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빛이다

 

1981. 10. 14. 수야 

 

본문 : 요한복음 1장 1절 - 18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히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는 이 말씀과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는 이 말씀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 신구약 성경같은 이런 말씀을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말씀이라고 나타낸 것은 제 이위  성자의 이름을 말씀이라 그렇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이 말씀은  천지 창조의 그 태초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원전 태초를 말씀하신 것인데  그러면 말씀이신 제 이위성자 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 계신때가 있었단 말이  아니고 이 성자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신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목저기을  정하시고 그 목적을 위해서 역사하신 그 목적을 정하신 그때를 가르쳐서  말씀합니다. 제 이위 하나님께서 역사로 나타나신 그때를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이고 하나님은 계신 그 시간은 우리가 정하지 못한 영원전에 계셨습니다.

이 말씀이신 이 하나님이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을 가르쳐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그 신성의 이름이 말씀이라고 이렇게도  나타내셨고 또 예수님으 그 신성을 그리스도라 이렇게도 나타내셨고 또 영존하신  아버지라 이렇게도 나타내셨습니다. 평강의 왕이라고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예수님의 그 신성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나타나시기 전  하나님으로 역사할 그때 이름을 말씀이라고 하는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신데 삼위일체의 하나님 그 삼위중에 한  위로 계신 것을 나타내서 말씀합니다. 이분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영계의 것이나 물질계의 것이나 모든 것은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  전에 모든 것을 지어 놓으시고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 전에 영계 것도 물질계의 것도 다 예수님이  지어놓으시고 예수님의 신성이 지어놓으시고 오셨습니다. "지은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것이 없느니라" 그러면 주님이 짓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만물을 지으셨다 이렇게는 말을 못 합니다. 왜  말을 못하는고 하니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인성을 입고 나타나셨을 때에  그때 이름을 예수님이라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나타내셨기 때문에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신성과 인성 신인양성일위로 나타내셨기 때문에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신성과 인성 신인양성일위로 나타나신 그 후에 이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 하셨다 이렇게는 말을 못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인성도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는 말  못하나 예수님의 신성이 천지 만물을 창조해 놓으시고 사람되어 우리를  구원하실려고 오셨습니다. 또 10절에 "그가 세상에 계셨으니 이말은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 전에 세상에 계셨단 말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인성을 입고  오시기 전에 세상에 계신것을 말합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창조하신다 하시고 하나님께서 물위에 운행하셨다 또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인도하시고 또 숲속에 숨은 것을 찾아 만나시고 한 그  하나님이 곧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의 신성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또 그후 계속해서  노아 때에 심판하신 분도 예수님의 신성이시요. 모든 인류가 다 멸망받는데  노아의 여덞식구를 구원하신 그 구원으로 인도하신 하나님도 예수님의 신성이  인도 하셨습니다.

그걸 가르쳐서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 이 말씀은 이 시공세계 이 역사 세계를  주님이 지으셨습니다. 도성인신하시기 전 영으로 땅위에 오셔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지으셨고 또 그후 세상이 계속 이렇게 진화도 되고 변화도 되서 오늘에  이른 이 세상도 예수님의 신성이 다 지은신 것입니다.

