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7 14:07
연보
1989. 1. 26. 목새.
본문: 말 3:7-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내게로 돌아오라.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돌아오라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떠난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 떠난 것을. 그러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다 말이지요.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어떤 것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것인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는 것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라 하는 걸 여기 똑똑히 말해 놨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기억해서 항상 이 지식이 변동이 없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규례라 말은 하나님의 계명이라 말이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키지 않고 버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 버리는 것이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버리는 것이 곧 하나님 버리는 것이요 또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건 또 다릅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 지키지 않고 버리는 것이 하나님 버리는 것이라면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라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요 말이 조금 다릅니다. '만군의 여 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이러니까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아니한 것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라 하는 거 여게 똑똑히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건 또 어떻게 하면 돌아가는가? 그 다음에 말해 놨습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너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에게로 돌아 가리이까 하도다' 그러면 하나님께로 어떻게 하면 돌아가겠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되기는 되겠는데 하나님께로 어떻게 하면 돌아 가는 것이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8절에 이 조금 뜻을 모르면 맞지 않는 말입니다. 8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도적질하던 것을 회개를 하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된다.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 말은 너희들이 지키지 않으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희들과 싸우겠다 그말이오.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그러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뭐이 돌아가는 것이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도적질했던 것을 회개하고 이제, 도적질하던 일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헌물과 십일조 바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 그거 좀 이상하게 들리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는 것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도적질하던 것을 회개하고 헌물과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게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인가? 물론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지마는 그중에 말씀하시기를 도적질하던 일을 고쳐서 헌물과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감이다 이렇게 말씀했으니까 잘못 깨달으면 알기가 어렵다 그말이오.
왜 헌물과 십일조 드리는 것이 그런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한 종이 두 주인을 섬지기 못한다' 이랬습니다. 이를 사랑하면 저를 미워하게 되고 저를 사랑하면 이를 미워하게 된다 그러면 세상에 두 주인이 누군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 주인이요 하나는 돈이 주인이라. 그래서 돈 주인을 섬기든지 하나님 주인을 섬기든지 둘 중에 하나 섬기지 둘 다 섬기지는 못한다. 그러면 돈 주인을 섬기면 하나님은 배척하는 것이 되고,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랬는데, 헌물은 뭐이 헌물인고 하니 자기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었을 때에 그 받은 것의 제일 머리를 떼서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이 헌물입니다.
내나 그것이 머리 떼서 바친다, 성경에 머리 떼서 바친다, 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시는 것을 감사하다고 감사 연보하는 것을 머리 떼서 바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헌물은 그게 헌물입니다. 그러면 헌물은 두 가지가 헌물인데, 머리 떼서 바치는 것과 또 감사함으로 감사 헌물 드리는 것 요 두 가지가 헌물입니다.
그 합해서 헌물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헌물이라 말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 드릴 헌(獻)자,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이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주인이 둘인데, 하나는 물질이요 하나는 하나님인데, 주인이 둘인데 하나는 물질이요 하나는 하나님이신데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을 섬기나 물질을 섬기나, 하나님께서 대단히 섭섭하게 여기시고 있는데 '보자 네가 나를 물질을 섬기나' 이러는데 그 물질에 머리를 똑 떼다가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러면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까 물질 섬기는 것입니까? 예를 들면, 비유 들면 좀 극한 비유라서, 여러분들 알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마는, 본남편이 있고 간부가 있습니다. 간부가 있는데 본 남편 두고 간부하고 이와 같이 지금 얼럭거리고 있으니까, 남자가 하나 왔으니까 남편이 '보자, 저게 네가 지금 나를 좋아하나 간부를 좋아 하나?' 이러는데 간부의 목을 똑 떼다가 그 본남편에게 바치면 어찌 됩니까? 본남편 좋아하는 게 됩니까 간부 좋아하는 게 됩니까? 그거야 본남편 좋아하는 게 될 것 아닙니까? 간부의 머리를 똑 떼다 바쳐. 떼다가 그만 바쳐 버린다 말이오. 목을 끊어다 바친다 그말이오.
