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법과 사망의 법

 

1986. 12. 24. 밤 (수)

 

본문:빌립보서 2장 5절∼11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늘도 성탄 축하 하는 모든 기념 표시를 교회마다 다 아주 성대히 장식한 것을 보고 또 곳곳마다 모두 자기대로는 성의를 다해서 성탄 축하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듣고 합니다. 우리 서부교회서도 한 삼십 분 전까지도 이층에서 아주 열심히 모두 축하 예배들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 일이 너무도 세계적으로 충만해지니까 안 믿는 사람들까지도 이 성탄을 명절로 그렇게 알고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되고 또 성탄은 참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이 성탄을 하나의 유흥의 날로 보다 더 방탕하고 방종의 그런 날로 오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아마 일 년 중에 범죄가 제일 많은 밤이 이 이십오일 성탄 밤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오히려 그 석가모니 탄생이라 하는 그거는 성질을 좀 달리해서 그들은 그렇게 난잡한 그런 유흥적의 것은 하지 않는데 이 기독교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당사자가 되어 있는 기독자들은 성탄의 뜻을 밝히 깨닫고 그래도 그들에게 성탄의 그 뜻과 정신을 알려 줘서 다소라도 그들에게 구원이 되도록 그렇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며칠 전에도 누가복음 2장 14절 말씀을 가지고서 많이 증거를 했습니다. 또 마태복음 7장 7절 이하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도 증거를 했습니다. 다 이 말씀들은 이 성탄에 대한 참뜻을 부분적으로 증거한 말씀입니다. 오늘밤 말씀도 그와 같은 뜻의 말씀입니다.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하는 이 마음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마음의 이 포부를 우리도 품고, 예수님이 어떻게 걸어가셨는지 하는 것을 잘 우리가 배워서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행동과 같은 행동을 해서 예수님이 이 존영한 성공을 해서 당신만이 아니고 당신에 대한 원수까지도 다 한없는 생명과 평강의 그 구원을 얻도록 하신 그런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였다 그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그를 높였다 그말은 예수님은 삼위 중에 이위인 성자 하나님이 이렇게 대속의 구주로 오셔 가지고 대속하셨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이 대속의 걸음을 걸으신 이 걸음은 자존하신 하나님이신 그 완전자의 비판과 평가로서 가장 존귀한 생애로 평가하신 것을 가리켜서 여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마음을 품으시고 생활하신 그 생활은 모든 피조물은 다 기뻐해서 중심으로 감탄하면서 이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렸고 감사를 돌렸고 또 하나님 그 자체의 지공 지성의 그 전지의 비판과 평가로서도 가장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이런 생애를 하신 것을 가리켜서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높여서 어떻게 했는가? 높여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하늘에 있는 것은 영계를 말하고 땅에 있는 것은 이 물질계의 우주를 가리켜 말하고 “땅 아래 있는 자들은” 말한 것은 음부에 있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모든 피조물인 인생은 다 여게 포함됐고 그 외에 모든 피조물들도 다 이 가운데에 포함됐습니다.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의 이름에 꿇었다 말은 예수님이 이 마음을 가지시고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을 하신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님의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의 그 운동 아래에 꿇게 하셨다. “이름에 꿇게 했다” 말은 그 이름이라는 것은 역사라고도 하고 행위라고도 하고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이 공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모든 피조물들이 전부 다 그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일곱 가지 사활로 일곱 가지 구원을 주신 예수님의 그 공로를 설정하신 공로와 또 일곱 가지 공로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이 삼직을 갖추어 가지는 자를 되도록 할려고 하는 그의 역사를 다 “주라 시인하여” 그의 역사를 가리켜서 다 ‘이것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구원의 역사다’ 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광를 돌리게 하셨다.

