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8 13:28
심판
1988. 5. 15. 주후
본문 : 출애굽기 32장 9절-14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이스라엘이 이 큰 멸망, 하나님이, 진멸한다 말은 전부 다 멸한다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진멸을 당할 수 있는, 전멸, 전멸을 당할수 있는 이런 큰 멸앙 가운데서 모세가 구출했습니다.
이 멸망 가운데서 구출한 모세의 이 자격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9절 이하에 보면 내가 이 백성들의 마음이 강퍅하고 목이 곧아서 교만하고 강퍅하니 이 백성을 내가 진멸하고 너로 큰 민족을 이루잤다 이렇게 말씀을 하실 때에 모세가 다른 데 보면 진멸할라면 자기까지도 같이 진멸해 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노를 풀으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해 달라는 여러 가지 조건을 들어서 변증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실 때에도 그렇게 쉽게 구원하신 것 아니고 온갖 애로와 바로의 그 강퍅이 있었는데 주님이 아주 강한 손과 큰 능력으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고, 또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거 선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기억하고 너희들을 축복하셔서 그 자손의 수가 심히 많게 되리라까지 하나님 당신을 두고 맹세하신 일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데, 만일 여기에서 진멸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 금송아지 만든 큰 범죄야 이해를 못하게 되고 오해를 해서 도리어 하나님의 이 구원에 대해서 오전하는 그런 일이 있게 안 되겠습니까? 이런 여러 가지 조건을 말하면서 어짜든지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만일 용서를 안 할 판이면 자기와 함께 멸해 달라는 그런 간구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이스라엘은 멸하고 자기를 들어서 큰 민족을 삼겠다는 이 말씀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라는 그것이 하나도 없고 온 이스라엘을 곧 자기의 한 몸으로 자기로 생각하는 그 인도자의 자격을 가진 것을 하나님이 귀하게 보셔서 그 기도에 논술한 것을 하나님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듣고 둘째로는, 모세가 이스라엘과 생사를 같이 하려는 그것도 귀하지마는 그것보다도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약속한 그 약속을 들어서 증거하면서 이렇게 약속하지 안했습니까 하는 약속을 들어서 증거를 하고 여러 가지 또 멸해서는 안 될 만한 그런 이유를 잘 논술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만족하시고 노를 풀으시고 이스라엘 멸망시킬 것을 중단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기가 소수를 인도하는 책임을 졌든지 다수를 인도하는 책임을 졌든지 인도하는 책임자의 자격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인도자의 자격이 없고 곧 이리요 또 절도요 강도가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러고 인도할 자격이 더 견고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약속한 그 약속에 조건 조건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안하고 그 조건을 거머잡고 그 조건에 맞추어서 살고 그 조건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모든 경영을 하든지 또 소망을 하든지 하는 것도 하나님이 이미 선포해 놓은 계약 조건이 있기 때문에 그 법대로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맡긴 인도자의 자격이요 방편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도자도 여기에서 벗어나면 안 되고 또 인도를 받는 사람도, 인도자는 다 이런 심정이 아니면 그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인도를 받는 사람도 이 점에서 깨달아 굳게서야 되고 인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이것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제가 하나님의 계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아무리 수단 방법을 쓰고 아무리 인간 앞에 큰소리를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비웃고 가증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인도자의 자격은 여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노엽게 한 것은 그저 간단하게 말해서 금송아지 만든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가지고 ‘이 금송아지가 우리를 앞으로 인도해서 행복되게 할 것이다’ 하는 그것이 큰 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그 강팍한 바로의 손에서 해방시킬 때도 수많은 그 기적과 표적으로 역사하셔서 ‘하나님이 과연 우리를 구원하신다.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는 것을 얼마든지 봤습니다.
저희들이 애굽에서 그때 살아나와 가지고 광야까지 온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왔지 딴것으로는 저희들이 오지 못했습니다. 애굽에서도 그렇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고 마지막 장자 재앙만 내리지 안해도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전멸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뭐 애낌없이 몰살을 시켰을 것입니다.
