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5 18:18
구원의 길은 회개뿐
본문 : 누가복음 13장 1절-9절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오늘은 또 서울에 있는 우리 교회의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오셔서 이 말씀을 봉독하는 이 연고를 말하지 아니할 수 없어 간단하게 말합니다. 20일날 새벽 l시에 제가 기도하는 중에 강하게 이 말씀이 와서 나는 그런 일을 만난 것이 이 근경에는 없었는데, 일 년전 예배당이 불탈 것이라는 그런 것을 제가 느껴서 이 서부예배당에서는 경비원들이 약간 있어 지켜 나왔습니다. 한 십개월 후에 대구와 서울에 예배당과 그 부속 건물들이 불타는 것을 그때 보고 교인들이 조금 이해는 했지마는 공연한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교인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경비할 때에 날이 너무 추워서 경비원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실로암 탑에 대한 것을 제게 들리고 이래서, 이상해서 좀 이상스럽게만 생각해 가지고 이 성구를 찾아 볼려고 평소에 제가 누가복음 l3장에 있는 줄 알기 때문에 l3장을 찾아 가지고 다시 읽어 볼려고 찾았지마는 내 눈이 가리워져서 보이지 안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보이지 안하니까 그때에 내 마음은 더 이상하게도 고민스럽고 심각해져서 더 두려움이 생겨져 이거 무슨 일인가 해서 생각할 때에 예배당이 불탄 이것은 예배당이 불타지 안하도록 파수 할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남한에 있는 교회가 전멸된다는, 불로 전멸된다는 것을 연상해서 생각하라는 하나의 하나님의 징조로 보이신 것이라 하는 것을 마음에 심각하게 느끼고 그 이튿날 새벽에 교인들에게 이 소식을 빨리 전하려고 하다가, 아무래도 주일 오전에 모였을 때 전하는 것이 옳다 해서 오전까지 미루어 가지고 23일 주일날 이 말씀을 봉독했고, 그 뒤에 오늘까지 계속해서 이 말씀을 주일학교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들에게 계속 증거하고 있습니다.
뭐 이 말씀의 그 뜻은 무한하지만 우리가 깨달은 대로는 별 기이한 해석도 있는 게 아니고 항상 그 말씀만 자꾸 이렇게 전달하니까, 소식 전하듯이 전하니까 벌써 교인들이 권태를 낼 때가 됐고, 또 너무 매주 주일, 새벽, 삼일, 오일 자꾸 이 말씀만 하니까 듣기에 이제 거북하게 됐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이 본문을 읽고 증거하는데 오늘 주일로써 이 본문을 읽고 증거하는 일은 이제 끝이 날 것입니다. 뒤에는 다시 이 본문을 계속해서 읽지 아니하고 뒤에 하나님이 일반 성경적으로 주시는 것으로 읽지 그렇게는 읽지 안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9절로 30절까지에 보면 이스라엘 말년에 화 받을 징조 중에 하나는 그들이 의인과 선지자들의 무덤을 수축하고 비를 해 세우면서 '이런 선지자들을 죽일 그때에 우리가 있었다고 하면 우리는 이런 죄에 참예하지를 안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너희들이 비석 만들고 의인의 무덤들을 수축하는 그것이 너희들이 화 받을 원인이다. 다른 시대에 회개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땅 하다고 인정하면서 자기에게 회개하라는 말씀은 듣지 안하는 그게 너희들의 멸망의 원인이다. 모든 선지자의 근본되시는 대선지 예수님께서 오셔서 친히 말씀하고 계시는데 전체가 예수님의 교훈에 대적이 돼서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할 너희들이 선지자와 의인의 무덤을 수축하면서 우리가 그 당시 있었으면 우리는 그런 악행에 참예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희들 고것을 회개치 안하는 것이 멸망의 원인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24장 l절로 2절에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선생님 우리 예루살렘 성전이 얼마나 아름답게 지어졌는지 한번 구경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성전 외모만 보지 이 성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는 너희들이 보지 못한다. 또 이 성전을 향하여 소망을 가진 온 이스라엘과 이 성전이 어떻게 비참하게 그 결과도 너희들이 보지 못한다. 그 결과는 돌 위에 돌 하나도 첩 놓이지 아니하고 다 파괴와 멸망을 받을 것이다.' 하는 것을 주님이 마태복음 24장 l절과 2절에 말씀을 했습니다.
