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과 구원

 

1979. 11. 6. 화요일 새벽 

 

본문: 히브리서 11장 5절 - 6절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도록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자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안 했다 하신 이 죽음을 보지 안했다 하는 말씀은  모든 심판에 걸리지 안했다 하는 말입니다. 모든 심판에 걸리지 안 했다. 심판은  도성인신하신 그리스도의 심판이 있고 또 삼위일체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은 택한 자들에게만 있는 심판이요 삼위일체의 심판은  공심판인데 불택자들에게만 있는 심판이요 이 심판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대신하셔서 심판을 받으신 심판입니다.

 또 모든 피조물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때는 모든 만물이 다 자유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다 이 자유들을 제재해 가지고 복종케 하시는  이것은 이것에게 복종 저것은 저것에게 복종케 하시는 이 제도를 세우셨지마는  그때는 복종케 하시는 이 제도의 세상살이 한 토막을 거친 다음에는 모두가 다  얼마든지 자유로 호소할 수 있고 자유로 송사 할 수 있고 자유로 평가 할 수  있고 상관을 가질 수가 있는 이것이 만물 심판입니다.

 이러한 심판에 정죄받지 안했다 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심판에 정죄받지 안  했다. 이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고 이 심판에 정죄 되지를 안 했다. 믿음 가지고.

그러니까 저주를 받지 안 했다. 사망을 받지 안했다. 사망 앞에 저주가 있고 저주  앞에 정죄가 있고 정죄 앞에 심판이 있는데 이 믿음은 심판을 통과하고 걸리지  아니하므로 정죄가 안 되었다. 저주가 없다. 망하는 것과 죽는 것이 없다 하신  것을 표시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어떠한 존재들이 있는지 그 종류와 숫자를 알 자가 없습니다. 이것들을  지으시고 관리하시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이것들을 알 자가 없습니다. 또  그들이 어떤 그 자유성이 있으며 어떤 그 범위의 어떤 범위 어떤 범위의 주권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어떤 범위의 그 권세를 하나님 앞에 받아 가졌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걸리지 않을 길과 걸리는 길을 알 자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또 걸리는 길을 안다 할지라도 그 길을 능히 피할만한 능력을 가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심판과 이 만물 심판에 걸리지 아니하고 통과할 수 있는  언행심사의 생애라는 것은 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다. 인간의  지능으로는 불가능하다 하는 말씀입니다. 무인격의 존재 무자유성의 존재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그대로 타락하지 안 했기 때문에 이런 식물이나  무생물이나 곤충이나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지어 주시고 저에게 법칙을 주신 그  권위를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다만 인간과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과의 관계된 이 점에서 그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심판은 결과적으로 말하면 곧 인간에게 감사할 것과  송사를 제개하게 될 이 것 뿐입니다.

 그러기에 추수하는 밭에서 그 일군에게 주지 아니한 그 삯이 그 품삯이 만유 주  귀에 호소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물질이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물질은  사람에게 올바로 이용될 때에 그것이 삽니다.

 그러기에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좀도 동록도 도적도 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이 성도의 손에 바로 쓰여진 그 물질은 그에 물질에 권위와 또 사람의  사용권이 영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기에 이 수많은 존재와 관련 있기를 마치 시골 넓은 그런 사람은 적고 땅이  넓은 그런 지역에서는 집을 지을라면 제 마음대로 이리도 짓고 저리도 짓고  마음대로 짓지마는 또 지을 때에 대적되는 사람들이 적지마는 이 밀도 해 가지고  사는 이 도시에서는 집을 지을려고 하면 언제든지 시비가 일어납니다. 왜?  서로서로 다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침략을 하려고 하려고 시비, 저  사람이 침략을 당하지 아니하려고 하는 시비, 수많은 시비 속에 있기 때문에 집  지으면서 시비를 가지지 않고 짓는 그런 집이 별로이 없습니다. 아! 하물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의 생활은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대적들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 사는 생활이 얼마나 많은 숫자의 관계들에게  그게 관련이 있어 시비가 일어날 것이로되 인간 이하의 것은 시비를 못하고  복종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허무한 것들에게 복종하게 되었다 그렇게 로마인서  8장에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무례하게 아무리 짐승 한 마리에게 무례하게 해도 이  화초 하나에게 무례하게 해도 이 공기에게 무례하게 해도 땅에 무례하게 해도  그것이 지금은 시비를 걸지를 못합니다. 어느 기간 동안 이 참 무가치한 것  무가치한 것에게 복종하는 것이 만물의 저희 뜻은 아니라 이랬소.

 저희 뜻은 아니라. 저희들이 원치 아니하지만 어느 기간 동안은 복종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복종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무익한 것들이 되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옳고 참된 이것이 움직이는 데에 움직여지기를 원하는 것이 만물의  소원인데 하나님이 어느 기간 동안은 복종케 했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제  욕심대로 움직이는 여기에 이용 당하니 이용 당하는 만물들이 다 죽기 때문에  만물이 심히 탄식한다고 했고, 만물들의 피곤함을 사람의 입으로 다 말할 수 없다  이랬습니다.