그러면, 예수님이 당신이 하신 일은 예수님의 그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의 일을 하셔서 먼저 택자 그다음에는 모든 인류 그다음에는 모든 만물 그래 가지고 그 구원할 뿐만 아니라 구원한 것을 그리스도의 직을 만들었다. 그리스도의 직이라 하는 것은 세 가지 직책을 가리켜서 말하는데 크고 작은 모든 것이 다 자기 힘 있는 대로는, 자기에게 힘이 있는 대로는 다 그 힘을 어디다가 기울이느냐? 그 힘은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그 사이가 잘 화합되게 하려는 데에 기울이고, 자기 힘대로는.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는 복을 받게 하는 그 일에 기울이고, 또 하나님의 완전 통치에 복종해서 다 평강을 누리도록 그렇게 하려는 거기에 다 기울이는 이런 본질과 본성과 이런 욕망과 행위를 하는 그런 존재들로 다 만들었기 때문에 “모든 존재들이 다 주라 시인하여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렸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그 말씀은 예수님은 처음 열매로 이렇게 이 걸음을 걸어 가지고 일차적으로 승리를 했습니다. 일차 승리를 해서 일차적으로 위로 하나님과 아래로 모든 피조물과 그저 조금도 거게서 불평이나 불만이 없는 완전한 생명과 화평과 쾌락을 성취해 줬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첫열매로 이 만물을 구원하는 구세주로 이 일을 하셨습니다.

구세주로 이 일을 하셨는데 이제 이 일 하신 것은 당신만이 아니고 당신이 구원하시는 이 구원을 받는 사람들도 다 예수님의 이 대속하신 이 생애 방편과 같은 그런 방편을 행해서 우리들도 예수님이 첫열매 우리는 그다음 열매로 이렇게 해서 예수님과 꼭 같은 그는 존영한 자 또 모든 피조물들과의 완전 관계를 가져서 행복을 누리는, 영광을 누리는 이런 자가 되게 하라 하는 그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그말은 너희들도 예수님의 이 생애를 본받아서 이렇게 살면 너희들도 예수님을 따라서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그 존귀에 참여하게 된다, 예수님이 모든 피조물과 그렇게 화평을 이룬 거와 같이 너희도 그런 화평을 이루게 된다. 그것을 가리켜서 “이기는 자는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는 거와 같이 이기는 자는 내 보좌에 함께 앉게 되리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이 없었으면 우리는 멸망 가운데 그거로 영원히 멸망하고 모든 우주와 영계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도 영원히 멸망을 받는 그것으로서 끝나 버리고 맙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지금으로부터 일천구백팔십육 년이라 하지마는 구십일 년이 되는 셈입니다. 그 역사가들의 조금 오산으로서 오 년이 차이 있는데 구십일 년이 되는데 만일 예수님이 탄생하시지 아니했으면 그때에 벌써 이 우주라는 것은 다 완전히 전멸돼 버리고 끝은 마쳐집니다.

우주가 전멸되는데 예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실려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그 큰 희생의 제물로 인해 가지고서 우주는 다시 연장됐습니다. 그 전개라는 것은 다시 없고 끝장나는데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서 그것이 연장돼서 예수님이 구원하시려는 이 모든 사람들의 구원이 끝이 나면 그때에 우주는 다 불로 소멸되어서 원소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것은 언제인가 우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를 못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악령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땅위에서 얼마든지 인간끼리만 서로 화평을 하면은 살 수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을 가지고 그저 세계의 평화 조약에 대해서 모두 힘들을 쓰고 있습니다. 또 뭐 과학을 발달해 가지고 생산이나 많이 하면은 또 행복되게 살리라 그렇게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아주 오산이고 오판입니다. 아무리 피조물들이 똘똘 단합해 가지고 화합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거기에 개입하지 안하시면 그 단합은 자멸을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사람들이 사람 힘으로 무엇을 생산을 많이 한다 할지라도 생산 그것을 하나님이 허락지 안하면 생산이 되지 안할 뿐만 아니라 된 것까지도 다 자살하는 그런 독약이 될 수도 다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고 또 다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택함을 받고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의 구원을 받고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가지고 이 비밀을 알게 됐습니다, 이 비밀을.

