지고도 몇 달 울 것이고 몇 달 볶아 싸움을,  씨름을 할 것입니다. 과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운동 그 운동을 내가 얼마나  소유했는가, 그 운동의 힘을 가지고 내가 어느 정도 활동을 하고 있는가 그  운동의 그 능력을 내가 얼마나 힘입고 있으며 가지고 있으며 남에게 줄 수  있는가 요것을 잘 생각하고 새김질합시다. 요거 좀 아주 거리 먼 말이오.

 인제 거기 가서, 요거는 제일 중요한 것이고, 고 다음에 아침에 잠깐 좀  말했는데. 행복된 사람은 사도들이 행복된 사람, 둘째로는 나은 앉은뱅이가  행복된 사람인데, 우리가 실질적으로 이렇게 앉은뱅이 병이 나을라고 하는 데는,  낫는 데는, 실질적으로 이거는 과학보다도 더 실질적입니다. 실질적인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나아야 영의 병도 낫고 육의 병 마음의 병도  낫고 육의 병도 낫고 다 나아야 되겠는데 실질적으로 말뿐이지 안 나으면 소용  있습니까?  낫는 데는 어떻게 해서 나았는가? 이름으로 걸어라 했는데, 16절에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느니' 그 이름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름이 이 사람을 성하게 했다 했습니다.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성하게 했다,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지극히 큰 운동을 인정하고 이 운동을 내가  받아 가짐으로, 그 이름을 믿음으로, 믿음 이거는 뭐 다른 말로 말해 봐야 못  해.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운동을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이름을 믿음으로  일어났어.

 그 이름은 뭐인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지. 이름을 믿는 믿음이 낫게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이 믿음이 가짜냐 진짜냐 하는  것은 뭘 보고 아느냐? 앉은뱅이가 나은 걸 보고 가짜인지 진짜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가짜인지 진짜인지 알 수 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고 사실인데,  '나사렛' 하나님이 사람되어 온 것이 사실인데.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대속의 공로 베푼 것이 사실인데, 또 죽은 가운데서 하나님이 영원히 사람의  모양을 입으신 것이 사실인데, 이 공로를 인해서 하나님이신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게 사실인데. 하나님의 뜻인 진리가 우리에게 온 것이 사실인데, 이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린 것이 사실인데, 이 능력이 와 가지고 보이지  않는 영 치료. 마음 치료 영병 마음병 많이 고쳤고 눈에 보이는 고기덩어리 고친  것만 해도 이백여 건이 되는데, 써 내지 않는 저거끼리의 받은 것은 여기에 몇  천 명이나 모였는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전부 다 치료받았는데. 이렇게  역사하는 이 사실을 네가 어느 정도 인정하느냐, 인정하는 표가 너거에게 어느  정도 있느냐? 인정하는 표가 그게 순종인데, 인정하는 표가 네 영에 얼마나  표시됐으며 인정하는 그 인정이 네 마음에 얼마나 표적이 나타났으며, 얼마나 그  흔적이 나타났으며, 인정하는 그 인정이 네 몸에 얼마나 나타났냐. 나타난  그것이 치료라. 나타나면 치료돼져.

 이러기에, '그 이름을 믿는 믿음이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느니라' 이 사실 운동  이 지극히 큰 역사, 하나님이 이거 때문에. 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계시는데,  하나님이 총력을 기울여서 역사하시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대로 인정하는 대로  인정하는 양만치 너희가 고대로 행하게 되니 행한 그게 뭐이냐? 행한 그것이  마음이 행한 것은 마음이 변화돼 버렸고 성질이 행한 것은 성질이 변화돼 버렸고  지식이 작용하는 욕심이, 뜻이, 평가가 계획이 희로애락이. 모든 소원과 경영과  평가의 그 마음의 변화가, 마음의 변화가 어느 정도 인정했나 인정한 것만치  마음이 변화되지, 인정한 것만치 행하게 되지, 그게 믿음이지, 인정하고 행하면  믿음이지 인정하고 변화 됐으면 믿음이지, 변화됐으면 행한 것이지. 이거는  아무것도 딴거는 거기에서 잡것은 보태면 안 됩니다. 다만 믿음뿐이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이 그렇게 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이 그렇게 했다 이것을 또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하고 백번  천번 자꾸 말하면서 느끼고 느끼고 하면 인정이 될 것이요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믿었지, 믿었으니까 그 이름이, 나타난 결과는 이 그 이름이 한  것이지, 그 운동이 했지. 여러분들, 이 운동을 모르기 때문에 땅 위에 무슨 큰  운동이 있다고 뭐 신학을 신학 대학을 몇 개를 세우고 무슨 일반 대학을 몇 개를  세우고 뭐 의료 기관의 병원을 어떻게 세우고 '우리에게 이런 큰 기관이 있다,  뭐 이렇게 세계의 무슨 운동이 있다, 뭐 지금 세계 수뇌 양반들이 이렇게 아무  데서 정상 회담이 있다 없다' '흠, 흠' 입을 삐쭉거리며 '흠, 흠흠, 흠'  '아이구, 그렇게 큰 운동인데' '흠' 정말로 큰 운동을 봐라! 큰 운동을 봐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봐라 이 운동을 봐라. 그 운동이 뭐인데? 하나님  한 분 단독이 계실 때 그때부터 뿌리박아 가지고 시작한 운동인데 그게 뭐이야?  하나님의 목적 운동이야. 목적 운동이 뭐로 전개 됐는데? 목적 운동이 예정으로  전개됐어 목적 운동이 창조로 전개됐어. 목적 운동이 모든 보존으로 전개됐어.

그 목적 운동이 모든 섭리로 전개됐어. 그 목적 운동이 뭐로 전개 됐는데? 건설  파괴 심으고 뽑고 죽이고 살리고 전쟁나고 평안하고, 전개됐어. 그 운동 이 온  세계를 이랬다가 저랬다가 홍수도 홍수 심판도 일으켰고 앞으로 불심판도 일으킬  것이고, 이 큰 운동. 그러면, 그 운동이 큰 운동이면 그 운동이 얼마나 가득  찼는가? 우주와 영계에 가득 찼지. 그러면 그 운동 외에 뭐 또 다른 운동이  있는가? 없어. 공산주의 운동은? 공산주의 운동 그거는 새끼 운동인데 그 운동도  이 큰 운동의 분자 분자 분자 분자 분자 분자, 아, 그거는 이 운동의 반대인데?  아니야. 반대 같으나 모순 같으나 일치야. 반대 같으나 그것이 분명히 이 운동을  위해서 존재하고 이 운동을 위해서 노력하고 이 운동을 위하는 그거 외에는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

 이 큰 운동, 이 큰 운동이 좀 느껴집니까? 이 운동이 있는 걸 알고 이 운동에  눈을 뜨고 이 운동에 몸을 붙이고 이 운동에 투자를 하고 이 운동에 발을 들여  놓고 이 운동에 접선을 한 사람은 아무 운동도 없어. 아무 운동도 없어. 이라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천상 천하에 내가 할 일 쳐 놓고 제일 큰 일이  뭐이냐? 내게 대한 이 운동이 내게 대해서 지령하는 것 있으니까. 이 운동이  내게 대해서 명령하는 것 있으니까 그 명령 이행이 제일 큰 일이라.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 이행하는 그것이 제일 큰 일이라. 그 이상 큰 일이 없어. 이라니까  삐쭉 삐쭉 해. 삐쭉거려 쌓아도 너거 운동은 내 운동의 소유야. 그건 내 것이라.

이 운동이 네 것이라? 너도 내것이라. 하, 이거 분해서. 너도 내것이라. 아,  너도 내것이라. 욕을 하니까 '욕하는 그것도 내것이야 펄펄 뛰니까 '그것도  내것이야' '너 이놈의 새끼, 내가 죽여 버릴란다 '그것도 내것이야. 내까짓 게  내것 외에 딴것 하지 못해.' 이것이 기독자들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요, 기독교.

 이러니까, 우리가 마음을 조브랍게 하지 맙시다. 사람이 하나님으로 살게 한  우주와 영계를 통치할 자요. 우주와 영계의 모든 천군 천사를 다 관할할 자요,  그것들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케 할 자가 잘못하면 작아집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큰 자가 하나님 잊어버리고 피조물로 돌아가서 피조물만을 상대해 살면  고만 무한과 같은 것들이 그만 아주 유한으로 폭 줄어들었어. 아주 작아 들었어.

