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8 00:51
세상관
1980. 1. 21. 월요일 새벽
본문: 이사야 26:20-21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 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찾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
여게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 지어다' 하나님의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 지어다. 하나님의 분노는 왜 분노가 생겼는고 하니 죄악 때문에 분노가 생겼는데, 죄악 때문에 분노가 생겨졌는데 그 죄악은 무슨 죄악인가? 하나님을 대적한 죄악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해친 죄악. 그러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해친 죄악이 어떤 것인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을 하며 하나님을 해할 수 있는가? 이것은 곧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을 해친 것이 하나님을 친 것이요.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편의 사람을 대적한 것이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들이 누군가? 첫째로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은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들이요. 그 다음은 아벨이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들이요. 가인이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들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싸웠지마는 가인도 아벨도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들인데, 악령이 이들을 미혹시켜가지고 이들이 현저히 하나님을 배반하게 했고, 또 하나님을 대적하게 했고, 가다가는 하나님을 대적해서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속한 자로 진실한 신자를 대적하는 그 자들을 대적하고 또 외식하는 신자는 진실한 신자들을 대적해서 이렇게 멸하는 이 죄악을 하나님이 분히 여기셔서 이 죄악을 벌로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가리우지 않는다 다시는 지체하지 않는다' 하신 이 말씀은 처음에 아담 해와가 범죄한 아주 상고 시대, 상고 시대 그때보다 말세가 되어 갈수로 하나님의 분노가 차이기 때문에, 관영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의 값대로 즉각 즉각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범죄한 인생이 죽는 것은 필연한 일인데, 구약 시대 상고 시대는 그 죽는 기간이 심히 길었습니다. 예사 삼백년 이상 칠 팔백년, 구백년 까지 구백년 이상까지 그때는 사람들이 세상에 살게 됐습니다. 그럴때는 하나님께서 그 죄악을 벌하시되 참으시고 또 돌이키기를 기다리시고 서서히 이래 했지마는 그 다음에 차차 차차 하나님의 분노가 심해져서 사람들이 땅 위에서 그 벌로 죽는 그 기간이 짧아 졌습니다. 점점 사람의 땅위에 수명이 짧아지게 됐습니다.
지금은 이십 세기의 과학이 이렇게 발달됐다고 뭐라고 해도 현재는 백 오십세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에는 상고 시대는 백 오십 세 그런 수명은 아니고, 다 삼 사백 사오백 칠 팔백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도 수명이 길고 짧고 하는 그것이 그 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자손의 삼 사대까지 갚는다 하는 그런 모든 그 심판에서 사람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는 그것이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죄악의 값으로 인해서 그것이 장단이 되어지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장단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다시는 가리우지 않는다. 다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그 죄악을 벌하시는 때다. 하나님의 분노의 때다. 이렇게 세상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분노의 시기라. 죄악을 벌하시는 시기라. 벌한다 말은 죄의 값을 그대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시기라. 그러면 이 세상은 죄 값은 사망인데 이 세상은 죽어가는 세상이라 망해가는 세상이라하는 것입니다. 