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7 14:01
연보
1981. 9. 14. 월새
본문 : 요한1서 3장 16절 - 17절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우리가 연보하는 것은 사람을 돕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돕는 일이요. 누가 하나님을 도와 드릴자가 있을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참가해서 참가해서 하나님의 그 크고 영화롭고 생명 역사에 동참하는 이 축복을 사람들에게 주시기 위해서 연보 제도를 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도우라 돕는 연보라 하는 것이 제일 알아 듣기 쉬운 껍데기로 인간 말로 말하는 것이요. 그것이 실은 하나님 돕움이 아니고 인간 돕는 일이라. 인간을 구제하는 일라. 인간을 구제하는 일인데 그것이 실은 하나님이 피흘려 구속하신 피운동에 동참하는 일이라 피운동을 돕는 일이라. 실은 피운동에 참가하는 일이라. 피운동은 생명 운동인데 이 생명 운동에 제가 대립되는 그런 불쌍하고 가련한 자리에 서지 아니하고, 생명 운동에 가담해서 이 생명 운동과 이 생명의 나라에 복있는 자로 참가하게 하려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연보에 근원을 말했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렸으니 우리를 구원해 가지고 목숨을 버렸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하나님이 사람과 그 외에 모든 피조물들을 구원하실려는 하나님의 이 지극히 귀한 사랑 역사를 알고 우리도 생명을 받혀서 이 구원 운동을 같이 하고 이 구원 운동에 영화로운 나라에 우리도 영화로운 구원을 얻어서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자기에게 이 구원 운동에 협조할 수 있는 이 구원 운동에 받힐 수 있는 그런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서 그 형제에게 그 재물이 있으면 그 구원이 되겠는데, 그걸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여 사랑은 우리 위해서 목숨 버린 그 사랑말입니다.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을까보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생명을 받히신 그 사랑 운동이 어찌 그 속에 있을까 보냐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제 연보에 대해서 증거를 했는데, 첫째로 우리는 연보를 어떤 종류의 연보를 하든지 또 외부의 방편은 어떻게 하든지 연보할 때에 첫재로 생각할 것이, 이것이 예수님의 피운동에 내가 참가하는 일이라 이것을 생각하면서 연보해야 됩니다.
그러면 연보하는 그 연보가 가증스럽지 아니하고 또 더럽지 아니하고 하나님 보실 때에 향기로운 그 제사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이 생명을 받혀 구원하신 이 구원을 받은 자기가 생명을 받혀서 하는 것이 마땅한테 하나님께서 생명을 받을 그런 기회를 주지 안하시기 때문에 안되는 것도 있고, 또 자기가 아까와서 받히지 못하는 것도 있으니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자기가 연보하는 것은 그 연보가 쓰다 남은 것을 연보하는 것도 아니고, 연보가 어데 길가서 주운 것을 연보하는 것도 아니고 그 물질이 자기의 힘, 정성, 지혜, 시간, 노력 이런것을 가지고 그 얻은 댓가입니다. 그것을 내가 주고서 그걸 받아 놓은 지금한 수표라 그말이요 값이라 그 말이오. 이 값을 하나님의 이 피운동에 받히는 것인 이 사실을 깨닫고 요 정신에서, 요 성질에서, 요 책임감에서 연보하는 고것이 첫째 있어야 하겠고, 다음에는 모든 성도들이 이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인간 구원에 참 일생을 받히는 사람들 자기의 일생을 받히되 그중에도 이 복음운동 교회를 위해서 그 마음에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을 가진 이런 사랑의 전달로 우리에게 복음이 왔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사람들이 통계를 말하기를 '교회는 피로 세워야 된다' 그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피로 세워야 된다' 말은 예수님의 피는 의례히 그 근원이 되지마는 예수님의 피로 인한 성도의 피를 흘려야 교회가 서진다 이랬습니다. 피 없이는 교회가 안선다. 그말은 참 자기에게 최귀의 최귀의 가장 좋은 최귀의 것을 받히지 아니하면 교회는 안되는 것이다. 누든지 그 피를 받히는 피가 있어야 되지 그거 없이는 안된다.