 그들의 호소를 인간들의 입으로 말할 수 없을만치 이렇게 수많은 상대들을 관련  가지고 있는 이 한 토막 한 토막 걸음인데 우리의 이 일동 일정의 이 언행심사의  걸음이 그것들에게 저축이 안 되어야 되는데 그것들에게 침략을 안 해야 되는데  그들에게 해를 가하는 가해가 되지 안 해야 되겠는데 이것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아무도 이 걸음을 걸어 갈 수 없다. 이것이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은 좁은  생명길이다.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은 좁은 생명길이라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통해서만 인간들에게 영생할 수 있는 이 길이 열려 있다.

 그러면 그 길이 무슨 길이냐? 그 길이 곧 믿음의 길이다 그말이오. 그 길이 곧  믿음의 길이다. 믿음의 길이라는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그 사람과 하나님의 지혜와 그 사람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과 그  사람의 능력과 하나님의 소욕과 그 사람의 소욕이 합해져 가지고 하나님의 것은  다 진리대로 된 것인데, 하나님의 것은 주체가 되고 하나님의 것은 주체가 되고  그 사람의 것은 그 주체의 소유의 위치에서 소유가 되어진 요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이 사실을 느끼지 아니하고 실질적으로 느끼지 않고 깨닫지 못하는 자는 이  걸음을 걸을 때에 괴롭든지 죽든지 해도 댓가가 크기 때문에 죽음도 너무 댓가가  헐하다. 이러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무익한 종이라 하는 고백을 하게 되고, 너무  작은 것 가지고 큰 것을 마련하기 때문에 기쁘고 감사하고 피곤치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망에 대해서 바로 깨닫는 데에 옳은 것을 행하다가 낙심치 아니하면  피곤치 아니하면 그 말은 소망을 소망대로 바로 깨달으면 이 소망을 가져오기에  어떤 그 자기의 투자가 된다 할지라도 투자와 이루어지는  소망이 극히 비교 못하기 때문에 피곤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피곤치 않는다는  말은 꺼리지 않는다는 뜻이 그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단 마음이요. 기쁜  마음이요. 억지가 들어 있지 않다는 그 뜻이 거기 있습니다.

 비유가 될런지 모르지마는, 어떤 사람이 자기에 가진 것이 돈이 전 재산이  만원입니다. 만원인데, 만원 이것을 주고 구천원 짜리가 될런지 팔천원짜리가  될런지 만원짜리가 될런지 하는 것을 살려고 하면 이 돈을 내 어 주기가 발발  떨릴 것이요. 줄까 말까 발발 떨릴 것이요. 그러나 만원을 가졌는데 자기가  그것을 지금 이것만 네가 가진 만원만 주고 가져 가거라 하는 그 가져 가라는 그  물건의 가치가 억 억 만원 어치도 더 된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그 사람이 알면  만원 그것 내주는 것이 주저되지 않을 것이고 꺼리지 않을 것이고 어쩔 줄  모르고 어떻게 내는 줄 모르게 얼른 내어 줘 버릴 것입니다. 이것을 말합니다.

 이러기에 천국은 보화를 찾는 사람이 자기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삼과  같다. 진주를 찾는 사람이 진주를 만나매 자기 있는 소유를 다 팔아서 주고  진주를 삼과 같다 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이 우리의 이루는 이 구원 이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자기가 한 토막 현실에서 믿음을 지키는 이 일을 함으로  이루어지는 그 결과에 가치를 아는 자는 자기의 현실에 소유든지 몸이든지  생명이든지 이것을 다 들여서 자기 현실에서 얻어지는 이 결과를 얻는 일에  억지가 아니고 강제가 아니고 주저가 아니고 원하고 원하고 마치 아까 만원  가지고 물건 사는 거와 같은 그런 마음 가짐과 그런 기쁨 가짐과 그렇게 원하고  원하고 단 마음을 가지지 아니할 자는 하나도 없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이 생애는 이렇게 밀도한 수많은 존재와 관련 있는 이  행동입니다. 이게 뭐이 필요해서 이 어려운 걸음을 걷게 하는가? 이것이  무궁세계서는 우리는 지금 땅의 것 뿐이지마는 무궁세계서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하나되어 있는  이 나라에서 이러니까 물질계는 이것은 심히 천박하고 협박한 아주 좁은  것이지마는 영계는 측량 못할 넓고 많은 것들이 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면 이 많은 것들이 있는 이 세계에 우리가 가서 끼여서 살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끼여서 살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위로 하나님 또 수많은 신앙의 (이에)  이 존재 옆으로 밑으로 수많은 천군 천사 수많은 만물 이 사이에 가 가지고  하나에게도 마찰이 없는 요 실력을 가지고 살아야 될 세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전우상하에 한 군데라도 마찰이 되면 거기에 비끼 나와야 됩니다.