머리 떼서 바치는 것이 그와같은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물질 수입된 수입 중에 제일 머리되는 걸 그걸 '이거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면서, 뭐 머리 떼 바치는 것은 예를 들어서 백만 원 수입이 됐는데 단, 요새는 얼마 씁니까? 일 원짜리 쓸 수 있습니까? 쓸 수 있지요? 쓸 수 있지요, 일 원짜리도 쓸 수 있어.
이러니까 백만 원 수입했는데, '요 백만 원 다 요것은 주님이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는 것을 진정 깨닫는 표로 '요거 다 주님이 나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요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일 원짜리 하나를 바쳐도 됩니다. 고 마음이 중요합니다. 자기에게 있는 그 모든 것이 이게 뭐 주인이라고 간부라고 이게 뭐 하나님하고 동등이 되고 비교가 되고 그 어림이나 있습니까? 요것은 주님이 나에게 주신 하나의 선물이기 때문에 머리 떼서 내가 주님에게 바칩니다. 고것은 주님이 나에게 주셨다는 표로써 그 머리를 떼서 바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헌물 중에는 감사 헌금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전부 내게 주셨습니다 하는 그 하나님이 주셨다는, 은혜로 주셨다는 것을 자기가 표시하는 것으로서 감사 헌금을 드린다 그거요. 이 감사 헌금도 중요한 것이 그것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자기가 인식하고 진정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바치는 것이 문제지 금액의 액수가 아닙니다. 고것도 일 원이라도 됩니다.
일 원이라도 다른 사람이 감사 헌금을 백만 원 수입, 백만 원 하나님이 주셔서 수입하고 난 다음에 구십만 원을 하나님 앞에 감사 헌금 드린다 할지라도 그것보다 오히려 일 전 드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쁠 수도 있습니다. 왜? 진정 하나님이 전부 이걸 내게 주셨다 하는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 일 전이라도 좋고 표시하는 것이고, 만일 백만 원인데 구십만 원을 바친다 할지라도 '이거 내가 지금 잘해 가지고 이렇게 수입된 거 내것 지금 하나님께 구십만 원 바치니까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이다' 가증스러운 일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요 헌물은 감사 헌금과 머리 때 바치는 요 두 가지인데 고것에 대해서 액수가 아니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입니다. 우리의 깨달음이요 마음이오. 우리가 바로 깨닫고 마음을 그렇게 바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또 십일조는 뭐입니까? 십일조는 전부의, 하나님이 주시는 그 수입 중에 머리 떼서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게 십일조 아닙니까? 이러니까 헌물도 머리 떼 바치는 것이요 감사도 하나님의, 전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증표하는 것이 감사요 십일조도 머리 떼 바치는 거라 말이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이렇게 성경에 말씀했으면서, '이를 사랑하면 저를 미워하고.' 이래 하나님이 분개하셔 가지고 이렇게 마태복음 6장 20절 이하에 보면은 그렇게 말씀해 놨는데, 이 사람은 전부 머리를 똑똑 떼다, 그거 좀 제 주인으로 섬기는 게 아니라 머리를 떼다 바칩니다.
머리 어찌 떼서 바치는가? 이 주인을, 주인이 지금, 이것이 주님과 같이 나에게 지금 주인 노릇 하려 하는 것이니까 이놈 대가리를 똑 떼다 바쳐야 되겠다, 그래 하는 거는 아니지마는 '이거 다 전부 하나님이 다 내게 주신 것입니다. 이거 하나님의 것이라, 하나님이 다 내게 주신 것입니다.' 하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표로써 이제 감사 헌금을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 중에 제일 머리를 떼서, 제일 수지, 제일 맏 머리 수지되는 이 수지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이런 깨달음을 가지고 드리니까 그게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고, 요 십분지 일도, 십의 십이 다 주님의 것인데 십분지 일 드리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중표라 그말이오. 그것을 드리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라. 그게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것이라. 물질 헌물이나 십일조 드리는 돈이 거석해서 하나님이 돌아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만물을 지었는데 뭐 다 당신의 것인데 뭣 한다고 그걸 크게 여기겠습니까? 그게 아니고 거개 대한 정신이 바로 됐다 그말이오.
