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증거

 

1984. 11. 6. 새벽

 

본문 : 미가 3장 9절∼12절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지어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이 말씀에 대한 제가 증거할라 하는 증거를 얼마 전에 본교회에서는 증거를  했습니다. 그러나 또 이번에 하나님의 중한 모두 사명들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모였기 때문에 전하는 것이 유익하리라 해서 그래 또 이 말씀을 전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본문에 있는 말씀은 이러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그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는 두령, 이스라엘의 두목, 이스라엘의 두령. 두목들과  또 이스라엘의 선지자들과 또 이스라엘의 제사장들. 모두 행정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지식적으로 이렇게 다 각각 중요한 분야를 맡고 있는 하나님의  종들인데 이 하나님의 종들의 잘못을 인해서 온 이스라엘이 망하게 됐다 하는  그것을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와 성결과 정직을 기르고 숭상해서 이것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온갖 은혜를 받아 그로만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선민인데  이렇게 하지 안하고 공의도, 곧은 것도. 깨끗도, 이런 것은 다 무시하고 그저  자기들의 욕심에만 급급한 그것 때문에 절단났다. 우리는 하나님의 욕심을 이를  우리들인데, 하나님의 선민은 하나님의 욕심을,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그것으로서 본분을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소원을 이루어 기뻐하심으로 그분의  은혜로만 이렇게 사는 것이 구별된 선민인데, 이 선민들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있는 이것은 다 무시하고 자기네들 소원하는 소원을 이루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절단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소원을 무시해 버리고 자기들의 소원대로  하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말하면 뭐인가 하는 것을 여기에 기록했습니다.

 11절에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치하는,  통치하는 직책을 맡고 있는 참 바로 다스려야 그 모든 잡초가 없어지고 하나님  백성들이 바로 자랄 터인데 이렇게 자기들의 소원대로의 뇌물을 바라고 뇌물을  위하여 모든 것을 판단하니까 자연히, 굽어진 자가 뇌물을 쓰는 것이고. 또 그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안하는 자가 세상 것으로서는 부강해져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는 이것이, 두령은 공의와 정직과 성결을  위해서 재판해야 될 터인데 저한테 잘하고 뭐 뇌물이나 주든지 뭐 자기만 위하면  거기에 따라서 이렇게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러면 다 그것이 사욕 판단이요  물욕 판단이요 다 인간 본위의 인본의 판단이 되겠습니다.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제사장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지식을 사람들에게 교훈해서 하나님 앞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을 만드는 그것이  제사장인데. 제사장은 그 교훈하는 중심이 뭐인고 하니 자기 대접 받는 그  대접을 위주로 해 가지고서 교훈하기 때문에 제사장직의 정 반대입니다.

제사장은 자기를 위하여 교훈함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세우기 위해서 자기는 돌도 맞고 저주도 받고 사형도 받고 이렇게 하면서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로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세움을 받은 직책인데.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되고 안 되는 그런 거는 상관하지  안하고 그저 자기 대우니 잘하면, 연보나 많이해서 교회의 유지나 넉넉하게  되면, 이런 위주가 오늘의 내나 제사장이 삯을 위해서 교훈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사람들이 어두워져 있는 그 어두운 심령에 하나님의 그 뜻을 전해  줘서. 참 전지의 완전의 하나님의 뜻 곧 그 진리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해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성령과 진리의 그 지혜를 받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그런 걸음을 걷도록 해야 할 터인데 그 일은 하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선지 노릇 할 수 있는 지혜를 받은 이 지혜를 가지고 세상 표준으로,  세상 위주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표준으로 위주로 해서, 땅의 것의 유익을  위해서 땅의 것 위주로 이렇게 하고 있으니 선지자들은 다 돈을 위해서 점을  치고 있다.

