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5 16:47
구원성으로 들어가는 법
1980.1.6.주일오후
본문: 이사야 26:1-7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의 의뢰함이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게 하시도다
계약은 기본적인 계약이 있고 또 활동적인 그런 계약이 있습니다. 구약, 신약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처음 약속 또 다음 약속 그 약속이라는 말씀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이 약속한 이 계약한 것을 우리에게 영감으로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약속되어 있는 계약되어 있는 이것이 기본 계약이요 피조물 사이에 계약 되어 있는 이것이 활동 계약이라 이렇게 할 수 잇는 것입니다.
인류 시조 아담 해와가 범죄 한 것은 이 계약을 어긴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에 보통 부정 모혈로 나는 사람이 다 그 계약에 참예가 됐고 또 계약을 어긴 위약한 범죄로 정죄 됨에도 참예하게 됐고 범죄함에도 참예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아담은 보통 생육법으로 나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해서 하나님과 계약했기 때문에 그 계약 어김이 일반인의 계약, 일반인이 다 계약 어김이 됐고 그 정죄가 일반에게까지 정죄가 된 것입니다. 계약이 없이 하는 모든 행사는 다 강제요 불법입니다. 강제와 불법에는 전체가 결과적으로는 사망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더불어 계약된 이 계약은 기본 계약, 필연적 계약, 근본적인 계약인 것이요. 그 계약을 한마디로 에덴 동산에 선포하신 것은 선악과로 표시했습니다. 이 선악과에서 사람은 하나님에게 속한 자로 하나님을 따라서 살도록 된 그것을 표시해서 다스리라. 지키라. 먹으라. 먹지마라. 어겨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하는 이것이 간단 명료하게 기본적인 신인 계약을 표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활동적으로 다시 말하면 생활적으로 선포한 그 계약의 범위가 있고 필연적, 자연적, 기본적으로 되어있는 계약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기본적인 계약을 어겨서 기본적인 범죄, 원죄가 되었고 활동적인 계약을 어겨서 본죄가 되어진 것입니다. 첫째 아담으로 기본적인 계약을 어겨 원죄 아래에 정죄된 것을 둘째아담 예수님께서 대형, 대행, 대생의 이 대속으로 기본 계약 위약한 것을 다 도말하시고 새로운 신인 계약의 이 궤도 위에 올려 세워 주신 것입니다.
여게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다.' 성은 원수를 방어하고 평강을 보존하는 것이 성인데 유다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노래를 이 부르리라. 이 찬송을 하리라. 무엇을? 어떤 피조물의 그 물질로 성곽을 하지 아니하시고 쇠로 돌로 나무로 흙으로 이런 것으로 만든 이 성곽을 가지고 시대 시대 사람들이 보호하는 그 방편으로 써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피난처가 되는 이런 성을 가지고는 안되고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이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생들에게 안정된 이 처소를 주시는 이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계약을 받은 사람들은 다 기뻐 찬송하게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이 물질이나 공간이나 그 어떤 그런 것을 가지고 우리의 피난처를 삼거나 또 그런 것으로 우리를 구금하는 옥을 만들거나 그런 것은 다만 이 물질계에서만 인정되는 것인데 이것을 초월해서 물질이 아닌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이 멸망으로 감옥을 삼으시고 하나님이 구원으로 성곽을 삼으시는 것을 하나님 백성들이 찬양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공간이든지 어떤 피조물의 호의에 혜택이든지 그것으로서는 하나님이 멸하시는 이 멸망을 벗어날 수가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타락하기 전에는 이런 것이 있었지마는 지금은 이제 하나님이 멸하시기 때문에 어떤 것으로 자기의 피난처를 삼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강대국으로 자기의 피난처를 삼고 이십세기에 자랑하는 과학으로 피난처를 삼아봤자 그 모든 것은 다 헛됩니다. 왜? 이보다 무한히 능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멸하시기 때문에 그 파멸을 방어할 것들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원으로 성곽을 삼아서 하나님이 구원으로 피난처를 구원성을 만드셔서 인간으로 이 성에서 피난하고 구원 얻게 하신 이 성곽은 아무 피조물도 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성에서 자기가 피난을 할 것인가? 자기 안정처를 삼을 것인가 하는 이것이 중대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에 이 하나님의 구원을 자기의 피난처로 은신처로 영주처로 삼는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로 자기의 안정된 처소로 삼는 그것을 할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초월하고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구원성을 자기의 구원성으로 바라보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각각 자기 힘대로 자기의 구원의 처소를 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둘은 하나로써 동질, 동성의 그 일치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것은 아주 그 본질과 본성도 다르고 위치도 다르고 마련하는 방편도 아주 다릅니다.
