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8 00:53
세상관
1980. 1. 16. 수새
본문: 이사야 26장20절-21절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난니까 지 잠간 숨을 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
여게 1절 이하 있는데 보면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라' 또 여기는 '들어갈 지어다' '밀실로 들어갈지어다' 의로운 나라나, 밀실이나 다 같은 그리스도의 구속 안입니다.
그런데 들어오라 들어가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성령님은 그리스도안에도 역사하시고, 그리스도 밖에서도 역사하셔서 어데나 계셔서 우리의 구속을 역사하시고 계시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밀실은 네가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 하는 골방과 같은 뜻입니다. 그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하나님가 갚으시리라 이도 다 예수님의 구속 안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구속 안이라 말은 사죄를 받은 사죄 안, 칭의 안, 또 하나님과 결합이 된 그 안을 말하니 곧 노아의 방주 안과 같은 그런 것이요.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았다' 하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제2 아담으로 구원하시는 이 구원으로 윤곽을 삼아서, 이 구원으로 인간의 구원의 한계를 삼아서 이 한계 밖에는 노아의 방주 밖에 사는 길이 없는 것처럼 절대적인 국한되어 있는 한계가 되어 있는 것을 말씀해서 성과 곽을 삼았다고 이렇게 말씀했고 또 여호와로 피난처를 삼아라, 은신처를 삼아라, 지존자로 거처를 삼아라 하는 이것도 하나나님의 구원 안을 말하는 것이고. 구원 속, 하나님이 구원으로 작정하신 이 작정 안, 곧 신인 양성 일위의 대속 안, 구속 안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일찍부터 아담에게도 여인의 후손이라고 말씀하셨고, 또 아벨이 신인 양성 일위로 대속주가 되실 세상 죄를 지고갈 하나님의 어린 양, 이를 하나의 예표, 예약된 짐승으로 제사를 드려서 아벨은 그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셨고 가인은 받지 아니했고 그 후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짐승으로 속죄제, 속건제, 또 번제, 화목제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제사가 있으나 다 이 네 가지 큰 제사는 짐승으로 제사를 드렸으니 그 짐승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가리켜서서 예표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례 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갈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가리켰고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그 후에는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짐승으로 제사 드리는 그런 모든 제도를 다 피하여야 할 것을 문서로 기록해 주신 것이 신약 성경 입니다.
'밀실로 들어가서 네 문들을 닫고', 밀실은 그리스도의 구속 안을 가리켜서 밀실이라고 말하고 예수 안. 네가 내 안에 있고 나는 네 안에 있고 내안에 있으라 나도 너의 안에 있으마 말씀하신 그 안, 그것이 밀실인데 문들을 닫고, 그러면 문을 열어 놓으면 다른 것이 보이지마는 하나의 모형적 교훈입니다. 문을 닫으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아니하고 밀실 안만 보이고 문만 보이지요.
예수님의 대속으로 자기의 구원을 삼아서 예수님의 이 대속 안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라. 예수님의 대속만 보이고 그 외의 다른 것은 보이지 않도록 네가 보수하라. 문들을 닫아라. 문을 닫아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다른 데 보면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살아나신 것은 이것은 이 구속을 입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는, 다시는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아니하고 대신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을 위해서 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또 온전한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그 모든 부요와 존귀를 , 또 사람으로서는 몸과 생명 전부를 다 나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다 내어 놓아 나에게 이 세 가지 큰 대속을 주셨으니, 이제는 그피로 값주고 산 나이기 때문에 나를 대속해 주신 예수님의 대속을 내것으로 삼으면 필연적으로 나는 당신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 예법이니라' 그렇게 번역을 했고, 또 그 다음에 개역에는 '합리적 예배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거는 그 다 율법적인 필연성, 정당성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 다시 말하면 당신의 것으로 완전히 바쳐진 것이 그것이 마땅하다. 그러기 때문에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사나 죽으나 또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기를 또 자기를 위해서 먹는 자도 없고 사는 자도 없다.
예수님의 구속을 입은 자는 이렇게 예수님이 나를 대속해 주신 이 대속 만이 자기에게 보여서 어데서나 언제나 나는 주의 피로 구속받은 주의 것이니 주를 위해서만 살 자이라 하여 그리스도의 구속만 보이기를 마치 태중에 있는 아이가 상하, 전후, 좌우 전체가 어머니인 것처럼, 태중에 있는 아이에게 어머니 아닌 면이 없고 틈이 없습니다. 전체가 어머니인 것처럼 이렇게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아 구속만 보이고 구속 안에서만 살라는 것을 가리켜서 문들을 닫아라. 그렇게 여게 표현 해주신 것입니다.
