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2 14:23
비빔밥 기독교
본문 : 출애굽기 20장 4절∼6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사람은 근본부터 두 종류의 사람입니다. 외모를 보기에는 같은 사람 같으나 내용과 실은 전혀 달라 두 종류의 사람입니다. 그것을 여기 이계명에 나타냈습니다.
'너를 위하여' 한 종류는 하나님을 위하고 한 종류는 인간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그러면, 땅 위에 살면서 이런 거 저런 것을 하는데 하나는 그 모든 것을 하되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명령 복종으로 하고 하나는 자기를 위해서 이러 거 저런 것을 만듭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는 자기 위해서 만든 컷 그것을 섬기고 절하여 거기에 복종합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 시키시는 일만 하고 하나님 섬기는 일과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일만 합니다. 이렇게 아주 판이하게 사람은 두 종류입니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이행하시는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질투한다는 말은 미워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도 미움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시기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분노가 있습니다.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그러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가 어떤 자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인가? 자신을 위해서 사는 자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만 복종하여 그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 이런 거 저런 것들을 다 계획하고 만들고 그것이 차차 차차 커지면 제법 의지할 것이 되고 믿을 것이 되고 자기를 행복스럽게 할 수 있는 실력있는 것이 된다고 착각을 해서. 자기가 뭘 만들어 큰 회사가 되면, 무슨 큰 기관이 되면, 자기가 만들어서 큰 학자가 되면, 큰 기술자가 되면 그것이 자기를 구출할 수 있는 실력 있다고 생각해서 이제는 그것을 따라서 삽니다.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예수 믿는 것은 버려도 그것은 빼앗기지 안할라고 합니다. 지식 가지고 사는 자는 예수님은 그 계명을 어겨서 뺏긴다 할지라도 지식의 효력은 뺏기지 안할라고, 지위의 효력은 뺏기지 안할라고. 사업의 효력은 뺏기지 안할라고 그렇게 삽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섬기고 거기에 굴복합니다. 그것이 끄는데, 절한다는 말은 거기에 굴복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대적하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를 미워하고 대적해서. 그 '잘못된 죄를 갚되' 그 말은. 죄를 갚는다 말은 죄라 말은 삐뚤어졌다 말입니다. 삐뚤어진 것을, 삐뚤어지게 잘못한 것을 갚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삐뚤어진 것은 어떤 것이 삐뚤어진 것인가? 삐뚤어진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제도와 법칙이 있으니, 목적이 있으니 하나님이 주신 목적에 삐뚤어진 것 하나님이 주신 법칙에 삐뚤어진 것 제도에 삐뚤어진 것 그런 것이 다 삐뚤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갚되' 그 댓가를 하나님이 다 보응시키되 삼 사대까지 하느니라 그랬습니다. 본인으로부터 삼 사대까지, 그 부모의 선조의 잘못한 영향이 거기에 미쳐 간다 그말입니다.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절에, 이제 지난밤에 봉독 한 다음 주일 공과의 본문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이제 이게 다릅니다. 종류가 달라요.
자기를 위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피조물을 위하고 피조물을 사랑하는데 여기에는 창조주를 사랑합니다. 이렇게 아주 차원이 아주 틀립니다. "나를 사랑하고" 창조주를 사랑하고 자존자를 사랑하고 우리를 구속한 구속주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이제는 세상 법칙 따라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칙이 있으니 그 법칙을 따라서 삽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제 자기네들이 무슨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해 가지고 그 힘으로 살고 그 덕으로 살고 자기가 만든 무엇 가지고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지고 삽니다. 이제 순전히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법칙대로 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그것이 한 종류 있고, 자기를 위해서 자기 노력과 자기 법칙대로 해 가지고 그것으로써 살려고 하는 종류가 하나 있기 때문에 사람은 근본부터 아주 판이한 두 종류로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사람들은 다 혼합된 신앙이 됩니다.
지금은 여기에 대해서 구별이 없기 때문에 기독교는 비빔밥 기독교가 됐습니다.