이 말은 못 알아들어. 저 안경쟁이, 와 조울라? 따라오다 보니까 피곤한  모양이지? 아니야 맛을 봐서 먹으면 피곤치 안해.

 인생이 유일하신 자존자로, 커서 자존자 다음으로 클 그리스도인이 피조물로  전락하면 좁아집니다. 제딴에는 민족 운동, 문화 운동. 인류 운동. 대단히 크다.

너는 벌써 타락해서 감옥 속에 들었어, 감옥에. 피조물이라는 그 감옥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피조물이라는 감옥 속에 구금됐어. 거기에서. 예수의 이 이름  외에는 거기에서 자유에 석방 시켜 줄자가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거기에서  자유로 석방시켜 줍니다. 피조물로 타락해서 적은 감옥에 갇힌 자가 나중에는  세계 문화를, '나는 세계 문화를 인류를' 하니까 큰 것 같지만 제 딴에는 큰 것  같지. 인류라는 조그만한 감옥에 갇혔습니다 '나는 애국자라' 큰 것 같지만 더  작은 감옥에 갇혀 버렸습니다. '나는 민족자라' 더 작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나는 세계 문화 운동자라' 그거는 사람보다 훨씬 작은 거라. 작은 거. 작은  감옥에 갇혔어. '나는 무슨 학을 전공해.' 너는 숨도 못 쉴 자리에 가서 갇혀  가지고 있구먼. 나, 나, 내가 제일이지. 제 중심이라는 고게는 코도 못 들이댈  데 고렇츰 손 데 갇혀 가지고 그저 막 개갈개갈개갈개갈 거리면서 있는 것이  그것이 자기에게 갇힌 자입니다. 자기에게 갇힌 자. 자기에게 갇혔던 자가  나중에 심하면 자기 마음의 요소 여러 가지 있는 가운데에 요 돈 욕심, 돈 욕심  고 구덩이에 갇혀 버렸어. 얼마나 손 데 갇혔는지. 지식 욕심 고 구덩이에  갇히든지 행락 욕심 고 구덩이에 갇히든지 나중에는 시기 복수 감옥에 갇혀  놓으면 참 곤란하고 평안함을 얻지 못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좁아집니다. 좁아져  자기를 부인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걸 사랑치 말아. 아니 모든 피조물을 너의  욕망과 상대로 삼고 살지 마라. 그러면, 자존자 하나님만이 너의 상대라.

그분하고 의논하고 그분에게 받고 그분에게 쓰여지고 그분의 심부름꾼으로  그분의 배우자로, 할 일은 뭐인데? 할 일은 영계와 물질계 모든 것이 통일된  그것이 내 나라이기 때문에 거기 나 할 일 있지. 뭐 하는데? 아버지 하나님의  것으로 그들에게 충만케 해 주는 그것이 우리 할 일이지. 그러면, 어짜면  작아져요? 어떻게 하면 작아져요? 자, 우리 박사 ○○○목사님, 어떻게 하면  작아져요? 인제. 인제 아주 박사가 참 박사가 옳은 박사가 돼 가네.

하나님에게서 피조물로 돌아가면 작아집니다. 그게 감옥이오. 그게 좁아지는  것이요 거기에 자유가 없습니다. 또 그보다 작은 감옥은 뭐이지요? 그것보다  작은 감옥은 뭐이요? 여기 여반에, 자기.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더 작은  감옥이라. 자기보다 더 작은 감옥 있소? 예? 마음, 네, 여러 가지가 있는데  마음으로 돌아가면 더 작은 감옥이요. 또 더 작은 감옥 있습니까? 마음 속에  들어 있는 한 조갱이 그리 파고 들어갑니다. 그리 파고 들어가. 그리 파고  들어가면 더 작은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부인하라, 모든 것을 부인하라.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라, 뭣 믿어? 자존자, 유일자 그분 한 분을  인정하고 그분을 따라 움직이라. 이러니까, 모든 존재 가운데 몇째로 큰 자  됩니까? 몇째로 큰 자 돼요? ○○○목사님, 둘째로 큰 자 됐답니다. 둘째로 큰  자 됐어. 바로 알았어. 어째 좀 이제 조그매 좀 널펑해집니까? 좀 커집니까?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말씀은 참 무한입니다. 보면 또  깨달아야 되겠고 보면 또 보고 보면 또 보이고 보이고 죽는 날까지 봐도 다가  아니라 보면 또 그 안에 또 있어. 또 보여, 또 보여. 이러니까, 이는 진실로  무한의 말씀이로구나, 무한의 진리로구나 하는 것을 종말로는 고백을 하고야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멸망 가운데 들어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래서, 그것도  하나 예를 드는데 네가 예물을 제단에 드릴려고 하다가 무엇이 다른 사람들이  너를 원망하는 일이 생각나거든 급히 가서 사화하라. 길에 있을 동안에 사화하라  그리 안 하면 너를 법관에게 송사하고 법관은 너를 간수에게 내어주고 간수는  옥에 가둘까 하라. 길에 있을 때 급히 사화하라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하리라. 여러분들, 여기에서 모든 존재들의 그 범위성 자유성 권위성을  말합니다. 남의 권위의 지역에 못 들어가요. 거기에 못 들어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는 다 들어가지 딴 걸로는 가지고는 지역에 못 들어가요. 갚기  전에는 못 들어가요. 예수의 공로를, 공로를 입으면 어디라도 들어가.

아무데라도 자유로 들어가. 어디든지 막을 자가 하나도 없어.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하고' 여기에 보니까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오른손이나  왼손이나 뭐 그렇지 뭐 오른손은. 손이니까 그래 잡아 일으켰다는 그런 것이지  하필 똑 꼭달스럽게 '오른손' 뭐이든지 막 하나님의 말씀하는 걸 막 쪼개고  나비고, 어떤 사람 있다가 말하기를, 내가 금정산 집회 하니까 오더니만. 나하고  친한 사람인데. 그때 내가 조사 때인데, '조사님. 하나님의 말씀을 도매 위에  놓고 막 난도질을 하듯이 막 드리 쪼아서 막 쪼개고 하나님의 말씀을 난도질을  하니까 그거는 죄 아닙니까? 그저 성령이면 다 되니까, 이래 놓으니 무식한  사람들에게 자꾸 그런 말하면 압니까? 하나님 말씀을 자꾸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고 이란다고 하더만 그 사람 질팡갈팡의 신앙으로서 아주 영원히 씻지 못할  그런 수치를 걸음을 걷고 또 지금도 질팡갈팡 와 가지고 그래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은 처음 시간 말하기를 기록할라면 온 세상에도 그 책을  두기에 감당치 못한다고 이렇게 많은 가운데서 거기서 선택, 선택, 선택,  선택해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게 뭐 아무나 따나 헐값으로 쳐 넘겨서는 안  됩니다.

 이름을 주면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여기 오른손이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도 거기에도 우편이라는 그 뜻과 같은 뜻입니다. 오른손이라는  것은 힘있는 것을 표시하고 승리하는 것을 표시합니다. 아버지 우편이라고  말하는 것은 힘있고 승리하고 삼위 일체의 하나님의 본체에 소속해 가지고  무한하신 그 사랑과 생명과 능력과 영광과 덕으로서 모든 것을 다 정복해서  승리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아버지 우편이라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오른손으로. '오른손을 붙잡아 일으키니' 하는 말은 승리할 수 있는, 승리하도록  잡아 일으키라. 가장 능력있는, 실력있는, 실력 있도록 잡아 일으키라 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도 우리에게 계시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영혼 몸의 병을 고치는 데에는 믿음이 와서 고치는데, 믿는데  믿는 것도 도와서. 인정도 도와야 되고 또 인정한 대로 되어지는 것도 도와야  됩니다. 도와야 되는 것. 되어지는 것도 도와야 되고, 어떨 때는 안 도우는 것도  있지만 도와야 되는 것도 있다 말이오. 여기에는 도왔어. 오른손을 들어 잡아  일으켰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은 벌써 다 강건한 사람들이요 장골들이라.