아브라함이 '너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굴혈이 끼여 있어서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물질로 자기의 피난처를 만드는 그 피난처는 저주 아래에 있는 것이요. 사망안에 있는 것이요. 죄안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구원으로 성곽을 삼으신 이 성에는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서 이 사망, 저주의 선을 넘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두 종류의 성이 있어 마련하는 방편이 다르고 또 위치가 다릅니다. 물질로 되어 있는 자기 성벽을, 피난처를 마련하는 것은 인간의 방편, 인간의 힘 다시 말하면 악령의 법칙으로 계획으로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구원으로 성곽을 만드신 이 구원성은 마련하는 것이 첫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료로 하나님이 지도하시는 그 방편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 같이 세상살이를 하고 있지마는 그 사람은 자기가 어떤 그 성을 자기의 구원성으로 자기의 피난처로 자기의 은신처로 삼고 있는지 한자리 있어도 한 사람은 사망과 저주 아래에 있는 땅에 속한 것을 자기의 피난처로 같은 생활하고 있어도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이 구원을 자기의 피난처로 안정처로 이렇게 삼아서 사는 것이 다릅니다. 사람 보기에는 같지마는 그 본질과 본성은 동기와 목적과 그 결과는 판이합니다. 방편은 약간 대동소이 합니다. 대개는 같고 조금 다른 거 있는 거 뿐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과학을 이용해서 인간의 모든 활동을 이용해서 인간들이 조성해 놓은 그것을 힘입어서 이루는 것은 다 이것은 여호와의 구원성은 아닙니다. 여호와의 구원성은 믿음으로만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도 이 구원성은 아니고 어떤 강대국도 이 구원성은 아니고 과학의 그 어떤 결과로 이 구원성은 어떤 그 물질이나 어떤 환경 형편을 조성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이 구원성은 아닙니다.
다만 이 구원성은 신을 지킴으로만 이 구원성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신을 지킴으로만 이 구원성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 구원성은 의가 있는 그 의로운 성, 의 안입니다. 의 속입니다. 의 안이 이 구원성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죄악과 어떤 피조물도 해할 수 없는 완전한 구원처, 피난처, 은신처, 영주처가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속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안에만 사망이나 고통이나 늙는 것이나 쇠하는 것이나 더러워지는 것이나 죽는 것이 없고 하나님이 구원 하시는 이 구원성 밖에는 전체가 시간 문제지 결말은 사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주시는 이 구원성,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이 있음이여' 영원 불멸의 견고한 성이 있으니 이 성은 뭐이냐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리로다. 하나님의 구원으로 성곽을 삼는다.
성곽이라 말은 성을 가에로 빙 둘러 쌓아 놓은 그걸 성이라 말합니다. 성곽을 삼는다. 하나님의 구원으로 성곽을 삼는다. 하나님의 구원으로 성곽을 삼은 이 구원성을 자기의 영주처로 자기가 피난할 성으로 자기가 안정할 수 있는 성으로 이렇게 삼아서 이 성 안으로 자신이 들어가기를 이 성안으로 모든 것을 옮겨 놓기를 또 이 성 안에 가 가지고 살 준비를 이렇게 하는 것이 이 성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전도관에서 천년성이니 구원성이니 하는 그것은 이 글자를 따가지고 미혹한 것입니다. 이 구원성은 공간과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위에 있다 아래 있다 남북에 있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 진리 안에, 하나님의 능력 안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 완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성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으로 성곽을 삼으신 것은 완전히 완전으로 싸놓은 성이요. 진리로 싸 놓은 성이요. 전능으로 싸 놓은 성이요. 영원 불변으로 싸 놓은 성이요. 사랑으로 싸 놓은 성이요. 이 안에는 생명과 자유와 평강과 영원한 쾌락이 그 나라의 생애입니다. 이것이 가득찬 곳입니다. 이 외에는 무엇이든지 다 멸해지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십니다.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이 성곽이 우리가 피난처니까 신을 지킴으로만 들어올 수 있는 이 의로운 나라, 신을 지킬 수 있는 이 의로운 나라에 문을 열고 들어오라 문을 열고 들어 오라. 문을 열고 싶다고 열지 못합니다. 이 문은 아무도 열 수 없는 견고한 문입니다. 이 문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되어 있는 문입니다.
