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7 10:53
연경 기도 실행
본문 :고전 1:26-31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이 말은, "부르심을 보라" 하는 이 말씀은 예수님 믿게 하는 것을 보라 그말입니다. 부르심을 보라 이 말은 예수님 믿는 그것을 보라, 예수 믿는 걸 보라 그말이오. "부르심을 보라" 예수님을 믿게 한 것을 보라, 예수 믿는 걸 보라. 사람이 볼 수 있는 예수 믿는 것 말입니다. 예수 믿는 걸 보라. '농사 짓는 것 보라, 장사하는 것 보라' 예수 믿는 걸 보라.
보면 어떻다 말인가? 「육체를 따라」 '육체를 따라' 그말은 인간적으로 말입니다. '육체를 따라' 그말은 인간적으로, 사람으로서는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세상적으로 보면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세상에서 그렇게 잘나고 힘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뭐 세상에서 그 사람이 큰 사업가다, 또 정치가다, 학자다, 예술가다, 무슨 뭐 아주 그렇게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아주 그 계통이 썩 잘난 계통이 잘난 그런 사람들도 많지 않다. 그 사람은, '그 사람들은 모두 선친들이 좋아서 대대로 아주, 왕대 끝에 왕대 나고 좀대 끝에 좀대 죽순 나는 것처럼 그 사람들은 대대로 사람이 종류들이 다 위대하다' 하는 그런 무슨 아주 문중, 그 종자가 그렇게 좋은 그런 것이 많지 아니하다.
「그러나」 27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사람이 참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보면 그렇게 뛰어나게 잘난 사람 없다 그거요.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면 그것이 뭐 찍해야 세상에서 꼬물꼬물거리다가, 다들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니라 그거요.
그러니까 신학교 가면 모두 못난 사람들 그런 사람들만 모입니다. 언제 ○○○목사님이 나한테, 그때 대학에 다닐 때인데 내가 한 번 불러 가지고 '네가 어떻게 할 것이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가?' 물으니까, '네가 사명감이 없나?' 물으니 '제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들이 잘난 사람은 잘난 아들은 전부 세상 공부하러 보내고 못 난 찌끄러기 그런 것만 신학교를 보내니 이래 가지고 우리가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가 앞으로 후계자가 어떻게 되겠나 하는 그것이 마음에 목사님 설교를 듣고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이가?' '그게 느껴져서 마음에 암만 벗으려 해도 벗어지지를 않습니다.' 그런 말 하는 걸 들었습니다.
내가 그때 말할 때에 '그것이 영감의 마음이다. 예수님이 걱정하는 그 마음이다.' 했는데, 이것 보면 교회 안에서도 보면 조금 잘났다 싶은 그것은 전부 뻐드려져 나가서 제가 잘난 척하고 제 잘난 대로 한다는 것이 전부 우리가 볼 때는 사망이오. 참 불쌍하고 가련하요.
아주 잘난 사람 아니라도 '저 사람은 쓸모있다' 싶은데 그 사람 쓸모있는 사람에게 무엇이 지금 병이 들었느냐? 인격에 암병이 들었습니다. 아,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인데 암병이 들어 왔으니 뭐 불치병이 들었으니까 몇 달 있다가는 죽지 제가 어떻게 할 겁니까? 이것 모양으로 '저 사람은 쓸모있는 사람이다' 싶은데 그 사람에게 암병이 들어 있다 말이오. 인격의 암병이 들어 있다. 인격의 암병이 뭐이냐 하면 그것도 제게 조금 장점이 있다 말이오. 장점이 있으니까 장점 그놈이 들어서 그 사람을 망칩니다. 장점이 들어서.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장점 그런 것 가지고 살려고 하고 애씁니다.
고기덩어리가 건강한 사람은 그게 건강하기 때문에, 마음의 힘이 건강한 사람은 마음의 힘이 건강한 그것 가지고, 또 자기가 용모가 잘난 건 또 용모 가지고, 몸에 태도가 좋게 생긴 것은 또 태도 그것 가지고, 지식이 좀 유식이 돼 가지고 있으면 지식 그것 가지고, 그것은 대대로 내려오는 문중이 좋아서 자기네들의 모든 친척들이나 사가간들의 그 울이 있으니까 그것 가지고, 현재 직장이 좋으니까 직장 가지고, 이놈 좋은 것 이놈 때문에 전부 다 망합니다.
