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6 12:46
성탄-전도지
1988. 12. 18. 주일오전
본문: 이사야 9장 1절∼7절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요사이는 세계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십이월 이십 오일을 성탄 기념일로 정하고 세계가 다 공통되이 기념 축하를 합니다. 이십오일이 주님이 성탄하신 날이 아니고 그 날을 성탄 기념일로 정하신 것입니다. 이런 기회를 타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데 대한 약간을 증거할려고 합니다.
6절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신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이렇게 권위를 가지신 한 아기가 난 이 아기는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가 예수님이 나시기 칠백 년 전에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이보다도 창세기 3장 15절에는 예수님이 나시기 사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예약 선포하신 것을 그후 선지를 통해서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역사 세계에 예언으로 나타나신 것은 나시기 사 천여 년 전에 예언하셨고 또 그후 하나님의 백성들이 장기간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마다 간혹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서 예수님이 탄생하실 것을 예언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소망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늘을 미혹시켜서 더럽히려고 시작했던 악마가 하늘나라에서 이루지 못하고 쫓겨나서 세상으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세상에 내려와서 인류 시조 아담에게 가서 아담을 유혹시켜 자기의 왕권을 세워 볼려고 시작했는데 그때에 마귀가 배암의 형상을 입고 나타나 가지고 하와를 미혹시켰습니다. 하와가 미혹받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영원한 원수가 되고 그 장벽이 막히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사랑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만든 것은 사람밖에 없는데, 우주에나 영계에나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피조물은 사람뿐입니다. 천사도 아니요 모든 만물도 아니고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영육으로 만드셨는데, 하늘의 천군 천사를 유혹시켜서 죄악의 왕국을 만들려고 하다가 거게서 발각되어 쫓겨나서 세상에 들어와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은 그때에 하나님이 지으신 이 물질계라는 우주의 모든 것을 하나님 대리 주인으로 만물의 영장으로 위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사람을 유혹시켜서 정복한다면 이 물질계 우주는 완전히 저가 점령하게 되는고로 악령이 인류 시조에게 도전해 가지고 하와는 그 유혹에 빠져서 범죄했습니다.
그 범죄함으로 공의의 하나님은 범죄한 것을 멸하지 아니할 수 없고 범죄한 것에게 축복이나 은혜를 베풀 수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하나님의 성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범죄한 대로 모든 우주의 영장인 사람이 범죄함을 인해서 우주는 저주받게 됐고 우주 안에 있는 모든 만물들도 다 저주받게 됐습니다.
그래서 만물과 그 영장인 인류와는 대적이 되어졌고 또 하나님의 형상인 인류와 하나님과는 대적이 되어져서 완전히 사망의 세계가 되어졌습니다. 그러면 이 사망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를 보고 멸망 가운데 둘 수 없어 구원하시고자 하나 이미 범죄했으니 구원하는 길은 죄를 없애는 것이 첫째 문제요 다음에는 의를 가지게 하는 것이 문제요, 이 두 가지가 구비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하나님의 그 무한과 충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다 줄 수 있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충만을 받아 가지고 모든 영계나 물질계의 피조물들에게 이 은혜로 충만케 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공의에서 죄를 멸하는 데에는 죄는 형을 받아야 그 죄가 없어지지 형 외에는 죄가 없어지는 길이 없습니다. 또 인간이 범죄한 것은 인간이 형을 받아야 되는 것이지 인간 범죄를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피조물로 그 형을 대형할 수 없고 또 인간을 탁월한 그 어떤 신으로도 그는 대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이 죄에 대한 이 문제를 없애는 것은 죄의 댓가인 형을 받아서만 없앨 수가 있고, 또 죄를 없앤다 할지라도 죄 없다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은혜로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의가 아니면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또 부득이 의를 가지게 해서 죄 없는 인간 의로운 인간을 만들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의 그 무한함을 은혜로 주실 수가 없게 됐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이 범죄한 죄를 담당하시고, 또 하나님의 공심판, 전지 입법에서 입법한 그 법의 심판인 이 공심판을 통과하는 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그렇게 대신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습니다.