 점치면서 오히려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니' 하여 이  하나님을 든든히 의뢰하고, 이 하나님을 든든히 의뢰하고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냐' 우리와 계약하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냐? 그런고로, 우리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두령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인하여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같이 갊을 당하고' 시온은 팔레스틴  하나님의 백성들의 땅인데, 그 나라인데, 그 나라는 다 망해서 벌써 황무지가 돼  가지고 개간이 돼서 토지가 됐다. 망하고 망하고 망해서 다시 토지로 개간됐다.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그 수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그  서울, 그들의 왕이 있는 그 서울은 무더기가 되고, 돌 무더기가 되고 무더기가  됐다 말은, 돌 무더기가 되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의 그 수도는 돌  무더기가 되고. 모든 죄악의 무더기가 되고. 성결의 무더기가 돼야 될 터인데  죄악의 무더기가 되고, 하나님으로 전부 돼야 할 터인데 모두 개인 개인 제 욕심  제 주관 이것으로서 가득 차게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었도다' 성전은 하나님을 섬기는 곳인데  하나님 섬기는 그곳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됐다. 잡초가 우거져서 거기에는 모든  세상 욕심과 세상 위주와 그것들이. 세상 소망 소욕이 최고적으로 역활하고 있는  그 모든 세상주의의 수도가 되었더라, '되었도다' 하는 말씀입니다. 같게  되리라.

 제가 10월 30일 새벽 두시쯤 돼서 제가 일어나지 안하고 누워서 주님에게 대한  것을 좀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있다가 제가 잠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그건  내가 똑똑히 모르겠습니다.

 이상한 것을 봤는데, 어떤 분이, 나는 무슨 새인지도 모르겠는데 어떤 분이 그  새를 기르는데 그 주인 밑에서 저는 수종을 들고 있었습니다. 새 새끼들이,  새끼인데, 아주 작은 것은 그저, 아마 새 새끼 잘 못 본 사람은 잘 모를 겁니다.

빨간 것이 그저 겨우 노랑 털이 나왔고, 노랑 털이 나와서 처음에는 새끼가 되면  병아리 같은 거는 아주 노랑 털이 많지마는 일반 새는 그렇게 노랑 털이 많질  안합니다. 그 새는 보니까 노랑 털이 많지를 안했습니다. 그러니까 닭 같은 거,  아마 닭 종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노랑 털이 겨우 뜨문뜨문 나와 있고 몸이  발가이 그렇게 살피배기로 돼 있었습니다.

 또 새끼 중에 큰 새끼가 있는데 큰 새끼는 눈이 떨어졌고 털이 뜨문뜨문, 검은  털이 뜨문뜨문 났습디다. 아주 새끼는 눈도 뜨지 못하고 눈이 안 떨어졌고,  이거는 눈이 떨어져서 뭣을 볼 수 있고 이랬는데,  그것을 주인이 밖에 있는 것을 통 안으로 잡아 넣으라고 해서 내가 그것을 잡아  넣었습니다. 잡아 넣으니까 그 안에 있는 그 큰 새끼가 작은 새끼를 그만  먹을라고 입으로 물고 그라니까, 뭐 저거가 뜯을 힘은 없으니까 먹고 배암  모양으로 놓지 안하고 통으로 삼킬라고 이라는데, 잠깐인데. 보니까 큰 새 제가  그걸. 큰 새끼가 먹지는 못할 건데. 삼키니까 입이 째져서 피가 나도 놓지  안하고 자꾸 빨아 당기면서 넘길라고 그렇게 애쓰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빨리 작은 새끼를 그 통에서 갈라 냈습니다. 갈라 내면서 그 물고 있는 큰  새끼를 놓게 할라고 빼앗을라 하니까 그 큰 새끼가 놓지 안하고 물고 있어서  내가 그 큰 새끼가 미웠습니다. 미워서 그것을 때릴라고 이렇게 좀 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지마는 때리지는 안하고 근근히 신강을 해 가지고서 그래 빼내서 갈라  냈습니다.