과거의 비밀도 알고 현재의 비밀도 알고 미래 영원의 비밀을 알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땅에 있는 것을 소망 삼지 안하고 영원한 참의 것을 소망 삼고 그저 이 세상은 나그네 세상이라 이사 갈 사람들이요 또 자기가 잘 찾아가든지 못 찾아가든지 찾아가고 있는 행인같이 한 걸음씩을 걸어서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고 멸망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고 해서 행인 생활을 하고 있는 세상이라 그렇게 깨닫고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이렇게 여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공심판에 면제될 수 있는, 영원한 사망을 벗어날 수 있는 그런 것만을 상대로 해 가지고서 사는 것이 이 중생된 사람들의 생애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 택함을 입은 사람들인 것을 다 자타가 압니다. 또 택함을 입을 뿐 아니라 중생된 사람이라는 것도 우리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중생되지 안한 사람은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한번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왜? 악령이 방해하기 때문에 한번도 생각할 수가 없고 예수님의 대속을 잠깐만이라도 그를 믿는 사람은 다 그것이 벌써 중생된 증거입니다.

그러면 중생되었으나 악령의 가루는 방해로 인해서 어떨 때는 확신이 들었다가 어떤 때는 그 믿음이 다 없어지고 또 의심으로 돌아가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이라도 예수님의 대속이 믿어진 그 일이 찰나라도 있었다면은 그 사람은 중생된 그 증거인 것을 성경에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중생된 사람들입니다.

그런고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우리는 이 짤막한 그 세상,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을 걸어가지마는 짧은 이 세상에서 영원 무궁을 결정지우는 이 중요한 이 현실이라는 이 세상입니다. 세상은 참으로 묘한 세상이요 아주 가치 있는 세상이요 우리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세상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가치 있는 것은 이 시간에 우리 행락을 취해 가치 있는 것 아니고, 우리 욕심대로 무슨 세상의 어떤 것을 취해서 부강해져서 가치 있는 것 아니고, 또 우리가 무슨 이 세상 지식을 가지고 썩어질 지식 또 오늘이라도 세상 떠나면 두고 갈 그런 것들의 무슨 편리한 그런 것을 도모해 구비한다고 해서 이 시간이 요긴한 것 아니고, 다만 썩어질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을, 없어질 것이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것을, 이 사망의 모든 저주 아래에 있는 것이 영원히 모든 존재에게 칭송을 받고 하나님 앞에 긍휼을 입을 수 있는 존재로 이렇게 바꾸어질 수 있는 그런 회개와 믿음이라는 것, 회개와 믿음이라는 이 중요한 것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세상을 묘한 세상이라 아주 참 황금으로 비할 수 없는 귀한 시간이라 그렇게 우리가 평가하는 것입니다.

