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


선지자선교회 1983년 8월 28일 주후

 

본문 :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하는 말씀은 우리가 여러가지 현실을 만나거든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가지 현실을 만나거든 우리는 이런 저런 참 현실을 만나는데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어떤 현실을 만날 란지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가 이 역사에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접한 별별 현실들이 있으나 우리는  그 하나의 현실도 저런 현실은 내게 닥쳐오지 아니할 것이라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약자가 됩니다. 우리는 어떤 현실을 귀로 보든지 눈으로 보든지, 또 접촉해  보든지, 우리가 상상으로 보든지 우리는 모든 현실은 내게 다 올 것으로 알고  우리는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현실이라도 '저런 참혹하고 비참한 현실은 내게는 오지  아니하리' 이런 생각을 가져서는 속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내게는 저런  현실은 오지 아니할 것이라' 그렇게 도무지 할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어떤 현실이 우리에게 올는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아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여러가지 어려운 현실을 만나거든'  너무 혹독해서 어려움 되는 현실도 있고, 또 너무 곤고해서 어려운 현실 되는  것도 있고, 또 너무 고통스러워서 어려운 그런 현실도 있고, 또 어떤 현실은  너무 좋고 너무 재미있어서 그 현실을 만난 사람마다 다 지옥의 자식이 되는  것을 우리가 보고 모든 역사가 증거 하는 그런, 아주 미혹의 그런 현실을 우리가  만날란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는 이 말씀을 그렇게 쉽게 지나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자기가 진실된 양심을 가지고 새김질한다면 우리는 이 한 성구를 가지고  자기가 듣고 보고 접하고 자기 상상으로 '이러한 현실도 세상에는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온갖 그 현실들을 자기가 명상하면서 '그런 현실을 내가 만나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미리 생각하고 거게 대해서 대비도 하고 또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기도도 하고 해서 어떤 현실을 만날지라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겠고,  또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말은 구비한 기쁨을 가지라는 그 말씀인데 구비한  기쁨이라 말은 너 당한 그 현실이 '어떤 면에서 기쁨이 되고, 어떤 면에서 네게  필요하고, 어떤 그 요소에서 네게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중요한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 가지고 온 선물의 그릇과 같이 되어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깨달을 대로  넓게 깊게 길게 구비하게 깨달은 기쁨을 네가 가져라 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하나님에게 인정하는 그 시련이, 순종하는 그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런 형편에서는 인정을 확실히 하던  것을 형편이 달라지면 그만 인정이 달라집니다. 형편에 따라서 인정이 달라지면  그 인정은 형편에게 종이 된 인정이요 자기 현실을 정복하고 이용하는, 현실을  다스리는, 현실에 주격이 되는 그런 믿음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현실 저런 현실에서 네가 인정하는, 하나님에게 대한 모든  선포해 놓은 이 계약이나 교훈이나 약속이나 소망이나 은혜에 대해서 인정하던  것이 현실에 따라서 변해지고, 또 변해졌는데 두 번째 닥치니까 변하였던 것이  이제는 변해지지 안하고, 세 번째 닥치니까 변해지지 안할 뿐만 아니라 그  현실을 내가 정복하고 이용할 수도 있어 이런 현실 저런 현실에서 차차 네  지각이 넓어지고 정확해지고 또 강해지고,  이러므로 인해서 네가 하나님의 모든 면에 대해서 구원면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도 차차 자라고 순종하는 것도 차차 자라서 이제는 이런 저런 어떠한 그  현실이라도 네 구원 이루는 일을 계속하는 그 일이 차차 이루어져 가는 것을  네가 아나니,  거게서 계속성이 나오고, 계속할 만한 밑천이 되는 올바른 지각이 나오고, 또  올바른 경험과 체험이 나와 가지고서 그렇게 차차 인내가 만들어지는 줄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계속을 온전히 이루라. 계속을 온전히 이루라. 그 계속을  이런 면만 계속할 게 아니라 저런 면도 계속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면은 다 구비하게 계속하는 사람이 돼라. 그 계속하는 것이 끝까지 계속하여 그  본질이 계속 온전해지고, 또 한 종류를 계속 두 종류를 계속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종류를 다 계속함으로써의 양적 온전을 이루어 어데서든지 하나님께서 실수  없이 다 거게 대해서 올바르게 하심같이 너도 모든 그 현실에 대하여 모든  존재에 대하여 네가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에도 실수 있는 자가 되지 안해  하나님이 우주와 영계에 어떤 것을 너에게 맡기고, 어떤 난점을 맡기고, 어떤  복잡을 맡기고, 어떤 사이비한 바로 지식 하기 어려운 그런 것을 너에게 맡기어  줘도 거게 대한 온전함이 계속되도록 그렇게 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네 자체가 온전하고 구비하여 네가 상대할  것은 하나님과 피조물 그 전부가 직접 간접 간간접으로 다 관계를 영원히 가질  것들인데 그 모든 면에 대해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하시는 것이니까 너는 기뻐하되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인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내를 이것을 바로 이루어야 그  인내에서 모든 구비도 나오고, 온전도 나오고, 또 하나님과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그 실력과 지위도 나옵니다.

