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6 14:17
세 가지 능력으로 목회
1986. 4. 7. 교역자회
본문:마태복음 3장 11절∼12절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례는 방향을 완전히 전환하는 것이요 또 죽고 새로 사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주었다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주관으로 잘못된 그 모든 것을 돌이켜 회개케 하기 위해서 준 세례요 예수님이 오셔서 베푸시는 세례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 하는 말은 성령은 우리 자체를 완전히 죽여 변화시키는 역사를 말하고 불로 세례 준다 하는 것은 모든 탈 것은 태움으로, 뜨거워질 것은 뜨거워지게 하신다 하는 말씀입니다. 신약 교회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이루어질 구원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 하신 것은 예수님이 재림 때뿐만 아니고 이거는 계속 정결케 하는 이 역사를 하시는데 이런 역사 저런 역사를 가지고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어서 알곡은 하나님의 곳간에 들이고 하나님의 보호 안으로 들어가고 쭉정이는 세상에 버려서 멸하게 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알곡되기를 항상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가 진주 성경 학교 가 가지고 그때 보니까 경남 각처에서 학생들이 모여 들었고 또 경남뿐 아니라 다른 데서도 학생들이 많이 몰려 왔읍디다. 왔는데 그때에 제가 그 학생들을 접해 볼 때에 남해 부근에서 온 학생들이 다 생기가 있었고 다 그 신앙들이 살아 있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그때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됐습니다. 한 두 달밖에 안 됐었는데, 그때 성경 학교 못 갈 건데 특별히 모두 말해서 갔었습니다. 가 가지고 예과만 하고 본과는 그만 신앙 연조가 모자라서 못 하고 왔었습니다.
그때 내가 그 지방에 어떤 그 신앙가가 있어서 이렇게 모든 신앙의 사람들이 다 배양이 됐는가 해서 알아 봤습니다. 간접으로 그뭐, 거기 가서 다른 배운다는 거보다도 그만 그것이 내게 제일 마음에 알고 싶어서 알아 봤는데 이리저리 들어 보니까 최 상림 목사님이라는 그 목사님이 유력하게 일을 하고 있다 하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최 상림 목사님을 한번 만나 보고 가면 좋겠다 그래서 최 목사님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에 오신다고, 자기 가르치는 시간이 돼서 오신다 하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으니까 최 상림 목사님이라 하면서 오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인사하고 난 다음에 제가 조용히 들어가서 그 목사님에게 인사를 하고 내가 처음에 묻기를 ‘최 목사님 거게서 온 학생들 모두 다 신앙이 다, 신앙에 그 힘을 가지고 있는데 목사님은 성경 가운데서 요절로 그렇게 가지고 있는 성구가 무슨 성구입니까?’ 내가 이것을 물었습니다. 물으니까 그 목사님이 말하기를 나는 옥토에 뿌린 씨라는 그것이 나의 요절이라고 그렇게 말합디다.
그분은 언제든지 ‘옥토에 뿌린 씨’ 이것을 늘 생각하면서 그저 언제나 `내가 이 시간 이것은 옥토에 뿌린 씨냐 또 돌짝밭에 뿌린 씨냐 길가에 뿌린 씨냐 덤불밭에 뿌린 씨냐?’ 그것을 늘 생각하면서 일생 동안 신앙 생활한다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그때 출애굽기를 가르치는데, 출애굽기를 가르치는데 가르치는 것이 아주 좀 잘 가르쳤습니다. 뭐 그거 다른 데서 배운 그런 거는 배울 것도 없고 뭐 그저 세월만 보낸다 이랬는데 그 최 목사님이 출애굽기를 가르치는데 아주 참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뒤에 그분이 왜정 말년 때에 순교당했습니다. 그분 밑에서 배운 사람들이 재건 교회 교인들인데 최 덕지 그런 분들도 다 그 밑에서 배웠고, 남해가 재건 교회 본부였습니다. 그래 뭐 거기 있는 사람은 다 흩어지고 지금은 남해 재건 교회가 어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서도. 그분은 그것이 당신의 표어로 삼고 있었다 이랬는데.
