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11:14
생명길과 멸망길
1988. 1. 20. 수새벽
본문: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이 말씀을 장기간 계속하니까 모두 권태만 내고 별 깨달음이 없는 것같이 그렇게 보여집니다. 이러므로 점점 후퇴할 자는 후퇴하고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갈 자는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거룩한 자는 점점 거룩하고 더러운 자는 점점 더러워진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여게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길이 있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그 길이 있는 것을 여게 말씀했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 그것은 어떤 것을 길이라고 말했는가? 어떤 것을 길이라고 말했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살아가는 길, 살아가는 길이 뭐인데? 알아가는 길, 점점 알아갑니다. 점점 배워갑니다. 점점 경험해 갑니다. 점점 체험해 갑니다. 점점 건설해 갑니다. 사망도 건설하고 생명도 건설하고, 주관도 건설하고 객관도 건설하고, 또, 귀로 들어갑니다. 또 한마디 듣고 또 한마디 듣고 듣는 것으로써 점점 그것이 쌓여갑니다. 귀로 들어갑니다. 들어서 자꾸 하나 듣고 둘 듣고, 오늘 듣고 내일 듣고 자꾸 들어갑니다. 들어서 갑니다.
눈으로 보아갑니다. 하나 보고 그다음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자꾸 보아 가고, 또, 그 사람이 말을 해 갑니다. 사람들은 말해 놓은 것은 그것은, 전부 마귀가 미혹을 시켜 가지고서 이 고기덩어리 눈만 위주로 해 가지고서 하기 때문에 아주 이게 껍데기입니다. 말해 놓은 것은 세월이 지나가면 제 육안에 보이지 안하니까 고만 없어지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말하기를 행위와 말을 심판한다 그렇게, 유다서에 보면은 사람을 심판할 때에 그 사람의 행위와 말을 심판한다 그렇게 해 놨습니다.
심판의 반을 차지하는 그 양이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서로 써놓은 거는 그러하지마는 말해 놓은 거는 아무 그것이 안 보이니까 세월이 지나가서 제가 잊어버리니까 없어지는 줄로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현재에서 미래로, 이 시간에서 다음 시간으로 하나하나 옮겨가면서 늙어가는 그것을 가리켜서 길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데는 일생을 걸어가는 데는 일생을 늙어져가는 데에는 사망의 인도받아서 사망으로 가기도 하고 생명 인도받아서 생명으로 가게 한다 하는 것이 이 말씀입니다. 날마다 해도 이 말씀에 대해서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안하고 있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그 길이 있고, 그러면 인도자가 있습니다. 멸망으로 인도자가 있고 생명으로 인도자가 있다. 네가 언제든지 멸망하지 않고 살라거든 네 육안으로 보는 사람만 보지 말고 당면된 그 사건만 보지 말고 인도하는 보이지 않는 영이 있다 하는 영부터 살펴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영이 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영이 있으니 이 시간에는 어느 영이 지금 나를 인도하고 있나? 네가 그것을 살피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앞에 두 영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인도받는 그 영, 다시 말하면 넓은 길로 또 가기 쉬운 길로 인도하는 영이 있으니 그는 너를 사망으로 인도하는 영이다.
사람들이 대중 대중 말하지마는서도 대중을 따라가는 것이 그것이 넓은 길로 가는 길이 되기 쉽습니다. 대중이 어데 가는데? 대중은 지옥을 가는 물건들이 제일 많습니다. 지옥 가는 무리가 제일 많소! 많은 무리는 지옥 가는 무리들이 많습니다. 다수만 따라가면 되는 줄 알아도 이 성경에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인도하는 영이 둘이다 하는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생명으로 인도하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영이 있다’ 하는 그것을 생각하고 `내가 어느 영에게 끌려가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영에게 끌려가면 나는 멸망한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영에게 끌려가면 살고 평안하다. ’ 그러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그 인도는 내가 받을라고 할 때에 받기가 쉽고 또 그것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자기가 앞길을 선택할 때에, 앞으로 들을 것을 선택할 때에, 보이는 것을 선택할 때에, 들리는 것을 선택할 때에, 자기가 말할 것을 선택할 때에 그 하나하나가 전부 멸망이 되든지 생명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기 때문에 아무나따나 하기 쉬운 대로 닥치는 대로 가까운 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다. 쉽다.
