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5 18:15
구원의 근원
1981. 11. 24. 화새
본문 : 에베소서 1장 3절 - 14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아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하심이라
우리는 존재의 순위도 바로 알아야 하고 또 가치의 순위도 바로 알아야 하고 또 운동의 순위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원인과 결과를 바로 알아야 되지 원인과 결과를 혼돈하면 안 됩니다. 결관즌 원인이 될 수 없고 원인대로의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가치가 낮은 것은 높은 것 위에 올라갈 수 없고 높은 것이 가치 낮은 것보다 천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존재도 먼저 존재하고 존재한 그로 말미암아 그 다음에 따라서 존재하게 된 그 순위가 있으니 다음에 다음 순위로 존재된 것이 먼저 존재된 그것보다 앞설 수 없고 클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혼돈되면 그와 관련된 그 사람의 모든 사상도 비판도 평가도 욕망도 계획도 행동도 다 실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순서를 간단하게 여기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과 정 반대입니다. 처음 자기가 있고 제일 먼저 자기가 있고 그 다음에 자기의 행동이 있고 그 다음에 자기의 구원이 있고 자기가 있어 자기 행동대로 자기 구원이 이루어져 자기 구원대로 영원히 결정되어지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보다 자기보다 자기 움직임이 먼저 결정됐습니다. 자기 움직임보다 자기의 구원은 먼저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구원보다 기독자의 구원보다 먼저 있는 것은 다 자존한 존재들입들입니다.
기독자의 구원 위에 기독자의 구원보다 먼저 있는 것은 자존하신 분뿐입니다.
그러면 자존하신 분은 어떤 분이신가? 자존하신 하나님, 자존하신 사랑, 자존하신 기쁨, 자존하신 뜻, 이는 이 넷을 한 분이시요. 또 이 넷은 하나님이시요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 제일 먼저 있는 것이 자존하신 하나님, 자존하신 이 사랑, 자존하신 기쁨, 자존하신 뜻 이는 다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속성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제일 먼저 계셨습니다. 영원전 스스로 계셨습니다. 어떤 것이 원인이 돼 가지고 있음이 아니고 홀로 스스로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어떤 무엇을 인해서 무엇을 힘 입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가 아니고 자존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그 기쁨도 많은 피조물들이 있지마는 피조물로 인해서 생긴 기쁨이 아니고 아무 존재도 없을 때에 당신이 가지신 당신의 기쁨입니다. 또 당신의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체시요 하나님의 속성이십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먼저 계셨는데 이 하나님이 제일 처음으로 역사하신 그 역사가 그 움직임이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존재적으로는 제 이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제 이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일위는 자존하신 하나님이시요 제 일위는 자존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심인데, 그 역사하심 중에 제일 첫 위를 가진 첫 역사가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은 어떤 목적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목적이라 말은 그리스도는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이십니다. 특별히 그리스도라고 이렇게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에 그 역사는 신정국가에서 비로소 알려서 기름부음이라는 뜻인데 기름부음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 그건 신정국가에서 제사장에서 선지자에게 왕에게만 기름을 붓는 것으로써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직명이라 이렇게 모든 신학자들이 다 공통돼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직명이라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그 역사에 이름이라. 그러면 제사장 역사, 선지 역사, 왕의 역사를 하나님이 하실 때에 그 하나님의 이름을 그리스도라 또 이 그리스도가 사람되어서 왔을 때에 그 이름을 메시야라 해라 임마누엘이라 해라 하는 것이 내나 그말이오. 또 그리스도의 구원이라 이말은 하나님의 제사장 전지 왕의 직책으로 제사장 선지자 왕을 만드시는 이 만드심에 구원이 곧 그리스도의 구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대속하신 이 하나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을 가리켜서 신인양성일위에 이 구주로 나타나게 될 때에 예수님이라 이렇게 이름을 했고 또 예수님의 공로를 근거해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 완성하는 이 은혜를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은혜라.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신데 우리를 그 형상 곧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하셨다 이렇게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해서 우리를 대속하시고 대속한 우리들을 성령과 진리와 피가 성령과 물과 피 물은 진리를 말합니다. 이 구원의 보증이 책임을 지시고 이루시는 그 구원은 어떤 구원이냐? 곧 제사장 구원이요 선지 구원이요 왕의 구원입니다. 제사장은 어떤 제사장인고 하니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만물과 그 사이에 중보 역활을 하는 것을 제사장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구약에는 신정국가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또 이스라엘에 관련된 모든 만물 모든 사건들 이것을 잘됐든지 못됐든지 하나님 앞에 고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하는 이 중보역활을 하는 것을 제사장이라 그렇게 하시고 제사장의 역사를 했습니다.