오늘 저녁에 봉독한 말씀도 알곡과 쭉정이라. 이 알곡은 천국에 들어가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운다. 오늘 이 말씀을 양성원에 가서 그저 약간 증거를 하고 요번에 양성원 학생들이 일주간 동안 성경 공부하는 연구 과제를 냈는데 그 제목은 내나 이겁니다. ‘쭉정이’ `알맹이' `껍데기' 이 셋으로 연구 제목을 삼아 가지고 창세기 1장서부터 요거는 알맹이다. 요거는 쭉정이다. 요거는 껍데기다. 알맹이하고 껍데기하고 둘이 한테 합하면 알곡이 된다. 그것으로서 창세기 1장으로부터 6장까지 같이, 그러면 1장에는 뭐가 알맹이며 뭐가 껍데기며 뭐가 쭉정이인가 이것을 열람하면서 같이 공부를 하고 그대로 계속해서 연구하라 하고 왔습니다.
이거는 하나의 비유입니다. 알곡이라고 한 것은, 이 타작 마당의 알곡이라 한 것은 알맹이하고 알맹이를 싸고 있는 껍데기 하고 둘이 한테 붙었을 때의 그것을 가리켜서 알곡이라고 했고 쌀을 알곡이라고 한 것 아닙니다. 쭉정이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요 또 알곡 껍데기는 알맹이를 내포하고 있는 껍데기가 알곡입니다.
그러면, 이 비유에서 말하는 대로 알맹이는 무엇이 알맹이인가? 우리들의 알맹이는 뭐인가? 우리들의 알맹이는 세 가지가 우리의 알맹이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또 대속의 공로로 인한 성신의 은혜와 또 대속으로 인한 진리의 은혜 이 셋이 알맹이요 알맹이를 싸고 도는 그 껍데기는 뭐인가? 그것은 구속받은 우리 성도들입니다.
또, 쭉정이는 뭐인가? 쭉정이는 우리 성도들 외형은 꼭 같은데 속에 알맹이는 없는 것이 쭉정이입니다. 쭉정이는 불에 던져 사루고 알곡은 곳간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은 두 사람의 모든 생활이 외형은 꼭 같은데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 것도 또 여게다 맞춰 보면 그 껍데기는 쭉정이 껍데기나 알맹이를 가진 껍데기나 껍데기는 같지마는서도 속에 알맹이가 없기 때문에 그가 쭉정이 돼서 불태워진 거 마찬가지로 우리 기독자들도 꼭 요와 같습니다.
기독자가 자기가 어떤 용감을 가지고 역사하든지 어떤 지능을 가지고 역사하든지 어떤 수단 방법을 가지고 하든지 알맹이 없으면 쭉정이요 알맹이 가지면 알곡이 됩니다.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 이 셋이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생활하는 것이나 목회하는 것이나 설교하는 데에 이 셋이 그 속에서 주장을 하면 그만 알곡이 됩니다.
그러나, 이 셋은 천 리 만 리 멀리 아주 잊어 버리고 제가 이 세상 지식을 끌어다가 일시에 수천 명 수만 명 교인을 모아 봤자 그저 그거는 불구덩이에 탈 것이니까 많아도 적어도 다 모조리 불에 태워 버립니다. 다만, 사람이야 알아 주든지 못 알아 주든지 꼭 이 세 가지 능력으로 한 것만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살아난 것은 이 세 가지와 연결됨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왜 예수님의 피공로를 먼저 말하느냐 하면은 예수님의 피공로가 아니면 우리는 성령도 진리도 접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 피공로의 중보의 은혜로, 예수님의 신성도 우리가 접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접하면 대번 죽습니다.
