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6 14:31
세 가지 복
1989. 8. 11. 금야
본문: 요한계시록 1장 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때가 가깝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가깝다는 말도 아니요 또 개인의 죽음의 때가 가깝다는 말도 아닙니다. 여기 때가 가깝다는 것은 아주 시간이 단축되어 있다 하는 그런 뜻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또 유다서에는 말씀하시기를 한 번만 준 도리라 또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꼭 한 번만 지키지 두 번은 못 지킵니다. 한 번 지키면 그 지킨 것은 벌써 우리의 정력도 지나가 버렸고 그때에 지키는 그 말씀도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 이튿날 그 다음 시간 그 말씀을 다시 지킨다 할지라도 다시 지키는 그 정력도 내나 새 정력이요 또 말씀도 그 다음날 해당되는 말씀이지 전날에 해당된 것은 벌써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것을 여게 두고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할 수 있는 그 현실인데. 현실에는 어떤 말씀이라도 실행하는 것이 아니고 그 현실에 맞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시간에 맞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해야 하나님께 순종도 되는 것이고 자기 구원이 되는 것이지 그 시간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순종하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대로 행하는 그 행동은 하나님 말씀대로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순종 행위가 아니고 자기대로 행한 자율 행위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마다 주님의 새 뜻이 내게 오고. 또 내가 지켜야 될 새 계명이 내게 닥쳐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못 지키면 다음 시간 지키지' 이렇게 사람들은 계산하는데 이 시간에 못 지켰으면 영원히 못 지킵니다. 그 말씀은 다시 오지 안하고 그 정력도 다시 오지 안하고 그 시간도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오는 거는 그다음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언의 말씀을 하는 것은 예언이라 하니까 미래사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은 사람이 모르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을 가리켜서 예언의 말씀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자기가 이 하나님 말씀을 읽지도 듣지도 못해서 모르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읽고 들어도 또 이 말씀에 대해서 참 자기의 구원이 되게 아는 것은 알지 못하고 지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게 예언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모르는 하나님의 뜻이라 그렇게 우리는 깨달으면 바로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어떤 성구를 외운다 할지라도 또 그 성구를 다시 읽을 때든지 다시 들을 때든지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르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가지고 읽도록 하시고 듣도록 하셔서 이렇게 역사하셔 가지고 읽고 듣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에 들을 때에 제가 가니까 듣고 또 읽으니까 읽어진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마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는 데에는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역사를 하셔 가지고 비로소 읽게 되고 들을 때도 '내가 뭐 가고 싶어 갔지' 이렇지마는 그것도 하나님께서는 심한 그 역사를 하셔 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을 듣는 자리에 참석하도록 그렇게 하십니다.
그래 악령은 이렇게 이 일을 심한 방해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성경은 읽을 자가 없고 들을 자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떨 때는 보면은 '이 성경을 읽어야 되겠다' 자기가 좀 암흑을 당하든지 어려움을 당할 때에 '아무래도 이제는 성경을 읽어야 이 해결이 되고 내 마음이 바로 잡혀지고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시겠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생각을 하고 성경을 읽을라고 해도 성경이 손에 안 들립니다.
뭐 성경 읽어야 된다는 건 성경 읽으면 자기의 영육에 유익이 될 줄 번연히 알면서도 성경이 손에 들려지지 않습니다. 하루고 이틀이고 뭐 열흘이고 안 들려질 수 있습니다. 읽어야 된다는 걸 자기가 암만 막 느끼고 생각하고 하니까 '거게 있는, 책상 위에 있는 성경 뭐이든지 펴면 되는 것 아닙니까?' 펴면 되지마는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안하면 펼 수 없고 봐지지 않는 것입니다.
또 자기는 아무리 '내가 거기 가서 하나님 말씀을 듣겠다' 이렇게 말하지마는, 이번에도 장생골서 집회를 했는데 '내가 이 말씀을 올해는 꼭 가 듣겠다' 이렇게 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안하면 제가 결심해도 소용 없고 작정해도 소용 없고 뭐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안 됩니다. 안 되는 그런 것을 우리에게 자주 보여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그렇게 축복해 주시지 안하시면 읽을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것을 우리에게 스스로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하십니다.
그런데 여게 '읽는 자와' '읽는 자와' 하는 데는 단수를 말했고 듣는 자들에 대해서는 복수를 말하는 것은 혼자 성경 읽는 것을 가리키고 또 여러 사람이 혹 가르치는 데에 이건 집회에 가 가지고 듣는 그런 것을 여게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면 혼자 읽든지 여럿이 듣든지 혼자 듣든지 어쨌든지 성경을 읽고 듣는 것이 복있다 말씀하신 것은 알고 듣는 것만 가지고 복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읽고 듣고 그대로 지켜 행하지 아니한다고 하면은 성경에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심판할 것이 아니라 내가 일러 준 말씀이 너희를 심판을 하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게 읽는 자 듣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읽는 것과 듣는 것만으로서는 복되지를 못합니다. 읽는 거와 듣는 것뿐으로서는 무슨 일을 당하는고 하니 '네가 듣고 읽고 한 그 말씀이 너를 정죄하리라' 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그 말씀이 너희들을 정죄하지 내가 정죄하러 온 게 아니라, 그 말씀이 정죄하리라.' 이렇게 했습니다.
또 '알고 범하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 하는 말씀은 읽고 들어서 알고 실행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는 것과 듣는 것이 복된 이유는 읽고 들으니까 알게 되기 때문에 알면 행할 수가 있는고로 복있는 것이지, 읽는 게 복있고 듣는 게 복있는 것은 지켜 행함으로 복있는 것이지 읽고 들어서 알기만 하고 행하지 안하면은 그것은 모르는 것보다 더 죄가 큽니다. 알고 범하는 죄는 '짐짓 범하는 죄라' 고도 했는데, 개역에는 '알고 범하는 죄인데 알고 범하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읽고 듣고 하는 것은 지켜 행함으로 복이 되는 것이지 읽고 듣고 하는 것으로서 아는 것에 그치면 그거는 자기에게 화가 되지 복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읽고 들어서 알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행하면 복이 되고, 읽고 들어서 알고 행하지 안하면 그것은 심판이 되고 죄가 되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일이 됩니다.
이거 아주 뭐 우리가 아는 거, 늘 아는 건데 오늘 저녁에는 이 말씀만 제가 증거할 것입니다. 읽고 듣는다 말은 안다 말이오. 다른 말 아니라. 읽고 듣는다는 건 아는 것. 읽음으로 알고 들음으로 알고 아는 걸 말 합니다. 알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모르는 것보다 더 죄가 큽니다. 알고 범하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읽어서 알든지 들어서 알든지 아는 것은 행할 수 있는 그런 희망이 있기 때문에 읽어서 들어서 아는 것이 복있는 것이지, 읽고 들으면 알기는 아는데 알고 행하지 안하면 읽지 안한 것만 못하고, 듣지 안한 것만 못하고, 알지 안한 것만 못합니다.