또, 그들이 인도받아 가지고 홍해까지 왔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 기적으로 구원하지 안했으면 그들은 홍해 바다에서 다 전멸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전멸 될 경우가 여러 번 있었고 하나님의 구원으로 이렇게 살아나온 그들이 하나님이 이제 저거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되느냐하는 그 계명 줄라고 모세 불러 올려 가지고서 한 사십 일 밤낮 기도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는 그 동안에 이들이 망령을 부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그 표적을 많이 많지마는 그들은 하나님이 하신 그 표적을 보고 또 그 표적을 누렸습니다. 또 표적의 그 효력을 저희들이 누렸습니다. 표적을 이용하기만 했지 그 표적을 하나님이 베푸신 것은 그 표적으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것,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변치 않는다는 것, 하나님은 모든것을 아시고 엄격하고 정숙하고 지극히 공평되고 거룩하고 공의롭다는것 이것을 그들에게 알려서,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소망을 가지고, 두번째는 하나님을 두려워 조심하고, 세번째는 하나님의 법칙을 지키면 살고 어기면 죽는다는 이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여러 가지 표적으로 보이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그로 인해서 미루어 찾아서 하나님을 알도록, 보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서, 보이는 하나님의 보호를 통하여서 보이지 않는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아 그분을 바로 직접 섬기고 또 그분을 딿고 그분에게 순종하고 의뢰해서 살게 할려고 이렇게 하나님이 하시는데 이스라엘은 그 모든 표적을 보고도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그들이 마음으로서는 여러 수십 번 봤는데, 마음으로 느껴보고 ‘아, 하나님 계신다. 이것 보니 하나님 계신다. 저것보니 하나님 계신다.’ 또 그들이 ‘뭐 그리 되겠나?’ 모세가 말하면 ‘모르겠습니다. 그뭐 이제까지는 그래 됐지마는 그거 또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거 되겠습니까?’ ‘보라’ 또 되고, 그들이 시험하다가 또 직접 나타난 역사를 보고서 또 마음으로 ‘하나님 계신다’ 이렇게 마음으로 수없이 생각도 했고 느끼기도 했고 또 마음으로 두려워 하기도 했고 작정도 하고 이렇게 마음으로 하나님을 상대했건마는 마음으로 본 하나님을 부인하고 어짜든지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 위주하는 그런 행위를 해서, 저거가 손으로 만든, 저거가 만든 그것이 자기를 인도해서 행복으로 이끈다 그것이 자기들에게 행복을 준다 하는 어것을 항상 소원해 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찾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나타난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인데 나타난 표적으로 하나님 아는 일은 할긱고 애를 쓰지 아니하고 이 일은 자꾸 무시해서 잊어버리고 자꾸 이것은 그저 허무하고 거짓 것으로 돌릴라고 모여 앉으면 보이는 것만 위주로 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무시하는 이 행위를 자꾸 이렇게 하다가 이제는 그만 이것이 심해졌습니다.
심해져서, 여기에 25절에 보니까 모세가 본즉 모세가 그 이스라엘을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에게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그러면 자꾸 이렇게 방자해서 아주 그만 마음들을 풀어 놓고 아주 방탕하고 제멋대로 제 마음대로 제 뜻대로 이와같이 아주 방종 방자한 이건 이스라엘을 아론이 만들었습니다. 아론이 그걸 긴장해서 붙들어 긴장하지 안 해 가지고 방자한 그 이스라엘을 만들었습니다.
좀 전에 우리 양성원에서 OOO 목사님이 그래 교학실장으로 있을때에 제가 여러번 말했습니다. ‘교학실장이 자꾸이 학생들을 방자하게만들어서 이 학생이 이 아무짝도 못쓰겠다. 세상에 이거 양성원 학생이 아니라 이거는 아주 가장 모산지패 모인 아주 말단 그 시장판보다도더 하다. 왜 이렇게 만드느냐?’ 이래 가지고서 제가 오층에서 라디오를 듣고서 고함을 지르고 그뭐 그렇게 한 적이 짢다가서 이제 교학실장이 바꾸어졌습니다.
아마 학생들이 알 겁니다. 그때에 하생들이 한창 그 방자해졌습니다. 이래 가지고 그만 그것이 자꾸 졸업해 나가서 교역자 되고 또 이 교역자들도 저거끼리 모이면 서로 조심하자는 그 말은 없어지고 꺼뜩꺼뜩하면서 빈절빈절하면서 방자하는 행위가 점점 심해졌습니다.
이래 가지고 그 누가 나쁘다 하면 책망을 하고 꾸중을 하고, 그거 누가 책망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그까짓 거 멸망하든지 말든지 세상 같으면 그놈 망하면 좋다 싶으지 누가 망하는 걸 보고서 애터져 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게 다 그리스도의 사랑이라 말이오.
그것을 고칠라고 깨우치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고 나무래기도 하고하면 귀신은 조게 앉았습니다. 앉았다가 ‘옳지 조 오늘 지금 목사님이 한번 꾸중 당하니까 조거는 요럴 때에 딱 가서 찍으면 내것 된다’ 해가지고 딱 고라고 나서 보면 어느 놈이 조걸 끌고 갈 거다 하고 보면 고놈이 고걸 조 다방으로’ 끌고 갑니다.
끌고 가 가지고서 앉아서 애기는 숙닥숙닥.‘사람이 그렇지마는 자꾸, 실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그리까지. 자꾸 책망을 하고 참 독재라. 이거 뭐뭐 시집살이 못 살겠어.’ 이래 가지고 그라면 ‘그래’ 내나 그때 옳은 편에 섰던 것도 그 한 마디에 홱 넘어갑니다. 팩 넘어가. 넘어가면 네까짓게 멸망하지 어데로 갈 건가? 갈 곳이 없어. ‘여기 아니면 예수 못 믿는가?’ 아무데 가도 그라면 멸망이라.
이래 가지고 우리 진영이 방자한 지 오래가 돼서 이렇게 제가 지난 대구집회 때 처음으로 ‘우리 진영에 이렇게 벌써 방자해서 못쓸 것 된것이 삼분지 일은 된다. 삼분지 일은 되는데 회개하면 살고 회개 안하면 죽는다. 아예 너거 갈 데로 애배당 하나씩 있으니까 가지고 다갈 데로 어데든지 다 가거라.’ 필요가 없다. 회개하면 필요 있고 회개안 하면 하나님 앞에 내가 심판 받을 것뿐이지 뭐 아무 소용이 엾다. 그게 무슨 필요 있노?’ 이걸 장시간 내가 증거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 서부교회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앉으면 빈정빈정하고 어짜든지, 우리가 오늘 죽을 지 내일 죽을 지 모르고 주님의 재림이 오늘 닥칠지 내일 닥칠지 모르니 어짜든지 우리가 조심하자. 서로 형제도 ‘야, 그말이 무슨 말이고? 그거 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말이다. 어찌 그리 허리끈을 풀어 놓노? 조심하자.
