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11:20
생명의 모양
본문: 겔 1:4- 13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그 다리는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같이 빛나며 그 사면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행할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그 얼굴은 이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리웠으며 신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같이 빠르더라
여기에 기록된 이 생물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의 생명 역사를 가르쳐서 말씀합니다. 생명 역사, 생명은 형체가 없는 무형의 존재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이요 힘과 같은 것입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어떠하다는 것을 상징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을 생명은 이런 형체로 말하면 이런 형체를 가진 생명입니다. 형체가 없는 무형의 존재이지마는 형체로 말을 하자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이라는 말은 성령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새사람의 형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모양 새사람의 모양 영생하는 그 생명의 모양, 그것이 대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여기서 보여 줍니다.
여기 북방에서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하는 것은 이 생명이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생명이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마는 이 생명이 잘 보이는 그런 시기와 장소를 들어서 말합니다. 평안 무사하고 모든 것이 형통해지는 그럴 때에는 이 생명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를 믿어서 참 영생하는 생명을 가졌는지 이 생명이 없는데 공연히 껍데기로 그라고 있는지 그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가 내재해 가지고 속에 계셔서 내재해 가지고 있는지 성령의 역사가 없이 인간 혼자 움직이고 있는지 잘 모르지마는 어떤 때에 잘 보이는고 하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구름이 오는데 그럴 때에 잘 보입니다. 북방에서 폭풍이 불어 올 때에 잘 보입니다. 폭풍이 남쪽에서 불어와도 폭풍이라면 바람이 추운 것인데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면 더 쌀쌀하고 춥습니다.
이 말씀은 이 생명은 아주 어려울 때에 이 생명이 잘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기독자의 생기를 입고 있는지 기독자의 생명이 그 속에 있는지 없는지 평안 무사할 때는 잘 안 보이지마는 어려울 때에 아주 폭풍이라도 북쪽에서 불어오는 폭풍, 이와 같이 춥고 쌀쌀하고 아주 때기때기한 거와 같이 어려울 때에 그 속에 생명이 어느 정도 강하게 있으며 생명이 있고 없는 것이 나타난 것을 가라쳐 말합니다.
밤중에 신랑이 오는데 등불 켜든 자는 다 맞이하고 등불이 꺼진 자들은 다 쫓겨났습니다. 그 밤중이 여기서 북방에서 불어오는 폭풍과 같은 그런 뜻을 가진 것입니다.
밤중, 아주 어렵고 어려운 중에도 극단으로 어려운 그것을 표시해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했고 여기 북쪽에서부터 불어오는 폭풍이라 이렇게 표현한 것은 아주 그 시대가 어려웠고 그 형편이 어려웠고 그 사회가 어려웠고 어쨌든 아주 환란을 말합니다. 환란 아주 어려운 극한 그 환란 때에 큰 구름이 오는데 큰 구름이 오는데 구름이 온다는 말은 큰 구름이 온다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르쳐서 말합니다. 큰 구름이 온다 큰 영광이 온다. 옛날 파사 나라에서 '무엇에든지 기도하는 자들은 저 사자 구덩이에 집어넣어서 다 사자 밥이 되게 하겠다' 또 그 나라에서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저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면 전부 이 불미 속에다 던진다' 하는 그것이 그 운동을 운동이 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폭풍으로 비한 것입니다.
그 환란을 가라쳐서 '북풍에서 불어오는 북풍이라 또 큰 구름이 온다' 그 말은 하나님의 큰 영광이 온다. 우상에게 절하지 안 하는 자는 전부 불미 속에 던져 죽이기로 온 전국이 결의하고 '지금 이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이렇게 조사를 해서 사람마다 전부 우상 앞에 지나가게 하는데 그저 그 우상에게 누구든지 절만 안 하면 전부 불미 속에 넣어 가지고 태워 죽이는 이 무서운 명령을 국명을 정해 놓고 사람들을 통과시키니까 모든 사람들의 그 생명이 그저 절만 안 하면 다 죽임을 받기 때문에 절하는 것이 아무런 거리끼지 안 하는 사람이야 그게 뭐 그렇게 큰 일이 아니지마는 그 절을 안할려고 하는 사람은 사람에게는 큰 환란입니다. 죽음의 환란 아닙니까? 또 다니엘에게도 한 달 동안은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몇이든지 사자 구덩이에 집어넣는다 하는 왕의 조서를 내려서 국령이 내렸으니까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북방에서 불어오는 폭풍입니다. 이럴 때에 생명이 잘 보인다 이거요.
그런데 '큰 구름이 거기서 오더라.' 그 폭풍 뒤에는 하나님의 큰 영광이 딿고 있더라. 폭풍 뒤에는 하나님의 큰 영광이 딿고 있더라 우상 폭풍이 불어오는데 심히 쌀쌀하고 참 춥고 어려운 폭풍이지마는 그 폭풍 뒤에는 하나님의 큰 영광이 따라와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청년은 우리는 그 우상에게 절할 수 없다 이러니까 그런데 너희들이 사형을 당해도 좋으냐 거기는 자기 마음대로 하지마는 자기네들 세력 있는 대로하지마는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를 어길 수가 없다 우상에게 절하지 못한다.