마찰되면 거기서는 양보하고 나와야 돼요. 쫓겨 나와야 돼요. 이러니까 하늘에  있는 것이 다 마찰이 된다고 하면 마찰 없는 제일 작은 자리 낮은 자리 그  자리로 내려와야 됩니다. 거기에는 아무것에게도 마찰이 없는 동시에 아무것에게  대해서도 요구도 봉사도 줄 것도 받을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늘나라  위치입니다.

 아 말단에 있었는데, 아 이는 나에게 필요하다 하는 것이 하나 나왔습니다.

그에게 필요하니까 그에게 필요있는 그 자리로 갑니다. 또 하나가 나와 가지고 아  이는 나에게 필요하다, 하늘에 있는 모든 존재가 다 이것은 나에게 필요하다,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나와 관련을 가져야 되겠다 이러니까 모든 것이 다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영접을 하니까 이것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님을 주라 시인한다 그 말은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만이 내가 내라 말은 이제 내라는 말이 아니고 우리 성도들  누구든지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자기에게 얻어 가질 필요가 없지 그 외에는 다  자기에게 필요한 존재니까 만물 위 예수님 만물 위 하나님 우편 하나님 아래  하나님은 그에게 얻어서는 필요가 없을 것은 그 면에는 필요가 없지마는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주셔야 하겠는데 이분은 이것은 받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다른 존재에게 줄 자격이 있지마는 이것은 받아서 줄 자격이 없어. 이  면에는 받아 줄 자격이 없어. 이 면에는 중보의 자격이 없어. 그러면 그 밑에  내려가야 되지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다 받아 모든 존재에게 부족 없이 다 줄 수 있는 이  위치이기 때문에 마태복음 28장 17절 이하에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내게 주셨다 이런고로 이제부터는 모든 족속과 나라와 백성과 백성들을 다  제자를 삼아 가지고 그들에게 주어야 되겠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세상 끝날까지 이 현 세상이라는 이 구속 기간이  끝날 때까지 나는 이 일을 하고 가겠다 이 시간 끝나고 너희들과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어렵고 조건이 많해. 우리가 기계를 볼 때에 그 기계가 관련을 가진 면이  숫자가 적으면 가치가 적은 것입니다. 힘이 적습니다. 이 기계의 부속품 그것도  그 한 부속품이 관련된 관련 면이 많을수록 그것은 가치있는 기계의  부속품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예를 들면 자 어떤데 쓰는 그 물건은 좀 길어도 괜찮고 좀  짧아도 괜찮고 좀 커도 괜찮고 좀 가늘어도 괜찮고 두꺼워도 괜찮고 얇아도  괜찮고 좀 강해도 괜찮고 물러도 괜찮고 이렇지마는 아주 보배로운 힘이 많은  데에 강한 데에 큰 권위를 가진 그 힘 많은 데에 보배로운 그 기계의  부속품이라고 하면 그 부속품은 이것은 너무 여물어도 안됩니다. 너무 물러도 안  된다 너무 두꺼워도 안 된다 얇아도 안 된다 길어도 안 된다 짧아도 안 된다  동그레도 안 된다 네모져도 안 된다 어떻게 까다로운지 거기 딱 들어맞는 본질과  본성과 그 형태와 그 작용이 갖추어 가지지 안 하면 그 부속품이 안 된다 그말  이오. 이게 자연계시입니다. 이게 자연 계시오. 이것으로써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노력하는 것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그 세계에서 열 존재에게 해당되는 것은 그만한 위치를 가질  것이고 억 억 만에게 해당되는 것은 그만한 높은 그 위치를 가질 것이고 모든  존재에게 다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존재라면 그것들 위에 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에게 주실 때에 그것을 능히 받아 가지고 줄 수 있는 이런  자라면 이런 위치의 중보의 자리가 자기가 살 처소입니다. 이것이 없는 자는  벌거벗은 자라. 아무 것도 자기에게 속한 게 있어야지.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물건이 시장 와 있어 보았자 누가 찾겠소? 볼 필요조차도 없는 것은 암만 그  있어 봤자 걸거치기만 걸거치지 아무도 보지도 안 합니다. 모두 자기 필요 있는  것을 시장에서 찾고 있지 않소? 무궁세계의 건설도 자기에게 필요 있는 것을 다  찾아서 세우는 그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땅 위에서 이렇게 까다로운 생활 우리의 잠깐 동안 연습하는  생활이며 배우는 생활이며 연성 하는 생활인데, 금을 불로 연단 하는 이것보다도  더 정밀히 정밀히 연성 되어서 아무데나 거리낄게 없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 되게 하시려고 요 면을 갖추기 위해서 요런 현실을  주시고 저 면을 갖추기 위해서 저런 현실을 주시고 요 실력을 갖추고 저 실력을  갖추고 요 면에 거리낀 것은 해결 짓고 저 면에 거리낀 것은 해결 짓는 이것이  우리의 회요. 모든 면에 합당하도록 만드는 그것이 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까다롭지마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아무도 할 수 없는 이 걸음을  걷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걸음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고 아버지의 성령님 으로만 할 수 있어. 이러기에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이것을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보증자로 성령을 주셨나이다”그랬어. 여기에  대해서 보증자 책임자가 성령이라. 이것을 이루어 가는 것이 기독자의  걸음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아니고는 안 된다. 믿음으로만 이 걸음은 걸어갈 수 있다.