그러면 사람되어 와도 한 사람이 한 사람은 대속을 할 수 있지마는 한 사람이 두 사람은 대속할 수 없는 것인데 그래서 사람으로도 안 되겠고 하나님으로도 안 돼서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신성과 인성의 양성일위의 예수님으로 땅위에 오신 것입니다. 신인양성일위로 땅위에 오실 것을 제일 먼저 하나님의 사랑에서 선포하신 것이 창세기 3장 15절에 처음으로 이 약속을 선포했으니 그것이 예수님 나시기 사천 년 전이요, 그 후에 종종 하나님께서, 구세주를 보내 가지고 죄의 문제, 의의 문제, 하나님과 원수된 문제, 또 영원한 생명 문제. 하나님의 무한한 것을 유업으로 받는 문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것을 선지자를 통해서 자주 예언하셨습니다. 예언한 그 예언 중에 이사야 선지의 예언이 가장 많이 예언했고 상세하게 예언을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가 예언한 중에도 이사야 9장 1절로부터 예언된 예언이 더 상세하게 예언이 되셔서 오늘 봉독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데 사람되어 오시게 된 원인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택한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로 영원한 멸망에 빠졌는고로 이것을 구출하는 길은 대속하는 한 길밖에 없는 고로 대속하시기 위해서 인성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땅위에 수많은 이종교들이 있지마는 이종교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어떤 인물이 나고 난 다음에 그 인물이 자기가 사상대로 조작해 낸 것이요 또 어떤 인물의 그 후배들이 계속 진화적으로 조성해서 모든 이 종교들은 생겨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독교는 나시기 사천 년 전, 다만 인류 시조로서는 아담과 하와 두 사람만이 사람으로 있는 그때에 범죄한 즉시로 하나님께서 구세주를 보내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언하신 지 사천 년 된 때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셨고 또 그 후 칠백 년 전, 팔구백 년 전, 천여 년 전 여러 번 이렇게 예언한 예언대로 하나님이 사람되어 가지고 오신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종교의 교주와 기독교의 교주는 탄생함이 다르고 또 근원이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발되어서 나온 그 원인이 또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땅위에 오신 것은 인간이 범죄로 멸망케 되는 그 즉시로 하나님의 사랑이 견딜 수 없어서 구원하시기로 약속을 선포해 놓으시고 약속 선포한 지 그 후 사천 년 후에 탄생하셨는데, 그간 사천 년 동안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가지로 위로도 하시고 교훈도 하시고 예수님의 탄생을 모형하고 예표해서 짐승으로 속죄 제물 대속 제물을 삼아 가지고 늘 미래의 이 구세주를 소망하는 한 예약을 지킴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속받는 그 일을 계속해 나오다가, 예수님 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그때까지 예약을 지켜 나오는 성전 성소와 지성소에 있는 휘장이 갈라지고 또 죽은 자의 무덤이 갈라져서 죽은 자들이 살아 나오고 그 모든 징조로 과거 구약 때에 예약 예표로 소망하던 그 구원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완성이 됐다는 것을 그렇게 공포를 이 자연을 통해서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은 이 일은 우연이 아니고 불가피의 일입니다. 불가피의 일은,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범죄한 자는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이 근본부터 당신의 자체의 법칙이요 또 자체의 본질과 본성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범죄한 인간을 멸하지 아니할 수 없고, 또 멸하는 데에는 하나님의 본성인 그 사랑이 멸하는 것을 볼 수 없어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은 거게서 갈등되고 심히 요란하고 마찰되었던 것입니다.
여게서 하나님이 하는 길은 다른 길은 없고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어 오시고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인 신인양성일위로 땅위에 오셔 가지고 대형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행함으로 하나님의 공심판 문제를 해결하고, 대화친으로 하나님과 원수된 문제를 해결하실 것을 창세기 3장 15절에 선포해 놓으시고, 그후 선지자들을 통해서 짐승을 잡아 가지고 대속의 제물을 삼고, 이렇게 선지자를 통해서 자주 예언하시고 가르치셔서 미래의 그리스도의 이 대속을 소망하는 예약을 지키는 데에서 구속을 받게 하셨다가 예수님께서 실제로 십자가에 대속하셨을 때에 예약되었던 예망이 다 실제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세례받으러 오셨을 때에 말하기를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그렇게 백성들에게 선포했는데 백성들은 그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기억만 하고 난 뒤 예수님이 대속의 제물이 되시고 난 후 선지자들을 통해서 영감으로 알아서 깨닫게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을 맞이할 때에 참 한없는 기쁨과 감사도 있는 동시에 마음에 심한 안타까움도 우리 속에 뜨거워집니다. 왜? 사람이 배암에게 유혹받아서 실족하지 안했더라면 이런 역사가 있을 이유가 없고 없어도 되기 때문에 그 면을 생각하면 마음에 안타깝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배암에게 인류 시조가 꾀임받은 것은 뭘로 인해서 꾀임받았느냐? 꾀임받은 그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린 그것이 꾀임받은 원인이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나니까 자체가 자체의 주격이 된 그것이 그때부터 멸망케 된 원인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성탄을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린 그로 인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큰 영원한 희생을 하게 된 이를 인해서 우리는 영원히 마음아피 여겨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항상 모시기를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큰 희생, 근본 부요자로서 가난하게 되신, 영광의 부요자요 권능의 부요자요 또 모든 자유의 부요자요 모든 소유의 부요자지마는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털끝 하나도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인자되어 오시고 난 다음에는 눈 한번 깜짝거리는 것도 자유가 없었습니다. 순전히 아버지가 깜짝이래야 깜짝이고 말을 해야 말하고 크고 작은 모든 것이 아버지로 인해서 피동됐지 털끝만치도 자유를 가지지 못했고, 아버지에게 순종할 때에 아버지의 능력의 도우심으로 살았지 당신에게는 추호의 능력도 없었던 것이 주님이십니다.
