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 목사님 옥중편지와 설교 (15)
선지자선교회
손양원목사옥중편지/부인 정양순여사에게(1944.5.8)
부산에 사는 부인 정양순여사에게
(1944년 5월 8일)
"화개(花開)의 계절(季節)이 안계(限界)에는 선미(鮮美)하
나 춘곤(春困)의 괴로움이야말로 고양이 앞에서 쥐가 장난하
나 고양이도 일어나 쥐 잡기도 싫다는 춘곤! 더구나 당신의
춘곤증을 잘 아는 나로써 산상흡수지고(山上吸水之苦)의 소식이야 말로 나의 가습을 답답하게 합니다.
그런데 나를 유독히 사랑하시던 주기(柱基)형님의 부음(訃
音)을 듣는 나로써 천지가 황혼(黃昏)하고 수족이 경련(痙攣)하나이다. 노모님과 아주머니께 조문(弔問)과 위안을 간절히 부탁하나이다. 그런데 병명은 무엇이며 별세는 자택인지요 큰댁에선지요 알리어 주소서.
애송(愛送)하신 물건은 양말 외에는 다 잘 받았습니다. 양
말은 불허합니다. 남어지 비누는 집에서 잘 쓰소서‥‥이만하
면 넉넉합니다. 문준동생이 마추어 드리고 간 구두는 잘 신으셨는지요. 부디 우리 아버지 잘 봉양하소서. 부모에게 효하는 것은 이해타산격 (利害打算格)의 복을 탐함보다도 내 부모를 내가 공양치 않으면 어느 누가 높이며 공양할까?하는 자식된 마땅한 도리는 또한 의무가 되리이다. 집이 불편하여 무일불풍(無日不風)에 무일감기(無日感氣)라시니 기자(羈子?.나그내라는 뜻)는 봉념(奉念)
만약 몸이 불안하시면 동인을 대신하여 곧 회답 해 주소서. 불비서 (不備書)"
이는 1944년 5월 8일 부의 사모님께 보낸 편지인바 특히
“그런데 나를 유독히도 사랑하시던 주기(柱基)형님의 부음(訃音)?.큰 댁에선지요 알리어 주소서. 운운"은 재미 있는 내용의 말씀이다.
그해 5월 3일부 손장로님의 편지에
여숙(汝叔) 최권능씨는 4월 19일에 본 고향에 가고 여형(汝兄)주기(柱基)는 4월 21일 오후 9시에 본 고향 갔다. 모주(母主)향년(享年)이 82세 사자(四子) 미성(未成)이란다.
한 말씀이 있다.
최봉석(崔鳳奭) 목사님의 순교와 주기철(朱基撤)목사님의
순교를 말씀함인데 이 소식을 이런 말로 해서 알린 것은 서
신 왕복에는 가정이나 친척 외의 기사는 엄금되어 있는 까닭
이었다.
별세는 자택인지요? 큰댁에선지요'는 출옥 후인지 옥사
(獄死)인지를 묻는 말씀이었다.
신사참배 문제가 처음 생기자 주기철목사님과 한상동목사
님과 손양원목사님 3인은 함께 기도하고 결정하기를 각기 남북선을 맡아서 이 신앙 투쟁을 하기로 했었던바 1년을 전후해서 모두들 검속된지라, 서로 그들의 자취를 알 길이 없던 중에 손 장로님의 이 편지를 받고 바로 물으신 것이었다.
부산에 있는 부인 정양순여사에게
(1944년 6월 22일)
-모주(母主)의 기일 (忌日)을 당한 나의 추억-
"음 5월초 6일 나의 경애하는 어머님의 기일을 앞두어 어머님의 은공자애를 추억하여 마시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던 그 애정을 회상케 될 때에 애끓는 내 가슴 진정키 어렵습니다.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기에 애지중지(愛之重之)하시던 그 사랑 생각 할수록 슬픔 뿐이외다.
어머님의 기일이 생각될 때에는 우리집 정원에 석류꽃이 붉었던 것이 생각나고, 석류꽃을 볼 때마다 또한 어머님 기일이 연상되던 일이 생각납니다.
작년 가을에 강남 갔던 제비 때들은 때를 찾아 금춘(今春)에 다시 왔건만, 북국을 향한 원로의 기러기는 양춘의 봄꽃을 가석 (可惜)하게도 보지 못하는가 봅니다.
우리집 뜰 안에 피었던 석류꽃은 금년 여름에도 피었으련만, 본향을 찾아 낙원에 돌아가신 내 어머님은 또 다시 지상(地上)에 돌아오실리 만무하시리이다.