예수님의 인성과 우리와 접하고 그 신인 양성 일위가 우리를 대속했기 때문에 이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을 부를 수 있지 이 공로를 벗으면 부를 수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금이야 이 공로를 팔고 무시하고 멸시하고라도 얼마든지 하나님 이용해 먹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떠들고 또 많은 대중들을 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벌써 감각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잊어 버렸으면 그때는 대속의 공로를 벗은 것입니다. 제가 잊어 버렸는데 뭘로 있겠습니까? 잊어 버렸으면 그때는 대속의 공로를 벗고 있는 것이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고는 제가 진리를 아무리 말한다 해도 진리는 저와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왜? 진리는 우리 사람들과 지극히 탁월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를 통하지 않고는 진리를 접하지 못해, 진리를 접하면 당장 바짝 타서 절단나 버립니다. 또, 보다도 성령님은 더욱 그러합니다. 이러니까 그저 성령님은 저를 멀리 떠났고 진리는 제가 하나의 지식같이 그렇게 제가 그저 범성죄를 범하는 그런 일이나 하고 있지 실효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생된 것은 예수님의 피공로와 나와 연결된 그 연결로 우리의 영은 중생됐습니다. 또 영감과 진리로 연결돼 가지고 영은 중생됐습니다. 그런데, 이 중생은 하나님이 시키셨고 이 영의 중생은 완전이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다시 그게 끊쳐지지 않습니다.
내가 문을 두드리노니 열어 달라 하는 것은 우리 중생된 영과 연결된 이 세 가지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 마음과 연결을 할라고서 그렇게 지금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문을 두드려서 우리 마음과 연결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본구원인 영의 중생은 우리 주관 행위는 하나도 없이 순전히 객관의 은혜로만 된 것이기 때문에 거게는 우리가 상관할 것이 없습니다. 벌써 객관의 은혜로 됐고 주관이라는 거는 털끝만치도 거기 섞여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건설구원, 행위구원, 성화구원 이 구원은 우리의 심신의 기능구원인데 우리 심신의 기능구원은 우리가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이 기본구원을 믿음으로 힘입고, 믿음으로 힘입고 ‘나는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이다, 나는 사죄를 받은 사람이다, 칭의를 받은 사람이다, 화친을 받은 사람이다, 또 영감과 진리로 나는 중생된 내다.’ 이것은 우리가 뭐 노력할 것도 없고 믿으면 됩니다. 믿으면 됩니다. 이건 믿을 것뿐입니다.
이것은 믿을 것뿐이고 그 다음에 건설구원 얻는 것은 이 믿음으로, 이 세 가지 연결된 것을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 마음이 연결을 할라고, 연결을 할라고 인식을 하고 연결할라고 노력을 하고 연결할라고 애를 씀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지 저절로 연결되는 것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심신이 지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연결할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주님이 나를 이 세 가지 대속을 죽으심으로 하셨다. 그것을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그 말은 예수님의 피는 대속의 절정을 가리켜서 피라고 말한 것인데,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함으로, 대속을 생각함으로, 또 대속을 감각함으로, 대속을 깨달음으로, 대속에 그 충격을 받음으로, 어쨌든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으로 인한 그 힘이라야, 대속으로 인한 힘 그것이라야 영생하는 것을 이루지 그것이 없이는 영생하는 것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내가 생각지 안하는데 그 대속의 공로가 내 심신과 상관이 없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이 진리를, 성경 말씀을 우리, 현실에서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 이라면 하나님 말씀에 합당하냐? 이라면 하나님 말씀과 배치가 되느냐?’ 자기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이라면 일치가 되나 안 되나?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생각하고 말씀과 자기의 언행 심사를 일치해서 거게 준해 가지고 할라고 애를 쓰는, 애쓰는 요게 있어야 영감도 진리도 우리와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에는 생각 안 해도 관계 없지마는 우리 건설구원은 하나님께서 순전히 우리의 노력을 요구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겠다’ 그러면 우리 건설구원은 죽도록 충성해야 되는 구원이요 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야 이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저 기본구원 이루어지는 거같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이 마음이 이 세 가지와 먼저 자기가 생각으로 연결되고 또 생각으로 연결되면 지식으로 연결되고 그 다음에는 이제 감각으로 연결되고 그 다음에는 의지로 연결되고 또 모든 소욕으로 연결이 되고 그라고 나면 그것이 거게 피동돼서 그 몸에 신경과 모든 근육과 이목구비 수족이 그대로 움직여져 가지고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게서 성화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게 없이는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귀란 놈이 구원이라는 것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나누지 못하도록 많은 방해를 지기나 이제 나눠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합니다.
