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 목사님 옥중편지와 설교 (13)
선지자선교회
손양원목사설교/예수님의 부활이 나에게 어떤관계가 있는가
예수님의 부활이 나에게 어떤 관계가 있는가
고전 15:20~28(20-23)
기독교는 두 말 할것 없이 부활의 종교인 것이다. 기독교란 예수님의 부활로 부터 역사적 사실로 전개 되었으며 기독자란 예수님의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로 해서 획기적 중생 생명의 씨가된 것이다.
고린도 전서 15장은 58절이나 되는 긴 장인데
(1) I~ll은 예수님께서 확실히 부활케 되셨다는 역사적사실의 증명이요.
(2) 12~19은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부인 하는 자를 반박하는 것이요.
(3) 20~28은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하고
(4) 29~34은 부활 종교 아니면 아무 공효 없는 것을 말하고
(5) 35~49은 내세 부활 영체의 각 모양의 영광을 말하고,
(6) 50~53은 부활의 능력을 말했다.
이상 여섯가지 중에서 오늘은 근본 요점이 되는 세째 대지를 말하고저 한다.
예수께서 무덤에서 이미 부활된 사실은 우리가 벌써 믿었고 온 세상이 다 믿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말하지 않겠다. 다만 예수님의 부활이 나에게 상관 된 세가지 사실을 들겠다.
1. 나의 신앙에 확신을 주는 용기가 됨
부활이란 대속 하시기 위해서 돌아가신 증거가 분명히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열매가 맺어지게 되었다.
사도들이 그전까지는 비겁했으나 부활 주님을 만나고 성신 받게 된 후에는 큰 용기를 얻어 강하고 담대해진 것을 볼수 있는 것이다. 도마 같은 인물도 전설에 의하면 수리아에 가서 전도하고 다시 인도에 가서 전도 하다가 자객에게 창으로 쩔리워 순교 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의 신앙에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알게 되고 영생의 생명을 믿게 되며 진실한 증거를 하게 됨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함은 이런 신앙의 확신을 주는 말씀이다. 그래서 나는 사죄의 기쁨을 가지게 되고 신앙 생활에 용감해 지는 바이다.
2.기독자의 중생 생명의 종자가 되어 주시었다.
육적 인간이었던 우리가 영적 인간이 된다. 첫째 아담에게 속했던 우리가 두째 아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된다.이로써 영적 인간으로 되는 획기적인 중생의 씨가 되는 법이다.
로마서 4:25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 나셨느니라' 한말씀을 볼 때에
(1)십자가는 원죄와 본죄를 다 없이 해 주시는 것이요
(2)부활은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니 처음 익은 열매의 종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소(小)에서 대(大)로 발전 한다는 것보다, 병에서 완쾌된다는 것 보다, 무(無)에서 유(有)며,사(死)에서 생(生)인 것이다. 이처럼 주께서는 중생 생명의 처음 열매가 되어 주신 것이다.
3 기독자 생명 성장(成長)의 표준올 완성 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체는 부활 전의 몸과는 다른 몸이었다. 굼뱅이가 변해서 되어진 매미지만 그 모양이 다르고 그 생활이 다름 같이 부활 전과후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예수님 같이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우리의 신앙 생명이 성장해야 하겠다. 각종 식물(植物)이나 동물에서 이런예를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우리 기독자의 신앙이 어디서 부터 시작 되는 것과 기독교의 중심이 무엇임을 분명히 알고 기독자의 중생 생명이 얼마나 귀중함을 알아야 하겠다, 그리스도의 생활 그리스도의 부활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무궁 무진하신 그를 본받아 우리들도 부활의 소망중에서 성장하자!
손양원목사설교/내가 왜 예수를 믿게되는가?
내가 왜 예수를 믿게 되는가
딤후 1 :3~14(12)
내가 예수를 믿게 된 그 근본 원인이 어디 있는가 과거와 현재에 있어 그 원인을 들어 본다면 다섯가지를 생각 할 수가 있다.
1. 구원을 받게 된 까닭이다.
