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15단계

  선지자선교회

1980. 1. 19. 토새벽

 

본문 : 요한복음 9: 35-41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대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 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나와 지금 나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려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녹음 없음*)

지난 밤에 간추려서 다섯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온 후로는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지경까지 이를찌라도 예수님을 믿는 증거는 불만 불평 원망없이 감사와 소망으로 참고 견디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드러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런 형편에 소망과 감사와 인내를 가지고 어떻게 멸망할찌라도 끝까지 그 명령에 순종하는 이것이 있으면 좋은 결과를 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도리대로 살 때에 사는 일이나 죽는 일이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어떤 것이 닥칠찌라도 이것은 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내가 주님의 뜻대로 살 때에 마귀가 와도, 좋은게 와도, 나쁜게 와도, 미혹이 와도, 어떤 게 와도 이것은 다 예수님께서 조정하셔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쓰시지 아니하는 마귀가 내게 와 가지고 역사를 못합니다. 우리가 믿기를 시작한 후는 나 할 일은 주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고 이렇게 살 때에 어떤 형편이 부딪혀 와도 요것은 전능자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요걸 의심하지 않아야 됩니다. 무신론자가 나를 예수 믿는다고 죽일라고 예수 믿지 말라고 해도 고것을 예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이가 하는 것이 아니요.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요. 예수님께서 내가 예수님을 믿은 후 주님의 뜻대로 내가 사는데 예수님이 어떤 자에게 양보 하지를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겼습니다. 악령을 다 이기고 이제는 악령이 종이 됐습니다. 사망도 이겼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신앙을 가지지 아니하고 삐뚤어진 길을 가도 택한 자고 내가 중생되어 예수 믿기 시작했으면 내가 죄를 지어서 엉뚱한 데를 가도 내게 부딪히는 것은 죄 값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죄 지은 나로 하여금 구원 얻는데는 어떻게 돼야 되느냐 하는 구원의 순서로 오는 것입니다. 요걸 우리가 명심하고 단단히 잡아야 합니다.

 

 

 

(* 여기 부터 음성이 나옴* )

죄를 지었으면 죄 지은 그 자로서 구원이 될수 있는 고 순서를 주시지 죄 지은 값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대속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 지은 값 같으나 그기 아니고 죄를 지은 그로서는 그것이 아니면 구원이 안될 그 순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의 벌은 믿는 자에게 없습니다. 그것은 잘못됐을 때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사랑 안에서 희망을 가지고 고쳐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시는 사랑의 채찍, 징계지 벌은 없습니다.

 

요런 걸 아주 똑똑히 판별을 해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믿고 내가 믿은 후에 어떻게 내게 부딪혀 왔든지 그것은 나에게 유익되게 온 것인 것을 우리는 굳게 잡아야 합니다.

 

'동산을 지키라' 하는 그것도 이런 뜻을 보입니다. 내게 무슨 일이 와도 아, 내게 어떻게 해 이런 일 닥쳤는가? 죄를 지어 닥쳤는가 어쨌는가? 그런 것은 다 껍데기 입니다. 자기가 죄의 징계가 와도 이 일이 어떻게 왔는가? 면저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주신 것이다. 주님이 주셨으면 왜 주셨느냐? 주님이 주신 고 실상을 자기가 알고 상대하는 고것이 동산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게 지키는 것이요. 다스리고 지키는데 고게 지키는 것입니다. 요것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왜 주셨는가의 주님의 그 사랑의 욕망을 자기가 알게 될 때에 그것은 내주관으로 감사하게 되는 그 일 보다도 내 주관이 이해 못하고 오히려 반역하기 쉬운 나와 거리가 먼 그 일에는 주의 사랑이 더 크게 들었습니다. 주의 섭리가 더 큽니다. 나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전적 하나님의 것으 로 나와의 이질적인 것 아닙니까? 그러면 자기가 온전히 기쁘게 여기지요.

