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6 14:18
세 가지 대속으로 기쁨과 평화 결실
1986. 12. 14. 주일오전
본문:누가복음 2장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우리가 지금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하려고 각각 다 기관대로 준비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뭐 세계적이요 또 지방적이요 지역적이요 민족적이요 방언적으로 일제히 예수님의 성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축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신불신자간에 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고 모든 이종교의 사람들도 다 이 성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물론 송구 영신하는 세수의 날이 있지마는 우리는 이 성탄을 그 해의 머리되는 세수의 날로 그렇게 그 절기로 지키는 것도 좋습니다.
아이들에게 모든 면으로 인식시키기를 안 믿을 때에 구명절 구정을 설로 삼아서 모두 아이들이 그 기뻐 바라는 것을 이제는 성탄을 저희들의 명절로 삼아서 기뻐 바라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의복에 대해서나 음식에 대해서나 또 서로 친한 사이에 위 아래 사람들이 같이 교제하는 것이나 대우하는 것이나 그런 것들을 다 옛날 안 믿을 때에 구명절인 그 설 명절에 하던 그것을 이 성탄 때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 단순히 만들고 또 예수님의 성탄에 대한 관심을 더 치중하게 하는 일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 성탄을 축하하는 당사자들이 되어 있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입니다. 일반인들은 그저 하나의 기쁜 명절이라 이래 생각하고 다 마음껏 기뻐하고 축하를 하는 그런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이지마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여게 대한 참된 뜻을 깨닫고 그들에게 참된 성탄과 그 축하를 우리들이 알려주고 보여주는 그런 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일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교에서 이 성탄 축하를 하고 이 성탄은 예수교에서 발원된 것인데 그 성탄이 어떤 뜻이냐 하는 그것을 물을 때에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는 것이라고만 말을 하면은 그 속에 참된 뜻을 그들에게 알려주지 못하는 일이 되겠습니다.
그것을 요약해서 13절에 보면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그 하시는 일에 대해서 찬양하고 높이 송축하는 일을 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렇게 그들이 찬송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이라는 것은 이 영계를 말하는 것도 되고, 영계는 위치적으로 이 물질계 위에 있는 것이 영계입니다. 위치적으로 높은 곳을 말하는 뜻도 있고, 또 모든 면에 비판적으로 가장 참되고 온전한 그 진리적으로 이상이 없는 높은 것을 가리켜서 지극히 높은 곳이라 그렇게도 뜻을 표시한 것이고, 또 도덕이나 정의나 사랑이나 진실이나 거룩이나 의나 모든 지식적으로나 지혜적으로나 모든 면에 가치적으로 제일 높은 것을 가리켜서 지극히 높은 곳이라, 높으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그 위치, 그 가치, 그 비판, 그 평가에서 “하나님께 영광이요”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하나님이 사람되어 땅위에 나신 이 일에 대해서 이 일을 하신 하나님에게 모든 존재들이, 모든 가치들이, 모든 비판들이, 모든 평가들이 다 영광을 돌리는 것을 말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이 도성인신하신 이 일은 하나님이 스스로 이 일을 하셨습니다. 어떤 것에게 피동되어 한 것도 아니고 또 어떤 존재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하나님이 이렇게 이 멸망하는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친히 사람되어 오신 이 일을 그 위치적으로 영계에서 감탄해서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하고 모든 운동, 모든 기관, 모든 단체, 모든 이치, 모든 힘 그 전부가 다 가치적으로 권위적으로 감화적으로 평가적으로 이렇게 지극히 높으심을 찬송하고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이래서, 천상 천하에 제일 영광스러운 일이요 가치 있는 일이요 모든 존재들이 다 제일 영광을 돌리고 모든 그 운동들과 이치들과 힘들과 권세들과 비판과 평가의 그 전부가 다 제일 영광을 돌린 것을 가리켜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읽을 때에 도성인신하신 이 일은 어떻게 하신 일이기에 그 하신 일이 모든 존재에서 제일 뛰어난 그 이상이 없는 평가를 받았고, 그 이상이 없는 정의를 받았고, 그 이상이 없는 권위의 대우를 받았고, 영광과 존귀의 대우를 받았는가? 그 영광이라 하면 찬성하는 것을 넘어서 환영하는 것이 되고 환영하는 것을 초월해서 그 역사에 감탄하는 감사가 되고 감사를 초월하는 그 너머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땅에서는 하는 것은 이 물질계 이 우주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 우주는 대표적으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 이렇게 하는 것은 대표적으로 사람들을 말했지마는 실은 우주의 전체가 다 기뻐함을 가졌고 또 평화함을 누리게 됐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창조물 가운데에 사람을 특수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면서 다른 것은 다 일반적으로 창조하셨으나 사람 창조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다시 종전 창조와 달리 새로운 협의를 해 가지고 그 협의한 결과로 마지막 날에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하실 때에 그 권한을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정복하고, 다 정복한다 말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복종시키고 또 모든 것을 다 통치하고 그 모든 것에게 있는 그 영광을 다 받아 가지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그렇게 창조주와 우주라는 이 모든 피조물과의 그 사이에 중보자로 하나님 대리 행사를 할 수 있는 존재로 하나님께서 권한을 주신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하나님과의 계약한 그 쌍방 계약은 이 피조물에 있어서는 모든 일반 생육법으로 나는 모든 사람은 이 인류 시조가 신인 계약하는 그 계약 속에 든 당사자가 되어서 계약자가 다 되었고, 또 모든 우주 안에 있는 피조물은 어떤 것이든지 다 이 통치 아래에 이 정복 아래에 다 복종하도록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우주를 지으신 근원입니다.