내가 믿게 된고로 구원을 받았느냐 구원 받았으니 믿게 되느냐 생각해 볼때에 바울도 만세 전부터 택함을 받았다고 하였으니 나도 하나님의 예정하신 구원을 받게 되었으므로 믿는 것이다. 그런고로 내 신앙은 완전하고 내 구원도 틀림없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믿게 해 주심으로 믿는 내가 된 까닭이다. 내 구원은 자동적이아니라 타동적이다. 믿는 것보다 구원 받을 일이 앞선 것이다. 그러니 구원을 받게 된자가 구원해주신 이를 향하여 어찌 믿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요 자위적(自爲的)인 것도 아닌 하나님에게서 나온 구원을 아니 믿을 수
없어서 믿는 생활이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은 누구 누구의 눈을 보아서나 체면을 보기 위해서 믿는 생활이 아닌것이다.구원해 주신이에게 구원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나타내서 영광을 돌리는 생활인 것이다.
2. 내 영혼의 존재를 특인 (特認)케 되는 까닭이다.
내가 나의 영혼을 시인(是認)하게 된다면 하나님을 아니 공경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육체의 몸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영혼을 시인하게 되는 나로서는 천부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영혼은 부모를 통하여 내려 온 것이 아님이 분명한 사실이다. 어떤 철학자는 '철학이란 회의(懷疑)에서 시작된고로 모든것을 의심한다. 그러나 영혼이 존재한 것은 부인 할수가 없다'고 했다.비단 철학자 뿐이랴! 과학자들도 영혼만은 인정하는 이가 많다. 영혼 불멸설(靈魂不滅說)이란 이래서 생겼다. 그래서 영혼이 있음을 확신하게 될 때에 천부를 경외하는 것은 나의
본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기독자가 된 것이다.
3 세상에 도덕 생활이 있는 까닭이다.
세상에 죄가 있는것 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또 다른 방면에 도덕적인 생활을 하는이도 많다. 기차를 타 보면 악한 사람도 있으나 좋은 사람들도 많듯이 세상에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잔인하고 난폭한 행악자들의 반열에 들고 싶지 않고 인도와 정의를 부르짖고 사는 선인 (善人)반열에 살고 싶었다.그래서 참으로 선하고 참으로 의로운 종교인이 되고저 한 것이다. '선은 우주 만물보다 귀하고 의는 지구보다 무겁다''불의는 지옥보다 무섭고 죄는 염병(染病)보다 겁난다'그래서 나는 지선(至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저 한 것이다.
4. 주님의 십자가 지심과 부활케 된 사실 때문이다.
나는 종교적으로 믿지 않고 예수교가 다른 종교에 비교하여 볼 때에 더욱 좋은 특이점이 있어서 믿게 되었다. 내가 믿는것은 종교적 관념에서 믿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실 때문에 믿은 것이다. 나의 신앙은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이다. 꼭 십자가의 사랑 부활의 소망때문에 믿게 된 것이다.
세상 다른 종교에 비해서 기독교에 없는 것이 있기도 하나 다른 종교에 어디서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십자가 상의 대속의 도리와 장사한지 삼일만에 된 부활의 신 기원이다.중생의 생명은 말 할것도 없고 보혜사 성신의 역사도 없는 것이다. 다른 종교에는 대개가 영생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5 미래의 구원보다도 과거의 신애(神愛)에 감격한 까닭이다.
(나의 신앙의 4단계 이야기)
하나님의 사랑의 조건들을 들면
(1)성부의 사랑 . 예정 해 주신 사랑, 독쟁자 보내주신 사랑, 성신 보내주신 사랑, 성경 주신 사랑
(2)성자의 사랑 : 사람되어 오신 사랑, 인간고를 당하신 사랑,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랑, 부활하사 중생 생명 주신 사랑, 승천하시어서 천당 길 열어 주신 사랑
(3)성신의 사랑 : 내 일생을 보혜사를 통하여 지도해 주신 사랑, 날마다 탄식하시며 대신 기도하시는 사랑, 나의 구원이 완성 될때까지 인내하고 노력해 주시는 사랑
이상 삼위의 사랑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시행되는 것이다. 또한 미래에도 반드시 있을 것이니 나는 이 3위의 사랑을 깨달은 자에 합당한 사랑의 종이되겠다. 이런 사랑을 받고 어찌 배은망덕(背恩亡德)하는 불신의 생활을 할 수 있으랴! 즉 내가 하는 신앙 생활은 미래에 있을 복보다도 과거에 이미 받은 3위에 사랑에 감격해서 사랑의 종이 되고저 함에 있다. 내가 범죄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나의 당하는 수치나 육이나 지옥에 들어가는 벌 때문보담도 3위에 큰 사랑을 깨달은 까닭이다.