문을 열어라. 내가 너희에게 천국 열쇠를 주노니 네가 이 열쇠로 문을 열어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의 모든 소유와 행위와 자체를 잘 정리하고 정돈하고 정비하면, 착한 양심이 되고 착한 양심이 될 때에 하나님이신 성령님과 접선이 되어져서 영감 받을 수 있는 영감을 받나니 영감이라는 이 열쇠로 문을 열고 의로운 나라로 들어가라 영감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을 네가 실질적으로 입고 성신의 감동으로 그리스도가 대형, 대행, 대생 하신 이 대속의 공로를 네가 영감으로 입고 영감이 없는 그 사람의 마음은 예수님의 대속을 절대로 모릅니다.
입으로 암만 노래 불러도 모릅니다. 그를 실감하지를 못합니다. 실질적으로 힘 입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영감이 되면 진실한 마음이 되면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 약속을 이행하는 자만 들어 올 수 있고 이 안에 들어와서도 약속대로만 행하는 약속대로만 행하는 영감 받아 약속대로 행하는 약속 이행을 하는 나라로 들어오라. 약속 이행의 천국으로 들어오라. 약속 이행이 곧 천국 생활이요. 이것이 천국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들어오라 그 다음에 26장20절에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로 들어가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 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지 아니하리라.'
밀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문 밖에 것이 보이지 아니하도록 너는 예수안에 있는 즉 예수의 구속 안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전 세상이 보이지 아니하고 이전 네가 보이지 아니하고 이전 네가 보이지 아니하고,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내 죄를 다 형벌 받으심으로 사죄주신 이 사죄(赦罪), 죽기까지 대행하셔서 칭의를 주신 이 의, 죽기까지 복종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이 화평으로 새생명을 주신 하나님과 결합의 이 피동성을 주신 이 안에서 이것만 보이고 문만 보이고 문 밖에는 보이지 안해. 이것만 보이는 사죄, 칭의 안에서 죄 없는 세계에서 의로운 세계에서 하나님과 결합된 세계에서 죄가 보이지 않는 불의가 보이지 않는 죽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결합자로서 의로운 자로 죄 없는 자로 사는 여기에서 잠깐 세상 한토막살이를 이 속에서 네가 피난해라. 이 속에 숨어라. 이 밖에는 하나님이 인생을 영원히 멸하실라고 지금 멸하시는 공작을 하고 계신다. 날마다 제 욕심대로 하는 그것이 자멸을 하는 지금 멸망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구속 밖에서 시간 시간 하나님의 진노의 그 멸망에서 지금 멸망을 받고 있는 것이고 제 마음대로 사는 그게 멸망 받는 것입니다. 그거 멸망 하는 것이요. 제욕심 대로 사는 그것이 멸망하는 것이요. 구속을 받은 성도들도 믿음을 떠나서 자기의 정욕대로 자기 주관, 자기 욕심, 자기 관념, 자기 경험, 체험, 자율대로 자기대로 피조물대로 사는 그것이 곧 여호와의 진노의 멸망에 멸망을 당하여 부숴지는 것입니다. 빠사지는 것입니다.
이런고로 네가 재세(在世)한 기간 이것을 피해서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이 멸망을 네가 잠깐 동안 네 밀실에 들어가서 피해라 숨어 있으라 문을 열고 들어가서 문을 닫고 네 밀실에서 잠깐 숨어 있으라. 이 땅 위에 20세기의 과학이 자랑을 하고 온갖 문화들이 자랑을 하지마는 노아의 홍수 때도 하나님이 유일한 구원으로 주신 노아의 방주 그 외에 그때도 수많은 과학이 있었고 수많은 문화가 있었고 수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있었지마는 다 그들의 방편은 전체가 다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다 멸망으로 다 끝을 마쳤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정해 주신 노아의 방주 속에만 생명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지나간 일을 기록해서 주신 것은 우리에게 거울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거울로 줬습니다. 거울을 보면 자기 용모가 어떤 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노아시대에 어떻게 어떻게 해 가지고 사람이 멸망했으며 무엇 무엇이 헛 일했으며 무엇 무엇이 공연히 헛된 위안제를 마셨지 실효가 없었으며 어떻게 하는 것만이 실효있는 구원이 됐다는 그것을 보면은 오늘 나는 멸망을 걷고 있는지 구원을 이루고 있는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울로 주셨습니다.
