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8 16:06
십계명-우상
본문: 사도행전3:1-16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날마다 자기의 범죄와 자기의 죄인된 마음깊이 가면 갈수록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럽고 고쳐야 할 범죄의 수는 많아지고 무거운 짐처럼 고쳐야 할 요소는 더 많고 이러니까 죄인이 되는 괴수죄인으로 점점 되어져 가는 이런식으로 나가는 요한과 베드로의 사람이 되어졌고 또 앉은뱅이도 이 사람으로 인해서 해결지워졌고 복도 되어졌고 현저히 자기가 고친 것을 알고 고친 것을 보니 기쁘고 즐겁고 이 요한과 베드로로 인해서 얻은 수입이 수십년동안 구제받은 그것보다 낫기 때문에 그에게로 옮겨갔고 이러니까 이런 보배를 죽는날까지 이것을 제작 해놓은 그 양이 얼마나 많겠소 여러분들 여기에 대해서 양심을 쓰면 가슴이 녹아야 해. 믿는날 이후로 한시간도 그침없이 병고쳐 자기 치료하는데 급급해서 만들어 주신 것은 뒤로 집어 던져 놓고 급급하게 치료받을 여기에만 급급해서 일생을 지냇으니 그 사람의 만들어 놓은 양이 얼마나 크고 많으며 영광의 나라에서 나타날때에 그 광채가 얼마나 클것인가? 한토막 신사참배때에 행한 의도 5-6년 감옥에서 범죄하지 아니한 의인으로 산것도 이것도 세계가 --- 보배가 되었는데 6년이 아니라 60년동안을 한가지 사건을 이긴것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건을 이긴 그의 제작해 놓은 금과 은과 보석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얼마나 모든 사람들의 안면을 끌것인가? 밧모섬에서 사도요한이 예수님이 만들어 놓으신 보배에 눈이 부셔서 자기는 제법 보배를 만들어 놨다고 생각했는데 ----- 주님 보배를 대하니까 낯이 부셔서 부끄러워서 꺼꾸러 졌습니다. 이것이 복된 성신의 감화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자기에게 속한자를 불신자의 요소 실력 이것을 이용할려고 교회 안에서 불신자의 요소 앉은뱅이 장관 하나가 들어오면 어떤 사장 앉은뱅이가 들어오면 이것은 마구 이용해 먹으려고 구걸을 많이 하라고 월권행위 침략행위 비정상적인 인간행위 이 행위를 하여 교회 경상비나 많아지고 연보나 많아지고 이것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서 누가 이렇게 연보를 많이 했습니다하고 이것이 모자라 벽에까지 써 붙이는 이렇게까지 하는 앉은뱅이 이용하는 이 사람들은 아무리 자기 길을 많이 따라와도 언젠가는 자기 배반하고 갑니다.
이 방식은 결국은 사람을 인간병 든 그대로 두고 인간병 든 그것을 더 짙어가라고 병신노릇 더 하라고 해서 처음에는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 더불어 송사 하는 것은 이것은 불신자라고 말은 하지만 지금은 교파 쳐놓고 법적 송사 없는 교파가 없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정상적 가진 성도의 처세라고 하지 이것이 고린도전서 6장에 믿는 사람은 천사와 세상을 판단할 자인데 너희들이 이런 사소한 일을 판단하지 못해 세상 법관들 앞에 가는 이 성구는 옛날에는 맞고 이 성구를 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해가 있을 때에는 음지 양지가 표가 났지만, 해가 기울어지면 음지 양지가 표가 안 납니다. 다 검어졌습니다.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이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가 보니까 세상과 같이 평가하고 대우하니까 세상을 가지고 들은 자는 세상으로 부러워하지, 교회 안에서 천국으로 평가하고 예수로 평가하고 진리로 의로 평가하는 것을 삼지 아니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자연 교회에서 높이 평가하는 것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권자가 귀부정치를 하면 모든 사람은 부자 되는 것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귀작정치로 벼슬을 위주 하면 모두다 공부할려고 날뛰는 것입니다. 귀법정치로 법을 귀하게 여기면 법을 따르는 사람이 되려고 기울어집니다. 