선지는 미래사를 말하는 게 선지가 아니고 선지는 피조물들이 모르는 창조주의 그의 뜻을 그의 것을 피조물들에게 전하여 주는 것이 이것이 선지자 역할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충만한 온갖 은혜를 인간에게 주실 때에 인간에게 주실 때에 돈을 주실 때에는 돈으로 주시지 않습니다. 명예나 권세를 줄 때에는 명예나 권세를 주지 않습니다. 또 영생을 주실 때도 그 생명을 그대로 주지 않습니다.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만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 곧 진리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 진리를 주실 때에 그 뜻을 받아 가지고 행하면 돈으로 주시는 뜻을 주실 때에는 그 뜻을 받아 행하면 돈이 됩니다. 권세로 주시는 뜻을 받아 가지고 그 뜻대로 행하면 권세가 됩니다. 평강도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완전자시요. 그는 무형의 존재기 때문에 그분의 영감의 뜻을 인간에게 줄 때에 그대로 하면은 하나님의 충만이 다 그대로 실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 신구약 성경에 소망으로 주신 이것이 우리 발 아래 바라는 것인데 우리 소망인데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것은 믿음이 실상을 만드는 것이라.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현실 현실을 주실 때에 그 현실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대로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마고 약속하시고 경영하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통치 그대로 우리가 전달 받아서 그대로 행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으로 내와 관련된 모든 만물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그대로 행하는 것 그러면 하나님 한분의 뜻이 나와 내게 관련된 모든 만물에게 고대로 이루어지는 이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존하신 하나님이 제일 먼저 계셨고 그 다음에 둘째 순위로 존재하게 된 것이 이제는 하나님의 역사로 된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 자체가 아닙니다. 이거는 자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진 첫째 순위의 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것 목적은 무엇인가? 제사장 선지자 왕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것 예수님은 우리에게 와서 무슨 일 하셨는가? 제사장 선지자 왕의 일을 했습니다. 첫 열매입니다.
그러면 첫 열매가 도성인신 해 가지고 신인양성일위에 제사장 선지 왕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무슨 일을 했느냐? 제사장 선지 왕일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존하시 가지고 역사하는 역사 중에 제일 일차 역사 일차 순위가 하나님의 목적인데 하나님의 목적에 첫 열매가 예수님이십니다.
첫열매가 예수님이시요. 하나님 목적은 예수님과 같은 자를 만든다는 것이 하나님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인데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은 하나입니다.
인성은 피조물이요. 신성과 인성이 이렇게 손을 잡아 합한 게 아니고 신성과 인성이 일위를 이루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신성 인성 일위십니다.
그런데 그러면 하나님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둘이 버물러 논 것인가 하나님의 신성은 완전한 참 하나님이시요 또 인성은 참 사람이십니다. 참 하나님 참 사람이신데 이 신성과 인성이 일위의 이 격위 일위의 격위를 이루어 가지고 계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은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한 이 둘이 일위를 이룬 것이 예수님이시요. 예수님은 완전한 제사장이시요 완전한 선지자시요 완전한 왕으로써 이 역사를 완전히 이루신 것이 십자가의 대속입니다.
십자가에서 제사장 노릇을 완성했고 선지노릇을 완성했고 왕노릇을 완성해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것은 이를 이룬 것을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완성했는데 첫 열매요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우리가 지음 받았습니다. 우리가 있고 있고 난 다음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고 목적이 있고 난 다음에 오랜 후에 우리기 지음을 받았습니다. 지음을 받을 때에 목적 안에서 우리가 지음 받았고 목적 밖에 지음 받은 것 아닙니다. 사람은 외모는 똑같지마는 영과 육이 있는 꼭같은 사람이지마는 하나님의 이 목적주신 큰 구원 이 목적안에서 지음 받은 이것을 가르쳐서 '선택자라' 말했고 '택함을 입은 자라' 말하고 목적 밖에서 지은 자를 선택 밖에서 지은 자라 해서 이것은 '육의 자라' '버린 자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래서 목적 안에 지음 받은 이것은 하나님이 유일로 목적하신 이 목적을 만드는 것이니 제이 예수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이 알아듣기 쉽게 제이 예수, 예수님은 첫째 열매요. 우리는 그 다음 열매입니다. 이 목적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원형 원형이라면 우리는 그 원형에 따른 모형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하나님께서 만드시는데 그러면 만드실 때에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 양성 일위입니다. 양성 일위인데 우리는 양성일위는 안 됩니다. 양성 일위는 안 되고 양성 일위이신 이 예수님 공로를 인하여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신성과 인성과 진리 이 셋이 결합된 것이 이것이 기독자입니다. 결합되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요. 이것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과 진리와 나와 하나가 되 움직이는 요것이 영생이요.