그 아이 말이요, 여보시오, 아이 새벽으로 데리고 오지 말아요. 어린 아이 말이요, 어른들은 실컷 놀 데와 장난할 데를 그걸 알고 이래 가지고서 밤에 늦게까지 이래 거석하고, 이놈을 끌어다가, 그 아이들은 여덟 시간 재워야 돼. 여덟 시간 재워야 되는데 이걸 한 너댓 시간 자고 난 걸 끌어다가 강제로 끌어다가 놓으면 그게 신앙이 됩니까? 절대 안 됩니다. 그게 은혜를 받습니까? 고만 나중에 예배당에 오는 게 징그럽고 일생 동안 하는 것이 예배당과 원수를 만들고 예수믿는 거와 원수를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김현봉 목사님은 주일학교 새벽기도를 시키지 안했어요.
주일학교뿐 아니라 장년반도 새벽기도를 하지 안했어요. 그저 배운 그 말씀 가지고서, 당신은 새벽에 두시 되면 일어나 가지고서 저 산에 가서 기도해요.
그러니까 자유로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은 기도하러 가고 이랬습니다.
이런데, 어른들이 아이에게 맞춰서, 그 정도에 맞춰서 신앙을 인도해야 되지 그걸 어른 욕심대로 그와같이 한다고 그거 돼지는 게 아니라. 열심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자꾸. 이놈을 강제로 ‘가자. 안 가면 안 된다. ’ 끌어 일으켜 가지고서 와 놓고 그놈이 오줌 눌 여가도 없고 오줌을 쌀 모양인데 자꾸 ‘꼼짝 안 해야 된다’ 이러니까 무슨 교훈이 돼요, 되기를! 교훈이라 하는 거 생각해야지.
예수 믿는 것을 도리를 배우지 안하고 자꾸 이렇게 하기 때문에 제 주관대로 예수 믿는 건 다 헛일입니다. 제 주관대로 제 맘대로 예수 믿는 거는 헛일, 또 제 주관대로 기도하는 것도 헛일, 제 주관대로 사업하는 것도 헛일, 제 주관대로 생각하는 것도 헛일, 자기 주관이라 하는 것은 만물보다 거짓된 것과 죄와 허물로 완전히 죽었는데, 암만 뒤비봐야 산 거는 하나 없고 전체는 죽었는데 거기에 산 것이 들어와서 살렸습니다.
산 게 들어왔는데 산 게 들어온 그것을 말하면 몇 가지나 됩니까, 손가락으로? 손가락으로 들어 봐. 산 게 몇 가지나 들어왔소, 손가락으로 들어 봐요? 산 거는 세 가지밖에 들어온 게 없어. 산 거는 세 가지밖에 없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진리와 영감 외에는 산 것이 우리에게 안 들어왔어.
이러니까, 그거 외에 것으로 생각하는 것, 듣는 것, 원하는 것, 계획하는 것, 비판하는 것, 평가하는 것 전부 다 죽었소. 완전 멸망이라.
이런데, 어짜든지 제 마음대로 예수 믿어서, 이래 놓으니까 교회도 저걸 제 맘대로 하니 저걸 꺾으면 당장 지금 나갈 것이고 ‘저 장로의 십일조 가지고 교회가 근근히 유지하는데 저 장로가 삐꿔 나가면 교회는 절단난다’ 이러니까 그 목사가 그 장로의 자기 주관대로 사는 옛사람 그놈으로 사는 그걸 만일 건드렸다가는 밥통이 떨어질 모양이니까 그거 건드릴 수가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꾸 추켜 올려서 이래 가지고 옛사람 그놈만 기릅니다. 이러니까 그놈이 교회 주관 다 하요.
