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2 14:27
비유 8 가지
본문 : 마 13:1-3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13장 1절로부터 끝절까지 읽으면 그 안에 여덟 가지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유는 실상은 아니요 그 실상의 그림자와 같이 실상을 알기 쉽게 비슷한 것으로 증거하는 것을 가리켜서 비유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상은 비유보다 더 확고한 것입니다.
본문을 여러분들이 많이 들어서 알 것이기 때문에 집에 가서 볼 요량하고 그저 그 비유에 대해서 간단하게 혹 한두 가지만 요령을 들어서 증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 여러 면으로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마는 다 증거할 시간이 없고 그저 중요한 것, 혹은 모르고 있는 그런 것만 한두 종류를 증거하려고 합니다.
첫째, 3절로 9절까지에는 씨뿌리는 비유가 있습니다. 길가에 뿌린 씨는 깨닫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 비유를 말하는 것을 모른다는 말 아닙니다. 세상에 수많은 말은 그 권위가 심히 빈약하지마는 하나님의 도리의 말씀은 천지는 하나님께서는 없애려면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선포해 놓은 계약은 없애지 못합니다. 이렇게 우주보다 권세가 있고 중량이 무거운 이 말씀인 것으로 깨닫지 못 하는 그런 사람들을 말합니다.
세상에 많은 말을 읽고 듣고 보고 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그와 같은 것으로 인정하고, 이 말씀은 그런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은 영생이라고 하셨고 또 예수님은 천지를 없애는 것보다 이 획 하나 없애는 것이, 없애는 것은 안 된다.
천지는 없앨 수 있을지라도 이 획 하나도 없앨 수 없다. 이렇게 권위있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증거해 주셨는데 이 말씀이 이렇게 들리지 않는다 그말이오.
철학자의 철학, 사람의 머리에서 나타낸 유명한 사람의 말은 아무것의 말이라 인용하지마는 하나님 말씀은 무시합니다.
하늘에 속한 것은 무시를 받는 이때에 하늘에 속한 것을 세상에 있는 모든 것보다 탁월하게 여기는 그 사람을 대우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 지금 기다리고 심사하고 있소. 그 사람 심사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성경에 목사 있는데 목사는 천하게 여기고 박사는 귀중하게 여깁니다. 이래서 목사됐다가 박사되면 목사 소리 안 합니다. 언제든지 박사지.
목사는 복음의 일꾼이요 박사는 세상에 온갖 박사 많이 있습니다. 또 그거는 사람 말의 박사요. 복음의 박사 이는 산 박사요 귀하지마는 그래도 목사가 더 귀합니다.
길가 뿌린 씨는 많은 학문을 읽고 듣고 일들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도 그런 것과 같이 평가해서 이런 것을 무한히 탁월한 이런 권위의 말씀으로 제가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길가 뿌린 씨로 불쌍한 사람이요, 돌짝밭에 뿌린 씨라고 말씀하신 것은 복음을 듣되 자기를 이 복음으로 꺾어 이 복음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이런 권위의 말씀으로 권위를 받지 못한 그자를 가리켜 말합니다.
덤불 밑에 뿌린 씨는 이 복음으로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의 가치는 무시하고 하늘과 하늘에 속한 것들의 가치와 바꿀 수 있는, 세상은 무너질 장막집인 것을 깨닫고 영원한 처소를 입게 하는 이 말씀임을, 온 세상보다 가치가 무한히 뛰어난 이 말씀인 것을 깨달아 이 말씀으로 세상을 짓밟고 세상을 이용할 수 있는 이런 깨달음으로 능력을 받지 못한 그자를 가리켜서 덤불 밑에 뿌린 씨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옥토에 뿌린 씨는 이 말씀을 듣고 자기의 소유 시간 몸 생명 이것을 이 말씀에게 다 기울여 이 말씀이 내 전부를 다 양분같이 섭취해서 이 복음대로의 창설, 복음대로의 건설을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하는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 비유에는 걸릴 것이 없는지?
둘째, 24절로 30절까지에는 가라지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되고 진리와 성령으로 건설하고 자라가는 구원의 성도가 있는 동시에 악령이 보내 가지고 세상과 세상으로 자라가고 건설하게 하는 기독교 세상주의, 기독교 유물주의, 기독교 인본주의 이런 것들이 함께 섞여 있기를 예수님 재림 때까지 섞여 있는데 겉은 보면 다 예수믿는 것같이 그렇게 보여지지마는 실은 종자부터가 다르다. 종자부터가 다르다.