이러니까 그 세 사람을 잡아서 불미 속에 던질라고 하니까 온 전국이 떨고 옆에 보는 사람 듣는 사람들이 다 무서워 떱니다. 이것이 북방에서 불어오는 폭풍입니다.
그랬는데 이라면 이제 하나님의 도는 다 막힌다 이렇게 생각이 돼졌는데 불미 속에 던지니까 세 청년은 '네가 죽어도 좋으냐' '아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에게 매였고 너거에게 매인 것 아니고 우리는 계명 지킬 따름이다' 하고 조금도 주저하지 아니하고 그 폭풍 속에서 성령의 역사 성령의 권능 기독자의 생기, 기독자의 힘, 기독자의 능력으로 그대로 능력 있는 생명 생활을 그들이 했습니다. 그것을 신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안한 것이 생명생활 한 것이요 기독자의 영감생활 한 것이요 권능생활 한 것입니다.
그래 집어던졌는데 세 사람을 불에 던졌는데 왕이 보니까 네 사람이 다니고 있습니다. 세 사람이 불 속에 그저 던졌는데 네 사람이 그 던진 세 사람과 함께 불 가운데서 이리 저리 다니면서 아주 기쁨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이 놀래 가지고서 그 사람들을 불러냈습니다. '내가 보니까 불 냄새도 하나도 안나 하나도 상하지 안 했고 너거 세 사람을 우리가 던졌는데 한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것은 누구냐' '아마 그것은 우리를 지키신 우리 주님이신가 보다' 이랬을 때에 하나님의 큰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아 과연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참 하나님이시로구나' 큰 구름이다 구름은 영광을 말합니다. 그름은 영광을 가라쳐서 상징한 것인데 또 다니엘도 그랬습니다. 이제 다니엘이 기도하지 말라 하니까 기어코 기도한다고 고집해 가지고서 지금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 던짐을 받는다 하니까 온 전국이 떨어 그게 북방에서 불어오는 폭풍입니다.
이랬는데 사자 구덩이에 넣고 인봉하고 왕이 하도 기가 막혀서 밤새껏 잠을 이루지 못하고 너무 섭섭해서 그 이튿날 새벽에 굴 앞에 가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다니엘아 네가 섬기는 하나님이 너를 사자의 입에서 능히 구원할 수가 있었더냐" 슬퍼서 너무 섭섭해서 하도 충성된 다니엘이기 때문에 이라니까 다니엘이 굴속에서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내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죄 짓지 아니한 것을 알고 또 왕에게도 손해 끼치지 아니한 것을 아시는 고로 사자를 보내서 나를 지켜서 사자가 하나도 상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을 들어냈습니다. 이라니까 다니엘로 인해서 전국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겼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조그만치라도 욕하거나 저주하거나 대항하는 자는 전부 사형을 줬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 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북방에서 불어오는 폭풍 위에 큰 구름이 오는 것을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세상이 보고 감동 받을 만치 되는 그것도 구름이요 그것도 하나님에게 영광된 것이요 세상 사람이 부러워할 만치 되는 것도 그것도 하나님에게 영광되게 하는 것이요 세상이 두렵게 하는 것도 영광되게 하는 것이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보는 사람들이 나도 예수 믿어야 되겠다 하고 믿는 사람되게 하는 그것도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구름인데 작은 구름 큰 구름 작은 구름 큰 구름 다 구름인데 구름 앞에는 반드시 폭풍이 있었다 또 이 폭풍은 하필 북쪽에서 불어오는 폭풍이다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반드시 나로 인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게 되는 일 또 내 생활에 모든 사람이 보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일 일 또 다른 사람들이 '과연 예수 믿는 것이 헛되지 않구나' 하는 것을 보고서 다른 사람들이 예수 믿도록 되는 일 이런 그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 나는 데에는 반드시 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폭풍이 앞서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환란이 앞에 있고 그 환란이 아무리 있어도 그 환란이 하나님의 생명 생활을 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생명 생활을 해하지 못하고 영감 생활을 해하지 못하고 생명 생활이라 말은 하나님의 힘의 생활이라 말입니다.
하나님의 힘의 생활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생활 돈 힘 인간 힘 과학 힘 그까짓 거야 다 환란 오면 다 깨뜨려지고 없어지지마는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그 힘의 생활은 아무리 북방에서 불어오는 폭풍이라도 그것을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북쪽에서 불어오는 폭풍이 환란 이 환란을 사람에 따라서 그의 믿음이 어릴 때는 작은 환란, 좀 크면 큰 환란, 이렇게 환란을 주시는 것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는 믿음이 얼마나 있나 하는 그것을 자기도 알고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기 위해서 하시는 것이요 공연히 이 능력 하나도 없으며 순전히 인본으로 인간으로 만든 조작배기 이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 있는 척 하는 자신에게도 이 폭풍을 인해서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고 또 다른 사람도 공연히 믿음 없는 가짜 그걸 예수 잘 믿는 줄 알고 그자 말을 들어서 옳은 말도 듣지 안하고 미혹 받는 것 지금 우리 한국에 꽉 찼습니다. 세계에 꽉 찼습니다. 이제 폭풍이 불어와야 가짜가 드러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그 사람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안하고 하나님의 힘이신 이 영생하는 새생명이 그 속에 없는 자인데 제가 있다고 자꾸 큰 소리 하고 자랑하고 이라니까 모든 사람이 그 말 듣고서 미혹 받아 가지고 없는 거 있다 하니까 있는 것은 없는 줄로 알고 이래 가지고 혼돈되니까 폭풍 같은 이런 것을 가지고서 일으켜서 다른 사람도 보라 이는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지 못하는 이 폭풍 뒤에 오는 구름이 그에게는 안 왔다 폭풍 뒤에 구름이 따라 왔고 이 사람의 폭풍에는 폭풍에 뭐 다 죽어 버렸는데 구름 따라 올 게 뭐 있습니까? 영광 올게 뭐 있어야지.