하나가 되어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자로 된 것이 이것이 영생을 가진 자입니다.
우리는 영생 가진 자로 있고 영생을 가지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영생을 가진 부분은 우리의 영은 하나님과 진리와 우리 영이 영원히 끊어질 수 없는 것으로 결합된 것이 요것이 성령과 물로 거듭났다. 하나님 말씀에 "씨로 너희들이 거듭났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고 썩지 아니할 항상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씨로 되었느니라"고 베드로 전서 1장에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영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됐다 성령과 물로 거듭났다 그 물은 진리를 모형한 그 형용사 형용사입니다. 성령과 진리오 우리 영은 중생했습니다.
우리 영은 중생했기 때문에 영원히 죄도 짓지 아니하고 영원히 죽지도 아니합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들이 이 영에 대해서 참 좀 깜깜합니다. 이래서 영에 대해서 별로이 생각지 안 했는데 이 세대는 영에 대한 이 교리와 신조도 확고치 못하면 이십세기에 이 원자시대를 능가하지를 못 합니다. 그걸로 정복하고 거기에서 그것을 구출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사로잡힌 자를 구출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영은 이렇게 하나님과 진리와 이렇게 하나된 요것이 되었었기 때문에 요거는 교회가 됐습니다. 요거는 보이지 않는 교회 요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되서 몸이라 말 아니요. 이것은 하나의 그 운동의 행동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이라 만물은 영계와 물질계는 모든 만물은 발등상이라 만물위 교회 교회의 하나님 이러면 영은 교회가 됐지마는 우리의 심신으로 된 이 육은 마음과 고기덩어리에 된 이 육은 이것은 성경에 아직까지 죄로 인해서 죽어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죽어 있는 우리의 심신에 형체는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 다 부화시켰지마는 우리의 심신의 기능은 지금 부활해야 됩니다. 지금 부활하지 지금 부활시키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이 심신의 기능이 현실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의 심신의 기능 곧 현실에 해당됐고 고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이 하나님과 진리 성령과 진리, 고 기능이 고 현실에서 함께 움직임일라 할 때에 악령과 악성과 이 악습 우리가 이제까지 죄 지은 습성 또 악성은 자기중심으로 살라는 것이 우리 속에 있어 옛사람이라.
또 악령 이 세력이 세상하고 합해 가지고 내 현실에서 내 심신의 기능이 하나님과 진리와 합해 가지고 사는 요 의의 죄없는 의의 걸음 하나님과 합한 동행에 요 현실로 살려고 할 때에 요것이 살지 못하게 오만 방해를 다 합니다.
오만 방해를 다 합니다. 방해를 다 하나 그때 방해를 다 할 때에 내가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가지고 갈라 하면 그 방해를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자유하는 고기가 바다에 놀지마는 그 조그마한 낚시에 줄에도 걸리기만 걸렸으면 저는 끌려 가 가지고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사로잡힌 자는 사로 잡힌다 네가 있는 것을 다 버리게 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버리게 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이리 말씀했습니다. 그때에 이제 요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가 고 현실에서 같이 움직여 살려고 요렇게 할 때에 세상이 방해를 합니다. 우리의 명예를 흔들며 방해합니다. 지위를 흔들며 방해합니다. 우리 재산을 흔들며 방해합니다. 우리의 몸을 흔들며 방해합니다.
감옥에 가두기도 때리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우리의 생명을 검어지고 흔듭니다.