택함을 입지 않은 것을 마귀가 보내는 것 있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지 못한 것들이 교회 안에는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누구든지 '너는 가라지다' 할 때에 가라지라 말이 섭섭하고 가라지 되기가 싫고 곡식 종자 되기가 소원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벌써 종자는 좋은 종자가 돼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 모양으로, 가라지와 곡식이 한테 섞여 있어 서투른 농부는 가라지인지 곡식인지 열매 맺기 전에는 잘 모릅니다. 이러니까 '다 같은 교인 같지마는 거기에는 하나님의 자녀도 있고 마귀의 자식들도 교회에는 섞여 있다' 할 때에 분발해서 '뭐 마귀의 자식이면 어쩌라고? 나를 보고 한다. 그래 나는 마귀 자식이다.' 하면서 강퍅하게 그렇게 생각되어지는 그것은 지금까지는 택자로 보지 못합니다. 멸망할 자식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거는 가룟 유다와 같은 그런 자라고 봐야 합니다.
아무리 그 생활이 어떻게 돼도, 가라지와 곡식이 있다는, 구원의 다른 종류가 있다는 말씀을 들을 때에 '내가 가라지가 아닌가? 내가 가라지가 됐으면 어찌 되겠노?' 가라지라 소리를 들으니까 듣기가 싫고 가라지가 안 됐으면 싶고 곡식 종자가 되었으면 싶은 그 마음이 있으면 그것은 행위는 나라도 종자는 택한 종자라는 것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회 안에는 천국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저래 믿어도 되는데' 그런 것 본받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 재림 때까지 그런 것이 섞여 있습니다. 이러니까 '아마 저 사람은 저 가라지인가보다' 우리가 모르고 정죄해도 안 됩니다. '저래 믿어도 되는가?' 할 때에 '야, 행여나 저분이 가라지인지 누가 알겠느냐? 나는 그래 믿어서는 안 되겠다.' 이렇게 깨달아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31절로 32절까지 겨자씨 비유가 있습니다. 겨자씨는 씨알 중에 가장 작은 씨알이지마는, 하나의 채소지마는 그것을 땅에다 심어 자라면 누구든지 볼 때에 그것을 나물이라 채소라 하지 않고 나무라 할 만치 커져서 모든 새들이 거기에 와 가지고 깃들여 앉는다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예수 믿는 데는 선천 후천적으로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병신이고 무식하고 머리가 둔하고 가난하고 못나고 이렇게 인간 중에 겨자씨같이 아주 작고 못난 자라도 그것이 땅에 심기면 나물을 탁월하게 자라는 것처럼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자로서 주의 사죄에 뿌리박고, 칭의에 뿌리박고, 하나님과 화친에 뿌리박고 자기 있는 대로 다하여서 힘을 쓰면, 여기에서 뽑히면 죽습니다. 거기에서 떨어지면 변동되면 상하고 마르지마는 이 사죄의 주님의 구속에 연결, 연결하는 방법인 이 성경 법칙대로 연결하는 그것을 연약하고 못났지마는 하나님 말씀을 믿고 요대로 계속하면 탁월한 인간이 됩니다. 인간을 탁월한, 피조물을 탁월한,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같이 됩니다.
이러면 하나님의 이 구속과 하나님과 이 법칙에 떨어진 자, 이 법칙에서 법칙에 박히지 않고 법칙에 뿌리박지 않고 기회 좋은대로 형편대로 이렇딱 저렇딱 해서 눈치싸게 '야, 이때는 이렇게 해야 총회장이 되겠다. 이래야 노회장이 되겠다.
이래야 유명하게 되겠다. 이래야 넓은 무대에서 초청을 하겠다. 이래야 존귀해지겠다.' 땅에 보이는 것을 인하여 이리 저리 피동되는,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기회주의로 돌아다니는 공중에 나는 새떼처럼 하는 그런 모든 종자는 영원토록 너에게 속하게 된다. 너에게 속하게 된다.