 그라고 나서 내 마음에 좀 이상한 그 두려움이 내게 왔습니다. 그래서, 그라고  난 다음에 두려움으로 인해서 그때 나는 완전히 깨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뭐인가'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내가 완전히 깨어 있기는 깨어 있었으나 좀  혼혼한 혼미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이 새끼는 작고 저 새끼는  클까?' 옆에서 그분이 나한테 말을 하지 아니 하시는데 나 혼자 그렇게  말하는데, 옆에서 말라지 안하는데 나는 거기에 대해서 답을 받았습니다. 말은  안 하는데 내게 깨달아지기를 '이것 작은 새끼는 먹지를 못해서 이렇게 자라지  못해서 이렇다. 또, 그러면, 이 큰 새끼는 왜 이렇게 작은 새끼를 이렇게  먹을라고, 잡아 먹을라고 이렇게, 저 죽을 줄도 모르고 잡아 먹을라고 자꾸  이렇게 애를 쓸까?' 또 이렇게 여기 대해서 몰라서 궁구하니까. 궁금해 하니까,  '그것도 먹지를 못해서 그렇다. 먹지 못해 배가 고파서, 생명은 있는데 배가  고파서 그 새끼를 통으로 삼킬라고 그렇게 하고 있다' 하는 그것이 그때 혼미한  가운데에서 제가 들은 깨달아진 해석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제가 일어났습니다. 일어나 가지고 엎드려서 기도하면서,  이상하다. 이것이 무엇일까? 내가 그런 것을, 주사야몽이라 하는데 내가 그런 걸  뭐 생각하지도 안했고 또 그런 꼴 내가 평생 본 일도 없고. 새 새끼 많이  봤지마는 그런 걸 본 일도 없고 이런데 '이거 뭐일까' 하는 것을 제가 오래 동안  새기기를, 예배 보러나오는, 네시 되면 옷 입고 나와야 되니까 내시까지 한 두  시간 동안 엎드려서 '뭐인가' 궁구 했습니다.

 그때에 내게 깨달아진 것이 '이것이 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작은 새끼는 먹지 못해서 그렇게 눈도 떨어지지 안하고 어린 거와  같이 주님의 이 은혜를, 주님의 대속도 그는 깨닫지 못하고, 영감이 뭐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진리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 앞에 나왔으나 그는  어려서, 깨달음으로써만 그는 자랄 수 있는 것인데 깨닫지 못해서 그는 자라지  못하고 그렇게 어려 있다.' 그것이 저에게 확고한 판단으로 나왔습니다.

 또 '그러면 그 큰 새는 큰 새끼는 이거 뭐인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자랐을까?  그것은 구속 도리와 영감 도리를 깨달음으로 그렇게 자랐다. 그들은 다  깨달음으로, 깨달음으로 인해서 그만치 자랐다' 하는 그것을 제가 이제 확실히  마음에 감동되어서 느껴졌고.

 그러면 왜 그가 새끼를 잡아 억을라고 할까? 영감 도리와 하나님의 대속을  깨달은 자들이 실행을 하지 안하기 때문에 그렇게 배를 채우지 못하고 자라지  못하고, 속에 생명은 있으니까 큰 새끼가 작은 새끼 잡아 먹는 그 미련한  그것밖에는 할 수가 없다. 그들은. 큰 새끼는 행함으로 자라는 것인데 행함으로  자라지 안하고 하니까, 지식은 가졌지, 행하면 그 새끼보다도 진리로 무한히  자라고, 영감으로 무한히 자라고, 주님의 대속으로 무한히 자라서, 이 세 가지  양식은 얼마든지 만족하고 만족하고 그렇게 강건하게 자랄 수 있는데. 행해 보지  안했기 때문에, 이 진리의 지극히 큰,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었는데 진리의  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지리를 먹어서 자랄라고 하지 안하고. 영감의  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영감으로 자랄라고 하지 안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는 실행으로만 꼭 먹을 수 있고 실행으로만 자기  양식이 되고 실행으로만 자랄 수 있는데 이렇게 무한하신. 이 셋의 완전과  무한과 온전과 영원이라고 하는 영원이 되어 있는 이 사실을, 이 실상을 먹어서  이 실상으로 부요해지는 이것에 눈을 뜨고 이 실상으로 부요해지는 이 맛을  봤으면, 이 세 가지를 먹고 먹어서 만족함을 얻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 맛을  봤으면 새끼 잡아 먹는 그런 것을 아무리 옆에 있어도 탐하지도 안할 거고  생각지도 안하고 원치도 안할 것인데. 먹을 것을 먹지 못하니까 먹지 못할 것을  먹을라고 하고, 자랄 수 있는 영양을 취하지 못하다 보니까 양식 되지 못하는  그것을 먹을라고 하다가 저도 죽고 그것도 죽고 다 죽이는 이런 일 하게 된다  이것이 확정이 됐습니다.