허리띠를 동이자.’ 이렇게 말하지는 안 하고 어짜든지 빈정거리면서 숙떡숙떡하면서 방자한 요것을 취미로 사는 그런 인간들이 있어.
구역장도 고걸 보면 ‘조놈이 적기독이라 목사도 보면 ‘조 장로 조 집사 조 권찰 조 권사 조것이 적기독이라’ 요것 모르면 안 됩니다. 교계도 알고 세계도 알아야 됩니다. 세계도 유명한 목사들 꽉. 찼지마는 앉아서도 안 봐도 고 목사는 적기독이다. 그것은 반 적기독이다. 조거는 진짜다. 그거 모르면 헛 일입니다.
오늘, 우리 국민 가운데도 모두 다 정권 잡을라고 날뛰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마는 ‘조거는 빨갱이다. 조거는 민주주의자다. 조거는 애국주의자다.
저거는 정치 야욕을 가진 자이다. 정말로 저거는 민족을 위하는 민족자다.
애국자다.’ 이걸 모르면 그 나라가 망하지 안 망하고 어짤 거요? 교회도 그렇다 그말이오.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마음을 방자하면 헛일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항상 동여야 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되고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사랑해야 되고,’ 이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에 우리가 범죄하지 안하고 살라고 하면 하나님의 권능의 축복이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나님의 권능의 축복이 아니면 우리도 죄지어야 먹고 마시지 죄 안 지으면 먹고못 마십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죄짓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안 굶어죽고 살라고 하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사는 길밖에 없으니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라고 하면 하나님의 축복 외에 다른 길이 어데 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범죄 방탕한 자에게 어떻게 하나님이 축복을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예수 믿으면 필연적으로 방자할 수가 없고 마음에 조심하고 긴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서부교회는 사랑이 없다. 서부교회 교인들은 처음에는 사랑이 없는데 요새는 지금 사랑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긴장하여 똑 누가 싸울라고 달라드는 거 모양으로 자연히 마음에 주님 생각하고 조심할라 하니까 냉정스럽고 찹지마는 언제 만나가지고서 그 허허허 치고 소용 없는 웃음, 속에 진정 없는 사랑 껍데기로 외식 사랑, 또 만나면 주의 할 것밖에 없는데 무슨 그런 방자할 수 있겠습니까? 이랬는데, 지금은 인제 서부교인들도 이 속화가 됐는지 문화가 됐는지 모르나 아주 방자합니다. 방자해. 제 정체를, 정질을, 정성을 가져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를 못해. 전부 팔방미인의 창기야. 어짜든지 외식으로 껍데기로 발라 맞춰서 그저 설설 웃고 시설지기고 좋아하면 그것으로 제일이요 참 아주 사람 좋다 소리는 듣지마는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멸망의 시발이 뭐이냐 하면 방자가 멸망의 시발이었습니다. 방자가 멸망의 시발이었소.
얼마 전에 저한테 편지가 왔는데 ‘목사님의 아주 찹고 날카로운 눈초리 또 구역장의 찹고 냉정한 눈초리 거기에 섬뜩해서 그만 이리 다니고 저리로 해 가지고서 벌써 나이가 한 사십여 세가 됐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참 후회고 그때 그럴 때 내가 거기서 지도를 받았으면 되는것인데 이렇게 내가 방종해서 아주 만신창이 됐습니다. 지금은 내가 돌아갈라고 해도 붙들려 있는데 곧 돌아가기는 돌아가겠습니다.’ 하는 그런 편지를 만리장성으로 해서 저 만날 때로부터 이십여 년간의 역사를 기록해 가지고 나한테 편지한 것을 제가 봤습니다. 그 사람이 요번집회에 와서, 참석을 하고 돌아가 가지고 저한테 편지를 했읍디다.
우리는 사랑을 가져야 되지마는 참 예수님같은 그런 사랑을 가지면 그 안면에 모두 다 사람을 살리는 안면이 되는데 저도 늘 기도하기는 ‘주여, 주의 안면과 여호와의 안면을 저희에게 돌려 향하여 반사케 하사 모든 사람 대할 때에 그들에게 양식을 주는 안면이 되게해 주옵소서. 나에게 독사와 시랑이같은 이런 안면이 되지 말고 양식을줄 수 있는 그런 안면이 되도록 주의 얼굴을 반사시켜 주옵소서. 이거 날마다 기도해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 안 돼요.
그 전보다는 내가 많이 누그러졌어요. 그전에는 나를 별명을 면모칼이라 했어, 면모칼. 별명이 면모칼. 거창서부터 면모칼이라. 저 남지에가 있는 O 장로라고 하는 의사인데 그분이 있다가 내 별명을 짓기를 ‘백 집사는 면모칼이라 에이 징그러워. 흉해.’ 면모칼이라 했어. 그래 지금은 좀 유해지기는 유해졌지마는.
어짜든지 우리가 사람 좋게 하기 위해서 또 서로 사람 좋다 소리듣게 하기 위해서 우리 중심에 주님 잊어버리고 우리 마음이 방자해지면 안 됩니다.