문들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분노라,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 밖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밖에 있는 세상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밖에 있는 세상, 분노를 다 지날 때까지 피해라. 여호와께서 지금 그 처소에서 나오셔 가지고서 땅에 있는 거민들의 죄악을 벌하실 때라 그러면 지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처소냐? 이 처소는 문 밖이요 문 밖이요.
또 여호와께서 죄악을 지금 벌하시는 곳이요. 또 여호와의 분노의 지금 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 세상관이,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냐 하는 데에 요것도 바로 못 되면 구원에 아주 지장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죄값으로 지금 사망하는 사망 시키는 세상이란 그 말이요, 죄 값으로 사망, 사망을 시키고 있는 세상이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대적하고 이 계약을 어겨서 3 대 계약을 어긴 이 죄악을 지금 벌하는 때라.
어떻게 벌하는 때냐? 망치고, 죽이는 죽이시는 때라 그 말입니다. 예수 밖에는 전체가 망하고 죽는 것 뿐입니다. 이 세상이 요런 세상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요 세상관 중에 중요한 세상관인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구속 밖에는 전체가 사망되는 것 뿐인 세상이라.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여호와가 분노하시는 세상이라.
'잠깐 숨을지어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극히 짧은 기간이라. 이 세상은 짧은 기간이라. 숨는 것은 지금은 짧은 기간이라. 이 밀실 밖에 나오면 죽습니다. 예수님의 구속 밖에 나오면 죽습니다. 요거는 잠깐이요. 세상 살이를 끝내고 예수님의 나라가 임한 그 후에는 후에는 이런 일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분노로 사망케 하는 이것이 이 물질계는 없습니다. 물질계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잠깐 그 구속받은 자들에게는 잠깐 동안이라 말이요. 없습니다. 왜? 그때는 악령은 악령과 죄악과 사망과 저주는 이 우주 밖에 우주 밖에 유황불 구렁텅이라고 하는 하나님이 안 계시고 하나님이 지으신 것도 없고 은혜가 없는 하나님이 벌하시는 그 이 우주 밖의 딴 장소로 위치를 정하신 거기 가서 다 있고 이 우주 안에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이 우주, 물질계 안에도 없고, 영계 안에도 없고, 영계와 물질계 안에는 하나님의 진노나 하나님의 분노나 죄악을 벌하시는 이 벌이나 죄악이나 악령이나 이런 것들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없는 그 나라는 무궁한 세계입니다. 이 나라를 전제로 두고 잠깐 숨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 요것을 기억할 것. 첫째는 불택자들은 첫째아담으로 인한 원죄와 또 자기의 범한 본죄, 원죄와 본죄로 나는 그 시간, 뱃속에 임신되는 그 시간, 나는 그 시간, 임신 되는 그 시간부터 사람은 불택자들은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허락되었던 것이 완전히 이제 망해져 가는 기간입니다.
하나님이 다 사람들에게 은혜를 약속했는데 이것이 원죄와 본죄로 그 은혜에서 끊어져서 임신되는 그 시간부터 자기에게 해당된 분깃이 망하는 그 시간이요. 자기에 허락된 그 생명이 근본적으로는 죽었는데, 즉은 이 생명이 아직까지 다 말라 죽지 아니하고 남은 그것이 차차 차차 해서 다 죽어지는 죽어지는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그 힘이 생명이요. 영광은 그 연결됨으로 인해서 맺어진 그 누리는 것이 영광인데 이것이 완전히 끝나버립니다.