또, 학생회가 있습니다. 학생회가 있으면은 그 장로 아들이 학생입니다. 또 장로 왕이 있소. 장로가 암만 하고 싶어도 학생이 들어서, 아들 학생이 들어 자꾸 하면은 그 장로는 아들 학생에게 또 끌려가야 됩니다. 또 장로의 왕이 있소. 자기 마누라가 있소. 이러니까 장로가 암만 이래 생각해도 마누라가 끄는데 안 끌려갈 수가 없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하는 장로의 행동이 뭣이 옳을 게 있겠소? 무슨 정치가 되겠소? 그런 목사가 무슨 바로 인도를 하겠소? 전부 보면은 노아 홍수 때와 같애. 참 정신 차려서 예수님을 믿어야 되지.
노아 때에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지금보다, 비율로 말하면 지금보다 더 많습니다. 이래도 여덟 식구뿐이라, 한 집뿐이라. 뭐 수천 수만이 모이면 뭐할 건고? 목사 장로의 그 성직의 이름을 가졌으면 뭐할 거라. 집사 이름 가지면 뭐할 거라? 이번에 보니까 집사 표 받은 데에 남자로서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이 자기는 좀 있다가 집사를 하겠다고서. 왜? 빚이 있다고, 빚이 아직까지 다 갚지 못하고 빚이 조그매 있다고서. 남 줄 돈이 조그매 있다고 그걸 아무래도 해서는 안 되겠다고서 그렇게 말해. 그래서 그걸 아직까지 좀 그래 내비뒀습니다. 두고, 빚이 정말로 얼마나 있는고 해서 조그매 있는 거 뭐, 돈 줄 데 외상값도 빚이고 또 십 원도 빚이고 백 원도 빚이고 빚이지. 이러나 그 사람이 갚을 재료가 그 몇 배나 있고 하면은 그거는 집사 못 될 그런 빚은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자기를 살펴서 이렇게 바로 예수를 믿을라고 애를 써야 될 건데, 바로 예수 믿는 거를 가르쳐 주고 있는데, 이 서부교회서 바로 예수 믿는 걸 꼭 바로 가르치고 있는데 이 가르치는 게 제 비위에 맞지 안해. 제 비위에 안 맞지 하나님 비위에는 맞아요. 그러면 제 비위대로 할 건가? 하나님 비위대로 따라가야지.
예수님을 믿는 이 생명길을 가는 것은 완전한 길을 간다 그말입니다. 생명길을 간다 말은 완전한 길을 간다 그말이오. 믿음의 길을 걸어간다 그말은 하나님에게 피동길을 걸어간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인정하는 그 길을 걸어간다 그말이오. 그 일이 그리 쉽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말하는 것마다 다 틀렸고 행동도 틀렸고, 고것을 고 속에 있는 옛사람 고놈을 죽여서 살릴라고 애를 쓰면 고게 요래 구불텅이 쳐 봤다가서, 그러니까 이거 또 냅두면 안 되겠으니까 또 살살 따둑거려서 또 이거 좀, 쥐면 깨어질까 싶어서 살살 요래 둬보면 또 그래 놓으면 좀 일어났다가 ‘아무래도 요놈은 죽여야 되지 요걸 냅두고는, 요 병 요거는 치료를 해야 되지 요 병 요거는 냅두면 안 되겠다. ’ 고 병을 치료할라고 또 약을 주사를 한 대 딱 놓으면은 후닥탁 튀어 가지고서 고만 또 주사를 안 맞고 또 튀어 나갔다가 가만히 둬두면 오고 이렇게 애를 써 가지고서 그것을 고쳐볼라고 애를 써서 고쳐지는 거는 고쳐지고 고쳐지지 안하는 거는 안 고쳐집니다. 암만 오래 있어도 고쳐지지 안하고 그 꼬라지로 예수 믿다가서 마지막에 뒈집니다.
뒈지면, 뒈지면서도 밥이나 먹고 이래 하니까 인간의 성패를 밥으로 결정을 지워.
밥이나 먹고 지내면 그 사람 성공하고 실패 안 했다.
돈 성공이 구원 성공 아닙니다. 인격 성공 아니요. 우리의 성공은 하나님의 형상 성공입니다. 하나님 닮은 것이 성공 돼야 돼. 하나님과 같은 것이 성공 돼야 돼.
