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8 16:01
십계명-산믿음
1986. 1. 12. 주일오전
본문:출애굽기 20장 1절∼17절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지니라 간음하지 말지니라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누가복음 17장 5절∼6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겨자씨 믿음은 산 믿음 곧 생명 있는 믿음을 가리켜서 비유하신 것입니다.
겨자씨는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씨를 어데 공중에나 그릇에나 담아 두지 아니하고 흙에다가 심으면 생명 없는 것은 땅에 있는 기운, 지기로 말미암아 그것들이 다 썩어집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씨는 땅에 심기워지면 생명 없는 것을 썩히는 그 지기가, 땅 기운이 올 때에 그 생명이 빨아먹고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산 믿음에는 반드시 세상으로 더불어 전투하는 전투가 있어야 하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산믿음에는 흙과 같은 이 세상과의 서로 대립되고 충돌되고 마찰되는 이 전투가 있어야만 좋은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생명이 없는 믿음은 세상에 이런 저런 모든 마찰이 오면, 그 마찰을 분류한다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우리를 좋게 해 가지고 믿음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그 역사가 있고, 또 우리를 강제로 압도하면서 강압하는 그런, 세상의 마찰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좋게 해서 신앙을 꺽을라고 하는 그 마찰을 가리켜서 미혹이라고 그렇게 하고, 또 강한 세력을 가지고 우리의 신앙 생활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꺽는 것을 가리켜서 모든 악의 세력들이라 환난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겨자씨 믿음이 첫째 우리가 기억할 것은 생명 있는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되겠고, 또 둘째로는 이 생명 있는 믿음은 반드시, 흙으로 더불어 전투가 있는 거와같이 생명 있는 믿음은 이 세상과 전투가 반드시 있다. 유혹을, 좋은 것을 주면서 꼬아 가지고 신앙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한다든지 어떤 강제로 위협을 해 가지고 우리의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그런 유혹의 투쟁이나 또 강제의 투쟁이나 이런 투쟁들이 반드시 있다 있는데, 생명이 없는 종자는 그럴 때에 썩어져서 흙이 되고 말지마는 생명 있는 종자는 적어도 썩지 안하고 오는 지기를 빨아먹고 도리어 자라게 되는 것처럼 산 믿음은 세상의 유혹이나 강제나 이런 것들이 올 때에 그것으로 인해서 그 믿음이 중단되지 안하고, 그 믿음이 끊어지지 안하고, 생명이 끊어지지 안하고,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을 가리켜서 생명이라는 것인데 하나님과 연결된 그 신앙 행위가 끊쳐지지 안하고 도리어 방해하는 그런 것을 이용해서 좋은 성과를 이루게 된다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생명 있는 겨자씨 믿음은 뒤에 무슨 능력을 가지는가? 능력을 가지는 것은 뽑는 능력과 옮기는 능력과 심는 능력을 가집니다. 이 세 가지를 명령할 수 있는 그런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권세를 가지고 뽑을라고 할 때에 전능의 능력으로 다 뽑히게 되고 옮길라고 할 때에 옮겨지게 되고 심을라고 할 때에 심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겨자씨 믿음에서는 이 세 가지를 우리가 잊어 버리지 말고 기억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생명 있는 믿음은 어떤 것을 가리켜서 생명 있는 믿음이라고 하는가?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을 가리켜서 생명 있는 믿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겨자씨는 그 씨가, 복숭씨 같은 거는 대단히 크고 또 수박씨 또 콩씨 이런 것은 다 그 종자가 굵습니다. 그러나 겨자씨는 아주 종자 중에 제일 작은 것이 겨자씨입니다.
겨지씨로 비유한 것은, 이 겨자씨 비유에는 중점을 어데다가 두느냐 하면은 생명에다가 둡니다.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아무리 주먹덩이 같은 씨라도 생명이 없으면 땅 속에 들어가면 지기에 못 이겨서 썩어 버리고 맙니다. 아무리 작은 겨자씨이지마는 속에 생명이 있으면 지기가 올 때에 지기에게 삼키워져서 썩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지기를 먹고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명 있는 믿음은 어떤 것을 가리켜서 생명 있는 믿음이라고 말하는가? 생명 있는 믿음이라는 것은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과 한 덩어리된 믿음이라 그말입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 믿음이라,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라, 하나님과 하나가 된 믿음이라.