그러기에 한시간 살았으면 한 시간 산 것만치 그 사람은 자기에게 허락된 분깃이 망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룻동안 그 물질을 썼든지 모았든지 어떻게 접촉했든지 세상의 무엇을 접촉했든지 접촉한 그것은 다시는 이렇게 접촉한 거와 같이 접촉할 수 있는 다시가 없는, 다시가 없는 요것으로서 완전히 끝을 맺는 멸망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세상살이를 다했으면 그 사람에게 분깃된 모든 유업은 완전히 전멸돼 버렸습니다. 또 그 사람의 단번에 죽은 영이 죽었고, 또 이몸과 마음과 몸으로 된 이 육에 속한 모든 것이 있던 생기도 완전히 다 죽어서 다시는 그가 지금 사는 거와 같은 이 생기도 다시는 가지지 못합니다. 완전히 생명과 그의 소유에 관한 것이 완전히 멸해지는 이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불택자들은 한시 한시 지나가는 것이 자기에게 분깃된 그 소유가 한시 한시 망해져 가는 것이고, 한시 한시 죽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 불택자들에게는 이 세상이 사망하는 이 세상이라. 하나님께서 죄 값으로 사망시키는 세상이라. 사망하고 있는 것이라. 불택자들이 몰라서 살고 있는 줄 알고 생명이 더 커지는 줄 알고 자기의 소유가 많아지는 줄 알지마는 한번 딱 접촉한 그것이 고 다음에는 영원히 다시는 접촉 못합니다. 다시는 접촉하지 못하요.
한번 자기가 가졌던 고 생명은 다시는 가지지 못합니다. 기독자들에게는 한번 접촉한 그것이 영원히 자기와 떨어지지 아니하고 영원 접촉을 산 고 생명이 영원 생명을 가지는 요것을 가리켜서 영생이라. 또 그 보물이 썩지도, 쇠하지도, 낡아지지도 않는다 고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불택자에게 있어서는 사망하는 세상이라. 여호와의 분노의 죄악을 벌하시는 이 세상이라. 잠깐이지마는 잠간 동안에서 다 죽어 버립니다. 택자들에게는 어떤 세상이냐? 택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죄악의 것이 되었고 여호와의 분노의 것이 되었던 것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대형, 대행, 대화평으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받아 구속을 입어서 영은 법적 구속과 실질적인 구속을 단번에 입었고, 이 육이라고 하는 이 심신과 우리의 소유와 우리의 행복은 법적으로는 구속을 입었지마는 실질적으로는 죄 아래 있습니다.
구속을 입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죄 아래 있는데, 죄 아래에 있는 이것이 법적으로는 구속을 입어서 죄 없는 자요. 의로운 자요. 하나님과 화평을 가진 화평된 자이지마는 실상은 죄있는 자요. 불의한 자요. 하나님과 원수된 자입니다.
요것이 요 현실을 통해서 현실을 통해서 죄악에 있는 죄 아래에 사망 아래에 잇는 것은 현실을 통해서 예수님의 구속을 입어 살아날 수 있는 현실이고 살아나는 것이고 살아나는 요것을 가리켜서 '네가 문을 열고 밀실로 들어가라 밀실로 들어가라 또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하라' 요 현실을 통해서 죄 아래에 사망 아래에 있는 요 심신과 심신에게 소속한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구속 안으로 들어가라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요 현실을 통해서 죽었던 것은 살아납니다. 요것을 가리켜서 사망이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기 위해서 무거운 짐진것 같이 탄식하고 들어 간다. 고린도 전서5장에 바울이 말한 것을 그걸 말합니다. 죽은 것을 산것이 먹으면 그기 살아납니다. 죽은 고기를 산 사람인 먹으면 그것이 찌끼는 제해지지마는 거게 있는 정기는 산피와 살이 됩니다.
'이래서 사망의 죽은 것들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어서 살아나기 위함이라' 하는 그기 다 같은 뜻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대속을 입엇지마는 로마인서 8장에 보면은 영은 의로 인해서 산 것이나 몸은 죄로 인해 죽어 있다. 영은 살아 났기 때문에 아버지의 양자가 되어져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나 아직까지 몸은 죽은 자로 있기 때문에 곧 구속받은 그 중생된 영들이 성령으로 함께 탄식하는 것은 양자될 것, 양자될 것, 그 미래입니다. '양자 될 것, 곧 몸의 구속을 기다림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법적으로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이 심신, 심신에 속한 모든 것들이 법적으로는 살아 있지마는 실질적으로는 죽어 있다 기요. 요것이 이 현실을 통해서 죽은것이 살아나는것, 곧 그리스도의 법적 구속을 실질적으로 입는 것, 또 법적으로 구속을 입은 요 법적으로 구속을 입었지마는 요것이 구속을 입지 못하고 구속의 혜택을 자기가 배반해서 처음의 계약 모양으로 첫 아담 해와가 계약을 어긴 것처럼 하나님과 요 계약한 요것, 예수님이 대속해서 요 계약을 회복이 됐는데 요것이 그게 법적 구원인데 요것이 현실에서 다시 요 심신이 하나님을 배반한다 말이요. 하나님을 배반하면 법적 구속이 다 무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이래서 죽은 것이 살아나는 요 세상이요. 죽은 것이 살아날 수 있는 요 세상이요. 살아난 것이 죽는 세상이라. 