불택자는, 불택자는 어떤 사람이든지 이 세상에 잉태되는 그 시간부터 그가 생명을 기르는 시간이 아니고 잉태되는 그 시간부터 그 선조 아담 해와로 인한 그 원죄로 인해서 정죄받아 가지고 사망 아래에 있는 원죄의 값을 내는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잉태되는 그 시간부터 원죄로 영이 사망했고, 사람이 날 때부터 영은 죽은 영으로 그 사람에게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또 그 육도 원죄로 인해서 사망의 정죄를 받아 사망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잉태되는 그 시간부터 그의 정죄 받아 영은 죽었고, 육은 사망 아래에 있으나 육은 그것은 아직까지 완전 사망을 당하지 아니한 그것이 사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이런고로 한 달이 지내면 그만침 그에게 하나님이 배정시켜 놓은 그 생명은 한 달이 짧아졌습니다. 열 달을 배안에 자랐으면 열 달이 짧아졌습니다. 또 한 살 두살 먹으면 그 생명이 점점 짧아져서 감소돼 가다가 마지막에 다 없어지면 세상을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일찍 죽고 늦게 죽고 하는 그것이 위에 선조로부터 그 죄악이 계산돼 내려와 가지고서 그것이 많고 적은 거기에서 좀 그 수명이 짧고 길고, 그것은 많으면 그에게 벌이 크기 때문에 이제 많이 죽어져 있으니까 남은 게 적고, 또 적으면 벌이 적으니까 아직까지 안 죽고 죽을 남을 남아 있는 것이 안 죽고 죽을 라고 남아 있는 것이 적고, 이래서 그 수명이 수명의 장단이 하나님의 벌로 인해서 되어지는 것이지, 그것이 다른 인간의 무엇으로 되어지는 게 아니라 인간의 꼭 행위로만 되어진다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행위라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그 법칙을 그것을 어기는 것이 다 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에 믿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이 복음대로 하나님의 진리대로 사는 이것은 이것은 장수하는 약이라. 몸을 강건케 하는 약이라. 그렇게 표현을 하신 것은 택자든지, 불택자든지, 불택자는 특수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감도리의 이 법칙은 저들이 받지를 못했습니다. 불택자는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불택자들은 일반적으로 창조의 은혜를 받았고, 일반적으로 자연적인 이 법칙의 은혜는 그들이 받았습니다. 이래서 그들이 자연의 법칙에 어기지 않고 고대로 살면 고 죄악이 그것이 좀 적기 때문에 더디 죽고, 또 그것을 무시하고 많이 범하면 짧게 죽고, 이래서 모두 위생을 한다 뭐 야단을 지기는데 그것을 가만히 다 신문에서 장수법, 장수법 하면서 내놓은 걸 보면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주신 그 자연법을 덜 어기면 그것이 장수합니다. 자연법을 많이 어기면 속히 죽습니다.
이래서 요새는 뭐 공기를 사람들이 말하고, 또 의사들도 말하기를 아, 약으로만 치료할 게 아니라 심리 치료를 해야 된다. 이래서 요새 의사들은 사람들을 치료하면은 자꾸 약이나 가지고 이래 치료하는 것만 아니고 그 사람의 심리를 연구해 가지고서 그 사람의 마음에 안정을 주고 그 사람이 독한 마음을 가졌으면 그것을 고치고 그 옳고 바르고 불신자라도 그 인간에게 일반적 법칙을 주신 그 법칙을 어기지 안하도록.
또, 그 사람이 자연법을 그 어겼으면 이 천연의 자연법을 어기지 않도록 좀 공기 좋은 데 가서 있어라. 사람들을 접촉하지 말고 좀 한적한 데 좀 산골이나 그런데 가서 좀 휴양을 하도록 해라 하는 그런 것이 전부 보면 하나님께서 죄악을 벌하시는 것인데, 그것의 여하로 인해서 그 빨리 그 생명이 끝나고 늦게 끝나는 그것인 것을 환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자들도 장수법은 일반적 예에 있어 일반적 하나님의 법칙을 지키는 그것이 외부적 장수법이고 내부적 장수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사람이 양심을 지켜서 신앙 생활하는 그것이 제일 장수법이라. 혹 말하기를 아, 그분은 참 짱짱한데 그분이 그 전에는 약했었는데 전도하기 시작하기 시작하고 난 다음에 모두 강건을 받았다. 아, 아무것이 그 사람은 길가로 양사방 돌아다니면서 전도만 하는데 그분은 참 수명을 한다. 그래서 통계가 모두 전도 많이 하는 사람은 장수 한다. 건강하다. 그것을 일반적으로 다 말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권찰님들도 시들시들하다도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 옳은 말을 권면하는 가운데에서 자기도 새로와지고 자기도 깨끗해지고 자기도 옳아지고, 이렇게 실컷 사람들에게 가 가지고서 옳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옳은 길을 걷는 생활을 하라고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이러면 피곤할 긴데 나갈 대는 힘이 없는데 그렇게 권면하고 돌아올 때에는 오히려 심령에는 강건과 평강을 얻게 되고 오히려 몸도 너무 지나치게 아니하면 그 과로가 풀리고 훨씬 그 피곤이 풀려서 새로와진다. 하는 그런 것을 모두 다 간증하는 것을 제가 듣습니다. 들을 때에 제가 고요히 속으로 생각하기를 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법칙대로가 맞다. 그대로다. 