'저것은 저게 아니면 되겠는데' 저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잘 복음에 이용하려고 하지 않고 그놈 때문에 교만해서 헛일입니다.
왜? 세상은 그것 가지고 살면 됩니다. 세상은 그것 가지고 살 수 있고, 그것 가지고 뜯어먹을 수 있고, 그것 가지고 삽니다. 살지마는 하나님 앞에는 없는 것이라야 하나님이 거기에 채워 주시지 있다 고 생각해 가지고 그것 가지고 날뛰는 것은 하나님이 채워 주시지를 아니합니다. 이러니까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더라 그거요. 어리석어.
'저것은 무슨 사리 판단을 잘한다. 저거 귀하다.' 이랬는데 그거는 또 그것 장점을 가지고 뒤로 저뻥하고 '내가 이게 있으니까 저 사람들보다 요게 있으니까 요것 가지고 하겠다.' 이러니까 그것 때문에 또 썩어버렸어. 참 쓸모 없는 사람 많고 쓸모 있는 사람 귀합니다.
아주 아무 것도 없고 충성만 하면 바보라도 일없소. 자기를 정말로 부인하고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안 된다' 하는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있는 힘을 다 기울여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으려면 그것이 지혜요 지식이오. 그대로 하려고 애쓰면 그게 능력입니다.
이런데, 그런 사람이면 뭐 못나도 좋소. 그러니까 잘난 사람 볼 때에 '저것은 참 하나님 앞에 헌신했으면 유망하다' 싶은데 그것은 그것 때문에 그것 가지고 일생 동안 죄짓는 일만 하고 돌아다니다가 망해 버리고 맙니다.
왜?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시는가? 그런 자는 물리치시고, 그런 자는 물리쳐 버리고 겸손한 자를 하나님이 택해 가지고, 겸손이라는 것은 그저 움켜들이는 게 겸손이 아니라 자기를 바로 알고 일을 바로 알고 자기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그걸 깨달은 자, 그게 바로 아는 거라.
인간이 망하는 일은 저 혼자 하지마는 생명에 속한 일은 지극히 작은 것도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못 하는 것입니다. '요만쯤이야 내가 할 수 있다' 하는 그 사람은 그것 잘못 알았소.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미련하다 말은 어리석고 무능하다 그말이오.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에 지혜 있는 자" 지혜는 미래사를 아는 게 지혜인데, 아주 그 사람 지혜가 있는 사람, 미련한 사람인데 실은 미련하다고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이 조심해서 하나님의 뜻을 맞춰 나가다 보니까 나중에 일생을 살고 보니 그 사람의 생애는 후회할 것이 하나도 없는데 지혜 있는 사람은 그 지혜를 전부 세상에다 다 쏟아서 살았으니 죽을 때 보니까 불탈 것만 했지, 망할 것만 했지, 심판 받을 것만 했지 칭찬 받을 것은 하나도 해 놓은 게 없어. 요렇게 잘난 자들을 하나님이 꺾으십니다.
그거야 못난 자보다 잘난 자가 하나님에게 같은 겸손과, 같은 부인과, 같은 욕망을 가지면 그 사람이 있는 것 만치 뛰어나지.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세상이 볼 때에 무시하는 것, 세상 이 볼 때 무시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귀중히 여깁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것을 귀중히 여기시는 것,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심이라" 이런 것들, 있는 것들을 다 폐하고 이런 것들을 세우게 하심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무시하는 그것을 키우시고, 세상에서 무시가 아니라 순 거짓말하고 있다 하는 그것을 더 강하게 하시고, 또 미련타 하는 그것을 더 힘쓰시는 것이 뭐이냐? 왜 하나님이 힘쓰시는 게 저거 보기에 무시가 되어지는고? 어리석게 보여지는고? 왜 하나님이 있는 힙을 다 기울여 하는 그것이 저들에게는 없는 것같이 그렇게 천하게 보여지는가? 저거 눈이 잘못됐지, 저거 눈이 잘못됐어. 세상 저거 눈이 잘못됐고, 저거 지식이 잘못됐고, 비판이 잘못됐지.
