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7 10:55
연경법,주문기도,바른기도
1987. 10. 27. 새벽 (화)
본문: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런 말씀도 자꾸 읽고 거게 있는 이미 참뜻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참뜻을 깨달은 대로 생각하면서 자꾸 읽으면 자기라는 그 사람이 점점 변화됩니다. 이 말씀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이 말씀과 같은 사람이 되면 그것이 곧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 성화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자기가 모르고 읽는 그 사람도 낭파, 말씀을 모르고 읽는 사람으로서 유익한 길은 있습니다. 자기가 말씀을 모르면서 읽습니다. 읽으면서 많이 읽을라는 그런 생각 가지지 말고 몇 번 읽었다는 그것도 생각 가지지 말고 그저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어떻게 이 말씀은 우리를 이렇게 행동해라 이렇게 살라 이렇게 가르치신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될 것을 내가 배우겠다’ 요 생각만 가지고 성경을 읽으면 자기에게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뭐 깨닫는 것이 자기에게 필요한 대로 깨닫지 그 이상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성경을 읽으면 그 제일 처음에 ‘이게 필요하다 이게 요긴하다’ 하고서 요긴하다고 제딴에는 붉은 줄을 쳐 놨습니다. 쳐 놨는데 얼마 지나고 난 다음에는 그거는 요긴치 않고 또 딴게 요긴한 거 있습니다. 또 붉은 줄을 칩니다.
나중에 그라다 보면 그만 성경이 발갛고 글자가 안 보일 만치 발개집니다.
이라니까 뭐 전부 다 붉은 줄을 쳐 놨으니까 뭐이 요긴한지를 모르겠다 그말이오.
또 새로 성경을 삽니다. 그 성경은 둬 두고 또 성경을 또 사다 놓습니다. 사 가지고 그때 읽으니까 ‘요게 요긴하다’ 또 그것만 칩니다. 또 좀 있다가 자꾸 읽으니까 ‘요게 더 요긴하다’ 자꾸 요긴한 것만 칩니다. 나중에 보면은 성경이 전부 발가이 다 돼 버립니다.
이제는 뭐 더 그릴 수도 없고, 구별되라고 붉은 줄을 쳤는데 이제는 전부 발가니까 구별을 못 하겠다 그말이오. 또 성경 삽니다. 성경 사 가지고 또 줄을 치며 읽습니다. 또 그래 돼. 세 번만 성경을 발갛게 줄 쳐서 그래 내놓으면 그 사람이 나중에 가서 성경을 거의 아는 사람이 됩니다.
왜 이 말 하는고 하니 자기가 처음에 알고 난 다음에 제일 껍데기 쉬운 것 그걸 압니다. 실은 예수 믿는 사람은 뭐 그런 거는 뭐 생각할 것도 없는 거 껍데기입니다. 아주 껍데기 알았는데 껍데기 알고 나서 ‘성경 보고 자꾸 알자’ 또 읽고 또 읽고 암만 제가 읽어 봤자 그저 읽기만 읽지만 입에 대면 주르르르 내려가 버리지 깨닫지는 못합니다. 꼭 깨닫는 것은 아는 그것을 실행을 합니다.
아는 것을 실행을 하면은 실행하는 것만치 자기가 변화됩니다. 변화된 것만치 또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무식해도 성경을 볼 때에 ‘내가 어떻게 행할 것을 이 성경에서 배우겠다’ 생각하고 성경을 읽고, 성경을 읽고 난 다음에 깨닫고 나서는 그대로 할라고 애를 써 보면 거게서 차차 깨달음이 나오게 됩니다. 이 방식이 성경 연구하는 방식은 제일 좋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방식으로 성경 연구한 사람은 이 모든 다른 사람들이 말해 놓은, 학자들이 말해 놓은 거, 이 학자 저 학자 학자들이 말해 놓은 거는 주 외운 그것은 내나 성경 읽는 것 그만 못합니다. 그보다 성경은 낫지 않겠소? 성경을 암만 대야 소용 없어. 더군다나 더 그런 학자들이 말한 논술은 암만 읽어도 소용 없습니다.