저 사람도 그 맛을 보고 말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이래서 일반적으로 이 모든 무생물, 이 모든 식물, 동물 이런 것과의 관계 이 자연법을 지키는 것, 또 인간 관계에 있는 자연법을 지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용감스럽고 좀 박력있는 그런 사람들이 장수를 못하고 단명하기 쉽습니다. 왜? 그 법칙을 어겨서 인인관계에 거리낌을 많이 가졌다 그 말이요. 좀 사람이 유하고 좀 부드럽고 자기가 손해볼 줄 알고 이렇게 부드럽게 누그럽게 사는 사람이 그 뭐 뾰족하게 딱딱하지는 못해도 그 사람이 수명은 한단 말이요. 장수는 하고 건강은 가진단 말이요.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그 죄악을 벌하시는 이 시기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일찍 끊어지고 늦게 끊어지고 하는 것인데, 어쨌건 이 세상은 죽는 세상입니다. 죽는 세상이라는 요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불택자들은 이 세상에 살러 난 게 아니요. 이 세상에서 남은 바 죽을 것들이 죽기 위해서 세상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나고 난 다음에 차차 모든 세상 것을 점령해서 많이 가집니다. 가지면 사람들은 가지면 가져지니까 아이구 부유해 지고 망하는 게 아니라 흥해진다 요렇게 사람들은 깨닫습니다. 그게 몰라 그렇소. 자, 예를 들면 한 사람이 가난하게 살다가 당장 오늘 어떤 형편으로 의지해 가지고 누구한테 기증을 받았든지 어쨌든지 자 억대 재산을 가졌다 합시다. 억대 재산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대 성공한 것 같이 보여지지 안해요? 오늘 억대 재산을 가졌습니다. 가졌으면 오늘 억대 재산을 가진, 오늘 억대 재산을 가진 오늘이라는 그 억대 재산 가진 것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다시 못찾습니다. 다시는 가지지 못하요.
이래 가지고 만나면 그것으로서 빼앗겨서 지나가 버리고 지나가 버리고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의 수명이 끝날 때에는 다 끝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제 가진 것을 오늘도 내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계산할 줄 몰라 그렇소. 어제 가진 것은 다시 오늘 못 가집니다. 어제 가진 것은 어제 가진 것으로 끝나 버렸고, 오늘 가지는 것은 오늘 가질 것을 가집니다.
이러기에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기가 무엇이든지 하나 가졌다. 행복을 누렸다 이렇게 접하면 그것이 내일도 있고 모래도 있고 계속 되는 줄 알아도 어제 것은 어제 것으로 끝났고 오늘은 오늘 것입니다. 오늘 접촉할 거 오늘 것이요. 또 내일은 내일 것이요. 또 내일 것이요. 한 번 만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합니다. 마치 칠십 구년 십 이월 삼십 일일은 한 번 지내갔으면 다시는 못 만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그와 같이 되어지는데, 영생한다 하는 그 말은 오늘 만나 가지고서 생애한 요것이 요것으로서 끝나지 아니하고 요것이 영원 무궁세계의 부활할 때에 요것을 자기가 영원히 가지고 누리게 되기 때문에 요것을 가리켜서 영생한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내가 오늘 사는 기능, 내가 오늘 사는 기능 내가 이용하는 모든 만물의 이용, 모든 존재들이 나에게 필요있게 효력있게 나에게 도움이 되는것, 요것이 오늘로 끝나는 게 아니고 이것이 영원 무궁토록 나의 것이 되어지는 이것을 가리켜서 영생이라 말한 것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둬라 이거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그 말은 그날 내가 보물 이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바치는 것 아니요. 하늘에 쌓아 둔다 한다고 하나님께 바치는 거 아닙니다. 보배로운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한다 그 말이요. 내 힘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했고, 내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했고, 내 마음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한 요것은 어떤 것이든지 요것이 고 사용하는 데에 고 효력, 고 유익, 고 영광, 고 힘 고것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자기와의 고런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오늘 물질 가지고 이것을 그 물질 가지니까 이것 힘이 있지 않소? 이거 보배 아닙니까? 요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썼을 때에 고 뜻대로 써서 그 물질이 나에게 효력이 있었고 도움이 됐고 유익이 된 고 효력을 고렇게 효력되는 고 관계를 고것을 영원히 자기가 가지고 영원히 그렇게 누릴 수 있다 그 말이요.