 

, 자기에게 해가 되는 사약인 줄 알면, 주먹만한 것도 겁이나지마는 아. 자기에게 필요 있는 양식이라면 몇 십 가마니면 무슨 상관있소. 몇 백 가마니면 두려울게 뭐 있소 감사하고 기쁘지. 분명히 주께서 나에게 보배로 주신 것인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데에서 두려움도 나오고 낙망도 나오고 불만 불평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믿지 않는 증거요. 그러기에 우리는 여게서 깨달아 감사함이 나오고, 깨달아 기뻐 환영하면서 당신을 믿으므로 참고 견딤이 나오고, 또 여기에서 어떤 이해 못할 것이라도 사랑하는 당신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의례히 좋으리라 인정하고 순종하는 요 원리를 지켜 나갈 때에 점점 좋아지는 것이 되요. 이전보다 좋아졌소 점점 좋아지는 일이 되어지고 모든 불행을 벗고 하나님의 은총의 능력을 받아서 보게 됐습니다. 우리가 지혜를 얻게 됩니다. 지혜에는 하나님은 능력이 따로 없소. 지혜와 능력이 하나요.

 

'너희에게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구하라 주시리라' 그러면 지혜만 받고 능력 못 받아 가지고 뭐 할라고? 그 지혜는 능력도 다 포함된 것입니다.

 

그러고 다시 그 다음에 한 댓 가지로 생각할 것은 고게 부텀은 두 사람이 생겼습니다. 주의 말씀을 직접 순종한 사람이 있고, 주님 없이 말씀만 순종한 사람 있었습니다. 주님 없이 말씀만 순종한 사람들, 고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이런 사람들은 말씀만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니까 아이구 안식일인데 이럴 수가 있나 그들이 주의 말씀을 순종하기 때문에 그런 시비가 났습니다. 이제 여게서 주의 말씀을 직접 순종하는 사람과 주님 없이 말씀만 순종하는 사람과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오늘도 영감 없이 말씀만 순종하는 사람은 외식하는 사람입니다. 영감 없이 성경 연구하는 이 사람이 인본주의요 신신학이요. 뒤에 다 교회의 적이 됩니다.

 

그러니까 그 결과가 어찌 되느냐? 직접 주님에게 순종하는 이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게 됐소. 그는 뭐 죽을 줄도 모르고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 없이 말씀만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주님을 대적하게 됐습니다. 영감없이 말씀대로 사는 이 사람이 외식자요. 모든 진실한 성도들은 이 사람들 손에 잡혀서 다 순교합니다. 영감이 없으면 이 말씀은 정죄하는 말씀이요. 구원의 말씀이 아닙니다.

 

자기가 그 현실에 이 말씀을 바로 찾아 가지고 행했다 할지라도 안됩니다. 행해도 질이 다릅니다. 종류는 같아도 질이 다르요. 성령으로라야 바로 어느 말씀을 지켜야 될 것을 자기가 깨닫고 성령으로라야 그 말씀을 본질과 본성대로의 자기가 지킬 수 있고, 또 영감으로라야 주의 명령이며 이 말씀의 권위와 결과를 자기가 욕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38년된 병자도 주님 직접 만나 가지고서 명령받은 자는 그렇게 행복스러워졌는데 주님 만나지 아니하고 말씀만 가지고서 다인 줄 알고 이렇게 말씀이야 죄 지으면서도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이중 삼중 십중을 가지고도 그 말씀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안에 내주하시는 영감은 안됩니다. 영감은 제가 다해야 영감이 함께 해 주시지 다하지 아니하면 함께 해 주시지 않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우리가 지킨다고 되는 게 아니고 '어째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네가 뭐라고 배웠느냐?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러면 영생 얻는 걸 알았나이다.' '네가 바로 알았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렇게 과거, 현재, 모든 미래의 소망을 정리를 하면 자기 마음이 자유할 수 있다 그 말이요.