오늘밤에 이 말씀을 봉독한 것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인데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우리가 품을 수 있기 때문에 품으라 한 것이고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 마음을 가지시고 이 생애를 이루신 거와 같이 우리들도 이미 예수님의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 속에는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지극히 큰 이 삼위일체의 능력이 우리 속에 내주해 있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내주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받지 안한 사람들은 저희들이 아무리 예수님의 이 사상을 받아 가지고 이대로 살라고 해도 절대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일곱 가지,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해방되어 자유 얻은 이 자유가 있고, 또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을 완전히 이행해서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완전타 인정함을 받은 것이 있고, 또 완전자이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한 화친을 가진 이 완전 생명을 우리가 얻어 가지고 있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한 영감과 진리의 생애가 되는 이 영생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일곱 가지 예수님의 사활로 주신 이 대속 속에는 전지 전능의 완전의 이 하나님과 진리의 능력이 우리 속에 있어서 우리를 붙들고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만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이대로 살라고 하면 살아지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믿고 행하면 우리는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 마음을 품으라고 하는 것은 우리도 품을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품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이 생애를 하면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생애를 하고 그러면 예수님이 승리 성공하고 모든 존재와 서로 화합의 화평을 가지고 모든 존재들이 환영하고 칭송하고 서로 나뉠 수 없는 이런 생명의 행복을 이룰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이 행복을 이루는 이 일을 위해서 오늘밤에 이 말씀을 봉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여게 말씀해 놨는데 더 알기 쉽게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상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하는 이 뜻을 간단하게 말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잘 모를지 몰라서 다시 거게서 새겨서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마음을 품으시고 행하신 일은 누가복음 2장 14절에 간단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근본 하나님이시요 또 창조주시요 대주재시요 전능 전지자신데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하신 일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 세 가지를 예수님이 하셔 가지고 그것으로서 모든 멸망 가운데 있는 피조물을 구원했고 모든 피조물들은 만족케 했고 영원 무궁에서 이 모든 피조물들이 주님을 주라고 영접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이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것은 간단하게 이 세 가지를 행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시고 타락하기 전에는 이 세 가지를 하는 것이 아담 하와의 생애 법칙이었습니다. 이랬는데 이 하늘에서 범죄하고 쫓겨나온 사탄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하늘에서 어떻게 하다가 쫓겨났는가? 그는 하늘에서 세 가지 죄를 짓고 쫓겨났습니다. 그 세 가지 죄는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는, 자기가 이 소유를 자기 주장대로 소유를 많이 가지고자 하는 그 범죄와, 또 자기가 존영하고자 하는 그 범죄와, 또 자기가 모든 높은 지위와 세력을 가지고자 하는 이 범죄, 이 세 가지 범죄로서 하늘에서 범죄해 가지고 하나님께 쫓겨났습니다. 이래서 이 천사가 하늘에서 쫓겨나서 이 공중에 있다가 공중에서 또 그짓 하다가 땅위에 쫓겨나와 가지고서 지금 땅위에 와 가지고서 택한 자들을 유혹하는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미혹한 이후에 배암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사람들이 사는 생활은 무슨 생활이냐? 이 세 가지를 도적질하는 생활을 한 것이 사람의 생활입니다. 사람이 왜 죽었느냐? 이 세 가지를 도적질하는 이것 때문에 사람이 영원히 멸망을 받은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도적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라도 제가 제 소유를 부요케 하려는 요 소유욕, 제 소유를 더 부요하게 하려는,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을 어기고라도 자기 소유를 많게 하려는 요것이 사람이 죽게 된 죄 중에 하나고, 또 하나님의 법으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 받아 해야 될 터인데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제가 영광스럽고 존귀하게 될려고 하는 요 범죄로 인해서 멸망을 받게 됐고, 또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를 그 법도 안에서 권세를 써야 될 터인데 그 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해서 자기가 권세를 취하고자 하는 요 세 가지 때문에 사람은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는 사망의 법이 있고 생명의 법이 있습니다. 요거 단단히 아십시오. 사망의 법은 뭐이 사망의 법이냐? 하나님과 진리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소유만 더하기 위해서, 자기의 영광과 존귀만 더하기 위해서, 자기의 지위와 권세만 더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거지도, 거지도 이 세 가지를 좀 더 하고자 하는 데에서 하나님 말씀을 다 어기고 죄를 짓습니다.

뭐 부자만이 그런 거 아니고 아주 못난 앉은뱅이도 자기 이 세 가지, 소유 문제, 영광 문제, 권세 문제 이 세 가지 문제 때문에 양심의 가책되는 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게 됩니다. 또 잘난 사람도 그러합니다. 세상에서 잘난 사람 대학자도 그러하고 대종교의 창설자도 그러하고, 큰 종교의 창설자를 따져 보면 그는 일반 사람들이 이해 못 할 고차원에서 소유욕 영광욕 권세욕 이 세 가지 욕으로서 자기는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것이 사망의 법입니다.