그때와 같이 오늘도 사람들은 별별 구원성을 마련합니다. 별별 피난처를 마련합니다. 별별 은신처를 마련합니다. 별별 안락처를 마련합니다 마는 하나님이 구원으로 성곽을 만드신 이 하나님의 구원 속이 아니면 모두 다 헛되다 하나님의 구원성 이 성만이 영생처요. 영주처요. 모든 죄와 저주와 사망에 속한 것들이 없는 썩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고 낡아지지 아니하고 더럽지 아니하고 병들지 아니하고 곡하지 아니하고 죽지 아니하는 것이 여기에만 있으니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다 이 성을 인해서 노래하도다 유다에 있는 백성들이 다 노래한다 하는 우리에게 견고한성, 아무도 깰 수 없는 성, 영원 견고한 구원성이 있으니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이 구원으로 성곽을 삼은 이 피난처라.
그러기 때문에 네가 문을 열고, 이 땅 위에는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을 지금 지키고 있는 것이니까 이 멸망을 네가 당하지 않도록 어서 문을 열고 네 밀실로 들어가라. 어서 문을 열고 네 밀실로 들어가라. 애굽의 장자 재앙으로 지금 치시니까 어서 양의 피를 바른 그 문을 열고 들어가라. 안들어가면 위에서부터 내리 죽습니다. 문을 닫고 여호와의 진노의 낯을 잠깐 피해서 숨어라.
잠깐이면 하나님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멸하시는 이 멸망이 끝나니까 예수님 오시면 멸할 것이 그 멸해지고 다 끝나버립니다. 끝나니까 네가 이 문을 열고 들어가서 문을 닫고 다시는 그 멸망시키는 것이 네 눈에 보이지 않도록 문 속에서 예수님의 사죄 안에서 예수님의 칭의 안에서 예수님의 주신 이 화평, 신인결합 안에서 네가 살아라, 이 기간이 잠깐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고로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문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올지어다.'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벌써 계약을 어겼소. 계약을 어겼기 때문에 계약 어긴 자에게는 사망입니다. 계약 어긴 것을 예수님이 다 담당하셨소.
어긴 죄는 형벌로 담당했고 이행해야 할 것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대행하셔서 담당을 하셨고 하나님과 원수 된 것은 죽어도 모든 저주를 다해서 우주적인 고난, 영원한 저주와 사망을 입혀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놓지 인;했습니다. 하나님을 떨어지지 아니했습니다.
이것으로서 하나님과 결합이 된 이 새생명, 하나님과 결합되어 하나님으로 피동되는 이 완전 역사의 이 완전 힘의 이 생명을 얻었으니 이 안에 살아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결합으로 살아라. 다시는 하나님의 계약을 어기는 일이 없는 자로 살아라. 하나님의 계약을 이행하는 자로 살아라. 이것을 변동하지 아니하고 변동하지 아니하고 요 결심, 요 깨달음, 요 실행 요것이 변동없이 계속하는 심지가 견고한 자, 요것을 계속하는 자, 계속하는자는 평강에 평강으로 입히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고로 기독자들은 하나님이 평안해야 자기가 평안합니다. 하나님 불안케 하고 평안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셔야 자기가 기쁩니다. 하나님이 성공을 하셔야 자기가 성공을 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는 것인데 하나님 없이 암만해 봤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분은 모든 것보다 큽니다.
