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2 14:30
빌라델비아교회
1981. 5. 24. 주일오후
본문:요한계시록 3장 7절∼13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 가장 올바른 교회로 나타난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이 교회에 열린 문을 주셨기 때문에 이 열린 문은 누구도 방해해서 닫지 못하고 열린 그대로 형통하게 됩니다.
열린 문이라는 것은 형통한 길이라는 말과 같은데, 왜 형통한 길이라 하지 않고 열린 문이라고 말씀했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갈 때에 형통한 길에도 여러 단계가 있어서 한 단계를 통과하면 다음 단계의 장벽이 있고, 그 장벽의 문을 열면 또 다음 장벽의 문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신앙은 단계적으로 향상하는 것이요, 아주 판이한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힘과 새로운 깨달음과 새로운 능력과 새로운 평강과 새로운 기쁨의 감사가 층층이 되어 있는 것을 묘사한 말씀입니다.
또 앞에 막혀 있는 장벽과 같은 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자기가 들어온 것을 알지마는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앞에 있는 그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도 수많은 문들이 있는데 그 문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열어주시니까 주님 앞으로 나가는데 열린 그 형통의 길, 승리 일로의 길을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고 일관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열린문을 받은 결과 그리고 이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님에게 열린 문을 받음으로 이루어지는 결과 몇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첫째는,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실상은 사탄의 회, 믿는 사람 가운데서 악령의 인도를 받아 참된 하나님의 교회를 괴롭히던 세력들이 굴복케 되는 열매가 맺혀진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참된 길을 걸을 때 외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분쟁 투쟁 대립이 있으나 그 일을 생전에 해결보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 빌라델비아 교회도 어리석고 거짓된 형제들과 대립된 일들이 많았으나 빌라델비아 교회가 없어지기 전에, 죽기 전에 그 대적들이 굴복하므로 하나님이 과연 빌라델비아 교회와 함께 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을 보여주는 이것을 첫째로 말씀했습니다.
오늘도 믿는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형제들, 어두움에 삼킨 악령의 일꾼들에게 대립이 되기를 마치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대항하던 것처럼 됩니다. 그래서 그런 형제들을 옳은 길로 돌아오게 하려고 선지자들이 옳은 말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했는데 오랜 후에 그 죽인 사람들의 자손들이 선지자의 무덤을 짓고 비석을 세우면서 후회했지마는 그 당시에는 그런 일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9절에 "보라 곧 사탄의 회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잘못 믿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옳게 믿는 신앙을 인정하는 이 일이 제일 어려운데 이 열매를 맺게 해주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교계에서 열린 문을 받은 사람들과 대립되는 어린 형제, 약한 형제, 진리를 대항하고 마귀 사탄에게 붙들린 형제들이 자기가 죽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 열린 문 받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그들이 알고 머리 숙여 돌이키게 되는 이 승리를 첫째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맺혀질 결과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닥치는 시험이요, 믿는 사람으로서 시험 당하지 않을 사람이 없는데 내가 너로 하여금 승리하도록 해주겠다고 말씀했습니다.
10절에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케 하겠다" 하신 것은 시험 당하지 않도록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시험의 때에 그 시험에 걸리지 않고 통과하도록 하겠다, 시험에 승리하도록 해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로는, 12절에 "네가 받은 열린 문을 배반하지 않고 굳게 잡고 있으면 성전에 기둥이 되리라"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교회에 중추인물이 되리라, 교회에 기둥 같은 베드로라 야고보라 말한 것과 같습니다. 성전 기둥이 되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 교회에 산 기둥과 같이 중심인물이 되고,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가 크게 은혜를 힘입을 수 있는 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칼빈 선생은 중추된 은혜 기관으로서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입었습니다. 스데반이나 아벨이나 바울 같은 사람들도 벌써 역사를 마치고 갔으나 그분들의 역사는 지금도 우리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큰 힘을 줍니다.