ㅁ결 론
내가 신학교에 있을때 사도행전 4:12를 공부하는데 어떤이가 이런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즉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읍이니라'에 대하여 말하기를 다른 종교에도 각각 제 종교마다 났다고 하는 이론이 있으니 어떻게
그 진위 (眞僞)와 시비(是非)를 판단하지요‘ 하였다 그러나 내가 알기에는 다른 종교 도리에 대한 이론이나 설명이 있기는 하나 행 4:12처럼 명백하게 설명한 어구는 없는 줄 안다.
또 혹 있다고 가정한대도 신자의 체험에 확신이 있으니 의심할 염려가 없는 줄 안다.
기독교는 성신의 종교이니 사람의 지능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성신이 주장이시니 염려할 것이 없다. 하나님의 택함받아 구원받은 자라면 다른 설에 절대로 등을 대지 않으니 안심된다.
다만 내가 주님의 참 양이 되었느냐 만이 문제인 것이다.양은 제 주인의 소리만 구별할줄을 알면 되는것이다. '오! 주여 오직 당신만 따르고저 하는 만세 반석 같은 불변의 신앙을 주시옵소서' 할 뿐이다.
불신 생활의 허망함이여! 인생과 만물의 과거 기원이 애매하니 그 적막한것 말할 수 없겠고 인생의 현재 생활에 의뢰하고 신탁(信托)할만한 곳이 없으니 진정한 위안을 받을 길이 없지 않은가, 또한 인생의 장래의 소망과 목적하는 곳이 없이 살게 되니 무슨 참다운 기음이 있겠는가!
그러나 참다운 종교에 나아온 사람의 큰 복이여! 금세의안심 내세의 영생은 그의 소유가 된것이 아닌가.
손양원목사설교/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주안에서 죽는자들은 복이 있도다
(계 14:13 ,히11:33)
(대한 예수교 장로회 제36회 총회 주최로 거행한 고 최봉석 목사 고 주기철 목사 순교 추도예배 설교)
1944년 4월 31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날입니다. 내가 청주 옥중에 있을 때에 아버님에게서 암호(暗號)편지가 왔습니다‥‥‥전략?여숙(汝叔) 최 권능씨는 4월 19일 본고향 가고, 여형(汝兄) 주기(朱基)는 4월 21오후 9시에 본 고향 갔다‥‥‥운운'한 편지였습니다. 즉 고 최봉석 목사님과 고 주
기철 목사님의 별세하신 내용의 암호 편지 였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부모나 자녀가 별세했다는 소식보다 더 슬퍼서 30일 동안 잘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애곡하였습니다. 곁의 사람들이 '친구를 이같이 사랑하는가?하였지만 나는 위대한 지도자를 잃은 우리 조선 교회를 생각한 것이였습니다. 그들을 추모하는 이 밤 새삼스럽게 내맘이 뜨거워집니다.
계시록 14:13에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자들은 복이있도다'하였으니 그 자취와 그 피 떨어진 이 강산이 복되고 소망이 많다. 내가 이 지구를 바라보니 큰 무덤과 같이 보인다. 과거 수 많은 사람들의 죽은 무덤이 이 지구 속에 묻혔다. 세계 통계상으로 보면 1초 동안에 한 사람 반씩 죽는다
하니 인간 육천년 동안에 묻힌 무덤은 얼마나 많으랴! 나도 죽어서 땅 속에 묻힌 해골들에게 물을 수있다면 즉 너희들은 무엇하다가 죽었는가'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여러가지 대답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나는 복통으로 죽었소, 혹은 '나는 두통으로' '나는 전쟁으로' 하겠지만 순교자 스데반의 뒤를 이은 최봉석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께서는 '우리는 예수를 위하여 피 흘리고 왔다'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이밤에 그들의 뒤를 이을 준비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살고 죽는 목적은 천태 만상이겠지만 이들을 종합하면 다섯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자기를 위하여 살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극단의 이기주의 자는 그 일생 동안 자기 평강만 위하여 살다가 죽었으니 죽는 그 날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소위 개죽음입니다.