 

거게 불들린 다 밧줄이 다 끊어졌으니 그 마음이 자유할 수 있어 자유하는 마음이 돼요. 자유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가면 자유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거 다 된 게 아니라 이것을 가리켜서 양심이라 말한 것인데, 이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욕망하고 그를 찾을라고, 그를 만날라고, 그에게 피동될라고 이렇게 하는 이 자유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애쓸 때에 비로소 영감 받은 마음이 됩니다. 그 마음에 성령이 접선이 되고, 자기가 아는 것도 더 알아지고, 믿는 것도 더 믿어지고 해서 고기에 합당한 분량에 도달된다 기요. 이러면 진실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여게 보니까 내나 성경 말씀 가지고 예수님 대적했습니다. 성경 말씀이 주의 말씀 아닙니까? 주의 말씀을 지킴으로 예수님의 대적이 됐소. 주의 말씀을 지킴으로 은혜 받은 사람의 대적이 됐소. 이 소경은 누구 말 지켰소? 주의 말씀 지켰지. 주의 말씀 지킴으로 이는 주를 사랑하게 됐소. 그 사람들과 대립이 됐습니다. 요것을 우리가 아주 놀래게 깨달아야 됩니다.

 

내나 주의 말씀이요. 안식일날 아무 것도 하지 말라 하는 것도 주의 말씀이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 하는 것도 주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하시는 일을 계시하시기 위해서 하셨다고 주님이 설명을 했습니다. 이 환자는 주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주의 구원을 계시하기 위해서 하심이라고 말씀했소.

 

요렇게 영감으로 영감 받아 주의 말씀대로 사는 자와 영감 없이 주의 말씀대로 사는 자와의 두 갈래길이 생겨, 영감 받아 주의 말씀대로 사는 그 사람은 양심을 가졌어. 자유. 자유를 가졌어. 돈에도 뭐도 아무데도 붙들리지를 아니했어. 고게 붙들린 자는 고 밧줄을 끊기 전에야 제가 아무리 힘이 세다 해도 그 밧줄을 떼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못 갑니다.

 

요럴 때에 공정하고 정확하게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저 사람들은 주님을 미워하게 됐소. 와 미워하게 됐습니까? 그들이 이제 까지 해 놓은 그것에게 붙들려서. 자기네들이 맺은 만든 그게 우상이 돼 버렸소.

 

바리새인이라. 바리새교파가 있고 나는 서기관이라. 저거가 노력해 가지고서 만든 그것 때문에 나면서 눈먼 자의 눈을 떴으니까 이거야 하나님의 권능인 걸 번연히 알지마는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이거 보수할라고, 저거 바리새교 보수할라고, 바라새교파 보수할라고, 서기관의 지위와 권위 보수할라고 그것이 자기가 만든 우상입니다. 만든 우상. 오늘도 주를 힘 입어서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을 만들어 놓고도 영감 떠나가면 그것이 우상됩니다.

 

사울 왕이 이렇게 한 게 귀한 거 안했소? 사울 왕이 아말렉 족속의 한 사람 남기고 다 죽였고, 짐승 몇 마리 남기고 다 죽였으니까 얼마나 옳은 일 했습니까? 그렇지마는 영감이 떠나니까 그 전에는 영감이 있는 사람인데 사울 왕이 제일 나아서 그를 택했습니다. 영감 떠나고 보니까 자기가 해 놓은 이력이 그만 그것이 우상이 돼 버렸어. 승리의 자기 성공의 그 비를 세우고 망령을 부렸습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위해서 대내적인 이 투쟁이 없을 때는 벌써 마귀의 것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결과로 소경은 주님을 사랑하게 됐고, 저들은 주님을 대적하게 됐고, 고게 세째로 소경은 누가 그리 시키지도 안했는데 고만 주님의 편이 됐소. 주님에게 소속해서 주의 편이 됐단 말이요. 이거 옳은 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주의 편이 됐소.

 

고만 주님에게 속하니까 그에게 생각하는 것이나 나오는 것이나 주님의 편이 되다 보니까, 자기의 지식을 초월한 의로운 것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저들은 주님의 편이 되지 못하고 저거 편, 인간 편, 저거 편, 인간 편 됐습니다. 저거 편 인간 편이 되고 나니까 모든 게 어두워져.

