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2 14:25
비용을 계산하라
1980. 7. 16. 수새
본문 : 누가복음 14장 28절 - 30절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이는 비유의 말씀인데, 성공하기에는 어떠한 애로점과 또 어떠한 자원이 드는 것인데 그것도 계산 안 하고 덜퍽 시작하고 날뛰는 사람은 시작할 때는 같이 시작했지마는 뒤에는 수치 당할 것을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이 비유에서 깨달을 것 하나는 다 예수님 믿기는 같이 믿지마는 영원한 수치와 영광이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표시한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세상 성공으로 영광, 실패로 수치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지마는 이 비유로 가르친 것은 우리의 구원을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성공한 구원이 있고, 시작은 했지마는 실패한 구원도 있으니 그 수치와 영광은 영원합니다.
여기 말하지 안했소? '능히 이루지 못 하면 모든 사람에게 비웃음을 받는다' 모든 사람에게 비웃음을 받는데, 하늘나라도 이러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 믿지마는 하나는 존영한 그런 종류의 것이 있고, 아주 남에게 비웃음거리를 받는, 누가 비웃음을 해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 제가 다른 사람이 비웃는 그런 감을 느끼고 불 가운데 구원 얻는 것 같으리라 수치를 당하는 것, 하늘나라에 이 차이가 무한히 있다는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그 뭐 차이가 뭘로 말했느냐? 세상에 있는 모래알 한 개의 가치와 저 하늘에 있는 태양 한 개의 가치가 얼마나 차이있느냐? 그와 같이 부활은 했지마는 영광의 차이는 그렇게 크다. 성경에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이랬는데 유명한 정통 중에 정통인 학자들이 하늘나라의 구원의 영광과 존귀와 차가 있다. 차이가 있다 한다고 그것을 이단으로 정죄한 그런 이 세상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일에 대해서 우리도 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그만 관심을 여기에 대해서 가지지 안 하기 쉽다 그말이오. 요 옆에 어떤 교회서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됐습니다. 제가 여기 처음에 여기에 왔을 때에 신학교 학생들과 고려 성경학교 학생들이 새벽이 되면 자기 학교에서 예배를 보지 않고 전부 이리 달려오니까, 그때에 하나 충격이 되어서 또 정죄하는 것 중에 한 것은 그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학교에서 그러는 사람 퇴학을 시킨다까지 했습니다. 왜? 여기서 나도 그때 속해 가지고 있을 때, 속해 가지고 있을 때인데 여 가서 은혜가 되니까 오는데 그렇게 막았으니까 그게 소방대 노릇을 하고 은혜를 가로막았으니까 눈이 밝은 사람들은 그게 어찌 되느냐? 뒤를 보면 환하게 볼 수 있을 것인데 다 깨져 버렸소. 있었는데도 눈이 어두워 깨닫지 못 하는 사람은 깨닫지 못 합니다.
그때 있는 여기 교인들은 알 것이오. 그래 가지고 학교에서 퇴학을 시켰습니다.
정학을 시켰습니다. 이렇게 강하게 막아도, 그래도 오겠다고 그렇게 하는 학생 좀 있다가 마지막에는 그래도 네가 진리냐 학교 공부냐? 할 때에 둘 중에 공부다 크다고 생각하고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옆에서 어떤 교회 장로 장립할 때에 설교하는 분이 옆에 어떤 교회 조사는 하늘나라에 구원 얻은 자의 그 영광과 존귀와 가치도 차이가 있다고 있는데 하늘나라도 차이가 있으면 시비가 있고 시기가 있을 것 아닌가 하는 이단이라고 그때 정죄하는 그런 말이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나한테 말해서 즉시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깨달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 데는 조금도 손해는 안 보고 더 굳게 섰고 그분들에 대해서 원망하는 것도 그때 철이 없어, 어려서 약간 했고 또 위해서 기도했고 했습니다. 지금은 그게 없어요. 지금은 아마 다 그런 말들을 하지 아니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성령이 역사하기 때문에 어느 구석에 한 군데서라도 역사하면 그 성령이 사람이 외쳤으면 외친 말을 귓속에 대고 한 말이 지붕에서 외치리라 그말은 널리 전파되리라 그 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한 사람들 통해서 영감이 역사가 있으면 그것이 사람으로 전달이 안 되어도 영감이, 그 사람이 증거했기 때문에 어데든지 가서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준공하지 못 하면 다른 사람이 비웃어 가로되 비웃으니까 수치 아닙니까? 이 사람이 준공하지 못 했다.
그렇게 하리라. 이 비유에서 우리가 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마는 첫째로 껍데기로 알 것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출발할 때에는 다 같지마는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으로서 하나는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면서 존대하고 하나는 비웃는다.