기독자는 방자하면 안 됩니다. 하루라도 마음 놓고 살면 안 됩니다. 마음에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보면 압니다. 벌써 그 사람이 아무리 사랑을 가지고 살아도 방자하지 안한 사람과 속에 미움 독한 살인을 가지고 있어도 껍데기로는 막 방자해서 참 아주 굉장한 호인 생활 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 저런 것다 가지지 말고 그저 하나님 앞에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이 주신 이 구원을 우리가 이루어 가야 되기 때문에 여기 일편단심 정성을 쓰면 우리 마음은 필연적으로 마음에 허리를 동이게 됩니다.
이래서, 우리 마음을 방자한 일을 하지 맙시다. 방자한 일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타락한 제일호 원인이었습니다.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방자하다 말은 아주 확 나사 풀어 놓듯이 확 마음을 풀어 가지고서 저거 멋대로 뛰고 놀고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방자라. 저거 하고싶은 대로 하는 거.
이래 가지고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 저거 인도한 것이 표적으로 많이.
나타나서 봤지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저거를 인도할 때에 못 할 게 없었습니다.
뭐 홍해 바다 같은 그런 앞에 어려움이 가로 막혀도 그까짓 거 육지같이 통과했고, 그 아말렉 족속이나 여러 족속이 방해해도 그까짓거 아무 문제 없이 다 통과했고, 먹을 게 없어 답답해도 통과했고, 마실게 없어 답답해도 통과했고, 독약 같은 물을 만나도 통과했고 문제 없이 다 통과시켰는데 한 그 결과를 봐서 그것으로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차차 붙들고 붙들고 보이지 아니하는 이분, 마음으로 생각하면 돼. 주여,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주님, 불 가운데서 사드락, 메삭, 아보느고를 구원하신 주님, 사자굴에서 구원하신 주님, 나를 공산주의 속에서 구원하신 주님 날카로운 왜정 말년에 구원하신 주님, 내가 답답할 때 밤에 기도했더니마는 주님이 내 가정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신 주님, 나에게 무슨 머리가 아팠는데 기도하니까 낫아 주신 주님, 사소한 것이지마는 그 주님을 자꾸 생각하면서, 눈을 감으몃 보이고 눈을 뜨면 안 보이는 이 마음으로 보는 이 주님을 자꾸 찾아 가지고서 이 주님을 대우하고 이 주님을 믿고 이 주님을 바라고 이 주님을 의지하고 이 주님이 자기 모든 것을 해 줄 것을 알고 이 주님에게 맡기고 이렇게 사는 그 신령한 이스라엘이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어짜든지, 보고 안 그런 일이 많이 있었지마는 자꾸 눈에 보이는 그것이 저거를 구원하고 복 줄줄 알지 눈에 보이지 안하는 하나님은 믿을라고 하지 안했습니다.
이래서, 가져오라 하니까 금고리를 다 가지고 뮐 가져오니까 금송아지를 하나 만들어 놓으니까 좋아서 ‘이것이 우리를 앞으로 인도해서 행복을 갖추어 줄 자다. 이것이 우리를 가나안 복지로 인도할 자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들이 좋아서 마시고 뛰고 굴리고 춤추고 놀았습니다. 이걸 얼마나 분히 여겼든지 모세가 하나님 명령 받아 가지고서 그후 상을 불로 사르고 갚고, 불로 사를 것은 사르고 갈 것은 갈고 이래 가지고서 가루를 만들어서 물에다 띄워 가지고서 전부이 마셨습니다. 전부 마셔. 이스라엘이 다 마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했건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오늘까지 구원한 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보이는 것으로 자기들을 구원하는 것을 만들라고 해서 만들어 놓고 좋아 뛰고 굴리는 요것을 인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분했든지 그것을 갈아 마시게 했습니다. 갈아 마셨어.
이게 뭐입니까? 오늘도 우리를 지금 오늘까지 살려 주신 이가 누굽니까? 자, 오늘까지 지금 사장 만들어 주신 이가 누굽니까? 목사 만들어 주신 이가 누굽니까? 집사 만들어 주신 이가 누구며 시집 가고 장가 가게 해 주신 이가 누굽니까? 아이 애비가 되고 또 학교 공부를하고 이만치 장성해서 주일학생이 되고 중간반이 되고 오늘까지 우리를 살려서 길러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모든 형편을 열어서 만들어 주신이가 누굽니까? 오늘까지 우리를 살려서 보호해 주신 이가 누굽니까? 돈입니까 권세입니까 과학입니까? 세상에 뭐입니까? 뭣이 만들어 줬다고 생각합니까? 만일 과거에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리고 보호하고 기르고 만들어 줬다고 하면 앞으로도 그것만 있으면 우리는 보호하고 살고 넉넉할것 아닙니까? 백 년 전에 인간이 그런 것 다 있었지마는 사는 자가 어데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현상이 보이지 않는 주님이다 우리를 보호하고 기르고 살리고 보호해 주셨건마는 요것을 인간들이 믿지를 않습니다. 요것을 인간들이 믿지 않아.