지상의 향락보다도 천상의 영광이 더 좋은 것을 확신하는 나의 신념이, 이날에 내 눈물을 비로소 그치게 하나이다. 이날에 당신은 우리 아버지를 많이 위로하여 주소서,
붓을 도리켜 인(印) 신(信) 희(姬) 장(章) 수(洙)에게 조부주께 효행을 권하면서,
또 먼저 감사코저 함은 할아버지를 봉양함에 있어서 혼정신성(昏定晨省)과 사계(四季)를 따라 정성온정(定省溫情)의 성심 성력함에 대하여 내 어찌 감사치 않으랴! 옳다! 이것이 인자지도(人子之道)이며 의무의 당연한 본분이니라. 물론 내 부모를 소중히 여겨주며 공경해 줄 사람이 누구랴! 고로 내 부모를 내가 섬긴다는 것은 무슨 복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요, 이해 타산격으로 논할 것이 아니라, 의례히 당연한 도리이며 3천 가지 죄 중에 불효가 막대요 역천지대죄(逆天之大罪)이니라.
여등의 형제간 우애도 당연히 할 바는, 더우기 할아버지와 어머님께 효를 갚기를 배우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리고 한가지 기억할 것은 의무를 다 행한 자에게는 마땅히 자연히 따르는 것이 복이니라. 선(善)과 의(義)를 심었거늘 어찌 복이 나지 않으랴! 종두득두(種豆得豆), 종과득과(種瓜得瓜)하나니, 사람의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나나니 이것이 인과법측(因果法則)의 자연한 이치니라. 심은대로 거두게 되는 응보(應報)의 천리(天理)이다. 옛날 순(舜)임금의 그 같은 성군대현(聖君大賢)됨에 그 원인은 효도(孝道)로써 인(仁)의 중심을 삼은 연고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이곳에서 이같이 간절히 말하게 됨은 옛 성인의 글에 '수욕정이풍부지 (樹慾靜而風不止)하고, 자욕양이친부대 (子欲養而親不待 )- 나무가 가만히 있고자 하나 가지가 멈추지를 않고 자식이 효도를 다 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 주질 않는다)라고 한대로 아무리 자식이 부모를 봉양코저 하되 부모가 수백세나 살아 기다리지 못할 것을 생각 할 때에 앞날의 수한(壽限)을 알지 못하는 나로써 눈물이 앞을 가리워 붓대가 멈춰진다. 이 까닭에 너희들에게 권함은 너희들을 못 믿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나는 너희들을 태산 같이 바라고 육지 같이 믿는다.
무엇보다도 나를 대신해서 아니 내 할 것까지 합해서 8순 노조부님께 봉양에 전력을 하여다고.
만시지탄(晩時之嘆) 후일에 후회와 원한이 없게 하기 위한나의 원이요 간절한 부탁이다. 선을 행함도 기회가 있나니 때를 놓친즉 후회가 불급이니라.
할머님께 효를 갚지 못함이 기억나거든 살아계신 할아버지에게는 재탄(再嘆)이 없게 함이 가하지 않겠느냐? 너희들의 성심을 내 믿는 이상 나의 부탁 전에 오히려 내 말에 지나칠 것을 또한 믿고 나는 안심한다. 이로써 너희들은 복을 받아라. "
1944년 6월 13일부로 사모님에게 보낸 편지인바 본문에 있는 대로 손목사님께서 어머님의 기일을 당해서 쓰시었으니 그때의 그 심정을 추측할 수 있으리라. 더구나 아이들에게 효도를 가르치는 마음이랴!
손목사 옥중서신/부친 손종일장로에게/1942.11.5 조
아버지 손종일 장로에게 보낸 편지
광주에 계신 아버지 손종일 장로님에게
(1942년 11월 5일)
"일엽 낙지천하추(一葉落知天下秋)
한 잎사귀의 오동잎이 떨어짐을 보아 천하에 가을이 온줄을 안다고 하니 사소한 것을 미루어 대사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은 옛 성인의 싯귀이오나 과연 가을도 이미 늦어 엄동 설한이 이르기 전에 추수동장에 분망 노력할 차시로소이다.
복미심차시(伏未審此時)에 천부흥은중 부주기체 일향 만강하심을 앙모구구차축불이(仰慕區區且祝不已)하나이다. 말제(막내동생) 의원(議源)의 가솔(家率) 등도 동은중 균길하온지 알고저 여짜오며 중제(仲第) 문준(汶俊) 내신에 말하기를 중수(仲嫂)씨의 병세는 쾌효하다 하오니 이는 하나님께서 소자의 근심우에서 근심을 덜게 해 주심인가 하여 감사하오며 또 중제(仲第)가 내년 1월 4일에 만나러 오겠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 얼마나 기뿐지 과연 괄목상대할 것을 손꼽아 기다리겠나이다.