장성한 사람들이라. 이러니까, 오른손을 잡아 일으킨다. 네가 이렇게 영과 혼과  몸을 병을 치료해 가지고 병이 낫게 되는 데는, 새사람 되는 데에는, 새사람으로  걷는 데에는 네가 그에게 새사람 된 중에 제일 새 사람 된 그에게 새사람 된  제일 치료가 잘된 제일 강건한. 제일 강건한면 제일 힘있는 면을 들어서  일으켜라. 그에게 좋은 점, 장점, 변화된 점 고 점을 네가 먼저 붙들고 그를  일으켜라. 그분에게 제일 모든 것을 준비하고 감당할 수 있는, 그에게 변화된  새사람으로 변화된 그 점이 있으니까 거기에서 제일 힘있게 변화된 점, 제일  승리를 일으킬 수 있는 변화된 점 그 점을 네가 부축해서 일으키라, 그냥  하지말고 네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치료하되. 그 운동, 그  운동에게 그 사람을 접선을 시키고 이 운동을 접선을 시키고 지극히 큰 이  운동에 젊선 시켜라, 여기만 점선만 돼 놓으면 돼. 접선을 시켜. 이 존 운동에게  접선을 시켜라, 접선을 시키는데 그 사람에게 접선이 되어서 제일 먼저 된 접선.

제일 먼저 된 치료. 제일 유력한 부분을 네가 거머쥐고 일으켜라.

 접선을 시키고. 접선은 뭐로 시킵니까? 접선을 뭐로 시켜요? 자, 접선은 뭐로  시켜요? 이거 실지로, 말만하고 접선을 시킬 줄을 알아야지? 우리 ○목사님  접선을 뭐로 시킵니까? 아까 요래 가리키듯이 똑똑히 가리켜 봐. 접선을 뭐로  시켜요? 요래 가리켜야지. 요래. 접선을 뭐로 시켜요? 이걸 가리켜야 돼. 아까  둘 똑 요래 손가락 가리킨 것 모양으로, 고거 맞았어. 맞았는데, 접선을 뭐로  시키느냐 하면 요걸 가리켜야 돼. 이걸 -입을 가리키심- 가지고 접선 시켜.

입하고 입. 혀, 입으로 접선을 시켜요. 입으로, 입으로 접선 시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 운동 이 운동을 뭐로 접선시켜요? 지금 여러분들에게  접선시킬라고 지금 자꾸 내 입으로 혀로 지금 접선시킬라고 이라는데, 내 입,  혀, 그까짓 거야 아무 소용없지만 이는 통하기는 내 입을 통해 나왔지만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으로 이해를 시키고 납득을 시켜서. 어제 손을 들라  하니까 다 들어. 참 재미가 있어. 손을 들라 하니까 다 알고 이라니까 이제 거의  접선이 자꾸 된다 말이오.

 이 운동에 접선은 뭐로 시킵니까? 접선은 우리가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이 능력이  나를 통해서 말하는 그 말로 접선을 시킵니다. 접선을 시켜요. 이라니까, 설교할  때에, '주여, 내가 암만 말해도 나 혼자 말하면 울리는 괭과리이고 귀만 따갑지  아무 소용없으니까 주님의 피와 성령과 능력이 나를 통해서 나를 써서 말씀을 해  가지고 이 접선을 잘 시켜주십시오' 이래서 지극히 큰 능력에 접선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말입니다. 우리의 말, 우리의 말. 또 우리의 기도. 또 우리의 영능  이걸 가지고 접선을 시킵니다.

 접선을 시키는데, 접선되는 것은 뭐로 접선됩니까? 접선을 시키는데 그 사람이  접선되기는 뭐로 접선됩니까? 내가 접선을 시키는데 어떻게 접선이 됩니까? 예?  지극히 큰 운동에 접선이 어떻게 되는지? 믿음, 믿음! 믿습니다! 이제는 고  도성인신, 십자가의 사활. 부활의 그리스도의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성화시키는  그 역사, 지극히 큰 운동. 저것도 그 운동 때문에 있고 이것도 그 운동 때문에  있고 저 고속도로도 그 운동 때문에 있고. 지금 와르르 왔다 갔다 하는, 저거  딴에는 다 돈 보고 하지만 실상 그 운동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전부 그 운동 해.

그 운동 아닌 게 하나도 없어. 그 운동의 것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어. 그 운동.

예정이 이 운동. 창조가 이 운동 하나님의 보존이 이 운동, 섭리가 이 운동,  죽는 것도 이 운동, 사는 것도 이 운동, 이 지극히 큰 운동. 이 큰 운동이  뭐할라고?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만들라고. 하나님의 영광의  영원토록 찬미가 되는 것 만들라고 이렇게 하는데. 지극히 큰 운동에 연결이  돼야 일이 되는 건데 연결이 되도록 하는 것은 뭐로 연결이 된다고 했지요? 한번  손으로 한번 가리켜 봐요. 연결을 뭐로 연결되도록 하는지 한번 손 가리켜 봐요.

손으로, 연결을 뭐로 연결시켜야 돼? 손으로 한 번 가리켜 봐요. 손으로. 헤.

손으로 이래 가리킨다. 손으로 가리키라 하니까 이래 가리켜. 이걸로  연결시키는가? 자, 한번 따라 해요. 뭐로 연결로 시키는가? 자, 입에 대요.

이걸로 연결시켜, 이걸로. 입 이걸로 연결시켜. 입 이걸로 연결시켜,  연결시키는데. 입으로 연결시키고 기도로 연결시키고 또 내 안에 있는 피와  성령과 진리에 연결된 힘으로 연결시키고 연결시킵니다.

 연결시키면 연결된 것을 가리켜서 뭐이라 하지요? 믿음! 맞았어, 백점이야. 뭐  담대하고 안심하고 해야 되지 '믿음' 해 놓고도 또 틀렸는가 싶어서 그런 확신  없는 거 가지고는 안 됩니다. 믿음이야, 믿음. 믿음으로 연결돼. 거기 말하지  안했어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했거든.

믿음으로. 연결이 믿음인데.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에 연결이 됨으로 그  이름이 낫게 했다 이랬어요. 지극히 큰 운동, 지극히 큰 운동을 믿음으로,  지극히 큰 운동에 연결이 됨으로, 지극히 큰 능력의 운동이 이것을 변화 시켰다,  그 목적이 이거니까.

 이래서, 믿음으로 연결되고, 연결되는 것은 말로 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드로도 이라니까 그만 연결됐어요. 기록은 이렇지만 아마 믿은  설명을 했을 거라. 이라니까. '믿사옵나이다. 나에게 낫게 해 주옵소서' 딱  믿으니까. 믿으니까 이제 그 능력이 낫게 하는데. 낫게 함을 받는 데에는 이  베드로가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되겠는데 아이 기르는 수고를 해야 되겠는데 이  수고를 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른 손을 잡고 일으키라 이랬어.

오른손을 잡고 일으키라. 오른손을 잡고 일으키다니? 고 사람이 이 이름으로  인해서 고침을 받았지만 고침 받은 것도 선후도 있고 강약도 있으니까 그 총  중에 제일 강하게 고침을 받은 고 부분을 붙들어라. 또 제일 앞으로 모든 것을  정복해서 승리할 수 있는 고 부분을 네가 붙들어라.

 우리가 후배를 기르는 것이 요렇게 길러야 된답니다. 고 사람에게 책망 보다.

일곱 교회에 주님이 기르시는 것을 보면 어느 교회라도 칭찬 없는 교회가 없어.

어느 교회 칭찬 다 했어. '너에게 이 칭찬 할 만하다 이게 장점이다.' 칭찬부터  있는 거 다 하나도 빠짐 없이 좋은 장점을 다 말했어. 이러니까, 잘못하면  나중에 책망하다 보면 장점 그것도 같이 죽어 버릴 것이거든. 이러니까, 고거는  안 죽을라고 고거는 따로 다뤄서 '요거는 살았다 요거는 살았다 요거는 바로  됐다' 요렇게 다 고것을 딱딱 고 장점을 잘 일으켜서. (여기 시계쟁이 졸지마.

졸지마. 졸지 말라고. 예사로이 그래 들어 가지고 될 건가? 그래 될 거구만?  죽고 사는 게 거기 있는데 그래 들어 가지고 되겠어? 안돼.)  제일 고 사람의 장점으로 가지고 칭찬부터 먼저 했습니다. 요것이 참 안 믿는  사람도 통계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사과는 일곱 개 채찍은 세 개 이래  가지고 그 사람에게 칭찬할 장점을 일곱 개를 들추어서 칭찬해 놓고 책망할 것은  고 세 개쯤 해야 그래야 이제 칠 대 삼이니까 요게 살아 날 수가 있지 고만 채찍  일곱 개 사과 세 개 해도 안 되고 고만 채찍 열 개부터 뚜드리면 그만 다 죽어  버리는데 뭐 살아날 게 있어야지? 이러니까,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라,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라.