 그러면 큰 새끼가 작은 새끼 잡아 먹는 이게 뭐인가? 그것은 이 깨달음을 가진  자가 행하면 행함으로 인해서 온 천하를 준다 할지라도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얼마든지 충족히 만족히 하고서 부강해지고 장성해질 터인데 실행하지 안하는  데에서 이 보배로움을 맛을 모르고 이 보배로움의 소욕을 가지지 못하고 새끼를  잡아 먹는 곧 아직까지 장성하지 못한, 겨우 예수 믿는 도리를 듣기만 하지  깨닫지 못하는 이 맹종하는 어린 새끼와 같은, 중생만 되고 교회만 나왔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이 사람들을 삼키는, 사람을 제 사람으로 만들라 하는  사람을 제 사람으로 만들라는, 또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사람에게 인기를  가지려는, 사람들의 모든 존경을 받고 영광을 받고 옹호를 받고 존대를 받아서,  그러면, 깨닫지 못하는 중생된 부르심을 받은 자 그들에게는 돈도 있고, 봉사도  있고. 영광도 있고, 희생도 있고 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위도 권세도  있고 하니, 다시 말하면 어린 자를 점령하여 제 사람 만들고 어린 자로 통하여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점령할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저에게 연상적으로  깨달아졌습니다.

 이래서 이거 첫째는 저에게 보여 준 것인 줄 압니다. 하나님의 이 세 가지  증거를 우리가 받았으니 이 세 가지 증거를 받았으니 이 세 가지 증거를 받은  대로 우리가 행하면 날로 내가 진리로 장성하고, 영감으로 점점 충만해서  장성해지고,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으로 장성해지면 참 하나님의 형상 곧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될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우리가 될 수 있는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 중보자가 될 수 있는 만물에게 충만케 해 주시는  이 충만이 될 수 있는 이런 자로 우리가 자라갈 수 있는데,  실행 없는 여기에서 하늘의 것을 탐하지 안하고 이 깨달은 이것을 이용해서  깨달음으로 자란 이 힘 가지고, 깨달음을 인한 이것 가지고, 이 세 가지 증거를  받은 이것 가지고 선지자가 돈을 위해 점치고 제사장은 삯을 위해서 교훈하고  두령은 뇌물을 인해서 재판 하는 거와 꼭 같이 이렇게 이 깨달음의 지식 가지고  사람들을 내 사람 만드는 것과 그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을려고 하는 것과 그  사람들에게 존대를 받을라 하는 것과 그 사람들과 그 사람의 소유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활동하고 있는 그 모든 거, 그것을 삼키면 죽는데 그거는 삼키면  죽는데 그것 삼키는 그 욕심만 있고,  이 세 가지 증거 받아 받은 증거대로 실행하면 참 모든 피조물을 창조한 그  진리를 자기가 가져서 진리로 장성하여 자기는 진리로 큰 자. 진리가 큰 자,  자기는 진리 아니면서 진리가 되고, 성령 아니면서 성령이 되고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가 제가 하나도 한 거 아니면서 제것이 완전히 되어지는 이렇게 참  영광된 구원을 얻는데, 이 세 가지 증거를 받은 자들은 세 가지 증거대로 행하지  안해서 여기에서 지금 멸망을 받고 있다. 엉뚱한 일을 하고 있다. 교회 암만  나와도 이 세 가지 증거를 받지 못한 자는 이 깨달음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자라지 못하고 있다 하는 그것을 제가, 내가 미련하니까 하나님께서 이것을 내게  보여 주셨다고 제가 생각합니다.