세상이라고 하면 사람과 악령과 천군천사와 모든 만물들 이런 것이 다 합해  가지고 작용해서 오늘이라는 이 역사 세계가 되가지고 있는 이것을 가르쳐서  세상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는 의로운 것도 있고 불의한 것도  있어서 선도 있고 악도 있다. 그러면 선은 사람 입고 오시기 전 주님이 주님의  신성이 세상에 있는 모든 선함에 속한것은 다 주님이 창조하셨지만은 악에 속한  것은 어떻게 됐는가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선악으로 두쪽으로 나누어서 선은  주님이 창조하신 것이고 악은 마귀가 창조했다. 이래서 이원론을 말하는 그런  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대로가 아니고 주님이 홀로 이런 것을 시키시고 저런 것을  시켜서 천사와 만물을 시켜서 이것을 통해 저것을 만드시고 저것을 통해서  이것을 만드시고, 또 죄를 만들어 벌하시고 의를 만들어 상을 베푸시고 하는 그  모든 역사를 주님이 홀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홀로 하셨지 근본  선악의 근원이 둘 있어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당신의 선하신 그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  가지고 이런 것 저런 것을 당신이 작용하신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에게  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가정에서 사용하는 데도 별로이 용도를  위해서 온갖 것을 구비해 놓고 쓸때에 어떤 것은 참 험하게 쓰고 어떤 것은 또  귀하게 쓰고 그런 것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이것은 죄의  이용되게 하시고 또 의에 이용되게 하시고 하는 것이 당신의 완전하신 그분의  완전한 목적 달성을 위하신 예정이요 창조요 섭리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은  완전에서나 왔고 완전을 목적하고 완전을 조성해 나가는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그러면 그 사람들은 죄를 지을 때에 벌을 말하고 또  하나님은 그러면 그것이 다 죄고 마귀고 에덴동산에 인류 시조의 타락도  하나님의 예정대로 타락했고 하나님의 창조물이 하나님의 섭리대로 그렇게 그  된것인데, 어떻게 그러면 하나님을 죄없다 할 수가 있겠느냐?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에덴동산 창조나 또 인류 시조에 타락이나 그런 것이  하나님의 예정대로 하나님의 홀로의 주권 능력의 성취로 이루어진 것이지 그것이  다른 무슨 가담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원전 주님은 홀로 계셨고 아무것으로 인하지도 안했고 홀로 계셨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는 있어지게 된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피조물이 어길때에 그것이 죄가 되어지는 것이지 그 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에게는  그것이 죄가 되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위와 권세에 대해서 그리되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이 생면가진 잔디풀을 손으로 뜯어 가지고 서로 이야기  하면서 이 풀을 동가랑 동가랑 이렇게 찢어도 그 생명을 죽인 죄라고 정죄하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차이가 많기 때문에 그것을 찢을 수도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그 금수 이런 새 짐승을 하나 검어지고 산 새 짐승을  손으로 이렇게 찢어서 짤게 짤게 찢으면 그 사람에게 약간의 정죄가 됩니다. 아!  그사람 징역 살리고 그런 죄는 안되지만은 '잔인하다 잔인하다.' 하는 그런 누명을  붙이게 됩니다. 또 그보다 더 큰 산 짐승을 하나님이 먹으라고 주신대로 먹기  위함이 아니고 그것을 취미삼아, 또 공연히 그 산소나 그런것을 그대로 두고  다리를 하나 쭉 잡아 째고, 또 배를 쿡 찔러서 창사를 내고 이리 하면 '그 사람  아주 그 못쓸 악독한 사람이다 아주 그 사람은 악독한 사람이다.' (싶어서) 거의  정죄가 가까이 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 소를 그렇게 하면 징역을 보내는 그런 일은 우리 법에도  없지만은 어떤 사람이 만일 그렇게 한다고 하면은 그것은 치안법에 의거해서  정죄를 해 가지고 징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위에 있는 아주 못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만일 그렇게 토막 토막 그렇게 한다고 하면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도 다 생명이고 이런데 그 정죄받는 것이 차이 있는가? 그것은 그  가치와 또 권세와 위치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우리가 잔디풀을 하나 공연히 뽑아 가지고 손톱 여물을 쓴다고 해 가지고  정죄하지 않는 것은 그 잔디풀과 우리 사람과의 그 계급 차이, 가치 차이, 권위  차이, 하나님이 정해준 그 위치 차이가 많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차이에  따라서 정죄가 없고 있고 커지고 작아지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없는 가운데 당신이 지으셨고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런 것 저런 것을 만드시 가지고 최후는 하나님 같은 온전한 자 완전한  자 하나님 같이 거룩하고 깨끗하고 온전한 이자를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의  몸같이 하나님의 수족같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대리 하나님의 역할 할 수 있는  이런 존귀한 자로 조성하기 위해서 그 관정에 있어 이런 것 저런 것을 만들어  가지고 역사하신 것이기 때문에, 동기도 선이요 목적도 선이요 또 방편도  선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게 거역한 것은 이렇게 고통을 당한다 하는 것을 두고  하나님에게 순종한 것은 이렇게 행복되다 하는 것을 두고 피조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생명이요. 멀리하는 것이 다 사망이라 하는 것을 실물을  만들어서 이렇게 보여 피조물로 영원히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으며 피조물은 어떻게 하는 것이 생명이요 행복이요 어떤 게 사망이라는 것을  피조물에게 알려,  당신이 목적하시고 지은신 그 피조물이 이런것을 알아 능동적으로 유기적으로  하나님을 섬겨 가까이 하는 이 피조물로 생명으로 충만하여 만물이 하나님  은혜로 충만케 하려는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다 선이시요. 인간에게는 '네가 요라면 삐뚤어졌다. 요라면 옳다.' 이렇게  당신이 명령해서 잘못한 것은 잘못한 값이 있다는 것을 보여 잘못을 방지하고  잘못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기 때문에 이는 다 사랑이요 선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옥은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한 것들과 하나님을 부인한 것들과 또 '내  힘으로 산다, 내 지혜로 산다, 내기다.' 이렇게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로 사는  독존자처럼 자존자처럼 이렇게 큰소리한 모든 존재들이 하나님의 것이 없는  홍포입은 부자는 하나님의 것 물 한방울도 거기에 없으니까 그가 심히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필요 없다고 거부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무슨 필요있느냐?  내것으로 내가 사는데 하는 그렇게 잘못 생각하고 잘못 알고 잘못 행동한 것은  그 결과가 이렇게 된다 봐라!' 하는 것을 만들어 주시는 것을 마치 사랑하는  아들을 양육 하려고 아주 곱들같이 묘하게 좋은것이 있는데 '이런 것 만지지  말아라! 이거는 소위 이름을 가르쳐서 땅속에 묻어논 지뢰라 하는 벼락인데 이거  건드리면 사람 죽는다. 하지 말아라!'  아! 이러니까 아이가 듣지 않습니다. 안들으니까 그것을 하나 만들어 놓고 개를  한마리 걸리도록 하니까 개가 그걸 툭 건드리니까 꽝 것디만은 개가 고만  그자리에서 산산히 쪼개져 죽습니다. 그러니까 그 주인이 아버지가 그 개를 주  거두어 가지고 저 무덤을 하나 만들어 놓으면서 '너 봤지.' 얼마 몇칠 몇달 지나고  '너 이 무덤이 무슨 무덤이지?' '아! 지뢰을 밟아 가지고 터져서 죽은 개 무덤  아닙니까.' '그래 기억하지.'  부모가 자녀를 기루기 위해서 온갖 그 자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만들어 가지고  죽는 것도 만들고 깨지는 것도 만들고 부서지는 것도 만들고 아이을 사랑해서  구비한 양육을 시키기 위해서 온갖것을 만들어 가지고 역사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어논 것이지만은 우리는 그렇게 이용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와 불택자와 다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목적 안에서 지은  택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목적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심 같이 거룩하고 깨끗함 같이 깨끗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머리고 너희들을 가르쳐 교회라 말하는데 교회는 몸이고  이리하여 만물 가운데에 하나님의 충만을 교회를 통해서 충만케 하도록 만물을  발등상이요,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온전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용 하시려고 지은 풀도 있고  짐승도 있고 일월성진도 있고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목적 달성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를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그를 위해서 재물 받았는데, 외모의 보기에는 꼭  같지만은 하나님의 선택이 다르고 또 그에게 하나님의 부과하는 은총이 다르고  그의 결과가 달라지도록 만들어지는 것이 자연인과 특수인입니다.

