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8 19:17
세상을 부인해야 진리가 접해져
1984. 3. 19. 월새벽
본문: 베드로후서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사람이 귀로 들어 보든지 또 눈으로 보든지 접촉해 보든지 그런 것은 사람이 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볼 수 있는 그것만을 위주로 해서 사는 사람은 다 외식하는 사람들이요 알속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볼 수 있는 그것은 무엇을 위해서 필요한고 하니 볼 수 있는 그것은 볼 수 없는 것을 위해서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함이요' 이렇게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아 생겨졌다' 그렇게 또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가치를 비교해서 말씀하는 것이요, 또 그 능력을 비교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볼 수 있는 그것은 껍데기요 볼 수 없는 그것은 알맹이입니다.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껍데기 그것만 가지고 있고 볼 수 없는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의 참 바보라고 할 수 있고 짐승같은 그런 허무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그 볼 수 없는 것이 그 안에 있는 마음의 부분인데, 또 마음의 부분보다 더 보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가치 중에 최고의 가치요 또 인생의 주격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영입니다. 영.
그러기에, 사람들이 이 성경에 기록해 있으니까 영이란 존재를 무시하지 못해서 이렇게 하지마는 영이라는 그것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신학자들 가운데에도 영이 무엇인지를 정의하지 못하고 그것을 구별하지 못해서, 마치 마음은 영이요 몸은 육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지난번에 이분설도 있고 삼분설도 있다 신학자들 가운데에 이분설로 나누어서 사람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세 가지로 나누어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분설은 영과 육이라고 그렇게 주장을 하고 삼분설은 영. 혼. 몸 이렇게 세 가지라고 그렇게 주장을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삼혼 칠백이라고 그들이 말하는 것은 저거 생각대로 짐작 해서 말하는 것인데,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서 죽은 영이 살아나기 전에는 영이 작용이라 하는 것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영의 작용은 전혀 없기 때문에 영에 대한 말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말했든지 그 말한 것은 다 마음과 몸 그 둘이 들어서 한 말이기 때문에 마음이 마음 그 이상의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이 삼혼 칠백이라고 말하는 그 삼혼이라는 것은 생혼, 각혼, 영혼 그렇게 해서 삼혼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생흔은 이 생기, 이 사람에게 생기가 있는 생기를 그들이 생혼이라 그렇게 말을 하고, 각혼이라는 것은 감각하는 그 이성을 그들이 가리켜서 각혼이라 이렇게 말하고, 또 영혼이라 말하는 그것은 역연 마음을 가리켜서 영혼이라 그떵게 말을 합니다.
그러기에,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은 영에 대한 말은 듣지를 못합니다. 들을 수 있는 그런 요소가 없기 때문에, 중생돼야 비로소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운영하시는데 이 지구 땅덩어리 보다도 더 큰 것이 이 우주에는 헬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 비행기가 한 대 공중에 날아가도 우리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큰 물체들이 그런 빠른 속도로 운행하는 그것을 만일 사람에게 짐승에게 듣는 기관을 주셨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소리에 다 기절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거기에 대한 듣는 그 기관을 주시지 안했기 때문에 암만 그것은 많은 것이 큰 소리로 움직이고 있어도 그 움직이는 그런 소리를 모릅니다. 조그만한 물체가 움직이는 소리도, 그런 큰 물체가 움직이는 것은 사람들은 못 듣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하나님의 영감이라든지 진리라든지 이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인데 영이 있어야 영의 음성을. 곧 하나님의 뜻을 들을 수가 있지 사람의 마음이 그것을 들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영이 그 사이에 중보입니다. 하나님과 마음 사이에 영이 중보요 또 영과 몸 사이에는 마음이 중보요, 또 몸과 만물 사이에는 그 몸이 중보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물질이 우리 육체가 없으면 우리와 상관이 없고 이 모든 만물들이 우리 육체를 통해서 만물과 상관을 가지지 그렇지 않으면 상관을 가지지 못합니다. 아무리 공기가 좋아도 육체가 없으면 그 공기와 우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공기가 나빠도 육체가 없으면 그 공기와 우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 육체라는 이 육체가 있으므로 공기의 좋고 나쁜 것이 우리와 상관이 있고, 또 아무리 이렇게 복잡한 삼라만상의 만물 이 있지마는 우리 육체에 그 눈이라는 것이 없으면 삼라만상이 우리에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물질은 우리 육체로 인하여 우리와 상관을 가지게 되고 또 우리 육체라는 이것은 이 마음을 가지고 우리와 상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육체가 아무리 있어도 마음에서 속한 감각이라든지 신경이라든지 그 신비한 그것을 통해서 그 육체가 이렇고 저렇고 한 것을 우리가 감각할 수 있고 알 수 있지 그것이 없으면 모릅니다. 또.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과 관련을 가지는 데에는 영을 통해서만 관련을 가지지 영을 통하지 않고는 관련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그 원죄인 선악과를 먹은 그때부터 그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그 사이가 가로막히게 됐습니다. 가로막히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끊어져 버렸습니다. 끊어진 그것이 영의 죽음입니다. 영의 죽음이요 이제는 영이 죽은 그 사람은 주격이 죽었기 때문에 그 육체라는, 심신으로 되어 있는 그 육체라는 것은 살아 있지마는 그 주격인 영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가지고 사는 것이 인생인데 영은 죽었고 심신만 남아 있으니까 그 심신이 짐승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짐승같이 사는 자가 아닙니다. 짐승같이 살 자가 아닌데 짐승같이만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그 심신으로 된 육체라는 것은 차차 차차 쇠퇴해 가지고 마지막에는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안 믿는 사람들은 전연히 영에 대한 것은 모르고 영에 대한 것은 비로소 연결된, 하나님과 영이 연결되는, 성령과 진리로 연결시켜서 다시 살아난 그 후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영감을 받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이 살아나지 안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중생된 사람인지 중생되지 안 했는지 하는 그 여부는 그 사람과 하나님의 말씀의 그 관계를 가질 때에 듣나 못 듣나 하는 것으로서 관계를 가집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혼자 책을 읽으면서든지 어떤 그 음성을 들을 때에 너는 지옥 간다 이렇게, 지옥 가고 너는 안 믿으니 지옥 가고 믿으면 천국 간다는 그런 말을 들을 때에 그 사람이 거기에 대해서 자극을 받고 충격을 받고 영향을 받는다고 하면 그거는 벌써 하나님의 음성을 미약하나마 들을 수 있는 거기에 요소가 자기 속에 있다는 그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도리를 듣는 첫은 영만이 듣습니다.