그러면,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과 우리가 어떻게 하나될 수가 있는가? 하나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 현실에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세상 온갖 것들이 많이 있고, 또 우리 안에도 헌실을 만났을 때에는 이렇게 해 볼까 저렇게 해 볼까 이런 온갖 생각들도 많이 있습니다. 내 안에도 현실을 만났을 때에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온갖 여러 가지 생각이 있고 또 우리 몸 밖에도 현실을 만났을 때에는 사람을 접하면 이 사람은 이렇게 해라 저 사람은 저렇게 해라 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눈에 보이지 안하지마는 악령은 현실을 만났을 때에 이렇게 하라고 감동시키고 저렇게 하라고 감동시키는 악령의 감화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에 그 현실을 어떻게 내가 행하느냐 하는 데 있어서 사람이 시키는 대로도 또 내 욕심이나 내 뜻이나 내 기분이나 성질이 하자 하는 대로도 하지 안하고 고 현실에서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고 하나님의 뜻대로 고 현실에 내가 행동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고 행동을 인해서 하나님과 나와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람과의 하나되는 것은 현실에서만 하나될 수 있지 현실 아닌 데서는 하나가 되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하나되는 데에는 그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이 내게 시키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그 현실에 행동할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는 그 행동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나와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알고도 하나님의 뜻대로 그 현실에서 할려고 하니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 그 어려음을 두려워서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한다든지 사람들의 권유대로 한다든지 이렇게 할 때에는 막바로 그것이 하나님을 배반해 버리는 일이 되고, 그때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고대로 행동할 때에 그것이 전지 전능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자기가 그 행동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이런 사람으로 살 수도 있고, 하나님과 원수되는 그런 사람으로 살 수도 있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실마다 이것을 생각해서 내가 이 현실에 전지 전능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지극히 크신 이 하나님과 나와 둘이 똘똘 뭉친 하나가 돼 가지고, 한 덩어라, 하나가 돼 가지고 이 시간 내가 사느냐, 이 시간에, 내가 평소에 하나님을 부르고 믿는다고 말한 이 하나님을 배반을 하느냐, 또 이 시간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대립이 돼서 내가 싸우느냐 요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난 현실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말은 반드시 거게 대한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곧 진리가 있는데 고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인 그 진리대로 내가 행동하면 진리대로 행동하는 고 행동을 인해서 하나님하고 나하고는 하나가 됐습니다. 또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인 그 진리를 내가 배반하면 내가 하나님을 배반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배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정반대되는 행위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행위를 할 때에는 그 행위가 곧 하나님으로 더불어 싸워서 대적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하나가 되어서 살 수도 있고, 날마다 부르는 하나님을 배반해 버릴 수도 있고, 또 하나님을 내가 대항해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싸우는 행동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반드시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것이든지 한 가지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이지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없는 것인 것을 우리가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찾아 가지고 그 뜻대로 내가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하고 나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능자와 하나된 것이요, 전지자와 하나된 것이요. 하나님과 하나된 것이요. 만왕의 왕으로 더불어 하나된 것이요, 우주를 주권하고 계시는 그 주권자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요, 그 심판주와 나와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는 이보다 더 큰 행동이 없고 더 권세 있는 행동이 없고 더 세력 있는 행동이 없고 더 강한 행동이 없습니다. 고것을 우리가 언제든지 현실마다 깨닫고 잊어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예배보고 있는 이것이 현실입니다. 이 현실에 하나님과 하나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배반할 수도 있고 하나님과 대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는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이 시간에는 우리의 마음과 정성과 힘과 모든 것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라고 애를 쓰고 이 말씀을 듣고는 고대로 내가 실행해서 살아야 되겠다 하는 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얘배를 드리면 고것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정성이며 성질이며 마음이며 행동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도 하나님, 이 전능자와 하나가 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배반해 버리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 예배드리는 것을 와서 억지로 앉았기는 앉았지마는 반대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그 말씀이 듣기 싫어 반대를 하고, 예배드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짧았으면 좋겠다. 그만 마쳤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것이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거게 대한 상당한 보응이 서서히 와 가지고 사람들이 다 망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 행동에서 하나님과 하나도 될 수 있고, 하나님과 대립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저버릴 수도 있고 이 현실마다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것이라도 된다 하는 요것을 깨닫고 자기가 하나님을 저버리지 안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이 일을 계속할라고 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처럼, 얼마 안 가서 세상에서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역사에 유명한 모든 성자들, 사도들, 사도 선지 그런 사람들도 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이 행위를 많이 하지 못하고 가다가 뜨끔뜨끔 실수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저 혼자 날뛰는 그런 일로서 실수를 하고 이래 그렇지 하나님과 꼭 하나되는 요 일이 계속이 된다고 하면은 그거는 얼마 안 돼서 굉장한 승리자가 되고 존영한 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영이나 육이나 금생이나 내세나 우리 사람의 가치와 실력과 영광과 존귀와 성공 승리는 어데 있느냐? 현실에 있습니다. 그러면, 현실에 있으면 어떻게 있느냐?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고대로 행동하면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기 때문에 거게는 어떤 성공이 있을란지 어떤 승리가 있을란지 우리는 측량 못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하나님의 뜻은 버리고 돈에, 권세에, 지위에, 자기의 무슨 욕심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대로 행동하려는 요거 버리고 , 요것을 버린 그 나머지기 생활은 제가 천하를 얻어도 망할 생활입니다. 온 세상을 다 점령해서 최고의 이것이 됐다 해도 저는 망할 생활 했습니다. 그 현실에서는 죽은 생활 했고 망한 생활 했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배반한 것보다도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그것은 참 비참하게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여러분들 눈에 비참하게 망하는 것이 보이거들랑은 저것은 다 하나님을 대적한 값아라 그렇게 보십시오. 절대 틀림이 없습니다. 또 사람들이 자꾸 늙어 가면서 자기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안하고 모든 것이 다 불평스러워지고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죽을 때라도 다 ‘헛일했다’ 죽을 때라도 헛일했다 죽을 때에 울면서 불면서 한숨을 쉬면서 탄식을 하면서 지금 내가 살면은 어떻게 살겠다 하는 그런 모두, 죽을 때에 두려워하고 죽을 때에 떨고 후회되는 그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산 사람들이라 그렇게 보면 틀림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에 기쁘고 즐거움으로, 죽음이 와도 기쁘고 즐거움으로 순교하고 후회가 없이 그렇게, 죽을 때에 후회없이, 죽을 때에, ‘아, 내가 이렇게 죽기 때문에 ’참 바울이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믿음을 지켰고 달려갈 길을 달려갔고 내 싸울 싸움을 다 승리했으니 이제는 내 앞에 의의 면류관만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담력을 가진 그 사람들은 다 현실에서 하나님과 동거동행하고 하나되는 그 생활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모두 많은 사람들이 살고 가지 않습니까? 늙은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고 지금 뭐 중층되는 사람도 있고 사오십 육칠십 칠팔십 또 죽는 사람 이런 것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있는데, 그 모든 사람을 볼 때에 요 세 가지로 판정하면 정확한 판정이 됩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외롭고 쓸쓸하고 후회되는 그 모든 참 실패의 생활을 한 사람들은 다 하나님 배반한 사람들이오.