그라고 나서는 또 이 건설구원이라는 것은 기본구원이 이루어진 거와같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렇게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건설구원을 이루는 우리의 인간 부담의 표준을 아주 엉망으로 틀리게 해 놨습니다. 이거는 뭐 얼토당토 안 한 이것을 표준을 잡아 놨기 때문에 교회가 자꾸 부패해지고 타락해지고 저 맘대로 행동합니다.
이거는 뭐 그저 기본구원 모양으로 이걸 착각하고 오산을 해서 은혜라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공짜배기란 말인데 그러니까 건설구원도 공짜배기로 이룬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녜, 건설구원도 공짜배기입니다.
왜 공짜배기냐? 그거는 우리의 건설구원도 인적 요소가 이룬 것은 건설구원이 못 됩니다. 인적 요소 그거는 다 유한한 것들이요 무능한 것들이요 가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말로 말해서 불완전한 것들입니다. 이 육체의 우리가 심신의 기능을 기울인다 해도 이거는 아주 유한한 것이요 불완전한 것이요 무능한 것이요 또 이것은 온전치 못한 더러운 것들입니다.
이것은 더러운 것인데 이 더럽고 무지 무능한 이것이 완전을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건설구원은 완전입니다. 어째 완전인가? 그 완전은 우리의 이 심신의 기능을 완전이 붙들었을 때에 완전에게 불들려진 고것만 이제, 심신 그게 완전이 아니라 완전이 그 심신을 붙들었기 때문에 이제 그것이 완전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 예를 듣다고 하면은 이런 무지 무능의 인간들의 지능이지마는 성경을 기록할 때에 이 능력이 이 사람들을 붙들고 그렇게 신구약 성경을 기록할 때에 그 기록한 것은 완전 무결이요 정확 무오하게 기록했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그거는 성경 기자들의 심신의 그것이 다 완전하게 된 게 아니고 그거는 그대로인데 완전이 붙들고 역사했기 때문에 그 역사된 것은 완전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뭐이냐? 오늘 우리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 우리는 그렇지만 그분의 완전의 신적 요소가 우리를 붙들어서 우리가 붙들렸을 때에 그분이 붙들고 있는 그거만큼은 완전의 역사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너무도 가치가 고귀하기 때문에 공짜배기로 받는다는 것이지 가치가 없어 그런 것 아니고, 또 ‘값이 없어도 사라’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값은 안 되지마는 네게 있는 거 내놔야 된다 그 말이오. 값은 안 되지마는 네게 있는 거 다 내라. 네게 있는 거 뭐 내느냐?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다 내놔라. 다 내놔야 이제 이것이 네것이 되지.
네가 네게 있는 거 네 욕심대로 세상에 이런 거 저런 거 다하고, 목회하는 것도 제가 이리 이용해 먹고 저리 이용해 먹고 예수님과 이 복음과 이 진리를 얼마든지돈 위해서도 이용해 먹고 제 주관을 위해서도 이렇게 해 먹고 제 모든 편리를 위해서도 이용해 먹고 얼마든지 이용을 이렇게 해 먹고 이라면서 구원이 이루어지리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요거는 뭐이냐? 쭉정이라.
‘스스로 속지 말아라.’ 갈라디아서 6장 7절 이하에 `스스로 속이지 말아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아니하신다. 사람의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라.’ 그 심판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뭐 조급할 것도 없고 이래 경고하고 난 다음에 냅둡니다.
‘그대로 거두리라’ 뭐라고 말했습니까? `육체로 심은 것은 썩어진 것을 거두고’ 육체를 소망하므로 심은 것은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은 것은 영생을 거둔다’ 그러면, 육체라 그 말은 내나 심신의 힘 가지고서 해 놓은 것은 다 헛일이라 말입니다.