그래서, 삼분설의 장단점이 있고 이분설의 장단점이 있다 그렇게 어느 날 아침에 제가 증거한 그런 기억이 납니다. 삼분설의 장점은 어떤 것이 장점인가? 사람이 이 몸과 마음 이 두 가지 외에 한 가지가 있다 이래서 삼분설을 말하는 사람들은 영에 대해서 아는 지식을 가지기가 쉽습니다. 그것이 장점입니다. 삼분설에 대해서 단점이 무엇이 단점인고 하니 영과 그 마음 몸. 이 세 가지인데 영과 마음 그것은 물질이 아니고 신령한 존재라 이래서 그 마음을 영에다가 귀속을 시키고 물질에다가 귀속을 시키지 안하는 그것이 단점입니다. 그 마음을 물질로 알지 안하고 영에 소속한 것으로 그렇게 아는 데에서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친 그것을 바로 깨닫지 못 해서 바로 활용하지 못해서 구원에 손해보는 그런 일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단점입니다.
또, 이분설의 장점은 어떤 것이 장점인고 하니 이분설은 그 영과 이 육 둘로 말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위에 속한 것이 하나 있고 땅에 속한 것이 하나 있고 둘이 있다 둘이 있기 때문에 사람의 육은 이것은 땅에 속한 것이요 혈육에 속한 것이요, 영은 하늘에 속한 것이라 이렇게 둘로 나 눌수 있는, 둘로 알 수 있는, 영만 하늘에 속했지 육은 땅에 속했다 하는 것을 아는 그것이 장점인데, 그 육을 마음이 아니고 몸이라 이래서 둘로 하니까. 그 둘로 해서 육은 땅에 속했다 하는 것을 주장하고 인정하는 것은 장점인데, 그러니까 육을 땅에 속했다고 아는 그것은 장점인데 육이 그것이, 육이라면은 심신이 육인데 육은 땅에 속했다는 그 말은 알고 말했든지 모르고 말했든지 그 점을, 그 심신은 육에 속했다. 심신으로 된 육은 땅에 속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것은 옳은 말을 하는데, 이분설의 단점은 뭐이 단점인고 하니 사람은 마음과 몸 두 가지뿐이지 그 외에 영이라는 딴 존재가 있다는 것을 그들이 이해 하지를 못하게 되기 때문에 그 점이 단점입니다.
이분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영을 알기 어렵고, 삼분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 마음을 하늘에 속한 것으로 그렇게 잘못 알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분설도 말하고 삼분설도 말했습니다. 이분설을 말하는 사람이 삼분설을 말할 수 있는데, 이분설을 말할 필요가 있다 하는 고걸 알고 말해야 이분설을 말하는 그것이 정통이지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것이 무식한 정통이기 때문에 그 정통은 위험성이 많습니다. 이분설 삼분설 이랬는데, 이분설을 말하는 사람이 삼분설을 알아야 됩니다. 삼분설을 알고 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나눌 수 있는데 다만 물질계에 속한 것과 영계에 속한 그 둘로 나눌라고 하면 물질제에 속한 것이 둘이고 영계에 속한 것이 하나이기 때문에 물질계에 속한 그 둘을 합해서, 그건 다 물질이기 때문에 육이라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섞갈리지 안하기 때문에 그것이 좋다. 삼분설을 자기가 알고 있으면서 다만 영계, 영물과 물질, 영계에 있는 영계에 속한 영물과 이 물질이라는, 이 둘을 나눌 때에, 둘로 나누면, 영에 속한 것과 물질에 속한 것 둘로 나눌라고 하면 이제 영육으로 나누어야 한다 그러면 육은 뭐냐 육은 마음과 몸 이것이 육이다. 그렇게 하면 이분설이 유식한 그런 지식의 지성의 이분설이 되지마는서도 아예 둘뿐이다 이렇게, 삼분을 모르고 이분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 영과 혼과 몸이라고 이렇게 성경에 기룩한 삼분을 제가 어떻게 해도 해석을 못 합니다. 해석을 못 하니까 영이나 혼이나 다 같은 것인데. 하나인데 영이라고도 하고 혼이라고도 그래 한다 그래 가지고 이분을 해 버렸기 때문에 그 혼을 영물로 취급합니다.
또, 삼분설을 말하는 사람은 삼분설을 말하지마는서도 둘은 땅에 속한 것이고.
물질에 속한 것이고 하나는 영에 속했다 하는 그것을, 그렇게 그 지식을 가지고 삼분설을 말해야 되지 잘못하면 가운데 있는 그 혼이라는 존재 그걸 영계에 속한 것이라고 하면, 그 사람이 다른 성경을 깨달아 나갈 때에 그것이 땅의 것을 하늘나라의 것이라고 이렇게 인정하다 보니까 성경 해석이 다 삐뚤어져 버리고 그 지식이 삐뚤어지기 때문에 지식이 삐뚤어진 것 만침 그 사람의 소망이나 평가나 행위가 삐뚤어지니까 그만침 구원이 어두워집니다.
이래서, 왜 이런 것들이 혼잡 돼 있느냐? 주님이 나를 따라 오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라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 했는데 자기를 부인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모든 착오 착각이 생겨져 가지고서 혼잡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라 말은 자기의 생각, 자기를 부인하라 말은 자기 생각을 부인하라 말이오. 자기 주장을 부인하라 말이오. 자기 욕심을 부인하라 말이오, 자기의 그 모든 기존 지식이나 선입적 관념이나 경험이나 체험이나 모두 다 위에서 내려오는 이 계시 계약, 이 계시의, 이 계시인 이 진리. 이 계시라 말은 하늘에서 열어서 보여서, 하늘에서 열어 보여서 알았다는 것이요. 그런 말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열어 보였다 하는 것을 말할 때에는 제사라고 이렇게 말했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라 그 말은 하나님세서 당시의 의사를 발표하신 것이라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라 그렇게 말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는 모든 거짓된 이치가 가득히 찼는데 참된 이치라 하는 그 권위성을 말하기 위해서 진리라 이렇게 말을 했고, 내나 그것을 또 영감이라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라. 영감이란 말은 하나님의 마음이라 말입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에게 이런 면을 알리기 위해서는 이런 발표를 했고 저런 면을 알리는 데에는 저런 발표를 했고, 하나이지마는서도 이렇게 저렇게 여러 가지로 발표를 해서 그렇게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입니다.