특수인은 하나님의 목적안에서 지음을 받은 선택을 받는 사람들이고 또 선택받은  자의 구속을 위해서 지음을 받은 것은 일반인이요. 불택자라. 유기자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3장에 보면은 "애굽을 구속물로 주셨다 많은  사람의 생명으로 너를 대신하게 했다." 하는 그 말씀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우리가 죽을 것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이용을 해  가지고 우리에게 그 멸망에 빠지지 안하고 그 멸망을 알아서 거기에서 바른  생명길을 걸어가도록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는 하나님을 부인케 하는 무신론 물질이 제일이다. 세상에 누구  부러워 보이는 이것이 제일이다 하는 하나님의 이 선포하신 계약 말씀을 부인케  하는 이것이 가득찬 세상에서 그들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 위주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계약 위주로 살고, 또 피조물 위주로 살지 안하고 보이지 안한 창조주를  모든 것보다 크게 인정하여 그분을 상대해서 사는 이 거슬리는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산 것을 하늘나라에 두어서 봐라. 이는 요만큼 더 순종해 살았기 때문에  심신의 그 신령한 세계에 영생하는 기능이 더 강해졌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자기의 그 영이 하나님 모신 영이 중생된 영이 자기가 타고  다니는 그 승구 자가용 비행기 모양으로 마음도 다 그 육체인데 마음이 신령한  마음으로 변화가 된 그 부활하고 난 다음에 이 다음에 부활하고 나서 주님  재림하고 오시고 난 다음에 부활해 가지고 부활하고 난 다음에 그 세상에서  길러논 마음의 기능, 마음의 기능은 영계에 타고 다닙니다. 그 마음의 기능을  타고 어데든지 이 세상에서 가본 데는 다 갑니다. 안가본 데는 못 가요.

이 세상에서 그 마음이 하나님의 인도에 한 번 따라가본 하나님의 인도에 한 번  순종 해본 한 번 순종 해 봤으면 그것은 끝나버렸습니다. 순종 해본 것은 그  명령은 무궁세계 가 가지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 명령은 순종할 수 있습니다.

저게 가라 하면 타고 뚜루루루 갑니다. 그 거역하고 순종을 못했습니다. 거역한  것은 세상을 떠날 때에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다 삭제해서 그것은 다 벗겨  버리고 정죄해서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은 우리가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도 고린도후서 55장에 보면 "그리스도의 심판대로 다 선다."  했습니다. 9절에 그리스도의 심판에 그런것 다 제거해 버리고 부활을 해 가지고  가기는 갔는데 부활을 다 했지만은 마음의 기능은 세상에서 하나 밖에 순종 못  했으니까 하늘나라 가 가지고 하나 밖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마음의 기능입니다.