믿음이 뭐인데? 하나님 본체와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하나님의 지능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내게 속한 모든 것과  이 두 가지가 없을 때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이것이 생겨진 이것이  하나님 배반하고 원죄와 본죄로 타락해 멸망 받았는데 이것이 예수님 구속으로  다시 본 자리로 돌아와 가지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이것이 다시  하나님과 재결합을 가져 재결합을 가져 재결합을 가져 그분은 내게 대해서  창조주요 내게 대해서 주재자요 내게 대해서 주권자요 내게 대해서 시은 자시요.

 이러기 때문에 그분은 주격이요 나는 그에게 속하여 그의 것으로 말미암아 이미  있는 것이 영존하고 영원히 쇠하지 않고 낡아지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아픔이나 고통이나 눈물 흘리는 이런 것이 없는 생명과 평강의 것이 되어지도록  요 결합되는 요것을 가리켜서 한마디로 믿음이라 요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영생이 없어. 여호와의 증인은 영생이 없어. 최종택이 여호와  증인에 갔다고 하는데 여호와의 증인은 영생이 없어. 그 근본 교리는 영생이  없어. 우리를 우리에게 와 가지고 왔다가 이단이라고 정죄를 받으니까 아 요것을  요 거짓말을 배워야 이단이란 말 면하겠다 저 거짓말 많은 거짓말을 배웠단  말이오. 거짓말을 배웠단 말은 많은 옳은 것을 알아 가지고 거짓말 할 재료를  많이 받았다 그 말이오.

 거짓말 할 재료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은 유혹을 주면 유혹을  주는데 속에 성령이 있는 자는 유혹을 안 받아. 속에 성령이 있는 자는 유혹을 안  받습니다. 일시 유혹을 받아도 그게 아니라는 것이 속에 자꾸 바깥에서 귀로  눈으로 들어봐서 그것이 외증인데 신약에서 말하는 외증 외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에서는 성령 밖에서 증거하는 것을 외증이라 성경 안에서 말하는 것을  내증이라 하는데 그것을 말한 것 아니고 이제 성경 밖에서 아니 자기 밖에서  들려지는 이게 아니고 자기 속에 중생된 영에게서 성령과 함께 양심을 통하여  나오는 이 호소가 있기 때문에 자기가 일시 미혹을 받아도 견디지 못하는 거라.

 제가 여호와의 증인을 만난 것이 서부교회에 부임하던 그 해 겨울에 내가  여호와의 증인을 만났습니다. 그때는 여호와의 증인이 그렇게 없었소. 그저  처음으로 그때그때 겨우 와 가지고 선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나온 지가 1년 되었거나 그랬을 것입니다.

 그랬는데 그 전도사하고 전도하는 전도사님 뭐 이리 전도하는 사람하고  어쨌든지 전도사인지 뭐 무슨 목사인지 뭐인지 무슨 직을 가졌는지 그 사람하고  저하고 만났을 때에 그 교리 대조를 했는데 거기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들은  영생을 몰라요. 그들에게는 기도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영이 없습니다. 영이  없어. 영이 없어. 그들에게는 영원한 부활이 없어. 땅 부활 뿐이라. 육체 부활  뿐이라.

 그들의 구원은 천년 구원밖에 없어. 그들은 번식 인종으로 사는 천년시대의 번식  민족의 그 구원밖에는 그들에게 소원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영이 있다 하는데  몸을 죽여도 그 영을 죽이지 못한다고 이 성경에 있는데 이 성경을 어떻게  말하느냐 이러니까 할 말이 없으니까 그것은 비유라 그렇게 돌려 버려요. 왜?  이렇게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에 부활해서 영생하도록 하는 것이 성경에 꽉  찼는데 왜 영생이 없다 하느냐? 있기는 있다 있는데 요한계시 7장을 내대면서  거기에는 십사만사천인 밖이기 때문에 십사만사천인이 벌써 하늘 부활은 다  얻어서 차지해 버렸고 지금 남은 것은 땅의 부활이라 그들이 그렇게 말합디다.