그게 우리 성공이지 돈 성공 같으면 세상에, 한국에서는 “““씨가 제일 성공했지.
그게 성공 아니야! 똑바로 정신 차려서 예수 믿는 데 눈이 띄여 가지고 ‘요게 예수 믿는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서 눈이 뜨이고 귀가 뜨여 가지고서 하나님의 도를 듣는 자는 돈 때문에 이사가고 절대로 이 교회에서 옮겨가지 않습니다. 절대 안 갑니다.
절대를 붙일 만합니다.
그게 다 기분 좋다고 왔다 갔다가 돈에 따라서 사업에 따라서 왔다 갔다가 친척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그것은 다 저를 끄는 힘이 진리와 하나님보다도 그것이 끄는 힘이 더 강한 자이기 때문에 그거 소용 없어. 그 형편에 따라서 그걸 따라서 사는 것을 누가 의라고 정해 줬소? 누가 온전이라 정해 줘, 정해 주기를? 얼토당토 안 한 이 신앙 걸음을 걷고 있어, 모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이 말씀을 뚜껑을 떼서 속에 내부를 보여 줬으니까 얼마든지 들여다 볼 수가 있을 터인데, 얼마든지 깨달을 수가 있을 터인데? 거게서 정말 내가 욕심 낼 것이 거게 들었고, 거게 내가 오늘에 고쳐야 될 것이 거게 들었고, 오늘에 내가 가치로 삼을 것이 거게 들었고, 이런데, 그 밖에 있는 제 주관대로 가치 있는 것, 마귀가 가르친 대로 가치 있는 것, 욕심낼 것, 고칠 것, 마귀가 고치라 하는 건 안 고쳐야 됩니다. 마귀가 가지라 하는 것 안 가져야 됩니다. 마귀가 좋아하라 하는 거는 나쁘다 해야 됩니다.
마귀가 뽈끈 잡으라 하는 거는 던져 버려야 됩니다.
정반대로, 하나님이 잡으라 하는 거는 잡아야 돼. 죽어도 잡아야 돼. 가지라 하는 거는 죽어도 가져야 돼. 놓지 말라 하는 것은 죽어도 놓지 말아야 돼. 꺾으라 하는 것은 죽어도 꺾어야 돼. 뽑으라 하는 것은 죽어도 뽑아야 돼.
이렇게, 멸망으로 가는 그 문과 길은 넓고 커서 가는 사람 많다. 요 하나만 해도,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러면 인도하는 것은 제가 저를 인도합니까 인도하는 자가 타에 있습니까? 인도하는 자가 다른 것입니까 저입니까? 타라, 다른 것이라. 자기 아닌 것에 인도를 받고 있는 요걸 알아야 돼요. 이것만 알아도 조그매 생기가 돌아가.
네가 지금 밤낮으로 생각하고 네가 요런 꾀 조런 꾀 써 가지고서 요리 보자기를 쓰고 조리 또 가발을 쓰고 요렇게 연극을 하고 조렇게 연극하고 이렇게 해서 네가 일단 정신의 욕심을 내고 신경 마음까지 기울여 가지고 하는 그것이 귀신의 인도받는 것이냐 하나님의 성신의 인도받는 것이냐? 이것부터 판단해라. 이거 판단 못 하면 죽어! 귀신 마귀가 인도하는 인도는 따라가면 멸망하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성령 인도하는 인도는 따라가면 생명과 평안이 되는데 마귀 인도를, 사람마다 다 그래.
자기 앞에 안 닥침이 없어. 둘은 언제든지 이 둘이 있어. 자기 앞에는 둘은 언제든지 있지 없지는 안해요.
있는데, 마귀 인도 받는 사람이 많습니까 하나님 인도받는 사람이 많습니까? 저 ○○○씨, 누구 인도받는 게 많아? 그리는 가는 사람이 많다. 모든 사람이 그리 가는데, 모든 사람이 마귀 인도하는 대로 가는데,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문은 크고 넓어서 가는 사람이 많다 하지 안했소? 모든 사람은 마귀 인도를 따라서 가는데 내가 그 길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의 숫자는 몇 되지 안한 그 사람의 숫자와같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을 택해 가지고 갈라 하면은 가려야 돼요 조심을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정신을 써야 돼요 안 써야 돼요. 써야 돼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이여 나에게 육십 육 권 도리를 낱낱이 바로 깨닫게 하시고 어짜든지 옳은 길을 찾아서 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 일보 일보, 한자욱 한자욱을 자기가 살펴서 이 시간은 나는 지금 이거 귀신의 인도가 하나님의 인도가? 그만해도 빛이 와. 당장 알 수가 있어.