하늘나라 가 가지고 하나 밖에, 예를 들면 간다면 요 간다면 고 왔다 갔다 왔자  하지 고만가지 딴데는 못가.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한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고것밖에는 순종 못해. '야 아무데 가거라!' 가 봤어야 가지, 갈 기능이 있어야  가지, 그거는 못갑니다. '저게 갈 사람 있느냐?' 하면은 땅위에서 그 명령 순종  해본 사람들은 다 갈 수 있지만은 고 명령 순종 안 해본 사람은 못 갑니다. 요  비유로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땅위에 맨 다음에 주님이 명령하신 대로 요구하신 대로 인도하신  대로 전부 다 순종 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내나 땅위에 하나님께서 이거 저거  시키는 그 명령 그대로 무궁세계도 그렇습니다. 무궁세계 가 가지고 하나님께서  '야 저 가봐!' '예 저리 저리 돌러가봐!' 갈 사람 있어야지 사도 바울이 척  둘러옵니다. 저 원수 있는 저 갖다가 원수 있는 '저 원수를 사랑하는 그 세계에  한 번 갔다 와 봐!' 땅위에서 원수를 사랑해 봤어야지 못합니다. 원수 사랑하는 그  세계는 땅위에서 원수 사랑하는 그 믿음을 지킨 그것으로써 마음의 기능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 갑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갖추어서 하늘나라에 오만데 다 다닙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뭇 성도들 마음속에 다 자유로 출입해 이 사람 마음에도 자유로  들어가고 저게도 들어가고 하나님 속에도 들어가고 어데든지 다 다니요. 녜  이러나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에 못 들어갑니다. 그 사람이 못들어 와서  못들어 오라해서 못들어 가는 게 아니고 자기가 자기에게 거리껴서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지금 자유 세계에 없는 것인데 주님 말씀하시기를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결단코 그 옥에서 나오지 못 하리라." 하는 그 옥은 자유의 제한된 자유가 제한된  그 제한을 가르쳐서 옥이라고 말씀하신 것인데 그 자유의 제한된 그 제한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행해서 그것을 풀어서 해방이 되어야 무궁세계에서  자유할 수가 있지 세상에서 자기 욕심에 갖혔든지, 자기의 주관에 갖혔든지,  자율에 갖혔든지, 성질에 갖혔든지, 세상 어떤 애정에 갖혔든지, 세상에 무엇에  갖혔든지, 갖혀서 하나님 말씀대로 자유하지 못한 것은 무궁세계에 자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이 물질세계도 자유로 다닙니다. 물질세계는 자기의 몸을 성화시킨 몸을  성화시킨 이몸의 기능이 있으니까 이 몸의 기능을 타고서 이 물질계의 우주에  마음대로 다닙니다. 이러니까 영계와 물질계를 그저 일초동안에 억억만 번이나  다닐 수 있는 이런 신령한 몸으로 주님이 부활하신 그 몸과 같은 그 몸으로  우리가 부활할 터인데 기능은 지금 우리가 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하오리까" 하는 그 말은 그 기능이 어떻게 하면  영생할까 세상에 죽지 안하고 영생할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라 너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이웃사랑을 네  몸과 같이 해라 이러면 영생이 된다." 이러면 고 시간 고 시간에 해당된 그  요소는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난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가 주리니 둘째 사망의 해가 너를 다 해하지 못하리라."  "그러면 죽도록 충성해라" 말은 생명도 애끼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인도 하신 고  인도를 따를려고 물질 애껴서 가다가 마는, 인간 명예가 아까워서 마는, 인간 좀  평안하기 위해서 마는, 인간 목숨 아까와 마는, 인간 뭐 목숨이든지 뭐이든지  주님의 인도, 요 시간에 나에게 해당된 진리와 하나님은 놓지 않겠다. 요 시간에  주님이 구속하신 사죄로 놓지 안하고 칭의도 놓지 안하고 하나님과 화친한 것도  놓지 않겠다. 요렇게 하면 비로서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를 준다. 생명의  면류관이라 말은 생명이 승리한다 하는 승리준다 하는 그말입니다.

생명이라는 거는 어떤 게 생명이냐? 생명은 피조물의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된  고것이 피조물의 생명입니다. 생명 얻은 자가 살아난 자가 우리는 영이  중생했습니다. 살아난 자가 자기 심신의 이 기능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고 현실을  통과 했으면 통과한 고 기능은 영생을 가져벼렸습니다. 영생했습니다. 그래  생명과 영생은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현실이라는 이 현실은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영생을 하느냐  영원한 멸망을 받느냐? 이래서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이 승리해서 네 기능이 고  현실에 해당한 기능은 영생을 가지게 된다. 가진 것은 둘째 사망의 해를 보지  않는다." 그러면 "둘째 사망의 해를 보지 않는다." 그말은 첫째 원죄와 본죄로  우리가 죽는데 예수님이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 대형 대행 대화친을 해서 이  공심판을 면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 있기는 얻어 있지만은 이 생명 얻은 자가  현실에서 생명 생활을 해야 그것이 완전히 얻어지는 것인데 생명생활을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속으로 살아난 것이 다시 죽는걸 가르쳐서 둘째 사망의 해라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이 법적으로 우리를 대속해 가지고 살려놨는데 실질적으로 우리가 사는 것은  현실인데 이 심신이 사는 거는 현실인데 현실에서 살아나지 못하면 예수님의  대속으로 사망에서 구출한 것이 다시 둘째 사망으로 죽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 영육이 법적으로 구속을 하셨으나 실질적으로는 진리와  성령으로 영이 중생되고 중생은 영의 중생은 영은 단일체의 단일성이기 때문에  단번 중생이 되고 이 육이라고 말하는 것은 심신을 가르쳐 육이라고 말합니다.