이러니까 왜정 말년에도 신사참배라는 그 참배가 있어 가지고 오십 여 년 우리나라에 선교해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는데 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폭풍이 불어오니까 전부 다 절단 나버렸습니다. 다 절단 나고 '봐라 저것들 예수 믿는다 해도 뭐 그라면 다구지게 시작하면은 다 예수 다 내놓지 않느냐' 이래 가지고서 '예수 부인해라' 하니까 부인하고 '너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받았는데 그거 다 치워 버리고 천조 대신 이름으로 세례 받아라' '예' 하고 이라니까 전부 하나님의 도는 절단이 나 버렸고 영광은 가루어졌고 생명의 도는 가리어졌습니다.
이렇지마는 그래도 그때에 신사 참배를 하지 안하고 강하게 이긴 사람들은 그들로 인해서 '과연 생명의 도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하는 것을 그들이 알았습니다. 일본 사람들도 알았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독자를 신사 참배 시킬라고 고문 고형으로 애 먹이던 그 일본 사람들이 갈 때에 벌벌 떨고 무릎을 꿇고 손을 받치고 빌면서 자복을 하고 '당신이 섬기는 하나님은 참 계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그 신은 거짓 신이요 당신들의 신은 섬기는 심은 참 살아 계십니다.' 이라면서 그들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면서 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면 자기가 영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기독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므로 자기가 영화롭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되게 하므로 자기가 영광이 되어지지 하나님 욕보이고 자기 영광 되는 일이 기독자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불신자에게는 저 혼자 영광되게 할 수 있지마는 기독자는 영광과 수치가 하나님과 자기가 하나 되어 있습니다. 하나 되어 있소.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면 저도 영광스러워지고 하나님에게 욕 돌리면 저도 욕되어지고 같이 이는 떨어질 수 없도록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어리석어서 '아 내가 욕을 안 볼려고 하면 수치를 안 당할려고 하면 하나님에게 수치를 줘서 하나님과 이 도를 배반해야 되겠다' 해서 하나님만 수치 주고 배반해서 하나님만 욕되게 이리하면 저는 면해질 줄 알지마는 그때는 면해지는 것 같은데 바로 꼬리를 물고 일어나 가지고서 수치와 멸시가 저희에게 오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입니다.
'또 내야 천하든지 죽든지 어쨌든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에게 존귀를 돌려야지' 하면서 자기 돌보지 안하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존귀케 하려는 자에게는 하나님 영광스럽게 존귀케 하려는 자에게는 하나님 영광스럽게 존귀케 하려다가 저는 불 속에 들어가서 절단 났고 사자 구덩이 속에 던져서 절단 났지마는 절단 나는 것 같았으나 즉시 영광스러움이 그 날 새벽에 나타났습니다. 불미 속에서는 즉석에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걸음인 것을 우리는 명심하고 어리석지를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에게 영광 돌려 자기가 영광스럽게 되는 이 일 앞에는 반드시 환란이 있는 것이니 이것을 알고 환란이 올 때에는 영광과 함께 오고 환란 온 그 다음에는 큰 구름이 오는, 하나님의 영광이 오는, 다시 말하면 자기가 영광스러워진 그 영광이 오는, 그러기에 구름이 비를 싣고 오는 것처럼 환란은 주님과 자기를 영광스럽게 하는 영광을 싣고 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환란은 반드시 그 환란이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므로 자기가 영화롭게 되고 하나님과 자기를 영화롭게 하므로 많은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이 이 영광된 생명의 도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성공과 기독자의 승리와 기독자의 수입은 이 환란을 통과치 않고는 되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환란이 뒤에 있고 이게 앞에 있는 게 아니고 환란이 앞에 있고 좋은 게 뒤에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라 십자가의 도는 먼저 죽고 다음에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나지 안 했습니까? 그래서 십자가의 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죽고 뒤에 살고 먼저 손해 보는 환란 당하고 그 다음에 크게 유익보고 먼저 절단 나고 그 다음에 이제 크게 흥왕하고 그것을 여기 말씀합니다.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 번쩍 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기독자의 생명 기독자의 참 생명 성령의 권능 기독자의 이 생명이라는 생명은 폭풍이 온다고 꺼지는 거 아닙니다. 폭풍이 올수록 빛이 더 나타납니다.
보니까 그 속에서 불이 번쩍 번쩍하여 이 불로 상징한 것은 빛이라 말입니다.