이러기 때문에 무궁 세계는, 이 세상에서 하루 하루 살아나간 것이 이것을 전부 영생을 만든 사람은 무궁 세계에 가 가지고 하루 하루의 사는 데에 무한한 것이 그에게 옷이 됩니다. 무한한 것이 그의 소유가 돼요.
이러니까 하루에 해당된 거 가지고 하루 살았는데, 그 때는 일생 동안 자기에게 해당되었던 그것이 다 한목 영생이기 때문에 그걸 한목 가지고 사니까 이 세상과 내세에는 인간의 차이라 하는 것은 측량할 수 없이 커집니다. 그의 권위도 커지고, 그의 범위도 커지고, 소유도 커지고 그를 옹호하고 있는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도 커지고 이것은 상상도 못할 만치 커지기 때문에 이것의 차이를 가리켜서 보라 땅에 있는 형체가 다 각각 있는데 형체마다 가치가 다르고 영광이 다르지 않느냐. 땅에 있는 형체도 있고 하늘에 있는 형체도 있지 않느냐.
땅에 저 바닷가에 수많은 모래알이 있지마는 모래알 고것도 한 개 한개 형체를 가진 것입니다. 그 모래알 바다 모래알 그 한 개의 형체나 하늘에 해와달의 형체나 다 형체는 형체지요. 이렇지마는 그 형체의 가치와 권위가 얼마나 다르냐. 땅에 있는 모래알의 억억억억억억억억만개의 그 그렇게 숫자가 많다 할지라도 해 한개의 영광을 당할수가 있겠느냐. 이렇게 부활한 자의 영광은 차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소.
그런고로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다 죽어져 가는 세상이라. 불신자들은 망해가는 세상이요. 죽어져가는 세상이라. 세상을 끝날 때는 다 망한 것이요. 다 죽은 것이요. 그러면 그 다음에 무궁세계는 뭐이냐? 이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관계가 다 끊어져 버리고 이 다음에 심판을 지내고 난 다음에 영원 영원 사망이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거기는 하나님과 점점 멀어진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것이 없어. 물 한 방울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없어.
하나님의 지으신 것. 자, 하나님의 지은 것이 없다고 하면 우리가 일초나 존재하겠소? 공기가 없으면 존재하겠소? 그 온도가 없으면 존재하겠소? 하나님의 보호가 없으면 존재하겠소? 보호가 없으면 우리 몸이라는 것은 몸이라는 것은 찰나도 아니요. 찰나도 되기 전에 우리 몸은 먼지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고 가루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것으로 일초도 안돼서 우리 몸이라 하는 것은 다 분산돼 버리고 맙니다. 분산돼 버리고 마요. 이렇게 이래 유지 돼 있지를 아니하요.
이런데 죽어가는 세상의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 이 죄 값을 예수님이 대속했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자기의 이 현실 현실로 되어 있는 이 세상인데 이 현실이라는 현실에서 다시 죽느냐 다시 죽느냐? 이것이 영원히 죽지 안하게 되느냐? 고 현실 현실로 분산시켜 가지고서 현실 현실에 해당되는 데에서 거게서 안 믿는 사람들은 이미 죽어져 있는 것이 죽어가는 현실이요. 세상이요. 택함을 입은 자들은 죽은 것을 예수님이 대속 했기 때문에 이것이 다시 죽느냐 다시 죽지 안하느냐? 요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시 죽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주셨는데, 요 안에, 예수님의 구속 안에, 다시 말하면 성령 안에, 진리 안에, 예수님의 피속에, 요 속에 있으면 안 죽고 요걸 벗어나오면 죽습니다.
이래서 밀실에 들어가라 그 말은 예수님의 피 속에 들어가라. 진리 속에 들어가라. 영감 속에 들어가라. 그러면 진리 속에 들어가 가지고 영감 속에 들어가면 예수님의 피속에 들어갑니다. 또 피속에 들어가면 진리 속에 들어가고 또 영감 속에 들어갑니다. 그 서이는 합해서 하나라고 요한 1서에 말씀합니다. 증거하는 이는 성령과 물과 피니 이 셋은 하나라 이렇게 말씀했소.