만일 제딴에는, 돈이 그했지 뭐 사람이 그랬지 부모가 그랬지 그러면 그것이 나를 살렸으면 앞으로도 그것만 있으면 내가 안 죽을 것 아닙니까? 이것은 무신론자는 말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오늘까지 너 밥먹이고 옷입히고 살리고 건강 주고 이 모든 현상 유지시킨 이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냐 이 물질이냐?’ 말하면 아마 하나님이라고 자기가 진정 생각하는 인간들이지 그 물질 그걸로 살았다고 그렇게 말하는 인간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까지에 우리를 보호해서 길러서 예수 믿도록 만들어 지금 천성으로 이끌고 가는 이 모든 것은 주님이 하신 것이 아니고 땅위에 어떤 것이 물질이나 과학이나 무엇이 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들어 보십시오. 하나도 안 드네.
내게 억만금 돈이 있어도 돈이 나를 살린 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살려서 오늘까지 내가 살아서 예수님을 믿게 됐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사람들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네, 이 주님 아닙니까? 다 우리가 믿지 않습니까? 이래도, 이스라엘이 이것을 입술로 만 말하지 실상은 믿지 안해. 이러기 때문에 금덩이로 만들어서 우상을 만들어 가지고 ‘이게 우리를 인제 인도해서 복되게 한다’ 눈에 보이는 그것이 저거를 구원한다 해야 믿어지고 안심이 되어지는 것이 이스라엘의 패역이었습니다.
자, 이러면 여러분들이 손든 대로 이날까지 모든 걸 다 행체가 주님이 해 주셨다고 하면 그분 한 분만 찾고 잘 섬기고 그분 한 분만 믿고 그분만 의지하고 그분 법대로 살면 될 것 아니겠소? 뭣 때문에 그분 두고서 오늘 뭣을 ‘내 앞길을 행복으로 인도할라면 학교 가야 된다. 내가 예배를 못 봐도 공부를 해야 된다. 내가 예수를 못 믿어도, 직장을 가져야 된다.’ 오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이런 것들이 자기의 행불행과 흥망성쇠를 주장한다, 내 모든 것이 출세 하고 커지는 것은 이것들에게 있다 하는 것을 믿고, 믿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마련해야 된다’ 하고서 이것을 마련하는 데에 주님에게 상대하는 것보다도 더 중히 여기는 자는 두말 할 것이 우상을 만드는 자가 아니고 뭐이겠습니까? 해석해 보십시오. 이거 뭐인고? 우상 만드는 자가 아니고 뭐인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해서, 또 주님이 허락하시면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나로서는 이 공부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요 공부함으로써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고 여기에서,내 구원 이루겠다. 나는 공부 가운데 공부라는 그 직업 속에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해 가지고서 내 구원 이루겠다. 나는 이 공장이라는 이 직업에서 나는 주님 시키시는 대로 계명 지켜서 구원을 이루겠다. 나는 가정부로 이제 여기에서 주님의 계명 지키면서 구원 이루겠다. 나는 지금 목사직을 하면서 목사 직업에서 나는 주님 계명 지켜서 구원 이루겠다.
목사도 목사직에서 설교하는 것은 자기 직업이요 목사직에서 주의 법도를 지키면 제 구원 되고 평생 목사노릇하다가 목사로 죽어도 제목사직에서 주의 법도 지키지 안하면 구원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목사직이나 저 장로직이나 뚱단지 푸는 사람이나 밥장사나 떡장사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배타고 다니는 사람이나 다 직업이오. 그 직업 속에서 자기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내 현실로 주신 것이니까 이것은 내 현실이라 여기에서 내가 계명 지키고 여기에서 내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고 여기에서 의를 만들고 여기에서 믿음을 만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주님에게 ‘믿음으로 하지 않는 건 죄라’ 주님에게 순종으로 주님이 이거 하라 하기 때문에 이거 한다 이렇게 해서 하는 게 아니고, 요것은 믿음을 지키기 때문에 그자는 다 같은 사람으로 보여도 데려감을 당할 것이요 ‘이거해야 내가 산다. 이거 해야 내가 산다. 뭐 해야 내가 산다.’ 그러면, 오늘까지 사는 건 우리가 다 손 들기를 주님의 은혜로 산다고 해 놓고 자기가 지금 하는 중심이 ‘내가 이걸 해야 살지, 이걸 해야 내가 성공을 하지, 위대해지지.’ 믿음으로 하지 안하고.
그러니까, 그 사람은 거기에다가 가치를 두고 그것을 크게 여기니까 예수 믿는 가치보다 그게 크니까 예수 믿는 일을 등한히 해도’ 그거는 충실히 해야지.
예수 믿는 일을 양보해도 그거는 해야지.
이렇게 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이스라엘이 만든 금송아지 보이는것으로서 저희들이, 저희들이 만들어 놓은 것, 저희들이 만든 보이는걸 가지고저 저거를 구원하는 신이라고 이렇게 한 그것, 오늘 제가 만든 지식, 제가 만든 기술, 제가 만든 실력, 제가 만든 돈, 제가 만든 직장, 제가 만든 돈 제가 만들어 놓은 이것이 자기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있다고 그에게 주권을 두고 하나님 믿는 건 뒤로 두고 거기에 다 앞두니까 그거 우상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상 아니라고 해석할 분들은 해석 해 보십시오. 우상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거든 해석을 해 보십시오. 아마 여러분들이 아무리 억설을 해도 다른 사람이 듣고는 그거 아니다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거 정신 차려야 됩니다. 오늘까지 우리가 살아온 것은 주님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이 보이지 않는 그분이 보이는 내 모든 일을 다 해 주신 것을 우리가 마음의 눈으로 봤고 또 앞으로도 그분이 해 주실 것입니다.