이런 은혜 기관을 가리켜서 교회 기둥이라 했는데 열린 문을 받은 사람에게는 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열린문을 받은 자들은 또 12절에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했습니다.
그러면 열린 문 받은 사람 위에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 하늘나라 예루살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을 기록하겠다는 말인데, 온 천하에 당시에 있는 사람이나 그 후손들이나 ‘과연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라, 그는 천국 사람이라, 그는 참 예수님의 사람이라!’ 인정하게 되고, 또 하나님의 이름이 그 사람 위에 쓰였으니까 그 사람을 봐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을 봐서 천국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을 봐서 예수님을 알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당시 사람들이나 후시대 사람들이 열린 문을 받은 그 사람 자체가 하나님과 천국과 예수님의 것인 줄 알게 되고, 또 그 사람으로 인하여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구나, 과연 천국이 있구나, 우리 위해서 대형 대행 대속하신 예수님이 계시는구나!’ 하는 증거의 열매를 맺도록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람 나라는 이스라엘의 적국인데 그 나라에 포로된 작고 천한 계집종 하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확실히 계시는 것과 하늘나라가 있는 것과 이스라엘에게 선지자가 있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비록 포로된 여종이지마는 그는 하나님이 사람이며, 하늘나라 사람이며, 선지자 중에 하나로 그 나라 사람들이 존대하게 된 것은 이 여인이 열린 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 파사 나라가 하나님을 멸시 천대했지마는 열린 문을 받은 다니엘 한 사람을 통해서 그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천국 사람이며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 하나님을 알려 줬고 천국을 알려 줬고 하나님의 구원을 알려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그 나라에서는 용납받지 못하게 되는 큰 빛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열린 문을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이름과 예루살렘의 이름과 내 새 이름을 너희 위에 기록하겠다.’ 했습니다. 주님의 새 이름이라면 주님이 앞으로 하실 일이 많은데 당신이 전개할 그 모든 일을 너를 통해서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는 자이니 나도 그를 사랑할 것이요, 아버지도 그를 사랑할 것이요, 내가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우리가 그에게 와서 그와 거처를 같이 하리라"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빌라델비아 교회는 열린 문을 받음으로 첫째는 당시에 대립된 형제들이 빛으로 돌아와서 머리를 숙이고 과연 하나님이 사랑하는 교회로 깨달아서 당시 자기의 대립된 형제들을 구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둘째로 천하에 성도들이 당하는 온갖 시험을 당하지만 이기는 결과를 맺었고, 또 교회에 기둥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해서 그 혜택을 수많은 성도들이 입히는 열매를 맺었고, 다시는 세상에게 져서 실수해서 세상으로 나가는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과연 그는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며, 천국에 속한 사람이며,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이라!’ 이렇게 나타내서 그를 통해서 무신론자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냈고, 마구잡이로 사는 사람들에게 두려운 심판과 심판 너머 하늘나라와 중보자 구세주가 있는 것을 알려주는 열매를 맺게 됐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받은 열린 문은 어떤 것인가? 이 문을 표시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가라사대…" 하셨습니다. 이 열쇠를 가지신 이는 예수님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요 구세주시니까 당신이 열쇠를 가졌다고 하면 될 것을 하필 ‘다윗의 열쇠’ 라고 하시면서 다윗을 말씀했는데 이 말씀에는 무슨 뜻이 포함이 됐는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성령을 통해서 부르게 한 것은 역대에 많은 신앙가들이 있었지마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제일 표본적 신앙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신앙의 조상이라, 신앙의 사람이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믿음의 조상이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신앙면을 말하는 것이요, 다윗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의 왕권 계통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통치권으로 표본을 삼을 만한 왕은 다윗이기 때문에 다윗을 표본을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때에 하나님의 지혜의 계통을 선지자라로 말씀하셨고, 사랑의 계통을 제사장으로 말씀하셨고, 능력 계통을 왕으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곧 하나님의 선지자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거룩하고 진실하사" 하신 것은 당신이 수많은 것 가운데서 당신만이 하나님의 피조물의 구주로 정하신 것을 말씀하는 것이고, ‘다윗의 열쇠’는 제사장 계통, 사랑 계통, 지혜 지식 계통 외에 하나님의 능력 통치의 표본인 왕권을 말한 것인데, 거룩하고 진실한 예수님 당신에게 이 통치의 계통이 전달된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나 선지자는 정복한 뒤에 안전 시기에 역사하는 것이지만 왕권은 제일선에서 전투 정복하는 직책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열쇠라고 하신 것은 모든 것에 전부란 말이요, 중요하다 말이요,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표현입니다.