이랬는데, 그 신인 계약 상대자 인류의 시조, 전인류의 대표인 시조, 모든 물질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관리자로서의 그 대표인 시조 그가 신인 계약을 어겨서 범죄하였으므로 그 범죄한 그 정죄를 전인류가 다 정죄받게 됐고 모든 물질계라는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정죄받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저주가 왔고 또 하나님의 그 심판의 결과인 사망과 멸망이라는 것이 오게 됐습니다.
그러기에, 이 우주는 일단 범죄함을 인해서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이 지구 땅덩어리만이 아니고 이 우주에 있는 항성만 해도 십억만 항성이라고 하고 유성이나 위성을 말하면 그 수가 한정 없지마는 그 모든 것이 다 불타서 원소로 돌아가 가지고 새로 이제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셔 가지고 만물을 새롭게 하셔서 새로 다시 이 정죄를 벗어나고 사망과 저주를 벗어나고 영생하는 자유의 것들로 다시 재창조하게 됩니다.
이런데 이 배암의 지식들은, 예수님이 신성으로 계실 때에 엿새 동안에 창조한 것을 저들이 조부라운 소경 같은 그 지혜로 볼 때에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것이 엿새 동안에 지어질 리가 있겠느냐? 우리의 지식대로 보는 데서도 모든 지질을 연구하든지 모든 생물체 무생물체 그런 것들을 연구해서 우리 지식으로 비판할 때에는 그런 것이 억억만 년도 더 걸렸겠는데 어떻게 그걸 엿새 동안에 지었다고 그렇게 할까?’ 해서 그들은 조롱을 하고 있습니다. 조롱하는 그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지은 것을 인간들의 지식이 볼 때에 억억억억억억만 년도 더 걸린 것으로 보여지게도 만들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알겠습니까? 저희들은 자연 순환적으로 되는 것만 그 이치를 알았기 때문에 일방적 지식이요, 일방적 지식 가진 저희들에게는 한 시간에 만든 것을 억억억억만 년을 걸려서 만들어졌다고 그렇게 보여지고 일방적 지식으로써 인정될 수 있도록 그렇게도 만들 수 있는 전능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여게 모두 일류 최고의 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조금 들어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새 과학자들 중에 미국에 칠십이 과학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이 뚤뚤 뭉쳐 가지고서 이 엿새 창조를 부정하는 그런 소송을 하고 있다고 하는 그것은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을 몰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전지 전능자이심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저거들이 현재 알고 있는 그 지식으로써 이거는 억억만 년 걸렸다 할 수 있는 그것을 주님은 한 시간에도 아니고 일 초 동안에 만들어 가지고 그들이 볼 때는 ‘이거 억억억억만 년 걸렸다’ 그렇게 인식될 수 있도록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전능자인 것을 그들이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이거는 하나님께서 어둡게 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래서, 인류 시조가 범죄함으로 하나 대표적으로 말하기를 “땅도 저주를 받았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땅이 저주받은 것은 그들과 상관없는 땅이 저주받았습니다. 또 하늘도 다 불탄다고 말한 것은 하늘은 우주의 전체를 말해서 하늘이라 이 우주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이라 말하는 것은 영계를 말하는 것도 있고 또 이 우주 전체를 말한 것도 있고 또 한 시대와 세계를 가리켜서 말한 것도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저한테 신고함에 써넣어 놓기를 그 하늘은 하나뿐인 줄로 알고 하늘이 떠나간다 하늘이 간 데 없다 또 하늘이 어떻다는 그 하늘이 하나인 줄로 그렇게 알고 질문했기 때문에 그것을 답안은 써 가지고서 제가 줄 시간이 없어서 주지를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이 우주의 공간을 하늘이라고 그렇게 표시한 것도 있고 지금 이 심판받기, 예수님의 재림의 불심판받기 이전의 이 모든 이 조직과 이 모든 존재들의 운영을 가리켜서 하늘이라고 그렇게 말한 것도 있고 또 영계를 하늘이라고 말한 것도 있고 또 평가적으로 그 이상이 없는 지극히 높은 그 평가를 가리켜서 하늘이라 그렇게 말한 것도 있기 때문에 성경에 그럴 때에는 아래 위를 봐서 그 범위를 잡고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범위를 바로 잡지 못하면 혼돈돼서 다 사람들이 이 성경에는 모순된 말이 있다 많다 하는 그말은 그의 지식의 범위가 좁아서 편견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그 부작용의 깨달음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전인류요, “땅에서는” 하는 것은 다 이 물질계를 다 말하는 것인데 물질계와 또 전인류가 다 기뻐하심을 가졌고 평화를 가졌으나 이 전물질계 안에 또 사람이라는 중요한 내부가 들어 있고, 또 사람이라는 이 모든 존재 안에 중요한 선택자라는 내부가 들어 있고 또 선택자 속에 그 속에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중생된 영생하는 새생명 곧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몸이요 성전인 그 내부가 들어 가지고 있어서 오묘 무한하게 지음을 받아 가지고 있는 것이 이 모든 피조물의 존재인 것입니다.
이래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는 것은 그 중에 속에 알맹이로 말하면 중생된 자들에게, 평화라 하는 것은, 이 평화라 하는 것은 모든 존재와 행복을 같이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세상에는 억울함이 있는 데에서 불화가 있고 공평된 데에서는 불화가 없습니다.