이런데, 오늘 우리가 남은 때에 생활이 그분에게 매였으니까 그분시키는 대로 해야겠습니다. 그분이 공부하라면 공부해야지. 말하라면 말해야지. 앉았으라면 앉아야지. 사지 가라면 사지 가야지. 전쟁 가라면 전쟁 가야지. 직장 가라면 직장 가야지. 감옥에 가라면 감옥 가야지. 그분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우리의 본분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너는 공부해라. 어떤 사람은 너는 직장 가라. 어떤 사람은 너는 봉사를 가거라. 어떤 사람은 병석에서 앓아라.
이 당신이 시키시는 대로 이런 거 저런 거 시키시는 것은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고 전지 전능이기 때문에 내게 좋도록 유익하도록 시켜주신다는 요 사랑을 믿고 그저 뭐이든지 닥치면 그분이 나에게 해 주신줄 알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법도를 찾아 가지고서 신앙 양심으로 찾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나는 요게 하나님의 뜻이다’ 병에 드러누워서도 ‘나는 지금 이것은 내가 아파도 참는 게 하나님의 뜻이다. 이럴때는 좀 끙끙 좀 앓아야 되겠다.’ ‘이때는 기어서라도 좀 다녀야 되겠다’ ‘이때는 좀 누워야 되겠다’ ‘이때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 되겠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입을 참아야 되겠다’ ‘이럴 때는 죽어도 말을 해야되겠다’ ‘어떻게 억울함을 당해도 견뎌야 되겠다’ 당신이 그때 그때 우리에게 세밀히 시켜 주시고 시키지 안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하지 안하는 건 죄라, 그말은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안한 건 죄라 그거요. 시키시는 대로, 하지 안한 건 죄라.
그러면, 시키는 대로 하지 안하는 건 죄라 그말은 빠짐없이 다 시킨다는 그말 아닙니까? 틀립니까? 믿음으로 하지 안한 건 죄라 그말은 주님이 시키지 안 한 대로, 안 하라는 거 한 것은 죄라 말 아닙니까? 그러면 주님이 시키지 안하는 것이 없다 말이 아닙니까? 전부 다시킨다 말 아니요?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인데 여기에서 벗어나서 ‘나는 아무래도 이걸 가져야 내가 앞으로 출세도 하고 양명도 하고 살기도 하고 가정도 꾸려나갈 수 있다’ 해서 하는 그것이, 그것이 제가 만든 보이는 우상 아니고 뭐입니까? 그거 제가 만든 보이는 우상 아니고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래 놓고 만들고 난 다음에는 이제 한층 더 더러워지고 교만해져가지고서 ‘나는 이거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이래 가지고서, 그래도, 그래도 살리기는 하나님이 살리지 그게 살리는 거 아니라. 그게 살리면 저 기술 없어지지 안하면 백 살이고 이백 살이고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기술이 있는 싱싱한 젊은 의사가 그날밤에 직사해 버렸습니다. 왜? 의술을 가지고 사는 것 같으면 어찌 그날밤에 죽어? ‘나는 인성을 모아서 많은 사람들의 성을 모아서 이 부하가 많으니까 산다’ 부하가 많은대 그날밤에 바로 급사를 하니까, 정권자가 급사하니까, 그들이 뭐 변해져서 급사합니까? 어리석지 맙시다. 어리석지 말아요.’ 허, ‘나는 젊으니까’ 젊음도 소용 없어. 생생하게 젊어서 꿈꾸고 외국에서 유학가서 학위 받을 대로 다 받고 ‘이제는 결혼 인제 아주’ 인제 이만치 학위 있으니까 일등 여자에게 결혼하자’ 해 가지고 결혼해 가지고 첫날 신혼 여행 가 가지고서 그날 밤에 가스 먹고 죽었어’. 그라면 가스 없는 데는 안 죽을까? 어리석지 말아요. 이러기 때문에 오늘 요거 회개해야 됩니다.
이제까지 살린 거는 주님이 살렸습니다. 앞으로도 살릴 것은 주님이 살리고 우리 빈부 귀천 흥망성쇠 그것은 주님이 다 만들어 주싯 것인데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만들어 주시니까 이거 저거 가치가 꼭 같애. 흥할때나 쇠할 태나 망할 때나 부할 때나 꼭 갈애.
그러면 꼭 같으면? 사람들은 흥하면 좋아하고 쇠하면 싫어합니다. 어리석은 자야. 흥하는 거나 쇠하는 거나 꼭 같다. 꼭 같다니? 뭐이 같애? 네 구원 이루는 게 같다.
네가 흥한 데에서도 주의 법도 지키면 구원 이루고 망하는 데서도 주의 법도 지키면 구원 이루고 너는 거기에서 주의 법도 지켜서 네 구원 이루라고 이런 저런 모든 변동되는 현실을 주시는 것인데 네가 공연히 교만해서 혈육적으로 판단해 가지고 이 육적으로 판단해서 이 악으로 판단해서 이게 다 악이 판단하는 거라. 자기 중심에 판단이 돼 가지고 좋다 나쁘다.
좋은 현실이 어데 있으며 나쁜 현실이 어데 있습니까? 우리 현실은 사랑하는 주님이 주시기 때문에 꼭 같은 현실이오. 거기에서 우리가 계명 지키면 구원되고 계명 어기면 아무리 고대 광실 높은 지위에 있어도 계명 안 지키면 멸망입니다.