하늘나라도 영원한 차이점도 있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미련한 우리들이기 때문에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어제 어떤 교회서 와 가지고 말하기를 이제 교역자가 왔는데 그분이 이동이 될 분인데 교회가 이제 새로워지고 은혜가 되어지니까 슬그머니 유임 운동 그런 것을 했습니다. 내가 볼 때에는 근심입니다. 왜? 그 교회를 바로 하려고 하는 거기에 대적들이 한없이 있는데 그들이 다 좋아하는 것 보니까 가서 가르치는 사람과 그 사람과 조화를 해 보니까 환하게 알 수 있다 말이오.
너희 모두 허리끈 끌러 놓고 너희 좋도록 다 하니까, 그래. 너희가 은혜되고 만족한다 하지. 이러니까 한마디가 튀어 나왔습니다. 뭐 과거에 잘못한 것 그런 것을 말하니까 그만 찬물 끼어 흩은 모양으로 싸늘해지고 그만 분위기가 그렇더니마는 또 그걸 마니까 그만 은혜가 돼. 너희는 책망 안 하고 칭찬만 하면 다 좋아지지 너희는 책망을 하고 죽어야 될 너희다. 죽어야 될 너희.
지금 예수 믿는 게 순전히 인본이기 때문에 이게 죽어야 된다. 내가 이렇게 말해서 보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 인본주의, 신본주의, 인본주의는 멸망이오. 기본 구원은 있지마는 건설 구원은 헛일입니다. 인본주의는 멸망이요 신본주의는 구원입니다. 신본주의라 말은 하나님을 위주로, 근본으로 하는 것이고, 인본주의는 하나님보다 인간을 생각해서 하는 그것이 인본입니다.
또 육신주의, 영주의, 세상주의, 천국주의, 천국주의는 구원, 세상주의는 멸망, 자기 영주의는 구원, 이 고깃덩어리 위주로 하는 것은 멸망, 신앙주의는 구원, 도덕주의, 사회주의, 유물주의, 정치주의, 혈육주의, 정실주의는 다 멸망, 우리가 이것을 단단히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앉아서 그 비용이 얼마나 들 건가? 예산을 해 가지고 모자라면 비용을 마련해 가지고 공사를 시작해야 되지 마련치 않고 시작했다가는 헛일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이 구원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예산을 대야 됩니까? 예산은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가 모진 병이 듭니다. 모진 병이 와 가지고 우리를 그만 아주 모진 만신창의 병신을 만듭니다. 그래도 실패되지 안 할 수 있는 고 자원이 있어야 됩니다. 그 사상이 있어야 되고, 그 방편이, 그 주의가 있어야 됩니다. 세상 것이야 암만 위대하다 해도 중공에 권력자가 누구입니까? 그 죽은 사람 모택동입니까? 아! 그 사람 그러더니마는 딱 그만 죽음이 딱 와 버리니까 그만 그 정권 다 내 놓고 소용없네요. 모진 질병이 와도 질병이 나를, 질병이 나를 성공케만 하지 질병이 나를 해할 수 없는 그런 방편과 자원을 가져야 되겠고, 죽음이 와 가지고 죽인다 해도 그 죽음으로 인해서 성공하고 죽음으로 인해서 손해를 안 볼 수 있는 그런 실력이 있어야 되겠고, 방편이 있어야 되겠고, 또 장기간의 고문과 고행을 고문을 주고 고행을 주고 마구 이래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은 못 먹고산다 이래 가지고 매매하는 일 못 하게 경제를 바싹 쪼아서 밥을 굶겨서 이제는 굶어 죽습니다. 굶어 죽게 됩니다.
이러다가 밥에다가 소금을 마구 많이 섞어 가지고 소금 뭉텅이를 해 가지고 주니까 그래도 배가 고프니까 이것 먹고 이러고 나니까 굶었다가 밥 먹으면 물이 어떻게 그리 쓰이든지 굉장히 쓰입니다. 단식 기도 해 본 사람은 압니다. 물이 많이 쓰인다고 갈급합니다. 물을 딱 앞에 딱 떠다 놓고 예수 내 놓으면 물 줄 거고 그리 안 하면 안 준다. 이거 와도 굶기고 소금 밥을 해 먹어도 굶겨 죽여도 굶겨 죽이는 그것이 내 성공을 하는 데에 좋은 자본이 되고 성공을, 성공되게 하지 나를 실패되게 할 수가 없고 전쟁이 나도 또 이다음에 부활이 와도 그 부활이 나를 도왔지 내 성공을 실패치 못 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심판이 와 가지고 모든 것을 심판합니다.