이 평화라 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이 제각각 자기의 가치를 가졌고 자기의 위치를 가졌고 자기의 본질과 본성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수억억만도 넘은 본질과 본성을 가졌지마는 그런 것들이 서로 마찰돼 가지고서 사망이 일어나지 안하고 그 모든 것이 상호 온전한 관계를 가져서 평화를 구하는 이것을 가리켜서 “평화라”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이 평화도 심히 범위가 넓습니다. 그것을 과학은 말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근방에 가지를 못하고 이런 평화를 이해를 못 합니다. 말하면은 눈에 보여야 압니다.
요새는 뭐 전자인가 원자인가 그런 돋보기가 있다고 하지마는 그것이 억억억억만 배를 돋보이는 게 있다 할지라도 그런 것 가지고는 이거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그런 지극히 고귀한 것이요 신령한 것들인 것입니다.
이래서, 그 내용은 중생된 하나님의 형상화된 사람들이요 그 밖에는 거게 속한 모든 자들이요 그 밖에는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자들이라” 하는 것은 지옥을 말한 것입니다. 지옥에도 이 신인양성일위로 도성인신하신 이 일에 대해서는 모든 지옥에 있는 것들도 다 주라 시인하여, 이밖에는 주로 모실 이가 없다 하고서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린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땅위에 오신 이 일은 영계와 물질계, 모든 존재계, 모든 활동계, 모든 평가계, 모든 가치를 이거 저거 모든 비판하고 평가하는 모든 가치계의 그 전부에서 이 일을 자행하신 하나님에게는 영광을 돌리고 이 하나님이 이 일을 자행하신 그 행의 결과의 그 혜택은 모든 피조물들이 다 입어서 충만하게 됐다 그렇게 하는 것을 여게 말씀해서 표현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다 기록할라면은 온 세상에도 둘 곳이 없는 심히 많은 것을 축소 축소해 가지고서 간단한 신구약 육십육 권으로써 이렇게 축소해서 계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축소해서 계시한 이 문서 계시는 유한하지마는 그 안에는 영감과 진리의 역사가 있어 가지고서 이 유한한 계시 속에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의사와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러기에 사람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아는 것도 천층 만층 억만층도 더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그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도 그렇고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그 지식도 억억억억만 층도 더 됩니다.
이것은 잠깐 그 범위를 말했습니다. 그 영광은 이 일을 행하신 그 자체에 대해서 모든 존재들이 다 영광을 돌린다, 다 감탄을 한다 ‘이럴 수가 어데 있느냐!’ 진정 감탄을 하고서 모두가 다 칭송을 하고 영광을 돌린다 하는 것을 말하고 이 영원 자존하신 그 자체가 이와같이 큰 역사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그 혜택은 모든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영계나 물질계에 있는 피조물들이 다 입어서 충만하게 됐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기독교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이종교에 불교니 하는 그런 것은 하나의 한 구석에, 한 구석에 손톱만한 그런 것을 가지고 하고 있고 그런 것의 같은 유가 수많이 있는 그 넓은 속에 한 일 세포를 가지고서 말하고 있는 것이 땅위에 있는 모든 종교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나 이십세기의 과학들이 말하는 과학이나 이십세기의 인간의 모든 심리학들이나 철학들이나 수많은 종교들이 말하는 그 그물 속에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그 그물이 쌀라 하면은 그물이 찢어지고 그물 속에 내포되지를 못합니다.
왜? 그물은 예를 들어서 일 평방 메타의 면적을 가지고 있으면은 기독자는 그런 거 억억만 배도 더 큰 형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싸지를 못하고 그런 것들이 덮지를 못하고 가루지를 못하는 것이 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오늘, 종교 연합이니 종교 통일이니 이렇게 말하는 것은 기독교가 완전히 어두워졌습니다. 가루어져서 기독교가 인간들의 자기의 범죄로 가루어져 가지고서 눈이 어두워서 종교 통일이 되지 종교 통일이 되면은 다른 것은 다 불타 버리고 맙니다. 이는 표시하기를 에스겔서 1장에는 단쇠와 같다 하기 때문에 보기는 물씬물씬하지마는 여게 모든 불의한 건 다 소멸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이 기독교와 땅위에 있는 모든 불의가 이와같이 마찰될 때에 우주와 모든 것이 다 불타서 “그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모든 것이 드러나리로다” 하는 것은 이 참과 거짓이 한테 뒤에 가까이 마지막으로는, 멀리 두고서 이걸 구원하느라고 역사했지마는 마지막에는 참된 기독교와 거짓이 한테 대이게 될 때에 그 모든 것이 다 소멸되는 것을 가리켜서 “모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모든 비밀이 드러난다” 이것이 불심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종교 통일이 될 수가 없습니다. 또 종교 연합이 될 수가 없습니다.