요새 사람들이 말하기를 마음을 영이라 영이 마음이라 이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들에게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이것은  혼입니다. 혼,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그것이 영인데 하나님의 속성대로 된  그 인격성으로 된 그 영이 "죄와 허물로 죽었다." 말은 영육이 죽었지만은 단번에  죽은 것은 영이 죽었습니다. 영이 죽은 영을 아직 살아 있는 이 심신의  고기덩어리 속에 집어 태워 가지고 저거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안 믿을 때에는 죽은 영과 사형 선고를 받은 아직까지 덜 죽은  이 심신으로 된 육과 이 둘이 합해 가지고 살다가 이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은 다시 살아났고, 또 이 아직까지 사형을 받아 가지고 있지만은 다 죽지 안한  이 심신을 죄 아래 있습니다.

그러기에 로마인서 8장 10절에 보면 "영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의를 인해서  살았으나 이 육은 죄로 인하여서 죽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다음에  15장 23절에 가서 보면 곧 우리까지도 탄식하는 것은 성령의 처음 익은  우리까지도 성령이 처음 익었다 말은 성령의 첫 결과라 말인데 그것은 중생된  영의 될 것 미래사입니다. 양자될 것 곧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몸의 구속은 우리가 중복적으로 몇천 번 몇 백번으로써 이 몸의 심신의  구속을 받습니다. 마음도 수많은 요소가 종합되 가지고 되있는 것이고 몸도  수많은 요소가 종합되 가지고서 종합체로 되있기 때문에 그 기능도 여러 가지기  때문에 요 기능은 요 현실에서 구출하고 조 기능은 조 현실에서 구출해 가지고  우리의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노력하는 것은 영이 구원얻으려고 하는 것이라. 영은  인간의 노력없이 순전히 객관 역사로 영이 구원을 얻습니다. 중생합니다. 중생한  것은 사람들이 보지 못합니다. 바람이 부나 어데서 오는지 눈에 보이지  안하지만은 바람이 지나가면은 그 표가 나는 것처럼 중생되면 중생된 후에 그  중생된 사람이 행동이 나타난다 그래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중생된 사람이 중생된 영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자꾸 증거해준다 했습니다. 중생된 영과  성령을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서 우리 마음이 지금 자꾸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어떤 사람은 천분지 일이 살아났고, 어떤 사람은 만분지 일이나 살아났고,  어떤 사람은 십분지 오나 살아났고, 어떤 사람은 십분지 구가 살아났고, 세상에서  자기 그 기능을 살릴 그 여분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것이지 여분이 없는  사람은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일생 동안 지나가는 그 참  빠른 기간에 그 심신의 기능을 영생으로 살리는 사람도 있고 둘째 사망의 해로  영원한 멸망을 받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그 심신의 기능을 살리는 것이 현재인데 이 살리는 이것은  무궁세계에서 살릴 것은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는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는  왕권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은  손해갔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인간이 자기 잃는다 말은 중생된 사람이 자기지  중생된 사람이 자기지 참 사람이 자기지 하나님을 제일로 하늘나라를 소망으로  진리와 성령으로 살아나 가지고 진리를 힘입어 성령을 힘입어 사는 이 참사람  속사람 이 사람이 자기인데 이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원수 그놈이 자기 인척  하고서 우리에게 와 가지고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마치 못된 그 불항자가 호주를 죽여버리고 호주가 입었던 옷을 대신 입고, 호주가  썼던 모자를 대신 쓰고, 후주가 입던 그 수염처럼 가발도 씨우고 이래 가지고 떡  오니까 와서 그 부인도 있다가 '아이구 남편 오십니까' 이렇게 인사하니까 '아! 예'  이라고 아이가 '아버지 옵니까' 실은 저거 아버지를 죽인 원수요 남편을 죽인  원수인데, 이렇게 가장을 해 가지고 오니까 그긴줄 알고 모십니다.