그들은 저거들이 할 수 있는대로는 자유로 할 수 있습니다. 왜 그거는 첫째 아담이 졌기 때문에 죄 아래 있기 때문에 죄는 마귀의 것입니다. 악령의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 임금이라고 예수님이 세상 임금을 마귀를 세상 임금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흔듭니다. 흔들 때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 소유나 모든 몸이나 생명을 흔듭니다. 흔들 때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 소유나 모든 몸이나 생명을 네가 다 해할지라도 하나님과 진리와 나와 동행하는 것은 내가 양보하지 않습니다. 요것이 요것이 뭐이냐 요것이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자기 있는 소유를 다 팔아 보화있는 밭을 삿다"고 비유하는 요거는 양보없다. 요거는 주지 않는다.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와 같이 행동하는 양보없다. 요거는 주지 않는다.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와 같이 행동하는 현실에 같이 행동하는 요게 보화기 때문에 요거는 피조물로서는 제일 가치있는 것이기 때문에 요것은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줘도 내가 요거는 놓지 않다 하여 그걸 다 양보하고라도 요걸 놓지 안하고 가져야 고때에 요래야 고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그렇지 안하면 그 쉽게 살아지는 것 아닙니다.
그저 예수 믿는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마는 언제든지 그 하는 것이 다 되는 게 아니고 차차차차 해 나가면 최고 절정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결정지울 때가 있습니다. 결정 지울때 그때 가리켜서 밤중이라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결정 지울 때가 있는데 결정지울 단계 그때에 그때는 모든 건 다 내놓지 안하면 이 걸음을 걷지 못합니다. 다 내어 놓으면 다 내어놓고 이 걸음 걸음면 다 내어 놓고 이 걸음을 걸으면 그것을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없어질 때가 됐으면 내놓고 요 걸음 걸을 때에 고것을 없어져 이 걸음을 걷게 됐습니다.
그러면 없어진 그것은 진리와 함께 고난 받았고 함께 욕 얻어먹고 함께 대접받았고 함께 고난 받고 함께 죽어졌고 함께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주님과 함께 죽고 사는 것이요. 함께 없어지면 있어지고 함께 빼앗겼으면 함께 얻고 함께 욕 얻어먹었으면 함께 영광을 받고 존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애지 아니하시면 세상은 없앨라 할 때에 나는 다 포기했지마는 하나님이 없앨 시기가 되지 안했으면 나는 생명 내 놨는데 생명이 남아 있습니다. 나는 살림살이 다 내놨는데 살림살이가 남아 있습니다.
다니엘이 지위 권세를 다 내놨는데 하나님이 저거 하시지 하나님이 끝을 내지 안하면 그는 남은 때가 있으니까 내놨지마는 지위 권세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뭐이냐 요것이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러면 다니엘이 외형의 형태는 죽었지마는 그 지위를 감당한 그 의의 기능 그 의 기능 그 인격성 그것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건 영생합니다. 껍데기 그러기에 그래서 겉 사람은 부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속사람은 죽이지를 못해 성화된 기능은 죽이지 못 합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목적은 첫 열매를 예수님이 이루셨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자존하신 하나님이 첫째 계셨고 하나님의 역사로써 제일 처음에 역사하신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 그러면 목적이 존재적으로는 몇째 순서입니까. 둘째 순서입니다.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영원을 예정했습니다. 뭐 지금 형편이 이러니까 이 형편 저렇고 변동없소. 하나님이 영원히 하나님의 예정은 개미 한 마리가 났다 며칠 있다가 죽는 것도 예정 고대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완전 예정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이 몇째 순서로 있습니까. 예 셋째 순서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정했고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정한 대로 이제는 창조했습니다.
이 창조하신 것을 이것이 이제 하나님이 자존하셨고 이것은 제이 제삼 제사 순위로 하나님이 역사로 존재한 것이 목적 예정 창조 그러고 난 다음에는 뭐이냐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섭리가 이제 섭리 그거는 그 다음에 순서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서 모든 창조된 것이 예정된 순서대로 보존되고 또 보존된 그것이 예정 순서대로 이렇게 재창조도 되어지고 이렇게 조하도 되어지고 건설도 파괴도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다가 있어지기도 하고 이렇게 하나님이 섭리해 나가시는 이것이 하나님이 이 목적을 위해서 이것을 운영해 나가는 것입니다.
운영해 나가시는 것 운영해 나가시는 그 순서 중에 도성인신하시 가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습니다.