 이래서 혹 내게만 아니라 이것을 또 나에게 전하라고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이  아니겠느냐. 나만 알 것이 아니라 또 전해야 되지 않겠느냐해서 여기 교역자들  여러분들이 왔기 때문에 전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내가 설교를 이래 해도 교인들이 설교를 듣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합니다. 이 일 되기 전에 한 두 달 반 전부터 제가 권찰회  할 때마다 늘 제게서 말이 그런 말이 나왔습니다. 아무리 구역장으로서 식구들을  많이 인도해도 그것은 그것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고 나중에 인도한 자기 양떼가  조만간에 배반하고 다 다른 데로 돌아갈 것이다. 하나님이 뭐인가 될까 싶어  붙여 주지마는 안 붙여 주면 붙여 주더니마는 다 쫄쫄 골아서 죽게 되니까  하나님이 옮길 것 아니가? 이러니까 조만간에 다 그 구역의 식구들은 이리 저리  흩어지고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구역장들이 하는 일은 나오도록  인도하는 것도 좋지마는 인도하는 그것은 초보요 인도했으면 반드시 그 식구에게  귀를 열어 줘라 하는 그것을 강조하게 됐습니다. 그저 권찰회 때마다 늘 그것을  강조 했습니다.

 귀를 열어 줘라. 귀가 다 막혀서 와 봐야 듣고 깨닫지 못 한다. 듣고  깨달았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해도 탈선돼 나가지 않는다. 다른 데로 가지  않는다. 영감과 대속과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깨달아서 그 맛을  봤다고 하면은 그 식구가 딴 데로 돈 때문에 직장 때문에 이사 가지 않는다.

정말 깨달았으면 이사 가지 않는다. 깨닫지 못해 그러니까 깨닫도록 가 가지고,  그 사람에게 가서 어제 주일날은 무슨 아침 새벽 설교는, '네가 여기에 대해서  이런 거 어떻게 깨달았느냐?' 물어서 저 한테 답을 하도록 문답을 해서 차차  무관심하고 들었다가 문답을 하니까 처음에는 아는 걸 묻고 답을 하면은 칭찬해  주고. 고다음에는 알쏭 알쏭한 것을 묻고 모르면 협조해서 대답하게 하고, 또 그  다음에는 그래 놔 두면 교만할 터이니까 모르는 걸 묻고 이래서 '아, 나는  이렇게 들어도 한자리에서 늘어도 몰라 놨으니 뭐 이 되느냐?' 이렇게 해서 귀를  열어 줘라 그것을 오래 동안. 한 두 달 반 동안 그렇게 말하고 난 다음에 제가  이런 광경을 봤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뭐 이거 재독을 하면서 주일날은 오후 것만 재독한 그것은  오후 것 재독하고. 두 번 다 듣기가 시간이 많이 지루하니까 오후 것 재독 듣고  오전 것은 금요일날 하면 재독 듣고 이라면 다 듣는다 이랬는데 주일날  일곱시부터 오전 오후 설교를 재독을 하고 재독을 들으라고 강조를 했습니다.