고 알곡이라는 것은 알맹이, 그러면 알맹이를 품고 있는 그 껍데기는 알곡이지마는서도 언제든지 껍데기는 껍데기고 마지막에 정리해 버리면 껍데기 그거는 다 타 나가 버립니다. 피조물은 피조물이요 창조주는 창조주요 불완전한 거는 불완전한 것이요 완전한 거는 완전한 것입니다. 이룬 거는 하나님이 순전이 이루었고 우리는 은혜로 받은 것이라. 요렇게 구별해서 요거 획선을 딱 그어 가지고 구별이 돼져야 되지 이걸 범벅으로 타 가지고서 이래 하는 통에 헛일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공로와 진리와 영감 이 셋과 연결이 돼 가지고 우리 영은 살아났습니다. 연결이 돼 가지고 살아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영이 움직이는 힘은 무슨 힘이냐? 순전히 진리의 힘이오. 영은, 영 그거 무슨 아무 힘이 있는가? 영은 하나의 그저 무슨, 하나의 전연히 기능이 없는 겁니다. 영은 전연히 기능이 없습니다. 영은 기능이 없는데 이 세 능력이 영을 붙들고 역사할 때, 이 세 기능대로의 영은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 자체가 만일, 비유컨대는 억만 년 지내고 난 다음에 이 세 가지 기능이 딱 끊어져 버리면 그게 그대로 다문 며칠이라도 움직일 수 있느냐? 움직이지 못합니다. 전선 끊어지면 전구에 광명이라 하는 건 당장 없어지는 거와 같이 그와 같이 되어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도 우리가 잘 구별해서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생명이 떠나면 그때부터 썩는 것입니다. 생명이 떠나면 썩는 거. 생명 떠나면 썩는 것이니까 이 세 가지가 우리 생명이기 때문에 이 생명이 한 시간 떠났으면 한 시간 그 심신의 기능은 다 썩었습니다. 두 시간 떠나면 두 시간 썩었습니다. 일 년 떠나면 일 년 썩었습니다. 평생 이 세 가지와 연결하지 않는 그 심신 가지고서 안 믿는 박사들도 있고 안 믿는 정치가들도 있고 안 믿는 모든 철학가들도 있고 굉장한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런 거 가지고서 이 목회를 할라 하는 그거는 마지막에 저도 유황불 구렁텅이에 들어가고 제가 택한 자면은 영은 하늘나라 가지마는 심신은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저에게 속한 양떼들도 다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어리석은 그런 목회를 안 해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설교를 하면서, 이래야 교인들에게 인기를 끌겠나 저래야 끌겠나? 어짜면 교인들이 내게 은혜받아 가지고 나를 따라 붙겠느냐? 벌써 설교하는 목적과 동기가 그거라면은 그 자체가 바싹 죽었습니다. 완전히 죽은, 완전히 그거 송장입니다. 송장 설교, 송장이 송장 설교를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피로 연결돼 살았으니까 피는 세 가지 역사하는 걸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죄와 칭의와 화친. 그러면 설교하는 그 본질과 본성이 어짜든지 죄가 섞이지 안할라고 하는 그것은 우리 심신으로 감각해야 됩니다. 심신으로.
내가 설교하면서 죄를 안 지어야 된다. 죄를 안 지어야지. 털끝만치도 죄를 짓지 안해야 되겠다. 또 설교하면서 내가 영감으로 해야 되겠다. 또 하나님과 나와 연결이 돼 가지고서 하나님의 지체가 되고 하나님의 것이 돼 가지고서 설교해야 되겠다. 이거는 우리가 할 것은 뭐입니까? 우리가 할 것은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원하고 하면 그 마음하고 연결이지 달리는 마음하고 연결할 수 없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마음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하고 또 영감된 그 마음 가지고, 영감은 우리가 압니다.
영감을 모르는 게 아니라 영감을 우리가 압니다. 영감은 자기 생각이 아니고 성경 보고도, 성경을 보면서도, 오늘은 성경 보는데 영감이 내게 왔다 안 왔다 압니다.
알지 않습니까? 또 기도할 때에 성령이 지금 내가 기도할 때에 나를 도우셨다.
오늘은 기도한다고 이렇게 하는데 영감은 하나도 없이 나 혼자 날뛰었다. 성경 볼 때도 그렇다. 설교할 때야 ‘성령이 오셔서 역사하셨다.’ 제가 성령도 원하지 안하는데 뭐 역사합니까? 마귀가 와서 역사하지. 우리는 모른다 그 말이요, 보기에.