 그러면 계시록 7장에 십사만사천이라는 그 숫자를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고 난  다음에 그 뒤에 신약 교회에 성령이 오셔 가지고 역사 하시는 것 세상 끝날까지  내가 이 구속을 주신다는 것 이 계약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중생 된 그  성령이 내주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예수를 암만 믿어도 영원한 구원은  싫습니다. 항상 육체의 구원 육체의 행복 세상 소망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속에  성령이 없기 때문에 성령 있는 사람은 이 육체의 구원 이것이 좋지마는 영원한  구원을 보면 이것을 투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베드로가 고기를 잡았지마는 인간  수입이라는 그 면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고기를 집어던지고 따랐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세상에 있는 이 행복 이것을 소망하고 이래  믿다가 세상 것이 마음대로 되어서 막 부자가 되고 모든 것이 형통해지고 이렇소.

이러다가 성령으로 인해서 무궁세계가 있고 이 나그네 세계에서 무궁세계의 그  준비를 갖추는 데에 이 자연 은총의 것은 다 비용으로 투자되고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 둘째 아담에게 속한 것을 마련하는 이 모든 잠깐 이용의 자본이 되는  줄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땅 위에 있는 모든 부귀와 영광과 존귀 이것을  아낌없이 다 투자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것을 마련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참 깨닫고 난 다음에는 자기와 자기의 세상살이를 이 영원한  구원을 위해서 자본으로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을  받지 못하고 속에 성령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영원한 것은 믿어지지 않고  항상 육에 속한 것이 믿어지고 또 육에 속한 것이 취미가 있어지고 이것이  즐거워지고 좋아집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가리켜서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이라. 이것을 가리켜서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 모래가 떠내려 가 넘어가지 안 했소?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 말은 변동되는 세상 그 변동되는 것들 위에 건설했다 그 말입니다.

 우리가 이 구원을 이룬 이 구원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으며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으며 어느 정도의 그 본질과 본성이 온전하며 이거와의 마찰되고  관련도 그 능가해야 그것을 능가해야 그것을 초월해야 그것을 통과해야 될 그  모든 존재들이 어떠한가 하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너무 예수 믿는 걸 쉽게  보고 있습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것. 성령으로만 할 수 있다는  이렇게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보지를 못합니다. 이적을 행하고 복음을 전하고  온갖 은총을 입었지마는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된 것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단언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과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그 뜻 선포해 놓은 것은 성문의지인 이것이 하나님의  선포고 하나님 한번 영감 하신 것이라면 벌써 은밀의지로 선포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선포된 것이요.

 하나님이 선포하신 그 법칙과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과 딱 맞은 것이라야  하늘나라에 갑니다. 하늘 나라란 말은 최고의 위치라 말이요. 그 이상이 없는  위치라 말이요. 완전한 위치. 영원 불변 영존의 위치. 단일성의 위치. 이 가치를  말해서 인간의 말로 표시하니까 하늘이라.

 자꾸 하늘의 말이요. 하늘이라 말은 높다 말이요. 그 이상이 없는 높단 말인데,  하늘나라는 이 공간적으로 높은 공간이 아닙니다. 이 우주 이것이 발등상이요.

영계가 처소요. 이것을 가리켜서 죽음을 보지 안 했다 말합니다. 죽음을 보지 안  했다.

 이러니까 아예 이것은 인간 제 생각대로 해서는 안 되는 줄 알아야 됩니다.

인간이 가진 지혜 자기 생각대로 자기 꾀대로 이리 저리 해 가지고 일시일시  무엇이 이루어지고 면해지고 어두운 사람들이 속고 가니까 이것으로 된 줄  알아서는 안됩니다.

 인간들의 논단을 내가 매우 적은 것으로 안다. 내 양심에 가책될 것이 없는  이것도 내가 인정하지를 않는다. 왜? 모든 것을 아시고 아지 못하심이 없으신 이  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이 분이 당신이 보시는 대로 처리해야 할 이 미래의  심판에 난제가 있기 때문에 나 할 것은 그저 충성뿐이다. 내 뭐 더 할 수 없도록  있는 전부 전심 전력 다 기울려 할 것뿐이다. 내 뭐 더 할 수 없도록 있는 전부  전심 전력 다 기울려 할 것뿐이지 하는 이것이 어느 정도 맞을런지 나는 지금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지금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것을 잊어버리고 제 생각 제  마음대로 제가 마음도 다하지 안하고 뜻도 다하지 안하고 성품도 다하지 안하고  힘도 다하지 안하고 욕심도 다하지 안하고 땅에 것 얼마든지 제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찌꺼러기 남은 이것 가지고 돈에 만치도 연구 않고 돈 벌이 만치도 연구  않고 제가 세상에 있는 세상살이 만치도 힘을 기울여서 연구하지 않고 거기 다  보내고 나머지 찌꺼러기 공부하는 것만치도 기울이지 않고 찌꺼러기 이것 가지고  생각나는 대로 그대로 하면서 이것이 구원이 된다고 하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  일입니다. 이 천부당 만부당 일이요.