이러면 그것을 두 주인 섬긴다는 그게 아니고 벌써 거게 대해서 전체가 다 주님의 선물이지 그까짓 걸 뭐 주인으로, 주님이 그만 미워하시면 다 가져가 버리면 없는 것이고 주님이 주시면 얼마든지 있는 것이지, 어머니가 밥을 떠먹이니까 밥은 내게 필요한 줄 알아야 되겠고 밥을 주시는 어머니께 감사해야 되는 것이지, 밥 그게 나에게 지금 뭣을 배불리 주는 줄 알고 밥에게 감사하는 거는. 그는 우상 섬기는 것이라 말이오. 어머니가 밥을 해 가지고 나에게 떠먹여 주니까 어머니께 감사해야지. 그것은 나에게 필요한 물질은 물질이지 그게 나에게 감사나 그런 섬김받을 그런 존재가 아니라 말이오. 그러면 그거 우상 섬기는 게 되고 만다 그거요.
이러니까, 요 헌물과 십일조 드리는 요것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된다 하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헌물과 십일조 드리는 것이 물질을 하나님 동등시 해서 이렇게 주인으로 섬기는 것을 완전히 회개하고 이것은 하나님을, 자기 가진 물질 전부 다 하나님의 것이라. 하나님의 은혜라. 하나님을, 전부를 기울여서 하나님 섬기는 것이 되는 것인 것을 말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규례를 어기는 것이 하나님 떠나는 것이라고 이래 말씀했으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인데,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여게 십일조와 헌물을 딱 들고 말했습니다. 고거는 뭐이냐? 인간들이 물질에 속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속하요.
물질을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 섬기요. 물질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요. 보면 참 물질을 하나님보다 낫게 여기는 그런 신앙가들, 목사들, 장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하나님을 물질보다 귀하게 여겨서, 물질 전부가 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주시면 있고 안 주시면 하나도 없다. 물질 그게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이 내게 주면 있고 안 주면 안 된다. 요렇게 물질은 하나님의 선물 중의 선물이지 그까짓 게 내게 대해서 아무 권력이 없다고 요렇게 딱 깨닫는 요것만 꼭 잡으면, 사람이 다 뭣 때문에 죄 짓느냐? 물질 때문에 죄 짓는 것이 다는 아니지마는 거의 아아 십분의 한 칠팔은 될 거라.
이러니까 고 하나 요런 걸 들어서 '내 규례를 지키는 것이 내게로 돌아오는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지 아니해 놓고,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것이 내게로 돌아오는 것이라 이렇게 여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요 진리를 깨닫고,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떠나는 것입니까? 하나님 떠나는 거 어떻게 하는 게 떠나는 것이오? 하나님의 규례를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라. 하나님의 규례는 그러면 언제 지킵니까? 자기 현실에서 지킵니다. 우리 현실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법도가 있고, 자기 욕심도 있고, 마귀 시키는 것도 있고 별별 게 다 있는데 고 현실에서 자가 욕심이나 또 마귀가 시키는 것이나, 세상이 시키는 것이나 물질의, 내 속에 물욕이나 뭐 그런 게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고 현실에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고것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 모시고 사는 것이라 그말이오.
떠났던, 일단 떠났던 사람은 어째야 됩니까?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고 떠났던 사람들은 돌아오는 것이 뭐이냐? 거기 물질을 떡 말해 놨다 말이오.
사람들이 뭣 때문에 하나님을 떠났더냐? 떠났던 게 전부 물질 때문에라, 다. 물질 때문에. 혹 물질이 아닌 그런 명예나 권세나 이런 것도 다 있지마는 그것도 실은 보면 다 물질입니다.