이게 죽는 법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잘났든지 못났든지 하나님 법을 어기는 것이 사망인데,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사망인데 인생이 하나님의 법을 뭣 때문에 어기느냐? 소유 때문에 어기고 영광 때문에 어기고 세력 때문에 어깁니다. 이 세 가지 때문에 어겨. 딴것 때문에 어기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 때문에 크고 작은 사람들이 다 어겨 가지고서 사망을 합니다. 이게 사망법이오.

그러기 때문에 인생의 크고 작은 모든 사람의 일생 동안 산 것을 분석하면 요 세 가지를 위해서 일생 동안 살다가 죽어 버리고 만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여게서 생명의 법이 왔습니다. 생명의 법이 온 것은 뭐인가? 생명의 법은 이 세 가지를, 이 세 가지를, 세 가지를 이것을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던져 버리는 것인데 이 세 가지를 어떻게 던져 버리는가? 이 세 가지를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분이 소원하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던졌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기뻐하시는 건 뭐이냐? 그분이 창조한 이 모든 피조물을 이 멸망에서 구출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이래서, 부요해지고 존귀해지고 권세 있고 싶은 요 세 가지 욕심으로 멸망을 했기 때문에 누가 이 세 가지 범죄함으로써 멸망 가운데 들어 있는 이 멸망의 댓가를 대신 내고 이걸 구출할 자가 있느냐 할 때에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댓가를 내시고 구출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면 혼자는 하나밖에 구출 못 하는데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무한하신 분이 유한한 자를 담당한다면 아무리 담당해도 무한이 유한을 담당했기 때문에 남은 게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이 셋으로 멸망받는 자를 아버지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또 아버지 하나님의 소원대로의 멸망 가운데 있는 피조물을 사랑함으로, 그러면 위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분을 위하여 피조물을 사랑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피조물을 사랑함으로 당신의 이 세 가지를 투자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버린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버린 이것으로써 위로 아버지는 만족하셔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다 줬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7절 이하에 보면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모든 것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예수님께 다 주셨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위로 아버지에게 더 이상이 없는 만족하여서 모든 것을 다 예수님에게 다 유업으로 주셔서 받을 수 있는 이 행위가 되어졌고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영계 물질계 이 모든 음부 지옥의 거게 있는 모든 만물들이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고 환영하고 다 ‘우리는 당신만 의지하고 바라보겠습니다. 당신 아니면 우리를 구출할 자는 없습니다.’ 하고서 주라고 시인해서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는 이 결과를 맺게 됐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살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심과 같이 나는 너희들을 세상에 보낸다” “아버지와 나를 사랑한 꼭 그 성질과 꼭 같이 나도 너희들을 사랑한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들이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있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소원인 피조물을 사랑하고 행복되게 하기 위해서 당신의 모든 걸 투자했는데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우리는 나를 대속하신 하나님이신 주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이렇게 대속을 주셨으니 사랑함으로 당신의 전부를 다 희생해 가지고서 나에게 일곱 가지 대속을 주셨으니까 이 사랑함으로 주신 일곱 가지 대속을 내가 잘 강직하고 놓지 안하는 것과, 이분이 나를 사랑함으로 일곱 가지 대속을 주시느라고 모든 것을 다 희생하신 그분이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을 주시고 나에게 소원하기를 이 구원을 가지지 못한 멸망 가운데 있는 이 모든 형제들과 만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너도 네게 있는 것 다 바쳐서 구원하기를 원하는 이것이 주님의 소원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 자는 이에 더 큰 사랑이 없기 때문에 이제 다시는 너를 종이라 하지 안하고 내가 친구라 하겠다고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사망의 법칙이 있고 생명의 법칙이 있으니 우리의 생명의 법칙은 뭣인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암만 사랑할라 해야 그분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내가 사랑해 봐야 내 사랑이 거기 갈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완전자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내가 모든 인간과 피조물을 사랑하여 내게 있는 것을 다 희생해 줍니다.

내게 있는 거 어떤 거? 내게 있는 것은, 내게 있는 것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런 것은 다 사망의 것이기 때문에 사망을 사망에 주면은 사망이 더 짙어집니다. 그런 것은 그들에게 필요가 없습니다.