기독자는 이 법칙을 떠나지 않고 그리스도의 중보인 이 구속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뿌리박은 이것을 요동치만 않으면 시작이야 어떻게 못 됐어도 상관없습니다. 아무리 못나도 상관 없습니다. 모든 정처없이 기회주의자로 다니는 자야. 목사든지, 장로든지, 천사든지, 인간이든지, 만물이든지 모든 그런 것들은 다 너에게 소속해서 네 가지에 깃들여 네게 속해서 네 혜택으로 살게 되리라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예수 믿는 사람들로서 누가 자기의 부족을 인해서 탄식을 합니까? 탄식할 것 없습니다. 안 옮기면 됩니다. 겨자씨의 특색은 이것이오. 겨자씨의 특색은, 새는 여기 있다가 훌떡훌떡 뛰어 돌아다니는데 겨자씨는 한 군데 딱 박혀 가지고 요동치 않으면 이렇게 자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이 진리에 뿌리박고 요동치 않으면 못나도 상관없습니다. 뭐 못나도 상관없어. 모든 유식한 자를 다 부끄럽게 합니다.
병신도 상관없습니다. 모든 번들번들하게 잘난 사람들을 다 자기에게 소속한 존재가 되게 해 주시는 약속입니다.
넷째로, 마태 13장 33절에 누룩 비유가 있습니다. 누룩 이것은 들어가면 부글부글 굅니다. 가루 서 말에 누룩 조그매만 들어가면 부글부글 다 굅니다.
아무리 똘똘 뭉친 그 단체라도 진리에 어긋난 잘못된 사상이나 주장이나 말이나 그것 하나 들어가면 강철같이 뭉친 그 단체라도 얼마 안 가서 속이 부글부글 굅니다. 아무리 철통 같은 가정이라 할지라도, 부부간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잘못된 이 누룩, 쓴 뿌리, 잘못된 생각, 잘못된 교훈, 잘못된 사상, 잘못된 일, 잘못된 행위 조그만한 것이라도 하나 들어 있으면 그 가정은 부글 부글 굅니다.
썩습니다. 마지막에는.
아무리 의지가 굳고 성자 성녀라 할지라도 자기 속에 안된 생각, 안된 감정, 안된 욕심, 잘못된 지식, 잘못된 감화, 잘못된 설교, 잘못된 깨달음 하나 듣는 요게 누룩이라 그 인격과 그 생애는 얼마 안 가서 부글부글 괴어 가지고 다 썩어지는 것으로서 완전히 변화되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 많이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래서 주님은 "바리새인의 누룩을 삼가라" 말했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을 삼가라." 잘못된 교훈,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아무나따나, 이 세상에 마귀들이 말하기를 '독서를 많이 해야 된다, 광문다학해야 된다.' 안된 소리입니다.
자기가 그 책을 읽어 그 책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신앙이 더 발라지고 곧아지고 좁아지고 더 간절해지고 뜨거워지고 하나님께 대한 것이 뜨거워지고 세상에 대한 거짓부리라 하는 것에 느낌이 뜨거워지고 이래지는지 길가 뿌린 씨와 같이 널펑해져 가지고 속화가 되어지는지 그걸 자기가 살펴야 되지.
좋은 책을 선택해서 읽는 것에 유익이 많은 것과 같아 잘못된 책을 선택해서 읽으면 일생동안 뽑아버리지 못할 사람 됩니다. 그것을 뽑아버려 줄 사람은 자기보다 무한 탁월한 사람이라야 뽑아 줄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을 만날런지 못 만날런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삼가라" 사두개교보다는 바리새교가 당시에 발랐고 바리새교도 바른 예수님의 교훈이 오니까 대립이 됐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을 받아 그대로 살지 않고 바리새인들의 교훈이 널펑하고 당시에 세력이 있으니까 '그것도 좀 넘어다 보자' 한 자들은 다 썩었습니다.
"너희들이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삼가라" 많은 가루에 조그만한 누룩이 들어가면 그만 그 가루가 괴서 부글부글 괴 가지고 가운데 구멍이 뻐끔뻐끔하이 거품이 뻐끔하이 그만 이래, 그래 돼 버립니다. 썩습니다.
여러분들, 자기 속에 무엇이 들어서 자기를 썩히는지? 자기를 변절시키는지? 뭣 때문에 하늘에 대한 확신이, 욕망이, 기쁨이, 담대가, 평강이 없고 세상하고 섞여 가지고 이렇게 부글부글 괴는지? 그것을 살필 것입니다.
다섯째로 13장 44절에 감추인 보화, 보화를 발견하고 감추어 놓고 보화가 있는, 그 보화만 사려 하면 안 될 터이니까 보화가 있는 밭을 사야 되기 때문에 있는 것 다 팔아 가지고 밭을 샀다 했습니다. 이 보화는 진주나 다 같은 말입니다.