또 요한계시 l l장 9절로 l2절에 보면은 두 증인이 회개에 대해서 많이 증거하고 이러니까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날마다 듣기 싫은 소리만 하니까 미워서 마지막에는 죽였습니다. 죽여 놓고 시체도 장례하지 못하게 하고 저희들끼리 예물을 보내고 기뻐하면서 '밤낮 우리를 괴롭게 해서 그저 무엇이든지 찝어 비틀트려 가지고 우리를 꼬집기만 하지 도무지 우리에게 위로나 기쁨의 말은 주지 안했다. 그 자가 죽었으니 이제는 평안하게 살겠다.' 하면서 예물을 나눴다 이랬습니다. 그러나 삼일 반 후에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그들에게 생기를 주어 살아나고 하늘로 올리워갔다 말했습니다.
과거 시대 시대도 보면 사람들이 자기 귀를 즐겁게 할 말을 찾아 다니고 좋아하고, 자기를 영원히 멸망으로 이끌고 있는 자기를 죽인, 영을 죽인,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자기-악령, 자기를 중심하는 그 걸 악령이라고 하고, 악성, 자기를 중심한 인간의 타락성을 악성이라고 하고, 악습, 자기를 중심해서 모든 행동한 것이 악습인데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만들어진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자기의 원수인 거짓 자기 이 자기를 좋게 하고 그자 원하는 대로, 그자는 하늘나라 보다 세상 나라를 원하게 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피조물을 중하게 상대하는 이 일을 하게 하는 이런 말은 다 듣기를 좋아하고, 자기에게 거슬린 말은 듣기를 싫어한다 디모데서에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말세가 점점 되어져 갈수록 세상을 위주로 하는 것이면 기쁘고 잠이 깨이고 흥미가 나고 일할 만한 가치와 재미가 있고, '세상을 하늘나라를 위하여 투자하라. 자기를 완전히 주님에게 바쳐 투자하라. 인간의 모든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에게 바쳐 종이 되라.' 하면은 다 듣기 싫어서 이렇게 다 죽여 매장시켜 버리는 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꼭 같습니다. 가인이 아벨의 그 교리와 신조가 거슬려서 그런 과오를 범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에게 이 성경을 이렇게 거듭거듭 보고, 아무래도 우리는 지금 시급하니까 회개 외에는 국방의 힘이 없고, 회개 외에는 피난 길이 없고, 회개 외에는 대적을 멸할 그런 방편이 없다는 것을 아무리 말해도 처음에 말할 때는 그럴 듯 듣지마는 두 번 말하면 싫고, 세 번 말하면 싫은 그것이 벌써 우리 속에 옛사람이 주장이 돼 가지고 있고 새사람이 일어서서 옛사람을 꺾어 새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그런 것이 없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주일에는, 이 본문에 있어서는 마지막으로, 과연 회개하라는 이 말씀이 이스라엘 말년에 선지자를 존경하면서 저희들에게 대해서 회개를 말하는 하나님의 일군들의 말은 듣기 싫어하는 그 시대의 패역과 같은 패역이 내게 있지 않느냐? 회개하라는 것을 예사롭게 듣는 그런 강퍅과 완패가 내게 있지 않느냐? 그것을 우리가 오늘 확정지워야 될 것입니다. '네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너를 시험해서 확정하라.' 네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확정해라. 네가 너를 확실히 정해라. 나는 이런 자라 하는 것을 확실히 정하라 하는 말씀같이 이걸 정해야 되겠고, 또 계시록 l l장에 있는 두 증인을 미워서 죽이는 거와 같이 이렇게 하나님이 회개하라는 이 음성을 듣기 싫어하는, 증거하는 사람이 얼마나 민든지, 죽였다고 하니까 얼마나 밉고야 죽였겠습니까? 그런 강퍅이….
회개하라는 조목 조목을 벌써 많이 말했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간추려서 스물을 말했고, 십 세명 있고, 십 계명을 간추려서 스물을 말 해서 하나님에게 대한 네 가지, 성경에 대해서 네 가지, 사람에 대한 네 가지, 모든 사건에 대한 네 가지, 물질에 대한 네 가지 스무 가지를 또 간추려서 하라 했고, 회개할 것을 조목조목이 마음의 믿음은 어떠며 몸의 믿음은 어떠며 하는 것을 계속해서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거게서 자기가 하나씩이라도 회개해서 고쳐갔으면 그 속에 회개하는 능력이 점점 강해질 것입니다. '하나님 의가 복음에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은 회개에서 회개로 점점 성장하고 전진되는 것을 가리켜 말씀합니다. 그런고로 이 시간에 우리가, 내 마음이 어떤가? 회개하라는 이 모든 조목을 들을 때에 내 마음이 어떤가….