교회가 높이 평가하는데로 교인들은 힘을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앉은뱅이를 메어다 놓는 ----요소에는 우리가 발견해서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성경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하는 자는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이렇게 성경이 가르친 내부를 알자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 그 사람 새일 교파로 돌아갔다가 어디로 돌아갔다가 정처 없는 남은 새처럼 돌아다닙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단순하게 결말을 말하면 건강한 사람으로써 사람을 메어다가 구걸하게 해놓는 그 사람이 누구냐 자기의 과거 의인 노릇했던 이것만 보고 이것만 팔아먹고 이것가지고 사람을 끄는 자기의 과거의 한 신앙생활 이것만 이용해 먹고 이것만 가지고 일하는 자를 늙은이 신앙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자기 밑에 있는 교인은 고치지 못합니다. 앉은뱅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따라가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은 구걸하는 행위를 절대로 돌이키지 못합니다. 만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 병을 고치게 되었다면 수십년 자기 교인이라고 해도 병 고쳐준 그 사람을 따라가게 되고 자기는 사람을 잃게 됩니다. 이런 행위의 목회 호주 신앙노릇 선배노릇을 이런 자리에 머무는 것을 즉시 떠나야 합니다.
자기의 이루어놓은 장점은 안 봐도 좋습니다. 이것을 안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자기의 된 점은 볼 필요 없어. 된 점은 그대로 집어 던져놓고 찾지 아니하고 두고 이는 주께서 잘 보관하고 계십니다. 내가 의탁한 그가 그날까지 지켜줄 것을 확신하노라 디모데전서에 바울이 말했습니다. 내가 지혜 있는 것은 돌아보지 아니한다 했습니다. 그것은 돌아보지 말고 자기는 현재 제작해야 되고 치료해야 되고 고쳐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의원은 건강한 자에게는 쓸데없고 병든자에게라고 말씀하시고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죄인을 찾아 고치기 위해 왔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말씀했기 때문에 자기에게 고칠 범죄와 고칠 죄를 가지고 주여 이것을 고쳐주옵소서 하는 자에게는 떠나지 못하는 주님이십니다.
왜 당신이 약속으로 선포하시기를 죄를 회개케 하기 위해서 왔는데 죄인 있다는데 당신은 떠나지 못합니다. 당신을 붙드는 유일한 방법은 범죄를 내놓고 죄를 내놓고 고쳐 달라고 하는데에는 당신은 고치기 전에는 떠나지를 못합니다. 범죄가 없고 죄인이 없는 거기에는 세상이 다 달라들어도 예수님을 붙들어도 예수님은 붙들리지 않고 떠나십니다. 예수님이 떠나셨으니 무슨 치료의 역사가 있겠소 이래서 가정에서는 신앙의 호주 가정에는 육의 호주 신앙의 호주가 있어 가정의 신앙호주 그 단체 회사의 신앙호주 신앙사장 신앙목사 이렇게 다시 말하면 이 공사만 하는 범죄 죄인 신앙호주가 되어지는 그 가정은 삽니다.
그러나 의의 행위 의의 그것만 가지고 팔아먹는 신앙 호주라면 그 가정은 망합니다. 어떤 단체라도 교회도 자기의 범죄로 한식 탄식 번민 머리들 수 없고 이것을 치료받기에 급급해서 필연적으로 우쭐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머리들 수 없고 필연적으로 자기를 자랑할 수 없고 무슨 범죄한 죄인같이 치료받는 데만 급급한 목사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요 실상 그 교인은 그 사람은 그 사람이 되어서 천사와 같이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대우를 할 것이요 눈이라도 빼달라고 하면 그 교역자에게 빼 줄 것이요 영원히 그의 사람이 될 것이요 이것이 없는 교육자, 호주, 사장, 상관, 강도, 교사, 그의 밑에 있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변화를 받지 못합니다. 인간에게 필요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모든 인간으로 자기에게 필요 있는 사람이 되는 이 위치를 떠나지 못합니다. 하늘나라는 모든 존재에게 필요한 것들만 선출해가고 있지 모든 사람에게 필요 없고 모든 사람으로 필요한 그런 것들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보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모든 존재에게 없어서는 안될 그런 것들만 몰려가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지옥은 모든 존재에게 필요 없고 모든 존재로 자기에게로 필요있는자 되게 하려는 그런 것들만 모이게 하니까 서로 자기에게 필요 있는 자 되게 하려고 하니까 싸우고 으르렁거리고 그 고통이 세세토록 올라가는 그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요 지옥인 것입니다. 그런거로 앉은뱅이를 메어다 놓은 이자가 누구인가 이러기에 오늘 목회는 목사의 구멍가게라는 말이 환하게 드러나서 나오게 됩니다.