그 심판이 와도 내 구원을 도와서 칭찬, 영광, 존귀가 되어졌지. 그 심판이 나를 털끝만치도 건드릴 수 없는 이런 방편을 가져야 되겠고, 자원을 가져야 되겠고, 영원무궁 억천만 년 가 살고 영원무궁히 영원무궁한 세월을 살아도 그것이 나를 더 성공케 하고 존영케 하지 나에게 추호도 손해를 보일 수 없는 요런 방편, 이런 실력, 이런 욕망, 이런 사상, 이것이 준공할 수 있는 비용인데 세상에 이런 것이 있습니까? 세상에 이런 것이 있습니까? 예수 밖에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만 이런 것이 있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예수 밖에 병만 와도 바싹 부서질 그런 실력, 그런 성공, 그런 욕망, 그런 능력, 죽음이 오면 싹 재도 하나 없어지고 부스러기 하나도 남아 있지 안 할 수 있는 그런 실력, 그런 방편, 그런 욕망, 그런 성공, 이것은 우리 성공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성공이 아니오.
그러기에 믿음의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겠습니까? 역사 세상에 없었던 일도 있을지 모르고 있던 그런 것도 내게 다 닥칠지 모르니 세상에 죽음이 와도 환난이 와도, 곤고가 와도, 매장이 와도, 굶는 게 와도, 고문과 고행이 와도, 부활이 와도, 심판이 와도, 무궁세계가 와도, 꿈쩍없는 이런 실력으로 이런 가치로 이런 건설로 이런 욕망으로 이런 방편으로 살려고, 그러기에 '현재 내 형편이 요래 가지고 있으니 요 형편이 변하지 않고 요대로 살다가 세상 뜨게 해 주옵소서' 그런 망령된 기도 안 합니다. 내 등 따시고 배부른 요 형편, 사정, 요것 변동없이 요대로 변함없이 살다가 죽으면 좋겠다.
그 어리석고 미련한 자요.
'주여 동남풍이 불든지 서남풍이 불든지 세상에 왔던 어떤 종류의 것이라도 다 내게 부딪히게 하시고 다 부딪히되 그런 것으로 인해서 손해 보지 안 할 수 있는 그런 것에게 꺾어지지 안 할 수 있는 그런 것으로 인해서 멸해지지 안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능가하고 남음이 무한히 있는 이런 실력으로 이런 방편으로 세상을 꿰뚫은 영원무궁의 소망으로 나에게 채워 주시옵소서' 이것은 예수님으로 인해서만 오는 것이지 달리는 오는 게 없습니다.
이것은 뭐이요? 이것은 막바로 진리가 주는 것이요 하나님이 주는 것입니다. 딴 게 하나도 없어. 예수님께서 이 자본 가지고 성공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으로 가난해지고 옷 한 벌도 가지지 못 하시고 멸시 천대 창으로 찔려서 그렇게 조롱받아 저주의 사망을 당했지마는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나는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방편이요 우리의 성공입니다.
그러기에 어제 교인이 와서 말하기 때문에 나한테 와. 나 앞에 오니까 말을 못 합니다. 없어질 것 생각지 말고 이런 저런 우리가 구름 같은 간증자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바꿔지고 모든 것이 변해지는데 그때도 없어지지 아니할 것, 피조물이 다 없앨래야 없애지 못 하고 창조주도 없앨래야 없애지 못 하고 피조물도 창조주도 다 없어서는 안 되겠다고 높이 평가해서 환영할 수 있는 그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그것을 목표하십시오. '그것을 목표하는 데에 은혜가 되고 좋습디까?' 이러니까 그때사 정신 차려 가지고 엉뚱한 소리를 해. 뭐 어떻고 내나 땅의 소리를 해. '정신 차려야 돼' 하고 보냈습니다.
사람들이 다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사를 시작할 때에 그 준공하기에 비용이 족할는지 앉아서 예산하지 않겠느냐? 네가 이 신앙 생활하는 이 금주의 구원이라 하는 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데에 어떤 방해, 어떤 애로, 어떤 멸망, 어떤 침노, 어떤 정죄, 어떤 비판, 어떤 평가, 어떤 호소, 어떤 송사, 네게 대해서 마구 물밀듯이 송사가 들어올 터인데 아무리 들어와도 너희가 정죄 받을 것이 없어야 되지. 해 받을 것이 없어야 되지.