 이래서, 요 베드로가 복 있는 사람인 것은 그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기 때문에  복있지 안 일으켜 세웠으면 복 없어. 먼저 일어난 자가 자기 후배에게 목사가  교인에게, 권찰이 식구에게. 장로가 밑에 교인들에게 이렇게 살릴 때에 오른손을  들어서 일으켜,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면서, 고 좋은 점 장점, '야 너 요번에  갔다 와 가지고 보니까 네 마음이 달라졌다.' 저도 몰라도, 거짓말하면 안  되니까, '야, 요렇게  요렇게 네가 마음을 쓰는 거 보니까. 언제 그전에 같으면  이런 게 올라올 건데 보니까 달라졌어.' 달라졌다고 고걸 칭찬을 하고 칭찬한  고놈을 거머쥐었다 말이오. '야, 네가 그전에는 새벽기도 안 나오더니 요번에는  새벽기도' 그전에는 뭐 뭐 꼭 사흘 새벽 기도인데, 사흘 새벽 기도 나오고 나면  더 못 나오는데 나흘 나왔다 말이오. 얼른 오른손을 잡아 일으켜. '네가  요번에는 사흘 고만 새벽 기도 나오면 그 다음에는 고만 떨어지는데 요번에는  나흘 새벽 기도하네' (저 집사님, 저 집사님. 와 돌아앉아 있어? 아파? 아파?  아프면 낫을라 하면 회개를 해요, 인제 고거 모르는데 되게 아프면 회개해요,  회개하면 쏵 낫아 버려요. 아픈데 돌아 앉으면 더 아파요. 그래 봐요. 더 안  아픈가.)  요래 가지고 '야, 너 요번에 가서 참 은혜 받았다. 너 새벽 기도 너는 사흘  새벽 기도 했는데 요번에는 나흘 계속하네. 아, 네가 혈기가 그렇게 많은데 혈기  낼 만한데 제법 참더라 야' 이래서, 거기에서 제일 힘있는 거. 제일 승리할 수  있는 거 고거 살려 놓으면 될 수 있는 고런 걸 잘 봐서, 요거 무엇을 어느 점을  붙들어야 요거 효력이 있겠노, 어느 점을 붙들어야 점점 정복해서 승리해  나가겠노? 요걸 고 장점을 잡아 붙들어 가지고 살모시 일으키면 일어납니다.

고래서 거기에서 부터 고것을 일으켜서 살리는 것을 가르쳐 말했고

 고라고 난 다음에는 고 다음에 뭐이지요? ○○○목사님. 고 다음에 뭐이지요?  예? 그러니까 발과 발목이 힘을 얻어. 그러니까, 고거 그라니까 이 사람이  소망을 가지고, '야, 너 그게 막 바로 너한테 치료가 된 것이다, 그것이 심령  치료받은 것이요 그게 영이 장성해진 것이요 영이 강건해진 것이다. 그게  그것이다' 하니까 소망을 가졌다 말이오. 그러니까, 발과 발목이 힘을 얻는다  이라니까 뭐 '예' 이라면서도, 이제 칭찬도 좀 받고 또 인정도 받고 이라니까  되는구나, 그래 가지고 그걸 관리를 잘해야 돼요. 또 보니까 '아, 너 발목이  힘이 있네. 한번 흔들어 봐라. 한번 밟아 봐라. 이러니까 발목이 자꾸 힘이  세집니다. '야' 이래서, 고것을 살살 가꿔야 합니다. 안 가꾸면 안돼요.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해야 되지 하나님에게 맡겨 놓으면 안 돼. 고걸 살살 가꿔서  자꾸 고것을 달래기도 하고 칭찬도 하고 또 고것을 깨우치기도 하고. '야, 너  넘어질라. 조심해라' 너 지금 어떻게 하는 고런 것도 말해서 자꾸 기도도 해  주고 기도로 돕고 내가 그에게 칭찬으로 돕고 타이름으로 돕고 권면으로 돕고  자꾸 이래 도와주고 이라니까 발목이 차차 차차 힘을 얻습니다. 발이 힘을  얻습니다.

 이러니까, 이런 것을 접촉해도 새사람으로 살 수 있고 저 사람 저런 것을  접촉해도 새사람으로 살 수 있고 그래서, '야 네가 요번에는 무슨 일을 닥칠  건데 그 일 네가 어떻게 하지?' '아 예 염려 없습니다.' '염려 없다니? 그 큰  낭파는 났는데? 어째?' '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신대로 하고 뭐  하나님의 뜻대로 잘 해 주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없어지면 어짤라고?'  '없어지면 없어져야 유익하기 때문에 없어지겠지요.' 됐다 그거요. '야, 너  상당히 발목이 힘이 있다. 네 발걸음이 힘이 있다. 뭐 하나님이 잘 해 줄 줄  믿나?' '예 믿습니다.' '그거 없으면 안 울래?' '아이 안 웁니다. 또 필요  있으면 또 주시겠지요.' 이래서, 자꾸 알뜰히 가꾸어서 칭찬하고 권면하고  타이르고 이러니까 발과 발목이 힘을 얻습니다. 인제 이래 들고 있어. 들고  있으니까 발과 발목이 힘을 얻어. 그러니까 고만 일어서서 그만 걷습니다.

 걸으면, 걸으면 그 다음에 어짭니까? 걸으니까. 걸으니까 '저 술집에 한 번 가  봐라. 저 춤 집에 한번 가 봐라. 저 지금 노름집에나 장사 집에나 이야기 집에  한번 가 봐라. 네 자랑 집에 한번 가 봐라' 이럴 건데 어디로 갔습니까? 예?  성전으로 들어갔어. 살살 들어오니까 보니까 골방 생활, 골방 생활합니다. 골방  생활. 보니까 골방 생활 해. 보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현상 세계 이것을 보니  다 거쳐서 별세계에 들어가 가지고 있어 별세계. '아, 계십니까? 목사님  계십니까?' 떡 만나 보니까 별세계에 들어갔다 나오니까 별세계 사람이라. 말 한  마디 하는데 별세계 사람이라. 안면 보니 별세계 사람이라. 척 접촉을 하니까  전기가 찌리 하면서 끌려가는 거 모양으로 뭐인가 끌려가고 고만 그 목사  떨어지기가 싫고 권찰 떨어지기가 싫고 고만 장로님 떨어지기가 싫고 반사  선생님 떨어지기가 싫고, 고만 학교 가도 우리 반사 선생님 언제 만날꼬 언제  만날꼬 이래 가지고 그만 이라다가 '오늘은 심방 올 터이니까 내가 기다리고  있어야지.' 보니까 심방 오다가 그 반사 선생님이 고만 심방 오다가 그건 잘  나올 터이니까 내비두고 저 딴 데로 갑니다. '아, 선생님, 선생님 어디  가십니까? 선생님' 이라니까 '아, 그래. 나 여기 아무데 심방 간다. 너 아무  것이 잘 데리고 나오라' 이래 가지고 학생이 주일학교 반사에게 반해야 돼요.

알겠소? 만날 반한다 하면 여자가 남자한테 반하고 남자가 여자한테 반하고  고거밖에 모르기 때문에 그 말만 하면 그만 그 말로 아는데. 그게 아니고  남반사가 남반사에게도 반하고 여반사가 여반사에게도 반하고 고만 그 인격에  반하는 것이라. 그 인격에. 이래서, 만나 보니까 향기가 나거든. 또 만나 가지고  뭐 말 한 마디 해 보니까 생전 듣지도 못한 별세계의 말 한다 말이오, 별세계의  말. 그 무슨 말인가? 들을 때에 좀 이상한데 들어서 씹어 보고 씹어 보고 새겨  보니까 아주 맛있는 말입니다. 이래서, 고만 '사랑하는 나의 사랑하는 자야  어여쁜 자야 네 혀 밑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도다' 이것이 주님의 신부입니다.

신부.