②윤정(倫情)을 위하여 죽는자이니 부모를 위하여 효성을 다 하였으면 죽은 후에 효자비가 남겠고 남편을 위하였으면 열려(烈女)라는 이름을 얻겠으며, 자녀만 위하여 수고하였다면 노경(老境)에 좀 평안할것 뿐입니다.
③나라를 위하여 죽는 자이니, 충신이되여 국사(國史)에 이름이 남아, 자손 만대에 그 이름이 전해 지겠습니다.
④인류 도덕을 위해서 죽는자이니 공자나 석가같은 도덕가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인도(人道)를 위하여 살다가 죽었으니, 인간 역사가 있는 동안에는 그 이름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 모든것은 하늘에서 별들이 떨어지고 하늘은 종이(紙)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옮겨
갈 때가 을 때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⑤ 예수님을 위하여 일생을 눈물과 피를 흘리다가 죽는자 입니다. 이제까지 순서대로 말한①에서 ④까지는 영생에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공산주의 인도주의 무슨주의 하지만 그 결국의 소득은 별로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살다가 죽을 바에는 무엇을 위하여 살다가 죽을까요. 성경에 '행한일이 따름이다' 고 하였으니 주의 일을 하여 이 세상을 떠날때에 주께로 갈 것입니다. 됫집 박서방집에서 일하고 앞집 이서방집에서 밥 먹으려는 사람이 맞겠습니까. 죽을판 살판 자기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일하고 죽은후에 천당에 갈 수 있겠습니까? 주의 일을 하여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의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농공상(士農工商)간에 무슨 직업이던지 직업이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의 중심의 문제입니다. 부흥회를 인도하여 유창(流暢)하게 설교하며 밤낮 기도한다고 해도 이기주의에서 하였으면 이땅 위에서는 칭찬을 받을지언정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일을 하는것이
주를 위하여 사는 생활입니다.
경남 울산에 어떤 할머니가 부흥회에 가서 성신을 받았다고하며 며느리(子婦)가 '아이를 좀 봐 주시오‘하니 ’나는 성신 받았는데 아이 보겠는가?'하였답니다. 이는 큰 잘못입니다. 성신 받고 아이보고, 성신받고 불 때고, 성신 받고 발갈고, 성신받고 교육하고, 성신받고 정치해야 합니다. 목사와 장로가 많지만 그 중심을 우리는 모르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 제일주의가 곧 주를 위해 죽는자 입니다. 일본 구세군 중장 산실군평(山室軍平)선생이 어릴 때에 어머니와 사별하였는데 그 어머니가 죽으면서 말을 못하고
붓을 들어 유서를 쓰기를 '하나님 제일이다'라고 유언을 하였는데 이 교훈을 받아서 주께 헌신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생활을 검토해봅시다. 나를 중심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중심하고 있는가. 자기를 위하여 사는것 같이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옛날 수영수사(水營守使)가 기독교를 박해 할 때에 독실히 믿는 부자(父子)가사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내일은 우리가 죽임을
당할 것인데 어찌하려는가? 하니 '나도 어버지를 따라 죽지요.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이틀날 부자가 다 사형장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얘야 마음을 굳게 하여 변치말고 따라오너라'하니 '네' 하는 대답은 했으나 그 소리는 적어졌답니다. 그러더니 아버지가 순교하는 것을 본
아들은 두려운 마음이 생기며 또 꾀가 생겨서 생각하기를 '아버지는 늙었으니 주를 위해 죽는것도 좋지만 나는 아직 어리니 더 살다가 죽는 것이 좋겠다' 해서 그 자리에서 배교(肯敎)하고 놓여 나왔답니다. 그런데 그는 나온지 29일 만에 병들어 죽고 말았답니다. 밥 90그롯 더 소비한것 뿐이였습
니다.