지나간 세월은 천년이 하루같사오나 기다리는 세월은 일각이 여삼추(如三秋)격이 올시다. 아버님 불초자 양원을 위하여는 조금도 하념치 말아주소서. 편부 형제 처자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동은 중에서 면식이 여전하오며 한 덩어리의 주먹밥이나 한 잔의 소금국의 진미는 그야말로 선인(仙人) 요리요 천사의 떡맛이 올시다. 세상에 제일 미는 구미(口昧)인가 봅니다. 부모형제들은 기한을 염려하시나 들의 백합화를 곱게 입히시고 공중의 참새를 잘 먹이시는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이요 하물며 일꾼이겠나이까.보다도 소자는 본래 식양이 작은 사람이오니 이 밥도 만족이옵고 또는 키가 적은 몸이라 이 옷과 이 이불이 발등까지 덮으니 총후 국민으로써 이만하면 자족자만이외다.
아버님과 형제 처가 가족들을 향하여 간절히 바라옵기는 자족지대복(自足之大福)을 깨달으시기를 바라나이다. 소자 몽중에 아버님과 가족의 근심과 고난으로 종종 병색으로 보이오니 도리어 근심이외다. 운둥치우(雲謄致雨)하고 노결위상(露結爲霜)이겠지요. 구름이 올라가서 비를 이루고 이슬이 맺히면 서리가 되는 것 처럼 육적 생각은 근심을 이루고 근심이 맺히면 병이 되는 것이오며 영적 생각은 자족을 이루어 일대 만족의 생활을 이루게 되는 것이외다. 근심은 병의 근원이요 죄중 대죄 이외다. 그러나 인생은 이를 깨닫지 못하더이다. 고로 소자는 옥중에서 의식을 대할 때마다 감사의 눈물을 금치 못할 때가 한두 번 뿐이 아니였나이다. 제일선에 나간 장병, 고난에 헤매는 자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여러가지 심고 육고로 해서 고난이 다대하겠으나 다 인내로써 감수하사이다. 내려오는 속담에 "사람은 마음가질 탓이요 양류(揚柳)는 바람맞을 탓이라'더니 과연이외다. 사람의 마음은 자기가 가진대로 변해지오니 양류(버드나무)와 같이 모든 역경을 온유하므로 받아들이고 자기의 정욕을 쳐서 이기고 용감히 나아가면 아무리 어려운 중에서라도 잘 진행되는 법이외다. 그래서 인생관에 있어서 낙관적 비관적 양극으로 치우치게 보는자가 있아오나 낙관적이나 비관적 양극으로 치우칠게 아닌가 합니다. 사시절후가 각각 다른 것 같이 인간 칠정의 회로애락이 다 각각 구비하게 나뉘어져 있는가 합니다.
인생의 앞 길에 기쁠 때, 슬플 때, 웃을 때, 울 때가, 없을 수 없는 것이 필연의 사실이요 진리이오니 운우시(雲雨時)에는 광명의 날이 있을 것을 생각할 것이며 혹암한 밤 중에는 광명한 아침을 바라며 기다림이 마땅 하겠나이다.
아버님이여 형제분이여 무엇보다도 귀하고 필요한 것은 인내이외다. 세상에 만물 만사가 다 고난을 겪지 않고 되는 그 아무것도 없겠지요. 우리 만이 아니요 우리나라 전 국민이 그러하고, 아니 우리나라 뿐이리요 온세계 대세가 고난중이오니 그야말로 대동지고로소이다. 고로 우리만 빠져서 공중누각 백일몽의 향락을 꿈꾸리이까. 아버님과 가족들은 부디 모든 것 주께 맡기시고 안심하사이다"
이 편지는 1942년 11월 5일 손목사님의 부친 손종일 장로님에게 드린 편지이다.
그 내용에 있어서 무엇을 말하고저 하는 지는 읽는 자로 하여금 얼른 알도록 되어 있다. 실로 손목사님의 옥고 중에서 맛보는 기음과 또 그런 중에 있으면서 오히려 여유 있는 그의 신앙을 엿 볼 수 있는 이 편지는 복역 후 거의 만 1년이 되어간 때이나 실은 여수 경찰서에 구속 당한 후 벌써 만2년하고 1개월이 지난 때이었다. 몸은 쇠약해졌을 것이며 병없는 환자격으로 되어 있었을 때일 것이다. 이럴 때 보내신 편지이니 그 심중은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으나 조금도 그생활의 불만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로운 세상에 있는 가족들에게 권면하는 편지를 쓰시다니 !