 이래서, 자꾸 성전으로 인도해. 그래 놓으니까 제법 이것이 '아, 나도 좀  기도하러 갈랍니다. 나도 기도하러 어디로 가야 되겠습니까? 나도 뭐 좀 해야  되겠습니다.' 이라면서 자꾸 골방 성전에 들어갈라고 애를 씁니다. 그래  성전으로 인도했어. 그것이 인제 베드로와 요한의 할 일이라. 베드로와 요한의  할 일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와 접선시키는 것 그것 할 일 했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일으켜 걸려야 되기 때문에 오른손을 잡아 일으켜서 발과 발목이  성하도록 하는 그것이 한 일이야. 고라고 난 다음에는 성전으로 들어가니까  이것도 성전으로 따라 들어옵니다, 성전으로. 주님 계시는 골방으로 들어가니까  따라 들어와.

 그러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의 후배는 반드시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기도하는  교역자의 교인은 기도하는 교인이 되고 환난을 승리한 교역자의 교인은 반드시  환난을 승리하고 장사꾼 영리주의의 교역자의 교인은 반드시 영리주의가 되고  사기꾼 교역자의 교인은 사기꾼 되고 세상 학문 위주의 교역자의 교인은 세상  학문 교인 되고 자, 이대로 됩니까 안됩니까? 이러기 때문에, 일곱 별과 일곱  촛대의 비밀이라고 말했습니다. 내나 교역자의 재판이 교인이라. 교역자의  재판이 교인. 이러니까 저 사모님은 웃는다. 우리 목사님이 알아 듣지 싶어 그래  웃어? 아마 걱정 좀 할거라. 우리 ○목사님 때문에 걱정 좀 하지. 자꾸 막  박사로 나갈라고 쌓아서. 인제 가는데 대고 박사 말해요. 박사. 이래 가지고  우리 아들도 대학하고 둘째 아들도 대학하고, 뭐 대학하고, 대학하고, 실컷  대학만 자꾸 늘여 놓는데, 재주가 있어. 재주가 있으니까 어떻게 잘 되면 지금  큰 일을 하겠는데, 인제 구걸하는 걸 안 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장사가 돼야지, 이름 장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내게 있는 것 이것  줄께. 이것 사라. 이것 가지고 가라.

 이래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접선시켜서 소유시켜 주는 것 이 첫째  할 일, 또 둘째 할 일이 뭐입니까? 둘째 할 일이 뭐랬소? 오른 팔을 붙들어  일으키는 것 둘째 할 일. 또 셋째 할 일이 뭐입니까? 이제는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들어가니까 이것도 따라 들어가. 들어가니까 따라 들어가. 성전으로  들어가면 성전으로 따라 들어갈 것이고 장터로 가면 장터로 따라 들어갈 것이고  노름판으로 가면 노름판으로 따라 오고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성전으로 따라  들어갔어. 그것이 할 일 했어. 요 토막에는 베드로와 요한 할 일은 이것으로 다  했어. 다 했어.

 그라고 나니까 앉은뱅이가 할 일은 뭐입니까? 앉은뱅이 할 일은 걷고 뛰고 하는  거라. 걷고 거고 하는 것. '야' 걸으니까 '그 이상하다' 모든 사람이 보고  '이상하다' 놀랩니다. 모든 사람이 보고. 걷는 것 보고 놀라. 여기에서 영 병을  고쳐서, 영이 과거에는 권리가 없었는데 영이 자기의 마음과 몸은 딱 통치를  하는 통치권을 가지고 영이 명령한 대로 그대로 마음도 '예예' 그 몸도 마음이  명령한 대로 '예예' 해서, 보니까 그 사람의 걷는 것이 영의 주장대로 쭉쭉 걷는  그 생애를 말로 걸어가고 행동으로 걸어가고 성질로 걸어가고 모든 거 그 사람의  생애를 보니 그것이 옛날 앉은뱅이 걸음이 아니고 일어서서, 이제는 일어서 걸어  가. 이제는 새 걸음 걸어, 보니까. 평생 못 걷던 새 걸음 걸어.

 이러니까, 이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이제 집에 돌아가고 본 교회 돌아 가  가지고 일어서서 걸어가. 이제 여기에서 잡아 일으켰으니까, 일으키고 이렇게  접선만 시켰으니까 잡아 일으키기는 저 목사님들이 가서 잡아 일으키십시오.

목사님이 나하고 동업을 합시다. 이제 내가 여기에서 접선시켰으니까 본교회 가  가지고 오른손을 거머쥐고 일으켜. 이래 이래 일으키고 있으면 막 투닥 투닥  투닥 그래 가지고 나중에 발과 발목이 힘을 얻어요. 오른손, 오른손 기억해요,  오른손. 그총 중에 제일 힘 있는 장점, 고 중에 제일 고 장점 하나 붙들면  고것이 들어서 차차차 모든 걸 정복해 나갈 수 있는 고 장점 중에도 고런 장점이  있어요. 변화된 것 중에서. 고걸 거머쥐고 일으키며 차차 차차 발목이 힘을  얻습니다. 이러면, 이제 나은 사람으로서 걸을 수 있는, 새사람의 걸음을 걸을  수 있는. 변화된 사람의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이런데 놓으면 툭 자빠져 버려요.

어제 저 아래 뭐 일어나다 그만 툭 자빠졌지. 기도 좀 더 해. 더 하면  일어나는데, 일어나 가지고 한번 뛰어 봐야지. 이라면서 놓지 말아. 놓지 말고,  놓지 말고 거머쥐고 투닥거려. 자꾸 투닥거린다 말이오.

 그라면서. 그래서, '야, 네가 요번에 지금 아무 것이가 네게 대해서 그거 좀  많이 잘못했는데, 네가 많이 억울한데, 네가 많이 억울한데 어짤래? 많이  억울한데 비인간적인 비정상적인 비기독교인적인 네가 걸음을 걸을래 이제 병  나은 참 기독자의, 성자의 걸음을 걸을래? 해 볼래.' '에, 내가 기도하고 뭐  나는 안 되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되겠지요. 뭐 내 걷지요 투닥거려 쌓으면서  이래 가지고 끙끙 끙끙 앓아 쌓아면서도 그 일을 감당해 나가면 옆에서 자꾸  기도도 해 주고 도와 주면서 '야, 제법이다.' 이라니까 발을 투닥 투닥 거리며  뭐 삐뜰삐틀 그래 쌓아면서 그래도, 민첩하게는 이기지 못해도, 떡 이긴다 하는  것이 뭐 상대방 마음을 반은 상우지만 그래도 제법이라 말이오. 일은 제법이라.

고로고로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서 저 혼자 뛰고 걷고 하거들랑 손 놔. 그라고  난 다음에 할 게 뭐이요? 그라고 난 다음에는 성전으로 들어가. 성전으로  들어가니까 뒤에 따라 들어와요 그라면 그것으로 다 됐어. 여기에서 요  토막까지는 다 했어 인제 그 다음에 앉은뱅이, 나은 앉은뱅이 할 일은 뭐입니까?  이제는 걷는 거 하고 일어서는 거 하고 걷는 거 하고 또 뛰는 거 하고, 또 그  다음에는? 성전으로 따라 들어가고 또 그 다음에는 뭐 할 일 있소? 예? 그  다음에는 뭐 할 일 있지? 예? 보자, 거기 뭐라고 그 해 놨는고 보자. 예?  하나님을 찬미, 옳지 그거 빠졌다. 하나님을 찬미 그거 할 일, 하나님을 찬미.

그라니까, 하나님을 찬미는 뮈이요? 하나님을 찬미는 하나님은 감사하는 거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거라. 보니까 이게 미치괭이가 됐는지 뮈 툭 자빠져도  '감사합니다' '이 자식이 미쳤나? 뭐 자빠졌는데 뭐 감사해?' '아이구 하나님이  안 붙들어 줬으면 나 코가 깨질 뻔했습니다.' 떡 감사 드립니다. 또 떡 일어나  다른 사람이 욕을 하니, 욕을 실컷 얻어먹고 '감사합니다.' '야 임마. 너  미쳤다. 욕 얻어먹고 뭐 감사하냐?' '만일 내가 거기서 벌로 대들었다면 욕이  싶배나 더 올건데 그때 나를 참게 해 주셔서 참으니까 고만 그 욕이 중단돼  버리고 말았으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거 꼭 이유 있는 감사라, 보니까.

가치 있는 감사라 말이오. 이게 찬미라.