이제 이 안에 자존하신 하나님 또 하나님의 목적 또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창조 이 광대한 우리의 구원 이 지극히 큰 광대한 이 구원이 조그마한 구멍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광대한 구원이 조그마한 구멍을 비유인데 조그마한 구멍으로 나왔으니 고게 촛점인데 그게 뭐이냐 예수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 하시 가지고 세상에 나타나셔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이 도성인신과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은 그 안에 뿌럭지가 얼마나 크냐 영원자존하신 하나님 자존하신 사랑, 자존하신 기쁨, 자존하신 뜻, 이 무한하심이 계시고 또 이 무한하심이 작정한 그 목적이 그 안에 있고 또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영원한 예정 영계와 물질계 모든 존재의 이 창조 창조가 그 배경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모든 것이 배경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거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이제 나타날 것은 뭐이냐 하나님의 예정 하심이 이 무한하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지고 나타나시는데 자존하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존하신 사랑이 기쁨이 뜻이 하나님의 목적이 이 나타나셔서 모든 창조 모든 예정을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 영원무궁의 세계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 가지고 우리를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의 이 대속을 주시고 대속받은 우리들을 때가 찬 경륜의 그 순서대로 우리를 창조하셔서 우리가 나게 됐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난 것이 내가 나고 난 다음에 사죄와 칭의를 받은 줄 압니까? 아니요 내가 있기 전에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을 이것을 예수님의 대속으로는 이루어져 가지고는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로마서 8장에 보면은 "우리의 의는 영원한 때 전부터 결정됐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우리의 구원 에베서에서 말씀했습니다. 에베소 1장에도 말씀했고 데모데전서 1장에도 "우리의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한 영원한 때 전부터 우리 구원이 결정됐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순위를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가 이 그리스도의 목적 안에서 때가 되니까 우리가 지음을 받아 가지고 지음 받은 것이 하나님이 미리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이 공로를 입은 자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입은 자로 지음 받아 가지고 땅 위에서 이렇게 저렇게 사는 것 이런 순서도 닥치고 저런 순서도 닥쳐서 택한 자들이 닥치는 순서가 참 천태만상입니다.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다 있는데 이것이 뭣대로 되는 것이냐? 나기 전에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이렇게 저렇게 이루어져 갑니다. 이루어져 갈 때에 그때에 닥치는 모든 존재 사람이든지 물건이든지 닥치는 존재가 움직이는 운동이나 그 모든 것이 임시 임시 일시에 갑자기 나타난 돌연적인 돌발적인 것입니다. 아니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절대 내가 영원전 계획하시고 예정하시고 지오논 고 결박 고형을 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절대적인 그 역사 속에서 고대로 이루어져 가지고 고 순서를 통해서 무궁한 구원이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하면 자기 앞에 이런 존재가 닥치고 저런 존재가 닥칠 때에 그 존재로 인해서 내 구원이 이리되고 저리 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기 쉽습니다. 나는 모든 존재 내 앞에 이십세기에 이 문화가 있다 하면 이건 뭐입니까 움직임입니다. 움직임 이십세기의 이십세기의 원자가 있다하면 이 존재입니다. 이제 이런 강대국이 있다 그것도 존재입니다. 이 모든 세계에 그 국제에 운동이 정치의 역사들이 이런기 있다 그거는 움직임입니다.
그러면 움직임 모든 존재보다 움직인 그것이 먼저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모든 존재보다 움직인 그것이 먼저 있어 가지고 움직인 그대로 존재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존재의 순위가 존재 그 실존 실존 그것보다 하나님의 예정이 앞섰고 예정이 앞섰고 예정보다 위에 있고 앞서있는 게 뭐입니까. 하나님 목적 하나님 목적이 뭐입니까 하나님의 목적이 뭐 이지요. 하나님의 목적이 뭐입니까. 예 네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 구원입니다. 네 하나님 목적이 우리 구원, 우리 구원이 뭐입니까.