불하고 섶하고 둘이 합해질 수가 없습니다. 불하고 섶하고 합해지면은 섶은 섶대로 존재하고 불을 불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불하고 섶하고 합하게 되면은 섶은 소멸돼서 그 자체가 변질돼 버리고 불은 더 크게 번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는 도성인신하심으로 인해서 이 높은 데에서는 낮은 데에서는 어떻게 됐다 하는 그 역사로 말미암은 그 결과의 그 혜택을 입은 모든 존재들이 뭐라 하고 있느냐 하는 그 존재들의 모든 총론과 여론과 그 공론들을 들어서 지금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런 모든 총론이 있고 땅위에서 이런 모든 결론의 그 결과가 맺어져 있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그러면 그 내용이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말구유에 강보로 싸 가지고 둔,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이 일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영계와 물질계, 모든 비판계와 평가계, 모든 존재의 그 존재계, 그 모든 비판이나 논평계 그런 데에서 이렇게 지극히 높이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어졌고 땅에서는 그 혜택으로 전체가 다 근심 걱정 없이 곧 기쁘고 즐겁고 평화되는, 시비가 없어졌는가? 땅위에 있는 시비는 ‘내가 너보다 높는데 왜 네가 나보다 위에 올라가느냐?’ 하는 이거 모든 이 자기 가치가 다 전부가 공통적으로 이것을 다 확실히 알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작은 가치가 크다고 말하고 큰 가치를 작다고 말하기 때문에 이 모든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다 하나도 없이 모두가 다 평화라 하는, 평화라 하는 것은 물이 평평한 거와같이 모든 존재들이 자기 가치, 자기 위치, 자기 의무, 자기 책임, 자기 존재의 목적 이 모든 걸 다 바로 알고 그대로 하고 있으니까 전부 너 아니면 나 죽고 나 아니면 너 죽는 것이지, 상호 협조지, 상호 대적이나 마찰이나 이런 것들이 있을 수 없는 세계가 됐다 그말입니다.
이렇게 된 것이 간추려서, 어떻게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됐는가? 간단하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근본 부요하신 분이 모든 것을 내어놔 가난한 우리들을 부요하기 위해서 “모든 부요를 내어놓고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들로 하여금 부요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셨다” 당신의 모든 부요를 다 내어놔서 이 아무것도 없어 죽는 거, 권세 없어 죽고, 지위 없어 죽고, 물질 없어 죽고, 건강 없어 죽고, 생명 없어 죽고, 평안 없어 죽고, 이 모든 면에 거지되어 있는 이 거지를 다 부요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분이 모든 부요를 내어놨다 하신 것입니다. 부요를 다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는.
부요를 내놨는데, 그다음에 둘째로는 모든 영광과 존귀를 내어놨다. 그러면 이 소유에는, 소유에도 영광과 존귀가 소유에 들었습니다. 영광과 존귀가 소유에 들었는데 소유에 든 영광과 존귀도 있고 소유에 들지 않는 영광과 존귀도 있습니다.
그 영광과 존귀라는 것도 제가 스스로 만들어서 자기의 공로와 공작으로 만든 영광과 존귀도 있고, 이 계통적으로 위에서 그 타력의 힘으로, 객관의 힘으로 가지고서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오늘이라도 거기서 끊어 버리고 없애 버리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스스로 만든 영광과 존귀가 아니고 이제 타로 인해서 피동적으로 만들어져 가지고 있는 그 영광과 존귀 그것을 가리켜서 영광과 존귀라 하고 자기가 만든 것을 다 자기 소유 속에 다 포함됐습니다.
이래서, 영광과 존귀를 이것을 다 내어놔 가지고, 사람들과 만물들이 왜 죽었느냐? 사람들과 만물들이 죽은 것은 자기 분수를 넘어서 영광 도적질을 하고 존귀 도적질을 한 이것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멸망했기 때문에 영광 존귀의 도적질로 멸망한 거, 영광과 존귀에 그 진리를 떠나서, 진리를 떠나서, 모든 존재가 자존하신 그분의 법칙과 딱 맞아 가지고 그분의 법칙대로 모든 존재가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분의 그 존재의 법칙 이것이 자유의 법이요 이게 생명의 법인데, 생명법, 자유법, 모든 존재들이 자유하고 공존 공영으로 자유하고 행복하는 이 법칙을 떠나서 영광과 존귀를 가질라는 것을 영광 존귀의 도적이라 내가 그렇게 표시하는 것입니다.
영광과 존귀의 도적으로 인해서 영원히 멸망받은 거기에서 구출할라 하니까 당신이 영광과 존귀로 댓가를 내놔서, 범죄함으로 됐기 때문에 그 값을 내지 안하면 해방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남의 것을 도적질해서 범인이 됐으면은 그것이 그 도적질한 것을 도로 갚아야 되고 또 도로 갚는다고 없어지느냐? 도로 갚아야 되고 또 그들을 주관하고 있는 국법에서 또 그것을 해결을 지워야 하고 또 국법에서 해결 짓지만 그 위에 하나님의 절대자이신 이 자유법과 우주의 이 자연법이 있고 그 자연법 위에 이 창조주의 절대자의 법이 있기 때문에 거게까지의 다 해결이 되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 중복적으로 그 견고하게 결박되어 있는 거게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주님이 땅위에 오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지위와 권세 세력인데 지위와 권세라면은 인권 권세가 있겠고, 자기 다 자유권이 있겠고, 또 자기 자유의 의사가 있겠고, 욕심이 있겠고, 주관이 있겠고, 자기의 악한 거 뭐 고집이나 그런 것들도 다 그런 것이 다 거게 속한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 전체적인, 전체적인 대 이 존재의 권위를 범해서 지위와 권세 모든 자기의 주장들을 가진 그거, 또 이 모든 존재들에게 대한 법을 어겨서 그렇게 한 거, 다만 다스리고 있는 것은 어떤 정권자가 가지고 있는 그런 법은 세상에서 그거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거게 범한 것을 세상에서 처리합니다.