환란이 올수록 환란이 올수록 진리를 나타냄이 뚜렷하다는 것입니다. 그 평소에는 하나님의 진리대로 살아봐야 모든 사람들이 주목합니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뚜렷이 보여집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사형을 시키는데 말씀대로 살면 죽인다고 하는 그 앞에서 말씀대로 사니까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모든 사람들이 다 소문 듣고 뭐 듣고 다 이래 가지고 환하게 알도록 들어 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6.25가, 6.25가 닥치기 전에는 6.25가 닥치기 전에는 주일날 강단에서 설교한다는 것이 의례히 설교하는 것이니까 그 뭐 설교한다는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또 설교 한데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가슴이 쪼릿쪼릿 해 가지고서 말씀에 대해서 쏙쏙 들어오게 벌벌 떨며 듣게 되겠습니까? 평소에는 아무리 진리 말씀해도 다른 사람이 그 진리 말씀이 그렇게 자기에게 충격을 주는 것으로 들리지 아니하지마는 6.25때는 벌써 저 내무서원들이 다 공산주의자들이 하나씩 와서 앉았습니다. 저 않아서 설교 딱 그치고 나면 잡아다가 죽일라고 딱 앉았으니까 온 교인들이 모두 가슴이 도곤 도곤하고 있는데 그럴 때에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외치니까 그 진리가 빛난다 그 말이요.
그 진리가 더 광채가 나고 진리가 더 뚜렷하고 모든 사람 앞에 똑똑히 들린다 이거요, 그것을 가라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사면에 비치며 이러니까 그럴 때에 빛의 생활 그럴 때에 빛의 생활 그럴 때에 진리 증거 그럴 때에 영감대로 진리대로 된 의인 뚜렷이 드러 나타납니다. 뚜렷이 드러납니다.
그러기에 평소에 기독자들이 하나님께서 준비하라고 하는 것은 인본으로 준비하지 말고 인간 힘 그것 가지고 준비하지 말고 하늘에서 내려 온 하늘의 것으로 하나님의 것으로 이 피조물의 힘 보다 더 강한 하늘의 요소로 모든 것을 마련하면 모든 것을 마련하면 마치 금으로 마련해 놓은 것은 암만 불을 달궈도 타지 않습니다. 금으로 마련하지 않은 것은 다 타 버립니다.
이러니까 금으로 마련해 놓은 것은 금으로 지은 집은 불이 나니까 다른 것 다 타서 재가 돼 버리는데 이거는 타지 안하고 있으니까 더 뚜렷이 드러날 것 아닙니까? 불이 오기 전에는 네 집이 좋다 내 집이 좋다 뭐 이래하지만 불이 한번 싹 지나가고 나니까 전부 재 구덩이가 됐는데 금으로 지은 집은 하나 타지 안하고 뚜렷이 드러 나타나니까 더 환하게 보이고 더 나타나지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사면에 비치며 이러니까 증거 하는 것도 모든 사람에게 똑똑히 들려지고 신앙 행위 하는 것도 죽느냐 사느냐 하는 데에서 진리대로 턱 사니까 그 행위가 더 빛나고 그 사람도 빛나는 그것을 가르쳐 말합니다. 기독자들은 세상 어떤 환란이 와서 해 해도 그 환란에게 타지 안 할 수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타지 안 할 수 있는 것으로 마련할 수가 있습니다.
기독자는 기독자의 힘이라는 기독자의 힘 기독자의 생기 기독자의 기쁨 기독자의 지혜 기독자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지고 자라지고 마련되고 커지는 것은 이 피조물이 해 할 수 없는 이것들은 탁월한 이것들이 해할 수 없는 불이 해할 수 없는 금처럼 이것들이 해할 수 없는 그런 요소로 자라 가는 것이 기독자의 그 자람이요 기독자의 걸음입니다.
이래서 베드로전서 1장에 "불로 연단한 금보다 보배"라 그 말은 금은 불로 연단 하면은 다른 것 다 타 버리고 금만 남은 그것보다도 세상 온갖 불같은 온갖 환란 온갖 형편 사정 이 환란으로 이리 시루고 저리 시루고 암만 시뤄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그것은 저런 것들이 암만 해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꺾어지지 아니하고 쇠해지지 아니하고 변해지지 아니하는 하늘의 것으로 신령과 생명에 속한 하늘의 것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불로 연단해서 남은 금 그것보다 더 깨끗하게 그것보다 깨끗하게 금보다 더 가치 있다 그 말 아니요 금보다 귀하다 그 말은 금보다 가치 있다 그 말 아니요 가치야 금 그까짓 것 가지고 비교가 됩니까? 불로 연단해서 안타고 남은 그 정금 그 정금을 남겨두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잡탱이로 되어있는 것을 다 태우고 순전한 하늘의 것으로 멸망하지 않을 것 영원성 완전성 불변성으로 되어있는 요것으로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땅위에 요런 형편으로 싹 타 버리고 조런 형편으로 싹 타 버리고 이래 변질되는 이런 범죄 저런 범죄로서 자기의 허무한 것을 자꾸 알려 줍니다. 알려 줘서 이 세상에서 금을 불로 연단한 것보다도 더 순진한 실지의 것으로만 하늘의 것으로만 마련되어지는 이것을 마련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실 이런 현실 저런 현실 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현실을 당할 때에 어렵다 쉽다 어려우니 하지 않고 쉬우니 좋다 그것은 땅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어렵고 쉬운 거기서 우리가 지금 소망하고 노리는 것은 뭐냐 보자 이번 어려움에 내게 있는 믿음이 변해지나 안 변해지나 이번 어려움에 내 인간성이 변해지나 안 변해지나 이번에 이 어려움에 내 인격이라는 것이 요동이 되나 하늘에 소망이 요동이 되나 이번에 이 어려움으로 인해서 내 기쁨이 뭐 좀 흔들리나 내 사랑이 변동이 되나 내게 있는 그 진실이 변해지나 보자 변해지는가 보자 이것이 이제 타는가 안 타는가 이것 불에다 금을 연단 시키는 구워보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할 일이요 그러므로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불 가운데에 보니까 단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인다.