이러니까 학은 높아서 자기는 다 아는 것 같은데 실상은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나기는 제일 잘났고, 말은 제일 잘하고, 설교는 잘하는데 목회는 헛일이오. 가 봤자 양떼들이 들을라 합니까? 목회가 안 돼.
이러기 때문에 신학자 쳐놓고 목회하는 신학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한국에서 내가 아는 대로 박형룡 박사 박윤선 박사 이런 분들이 다 대신학자입니다.
그분들은 목회 못 합니다. 교회를 맡아봤자 교회가 돼야지? 안 된다 그거요.
이래도 이걸 모르는, 눈이 멀었어. 눈이 어두워.
이러니까, 눈이 어둡다고 멸시하면 하나님께서 내 눈도 어둡게 할 터이니까 그뭐 멸시하는 건 아니고 참 좀 깨달아야 되겠다 그거요.
이래서, 성경을 자꾸 읽으면 힘이 납니다. 여기 새벽으로 기도하러 갈 때도 갈 때에 다른 것 생각지 말고, 딴거 생각지 말아요. 그날 아침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 있어. 주신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자꾸 생각하면서 갑니다.
다른 사람은 차타고 가면은 엉뚱한 얘기하는데 자기는 그 말씀을 생각해 가지고 가면서 하면 자꾸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셔. 왜? 그는 자기 마음을 다했거든.
다른 사람은 엉뚱한 것 생각하는데 자기는 그 구하는 것이 ‘이 진리를 알아야 되겠다. 이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 하니까 그 사람에게 줄 수밖에 없어.
그러고 또 가서 기도하면 그날 아침에는 뭐, 어떤 사람은 주문 기도 해요. 주문 기도 한다 말은 이 말씀을 주시든지 저 말씀을 주시든지 그건 다 내비두고 언제든지 제가 하는 기도 그것만 합니다. 그게 주문 기도야, 주문 기도.
주문 기도라 하는 건 이 돌팔이 점쟁이들 말이요, 점쟁이들은 장 외우는 거 가지고, 경문 외우는 거는 장 외우는 거 그것만 외웁니다. 귀신 쫓아낼 때도 그 경문 읽고, 저 귀신 쫓아낼 때도 그 경문 읽고, 이 집에 손 비비는 데도 그렇고, 저기 가 또 손 비비는 데도 그렇고 항상 그것만 읽어. 그게 경문 읽는 거라.
천주교 교인들도 성경 가운데에, 그런 성경 누가 가지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 성경 가운데 붉은 줄만 쳐 놓은 것 있어. 붉은 줄, 붉은 글로 써 놓은 것 있어.
붉을 글로 써 놓은 그것만 읽고 딴거는 읽지 말라 합니다. 그거는 천주교 저거에게 유익하도록, 천주교 우상 숭배 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것만 딱 내놨어.
이라다가 지금은 천주교도 이 성경 같이 본다고 이러면서도 실은 그것이 딴 종교입니다. 기독교가 완전히 변질된 종교라. 그러나 눈이 어두워 놓으니까 그것도 다 하나라고 이렇게 생각해.
여기서도, 천주교를 모르거든 다른 말 할 것 없고 출애굽기 20장 이계명을 봐.
이계명에 어찌 돼 가지고 있는고. 그 이계명을 현재 그렇게 범하고 있어도, 절하고 숭배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만들지 말라 했는데 가면은 마리아 뭐 또 뭐 예수님이라고 이렇게 해 가지고 이래 가지고, 그거 예수님이 아니라. 그런 건 다 주먹으로 쥐박아 불로 확 태워 버려야 돼. 내가 만일 권세가 있다 하면은 내 힘이 있으면 메로 가지고 그런 거 다 뚜드려 뿌숴 다 깨 버리겠어. 그런 건 우상이야, 그건. 예수님이 아니라.
마리아도, 마리아는 나와 같은 죄인이라. 예수님을 낳았지만 나와 같은 죄인이라.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나왔었지 뭐 제가 예수님을 만들어 냈습니까? 아니라 그거요.