내가 요 시간 지금 꾀를 써 가지고서 요렇게 지금, 사람 앞에도 설 수 없고 부끄러운 이런 일, 누구라도 인정하지 안할 요런 일 이 길을 내가 지금 가고 있고 택하고 있고 걷고 있는데 왜 이 길 그래 걷느냐? 모든 사람 그래 걷지 않느냐? 다른 사람도 다 그 길 가는데 뭐 그래? 멸망으로 가는 사람들은 많다 했다. 모든 사람이 간다고 해 가지고서, 백의 구십 구가 간다고 해 가지고서 결단코 그게 생명길 되는 건 아니다. 노아 때는 수십억이 됐지마는서도 여덟 식구밖에 없었다.
이러니까, 내가 생명으로 인도하는 이 길은 많은 사람이 간다고 가는 게 아니고 적은 사람이 간다고 가는 게 아니고 이거는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을 가야 되는데 내가 하나님의 인도냐 마귀 인도냐? 이 쉽습니다, 쉬워. 고만 알 수 있어. 하나님의 인도냐 마귀 인도냐 이라는데 그걸 모르도록 마구, 마귀 인도를 따라 가라고 자꾸, 모르도록 그렇게 강하게, 마귀 인도로 가도록 하나님 인도를 가로 막아 치워서, 하나님 인도를 막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막고 마귀 인도를 따라가도록 이렇게 강하게 역사하는 그놈 이름을 한번 말해 보십시요, 그놈 이름이 뭐입니까? 그놈 이름이 뭐이요? 그놈이 몇놈 있습니다. 그놈 이름이 뭐이요? ‘악’하면 되기는 됐는데 ‘악’하면 뭐인지 그거 너무 범위가 넓어서, 네가 악이라 하는 답은 바로 했는데, 악령 악성 악습? 녜, 그랬으면 다 들어가기는 들어갔는데 알기 쉽게 욕심입니다, 욕심. 그걸 다른 말로 하면은 육체의 욕심이라 이랬어.
육체의 소욕.
욕심 이거는 욕심이 나면 번연히 이거는 마귀 인도인 줄 알지마는 안 됩니다.
마귀 인도로 알지마는 욕심 그놈에 못 견뎌서 마귀 인도인 줄 알면서 욕심인 그놈에게 끌려 가지고서 그 길을 안 가지 못하는, 그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번연히 알아요. 마귀 인도인 줄 알면서도 감정이, 욕심이, 자기에게 있는 혈기가, 자기에게 있는 그 못쓸 자존심이, 명예심이, 자기의 시기가, 마귀가 붙이는 그 이간에 빠져서. 이러니까 이 생명길로 가는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찾기 어렵다는 것, 가는 데는 택해 가지고서 자기 힘만 다 들여서 가기만 시작하면 온 세계와 모든 피조물은 이를, 이 길 택해 가지고 가면은 모든 피조물이 돕습니까 해합니까? 돕습니까 해합니까? 돕습니까 해합니까? 돕는다 하는데 고게서 한 길을 더 들어가야 돼.
도우면 현재에 도움으로 보입니까 결과가 도움으로 보입니까 언제 도움이라 하는 것을 언제 볼 수 있습니까? 결과로 볼 수 있지마는서도 현재는 제 눈이 어두워서 분명히 도움은 도움인데 해하는 것으로 그렇게 보여집니다.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몰라.