암만 알아봤자 행하지 안하면 자기 구원이 안 되는데, 아는 것, 읽고 듣고 해서 아는 공력 그거는 다 헛공력입니다. 모르나 알고 행하지 안한 것이나 멸망은 꼭 같이 멸망을 받습니다. 이래서 '법 없이 범죄한 자는 법 없이 심판하고 또 법을 알고 범죄한 자는 법을 가지고 심판을 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해서 알고 난 다음에 그대로 된다고 하면 그거는 뭐 세상에 어떤 복보다도 큰 복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도리를 알고, 알고 그대로 행하는 것은 농사짓는 것보다도 수입이 많고. 또 학생이 일류학교에 가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보다 수입이 많고, 또 어떤 연구자가 연구하는 것보다 수입이 많습니다. 제가 아무리 장사를 잘한다 할지라도 장사하는 것보다 수입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은 그 수입은 장사보다 수입이 크고, 공부보다 수입이 크고, 사업보다 수입이 크고, 무슨 정치 운동이나 무슨 운동하는 것보다 수입이 크고, 그보다 더 큰 수입은 없습니다.
말씀을 알고 그대로 지켜 행함으로 자기에게 수입이 되는. 유익되는 것은 그것은 이 세상에 어떤 일이라도 그만치 수입이 되고 유익된 일은 없습니다.
이래서 미국을 구원한 무디 선생 그분은 말하기를 '믿음보다 더 많이 크게 수입하는 것은 없다' 그랬습니다. '알고 그대로 지킨 것 그것보다 더 큰 수입은 없다' 이랬어 '알고 그대로 행하는 그보다 더 큰 수입은 없다.' 알고 행하면 지극히 큰 수입이 되는데, 영육과 금생과 내세에 수입이 되는데 알고 행하지 안하면 그거 저주가 되고 하나님의 진노가 되고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됩니다.
이러니까 자, 하나님 말씀을 알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다른 일 하는 것보다 수입이 적으면 혹 사람이 이해 관계로 그럴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알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보다 수입이 더 많은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뭐, 아이들 말로 아주 금을 캐는 노다지 구덩이를 발견했다 할지라도 그 수입보다 하나님 말씀 알고 그대로 행하는 수입이 더 큽니다. 어떤 사업가가 아주 큰 회사를 경영을 하는데 그 직공이 수천이나 수만이나 되는 그런 큰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데 그 회사를 제가 경영하는, 그 경영하는 그 수입보다 하나님 말씀을 알고 그대로 실행하는 수입이 비교할 수 없이 큽니다. 많습니다.
이러니까 세상에 어떤 사람이 어떤 활동을 한다 할지라도 그 천하에 제일 잘나고 아주 실력 있는 어떤 사람이 활동하는 그 활동 수입보다 못난 것이라도 하나님 말씀을 아는 대로 그대로 실행하는 수입이 더 큽니다. 이거 인정이 됩니까? 사람들이 아주 뭐 서민들로 말하면 요새 임금이 비싸다고 말하지마는 하루 노력하면 어떤 사람은 몇 만 원 받고 어떤 사람은 몇 천 원 받고 그저 어떤 사람은 또 몇 천 원도 안 되는 그저 몇 백 원 배고 그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루 일해 가지고. 가내공업 하는 사람들 집에서 하는 사람들 보면 하루 종일 손을 부지런히 놀려야 육백 원 수입이 된다고 그렇게 말합디다. 아주 능숙해지면 천백 원이나 이백 원 수입이 된답니다.
그 사람들보다, 그러면 수입 많은 사람들은 아주 대사업을 해서 회사를 몇 십 개를 가지고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무슨 돈을 가지고 돈놀이로 무슨 뭐 증권을 하든지 채권을 사든지 뭐 이래 가지고 이 사람들이 활동을 해 가지고 벌이를 하는데, 천하에 제일 수입 많은 사람의 그 수입보다 아주 못난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알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그 수입보다 뭐 몇 천 배 큽니다.
또 한 마디 할까요? 믿음 없이 천하에 인간이 하루 열심히 노력한, 천하 인간의 열심히 노력한 그 노력한 그 수입보다 못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알고 그대로 행했으면 그 행한 그것이 수입이 큽니다. 천하 인간이 수입한 것보다도 그 수입이 큽니다. 이 말이 맞아요? 너무 과장한 말이오 맞는 말이오? 믿음 없이 온 천하 사람들이 오늘, 오늘이 며칠입니까? 십이일? 십 일일. 천하 사람들이, 믿음 없는 천하 사람들이 오늘 십일일 온 세계에서 아주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벌이를 했습니다. 수입을 했습니다. 자기 명예 수입하는 사람, 뭐 돈 수입하는 사람, 권세 수입하는 사람, 별별 것을 다 했습니다.
그러면 그 천하 사람들이 노력한 그 수입과, 믿음 없는, 그 사람들의 노력한 수입과 못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대로 하루 종일 순종하고 실행한 그 수입과 그 수입의 중량을 비교하면은, 그 비중을 비교하면은 어느 것이 많습니까? 그 중량을 비교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왜 없어? 없습니다. 비교할 게 없어. 그거는 다 해 봤자 이것의,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킨 그것의 만분의 일도 안 돼. 천하 인간들이 다 노력해서 뭉쳐 놓은 거라도 아주 못난 무능한 자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대로 그날 종일 순종하는 행위를 한 그 수입의 억만분의 일도 안 돼요. 억억만분의 일도 안 돼요. 이게 믿어집니까? 이게 믿어져요? 믿어지면 그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이게 믿어지는 사람들은 믿음 없이 천하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보고서 아주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요, 허무요, 또 그것을 가치를 평한다고 하면은 썩은 것들이라. 썩은 그게 뭐, 이거는 거름에도 쓸데없습니다. 이 썩은 것은.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지극히 작은 의가 천하에 사람들이 노력해서 모은 그 모든 수입보다 비교할 수 없는 큰 수입이다 하는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신앙 행위를 양보하지 않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왜정 말년에 감옥에 갇혀서, 그때는 양식이 어려워서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그저 요 콩깨묵 꼭, 나는 보지는 안했는데 솔방울 꼭 작은 솔방울 한 개만치 준답니다. 그러니까 그거 먹고 못 견디니까 전부 영양실조로 마구 죽어 나갔습니다.
이랬는데 이 손 목사님이 조그만한 솔방울만한 콩쪼가리를 들고 그가 말하기를 '이 밖에 믿음 없는 사람들의 살찐 소 수천 마리를 삶은 그 영양보다 이 영양이 크다.' 그분이 그렇게 말한 것을 내가 직접은 듣지 안했는데 뭐 책에 기록했다 말을 내가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그 가치성을 알았으니까 어떤 것을 가지고도 바꾸지 안하고 양보하지를 안했던 것입니다. 요걸 우리가 자꾸 믿어야 돼요. 자꾸 따져봐요, 쉬운 말이지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자 듣는 자가 복있다 하는 것은 읽고 들은 것만으로서는 행하지 안하면 복이 아니라 화가 됩니다. 복있다 말은 읽고 듣고 행하기 때문에, 행하기 때문에 읽은 것도 복있는 데에 거기에 필요한 요소가 됐고 들은 것도 요소가 됐지 행하지 않으면 그건 전부 화가 되고 맙니다. 아는 것만은 화가 되고 알고 행할 때에 그 행하는 것은 믿음 없이 천하 사람들이 움직이는 그 움직임 전부보다도 가치가 크고 높습니다.
또 이 말씀을 듣고 행하면 그 행하는 자체가 이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 없는 하나님과 관련 없는 천하 인간의 행동 그 전체보다 가치가 크고 중량이 무겁고 복덩어리가 됩니다.