모시니까 그 목적이 호주 죽이고 이제 그 가족을 다 죽이려는 그거 살림을  뺏들어 오는 그게 목적이기 때문에 이런 악독을 가지고 하는데 누가 하나 와  가지고 '그놈이 호주가 아니다 저놈이 호주를 죽인 놈이다 원수다 너거 호주는  여기에 있다 저놈이 죽여논 것을 예수님이 살리냈다 살려냈는데 호주는 여기에  있다.' 이러니까 그 식구들이 와 가지고 '와 이게 우리 아버지인데 와서  그르느냐?' 막 달라들고 반대를 합니다. '아 그놈 죽이야 된다고 하면은 우리  아버지 죽인다고 원수로 여깁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기가 둘입니다. 둘로써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참 자기가 있고  자기를 죽인 그 자기 아닌 원수인 거짓 자기 그거는 무엇으로 된 인간인가? 악령  또 악성이라 말은 자기중심의 인간성이라 말이요. 악습 자기중심으로 악령에게  순종해 살아온 모든 생애에 습성입니다. 이것이 뭉쳐 가지고 된 원수인데 이것이  자기인줄 알고  이놈이 주일지킬 때에도 '야 오늘은 돈 문제가 크기 때문에 오늘은 돈 그 벌어  놓고 주일지키자.' '아! 지금 이 출세를 하고 성공을 하려면 술먹고 담배 피우는  교제를 해야 되겠는데 그거 해 가지고 성공하고 예수 믿자!' 요렇게 조렇게  꼬우고 또 '지금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하면 우리를 죽이려한다 어짜노 이때는  이걸해야 안 되겠느냐?' 고기 천상 자기같이 그러니까 자기를 영감과 진리대로  살지 못하게 꼬우는 고거는 원수 자기인데 기도속에 깊히 들어가 보면은 그게  원수인줄 알지만은 껍데기로 살면 항상 옛사람 그게 제고 자기고 세사람은  파묻혀 있습니다.

왜 인간이 참 자기를 잊어버리느냐? 참 자기를 잊어버린 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이게 욕심내다가 잊어버렸다 그말이오. 그래서 "천하를 네가 다 얻는다  할지라도 참 너를 잊어버렸으면 너는 손해다" 그말입니다. 녜 잃든지 빼앗긴다 그  말은 자기의 실력될 이 심신을 세상 욕심 소망 이것 때문에 자기가 성화 받을  것을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어서 죽을 것이 다시 살아나는 이 구원을  이룰긴데 이루지 못한 그것을 가르쳐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또 자기도 잘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니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예수님이  세상 다 지어놓고 왔고 지금도 예수님이 세상 짓습니다. 공산주의를 누가  지위합니까? 예수님이 지위하십니다. 녜 지극히 작은 개별의 섭리도 당신이  주관하지 않는 것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칼을 들고서 독침을 가지고 이는 뭐 '예수 믿으면 찔러  죽이다.' 이럴 때에 그것이 나를 사랑 하시는 주님이 그것을 총 지위하시 가지고  그들을 기계로 도구로 이용해 가지고 나에게 지금 독침을 가지고 달라드는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시는 주님이 그렇게 하는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주님이 나에게 하는 것이니 나는 소망이 있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나에게 뭐 하려고 그렇게 하실까? 두 가지 네가 참 하나님을 믿나  안 믿나? 시험도 되지만은 첫째 요거는 네가 이제 땅에 있는 모든 미련과 소망을  다 끊고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게 하는 것 의지하게 하는 것, 또 주님에게만  가까이 붙게 하려는 것. 이러니까 주님만 좋아하고 주님에게만 들어 붙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내가 못돌아 볼터인데 이미 사형은 사형 받는 것이고,  이제 이 원수에게 독침에 찔리 죽기는 죽는 것이고  이러니까 거기에서 살려고 날뛰는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안하고 또 주님이 나에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소망을 가지고 주여!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뿐입니다. 전적  당신에게만 기울려서 당신과 밀접해질 때에 고때 고게 뭐이냐? 하나님과 딱 덜어  붙을 때에 고때에 고게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고 생명이 되는 것이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예수님 안에 인간과 하나님과의 요렇게 밀접하게 들어 붙을 수  있는 요런 이 구속의 공로가 벌써 오시기 전에 그 목적하고 왔습니다. 이 공로를  베풀어 놨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때에 자기가 하나님과 결합된 남은 요소가 결합이 되고 할 때에  주님은 그가 세상을 떠날 것 같으면 떠날 때가 됐으면 결합되고, 떠났으니까 죽은  것이 살았고, 아직까지 남은 때가 있는 것이면 죽을 것 같은데 결합되 가지고  결합된 것이 다시 살아서 역사하니까 다니엘은 살, 아직까지 살아 남아 있을 그런  시기가 있기 때문에 결합은 됐으니까 결합은 됐고 결합된 것이 나오니까 그렇게  큰 복음 역사를 하고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음바 되었으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고" 그러기에 모든 것을 주님이 지으셨습니다. 이걸 믿어야  됩니다. 이걸 믿어야 되요 날 욕하는 것도 욕하는 것도 왜 저놈 욕하나 할게  아니라 욕하는 것도 그 욕하고 최고의 사령대장은 사령장관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욕하게 해서 했소.