성경에 대해서도 우리가 네 가지를 말씀을 했습니다. 성경은 어떤 학자라도 자기가 모든 독서 가운데에 성경 독서의 양이 제일 많아야 된다. 대단히 실행하기 어려운 소리입니다. 또 성경은 어데든지 가지고 다녀야 된다. 자기가 변소간에 가도 가지고 가고 목욕탕에도 가져 가고 언제든지 성경은 가져 가야 된다. 성경에 있는 것을 전적으로 다 믿어야 한다. 성경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살아야 된다 하는 것을 성경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네 가지는, 하나님만 제일 크고 높으신 이로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에게만 복종하고,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 기독교는 단일의 종교입니다. 하나님 한 분을 두려워함으로 여게 거지 눔뱅이가 있는 그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왜?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주인공이요, 그 사람에게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두려움으로 그 사람에게 대해서 지극히 작은 것 한 가지라도 벌로 할 수가 없는, 사건 한 가지도 그까짓 것 집어 던질려면 던지지마는 하나님이 두려워서 지극히 작은 사건 하나라도 두려움 없이 처단하지 못하는 것, 하나님 한 분을 두려워하는 것.
하나님 한 분을 사랑하라. 아무리 과거에는 용모가 예쁘니까 사랑 했고 자기에게 은혜 베푸니까 사랑했지마는 다 그것은 네 부모, 애비, 친척집을 떠나라는 신앙의 초보에서 다 끊고 이제는 주님 한 분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사랑함으로 원수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분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가족도 사랑하고, 부부도 사랑하고, 부모도 사랑하고, 이러니까 인간과 모든 것을 사랑하는 그 원인이 주님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주님이 변하지 안하고, 그게 어떻게 됐든지 주님이 내게 대해서 변하지 안했기 때문에 내가 그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 요동할 수가 없어.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아무리 내 남편이 위대하고 내 가족이, 부모가 어떻다 할지라도 주님이 그것을 통해서 나에게 은혜를 줘야 되지 오늘밤에 생명을 딱 불러 버리면 고만 자기의 배경이 당장 실체화 될 터이니까 울음으로 바꿔집니다. 그분이 개를 통하든지, 소를 통하든지, 인생을 통하든지, 자연을 통하든지 그것을 통해서 나에게 좋은 것을 해 주셔야 내가 받아 가질 수가 있지 그분이 주시지 않으시면, 중간의 도구 이용이야 하나님이 이것 저것 모든 것을 도구로 이용할 수 있지마는 그분이 안 주시면 헛일이다. 그분 한 분에게만 소망을 가지고, 또 내가 복종을 하되 모든 정계에도, 사회에도, 가정에도, 오만데 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에게 복종을 하되, 그로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명령하는 것이요 요구하는 것이요 교훈하는 것이라면 그분이 사람을 통했기 때문에, 그분이 공산주의를 통해서 나한테 하면, 공산주의가 할 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에 위반됨이 없으면 거기에도 복종하고,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에서 복종하다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거기에 위반된 것을 말할 때에는 그 자리에서 생명을 다 뺏겨도 순종치 안하는 것, 단일 순종, 주님 한 분에게만 순종하는 단일 순종.
인생을 하나님 보지 안하고 사람만 너 잘났다 못났다, 인간 대 인간으로만 보고 판단했던 이 죄를 회개하고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과 사람을 같이 둘이 하나인 줄을 알고 내가 상대를 하고, 또 사람을 내 몸 같이 사랑하지 못한 이 죄를 회개를 하고, 사람에게 조심하지 안한 죄를 회개하고, 사람에게 겸손치 안한 이 죄를 회개하는, 사람에게 대해서….
사건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크고 작은 무슨 일이든지 피조물 인간과 의논하는 것보다 주님으로 더불어 주님 한 분과 의논을 하고, 그분의 판단만을 받아서 나는 그 판단을 따라서 나는 판단하고, 어떤 일이라도 그분 한 분만 그 사건 지도의 지도자로 받아서 그분 이 지도하는 그대로, 그 사건에 돕는 것도 천인 만인을 통해서 도울지라도 돕는 그분이시니 그분 한 분에게만 도움을 받고, 물질도 그분이 주시는 것만 받아 가지고, 죄를 지어서 가지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주시는 것만 받아 가지고, 그분이 보관하라는 것만 보관하고, 저축주의로 살지 말고 그분이 보관하라는 것만 보관하고, 그분이 쓰라는 것만 쓰고, 그분이 다른 사람에게 주라는 것만 주고,
요 간추려서 스무 가지 말한 것도 성경에 다 들었으니 고것을 하나씩 거머쥐고 실천을 하면 여러분들이 다 생활이 변해질 것이고 분명히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함께하시는 그 경험과 체험이 생겨질 터인데, 주님이 주시는 담대와 평강이 여러분들 속에 벌써 시작되고 움싹이 트고 이루어질 터인데 그게 어느 정도 있는지 나는 의문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외치는데, 과거에 왜정 말년이든지 6·25때든지 조사해 보면 의논한 것같이 강단에서 같은 설교들을 했습니다. 반드시 그 일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회개를 외쳤습니다. 회개를 외친, 같은 설교를 한 그 교회 들은 왜정 말년에도 다 승리했습니다. 신사참배 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6·25 때도 그 인민군 속에서 부흥회하고 강하게 그들을 대적하고 싸워서 이겨 나왔었습니다.