이러니까 그 자체도,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자기가 실행하면은 실행하는 그 실행을 뭘 실행했던지 실행하는 그 자체 그것도 이렇게 가치가 큽니다. 하나님과 관련 없이 믿음 없이 행한 천하 사람들이 행한 것을 다 뭉쳐 놔도, 천하의 사업가들이 한 것을 다 뭉쳐 놔도 그것은 다 썩은 것이요 죽은 것이요 하나의 가치도 없습니다. 죽는 가치 있고 썩는 가치 있지 완전한 가치나 썩지 않는 가치나 사는 가치나 영원히 자기에 필요한 가치는 하나도 털끝만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알고 난 다음에 이행하는 것을 뭣 때문에, 이 수입이 적어서 행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 행하지 않습니다 어짜든지 이번에는 꼭 행하도록 합시다.
또 그 자체가 그럴 뿐 아니라, 그러면 행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 그거 뭐 불택자는 다 그라다가 지옥 갈 사람이니까 말할 것 없지마는 택한 하나님의 백성들로서는 그 사람의 영과 육, 금생과 내세, 영과 육 금생과 내세에 자기에게 유익되게, 자기에게 복되게, 자기에게 생명이나 소유나 모든 데 대해서 유익되게 복되게, 자기 영광이나 권세나 지위나 명예나 뭐 어떤 데라도 자기에게 유익되게 하는 거, 금생에나 내세에 유익되게 하는 거, 금생도 유익하고 내세도 유익하고, 육에도 유익하고 영에도 유익하고, 자기에게도 유익하고 자기와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도 유익하고, 이렇게 전부에게 금생, 내생, 영육 자기 자기에게 소속한 자들 그것을 복되게 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유익되게 복되게 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 뭐입니까? 하나 뭐이요? 여기 이름이 뭐 이더라, 저 주일학교 반사? (이 말씀을 아는 대로 실행하는 것) 그 외에 또 있어? 그 외에 없어. 우리 마음이 강퍅해서 이것을 자꾸 이라는데 우리 마음을 강퍅한 것을 자꾸 갈아서 내가 또 따져보고 또 생각하고 생각해 가지고 자꾸 그래서 내가 자꾸 생각하면은 이제 차차 차차 그것이 밝아지고 바로 알아지게 됩니다.
알아져서 어짜든지 서슴지 안하고 말로 지식으로 자기의 영육과 금생 내세에 복되게 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주의 말씀 알고 그대로 행하는 것밖에는 없다, 지식으로 이래 알고, 지식으로 알고 내 속에 실지로 느껴져서 하나님 말씀 행하는 것을 저버리고 딴것을 하는 그것은 자기에게 그거 손해가 가는 것이고 다 허무한 일이라서 할 수 없는 친 사람이 되어지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도 불을 몰라요. 또 이거 뭐 독약 먹으면 죽을 줄 몰라. 몰라도 그 아이를 '봐라. 이거 지금 이거 먹으면 죽는다.' 자꾸 죽는다고 이거 독하면 죽는다 죽는다 하고서 또 그라다가 안 되거든 다른 뭐 버러지나 한 마리 갖다 놓고서 '봐라, 이거 먹여 볼 터이니까 죽는가 봐라.' 먹여 보니까 그만 쭉 뻐드러져 버립니다.
어짜든지 이래 가지고 그 아이에게 이 독약을 먹으면 죽는다는 그걸 알리고 알리고 자꾸 인식을 시켜 알려서 그 아이에 자기의 주관적 지식이 되고 본능 지식이 돼 버리면 그 아이는 그 약이 있을 때는 그거는 누가 억지로 먹일라 해도 힘이 있는 한 그거 먹으면 죽는 줄 알기 때문에 안 먹을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요대로 실행하는, 요 실행하는 것이 수입이 크다, 뭣보다도 크다. 자꾸 이것을 되풀이합니다. 또 그뿐 아니라 영육에나 금생 내세나 자기나 자기에게 소속한 자들을 자기가 아무리 복있게 할라고, 내게 속한 자들을 복있게 할라 하면은 '내가 땀흘려 돈을 벌어 가지고 공부를 시켜 줘야 되겠다.
또 얼마 재산을 물려 줘야 되겠다.' 네가 오만 노력해 가지고 공부 지식을 통달하게 했고 또 큰 재물을 다 유산으로 넘겨 주고 해도 네가 하나님 말씀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만치 그 자손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 유익을 주지 못해요.
말씀 어기고 그 한 것은 전부 그게 망한 것이고 다 저주받는 것이고 다 헛일입니다.
이런데 이걸 우리가 믿지 안해, 자꾸. 믿을라고 애를 쓰지 안해. 이런 소리를 자꾸 하면 미친 사람의 소리로 알고 있어요. 자꾸 자기 혼자 '아' 처음에는 자기 혼자, 자기가 말해도 자기를 미친 사람 자기가 자기를 봐도 미친 사람같이 좀 비정상같이 보여집니다.
'내가 주님 말씀을 아는 대로 실행하는 이것이 하나님 모르는 사람 천하 사람들이 다 모은, 오늘 노력해 가지고 모은 모든 것보다 크다.' 이라면 그거는 어리석은 소리 같지만 자꾸 그랍니다. 내가. 자기 혼자 자꾸 자문 자답으로 자꾸 해요.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알고 아는 대로 하나 실행한 것이 천하에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이 실행한 것 다보다 크다. 한 시간 실행하는 것이 천하 모든 사람들의 한 시간 노력의 실행한 것보다 크다. 내가 하루 지킨 이것은 천하 인간들이 다 하나님 없이 노력하고 애쓴 그 전부보다 크다.' 자꾸 이걸 말합니다.
또, 내가 금생과 내세에 나를 복되게, 복되게 부자되게 평안하게 영광스럽게 하는 건 뭐이냐? 한 길뿐이다.' '무슨 한 길이냐?' '하나님 말씀 아는 그대로 행하는 요 한 길뿐이다.' 자꾸 이 말을 합니다.
이래서 우리 마음에 강퍅한 것을 자꾸 그 속에 말씀으로 발굴하고 발굴하고 아무리 베쪼가리가 그거 먹물 같지도 않은 그냥 옅은 물이라도 자꾸 칠하고 칠하고 하면은 깊이 박여서 물이 듭니다.
이러니까 이와 같이 우리의 강퍅한 마음이 하나님의 도를 믿지 않는 것을 자꾸 믿도록 만들고 믿어지도록 만드는 이것 때문에 과거에도 '네가 하나님 말씀을 이 눈썹가에 붙이라. 팔목에다 달아라. 또 문설주에도 달아라. 네가 오르고 내릴 때 옷에도 이 하나님 말씀을 달아 가지고 다녀라.' 자꾸 하는 것은 이 말씀이 자기 속에 믿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하나님의 도리를 알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보다 더 큰 수입이 없고, 또 그 수입은 자기만 그럴 뿐 아니라 그 믿음 없는 사람 모든 천하 인간들 다 노력한 것보다 자기 수입이 크다는 것 이걸 자꾸 말을 해야 되겠습니다. 노아 때에 모든 학자들이 학을 연구하느라고 아주 참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학을 연구하고, 또 어떤 발명가들은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뭐 발명할 것을 연구를 하고, 과학자들은 전심 전력 기울여서 과학을 연구하고 또 정치가는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모든 것 하고, '이렇게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하는 이것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 알고 행하는 이 한번 행하는 것이 이게 중량이 더 크다' 이것을 자꾸 말을 해서 우리 속에 배도록 해야 됩니다.