그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그렇게 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둘째 사망의 해는 예수님의 법적 구속을 받았으나, 법적 구속은 받아 가지고 있는 요 심신의 기능이 요것이 법적으로 구속 받아 있는 요 구속을 제 구속을 삼지 못하고 법적으로 살아난 요것이 실질적으로 죽는 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의 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은 두번째 범죄한 것을 그것을 대속할 그 속죄 제물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고린도전서 6장에 보면은 예언도 하고 이랬지마는 그것이 범죄하면 다시 속죄하는 제물이 없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것은 한번 범죄한 요것을 구속했지마는 두번째 범죄한 거는 구속 못한다 그 말은 요거는 무얼 가리켜 말하느냐? 불택자들은 안된다는 그것을 말하고 또 아무리 택함을 입은 자들이라도 범죄한 그것은 새로 다시 이 심신이 범죄하면 그것은 살아나지 못하는 것이요. 곧 살아날 수 있던 것이 살아나 죽었다 하면 죽은 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의 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이 세상은 불택자들은 모든것이 사망해 가고 있소. 사망해 가고 있습니다. 불택자들은 사망외에는 아무것도 없소. 사망해 가고 있소. 택자들은 이 세상이 뭐이냐? 죽은 것이 살아나는 세상이요. 살수 있는 것이 둘째 사망으로 죽는 세상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죽음을 취하느냐 생명을 취하느냐 하는 이것이 우리의 심신에 있어서 우리 앞에 있는 기로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법적으로는 생명에 속한 것이 제가 두번째 배반해서 완전히 사망하는 거 있고, 또 사망 아래 있는 이것이 법적으로 입은 것을 완전히 입어서 이번만 제 현실에서만 하나님을 배반치 아니하면 이것은 영생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살아날 수 있는 내 현실이요, 둘째 사망의 해로 영원히 죽을 수 있는 세상이라. 이래서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거와 같이 세상에 예수는 믿기는 같이 다 같이 믿었지마는 그의 건설이 그의 건설은 영은 주격이요. 그 심신은 영의 집입니다. 집과 같은 것이요. 그의 건설이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건설이라. 불로 심판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의 불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해서 말씀했습니다. 간직해 두신 것이라 그래.
그러므로 요 하나님의 말씀의 심판에서 다 정죄 받을 것으로 일생을 건설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금과 은과 보석 그것도 하나의 그 모형적, 비유적 이런 말씀입니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은 불을 태워도 안탄다. 그는 공력이 남아 있기 때문에 상을 받고, 공력이 불탄 자는 다 수치를 당하리니 저는 구원을 얻으나 뭐라고 말했습니까?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 그렇게 고린도전서 3장에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 세상이 어떤 세상인고 하니, 불택자들은 자꾸 지금 사망해 가고 있는 세상이요. 이 세상은 불택자들은 지금 사망해 가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예수 밖에, 구속 밖에, 다시 말하면 현저히 죄안에서 의가 없는 그 생애에서 하나님과 끊어진 그 생애에서 살고 있는 그것이 곧 망하고 있는 것이요, 죽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보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끊어진 그 성경을 어긴 이런 생애도 그것이 권세만 올라가면 아, 성공이다. 영광이다, 제가 현저히 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벗고 무엇이 되어졌으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이 은혜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성공인줄 알고, 복인줄 알고, 어리석고 어리석은 자입니다. 고것은 전부 이 그 현실 현실에서 다 주고 망한 것이요, 접촉한 고 접촉은 다시는 접촉하지 못합니다. 요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은 한번 접촉한 요것이 영생이요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영원한 무궁 세계에서 그것을 다 접촉하고 관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구속 밖에서 세상에서 누린 기쁨이나, 접촉한 것이나, 권세나, 사랑이나, 뭐이나 뭐 정이나 어떤 것이 그것은 한번 접촉했으면 그것은 지나가 버리고 다시는 못 만납니다. 그것으로 완전, 영원, 사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 세상관도 바로 가져야 돼요.
그러기에 성경은 세상은 무엇이라. 하나님은 무엇이라. 모든 것을 바로 가지는데 이것을 바로 알아야지, 그것 모르고 예수 믿는다고 이래하는 그거 가지고는 되는게 아니라 그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