이 기독자의 인격을 말합니다. 기독자의 인격성 기독자의 권위성 그 기독자의 생명성 기독자의 그 능력성을 여기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환란이 오니까 더 번쩍번쩍 비추고 환란이 오니까 그 비추는 것에 소문이 더 나서 많은 사람이 더 알게 되고 그런데 그 가운데에 보니까 단쇠 같은 게 있더라 쇳물 발가이, 쇠가 달아 놓으니까 똑 촌에 있는 그 가을에 감 홍씨 아주 고운 그 감 홍씨 모양으로 발가이 아른아른하이 뭐 이러니까 아른아른하이 이러니까 그것도 여기 저 아마 제철소에 가서 일하는 사람은 볼 거라 저 안에 보니까 용광로에 쇠가 녹아서 아주 발가이 보면은 엿가락 같이 죽 나올 때에 좀 나오면 검지마는 그 안에 나올 때는 아주 그 색깔이 붉은 것이 얼마나 좋소 붉은 것이 몰캉 몰캉하이 그런 게 '그저 한 그릇 둘러 마셨으면 그 한 개 먹었으면' 어째 아주 구미가 댕길 만치 그렇다 그 말이요.
"단쇠 같고" 기독자들이 벌써 영감으로 충만하고 생명으로 충만해 놓으니까 충만해 놓으니까 사람들이 보니 부들부들하다 그 말이요. 부들부들 하고 아주 속도 없고 뼈도 없는 것 같고 왜 무슨 욕을 해도 그저 욕하고 나서 그만 잘못했다 하니 괜찮애 이렇지 뼈도 없지 창자도 없지 속도 없지 욕심도 없지 아마 저거는 달라 하면 다 줄거라 보니까 어떻게 물씬물씬하고 사람들이 무르고 아무런 모든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사는 사람들이 모두다 아예 황충이 생활하는데 황충이 생활 다른 사람들이 와서 절 건드릴까 싶어서 아예 벌써부터 막 성을 내고 막 설치고 이래야 다른 사람들이 안 달려들지 싶어서 함부로 상도 이 독한 상을 자꾸 만듭니다. '독하다 아이구, 아 그거 상대 얼굴 보니까 그거 가까이 해서 안 되겠다 그거 달려들었다가는 손해 보겠다 그 볶아 먹든지 깔아 먹든지 하지 못하겠다' 이라면서 하도 막 송충이모양으로 이래 막 웅크리고 이래 사는데 아 이거는 이 사람이 와도 '예 예' 저 사람이 와도 '예 예' 또 뭐든지 뺨을 때리고도 '아, 미안합니다. 아, 괜찮습니다.' 이라니까 이거는 참 물씬물씬하게 대번에 그만 집어삼키면 될 것 같아서 이러니까 예수교에 말이죠 아, 처음에 사람을 접해 보니까 그 사람이 뭐든지 다 줄 것 같고 다 줄 것 같고 속도 없고 등신 같고 뭐 창자도 없는 것 같고 욕심도 없고 등신 같으니까 이거는 당장 '꼬아 먹으면 되겠다' 싶어서 교회 나오는 사람이 있다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나온 사람이 있는데 나와 가지고 모든 걸 다 그래 하지마는 보니까 진리에 어긋난 것은 이거는 어떻게 강한지 뭐 와 보니까 처음에 물씬물씬해 보이더니만 차차 가까이 접촉해 보니까 털끝만치도 불의라는 것은 용납을 못하니까 자기가 거기서 배겨낼 도리가 없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그 사람들이 물러간다 이랬습니다.
이거 모양으로 단쇠 같이 물컹물컹하지마는 이것 삼킬 것 같은데 그놈 한번 둘러 마셔 보소 어떻게 되나 속이 확 타 버린다 그 말이요. 보니까 나무를 갔다 넣으니까 버쩍 타고 풀도 갔다 대니까 버쩍 타고 뭐든지 버쩍 버쩍 탑니다. 탈 거는 타 버리요 탈 거는 타. 심판 받을 것은 다 절단 나버린다 그 말이오.
가까이 가지를 못해 이것이 기독자의 생활입니다.