이런데, 어짜든지 말씀을 새김질하면서 이래 가야 되는데 요걸 안 하니까, 자꾸 요걸 안 하니까 천주교서 고거 처음에는 ‘이거 자꾸 베드로를 생각해라. 또 엘리야 신앙을 생각해라. 예수님의 신앙을 생각해라.’ 자꾸 명상하라고 처음에는 말을 낸 건데 요게 타락해 가지고 명상하지 안하고, 명상하지 안하고 이제는, 그걸 그래 가지고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좀 낫거든. 예수님을 생각해라 하니까 그게 명상하라는 것인데 ‘요게 나으니까 요것보다 모양을 만들어 놓고 하면 좋겠다’ 이래 가지고 차차차 동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동상이 만들어진 것.
여게서도 천주교가 뭐인지를 알지 못하고 지금, 이 교회들이 다 썩어서 이래 나가기 때문에 그걸 알 리가 없어. 천주교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개종했다, 천주교에서 개혁교로 종교를 고쳐 개종했다, 고쳤다. 개종한 사람의 그 책이 그때 많이 가져와 가지고서 있었었는데 그거 누가 가지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 그 책 가지고 있는 사람? 저 ○○○목사님이 상당히 좋은 점이 있어. 그거 안 내버리고 꼭 가지고 있구만. 나는 가지고 있지 안해. 왜? 다른 사람이 달라 해서 주면 이거 안 가져와. 책 도적질은 도적질이 아닌 줄 아는 거라. 보라고 주면 가져가 가지고 그만 안 줘. 그러니까 책이 내게는 내가 필요한 책은 없어요.
뭐 새로 볼 거는 없지만 오벨런지 그런 것도 그렇고, 안식교니 그런 데 대해서 그 깨달은 사람들이 기록한 그 책을 좀 보면은 잘 깨달을 수가 있어요.
이러기 때문에 명상이 우리가 필요합니다. 명상이라는 건 눈감고 생각하는 거라.
기도하러 가면서 그날 아침에 준 말씀 그 말씀만 자꾸 깨달아. 자꾸 생각해서 거기서 그 말씀만 생각해도 한없이 널리 나갈 수가 있어요. 그 말씀만 생각해도.
그 말씀만 생각해서 그 말씀에 관한 기도만 해도 그날 아침에는 다 하는 거라.
실은 그날 종일 그 말씀에 대한 것만 기도를 다 해서 이래 하면은 다른 거는 저절로 돼.
이런데 그날 말씀을 주든지 뭐이든지 자기 알고 있는 그것만 장 기도합니다. 주문 기도라. 이것을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깨달을라 하면 힘이 들거든. 또 정성이 들어야 되거든. 공이 들어야 되거든. 그러나 자기 입에 익은 거 그만, 익은 거 그것만 자꾸 기도해.
뭐 자기가 제일 익숙한 거, 제일 많이 말한 거 그거, 그것만 있으니까 그것만 그만 고함을 지르는 거라, 자꾸. 딴걸 기도할라 하면 기도가 그래 고함질러 안 나와요.
딴거를 눈을 감고 한참 생각해야 ‘요것도 기도해야 되겠다’ 또 한참 생각해야 ‘기도해야 되겠다' 이게 나오는데 그렇지 안하고 그만, 그거는 생각할라면 힘드니까 자기 익은 대로 자꾸 이라는 거라.
익은 대로, 익은 대로 이래 가지고 막 익은 대로 해서 고함을 지른다 말이오.
고함을 지르면 다른 사람은 고함을 지르면, 이 피동을 어떻게 잘하는지. 여러분들 피동되지 말아요.
자, 따라해요.피동되지 말라!피동되지 말라!피동되는 자는!생명이 없는 증거다!피동되지 말라!피동되는 자는!생명 없는 증거다! 그러면 우리가 어데 피동돼야 돼요? 피동은 몇 군데 피동돼야 돼요? 한 군데만 피동돼야 돼. 누구에게? 하나님에게 피동돼. 주님에게 피동돼야 돼.