그러나 그 정권자 자체가 옳은 것도 있지마는 대개는 그것도 월권적으로 남용되고 또 그것도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로 만들어 놓은 입법이기 때문에 그 법이 다 유한적이며 한계적이며 지역적이며 부분적이요 편벽적이며 일방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공평되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그런 것 때문에 범죄했으니까, 지위와 권세와 영광과 권위 그것을 사람들이 가지기 위해서 범죄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내놓지 안하면, 그 댓가를 내놓지 안하면 거게서 해방시킬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를 내놓으시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은 그분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 창조한 것이 그분이 없이는 창조된 것이 하나도 없다 했습니다. 그분이 땅을 만들었고 그분이 모든 세상을 만드셨고 자기 땅에 오되 자기 백성이 영접지 못하더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신불신자 무신론자도 그분이 만드셨고 무신론자도 그분이 지금 먹이고 살리고 있고 무신론자도 그분이 다 통치해서 생명의 제한을, 너는 요 물질계에서는 얼마 동안 있고 얼마 동안 있거라 하는 것으로써 물질계 있는 동안에 모든 언행심사에 행동한 것의 그 보응으로써 영원한 보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세 가지를 예수님께서 당신이 멸망 가운데 있는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기 위해서, 피조물 중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류 중에 선택자 중생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이 이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음으로써 위에는 영광이 충만하고 땅에는 그 혜택으로써 모든 존재들이 다 행복을 누려서 기쁨과 평화를 가지게 됐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이 시간에 증거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그분의 이렇게 이 세 가지를 희생해 주심으로 우리들에게 생명과 영원한 평강이 이루어진 이 혜택을 우리가 입었으니 이 혜택 입은 우리들이 그분이 땅위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데에는 우리들이 이 혜택을 입었으니 그분이 입혀 주신 이 혜택인 영원한 평강과 자유와 생명, 다시 말하면 완전 생명과 완전 자유와 완전 평강을 주셨으니 이것을 우리가 잘 보장해서 이것을 상처 두지 안하고 이것을 빼앗기지 안하고 이것에 대해서 조그매라도 손상을 입히지 않는 것이 그분이 도성인신하신 이 성탄을 축하하는 일이 되겠고, 또, 이것을 우리가 잘 보존하고 누릴 뿐만 아니라 둘째로는, 우리가 이렇게 되었으니 이 사랑을 우리가 보고 깨달았으니까 우리에게 있는, 우리에게 있는 자기가 자유할 수 있는 거, 도적질하지 안했고잘못 취한 것이면 다 돌려야 할 것이고잘못 취하지 아니한 무슨 소유나 영광이나 존귀나 권세가 있다고 하면은 이것을, 우리가 과거에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이것이 있는 대로 제것인 줄 알고 저를 위해서 자기 위주 자기 중심으로 이것을 다 보존했고 이용했고 또 이것을 어떻게 사용했지마는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이 사랑을 깨달았고 또 이 사랑 생활이 앞으로, 모든 존재들이 지금은 다 권세로 가루고, 언변으로 가루고, 지식으로 가루고, 수단으로 가루고, 활동으로 가뤄서 막 가루어져 있습니다. 가루어져 있기 때문에 죄인이 아주 의인 중에 의인으로 가장을 하고 나타나는 것도 있고 아주 의인이 죄인으로서 포승줄에 묶여 가지고서 감옥에서 일생을 옥살이에서 썩어지고 마는 일도 있습니다.
지금은 다 이와 같이 있지마는 앞으로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과 같이, 햇빛 앞에서벌거벗은 거와 같이 모든 것이 다 드러나는 그 세계, 모든 것이 드러나는 세계, 모든 미약한 존재라도 존재라고 하면은 다 제대로의 다 자유성을 가졌고 자유권을 가졌고 다 언권을 가져서 그들도 다 얼마든지 말할 수 있고 할 수 있습니다.
요새는 지금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고 이렇지마는, 민주주의에서는 약간 뭐 언권을 말하지마는 그것도 얼마나 제한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런데 그때는 이 개미 한 마리가 나한테 억울한 꼴을 당했으면은 나한테 억울함을 당했다는 것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언제 어떻게 해 가지고서 너에게 억울함을 당했다’ 구더기도 ‘억울함을 당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 제조하실 때에 창조하실 때에 이것은 이것을 위해서 그 계통적으로 자기 가치가 자기 계통에서 이용이 되어짐으로 가치가 있지 그 이용되지 못하면 가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조그만한 시계에도 여러가지 부속품이 있는데 그 부속품은 자기 설 자리에 서 가지고서 그 시계가 전체가 움직일 때에 이용돼 가지고 거게서 닳아서 다 끝났으면 가지 가치는 다 활동한 것이고, 또 거게 닳아서 가치를 자기의 존재의 가치를 비로소 완성시키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모든 존재 가운데서 사람은 무엇 무엇을 다 사용하는 거, 그래서 디모데전서 4장에 보면 “하나님의 창조하신 것은 우리가 다 믿음으로 다 쓰면은 다 거룩해지느니라”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렇게 써라 하는 대로 그 법칙을 어기지 안하고 그 모든 걸 사용하게 되면은 그 모든 것은 다 그 자체도 복되고 쓰는 자도 복되고 하는 것인데 이것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어겨서 이렇게 하기 때문에 거게서 야단이 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세 가지 월권해 가지고 멸망했기 때문에 그 댓가를 치르기 위해서 주님이 오셔서 이렇게 하신 그 걸음을 모든 존재들이 이렇게 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또 모든 존재들이 찬성하고 모든 존재들이 다 행복되게 되었으니 이 걸음이 우리에게 이거 알았고, 이 생명길의, 가치적으로 이 길의 가치를 알았고, 이 길의 가치를 알았고 이 길의 능력을 알았고 이 길의 효력을 알았고 또 이 걸음의 이 영광과 존귀를 알았고 이 걸음 걸은 것이 모든 존재들이 다 평화를 누리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된 이 가치를 우리가 알았습니다.