 온전한 인내라고 하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에게 대해서  가르치심이 있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가르치심이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에 대해서 가르치심이 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역사 하심에  대해서 가르치심이 있고, 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 것들을 가르치심이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면을 다 네가 해야 될 일이요, 또 인정해야 될 일이요, 또 지켜야  될 일이요, 견뎌야 될 일이면 그 현실이 어떻게 변동이 된다고 해도 네가 현실에  피동 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대로 다 인정하는 인정을 어데 서든지  그 인정을 계속하고, 또 소망을 계속하고, 또 순종을 계속하고, 그렇게 계속하는  데에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어데서든지 내가 계속이 변동되지 않고 이  계속을 온전히 이루겠다' 하는 그 한 결심을 가지고 나아가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참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이 계시를 다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이 말씀은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알려 주신 이것을 우리가 다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그대로 행함으로 이 지극히 큰 구원이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믿는 사람마다 다 그런 줄 압니다. '주님이여, 역사에 지내 간 어떤 현실을  닥칠지라도 내가 주님과 주님의 모든 교훈에 대한 인정도, 소망에 대한 인정도,  명령과 요구에 대한 순종도 어떤 그 현실에서라도 거게 제재 받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 한 분에게만 피동 되어 일관될 수 있는 자 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런  기도를 다 하는 줄 압니다.

 또 우리가 눈으로 어떤 인간의 형편이나 사정이나 볼 때에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또 '저런 사람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그런 말은 믿음의  사람들은 절대 할 수가 없는 말인 줄을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변동시키면 우리가 당장이라도 어떤 마귀 놀음 할 란지 모릅니다. 어떤 또  비참한 환자가 될란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귀에 들리는 모든 병, 자기는 그런 병자가 다 돼 봅니다. 물론 그런  병의 환자가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도 하지마는 그 기도보다도, 주께서  우리의 구원에 필요하다면 우리가 암만 기도해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변개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변개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구원에 유익된 질병을 당신이 우리가 구한다고 변개시켜서  우리에게 목적하신 그 구원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변동하시는 그런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 멍에, 하나님을 사랑하여  숭배하는 하나님을 섬기는 짐, 이 둘만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메워 주신 짐은 자존하시고 유일하신 그분을 심길 때에 모든  피조물은 섬기는 그자의 발등상이 돼 가지고 그자를 돕고 그자는 하나님을  섬깁니다. 요렇게 모든 존재의 조직이 요렇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할 일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멍에, 하나님을 섬기는 짐 이것만이 우리의  질 책임이요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보고들은 어떤 모진 질병이라도 '저런 병이 내게  걸렸을지라도 내가 믿음에 요동치 안하고 믿음을 계속하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도 참 아프다는 것, 그거 어떻게 아프다는 것도 그게 참 어렵고 또  피곤하다는 것도 참 어렵고, 또 외롭다는 것도 어렵고 여러가지로 자기에게 온갖  해가 오는 피해가 올 때에 그런 피해도 어렵고, 무엇이든지 그 시작은 쉬운데,  시작은 쉬운데 그것이, 초저녁과 같은 시작은 쉬운데 그것이 절정이 될 때는 다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 무슨 시험 무슨 시험 말해도 제일 절정되는 시험은 마지막  죽는 시험이 제일 절정되는 시험입니다. 억울해서 죽는 일, 분해서 죽는 일, 또  답답해서 죽는 일, 두려워서 죽는 일, 아파서 죽는 일, 곤해서 죽는 일,  섭섭해서 죽는 일, 원통해서 죽는 일, 뭐 별별, 어쨌든지 죽음이 절정은  절정입니다.