이러기에 바벨탑을 쌓을 때에 사람들의 심신이 한덩어리입니다. 이렇게 단합이 됐습니다. 그때에 전 인류는 마음도 하나요, 생각도 하나요, 뜻도 하나요, 소원도 하나요, 성질도 하나요, 말도 하나요, 역사도 하나입니다. 그렇지마는 하나님 빼놓고 하나된 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것 때문에 내려오셔 가지고 분해서 그들에게 준 저주가 그 때부터 복잡한 시기, 질투, 분쟁, 대립, 이질, 이성, 다른 방언, 시비, 다른 행동, 다른 욕망 이런 것들이 그때에 생겨졌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주시는 이 피난처 외에 다른 피난처를 자기의 피난처로 은신처로 삼는 사람은 그게 벌써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대립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피난처는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다가 계약을 위약한 계약을 어긴 이것을 다시 예수님께서 살렸습니다. 복활시켰습니다. 다시 부활시켰소. 다시 하나님과 우리와의 새로운 계약이 회복됐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내가 이 계약을 지키느냐 안 지키는데 대해서 살고 죽습니다. 우리의 영은 자체가 죽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대신 지켜주신 이것을 전적 입혔소.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 영은 이 계약을 완전히 이행한 자로 영원히 되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신은 이 계약을 어긴 것을 예수님께서 대속으로 법적 복구를 해 놓으시고 성령과 영을 힘 입어서 이제는 계약을 계약을 실행할 수 있는 자로 우리를 세워 놨습니다. 우리가 이 계약을 지키는 것은 사죄자로, 칭의자로, 새생명자로 사는 것이요. 이 계약을 지키는 것은 사죄자로 칭의자로 새생명의 자로 사는 것이요 이 계약을 어기는 것은 사죄를 배반하고 칭의를 배반하고 새생명을 배반하고 사망하는 것입니다.
그 우리의 현실 현실 생활에는 이 계약을 예수님이 대신 지켜주셔 복구해 주셨기 때문에 회복해 주셨기 대문에 이 계약을 지키지 못한 자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계약을 지킨 자가 됐습니다. 계약을 어긴것이 없는자가 됐습니다. 하나님으로 결합된 자가 됐습니다.
이런고로 법적으로 하나님과의 이 계약을 완전히 이행한 자로 되어 잇는 우리가 현실을 통해서 이 계약을 대신해서 이행한 자로 우리를 세워주시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인정 받게 하신 우리가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계약을 이행하는 자로 그대로 살고 가면 됩니다. 그대로 살면 사망이 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계약을 현실에서 어기면 첫째아담으로 말미암아 이 계약을 어긴 거기에 속해 가지고서 계약을 어겼기 때문에 어긴 자는 영원한 사망입니다. 그 현실에 살았던 그 기능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이 구원으로 성곽을 삼은 이 성에 들어가는 것도 이 계약을 지킴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예수님이 대신 지킴으로 우리를 이 성안에 들어가는 이 성의 시민권을 줬습니다. 시민권을 줬는데 이 성안에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계약을 지켜 사는 것이요. 현실에서 이 계약을 어기는 것이 구원으로 성곽을 삼은 이 성에서 탈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현실에서 구원으로 성을 삼은 이 성민 생활을 현실에서 하느냐? 현실에서 이 성민 생활 하지 아니하고 이 성에서 탈출하느냐 하는 그것이 우리의 현실 생활로써 판정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러면 우리와 기본적 계약이 뭐인데? 필연적 계약이 뭐인데?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없는 가운데에 당신이 만드셨기 때문에 당신의 것이요. 당신의 것이라는 이것이 계약입니다. 이것이 필연적 계약이요 이것이 기본적 계약입니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이 하나님의 것 아닌 것으로서 행동하고 있을 때에는 이것이 계약 위반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에 창조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창조하신 목적은 창조하신 당신에게 필요하도록 당신을 위해서 있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것을 많이 말합니다. '
'그의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해방시켜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을 세세토록 돌릴 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지으실 때에 하나님을 위해서 지으셨소 우리가 존재한 목적이 그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이것이 필연적 계약이요. 기본적 계약이요 이것이 자연적 약속입니다.
이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너 이거 먹으면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 같이 될 줄 알고 먹지 말라 했다 너 이거 먹으면 네가 하나님 같이 된다. 하나님 위할 존재가 하나님 위하는 그것을 떠나서 자신을 위하는 것 된 고것이 사망의 시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계약된 것 우리가 존재 목적이 우리가 왜 생겼느냐? 하나님을 위해서 생긴 것이요
그러면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생겼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느냐? 당신이 인도하시는 대로 당신에게 순종으로 사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생의 방편입니다. 우리는 움직일 때 마음이나, 몸이나, 영이나, 우리의 움직임은 능동은 절대 금이요.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요것이 우리의 움직임으로 되어 있는 계약입니다.