내게 뭐 있는 거 뭐? 예수님의 사활로 대속받은 일곱 가지, 나에게 있는 이 자유, 나에게 있는 영생, 나에게 있는 하나님의 의, 나에게 있는 하나님과 화친의 이 생명, 이것을 그들에게 줍니다. 이것을 그들에게 주기 위해서, 이것을 그들에게 주는 데에는 내 소유를 통해야 이것이 건너갈 수 있고, 내 영광을 통해야 건너갈 수 있고, 내 소유를 통해야 그들에게 건너갈 수 있고 내 영광을 통해야 건너갈 수 있고 내 모든 자유의 이 권세를 통해 건너갈 수 있지 이것 아니면 그들에게 건너가지를 못합니다.

내 소유가 아니면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을 받은 이 생명을 내 소유 몸이나 또 내 무슨 힘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또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이나 어짜든지 내게 있는 소유를 희생해야 내가 일곱 가지 받은 이 구원이 그들에게 전달해 갈 수가 있고 내게 있는 모든 소유나 영광이나 권세나 이걸 희생을 해야 내게 있는 일곱 가지 대속, 자유도 그들에게 건너갈 수가 있고, 영생도 건너갈 수 있고, 하나님의 의도 건너갈 수가 있고, 하나님과 화친도 건너갈 수가 있지 이게 아니면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이것을 그들과 화친하기 위해서 이것을 투자해서 하는 이것이 우리의 생명의 길입니다.

요거 좀 어려운 말이나, 그래서 세상에는 영생하는 법칙이 있고 사망하는 법칙이 있다. 사망하는 법칙은, 해석은 이제 그만치 하고. 사망하는 법칙은 이 세 가지, 부요, 영광 존귀, 이 지위 권세. 이 세 가지를 하나님도 모르고 진리도 모르고 이 세 가지를 자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자기 위해서 취할라고, 이 세 가지를 자기 위해서 취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자기 위하여 좀 더 부하고 좀 더 많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자기 위해서 더 부강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진리를 버리는 것이 사망의 법칙이요, 내가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함으로, 그분이 나에게 사랑함으로 주신 거, 그분과 그분이 원하시는 모든 인간과 피조물을 사랑함으로 내게 있는 이 부요, 이 영광 존귀, 내게 있는 권세 지위 요것을 그대로 주면 그들에게는 못 먹습니다.

그대로 주면 소용 없습니다. 이거는 그대로 주면 소용 없어. 암만 줘 봤자 소용 없어. 어짜든지 자기 있는 재산을 다 구제해서 줘 봤자 소용 없어.

“네 몸을 주어 불살라도 소용 없고, 네게 있는 것으로 다 구제해도 소용 없고, 네가 천사의 언변을 가지고서 아무리 그들에게 열변을 토해도 소용 없고, 네가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소용 없고, 네가 모든 지식을 통달해도 소용이 없고” 뭣이 없으면 소용 없다 했습니까? 뭣이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소용 없다” “네 몸을 줘 불살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 없다” 이 사랑이 뭣입니까? 사랑은 하나님이 당신의 모든 걸 희생해 가지고서 사활로 일곱 가지 대속 내게 준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거 외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일곱 가지 대속 이것을 주지 안하면 몸을 암만 주고 소유를 다 줘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영생길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주신 이 일곱 가지 대속을 내가 잘 간직하고 이 대속을 주신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그분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일곱 가지 이 대속을 없는 자에게 주기 위해서 내 세 가지 소유를, 소유와 영광과 존귀와 그 지위와 권세를 이것을 주기 위해서 내가 희생하는 거.