'죽고 난 다음에 영생이 있다. 이 세상에야 어찌 됐든지 세상을 가지고 무궁세계에 잘 살도록 하자.' 이러니까 '어리석은 자들 참, 인간이 죽고 난 다음에 어찌 되는지 아나?' 이렇게 해서 그들이 무시하지마는 저거가 저거 꾀에 멸망하지. 왜 영생이 없어? 왜 부활이 없어? 왜 내세가 없어? 내세가 없고 부활이 없고 심판이 없을 진대는 예수 믿는 사람들 세상 사람같이 그렇게 못나게 살 사람 없습니다. 생명 내놓고 막 설치면 그까짓 잘난 사람이 어데 있으며 똑똑한 사람이 어데 있으며 강한 자가 어데 있습니까? 뭣 때문에 김일성이 저런 것 내비두겠소? 며칠만 하면 다 없애버릴 건데.
믿는 사람들은, 참 믿는 사람들은 간이 굉장합니다. 포부가 굉장 하요. 포부가 굉장하고 그 용감이 굉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때문에, 내세 때문에, 부활 때문에, 심판 때문에 이 세상에서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디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예수 믿는 사람은 잘난 사람이 아니면 예수 못 믿는다.'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을 정말로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예수를 못 믿습니다.
뛰어난 사람이 처음에 됐는가? 처음에는 못난 사람이지마는 성경을 알고 보니까 간이 커져버렸습니다. 성경을 알고 보니 아무래도 한번 죽는다는 것 죽음에 대해서 종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뛰어나 보면 되는데 뭐 권세있고 있는 자에게 그에게 아부하고 종될 필요가 없어. 나도 있으면 되는데. 하면 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믿으면 사람이 간이 커집니다. 포부가 커집니다. 용기가 있어집니다. 지혜가 넓어집니다. 예수 믿어도 하나님 때문에 세상에서 약하고' 천국 때문에 세상에서 지고, 참고, 견디고, 양보하고 하는 그것이 하나님 때문에 세상이 볼 때에 못나고 약한 사람이 되어지는 그게 예수 잘 믿는 사람이지, 예수 믿는 사람이지, 예수를 믿은 지 오래 돼도 하늘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하늘나라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세상에서 그만 자꾸 이렇게 양보하다 보니까 못난 사람, 간 작은 사람, 째째한 사람, 더러운 사람, 약한 사람, 비겁한 사람 이런 사람이 된 것은 예수 잘못 믿었습니다. 잘못 믿었어.
예수믿는 사람이 하나님과 천국을 내놓으면 아무도 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당할 사람이 없어. 그러면 뭐 대낮에 사람을 뭐 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것이오. 왜? 아무 세상적인 그런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그 사람이 죽은듯이 꼼짝 못하고 말 한 마디를 잘 못하고 뻘뻘 떨고 하는 그건 하나님 때문에, 천국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부활이 있기 때문에 못 하는 것이오.
예수 믿는 사람이 이것 때문에 못난 사람으로 약한 사람으로 머리 숙이지 않고 이것도 생각지 않고 세상적으로 그렇게 점점 예수 믿어가니까 약하고 못난 사람이 되어지는 그거는 예수 바로 못 믿어서 그렇다. 예수 믿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인하여 담대할 것, 다니엘이 세상에서는 그 모든 직원들에게 한번도 침략을 못하고 한번도 큰소리를 못하고 항상 죽어지내듯이 벌벌 떨고 지냈는데, 하나님 때문에. 사자구덩이 집어넣는다 하니까 그때는 벙긋벙긋 웃으며 담대합니다. 이게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담대할 때는 얼마든지 담대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간이 작아야 될 때는 뻘뻘 떨어야 될 때는 얼마든지 떨고 간이 작습니다. 다니엘 그런 사람은 같이 직원 노릇 할 때에 '뭐 이런 것 만큼은 좀 같이 해 먹어도 되지 않는가?' 