우리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이 둘째 죽음의 사망.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해야 된다. 믿는 사람의 세상은 두번째 죽음. 첫째 죽음은 첫째아담으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고, 둘째 죽음은 둘째아담으로 말이암아 살아난 것이 새로 죽는 것이 둘째 죽음입니다. 둘째 사망. 그러면 우리의 세상은 둘째 죽음을 죽느냐 둘째 죽음을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사느냐? 그러면 이 세상은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다시는 죽음을 보지 않는 둘째 사망을 통과하면 다시는 고 통과한 부분은 사망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느냐?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구속 안에서 영생을 얻게 되느냐? 그면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은 영생얻는 세상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둘째 죽음으로 사는 신자도 있습니다. 불신자는 사망 뿐이요. 망하는 것 뿐인데, 우리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세상이 두번째 망하고 죽는 세상으로 통과하느냐?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영생하는 소유와 자체가 영생하는 세상으로 통과하느냐? 요것으로 되어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요거 세상을 세 가지라는 것을 기억 합시다. 불택자는 망하고 죽는 세상, 택자들은 두번째 망하고 죽는 요 세상으로 살 수도 있고, 두번째 죽고 망하는 것을 망하는 해를 받지 아니하고 영생하는 세상으로 살 수 있고, 신자는 두 가지 세상으로 살수 있고, 불택자들은 한 가지 세상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라. 그런데 고게 보면 '잠깐 숨어라'그 말은 잠깐 숨어라 그 말은 인간이 이 세상살이가 육 칠십년 칠 팔십년 뭐 백년 되면 지루한 거 같지마는 영원무궁 세계에 비추어서 요거는 잠깐이라 잠깐동안이라.
이래서 하루 밤이라. 하루 밤이라고 말했습니다. 잠깐이요. 이러니까 잠깐 숨어라. 그 말은 이 하나님의 분노의 멸망을 받지 말고 숨어라. 숨어라. 어데 숨어야 되느냐? 네가 장자 재앙이 내릴 때에 양의 피로 문설주에 바른 그 문 안에 숨어라 하는 것처럼 그 네 밀실로 들어가서 문들을 닫고 잠깐 숨어라. 밀실로 들어가라 밀실이 뭐인데?
요 밀실은 예수님의 대속속으로 들어가라 그 말입니다. 사죄속으로 들어가라 말이요 칭의속으로 들어가라 말이요. 새생명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그 사죄. 사죄 밖에 나오지 말아라. 너는 사죄안에 다시 말하면 그 죄를 범하지 말아라. 그 죄없는 속에 있거라. 의로운 속에 있거라. 하나님과 한 덩어리 되는 고 속에 있거라. 고것이 우리 밀실입니다.
고것이 우리 밀실이요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거기 들어가서 문을 닫고 숨어라. 문을 닫고 숨어라. 문을 닫으니까 문밖의 것이 안 보이지요. 구속하신 주만 보이고 주님이 나에게 사죄 주셨고 새생명 줬으니 죽기까지 하셔서 주셨으니 내가 이 대속을 다시는 더렵힐 수는 없다. 대속만 보이고 주님만 보이니까 이제 자기의 사욕이라는 것과 세욕이 없고, 어쨌든지 사죄 속에서 살고져 하는 욕심, 칭의 속에 살고져 하는 욕심, 하나님고 결합 속에서 살고져 하는 욕심, 요 욕심이 무슨 욕심 입니까? 요 욕심이 성령의 욕심이요. 요 욕심이 성령의 소욕입니다. 요게 성령의 욕심이요.
고 밖에 육체의 소욕이라는 것은, 이 세가지 욕심은 없고 땅에 있는 거 땅에 제가 뭐 오래 살고 싶다. 영광스러워지고 싶다. 존귀해지고 싶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과 세상 살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과 세상 살이를 욕심내는 그것이 육신의 소욕이요. 성령의 소욕은 세상이야 어찌 됐든지, 가난하든지, 부요해지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살되, 죄없이 살겠다. 의롭게 살겠다. 하나님과 결합돼 살겠다. 요것만을 생각해 가지고 요것만 보이고. 요것만 보이고 요것만 소망하는 고것이 성령의 소욕이요. 요것만 보이는 것이 문을 닫고 숨어있는 자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