만일 열 명이 앉았는데 아홉 사람은 나를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한 사람이 시투름하게 해 가지고 있으면은 그것이 내게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 때 그 사람이 잘못 알고 그러면 그거는 언젠가 해결될 것이지마는 만일 내가 잘못돼서 그에게 잘못된 게 있어 가지고서 그가 시투름하게 있으면은 그것은 그걸 해결하기 전에는 그 평화의 세계를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길에 있는 동안에 급히 사화해라, 하나라도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게서 놓여 나오지 못하리라” 하는 것은 이것은 다 자유의 세계 완전 세계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영원한 나라에는, 무궁한 나라에는 우리가 구경을 하는 데에는 제일 좋은 구경이 어데냐 하면은 하나님 속에 출입하는 것입니다. 완전자 속에 내가 마음대로 들어갑니다. 마음대로 들어가 돌아다닐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완전자 속에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완전자가 못 들어오게 해 못 들어오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들어갈라 하니까 이거 그 거치는 게 있어 가지고 못 들어갑니다. 거게 들어갈라 하니까 내게 거치는 거 때문에 못 들어갑니다. 공간이 없으면은 공간에 거치는 거 있으면 거기 못 들어갑니다. 만일 도덕으로 들어가는 데는 도덕에 거치는 것이 있으면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 세계를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그다음에는 어데가 구경 좋으냐 하면은 사람 속이 구경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인류 속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데 그 출입할 때에 어떤 사람은 마음대로 출입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 속에 모든 사람 속에 마음대로 출입을 할 것입니다. 또 만일 사도들이라면 사도들이 다 우리 속에는 마음대로 출입을 할 것입니다.
출입하는데, 혹은 무신론자 속에는 출입을 못 할란지 모르겠습니다. 거게도 무신론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이 세 가지를 희생해서, 만일 희생했었는데 무신론자들이 불택자라서 구원을 얻지 못했다고 하면은 그들은 구원 얻지 못하고 감옥에 들어 있지마는 내 한 모든 것이 드러날 터이니까, 드러날 터이니까 그들은 비록 내 한 것이 효력을 나지 못했다 할지라도 거게 나는 그들에게 들어갈 때에 아무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거리낌 없고 들어갑니다. 들어가면 그들은 다 환영을 할 것입니다.
내 구원 내 이 세 가지 희생으로 투자로 말미암아 그들이 구원의 효력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것을 그들이 다 알게 되기 때문에 내가 갈 때에는 내가 그에게 대해서 그를 위해서 내가 다 희생하고 그를 위해서 좋은 것을 했는데 저희들이 못 받았지마는 만나면 ‘들어오지 마십시요’ 이 소리는 안 할 것이고 ‘아이구 들어오십시요' 환영하면서 ‘우리가 미안합니다. 과거에 이렇게 했었었는데 우리가 받지 못했으니까 미안합니다.’ 미안을 했으면 했지 들어오지 못하게 방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인류 가운데 우리가 이 출입하는 데에는 그 상대방이 못 들어오게 해 못 오는 게 아니라 자기의 맑은 양심에 거리껴서 자기가 거리껴서 거게를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앞으로 무궁세계입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다 무궁세계에는 갇히는 감옥이라. 갇히는 감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예를 들면은 이 사람은 우리 한국 사람은 우리 한국 땅 안에서는 남한 땅 안에서는 자유합니다. 남한에는 어데든지 돈만 있으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북에는 자유로 못 갑니다. 또 일본도 자유로 못 갑니다.
갈라면 그 나라에서 들어오라고 해 가지고 이거 뭐 많은 무슨 수속을 밟아야 가게 되지, 우리 국내에는 뭐 어데든지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 시민권 가진 사람은 또 세계 어데든지 자유로 갈 수가 있습니다. 이게 조그매씩 그 범위가 너른 것인데 이렇게 무궁세계에서 그 무궁세계,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게 아니고 영원 무궁한 무궁세계에 그 세계에 자유를 우리가 얻기 위해서 주님이 주셨습니다.
이래서, 이 세 가지를 투자함으로써 이렇게 인간이 상상도 못할 무한함이 해결되었으니, 우리가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투자한 이 투자로 우리를 일곱 가지 대속을 줬습니다. 사활로 일곱 가지 대속을 줬기 때문에 이 대속을 단단히 입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일곱 가지 면으로 완전 행한 자가 됩니다. 이것이 비밀, 이것이 기이한 비밀입니다.
아무것도 만물에 대해서도 알지도 못했는데 예수님이 내 대신 일곱 가지 사활로 대속한 요것을 내것인 것을 알고 나만 주님의 것으로 완전히 바쳐서 주님의 것이 되고 이 대속이 돼 버리면 그걸 내가 알지 못하나 예수님이 당신이 알고 다 했기 때문에 다 행한 자가 되는,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를 완전케 하신 이것은 다 인간이 연구해도 그 비밀을 무한한 것을 모릅니다. 몰라요.
이러기 때문에 제가 언제 그런 말 한 적이 있습니다. 하늘나라 가 가지고서 억만 년 후에, 자꾸 돌아다니니까. 돌아다니는데 억만 년 후에 그때 처음으로 가보는 곳이 있다 그거요. 억만 년 후에 처음으로 가 보는 곳이 있다 그말이오, 하나 예를 들면. 처음으로 가 보는 곳이 있어. 그러니 얼마나 넓다 말이오.