(내가 무슨 말 하다가 이런 말로 나갔지요? 예? 예 자기를 부인하라 하는 말 하다가 이렇게 나갔습니다.) 그러면 자기 부인하라 말은 이제 말한 대로 여러 가지, 자기의 주관을 부인해라.
자기의 소욕을 부인하라, 자기의 지식을 부인하라, 자기의 경험과 체험을 부인하라 암만 체험에 내가 체험해 보니 이거는 틀렸더라 아니더라. 그 체험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부터 계시로 내려온 것이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발표해 놓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요 하나님의 뜻이요 그것이 땅에는 다 진리가 없었는데 하늘에서 그 진리가 새로 내려왔기 때문에 땅에 있는 거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땅에 있는 무엇과 같지 않다 그말이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볼 때에, 그러면 이것과 같으냐 이것과 같으냐 자꾸 그렇게 말합니다. 땅에 있는 뭐 사람의 주장을 말하면서 아무 것이 주장과 같으냐 그것도 아니다. 누구의 불교와 같으냐 그것도 아니다. 유교와 같으냐 그것 다 아니라, 그러면 다른 무슨 회교 같으냐 그것도 아니라, 노자와 같으냐 그것도 아니라, 공자와 같으냐 그것도 아니라 그러면, 이렇게 아무것도 같지 않다 그러면 그게 뭐이냐? 그러면 그게 뭐이냐? 성경 말씀 가지고서 이렇다 말하면. 너희들이 뭣을 증거 할려면, 성경. 말씀을 증거 할려면 성경 말씀 아닌 것을 가지고서 증거를 해야 우리가 알지 성경 말씀 아닌 것을 가지고 증거하지 안하고 만날 성경 가지고 자꾸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부인하고 있는데 부인하는 우리들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이래, 우리에게 인정을 시키라고 이렇게 말 하면 성경아닌 것을 가지고 이와 같은 것들이다 이렇게 말해야 우리가 알아 듣지 그렇게 말하지 안하고 자꾸 성경을 부인하는 우리들에게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또 이것 뭐이냐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성경이 말한다 자꾸 성경이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고 성경만 가지고 들이 대니까 우리가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경으로만 증거하지 성경 외 딴 걸로는 증거 할 수 없습니다. 왜? 성경은 하늘에저 내려온 하나님의 지식이요 땅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땅에 있는 이런 것들이냐 그런 것들이 아니라. 땅에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땅에 타락한 인간들에게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지식이 내려왔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속에는 하나님의 지식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서 증거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예를 들면은 이 책상 위에 성경 찬송이 있고 이 마이크가 있고 종이 있고 이 종이가 세 장 있고 이 줄이 있고 이것이 있습니다. 요것이 요 책상 위에 있습니다. 책상 위에 있는데, 이 책상 위에 없는 것을 하나 가져 와 가지고서 하나 말하면서 이런 것이 있다 이라니까 그 사람이 아 그런 것이 있어? 그러면 그것이 땅의 어떤 것과 같은 것이냐 이랄 때에, 이 책상 위에 어떤 것과 같은 것이냐 이렇게 말하면 이 보이는 이것은 책상 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책상 위에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없는 것이라는 그 말을 듣고서 그 말을 인정한다면, 이 말한 그거는 아예 그거는 이거와 또 다르다. 이 마이크와 다르냐? 마이크도 아니다. 종이(紙)냐? 종이도 아니다. 종(鐘)이냐? 아 종도 아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은 있는 거와 같지 안하고 이거는 아니다. 이러면, 이 가르치는 말을 들은 것인데, 자꾸 땅에 있는 것을 고집해 가지고 이 마이크와 같은 것이가? 아니다. 성경과 같온 것이가? 아니다. 찬송가와 같은 것이가? 아니다. 종과 같은 것이가? 아니다. 줄과 같은 것이가? 아니다. 종이와 같은 것이가? 아니다. 그러면 뭐고? 여기에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자꾸 그걸 가지고서 그와. 이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그걸 주장을 하니 땅의 것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 있는 것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땅의 것을 부인하고 이것을 배워라. 땅의 것을 부인해라. 땅의 것을 왜 부인하느냐? 땅의 것은 그것은 죽은 자의 말이오 죽이는 말이오 죽이는 지식이오, 타락해서 인간을 죽인 마귀란 놈이 인간 속에서 작용을 해 가지고서 만들어 냈기 때문에 그런 것은 다 버리야 된다 하는 이 버리야 된다는 것인데 이것을 버리지 안하고 자꾸 이걸 가지고서 이것을 기본을 삼고 이것을 잣대를 삼고 이것이 표본을 삼아 가지서 이와 같은 것이냐 이와 같은 것이냐 자꾸 그렇게 성경 말씀을 말하는, 자기 주관을 버리지 안하는 사람은 성경 말씀 알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자기를 버리라 하는 그 말은 큰 말로 말하면 무엇을 버리라는 말입니까? 네? 자기를 버리라는 말은 큰 말로 말하면 무엇을 버리라는 말입니까? 여러분들에게 이 묻는 것은 여러분들이 좀, 내가 혼자 말하니까 자꾸 혼자 말뿐이니까 여러분들 가운데서 깨닫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인데.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은 크게 말하면 무엇을 부인하라는 만입니까? 예? 세상을 부인하라는 말입니다. 크게 말 하면. 세상을 부인하라 말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무슨 말입니까? 예? 땅에 속한 것을 부인하라 말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또 무얼 부인 하라는 말입니까? 예? 전 인류를 부인하라는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전 인류를 부인하라. 또, 크게 말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을 부인하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부인하라는 말은 인간을 무시한다는 말로 오해를 하면 안 됩니다. 인간을 부인하라는 말은 인간에게는 사람을 살리는 옳은 진리가 없다 그 말입니다. 진리가 없다. 전 인류에게 진리는 없다 전 인류에게 진리가 없으니까 온 세상 모든 지식에게 진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진리가 없습니다. 진리가 없는데, 자기 한 사람을 부인하라는 말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 말을 자기만 부인하라는 말로 알기 때문에 자꾸 착각이 돼서 혼돈이 된다 말이오. 자기를 부인하라 말은 크게 말하면 뭣 부인하라는 말입니까? 자 똑똑히 또. 세상을, 온 세상을 부인하라는 말입니다. 왜? 자기라는 것들이 뚤뚤 많이 뭉쳐 가지고서 이것을 가리켜서 세상입니다. 또,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은 세상의 지식을 다 부인하라는 말입니다. 자기의 지식과 같은 그런 지식들이 수많이 모여서 많이 커지니까 그걸 가리켜서 세상에 있는 지식입니다. 그러면 또,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은 깊숙히 들어 가시는 뭘 부인하라는 말입니까? 깊이 들어가서는 뭘 부인하라는 말입니까? 자기지식, 자기 주관, 자기 생각, 자기 욕심, 크게 말하면 인간 욕심 세상 욕심, 세상 생각 모든 것 다, 세상 모든 지식 이것 속에 그 속에 알맹이는 뭐입니까? 알맹이는 뭐입니까? 그 속에 알맹이는 뭐이지요? 악령, 악령.