 인제 그래 놨으면, 그래 놨으면 목사님들이 노곡동 교회 가지 말아라 이란  목사님들이 '아이고, 또 이제 교인들 다 데리고 가십시오' 이랄 겁니다. 가  가지고, 가니까 과거에는 제가 목사 해도 아무것도 없는 뭣, 뮈 빼짝 마른  누룽밥 그거 먹으면 소화 불량이라 안 되지만 저로서는 그거밖에 없거든, 그래  놓으니까 이거 뭉쳐 가지고 얼마나 만들라고 애를 썼든지 새까만 누룽밥을 똑  솔방울만큼 가져 왔는데 보니까 얼마나 거머쥐었든지 때가 꽉 묻었습니다. 이래  가지고 이거라도 '목사님 이걸 만나지를 못해, 이걸 드리는데' 이거 대접한다고  그게 빠작 마른 누룽밥이라도 목사 대접할 줄 알고 이라니까 그 목사가 기쁘다  그 말이오. 목사를 알고 대접할 수 있는 눈이 떨어졌으니 참 기쁘다 그거요.

만일 그래 놨으면 그만 그 노곡동 집회 자꾸 가라 할거요. 여러분들이 잘못해  가지고 자꾸 욕은 강사만 욕얻어 먹여요. 그래 하지 말아요. 그게 찬미라. 찬미.

감사하는 것, 찬미. 이래도 감사, 찬미. '너 어짤라고 그라노?' '뮈 내 힘은  없지만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됩니다. '야, 네가 힘드는 일 그런 일 하겠나?'  '예, 이제는 뭐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안 하겠습니까?' 그게 찬미라, 그게 찬미.

 찬미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인제, 찬미하고 난 다음에 할 일은 뮈이요? 그거는  단독 할 일 했는데 이제는 고 다음에는 인제 저 단독 가지고는 안 돼. 이제는  기독교 윤리성의 할 일, 기독교 도덕성의 할 일, 기독교 윤리성의 할 일을 해야  돼. 윤리성은 아버지 아들 딸 그게 윤리성이라. 교회도 믿음의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 그게 있다 그 말이오. 거기에도 상하가 있어요. 윤리성.

 할 일인데 그 다음에 할 일은 뭐이지요? 이거는 뉘한데 물을꼬? 물을 사람이  없다. 뉘한테 물어볼꼬? 뭐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어. 안 하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한테 물어 봐야 되겠는데. 할 일이 뭐이지요?  손 붙잡는 거, 베드로와 요한의 손을, 뿔끈 잡고 안 놓을라 합니다. 붙잡고 놓지  안할라 해. 그것이 이제 자기 주관에서 객관으로 나가는 첫 걸음입니다.

알겠습니다? 그게 자기 주관에서 객관으로 나가는 첫걸음입니다. 인제 붙잡아.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 하는 것으로 붙잡아. 자,  이게 고라하고 형제간이요 사촌간이요 아주 타타의 남이오? 예? 고라 고라.

타타인 남이야. 고라는 위의 것 시기해 가지고 제가 왕 될라고 자꾸 이랬어.

주님이 고린도에 말씀하시기를 우리 없이 왕 될라고 하지말고 우리와 함께 왕  되자 한 거와 같이, 이런데, 이제 손을 붙잡고 떨어지지 안했어. 손을 붙잡고  따라갔어. 예수님도 바디매오가 눈을 뜨고 나니까 뭐라 했습니까? 집에  돌아다니다가 좇았소, 어쨌소? 예? 예수님 따라갔소 저거 집에 갔소? 길에서  예수님을 따랐다 이랬소. 길에서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을 섬기는 일 했어.

길에서. 그래. 이것이 이제 자기 주관 행위에서 이제는 발을 넓혀서 객관 행위로  나가는 첫 걸음이 은사 기관을, 은사 기관을, 자기를 낫게 해 준. 자기를  지도한, 자기를 가르친 자기의 신앙 선배를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놓지 안해.

 이라면 '아따, 이제 백 목사 자꾸 자기만 좋아하라고 이란다 여러분들. 나  위해서 말하지 안해. 내 만일 후배라면 여러분들 위해서 하는 것이지 나 위해  하는 것 아니라. 여러분들 그래 봐야 내게 아무것도 말이지 영적 수입이라고  주님이나 기뻐하는 것뿐이지, 오면 잠 못 자지, 오면 말 시켜서 기운 빠지지,  몸치(몸살)하지 뭐 좋을 게 뭐 있다고? 돈 가지고 와? 또 그런 사람 돈도 안  가지고 와요. 뭐 교역자 뭐 돈 가지고 올 게 뭐 있는가? 돈이야 교인들이 갖다  주지. 애만 먹이는데. 이래도 이동을 시킬라 하면, 이동을 시킬라 하면 뭐 다른  사람 '아, 권세 있다. 척척척 이동하고 참 좋겠다. 영광이다' 하지만 이동하면,  요 교회서 못 쓸 교역자 된 걸 요걸 이동을 해 놓으면 고게 또 저 교회 가  가지고 못 쓸 자 되기 때문에 요 교회서는 벌써 안 됐고, 다 알고 나니 안 됐고  조 교회 가지고 못 쓸자로 되기 전에 요걸 고쳐야 되기 때문에 고만 사람이 고게  녹아. 그거 뭐 데리고 뭐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자꾸 타일러 가지고 나중에  요걸 이해를 시켜 가지고 거기에 가 가지고는 실수를 하지 안하도록 요렇게  할라고 하면 고만 녹아 나는 거라. 뭐 뭐 좋을 게 있어야지? 그래서, 그럴 때는  학비를 받아야 되겠는데 딱 학비 받을라 하니까 '네가 나한테 그저 받았으니  그저 줘라' 하니까, 요 성구 보니까 꼼짝도 못 하고 학비도 못 받아. 그저 자꾸  줘야지. 이라니까 어찌 됐습니까? '붙잡으니' '붙잡으니' 그 다음 뭐  합니까?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이라니까 이거 보고 처음에는 놀랬다  했는데 이번에는 모든 백성이 놀랬습니까 크게 놀랬습니까? 놀랜 것이 큰  운동이오 크게 놀게 것이 큰 운동이오? 여기에서 되는 거라. '암만 돼 봤자  그것들은 콩 모양으로 낱개로서는 또글또글하게 야물고 크지만 뭉치지 못하기  때문에 물렁 물렁한 밥띠기만 못해.' 밥띠기는 물렁 물렁하나 자꾸 뭉치니까  이만한 뭉쳐 가지고 떡 덩어리가 돼 지는데 콩 그거는 암만 야물라 봤자 한  개밖에는 안 되니까 뭉치지 안하니까 시시하요. '야, 거기 보니까 아주 참 병이  치료가 돼서 나고 나고 새로 나고 새로 나고 새로 나고 새로 나고 됐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서로 뒤죽박죽 서로 왕 될라고 뭐 싸워서 속에는 엉망진창으로  속에 보글보글 기고 있더라. 에이 거기도 소망 없다' 그만 다 도망 가 버리는  거라. '이상하다. 나면서 앉은뱅이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아, 그게 일어나  걷지, 뛰지, 또 하나님을 찬미 하지. 성전으로 들어가지, 이상하다' 이래 봤는데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놓지 않고 이제까지 메어다 놓은 그 사람들 다 떼 내  버리고 베드로와 요한을 불잡고 놓지 안하고 이라니까 크게 백성들이.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야, 이 뭉텅이가 이거 깨질 뭉텅이 가 아닌데. 이 뭉텅이가  좋은 뭉텅이인데, 이 뭉텅이가 기이한 능력의 뭉텅이는 뭉텅이인데, 이 뭉텅이가  승리하고 성공할 뭉텅인데' 하면서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이라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행각으로 가니까 이게 쭐쭐 뒤에  따라오니까 모든 사람은 막 거기 따라옵니다. 크게 놀라며 쭉 따라왔어. 다  따라왔으니까 이제 뭐 저자 사람 됐지 뭐 별 게 뭐 있겠소? 그래 와 가지고.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무슨 말이오? 왜 기이히  여기느냐? 기이히 여기느냐 그 말은 무슨 말이냐? 너거가 무슨 처음보는 일같이  그렇게 기이히 여기느냐? 뭐 별스러운 일같이 기이히 여기느냐? 별일 같이  기이히 여기느냐? 너거가 처음 보나, 처음 아나? 왜 기이히 여기느냐? 수많은  선지자들이 얼마든지 말해 놓고 이랬는데, 하나님이 예약해 놨는데 예약해 놓은  대로 됐는 데, 뭐 예약해 놓은 대로 됐는데. 하나님 신실하다고나 말할 일이지  뭐 기이히 여기노? 이래 놓고 이제 풀이를 해 나갑니다.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 뭐 열 명 백 몇 천명 만 명 뭐 인간만의  무슨 권능인 줄 아나? 너거 선지자들이 뭐라고 말했느냐? 하나님의 목적, 예정,  창조, 보존, 섭리, 도성인신, 사활의 대속 이렇게 아브라함의 씨가 나면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구원을 얻어리라고 몇 번이나 여러 선지자들이 다  말했는데 뭐 너희들이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으로 된 줄 아느냐? 개인의  권능으로 된 줄 아느냐? 우리 개인의 것으로 되지 안했고 뭐로 됐느냐? 계통이  있어 됐어, 계통,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우리 조상의  하나님. 그 계통, 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그 계통. 그러면, 낫게 된 것은 뭐로  나았습니까? 낫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하나님 믿고 복종만 하는 종. 하나님을 믿고  복종하는 그 복종이 이렇게 영광스럽다, 이렇게 권위있다, 이렇게 승리한다. 그  복종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는 것을 너희들에게 보이는 것으로 하지 안  했느냐 요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앉은뱅이는 이거 붙들고 따라오는 것으로 다 했어, 사회 문제는,  윤리 문제는 이것으로 다 됐어. 윤리 문제는, '어디서 배운 데를 알고' 자기  선배를 알고 지도자를 알고 고만 거기에 다 들어붙어 속하면 그 다음 것은 그  다음에 붙고 그 다음 것은 그 다음에 붙고 뮈 억억억억 만 명이라도 붙고 붙고  이라면, 또 선배는 어디 붙었는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었지. 그라면 다  돼.