손목사 옥중편지/부산에 계신 부친에게/1943.6.8)
부산에 계신 부친 손종일 장로님에게
(1943년 6월 8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건강과 장수
의 복이 나의 노부님에게 임하기를 엎드려 빌기를 마지 아니
하나이다.
세월은 주름잡아 굴지(屈指) 대망(大望)하시던 5월 17일
에 얼마나 놀라시었으며 근심하시었나이까?
불초의 양원은 무슨 말로써 어떻게 위안을 올리오리까?아
무 도리는 없아옵고 아브라함과 욥 같이 반석 같을그 신앙으로써 스스로 위안과 복을 받으시기를 바랄뿐이 올시다. 5월 20일에 예방 구금소(豫防拘禁昕)로 갈 언도를 받았습니다. 성경교리 그대로 절대로 신앙한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6월 2일에 공소할 수속으로 항고서를 복심법원에 수곡하였습니다. 불평이나 감정이나 고통을 면해 보려는 것 보다도 성경교리를 증거하려는 것 뿐이올시다.
아마 이달 20일 경이나 그믐안으로 대구로 가면 8월 중으로 끝이 나서 경성구금소(京城 拘禁所)로 가게 되겠습니다.
경성 서대문 형무소내 예방 구금소로 가게 됩니다. 구긍소는 편지나 면회는 매월 몇번이고 누구나 다 자유이오며 모든것이 다 그 안에서만 자유이오니 안심하여 주시오며 행여 만주 동생 집에 가실 때는 면회하여 주심을 바랍니다.
좋은 특사가 행여나 내리면 쉬이 만나게 되옵겠지요. 만사만행(萬事萬行)을 다 주께 맡기시고 부디 마음 안정하시고 참다운 신앙의 실생활 하시기만 앙탁(仰託) 뿐이외다.
문준 동생에게와 순덕 누이와 병원 형제에게 문안과 소식을 전해 주시오며 의원이 동생은 무슨 직업을 하오며 동신이도 공장에 잘 다니고 있는지 순덕이 소식을 알고 있는지요?
동인모는 아프다더니 아마 편지 없는 것 보니 안나았는지요?
박신출 형님 이하 다 문안 전하여 주시옵소서.
그 전에 동인에게 보낸 편지를 다 종종 보시면서 가족이
위안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손양원목사 옥중편지/부친 손종일장로에게
평양에 계신 부친 손종일장로에게
(1943년 9월 4일)
"부주님의 하서는 8월 18일에 봉견하였사오나 진작 상답
지 못하옴은 부자유의 몸이 기회를 못 얻어 늦게 되었사오니
하량하옵기를 복걸하나이다.
그간에 노약하신 기체후 어떠하시며 병중에 있던 의원은 얼마나 건강케 되었으며 산후의 제수의 건강과 동자 동욱 동예 3형제도 충실히 얼마나 자랐을까요?밤낮 빌기를 마지 않나이다. 소자는 점점 건강하게 되어 가오니 안심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그간 얼마나 놀라셨습니까?양원은 옥중에, 의원은 병실에, 참으로 생각 할 수록 부주님의 걱정과 고생에 참으로 가습이 쓰라립니다. 그러나 아버님 과념(過念)치 마시옵소서. 풍우와 흑운의 소낙비가 지나가면 신선한, 광명한 새 세계의 기후를 보게 되는 정리(定理)오니 노약하신 부주님 안심 고대하소서.
또는 그간 의원의 영예로운 졸업도 못 보고 병중사고(病中
死苦)도 동정도 못하였으니 고락을 동감할 동기간에 비감불금(悲感不禁)하겠나이다. 의원이는 얼마나 회복이 되었는지요?제수도 별고는 없는지요. 의원이가 면회 오고 싶다는 것은 꼭 못 오게 하시요. 먼 곳에 돈도 들 뿐아니라 도리어 보는 것이 피차 심상할까 한 까닭입니다. 문준의 편지가 어제(3일) 왔는데 가운데 제수씨가 중병이 들었다니 설상가상의 고난인가 합니다.
이 편지는 1943년 9월 4일에 평양에 게신 장로님에게 보
낸 편지이다. 그 때에 손 목사님의 심정은 어떠하였을런지!
그는 끊임없는 기도로 이 모든 문제를 대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