그렇게 모두 심령들이 어두워? 그러니까, 죄가 가득히 찼기 때문에 암만 말해야 안 들려진다 말이오.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도가 절대 그에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형식을 가지고서 지성소에는,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법궤와 속죄소와 하나님이 계시고, 이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있고 그 밖에 밖마당에는 모든 평민들이 있고 이런데, 제사장들이 지성소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일 년에 한번 밖에는 못 들어 가는데 그 송아지는 예수님의 대속을 상징했는데 그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는 뭣이 가리워져 가지고 있습니까? 휘장이 가리워져 가지고 있습니다. 휘장이 가리워져 있습니다.
가리워져 가지고 있는데, 일 년에 한번 그 휘장을 이렇게 열고 지성소에 대제사장이 소의 피를 가지고서 일 년에 한번 들어갑니다. 한번 들어가는데, 예수님이 십자가 못밖혀 죽으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어떻게 됐습니까? 손을 대지 안했는데 위로부터 아래까지 짝 찢어져서. 아주 확 찢어져 가지고서 아주 갈라져 버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뭐이냐? 이제까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죄가 가로막혀 있다는 그 죄를 상징해서 휘장으로 가리워 있었고, 거기에는 짐승의 피를 가지고만 들어간다, 예수님의 대속의 피가 있어야 들어가지 그렇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그런 예표를 가지고서 형식으로 이래 해 나왔는데 예수님이 와서 십자가에 못밖히실 때에 휘장이 손대지 안 했는데 위로부터 짝 찢어진 그걸 성전에 있는 모든 제사장들이 그걸 다 보고서 다 말하니까, 유대인들이 거기서 머리에 있는 사람은 거기서 다 봤다 그 말이오. 그것이, 이 가리워졌던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피 공로로 찢어져서 이렇게 갈라져서 이래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은 생명길이라' 그렇게 히브리서에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피공로를 힘입지 않으면 주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힌 죄가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예수님의 피공로를 인해서 우리에게 성경 말씀이 왔고.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성신의 감동이 우리에게 왔고, 또 예수님의 피공로가 우리에게 역사하고 이러기 때문에 성경 보고 성신의 감동으로서 죄라는 것을 깨닫고 이 죄를 주님 사해 주옵소서 하면 그 죄가 없어져서 트여집니다.
그러기에, 진리를 몰라도, 진리가 아니면 그 죄를 모릅니다. 신구약 성경이 아니면은 뭣이 죄인 줄 모른다 말이오. 죄라는 것은 인간들이, 공산 주의자는 공산주의를 중심해 가지고서 공산주의에 거슬리는 것은 죄라 해 가지고 사형을 시킵니다. 또, 불교는 불교를 중심해 가지고 불교에 거슬리는 것은 죄라 해 가지고 저희들이 정죄하고서 대항합니다. 이 세상에는 천도 만도 넘는 개별 주체라는 것이, 조금 세력이 있으면 그것이 주체가 돼 가지고서, 그것이 왕이 돼 가지고서, 그것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서 그것에 배치가 되면 죄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천도 만도 넘습니다. 그런 것이 다 소용없다 말이오. 암만 불교에서 죄가 아니고 의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말이오.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 조물주 주재자 주권자 이분 한 분이 모든 것 만들어 냈는데 이분 한 분이 죄라 의라 정한 그것이 죄고 의지 그분이 말하지 안한 것은 소용이 없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죄를 불교에서 아무리 죄라고 말해도 성경이 죄라고 안하면 죄가 아닙니다. 아무리 천하 인간이 다 죄라고 말해도 성경이 죄라고 안하면 죄가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공산주의 중에도 김 일성이가 아무 리 죄라고 정죄를 한다고 해도 그 정죄가 김 일성이가 권세를 잡고 있는 그 권세 경계 내에서만 죄로 인정이 되지 그 경계를 밖에 벗어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인간들이 이래 저래 아무리 죄라고 말해도. 그러면 세상이 죄라고 말한 것은 뭐이 죄냐? 그것을 나비 보면 불교에서 죄라고 말한 그것도 죄, 또 여기에서 말하는 것도 죄, 이러니까, 죄라는 것을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은, 예를 들면 불교에서 열 가지를 죄라 했다 유교에서 또 스무 가지를 죄라고 했다 또 무슨 철학에서 또 몇 가지를 죄라고 했다 무슨 어떤 종교에서 또 몇 가지를 죄라고 했다 이래 가지고 죄를 어디 다 근거 하느냐? 이 사람들이 이 사람이 이거 죄라 저 사람이 저거 죄라 하니까 이것을 죄라고 해 가지고서 죄가 뭐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죄는 무엇이 죄냐? 죄는 하나, 자존자 주재자 창조주 주권자 이 하나님 이분의 법칙에 어긴 것이 죄입니다. 딴 거 죄 아닙니다. 이 분의 법칙에 어긴 것이 죄지 불교에 어겼다고, 공산주의에 어겼다고, 민주주의에 어겼다고. 어떤 군주주의에 어겼다고, 무신론 주의에 어겼다고 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법칙을 떡 선포하면서 여기에 위반 된 것은 죄라 한 그것만이 죄입니다. 여기 성경에 말하는 것은 그걸 말하는 것이지 인간들이 말하는 그것이 죄가 아닙니다.