또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뭐이요 하나님 하나님 형상 하나님의 형상이 뭐입니까 하나님의 교회 네 하나님의 목적이 하나님의 교회요. 교회는 이건 어떤 위치를 가졌는가? '하나님은 머리요 교회는 몸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교회는 그 몸이라 만물은 발등상이라. 그러면 교회는 뭣하는긴고 만물에게 하나님의 충만을 충만케하는 것이 교회라 그렇게 에베소 1장 끝절에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그러면 모든 존재 위에 하나님의 예정이 있고 예정 위에 예정보다 먼저 예정 위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교회가 있고 목적위에 무엇이 있습니까 네 자존하신 하나님, 자존하신 사랑, 자존하신 기쁨, 자존하신 뜻, 자존하신 하나님이 자존하신 사랑으로 아무 것에게 피동되는 것이 아니고 자존의 사랑으로 자존의 사랑 이 사랑은 영원 자존의 사랑이요 이 자존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 것에게도 피동받지 않는 하나님 당신이 당시 홀로 당신 홀로의 홀로의 그 사랑이 자존의 사랑이 자존의 기쁨이 자존의 그 온전함이 자존의 뜻이 이 구원을 작정해서 이 구원 위해서 모든 걸 예정했는데 어떤 움직임이 우리 구원을 해칠 것이냐 그말이오 어떤 움직임도 우리 구원을 위해서 움직임이 있다는 것 어떤 존재가 우리 구원을 위함이 하나님의 작정대로 존재된 것이 어떻게 그것이 역습을 할 수가 있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이는 자기가 자기 존재가 있고 자기로 말미암아 무엇이 이루어져 가는 것 아닙니다. 자기라는 존재가 이거 생기기 전에 생기기 전에 나를 어떻게 할라 하는 하나님의 예정이 그보다 앞서 있었고 그 내라는 존재는 이거는 창조주기 때문에 내라는 이 존재가 있기 전에 이 창조 내가 창조되기 전에 내게 대한 하나님의 예정이 있었고 하나님의 예정이 있기 전에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욕망하신 하나님의 영광에 찬미되게 하려고 했다 하나님이 기업으로 삼으셨다 이 하나님 목적입니다. 이러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자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존재가 하나님의 예정을 흔들며 하나님의 예정대로 움직이는 이 세상에 역사가 하나님의 목적인 우리의 구원을 흔들며 우리의 구원이 아무리 크지마는 자존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좌우할 수가 있겠냐 그말이오.
그러므로 우리 구원은 이렇게 광대해서 그 길이와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측량 못한다고 에베소서에 말씀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이 사랑을 넓이와 길이와 깊이를 측량 못 해.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기 전에 측량 못 해. 이런 큰 구원이 이루어진 것인데 우리 앞에 요런 무슨 일이 닥쳤다고 구원이 희덕거리고 저런 일에도 구원이 휘덕거리고 우리는 죽든지 살든지 있든지 말든지 그 모든 것이 내 구원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존하신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구원이 시작된 것 그는 불변의 하나님이십니다. 완전의 하나님이시요. 변동이 없는 것이요. 이렇다 할 일 없습니다. 그는 영원불변의 완전의 하나님이시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 구원이 시발됐습니다. 이거는 피조물이 건드리지 못해 이 구원을 위해서 모든 피조물이 있어 모든 움직임이 있어 모든 움직임은 우리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모든 존재 우리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 모든 존재보다 큰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요 움직임이요 움직임보다 큰 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우리의 구원보다 큰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의 근원과 큰 것을 언제든지 기억하고 있어야 되고 또 믿음이 뭐이냐? 모든 존재를 볼 때에 크고 작고 흉하고 길하고 내 앞에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나타난 공산주의 독침이 올 때에 그것을 독침은 존재에 속했어 하나님의 창조에 속했어 하나님이 그걸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걸 지으셨소 인간들이 이렇게 만든 것 같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재료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서 짓기도 하고 그 또 짐승을 통해서 짓기도 하고 어쨎든지 지으시는 하나님이시요. 지으실 때에 이것 저것을 사용하시기는 별별 것 사용하시지마는 지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이 짓기 전에 아무도 못지어. 이 이십세기의 과학들이 별별걸 만들지마는 만드시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에 도구로 쓰신 것은 이 사람도 쓰고 저 사람도 쓰고 오만걸 쓰시지마는 만드신 이는 당신입니다.
이러기에 내 앞에 독침이 왔을 때에 존재요. 독침을 가지고 위협을 주는 그 사람이 존재요. 이것은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내 구원 위해서 지으신 것이니, 이것은 내 구원을 이루는 것이니 나에게 보배라 이거는 내 밥이라 이거는 자기가 잘 먹고 소화만 하면 돼. 위협을 하고 협박을 한 그거는 운동인데 움직임인데 그거는 뭐이냐 날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라.