어림도 없고, 말 한 마디를 잘못 할까 뻘뻘 떨고, 뭐 한 마디 잘못했으면 그만 낯이 발가이 해 가지고 마음에 부끄러워서 견디지를 못해서 머리를 숙이고,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뭐 그래 쌓습니까?' '이것, 내가 참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이것은, 그거는 뭐 어데 자기가 털끝만치만 잘못했을 때는 간이 콩낱 같은 그자가 일국이 다 달려들어 가지고 '다른 데에 기도하는 자는 사자구덩이 집어넣어 죽인다' 하는 이런 말이 났으면 발발 떨 줄 알았는데 아니 발발 떨기는커녕 기쁘게 여기면서 여전히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왜 이래 간이 커? 믿는 사람이 이렇게 되는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6·25 때 보니까 6·25가 닥치기 전에는, 그곳에 있는 전도사가 과거에 있는 전도사는 저거가 말하면 다 와 가지고 뭐 무슨 강연할 것 다 해 주고 이러고 이러는데 이번에 온 전도사는 그렇지 않더래요. 이러니까 '저거는 등신 바보 그게 출세도 못하는 것.' 아주 멸시 천대를 하지마는, 그래도 거기에 학생들이 나오니 학교 선생들한테는 죽은듯이 머리를 숙이지, 또 그 집에 주일학교 학생 하나 나오니까 그 집의 가족들에게는 죽은듯이 머리를 숙이지, 또 그 남편에게 자기 부인이 나오니 혹 잘못해 가지고 그게 그것 때문에 해 가지고 '너거 교회 조사인가 뭐인가 그것 교만하더라. 가지 마라.' 이래 할까 싶어서 겁이 나서 벌벌 떠니까 이것은 못나고 간 작은 줄 알았는데, 6·25가 턱 나고 나니까 그 사람은 인민군이 다 달려들어서 막 달려들어서 뭐라고 한다고 해도 주먹을 강단을 때려 주면서 하루 세 번씩 모여서 집회를 하지, 기도를 하지, 그들이 와 가지고 전쟁하는 데 짐지고 가라 뭣 가라, 짐 안 지고 가려 하니까 따라서 감독하러 가라 암만 해도 한 번도 굴복 안 하지, 이러니까 인민군 앞에는 간이 크기를 뭐 짝이 없어, 저거는 보니까 그만 다 콩밭같이 그만 다 불탄 개가죽같이 오그라져 가지고 사지를 못 쓰요.
그러니까 6·25가 척 지나가고 나니 그 사람들이 '하, 저거 그때 보니까 참 간 크고 굉장한 사람인데 우리한테는 그렇게 겸손히 해서 그런 걸 몰랐다.' 이래 놓으니까 6·25가 지나고 나니까 길가 가면, 그 사람이 길가 가면 저 오던 자들이 오다 그 사람 보고는 머리 쿡 숙이고 그만 딴 길을 도망을 쳐 버려. 예수 믿는 건 이게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 믿는 것이라.
예수 믿는 사람이 죄 지을까 두려워하고, 혹 자기 주장대로 살까 두려워하고, 바울이 벨릭스 각하니 그런 사람 앞에 가서 섰을 때에 보면 벌벌 떠는 것 같습니다. '각하여, 이렇습니다. 저렇습니다.' 아주 말 한 마디를 크게 못하고 벌벌 떨게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이 죽기가 두려워서, 그러다가 그 사람들에게 호통칠까 겁이 나서, 이 세상 사람이 법관에게, 공산주에게 붙들려 가 가지고 두려워하는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말 한 마디라도 자기 감정대로 하는 말이 될까, 자율이 될까, 자기 감정대로 자기 주관대로 하는 말이 될까, 상대방이 그렇게 말하니까 일 대 일의 복수의 말이 될까, 영감의 말이 되지 않고 진리의 말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벌벌 떠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일 불행스러운 무식이 하나님 모르는 무식이 제일 불행스러운 무식이오. 그다음에는 인간 모르는 무식이 둘째로 불행스러운 무식입니다.
그다음에는 비판이나 평가나 행위에 인간의 행위를 모르는 '저 사람 행위는 보니까 어떻다.'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 깡패들은 깡패 행위나 귀한 줄 알지.
돈만 보고 사는 그런 사람들은 돈만 위한 행위 그것만 알지. 세상 도덕가들은 도덕가 행위만 알지. 그러나 참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 의의 행위를 평가할 줄 아는 사람이라.