이러기에, 저 사람이 조상 단지를, 조상 단지를 두고서 조상 단지에게 절을 안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조상 단지라고서 단지를 만들어 놓고서 방 구석에 얹어 놓고 조상 단지라 이래 가지고서 거기에다가 온 식구들이 일 년에 무슨 경사가 있으면 한번씩 절을 합니다. 또, 조금 부자들은 조상 단지를 만들어 놓지 안하고 자기 집 뒤안에다가 가묘라고 이렇제 해 가지고서 밤나무로 가지고서 이렇게 패를 써서 놓고서 거기다가 이렇게 합니다. 이런데, 이 조상을 섬기지 않는다 해서 죄라 이랍니다.
그 사람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불러서 가면 안 믿었으면 그 영과 혼 둘은 음부에 가 있고 믿었으면 낙원에 가 있고. 오지 못합니다. 고기덩어리만 있지.
그런데, 그 혼령이 있다고 이렇게 해 가지고서 제사를 드리고 섬기는 것은 그 부모의 혼령을 미혹시키 가지고서 일생 동안 미혹시키서 죄만 짓게 만들고 전도하는 사람 있어도 전도를 듣지 못하게 하고 멸망시킨 그 멸망시킨 귀신, 악령 그 놈만 와 가지고서 지금 멸망을 시키고 제가 조상처럼 가장을 꾸며 가지고서, 우리 속에도 우리가 몇입니까? 자기가 몇입니까? 둘. 하나는, 새사람은 참 자기.
영은 자기요, 영을 죽인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되어 있는 그놈이 가장을 해 가지고 자기라고 해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한 사람 속에도 이렇게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이렇게 이런 것들이 있어 가지고서 사람들을 자꾸 유혹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을 섬기지 않으면 죄라, 저거는 조상을 섬기지 안한다 이래서 죄로 정합시다. 제사 안 지내니까 죄라, 이 조상에게 일 년 내내가도 물 한 그릇도 떠 놓지 안하니까 죄라. 또 뭘 박하게 제사를 지내지 안하니까 죄라 이래 가지고서, 이제 사 대까지는 집에서 제사를 지내도 그 혼령이. 혼령이 젊었기 때문에 집에 와서 운감을 하고 찾아 오지마는 벌써 오 대가 지내갔으면은 그 혼령이 늙었기 때문에 집에 찾아 오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오 대부터 쓴 묘사를 지내라 무덤에 가 가지고 제사를 지내라, 오 대부터는 묘사를 지냅니다. 사 대까지는 제사를 지냅니다. 오 대 되면 늙었으면 그것이 오 대 되어서 좀 더 되면 어찌돼 벌써 죽지 안했겠습니까? 그게 전부 인간들이 제 생각대로 꾸며낸 거라 말이오. 그러니까 이런 것을 다 부인해라.
'모든 풍속과 구습을 버리라.' 에베소 2장에 모든 풍속과 구습을 버리라 그 말은, 풍속을 버리라 그 말은 인간들이 꾸며 내 놓은 그런 제도 저런 제도는 전부 이 마귀가 들어서 사람들을 꼬우기 위해서 쉴 새 없이 요렇게 꼬우고 저렇게 꼬아 가지고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다 부인해야 된다, 모든 풍속을 버리라, 또 모든 풍속들을 다 버리라 이렇게 말해 놓은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자꾸 속이고 꼬우는 말에 들리 가지고서 자꾸 이래 꼬이 가고 있다 그말이오.
또, 제사로 말해도 그 제사가 온 세계에 다 있느냐 하면 중국하고 한국밖에 없습니다. 그때 중국은 대국이라고 말했고 한국은 거기에 약소 소속국으로 말했기 때문에 중국의 문화를 한국에서 받아 들이 가지고서 한국이 중국을 본따서 그래 했고, 일본도 이 한국을 본따서, 처음에는 저 중국문화가 한국으로 와 가지고서 한국 문화가 일본 나라로 건너 갔기 때문에 일본 나라는 한국을 본받아서, 채받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명치 천황 때에 그들이 천황이라 그래 말합니다. 저거 말로. 명치 천황 때에 그때에 우리 한국에는 기독교가 들어온 것을 대원군이 그것을 배격을 해서 다 살해해 버리고 배척해 버렸기 때문에 기독교가 와서 퍼지들 못했고 일본 명치 천황은 그 기독교를 환영해서 받아 들였습니다. 환영해서 받아 들여 가지고서 그때 그분들은 비로소 기독교를 통해서 오는 저 구미에 구미의 서양 문화를 받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니까, 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가 둘이 이렇게 와 가지고서 일본 나라에 있다가 일본 나라에서 양 문화가 세력이 강하니까 동양 문화는 밀리 나가고 서양 문화를 받아 들이 가지서, 이제 동양 문화가 일본에 가 가지고 있던 그것이 쫓기서 나와 가지고서, 이제 그 문화가 쫓겨 나와서 이제는 서양에서 이리 흘러 나오게 됐습니다. 이리 흘러 나오니까 그때 그후부터 비로소 그 전에도 전쟁들이 있었지만 그 전에 전쟁은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백전 백패입니다. 분해서 반발하다가는 또 절단나고 반발하다가 절단 나고 왜? 여기에 문화를 받아 그들이 갔기 때문에 우리보다 다 뒤떨어졌다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 있다가 그 뒤에서 양 문화를 받아 온 이후부텀은 우리 한국이 일본 나라에게 백전 백패입니다. 싸우면 그만 져 버립니다. 이래서 경술년 합방으로서 일본 나라와 한국 나라가 합해서 한국 나라가 일본 나라에게 항복을 하고서 그 식민지가 되어지는 것은 그쪽 문화를 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됐습니다. 여기에서는 찍 해야 총 칼밖에 없는데 그때 그분들은 벌써 총이라는 것이 있었고, 또 그 총이라는 것이 아주 전쟁 무기들이. 이 한국에도 총이라는 거 있었지마는서도 그보다도 더 아주 발달된 그런 신무기가, 지금으로 말하면, 그때는 신무기입니다. 신 무기가 있고 이라니까 이쪽에서 백 명이 달라들어도 그쪽에 하나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그때 정복당해 가지고서 그만 경술년에 항복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정치는 다 정보라 무슨 무슨 소리 왔다 어떻다 이래 가지고 거짓말로 전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고, 성경에 한 말로 말하기를 세상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 안 속이는 일이. 