이러니까, 사망으로 인도하는 그 영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많아. 모든 사람이 ‘그게 옳다’ 그 ○○○씨가 ‘보통’말을 하는 거 그거는 이번에 그말 내가 처음 듣고 `저 사람이 지혜가 있다’ 그거 ‘보통' 그 쓰는 보통은 매력이 있는데 보통 그거 가지고 인제 잘못 하면 써 가지고서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보통이라 말은 그것은 자기를 남보다 낫게 여기는 그런 걸 다 죽여서 남을 자기와 꼭 같은 자로 삼으라 하는 고 말에서 가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 그랬습니다. 대통령 후보 ○○○씨가 성경에 말한 거게는 따라가지를 못했어.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으니까 ‘이거 보통 사람이 가는 데로 우리가 보통으로 사는 게 좋지 뺄쭘히 예수 믿을 것이 없다’ 노아 때에 보통으로 믿은 것들이 다 홍수에 멸망받았지 살았던가? 보통 사람이 욕하고 조롱하는 ‘저 노아 첨지 저거 미쳤다’ 이라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간 그게 생명길이었지. 이해가 돼? ○○○ 너 이해가 돼?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은데? 이해되면, 나와. 이해가 되면 눈에도 표가 나고 입에도 표가 나오고 피부에도 표가 나고 다 표가 나. 그걸 보고 내가 물어. 너 저 보자. 속에 보면은 속에 알맹이가 달라. 이거 이상한 것 ‘마음을 어찌 아는고?’ 마음이 왜 안 보이요? 마음이 피부에 다 나오고 있습니다. 피부 보면 마음을 다 알아요. 알지 않습니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아. 이러니까 찾는 사람이 적어. 또 가기가 험해.
그래도 생명길로 가면 만물은 다 돕습니다. 돕는 방편이 달라.
손양원 목사님이 이제 하나님이 부를 때가 돼서 죽어야 될 터인데 이 죽음을 죽어야 될 때를 당했는데 손양원 목사님이 복음을 전하니까 붙들려 복음을 전하니까 인민군의 총부리로 가지고서 복음 전한다고 총부리로 입을 때려서 입에서 피가 나오고 이가 무너지고 이렇게 했으니까 그 총부리가 손양원 목사님을 해했습니까 도왔습니까? 총부리로 때려서, 복음 전한다고 입을 때려서 입에 피가 났어. 그러면 총부리가 손양원 목사님을 해했습니까 도왔습니까? 도왔다고, 자기가 확실히 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확실히 도운 줄 아는 사람 손 들어 봐. 손은 잘 든다. 도왔어, 도와.
이미 그래 안 해도 고 시간 되면은 죽을 터인데 주님이 보니까 ‘네가 죽는 그 시간까지 나를 전해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라고 구원하기 위한 복음을 전하다가, 그 붙들려 가며 복음을 전하다가 총부리에 맞아서’ 그게 주님 앞에 설 때에 주님 앞에 크게 참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됐고 칭찬받는 일이 됐고 영원히 그에게 상급과 영광이 됐어. 그때에는 모든 사람보다도 그 총부리가 아주 손 목사님을 도왔습니다.
또, 총으로 택 했는데 요게 살짝 지나갔어. 지나갔는데 내가 있다 물었어. ○ 목사 그때 바로 손 목사님 후임으로 하고 있는 그 목사님이 날 청했어. 문둥이들이 날 원하고 손 목사님이 내 말을 하고 이라니까 청했어. 성경을 내가 읽은 것이 죽을 때 돼서 순교자들은 주를 위해서 죽는 것이지 일분 일초도 주님 때문에 덜 살고 죽는 일은 없다. 이미 죽는 그 시간에 주를 위해서 죽는 것이니까 순생이요 순교다.
‘그래 어데 관통을 했읍디까?’ 요 엄지손가락 요 사이라. 요래 가리켜요. 요라는데 ‘그라면 피가 많이 났읍디까?’ `아니 피 뭐, 피 별로이 안 났습니다. ' 이래. 그래 내가 성경에 ‘아멘’ 왜? 나는 지금 성경에 `증거를 다 마친 후에' 하는 그게 어데 있노? 계시록 11장에 있는데, 증거를 다 마치니까 다 이제 살 대로 다 살고 난 다음에 세상을 뜨기를 총으로 떴다 그말이오. 또 총부리로 맞았다 그거요.