그러나 땅의 것만 보고, 마치 새를 잡는 새덥치기 새가 제 앞에 있는 작은 새 잡을 줄만 알지 제 뒤에 포수가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은 모르는 것처럼, 이렇게 깜깜하게 세상 현실에서 무엇이 되는 이것만 생각하고 하나님이 꽝 거리면 그만인데, 노아 홍수 때에 수 많은 네피림들이 있었지마는 그것이 어느 효력이 있었습니까? 노아의 방주 만든 것이 상선으로, 연락선으로, 군함으로 소용됐습니까? 아니오.
하나님이 멸망시켜 피조물이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피조물로서는 아무 효력이 없는,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그 멸망을 피하게 하는 것이 노아 방주입니다. 오늘도 신앙 생활이 나 회개하는 것이, 그것이 두고 갈 이 세상을 건설하는데에 하는 하나님의 복음의 회개 생활 아닙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하나님만 이 구출하고,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모든 멸망에도 멸망치 안하고 피할 수 있는 그 길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가 회개와 신앙으로 마련하는 길들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엘서 l장 2절로 4절에 보면 노인들아 다 이 말을 들으라. 땅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들도 듣고 너희 자손도 듣고 자손은 또 후손에게 전하고 후손은 그 후손에 대대로 전하라. 이 말이 제일 들어야 할 중요한 말이다 이 말씀을 엿대서 2월 23일인가 3월 l일 주일인가 이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요엘서는 보면 무슨 죄가 있으니까 회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원리 원칙을 말했습니다.
대대토록, 제일 처음에 노인들아 이 말을 들으라 그 말은 역사가 깊어 갈수록 문화는 높아갑니다. 인간들이 해 놓은 말도 많아지고 통계도 많아집니다. 땅 위에 있는 문화 건설의 수많은 역사와 통계를 네가 통달하면 그것 가지고 될 줄로 알아도 그것은 몰라도 되고, 알면 잘 이용하면 좋고,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이나 피조물이 망하고 망하고 그루터기도 없이 전멸하는, 팟종이가 멸하고 남은 것은 메뚜기, 메뚜기가 멸하고 남은 것은 늣이, 늣이 멸하고 남은 것은 황충이' 이것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전멸하는 전멸이 내 손에 있다. 전멸하는 전멸의 능력이 내 손에 있다.
네가 인생, 과학 다 몰라도, 세상 지식 다 몰라도, 수 많은 그 지식을 통달하지 못해도 인간을 전멸시키는 전멸의 능력이 우리 주님 한 분에게 있다. 이 멸망은 이십 세기의 과학이 암만 뭉쳐서 해봐도 그까짓 것 가지고는 안 된다. 노아 홍수 때와 같다. 노아 홍수에 과학이 말했느냐, 영웅들이 말했느냐, 위대한 정치가들이 말했느냐, 무슨 사상가나 도덕가가 말했느냐? 안 된다. 하나님이 방주 만들으라는,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인도하시는 고대로 따른, 모든 사람에게 조롱거리이지마는 고거 하나만이 홍수 멸망을 벗어났다.
그런고로 모든 멸망이 나 하나의 장중에 있다. 이 멸망은 다른 길은 피하는 길이 없다. 제사장도, 소년들도, 젖먹이도, 모든 백성들도 다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멸망은 하나님이 교훈하시고 명령하시고 요구하신 그 법칙에 위배된 그것을 고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에 맞도록 하는 것 그 외에는 피난하는 길이 없다.
'신랑도 신부도 골방에서 나오라' 이 말은 어떤 깊은 재미에 빠진 자, 어떤 귀골에 빠진 자, 어떤 어려운, 깊은 세상 재미에 빠진 자도 다 나오라. 너희 가정이라면 가정의 어른부터 어린아이까지 낱낱이 모여 가지고 회개하라. 이래 가지고 공회를 선포하고,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금식하면서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서 회개하라. 하나님의 교회의, 여호와에게 수종드는 자들이나 제사장들은 제단 사이에서 밤이 맞도록 누워서 구불면서 통곡하면서 회개하라.