말할 수 없고 비참한, 그 참혹하고 비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대항한 사람들입니다. 죽을 때도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담대하고 사도 바울같이 그렇게 참 안심하고 기쁘고 즐거운 그런 사람들은 다 현실에서 하나님 놓치지 안할라고 하나님과 하나될라고 애를 써서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에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느냐, 하나님을 배반하느냐, 하나님과 서로 대적이 되어지느냐 요 세 가지 중에 하나가 나타나는 것인 것을 알고 우리는 현실을 깨어서 조심 있게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순종이라는 말인데 산 믿음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연결된 순종이라 그말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순종, 연결된 행위라 말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지 안한 순종이 있는가? 안 믿는 사람들의 생활은 다 하나님과 대적하는 생활이 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성경 말씀대로 만 살고 영감에 맞추지 못한 그것은 전부 하나님을 배반하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생활, 그것은 믿음은 믿음인데 죽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법도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인데 산 믿음은 현실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그 하나님의 뜻에 딱 명중해서 하나님을 따라서 그에게 피동돼 가지고서 행동하는 고것이 산 믿음이오.
죽은 믿음은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는 했지마는 현실에서 영감을 따라서는 살지 안했기 때문에 사람 보기에는 말씀대로 사니까 믿음 같지마는 실상 그것은 죽은 믿음이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는 그 믿음은 산 믿음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겨자씨 믿음도 산 믿음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산 믿음은 현실에만 있는 것인데 현실에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성령이 인도해 주실 때에 그 인도대로 따라서 행동하는 고것이 산 믿음이 되고 생명 있는 겨자씨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한 1서 2장 27절에 보면 성경은 사람들에게 배우지마는 어떻게 행할 것은 사람들에게 묻을 필요도 없고 또 사람들이 가르쳐 줄 수도 없다 다만 너는 기름 부음을 받았으니, 네가 중생됐으니 말입니다. 성령으로 중생됐으니 네 안에 있는 기름 부음이, 네 안에 있는 성령님이 너를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치나니 그대로 너는 주 안에 행동하라, 주 안에 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산 믿음은, 현실에서 성경 말씀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 말씀 가운데에 성령이 요 성구대로 하라 조 성구대로 하라 고 가르치는 고 성구대로 하는 고것이 산 믿음이요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인 것입니다.
둘째로 기억할 것은 요렇게 산 믿음으로, 살 때에, 산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요 신앙 행위를 할라고 할 때에 세상과 마찰이 됩니다. 세상과 마찰이 될 때에 세상이 고 산 믿음으로 사는 생활을 살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방편이 있는데, 달콤하고 좋고 아름답고 내 마음을 참 혹하게 할 만한 그런 달콤하고 좋은 그런 걸 가지고서 나를 꾀워서 성신이 감동시켜 주시는 그대로의 신앙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고런 방해물도 있고, 또 나를 강제로 눌러서 꺾어서 어떻게 고문을 하고 고형을 하고 이렇게 강제를 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생활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있고 이래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마귀는 반드시 처음에는 강제하지 안하고 우리를 유혹시킵니다. 유혹을 시킬 때에 유혹을 받지 안하면 그다음에 두번째는 강제가 오는 것입니다.
유혹을 시키든지 강제가 오든지 할 때에 그때에 내가 영감에 순종하는, 성신의 감화에 순종하는 고 행위를 버리면 나는 망해 버리고 맙니다. 거게서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썩는 것입니다. 마치 겨자씨를 땅에 심었는데 겨자씨의 생명이 없어지면 그만 그 겨자씨는 지기에 못 견뎌서 썩어서 그만 흙이 되고 맙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고 현실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인도하시는 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그 복종을 내가 중단해 버립니다. 복종을 중단하면 하나님과 나와는 연결이 끊어져 버립니다. 그 복종을 변동하면 연결이 끊어집니다. 하나님과 나와 연결이 끊어지면 나에게 지극히 큰 능력의 생명은 내게서 끊어졌습니다. 그러면 그다음부터는 겨자씨가 생명 끊어졌으면 썩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다음부터 나는 세상 것이 되고 맙니다. 세상의 밥이 되고 말고 세상의 이용물이 되고 말고 세상으로 말미암아 나는 범죄하는 그런 썩어지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이 믿음 생활, 겨자씨 믿음 생활을, 산 믿음 생활을, 하나님에게 직접 피동되어서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사는 이 믿음 행위를 내가 버리지 안하고 그대로 계속하고 있으면, 겨자씨 생명이 계속 있는 것처럼, 있으면, 겨자씨 그 생명이 오는 지기를 빨아먹어 버립니다. 먹고 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그 순종을 내가 버리지 안하고 그대로 그 순종을 계속할 때에는 고 순종 속에 들어 있는 전능의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서 내 신앙을 방해하는 그런 것들이 다 잡아 삼켜 버립니다. 그런 것들을 다 이용합니다. 그런 것들을 이용해 가지고서, 그것이 처음에는 방해로 왔지마는 그것이 나에게는 좋은 선물이 되고 맙니다. 나를 복되게 하는 좋은 이용물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겨자씨는 그것을 먹고서 자라는 것처럼 그때에 이 신앙을, 겨자씨 신앙을 버리지 안하고 고대로 계속을 하면 방해하던 것은 내것이 되고 맙니다. 미혹하는 것도 내것 되고 말고 강제하는 것도 내것 되고 말고 그 모든 것은 내것이 되어서 결국은 나에게 이용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겨자씨 믿음에 대해서 둘째로 생각할 것은, 반드시 겨자씨 믿음이 신앙 생활을 할라고 할 때에는 세상을 접하게 된다, 세상을 접촉하게 된다.
