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씨름

 

1988. 5. 29. 주일오후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4절-5절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마태복음 5장 13절에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데도 쓸데 없어 밖에 버림이 되어 사람에게 밟힌바 되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든지 녹아지기는 녹아집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결국은 저희의 건강이 다 녹아지고 생명도 녹아지고 마지막에는 죽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자가 바로 녹아지면 참 말할 수 없는 존귀한자가 됩니다. 모든  존재에게 필요한 자가 되고 또 모든 것들에게 다 환영받는 자가되고 또 자체가  심히 큰 가치를 마련하게 됩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데 없다, 밖에 버린다, 사람에게 밟힌 바 된다.’ 그래  세 가지를 말했는데 사람은 아무래도 녹기는 녹습니다. 아무래도 늙기는  늙습니다. 자기가 무슨 사업을 하든지 또 안 약해질라고 체육에 전력을  기울이든지 또 자기는 참 장생불사할 그런 소원을 가지고 노력을하든지 어쨌든지  사람은 녹기 마련입니다. 한정된 기간이 있어서 그 기간이면 다 녹아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안 녹올라고 애를 써서 별별 위생이나 방편을 취하는 것도 그것도 다  헛된 일입니다. 또 자기는 녹아지는 그 자기의 정력을 가지고 이것 저것 가치  있는 일 하겠다고서 제 나름대로 제일 요게다가 내 정력을 투자하면 가치 있겠  다 그렇게 생각들을 하고 제각각 모두 무대를 정해 놓고 거기에다가 일생을  바칩니다. 그러니까 기간이 되면 다 쪼글쪼글 해 가지고서 아주 참 볼품 없는  그런 허무한 반송장같이 되다가 마지막에는 그만 송장으로 땅 속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맛을 잃으면 그렇게 비참하게된다 하는  말은 우리 사람들이 육의 일생이 다 녹아지기는 녹아지는데 이 소금의 간과 같이  우리를 주님의 대속으로 값 주고 산 주님의 이 구속을 인해서 구속으로 녹으면  그는 참 말할 수 없는 존귀 한 가치가 되지마는 구속으로 녹지 안하고 달리 녹는  것은 ‘쓸데없다’ 쓸모 없게 됩니다.

 자기라 하나님에게 주셔서 타고 나온 그 자원인 정력을 가지고서 세계에 유일한  정치가가 됐으면 쓸모 있는 줄 알지만 정치가 된 그도 영원히 쓸모 없는 인간  됩니다. 과학에다가 다 정력을 기울여도 그는 쓸모 없는 인간 됩니다. 뭐  도덕에다가 기울여도 쓸모 없는 인간 됩니다. 또 사회나 자기 가정에나 자기  행락에나 아무 데 기울여도 다 도매금입니다. 다 갈습니다. 다 쓸데없는 인간  됩니다.쓸모없는 인간 됩니다.

 ‘밖에 버리워’ 그러면 쓸모 없을 뿐 아니라 모든 것에 버리움 받습니다. 모든  것에 배척받습니다. 영원히 배척받습니다.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하는 그 말은  모든 존재에게 짓밟혀서 천대받을 것뿐이라 그말입니다.

 성경에는 짝 없는 말이 없으니 그러면 사람이 맛을 잃지 아니하고 기독자가  기독자의 그 진미를 잃지 아니하고 기독자가 참된 기독자로서 그 정력이 다  없어진다고 하면은 죽기는 꼭 같이 죽지마는 기독자가 기독자의 본질과 본성으로  늙어 죽어진다고 하면 그 생활 전부는 다 쓸데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쓸모 있고 사람에게도 피조물에게도 마귀에게도 아무것에게도 쓸모 없는 데는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가 쓸모 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황불 구렁텅이에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도 다 쓸모가 있어서  주라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밖에 버 리워’ 하는 반대로 전체가 환영  받습니다. 모든 존재에게 우리가 환영받는 유일한 길이 뭐인가? 모든 존재에게  내가 없어서는 안 될 필요 있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지는 것이 길이 어덴가?  또 모든 존재에게 밟힐 반대에 존대를 받는 그런 길이 무엇인가? 그 길은 소금이  맛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녹기는 녹습니다. 어째 늙어도 늙고 죽기는 죽는데 기독자의 본질인  오전에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우리가 받은 것을 대속 받아서  대속을 믿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 대속을 믿는 것이며 대속을 받아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이 가지고 있는것인가?  주님이 성찬식에 말씀하시기를 내 몸을 기념한 떡을 먹어 너희들이 기념하라 또  내 피는 너희들에게 생명의 언약이니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이랬습니다.