세상에서 보화인 하늘나라를, 모든 인류 중에 보화인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님,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으로 살던 사람이 둘째 아담 중생된 자기 속에 새사람, 수많은 말이 가뜩 세상에 차 있는데 하나님의 지식인 신구약 성경 말씀 이게 다 보화입니다. 이게 다 진주요. 이 가치를 바로 깨달은 자는 소유도 몸도 생명도 하나도 남김없이 싹 그것을 자기 것 삼기 위해서 다 바꾼다 그말이오.
이것 다 줘야 바꾸게 될 때 이것 다 주고 그것 바꾼다 그말이오. 이것이 자기에게 이 운동이 시작됐으면 천국에 계대해서 지금 달리고 있는 사람이고 아직까지 이 보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영원성 완전성 불변성 하늘에 속한 이것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애낌없이 투자하고 싶은 이 마음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 사람이오. 애낌없이 투자하는 중에 있지 않으면 천국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누구든지 다 이러합니다. 진주를 만난 사람도 이러했소. 하나는 진주는 찾으려고 애를 쓰다가 만난 사람도 이렇고 찾으려고 애쓰지 않고 오다가다 만난 사람도 이러하고, 예수믿는 도를 이런 구원을 찾으려고 많은 애를 써서 수많은 이 종교를 거쳤고 철학을 거쳤고 모든 것을 거쳐 '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인생이 갈 길은 없다.' 하는 데에서 비로소 기독교를 발견하고 난 다음에 '이게 참 길이다!' 하는 이 사람은 진주를 찾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있는 것 다 투자하요.
그런 것도 없이 '야, 예배당에 가자.' 억지로 끌려갔다가, 끌려 가지고 멋모르고 일 년 이태 한 달 두 달 다니다. 보니까 예수믿는 이치를 참으로 깨닫고 보니 자기와 자기의 모든 세상을 이 구원 위해서 투자하기에 아까운 게 하나도 없어. '어서 이것 다 투자해 가지고 이것을 잡아야 되겠다' 하는 이 사람이 되어 있으면 깨달은 사람이요 천국을 발견하고 이루어가는 사람이요, 아직도 예수믿는다고 하지마는 세상에 좋은 것 취하고 천국도 중간이나 가겠다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자기에게 속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세상 반 천국 반 반반으로 나는 가지겠다 하는 사람은 천국을 보지 못한 사람이요 자기 딴에는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마는 순전히 생활은 세상 생활뿐인 것입니다. 속는 일이오.
천국을 발견한 사람은 다 있는 것 팔아서 산다고 했습니다. 하나도 안 그런 사람이 없어. 반 파는 사람이 없어. 다 파는 사람이 돼. 여기에 도달하지 아니할 때에는 천국을 아직까지 만나지 못한 사람이요 발견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죽기는 죽을 터이니까 죽고 난 다음에 천국 못 가면 어쩌겠노? 없으면 그만 있으면 가고' 해서 확신이 없는 사람이고, 만일 있으면 어쩔까 하는 그런 사람이지 천국을 바로 발견한 사람은 예수님이 이렇게 말해 왔어. "바로 천국을 발견한 사람은 있는 것 다 투자한다. 있는 것 다 투자할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직까지 천국을 제가 발견 못 해 그렇다." 요렇게 규정을 딱 지워 왔습니다.
여기서 에누리없이 자기를 판단하십시오.
그다음에 47절로 50절까지에는 그물 비유입니다. 천국을 그물 비유로 했소.