요 세가지 계약이 기본 계약인데 요 계약을 첫 아담이 어겨서 우리는 요 계약을 어긴 자로 되어 있는 것이 원죄입니다. 본 죄는 이 세 가지를 어긴 그 선조의 정죄, 원죄로 우리의 생활에서 이 세가지 면에 이 계약을 어기는 것이 우리의 본죄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회복하시기 위해서 대속하셨습니다. 대속해서 예수님이 우리를 대표해 가지고 예수님은 완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살았소. 완전히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았소. 완전히 하나님에게만 피동으로 살았소. 이것으로써 우리에게 칭의를 줬습니다. 이 세 가지를 어긴 것은 예수님께서 우주적인 정죄와 저주와 사망의 고난 이것을 받아서 세 가지 어긴 죄를 대신했습니다.
이러기에 하늘의 부요를 다 내놨습니다. 존귀를 다 내놨습니다. 저주의 사망을 받았습니다. 악령에게 시달리는 시험물이 되어졌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이 세 가지 계약을 다시 살려서 회복해 주셨으니 이 세 가지 계약 이행자로 사는 것이 의로운 나라에서 사는 것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계약을 지킴으로 하나님에게 신임받는 것입니다. 신이 있는 사람이라. 그는 신이 있는 사람이라. 신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계약 한 것을 잘 이행하니까 신이 있소. 신용이 있소. 이 계약을 어길 때에 그는 신이 없는 자입니다.
우리가 이 계약을 이행하는 것은 신인데, 복종이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를 당신이 우리를 지어서 우리는 당신의 것이라는 것을 그대로 받아 들여서 인정합니다. 당신을 위한 존재라는 이 존재 목적을 그대로 받아 인정합니다. 그분으로 인해서 피동해야 살아야 된다는 이것을 그대로 받아서 우리가 삽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복종이요, 하나님은 우리를 가리켜서 신이라 너는 믿음이 있다. 너는 신용이 있다. 하신 것인데 이것이 의로운 나라의 생활입니다.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올 지어다. 우리가 영생하는 나라는 신을 지키는 나라입니다. 신을 지킨 의로운 나라입니다. 신을 지키는 그것이 의요. 인간이 이 세 가지 신을 지키는 것이 의입니다.
인간과 인간끼리의 신을 지킨데까지 번져나가야 됩니다. 퍼져나가야 됩니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약속한 이 신을 지켜 이 신이 인간과 인간과의 약속한 그 신까지 번져 나가서 그 신까지 뻗어 나가고 인간과 인간끼리의 신을 지키는 여기에서 하나님과 자기와의 신인 약속을 한 이 신을 지키는 여게까지 향상해야 됩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신에서 인인관계의 신까지 비추어 나가야 되고 인인관계의 신에서 신인관계의 신까지 이것이 향상돼서 올라가는 이것이 우리의 재세의 생활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처음에 사회자가 읽었는데 '마음으로 서원한 것이면 해로울 지라도 지키라' 그말은 서원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없는 일방적은 안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사람과 사람끼리의 약속한 것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자기에게 해가 되어도 지켜야 됩니다. 지켜야 됩니다.
예를 들어 어제 약속하기를 오늘이 주일인데 주일날 아무데 가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소. 생각해 보니까 주일을 지키라고 했는데 그 날 그 간다면 주일 지키지 못하게 된다 그 말이요 그러면 그 약속을 지킬라 하면 하나님과의 약속 신인 계약을 어기게 되고 신인 계약을 지킬라고 하면 그 사람에게 계약한 인인계약이 어기게 되고 그럴 때에는 신인계약을 지키고 인인계약을 지키지 못했으니 그 사람에게 낭패를 줬습니다. 심적 낭패, 정신적 낭패, 시간적 낭패, 물질적 낭패, 그러면 어떤 노력적 낭패, 어떤 인권적 낭패 줬으면 그것을 자기는 배상을 물어야 됩니다. 손해를 물어야 됩니다. 인간과 인간끼리 약속도 절대 못 어깁니다. 어기지 못합니다. 그는 배신한 자입니다. 신을 버린자 입니다.