 이러기 때문에 모래 위에 지은 집이란 말은 자기 토대 위에 지었다 그 말이요.

인본의 것이란 말입니다. 반석 위에 지었다 말은 반석은 하나님을 말한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나온 그것만 하나님이 하신 그것만 남아 있습니다.

 내가 했지마는 내가 한가지는 내 한 것이나 하나님이 사람 보기에는 내가 한 것  같지마는 극히 무지 무능 이것을 붙들고 전지 전능의 역사가 이루어 사망의 해를  사망의 해를 보지 안 할 수 있는 요런 완전한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요 존재를 조성해 나가는 이것이 기독자의 걸음이기 때문에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이라. 암만 불로 태워도 안돼.

 그 불은 뭐요? 하나님의 말씀의 심판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타낸 성문의지로  은밀의지 영감의지로 아무리 심사해 봤자 타지 않는 존재를 가리켜서 비유해서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이 있소. 그 사람의 신앙 생활이 세계가  위대하다고 존대하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뭐 빌리그레함이니 엑스포 74니  아무리 뭐 4백만명 천만명이 억만명이 모였으면 어쩔 것이요? 노아의 여덟  식구는 수억도 더 되는 그 때 몇 십억이나 됐는지 그 수많은 사람들을 다 정죄  하고 섰습니다. 그들을 정죄 했기 때문에 위에 섰소.

 앞으로 모든 존재를 다 정죄 하고 아무것에게도 정죄 받지 않는 것이라야  하늘나라 갑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된다 그 말은 선포된  성문의지와 그 은밀의지에 저촉되지 않고 정죄되지 않는 것이라야 간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 가고 기본구원 얻은 자가  자기 공로로 가져가는 것도 요대로 된 것만 갑니다. 우리 없이 예수님이 대속한  것이 기본구원이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혼자 하신 것이 그것이 건설구원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모르고 사람이 인정하는 그까짓 무슨 힘이 돼요? 온 교인들이  인증 해 가지고 우리 목사 우리 목사 우리 조사 우리 조사 하니까 그것이 거기  가서 무슨 변화가 될 줄 압니까?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어림도 없소. 그러기에  그들이 뭐 은혜 받았다 그들이 좋다 하는 그런 것은 그저 흥흥 하지 인정이나  위로가 하나도 안됩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논단을 내가 매우 적은 것으로 여긴다고 한 그것이 사람의  논단을 천하 사람이 다 옳다해도 그 논단 가지고 이만하면 되었다 가 아니라  매우 적은 것으로 여긴다. 내가 자책할 것이 없이 한 이것도 아무 것도 아닌 줄  안다. 왜? 나는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이 분 앞에 가서  검사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무거운 짐진 거와 같이 조리고 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갈 길은 다른 방법은 없고 있는 대로 전심 전력 마음 성품  다해서 충성이라는 것, 이것 다해서 그분의 주신 구원을 받을려고 하는 이것 외에  내 노력 다하는 것 이 외에 것 노력 다한 것이 얼마나 될런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 다 할 것 뿐이다. 다른 사람은 다하면 상이 있겠지마는 나는 다해도 상이  없을 것이고 나는 그저 진노와 저주나 면하리라 생각한다. 왜? 내가 거역했기  때문에. 나 이 일 안 하면 화를 받는다. 고린도전서 10장에 말씀했습니다.

 나는 화를 받는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거리낌이 많다. 거리낌을 많이 했다. 우리  기독자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그 자리가 자기 갈 처소요. 자기 진리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이요. 자기가 무지 무능이라는 것이요. 그것이 자기에게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진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게 있는 것 다하여 하나님에게 간구하면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서 하나님의 것으로만 나는 순전히 은혜로만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요  지식을 가지는 것이 자기 지식 자기 진리를 바로 가진 것이요 자기 지식을 바로  가졌소. 요 자리에 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자기 위치를 바로 가졌습니다.

 공연히 허영과 허욕에서 소경보다 더 어두운, 만져 더듬어 아는 거와 같은 그런  지능을 가지고 가도 전체가 다 정죄 받을 것 뿐인데 뭐 자랑할 것이 있다고 뭐  크다고 뭐 배짱을 부리고 나그네 세상에서 안 되면 안 되면 이래 해야지 안되면  저래야지. 해 보지. 어리석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리스도의 이 구원에 두렵고 떨리면서  여기 걸릴까 해서 상대방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나오면 내가 거기에  복종하고 내가 움직이는 것도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통하여 움직이는  이것만으로만 사람 앞에 내 놓아라. 성령의 충만을 받아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화답하라. 네 전체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 자체가 되어 그  자체가 네가 입으로 찬송하는 그 자체가 모든 만물 안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송이 되어야 한다. 그 영광의 찬미가 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 에베소 1장에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음이 아니고는 안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못했다.