왜? 이것을 내가 취하기 위하면 모든 사람들하고 원수가 되고 이것을 내가 희생을 하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또 이것을 부리면 권세가 이만치 있는 사람이 권세를 안 쓸 때에 좋아하고 요만치 권세 있는 것이 권세를 많이 쓰면은 사람들과 적이 돼지고,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이렇게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내게 온 이 일곱 가지 대속을 주님이 소원하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내가 일곱 가지 대속을 그들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 전해 주기 위해서 내 세 가지 부요 영광 권세 이 세 가지를 희생해서 이것을 전해 줄 때에 그게 뭐이냐? 그게 영생의 길입니다. 그게 영생의 방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걸어가신 방편입니다.

이 방편을 일생 동안 이 방편으로 산 사람은 무궁 세계의 것이 그분의 것이요 그에게 다 맡겨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그 주인의 소유를 다 맡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고로 이러한 나라가 우리에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마귀에게 사로잡혀 어두워 모르던 우리들에게 이 생명길을 알게 됐습니다. 이 세 가지를, 주님의 대속을 내가 보존하고 이 대속을 형제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희생하는 거, 자기 소유를 이 세 가지 보존하고 전해 주기 위해서 다 없앤 사람, 또 자기의 영광과 존귀를 이 세 가지 전해 주고 보존하기 위해서 다 없앤 사람, 자기 지위와 권세가 사람마다 있는데 이 권세를 이 세 가지를 보존하고 전해 주기 위해서 이것을 쓰지 못하고이것을 다 투자하고 다 희생하고 다 한 이 사람이 주와 함께 영광의 보좌에 앉게 됩니다. 이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도 세 가지 때문에 날마다 죽는 행위 합니다. 세 가지 때문에 날마다 죽는 행위 합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예정이 돼 있기 때문에 제가 암만 해 봤자 더 하지도 덜 하지도 못합니다. 이 하나님의 예정을 다 깨닫고 요렇게 요 세 가지 대속을 보존하기 위해서 대속을 형제에게 주기 위해서 세 가지를 쓰는 자, 세 가지를 다 써서 이 대속 위해서 세 가지를 쓰는 자 그 사람은 생명에서 생명으로 점점, 존귀에서 존귀로 점점 올라가고, 이 세 가지를 제가 쓰지 안하고 요 세 가지를 제 권세 좀 부리기 위해서, 제 고집 부리기 위해서, 제 기분 내기 위해서, 제 욕심대로 하기 위해서, 제 좋도록 하기 위해서, 어쨌든지 이 세 가지를 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진리에 거슬린 자는 자멸 행위입니다.

이 세 가지를 주님이 주신 대속의 이 일곱 가지 구원을 내가 보존하고 이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아낌없이 투자하는 자는 암만 투자해 봤자 절대로 그것이 그것이 비지 않고 그것이 줄지 않습니다.

이것이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부모와 형제와 자녀와 전토를 버린 자는 여러 배 백 배를 얻고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하나도 없다” 이랬습니다. 그러기에 요게 영생하는 보배입니다.

주님이 일곱 가지 대속을 줬는데 일곱 가지 대속 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주면 없어집니까 줄수록이 많아집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일곱 가지 이 대속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일곱 가지 대속이 많이 주면 줄어집니까 줄수록이 많아집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이 자유하는 이 자유를 다른 사람에게 주면 이 자유가 점점 하나 주고 나면 강해지고 둘 주면 강해지고 자꾸 이렇게 줄수록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은 사랑이 자꾸 말라 없어집니까 사랑을 주면 사랑이 자꾸 많아지고 커집니까? 많아지고 커집니다. 하늘나라의 것은 다 이래 좋은 것들이오. 하늘나라의 것은 자꾸 쓸수록이 많아지고 줄수록이 많아지는 것이 이 생명에 속한 것이고 사망에 있는 것은 주면 없어지고 자꾸 이제 취해야 있는 것이 그게 뭐이냐 하면 사망에 속한 것이요 사망의 법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밤에 이 말씀을 증거했는데 여러분들이 확실히 잡으십시오. 이거 주저주저하지 말고 잡으십시오. ‘나는 이제 내가 이 세 가지가 더 부요해질라고 하는 것은 내가 자살 행위다. 이 세 가지를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이 세 가지를 어디다가 쓸 것이냐? 이 세 가지를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일곱 가지 대속을 보존하기 위해서 쓰고, 보존하는 데에 쓰고, 보존하는 데에 쓰고 나머지기는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기 위해 쓰겠다. 내 이 세 가지를 있는 대로 다 이 일곱 가지 대속을 보존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쓰겠다.’ 일곱 가지 대속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면은 내게 보존이 자꾸 커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면은 내게 보존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자꾸 커집니다.