이런데 우리가 말씀을 알고 이대로 안 행하는 것은 수입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행하지 안하고 또 이 행할라고 하니까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그거 행하면 네가 이런 손해간다' 이러니까, 왜 말씀대로 지키고 행하지 못하느냐? 못 하는 것은 마귀란 놈이 손해가는 것을 보이기 때문에, 손해간다 그 계산이 그래 되기 때문에 말씀대로 행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우리는, '천하 인간이, 믿음 없이 하는 천하 인간이 노력한 모든 노력한 그 수입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 한 마디 지켜 행한 것이 수입이 크다' 이것을 자꾸 말합니다. 그러면 이 말이 틀립니까 맞기는 맞습니까? 여러분들의 지식으로서는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언제 가면 맞습니까? 결말에 가면 맞아, 결말. 결말이 좋아야 돼요.
온 노아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마구 열심히 분투 노력하고 이라니까 모든 사람이 부러워서 '아따, 아무것이는 저렇게 올라갔다.' 이래 부러워하는 사람들 많았고 자랑하는 사람들 많았고 모든 사람들이 분망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노아를 모두 조롱하면서, '이 영감탕구 지금 이런 수입 좋을 때 수입을 하든지 또 뭣도 하는지 이라지 빼뻐 말라 가지고 먹을 것도 없이 그래 가지고 자꾸 배 모은다고 하고 있느냐?'고, 조롱도 하고, 여덟 식구뿐이니까 온 세상 사람에게 훼방을 굉장히 들었을 것입니다.
그거는 기록돼 있지 안하지마는 아마 노아는 그랬을 것이오. 나무 쪼가리를 하나,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몇 치로 끊어라, 몇 치로 끊어라.' 고 몇 치로 끊으면서 모든 사람이 조롱하는데 '요 나무판은 거 쪼갱이 손바닥만한 쪼갱이 요거 몇 치로 끊는 이것이 오늘 천하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 떠나서 노력하고 있는 그것보다도 댓가도 크고 이게 또 가치도 더 크다.' 이렇게 봤을 것이오.
이러니까 온 천하와 자기가 배 모으면서 한 쪼가리 붙이는 것, 또 구멍이 있으니까 뭐 못을 뚫어 구멍을 막는 거, 못구멍 막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천하게 보지마는 '못구멍 요거 하나 있으면 나중에 가서 바다의 물이 못구멍으로, 무거운 걸 실었는데 못구멍 하나만 있으면 그 못구멍으로 물 나오는 것이 그게 어북 세게 나오겠소 칼같이 나오겠소? 세게 나올까 그냥 그저 퐁퐁퐁 솟아오를까? 예? 세게 올라요.
이러니까, 요거 하나 막는 것이, 앞으로 홍수가 났을 때에 그때에 이게 내 생명과 소유와 이 전체를 다 삼켜서 멸망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가치를 여기기 때문에 그 하나도 마지지 안하고 다 행할라고 애를 썼습니다.
여기 보니까 22절에, 창세기 6장 22절에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준행하였더라' 이러니까 하나님이 보고 다 준행했다고 할 만치 하나도 빠지지 안하고 했지, 그 가치를 그렇게 여기기 때문에 이제 물 한 방울도 새지 안하도록 해 가지고 노아 홍수 심판에서 심판을 이겼지, 이렇게 가치 있는 줄 모르고 '이거 뭐 구멍 하나 막는 거 이게 이게 힘이 너무 많이 드는데 그 힘이 많이 드는데 그거 하나 잘못 막아 놓으면 이제 자기와 그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생명이 다 끝나는 줄 알기 때문에-못구멍 이게 바로 생명이다. 이거 잘못 막으면 내 생명 끊어진다.' 이러니까 못구멍 막는 그것을 자기 생명보다 가치가, 생명과 가치가 같다고 이래 봤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기울여서라도 그거 막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번들번들 읏을 입고 아주 부자 가지고 '아무 부자, 아무 사장, 아무 학자, 아무 왕, 대통령' 이래가지고 막 자기네들이 축하한다고 떠들고 온 세계가 벅적벅적 하는데 노아는 그가 볼 때에 그거 전부보다 노아가 방주 모은 것이 더 크다고 자기가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미혹받지 안하고 담대히 했습니다.
또 그가 그런데, 그것은 다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그 똑똑히 알았기 때문에 거게 미혹을 받지 안하고 끌려가지 안하고, 조롱을 할수록이 그 사람들 위해서 기도하고 안타까왔지 자기 불행스럽다는 거 느끼지 안했습니다. 요렇게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해 놓지 안했습니까? 읽고 듣고 행하는 자가 복있다 하는데, 자, 읽고 듣고 행하지 안하면, 읽고 듣고 하는 것이 무슨 복입니까? 행하지 안하면 읽고 듣고 안 그것이 자기를 저주하고 하나님이 도리어 진노해서 용서도 받지 못한다 했는데. 이러니까 읽는 거 듣는 것은 행할 수 있는 그 지식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보배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행하는 것이, 행하는 것이 돈벌이보다도 낫고, 공부하는 것보다도 낫고, 연구하는 것보다도 낫고 모든 것보다 다 나아. 이 말이 뭐이 과장된 말입니까? 모든 것보다 다 나아. 그 자체도 낫고 그것이 응용되는 데도 다 나아요. 응용되는 데도.
이걸 알면은 이 아는 대로 행하지 못할 게 뭐 있겠습니까? 아는 대로 행하지 못할 게 없는데 이 아는 대로 행할라 할 때에 거게 방해하는 마귀가 '그거 행하는 것보다 이 게 수입이 더 크다. 행하는 그거는 손해간다.' 이해를 따지기 때문에 이해가 행하는 것이 손해가고 행할 그 기회에 행하지 안하고 달리 하는 것이 수입이 많다 하기 때문에 다 그리 가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우리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알고 행하는 이것의 가치가 백 원보다 가치가 크다 하는 사람은 백 원과 서로 겨루게 될 때에는 백 원을 손해보고라도 행할 것이오. 이 행하는 것. 이 백만 원보다 가치가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백만 원 이해 문제가 있을 때에 백만 원을 수입을 보지 못해도 행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대로 행하는 데에는 악령이 하지 못하게 이렇게 방해할 때에, 방해할 때 그들이 '여기 네가 행하는 그것이. 자. 네가 행할라면 행해라. 행하면 내가 네게 대해서 무슨 손해를 보이겠다, 무슨 손해를 보이겠다.' 그러면 마귀가 손해를 보일 때에 '너 그대로 행하면 내가 죽인다' 할 때는 다른 때는 다 행하다가 죽인다 하니까 행하지 못합니다 죽인다 하니까 그만 안 죽기 위해 행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 행할 때에 죽인다 하니까 행하던 것이 중단되는 것은 그 행하는 것의 가치와 죽는 것과 두 가지를 비교해 보니까 어느 것이 가치가 크다고 생각할 때에 행하던 것을 그만 버리고 이제 행하는 것을 하지 안하고 다른 것을 행하겠습니까? 그때는 자기가 행하는 것에 그 가치를 만일 죽음보다 자기 생명보다 가치가 적다고 이렇게 생각을 가졌으면 그 사람이 그걸 죽는 그런 대적이 와 가지고 어려움이 있으면은 그 행하는 걸 중단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예? 중단하겠소 안 하겠소? 중단해요. 그렇지 안 해요? 자기 생명이 그거 행하는 것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할 때는 생명 뺏길 지경이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행하던 것은 버려야 될 것 아닙니까? 버리면, 노아가 방주 모을 때에 다 준행하지 안하고 나무쪼가리 하나만 안 댔습니다. 하나 안 댔으면 그거 하나 안 댄 그것 가지고 그 배가, 배가 구원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것을 안 노아는, 그때는 자기 육의 생명이 걸린 것이기 때문에 생명과 비교하면은 혹 죽을 지경에 생명을 내놓고, 생명을 뺏들라 하면 배 모으는 걸 중단할란지 모르지요. 그러나 노아가 똑똑히 알았다면은 '내가 살기 위해서 배 모으는 걸 중단을 이렇게 하면, 살기 위해 배 모으는 걸 중단하면은 내가 살면은 어떻게 살겠느냐? 내나 홍수 심판에 죽기는 죽는다.' 이러니까 생명 문제가 와도 그는 배 모으는 것을 양보하지 안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 준행하게 됐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 말씀을 알고 실행하는 이것의 가치를 아는 것이 이게 중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고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는 이 실행의 가치가 백 원짜리만한 줄 아는 자는 백 원짜리의 이해가 되면 해볼까 말까 그럴 것이요, 천 원이 되면은 아예 그 행하던 것 버려 버리고 천 원 손해 안 보고 천 원 수입을 따라갈 것입니다. 어떻게 평가하느냐?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을 알고 이대로 행하는 것이 어떤 그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 이 가치관을 바로 알아서 이 가치가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보다 가치가 큰 것을, 크다고 여기면 소유와 몸과 생명을 거게 투자할 것이고 그거는 손해볼지라도 이행하는 것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을 아는 대로 실행하는 그 실행을 어떤 사람은 실행하는데 백 원 문제가 있을 때에는 그만 실행하는 걸 중단하는 사람, 어떤 사람은 백 원 문제 할 때는 '아니, 백 원이 손해가도 이거 순종하는 걸 중단하면 안 되겠다.' 하는 사람, 차차 올라가서 천 원 되니까 떨어지는 사람, 만 원 되니까 떨어지는 사람, 백만 원 되니까 떨어지는 사람, 자기 재산 전부 다 하니까 재산 다보다는, 재산 다보다는 이 행하는 이게 낫다고 평가되지 안하면은 버립니다. 행하는 것 버리고 재산 그거 다 거석할 것이라.