모든 백성과 제사장들과 여호와에게 수종드는 사람들이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애통하면서 회개를 할 때에, 제사장들이 주여 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어떻게 저들을,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이 어데 있노 욕하고 하나님 없다고 하나님 섬기는 것을 조롱하고 비방하고 멸시하는 그들에게 하나님 백성들을 붙여 가지고 그들로 하여금 보라 하나님 어데 있나 하는 그런 잘못과 소리를 할 수 있도 록 그래 두시렵니까?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면서 회개를, 주님에게 만족되도록 회개를 하면 주님이 마음을 돌이켜서 그 마음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분개하던 그 뜨거운 마음이 이스라엘을 동정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바꾸어져 가지고 '너희들에게 사업에 재앙이 내렸고, 의식에 재앙이 내렸고, 모든 쾌락에 재앙이 내렀고,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는 감사의 재앙이 내렸고, 인간이 적이 돼 가지고 전멸시키는 재앙이 내렀지마는 다 제거하고 모든 군대를 동해로 서해로 다 몰살시켜서 바다에서 악취가 오도록 너희를 때리는 몽둥이로 썼던 이 몽둥이를 완전히 분질러 버리겠다. 그리고 너희들에게 회개치 아니함으로 내렸던 재앙의 해 수를 계산해서 십 배를 주든지 백 배를 주든지, 너희들이 회개하고 요동치 안하면 너희들에게 만 가지의 축복을 주시겠다.' 하는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선포한 것인데, 요엘서는 예언서입니다. 구약 시대만이 아니고 대대손손 영원 후 대에 전하라 하는 것,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에 배치되면 망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에 일치되면 흥하는 이것은 영원히 불변하는 일입니다.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까지 이 법칙이 그대로 서 있을 것이고 영원 무궁도 이 법칙은 그대로 서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가 아무리 듣기 싫어도 회개를 합시다. 우리가 회개할 것은, 회개의 목표는 어디냐? 시편 9l편 l4절은 다 여러분들이 외우는 말씀이오. 이 말씀도 많이 증거를 했습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나를 안즉 내가 높이리라' 이 법칙이 변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4장 l2절로 l3절까지에 보면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깊은 우리가 아는 함정 모르는 함정, 아는 함정은 경제 함정에 빠졌다, 자기외 사업 함정에 빠졌다, 지위 함정에 빠졌다, 모든 행락의 함정에 빠졌다 이런 것은 알지마는 그까짓 함정은 안 믿는 사람들도 다 함정인 줄 압니다. 어제까지 행락이 충만했다가 오늘 그만 근심과 걱정으로 되어지면 그것 빠진 줄 압니다. 그것은 다 인생들이 땅에 속한 자도 아는 함정이오.
모르는 함정은 인간이 영원 무궁이 일시의 행락에 빠져서 멸하는 이거는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무궁한 세계를 준비하는 것이 오늘인데, 세상이라는 세상에 빠져 가지고, 살아 있는데 빠져 가지고 죽음을 모르고, 세상에 빠져 가지고 무궁 세계를 모르고, 보이는 인간들의 안면만 보고 여게 빠져 가지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그 안면이 어떤지….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말세가 되어갈수록 모든 사람이 사랑이 식어지리니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얻는다고 하니까 요사이는 마귀라는 놈은 이 성구를 들고서 사랑 운동에 열심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그건, 다 그것은 외웁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이래 가지고, 사랑의 경계가 없고 국경도 없고 이래 가지고 사랑이 제일이라 해 가지고 세계에 평화의 주장을 하고 노력을 하지마는 그 속에는 참 회칠한 무덤이요 독사의 독이 가득 찼습니다. 이것은 다 자기 중심의 것이기 때문에 둘이면 둘이 싸워서 파괴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주님을 사랑하라는 그 말을, 그 말이 인간들이 알도록 인간들에게 붙여서 입문을 말한 말씀이지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라. 또 하나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그런 말 다 한가지 말이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라 말이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라. 네가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라.