그러기에 나는 내 소유 영광 존귀 권세 이 모든 것을 절대로 이거 취하기 위해서 내 기분대로, 내 세력대로, 내 기운데로, 내 힘대로, 이게 모두 권세 아닙니까? 또 내 기쁘고 즐겁도록, 내 기쁘고 즐겁도록, 내가 존귀하도록, 내가 이제 내 위신이나 권위나 명예나 자존심이나 모든 게 올라가도록 하기 위해서, 그거 영광욕 아니요? 또 자기 소유 모든 소유 뭐 그런 거 해석 많이 했으니까 이것을, 이것을 더 하기 위해서 주님과 진리를 파는 자는 자살 행위라 하는 걸 단단히 잡고 계십시오.

요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세 가지, 우리에게 이 세 가지 뽑으면 아무것도 없어요.

이 세 가지는 주님이 주신 대속 그 사랑을 깨닫고 대속 이것을 받아 가지고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분의 대속을 보존하는 것이라. 대속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줄수록이 내 대속이 커집니다. 점점 많이 줄수록이 많이 커지요. 요거 해석이 됩니까? 내가 줄수록 커진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의를 내가 받았는데 그 의를 한 사람에게 줘서 한 사람이 그 의를 가지게 하고 백 사람의 의를 가지게 하고 그 의를 가지게 하면 내게 있는 하나님의 의가 없어서 밑천이 났습니까 많아집니까? 요거 좀 똑똑히 확실히 말해 봐요.

내게 있는 영감을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나눠 줘서 그 사람이 영감에 충만하도록 하려면 내게 있는 영감을 다른 사람에게 그 영감을 주면은 내 영감이 없어집니까 커집니까? 커지는 것이 확실합니까? 확실히 압니까, 좀? 알면 아는 척해요.

확실합니까? 일곱 가지 대속은 주면 줄수록이 내게는 더 커집니다. 알겠습니까? 안 주고 가지고 있으면 차차 차차, 그대로 있습니까? 안 주고 가지고 있으면은 차차 차차 줄어져 들어갑니다. 알겠습니까? 이런고로 일곱 가지 대속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담대히, 안심하고 담대히 내 서이를 일곱 가지 대속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그 형제를 사랑함으로 일곱 가지 대속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아낌없이 쓰는 사람은 그 사람은 하늘과 땅의 것이 다 그의 것이 됩니다. 조만간에 그의 것이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새벽기도 다 나오도록 합시다.

또 성탄축하 예배에 대해서 주일학교는 내일 오전 아홉시에 축하 예배를 드립니다. 또 교통지도를 하실 분들은, 교통지도위원들은 으례 나와서 해야 되고 그 외에 다른 분들도 나와서 교통 지도를 좀 도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또 장년반은 열시 삼십분에 여게 모여서 축하 예배 드리고 그라고 난 다음에 각 집에 돌아가서 자기 구역마다 떡국 잔치가 있겠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전도지를 가지고서 그 구역마다 자유롭게 전 시내에 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서부교회서는 이십삼일날 부족하지마는 약간의 원하는 대로 몇 분들을 대접했습니다. 또 오늘 이십사일날 이 부근에 있는 형제들도 대접을 그저 해서 잘 받아 줘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변변치 않지마는 우리를 사랑함으로 대접을 잘 받아 주셔서 약간의 대접이라도 했습니다. 인제 내일은 전도지를 가지고서 영생을 그 형제들에게 전해 주는 내일로 지내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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