 기념하는 것은 어떤 게 기념하는 것인고 하니 주님이 나를 대형해서 사죄해  주신 그 사죄를 내가 계속 기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대속으로 사죄해  주신 그 방편의 역사를 내가 계속 하는 것이 그것이 기념하는 것입니다.

기념이라는 것은 어떤 그 큰 행사가 있는 것을 그후에 계속해서 그 행사와 같은  행사를 계속하는 것을 가리켜서 기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대형으로 사죄해 주시고 대행으로, 칭의해주시고  대화친으로 이렇게 생명을 주신 이 세 가지 대속을 내가 받았으니 이 받은  대속을 주님이 하시지 우리는 할 만한 능력이 없지마는 이 대속을 하는 것으로,  주님이 날 대속하심 같이 나는 그대속을 받았으니 그 대속을 계속 고 모양, 고  형태, 고 정신, 고 방식대로내가 계속하고 있는 것이 주님의 대속을 내가 받은  증거고 또 그 대속을 내가 기념하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이 세 가지 대속을 기념하면서 늙는 거, 기념하면서 늙는 것, 세상애서  뭐 정치하다가 또 그 무슨 과학을 건설하다가 문화 건설하다가 또 자기 생각대로  나름대로 별별 일을 하다가 없어진 그것도 다 헛일이지마는 예수님의 세 가지  사죄와 칭의와 화친 이것을 내가 받아 기념하는 이것으로서 끝난 그것은 세 가지  가치를 가진다하는 것을 여기에 마태복음 5장 13절 이하에 말씀해 놨습니다.

 하나는 모든 존재에게 쓸모 있다. 너 없으면 안 된다 아무데라도 그것이 없으면  안 된 그렇게 모든 존재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또 모든 존재에게 찌아내는 게  아니라 다 영접해 들여서 환영받는 것이 되어지고 또 밟히는 반대에 존대함을  받는 것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이미 늙는 늙음에, 이미 늙어 죽는 죽음에 요 세 가지를 기념하는 그 기념  행사로 일생을 늙어서 없어졌다면 그것은 참 없어진 게 아니라 지극히 존귀한  것으로서 영원히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통치할 수있는, 이 피조물이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인성과 신성이 하셨는데 신성은 근본부터 하나님이시지마는  인성은 피조물입니다. 우리와 꼭같은 피조물이오. 우리와 꼭 같은 피조물인데 그  피조물로서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난 하나님 아버지 우편 그 보좌에 앉아서 모든  것살 심판하고 모든 것에게 봉사해서 무궁세계에는 예수님의 그 인성인 피조물  그 피조물의 혜택을 입지 않고는 영계에나 물질계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살지를  못하는 그런 필요한 중보자요 또 모든 것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이 봉사의 존영올  가진 자인 것입니다.

 이래서,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쓸데 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하는 것을 우리가 깊이 새겨서, 아무래도 늙기는 늙습니다. 오늘 하루  해 동안 제가 안 늙을라고 애를 써도 늙고, 또 아무리 뭐 고량진미를 먹어도  늙고, 또 모든 근심 걱정 없애고 기쁨으로 해야 안 늙어진다고 해도 늙습니다.

어쨌든지 늙고 죽습니다.