어부가 그물을 바다에 쳐 가지고 마구 있는 대로 훌쳐서 들어오니까 거기에는 별별 것이 들어오지마는, 못쓸 버러지도 들어오고 찌꺼기도 들어오고 뭐 물찌꺼기도 들어오고 별것이 들어오지마는 다 걷어서 내놓고 난 다음에는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머지기는 전부 밖에 버리는 것처럼, 세상 끝에 예수님께서 오시면 예수 믿는 자들 다 수많은 자들 있지만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택한자 불택자를 촐촐 추리고 택자의 택자들의 신앙 행위를 전부 다 끌어 모아 놓고 택자의 신앙 행위에도 못쓸 것은 전부 버리고 쓸 것만 가려, 인류 가운데 택한 자가 선출되고 택자들의 신앙생활 속에 진리와 영감대로 된 영원성 완전성 불변성의 것만 촐촐 추려 놓고 나머지기는 다 불살라버리고 만다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나는 불택자에서 택자로 선출됐으니까 이것도 다행은 다행입니다마는 내가 예수믿는다고 지저분하게 몇십 년 예수믿었는데 하나님께 와서 다 끌어모아 놓고 나서 착착 가릴 때에 심사할 때에 검사를 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이 '이는 완전성적이요 영원적이요 불변적이요 그리스도의 본질 본성의 것이요 진리와 영감대로 된 것이다. 금과 은과 보석이다. 아무것도 멸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요거는 알곡이다. 요것은 쓸 것이다.' 천국의 이 옮기는 이런 일을 할 때에 자기의 생애가 얼마나 갈런지 자기 일생동안에 이 비판을 가지고 도적맞은 것도 계산해야 될 것이고, 또 집어던져 버림을 당할 것도 계산을 해야 될 것이고, 좋은 것은 가려서 그릇에 담는 것처럼 천국으로 옮겨질 것도 계산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비유 52절에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천국 제자된 서기관마다 "곳간에서 새것과 옛것을 내어놓는 것과 같다" 이랬습니다. 내어놓는 주인과 같다 이랬어.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하늘나라를 닮은 성경을 가르치는 자마다, 자체가 천국 제자가 되어, 자체가 천국화되어, 자체가 성화되어 성화된, 천국화된, 회개한, 믿음을 가진 "서기관마다" 성경을 가르치는 자마다, 그 사람은 "곳간에서 옛것 새것을 내오는 주인과 같다" 인간이 모르는 무궁한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곳간에서, 하나님의 집에서 옛것도 새것도 제 마음대로 내 오는 자와 같다. 그자가 증거하는 것은 막바로 천국의 안에 있는 그것을 그때 그때 묵은 것이 필요하면 묵은 것 내 오고 새것이 필요하면 새것을 내 와.
그 사람이 막바로 천국의 주인처럼, 천국의 주인처럼 천국 것을 막바로 너거들에게 갖다 준다. 받아라! 막바로 갖다 준다. 받아라! 받으면 이게 천국이다! 그 사람은 사람이지마는 천국의 주인 막바로 하나님이시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이 아니라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곳간에서 옛것과 새것을 내 오는 주인과 같다" 말씀했습니다. 갖다 주니까 받아 가지고 행하면 실상 됩니다.
천국 제자가 안 된 세상 제자가 된 자가 서기관 이름을 가지고 천번 만번 세상이 놀라나는 굉장한 설교를 해도 하늘나라의 곳간 것이 내 온 것은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곳간 것은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것은 아니오. 제맘대로 제가 이것 말하고 저것 말하니까 조작배기지 하늘나라의 것은 아니라.
막바로 천국 제자된 서기관이 말하는 것은, 옛것이든지 새것이든지 두 종류밖에 없는데 과거 것 현재 것 그것이 하늘나라의 것을 바로 하늘나라의 실상 그것을 너거들에게 내 주는 것이니까 받아보면 실상이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지만 천국 것을 제 자유 자재대로 내다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주인이다. 주인 같다. 그는 제맘대로 능동있는 게 아니고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것 주라면 요것 주고 조것 주라면 조것 주고, 그러기에 그것이 말이 아니고 천국에 있는 실상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여덟 가지 비유.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때와 장소와 종류가 제맘대로라면 하나님과는 상관없습니다. 그 때, 그 장소, 그것을 주라 할 때는 그게 실상입니다. 대리 주인이오. 그게 막바로 천국의 것입니다. 받아 가지면 천국 것을 가졌습니다.
열시부터는 오늘 밤에 증거한 이 말씀이 다시 녹음기에서 재론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이 와서 철야를 하도록 하십시오. 불을 뜨뜻하게 때 놔서 옷만 뜨시게 입고 오면 덮을 것 하나도 없어도 됩니다. 지난 금요일은 보니까 많이 참석을 했었습니다.
기도하고, 4층 결혼식에 가서 축하하고, 열시에 녹음기를 다시 틀어 가지고 이 말씀을 다시 증거할 때에 듣고, 뜨뜻하니까 와 가지고 밤새껏 철야해서 이 비유 말씀을 새김질 하면서 자기의 복음이 되고 자기를 정죄하는 율법이 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