세상을 접촉하게 된다,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 생활은 자기가 굴 속에서 하는 것도 있지마는 대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 생활은 이 세상하고 서로 손을 맞잡고 생활을 해야 된다 그말이오. 세상하고 접촉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세상에서 하게 된다, 세상하고 접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겨자씨를 땅에다 심는 것이 됩니다. 땅에다가 심고 나면은 고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는고 하니 땅에다가 심고 나면은 지기가 옵니다. 땅의 수분이 옵니다. 땅에서 뜻뜻한 온도도 옵니다. 땅에 또 그 거름 기운 질소분도 옵니다. 땅에서 온갖 지기가 다 옵니다.
지기가 오는데 이 지기가 오는 종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지기가 오는데, 지기가 오는 그것은 생명이 없으면 그 지기로 말미암아 썩어지고 맙니다. 생명 있는 씨는 고 생명 때문에 오는 지기를 먹고 양식을 삼아서 먹고 자라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하다가 이 세상을 접할 때에, 세상을 접촉할 때에 이 세상에서 온갖 지기가, 땅에, 지기라 말은 땅의 기운이라 말이오. 지기가 오는 것처럼 이 세상의 온갖 세력이 부딪혀 옵니다. 온갖 세력이 부딪혀 와서, 아주 달콤한 것 좋은 것도 오고, 명예도 오고, 돈도 오고, 지위도 오고, 권세도 오고, 영광도, 오고, 미남도 오고, 미인도 오고 막 옵니다. 오만 게 다 옵니다. 좋은 거는 다 미혹시키는 것이고, 나한테 강제하는 것은 그거는 악의 세력이 나를 강제로 세력으로 누르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옵니다. 오는데, 그런 것이 올 때에 하나님과 연결된 고 믿음을 제가 가지고 있을 때에는 연결된 지극히 큰 능력이 나와 함께 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다 삼켜서 이용을 할 수가 있고, 그것들을 다 이겨서 잡아 먹고 내가 이용을 하지마는 내가 그 믿음을 버리면 지극히 크신 분과 연결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나는 그 세력에게 삼켜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다니엘에게는 처음에는 그 달콤한 것이 다리오 왕이 와 가지고서 하루 종일 ‘다니엘아 다니엘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안하느냐? 내가 일국에서 너를 제일 신임하지 않느냐? 내가 너를 지금 삼 총리 중에 하나로 세웠지마는 이제 하나 단독 총리를 널 세울려고 하는데 내가 이렇게 사랑하지 않느냐?’ 그 달콤한 게 왔습니다. 고건 유혹입니다. 유혹이 왔을 때 그때 다니엘이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이 없었으면 그 유혹에 빠집니다. 유혹에 떨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유혹이 오다가 안 되니까 마지막에는 ‘정 그러면 너는 할 수 없다, 사자 구덩이에 잡아 넣어야 되겠다’ 사자 구덩이에 묶어서 집어 던졌습니다. 그거는 이제 강제가 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유혹이 오고 그다음에는 강제가 오는 것입니다.
강제가 올 때 그때에 다니엘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연결이 없었다면은 다니엘은 그때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리오 왕이 유혹할 때 그만 다리오 왕의 달콤한 그 말에 유혹받아 가지고 그만 떨어져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녜, 그라면 한 달 동안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하는 그런 말 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또 그 유혹에는 배반을 안 했다 할지라도 사자 구덩이에 집어 넣는다 하고 뚤뚤 묶을 때에는 그때는 하나님과 연결이 되지 안했으면은 그만 겁이 나 가지고서 그때에 강제를 당해서 그만 하나님을 배반하게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고 있고 보니까 그 모든 것을 유혹도 이겼고 강제도 이겼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배반하지 안한, 끊겨지지 안한 것이 뭐인가? 끊겨지지 않는 것이 뭐인가? 끊겨지지 않는 것은 자기가 기도를 한다고 하다가 ‘이제는 그러면 기도 안하겠습니다’ 그라면 그 겨자씨 믿음을 배반하는 것인데, 자기가 끝까지 ‘나는 기도하겠습니다.’ 고 `기도하겠습니다' 그것만 가지고 있으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는 그것만 계속하니까 그 속에는 전능의 능력이 있어 가지고서 그 모든 것을 이기게 됐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겨자씨 믿음의 이 영감 신앙 생활을 할 때에 세상과 나와의 서로 관계를 가져서 세상과 나와의 접하게 될 때에는 그것이 ‘아, 이 겨자씨 믿음이 이제는 땅에 심기우게 된다’ 그걸 기억하십시오. 땅에 심기우게 된다 세상을 접하고 난 다음에는 처음에는 달콤한 것이 오다가 그다음에는 강제가 오고, 달콤한 게 올 때에 내가 이 신앙을 양보하지 안하니까 강제가 오고, 달콤한 것이 오고 이제 그 강제가 오고 할 때에, 고 여러 가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방해하고 대적하는 것이 달콤한 걸로 오든지 쓴 걸로 오든지 올 때에 그때에 우리는 깨닫기를 ‘아, 내 겨자씨 믿음에 이 지기가 온다, 땅 기운이 온다.