한자리 둘이 있는데, 두 여인이 매를 간다는 거는 매 간다는 거는 거게 복음 운동, 교회 운동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의 상징으로 비유한 것인데 교회는 여인입니다. 계시록에도 여인으로 많이 나타났고 또 신부라고도 나타나고 이랬는데. 매라 하는 것은 모든 잡곡을 덜덜 갈면 전부 다 갈려 가지고서 바싹 부숴져서 김가고 이가고 오면은, 교회 오면 다 부숴져야 됩니다. 저거는 장관이라.
장관도 오면 부숴져야 되고 대통령도 오면 부숴져야 되고 그 교회에 뭐이든지 왔으면 그 교회에 그게 바싹 부숴져야 됩니다. 부숴지지 안하면 그거는 암초요 그거는 저 죽고 다른 사람 죽이는 것입니다.
바싹 부숴져 가루가 돼 가지고서 이것이 인제 뚤뚤 뭉쳐서 하나로 완전히 쪄져 버려야, 완전히 생 것이 쪄져서 그게 익어 버려야 그게 하나님이 잡수실 수 있는 떡덩어리가 된다 하는 그런 것을 말한 것인데,
이렇게 자기가 이 세 가지로 연결되는 그것은 우리 마음이 제일 연결이 처음에는 뭐이냐 하면 마음이 생각하는 것이 연결이요 사모가 연결이요 원하는 게 연결이요 또 그라고 나면은 내가 느끼는 게 연결이요 내게 와 가지고서 내 소원이 그 소원이 이루어지고 또 내게 그런 성질과 접해서 성질이 변화가 돼지고 내게 욕심이 또 그 욕심이 생겨지고 또 힘이 나 가지고 그렇게 하고 싶고 하는 이것이 연결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를 사모하지 않는데 무슨 연결이 되겠습니까? 생각지 않는데 무슨 연결이 되겠습니까? 원하지 안하는데 무슨 연결이 되겠습니까? 여게 떨어지나 붙었나 연결이 되나 안 되나 이것도 생각하지 안하고 자기 생각대로 그저 사람 보고 물건 보고 일 보고 그것만 보고 저하고 그 사물하고 사람하고 이거 하고만 저하고 상대해 가지고 지금 거게서 제 지혜대로 제 꾀대로 해 가지고서 어떻게 해서 자기 중심에 유익하도록만 해 가지고서 날뛸라 하는 이것에 무슨 진리가 거기 가겠습니까? 무슨 성령이 거기 가겠습니까? 성령이 등신입니까? 성령이 거기 안 갑니다. 가면 저는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할 수밖에 없지요. 진리도 안 갑니다. 예수님의 피공로가 어떻게, 죄를 위해서 죽으신 피가 어떻게 거기 가겠습니까? 자기 중심을 죽일라고 이래 하신 건데. 이러니까 그것은 저 혼자 날뛰기 때문에 그것이 절도요 강도요 그것이 양을 삼키는 이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연결이 됐을 때에 이 세 가지는 지극히 큰 능력입니다. 진리도 전능을 가졌고 영감도 전능을 가졌고 이 세 가지 대속도 전능이 이 대속을 이루었습니다. 대속이, 신성과 인성이 합해 가지고서 이 대속을 이뤘으나 신성이 주격이 돼 가지고 인성을 붙들고 역사했기 때문에 이는 완전히 전능자의 역사요 완전자의 역사요. 이러기 때문에 피도 완전이요 전능이요 영감도 진리도 다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거게 연결이 되면 우리 마음은 전능의 마음이요 전지의 마음이요 완전의 마음이요 영원 불변의 마음이요, 연결됐을 때. 고 연결된 거는 고만 영생입니다. 또 우리 마음의 기능도 그렇습니다. 한 시간 연결됐으면 고 한 시간 영생되고 두 시간 연결됐으면 두 시간 영생되는데 이 연결이 되면 우리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자요 요 연결이 끊어지면 끊어지는 그때부터 완전히 죽은 자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러면 연결을 뭘로 하느냐, 대체? 연결을 뭘로 하느냐? 그러면 진리와 이제 예수님의 피공로와 영감과 연결이 뭘로 됩니까? 뭘로 가지고 연결하면 연결이 됩니까, 연결이 되기를? 뭐 밧줄로 짜맵니까 거기다 뭐 쇠고랑으로 뭐 천사가 내려와서 무저갱에 가둘라고 뭐라 했지, 쇠줄이라 했나 뭐라 했나? 결박인데 그래 무슨 뭐 무슨 줄 가지고 왔다 했지? 쇠사슬이라.