이 사람은 재산을 다, '내 소유가 다 없어지는 것보다도 이 행하는 것이 더 크다.' 이 가치를 깨달은 사람은 소유를 다 없애도 행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그 사람이 몸이 절단나면 '몸보다도 하나님 말씀 준행하는 것이 이것이 수입이 크고 이것이 더 크고 유익이 된다' 하는 사람은 몸이 희생돼도 실행할 것이오.
그러나 몸은 그랬지만 생명보다는 가치가 적게 생각하는 사람은 생명이 만일 죽는 그런 지경이 되면은 생명 내놓고 이거 지키지는 안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생명보다 이 지키는 것이 가치가 있고 이 생명은 '이 말씀을 버리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큰 손해다' 하는 것은, 그렇게 평가한 사람이라야 생명을 내놓고 지킬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데 이런 데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 보지를 안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 듣는 자들과 지켜 행하는 사람이 복있다 하는 것을 입에만 익어서 줄줄줄 읽어 버리지, '자, 그러면 지켜 행한다면 지켜 행할라고 하면은 어떤 애로가 있겠느냐?' 지켜 행할라 하다가 자기는 아무 생각 없이 지켜 행할라 했는데 지켜 행할라 하다가 보니까 그만 학교에 공부를 못하도록 딱 정학을 당해 버립니다 그러면 그전에는 잘 지켜 행하던 아이가 학교 공부를 못 하게 되니까 그만 울면서 공부하기 위해서 말씀대로 순종하던 것을 버립니다.
그럴 것 아니겠어? 이런 걸 자기가 조그마치라도 지켜 행해 보면은 알 수가 있을 건데 지켜 행해 보지 안했기 때문에 거기 대해서 아무 뭐 애로나 실감이나, '뭐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 듣는 자 지켜 행하는 자가 복있다 지켜 행하면 되지' 이렇지 지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며 그 지켜 행하는 것을 그 가치를 얼마나 가치로 여겨야 된다는 데 대해서 하나도 느끼는 게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 구원이 참 낭파는 낭파입니다.
내가 며칠 전에 그말 들었는데 그 사람이 아들이 뭐 서인가 있는데 나한테 말하기를 '이거 다 왜정 말년에는 그때 신사참배 때문에 공부 하다가 공부 안 하고 다 그만 정학하고 퇴학당하고 그래 가지고 공부를 못 해서 못했었습니다.
이래도 해방 후에 공부했는데 그래도 그때 공부한 사람보다도 출세는 더 높이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말씀대로 지켜서 주일날은 공부 안 한다, 주일날은 공부 안 해야지. 안 해야 되는데 안 하는 사람들이 공부를 안 하는 손해와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손해와 그 두 손해가 만일 공부 안 하는 것이 손해가 크다고 생각하면 그 학생이 공부를 하겠소 말씀을 지키겠소? 공부하지. 말씀 어기는 것이 손해가 크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뭣 하겠어? 말씀 어기는 것이 공부 못 하는 것보다 손해가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아이가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공부를 안 하겠소 하겠소? 안 하지. 자꾸 내가 물어 쌓아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는 모양이라.
이러니까 사람은 평가에 있습니다. 네가 어느 정도 가치를 두느냐? 어떻게 평가하느냐? 이러니까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켜 행하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 이라는데 지켜 행하는 것이, 지켜 행하는 것이 주먹덩이만치 어려운 사람은, 어렵다고 여기는 사람은 주먹덩이만치 준비할 것이고, 또 어려운 것이 이 집채만치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말씀을 지킬라면 집채만치 준비가 돼야 지킬 것이고, '이 말씀 지키기는, 지키기는 자기의 생명이 사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런 사람은 생명이 죽어도 이 계명을 지키도록 그렇게 준비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안해요? 내가 하는 말이 뭐 통해지는지 모르겠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대로 지켜 행하는 그것의 가치가, 가치가 백 원짜리만 할 때에는 구십 원까지는 지키지만 백 원 손해갈 판이면 왔다갔다 이래 볼까 저래 볼까 할 것이오. 지키는 그것의 가치를 유익을 자기 재산 전부와 동등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자기 재산 전부를, 이 계명 지킬라면 전부를 다 내놔야 되는 그런 단계를 하나님이 만든다 그말이오. 다 내놔야 되고, 또 재산을 자기 재산을 전부를 버기지 안할라면 이 계명을 내놔야 되고? 두 가지로 그런 환경을 닥쳤을 때에 그 사람이 어디다가 가치를 두고 중량을 두느냐 한 대로 그 사람의 행동은 기울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복있습니까 안 지키는 게 복있습니까? 지키는 게 복있소? 지키는 게 복있는데, 말씀대로 지키는 게 복있는데 이 지키는 것을 그러면 백 원짜리 가치만치 지키는 게 복있소 천 원짜리만치 지키는 게 복있겠소? 자기 생명보다 가치가 크다고 자기가 깨달아서 생명을 빼앗겨도 계명 지키는 건 뺏기지 안한 수 있는 그 사람이 셋이 있습니까. '그럴 때에는 생명을 뺏기며 지킬 필요가 뭐 있느냐? 이러니까 그럴 때에는 생명이 살기 위해서 지키는 것을 내놔야 되지.' 그런 사람이 복이 있겠습니까? 자 백 원짜리가 복있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데 백 원짜리가 복있소 천 원짜리가 복있소, 자기 소유와 몸을 다 내놓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겠소.
생명까지 다 내놓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겠소? 어떤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말씀 지키는 것을 '십 원 손해갈 때에 지키지, 뭐.' 이십 원 손해가면.