모든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 불법이 성함으로 사랑이 식어진다. 요새는 방송을 들어도, 설교를 들어도. 사회도 어데 모이면 '사랑, 사랑' 사랑이, 역사가 생긴 이후에 제일 사랑을 많이 말하고 사랑을 강조하는데 왜 사랑이 식어진다 말입니까? 요한 l서 4장 l0절에 보면 사랑은 여게 있으니 사랑은 하나님 한 분만 가진 것입니다. 인생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은 여게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독생자를 화목의 제물로 줬다고 이랬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하나님이, 영원 자존하신 지극히 크신 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신인 양성일위가 돼 가지고 대형으로 사죄, 대행으로 칭의, 대화친으로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받고 버리지 안하는 것이 사랑이 식어지지 안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정의가, 에덴동산 배암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 사람이 타락한 그때부터 생겨진 지식이 있으니 그 지식이 인간 지식이요, 타락한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특별계시로 주신 하나님의 지식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이런데 사랑을 귀한 줄 알고 마귀라는 놈이 이것으로써 하나님 백성들을 삼켜야 되겠다 하고 주장을 하기 때문에 마구 통으로 삼킵니다. 사랑은 인간에게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님 한 분만이 가진 하나뿐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 사랑이 있었고, 배암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이 해와와 아담 사이에 처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거는 배암의 사랑이오. 하나님의 사랑과 배암의 사랑을 구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뭐이냐?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대형해서 죄를 사해서 죄 없게 했으니 너는 죄가 없는 자이니까, 죄가 없는 자이니 다시는 죄 있는 자 되지 말고 죄 없는 자로 살아라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죽으심으로 대신 행하셔 가지고 의를 주셨으니 나는 하나님이 주신 이 의를 나는 놓지 않고 더럽히지 않겠다 생명을 줬으면 줬고 빼앗겼으면 빼앗겼지 하나님이 주신 의를 내놓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사랑이 식어지지 안하는 자요. 주님이 죽으심으로 원수된 것을 화친케 여겼으니까 이 화친을 놓지 안하고 자기의 모든 소유나 몸이나 어떤 생명의 어떤 위협이 오고 어떻게 올지라도 다른 것을 다 내줬으면 내줬지 예수님의 대속으로 하나님과 이제 모처럼 화친시켜 주신 이 하나님은 배반할 수 없다. 생명을 누가 빼앗아도 나는 하나님 배반할 수 없다.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게 상관 없다. 저가 나를 십자가에 못박고 고통을 주면 내가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는 것과 그의 계명을 어떻게 지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줄 것이지 딴 것은 보일 게 하나도 없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어데서든지 주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이게 인간의 말로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데서든지 죄짓지 않는 자로, 죄와 상관없는 자로, 어데서든지 의로운 자로, 어데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살면 그것이 인간의 모르는 함정에서 건져내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미개인이든지 상류 계급이든지 하류 계급이든지 가지 각색의 자기가 어떤 궁지에 빠졌든지 비참에 빠졌든지 인간이 빠진 궁지에서 벗어나는 길은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버리지 안하고 대속을 입은 자로만 계속해, 이 대속을 보존만 하고 있으면 대속을 벗지 안한 자를 피조물이 해하지 못합니다. 해할려고 때렸으면 영광이 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니까 이것이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점령하게 한 영광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불법이 성함으로 점점 인간 지식이 머리가 되고 하나님의 지식은 꼬리가 됩니다. 인간 지식을 그이의 인격과 생애와 사상 가운데에 하나님의 지식보다 앞세우고 크게 높이 여기고,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의 거기에 소속된 필요한 요소 중에 하나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 오늘 말세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선진국 같은 나라에서는 벌써 이십 세기의 과학으로 과학을 가지고 달에도 가고 별에도 가고 양 사방 다니는데 예수의 피로 무슨 구원 얻는다는 그건 그 케케묵은 소리를 한다고 멸시를 합니다. 인간 과학이 아무리 능해도 자존자 대주재이신 그의 법칙을 어긴 정죄에서 과학이 벗어나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가 있어야 되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는 지식도 폐하고 모든 것이 폐한다 했습니다. 모든 체질이 불에타서 녹아진다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랑의 정의를 똑똑히 알고 '저가 나를 사랑한즉' 우리의 목표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 말로 한 것이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받고 버리지 안하는 것입니다.
'증거하는 이는 성령과 물과 피니 이 셋은 하나라' 증거는 보증하는 것이라.
보증하는 것은 책임지는 것이라. 성령이 우리에게 영감시켜 주시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주님의 피공로가 대속한 요 증거를 요라면 된다 하는 요 세 가지, 또 하나가 셋이니까 다섯 가지, 이 증거를, 이 사실을, 이 구원 도리를 버리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책임집니다. 하나님이 진리를 가지고 영계와 물질계를 지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이 영계와 물질계를 창조하실 때에 그 시공의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은 지대하신 하나님이시요, 만물을 창조하신 그 능력인 진리가 보장하고 주님의 피의 공로가 보장을 하기 때문에 주를 사랑 하는 자 그 사랑을 버리지 안하는 자는 어떤 궁지에서도 솟아 나읍니다. 죽이지 못합니다.