이런데 보면, 누가 기도하다가 고함을 질러 기도하면 그만 고함을 질러 기도하니까 저도 또 고함질러 기도 안 하면 그 소리에 다 막히고 져 가지고 안 되니까 ‘나도 고함을 질러 하자’ 고함을 질러 이래 기도하다가 그쪽에서 뚝 그쳐버리면 그만 저도 뚝 그쳐버립니다.
허, 재미가 있거든. 또 고함을 지르니까 또 고함을 지르고 뚝 그치니까 뚝 그치거든. 이러니까 온 군중이 그 사람에게 끌려서 고함 지르면 고함 지르고, 조용하면 조용하고, 이러니까 무슨 기도가 됩니까? 마귀 놀음만 순전히 해서 여러분들의 기도를 막 삼키고있는 그걸 알아야 돼.
내가 그게 하도 기가 차서, 요 기도하면은 마귀 그놈이 ‘저 사람을 사로잡은 저 마귀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물리쳐 주옵소서’ 하면은 딱 그만 그쳐버립니다.
자꾸 그라면 그날 아침은 못 해. 내가 그렇지만 그것만 내가 기도하고 있을 수 있어야지? 이런 건 좀 속에 좀 창자가 있어야 돼. 다른 사람까지 기도하는데 기도하다 뚝 그치면, 그치면 나는 더 기도하는 거라. 역항이 있어야 돼. 고함을 지르다 그치면 그칠수록 나는 기도를 더 큰 소리로 내 한다 말이오. 또 그 사람이 고함질러 기도하면 정반대로 그래도 나는 기도 조용하게 소리 안 내고 기도하든지. 이래야 되는 건데, 본인도 모르지요.
이러니까, 여기 층층이타령 할 때 압니까? 층층이타령 할 때에, 하나가 ‘어하층층나네’ 그라면 그 다음에 또 대중들이 ‘어하층층나네’ 이래 그걸 헛소리 먹인다 하는 거라, 헛소리. 밑에 그래 소리 먹이면 그 다음에 따라 주욱 따라 한다 말이오.
그거 모양으로, 이래 해 보니까 이거 뭐 몇백 명 모인 교인이 다 헛소리 먹이니까 또 따라하거든. 왁 하니까 왁 하다가 또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고 이라니까 이제 자기도 모르게 이 재미로, 순마귀요 다른 기도하는 데 방해하는 것인데.
이러니까 이걸 깨닫지 못하고, 마귀에게 사로잡혀 깨닫지 못하고, 그놈이 지금 장난하는 거라.
이러니까, 신앙이라 하는 것은 먼저 자기를 온전케 하는 거, 뭣 때문에 온전케 합니까? 다른 사람을 위하기 위해서 온전케 합니다. 자기를 온전케 하는 것도 다른 사람을 위하기 위해서 온전케 하는 거, 또 다른 사람 위하는 거, 그게 신앙 생활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그래요. 만일 기도하면은 자기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 본이 될 만치 기도를 바로 해야 되겠다 요거 있어야 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도 기도를 하는 데에 도와 주는 사람이 돼야 되겠다 이래.
그러면 기도하면서도 기도하며 쿠룩쿠룩 이래 자면 다른 사람이 그거 보고 덕이 안 될 터이니까 그거 될 수 있으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다리가 아프면 할 수 없어 좀 편히 앉아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다른 사람이 이거 모두 기도를 조용하게 이라면은, 또 소리내서 기도하는 것도 어릴 때는 소리 내 기도하는 게 낫거든.
그러면 그 사람들 기도를 돕기 위해서 나는 이래 기도하면 예를 들면 응응응응 응응응응 그게 내나 ‘피공로의 은혜를 주시옵소서 영감의 은혜를 주시옵소서 진리의 은혜를 주시옵소서’ 자꾸 이 기도라 말이오. 응응응응응 이래 자꾸 속으로 인제, 입을 벌리고 말 내지 안하고 소리만 내어 응응응응응응응 ‘오늘 언행심사를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응응응응응응 ‘주님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걸 변치 않게 해 주옵소서’ 자꾸 이래.