억만 년 후에 처음으로 가 봤는데 가 보니까 여기는 뭐인고 싶어 가니까 거게서 있다가서 환영을 하면서 아이구 어서 오십시오 이라며 하기 때문에 그래 내가 있다가 말하기를 ‘이분들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나를 아는고? 어떻게 환영을 하는고?’ 이라니까, ‘나는 초면인데' 이라니까 그분들이 ‘아니 이렇게 하지를 안했습니까? 우리에게 이렇게 후대를 하고 이렇게 선대하지 안했습니까?’ 이랄 때에 ‘나는 그렇게 선대한 일이 없는데' 나중에 파고 들어가 보니까 예수님이 내 대신 해서 그들에게 다 그런 공작은 다 해 가지고서 후대를 해 놓은 그것을 나에게 줬기 때문에 그걸 내가 입고 가니까, 입고 가니까 그들이 다 보고서 환영을 합니다. 예수님의 우리의 대속이라 하는 그거 측량을 못 합니다.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사랑이라” 그래서 그렇게 말했니다.
그러기에, 이제 주님이 우리에게 이 사활의 대속, 여게서는 세 가지 희생으로 우리에게 이 영광스러운, 당신 자체에게는 영광이요 그 혜택을 입은 우리들에게는 평화요 기쁨이 되어졌으니까 이 완전한 구원을 우리가 받았으니이 구원 받은 우리들이 예수님이 해 놓으신 그것으로만 기뻐하고 즐거워할 게 아니라 이걸 해 놨으니까 우리는 우리 대로 조그만한 소규모적으로 우리들도 이제 여게서 예수님이 세 가지 희생한 이 희생을 우리가 이것을 투자함으로써, 이것을 투자함으로 우리 개체의 영광이, 이 집단의 전체의 영광이 있고 전체 영광 가운데 개체 영광 있는 거, 우리 그 몸에는, 우리 몸에는 우리의 전체라는 한 이 전체 본체가 한 이 덩치가 있고 이 덩치 속에는 조그만한 세포로 말하면 그 세포가 수가 많다는 것은 우리가 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모르면서도 상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세포가 있는데 그 세포마다 호흡기도 있고, 세포마다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다리도 있고, 팔도 있고, 그 세포 하나가 내라는 이 사람의 한 존재와 같은 그 존재를 가지고 있는 세포라 하는 것을 우리가 지식해야 됩니다. 이것이 아직까지는 이 과학에는 그게 나오지 안했으나 조만간에 좀 있으면 다 나올 것입니다.
그것이 내라는 이 한 존재와 같은 그 작은 존재가 그게 세포인데 그것이 제대로의 생명이 있고, 영광이 있고, 존귀가 있고,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고, 본분이 있고, 한계가 있고, 자기의 범위가 있고 이렇게 있는 것처럼 이제 많은 기독자 가운데에 나는 예수님의 그 몸에 속한 한 분자요 한 지체요 한 세포입니다. 세포이기 때문에 내라는 존재가 이것이 개체의 그 영광과 존귀가 있는 이것이니까 이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무거운 짐진 거와 같이 노력하는 것은 그때 영원 무궁세계에서 이것 없는 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이래 한다.
이래서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키기 위해서 이 썩은 고기가 산 자가 먹었으면 그 산 피와 살이 돼서 산 몸이 되는 것처럼 이렇게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썩어져 있는 이 모든 존재가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생명에게 삼켜서 진리화 영화 예수님의 대속화 하나님의 형상화 돼 버렸으면 이것이 멸망할 것이 다 생명에게 삼켜서 생명화되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인해서 무거운 짐진 거와 같이 내가 탄식하면서 노력한다.
그것은 무거운 짐이라 하는 건 갈수록이 더 심해지는 것인데 이제 자꾸 예수를 믿을수록 여게 대한 깨달음이 더 강해지고, 더 잘 믿어야 되겠고, 더 후회도 더 많아지고, 소원도 더 많아지고, 또 하고 싶은 것도 더 많아지고, 자기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이렇게 자기 있는 것을 투자해서 다 투자하고 싶은 마음도 더 많아지는 것이 이게 기독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교리를 바로 살았을 때 배우지 못한 사람은 나이가 많아가면 육체가 늙어짐에 따라서 그 모든 신앙도 노쇠해지고 늙어지고 모든 소욕도 늙어집니다.
그것은 순전히 육체로 믿었기 때문에 기본구원이나 있지 건설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으면 자꾸 늙어갈수록이 나이가 많아갈수록이 죽을 때일수록이, 가장 그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대속의 구원에 대해서 제일 욕심이 강한 때가 어느 때냐 하면은 마지막 임종시 죽을 때가 제일 강할 것입니다. 또 후회가 언제 제일 많은가? 그때가 제일 많았을 것이요 자기가 원통한 것도 그때가 많을 것이고 자기가 뭣을 고치고자 하는 소원도 그때가 제일 많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간 많이 갔는데 오후에 또 증거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이제 그 범위를 말했으니까 요는 결론은 그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내게 있는 소유를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분이 소원하는 것은 내 소유를 다 던져서 이 멸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소유욕, 월권 소유욕으로 말미암아 멸망케 되는 거기에서 내 소유를 던져서 그들을 구원함으로 나를 보내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월권적으로 모든 영광과 존귀를 인해서 멸망 가운데 있는 그것을 내 영광과 존귀를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투자하고, 또 모든 지위와 권세와 자기의 주장을 하기 위해서 이 악으로 멸망 가운데 있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내게 있는 지위와 권세 이것을 투자해 가지고, 이 세 가지를 투자해서, 나를 이 세 가지로 대속하신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이 소원하는 그 소원을 이루어 나의 하는 것이 땅에 있는 자들에게는 기쁨과 평화가 맺어지는 거.