우리가 향하여 가는 향방의 종착은 어떤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다 받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안하고 그 사랑을 받는 것, 그 사랑을 받아서 어떤 것에라도 빼앗기지 안하고 주지 안하고 그 사랑을 가지는 것, 이것만 가지면 하나님이 내 편 되셔서 도우시는데 인간이 나를 어떻게 하리요?
공산주의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없는 가운데 있게 하시고 약한 것을 강하게 하시는데 하필 공산주의를 강하게 해야 민주주의를 붙입니까, 민주주의를 강하게 해야 공산주의를 붙입니까? 아니오. 사람 눈에 강하고 약한 그것은 실은 하나님이 하시는 목적이 따로 있는 것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이 나라가 이 나라보다 강하다. 강할 때는 약한 그 나라에게, 강한 나라로 인해서 그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는 약한 처지 가련한 처지에 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 가까와져라, 회개하라, 그러면 내가 들어주겠다. 그러기에 가난에서 우리 구원있고 부요에서 교만하기 쉽습니다.
우리 처지가 세계적으로 지금 도마 위에 오른 고기와 같이 이렇게 위급해 있는 이것은 그들의 무력이 강해짐으로써 우리의 형편이 어려워졌다는 것 아니오. 그것은 하나님 볼 줄 모르고 보이는 것만 보는 그 사람들에게 '봐라 이 몽둥이가 이렇게 크니 너희를이 회개 안 하면 안 된다. 몽둥이가 지금 가까이 왔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로 인해서 회개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와 같이 하시는 것이지 그것이 강하고 약한 게 문제 없어. 약해도 하나님이 우리 버리시면 우리는 절단이요, 강해도 한가지요.
그런고로 무신론 국가들을 강성케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형편들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무신론주의 그들과 이름은 달랐지, 내나, 하나님 이름은 부르지마는 실상은 무신론주의라. '하나님, 하나님' 말하지마는 실상은 유물주의라. '봐라. 이거 회개 안 하면 무신론 유물주의에게 너희들 멸망 받는다.'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회개하기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이 안에 붙어 있습니다. 이렇지마는 삼 년이나 와도 열매 없으니까, 땅 파고 거름 많이 주는 것이 뭐이요? 환경과 주위를 이렇게 해서 기독자들이 강퍅하게 세상을 보고 나갈래야 나갈 수가 없고 '이제는 막다른 골목이니 회개 안할 수 없다.' 하는 요 경우로 몰아 넣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회개하면 돼.
어떤 사람들이 날래게 이 나라에서 이러니까 강대국에 의뢰를 하자 해가지고 뭐 우리 나라에서 지금 강대국으로 이민 갈려 하는 사람들, 전쟁 없는 곳체 이민 갈려 하는 사람들 심히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벌써 가 가지고 시민권 영주권 다 얻어 놓고 호주머니에 넣어 놓고 여기와서 꽝 거리면 날아간다 하고, 이러니까 그 사람들은 적화 통일이 돼도 아플 게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땅 위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자 하는 이런 것만 하지 회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제가 죽을 지경이라야 회개를 외치게 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안 됐다. 이래 둬서는 안 되니까, 그걸 피난처로 알고 있으니 그것도 피난처가 못 된다는 것을 해야 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또 회개하겠다' 해서, 이제는 소련을 강하게 해 가지고 세계에서 재일 위험하기를 첫째 위험이 미국이요, 둘째 위험이 한국이오. 과거에 월남과 그런 재판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를 이런 궁지에서 누가 건질 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성령의 감동대로,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친 이 법칙대로 틀리는 것 다 고치고 하나님과 나와의 올바른 관계를, 성경의 법도대로 올바른 관계를,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 참 사죄 입은 자로, 칭의 입은 자로, 하나님과 화친한, 동행하는 자로 이걸 양보하지 말고 사죄에서도 이것만 가지고 있어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겠느냐? 우리는 오늘은, 노아의 홍수가 시급해졌을 때에 뭐 먹을 것, 장가 가고 시집가는 것 마련하지마는 다 꿈꾸는 사람들이요, 몰라서 정신 없는 사람들이오. 그런 것은 주님이 '내가 너희들에게 있어야 될 것 인 줄 내가 다 안다' 이러니까 좀 굶을 요량하고 그분에게 맡겨놓고, 지금은 그분과 관계를 바로 맺는 이 회개가 제일 시급합니다.