이래 기도를 이래 하면 응응 이라니까 다른 사람도 거기 따라서 자꾸 이리, 말소리는 내지 않고 저 사람도 소리 내 기도하니까 저도 소리 내 기도한다 말이오. 응응 이래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그만 또 힘이 없으니까 그만 응응 하다 그만 딱 중단하고 싶지마는 중단을 대번 이래 해 버리면 다른 사람이 또 뚝 그칠 터이니까 또 기도에 방해하겠다 말이오. 이런 이래 하다가 기운이 없으면 응응응응응 차차 기도 소리가 응으으으, 그거 내가 소르르르 빠져도, 빠져도 다른 사람이 소리 내 기도하는 거 그 기도가 돼지도록.
이렇게 해서 모든 분위기를 이렇게 좋아지도록 은혜되도록 이렇게 해야 돼지지, 다른 데 가 봐요. 그래 다 가르치고 있는데. 여기는 백 목사가 잘 못 가르쳐 그래.
다른 데는 그런 소리를 많이 하는데 나는 그런 소리를 잘 안 해요. 그런 자잔한 소리 안 하고 저거 다 각자 알지 싶어 이라는데, 여러분들 그래 해야 돼요.
그러고 또 실은 자기가 고함질러 기도할 때는 속 기도는 아닙니다. 왜? 자기가 참으로 회개해야 될 것은 고함 지르지 않소. 회개해야 될 거는 회개해야 될 거 고함 질러 말하면 다른 사람 다 알 것이기 때문에 고거는 살며시 숨겨서 그래 합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도 좋고 자랑할 만한 그런 걸 막 고함을 지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도하는 데 ‘들어나 봐라. 나는 이런 기도를 한다, 들어나 봐라.’ 아는 사람은 ‘조거 외식하는 기도다, 조거 마귀 기도다. 자기가 지금 모든 사람을 끄는 압소리 먹이는 기도다.’ ‘저 사람 기도는 입에서 나와 가지고 제 귀로 들어오고 입에서 나와 가지고 제 귀로 들어오고,’ 제가 들으면 좋거든. 입으로 말해 놓고 제 귀로 들어오면 좋다 말이오. 하나님은 잊어버려 버리고. ‘이 입에서 나와서 귀로 들어오고 입에서 나와서 귀로 들어오고 자꾸 요래 기도하는 사람, 저거는 다 헛기도다.’ 저 사람은 기도할 때에 모든 다른 사람들만 기도하고서 이 사람 보고 기도하고 저 사람 보고 기도하고 자꾸 기도해서, 자, 이거 예를 들면은 ‘어느 장로님 어느 장로님 자꾸 장로님 보며 이래만 기도하지 하나님 잊어버린 기도다.’ 또 볼 수가 있다 말이오.
이러면 하나님을, 첫째는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을 딱 향해 가지고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향해 가지고 기도하면서 주여, 이 장로님에게 대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이 집사님에게 대해 호소하고, 또 이 권사님에게 대해 호소하고, 이 반사에게 대해 호소하고, 이 전체에 대해서 호소하고, 그러면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하고 자기하고 대화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하고 자기하고 대화하는 게 기도라.
대화하는 게 기도고 기도는 자기 소원과 뜻을 이룰라고 기도합니까 하나님의 뜻과 소원을 찾아 가지고서 그 소원과 그 뜻을 이룰라고 기도합니까 어느 겁니까? 첫째 겁니까 둘째 겁니까? 둘째 거야.
둘째 건데 어떤 사람은 기도하러 가면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어두워서 몰라지니까 더 좀 한적한 곳에 고요히 가서 좀 정신차려 가지고서 하나님의 뜻이 뭐인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서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이룰라고서 애를 쓰는 그 기도를 하지는 안하고 자기 사욕 욕심을 가지고서 이 욕심을 달성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면 욕심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거는 악이니까 버려야 되는데 욕심을 위해서 기도하면은 가 가지고서 자꾸 가서 하루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자꾸 그 욕심을 자꾸 위해서 기도했으니까 그 욕심이 강해졌습니까 죽었습니까? 강해집니까 죽습니까? 강해져.