그게 그때에 영원한, 그 손양원 목사님이 하나님 앞에 가 설 때에 손양원 목사님을 도운 것이 그때에, 손양원 목사님을 도운 것은 뭐이 도왔습니까? 총부리가 도왔고 탄환이 도왔습니다.
그러기에, 생명길로 인도해 가는 것은 때려도 돕고 칭찬해도 돕고, 또 그 손양원 목사님이,유기선 장로님이라고 뭐이 왔다 하는데 유기선 장로님 내가 차타고 가며 보니까 유기선 장로님의 그 병원이 요 어데 있데요? 대청동? 그거 보고서 그때 한번 그분이 간증을 하는데 주기철 목사님 바로 거게 있는 제자라. 그래 그분도 고난당할 때 참 고난당한 그게 그때는 뚜드렸지마는 뚜드린 그것이 벌써 그 살아 나오고 난 다음에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여러분들 이것도 알아야 돼요. 돕는 것은 이렇게 따독거려 도와 주는 것은 도리어 그 사람을 죽이는 일이 되고 그 사람을 실컷 해친 게 나중에 결과적으로는 주님 앞에 가 서면은 그 사람에게 크게 복되게 유익되게 해 준 일이 되고 만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의 이 사상은 광대하고 현재 미래 이 전체를 하나로 해 가지고서 비판 평가해 살아야 되지 그래 안 하면 안 됩니다.
이래서 이것도, 이제 집에 가 생각해요.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인도는 찾기가 어려워. 성령이 인도하는 그 인도를, 마귀 이놈은 자꾸 덤벼 쌓는데 성령이 인도하는 그 인도는 참 그 인도를 찾기가, 성령의 인도를 찾기가 힘들어.
그러기에 찾는 사람이 적어. 성령이 인도하는 그 인도는 아주 좁아.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안하고 적은 사람이 가. 숫자의 적은 사람들이 가기 때문에 찾기 힘들어. 또 험해.
이러니까, 요새는 지금, 오늘이 삼일 예배입니까? 삼일 예배요? 삼일 예배 또 이 말씀 또 증거할지 몰라. 이러니까 좀 가서 좀 읽고 자꾸, 우리 앞에는 반드시 두 길이 있다. 내가 들을 때도 두 길이 있다, 내가 들을 때도. 들을 때도 요거는 들어 받아들여야 되느냐, 들어 둬야 되느냐 이거는 들어서 버려야 되느냐? 보는 것도 내 앞에 둘이 있다. 하나는 사는 길이요 하나는 사망의 길이다. 내가 이 시간 지금 말을 해야 될 터인데 이 말 내가 하는 이 말도 이래 하면 자타를 살리는 말이 되고 이래 하면 자타를 죽이는 말이 된다.
이렇게, 우리 앞에는 반드시 사망과 생명의 두 길이 있다. 하나는 넓고 하나는 좁다. 하나는 가는 사람이 많고 하나는 가는 사람이 적다. 하나는 구멍이 크고 하나는 구멍이 솔다.
이렇게, 이것을 알고 둘 있다는 것을 이 학생들이 알아서 고것을 기억하고 있으면은 그들이 일생 동안 살아나가는데, 이래서, 이 도리대로 가르쳐 놓으면 이게 뭐 앞으로 가면은 필연적으로 그거는 세계를 점령할 수밖에 없고 영계도 점령할 수밖에 없는 건데 도무지 이 생명의 도를 듣지 않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여러분들이 마태복음 7장 13절과 14절 이 말씀을 자꾸 읽으면서 자꾸 생각해 봐요. 여게 생명이 나와요. 여게 꿀이 나와. 여게 젖이 나와. 이 새사람이 먹고 자랄 수 있는 젖이 나와. 새사람이 먹고 자랄 수 있는 꿀이 나와. 새사람이 먹고 자랄 수 있는 양식이 나와.
그라고 반사 선생님들이 공과 외우는 것을 꼭 외워야 됩니다. 외우고 명상을 많이 하고 거게서 자기가 먹어서 소화를 해 가지고 자기 양식을 만들어서 젖을 만들어 가지고서 학생들에게 먹여 줘야 됩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