한없이 유하고 한없이 무르지마는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는 강합니다. 범죄 하는 거기 대해서는 죽어도 죽었으면 죽었지 그 죄를 짓지 않는 죄 짖지 않는 면에는 어떻게 강한지 의를 지키고 의를 행하는 면에는 어떻게 강한지 그거는 뼈 없는 사람 같더니마는 아, 생명을 내놓지 안 하면 죄를 짖지 안 하는 거기도 생명을 내놨으면 내놨지 죄를 짖지 않습니다.
그것은 있는 것을 다 기울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없는 참 어려운 힘드는 의인데도 모든 몸과 생명 소유를 아끼지 안하고 그 의를 놓지 안하고 그 의를 달성할려고 하는 의를 이루는데 어떻게 강한지 그 사람들이 처음에 보기는 그라다가 나중에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님에 연결된 것은 돈을 줘도 변동 없지 매수도 못하겠지 폭력으로 해도 안되지 죽인다 해도 안되지 이럴 때에 천하에 강한 자는 기독자다. 처음에는 물렁물렁 한 줄 알아서 아주 단쇠 같이 물렁물렁해 보였는데 그게 어떻게 강하고 뜨거운지 그 생명생활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생물의 형상이 나타난다 그러면 네 생물이라 말은 기독자의 생기를 말합니다. 기독자의 생기 생기가 눈에 보입니까 안 보이지요 안 보이는 기독자는 어떤 생명을 가지고 있느냐 기독자는 어떤 힘을 가져 있느냐 기독가가 가진 힘은 어떤 힘이냐? 그러면 그 사람이 저 사람이 지금 가진 힘은 참 기독자의 진짜 힘이냐 가짜 힘이냐 저 사람이 그 생기는 불신자와 같은 이 자연 생기인가 생명으로 말미암아 중생 된 그 생기인가? 하는 그것을 여기 보이면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온 생기는 하나님께로 온 지능은 이러하다 하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이제 모양이 나옵니다.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사람의 형상이라 기독자의 생기 기독자의 생기 기독자의 힘 기독자의 생기와 기독자의 힘은 무엇이냐? 그것이 참 인격의 힘이더라 참 사람의 힘이더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의 힘이더라 하나님의 그 형상과 같은 것들이더라 하나님이 원형이라면 모형이더라 꼭 하나님 같더라 그 말이오.
각각 네 얼굴과 각각 네 얼굴과, 여기 넷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알기 쉽기 위해서 전부를 가리켜서 사방이라 우리가 좁게 아는 데에는 동서 남북이라는 그것이 여기 지구에만 속해 있는 것이지만 태양계에 있는 것이지마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데에는 동서남북이라면 다입니다. 그 모양이 이러니 사람의 형상이라 각각 네 얼굴과 네 얼굴 넷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부를 가라쳐서 말합니다.
그 얼굴은 넷이라 그 얼굴이 넷이라 그러면 그 얼굴은 우리 육체의 얼굴은 우리 육체의 얼굴은 이 사람 대할 때에는 저 사람 못 대하고 저 사람 대할 때에 이 사람 못 대하고 이렇지만 기독자의 그 생명에 생명의 얼굴이 있습니까? 어디 말하자면 생명의 그 안면을 말하자면 모형이지마는 생명의 그 안면을 말하자면 모형이지마는 생명의 우리 육체의 얼굴 모양으로 몸뚱이와 얼굴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닙니까? 이것 모양으로 생명의 안면 생명의 안면은 어찌 생겼는고 생명의 안면은 넷이라 그 말은 전부를 다 상대하고 있다 그것 말합니다. 전부를 다 상대하고 있다 기독자는 하나님도 상대하고 인간도 상대하고 만물도 상대하고 모든 일들을 상대하고 창조주와 피조물 전체를 다 상대하고 있더라 이해가 됩니까? 좀 넓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전부를 상대하고 있더라 이런 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데 인간은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만 상대하고 돈만 상대하고 권세만 상대하고 어떻게 좁아서 요걸 가지고서 갇혀 놨는지 이제 그거만 여기 오면 좋습니다. 돈을 상대하는 자는 돈만 저만 좋으면 됩니다. 돈의 성공만 하면 돼요 돈하고 자기하고만 통하면 된다 이거요 권세를 상대하는 자는 이제 권세 성공해 가지고 권세하고 자기하고만 둘이 바로 붙었으면 됐다 하는 것입니다.
"얼굴은 넷이라" 창조주와 피조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를 상대해서 전부를 관계를 바로 가져야 되지 하나만이라도 관계를 바로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전체의 관계를 바로 가지는 존재더라 기독자의 생명은 이것은 치우치지 아니하고 그가 사는 것도 전 존재를 상대하고 살고 그 산 것이 전 존재와 다 좋은 화평은 관계를 맺고, 이러기 때문에 참 기독자의 바른 행위 하나로서 창조주와 피조물 전체가 기뻐하고 전체가 필요하고 한 잘못된 행동으로서 모든 것의 피해를 끼칠 수 있도록 전 존재를 상대해서 살수 있는 자로 부활시킨 것이 중생 시킨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인 것입니다.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날개라는 것은 이 활동을 말합니다. 네 날개가 있다 전체를 상대하는 활동이더라 원수도 상대하는 활동 또 자기를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도 먼 사람도 만물도 전체를 상대한 활동을 자기의 활동으로 전체를 상대하는 생활을 자기 생활로 전체가 좋아하는 그 생활을 자기 좋아하는 생활로 전체에게 필요한 생활을 자기에게 필요한 생활로 이러니까 전체와 자기와 한 몸 일체와 같은 이런 존재로 사는 존재라 이것이 기독자의 생명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의 생명은 치우치지를 않습니다. 이리 저리 치우치지를 않는 것입니다. 벌써 기독자들이 이리 치우치고 저리 치우치는 것은 이 생명이 아니고 내나 타락한 인간이 가진 자연 생명 저주 아래에 있는 마귀로 말미암아 되어진 이 모든 어두움의 것이지 이 광명의 것이 아닙니다.