그러니까 이 욕을 주님이 하게 하시는 것이니 이 욕은 반드시 사랑하는 자에게  나에게 지금 하는 것이니까 이 귀한 선물인데, 여기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 당신이 요구하는 것이 뭐일까? 당신이 원하시는 게 뭐일까? 그게 뭐일까?  고거 찾아 가지고 내가 고대로 해서 고로 인해서 주님과 가까와 지고 주님을  만족시키고 나는 주의 것이 되고 주님은 내 주님이 되고 나는 주님을 높히고  주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은 나를 안보 하시고 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자기 땅에 온다" 자기 땅, 이것이 주님 땅입니다. 예 이 모두  동서양 이거 이 우주도 다 주님 땅이요.

내가 언제 어떤 그 선생님 하고 길을 갔는데 그분이 있다가서 '예수 믿고 구원  얻으십시요.' 이러니까 '나는 예수 안 믿을렵니다.' 이러니까 당장 '그러면 살지마  이땅에 살지말고 가!' 하 이분이 이러니까 고만 이놈이 부애가 나가지고 옷을  벗어 놓고 '뭐 어째요! 이땅에 살지말고 가요.' '와요! 이것은 우리 주님이 만든  땅인데 어데 주 하나님 섬기지 안하는 사람이 왜 하나님이 만든 땅에 살아!'  이러니까 처음에는 그 사람이 달라 들더니만은 난중에는 몇 마디 하고 나니까  웃으면서 '예 알겠습니다. 믿지요.' 하고 그래 갑디다.

그때 (박윤석) 선생님 그분 미국가 있는데 같이 가면서 그래요. 자기 땅 이것이  다 우리 주님의 땅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런 주님이시요. 이런 주님인 것을  우리가 알고 믿어야 됩니다. 털끝만한 것도 주님이 역사하지 안한 주님이 하시지  안하는 일이 땅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 공산주의가 저러고 있는것 다 주님이  그 최종의 최고의 조정을 하고 계십니다. 뭐 하려고 우리 깨라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자기 백성." 자기 백성이라 말은 택한자 만이  아니고 창조주 위치에서 말합니다. 창조주 위치에서 모든 인간이 다 당신의  백성이요.

이런데 택한 자는 영접하고 그 이름 믿고 영접하고 불택자는 영접하지 안하지요.

그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 택자들은 하나님으로만 난 자입니다. 근원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났소. 부정모혈로 난 우리가 또 진리와 성령으로  다시 이차 창조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새로 지음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밤에 말씀하고져 하는 말씀은 새벽에 말씀하신 그 말씀이오. 그 안에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이 빛이라." 세상은 전투 세상인데  전투 세상에 양편을 말하기를 하나는 빛이라 말하고 하나는 어두움이라  말했습니다. 어두움은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뭐 죄악 악령 우리를 해하는 모든  것 모든 실패, 모든 낭패, 슬픔, 고통, 질병 이 전부가 다 어두움에 속한 것들인데  어두움에 속한 이 어두움을 이기는 방편은 빛밖에는 없습니다.

이 어두움은 아무리 칼로 가지고 마구 이래 쳐도 어두움은 꼼작도 안합니다.

몽둥이로 암만 두드려봤자 어두움은 꼼작도 안합니다. 총을 암만 놔도 어두움은  꼼작도 안해. 총이 나갈 때에 불이 반짝거리니까 그 빛한테 어두움이 퍽 쪼개져  버리지, 그 빛 외에는 어두움을 이기지 못합니다. 예 빛 외에는 어두움을 이기지  못해요. 그러나 어두움이 아무리 강해고 커도 빛을 조그만한 빛이라도 어두움  그까짓거는 그 앞에 절단이 나  그 제가 어릴 때에 한 기억나는데 조그만한 요 숯 말이오. 불 붙은 숯 요걸  가지고 이래 이래 해 보면 어두움이 있는데 어두움이 척척 갈라집니다. 이 빛이  가는 대로는 어두움이 갈라져 버리요. 꼼작 못해요. 이러면 그 어두움은 쭉  갈라져 버리고 야 이 어두움은 빛 앞에는 꼼작 못하는구나! 빛한테는 녹아져  버리는구나! 이 모든 어두움의 죄악의 세력을 이기는 것은 빛인데 빛인데 빛이  뭐이냐? 그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생명을 받아야  사람의 빛이 된다 말이오.