행위에 대해서 유식한 사람, 행위를 바로 아는 사람, 그다음에는 마지막으로 사물을 바로 아는 과학자요. 그까짓 거야 몰라도 되고 알아도 됩니다. 그게 제일 마지막 지식이오.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아무 육체라도' 이런 육체나 저런 육체나.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니 신앙의 사람 신앙이 아닌, 믿는 사람이라도 신앙이 아닌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그런 것들 말입니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뭐 이런 것이나 저런 것이나 재벌이나 정권이나 용모나 지식이나 지혜나 예술이나 과학이나 이 모든 인간들의 것,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것이 아닌 인간들의 것 그것은 "아무 육체라도"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걸 나타내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이것을 나타내지 못하게 하느니라. 이것만 나타내는 사람 세상 사람이지. 이것만 나타내는 것은 전부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전부 불로 타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온 그것을 나타내는 것은 영원이라, 영생이라. 영원히 있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 나타내면서 이것 팔아먹고 삽니다. 이것 광고하고 삽니다. 이것 다른 사람에게 표하고 삽니다. 나타내고 삽니다. 이것 써먹고 삽니다. 안 믿는 사람은 이것 써먹고 살지 제가 뭐 할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못하게 하셨는데 지금 얼마든지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못하게 하시는데 모든 사람 이것 하는 것을 유황불 구렁텅이에 몰아넣을 때에 '하나님께서 과연, 하나님이 아무 육체라도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고 육체 나타낸 것은 전부 유황불 구렁텅이로구나.' 모든 사람은 육체를 나타내는데 영감을 나타내고 진리를 나타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하나님 능력 그것만 나타내는 그것은 그것이 전부 의요 그것이 다 영생입니다.
30절에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30절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우리가 어떤 피조물로 인하여 나온 것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왔소.
"너희는" 택한 너희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보관되어 있고" "보존되어 있고" 생기기는 하나님에게서 생겨 가지고 나왔고 보호는 예수 그리스도 보호 안에 있습니다.
안에 있고, 그러면 예수는 뭐인가? 그래 가지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우리에게, 우리 택한 자들에게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었으니」 "구속함이 되었으니" 어린아이가 아무것도 없는 그것이 아버지에게서 정충이 나와 가지고 어머니의 안에 있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 어머니 태 중에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
이러기 때문에 어머니는 꼬물꼬물거리는 정충 그것 하나가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에 어머니 뜯어먹고 그것이 뒤에 가서 아이가 돼 나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또 예수님은 하나님께로서 나왔으니까 나와 가지고,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었으니" 요것은 우리의 전부 됐다 그말이오.
예수가 우리의 지혜 됐고, 예수가 우리의 능력 됐고, 예수가 우리의 힘 됐고, 예수가 우리의 실력 됐고, 예수가 우리의 눈도 되고, 귀도 되고, 코도 되고 다 돼 버려, 예수가.
어린아이가 전부 어머니로 갖춰 이것 다 돼 버렸어. 눈도 어머니의 것, 귀도 어머니의 것, 세포도 어머니의 것 전부 다라.
요와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것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나와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보관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로 말미암아 크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크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시요. 이러기 때문에 그로만 우리는 커집니다. 달리는 커지지 못하요. 예수님이 우리를 사죄했습니다. 칭의했습니다. 화친을 했습니다. 이 방편으로, 이 방편으로 어머니를 빨아먹고 자라야 됩니다.
태속에 있는 것이 어머니를 빨아먹되 어머니의 피를 빨아먹고 영양을 빨아먹고 이렇게 빨아먹는데 지금은 입으로 먹지마는 그럴 때는 뱃구멍으로 먹고 뱃구멍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 피부 전체로 빨아먹습니다. 어머니 태가 대이는 데마다, 이 볼태기로도 빨아먹고, 등어리로도 빨아먹고, 발바닥으로도 빨아먹고 다 빨아먹소. 대이는 데는 다 빨아먹어.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살 동안 자기의 현실 현실에서 사죄받은, 죄 안 지으려 하고 의롭게 살려 하고 하나님하고 화친하고 살려하는 이것이 예수 빨아먹는 거라. 이러면 그 안에 뭐이 있느냐? 그 안에 진리 있어. 그 안에 진리 있어. 그 안에 성령 들었어. 그 안에 하나님 있어.
이래서 "성령과 물과 피가 증거한다" 증거한다 그말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갖다 준다 그말이오. 증거한다 말은 나타낸다 그말입니다.
그런고로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이러기에 나타내는 자는 민족도 나타내지 말고, 전인류도 나타내지 말고, 자기도 나타내지 말고, 가정도 나타내지 말고 아무것도 나타내지 말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그것만 자꾸 네가 받아서 나타내라. 그것으로만 자라가라 그말이오. 그것으로만 커지라. 그것으로만 유명해져라 그것으로만 커져서 모든 사람에게 보여 줘라.