이런데 걸리지 않는 그 건설이 그 건설이 그 작용이 믿음 하나로만 되었다.

믿음이 뭐인데? 믿음의 요소가 무엇 무엇이요? 믿음의 요소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것과 나와 내 것 이 둘이 합한 것이 믿음의 요소입니다.

 그러면 둘이 합할 때에 조화는 어떻게 되었나?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은 주격  나는 그의 피조물 나는 그의 것, 하나님은 능동 나는 거기에 피동 이렇게  되어지는 요것이 믿음입니다. 이것 다른 말로 말하면 순종이라. 그를 따른다.

 이러기에 하나님의 것과 내 것이 이렇게 둘이 조화를 바로 가지는 그 시간이  언젠가? 현재라는 시간 뿐이요. 그 장소가 어딘가? 현실이라는 것 뿐이요.

거기에서 하나님이 동할 때 나는 거기 피동되는 그 작용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현재라는 현실이라는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요 작용 외에는 된  일이 없어. 에녹은 요것 가지고 죽음을 보지 안 하는 공사가 이루어졌소. 죽음을  보지 안 하는 공사가 이루어졌소. 건설이 되었소.

 그러기에 우리가 구원을 너무 쉽게 봅니다. 제가 세상에 파묻혀 있다가 이제  주일날 나오면 아 기쁨이 있고 이래 가지고 어깨가 쭉 올라가고 이러면 아직까지  구원을 모르는 사람이요. 실은 세상에 있을 때에 막 날개를 치고 이래  돌아다니다가 주일날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니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어깨가 축 늘어지고 세상에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안하고 기뻤던 기쁨이 없어지고  담력이 없어지고 배짱이 없어지고 딱 오그라져서 죽은 자가 되어지고 죽은 자가  되어지고 나니까 죽음 속에서 산 자가 나옵니다.

 이러니까 가장 미운 자가 생겼으니 요놈 죽여야 되겠다 하는 살인자가 되고.

 아! 다윗이 하나님께 말한 것처럼 나는 완전자 입니다. 하나님이요 흠이 없는  자입니다. 한 번 살펴 보십시요 나는 당신의 뜻대로 안 하는 게 뭐 있습니까?  나는 완전 무결한 자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자입니다. 하는 요 자기를 죽음  속에서 발견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미움 속에서 이게 발견되는 것이지,   아직까지도 미워하는 옛사람 그것이 지금 제 사욕대로 그 명예대로 그 주장대로  그 위신을 세울려고 그 욕심대로 이룰려고 하는 그 자가 새사람을 봐요. 새사람  자기를 못 만납니다. 죽음 너머 새 생명이 있습니다. 너무 우리는 우리가 갈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도 알지 못하고 우리가 접해 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도  알지 못하고 그저 육덩이 대로 세상대로 이리 생각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추켜  올리면 좋아하고 위해 주면 좋아하고 돈 주면 좋아하고 권세 주면 좋아하고 지위  주면 좋아하고 이것이 얼마나 위험물이며 얼마나 미혹물인데.

 자기에게 부딪칠 때는 부득이 여기에서 구원을 이루어야 되니까 이것을 요게  현실이니까 피할 수 없는 것이지 그것에 가치를 보고 좋아한다면 벌써  옛사람이요. 벌써 어두운 사람이요. 그 사람의 건설은 풀과 나무와 짚 밖에는  건설한 것이 없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 되게 배워야 되고 가지면 그렇게 망령되고 헛된 생활을 안 합니다.

지금도 땅의 욕심만 가득 찼소. 엊저녁에도 내가 어떤 목사님과 내가 그 만나자  해도 만나 주지 않고 내가 전화로 대화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앞으로 가서 당할 그런 것도 우리가 도무지 모르고 정신없이  땅의 것만 욕심을 취해서 성경에 말하는 삯군이 아닌 이래 가지고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 내가 어떤 목사가 어데 먼 데 갔다 와 가지고 나한테 말할 때에  내가 한 말이 있는데,  아, 소련에 그 큰 혁명으로써 기독자들이 죽을 때에 그때에 일반 기본 교권으로  가지고 있는 그 교인들이 어떻게 되었으며 은사 교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때에 어떻게 행동하였기에 그렇게 몰살을 당했는지 그것이 은연중 생각이  되어지고 염려가 되어집니다 하는 그 말에 대해서 내가 기뻤고 내가 마음에  자책이 된 것은, 거기에 어떤 목사 미국 목사 하나 있는데 아주 그 교회가 큰  교회인데 굉장히 많이 모이는 교회인데 그 목사가 어떻게 지금 처세를 하고  생활하고 있다 하는 그 말을 들을 때에 내게 두려움이 생겨졌소. 그렇게 부자  나라인데 자기 가진 차는 차 없이 못 다니니까 아주 제일 천한 것 값 헐한 것  제일 작은 것 소형차입니다. 조그마한 것 거기에 다니는 아이들 노리게라고 할  만한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운전하고 다니면서 그렇게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일을  하는데.