'아이구 내가 이십 원 손해보고는 안 지키겠다.' 그러면 말씀 지키는 것의 가치를 십 원짜리만치 알고 있는 사람이 복있겠소. 만 원짜리만치 알고 있는 사람이 복있겠소, 자기 생명만치 알고 있는 사람이 복있겠소, 자기 생명보다 말씀 지키는 게 가치가 더 크다고 아는 사람이 복있겠소? 어떤 사람이 복있습니까? 한번 손 들어 볼까요, 또 거짓말 또 시키도록. 하나님의 말씀 자기가 아는 대로 지키는 그것이, 지키는 그것이 생명보다 가치가 무한히 크다고 이렇게 확실히 믿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거 다 드는데. 맞기는 맞습니다 맞기는 맞소.
그런데 실지를 당해 놓으면. 저울을 딱 가지고 말씀 지키는 거 여기 놓고 여기다가 이 사람 믿음은 백 원을 놓으니까 반반합니다. 요리도 안 가고 요리도 안 가고 치우치지 않고 요래 양쪽이 같소. 백 원에다가 십 원을 더 놓으니까 그만 말씀 지키는 것이 가벼워서 훅 올라가 버리고 이게 무겁습니다. 그 사람은 이 말씀 지키는 것을 백 원만치만 가치 있게 알았지마는 백십 원만치는 가치 있게 여기지 안하기 때문에 백십 원 이해 관계 있을 때에는 말씀 지키는 것을 양보해야 되는 것이오.
그런데 이 말씀 지키는 것이 자기의 생명보다 소유보다 몸보다도 가치가 이렇게 큰 것으로 인정을 하는 그 사람은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그라면 하나님께서 시험해 봅니다. '네가 정말로 이놈아, 내 말, 계명 순종, 내 계명 순종하는 것을 네 생명보다 가치 있다고 네가 발람 선지 모양으로 자꾸 이랬 쌓았는데 보자.' 하고서 하나님께서 만든다 말이오.
이래서 말씀 지킬라 하면 생명 내놔야 되고 살라 하면 말씀을 내놔야 되고 그렇도록 그런 환경을 주님이 잠깐 만들어. 주님이 만드는데 잠깐 만드는데 주님이 그걸 만들어.
만들어 보니까 이게 생명을 거석한다 해도 뭐 오히려 생명 바쳐서 말씀 지켰으니까 생명을 말씀 지키는 데 투자했다 하니까 좋아서 벙긋거리고 요동치 안해. 그러면 합격됐어요 안됐어요? 합격됐어. 그렇지 안해요? 합격되지 안했어요? 자,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생명이 우상이 돼서 생명 때문에 죄짓지 안할 사람이니까 그 사람은 생명을 풍부하게 줘야 되겠소 생명을 뺏들어야 되겠소? 그 사람은 생명 가지고 죄 안 지을 사람이니까 생명을 얼마든지 줄 수가 있어.
돈 가지고 죄 안 지을 사람은 돈을 얼마든지 줍니다. 돈을 백 원 가지고 죄 안 짓고 살상바르면 백 원 주고, 이렇지만 돈 만 원만 주면 이거 죄짓겠다 싶으면은 한 구천 원 주지 만 원 안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저에게 유익될 정도로 주지 자기를 손해보일 그런 정도로 안 준다 그말이오.
이제 하나만 시험 문제 내고 맙니다. 자, 그러면 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과 같다' 했는데 주의 말씀을 읽고 듣고 해 가지고 읽고 들어서 아는 대로 실행하는 이 가치를, 실행하는 가치를, 그 실행하는 가치. 말씀 지키는 가치가, 말씀을 지키는 가치가 백 원짜리가 되는지, 천 원짜리가 되는지, 만 원짜리가 되는지, 일억짜리가 되는지, 말씀 지키는 그 지킨다는 그것의 가치가 얼마짜리가 되는지 하는 그 가치를 아는 방편이 뭐입니까? 그 가치를 아는 방편이 뭐이요? 여기 OOO집사님 있으면 내가 한번 물어볼 건데 안 보이네.
말씀을 지키는 것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적은지 하는 그것을 가치를 자기가 알라고 하면은 어떤 사람이 돼야 가치를 알게 됩니까? 어떻게 하면 가치를 알게 됩니까? 우리 장로님들 한번 물어 볼까? 목사님들 한번 물어 볼까? 그 뭐입니까? 자, OOO장로님 한번 물어 보자. 실행해 보면? 그 답안이 맞소 안 맞소? 실행해 보면 압니다. 실행해 보기 전에 모릅니다.
실행해 보니까 '이거 믿음을 지켜서 말씀대로 실행할라 하니까 돈이 백 원 문제가 생겨지네.' 이러면 그때 따져보고 '아이구 그거 아무래도 내가 백원이 손해가도 말씀을 지켜야지.' 이러니까 백 원보다는 가치 있는 믿음을 가지게 웠습니다.
그라고 나면 그다음에 또 하나님께서 이제 천 원 이해 문제가, 만 원 이해 문제가, 마지막에는 자기 소유 이해 문제가, 자기 몸뚱이 감옥에 끌고 가는 몸뚱이 문제가, 자기 생명 문제가 이렇게 모든 것이 다 연결이 돼서 연관이 되어져, 자꾸 실행해 보니까. 차차차 거게서 마지막에는 '내가 생명을 내놔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은 저버릴 수가 없다' 하는 그 사람이 돼집니다.
이러니까 실행해 보지 안하고는 알지 못합니다. 이 실행에서 배우지 안하면 몰라요. 이러니까 전부 모르고 있다 말이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 이라니까 입에만 줄줄 하지, 지켜 행할라고 하면은, 지켜 행할라고 하면은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지켜 행하는 것이 자, 인제 뭐 지켜 행하는 것이, 지켜 행하는 것이, 지켜 행하는 것이 온 천하를 얻는 것과 비교하면은 어떻습니까? 지켜 행하는 것이 온 천하를 얻는 것과 비중을 달면 어찌됩니까? 어떻소? 말씀을 지켜 행하는, 행한 그것이, 행하는 것이 온 천하와 비중을 달면 천하가 무겁습니까 말씀 지켜 행하는 그게 무겁습니까? 자, 여러분들이 지식적으로는 어느 게 무겁습니까? 천하가 무겁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이소.
말씀을 지키는 것이 더 중량이 귀하고 가치가 있다고 그렇게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 봐, 다 들기는 다 들어. 이러니까 면하지 못해요. 핑계를 못 해요.
핑계를 못 해. 그러나 실지는 모르거든. 아는 것 없고 모르는 것 없어. 알기는 다 아는데 하나도 똑똑히는 몰라.
지켜 행하는 것이 이것이 온 천하보다 가치가 크다, 자기 생명보다 가치가 크다 하는 이것을 아는 데 이 공부하는 것은, 그 공부하는 것은 도서실에 가서 해야 됩니까 신학 가서 공부를 해야 됩니까? 어데 가야 됩니까? 실행에서만 공부하지 딴데서, 실행에서 공부하지 딴데는 공부해야 몰라요.
자. 그 사람이, 신학은 하나도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말씀 지켜서 행하는 요 믿음 지키는 것이 천하보다 가치가 크다 해서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이나 자기의 천하도 다 말씀 지켜 행하는 이게 가치가 큰 줄 알기 때문에 거게다가 다 투자하고 그런 게 다 없어도 그걸 취할 수 있는, 온 천하보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요것이 가치가 크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 그러면 온 세계에서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요? 그 사람이 신학을 어느 정도 공부한 사람의 그 학식만치 실력이 있는 사람이요? 그 사람이 실력이 제일 있는 사람입니다. 제일 있는 사람이라.