뜻뜻한 것이 온다. 이 뜻뜻한 이놈을 먹어야 되겠다. 비료기운이 온다. 비료 기운 이걸 먹어야 되겠다. 수분이 온다 수분을 먹어야되겠다’ 그것이, 자기가 이 신앙 생활 하다가 신앙 생활의 방해물이 있으면 그 방해물 그것이 자기 신앙을 키우게 할라는 밥이라는 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밥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밥이라는 것을 고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그 신앙 생활을 뺏들라고 하는 것이니까 신앙 생활 뺏기지 안하고 그 신앙 생활 계속하면 그것은 나에게 이용물이 되고 그거는 내것이 돼 버리고 마는데 내가 그 신앙 생활을 하다가 달콤한 게 오니까 달콤한 게 좋아서 신앙을 버려 버리고 달콤한 것을 취하게 되면은 자기는 달콤한 것에게 밥이 되어서 자기는 썩어 버리고 맙니다. 자기는 멸망을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신앙 생활을, 산 신앙 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는 반드시 전투가 있다 하는 것을 잊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전투가 있다 반드시 투쟁이 있다, 투쟁이 있을 때에 내가 이 신앙을 버리지 안하고 거머쥐고 계속하면은 그 투쟁하는 대상은 전국이든지 세계든지 어떤 재벌가든지 어떤 악한 자든지 어떤 미혹의 것이든지 내가 이 산 신앙을 버리지만 안하게되면은 그것은 결국은 내 이용물이 되고야 만다. 그것을 내가 이용해서, 그것이 아니면 내가 커지지 못할 터인데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는 신앙이 커지고 이제는 큰 능력을 역사할 수 있는 이런 큰 신앙 강건한 신앙이 된다 고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기 때문에, 다니엘 같은 사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같은 사람들은 다 요 믿음의 이치를 알았기 때문에 그때 흔들리지 안하고, 이제, 사자 구덩이에 넣는다 온 전국에서 조서를 내리고 이래 하니까 다니엘은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전히 감사하면서, 그러면 ‘아, 이제 고급 요리 한번 먹겠다, 고급 요리 한번 먹겠다’ 이러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말이오. 지금도 신앙의 사람들 보면은 다른 어린 신앙을 위해서는 그렇지마는 신앙의 사람들은 ‘환난이 한번 와서 이거 모두 다 믿지도 안하고 이거 거짓부리로 외식으로 지금 감투 싸움이나 하고 전부 자기 명예나 영광이나 높일라고하는 이런 모든 거짓부리의 세대가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거 교회들을 한번 청소해서 한번, 정리해서 한번 청소를 해야 되겠다. 환난이 한번 왔으면’ 그러나 그 말은 못 합니다. 그 말하면 약한 사람들이 오해 해 가지고 되리어 사람을 잊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복음 운동이 되지 안하고 도리어 복음 운동에 방해되기 때문에 말은 안 하지마는 속으로는 실은 그것을 원하고 있다 말이오. 그래 원하고 있어요. 밥이 오는 것을 원하고 있어요.
그러기에, 산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산 믿음이오. 산 믿음은 반드시 세상과 접할 때가 온다, 그것은 겨자씨가 땅에 심겨지는 것이다. 겨자씨를 땅에 심지 안하고 그대로 있으면 항상 있다가 좀 먹어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땅에 심어야 이제 효력을 내는 것처럼 세상을 접해야 효력이 된다. 효력이 난다. 세상을 접해 가지고 좀 있으면은 반드시 산 믿음에는 세상하고 하나가 되지 안하고 세상과 대립되는 때가 온다. 대립되는 때가 올 때 그때가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산 믿음의 밥이 왔으니까 산 믿음 네가 생명만 버리지 안하고 산 믿음 고것을 중단하지 안하고 산 믿음을 계속만 하면은 네 대립이라 하는 것은, 개인이 대립하면 개인이 깨어지고, 단체가 대립하면 단체가 깨어지고, 나라가 대립하면 나라가 깨어지고, 세계가 대립하면 세계가 깨어지고 온 피조물이 다 대립하면 피조물이 다 깨어지고 그것을 삼키고야 만다. 필연적으로 삼키고야 만다, 생명 있는 씨는 땅 속에 들어가면 지기를 삼키는 것은 이거는 진리요 필연적이기 때문에 이거는 변동이 없다. 생명이 있으면 삼키기 마련이다. 생명이 없으면 썩기 마련이다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 가져야 될 것입니다.
그다음에 셋째로, 이렇게 생명 있는 믿음이 전투에서 이 믿음을 뺏기지 안하고 이 전투에서 이 믿음을 배반치 안하고 이 전투에서 신앙을 계속만 하면 방해하는 것들을 다 삼켜서 이 겨자씨 믿음이 장성해지고, 장성해지고 그다음에 뭐이냐? 장성해지면 세 가지 능력 행위를 하게 된다.
무슨 능력 행위? 뽑는 능력을 가졌고, 옮기는 능력을 가졌고, 심는 능력을 가진다, 그러면, 그 말 하는대로 뽑히라면 뽑히고 옮기라면 옮겨지고 심기라면 심겨진다.