오늘의 목사는 좋은 교회, 큰 교회, 앉은뱅이 많은 교회 구걸 많이 해오는 교회 찾아다니려고 애를 씁니다. 이것 하려고 운동도하고 운동의 소개자로 다방을 정해놓고 날마다 거기에서 앉은뱅이 메어다 놓는 이 자책을 앉은뱅이 많은 교회를 구걸 많이 해 오는 교회를 소개하는 소개소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대구의 어떤 사람 다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저게 누구를 흔들 것인가 일시에는 좋았지만 그러나 얼만 지난 후에 사람들은 배척 당해서 멀리 떠나서 갈곳이 없어.
우리는 깨야 합니다. 벌써 사람이 범죄 행위를 자기 행위로 자기는 죄인으로 자기행위는 범죄 행위로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이 자리에서 죽는 날까지 고침 받으려고 애쓰는 이 자리가 구속받은 성도의 자기 자리입니다. 이것이 구속받은 성도로 죽는 날까지 자기가 할 전무요 전공의 일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범죄가 치료받아 의가 되고 죄인이 치료받아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성화가 되어지는 이 가치가 높은 보배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베드로와 요한이 걷고 있는 길입니다. 자기가 어디까지 갔든지 빌립보 3장에 우리가 어디까지 달음질해 이르렀든지 거기서 돌아서지 말고 이만치 모든 사람보다 앞서 달렸으니 이만 했으면 되지 않느냐 하고 중단하지 말고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달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모든 사람을 초월한 위치에 있었지마는 아직도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도 아니하고 이루어졌다고도 여기지 않고 내 옆에 있는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내가 달리노라 내 하나님의 손에 들린바 나를 줄려고 들고 있는 내 몫으로 성화된 것 고쳐질 것 의가 될 것 내 주님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다 받으려고 향하여 달린다.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고난에 나도 참여하여 마지막까지 이 일로 끝마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도 참여하여 가는 그러나 지금도 너희에게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이전에도 십자가의 원수의 걸음을 걷는자가 지금까지도 십자가의 원수의 걸음을 걷고 있으니 눈물을 흘리며 권면하노니 십자가의 원수의 걸음을 버려라. 그의 마침은 멸망이니라. 그는 세상 위주자요 하나님 대신 자기 위주자니 그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땅에 것만 생각하는 자라. 우리나라는 하늘에 있으니 곧 만물을 복종케 할 수 있는 그 능력으로 주의 영화로운 몸과 같이 부활받아 영광의 나라에서 살 시민권을 가진 우리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고로 메어다 놓는 이 의인 자기만 성전에 들어갔다 나갔다 하지 다른 사람은 앉은뱅이에 대해서 구제만 했지 고칠 수 있는 권이 자기에게 없어. 