예 나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대로 이제 순위대로 나타난 것은 예정하신 것이라 존재도 내 구원 위해서 이 모든 움직임도 내 구원 위해서 내가 뭐인데 당신 크신 분 당신이 목적으로 그러기 때문에 그 목적이 커서 그렇지 이러기 때문에 모든 존재 모든 움직임이 내 구원 위해서 있는 것인데 이게 없으면 내 구원은 완성이 안 됩니다.
이것이 내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인데 완성 위해 있는 것인데 이것이 내 구원에 대해서 비유컨데 아주 고양진미와 같이 영양분이 많은 보배로운 것인데 이걸 내가 잘 먹어서 소화를 해야 내 피와 살이 힘이 되는 것처럼, 이 나타난 존재와 이 움직임 이것을 내가 잘 먹어서 이게 내 음식이니까 내가 먹어야 되겠는데 내가 잘 먹어 소화시킨 게 뭐이냐 고게 영감과 진리가 나에게 인도하는 고것이 내가 먹는 것입니다.
"내 피와 살은 참된 음료라" 하는 것은 내가 고 피와 살을 생각하면서 행하는 그것이 먹는 것이라 고말이오. 고럴 때에 요 현실에 내라는 그 그리스도의 그 사랑 인격이 신앙인격이 요것을 어떻게 요것을 소화를 시키야 되겠느냐 어떻게 요것을 삼키야 되겠느냐 어떻게 요것을 네가 먹어서 소화를 시키야 되겠느냐? 고게서 하나님이 내게 인도하시는 영감 인도대로 고것을 행하면 고것을 잡아 먹었습니다.
네 그러면 이제 어려운 것은 영양이 더 큽니다. 이제 무른 식물 젖어릴 때는 젖으러 먹이지마는 장성하면 여문 물건 먹입니다. 여문 물건 여문 음식 여문 음식이라야 양분이 있지 그 젖은 어릴 때에 어릴 때에 젖과 젖으로 먹이지마는 장성하면 그 여문 음식으로 먹인다고 말씀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를 놓고서 앞에 있는 그것은 꾀 단단한 여문 야문 떡인지 야만 찰떡인지 야문 고기덩어리인지 모르겠어 제법 야물러 그랬는데 다니엘은 고거슬 착 먹어서 소화를 잘 하고 보니까 아마 다니엘이 그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는 다리오 왕 하고 시험하는 그 현실과 그 존재와 그 움직임 그 존재는 나 위해서 하나님이 지으셨다 움직임은 나 위해서 이 움지■ㅐㄱ임을 하나님이 예정하셨다 고것을 확실히 알아서 믿음으로 고것을 자기가 먹어야 되고 삼키야 되는 그 식물인줄 알고 자기가 마시야 되는 잔일줄 알고 고것을 달게 마시니까 마시기전 다니엘과 마시고 난 다음에 다니엘과는 그 중량도 다르고 능력도 다르고 그의 가치도 다르고 키도 달라 힘도 다르고 여러분들 이걸 알아야 되 이걸 알아야 됩니다. 이거 모르면 안 돼.고 하면 잘하면 이제는 자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존재를 하나님의 예정보다 앞세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우리 구원보다 앞세우면 안 됩니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예정대로 존재된 것이요. 존재와 예정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존재한 것이요. 우리의 구원이라는 교회 하나님의 목적 이거와 모든 예정 모든 존재 이게 크지마는 하나님은 그 위에 자존하신 분으로써 이분이 역사하시 가지고 이 세 가지가 나온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이렇게 큰 구원이기 때문에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치든지 놀래지 말고 염려치 말고 영원전 그것이 예정된 것인데 내가 어떻게 이리저리 변동하겠느냐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원망하면 심판받다 심판을 받는다 네가 어떤 현실을 당하든지 원망하지 말아라. 그러면 네가 심판 받는다 원망하지 말고 너에게 닥친 것이 내 구원을 위해서 영원전 예정된 영원전 창조된 이대로 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내가 어떻게 소화를 하나 어떻게 먹나 여기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내 구원이 되나 요거만이 우리 할 일이지 잘못하면 역습을 해 가지고 실패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바른 그 교리와 신조를 가지지 못하면 그 사람의 구원은 잘 이루었다고 했는데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이요 모래 위에 지은 집이요 내나 예수 믿었다 하는 것이 자기가 뿌럭지입니다. 자기가 뿌럭지 하나님 뿌럭지 되지 못하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 있어야 됩니다. 깨어 있지 안하면 안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