 그런데는 우리가 본 성도의 맛인, 성도의 맛인 사죄, 칭의, 화친의이 세 가지  기독자의 본질 본성에 이 본분으로 그렇게 녹아지고 늙어지면 가치 있는  걸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본 대로 책망할 것 있다 이랬는데 이 에베소교회는 참 일  많이 한 교회입니다. 착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런 것이 다  소용이 없다고 정죄를 하신 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소용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이 뭐인가? 처음 사랑은 우리가 예수  믿을 때에는 다 이사랑을 가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형으로 사죄 주신  거기에 감격이 돼서 우리는 심히 어렸지마는 그래도 자타를 그 죄에서 구원하고  싶은 그런 본능이 생겨졌고, 또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이 의를 입어서 의를  건설하는 의로운 자가 되게 하려는 그런 본능이 우리에게 있었고,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해서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 아버지세게로 화친을 시키고 친근케  할라고 하는 그런 역사들이 있었는데 그 세 가지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아무리 땅 위에서 인간 보기에 별별 선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다른  것을, 그 죄라면 삐뚤어진 것인데. 그 삐뚤어진 것을 없애려고 하는 그 삐뚤어진  것을 없이 할라고 삐뚤어진 데에서 구원할려고 하는 요 희생의 노력, 또 바로  세울라고 하는 그 희생의 노력, 또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과 인간, 인간과 만물  그 사이에 이 화목을 이후기 위해서 희생의 노력 이 세 가지 희생의 노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 했습니다. 우리는 명예심으로도 얼마든지 선한 일 할  수가 있고, 또 우리는 무슨 다른 야욕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마는 꼭 주님이  나를 대형을 하심으로써 사죄 주신 요것을 기념하고, 대행으로 칭의 주신 요것을  기념하고, 대화친으로 나를 대속하신 것을 기념하는 거,  요 세 가지에서 사람을 구원하고 요 세 가지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고 희생,  이 세 가지로 사람을 구원코자 하는 희생 요것만이 가치 있습니다. 요것만이  가치 있습니다. 요것으로써 산 것은 다 모든 존재에게 다 이용 가치 있어서,  필요하고 환영받고 존대받고 하는 것이오.

 이것이 없으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과 떨어진 걸  말하는데 하나님과 끊어지는 것은 우리들에게 이 그리스도의세 가지 대속을 내가  입을 것을 대속을 입은 이 사랑을 생각하고 대속을 입혀 주신 이 사랑을 내가  받아서 이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이 세 가지로대속하려는 그 노력과 희생 요것이  끊어지면 하나님과 끊겨집니다. 요것이 끊어지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집니다.요것이 계속될 때에는 하나님과 나와의 끊겨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 사죄, 그냥 희생 암만 해 봐야 소용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대형으로 사죄했고 대행으로 의를 세우셨고 대화친으로 이렇게 생명 주신 사죄  칭의 화친의 세 가지 주님의 그 사랑을, 사랑으로 내가 이 세 가지 대속을 입은  것을 자기가 깨닫고 입은 것을 믿으므로 이 입은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이 입히는 그 행동하는 그것이 바로 주님과 연결된 행동이요 그것이 등대의  빛이 됩니다. 그것리 등대의 빛이 됩니다. 고것이 주님과 연결된 행동이요 그  행동으로만 우리는 세상에서 빛의 본분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냥 아무리 사람들이 뭐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의학적으로  노벨상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지마는  그것은 다 세상에서는 빛이라 하지마는 주님은 아무 쓸테 없다고 주님이 에베소  교회를 버림과 같이 그렇게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어데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 그러면 이게 떨어지는 것이라: 이기념이  없으면 우리는 주님의 세 가지 대속의 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대속의 구원을  내가 받았다는 증거가 뭐이냐 하면은 이 대속을 기념하는 것이 받은 증거입니다.

이 대속을 기념하는 것은 곧 이 대속을 다른사람들에게 전하고 내가 이 대속  운동을 내가 계승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세 가지로 대속하신 이 대속을 내가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계속  행동하는 그것이 기념하는 거요 대속을 받은 증거요 그것이 곧 주님과 연결돼  가지고서 대속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여’ 회개하라 말은 이제 처음 사랑을 버린, 이 세 가지 대속을  받았으니 이 대속을 받은 증거 곧 이 대속을 내가 계속 지금 그 행동을 하고  있는 것, 우리가 이 세 가지, 대형 대행 대화친 이 세 가지 행동의 희생 그것이  곧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것이요 성령을 기념하는 것이요 요것이 하나님과  끊기지 안하고 연결되어 있는 요 행위요 이것이 등대가 그대로의 제 본분을  행하는 것입니다.