이 세 가지 능력을 가졌다. 이 세 가지 능력은 자신에게도 자기가 뽑을라고 하면 뽑혀지고 옮길라면 옮겨지고 심을라면 심어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사람에게 뽑을라면 뽑혀지고 옮길라면 옮겨지고 심을라면 심겨지는 이 능력은, 영원한 이 구원의 역사의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게 된다 이래서, 자타를 구원하는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게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침에도 말했지마는 이 겨자씨 믿음을 지켜서 나가면, 계속 지켜서 나가면, 그 학생들에게 뽑는 역사가 나옵니다. 그 학생에게는 우매 무지한, 총명이 없고 둔하고 기억력 없고 기억도 못 하고 총명도 없고 해서 공부도 못 하고 저 꼼바리하는, 꼴찌하는 그 학생에게 꼴찌하는 무지 무능 그것을 싹 뽑아 버립니다.
요 믿음 지킬 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싹 뽑아 버려 주십니다. 또 그 속에다가 하나님의 명철한 지혜와 총명을 그 속에 심어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앙을 지키는 학생 쳐 놓고 일등 안 하는 학생은 절대 없습니다. 만 명이면 만 명 다 일등합니다. 교회 다니면서 농땡이나 부리고 반거치기 노릇이나 하고 신앙 생활 안 하고 겉어머리만 믿는 것같이 하는 그런 것들이 다 천물이 되지, 학생이든지 청년이든지 중층이든지 장년이든지 노인이든지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다 이게 됩니다. 다 이게 됩니다. 그에게 나쁜 것 다 뽑지 좋은 것 심지, 나쁜 것은 다 하나님께서 다 거둬 가져 가지고서 그거 좋도록 새로 만들지, 썩을 것을 썩지 안할 것으로,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없어질 것을 영원히 있는 것으로서, 내게 나쁜 것은 다 운반해서 싣고가 가지고서 좋은 것 만들어 주시지, 하나님에게 있는 좋은 것은 전부 운반해 가지고 내게 보내 주시지.
이러니까 그 사람이 산 믿음 생활을 할 때에 그 사장이 산 믿음 생활을 하면은 나중에 산 믿음이 성공할 때가 어느 때냐 하면은 산 믿음 생활을 하니까 투쟁이 옵니다. 격투가 옵니다. 산 믿음 생활을 할 때에 거기서 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산 믿음 생활을 방해하는 이 사업이 방해하고, 인간이 방해하고, 물질이 방해하고 이제 산 믿음 생활하면 내가 이거 죽겠다 할 그때에 믿음을 가지고 산 믿음 생활을 계속하면 어찌 되느냐? 방해하는 것은 다 이용물이 되고 맙니다. 날 방해하던 것이 그것이 결국은 나를 위하는 것이 되고야 맙니다. 나에게 이용을 당하고야 맙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내게 있는 모든 사업 실패는 그 능력이 와서 싹 뽑아 버리고 성공만 와서 심어 줍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다 운반해서 나에게 가뜩 쌓아 주고 내게 있는 모든 화나 재화 같은 거는 다 없애서 제거해 줘 버립니다. 사업도 그러하고 모든 것 다 그렇습니다.
정치도 그러합니다. 내가 산 믿음으로 살 때에는, ‘내가 산 믿음으로 살면 내가 이제 절단난다’ 다니엘처럼, ‘절단난다' 그러나, 산 믿음에 대한 진리 지식을 똑똑히 가진 사람은 산 믿음 생활을 할 때에 이제 큰 마찰되는 큰 마찰이 오면은 다니엘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마찰이 오면. 왜? ‘아 왔다. 내가 산 믿음을 양보하지 안하고 산 믿음만 계속하면 전능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기 때문에 이제 마찰되는 이 모든 걸 그만 삼킬 수 있다.’ 그때에 자기에게 마찰하던 그 모든 것은 자기의 발등상이 되고야 맙니다.
참 아까운 일 많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정계에 나가 가지고서 뭐이 될 줄 알고 보면은 아무것도 희미하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럴 때에, 주일날 이거 신사 참배하러 가자 하면 ‘아, 주일날 신사 참배하러 가는 것 주일날 안 지키고 가는 것 이거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요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거 죽은 믿음을 나는 가질 수가 없다, 산 믿음 가져야 되겠다, 오늘은 주일날이니까 거룩하게 지켜야 됩니다. 오늘 주일날 거룩하게 지켜야 됩니다. 나는 또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하면 이 마찰이 돼서 ‘저거 이제 사형을 당하든지 면직을 당하든지 절단난다’ 했지마는 만일 그렇게 했다고 하면은 딱 그랬는데 뭐이 꽝 그러면 ‘하, 그이는 의인이다, 그이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그이 말을 들었으면 괜찮을 터인데 어라. 그이를 국무총리를 세워라.’ 몇 번 자꾸 그런 일만 자꾸 되니까 ‘그분이라야 우리나라를 행복되게 인도 할 수 있다.’ 요셉이를 강제로 총리대신 세운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이 산 믿음을 지켜서 대적하는 것들이 다 내 이용물이 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능력 있어서 뽑고 옮기고 심는 이 역사를 자기도 보고 모든 사람이 보게 되면은, 그러면 점점, 그 모든 대적이 이용물이 돼서 내 사다리가 되고 만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산 믿음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지켜 그대로 행하는 것이 산 믿음이라. 산 믿음을 계속할 때에는 반드시 세상과 마찰이 온다, 반드시 마찰이 온다. 마찰 올 때 그 마찰이 오는 그 상대는 내 밥이다 신앙의 밥이다 반드시 그거는 나에게 이용물이 되고야 말고 이용의 결과를 맺고야 말지 그것이 이용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반드시 이용의 결과를 맺고야 만다. 이거는 진리라. 필연이라. 생명 있는 씨기 땅 속에 들어갔는데 지기 오면 빨아먹지, 그거 빨아먹는 게 진리 아닙니까? 그 진리는 변하지 안해. 그러면 세 가지 큰 능력의 권위를 가지게 된다. 뽑고 심고 옮기는 권위를 가지게 된다.