이거 모두 다 권세를, 국회의원들도 국회의원 가지려고 하는 그 사람들이 뭐이냐 하면, 권세 하는 권세 그거 뭐하려고? 권세 그거 뭐 하려고? 저 신문기자. O기자 저기 있는데 그 모두 다 권세 잡으려 하는 거, 국회의원 되려고 하는 거 명예 때문에요 물질 때문에요? 한번 대답해 봐요. 물질 때문에라. 그거야 명예 때문에지 물질 때문에라? 아니. 국회의원 돼 놓으면, 벌써 국회의원 돼 놓으면 국회의원 돼도 그 사람이 국회나 가서 앉았으면 그 사람 다음에 국회의원 안 됩니다. 국회의원 되면 정치 자금을 그 사람이 모아야 됩니다. 그거 모을 줄 알아야 돼. 이러니까 국회의원 떡 되면 이런 데 침을 한 개 찌르면 돈이 푹푹 쏟아져 나옵니다. 또 요런 데 요런 연결 하나 시켜 주면 또 돈이 푹푹 쏟아 나옵니다. 이러니까 그거 다 실은 다 분석을 해서 마지막에 남아 있는 거는 보면 물질 때문에라 하는 것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걸 하나님께서 '두 주인 중에 한 주인은 물질이 주인이라' 이렇게 말해 놨다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규례를 어기는 게 떠나는 것이지만 떠난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데는 물질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 왜? 떠난 그것을 분석해 보면 전부 물질 때문에라. 사람이 웃는 것도 물질 때문에, 성내는 것도 물질 때문에, 원수 맺는 것도 물질 때문에, 또 뭐뭐 좋아하는 것도 물질 때문에, 바쁜 것도 물질 때문에, 배짱내는 것도 물질 때문에 전부 그거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물질의 머리를 떼서 요렇게 바치는 것이 하나님의 노를 푸는 것이 되고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인 것을 안다는 그런 증거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모두가 다 하나님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에게 감사할 줄 알면 하나님도 주고 싶은 마음 있어.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얻는 것은 다 대금을 주고 삽니까 공짜 배기로 얻습니까? 공짜배기로 얻는다고 아는 사람 손 들어 봐. 공짜 배기로 얻는다고 아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저 뒤에도. 한번 들어요. 공짜배기로 얻어요. 그러면 은혜로 얻는다 말이지요. 은혜로 얻는데 은혜로 얻는 것은 항상 은혜로만, 항상 은혜로 얻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은혜 줘도 또, 은혜 주니까 은혜 받고 은혜 주니까 은혜 받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걸 줍니까 안 줍니까? 여러분들이 시장에 가서 물건을 가져오는데 대금 안 주면 물건을 줍니까 안 줍니까? 안 준다 그말이오. 하나님 앞에도 은혜로 공짜배기 은혜로 주시는데 은혜의 댓가가 있어요. 은혜의 댓가. 은혜의 댓가가 뭐입니까? 감사라. 은혜의 댓가가 감사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데 '이거 참 하나님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질 주니까, 물질 주니까 물질 앞에 무릎 꿇고 절을 자꾸 하고 있습니다. 물질 주니까 물질한테 절하고 있지, 하나님께 감사한 줄 모르고. 또 물질이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물질시키는 대로 물질에 종되지.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는 물질 줄 수 있어요 없어요? 이러기 때문에, 물질보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께는 기뻐하지 않고, 물질을 주시니까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해. 왜? 물질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거든. 물질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우상 섬기는 자요, 그게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간부로 주인으로 섬기는 자이기 때문에 그런 자에게는 줄 수 없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뭣이든지 은혜받은 거게 대해서 감사한 줄 모르면 하나님에게는 끊어집니다. 감사한 줄 모르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그것이 우상이 됐든지 주인이 됐든지 둘 중에 하나라. 우리가 깨닫고 바로 살면, 뭐 에덴 동산에서 뭐 피땀 흘려 일을 했소? 안 했어. 얼마든지 있었는데 죄를 짓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 고통이 왔던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바로 믿는 사람 뭐 아주 수월해요, 바로 믿는 사람은 수월한 것은, 수월한 것은 일만 해 가지고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축복이 오니까, 그렇지 않아요? 농사는 다 같이 심을 때 심고 가꿀 때 가꿨는데 하나님이 축복하셔 풍년이 드니까 뭐 가뜩가뜩하게 논에 소복소복하게 곡식이 됐지마는 나는 노력은 하기는 했는데 하나님이 축복하시지를 않으니까 농장에 가보면 바짝 마르고 전부 벌레 들고 썩고 이래 가지고 참 속이나 상하지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의 노력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노력이 있는 거게 하나님의 축복이 와야 됩니다. 이러니까 아브라함은 축복주의자요. 롯은 노력과 보이는 이거 현실주의자요. '요렇게 돼야 되지, 조렇게 돼야 되지' 저거 인간들이 요렇게 조렇게 돼야 된다는 고것만 생각한 게 롯의 자손이요. 롯의 자손들이라.