그러기에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그저 교역자가 그 교회를 대체로 세우는 일이 많지마는 교역자가 세울 수도 있고, 아주 하나님의 성경 말씀은 별로이 알지도 못한 그런 찌끄러기 신자같은 그 신자가 세우는 교회 있습니다. 어쨎든지 그 교회는 자기의 최귀의 것을 그 교회를 통하여 인간 구원을 위해서 자기의 최귀의 것을 기울이는 그 기울임이 없으면 교회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연보는 이렇게 성도들이 인간 구원에 참 최귀의 것을 다 기울려서 이 구원이 자기에게까지 전달되 왔는데 자기도 있는 최귀의 것을 기울려서 이 복음 역사에 받히게 할터인데, 자기는 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기회를 주지 안하면 자살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등용해 주지 않는데 자기는 무슨 목회자로 나설 수도 없는 것이고, 그러나 자기는 자기대로 자기 그 생활에서 어떤 입장에 살든지 아람 나라에 포로되어간 그 계집종이 나아만 대장 집에서 계집종 노릇을 하면서도, 자기는 일편단심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려는 그 소원을 하나님이 들어서 크게 영광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어떤 직장에서도 다 자기는 성도들의 이 생명 운동에 자기는 동참해야 된다는 피운동에 동참해야 된다는 이 생각을 가지고 할 때에 피곤치 않을 것이고, 또 자기는 어데까지 그 일에서 영광을 돌리도 마음에 머리가 숙여서 부끄럽고 미안해서 교만한 마음이 나오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피는 참된 음료요 내 살은 참된 양식이라 내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있다" 그말은 그때에 생명작용으로 생명 생활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생애를 할 수 있다 하는 그말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할터인데 내가 이렇게 해 가지고 얻어 놓은 고 댓가 내 피, 살, 마음, 지혜, 시간, 모든 노력 이것을 주고 받은 것이 뭐이냐? 돈이라 그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돈이기 때문에 그거 가지고 내 힘으로 만들만한 그런 쌀도, 금도, 또 고기도, 물건도 다 그것만 가지면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가지고 오는 것은 다 그거 자기 받힌 그 댓가 만큼 가치를 그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한 시간에 백원 벌고, 어떤 사람은 한 시간에 천원 벌고, 어떤 사람은 한 시간에 만원 벌고 몇 십만원 벌고 하는 그것은 자기의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재물이라 하는 건 이런 것이기 때문에 재물을 벌로 마구 잡이로 이렇게 남용하는 것은 자기의 피를 남용하는 것이요. 자기의 생명을 남용하는 것이요. 왜 부모의 것을 유산으로 탔으면 내나 부모가 그것 팔아 가지고 만들어 놓은 재물인 것입니다. 그 재물의 뜻도 우리가 바로 알아야 되겠고, 이것을 연보하면서 성도들이 이렇게 받히는 인간 구원 역사에 내가 참여하는 것이라.
이럴때에 자기가 어떤 연보를 할지라도 연보 그것 가지고 마음에 항상 그저 미안하고 부끄러워 참 진노를 피하는 정도로 되어지는 것이지 그것 가지고 우쭐해지는 그런 일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 성도의 구속 역사에 동참하는 일인 것을 기억하면서 연보해야 되고, 또 하나는 그 연보하는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참 무궁 세계에 자기가 하나님의 은헤를 입어서 피조물을 돕는 그 실력, 그 지위, 그 직책 그것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 가지고 아무리 마련했어도 자기의 생명 받혀 마련한 그 사람은 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우리 주일학교 어떤 반사 모양으로, 자기는 그저 다른 더 이상은 하지 못하고, 있는 힘대로 노동 일을 해 가지고 버는 그 돈을 전부 이 학생 구원하는 토권에다가 솔박 다 받힙니다. 그 받히면 자기가 그날 그날 다 받히는 것인데 아직까지도 생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있는 동안 그것을 바꾸어 가지고 토권살 수 있는 그런 것을 마련해 가지고 이래 하다가, 그러면 그것이 점점 내적으로 주님의 피에 동참하는 성도의 구속 역사에 동참하는 이 사람이 이 성질이, 이 습성이, 이 주관이, 이 행동으로 차차차차 화해져 갑니다.