제일 좋은 죽음은 주를 위하여 죽는 죽음이니 한없이 복됩니다. 나는 이제 살기를 도모하기보다 어떻게 하여야 주를 위해 잘 죽을까 결심하고 기도합니다.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스데반 이후 많은 순교자들이 옥에 갇히기도하고 칼에 베이기도(斷)하며 톱에 켜이기도하고 불에 살리우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일제 말기(日帝未期)에 최목사님을 위시하여 50여명의 순교자가 났습니다. 나는 오늘밤에 어떤 조직적 설교를 하려고 하지않고
우리도 그들이 흘린 땀 쏟은 피의 길을 가자고 하는것 뿐입니다. 최목사님의 외치던 '예수! 천당!'하는 음성이 내 귀에 쟁쟁합니다.
'주여 이 소리가 이땅에서 끊어졌나이다. 나도 따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할 뿐입니다. 그들의 흘린 땀 흘린 피는 이땅위에 있습니다. 그들이 누은 곳이 피땀을 흘리다가 마지막 피 뿌린 곳이 아닌가요! 나도 피 한가지만 흘리면 다 되는것이 아니겠습니까?그들은 산천리 금수 강산에 편히 쉬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으나 그 땀 그 피는 아직도 역사(役事)하고 있습니다. 주 목사님 최목사님의 피의 설교가 이 밤에 여러분의 귀에 들리기를 바랍니다. 제가 전도사때에 주목사님께서 '손조사 큰일났다!' 하시고 울면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던 그 모습이 내 눈에 환합니다. 우리 주
목사님 이밤에도 주님의 반열에 서서 우리 총회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함이 내 눈에 환한 것같습니다. 이밤을 기하여 우리도 이 순교자들의 피의 설교를 듣고 따릅시다. 나사로를 배척하던 부자의 요청은 아브라함이 듣지 않았지만 우리 주목사님 최 목사님의 기도는 응답이 될 터이니 우리는 총회가
난관에 봉착하였다고 낙심하지 맙시다. 피의 호소는 반드시 이룹니다. 스데반의 피의 설교는 이밤까지 계속되어 있어서 어떤 이론적 설교보다 강합니다. 그 설교를 인하여 바울의 심정을 깨뜨렸고 유대주의적 기독교는 세계적 기독교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최목사님과 주목사님의 피에 따라 순교의 정신을 가집시다.
순교한 스데반이나 야고보 같은 이들이 귀하지만 순교 정신 가졌던 백발의 요한 사도도 귀하였습니다. 깨끗한 죽음 귀한 죽음으로 죽으려면 평소에 깨끗하고 아름다운 생활이 따라야 합니다. 주께서 ‘다 이루었다' 는 한마디 하시기 위하여 3년간의 준비가 있었던 것입니다. 잘 죽고 싶으냐? 생활을 잘 하십시요. 주목사님은 평소에 '내가 아무래도 이 문제로 죽을 수 밖에 없다' 하시면서 순교의 각오를 하고 계셨습니다. 갑자기 순교자가 되어지는 법이 아닙니다. 잘 준비해야 되는 법 입니다. 앞서간 순교자들이 우리를 보고 있으니 말만하지 말고 실천에 옮깁시다. 먹고 마시는 것을 주를 위해서 하고, 나나 다른 인간을 높이기 위해서 하지 맙시다. 주만 높이다가 죽는 자가 됩시다. 말씀하시기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자들은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손양원목사설교/요셉의 의로움을 본 받으라
요셉의 의로움을 본 받으라
(마 1:18~25)
ㅁ서 론
세상에는 의인이 없다. (름 3:10)하였으나 로마인서 4장3절을 보면 믿음으로 의인의 된다고 했습니다. 의인이 되어야 천당에 간다 하니(마 13:47-50)요셉을 본 받아 의롭게 됩시다. 세상 사람들은 의인이 되기는 다 좋아하나 못되는 것은 방법을 모름이다.
ㅁ본 론
1. 인내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들어 내지 않은것 보니 인내성이 있는 인물이었다. 백인당 중에 유태화(百忍堂中에 有泰和)라는 말이 있다. 어렵다고 하나 습관이 되면 할 수있다. 늘 참아 버릇하면 된다. (이야기)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 참으신것 보고 참읍시다. 괴로워도 참고 분이나도 참읍시다.