요것은 이제까지 가르친 겨자씨 믿음에 대해서 가르쳤고, 오늘 설교하려 하는 것은 그것 아닙니다. 오늘 설교는, 지금 이거는 서론이고 오늘 설교는 처음에 출애굽기 20장 1절로부터 읽은 십계명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십계명은, 우리가 일계명을 지켜야 될 그 현실, 우리 현실을 일계명 을 지켜야 될 현실도 있고, 이계명을 지켜야 될 현실도 있고, 삼계명을 지켜야 될 현실도 있고, 오계명 육계명 칠계명 팔계명 구계명 십계명을 현실마다 요 계명 지킬 현실도 있고 저 계명 지킬 현실도 있는데, 고 현실에서 그 해당된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은 그것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뜻이요 영감의 뜻이라 말이오. 거게 해당된 계명을 지킬라고 할 때에 사람들이 ‘이 계명 지켜면 큰일 난다, 해 가지고서 못 지키는데 현실에서 거게 해당된 계명을 지키는 것은 고것이 뭐이냐? 겨자씨 믿음의 행동이요. 산 믿음의 행동이요, 전지 전능자와 딱 한 덩어리가 되는 그 행동이기 때문에 거기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이 능력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계명을 지킬라고 하면은, 그때에 현실에 계명을 지키면 산 믿음을 가진 자라, 고것이 주님과 한 덩어리가 된 자라. 하나가 된 자라, 전지 전능의 행위라.
그러면 그다음에 뭐 옵니까? 그라면 그다음에 뭐 옵니까? 아니야 산 믿음을 현실에서 고 현실에서 지켜야 할 그 계명을 지키는 그 계명 지키는 생활을 하면 그다음에 오는 것이 뭐입니까? 마찰, 마찰이 옵니다. 반드시 마찰이 옵니다.
마찰이 오는데 그걸 잡아 먹어야 내가 그 위에 올라 가는데, 잡아 먹어야 그게 내 사다리가 되는데, 마찰 올 때에 겁이 나 가지고서 그만, 겁이 나 가지고서 떨며서 신앙을 배반해 버립니다. 마찰이 올 때에 그때에 그만 자기가 신앙에 후퇴를 해 버립니다. 그라니까, 하나님이 모처럼, 그 모든 것을 밥이 되도록, 내 사다리가 되도록, 내 이용물이 되도록 그것이 나를 높여 섬기는 자가 되어지도록 이렇게 할라고 애써서 마련해 가지고 떡 가니까 이 산 신앙을 척 버렸기 때문에 그만 거게서 그것에게 도리어 이용물이 되고 삼켜지고야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마찰이 옵니다. 이 계명 지킬라 하니까 마찰이 옵니다. 마찰 올 때 우리는 확신을 가집시다. 마찰이 올 때 ‘아, 이제는 내가 세상과 접하게 된다. 세상하고 서로 접촉이 되면, 오 접촉이 되면 조금 있으면 이제 지기가 온다 조금 있으면 나를 대적하는 마찰이 온다’ 세상하고 접하니까 마찰이 온다는 걸 알고 마찰이 오면 이제는 밥이 왔다. 밥이 왔다. 네가 신앙을 버리면 이것에게 삼켜서 이것의 것이 되고, 이것의 밥이 되고, 내가 신앙을 계속해 지켜면 이것은 틀림없는 내 밥이 된다’ 요걸 굳게 잡고 그때 요 신앙을 지켜 나가면 반드시 그것은 나에게 이용물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두 번 이용물이 되고 자꾸 이렇게 되면은 내 권위는 자꾸 큽니다. 겨자씨가 자꾸 조그만한 게 자꾸 커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 믿음은 자꾸 커집니다. 커지면 나중에 가서 결과로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 뽑는 권능 심는 권능 옮기는 권능을 가진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타를 구원하는 유일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계명을 지켜야 될 때 있으면 겁내지 말고 일계명을 지키십시오.
이계명을 지켜야 될 때는 겁내지 말고 이계명을 지키십시오. 왜정 말년에 이계명 지켜 가지고서 손해 본 사람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계명 지킨 사람들 다 그 정권을 다 이겼습니다.
다 이기고 존영하게 됐습니다. 손해 본 사람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도 육 년 동안, 그때는 어째 그 부장이 꼭 육 년을 계속했었어 육 년 동안 계속해서 그 부장하고 싸웠는데 마지막에 갈 때 내가 거창읍에 갔는데 어째 만났어. 그때 바로 내가 해방 직후에, 그 이튿날 해방 축하 예배를 그 면민이 모아 가지고서, 그때 면민이 모아서 축하 예배를 봤서. 그때는 아주 잘 순종을 해요. 그라면서, 어째 됐던가 저거 백 영희씨가 지금 이걸 거석해야 된다고 이라면 그때 뭐 날 건국 위원장 돼라 나는 그런 거 안 한다고서 인제 그라고 난 다음에 내려 가니까 부장이 마침 못 가고 거기 지금, 준비가 안 돼서 지금 뭐이 배가 안 왔는가 어정거리고 있어요.
만났다 말이오. 만나니까 그만 막 어떻게 할까 싶어서 겁이 나 가지고 막 앞에 와 가지고서 땅에 엎드려, 그만 땅에 엎드려 가지고서 손을 비비며 자꾸 이래 쌓아.