이런 결과를 거기에서 맺는 것인데 이것을 평소에 사소한 일에서 사소한 부분으로 아주 빈약하게 만들지 아니하고, '뭐 내가 한몫 뭉턱 고만 몸과 생명 복음에 받히면 되겠지' 하는 그런 사람은 '아 저사람은 높은 산에 기올라가기를 엉금 엉금 기서 엉금 엉금 기서 한자국 두자국 올라가고 있는데 저럴 게 뭐 있는가? 몇 천 미터라도 한몫 훅 뛰어가 올라가면 좋지 훅 뛰어가면 좋지' 그게 되어집니까? 그런 것은 다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자기 속에 마귀가 들어가 허망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 그것입니다. 허망한 생각을 가지는 것.
그런고로 이것이 하늘나라에 저축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늘나라에 저축된다 말은 그 돈이 그대로 가서 저축되는 그것이 아니고 그 물질에 대해서 활용된 그 물질을 내가 활용하려 할때에 그것이 나에게 이용을 당하면 내 돈 아닙니다.
활용권 또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그 실력의 양 모든 성도들이 영원 무궁토록 피조물을 봉사하는 이 중보자의 그 역활을 할 수 있는 이 권위, 또 무궁세계에 자기가 어느 정도 어떤 것들에게 필요한 대상이 되어지는 그 대상 그것을 마련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둬라" 말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무궁세계의 실력을 마련하는 것이요 지위를 마련하는 것이요, 또 모든 존잳르에게 환영을 마련하는 것이요, 모든 존재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봉사를 마련하는 것이라. 하늘나라의 생애가 점점 튼튼해지는 것이라. 하늘나라의 생애는 봉사생애입니다. 모두가 봉사요. 봉사할 줄 모르는 자는 그자는 가장 필요없는 존재입니다.
이 세 가지를 생각하고 또 이렇게 연보하면 없어질 때가 닥쳤으면 제가 연보 안해도 없어지고 없어질 때가 닥치지 안했으면 연보 암만 부지런히 해도 연보할 것이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러면 연보해서 자기에게 채워주지 안하고 없어졌으면 그리 안해도 그것이 자기에게 없어질 것인 것을 알아야 되고, 또 연보한 그것이 그대로 채워졌으면 연보한 값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연보를 하니까 하나님이 바로 쓰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바로 쓰니 또 주겠다 새 자본으로 새 자본으로 주시는 것, 또 그것을 쓰니까 점점 큰 자본으로 높은 자본으로 바꿔주는 것 이것인 것을 알고 우리가 연보를 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은 더러워진 자는 점점 더러워지고, 악한 자는 점점 악해지고, 깨끗한 자는 점점 깨끗해지고, 슬기로운 자는 점점 슬기로워지고, 구원은 첫째 개체 구원이요. 개인 구원이요. 그 다음에는 단체 구원입니다. 연보에 대해서 어제 오전 오후를 말하고 또 잊어버릴까해서 오늘 새벽에 다시 그걸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에 보면서 연보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성경에서 많이 가르쳐줄 것입니다.
그 연보할 때는 누가 알도록 하기 위해서 이래하다 보면 시험에 듭니다. 왜 알도록 하기 위해서 그걸 바라서 인간의 눈, 인간의 귀, 인간의 입술, 인간의 마음 그것을 보고서 연보하는 그것도 성경에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것은 그리 됨으로 보고 듣는 그 사람들이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저희들도 그와같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격동시키는 그런 유익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다가는 잘못하면 제가 저 위해서 하는 것 되고 또 사람에게 칭찬받을 때에 그 칭찬을 제가 받기 쉽다 그 말이오. 받을 때 안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요. 받을 때 안 받는다는 것이 '아 나는 그 칭찬 받을것이 없습니다.' 입으로 말하기를 쉽지마는 그 칭찬을 정말로 속으로 받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받았으면 성경에 뭐라고 말했습니끼. "세상에서 이미 상급을 받았느니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에 보면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그래하지 이 세상 일과는 전혀 반대입니다. 껍데기로 이렇게 해서 하면 실컨해도 나중에 보니까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 다 불탈 것이고, 또 모래위에 지은 집 '모래위에 지었다'는 그 모래는 쉽게 말해서 피조물 자기 위해서 한 것이 모래위에 지은 것입니다.
'반석 위에 지었다' 그것은 반석은 곧 주님으로 인해서 동기도 주님, 목적도 주님, 방편도 그 법칙도 주님 이것을 가르쳐서 반석 위에 지었다 그렇게 비유해 놓은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