목회는 이거라. 목회는. 주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이것의 가치가 온 천하보다 가치가 크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그만 유력한 목사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가 확실히 그런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인 것을 내가 확실히 안다면은 이제 국민학교도 졸업 안 해도 나는 그 사람 목사로 안수하겠어. 안수할 권리가 있어. 왜? 내가 목사이기 때문에 성경에는 목사면 혼자 안수할 수가 있어.
사람들 다 거절할 것이오. 그 사람은 가치 있어.
가치가 이제 믿음의 가치,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가리켜 믿음이라 하는데 믿음의 가치를 알아서 믿음의 가치를 백 원짜리만한 사람은 그 믿음이 백 원짜리고, 천 원짜리 믿음 가진 사람, 만 원짜리 믿음 가진 사람, 또 자기 직장만지 가치 가진 사람, 자기 생명 같은 믿음 가진 사람 생명보다 더 큰 믿음 가진 사람, 우주보다 더 큰 믿음 가진 사람. 믿는 대로 되리라' 그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하나님은 그것을 인간의 실력으로 봅니다.
인간의 실력이 뭐 입니까? 인간의 실력이 뭐이요? 인간의 지혜가 뭐이요? 인간의 지혜가 뭐 옥스포드 대학을 다 뭐 거석했다. 어데 동경제대를 어데 했다, 그것이 인간의 지식이요 지혜입니까? 인간에게 제일 좋고 제일 큰 지혜와 지식은 뭐입니까? 사람에게 제일 큰 실력은 뭐입니까? 사람에게 제일 큰 실력은 뭐이요? 어느 학교 졸업맡은 것이요? 그것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돼서 하나님의 지능을 자기 것 만드는 그 사람보다 더 큰 사람이 없어. 이거 공연히 거짓말 같지! 하나님의 그 지능을 자기 지능으로 만들어 가지고 밤낮 써. 자기 기능으로 만든 그게 뭐이요? 뭐 가지고 만드요? 하나님의 지능을 자기 지능으로, 만드는 것은 뭘 가지고 만드요? 저 빵장사 저 이름이 뭐이요 내가 이름이? 뭘 가지고 안듭니까? 뮐 가지고 만들지요? 뭐라 하노? 전달해 봐. 성경 말씀을 뭐 어짜는 거? 성경 말씀이 그리 가치가 커요? 믿음이야, 믿음.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거라 해야 돼 행하는 거.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거라 그래야 돼.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거 그 믿음 믿음은 하나님의 지혜를 내 지혜 삼고, 하나님의 능력을 내 능력 삼고, 하나님의 전부를 내것 삼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백 원짜리 가지고 그 되겠소 천 원 가지고, 되겠소? 만 원짜리 믿음 가지고. 되겠소? 믿음의 가치를.
믿음의 가치를 하나님 다음으로는 제일 가치 있다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이 그 사람이 하나님을 차지합니다. 과장한 말이라요? 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게 믿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이 믿음의 가치가 어떻게 되나? 믿음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믿음의 가치를 자기가 실지로 자꾸 연구해 가지고 '믿음의 가치가 이렇게 크다' 믿음의 가치를 점점 똑똑히 바로 알도록. 믿음의 가치를 바로 아는 그 공부하고 연구하는 방법이 뭐이요? 실행이라. 실행.
실행하면 못 믿구로 하는데? 못 믿구로 하면 어째? 못 믿구로 하는 데에서 믿음의 가치를 알아 가지고 못 믿구로 하는 데에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믿는 사람이 돼지고 믿음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어짜든지 우리 믿는 사람들은 아는 대로 행하지 안하는 데서 전부 망합니다. 아는 대로 행하지 안하는 데서 다 망하고 있어. 뭐 우리 믿는 사람이 능력 있는 것은 아는 대로 행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아는 대로 행하는 것이 능력 있는 거라. 나는 OOO목사님, 저거 가족들은 듣기 싫다 하는지 모르겠어. 하나님께 영광되기 때문에 말하는 거라. 영광이 되기 때문에 말하는데 이거 육덩이들은 듣기 싫어해.
OOO목사님이 내 동생인데 집이 패가가 되고 이래서 아흡 살 먹어서 남의 집 살러 갔어. 아흡 살 먹어서 남의 집에 일해 주고 밥 얻어 먹 을라고 갔어. 그 주인이 여기 있어. 주인이 여게 교회 나와요. 무슨 집사지? 지금은 그 사람들과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공부는 국민학교 일학년 마쳤는가 뭐 일학년 반 했는가 이랬어. 또 항상 오줌을 싸 이 궁둥이는 얼룽덜룽 그래 자지고 있어. 아홉 살 먹어서 남의 집 살러 갔지, 궁둥이 오줌을 싸서 얼룽덜룽하게 이렇지, 겨울에는 뭐 막 얼어 가지고 와드락와드락 이렇지, 그래도 일을 해 줘야 밥을 얻어먹지. 그 주인이 뭐, OOO권사 구역일 거라. 여기 동회 한 그 사람도 마누라 저거 친정집인데.
이랬는데 그 다른 것 없어. 그저 믿음 지켰어, 그래도, 군에 가 가지고도 받들어 총도 안 했어. '경례' 하는 거 '받들어 총' 하니까 군인들은 뭐 경례하면 총을 이래 받들어 이라는 것이 경례가 된다 말이오. 그것도 안 했어. 안 하니까 뚜드려 맞고 이래 해도 그래도 그거 믿음 지켰다고 그만치 하나님과 연결이 됐어. 그만치 연결이 됐으니까 지금은 뭐 대 대학 졸업해도 그 사람 지혜를 앞서지 안해요. 그 말하는 것 보면 대 대학을 졸업해도 지혜에 차이가 어림도 없어. 못 따라가.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이랬는데 우리가, 뭐 쉽소. 뭐 기술이 없어서, 재산 없어서, 지식이 없어서 뭐 어짜고 어짜고 하는 게 다 핑계입니다. 믿음 없어 절단입니다. 믿음이 뭐인데? 아는 대로 실행하는 그것이 믿음인데 아는 대로 행하지 안하는 거게서 절단나.
아는 대로 행하지 안하고 짜다라 돈을 많이 모아 놓고 뭐 지위 자꾸 올라가고 한다 하지마는 그것이 노아 때애 방주 밖에 있는 그건 사람들인지도 물라요.
믿음이 없는 부자, 믿음이 없는 가정, 믿음이 없는 지위, 믿음이 없는 권세, 믿음으로 되지 안한 것은 어떤 것이라도 그게 다 멸망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알고 요대로 실행하면 그만, 방해할 자도 없어. 실행만 하면 방해도 못 해. 아무도 방해 못 해요. 실행만 하면.
부자되고, 실행만 하면 높아지고, 실행만 하면 잘 나지고, 실행만 하면 지해되고, 실행만 하면 위대해지고, 실행만 하면 권위 있어지고 이래.