 그 교회는 뭐 ( )어디서 그 말을 들었는지 시간이 얼마가 되면 딱 문 닫아  버리고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합니다. 하루 삼부제로 예배 보는데 모자라서 그 시간  예배 후 십 분 후가 되면 딱 문 닫아 버리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합니다. 이래도  앉을 자리가 없이 차고 세 번 다 앉을 자리 없이 찬다고 거기도 그런 종들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걸 유지 시키고.

 제가 내 어떤 여기 조사님한테 들었는데 그저 호남지방인가 어딘가 어떤  목사님이 있는데 그 목사님도 예배 시간 딱 예배 시작한지 십 분이 되면 대문  닫아 버리고 아무도 출입 못하게 하고 이래도 그 예배당이 꽉꽉 차 가지고  나가는 그 목사님 밑에서 자기가 얼마 동안 배웠다 하는 조사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참 자유의 위치를 가지고 자유를 가졌으면 얼마든지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자유 할 수 있소. 백목사도 얼마든지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자유 하면 내가 돈을 끌어 모을라 하면 한 달에 천만원은 몰라도 거의 천만원  가까이 끌어 모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인을 통해서 끌어 모을 수가 있소.

얼마든지 모을 수가 있소. 이래도 내 이름으로 저금되어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헌 통장 순희 통장 우리 딸 통장 있어서 순희 통장으로 그 이름으로 저축하는데  여기서 접대 들어온 것 들어오면 그것 저축 해 모아가고 있어.

 그것 한푼도 내 마음대로 쓸 돈 아니요. 실은 내 재물 하나도 없어. 내가 입은  옷 이것도 벗어 놔라면 벗어놔야 됩니다. 이것도 교회 것이지 내 것 아니라. 볼펜  하나도 내 것 없어. 내 것은 하나도 없어. 교회 걸 ( ) 쓰고 있지.

 이래도 나는 미국에 그 목사님을 소개할 때 나는 너무 남용했소. 나는 커다란  좋은 일류차가 일류 승용차가 하나 있어. 아직까지 이 차의 효력을 보지 못하고  있어. 나는 제일 처음에 헐한 것 헌 차 샀는데 이걸 가지고 저 대티 기도실  올라갈라 하니까 못 올라가. 올라가다가 중간에 뭐하나 걸려서 못 올라가. 그래서  힘 있는 걸 사야 되겠다 그걸 샀소.

 그 내 마음에 그 목사님의 말 들으니까 심판대 가서 생각해서 그 좀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지는데 그 다른 데는 가책이 없었어. 그것도 실용 있어야 약한 것은  안되니까 그래도 아직까지 그 실효를 못 나타내고 있습니다. 내가 나타내는 것은  그걸 가지고 매일 나는 교인들 찾아갈라는 것이 아니고 매일 아무 사람 없는데  좀 찾아 갈라고 마련했는데 아직까지 그 출발을 못하고 있어.

 자유에는 자유에는 책임이 있습니다. 자유하는 사람이 무책임 안 하요. 자유하는  것은 자유하는 것만치 그 사람이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에 자유를 준  것이요. 책임이라는 것은 자유, 자유에는 책임 없는 자유는 없습니다. 큰 자유  가진 사람은 큰 책임을 그 사람은 지위도 되기 때문에 그만치 자기가 책임을 질  만하기 때문에 그만한 범위의 자유를 가졌소.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있습니다.

책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어.

 그러기 때문에 자유를 가진 자는 그 자유에 종말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보면서  그 심판에 걸리지 안 하도록 자유 해야 되지 그 심판에 걸리는 자유는 그 자유가  자기를 망치는 것입니다.

 인간을 망하게 한 것은 자유가 인간을 망했소. 만물은 심판 받지 않는데 제한된  자유지만 자유를 받았기 때문에 인간은 심판을 받아 가지고 원죄라는 죄를  범했고 본죄라는 죄를 범해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역자들은 자유는 어느 교파보다도 우리 교파는 자유입니다. 그러기에  그만큼 심판이 있는 줄 알아야 됩니다. 경제를 자유 준다는 지금 누구는 자유  주는 것은 네 책임 네 져라 그 말이오. 자유 주는 것은 실은 냉정한 일 입니다.

네 책임 네 져라. 경제 재산 네 책임 네 져라. 우리가 연대 책임지지 않겠다 관련  않고 네 책임 네 져라 하는 것이요.

 그러나 관련이 없습니까? 이러니까 그 관련 면에서는 또 관련을 져서 우리가  간섭을 해야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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