그러기에, 우리의 하는 이 생활로서 위에 있는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고 땅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기쁨과 평화의 결실을 맺도록 위해 가지고서 우리가 하자는 그것을 여게 가르친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실 때에 그 혜택을 입은 것이 다 우리들이지마는 우리가 그 혜택을 모릅니다.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지금, 요한계시 5장에 보면은 예수님이 인봉을 떼지 안했으면 이 우주는 그때에 다 끝나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탄생 안 했으면은 벌써 우주는 끝나 버리고, 우주는 끝나서 이거는 다 우주라는 다 이거 물질계라는 거는 완전히 끝나 버렸는데 예수님이 인봉을 떼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전개가 됐습니다. 계시록에 말씀했습니다.
새로운 전개가 됐는데 이렇게 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내 하는 일이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그분이 영광 돌아가는 일이 위로 있어야 되겠고, 아래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의 열매가 맺어지는 이것만 위해서 우리가 이 양쪽에, 영광과 이 평화, 이 혜택으로서는 멸망이 평화를 얻고 또 위로서는 자존자 모든 우리에게 이 생명을 주신 그분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라는 가운데는 나는 세 가지를 투자해야 된다.
이 세 가지를 투자할 때에 우리가 주의할 것은 예수님이 그럼으로 말미암아 만물의 전개가 계속되고 모든 이 만물의 전개, 앞으로 자꾸 하나 둘, 펼 전자 열 개 자, 그 전개가 계속되고 모든 만물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인간들의 구원이 이루어져 가고 있지마는 그분에게 대해서 아무도 감사한 데 없습니다. 이 만물도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이 만물들이 지금 그리 안하면 다 불타서 없어지고 말 터인데 이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고 있고 있는 것은 그분의 세 가지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지마는 그걸 알아서 감사합니까? 알아서 감사하는 자 없습니다.
우리가 중생됐지만 감사하다 해도 그분의 감사에 대해 억억만분의 일도 감사하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이 세상에서 이 세 가지로 하다가 상대방에게 감사를 만일 기다리든지 해서, 다시 말하면 주고 받는 여수적인 또 보수적인 이런 성격을 가지고서 이 세 가지 행사를 할라 하면은 아예 말아야 됩니다. 하다가는 반드시 이는 낙심하고야 맙니다.
아예 이 세 가지 하는 것은 위로 나를 대속하신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과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혜택의 결과가 맺어지는 그것만이 내가 볼 일이고 할 일이지 그뭐 상대들이 이해를 한다, 알다 준다, 감사를 한다 그런 것을 우리가 기다리면 우리는 이 선을 행하다가 피곤해서 낙심하기 쉽습니다. 위로 주님이 아시면 되고 또 아래로 그것들이 어쨌든지 결과가 맺어져야 됩니다.
맺어지기만 바라서 이렇게 할 때에 우리는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 성탄을 맞이하는데 우리가 이것을 오전에는 세 가지만 알고 또 오후에 계속해서 그러면 그것을 투자하는 데 대해서 한번 연구할란지 모르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모든 존재의 세계는 이렇게 조직이며 이렇게 철두 철미하고 이렇게 심히 범위가 넓고 좁은 이 비밀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그 희생으로 무한한 구원이 우리에게 왔사오니 무한한 구원을 받은 저희들이 무한한 영광과 존귀가 되는 무한의 위치에서 이 책임을 감당하여야 하겠사오니 무한하신 주님의 일곱 가지 대속과 무한하신 성령의 은혜와 무한하신 진리의 은혜가 우리들을 중생시켰사오니 친히 역사하셔서 저희들이 주님과 모든 피조물 그 무한이라고 할 만치 수가 많은 영계나 물질계에 모든 나타난 것 나타나지 안한 것 모든 것에 대해서 비밀을 똑똑히 알아서 여게 대해서 대비하고 여게 대한 주님의 그 지식과 지혜와 능력을 받아 이 모든 것을 잘 봉사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육성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을 위해서 오늘도 주님이 이렇게 첫 열매로 이루신 그 열매로 인해서 모든 피조물들이 구원 얻고 이 구원을 받은 저희들이 다시 이어서 이와같은 열매로서 모든 존재들의 구역 구역에 부분 부분에 그 영광이 충만하며 기쁨이 충만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의 개별 개체가 이루어지는 이 측량 못할 이 대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모든 창조한 것을 친히 운영하시는 주님이여, 이 일이 완료되면 일단 이 일차의 천지는 다 없어지고 다시 만물을 새롭게 하는 세 세계가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이 소망을 바라보면서 하루밤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살이를 잘하는 저희들 되게 하시고 두려움으로 떨림으로 하는 저희들 되게 하시고 땅에 유한한 것들을 탐함으로 이 지극히 큰 구속을 등한히 하는 이런 후회할 일이 없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이제는 많은 생명들을 어두움에서 구출해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들은 주님의 자녀입니다. 주님을 몰랐습니다. 헛된 것을 섬기고 헛된 것을 바라고 헛된 걸 의지하고 헛된 것에게 맡겨 놓고 헛된 것에게 부탁하고 헛된 것을 의지하고 바라봤던 이 속은 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주님이 저희들의 전부 되셔서 저희들을 의논해 주시고 또 협조해 주시고 저희들에게 모든 해결 주시고 염려 없는 생활로 이 세상 나그네를 잘 준비해서 주 앞에 설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항상 영육을 함께 해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그 속에 점점 뜨거워지고 강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