나는 어제 어떤 사람이 왔는데 나이가 뭐 서른 뭐 너이라든가. 뭐 서른 둘이라던가 이런데 시집을 안 갔다 해. 시집을 안 갔는데 뭐 얼굴은 잘나지는 안했어. 이런데 신앙 생활 한다 해. 나는 그래서 '하, 이거 시집도 안 가고 신앙 생활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이분이 어떤 정금덩이인갑다.' 싶어서 나는 그래 자꾸 이래 뭘 접하면서 '이라면 이분 이 우리가 벌로 못 볼 분인데' 이랬는데, 차차차 알아보니까 거기 또 내나 조금, 삐뚤어진 잡탱이 있어 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또 안 된다 그말이오.
참 바로 알고 요대로 실행만 하면은 못 따라갑니다. 바로 알고 실행만 하면 아무도 못 따라가요. 바로 알고 실행하는 데는 미운 사람이 암만 많아 아무리 방해해도 소용이 없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러니까 오늘 밤에 내가 지금 집회하고 와서 뮐 줄까 이랬는데 하나님이 이 말씀 해. 어찌 됐든가 알고 실행하면, 실행하면 이게 돈도 되고 실행하면 권세도 되고, 영광도 되고, 지위도 되고, 건강도 돼요. OOO씨 그 사람은 앉은뱅이라 일어서지를 못했어요. 못 했는데 다리는 쭉 펴여졌어요. 다리 온기가 돌아오고 힘은 좀 생겨졌어. 이래 서면 그전에 쭉 이래 뻐드러져 가지고 이래 발가락만 이라는데 이제 딱 서면 뒤꽁무니가 땅에 딱 대여. 곧 설거야. 하나님께서 그거 그건 이유가 있는 것 같애.
그래 내가 오늘 내가 변소가 앉았으며 생각했어. 변소 가서 앉아 생각하며 '그 어째 하나님이 그래 낫아 주지 안할까?' 이래 생각하니까 하나 생각이 나. 그 가족들이 전부, 남편은 잘 믿지마는 아이들까지 다 '너거 어머니 너거가 기도하지 안하면 안 되니까 너거가 예수를 잘 못 믿어 그러니까 예수를 잘 믿어라. 잘 믿으면 다 이제 너거 어머니도 나을 거다.' 요렇게 그뭐 아이들 말로 뭐 브래키가 뭐이 브래이키인가? 브레이키를 걸어놓는다 하던가 뭐. 요렇게 딱 해 놓으면, 낫기는 대번 나아요, 그라면.
낫기는 나을 것이고 낫고 난 다음에는 아이들이 조금 탈선이 돼서 믿음이 없이 돼지면 어머니가 '아이구 아이구 일어날라 하니까 힘이 없다' 하면 '아이구 어머니 저 병이 든 거 나 때문에 병이 들었네.' 그런 묘한 이 브레이크가 있는데 그걸 내가 말을 안 했다 그걸 내가 생각이 돼. 그래서 그거 내가 기도하면서 '내가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이랬는데, 낫는 착수는 했는데 그래요.
어짜든지 우리가 그만 알고 그대로 행하는 것은 이거는 뭐 부자방망이가 아니라 이거는 만 가지 성공 도가지요. 성공방망이라. 부자방망이 아이들 말 들으면, 옛날 말 들으면 이 뚜드려 '뚜드랑땅, 돈 나 요너라. 뚜드랑땅.' 하면 돈이 나오고, 또 '권세 나오너라, 뚜드랑땅.' 하면 권세 나오고, 또 원수를 보고 '원수 저놈 죽어라, 뚜드랑땡.' 하면 죽어 버리고 이거 부자방망이 능력방망이라 하는데 그거는 다 조작배기로 만든 말이지마는 정말로 아 믿음은 이거 전능의 방망이요. 전능의 방망이. 만 성공의 방망이라. 능치 못할 게 없어, 믿음은. 이러니까 그 믿음이 뭐 입니까? 아는 대로 행하는 그게 믿음이오.
이제 아는 대로 실행해서, 그뭐 짜다라 애써 쌓지 말고, 중우에 오줌이 찔찔 나오지 아홉 살 먹어 남의 집에 갔지마는 알고 행하니까, 아는 대로 행하니까 하나님이 그뭐 행하는 대로 다 행하지 안해도 그래도 좀 행했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주십니다. 그렇게 주셔.
나도 내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우리 뭐 친구간 되는 사람들은 벌써 죽어서 썩어서 오래 됐어. 이런데 나 지금 팔십인데도 이번에 집회 가서 인도하는 데 뭐 쩡쩡하게 인도를 하지, 또 가만히 생각하니까 나와 비교해 보니까 그뭐 그 사람들 참 비참해. 나도 비참했어. 믿음 없을 때는 비참해.
엊저녁에 지서에서 전화 오기를 '그 사람이 알콜 중독자인데 잊어 버렸는데 찾았습니까, 신고가 들어왔는데?' 열한시 되니까 전화가 와서 내가 전화를 받아 가지고 사람을 보내서 이래 뭐 찾고 해도 못 찾았어.
이랬는데 내가 그 소리를 들을 때에 '나도 예수 안 믿으면 알콜 중독자가 돼 가지고' 내가 그랬거든. 뭐 어데 가면은 꼭 술 먹으면 다 보내고 난 다음에 뒤에 자리 쓸고 나와. 그래 사지고도 뭐 집에 갈 수나 있나? 못 가지. 이러니까 사람을 품을 둘이나. 하나 가지고 안 돼요. 둘 사요. 이지 술취해 놓으면 냇물이고 뭐이고 막 드러누우니까 이거 혼자 가지고 되겠소? 둘이 이래 거머쥐고 손잡고 이래 가지고 이래 다녔으니까.
그라면서도. 그래 취해 가지고 그래 가면서도 가면서 속으로 울어. 가면 가 가지고 또 좀 못, 견디니까 변소에 가 게울라고 변소 가서 앉아 놓으면 밤새도록 가 울어, 거기서. 왜? 너무 인생이 허무해서. 인생이 허무해서 그게 발동이 된 모양이라.
'내가 이, 거 예수님 아니면 알콜 중독자가 돼 가지고 내가 지금 뭣이 됐을지 모르겠다.' 그대로에 한번 생각해 보면 참 비참할 터인데 이 믿음 하나 가지고 이리 됐어요. 여러분들! 학교서 정계에서 아무데서 준비 못 해도 주님 앞에서 믿음으로 준비하십시오. 믿음으로 준비하는 것은 절대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준비하는 것은 아는 대로 실행하는 것이라. 믿음은 거창서 우리가 많이 배우지 안했습니까! 인제 들어서 알았다 말이오, 안 대로 실행해요. 안 대로 실행하면 뭐 아무한테도 뒤떨어지지 안해요.
자. 이제 안 대로 실행할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새로. 손 놓고. 안 대로 실행할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느리게 드나? 막 간절해서, 이라면 뭐 마귀 다 절단나고, 누가 뭐 시비할 것도 없어. 그만. 앞에 쑥 커올라가 버리면 되는데 뭐 시비할 거나 뭐 있어야지? 욕하거나 말거나 내비두고 그만 자꾸 커올라가면 뒤에 따라오지도 못할건데.
자. 아는 대로 실행할 사람 손 들어 봐요!!! 됐다. 됐어. 이제 이랍시다. 이거면 돼요! 딴데 가지 말아요, 뭐. 공연히 그런 데 가는 것 그거는 굼벵이 모양으로 구불러 가는 것이고 아는 대로 실행하는 이거는 날아가는 거라, 날아가는 거. 훅 날아가 버려, 그만. 그런 거 몇 십 년이나 해 봤자 찍해야 요만치밖에 못 올라가는 거, 아는 대로 실행하면 날아서 쑥 올라가 버려. 이게 믿음의 비밀인데.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