기독교는 혼합 종교가 됐습니다. 앞으로 이와 같이 나가면 모든 종교 통일이 될 것입니다. 종교 통일이 되고 기독교 통일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 통일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발단에는 종교 통일이 이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남는 것은 어떤 것만 남은 것인가? 진실한 자들만 남습니다. 다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데 어린 양에게 속한 진실한 자들만 남아 있습니다. 진실한 자는 어떤 자가 진실한 자인가?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행동의 사람, 하나님이 발표한 이런 사람으로 살아라 이런 사람이 되라 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사람.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지식 하나님 말씀대로의 행동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사람 이것이 진실한 사람이니 이것만 남습니다. 이것만 어린 양으로 더불어 한편 돼 남습니다.
그래 가지고 온 세상은 한 덩어리 돼서 이 진실이 없는 자는 택자들도 다 세상하고 한 덩어리가 됩니다. 그러니까. 기본구원은 있지만 건설 구원은 없습니다. 이래서, 기본구원 얻은 중생된 사람이라도 세상과 하나 돼 가지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더불어 대적이 돼 가지고 사는, 교회가 다 세상의 앞잡이가 되고 가장 진실되게 믿는 신자로 더불어 대적하는 일선의 대적 이 되어지는 것이 외식하는 기독자인 것입니다. 역사나 성경에 모두 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루살렘 밖에서는 선지자가 죽임을 받은 일이 없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예수 믿는 외식자들에게 다 순교당했다 그말입니다.
대적을 당했다 그말입니다.
제가 삼천포 나환자 교회 가 가지고 집회할 때에 여수 애양원 교회에서 많이 왔었는데 그들이, 6.25지나고 난 다음에 첫 집회입니다. 그때 저한테 와서 말하기를 '손양원 목사님이 요번에 순교하셨는데 손양원 목사님을 잡아 준 사람이 여기에 왔습니다.' 그래 내가 말하기를 '아, 그것은 성경대로 됐구만.
성경에는 외식하는 신자가 진실한 신자를 잡아 준다. 그 사람이 생명 내놓지 안하면 안 잡아 줄 수가 없다.' '네가 아니까 내라. 널 죽일 터이니까 손양원 목사님을 잡아내라' 이러니까, 제 생명보다 손양원 목사님 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면 말하지 안 할 수 있지만 제 생명을 낫게 여기는 자는 다 잡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너희들도 손양원 목사님을 잡아주지 안하고 옹호한 것같이 생각하지만 네가 생명보다 손양원 목사님을 더 귀중히 하나님의 선지자를 더 귀중히 여기면 너는 거기에 속하지 안하고 네 생명을 하나님의 선지자보다 귀중히 여기면 내 나 손양원 목사님 잡아 준 그자와 꼭 같은 자다. 그자는 그자인 줄 알고 회개는 하지만 너는 그자인 줄 모르고 회개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라' 하는 것을 그때 애양원 교회의 독실한 여집사들은 다 왔었습니다. 다 온 것을 내가 그 말하기 때문에 그때 그런 말을 해 준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두 종류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근본부터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택함을 입고 택함을 입지 못한 데서부터 다릅니다.
택함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택함이라 했느냐 하면 하나님의 목적을 가리켜서 택함이라 그랍니다. 우리에게 대해서는 택함이라 하고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목적입니다. 목적은 하나님 자존하시고 자존하신 다음으로 제 이위, 이위로 존재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목적이 곧 우리에게는 택함을 입은 것입니다. 택함을 입은 자 택함을 입지 못한 자 이거는 모든 것이 존재하기 전입니다.