아브라함은 뭣보다도 하나님이 좋게 해 주셔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좋게 해 주시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라 하면 일하고 일어나라 하면 일어나고 자라 하면 자고 이렇게 하는 그것이 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의 법도가 우리에게 있는데, 하나님의 명령이 우리에게 있는데 그 명령이 종류로 말하면 몇 종류입니까? 자,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종류로 말하면 몇 종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법도를 주셔 계명을 주셨는데 종류가 몇 종류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손 들어 봐요, 저 뒤에? 다 손가락 둘 들었는데 둘이라. 하나는 일반 계시법 하나는 특별 계시법 그 두 가지 법입니다.
일반 계시법은 '배고플 때는 밥을 먹어라' 하는 것이 일반 계시의 하나님의 일반적 계명이라 말이오. 또 먹고 싶은데 '어라 많이 먹으면 안 된다. 적당히 먹어라.' 그것도 내나 일반적 계시 법이라. 그러니까 이 자연법을 지키는 것이, 사람들이 자연법이라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일반적 법칙을 순종하는 것이고, 특별 법칙은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라 그거요. 이러면 우리가 수월하게 잘 살 수 있어요. 사람이 일만 해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되지. 아브라함은 그래 축복 위주라.
요새 기도하러 많이 가서 참 감사합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꼭 외우고 실천하면 거게서 자기가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러고 또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어제는 성경 공부하는데 이백 명이 와 가지고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그거 참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 학생들 지금 얼마나 남았어? 며칠 남았어요, 이제 공부할 날이? 이틀밖에 안 남았대, 이틀밖에 안 남았어. 이틀밖에 안 남았는데 이거 처음부터 시작해서 성경 공부하는 데 참석을 시켰으면 어찌 됐을 거라, 이거? 굉장치 않겠어? 이러니까 어쨌든지 다음 방학기는 꼭 성경 공부해야 되겠다고 집에서 노래를 불러요. '너 다음 방학 때는 꼭 성경 공부해라 해라' 그래 가지고 같이 데리고 다니면서 취미를 시켜서 이렇게 좀 다니고 또 그럴 때는 성경 공부한다고 칭찬도 하고 또 성경 공부 할 때는 뭣도 좀 잘해 먹이고 자꾸 이래야 돼지는 것이지, 어떤 사람들은 주일날은 뭣을 잘해 먹인대요. 잘해 먹여서 이래 가지고 그래 살살 예수 믿도록 만들고 나중에 잘 믿고 난 다음에 뭐 주일날 밥 굶지 뭐. 인제 주일학교 반사 노릇 하려 하니까 밥먹을 여가가 있는가? 이렇지만 처음에는 고거 살살 그리 길을 들여야 된다 말이오.
이 성경 공부 하는 데도 부모네들이 보니까 전부 성경 공부 한다면 좋아하거든.