인간의 움직임은 강제가 아니고 불의가 아니라면 다 약속이 근거 되어 있는 생애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을 때도 거게는 벌써 계약이 근거 되어 있습니다. 계약이 근거되어 있소. 그것을 먹이고 입혀서 인간 노릇할 때까지 길러야 되는 계약이 벌써 그것이 근거 되어 있습니다. 그거 없는 거는 강제 불의기 때문에 그것은 다 사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간의 신에서 하나님의 신까지 올라가야 되겠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신에서 인간의 신까지 내려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신을 지켜 인간의 신에게 미치지 못한 것은 그는 빛이 없는 빛이 없는 무용의 등불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과의 신을 지킨 이 신이 피조물에게 까지 이 신이 충만한 것이 영원한 하늘나라 입니다. 신이 없는 자는 이 의로운 나라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이 의로운 나라, 하나님의 구원으로 성곽을 삼은 이 생명의 나라는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입니다. 계약대로 이행하는 계약이 돼 있고 그 계약대로 계약없는 행동이 없어 전부 계약돼 있고 계약되어 있는 이 계약대로 이행하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계약대로 이행이 됐을 때 그것을 의롭다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우리에게 가까운 땅에 속한 신실에서 땅에 속한 신실에서 하늘에 속한 신실로 향상해야 하겠고 하늘에 속한 신실로서 땅에 속한 신실까지 우리는 봉사해서 비추어 나가야 합니다. 인인관계의 신을 지키지 못하는 그 사람이 신인관계의 신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신인관계의 신을 지킨다고 하는 사람이 인인관계의 신을 지켰으면 그것도 허무입니다. 순서는 거꾸로 되고 옳게 되고 올라가든지 내려가든지 어쨌든지 신인관계의 신이나 인인관계의 신이나 이 두 신은 하나로써 이 신은 같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태산을 올라 갈 때에 한 자욱씩 한 자욱씩 밟아서 1미터 2미터 이렇게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는 지극히 작은데 충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 인간과 나와의 가진 약속, 계약, 지키기 쉬운 거 요 거 하나씩 또박 또박 지켜서 쉬운 것을 지켜 지킬려고 하면 약속할 때는 쉽지마는 지킬려고 하면 힘듭니다.
미국에 있는 그 흑인들이 얼마든지 자녀만 많이 낳고 그 뒤를 감당하지 아니하는 그것은 인인관계의 그 신을 버린자입니다. 배약자 입니다. 계약을 어긴자 입니다. 약속을 어긴 자요. 우리는 지극히 작은 인인관계의 사소한 사소한 약속을 하나씩 둘씩 지켜서 차차 차차 지키기 어려운 약속까지 지켜 인인관계의 약속을 지키는 그것이 곧 신인 관계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거의 되어집니다.
여게서 이 약속을 지켜 약속을 지키되 그것이 신인관계의 약속에 비추어서 신인관계의 약속과 인인관계의 약속이 일치되는 지극히 작은 그 약속을 지켜 차차 크고 어려운 약속을 지켜, 가다가는 신인계약과 인인계약이 모순되어서 마찰이 되어질 때는 그때는 부득이 나를 희생시킬 수 밖에 없어. 자기가 그 배상을 물어야 되니까 신인계약은 어길 수 없으니 그 계약은 지키고 인인계약은 내가 어겼으니까 그 손해 배상을 물어야지.
이럴 때에 인인계약이 수정되어서 인인계약이 수정되어 허탄한 계약을 맺지 않습니다. 허탄한 계약을 맺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나의 자녀를 길러보아 거게 대한 계약을 이행함으로 계약 이행하는 것이 하기가 힘들어 그 계약 이행을 어떨 때는 못할 때는 배상을 하고 이행하기 어려워 이래서 그 계약을 맺지 아니해서 자기가 약도 안 쓰고 방법도 안쓰고 동침하지 아니해서 이 계약 너무 이행하기가 힘들어서 금욕 생활로 생산하지 아니하면 죄가 안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더불어 하나 약속을 맺었는데 그 약속을 지킬라고 하니까 할 때는 쉽지마는 약속을 그대로 이행해서 그분에게 신으로 인정되도록 그와 나 사이에 신이 있도록 이래서 안 믿는 사람들도 말하기를 붕우 붕우 간에는 친구 붕우 붕우유신이라 친구간에는 신이 있어야 된다 그것을 강령으로 말했습니다. 그것이 오륜에 들었습니다.