거기서 다르고 택자와 불택자가 다르고. 또 하나님의 예정에 구원받을 자 예정에 멸망받을 자 또 예정에서부터 다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창조되는 것이 택자는 하나님의 선택 안에서 창조되고 불택자는 불택자로 창조됩니다. 또 택자는 하나님의 이 신인양성일위의 대속을 받고 불택자는 대속을 받지 못합니다. 택자는 이 대속으로 인해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함을 입고, 불택자들은 이 중생을 입지 못합니다. 택자들은 신인양성일위의 이 대속을 입고 하나는 대속 입지 못하고, 대속을 입은 자는 중생함을 받고 대속을 입지 못한 자는 중생을 받지 못하고, 이래서, 택자는 하나님과 화친되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고 불택자들은 하나님의 원수 마귀의 자녀가 됩니다. 택자들은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게 되고 불택자들은 하늘 나라의 시민권은 없고 세상 시민권뿐입니다. 택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됐고 불택자들은 마귀의 자녀가 되어서 택자들은 영생을 가졌고 불택자들은 영생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택자들은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살고 불택자들은 세상 지식만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세상 지식은 어짜는가? 세상, (요것 잘 알아들어야 됩니다.) 세상 지식이라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지식이 아니고 그것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마치 현실이라는 것은, 우리의 현실은, 현실에는 사람도 들어 있고 물질도 들어 있고, 공간도 들어 있고, 시간도 들어 있고, 사상도 들어 있고, 주의도 들어 있고 정치도 들어 있고. 또 지식도 들어 있고 있는데. 거기에 하나인 우리의 현실에 한 종류로서 세상 지식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사는데,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이 곧 하나님의 계명인데 이 계명을 가지고 사는데 어디서 사는가? 이 계명 생활을 어디서 하는가? 이 계명 생활을 사회라는 그 현실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 계명 생활을 사회에서 하고 있고 이 계명 생활을 정치에서 하고 있고, 이 계명 생활을 모든 인류 속에서 하고 있고 이 계명 생활을 공간에서 하고 있고, 이 계명 생활을 시간에서 하고 있고 이 계명 생활을 이 모든 과학 속에서 하고 있고 이 계명 생활을 세상 지식 속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하나님의 계명 생활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지식도 무대가 되고 사상도 무대가 되고, 세상 정치도 무대가 되고 사회도 무대가 되고, 윤리도 무대가 되고. 모든 인류도 무대가 되고 그것은 우리가 그 자리에서, 그곳에서, 거기서, 그 종류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지식으로 사는 거 아닙니다. 이 말이 알아 들립니까? 이 말은 좀 아주 어려운 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지식으로만 사는데 하나님의 지식으로만 살면 세상 지식은 어떻게 하느냐 하는, 하나님의 지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세상 지식에 대해서 어떻게 사느냐는 세상 지식에 대한 관계를 전혀 모른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지식으로도 살고 세상 지식으로도 살기 때문에 마귀란 놈은 여기서 꼬웁니다. 하나님의 지식 한 시간 살고 세상 지식 한 시간 살고, 하나님의 지식과 세상 지식 두 가지를 혼합해 가지고 살고. 하나님의 지식이 필요할 때에는 하나님의 지식으로 살고 세상 지식이 필요 할 때에는 세상 지식으로 산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세상이라 그거요. 이것이 타락한 교회들이라 그말이오.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에만 복종하고 하나님의 지식으로만 살지 세상 지식으로는 사는 것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지식은 어떤 것인가? 세상 지식은 마치 자기의 현실에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 현장이 있습니다. 자기 현장 자기의 활동하는 그 현장 장소가 있소. 공장이든지 회사든지 무슨 어떤 직장이든지 관공서든지 뭐 중앙청이든지 어디든지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이 있다 말이오. 그러면 내가 중앙청에 있으면 내가 중앙청에 따라서 사는 중앙청에 따라서 중앙청으로 사는 게 아니라 나는 중앙청이라는 그 무대에서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생활합니다. 나를 세상에 장관을 됐으면 내가 장관 생활하는 게 아니라 장관이라는 그 직장 무대에서 나는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생활합니다.