하나도 ,없고 안 속은 일이 하나도 없고. 많이 속이는 사람이 이거(주' 엄지 손가닥을 켜 보이심) 되고 적게 속인 사람은 그 새끼가 되어지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역사를 사람들이 말하지마는서도,', 언제 내가, 한 사람이 역사를 말하면서 '역사책 인데',' '이 바보야 역사가 그게 기 록한 그 사람이 이런 관념 가지고 기록해서, 만일 성자의 대적이 되어 있으면 성자를 죄인으로 기록했을 것이고 죄인을 성자로 기록했을 터인데 역사는 거짓말쟁이들이 말했는데 믿을 수가 어디 있느냐?'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한 말로 자기를 부인하라 말은 세상을 부인하라 말이오 세상에 있는 지식을 부인하라 말이오. 왜? 그것이 반거짓말입니다. 그런데, 부인하는데 왜 반 거짓말이라고 하느냐 하면 영은 죽었기 때문에 영에 대한 말은 전부 거짓말이요, 영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말은 전부 거짓말이요 다만 참말이 있는 것은 무엇이 참말이냐? 물질인 육만 살아 있기 때문에, 마음과 고기 덩어리는 육인데, 물질인데 물질만 살아 있기 때문에 물질은 저희들이 말할 수도 있고 연구할 수도 있고 발표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것은 그들이 맞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 말한 것은 어느 정도 맞지 다 맞지 안 하고 여기 아주 물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그것이 다 맞습니다. 왜? 고것은 또 시험해 보니까 아니면 또 다시 다시 고쳐서 이래 맞기 때문에 이 과학은 맞는 것입니다. 과학은 맞는 것이고 심리는 약간 맞는 것이나 인성이 뭐이냐 인생이 어떻게 걸어가야 되나 인생에 대한 인생의 도덕이라든지 이 무슨 사회성이라든지 윤리성이라든지 이 이런데 대해서는 전혀 안 맞습니다. 안 맞는데. 왜 그러면 과학은 다 들어 맞는데 이 과학은 들어 맞다 하지 반 거짓말이라 하느냐. 이 과학은 맞는데. 이 물리는 맞는데 이 물리가, 물리가 물리의 주인인 사람의 이치에 이것이 소속해 가지고 사람이 이치에 맞도록 이것이 적용돼야 될 텐데 이 자체 말은 옳지마는서도 이것이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혼돈시켰고, 이것이 이용할 때에 어떻게 이용해야 되느냐 이용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이것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과학은 마지막으로 인간을 죽이는 결과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는 그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라 말은 이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도를 모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도를 알라고 하면 자기를 뽑아 버리야 돼요. 그러기에, 자기를 비워라. 마음이 가난한 자 복이 있다 그 말은 마음을 비워 버리라 마음을 비워야 하나님의 도가 들어온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도가 들어와요. 자기를 부인하면 하나님의 도가 인정이 됩니다. 부인하지 않으면 안 돼요.
이런데, 우리 고기덩어리 이거 좀 도가 좀 넓게 말하니까 알아듣기 어렵지마는서도 이래도 자꾸 들으면 깨달을 수 있소. 나는 이거 말이오 아무 한테서 배운 것 아니오. 나는 신구약 성경만 보고 영감에서 이랬는데 알고 난 다음메 확신이 있어서 자꾸 이와 같이 지금, 주님에게 배웠었어. 성경 보고 배웠고, 성경 여기에 저게 합해 보면 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어요.
이러니까, 이제 배운 것은 이 고기덩어리보다 그 안에 마음이라 하는 것이 더 실존적이요 그것이 더 실력이 있고 가치 있고 권위 있고 명철하다. 그런고로, 일을 하는 사람이 고기덩어리로 일하는 사람도 있고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 다음에 영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고기덩어리로 일하는 사람은 썩은 것밖에는 못한다,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은 그 고기덩어리로 일하는 사람을 다스리고 있다. 이 온 전국에 모든 것은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이 고기 덩어리로 일하는 사람을 다 통치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은 아무리 해봤자 사망 아래 것밖에는 못한다 사망 위에 거는 못한다. 영으로 하는 사람은 위에 접선이 돼 가지고서 영원히 죽지 안한 영생에 속한 것 완전에 속한 것 불변에 속한 것이 참된 것 여기에 손을 대 가지고 거기에 연결된다 그러기 때문에, 영이 일하지 안한 것은 다 사망선 아래 있는 것이요, 또 마음이 일하는 것은 고기 덩어리를 다스려서 있는 것이요, 고기덩어리 그것은 물질보다 더 귀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요새 그 전자 계산기라 하는 것을, 전자 계산기를 보고서, 전자 제산기가 어데, 전자 계산기 보다도 더 명철한 것은 사람의 머리입니다. 사람의 머리가 전자 계산기를 만들어 내놨소. 만들어 내서 그래 만들어 가지고 냈기 때문에 딱 요거 눌리고 하니라 가하라면 가한 것이 돼지고 떼라면 떼는 것이 돼지지, 그 사람의 머리로 한 것을 고대로 연구를 해 가지고, 무식한 사람들도 고대로 눌리면 돼지도록 하는 데는 사람의 머리를 상당히 써 가지고 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있다가 '전자 계산기가 있기 때문에 지금은 뭐 잘나고 못나고 말할 필요가 없어.' 전자 계산기 만든 사람이 있다. 어떤 교수라.