이런고로 우리는 이 성탄을 맞이할 때에 가장 우리가 마음에 아프게 생각할 것은 하나님 잊어버렸던 그 일과 또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린 그 일과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살려는 이 무서운 이것과, 또 자기가 아직도 주의 사상을 보면서 자기 중심으로 살고 자기를 비울 줄 모르고 자기를 꺾을 줄 모르고 자기를 희생할 줄 모르고 낮출 줄 모르는 이런 것을 마음아피 생각해서 이것을 돌이키는 회개의 그런 마음과 행동으로써 주님을 위로할 수 있고 주님의 섭섭함을 풀 수 있고 주님의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어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탄은 모두 유무식간에 성탄 맞이는 자기를 희생해서 남을 돕는다 하는 이런 것이 다 일반적 상식화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여 다른 사람을 북돋워서 남을 위해서 이용의 것이 되어지려는, 남을 이용하려는 데에서 전환해서 남을 위하여 이용되고 여생을 이용되는 것으로 살려 하는 그것이 다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한 깨달음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인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교회서도, 뭐 우리가 다른 것 할 힘도 없고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우리가 생명의 도를 받았는데 생명을 지금 아직도 듣기는 들어도 자기 것을 삼지 못하는 이 강퍅한 악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되어져 있는 것이니 우리가 위해서 기도도 하고 전도지라도 우리가 하나 앞에 한 장씩 전해 봐야 되겠다고 해서 부산 시민이 삼백육십오만 명인데 그래서 삼백칠십만 장을 우리가 이번에 예수님의 이 소식에 대한 것을 전도지 본문으로 삼아서 박아 가지고 전하려고 그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제가 기쁜 것은, 모두 다 마음에 사무쳤던 것이라 우리가 전도지를 박아서 아무래도 이 소식을 전해야 되겠다 이렇게 하고서, 전도지 박으려 하면 한 천삼백만 원 가량 드는데 으례히 내지마는 이것은 그저 먼저 내는 순서대로 받아서 그 나머지기는 이 전도지에는 쓸 필요가 없다 그렇게 말을 했더니마는 금요일날 밤에 말했는데 토요일날 아침에 천삼백만 원이 넘도록 다 들어왔습니다.
다 들어와서 그래 전도지를 박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이 천 얼마가 남아 있습니다.