쇠사슬 말이오. 쇠사슬 가지고 결박인가? 그것도 아니고 이것은 순전히, 나와 이 지극히 크신 이 세 가지 능력과 영은 연결이 됐는데 내 심신이 연결되는 것은 마음이 연결돼 가지고 그 다음에는 몸과 연결이 되는 것인데 마음과 연결되는 데에 뭘로 가지고 마음과 연결이 되겠습니까? 뭐 가지고 결박이 되고 연결이 되겠어? 예? 생각이요, 사모요.
‘너희들이 속에서 샛별이 떠오르기까지를 이를 사모하는 것이 가하니라’ 또, ‘갓난 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거와 같이 궤휼이 없는 순전한 젖을 사모하라’ 이렇게 우리가 이거 쉬운 거 같지마는서도 이게 하나님의 약속을 그래 했기 때문에 우리가 사모하고 생각하고 원하면 되고 딴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이 세 가지 지극히 큰 능력과 나와의 연결되는 것이 아무 돈 드는 것도 없고 아무, 돈 암만 들여 봤자 안 됩니다. 천하 세력이 다 달라들어도 안 됩니다. 다만 구속받은 자가 예수님의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기본구원 얻은 자가 ‘나는 세 가지 기본구원을 얻었다.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와, 내 주인공인 영은 이 세 가지에 연결돼서 살아 있다. 내 주격은 살아 있다.’ 그러면, 우리에게 이 심신을 구원할라고 올 때에 몇이 옵니까? 우리 심신을 구원할라고 올 때에 몇이 옵니까? 몇이 옵니까? 녜, 넷이 옵니다. 넷이. 넷이.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와 중생된 영과 이 넷이 옵니다. 넷이 와 가지고서 우리의 지금 심신을 구원할라고 하는데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문을 두드리니까 문을 열어 달라 하는 것은 문 열어 달라 말이 무슨 말입니까? 문 열어 달라 말이, 이제 믿고 사모하라 그 말이오. 그걸 다른 말로 해서 피와 살을 먹으라. 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문을 두드리는데 문 열라 그 말은 우리가 다른 힘이 들지 안하고 그저, 나는 기본구원 얻었다. 이 세 가지와, 내 주격인 영은 살아 있는데 셋으로 살아난 영하고 넷이 지금 나를 살릴라고 온다. 넷이 이거 나를 살릴라고 오기 때문에 내가 ‘이라면 이 진리를 내가 영접해서 진리와 나와 동행할 수 있나? 영감하고 동행할 수 있나? 예수님의, 대속과 동행할 수 있나? 내가 중생된 영이 나를 주격으로서 주장하게 되나? 이것은 생각하고, 생각하고 원하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뭐인가 분별하도록 하라’ 자꾸 이렇게 분별하고 생각하면 된다 말이오.
그러면 생각해서 탈선되지 안하도록 할라고 애쓰고 이 넷과 연결될라고 애쓰고 이라면 연결이 되고 이 넷과 연결될라고 애쓰지 안하고 탈선되지 안할라고 주의하지 안하고 이거 없는데 저절로 이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접선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저녁에 지금 말하는 것은 오늘 우리 교역자들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도 성령도 진리로, 옛죄 깨끗하게 씻음을 잊어 버렸다고 말한 거와 같이 내가 중생됐다는 이것도 잊어 버리고 그저 지금 날뛰고 목회하고 심방하고 뭐 이렇게 권면하고 이 모든 하는 것이 누가 하고 있느냐? 하고 있는 그것이 이 넷을 잊어 버리고 할 때는 그것은 순전히 육체가 하는 것입니다. 심신이 주장해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여게서 다 망쳐지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것만 생각하고 이라면, ‘내가 이라면 진리에 탈선되나 진리와 연합이 되나? 이라면 성령이 나와 함께 해 주시겠느냐 성령이 함께 안 해 주시겠느냐?’ 요것만 생각하면 될 터인데 성령이야 함께 하든지 말든지 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황불 구렁텅이가, 저의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이나 산 생활은 다 거게 불타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쭉정이인지 알곡인지? 우리는 언제든지 알곡이나 우리는 껍데기입니다. 껍데기인데 우리가 이 세 가지 능력을 우리가 영접하면 알곡이 되고 세 가지 능력을 우리가 잊어 버리면 쭉정이 됩니다. 별 수 없이.