알아 들리요? 이거 모르면 안돼. 여기서 다 혼합이 되고 혼돈이 돼. 이것을 구별할려고 생각지도 못해. 이런 것을 구별해서 말하면 '까다로운 말한다' 어떤 사람 말하기를 '아이구, 서부교회 예수는 믿기가 어려워서 나는 못 믿겠고 잘 깨닫지도 못하겠고 못 믿겠고 이러니까 믿기 쉬운 교회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데.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 깨닫기는 어떻게 할 것이며 깨닫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생활을 할 건가? 그러면, 어렵고, 듣기 어렵고 깨닫기 어려운 그것이 순 틀린 것인가? 그게 맞은 것이라 말이오. 맞다 말이오. 맞은 것은 성경대로이기 때문에 맞지 그러기 때문에, 지식에 대해서 혼돈되기 쉬운데, 지식을 어떤 것으로 봐 야 되느냐? 지식이 그것이 인간 지식은 세상입니다. 막바로. 세상 지식 그러면, 세상 지식이, 인간 지식이 필요한 것은 뭐이 필요하냐? 우리가 밥도 있어야 되고 물도 있어야 되고 공간도 있어야 되고 장소도 있어야 되고 흙도 있어야 되고 바위도 있어야 되고 식물도 있어야 되고 다 있어야 된다 그말이오. 그것은 뭐 할라고 있느냐? 그것으로 인하여 사는 게 아니라. 그것으로 인하여 사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데에 그것을 이용합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그것들이 없으면 순종 생활 못해 하나님의 말씀이 '저 건너가라, 저 물 건너가라' 할 때에 하나님의 순종으로 물 건너가는 데에 배가 없으면 못 건너가니까 배를 타고 간다 말이오. 그렇다고 해서 배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배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배를 섬기는 것이 아니고 배를 위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에 배가 필요하면 배 이용하고 또 산이 필요하면 산 이용하고 작지가 필요하면 작지 이용하고 불이 필요하면 불 이용하고 이렇지 그것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따라 사는 게 아니다. 그것을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데에 그것이 필요한 대로 내가 이용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 지식이라 하는 것은 요거라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어. 생명이 없어. 흙이나 돌이나 식물이나 꼭 같아. 식물을 글자로 기록해 놓은 것, 흙을 글자로 기록해 놓고 물을 글자로 기록해 놓은 그게 지식이라. 요걸 똑똑히 알아야 돼. 이게 어두운 흑막을 확 뚫고 나서는 거라 말이오. 어두운 흑막을 확 뚫고 광명에 나서야 되지 문을 닫아 놓으면 몰라요.
이러니까, 그 문 밖에서 어정어정 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퍼뜩 듣고 가면 '아.
하나님의 지식으로만 산다? 그러면 세상 지식은 뭐 하는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느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생의 법칙입니다. 그 법으로 살고 있소. 하나님 사랑하고, 어디든지. 아무리 정계에 들어가도 중앙청에도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아니면 못 합니다. 우리를 죽이려 하는 죽음 앞에서라도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일은 우리가 못 합니다. 내 살림살이가 다 뺏겨져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합니다. 생명이 뺏겨져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면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하는 일이오. 또 그 계명 지키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이 그 계명인데 그 계명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사는 법칙이라 그말이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사느냐? 세상 사람들은 인간의 절약, 인간이 부지런히 하고 또 검소하게 하고 아끼고 이렇게 조심해서 사는 그것으로 살고.
또 모든 물리 과학의 법으로 삽니다. 인간의 근검 절약과 과학으로 삽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들이 주는 것 가지고 삽니다. 그것들이 주는 거 가지고 사요.
과학대로 맞추니까 거기서 효력이 나옵니다. 인간이 부지런히 하니까 부지런의 효력이 납니다. 그거 가지고 삽니다.