'나도 요번 방학에는 성경 공부 할 거요' '아이구야, 그럴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버지 어머니 꾀워 먹기 쉽다. 뭐 잘못하고 난 다음에 내가 성경 공부 한다 하면 아버지 어머니는 좋아하더라,' 제가 그러면 아버지한테 매를 맞을 일을 떡 해 놓고도 난 다음에 '아버지 내 잘못했어요. 인제 앞으로 여름방학 때는 내가 성경 공부 내가 참석해 가지고 꼭 성경 공부를 할 것이라요' 이러니까 그 아버지가 그만, 성이 풀려서 '그래 이번 네가 잘못했지마는 성경 공부해라' 그래 가지고 또 등을 뚜드려 주고 오히려 예물을 주거든. 이래 놔야 되어지지 이걸 말로만 해 가지고 안 돼. 부모네들이 진정 얼마나 소원이 돼야 돼요.
그러고 어제는 OOO집사님 구역에서 양산동에 밤에 십사 명, 또 OOO권찰님 구역에서 양산동에 십육 명, 또 OOO집사님 구역에서 또 밤에 교회 십삼 명, 또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은 꽃마을에 팔명, 또 OOO집사님 구역에는 양산동에 이십사 명, 이래서, 열심히 모두 이렇게 기도하는데 인제 하나씩 뭣이든지 빠진 것을, 자꾸 빠진 게 없이 그래 해요. 일하다가 하나만 빠져도 안 돼요. 시계 같은 것도 만드는 데에 다 됐는데 부속품 하나만 없으면 그게 안 돌아가지 않아요? 고거 하나만 끼우면 되는데. 우리가 자꾸 해 가는데 지키지 않는 거 고거 있으니까 고거 때문에 일이 안 돼. 고것만 딱 지켜 버리면 그만 성공이 되어져.
그러니까 자꾸 이래 기도하러 가면 그냥 가는 게 아니고 기도하러 가면 조용한 좀 고요한 시간 있으니까 자기 생각나는 대로 '내가 주님에게 뭐 잘못된 게 뭐 있습니까?' 이래 좀 물어보는 게 그게 지혜 있는 일이라.
저도 어제, 어제인가 아래인가 하도 병원에 가서, 좀 자꾸 피곤하고 하니까 한번 가 보자고 자꾸 이래 쌓아서 그래 갔어요. 대학병원에 갔어요. 인제 피검사 하러 갔어요. 간이 나쁜가 이래, 그 나쁘지는 아니할 것 같은데 그래 그거 그래도 하도 가자 해서 갔어요. 그래 가니까 환자들이 않아요. 그래 나는 거기 가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이 병고쳐 달라고 하는 것보다도 그 병의 원인되는 것 뭐인가 잘못된 것이 있을 터이니까 잘못된 그것을 가르쳐 주시면 그걸 내가 고치겠습니다.' 잘못된 거 고치면 병은 저절로 나을 터이니까 그거 고치는 게 문제지 그거는 다 내버려두고 자꾸 병만 고치려 해 가지고 되어져야지? 그래 놨는데 아직까지 검사한 게 나오지는 않았어요. 안 했는데 보나 안 보나 뭐 아무것도 없을 거라. 하도 옆에 사람이 거석해 그렇지. 그래 피검사하고 또 당뇨병 있는가 이 쌓아며 하도 그래 쌓아서 그래 소변검사 하고 그래 두 가지 검사했는데 모르겠어요, 언제 나오는가? 그런데 뭐이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축복받을 수 있는 일만 하면 축복받고 그런 거 없고 하나님 앞에서 징계받을 일 하면 징계를 받아요. 그거 나는 자연법을 잘 못 써. 잘 못 쓰는 것은 내가 과로를 많이 한다 말이오. 과로를 많이 해. 과로는 새벽기도 이런 거 하면, 뭐 새벽기도 이러면 좋지마는 그러고 나면 자꾸 이 사람 저 사람 자꾸 와 엮어대기 시작하면 그만 하루 종일 얘기하는 데 사람이 녹아버려. 나중에는 그만 뭐뭐 누워도 좀 쉬지도 않고 지금 발동이 돼져.
요런 걸 좀 조절을 해야 되는데 조절을 안 하고 이래 놓으니까 고거 내가 좀 자연법을 잘 못 지키요. 이래서 내가 안 지키는 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못 지키게 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