생명은 주님과 연결이 될때에 그때에 생명이 되어지는 것이니까 연결만 되면  세상의 죄악은 다 그앞에 굴복을 하고서 다 이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복하는데 그 대적의 어두움이 대적하는 그 어두움이 그것이 있을 때에  정복하는 방편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대적하는 그 어두움이 있을 때에 그  어두움을 고등 요리로 잘 잡아 먹고 그 어두움을 잘 먹고 장성해지는 것,  이 어두움을 인해서 주님과 나와 가까와 지고 진리와 나와 하나되서 주님과  진리와 나와 이 어두움을 인해서 하나되게 하는 그것은 이 어두움을 보신탕처럼  먹고 이 속사람이 강해져 가지고 주님과 나와 하나되는 이제 이 승리를 이루는  것이고, 그것은 자기 구원이 되는 것이고, 이 어두움에 속한 것들이 내가 생명  역사를 참 주님과 연결된 그 행위 주님과 연결된 말하고 연결된 행동하고  이럴때에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질 때에는 내 구원에는 잘못하면  손해보기 쉽습니다. 그게 없어지면 내가 주님에게 있는 주님에게 향할 것이  도리어 세상 욕심을 가지고 세상하고 손을 뜩 펴기 쉽다 그말이오.

그러나 그것이 없어짐으로 어린 교인 제 삼자들이 보고 '야 그 보니까 하나님  계신다 그 사람 앞에서 그 어두움의 세력이 그만 깨지고 물러간다.' 이러니까  약한 사람도 제 사람들이 구원이 되고 그것이 눈앞에서 보이는 것이 없어질  때에는 제 삼자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눈앞에 보이는 그것이 없어지지 안하고  그대로 있을 때에는 속에 알람찰이 자기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거기에 비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전투 세상인데 이 공산주의도 이 어두움에서 오는 것인데  그걸 어떻게 이기느냐? 피해 가지고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과 나와에만 결합이  되면 그것은 내 밥이 되든지 보는 대로 물러가 가지고 약자들에게 구원이 되도록  믿음을 주는 일이 되든지 둘중에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 손양원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항복 받으려고 지금 이제 마지막 단판인데  간수가 하도 감동을 받아서 '목사님 오늘 밤에는 꺼꾸로 달아놓고 지금 고  주전자가 한대가 드는데 한대 고걸 꺼꾸로 붙는데 대개는 보면 그 물을 먹다가  배가 차고 고만 배가 차면은 이 코에서 받아 넘길 여가가 없어서 죽어지는데  오늘 저녁에는 아무것도 잡수지 마십시요.' 기별했어. 그날 밤에는 평소에는  자기가 안 먹고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줬기 때문에 말하기를 '여러분들 내가 오늘  저녁에는 좀 먹고 싶은데 날 줄 수 있느냐'고 '아이구 목사님이 자실라 하면은  그기야' 밥도 다 거다먹고 물도 다 거둬먹고 배가 빵빵하이 해 가지고 지금  갑니다.

그라면 주님 위해서 소유와 몸과 생명이 생명을 주님과 진리 위해서 솔박 다  받혀서 자기 전부가 주님의 것이 되고 그로 인해서 주님과 진리는 완전히 자기의  주가 되고 자기의 진리가 되도록 요 소원을 가지고, 이제 주님과 딱들어 붙은 요  마음이라 말이요. 가 가지고 가니까 요 쭉모아 앉았는데 하면나 고문이 있을런가  보니까 저거끼리 아마 이 대동아 전쟁이 전쟁을 우리가 지겠어. 아마 곧 며칠  있으면 손을 들것같애 안되겠어.

이런 이야기를 지금 수근 수근하는데 일 거하는 여는 뜩 손양원 목사님 와서 그  뒤에 앉았다 말이오. 한참 이야기 하다 보니까 저거 나라 험담 가을 그렇게  해놓고 지금 고문을 할 수 없다 말이요. 만일 고문하면 그 입에서 뭐이 티 나올지  모르거든. 이러니까 뜩 보자 '오마이와 오루까 너 거 앉았나 이러면 가라 카요.'  참 주님 위해서 고난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고 주님하고 딱  들어 붙어서 그안에 생명이 작용되니까 그까짓 어두움이 다 산산 부셔버렸지.

녜 그래서 오늘 밤에 설교는 그 안에 생명, 그 안은 주님이라 말이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생명은 세상을 이기는 성도의 능력이라  그말입니다. 주님하고 결합되야 되지 딴거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종전같이 자기 가정에 사정이 꼭 그런 사람은 삼십분 이내라도 기도하고 가고  인간하면 삼십분을 다 채워서 기도하고 자유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저 불꺼  주십시요. 그러고 가방같은 것 딱 그 간수하고 해요. 이 자리를 떠나지 말고 이  말씀을 세김질 다해서 아멘으로 딱잡고 고대로의 진리의 사람이 되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여 떠나면 다시 기억하기가 어려워요. 하나 더 끄이소. 하나 더  꺼요 됐습니다. 그만하면 됐습니다.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저 기도하다가 가면 환하이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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