열쇠에는 성문을 여는 열쇠도 있겠고 주택 열쇠도 있고 창고 열쇠도 있는데 어떤 열쇠든지 점령을 말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모형이요 상징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열쇠를 내가 가졌다" 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왕권, 정복, 승리, 통치가 계통으로 내려오는데 다윗에게 왔고 또 내게 왔다! 이 통치의 권능, 정복 승리의 능력 중에 제일 요긴하고 전부가 되는 것을 가진 내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다! 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면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고 구원의 길을 닫으면 아무도 열 자가 없다! 내가 이런 승패, 생사 모든 것의 주권을 가졌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주었는데 아무도 닫지 못하리라" 하신 것은 네게 열린 문을 주노니, 네게 계속 승리할 수 있는 승리를 주노니, 계속 형통할 수 있는 형통을 주노니, 당장에 거짓된 형제가 네게 굴복하고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노니, 모든 시험을 승리하고 하나님의 교회에 혜택을 입힐 수 있고 다시는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누가 봐도 너를 하나님의 것으로 예수님의 것으로 천국 것으로 의심없이 너를 통해서 어두운데 빛을 나타낼 수 있고, 무신론자에게 하나님을 나타낼 수가 있고, 세상만을 아는 사람들에게 심판과 하늘나라를, 절망된 세상에게 중보자 구세주가 있는 것을 네가 이 열린 문만 버리지 않으면 이런 결실을 맺으리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너에게 열린 문을 주노니 네가 이 열린 문을 굳게 잡고 빼앗기지 말아라"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열린 문은 어떤 것인가? 8절 하반절에 보면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했습니다. 이것이 열린 문입니다.
이 문은 길을 말하는 것인데 성공의 문 성공의 길도 수없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의지로 승리를 달성하려고 걸어가는 의지의 길도 있고, 또 많은 학식으로 성공과 승리를 하려고 걸어가는 길도 있고, 선천적으로 남보다 뛰어난 지혜와 총명 명철로 형통의 길을 걸어가려는 길도 있고, 이런 저런 수단으로 이 구원의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길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님이 열어 주신 것이 아니라 사탄이 열어 준 길이요 하늘나라의 절대적인 능력이 주신 길은 아닙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다른 신앙 방편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것으로 신앙 자본을 삼아서 걸어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잘났든지 못났든지 자기의 있는 것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파수하며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고 모시려는 이 깨달음, 이 행사를 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절대자의 능력이 그에게 주신 승리의 길입니다. 열린 문입니다.
오늘도 이 방편으로 이 길을, 이 힘으로 신앙 걸음을 걷는 자는 아무도 방해하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를 인간에게 주셔서 건설할 때 시작부터 하나님이 쓰시던 방편이요, 하나님이 주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이 길 외에는 없습니다. 대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들에게 승리의 길로 주신 길이요, 능력의 길로 주신 길이요, 완성하는 길로 주신 것은 이 길뿐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은 주님이신데 다윗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왕권 계통을 말씀하는 것이니까 하늘나라의 건설, 투쟁, 승리, 통치의 권능은 인생들에게 주신 열린 문은 이것뿐입니다.