 그라니까 은사 위치에 있는 베드로와 요한의 할 일은 뭐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아, 참 위대합니다. 권능입니다. 위대합니다. 권능입니다.' 이라니까 '허허,  네. 뭐 그저 그리 됐지요. 뭐 기도하면 다 돼요. 내손만 가면 다 돼요. 내 손만  가면 다 돼요. 주물면 다 돼요. 주물면, 주물면 다 돼 버려. 주물면 다 낫아.'  이랄 건데, '우리 개인의 권능이나' 이 말은 지극히 큰 계통적인 운동인데  거기에서 된 것인데 우리 뭐 개체 뭐로 가지고 된 것 인 줄 아느냐? 개인의  권능으로 된 것인 줄 아느냐? 또 우리의 무슨 개인의 뭐 경건, 하나님 섬긴다고  뭐 하는 이걸로 섬기는, 주여 주여 하는 이거 가지고 되는 줄 아나? 이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하나님의 목적, 이 지극히 큰 운동. 완성의 사죄 칭의의 화친의  모든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법을 만족시킨 이 지극히 큰 의 이로 말미암아  되는데 우리 무슨 개인의 경건 가지고 뭐 된 줄로 아느냐? 왜 우리를 주목해  보느냐? 딱 거절해서 비행기를 타지 안했습니다. 비행기를 타지 안했어.

비행기를 타지 안했어.

 아, 여기에 몇 명이나 됐는지, 한 뭐 몇 건이나 됩니까, 합해서? 안 써 가지고  나왔나 아직? 몇 건이라? 백 구십 오 건, 백 구십 오 건. 이랬으니까 '아따야,  백 목사님 참 권위 있다' 백 목사님은 지금 걸어도 용기 있게 걷도 못하고  뻘뻘뻘뻘 떨면서 간신히, 여러분들 나 보면 알지. 잘 걸어가지 못하고 뛰뚱뛰뚱  거리며 자빠질까 싶어서 장 거머쥐고 나만, 나만 일어서면 모든 사람들이 얼른  와서 손잡습니다. 쳐박힐까 싶어서. 이거 제 병도 못 고치는 거라. 알겠소?  여기에 말하기를 '이 사람이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느니라.' 고친 능력은 그 이름이 고친 고 이름이 고치는 그  고침을 끌어오기는 뮈이 끌어 왔습니까? 뮈이 끌어 왔소? 누구 믿음입니까?  앉은뱅이 믿음이라, 앉은뱅이 믿음. 앉은뱅이 믿음.

 그러니까 뭐 백 목사는 좋아, 좋아할 거나 하지, 좋기나 좋지 뮈 제 뛰뚱거리는  병도 못 고치는데, 내가 고치는 것 같으면 나부터 떡 고쳐서 훌훌 날아다니구로  좀 해 놓고 난 다음에 뭐 하지. 그거는 주님이 고쳤기 때문에. 내가 고칠 능이  없기 때문에 나도 기도를 합니다. 고쳐 달라고 고쳐 주면 다행인데 내거는 안  고쳐 줘. 안 고쳐 준다 그거요. 나도 눈에 백내장이 양쪽 눈에 다 있어 두 개  있어. 백내장이 두 개 있는데. 한십 칠 년 됐는데 만날 생각날 때마다 눈을 좀  고쳐 주십시오. 이래도 안 된다 소리도 안 하시고 된다 소리도 안 하시고  오늘까지 묵묵무답이라. 묵묵무답. 그래 하도 그래 아무 거석이 없어서 아마  고쳐 줬는 갑다 싶어서 저 먼저 안과에 가서 진찰을 한번 했어. 가서 '아, 그  백내장이 어찌 됐습니까? 백내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있습니다.' '어찌  됐습니까?' '뭐 그전에 본 대로 그대로 있습니다.' 고대로 있지 낫지는 안했다  그거요.

 이러니까, 사람이 한 게 아니라 말이오. 이런데, 베드로가 그때 넙쭉 받아  가지고 '아이구, 참 베드로 선생님 대단합니다. 장합니다.' 이래 가지고 치켜  올라갔을 때 만일 들려 올라갔더라면 탈바닥이 됐지. 들려 올라갔더라면 들었다  가서 탁 떨어지면 그러면 탈꼭 깨질 것 아닙니까? 아예 그런 데는 이거 알았기  때문에 백 목사는 들려 올라가지를 안합니다. 암만 뭐 여기 뭣이 어떻게 된다  해도 거기 가 가지고 들려 올라가면 깨질 줄 알기 때문에 안 들려 갈라고 그런.

들려 가라고 마귀란 놈이 시험해도 안 들려 올라갈라고 기도도 많이 했고 딱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꾀에 안 떨어져요. 주님과 여러분들이 하셨어. 여러분들  자신들이. 나는 접선시키는 일만 했어. 베드로처럼 접선시키는 일. 뭐 지극히 큰  능력에다 접선시키는 일만 했어. 접선시키는 일 뭐로 했는데? 내 입으로 했어.

입으로. 내 말로. 또 기도도 하기는 했어요. 또 시켜 줄 걸 믿는 믿음도 또 좀  들기는 들었어요. 이래도 접선되는 것은 여러분들이 믿는 그게 접선된 것이라.

 이래서, 베드로가 그 다음에 남은 수습의 위험성이 있었는데 아주 참 성공은  했지만 바싹 깨질 뻔한 위험성이 있었는데 그 위험성은. 떡, 막 벌벌 떨면서 '왜  우리를 주목해? 왜 우리를 주목해? 우리 뭐 개인의 권능이나 우리 경건 가지고  된 줄 알아? 아니야. 왜 우리가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해?' 냉정스럽게 딱 떼  걸어 놓으니까 안 상했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 알겠습니까? 잘못하면 상합니다.

이 일은 어떤 몇 십 명 몇 천 명의 단체나 무슨 개인이나 그게 아니고, 영원  자존하신 그분이 하나만으로 정하신 목적 그 목적을 위하여 이렇게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도성인신 어려운 것까지 하시고 십자가의 사활까지 하시고 하나님이 성령을 송장  속에. 송장보다, 산다씽이 세계 아무데 돌아다녀도 모두 다 기뻐하고  즐거워했는데서 장에 가 가지고, 사람을 거기는 사형을 시킬 때에 굴을 깊이 파  놓고 거 기다가 집어 넣어서 사람이 여러 수천 명이 그 안에 썩고 썩고 한 그런  데 인데, 그 안에 들어가니까 어면게 악취가 심한지 못 살겠더랍니다. 고만  거기에서 산다씽은 항복했습니다. '아이구, 주여. 내가 죽겠나이다. 나를  도우시옵소서' 이렇게 했더래요.