그 학교를 지금 내가 말하면 학교 수치이기 때문에 말 안해. 서울 갔다가 내려오다가서 뭐 말하는데 사람은 그래도 오십에다야 한 오십 돼야 뭘 알지 그 전에는 모르니까 정권자들이 젊은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이래 말하니까 '아 지금은 전자 계산이 있기 때문에 그 상관이 없습니다. 다 압니다.' 그래 내가 말하다가서, 전자 계산기가 사람보다 낫다 말이냐? 그러면 그것이 공중에서 떨어졌느냐? 그걸 만들어 놓은자가 있을 터이니까 만들어 놓은 자는 그 사람이가 누구가? 그거 저절로 나왔나? 만든 자가 있다. 전자 계산기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그 사람 많은 연구 연구 해 가지고서, 경험 연구를 많이 해 가지고서 경험 연구를 많이 해 가지고 벌써 연로한 사람이요 연구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정권자에도 그런 연구자가 있기 때문에 그런자를 세워야 된다는 말이다 이라니까 그래 고만, 그라고 난 다음에 너무 많이 말하면 모욕 주는 것이고 이래서 중단하고 말았는데, 어느 대학 교수입니다.
여러분들 그런데, 내가 이 말하는 것은 이 고기덩어리보다. 마음이 중요하고 마음보다도 영이 중요한데, 사람들이 영은 하나님이 살리서 살렸지만 영 살려놓은 영은 파묻어 버리고 꼼짝을 못 하게 하고 이 마음은 냅두고 고기덩어리 이놈만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주여 주여' 말하고 또, 노래를 부르고 뭐 행동을 하지마는서도 마음은 하나님에게 기울이지 안하기 때문에 소용없다, 외식한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몸을 바치는 것보다 마음 바치는 것이 좋고 마음 바치는 것보다 영을 바치는 것이 좋은데 영을 바치는 것은. 영을 바치는 것은 그 효력이 어데 나오느냐? 영을 바친 것이 마음에 발표가 되어야 효력이 있고 마음을 바친 것은 마음 아무리 바친다 해봤자 그것만 가지고는 효력이 없고 마음 바치는 것은 고기덩어리의 행동의 표시가 되어야 효력이 있고 그 또 몸을 바친 것은 몸을 아무리 바쳤다 바쳤다 해도 몸을 바친 것은 그 밖에 있는 물질의 작용에 효력이 나타난다 그 말이오. 위의 것은, 맨위의 것은 저 끄트머리 말단까지 와서 그것이 펴져야 효력이 나고 이 말단 것 이것은 저 위에 연결이 되고 원천이 거기에 소속해져야 효력이 있다 그 말입니다. 이러니까 자꾸 좁게 생각지를 말아요.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자꾸 좁아져요. 자꾸 좁아지는 것 이것도 얼마나 여러분들이 알면 저절로 알아집니다. 그 모든 것을 아는 대로 고쳐 나가면은 심령이 밝아지면은 그 뭐 자꾸 이래 배워서, 심령에 성신이 와 가지고 가르쳐 주면은, 성신이 가르쳐 줄 수 있고 가르쳐 주심을 받을 수만 있다면 한없이 가르쳐 주고 한없이 배워요. 그러면 자꾸 배워서 모든 것을 뭐이 되도 그만 생각만 가지고 알면 알 수가 있게 돼 가지고 있다 이거요. 그런고로, 외식하는 자들이 되지 맙시다.
그러고 그 어제 가르치는 걸 보니까 우리 피와 살이 예수님의 피와 살과 하나됐다 자꾸 요거만 지금 말하니까 우리라는 것이 독립성을 가진 것 같이 자꾸 그렇게 생각이 되는데 예수님 죽으심에 연합해서 우리가 죽어 장사 지낸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서 우리 살아 있는 것이 죽은 거와 같이 죄에 대해서 죽은 거와 같이 되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죄짓는 몸이 죽어져 버렸고, 또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남아 있는 그것이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살 수 있는 것으로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피공로로 인해서 예수님의 피와 살과 우리 피와 살이 연합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서 연합하게 되는 것이지 이 공로를 힘입지 않으면은 우리는 연합할 수 없습니다.
연합을 하면 확 타 버려요. 당신은 완전하고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딿으면 그만 심판 받아서 저주 받아서 확 멸망하고, 멸망하고 만다 말이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었기 때문에 주님의 대속으로 내 피와 살은 다 값 주고 사서 주의 것이 됐기 때문에 주의 것이 된 이것이 법적으로 된 것이 실질적으로 주의 것으로 되어 살기 위해서 성찬식을 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고 침례를 받는 것은 로마 6장에 있는 죽고 다시 같이 죽어 장사 지내고 살아났다, 고 단순한 고게만 근거를 하는 것이 그것이 침례요. 세례를 근거하는 것은 구약에 짐승의 피는 예수님의 피를 예표한 것인데 그 피를 제사장들이 손가락으로 이거 찍어서 모든 제단 뿔에도 바르고 또 기구가 더러우면 기구에도 바르고 또 사람이 더러워졌으면 그 피를 뿌려서 사람을 깨끗하게 하고 모든 깨끗하게 할 때에 피를 바르고 대문에 피를 뿌리고 또 이래 가지고서 깨끗하게 했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피공로로 우리가 세례를 받는 데에는 그 물은 그 피를 상징해서 이렇게 했기 때문에. 성경에 노아 홍수 물을 예수님의 피를 상징했습니다. 홍수 물에서 다 죽었는데 노아의 여덟 식구는 홍수 물에서 죽을 건데 살아 났기 때문에 노아는 홍수로 세례를 받았다, 홍수가 노아의 세례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바다에서 다 죽을 것인데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았기 때문에 홍해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례는 다 죽고 살아 났다는 그것은 다 침례나 세례나 같은 것인데 침례는 다만 죽고 살았다는 그 방편을 말할 때에 그 죽었다는 그걸 물속에 장례를 지내야, 숨이 끊어져 버리야 죽은 것이 되기 때문에 물속에 잠궜다가 살아난다는 그런 형식을 취하고, 구약에서 모두 다 죽고 사는 그것을, 뿌려 가지고 이와 같이 했었기 때문에 오늘 물을 뿌리면 된다는 그것을 모형하고, 또 예수님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첫 세례가, 세례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요 지금은 중생된 세례인데, 신약 세례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죽고 사는 그 세례인데, 사활의 세례인데 그 세례를 제일 처음에 베푼이가 누가 베풀었는고 하니 누가 베풀었습니까? 