그러기에 이 문을 가진 것을, 이 길을 가진 것을, 이 방편 가진 것을, 이 걸음 걷는 것을 놓지 말아라! 무식해도 못나도 이 길만 떠나지 않으면 네가 죽기 전에 원수의 정복과 굴복과 거짓 형제에게 전해지는 복음을 볼 것이고, 성전에 기둥이 될 것이고, 다시는 나가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과 예루살렘의 이름과 내 새 이름이 네 위에 기록되어서 ‘아, 이 사람은 하늘나라 사람이로구나!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로구나! 이 사람은 예수님의 사람이로구나!’ 모든 사람이 네 임자가 누구라는 것을 알 것이고, 또 너를 통해서 하나님과 새예루살렘인 하늘나라와 내가 이 어두운 세상에 환하게 드러나리라 하는 말입니다.
마치 ‘나를 통해서 저들이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처럼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내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처럼 저희들이 아버지를 바라보고 내가 아버지를 참되게 인정한 것을 저들도 참되게 인정합니다.’ 주님이 이것으로 아버지에게 자랑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이 같은 결실을 네가 가지게 되리니 너도 굳게 잡고 놓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빌라델비아교회의 특수성이요 특수한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하늘나라의 왕권 하늘나라의 권능의 계통이 열어두는 길입니다.
그게 무슨 길인가? 연약한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으려고 다 기울이는 이것이 하나님이 열어주신 길입니다. 자기에게 없는 것은 할 수 없지만 있는 대로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기 전부로, 주의 이름을 모시고 드러내는 자기 전부로 살려는 각오가 하나님이 승리를 주신 선물입니다. 그게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그게 승리요 그게 형통입니다.
이것이 아니라 ‘돈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나는 돈이 있으니까 신앙 승리를 돈으로 해보겠다, 의지로 해보겠다, 수단으로 해보겠다, 지식으로 해보겠다, 명예로 해보겠다!’ 하는 이런 자는, 하나님이 열린 문을 주시는 유일한 승리의 길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기울이는 충성 하나로 된다고 하셨는데 이 외의 것으로 신앙 길을 삼으려고 하는 자이니 그것은 사탄의 유혹이요 곁길이요 허공을 치는 것입니다.
자기 전부를 다해서 충성으로 걸어가는 이 길은 끝이 없습니다. 이 길은 형통입니다. 이것이 열린 문입니다. 자기 힘으로는 올라가지 못할 자인데, ‘내대로는 힘은 다해야 되겠다!’ 하는 충성으로 힘을 다했더니마는 그 자리까지 쑥 올라갔습니다. 그러면 또 ‘이상하다!’ 하고 또 힘을 다합니다.
다하니까 또 더 올라갑니다. ‘이렇게 자기의 연약한 힘을 주를 바라보면서 주의 이름과 진리를 위해서 다 기울여서 사는 자, 그가 가는 길은 끝이 없는 무한이라, 완전이라, 최후까지의 승리라!’ 요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충성으로만 이루어 나가지 땅위에 어떤 번쩍거리는 자본이나 웅장한 것으로 하려는 자는 성경이 말한 대로 그것으로 망합니다.
‘네가 돈으로 하늘나라를 사려고 하니 돈과 함께 망하리라, 네가 권세 가지고 하려 하니 권세와 함께 망하리라!’ 했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이 만드신 당신의 것인데 다만 우리의 진충(盡忠)만을 원하시는 것이 피의 공로의 역사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헛되지 맙시다. 하나님 앞에 지식이나 권세나 자기의 실력이나 열심이나 배짱이나 총명이나 지혜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자기에게 있는 것을 주를 위해서 다 기울이는 것 외에는 하나님은 가치로 여기지를 않습니다.
이것만이 천국의 길을 뿍뿍 걸어서 모든 시험을 이기고 모든 사명을 다하고 나타날 때 모든 것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