제가, OO교회서 월간지 왔는데 OOO 목사님 출간한 설교를 보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서 한 그루터기를 남겨두지 안 했으면 우리도 소돔과 고모라 성과 같이 멸할 것이다' 이 성구를 가지고 계속 회개를 외치고 있는 그 페이지를 제가 읽고 마음에 흐뭇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단 강단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이 시기가 대단히 위급한 시기라는 것과, 이렇게 환경에서 몰아치는 것이 아무 데도 가지 말고 회개 하나로 모든 원수를 다 대항하고, 회개 하나로 피난처로 들어가라는 이 방편을 강단마다 모든 종들이 외치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을 긍휼히 여기는 증거라 하고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제가 산에서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고로 주님의 사랑을 받읍시다.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우리가 하나는 주님 아는 것이오. 주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입니다. 작은 자보다 큰자 의뢰하는 것이 정한 이치 아니오? 가난한 자보다 부자 의지하는 것이 정한 이치 아니오? 거짓 말쟁이보다 진실한 분 의지하는 것이 정한 이치 아니오? 무식한 자보다 유식한 자 의지하는 것이 더 정한 이치 아니오? 나를 꾀우고 해치는 자보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자를 의지하는 것이 정한 이치 아니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무엇이 누구만 못합니까? 무엇이 누구만 못합니까? 정말 우리 하나님만 믿습니까? 우리 하나님을 생존하신 하나님으로 믿습니까? 오늘 추상의 하나님, 하나의 상상의 하나님, 서적 중의 하나님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이름은 불렀지마는 벌써 그 사람의 생활에서는 하나님이 떠났고 죽은 하나님을 다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아는 이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 두 가지 하면 '내가 장수함으로 너를 만족케 하겠다' 했습니다. '내가 장수함으로, 시대가 변해도 나는 변하지 않는다. 세상을 떠나도 영원 무궁이 내게 있다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 철두 철미하게 회개합시다. 그저 회개 하십시오.
회개는 껍데기부터 해 들어가야 됩니다. 알맹이에서 되는 것 아니오. 회개하면 자꾸 회개할 것이 나와.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기에 도달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말하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그 일이 내게 나온다' 말하지 안했소? 우리를 성전이라 하지 안했습니까? 우리는 껍데기라 그 말이오. 우리 안에는 주님이 계신다 그 말이오. 주님의 말씀이 내 말 안에 주인이 되고 주님의 말씀이 내 말 안에서 내 입의 말로 나와야 되지. 내 기쁨 안에 주님의 기쁨이 내 안에 알맹이가 돼야 되지.
'너희들이 내가 이렇게 아버지께서 날 사랑한 것같이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한 것같이 너희들이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너희들에게 이 말을 해주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으로 충만케 하려 함이라' 주님은 우리의 주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전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껍데기입니다. 우리의 말 속에, 주님이 오셔서 우리 말 속에 주님은 주인되고 우리 말은 껍데기 되고, 우리의 기쁨은, 껍데기 되고 우리 기쁨안에 주심의 기쁨은 알맹이가 되고, 우리 입으로 판단하는 이 판단은 껍데기고 우리 판단 속에는 주님의 판단이 알맹이 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모든 것을 역사하여 내 언행 심사의 무엇의 알맹이가 되고 주님의 하시는 일이 우리의 언행 심사로 나타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할찌어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를 하나님께서 다 멸하시느니라' 그와 같이 너희들의 몸과 언행심사는 주님의 피로 값주고 샀으니 너희들의 몸과 그 언행 심사의 그 행위가 하나님의 성전이 안 되면, 하나님이 그 속에 알맹이 돼서 중심으로 역사하지 안하면 너희들이 다 멸망받는다 하는 것입니다. 간단해요. 무슨 해석을 붙일 것입니까? 해석을 못 붙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땅 위에 이 사람은 이 방편으로 세상 꿈꾸고 저 사람은 저 방편으로 꿈꾸는 것처럼 기독자는 기독자로서 하나님 이용 해 가지고 꿈꾸는 일하지 말고, 우리가 회개해서 당신과 관계를 바로 맺는 회개 외에는 없습니다. 회개, 우리는 회개 이것 가지고 원자탄도 대항하고, 회개 이것 가지고 공산주의 사상도 대항하고, 소련의 사회주의 사상도 대항하고, 무신론 사상, 유물주의 사상 다 대항해요, 그들에게 사로잡혀 있는, 이북과 소련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모든 사람을 우리가 쏵다 뺏들어서 구원해야 됩니다. 이 구원하는 것은 회개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제 오늘로서 이 본문을 다시 계속해서 더 하지 않겠습니다. 단단히 회개합시다.
강퍅하치 맙시다. 그들이 와 가지고 우리를 진멸할 때에 그때에 우리가 떡이 되고 비참하게 비참하게 살해를 당하고 그 때에 고통하는 것을 오늘에 마음을 찢으면서 회개를 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