우리 기독자는 그거 가지고 사는 것 아니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니까 뭐이 나오는가 하면 뭐이 나옵니까? 몇 가지 나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네, 두 가지. 뭐? 하나는 기적이 나옵니다. 기적이 나온다 말은, 기적은 뭐이냐? 피조물이 하는 일이 아니고 창조주, 조물주, 완전자, 불변자, 전지 전능자. 우리를 대속한 자. 우리를 사랑한 자, 전능자의 역사가 나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해 주시는 거 있어. 그것을 가리켜서 기적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그분이 기적으로 우리에게 역사 해 주시고, 또 뭣 주십니까? 축복 주십니다. 축복.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 주시요. 기적과 축복으로 오는 것 그것 가지고 살아요. 우리 하는 일은 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면 기적과 축복이 오니까 우리의 수입은 기적과 축복이 우리의 수입이오. 우리의 노력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 사랑하고 그 계명 지키는 것이 우리의 노력이라.
이래서, 두 종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자들도 이걸 깨닫지 못 해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을 자기 할 일로 여기지 안하고 부지런히 하고 저희들의 연구하고 힘쓰고 제것 가지고 사는 것 또 이 세상 물리에 맞춰서 사는 것 그것이 사는 것인 줄 알고 거기에 맞춰서 사는 사람은 그것이 틀리면 하나님 버립니다. 그것을 하나님보다도 더 낫게 여기게 될 때에 말하기를 그것을 가리켜서 우상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인제 거기 절하고 섬깁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만들어 놓은 그 회사. 회사의 운명을 하나님보다 더 귀중히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은 배반해도 이 회 사는 내가 버릴 수 없다' 자기가 또 열심히 노력해 가지고 지식이나 기 술을 배웠고 권세를 점령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도 이 권세는 버릴 수 없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도 이 기술은 버릴 수 없다. 하나님의 계명은 어겨도 이 지식은 버릴 수 없다.' 너는 그것이 네 우상이라 그것 섬기는 자이고 거기 절하는 자라 거기 복종하는 자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전혀 근본부터 두 종류라 하는 것을 환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두 종류를 우리는 세상에서 판별을 못 합니다. 택한 자인지 불택자 인지 우리는 판별을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이 사람도 하나님의 택한 사람으로 그렇게 알고 우리는 대접도 하고 노력도 하고 힘도 씁니다. 이랬는데. 나중에 가서 보면 불택자는 열심히 예수 믿도록 권면하고 이랬으니까 잘 믿는 것같이 하다가 마지막 죽을 때라도 예수님 부인하고 죽습니다. 고거는 불택자라 그말이오. 또 일생 동안 전도하고 이래 해도 안 믿고 망령을 부리고 이래 있다가 마지막 죽을 때에 한 일 분 동안 예수 믿고 죽는 사람 있어. 일 분 동안, 마지막에야, 믿으라고 하면 반대하고 고개를 설설 흔들다가 이제 죽을 때에 한 일 분 남기고 난 다음엔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래야 구원 얻습니다. 믿으면 죄 사함 받고 구원 얻습니다. 예수를 믿습니까?' 하면 그때사 끄떡 끄떡, 일 분 예수 믿고 천국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게 택자라 그말이오. 또 일생 동안 예수 믿다가 낙심하고 배반하고 간 사람 있는데 그게 불택자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근본부터 다르다 하는 것을 알고,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의 법칙도 다르고 우리가 또 얻는 수입도 다릅니다. 우리 수입은 뭐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수입이요. 또 우리의 노력은 뭐입니까? 우리의 노력은 하나님 사랑하고 그 계명 지키는 것이 우리의 노력입니다. 우리 할 일은 그 두 가지, 우리가 수입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
불택자들은 육체로 심어 가지고 썩어진 것을 거둔다, 육체로 심는다는 말은 인간의 심신 자기로만 살아 가지고 썩어진 거 거둔다, 영생 없는 거. 완전치 못한 거, 모두 다 불변치 못한 거, 불변의 것이 아니요 완전의 것이 아니요 영원한 것이 아니요 영생의 것이 아니요. 진리의 것이 아닌 이런 거. 모두 다 일시 있다가 없어질 것. 다 썩어진 것, 불완전한 것. 다 유한한 것, 영생이 없는 거, 또 멸해질 거, 없어질 거 그런 거 가지고 삽니다. '성령으로 사는 자는 성령으로 심어 영생을 거두고 육체로 심는 자는 육체로 말미암아 썩어진 것을 거두나니' 갈라디아서 6장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속지 말라 사람의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사람의 심으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라' 네가 이 세상살이를 어떻게 했든지 그대로 영원 세계에 추수한다.