이러니까 그 어떤 애로가 있을는지 거기에를 충족할 만한 비용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네가 기억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런고로 우리의 자원은 하나님이 나를 대신해서 해 주시는 하나님이 나의 자원이 되고, 하나님이 내 중보자가 되는 하나님이 내 뿌리가 되는 예수님이 내 포도나무의 뿌리 둥치 되는 것처럼 하나님이 내 자원이 되는 진리가 내 방편이 되는 모든 피조물과 악령과 죄악과 사망과 저주보다 능가된 그런 것들을 다 이기고 남을 수 있는 이것이라야 됩니다. 이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그 말은 우리 현실에서 자꾸 요 현실을 나로 살까 하나님으로 살까? 요것 연습이오. 나로 한번도 안 살아 본 자는 갑자기 제가 말로야 하나님으로 살고 싶다고 됩니까? 자기로 살 수 있는 현실에 너로 살래? 하나님으로 살래? 네 욕심으로 살래? 하나님의 욕심으로 살래? 내 뜻대로 살래? 하나님의 뜻대로 살래? 네 마음대로 살래? 하나님 시키는 대로 살래? 고 연습입니다. 고 연습이오. 요것 연습이 숙달되어서 졸면 안돼. 저 뭐고 브라질에서 온 그 조네. 못 알아들으면 헛일이오. 알아들어야 되지 졸면 안 돼.
어떤 세상에 있는 그런 애로와 마찰과 대적과 방해 그런 것이 있어도 하나님이면 다 돼 버립니다. 그렇지 않소? 하나님을 이길 자가 어디 있소?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을 누가 방해하겠소? 이러니까 하나님의 뜻으로 내 뜻 삼는 고거 연습이 딱 됐으니까 어떤 나도 세상이 다 달려들어도 하나님의 뜻으로 내 뜻 삼는 고게 내 생활이요 내 주장이요 내 생활이기 때문에 세상이 대적할 때에 하나님의 뜻으로 내 뜻을 딱 삼았으니까 그 싸움은 누구하고 싸우는 싸움이요 하나님의 뜻하고 세상 뜻하고 싸우는 싸움이오? 하나님이 집니까? 자기로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서 자기가 되어서 살도록 요 연습을 했으니까 세상이 다 달려들어도 나하고 달려들면 그까짓 것 그 사람들이 만 분의 일도 안 되지 내가 연습하기를 언제든지 내 현실에는 하나님이 오셔 가지고 하나님이 내 대신 살도록 요 연습을 딱 해놨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세상이 다들 그래도 내가 달려들지 안 하고 나는 앞에만 섰지 하나님이 그것을 대인해 가지고 싸우고 그래 놓으니까 결국은 나를 대적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고, 내 주장을 반대하는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의 주장을 반대하는 것이 되어지지 나하고 싸우는 것이 하나님하고 싸우는 것이 되어지고 이러니까 내가 이긴 게 아니라 하나님으로 이기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니고는 안 되기 때문에 요 현실 현실에서 자기가 사는데 자기로 살지 아니하고, 자기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 사는 요 일을 연습해 가지고 숙달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조물이 볼 때에는 난 줄 보지마는 피조물이 볼 때에는 나로 보지마는 속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에 피조물 그까짓 것들이 아무리 달려들어 봤자 상관이 없다 이거요. 요것을 하는 방편을 가리켜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을 인하여 사는 연습을 하라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나이 많아 가면서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나이 많아 가면서 자기로 사는 것, 자기로 주장하는 것, 이것이 늘어놓으면 그거야 뭐 남에게 현저히 거리끼든지 말든지 하나님에게 거리끼든지 말든지 제 마음대로 제 주장대로 제 고집대로 제 성질대로 제 뜻대로 이렇게 퍽퍽 하는 그것만 성장되면 비참하고 가련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자기와 바꾸는 것이오. 자기 뜻과 하나님 뜻과 바꾸는 것이오. 자기 소욕과 하나님의 소욕과 바꾸는 것이오. 자기 성질과 하나님의 성질과 바꾸는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자기는 자기인데, 자기의 기능이라든지 자기의 움직임이라는 모든 것, 자기의 속성이라는 모든 것, 그거는 완전히 자기가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것으로 자기 것이 됐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세상 왕노릇 할 수 있고, 무궁세계의 왕노릇 할 수 있고, 이것은 모든 것의 시은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생활이오. 이런데 세상 사람들과 같이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자기 소원, 자기 목적, 그것 성공하도록 애를 쓰는데 참으로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목적, 자기 소원, 그것을 죽여서 비추어 나오지도 못 하게 하려고 애를 쓰는데 예수 믿는 자들 쳐놓고 어떤 자는 이것 성공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것 성공하려면 세상에 속한 사람이오. 하나님까지 이용해 먹으려면 그런 것 성공해 뭐 하나, 어리석지를 맙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