아이들이, 그 뭐라더라? 풍선이라던가 뭐 이래 고무로 만들어 놓은 것.
들어붙어 가지고 요만한 조그만한 고무줄인데 요걸 자꾸 부니까 자꾸 커집니다.
나중에 부니까 이만치 커지데요. 커지는데 그게 뭘로 커졌는가? 뭘로 커졌습니까? 내가 숨을 불어 넣으니까 내 숨으로 그게 커졌습니다. 내가 공기를 불어 넣으니까 공기로 커졌어. 그 모양으로 하나님과 진리와 그리스도의 구속,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한 하나님과 진리로 자꾸 커져라 하나님과 진리로만 커져, 너는 하나님과 진리로만 커단해져라.
이것이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으니라" 이것으로만 네가 커지라 함과 같게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힘과 힘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힘과 힘이 싸우고 있소. 그러기에 우리의 투쟁은 계속입니다. 그 힘은 여러 수천 종류도 넘소. 이러나 그것이 없어질 힘도 있고, 늙어질 힘도 있고, 깨어질 힘도 있고, 죽을 힘도 있고, 심판받을 힘도 있고 망할 힘도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속한 모든 힘은 다 죽은 힘이오. 죽이는 힘이오. 불탈 힘들입니다.
다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힘은 이는 다 영생하는 힘이오. 지금보다 늙어갈수록이 더 힘있어, 죽을 때는 더 힘있어. 부활하면 더 힘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면 더욱 더 힘있어. 무궁세계는 더 힘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산 힘이 있고 죽은 힘이 있고, 살리는 힘이 있고 죽이는 힘이 있고, 영생하는 힘이 있고 영원히 멸망받는 힘이 있으니 힘과 힘을 구별해야 됩니다.
우리가 외모로 죽을 힘을 산 힘보다도, 죽이는 힘을 살리는 힘보다, 영생하는 힘을 영원히 멸망받을 힘보다 천하게 여깁니다. 이렇게 힘의 관이 힘관이, 능력관이, 역관이 이게 바꾸어져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힘을 얻는 것은 자기가 각오나 결심이나 그런 것 인간 의지 그까짓 것 몇닢푼치 안 됩니다. 이 힘을 얻는 데에는 첫째로 예수님에게 연결이 되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예수님을 사모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으로 구원 얻으려 하는 요게 없으면 안 됩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야 돼. 포도나무에 일단 붙어야 돼. 붙고 난 다음에 진액을 빨아먹어야 크지. 진액을 빨아먹는 것은 그분이 태 속에 있는 우리에게 주는 영양이 뭐입니까? 주는 영양은 진리와 영감입니다. 진리와 영감. 선경 말씀을 듣고, 성경 말씀을 읽고, 그다음에는 새김질해 기도해서 영감을 받고 이것이 힘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뭣 때문에 죽이려고 하느냐? 너희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너희들 속에 내 말이 없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 공연히 예수님을 죽이려 하겠습니까? 환경과 주위에서 예수를 버리라고 하지, 예수를 반대하라고 하지, 내놓으라고 하지, 환경과 주위가 내놓으라고 할 때에 예수를 내놓게 되고 예수를 버리게 되고 예수를 대항하게 되는 그 원인이 어데 있느냐? 너희들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오.
그러면 죽음에서도 주님을 배반치 않고 내어놓지 않고 주님을 두려워하고 세상을 깔보는 그것이 뭣 때문에냐? 너희 안에 내 말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서부교회 다녀도 이 진리가 속에 들어가서 '아, 이게 참 진리다' 하는 그것을 제가 깨달은 자는 발길로 차도 절대 못 나갑니다. 제가 정말로 복음을 받았으면 못 나갑니다. 못 나갑니다. 아직까지는 나갈 데가 없습니다. 딴데 가 보고 '여기가 옳다' 이렇게 나갈 만한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여기서 충성해도 자기 감정 하나에서, 이해 하나에서, 자기 혈육 무슨 정실 하나에서 빼딱 그러고 돌아가는 그런 것은 그것은 속에 이 진리가 들어 있지 아니한 증거입니다. 그 증거요.