그래 내가 있다가서 그런 거 없고 그거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걸 그걸 다 얘기를 다 해 주고서 가서 예수 잘 믿어라고, 아, 예수 믿겠다고서 그라는데 그래 과자를 이래 사 가지고서 주면서 아이들하고 가며 먹으라고서, 그래 예수 잘 믿으라고, 우리 하나님의 능력이 그러니까 일본 나라에서 하나님을 자꾸 그래 가지고 되겠느냐고서, 이제 가서 믿어라고, 그래 가지고 일본이 그때 왈칵 모두 일본 모든 사람들이 다 후회하고 왈칵 믿었는데, 또 그것이 지금 타락해 나갑니다.
삼계명도 그렇습니다 삼계명은, 우리가, 이 자연 섭리나 내 주위 환경, 시대, 시기, 자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섭리입니다. 비가 오는 것도 지진 나는 것도 전쟁 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 말은 하나님의 섭리인데, 하나님의 섭리에 원망 불평하는 것이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다 망하는 일입니다. 전쟁이 와도, 또 내가 갑자기 무슨 병 이 들어도, 병이 들어도 원망 불평하지 말고 무슨 병이 들어도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병이 들어도 나 할 일은 믿음 지키는 것이라. 나 할 일은 겨자씨 믿음 지키는 것이라. 병이 들어도 영감대로 나는 계속 행해. 영감대로 계속 행하면 그 계속 행하는 것은 그 병이 들어서 그 사람을 높이 올립니다. 영감대로 계속 행하는 그 행위는 병이 해하지 못합니다. 병이 나중에 삼켜지고 맙니다. 권세도, 뭐이든지 그것 다 그러기 때문에 삼계명을 내게 지켜야 될 그 현실에서 삼계명을 지키십시오. 그라면 산 믿음이 됩니다. 전능의 행위가 됩니다.
사계명을 지켜야 될 그때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뭐 회사가 절단나고, 직장이 파괴가 되고, 뭐 목이 달아나고 또 주일 지킨다고서 죽이고, 박 기천 조사님을 제 뒤에 따라다니면서 제 제자로서 그렇게 늘 은혜 받았습니다. 박 기천 조사 그랬는데 저 먼저 박 기천 조사님 아들이 왔어. 아들이 왔는데, 박 기천 조사님은 제 뒤에 따라 다녔고, 도청에 출장 가는 사람이 집회 와 가지고서 그만 거기서 사표 써서 놓고서 바로 돌아섰던 것입니다. ○○○집사님 아시지요? 이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박 기천 조사님은 어떤 목사님에게 은혜를 받아 그렇다고 떡 엉뚱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모두 명예는 다 따먹고 있는데 그거 뭐이 될란지 모르지요. 그 사람 주일 지킬라고 순교했습니다.
주일을 지켜야 될 고 현실이 되면은 사계명 현실 당할 때는 사계명을 담대히 지키십시오. 오계명도 담대히 지키시고, 육계명도 담대히 지키십시오. 칠계명도 담대히 지키십시오. 칠계명의 유혹이나 위협이 와도 요셉이가 그 칠계명을 지키니까, 산 믿음 지키니까 그 모든 게 요셉에게 다 이용당하지 안했습니까? 요셉이가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고 보니까 보디발이 그 속에는 막 이랬을 것입니다. 보디발 대장이 그 속에 막 빌고 이렇게 했을 것이라 말이오. 하나님은 멋집니다. 여러분들, 고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았으면 염려하지 말고 담대히 행하십시오. 행하면은 반드시 마찰 옵니다. 마찰 올 때에 낙망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그대로 계속하십시오. 마찰 오는 그 모든 것을 다 삼키워서 내것이 되고야 말고 내 사다리가 되어서 나를 높여 주는 것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팔계명도, 구계명도, 십계명도, 그래서, 내가 오늘 이 십계명을 읽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십계명을 지켜야 될 현실 현실을 만났을 때에 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십계명을 지키는 이것이 전능자와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이라 이 믿음을 지켜 나가면 반드시 마찰이 온다. 마찰이 있는 그것이 승리다, 마찰 그거는 전부 내 밥이다. 내 이용물이다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산 믿음 겨자씨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고, 겨자씨 믿음의 이 능력은 투쟁에서만 나타나는 것이오니 투쟁이 올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겨자씨 믿음으로 계속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이 사실을 크고 작은 데에서 매일 매일 경험하여 나아가는 저희들이 됨으로 신앙의 장성한 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 참으로 주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고 빛으로 소금으로 살고 승리자로 주 앞에 설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이렇게 산 믿음으로 살므로 영육이 복을 받아서 손으로 행동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축복이 넘쳐 의의 열매를 가득히 맺고 주 앞에 설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많은 형제들을 주 앞으로 인도해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이들은 다 주님의 것이요 일찍부터 주님의 정하신 것이오니 주님의 능력의 나래 안에 암탉이 병아리를 품음같이 품어 주시고 저들의 모든 호소를 들으시고, 소원을 들으시고, 복잡한 것을 의논해 주시고, 저들의 모든 것의 전부가 되어 주셔서 저들을 평탄한 길로 인도해 주시고 축복 있는 길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그리 하여서 차차차차 경험하는 가운데서 주님 한 분이면 다라는 것 생각하고 주님을 호주로 모시고 주님의 슬하에서 염려 없는 평강 가운데에 승리의 생활을 이루어 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려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의 뜨거움이 저희들 속에 점점 더 뜨겁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