이 날씨가 또 추운 것이 그것이 참 우리는 주를 위해서 주님의 그 사랑을 기념하고 또 그 사랑의 정신으로써 형제를 구원코자 하는,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나도 낮아지고 좀 희생해서 주의 노를 풀고 주를 기쁘시게 할까, 형제들에게 다문 얼마라도 이 생명의 도가 그들에게 감화적으로 전달될까 하는 그 마음에서 다 차고 있는 우리에게 날씨가 추워지니까 좋은, 울구접자친다고 하는 말과 같이 좋은 기회로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이래서 그 모든 참 아주 차운 폭풍 속에서도 그저 기쁨으로써 전도지를 전하고, 모두 다 어떤 사람들은 시장에 가서 전하는데 얼마나 겸손히 전하고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전했든지 그 시장꾼들이 다 감탄하면서 수고하신다고 다 참 복받겠다고 이렇게 말하면서, 왜? 자기들에게 다, 그럴 아무 죄지은 게 없는데 그렇게 낮아지고 그렇게 천해지고 상대방을 높여서 존대하는 그 전도지를 전할 때에 그들이 다 은혜를 받았다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전도지를 전할 때에 다른 사람들이 받지 않고 내 던지고 그렇게 가는 사람도 있더라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마는 우리가 아무래도 항상 주님이 나를 위해서 낮아지시고 가난해지신 이 사랑을 체받아서 우리가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 세상에서 주님의 이 사랑을 기념하다가, '피와 살을 기념하라' 했는데 기념하는 이 일을 다문 얼마라도 하고 가야 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평소에도 하지마는 금번 전도지 전하는 이것으로써 주님의 이 대속의 사랑을 그저 조그만한 하나 표라도 기념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 앞에 한 그저, 얼마씩 돌아갑니까, 그러니까? 팔백억 매를 전하게 되는데 팔백여 명에게 우리는 팔백여 번 머리를 숙여서 참 머리가 땅에 닿기까지 그렇게 머리를 숙이고 나를 한번 낮춰보고 상대방을 한번 높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좋은 기회로 삼아서 전하게 된 것을 대단히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고 예수님의 성탄에 대해서 잠깐 본문에 있는 대로 간단하게 증거를 할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여게 9장 1절 이하에 보면은 고통이 없게 하셔서 고통 없는 나라를 만드십니다. 예수님께서 고통이 없는 나라를 만드십니다. 또 예수님께서 어두움이 없는 나라를 만드십니다. 어두움이 없는 나라. 참 세상에서 이 모로 보면 살고 싶으나 저 모로 보면 살기 징그러운, 너무도 세상에는 고통도 많고 너무도 깜깜 어두운 참,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어두움의 세상이 된 그런 것도 우리가 볼 때에 살 아무런 욕망이 안 납니다. 그런데 주님의 나라에는 어두움이 없습니다. 뭐 포승줄을 가지고, 네가 어두운 일을 했다고 포승줄로 묶어 가지고 묶여 가는 사람이나 묶어 가지고 가는 사람이나 다 어두운 그런 것을 볼 때에 참 어두움 없는 세계가 얼마나 좋을 건가? 뭐 이렇게 어두움이 없고, 고통이 없고, 또 멸시하는 일이 없고, 월권하는 일이 없고, 권리를 남용하는 그런 일이 없고, 억울한 일이 없고, 사망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워 주는 그런 일이 없고, 몽둥이로 어깨를 누르는 그런 일이 없고, 밝고 깨끗하고 옳고 바르고 자비스럽고 긍휼하고 화평하고 이런 나라 이러면서도 전지 전능의 나라라 알지 못함이 없는, 불의가 없는, 전체가 다 공평되고 공평 돼서 하나도 불공평이나 불평이나 그런 것이 없는 이런 나라를 건설하려고 오셨습니다.
또 영원히 평안하고 평안한 나라, 다시는 죄나 고통이나 불만이나 원망이나 시비나 불평이나 시기나 미움이나 쟁투가 이런 것이 없는 참 깨끗하고 온전하고 거룩하고 사랑으로 충만한 이 나라를 건설하려고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랬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가 메였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이종교에 말한 거와 같이 그렇지 않고 주님은 오셔서 친히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다스리시는데 그 다스리는 그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가? 지금은 우리가 물질계에서 영계를 심령으로만 보지 못 보는데 영계와 이 물질계라는 우주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됩니다. 영계와 물질계가 통일되어서 영계에서 물질계로 물질계에서 영계로 얼마든지 자유할 수 있는 통일된 광대한 나라가 되는데 이 나라는 통일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그 단일성의, 단일성의 통치로 얼마가 되든지 영계나 물질계 모든 존재가 단일성에게 복종하는 이 통일성의 나라로 통치 하십니다.