자기를 과거에 고친 그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 은혜는 이 사람도 고칠 수 있는데 과거에 자기를 승리하게 한 그 주는 지금도 승리하게 할 수 있고 앞으로도 승리하게 할 수 있고 과거의 의인의 의를 칭의의 의를 보수하고 의인을 유지하고 하나님과 결합을 유지하게 과거의 이렇게 살게 하던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도 하게 할 수 있고 앞으로도 세상을 떠날때까지 하게 할 수 있고 이것은 무궁세계에서도 할 수 있고 자기에게만 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여기있는 병신도 옛사람에게도 세상주의 이 사람도 고칠 수 있는 예수님인데 이 예수님을 줄줄 몰랐어 다만 자기의 세상것으로 그에게 줬어 직장 없으니까 취직 시켜주고 돈 없으니까 돈주고 사업을 못하니 사업에 협조해주고 다 두고 갈 것 썩어질 것 그에게 도움을 주니까 호감을 가지고 했지마는 이 사람이 병신이라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어 이병을 고치고자 하는데에는 관심이 없었어 이병을 고쳐줄 예수님의 이름을 줄 생각은 없었어 과거에 자기를 고쳤던 예수님의 이름은 떠났어 자기에게는 고칠것이 없으니까 병이 없는데 의원이 앉아 있을 필요가 없어 예수님은 병든자를 찾아 다니는데 병든 것이 없는데 치료 받을것이 없는데 예수님이 계실 필요가 없어 이사람이 무슨 사람이냐 이 사람이 자기 신앙 행위 이미 승리한 단계 전도 종류 범위에서 넓힐 줄 모르고 더 향상해서 올라갈 줄 모르고 더 진보할 줄 모르고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갈 줄 모르고 자기에게 과거에 몰랐던 것을 새로 발견해서 더 치료받아 더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자 되게 하기까지 향방으로 달릴 줄 모르고 자기가 하는 신앙행위의 그 범위만 오늘도 내일도 그대로만 하고 있는 이 자의 신앙을 가르쳐서 상징적으로 사도행전 2장에 말씀하시기를 늙은이 신앙, 젊은이 신아, 아이의 신앙 세가지로 말했는데 늙은이는 꿈을 꿀것이고 젊은이는 환상만 보고 환상은 실상이 아니고 아이의 신앙은 예언이 예언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을 증거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들어 보이는 것이 선지자입니다.
종도 예언한다 했어 이랬는데 어떤자는 자기가 과거에 은혜받아 신앙으로 향상했고 전진했고 신앙의 범위를 넓혀서 모든 사람이 볼 때 칭찬할 만치 하지마는 이것만 고정시켜서 이것만 고수하고 이것만 지켜 이 신앙만 범위하지 성장없이 새로 고침 받는 게 없어 그에게는 고칠 범죄가 없어 발견 못해 죄인이 없어 이것을 가르쳐서 어떤 신앙으로 표시했습니까? 이 신앙은 젊은이의 신앙 젊은이의 신상은 실상을 떠나 상상봤다 그림자 본다. 이와 같이 환상보는자라 그에게는 실효는 없는 소망없는것만 보고 있는 자라 자기 구원은 새로 치료받는데 거기에 있는데 자기 수입 없는 과거 그것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할 것 아니고 자기는 지금 앞으로 나갈 그거 해야돼. 그거하면 과거는 저절로 돼. 환상을 볼 것이요 아이는 예언할 것이요 아니는 자꾸 자라가 알고 난 다음에는 집어던지고 새것 알려고 잡고 나면 새것 잡으려고 집어던지고 전체가 성장요소요 성장 본질 본성이요 성장의 발달의 전진의 향상의 요소만으로 역할하는 것이 아이라 아이를 오라 하는 소리 이 아이와 같이 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그 말씀을 듣고서 아이 신앙을 요구하는 찬송을 했는데 알지도 못하게.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아이는 예언할 것이요. 종은 예언한다 했어. 이러니까 우리가 택할 신앙은 아이신앙. 종의 신앙이라 종의 신앙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것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쓰시옵소서 하나님 마음대로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는 이것이 종의 세상이라. 이 만은 못해도 아이 신앙은 가져야 해. 젊은이 신앙 이 신앙 가진자가 많습니다. 그는 진보가 없어 자기의 단점을 찾지를 안해 자기의 실족점을 찾지 안해 자기에게 죄를 찾니 안해 자기생활에 범죄를 찾지 안해 그것보다는 급소는 이제 가불신사라.