2. 용서성(容怒性)이 있는 사람이다. 가만히 끊고저 한 것보니 용서 잘 하는 사람 같다.
① 예수께서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다. (마 18:22) 이 말씀은 다 용서하란 말씀이다.
② 남의 죄 사해주면 천부도 사해 주신다.(마 6:14-15)
자! 신자요 제자가 되었으니 본 봅시다. 예수께서는 음녀에게도 죄 안주셨고, 십자가에서도 마무리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셨고, 말고의 귀도 도로 붙혀 주신 것이 아닌가
3. 너그러운 생각의 사람이다 (말에 팔 붙어진 이야기)
4. 순종성 있는 사람이다. 천사의 말을 듣고 그대로 데려온 것보니 순종의 사람이다. 유대 풍속에는 그런 때에 돌로쳐 죽이는 법인데 요셉은 겁내지 않고 순종했다. 하라고 하면 다 해야지 생각해 보고 할 만한 것만 하는 것은 순종이 아님(어떤 곳에 배추 뿌리 거꾸러 묻어 순종한 이야기)
5. 경건한 사람이다. 예수 낳기까지 동침 안한 것보니 경건한 사람이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경건함이다(약 1:27).하나님 앞에 있는 줄 아는 것이 경건함이다. 모든 잘 하는 것 잘못하는것, 다 아신다.
6. 명령을 지킨 사람이다. 천사의 말대로 예수라고 이름 지은 것 보니 명령을
손양원목사설교/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자라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
마 7: 15~27(21 하)
ㅁ서 론
세상에서도 그 나라에 들어 가려면 먼저 그 나라의 법을 지켜야 들어가게 된다. 천국이란 하나님의 계신 집이다. 신의를 알지못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
(아버지의 뜻이란 무엇이냐, 둘이니 내적으로는 생각과 외적으로는 행동이다)
ㅁ본 문
1. 요 3:16, 행 4:12 : 다 예수를 믿어야 한다. 다른이의 선행을 존중히 여기나 자력의 의나 선행으로는 구원하지못한다.
A. ①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얻지 못한다. 너희의 의가 서기관이나 바리새 교인보다 나아야 한다고 한다.
②공로없이 들어가게 된다 (예복 비유)
③믿음이라는데 주의 :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으로 차표와 같다. 오직 예수의 생명으로만 중생될 수 있다.
B. 성결케 된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 난다는 것은, 새 생명의 소유자가 된다는 뜻으로, 둘째 아담의 씨라는 말이다. 성결 되는 것은 율법을 행하는 것이나 자력으로가 아니다. 믿어야 한다. 따라서 죄가 문제가 아니라 믿지 않고 맡기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인간성이 없어지면 된다.
그러면 예수의 생명 얻을 것은 원칙이요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면 자연히 밖으로 행실이 나타날 것이 아닌가, 즉 기독자의 생활이 될것이 아닌가. 기독자의 행위는 생명을 증거하는 것이다.
2. 요한 1서 4:7, 8, 요 13:34, 벧전 4:8
사랑하는 일이다. 사랑은 우주적인 완성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자를 요구하신다. 사랑이 없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자체가 사랑이시요, 행하시는 모든 것이 사랑이시다, 사랑으로 우주를 지으시고, 사랑으로 우주를 지배하신다. 고로 우리에게 부딪치는 모든 일이 사랑이니 불만과 불편이 있을 리 없다. 이런 신이 신고로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자를 요구하시고 사랑이 없는 자는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 세상 사람들은 사랑하는체 하나 입설뿐이요, 거것 사랑으로 이기적인 사랑이 많다. 진심에서 불쌍한자 약한자를 사
랑하는 이는 드물다. (천사가 걸인 데려간 이야기, 북빙양어름집 이야기) 예수께서 참 계명을 주신 것은 새 생명 얻는자만이 행 할수 있는 사랑이다 (양과 염소 비유)
ㅁ결 론
아버지의 뜻이란 ①예수를 믿는자 ②성결 된자 ③사랑하는 자로서 사는자가 되는 일이다. 이것이 기독교적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