했는데. 처음에는 들은 사람이 칠십 이 명이라더니, 보고 수에, 그래서 서기를  하나 둬, 직원을 하나 둬 가지고서 어느, 재독 들으러 온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어느 구역에 얼마나 되는가 그것을 계산해서 어느 구역장이 이 면에 데해서  등한히 하고 있으며 그 구역의 결과가 어찌 되나 하는 그것을 계산 맞춰서 좀  사는 운동을 할까해서 그 일을 했는데, 지난 번에는 언제 보고를 보니까 고다음  두번째 보고에는 삼백 이십 몇 명인가. 몇명이지? 삼백 이십 오 명인가 그렇게  좀 늘었습니다.

 늘었는데. 실은 살라면 이 재독, 주일날 일곱시부터 하는 이 재독을 이 자리에  모인 삼천 여명이 다 나와서 재독 들어야 됩니다. 이것을 한 번 듣고 그 설교에  대해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단언코 서부 교회 교인으로서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나는 없다고, 뭐 장로님들이고 목사님이고 권사님들이고 다 자기가  깨달았으면 다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아직도 깨달은 것보다도 깨달을  것이 몇천 배 더 넘습니다. 그러면 백 목사는 다? 아니오. 백 목사도 다 깨닫지  못했습니다. 끝이 없습니다. 이래서 깨닫도록 해야 되겠다.

 그러면, 깨달은 그것이 자기에게 양식이 돼서. 그 깨달음으로 마음이 변해  버렸고. 깨달음으로 지식이 변해 버렸고. 깨달음으로 소욕과 소망과 모든 비판과  평가가 변해 버렸고, 그러면, 깨달음으로써 희로 애락이 변했고 깨달음으로  행동이 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니 그게 열매인데 깨달음의 열매 인데, 깨달음의  열매가 없는 것은 그 깨달음이 그것이 다 지식으로만 깨달아졌기 때문에, 능력은  없고 지식으로만 깨달았으니까 그 지식은 사람들을 교만케 했고, 그러니까 고  교만의 지식으로써 상당한 보응으로써 그 지혜를 가지고서 땅의 것을 점령하기  때문에, 점령하는 그 욕망만 가지기 때문에 '기독교는 구멍가게라, 기독교는 다,  목사들은 다 구멍가게 주인들이라, 큰 회사 사장이라' 이렇게 안 믿는 사람들이  말한다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예언을 해 주시는  것인 줄 압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무래도 깨닫는 일에 주력을 해야 되겠고 들어서 실행 할라고  하지 안하니까 시쁩니다. 또 들어 깨달은 사람은 그것 가지고 깨달은, 이 세  가지 증거를 깨달은 사람은 이 세 가지 증거를 깨달아 가지고 첫째 땅에 있는  기독자를 탐을 내면 그것이 죽는 일입니다. 기독자를 탐을 내면 그게 죽는  일입니다. 교인 탐할 이유가 없습니다. 인기를 탐하면 그 거 죽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뭐 대우나 존대나 영광이나 이렇게 하는 그게 벌써 제 새끼 잡아 먹을라  하는, 새끼 잡아 먹을라 하는 그것이지 그것이 자기 양식은 아닙니다. 