어데서 있었습니까? 사도행전 2장에 성령 강림하고 난 다음에 사도들이 먼저 그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세례를 베풀었는데 그때 세례 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몇 명이라 했지요? 이거 영 뭐. 사도행전 2장에 세례 받은 사람이 몇 명이라고 성경에 기록 돼 있습니까? 이거 성경 본다 하는 것이 뭐 거짓말인 모양이라. 아 몇 명인지를 몰라? 그거 다 알고 있는데. 예? 예? 삼천 명, 그 삼천 명이라고 기록 돼 있지 않소? 삼천 명인데 그때에 사도들이 몇 명 안 됐고, 또 만일 그때 문도들이 있다 해도 문도들은 세례를 주지 안하고 사도들이 처음에는 세례를 줬습니다. 다른 사람은 세례를 주지 안하고 사도들이 세례를 줬어요. 사도들이 세례를 주는데 사도들은 그때에 열 한 명뿐이고 하나 대리 해서 열 두 명이라 할지라도 열 두 명인데 열 두 명이 삼천 명을 물속에 집어 넣었다가 냈다가 이래 하려고 하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고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그때에도 세례가 물을 이렇게 뿌려서 세례를 줬지 그 물속에 집어 넣은 침례가 아니지 않느냐 하는 것으로, 그 식을 세례식을 하고 침례식을 하고 이라는데, 그러기 때문에 세례식이 침례식보다도 역사적이요 또 그것이 좀 더 정확적이다 이렇게 말하고, 어데서 구약에 모든 세례하는 성결, 결례를 베풀 때에.
구약에 결례 베푼 것이 다 그런 식으로 했고, 또 신약 첫 세례인 사도행전 2장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그날 세례를 주는데 삼천 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하니까 물속에 잠궜다 그래 하면 삼천 명이 불가능하다 할 수가 없다 불가능하다. 이런데 그것이 그렇게 한 것이다 지금 세례로 하는 것 같은 이런 식을 취한 것이다. 그 구약에 역사에 들어맞고 또 신약에 세례 준 실제에 들어맞고 하기 때문에 세례가 낫다 해서 세례식을 취하는 것이고, 또 이거 죽은 표시를 하는 데에는 침례로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확실하다 이래 가지고서 침례라는 것이고, 이러기 때문에, 세례는 침례를 훼방하지 안하고 침례는 세례를 훼방하지 안니하지마는서도 세례는 이런 역사적인 이런 증거로 돼 가지고서 이제 세례식을 이와 같이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세례의 이 근거가 이렇게 깊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고 증거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세례가 침례식 만침 권위가 없고 실질적인 그 실상적인 면이 좀 박약하지 않는가 이렇게 여러분들이 생각하면 마귀가 틈을 타 가지고서 세례의 받은, 그 은혜가 이것이 흔들리기 쉽다 그 말이오. 그래서 내가 이 말을 다시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관련된 성구는 레위기 9장 8절로 9절에 보면 알 수 있고, 또 레위기 8장 10절로 17절까지에 보면 알 수 있고, 그 외에도 많이 그렇게 뿌리고 발라 가지고서 결례를 행했습니다. 깨끗케 하는 결례를 행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세례는 이 죄의 몸은 죽고 의의 몸으로 살아나는 이 아주 결례의 한 토막, 이 토막으로 죽고 사는 그 토막, 이스라엘이 흥해에서 죽고 살아 났다 노아 시대에 모든 사람은 죽는데 노아도 죽을 터인데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 났다. 살아 난 것이 순전히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아났다, 홍해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서 살아났다, 오늘 우리가 세례받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도성하신 신인양성일위이신 그분이 대속으로 인해서 살아났다 하는 것이 그때 살아난 것이나 다 죽을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이렇게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아 이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너무 늦어서 미안한 데 앞으로는 시간을 좀 짧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 나와서 어쩌든지 배워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 구역 식구를 새벽기도 안 나오고 하면 여러분들 골만 빠지지 암만 해봤자 기본 구원뿐이지 건설구원은 못 이룹니다. 이러니까 건설구원을 못 이루었으면 하늘에 가 영광될 것이 뭐 있습니까? 자꾸 권해서 새벽으로 나와서 배워야 된다 모르면 안 된다 모르기 때문헤 자꾸 변동이 된다 말이오 알면 요동이 안 되는데 모르기 때문에 요동이 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기도회의 서기 힘을 써서 잘 했습니다. 아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잘 했습니다.
어제 주일에는 주일학교는 세 명이 더 늘었고, 또 중간반도 세 명이 더 늘었고 장년반은 한 명이 더 늘었고, 통계에 일곱 명이 늘었습니다. 등록을 하지 안해요.
등록을 자꾸 시켜서 하고 그렇게 하도록 해서, 어쩌든지 이번에 이 기도회가 여러분들이 망하고 흥하는 것이 여기에 결정이 되고 앞으로 환난을 기쁨으로 평강으로 이기느냐 거기서 패전하느냐 하는 그것이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왜정 말년에 이 기도하지 안한 사람들은 그렇게 위대한 사람들이 신사 참배로 다 신앙 팔고 권능 다 빼앗겨 버리고 비참한 사람들이 되어졌습니다.
이러니까, 안 그렇소?고 신으로 있을 때에 고 신의 전부 유력하게 일한 사람은 전부 아무것도 아닌 부스러기인데 신사 참배 이긴 사람들이 다 그렇게 권위 있어 가지고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권위 있는 승리를 하느냐 패전하느냐 그것이 이 기도회에 자기가 계속해서 거기에 대해서 기도 하고 안 하는 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은혜를 예고 해 주셨다 말이오. 우리에게 깨닫게 해서 예언을 해 줬으니까 이 예언을 들으면 살고 안 들으면 죽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