내가 그 약속을 지킬라고 하니까 힘드니 이제는 약속을 벌로 하는 사람이 안 되겠습니다. 그 약속을 지킬려고 하니 신인계약을 어겨야 되니까 부득이 그 계약을 어겨 배상을 물어야 되지마는 그에게는 반신 반의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러는 가운데에서 헛된 계약을 맺지 않는 신중한 사람이 되고 이 계약을 맺었으면 사실 그대로의 이루어져 신을 가질 수 있는 이것이 빛입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조심도 나오고 삼가도 나오고 의무도 나오고 책임도 나오고 신중도 나오고 상호간에 믿을 수 있는 신도 나오고 여기서 상호 협조도 나오고 여기에서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의 허무한 인간도 나오고, 이 신을 지켜서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의 이 신도 하나씩 둘씩 지켜 이제는 하나님과 자기와 인간과 자기와의 기본적 계약, 기본적 계약, 필연적 계약, 활동적 계약 요 계약을 이행하는 거기에서 요 계약을 이행하는 거기에서 신도 생기고, 의도 생기고, 요 계약을 이행하는 요것이 심지의 강한 것입니다. 요것이 강한 심지요. 요것이 강한 의지요. 요것이 강하게 될 때에 그에게 인생의 평강이 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인생의 평강이 옵니다.
인생의 평강은 하나님이 나와의 관계에 평안해야 내 평강이 있고 나와의 관련된 사람이 평안해야 내게 평안이 오고 여게서 물질적 평강, 사업적 평강, 자기의 모든 욕망적 평강, 모든 평강이 오는 것은 별별 종류 있지마는 가치 있는 영원불변의 평강은 견고한 심지에서만 나옵니다. 견고한 심지는 의에서 나옵니다.
의는 신을 지킨데서 나옵니다. 신을 지키는 신은 상호 계약에서 나옵니다. 상호 계약에서 이리하여 인간이 신인계약 자기는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그의 시키시는 대로 움직여 신인관계의 신을 지켰으면 이 신은 인인관계의 모든 신, 모든 만물과 자기와의 관계의 신은 필연적으로 지켜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능동이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시하는 것은 내가 모르는 모든 피조물 수 많은 억억만도 넘는 수많은 존재와 나와의 필연적으로 맺어져 있는 기본적 계약, 모든 활동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계약 요 계약이 다 이행 되어서 신을 생활에 가진 의로운 자로써 사망이 없는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살도록 요렇게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인인관계의 신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인인관계의 신을 무시하는 자가 절대 신인관계의 신을 지킬 수 없습니다. 것이 뿌리 없는 화초 같소. 오늘 것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신인관계의 신인관계의 신을 무시하는 자가 인인관계의 신을 지킨다는 것이 뿌리 없는 화초와 같소. 오늘에는 청청하지마는 기회를 따라서 변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것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지금 많이 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신인관계의 신을 요 약속을 지키는 고것이 뿌럭지인데 고 뿌럭지가 있어야 인인관계의 사물관계의 신도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인인관계의 신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여게서 다 좀먹어 들입니다. 사과나무에 사과 과수원에 사과나무를 강도가 와서 톱으로 베서 없어지는 것은 별로이 없어. 눈에 보이지도 아니하는 소스락 벌거지 그게 강도라 그게 들어와서 전부 사과나무를 다 찍어서 다 넘겨 사과나무를 먹어서 사과가 안 여니까 주인이 베내 버려도 결국은 베내 버려야 돼. 우리가 인인관계의 신을 무시하다가 요 소스락 벌거지 같은 지극히 작은 거 요걸 무시하는 데에서 지극히 큰 신인관계의 신이 절단이 나집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 아는 거 같으나 우리의 헛되이 복잡함을 인하여 중대한 급선무를 잊어버리고 있는 저들의 잠을 깨우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필연적 계약, 우리의 행동함에 따라서 일어난 계약, 약속 없는 일은 하나도 없는데 이 약속을 이행하는 것으로 사는 의로운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오늘에 받은 성화와 받은 축복으로 범사에 기본 약속과 행위로 된 이 두 가지 약속을 어디서나 언제나 발견하고 어떻게 어려워도 우리의 심신과 전부를 다 기울여 약속 이행에 매진하는 신을 갖추어 주님 앞에 갈 수 있는 저들이 되도록 결심하고 이 일을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당선된 주의 종들에게도 더욱 기도의 사람으로 신을 지키는 의로운 세계에서 사는 자들로 세상에 빛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