이러니까 악한 자가 돌아서지 안하고 기도하러 가는 것은 그 악이 점점 강해져서 더 강해집니다. 이래 놓고 그 악이 있으니까 꿈에도 그거 보이요. 꿈에도 그러면 그거 또 하나님의 계시라고 생각합니다. 꿈에 보이니까 ‘꿈에도 하나님께서 이래 하라 하더라. 꿈에도 그렇더라.’ 어떤 자가 ‘저 사람이 내 물건을 가져갔지’ 이렇게 생각하고서 그걸 가지고 기도하러 갔다 말이오. 자꾸 그래 마귀란 놈은 ‘조놈은 내가 요래 삼켜야 되겠다’ 이러니까 자꾸 ‘그 사람이 아무래도 가져갔어' 혼자 조용히 가 생각하며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으니 그 사람이 가져갔다. 이런 거 보면 그 사람이 가져갔어. 저런 것 봐도 그 사람이 가져갔어.’ 자꾸 그 사람이 가져갔어 이라니까 밤에 꿈 뀔 때에 그 사람이 가져간 꿈이 꾸이겠소 안 꾸이겠소? 꾸이겠읍니까 안 꾸이겠습니까? ‘주님이 나한테 꿈에도 보여 주더라.’ 얼마나 악독이 돼 가지고 그래 가지고 꺼꾸로 마귀란 놈이 요놈은 요래 망치고 조놈은 조래 망쳐 가지고 망쳐지는 그런 것이 얼마나 많은지. 이 진리를 알아야 돼.
기도는 뭐할라고 기도해요? 기도는 자기 소원 이루는 기도입니까 하나님의 소원을 바로 찾아 가지고 그 소원을 이루어 드릴라고 하는 기도입니까 뭐이 기도입니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릴라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라고 하는 거라. 왜? 그것은 영생이 되지마는 그 외에 거는 다 자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 되는 거라.
그러니까 기도하러 갔다가는 자기가 산에 올라갈 때는 이렇게 하겠다 했지마는서도 내려올 때는 완전히 딴 사람이 돼 가지고서 성령의 사람, 진리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돼 가지고 내려와야 되지 자꾸 제 사람이 더 돼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서, 이래 놓으니까 자신이 있거든. 자신이 만만하다 말이오. 자신이 만만하니까 ‘하나님이 나와 같이 하신다.’ 암만 옆에 사람이 타일러야 됩니까? 하나님이 그걸 사랑을 하면 잔등이를 뿌질든지 다리를 뿌질든지 그리 안 하면 박이 깨지든지 깨집니다, 그 길 가다가서. 그 걸음 걷다가 깨진다 말이오. 병신이 된다 말이오.
이러면 그때사 ‘이거 이상하다. 어째 내가 지금 하나님의 뜻대로 이 길 걸어갈라고 이 일 할라 하는데 왜 이리 어려움을 당하는가?’ 그만하면 깨달을 건데 안 깨닫거든. 또 한번 당해. 어떤 것은 세 번 네 번 당해야 회개를 해요.
그러니까 여게서도 하나님이 제 사욕에 동행하는 하나님으로 마귀를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는 그런 어리석은 자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몰라. 이래서 요한일서 4장에 보면 “신을 분별하라” 했어, 구별해서. 다 성령이라고 생각지 말고 영을 구별해 가지고 성령인지 악령인지 이걸 구별하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뭐 시간 다 됐는데. 요 라오디게아 교회를 좀 자꾸 좀 읽어봐요. 읽어봐서 깨달아져야 돼.