이러니까, 좀 목회하는 사람들이 제가 교회가 부흥되는 게 문제가 없어. 교회가 부흥되고 그게 또 문제가 아니고 또 다른 사람이 인정하고 안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신 하나가 구원 얻는 것이 그게 문제 아닙니까? 이러기에, 지금 영도 원하고 있고 이런데 이 세 가지 능력이 우리 영에게 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영에게 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과 나와의 접선이 되면은 이 세 가지에 이 접선이 돼 가지고 연결되기 때문에 이것만 되면 뭐, 이것만 되면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하나님이 작정하신 대로 그 결과는 얼마든지 이룰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그러면 교회 부흥을 원할 건가? 또 교인들이 은혜받는 거 원할 건가? 그거 원하는 거 그가 다 외식이요 껍데기요. 그저 나는 이 세 가지 능력은 내 중생된 영에게는 와서 있는데 내가 이 세 가지와 연결되는 이것이 문제기 때문에 이 연결되는 데만 전심 전력을 자꾸 기울이면 이 세 가지 능력이 이런 일이고 저런 일이고 하실 일은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렇게 하면은 요것은 그 능력이 하기 때문에 해 놓은 것도 실수가 없고 또 앞으로도 끝이 없이 자꾸 해 나가지마는서도 이것이 아닌 인간의 자기 이성이나 주관이나 그런 거 가지고서 이래 한 것은 아무리 그것이 크게 한다 해도 뒤에 끝이 없고 다 그거 쭉정이기 때문에 유황불 구렁텅이로 들어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총공회 이 산하에 있는 교역자들은 이 세 가지와 내가 연결돼야 내 목회가 헛일이 아니지 이 세 가지와 연결되지 안하면 다 헛일이다 하는 요거 생각을 하고서 그저 ‘내가 이 세 가지와 연결이 끊어질라?’ 요거 생각하면 지혜가 충만하고 또 이 세 가지와 연결할라고 애를 쓰면 능력이 충만합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우리가 목회를 하면은 참 수치를 당하지 안할 것이고 성공을 할 터인데 이 세 가지 능력을 배척하고 자꾸 제가 합니다. 제 마음하고, 피를 생각지 안하는데 무슨 피가 제 마음과 연결이 됩니까? 영감을 생각지 않는데 무슨 제 마음과 영감이 연결됩니까? 진리를 생각지 않는데 무슨 제 마음과 연결됩니까? 그러니까, 이 셋은 떨어지고 순전히 제 마음하고 또 제 고기덩어리의 기능하고 이 둘이 합작해서 일하고 있지 이걸 사모치 안하는데, 사모하지 안하고 있는데, 과거에 듣고 현재 이 셋을, 셋의 이 능력이 역사하는 이 셋은 다 인격 존재인데, 진리는 인격이 아니지마는서도 그도 꼭 인격과 같은 그런 존재인데 이 인격 존재를 영접할라고 하지 안하고 자기가 과거에 아는 고 지식 가지고서 이와같이 하면은 고게 뭐이냐? 고것은 하나의 율법이 되고 말지 생명이 되지 않습니다.
여게는 산 능력이 와서 역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육신하고 마음하고 자기가 이제까지 뭐 어떤 세상에 있는 지식이나 뭐이나 그거 그 지식하고, 죽은 지식, 암만 성경 지식이라도 그 속에 역사할 수 없는 그거 죽은 지식입니다. 이 죽은 지식하고 이렇게 합해 가지고서 이런 일 저런 일 하고 있으니까 순전히 그게 예수의 이름만 팔았지 그 속에 역사하는 것은 다 세상일과 꼭 같기 때문에 한 자리에서 두 여인이 매를 갈고 있지만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잠깐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