이런데, 분명히 이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희들의 보배로운 걸 막드려서, 보배로운 거 드려서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좋아서 먹고 마시고 뛰고 굴린 이게 뭐입니까? 자기에게 제일 좋은 정신, 정력, 정기, 총명, 시간, 생명, 자기가 보배로여기는 모든 소유 이런 것 다 기울여 가지고서 ‘이것이 나를 살린다. 나를 구원한다.
하고서 만든 그것이 우상 아니고 뭐입니까 ‘ 그게 정말로 살립니까? 정말로 구원합니까? 그게 우리를 행복되게 합니까?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서, 주님이 얼마나 분하시던지 갈아서 마시웠습니다.
이것은 그런 것들을 갈아서 분해서 그걸 갈아서 가루를 만들어서 우리 입에다가 마시기를 마시울라고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여기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봐야 돼. 그런 모든 행동을 주님이분해서 갈아서 우리 입에 다 둘러 마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고로, 우리가 여기에 따라서 그런 것을 참 이를 갈고 그것을 막갈아 뿌사서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안할 만치, 내가 뭣 때문에. 만유주, 나 위해서 대신 죽으시고 대신 행하시고 대신 화친해서 영생 주신 주님이 계시는데 내가 뭣 때문에 주님 배반하고 그것 때문에 주님 근심시키고 그것 때문에 주의 계명 어기고 그것 때문에 더러운 세상에게 아부하고 이래 가지고서 그건 것들을 가뜩 만들어서 우상을 만들어 놓고 ‘내가 이만하니까 나는 안심이라’ 하고 먹고 마시고 뛰고 굴리는 그자에 분해 십계명을 내던져 깨졌습니다. 이만큼 주님은 노여워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주님의 심장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서, 주님의 심장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서 주님의 그 심정에 얼마나 이걸 분하기 때문에 갈아서 이스라엘에게 마시웠습니다. 갈아서 이스라엘에게 마시웠어.
그 절수가 어데 있소? 20절에 모세가 그들의 만든 송아지를 가져 불살라’ 금은 살라지지 안하지만 거기 딴게 좀 섞였던 모양이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우니라‘ 우리가 이것을 기억해야 횝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것을 갈아서 우리입에다가 마시기를 원합니다. 분하기를 이렇게 분히 여기십니다.
이 분개가 있어야 됩니다. 내가 주님 의지 안 하고 내가 돈 의지했다. 내가 주님 의지 안 하고 기술 의지했다. 내가 주님 의지 안 하고 내 청년을 의지했다.
내 기백을 의지했다. 내 정력을 의지했다. 내 재산을 의지했다. 뭐 의지할 게 있는데? ‘정함이 없는 모든 물질라 것들에게 소망 두지 말아라. 모든 걸 주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라.’ 마시우고 난 다음에 이제 27절에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허리에 칼을 차고’ 이스라엘은 허리에 칼을 찼습니다. 찼었는데 오늘 우리는 무슨 칼 차야 됩니까? 우리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뱃속에 가져야 될 것 아닙니까? 우리 뱃속에 이 진리가 우리 뱃속에 가득 차 분개해야 될 것 아닙니까?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이스라엘 진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오늘 서부교인이라면 교인 중에 이 교인 저 교인 접촉하고 우리 총공회 진영이라면 총공회 진영에 이 교회 저교회 접촉하는 대로 접촉해 가지고서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형제를’ 남이 아니라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도륙하라 말은 칼로 찔러 죽여 버리라 그말이오. 칼로 찔러 죽이라 말이오. 도룩하라 말은 칼로 죽이라 말입니다. 도룩하라 말은 죽이라 말이오. 오늘도 죽여야 됩니다. 안 죽이면 하나님의 노가 풀어지지 않습니다. 죽여야 됩니다.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인바 된지라’ 삼천 명 가량이 죽었어. 칼에 찔려 죽었어.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을 죽이고 그 형제를 죽었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게 하나님 앞에 헌신이라 그게 하나님 앞에 바치는 거라. 그게 하나님 앞에 바친 생활이라. 찔러 죽이는 게 하나님 앞에 바친 생활이라. 찔러 죽이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바친 생활이라. 찔러 죽이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바친 생활이라.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이라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에게 복을 줬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속에는 새사람도 있고 옛사람도 있으니까 우리는 이 물질의 칼을 가지고서 죽일 수는 없고 그라면 죄가 되겠고 성신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 안했습니까? 성신의 검 하나님 말씀 진리를 가지고 우리들이 이렇게 우상 만들어 놓은 것을 갈아 가지고서 물에 태워서 마시워도 이 빈정거리는 자들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우상을 만들어서 하나님 노엽게 했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해야 된다’ 회개할 생각은 가지지 안하고 빈정거리는 자가 있었어. 저 조네. O 뭐꼬 O 무슨 선이 옆에 콱 쥐어박아. 옆에. 그래. 꽉 쥐어박아. 사정 없이. 저 잘 믿는다 하는 사랑이 귀신이 들어가서 곧 지금 곧 죽을 판이로구먼. 그래 놓으니까 고놈이 썩 나와 졸게 만들어. 꼭 제게 필요한 말씀 들을라 하면 귀신이 와 가지고 그만 못 듣게 합니다.