이러기에 기독자는 이 생명 받으니까 크기야 어떻게 큰지 우주가 자기 안에 있고 우주에 들어갈라 하니까 들어갈 데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주 안에 있는 것 같으나 우주밖에 있고 우주가 자기 안에 있어 우주와 영계가 다 자기 안에 있어 날개가 있고 그 다리는 곧고 그 다리는 곧고 다리는 곧다 그 말은 언제든지 걸음은 곧은 것 가지고 걸어가더라. 언제나 다리는 곧고 언제든지 그가 모든 생애 하는 것은 전부 항상 곧은 것, 곧고 바르고 참되고 옳고 거룩하고 곧고 그 다리는 곧더라. 그이의 생애의 요소는 그의 생애의 요소는 그의 생애의 본질은 그의 생애의 본성은 전부 곧은 것이라 바른 것이라 옳은 것이라 참된 것이라 "다리는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발바닥이 땅을 접촉했습니다. 발바닥이 땅을 디디지요 땅도 디디고 돌도 디디고 또 나무도 디디고 이제 모든 만물을 접촉할 때에는 반드시 송아지 발바닥으로 접촉하더라 두 쪽발 쪽발로 접촉하더라 만물을 상대할 때에는 반드시 이것 아니면 저것, 저것 아니면 이것 두 가지로 분별해 가지고서 걸어가더라 한 걸음도 그냥 무턱대고 가는 것이 없고 꼭 이거냐 저거냐 두 가지로 비판해 가면서 걸어가지 두 가지로 비판하지 아니하고 행동하는 것이 없고 비판하지 아니하고 말하는 것이 없고 비판하지 안하고 보는 것이 없고 비판하지 아니하고 원하는 것이 없고 비판하지 안하고 느끼는 것이 없고 비판하지 안하고 이제 웃는 것이 없고 비판하지 안하고 성내는 것이 없더라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더라.
이라면 하나님 위하는 것이냐 나 위하는 것이냐? 요 비판해 가지고 가더라 이라면 천국을, 천국을 소망하는 것이냐 세상을 소망하는 것이냐 이러면 성경 대로냐 세상 지식 대로냐 이러면 성신의 감화냐 악령의 감화냐 이러면 이것이 사랑이냐 미움이냐 이러면 여기 거짓이 섞여 있느냐 이것이 진실이냐 모든 것을 두 가지로 판단하더라 두 가지로 판단하더라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 같이 빛나며" 마광한 구리 같이 빛나며 구리를 마광을 해 놓으니까 자꾸 갈고 갈고 이래 놓으니까 번쩍번쩍 번쩍거리게 닦아 놓으니까 구리쇠를 닦아 보십시오. 얼마나 번쩍거리나 번쩍거리는 것 모양으로 세상 이런 형편에서 깎이고 빗기고 씻고 이런 형편 저런 형편 저런 사정에서 삣고 깎이고 씻고 해서 달을 대로 달아서 모든 것에게 온갖 침노를 받아 가지고서 전부 다 빗길 것 빗기고 탈 것 타버리고 이리저리 이러니까 이제는 번쩍거릴 것만 남았지 하나도 때 묻은 것이냐 거짓뿌리가 붙어있지 않더라 기독자의 걸음은 이렇습니다.
이러니까 그러기에 욕 얻어먹을 때에 욕 얻어먹을 때에 분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은 멀고 욕을 얻어먹을 때에 이로 인해서 내게 지금 씻을 것이 무어며 깎을 것이 무어며 빗을 것이 무언가 거기서 그로 인해서 빗기는 재미, 어떤 일이 있어 가지고서 그만 기가 팍 꺾어지면 섭섭한 게 아니라 기가 꺾어지면서 속으로 웃고 좋아하는 것은 이로 인해서 내게 안 꺾어지면 안될 가짜가 있었는데 꺾어지지 안 할 진리로 된 거야 꺾어집니까? 이러니까 가짜 그것이 이제 걸레로 닦으니까 그 주석을 닦으니까 번쩍 번쩍해지는 것처럼 이제 그 어려움을 통해서 자기가 자기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 있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된 그 순전하고 온전한 것 그것을 세상이 덮어 가렸는데 그게 들어서 그 가룬 그것을 없애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환란을 인해서 사람이 겸손해지고 환란을 인해서 양심이 깨끗해지고 환란을 인해서 허욕이 달아나고 환란을 인해서 교만이 달아나고 환란을 인해서 허영이 달아나고 환란을 인해서 모든 못 쓸 모든 욕심들이 다 달아나고 참람도 달아나고 점점 자기가 깨끗해지는 것처럼 이렇게 세상 모든 현실에서 이렇게 주석이 그 구리쇠가 이렇게 깎아서 이렇게 빛나는 것처럼 이렇게 번쩍거리고 빛이 나더라.