 ‘촛대를 옮긴다’ 그말은 촛대가 옮기면 거기에는 빛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옮긴다’ 말은 촛대를 없애 버린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요 세 가지 노력, 우리 할 일은 이 세 가지 노력만이 우리 할  일인데 이 세 가지 노력을 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연결된 증거요 이 세 가지  노력을 하면은 그것이 촛대된 하나님의 교회가 된 촛대된 본분을 행하게 되는  것이라. 그래서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는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러면 요 세 가지 생활이 계속되는 요 계속 세 가지 계속  생활이 없어지면 우리는 빛을 잃습니다. 우리는 생명이 없고 또 쓸데 없는 것이  되어집니다.

 7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이긴다 말은 이 세 가지 대속을 받은 이 대속을 내가 받은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이 대속의 역사를 내가 기념하는 것으로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기념이라 말은 어떤 행사의 기념이라 어떤 물건을 기념한다 이러면 그 있었던  그것을 그 뒤에 그와같은 그 모형으로, 처음에 있은 거는 원형이 된다면 그  다음에는 모형이 되는 것인데 처음에 있었던 거와같은 그와 같은 그 형상을  계속하는 것을 가리켜서 기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 이것은 원형으로 하신 일인데 원형이라면 근본  원형, 으뜸되는 근본 행동 원형이 되는 행동인데 그 행동을 닮은 모형 행동을  우리가 계속하는 것이 기념하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된  생활입니다.

 그거 끊으면 연결 끊어지고 그거 계속하면 연결되고 그 연결되면 빛을 나타낼  수 있어서 교회의 본분 우리 기독자의 본분을 할 수 있고 그거 끊어지면 본분을  하지 못하고 촛대는 옯긴다 이랬습니다.

 그랬는데, ‘이기는 자는’ 그 생활을 계속하는 자는 하는 말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세속하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그러면 낙원에 있다 말입니다.

하나님의 낙원에 가서 살 수 있다.

 낙원에 살 수 있다 그말은 낙원은 이것은, 하늘나라는 하늘나라의 실상이요  세상에 있는 하늘나라를 가리켜서 낙원이라 그렇게 여기에 표현한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죽음이 없고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고 슬픔이 없고 모든 곡하는 것과  모든 불행이 없고 평강과 모든 소망과 강건뿐인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그린 말을 할라면 많아야 되는데, 하나님의 낙원이라는 것은 이  낙원은 곧 땅위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땅위에 있는 천국지상 천국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낙원 생활 세상에서 근심. 걱정, 고통, 번민. 불안. 불만 불평 이  모든 그런 사망에 속한 종류의 것들이 하나도 없고 전부 생명에 속한  것들만으로서 가득 찬 그 세계가 하나님의 낙원인데,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낙원인데 이 낙원 생활은 무엇으로서 사람이 할수 있는가?  그러면 기독자가 이렇게 아무리 뭐 훌륭하다 하고 또 다른 사람이 볼 때에 그  사람은 행복되다 남이 볼 때에 행복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마는  자신이 자신을 볼 때에 행복된 사람은 별로이 없습니다. 자신이 보거나 남이  보거나 모든 게 다 봐도 진정 그 행복된 사람은 낙원 생활입니다.

 그러면, 기독자가 죽음 앞에서도 죽음이 없는 낙원에서 살고 그 원수들이  수없이 다 집중 사격을 하는 그 천천만의 원수 있는 거기에 포위한 거기에서도  항상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강하고 담대하고 그 생기가 청청한 그런 생활은 곧  천국 생활인데 땅위에 있는 하나님의 낙원입니다.

 그러면, 기독자가 이렇게 모든 불행이 없고 행복된 생활은 낙원인데 이 낙원  생활은 어떻게 하면 이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느냐?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곧 이기는 자, 이기는 자, 이 처음 사랑을 가진자, 다시 말하면 기독자가 이 세  가지 예수님이 대속하신 이 대속을 입은 것을 자기도 모든 사람들에게 이 대속을  입었다는 이 증거의 기념 생활, 자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이 대속 생활하는 이  생활 하는 이것외에는 낙원에 들어가는 길이 없고 하나님과 연결되는 방편이  없고 세상에서 빛으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방편이 없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한다’ 그말은 생명나무 과실이라 말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된, 성령과 자기와 연결된, 진리와 자기와 연결된,  하나님과 연결된 그 결과를 자기가 먹는다 그말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그 결과의 행위, 그 성공, 하나님과 하나되어 성공하는 그  성공을 인생들이 가져서 자기의 인격의 양식을 삼을 수가 있다 그것으로서  배불리 살 수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소금이 맛을 잃으면 먼저 쓸데 없고 밖에 버리우고  사람에게 밟힘됩니다.