이렇게 제게 있는 보배 가지고서, 보배 가지고 만들어 가지고 그게 저를 구원한답니다. 오늘, 제가 만든 게 저를 훨 구원합니까? 저보다 큰 게 저를 구원하지 제게 만들어진 그까짓 게 뭘 저를 구원합니까, 구원하기를? 이걸 보고서 사람들이 어리석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누굽니까? 제가 보째로운 거는 전부 다 하나님께 바치지 안하고 전부 우상 만드는 데다 바칩니다. 이래 바쳐 가지고서 이것이 저를 구원한다고.
여러분들이, 인간들이 일단 정신으로 만들어 놓은 그것이 없어서 죽었습니까? 그게 없으면 망합니까? 다 그거 고 부래기 두고 다 망했습니다. 다 죽었습니다.
이 우상 섬기는 이 악한 사상을 완전히 허리에 칼을 차고서 죽이라. 갈아 마시면 이거 분개해서 참 분해서 갈아 마셔도 분이 안 풀릴 만치 모두 다 이렇게 회개하는데 이걸 장난삼아 듣고 애사로 듣고 빈정거리는 그런 자는 죽이라 했어.
그자가 옛사람이라. 옛사람 죽여야 돼.
그에게 빰을 맞더래도 하나님 말씀 가지고 ‘네가 이렇고 이런데 네가 그런 걸 회개해야 되지 않느냐? 회개해야 되지 않느냐?’ 말씀을 또 해서 또 하고 자꾸 해서 안 되면 하나님 말씀은 비수검이라. 쩌르면 들어가. 자꾸 찔러. 하나님 말씀을 자꾸 말해. 안 들어도 자꾸 말해. 여러수십 번을 찔러 말해. 맞으면서도 말하고 말해. 말하면 그 속에 악령, 악성, 악습은 고놈은 죽어 버립니다. 죽여 버립니다.
죽으면 거기에서 새 남편 나오지. 죽으면 새 부부 나오지.거기에 죽으면 새 형제 나오지. 새 형제 새 남편 새 친구 새 아우 나오면 여러 배 되지 ‘네 부모와 형제와 자매와 처자를 버린 자는 여러 배를 받으리라. 백배 받으리라.’ 그러면 남편도 백 얻는다 말이요? 남편 백 배 받는다는 말이요? 그거는 한 남편이지마는 그 죽은 가운데서 새사람으로 살아 나오면 그전 남편 그까짓 거 썩은 남편 그런 거 백 명 아니라 천 명도 더 당해. 천 명도 더 당해. 부모고 형제고 천 명도 더 당해. 이래서, 죽여야 산다. 죽여라. 사정 없이 죽여라. 진 이 속에서 저 쪽에 다니면서 그저 이렇게 이 신앙으로 돌아서지 안한 자가 있거든 하나님 말씀으로 찔러서 죽이라. 죽이면 옛사람 죽고 새사람은 살아난다.
오늘은 이제 마지막이 됐습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다 패괴돼 있습니다. 모두가 다 허물어져 있소.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지고 다 무너뜨려질 대로 무너뜨려져 가지고서 뭐 어느 목사가 안 무너지는 게 없어. 어느 장로가 안 무너뜨림이 없어. 어느 교회가, 어느, 나라가 어느 정치가 이 세상에 무엇이 전부이 마구 방자해서 허물 뜨려져 가지고서 이와같이 되어 있는 이때 입니다.
이때에, 해가 기우니까 그림자가 없어졌어. 해가 있을 때에 그림자가 있지만 해가 없으니 그림자가 없어. 다 새카만데 무슨 그림자가 있어? 너도 나도 다 새카마니까 뭐 검은 게 표가 나야지. 이째 놓으니까 이것이다 일반화됐어.
이러면, 이것으로서 세상이 유지될 줄 압니까? 아니오.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한 여덟 식구만 살아났습니다. 나머지기는 다 홍수 속에 매장되고 말았습니다.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우주는 다 불덩어리 됩니다. 불덩어리 될 때에 의인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때에 자기에게 명한 대로 다 준행한 자가 그때에 의인이 옮겨짐을 받을 때에 옮겨짐을 받습니다.
뭐 이래도 저대로 다 사는 건데 어리석지 말고 공연히 마귀에게 협박 눌리지 말아요. 이라면 먹고 살고 어짤까? 주님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모든 걸 더해 주신다 했어. 또 주를 위해서 손해 보는 일 없다 했어. 여러 배 준다 했어. 뭐 먹을 것을 당신이 책임 안 졌습니까? 입을 것을 책임 안 졌습니까? 엽전 두 푼에 팔리는 참새라도 다 그 생명은,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머리털까지 센다 하니까 우리 생명을 책임져.
밥을 책임 안 졌소 옷을 책임 안 졌소 우리 목숨을 책임 안 졌소 우리 거처를 책임 안 졌소?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 지위를 책임 안 졌소? 뭐 안 졌어? 이렇게 신실하신 분이 우리에게 오만거 다 책임지고 말씀대로 신실히 좀 살아보라 하는데 못 살 게 뭐이야? 뭣 때문에 못 살아? 뭣 때문에 못 삽니까? 무슨 걱정입니까? 내놔 보십시오. 무슨 걱정이요? 주님이 거짓말쟁이입니까? 아니오. 주를 바라보는 자는 절대로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다, 주님 무시하는 자는 다 금생에 안 받으면 영원무궁에 다 그가 수치를 당하고 후회를 당해도 당하지 안 당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