택자라도 세상에서 불택자 생활했으니까 영원 세계에는 택자의 받는 하늘 나라의 기업은 아무것도 없고 영생만 얻어 가지고 기본구원만 얻어 가지고 갔지 거지로 가야 합니다. 거지. 하늘나라에 거지가 있어. 하늘나라에 벌가벗은 자가 있어. 또 하늘 나라에 가 가지고 불 가운데에 구원 얻는 거와 같은 그런 자가 있어.
이래서,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이렇게 항상 탄식하고 무거운 짐진 거와 같이 고통하고, 무거운 짐이라는 것은 갈수록 고통이 더 심한 것이 무거운 짐이오. 예수 믿는 사람은 나이가 많아 가고 세월이 많아 갈수록 자꾸 등이 눌립니다. 자꾸 눌리요. 자꾸 더 고통스러워. 뭣 때문에? 조만간에 갈 터인데 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주님을 섭섭하게 하나라도 한 일을 가지고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주님의 섭섭한 일이 뭐이 있는가. 섭섭하게 했는가 이거 찾아 가지고. 이것 찾느라고 고통, 못 찾으니까 기도하고 금식하고 찾고,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할려고 이래서, '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벗은 자 들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항상 무거운 짐진 거와 같이 내가 고민한다' 그렇게 말했어.
이러기 때문에, 그 사상이 뭐이냐?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만 내가 원한다' "떠나든지 거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왜?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서 각각 자기의 행한 대로 갚음을 받는 이 미래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공심판에 가지만 우리는 공심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면제받았지만 그리스도의 사심판이 있다 말이오. 그리스도의 사심판은 대속을 줬으니까 네가 대속의 공로를 네가 입고 살았느냐 벗고 살았느냐, 얼마나 입고 살았고 얼마나 벗고 살았느냐 그것을 판단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그말이오.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말은 네가 제사장화가 얼마나 됐으며 선지자화가 얼마나 됐으며 성화가 얼마나 됐느냐, 네가 성화가 얼마나 됐느냐 그대로 영원한 나라에 보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두 종류라 하는 것을 확실히 생각하고 깨닫고 그러면, 하나님에게 속한 자의 생활이 다르고 세상에 속한 자의 생활이 다른데 그 사람들과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기 때문에 '저 사람들은 저래 사는데 나도 저래 살지 못할 게 뭐 있느냐? 나만 이래 살 것이 뭐 있느냐? 그 사람들과 너와 근본, 근본 택함에서부터 종류가 다른 것인 데 어떻게 네가 그렇게 할려 하고 있느냐? 그러기 때문에. 중생되기 전에는 그 사람들과 같이 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된 다음에는 안 됩니다.
물벌레가 물에서 처음에는 이 물벌레나 저 물벌레나 다 같은 물벌레로 살았지만 그 물벌레가 부화가 돼 가지고 잠자리가 되고 난 다음에는 잠자리가 잠자리로 살아야 되지 잠자리되고 난 다음에도 물벌레로 살라 하면 죽습니다. 잠자리가 물에 들어가면 죽어요. 잠자리가 보면 알은 물에다 슬어. 알은 물에다 슬어서 이를 보면 아이들 말로 뭐 잠자리 방아 찧는다 이래. 이놈이 물에 가 가지고 꼬랑뎅이를 물에 폭 담궜다가 뗐다 하면서 그때 알스는 것이오. 알은 슬어서 부화되기 전의 것은 물에서 살아 가지고 부화 될 때가 되면 이제 잠자리가 되고 난 다음에 물속에 들어가면 그만 죽어.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미중생자로서 이렇게 살다가 벌써 저 위에서 택함에서부터 다르게 쭉 나오다가 때가 되면 중생해. 중생되고 난 다음에는 과거에 살던 불택자의 생활하면 안 된다 그거요.