그 나라에는 하나님 한 분의 뜻에 따라서 모든 것이 그 한 분의 사랑의 독재에 거게 복종되어서 저 말단 지극히 작은 말단에게까지 하나님 한 분의 단일성의 온전한 뜻에 복종하는 이 단일성의 퉁일성의 이 정치로 정치하는 이 나라가 이제 조만간에 수립이 됩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이 단일성에 배치되는 것과 이 통일성에 배치되는 것은 다 이것은 제거되고 순전히 위로부터 아래까지, 옆으로 넓이까지 어데까지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완전인 이 단일성의 역사로써 통일성의 나라가 돼 가지고 알파와 오메가로서 영원히 변치 않는 나라로 통치하게 됩니다. 그 나라에 우리는 시민권을 지금 가지고 그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게는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모든 복장들이 다 사라져 버리고 그런 일이 전혀 없습니다. 뭐 또 지금 바로 해 보려고 자꾸 이렇게 모두 다 청문회에서도 이래 야단지기고 이러는데 그런 일이 전혀 없습니다. 시시비비의 그런 잘못된 것이 없고 그분의 성신의 감동으로 각자 속에 다 사죄 칭의, 화친, 영감, 진리가 내주해서 자기의 주관이 되기 때문에 그 나라에는 시비가 없습니다. 그 나라에는 언어가 없습니다.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이 필요없는 것은 말까지 둔하게 가지 않고 벌써 상대방의 뜻을 내가 알고 내 뜻을 상대방이 알기 때문에, 단일된 하나님의 한 분의 뜻에 따라서 피차에 움직이기 때문에 말로 권면하고 지도하고 책망하고 가르칠 필요가 없는 그 나라입니다.
그래서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영원히 보존할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는데 지금은 이 나라를 세우는 도중에 있습니다.
이 나라에는 하나님 한 분의 뜻 고것만 그 나라에 갑니다. 하나님 한 분의 속성만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나라에는 하나님 한 분의, 열두 가지 속성이 있는데 그 속성대로 변화된 것만 갑니다. 지금 세상에는 천 인이면 천 인의 속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천 인이면 천 뭉텅이의 시비의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임하시면 하나님 한 분의 속성으로 되어 하나님과 꼭 같은 자, 하나님과 꼭 같은 정신의 자 하나님과 꼭 같은 사랑의 자, 하나님과 꼭 같은 한 지식, 한 지혜, 한 사랑, 하 진실, 한 거룩, 한 의, 한 욕망, 한 권세 가지고 살게 되기 때문에 이것은 완전이요 영원 불변의 속성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땅위에서 천인 만인이 개성을 가지고 개성을 달성시키려고 하니까 개성과 개성의 싸움이 가득 차서, 실은 두 부부가 살면 그는 단합인 줄 알아도 아닙니다. 반드시 두 사람이면 두 싸움이 있고 세 사람이면 세 싸움이 있어서 전부 다 분쟁 뭉텅이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이렇게 개성이 없는 단일성의 나라가 됩니다.
제가 지금으로부터 삼십여 년 전에 서울에 원일교회에서 집회할 때 그때에 박윤선 목사님과 이상근 목사님이 개혁신학교를 저하고 같이 하자고 이러면 그때 와서 그 집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날 밤에 마침 설교하는 데에 '하늘나라는 단일성의 나라라, 개성이 용납되지 않는다.' 하는 것을 증거를 했습니다. 나중에 그 목사님이 가시면서 '나도 이제 알았어. 이제는 나도 가서 단일성의 나라를 내가 증거하겠어.' 그러면서 같이 하자고 했지마는 저는 그 개혁신학을 같이 하지 안했습니다. 제 밑에 있는 OO목사니 그런 사람들은 거게 보냈지마는 저는 같이 하지를 안했습니다. 같이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언제 자꾸 변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내가 같이 할 수 없다' 그러고 서로 헤어졌습니다.
이래서, 하늘나라는 단일성의 나라인 것을 우리가 기억합시다. 수 많은 개성들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네 개성도 내 개성도 어떤 사람의 개성도 우리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우리 각자들은 다 자기의 개성을 완전히 버리고 완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 개성을 내 개성으로 삼아 그의 속성에 완전히 귀속되고 거기에 속하고 거게 피동된 것으로서 생애하는 이것을 땅위에 연습해서, 자기 개성이 있는 것만치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게 될 것이고 자기 개성을 하나님의 속성으로 완전히 성화시킨 그 사람에게 가장 자유가 많게 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렇게 생명과 평강과 영광의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사 우리의 영원한 처소로 만들어 주시기로 오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지극히 큰 소망을 가진 저희들로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조만간에 주님의 이 나라가 임할 때에 그 나라에서 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아니하고, 그 나라에서 주님 앞에 부끄러운 자들로 나타나지 아니하고, 주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칭찬받고 환영받는 우리가 되도록 날마다 이 일에 집중 전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들을 구원하려고 복음을 전한 종들, 지금 이 전도지를 나누는 모든 종들에게 함께 하사 동상이나 낙상이나 다른 어떤 어려움이 없게 하시고 항상 주의 사랑과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 되어 전할 때에 피차에 감동으로 은혜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