생명은 어떤 게 와도 그 생명에 해하는 때와 같이 붙은 것 생명을 가루는 티와 같이 붙은 것 그것이 없어지지 환란이 예수로 말미암아 되어진 진짜의 바로 된 것은 조금도 없애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환난이나 죽음이나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없어지는 것은 가짜가 없어지고 다 불탈 것들이 없어지지 불타지 아니할 것들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러기에 없어지지 않는 이것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 듣고 준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 같아 비 오고 바람 불고 뭐 부딪히되 넘어지지 안 함은 반석 위에 세운 연고라' 그것이 뭐냐? 하나님으로 인하여 된 것이라 말이요.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의 것으로 되었기 때문에 이런 것이 와 봤자 상관이 없어. 그러나 이것으로 되지 안 하는 것은 환란 올 때에 요동되는 것은 아예 그거는 가짜입니다. 환란이 오니까 기쁨 없어졌습니다. 기쁨이 없어지나 환란이 오니까 없어진 기쁨 그 기쁨은 없어졌습니다. 가짠데 그걸 가짜인줄 모르고 그 기쁨을 가지고서 기쁨이라 누렸다가는 나중에 왕창 속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환란에서 없어진 기쁨 환란에서 없어진 용기 이 세상 이런 북편에서 북쪽에서 불어오는 폭풍 같은 이런 무엇으로 요동되는 것은 아예 가짜이기 때문에 버려야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것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런 것을 버리고 믿음으로 영원한 것을 마련한 것은 그런 것이 와도 요동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 요동되지 않는 것으로 우리는 마련해야 됩니다.
'구리 같이 빛나며 그 사면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사람의 손이 있더라 이렇게 성령의 은혜를 입어서 생명 생활을 하는데 사람의 날개 밑에는 날개는 활동을 말합니다.
그 사람이 생활하는 그 생활, 생명이 와서 영감이 와서 생활하는 그 생활 밑에는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말은 그 생활은 자세히 보니까 그게 정말 참 사람의 생활이더라 참 인격의 생활이더라 그것이 하나님의 모형인 참 사람의 생활이더라 그러기에 기독교가 별게 아닙니다. 참 사람의 모형 하나님의 모형입니다.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가서 요 다음에 하고 간단하게 좀 끝을 맺겠습니다.
이런데 이 날개가 날개 둘로는 반으로는 날아가고 반으로는 자기 몸을 가리더라 그런데 두 날개가 연달아 움직이더라 연결해 가지고 한다 오른편에 있는 날개 왼편에 있는 날개 이것이 오른편 날개는 오른편으로만 날아가고 왼편에는 왼편으로만 아니라 오른편 날개는 왼편 날개에 연결하고 왼편 날개는 오른편 날개에 연결하고 또 오른편은 소의 얼굴이고 왼편에 사자 얼굴인데 그 사자는 사자성과 같은 그런 아주 정복성을 말하고 소는 뿍뿍 걸어가는 인내성을 말합니다. 기독자의 생활은 유강합니다. 기독자의 생활은 빠르기는 빠르면서도 한없이 유하고 강합니다.
그런데 거기 보면 여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3절에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 같이 빠르더라"
이 생명이 활동하는 활동은 아주 빠릅니다. 부지런합니다. 부지런하다 말이오.
부지런합니다. 기독자가, 기독자가 부지런하지 안 하면 기독자 아닙니다. 잘못된 것이요 기독자에게 있는 생명은 번개같이 움직입니다. 벌써 예수 믿는 사람에게 게을이 있으면 그 속에는 성령의 힘은 없는 사람입니다. 기독자는 번개같이 움직입니다. 굉장히 부지런한 것이요 부지런하면서,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같이"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햇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에 번개가 나며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 같이 빠르더라 이 번개는 성령의 역사를 가르쳐서 말하는데 성령이 이렇게 번개 같이 빠른 것처럼 기독자도 성령을 따라서 "그 행동이 심히 빠르더라" 그러기에 기독자는 그 생물을 보니까 눈이 안팎에 가득 있더라. 여기만 보지 안하고 저기만 보지 안하고 안도 보고 겉도 보고 남도 보고 북도 보고 동도 보고 서도 보고 전체를 다 보고 이래서 전면적으로 움직이더라.
이러니까 기독자가 게을한 것은 그것은 가짜입니다. 기독자는 그 활동이 아주 부지런합니다. 그러기에 기독자가 부지런하되 활동이 빠르되 성령을 따라서 빠르고 독단으로 빠르지 않더라. 그러니까 다른 사람 하나 생각하는데 열 생각해. 다른 사람 열 생각하는데 백 생각해. 그 사람이 예수 믿지 안 할 때에는 열 면만 보고 살았는데 벌써 그 외에 십 배나 백 면을 봐.
이러니까 그 사람의 하는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모든 것은 전면을 보고 이리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가는 그 걸음을 아무도 해할래야 해할라 하는 그게 깨지지 깨지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