 

그러기에 소속이라 하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어떤 단체라도 그 단체가 주님에게 소속했다면 주님에게 편이 됐다면 모든 사고 방식이나 모든 것이 다 그 편에서 거게 소속해 가지고 되는 것이고, 소속이 틀려 버리면 벌써 편이 잘못된 것의 편이 돼 놓으면 자꾸 생각하는 것이 거꾸로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나갑니다. 나가다가 아, 우리 교파니까 아니요. 우리 진영이니까 아니요. 어쩌든지 이 보담 좋은 것이 있어 확실히 좋은 것이 있으면 빨리 재빨리 옮겨져야 됩니다. 옮겨서야 돼. 여게보다 좋은 길이 있으면, , 그래도 이거 내 좋은 길이니까 아니요. 재직회를 해도 재직회를 했는데 하는데 보니까 거게서 제일 옳은 거, 비슷한 거 있소.

 

그러면 내가 비슷한 편에 섰더라면 자기가 제일 이것이 바르다 옳다 싶으면 재빨리 옮겨서야 돼. 뭐 사정볼 것 없소 뭘 본단 말이요. 옳은 데 거게 주님이 같이 계시요. 옮겨 서야 됩니다. 자기가 옳은 줄 알고, 옳은 데로 옮겨서지 않는 것이 그것이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요. 그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옳은 것은 자기 몸보다 자기 목숨보다 크요.

 

이러기 때문에 옳다 싶으면, 어린 아이의 말이라도 미칠괭이 말이라도 속히 받아들여서 내가 그 옳은 것과 같이 해야 됩니다. 이러기에 슬기 있는 사람은 사람을 만났을 때 자기 아무리 원수가 말한대도 자기의 관념을 가지고 자기의 자기라는 것을 새워서 자기 편이 돼가지고 저는 나의 대적이기 때문에 모든 접촉하는 것과 듣는 것을 대적으로 두고 해석하지 않습니다.

 

냉정스럽게 띄어두고 할 때에 아, 주님이 저를 통해서도 나에게 무엇을 하실지 모르니 내 편도 네편도 그 사람 대적도 뭐도 아무 것도 아니고 옳은 것만 찾습니다. 거게서 아무리 대적의 입에서라도 옳은 말이 나왔을 때에는 자기 마음에 기억합니다.

 

! 저 말 옳다. 내가 이 말에서 회개를 해야 되겠다. 요걸 작정을 해야겠다. 모든 일로서는 의로운 일, 이치로서는 참된 이치, 주체로서는 주님을 자기의 상대의 주체로 삼아서 이래 나가는 것이 이것이 믿는 사람의 정상적인 사상이요 태도입니다. 거게 네째로 이라고 보니까 이제는 편이 달라지니까 소경은 견해가 발랐소.

 

아 그게 배우지도 못했는데 날때부텀 소경 됐으니까 그때 뭐 소경 가르치는 그런 게 없었는데, 그 소경이 어떻게 그 견해가 바른지 아, 하는 권능 보면 알지 않느냐? 하나님은 의인을 들으시고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는 줄 안다. 그의 하는 거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온 분이시다. , 바리새교인과 서기관들 그 모두 다 위대한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은 견해가 달라져 버렸어.

 

아무리 위대한 일 했지마는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했지마는 안식 일을 범했으니 안식일의 주인이 안식일 당신이 안식일로 정했기 때문에 안식이 되는 긴데, 안식일의 주인인데, 안식일은 그 분의 명령 하나에 따라서 이루어진 것이요. 안식일의 주인인 직접 당신이 안식일의 그 핵심, 안식일의 정점, 절정, 안식일의 목적을 달성하는 이 일에 대해서 오해를 했습니다.

 

바른 견해를 가지지 못하고 오해 했소. 영감 없는 생활에는 오해만 나옵니다. 영감 없는 생활에는 주님의 대적이 되어지고, 주님은 영감 없는 생활에는 인간 편이 되어지고, 영감 없는 생활에는 모든 면에 오해가 되어지고, 영감 없는 생활에는 벗은 것을 압니다. 벗은 것을 아요. 이 소경된 자는 모든 것을 바로 견해하니까 두려울 것이 없어.