가룟 유다와 같이 별별 것이 다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 만나 가지고 예수님에게 대한 것 또 이 사회에 정치 세상에 나가 가지고 말 한마디 하니까 '야, 너 아니면 우리 그런 소리 못 듣는데' 여기에서 들은 것 거기 가서 팔고 요게 뒤에 자라 가지고 결국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파는 가룟 유다가 됐습니다.
오늘에 요 예수 믿는 자들도 여기에서 진리 들어 가지고 그것 저기 가서 그것 팔고, 제 구원으로는 생각지 아니하고 그런 짓만 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그건 참 불쌍하고 가련한 자입니다. 이 진리 가지고 자기가 살고 그러고 난 다음에 젖으로 다른 사람을 먹여야지요. 저부터 살고 해야지.
사는 복음으로는 힘쓰지 않고 이것을 다른 데 가 가지고는 제것처럼 팔아먹는 데에 힘을 써. 그것이 이 진리까지도 자기를 위해서 이용을 하니까 하나님까지도 자기 위해 이용하는 자이니 그자의 그 교만과 그자가 자기의 사욕이라는 것이 최고의 사욕 아니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힘과 힘이 대결하는 것이니 힘을 얻는 데에는 첫째로 예수님께 붙어야 돼. 예수님이 자기의 제일 사모의 대상이 되고 갈급의 대상이 되고 그로만 자기는 무엇이 될 수 있다는 이 사실을 굳게 잡아야 이게 예수님에게 붙는 것이오. 일단 붙어야 됩니다. 붙고 난 다음에는 성경 읽고 성경 말씀 들은 것을 배워야 돼. 자꾸 익혀야 됩니다.
내가 어제 예정에 대한 것을 테이프를 가져오라 해 가지고 다섯 개를 가져 왔습니다. 다섯 개를 가져와서 이렇게 들으니까 힘이 나, 내가,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설교를 했지마는 들으니까 힘이 나. 자꾸 밝아져. 심령이 밝아지고 하늘나라가 밝아지고 세상이 이것이라 하는 것이 환하게 밝아지고 밝아져. 또 성경 말씀을 읽으면 또 밝아져. 힘이 나. 신령한 힘이 나. 기도하면 나.
행하는 것은 운동이요, 기도는 숨쉬는 것이요, 말씀을 새김질하고 성경 읽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음식 먹고 운동 안 해도 안 되지마는 암만 운동 해도 음식 안 먹으면 저는 죽습니다. 또 음식 암만 먹어도 숨 안 쉬면 죽습니다.
이렇게 성경 말씀을 듣고 읽고 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세 가지는 우리의 살아나가는 데에 없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안 썩는 데도 이 세 가지, 약해지지 않는 데도 이 세 가지, 더러워지지 않는 데도 이 세 가지, 생명에 관한 힘이 나는 것도 이 세 가지, 이 세 가지가 좋지마는 붙어야 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붙고 난 다음에 영양이 필요하지. 이건 다 영양이오.
예수님을 자기의 유일의 소망으로, 전부 그분 아니면 안돼. 작은 것도 큰 것도 그분 아니면 안돼. 그분은 그 뱃속에 아버지의 정충이 어머니의 배란을 입고 어머니의 태속에 들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 어머니 힘으로만, 어머니 먹고 자랍니다.
이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라도록,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라도록 요렇게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보자 예수님으로 인하지 않으면 성경 암만 봐야 소용없어. 기도 암만 해야 소용없어, 전도 암만 해야 소용없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전도하고 힘쓰는 것은 이것은 운동하는 것이오. 안 먹고 운동만 하면 나중에 말라 죽습니다. 피곤해 죽소. 그러기에 제일 중요한 것이 예수님과 나와 연결되는 것, 그다음에는 진리의 말씀을 먹는 것, 그다음에는 기도하는 것, 그다음에 일해. 날뛴다고 되는 것 아니라.