그것을 가리켜서 베드로가 중생되기 전에는 어부에 일등 어부이지만 중생되고 난 다음에 이제 어부 생활 가니까 밤새껏 일해도 하나도 얻지 못했오. 이라니까, 예수님께서 '너는 그 생활하면 안 돼. 내게 복종하는 생활해야 되지 복종하는 거 외에는 네게 성공이 없어' 이렇게 설교하시고 난 다음에 '너 저 깊은 데 가 가지고 그물 던져라' 이라니까 실컷 복종하라 소리를 설교를 들었으니까 복종 안 할 수는 없고 떡 말하기를 '히. 참 복종하라고 설교는 내치 해 놨지만 이런 건 참 복종한다는 것이 이거는 말도 아니다. 밤에 고기가 나오지 낮에는 저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데 뭐 고기가 있을 것이며, 하필 또 깊은 데 가면 고기 많을 줄 알고 깊은 데 그물 던지라 하네. 주님이 이런 데 대해선 무식하다' 이라면서 '우리 이치에는 안 맞습니다만 선생님 말씀하시니까 한번 던져 보지요' 이라고 떡 던졌다 말이오. 던져 가지고 이래 떡 내어 보니까 뭐 그들이 들어 올리지 못할 만치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이러니까, 금방 자기 마음 가진 걸 자기 양심이 안다 그말이오. '이놈아, 네가 좀 전에 그물 던지라 할 때 이런 네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자가 아니냐? 던져 보니까 어떠냐?' 이러니까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는 전부가 삐뚤어진 자입니다. 지식이 모두 삐뚤어진 자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주님을 모실 수가 없는 자입니다.' 이럴 때에 주님이 위로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 이제는 지금 깨달은 그 깨달음을 가지고 살면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사람을 취하는 사람 수입보는 자가 되리라. 나를 따라라' 그라니까 이제 잡았던 고기고 배고 그물이고 다 집어던져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옳은 것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세상을 버리지 안할 자가 없습니다. 보석 반지를 발견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이 구리로 만든 반지를 낄 자가 누가 있습니까? '이 둘 중에 어느 거 할래? 이 보석 반지 낄래 이걸 낄래?' 보석 반지 얼른 바꿔 낄 것 아니겠소? 보석 반지를 몰라 그렇고 가지지 못해 그렇지. 그와 마찬가지로 하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세상에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화를 발견하고 진주를 발견한 자가 보화 진주의 가치를 깨달은 자는 자기 있는 소유를 다 팔아 가지고 그것을 산 것과 같다 천국은 이와 같다, 예수 안에 있는 참 이 구원을 깨닫고 보면. 깨닫고 보면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을 이 구원 위해서 투자 안 할 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알아야 돼! 새벽 기도를 나와서 알아야 되지 모르고 뭘 믿습니까? 자.
어제 아침에 새벽기도 안 나왔다가 오늘 아침에 새벽기도 나온 사람 손들어 봐요. 정직하게 들어 봐요. 정직하게 들어 봐요. 어정 어정 하지말고. 더 들어.
저 뒤에 많을 건데. 이뿐 아닌데. 정직해야 돼. 아, 어제 아침에 안 나왔다가 오늘 아침에 나온 사람 손들어 봐요, 정직하게. 그래. 손 놔요. 안 나오면 뭐 배우겠소? 배워야 알고 들어야 알지, 성경 만 가지고는 모르기 때문에 엉뚱한 짓을 하고 있지. 새벽기도 꼭 나와야 됩니다.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이 그 사람이 앞으로 뭐 순교를 한다고, 앞으로 공산주의가 온다든지 그래 안 하면 우리 국내에 뭐 단군 신사가 올란지 뭐이 올란지 모르는데 신사 참배를 이긴다든지 그런 것은 도무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오. 모르는데 뭘 승리하겠습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