우리  양식은 진리요 영감이요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우리가 나기를, 성겨 나기를  주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우리가 중생됐기 때문에 이 세 가지로만 우리가  양식 되고 이 세 가지로만 자라가야 우리가 자라가는 것인데  이것이 내게는 맞습니다. 내게는 맞아서 내가 오늘까지 어리석게 이  실행으로써. 이 세 가지로 자라가고. 세 가지 욕심. 이 세 가지로 내가 장성하고  세 가지로 실력 있고 세 가지로 크고 세 가지로 강하고 이래야 될 텐데. 이 세  가기로 그렇다고 하면서도 은연중 땅의 것을 소욕하는 그런 것이 없다가  생겨나면 그놈은 어떻게 강하게 무성하게 자라는지 생겨나면 그만 한 시간도  모르고 하루도 모르고 어떨 때는 빠져 놓으면은 며칠도 그놈 소욕에서. 그놈은  탐하러 가면은 독합니다. 먹으면 죽습니다. 먹으며 반드시 자기에게는 말할 수  없는 번민과 고통과 걱정과 근심과 조급과 모든 불안. 갈급, 목말라서 갈급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받은 증거 서이, 셋, 이 증거대로 살면 이 세 가지를  먹으면, 암만, 진리는 암만 먹어도 과식도 안 되고, 영감 암만 먹어도 과식도 안  되고. 대속의 공로도 과식도 안 하고 먹을수록 기운 나고 개운하고, 먹을수록  간단하고 간편하고. 모든 복잡이 없어지고 염려 근심 다 없어지고. 생각도  단순해지고 할 일도 단순해지고 이렇게, 뭐 이런 염려나 시기나 질투나 쟁투나  미움이나 그런 것이, 그런 이 지옥의 고통스러운 것이 하나도 오지 않고. 참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충만케 하려고 함이라 하신 말씀대로의 그 기쁨과 평강은  우리에게 채워지는데, 이렇게 어린 교인은 깨닫지 못해서, 이 증거를 받지  못해서 자라지 안하고 이 증거를 받은 자들은 능력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행하지  않으므로 자라지 못하니까 내나 그것이 인간 욕심,  남을 보아서 깨달으라고, 요새 날마다 무슨 편지 오는데 전부 편지 오는 모두  팜프렛트 오는 것이 전부 뭐이냐 하면은 자기 소개입니다. 자기 소개, '이런  일이 있으니까 이리 모여들어라 이게 있으니 이리 모여 들어라.' 이래 가지고서  전부 사람 끄는 운동이요 하나님의 당이 아닌 인간 당파 운동이니까. 이것이 다  고라와 같이 자살하는 그 행위이나. 나만 그럴뿐 아니라 오늘 한국 교회 세계  교회에. 나 가 보지는 안했지마는 덜렁덜렁 오는 소식을 들어 보면 다 이게  아닌가?  그래서, 저는 이것을 아무래도 내가 알 뿐만 아니라 이것은 거기에 해당 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까 교역자들 모였으니까 이것을 다시 증거해야 되겠다 해서  제가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10윌 30일 새벽 두시에 제가 이것을 보고 놀라서  그날 아침에 제가 이 말씀을 여기에 나와서 증거를 했습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고, 전도지 주는 것을 이것을 그치지 마십시오. 안 믿는 사람에게는 '주  예수를 믿으라' 하는 그 전도지를 주고, 믿는다 하면 또 애가 2장 18 절의 이  전도지를 전합시다. 하루 몇 번이든지 서로 아는 사람에게 인사니까, 인사로  전해서. 인사로 하라 했습니다.