젊은이 신앙보다 자기 있는 그것으로써 헛일하는 것보다 차라리 어떤 범죄라도 푹 빠져가지고 죄인이구나 하고 일어서서라도 자기에게 범죄를 찾고 죄를 찾아 마음 아파 여겨서 일어나는 발족이 났겠어. 어떤자에게는 저게 실수를 한번해야 성신의 작용이 있을 텐데 그것도 없는 젊은이 신앙 많습니다. 내가 젊은이의 신앙인지, 늙은이의 신앙인지 무엇보고 알 수 있습니까? 알 것은 그 사람은 사람에게 주는 것은 세상것 뿐이라. 구걸 뿐이라. 주는 것 뿐이라. 그 사람 좋도록 하는 것 뿐이라. 그 사람 돕는 것 북돋아 주는 것 뿐이라. 남듣기 싫은 소리 안해. 남좋은 소리만하지 그 사람의 육의 일을 적극 옹호해. 그 사람의 육면 돕기를 힘써 다만 그 사람에게 치료받을 범죄행위에 관심이 없어 그것을 말하기를 싫어해 덮어죠 숨겨죠 그것을 들내기를 싫어해 내가 사람들에게 구제만하고 병고치지 못하는 것이 불쌍한 의인인데 이것은 자기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자기가 거기에서 오만한 자리에 앉은 사람입니다. 과거와 현실로써 족하고 여기에서 중단하고 그것만 이행하고 그 세계에만 살고 있는 젊은이의 신앙 줄어지지도 아니하고 크지도 아니하고 그것 팔아먹지도 아니하고 그대로 있는 젊은이의 신앙, 내가 젊은이의 신앙인지 베드로와 요한의 신앙인지. 앉은뱅이 메어다 놓는 자의 신앙인지 내가 앉은뱅이 신앙인지 내가 어떤 신앙인지 어찌 알까? 사람마다 이 요소가 없는 자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앉은뱅이 메어다 놓는 자 구제하는 자 베드로 이것이 옆으로 있으면 이것이 하나씩 토막 토막 끊어서 고치는 것 아니요. 옆으로 고쳐나가요.
앉은뱅이면 조금 고치고 매어다 놓으면 조금 고치고 구제하는 면 조금 고치고 베드로면 조금 이루고 이래가지고 고쳐나가기 때문에 세상 끝날까지 앉은뱅이의 요소가 있다 이 말입니다. 아무리 못 믿는 사람이라도 베드로의 면이 양이 적지 조금 있다는 말입니다. 이걸 말해서 옆으로 고쳐 나간다. 이런데 자기는 전체가 다 앉은뱅이다라는 것이 아니다. 잘못 해석하면 전체 앉은뱅이로 하다가 앉은뱅이 그점이 있으니까 그점 하나보고 나는 앉은뱅이 아니다 그러기 쉽다. 앉은뱅이의 양이 100의1이 있느냐 100의 99이 있느냐 100의 50이 있느냐가 문제다 자기의 젊은이의 신앙. 이것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느냐 자기에게 있는 앉은뱅이가 요구하는 것을 주었어 세상에 속한 자가 요구하는 그것을 줘 옛사람이 요구하는 그것 줘 다시 말하면 세상 사람이 주는 것을 줘 관심없는 것은 병신이 나아야 되겠다는 그면에 관심이 없어 이 사람이 세상사람과 같이 생활하고 있으니 이것이 새사람이 아니고 옛사람이니 이 사람이 옛사람으로 살고 있으니 새사람으로 살아야 될텐데 이 관심이 없어 자기가 가정의 신앙 호주라도 세상 사람들이 주는 것을 주지 못해서 옛사람이 달라는것만 주면 됐지 그 사람에게 대해서 병든 것을 고쳐 줄려고 하는 것에 관심이 없어 병든 것을 고치는데 예수님의 이름이 필요한데 예수님의 이름이 필요하니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님의 역사를 말합니다. 그 이름이 이를 낫게 했다. 예수님의 이름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 역사를 말합니다. 이름이 큰 것은 역사가 큰 것을 말하고 이름이 파묻힌다는 것은 역사가 없어져 간다는 말이요 예수님의 이름이 이 사람에게 필요하니 이 가족에게 필요하니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믿음 지키는 이 일을 해야 되는데 공부는 잘하는데 믿음은 없어 하나님을 찾는게 없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 없고 하나님을 바라보는게 없어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이 믿음이 없어 관심이 없어 이것이 옛사람으로 사난 새사람으로 사난 관심이 없어 옛사람 세상사람으로 아버지 노릇했지. 