 우리가 아무래도 뭐 한정이 있는 데 가면은 다 녹아지고 없어집니다. 오늘이  녹아지는 끝날인지 내일이 녹아지는 끝날인지 모릅니다.

 어쨌든지 우리가 세상에서 잘 늙고, 잘 늙고 잘 죽으면 참 말할 수없는  영광스러운 자가 되지마는 세상에서 헛되어 진리 잊어버리고 자기의 본분  잊어버리고 자기는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입었는데 이 세 가지 대속을  기념하는 일 이 세 가지 대속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일로서 주의 대속을  기념하는 이 성도의 생애 이것으로 녹아지지 안하고 이거 버리고 녹아진 것은 온  천하를 얻기 위해서 녹아졌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쓸모 없는 자기를 만들었고 또  모든 존재에게 버림을 받는, 하나님과 피조물에게 버림을 당하는 존재를  만들었고 모든 존재에게 다 짓밟힘을 당할 수 있는 자기를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인생의 가치 있는 생애를 가르쳤습니다.

 이러니까 처음 사랑의 행위를 가지라. 처음 사랑의 행위 를 가지라. 이거  가지면 하나님과 연결되고 세상에서 아의 본분을 하고, 우리 빛의 본분을 하고,  또 ‘세상에 아무데도 이보다 더 기쁘고 즐거운 이런 낙원생활이 없고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즐겁고 행복스러워 뭐 피조물이 어떻게 한다 해도 피조물이 해할 수  없는 기쁘고 즐거운 행복의 세계에서 살고, 또 하나님과 전지자 절대자 완전자와  연결돼 가지고서 그분과 연결된 그 생애의 결과를 네가 양식 먹을 수 있는 이런  생애가 곧 처음 사랑의 행위를 가지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의 행위 가지는 것은 세 가지 이것을 자기가 감사하면서 주님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세 가지 사랑의 대속을 하셨으니 이 대속을 다른 사람들에게  입으로 전하고 내가 그들에게 이 전해서 그들에게 나도 사죄의 대속을 내가  전달하고 또 칭의의 대속을 전달하고 화친의 대속을 전달해서,  죄는 다른 사람이 다 지었는데, 할 의무는 그 사람이 할 의무인데, 그 사람이  모든 불목과 불화를 저질러 놨는데 그것을 예수님의 대를 이어서 내가 책임지고  그 일을 하는 것, 그 일을 하는 그것이 처음 사랑의 행위를 가지는 것인데 그  일이 인간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그 일이 인간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인간으로 되는 것 아니고 그렇게 우리가 할라고 할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연결돼 가지고서 그분의 능력으로 그 일이 가능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걸 버리면 절대자와 연결이 끊어졌고 끊어졌으니까 등대가  없어지고, 그 행위를 우리가 가지면 그것이 바로 절대자와 연결되는 행위기  때문에 연결되면 그 결과로서 등대의 본분을 할 수 있다. 등대의 본분을 할 수  있고 그것이 이 세상에는 다 살풍경이요 전부 사망만 가득 찬 세계이지마는 이제  요 생활 하는 자는 낙쇤 속에서 살 수 있다. 인간이 세상이 어떻다 해도 세상에  모든 불행이나 모든 사방의 것들이 자기에게 가까이 배어 오지도 못하게 하는  생에는 이 생애요 이 생애에는 그는 항상 하나님의 낙원에 있고, 또 생명 과실,  하나님과 연결된 그 동행 하나님과 나와의 동행함으로서의 결과인 그 생애의  결과를 네가 양식으로 먹는 그 인격 생활 할 수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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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우리의 집/ 고린도후서 5장 1절-10절/ 820219금새 선지자 2015.12.13
1939 우리의 집/ 고린도후서 5장 1절-10절/ 820217수야 선지자 2015.12.13
1938 우리의 집/ 고린도후서 5장 1절-7절/ 820214주전 선지자 2015.12.13
1937 우리의 집/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820221주후 선지자 201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