 

, 소경이 그 담대했소. 저거 아버지는 출교할까 당할까 싶어서 겁을 내고 지금 저한테 물어보라고 이렇게 회피하는데 그만 슬그머니 그만 내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 했으면 예, 하고 나가버리면 될 터인데 끝까지 그때는 죽입니다. 범할 때는 아, 예수님도 죽였는데 뭐 죽이는게 무슨 문제가 있소. 이런데 이 소경으로 눈 뜬자는 담대합니다. 그 바리새교. 그때 전국 교회가 유대교인데 유대교인데 유대교도 하나도 두려 워하지 아니하고 일대 일로 그것을 상대해서 이 혼자 이것이 담대히 싸워나갑니다. , 당신들도 믿을라고 듣고자 합니까?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들으시고 죄인을 듣습니까? 이렇게 바로 깨달았을때 거게 담력이 나옵니다.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나오는 것은,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 외에 두려움이 오는 것은, 이것은 바로 깨닫지 못하는 거기에서 바른 노선에 서지 아니했기 때문에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세째번에 다섯 가지, 이 사람은 보지 못했소. 다른 사람들은 봤습니다. 그게 다릅니다. 자기의 지능, 자기의 지능으로 무엇이 될 줄로 알았지마는 이 사람은 소경이요. 자기 지능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능이 없는 자라는 것을 여게 나타냈습니다.

 

둘째로 자기가 부인된 자는 보게 됐습니다. 자기 부인해야 자기 부인해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바로 보게 됩니다. 자기를 인정하는 자는 보지 못하게 됐습니다. 보지 못하게 되지 안했습니까? 예수님을 보지 못했소. 예수님의 하시는 일도 보지 못했소. 보는 자는 보지 못하게 되고, 보지 못한 자는 보게 된 요것을 우리가 잘 연구해야 됩니다.

 

세째로는 이 소경은 생명의 주를 전합니다. 이제 자기 부인하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알게 되니까 주님을 바로 증거하게 됐소. 저 사람들은 주님을 가리웠소. 주님을 자꾸 딸치 못하고 가루고 있었소.

 

네째로, 소경은 이제 죄를 벗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소. 저희들은 죄가 그저 있었습니다. 삐뚤어지게 그저 있었다 그 말이요. 이 사람은 삐뚤어진 걸 벗어 버렸소. 이제는 모든 것이 바른 것만 알고 바로 해. 저 사람들은 죄가 그저 있어. 삐뚤어진 게 그대로 있어.

 

다섯째로, 이 소경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 사람들은 그것으로 멸망 받았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따라다닌 몇 사람만 유대인으로서 구원에 이르렀지, 나머지기는 다 무화과 나무가 뿌리로 부터 마른다고 말씀한 그대로 그때에 참 전멸을 당했습니다.

 

이래서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 도리를 계시해 주시는 것인데 지낸 밤에 다섯 가지, 오늘 아침에 다섯 가지, 다섯 가지 합해서 열 다섯 가지, 요것을 잘 돌아서 돌아가서 연구하면 요것 가지고 자기 교회에 한달 가르칠 수 있소. 한달 가르쳐야 됩니다.

 

하나씩을 구경만 시키지 말고, 여러분들 여게서는 왔다 가기 때문에 이렇게 잠깐 연결만 시키는데 내가 여게서는 하루 새벽에 한 가지씩 가르칩니다. 말씀을 구경만 시키지 말고, 말씀을 자기가 깨닫고 실행하는 사람을 만들어야 됩니다.

 

사경회 가 가지고서 강사로 가도 가면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요것을 가서 가르치라 했으면 고 하나를 똑똑히 알도록 가르쳐서 고걸 실행하는 사람 만들면 고거 하나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고 말씀하신 대로 고거 하나로 차차차차차 알아서 지극히 큰데까지 이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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