 이렇게, 잘못하면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쉬워. 이래서, 냉정스럽게 딱 몇 걸어  버렸어. 이랬는데, 어떤 사람은 떡 말하기를 '나는 사십 일 동안 단식 기도를  했습니다.' 이것부터 집회 할라 하면 떡 간판을 내 걸어 놓고 '사십일 단식  기도' 또 그 다음에는 '신유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 뭣이 어떻고 뭣이  어떻고 신유의 은혜 있다고 하는 그 집회에 신유의 은혜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만일 '신유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는데 그런 데서 뭐 병 나은 것 열 건만  있으면 막 굉장할 거로구만. 여기는 백 구십 다섯 건이라 하니까 아마 있는 것도  많이 있어요. 많아요. 암병도 낫았지 코병도 낫았지 눈병도 낫았지. 발병. 다른  사람은 자꾸 '나는 발에 무좀 병 나았다' 이라는데. 자기는 생각도 안 했는데  '나는 보자, 발에 무좀이 어찌 됐는가?' 무좀 보니까 없더래요. 몰라도 벌써  주님이 오셔서 필요한 대로 다 해서 주십니다. 어제 모두 박수했는데 어떤 아이  어머니가, 날 때부터 불알이 서이라. 이런데, 그래 여기 예배보고 나가 가지고  천막에 가 가지고 아이 띠를 띠며 보니까 한 개 없어져 두 개 뿐이래요.

구하기는 했는가? 구하지도 안했는데. 주님이 다 그렇게 해 주셨지.

 여기, 내가 여기에 백 구십 다섯인데 몇 개 읽어 봤습니다. 읽어보니까, 그 참  읽어보니까 참 우스워. 주님이 어떻게 본인이 알 수 있도록 그렇게 했는지, 요런  사람에게는 요렇게 알 수 있도록, 고 알 수 있도록 주님이, 고게 하나님이 한 거  아니라고 고집을 피우고 했는데 기어코라도 고거, 어떤 거는 그라니까 금방 도져  가지고 막 못 견뎌 겁이 나 가지고 '아이구 하나님이 나에게 해 주셨습니다.'  이라니까 또 금방 낫고 고렇게 까지 이래 보니까 고 정도에 따라서 어짜든지  하나님 인정해 달라고, '나를' 인정해라. 내가 하는 모든 말이나 모든 거 다  인정해라. 인정하고 인정한 자로 네가 살고 인정한 자의 누릴 평강과 행복과  평강과 담대함을 네가 누리고 인정함으로 너에게 이래라 저래라 행하라는 대로  행하는 것은 전부 다 진주요 보배요 모두가 다 부강이 돼지는 것이니까  시키는데로 해라'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시는데, 도무지 주님은 뭐 딴거는 다 할  수 있는데 인간을 인정하게 하는 거 인정하게 하는 것, 인정하게 하는 것과  인간이 인정한다고 입술로만 인정하지 얼굴 보면 인정 아니고 마음보면 인정  아니라. 인정하는 마음, 인정하는 몸, 인정하는 피부 인정하는 정신. 인정하는  태도 이게 돼야 될 터인데 인정하는 게 안 된다 그 말이오. 인정하는 이것을  하라고 권면하셔서 '네가 인정해라. 인정한 자가 되라. 인정한 자 되고 시키는  대로만 해라' 이게 제일 소원인데.

 나면서 앉은뱅이 나은 것도 다른 사람은 몰랐는데 사도들은 알았어. 우리  개인의 권능이나 우리 경건으로 된 줄 아느냐? 아브라함의 하나님 막 주  재낍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브라함은 무슨 말이라 말이오? 믿음의  아브라함의 하나님, 믿음의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브라함은 믿음의 아브라함.

믿음의 아브라함 믿음의 이삭 믿음의 야곱, 하나님 인정한 아브라함, 인정하고  고대로 순종한 아브라함, 하나님의 포원이 인정과 순종이오. 하나님의 소원은 이  외에 없어. 이 외에 딴거는 아무것도 당신이 원하는 게 없어. 뭐 돈을 바치라  하는 그런 것도. 돈이 필요 없어오 인정하나 안 하나 순종 하나 안 하나 그거  보니 위해서 왔지. 인정하고 순종하면 당장 열 배나 백 배나 주는데 뭐. 그것  필요하면 뭐 웅쳐쥐고 말지 주십니까?  이러니까 인정에 포원되신 하나님이, 인정자의 하나님이 제일 인정, 제일 복종  인정하는 인정 제일 잘하고 인정 제일 복종 잘하는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했다 그렇게 똑똑히 증거를  해 줬습니다. 자, 이제 여러 시간 자꾸 이 말만 하니까. 자, 불쌍한 사람이  몇이오? 손가락으로 가리켜요. 불쌍한 사람 몇? 저 뒤에도. 이게 사는 것이오.

이게 순교도 되고 다 돼요. 또, 복 있는 사람 몇? 아따. 마귀 이놈 인제 죽을  지경이다. 마귀 그놈 지금 뭐 흘껴서 지금 막 야단났다고 지금 동동걸음 칠  거다. 암만 쳐 봤자 뭐 그 까짓 거 뭐 소용 있는가?

 자, 불쌍한 자는, 고것만, 불쌍한 자는 뭘 하는 자입니까? 저 뒤에는 뮈 대답  안 하네. 불쌍한자는 뭘 하는 자입니까? 저 뒤에, 자, 불쌍한 자는 뭐 하는  자입니까? 같이 가면 좀 좋지, 거만스럽게. 복있는 자는 뭘 가진 자입니까? 네,  가지고 또 다른 사람에게 또 줄 수도 있고 참 좋은 거 가졌습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지극히 크셔서 천상 천하에 보이는 모든 것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서 지으시고 오늘도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홀로 보존하시고 홀로  관리하시고 홀로 주권하시는 주님을 알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지극히  큰 생명 운동에 포함시켜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영영히 지극히  크고 비밀인 이 사실을 알리시고 소속시키시고 영접하여 내것으로 모시게 해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주 대속의 피로 말미암은 것을 아옵고  감사를 드립니다. 이를 우리에게 속속들이 충만시켜 주시기 위해서 영감과  진리를 보내 주신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지극히 큰 능력의 운동  알파와 오메가의 운동. 영원히 변동이 없는 운동 영원히 영원히 알파와 오메가의  지극히 큰 운동, 없는 가운데서 수많은 것들을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것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시는 이 모든 것이 이 생명 운동을 위하여 이용되고  이바지하는 이 지극히 큰 근본인 생명 운동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인정케 하사 이  운동의 능력을 영원히 영원히 힘입어 살게 하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이 시간도 사람들이 인정하든지 안 하든지 이를 생각지 않습니다. 이  능력의 운동을 인정하는 자들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인정함으로 인정한 증표가  저들에 영육에 확실히 증거로 나타나게 해 주시옵소서! 이 운동을 저희 위한  것인 것을 깨닫고 이 운동에 믿음으로 연결되어 이 운동의 능력의 혜택을 입은  표적으로 모든 안팎의 인간병을 완전히 치료해 주시고 고기덩어리의 병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완전히 이 능력이 낫게 해 주시옵소서!  낫고 난 다음에 범죄하여 더 큰 증세를 받는 자 없게 하시고. 주님은 아시오니  범죄하여 더 큰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자라도 이 시간 낫게 해 주시옵소서. 낫고  범죄하면 주의 약속의 예언대로 더 큰 증세가 나서 그가 죽든지 어떻게 하든지  할지라도 죽기 전에 회개하면 다시 주님의 고쳐 주심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러면, 미혹하는 우리의 원죄와 본죄를 가지고 들이 덮는 악령의  역사가 다 물러가겠사옵고 이것을 배척하는 자 되고 다 믿는 자 되어서 주의  주시는 건설구원이 가속도로 이루어질 것이 아닙니까? 주님이여 이 일을 이루어  영광을 받으시고 뜻을 이루시옵소서! 주의 지극히 크신 능력에게 소속시키고 이  능력이 와서 역사 하시옵소서!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시행하리라고  계약하신 주의 계약을 의지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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