 인사는 환난 때는, 환난 때는 인사하는 것이 '어째 무사했습니까?' 6·25때에는  '아, 무사했습니까?' 이것이 인사였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아주 가난하게  저주받아서 살 그때는 그저 아침에는 '아침 자셨습니까?' '점심 자셨습니까?'  이렇게 그런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게 인사였고, 또 침략을 받아 불안할 때에는  '밤에 잘 주무셨습니까?'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나는 다른 나라의 인사는 잘 모르는데 일본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오랑캐라고  아주 천대받는 그럴 때에 그 사람들은 인사를, 그 사람들의 인사는 내가 아는데  아침에는 '아침 일찌기' '아침 일찌기' 그것이 인사입니다. '아침 일찌기, 아침  일찍부터' 낮에는 '오늘은' '오늘은' '오늘은 지금 오늘은' 다시 새로워져  가지고 산다는 그 '오늘은.' 밤에는 '오늘 밤은' 언제든지 그들은 '오늘 밤은'  '오늘 낮에는' '아침 일찌거니' 그것이 그들의 인사였습니다.

 이제 우리 인사는 '밤낮으로 회개의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주님의 진노와  주님의 징계를 보는 눈동자를 쉬지 말지어다' 예레미야 애가 2장 18절입니다.

 이 말씀도 제가 며칠 전에 이상 가운데에서 나한테 재촉을 해서 제가 하나님  앞에서 작정을 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자꾸 이걸 전해 주면, 나도 눈물이 안  나오는데 강처럼 흘리라는 이거 전부 껍데기 아닙니까? 다른 사람이, 이래  전하면 내가 나를 볼 때에 내가 미친 짓인데 다른 사람들이 날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래서 거기에서 반발을 했으나 꺾어서 나중에 전해야 된다는  걸해서 이 전도지를 박았습니다. 또 '주 예수를 믿으라' 하는 이것도  박았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걸 해라, 이것이 인사다. 이것을 인사로 해라  그렇게 내게 깨달아졌었습니다.

 이래서, 제가 박아 가지고서 전할 때에 비로소 내가 맛을 봤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서 '아, 내가 이렇게 참 회개의 눈물을 강같이 흘리지 안하면서  전하는 내다' 할 때에 '내가, 마땅히 이렇게 흘려야 될 내가 흘리지 안하니 내가  이거 참 재앙받을 자이다. 이 눈물이 안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받아  하나님의 징계받을 이 자인데 이걸 보는 눈동자가 벌써 흐려서 소경이 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 번 전할 때에 또 생각했고 또 받을 때에 생각했고. 받고 주고  하는 데에서 여기에 대한 그 무서운 해독의 꺼풀이 차차 차차 벗거져 가고  실지로 내가 유익을 보는 것을 느껴서 '주님이 나에게 이와 같이 시키는 것은 참  미치괭이 노릇이 아니라 이것이 온 한국 교회 세계 교회 모든 교회가 꼭 이 두  가지를 가져야 되겠다 회개의 눈물과 하나님의 진노와 주님의 징계를 보는  눈동자가 쉬지 안해야 되겠다' 하는 이것이 갈수록이 자꾸 느껴집니다.

 이러니까 이 인사하는 전도지를 받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마십시오.

받아 가지고 자기 보고 느끼고 난 다음에는 꼬게서 호주머니에 넣어서, 내버리지  말고 호주머니에 넣으십시오. 넣어서 만일 그 사람을 하루 열 번 만났으면 열  번으로 열 장으로써 인사를 하도록 합시다. 또 자기가 아는 사람을. 믿는  사람으로 아는 사람을 만날 때에는 이 2장 18절로 인사를 하고, 또 자기가 안  믿는 사람에게는 안 믿는 사람에게 전하는 것으로써 전도를 합시다.

 그래서, 제가 어제 아래 주일학교 할 때에도 어떤고해서 좀 내려가 볼라고 해서  그래 내려올 때에는 요거보다는 좀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이래 가지고 왔는데,  와 가지고서 자꾸 인사하니까 나도 인사하면서 한 장씩 주니까 나중에 없어서,  날 주는 사람도 있었지마는 없어서 주는 거 내가 받은 거는 꼬게 넣고 접고  이래서 나중에는 고만 이게 없어서 못 주고 다른 사람이 주는데 받기만 했지  나는 주지를 못했습니다. 이러니까 마음에 부끄러웠습니다. 외식의  부끄러움이지마는 '목사님은 그래 놓고 목사님은 날 만나서 주지도 안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가 보다.' 나는 그렇게 많이 들리라고는 생각지는 안하고  삥 돌아 가지고 이랄라고 생각했는데 모자라서 그랬었습니다.

 꼭 만나면 믿는 사람에게는 요 전도지를 전하고 안 믿는 사람에게는 또 안 믿는  사람의 전도지를 전하고. 믿는 사람에게 전도지를 받았으면 고거 가지고서 암만  바빠도 한 번 읽으면서 자기가 한 번 반성하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되면,  눈물의 사람이 되면 재앙을 벗어나고, 눈물의 사람이 되지 안하면 재앙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재앙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됐나 안 됐나 하는  거는 그 눈물이 증거입니다. 눈물이 나타난 표시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짜든지  깨끗이 준비를 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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