어떤 사람 내가 봤는데 목회하는데 어떻게 썰거리고 돌아다니면서 아랫도리가 건강해 놓으니까 어떻게 쫓아다니는지? 그래 내가 있다가 '네가 수캐같이 다니지 말아라.' 설설, 수캐는 그저 내놓으면 설설설 막 양사방 이래 돌아다녀. 이것 모양으로 그만 그 교회에 부임해서 한 이삼 일 있으면 교인들 집 다 알아, 며칠 있으면 이 사회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손 잡고 다 압니다. 이러나 하나님하고 사귀는 것이 없어 놓으니까 그것이 무슨 설교합니까? 뭣 합니까? 그렇게 그 운동하는 것인데 심방 전도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말씀이 그 속에 있어야 돼. '이것 교회 학생들이 덜 왔으니까 데리러 가야 되겠다.' 이것 좋지만, 데리러 가는 것 좋습니다. 가도 예배 시간은 조그마치라도 손해 안 봐야 됩니다. 예배 시간 시작하기 전에 와야 온전히 예배가 되는 것이지 예배드리다가 중간에 들어오는 그것은 그 예배는 반동가리치기니까 그 예배를 무시하는 것이 주님을 무시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은총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안 돼요.
그러기에 내가 아레 주일날 보니까 뒤에서 내가 손을 뚜드리며 고함지른 것은 우리 반사인데, 주일학교 반사인데, 열심있는 반사인데 학생들 데리러 오느라고 수고하니까 되지. 아침을 먹었는지 어쨌는지 된데 와서 앉으니까 그만 노곤하게 그만 자는 거라 다른 사람은 구원시키고 저는 멸망받아.
바울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내가 버림이 될까 두려워하여 내가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이 일을 내 싸움의 제일 큰 것으로 삼고 있다." 그렇게 말했어.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이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운동 안 하는 그것도 나중에 병신돼서 비참하게 될 것이고, 예수 믿는 사람이 활동만 많이 하고 음식을 먹지 못하니 영양실조로 나중에 그것도 불쌍하게 될 것, 음식도 많이 먹고 활동도 많이 하는데 호흡이 이것이 부자유로 '하아- 하아- 하아-' 이래 어떤 사람 ○○○목사님이 하는데 유명해도 하도 유명해 '하하하하하하' 하니까 저 동네 밖에서도 들린대요. 저 집 밖에 길가에 가며 들린대요. 앉지를 못해, 숨이 가빠서 앉지를 못해. 똑 요래 가지고.
그랬는데 그 사람이 그 교회에 다니면서 어떻게 애를 먹였는지, 요게 여자라 하는 것은 돌아다니면서 건드려서 애먹이고, 목사는 가시 노릇을 하고, 교인에 그러고, 참 그게 온 교인이 다 '저거는 참 저것 죽는 게 나을 것인데 저렇츰 대항한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그래 쌓아도 그 사람들 되기만 잘 되더라.
살림도 부자로 자꾸 잘되더라.' 잘됐는데 딱 고장이 들어 가지고 요거는 눕지도 못하고, 엎드리지도 못하고, 뒤로 재끼지도 못하고 똑 요래 숙여 가지고 있대요. 요래 가지고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이러면서 그래 온 교인이 다 봤고, 안 들은 사람이 없어. 다 봤어, 그렇게 유명하게 그래 가지고 있다가 죽었어.
○○○목사님이 그걸 증거해. 제가 그 교회 집회를 갔어. 그래 그 소식이 사실이라, 말한 것. 다 알아요.
어리석지 맙시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무지자, 무식자, 속에 그렇게 두려움이 없는 자 아닙니다. 주님은 아주 복수자입니다. 아주 복수를 굉장히 복수하는 분이시오. 그 이상, 인간의 복수성이 다 주님이 만들어 낸 것인데 그분에게 나온 복수성이오. 시기심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분이, 모든 시기가 그분이 만들어 내. 시기의 대가리요. 시기의 근원이오. 그 시기를 만드신 분이오.
시기가 얼마나 크십니까? 주의 이름은 이름이 미움입니다. 이름이 미움. 그분은 미워하기가 얼마나 미워해? 인간들이 미워하는 것, '아따, 그 미움이 참 살인이네. 무섭다. 그 미움이 참 독하다. 무섭다.' 그 미움을 만드신 분이 주님이시오. 주님에게는 그것을 만드신 그 미움이 강한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시오.
그저 주님은 뼈없는 그저 이런 바보 인간처럼 그렇게 '용서만 해라 선하게 해라' 그런 하나님 아니시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을 진노라, 그의 이름은 질투입니다.
그런고로 주님을 업신여기는 그자가 자기를 멸망시키는 것이고 그분을 높이는 자가 자기를 높이는 자요.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가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두렵게 하는 자입니다. 어리석지 말아야 됩니다. 잘난 자가 어데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