오늘 아침에는 그것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성경은 꼭 성경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겠느냐? 성경이 나에게 뭐라고 가르치느냐?’ 성경 지식을 배울라고, ‘성경은 어떻게 행동하라 하느냐?’ 내가 행동할 것을 성경에서 배울라고, `성경은 어떠한 사람이 되라고 하느냐?’ 내가 사람되는 그걸 내가 배울라고, 요래 하기 위해서 자꾸 말씀을 요 생각 가지고 성경을 읽으면서 또 그대로 행하고 하면은 성경을 능하게 깨닫는 사람이 된다 이래.
그래 깨달은 사람, 그렇게 깨달은 사람은 이 학자들 깨달은 거와 달라. 이래 깨달은 사람이 말하면 그들이 다 이단이라 해. 이단이라 하지마는 좀 지나면 다 따라온다 그말이오.
요새도 지금, 어제도 내가 어떤 목사하고 나하고 한 두 시간 내가 얘기를 했어. 뭐 기운이 쭉 빠졌는데. 그이가 그래. ‘이거 뭐 총공회라는 간판을 뭐 붙일 게 뭐 있습니까? 간판을 그만 장로교면 장로교지.’ ‘장로교 간판은 뭐할라고 붙이노, 그거 안 붙이면? 또 그라면 예수교라고 앞에 붙일 거 뭐꼬? 간판에 붙일 거 뭐 있나? 간판은 이름이다. 이름이라 하는 것은 자기의 잘하고 잘못하는 잘잘못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 이거는 내가 책임진다. 자기의 모든 언행심사를 책임지기 위해서 이름을 나타내는 거다. 이름을 숨기는 그놈은 제 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지금 벗어넘길라 하는 도둑놈이다.’ 내가 그랬어. 안 그렇소? 도장을 찍는 거는 자기가 책임진다는 거라. 그러기 때문에 그 벌써 그 사람 이름이 떡 그러며 ‘나는 아무것입니다’ 자기 신분을 밝히지 안하는 그놈은 도적놈인 줄 알아야 됩니다. 제 신분은 밝히지 안하고 남의 신분만 묻거든.
‘누구십니까, 어데?’ 나는 누구랍니까 그래 안 하면 그거 실례라. 상대방이 나를 알고 있으면 받는 사람이 누군고 그래 물을 수가 있지.
우리 총공회도 보면 썩은 것들이 많은데 이거 전부 추려 내트려 버리고 하나라도 빤짝빤짝하게 그래 살아야 되지 이거 안 됩니다.
이러니까 그 모두 다 그거라. ‘너무 자꾸 다조쳐서 자꾸’ 그래 말해. `자꾸 조겨대고 조겨대고 이러니까, 그뭐 나빠 그런 게 아니라 그래 놓으니까 사람이 귀찮아서 못 견뎌서 이러니까 좀 풀어 놓으십시오. 풀어 놔 가지고 얼마든지 다니도록 풀어 놓으십시오.’ ‘조겨대고 끌고 가도 안 가고 자꾸 지옥으로 달아나는 놈을 놔 놓으면 어찌 되노?’ 모두 그거라.
이제는, 내가 오늘 아침에 여기 내려오면서도 기도했어. ‘하나님이여 나에게 지금 좀 힘을 주시면 내가 이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뭐 죽을 때까지 이 좀 하나님의 진리 가지고 자꾸 깨우치고 자꾸 전하고,’ 그래 내가 그랬어. ‘한 사람에게 말씀을 계속 하루 종일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라면 산다. 말씀 속에 잠겨야 산다. 사는데 말할 힘이 없어 내가 말을 못 하고 있다.’ 그랬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거 저 새벽기도 가는 사람들, 이 봉고차 다 있으니까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 운전하는 사람은 해 가지고 가고, 그래 모두 새벽기도 가면, 거기 가니까 잠깐 와요. 한 삼십 분 기도하고 와요. 그러니까 모두 차마다 차장이 있어 가지고 나올 때는 크렉숀을 뽁뽁 이래 울리면 그만 다 모여 와요. 저도 인제 승용차 안 타고 버스 타고 가다 버스 없으면 봉고차 타고 가고 그래 여기 갑니다. 가서 한 삼십 분만 기도해도, 삼십 분 기도하면 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