믿음으로 노력하는 것이 없어 젊은이의 신앙 저는 그것 지키면서 다른 사람 성전 못 들어가는 것 병신으로 있는 것에 관심 없는 것은 저가 치료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젊은이의 신앙 예를 들면 밤에 철야하는 사람 그 사람은 철야기도 하지만 다른 신앙생활은 엉망징창입니다. 그래서 자기 철야하는 것과 철야 안하는 사람과 비교하니 철야 안하는 사람 믿음없다하고 자기 장점만 팔고 죽어가는자 그 사람은 성경은 얼마나 보지 사회에서 어느정도 신임을 받고 있지 세상사람과 비교해서 세상사람보다 뛰어난 행위가 있지마는 그 시간 그 시간 옛사람, 새사람 구별하여 이 말은 옛사람으로 했구나 구별하는 것이 없었구나 자기보다 신앙이 앞선 선배가 볼 때 새사람으로 많이 살았는데 새사람으로 사는 것만 되풀이하고 현재는 옛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신앙도 죽은 것이요 그 호주 사장 목회자 모신자 불쌍한 사람입니다.
베드로의 신앙은 자기가 건강한 사람이지만 자기가 가진 것은 예수님의 이름만 가졌고 자기에게 자극을 주는 것은 병든자와 낫아야 되겟다는것만 자극과 충격을 주고 자기에게 가진 것은 이것만 치료하는 것 예수님의 이름만 가진자니, 베드로는 자기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때에 마음 아파하고 어떤 때에 필요한 것이 필요로 가진 예수님의 이름과 자기의 치료받는 현실에 머무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람은 신약교회의 제일 으뜸가는 신자. 모든 사람은 종말로 자기에게 끌려와. 이 사람은 수십년 병신을 고쳤어 다시는 구걸하지 아니해도 족하게 만들었어. 비참하고 가련 가운데 있는 사람을 제일 기쁨의 사람 만족한 사람을 만들었어 뛰고 굴리는 사람 만들었어 주목은 인기는 그리갔어 모든 마음은 그리 다 빼았꼈어 마음을 다 받았어. 우리는 이렇게 존영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병신에게 말할 것이요 은과 금은 내게 없어 그것보다 필요한 것 하나만 있으면 돼 내게 있는 것으로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서 걸어라 할 수 있는 제 2세의 베드로와 요한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앉은뱅이 불쌍하고 가련하지마는 서도 모든 사람에게 누가되고 피해가 되고 덕보지 못하고 비참한 병신이 자기 행위 고치는데 관심없고 자기가 옛사람 되어있는 죄인되어 있는 죄인을 고치고자 하는데 관심없고 땅위의 인위관계로 인간에게 어떻게 하면 수입을 보고 땅의 수입만 급급하고 이것들만 얻으려고 하고 있는 생활이 되어 있는 사람은 가면 갈수록 비관 갈급 수치스러운 망하는 사람 모든 사람에게 배척 받을 수 있는 사람 이 사람되어 있는 신자 이 면을 우리는 조금씩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이면을 버리고 우리는 전심전력은 자기의 범죄행위를 찾아 고침받고 자기의 죄인 옛사람 된 요소를 고쳐 죽이고 새사람으로 다시 변화받는 두 가지에 전심전력 기울여 예수님의 은혜받아 성공한 사람 이 사람은 인류중에 제일 기쁜 쾌락을 소유한자며 만족 오기 주목 관심이 집중될 사람, 견디지 못해 뛰고 굴릴 사람이며 하나님을 만날 사람이요 참된 신앙의 아브라함의 자손될 사람이요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사람으로 더불어서 밀접한 교제를 할 성도입니다. 자기는 어떤 사람인지 찾을 것이요 단정짓고 확정지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 자기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시험하여 확정하라.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썩은 생활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