 이런데 어떤 것을 눈으로 볼 때라도 성도들이 지나가면서, 성도들이 듣고  지나가면서 '주님이여, 저런 일이 왜 내 눈에 보입니까? 내게도 저런 일이 언제  올란지 모르나 내가 부탁합니다. 그럴 때에 내가 믿음 없는 자 되지 않고 믿음을  계속하는 자 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 기도를 다 성도들은 하고 지나가는 줄  압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미리부터 성도들이 명상해서 명상해 들어가면 묵 상해  들어가면 한 시간도 지나고, 하루도 지나고, 며칠도 지나고 하는 그것은 다  주님과 자기와의 관계에 그 광대하고 심원한 그 현실을 자기가 밟아가면서 그  밟아감에 모든 어려움을 다 미당겨서 주님으로 더불어 해결을 지우려고 하는  그런 데에서 많은 묵상과 명상 시간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 말은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계약은 없었으면 좋을 구절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필요해서 절대  불변적으로 있는 하나님의 규약인 계시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자기가 이  세상이라는 세상에 화합을 할라고 할 때에, 이 말씀과 자기와 이 현실이라는  세상과 화합을 할라고 할 때에 이런 세계 저런 세계 많은 세계들이 있으니까  그것을 묵상하고 명상하고 또 자기가 의지 가운데서, 상상 가운데서, 명상  가운데서 투쟁도 해 보고, 인내도 해 보고, 걸어도 보고 이렇게 해서 자기에게  닥치는 그 일이 초면이 안 돼야 됩니다. 어떤 일이라도 초면이 안 돼야 됩니다.

초면이 되는 일에는 두말 할 것 없이 놀라고 떨어집니다.

 제가 경험하는 대로도 그런 일이야 상상치 안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야 상상할  필요도 없다고 한, 미리부터 그와 같은 현실이 오리라고, 올지 모르기 때문에,  꼭 온다는 건 아니지마는 올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시험도 해 보고, 또 자기를  저울질도 해 보고, 또 간구도 해 보고,방편도 구해 보고, 자기 실력도 재 보고  이렇게 많이 한 그 일은 십배 백배가 어려워도 자기의 준비한 것이 그보다  많으면 제삼자들이 놀라지 본인에게는 어렵지 않게 그 모든 일이 퉁과돼  나갑니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사소한 작은 일, 세상에 여게 저게 가득찬 그 보편의 일  그런 일이라도 자기가 거기 대해서 생각지 아니하고 예비치 아니하고 뜻밖에  닥치면 넘어집니다. 쓰러집니다. 당황하고 놀라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어떤 시험을 만나거든' 어떤 시험인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역사에 있는  모든 사람의 형편 사정이라면 다 나도 그 형편 사정이 닥칠 란지 모릅니다. 모든  질병이라면 그 질병이 내게 닥칠 란지 모릅니다. 모든 다급하고 폭멸되는  폭망되는 참 수치스러운 어떤 일 이라도 그 일이 내게는 닥치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가는 속습니다. 무슨 일이 닥칠란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기에  역사에 있는 일만이 아니고 역사에 없는 새 일이 하나님께서 생기게 해서 내게  닥치게 할 란지 모릅니다.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우리에게 권면 하신 것은  어떤 일을 닥쳐도 우리는 거게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져야 되겠고, 거게 대한  중분한 소망을 가져야 되겠고, 거게 대한 충분한 배경을 우리가 가져야 되겠고,  거게 대한 우리의 그 소망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그 소망을 우리가 소망의  투구를 써야만 합니다.

 분명히 아는 것은 이 역사에 제일 어려운 시험, 제일 종류의 수가 많은 시험,  제일 높은 시험, 시험에 제일 큰 것은 하늘나라에 제일 큰 책임을 질 자가  아니겠느냐? 또 하나님께서 제일 필요하게 중요하게 쓰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힘들여 그 시험을 마련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 시험을 보아 그 시험의 배후가  되는, 그 시험을 보아 시험의 배후를 우리가 짐작할 수 있고, 그 시험을 보아 그  시험의 위치와 사명과 책임이 어떠한 것을 우리는 추론할 수 있고 추상할 수  있고 추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는  이 말씀을 우리는 놓지 안해야 될 것입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주의 이  사랑의 음성을 우리는 어데서든지 잡고 놓지 안해야 될 것입니다.

 이리해서 우리에게 어떤 시험이 오든지 분명히 그 시험은 주님이 만드신  시험이요 그 시험의 댓가는 반드시 영원한 대우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니까  충분한 구비한 지식을 가지고 우리는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래서 이 시험에서 저 시험으로, 저 시험에서 또 그 시험으로,  시험이라는 그 노디를 건너뛰고 건너뛰고 건너뛰어서 모든 시험을 이기는 이  인내로 결말을 마쳐라.

 네 앞에 닥친 모든 시험은 필요없는 시험은 없는데 그 시험을 다 통과하면  주님이 네게 주마고 정하시고 계시는 그 상은 네가 다 얻게 됐고, 하나님의  소원대로의 네가 모든 존재 가운데에 너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의 목적에  너는 달해서 하나님의 목적이 네게 이루 어겼고 네 목적이 하나님으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네가 여게 대해서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마라.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말고 또 네가 네 단독이  의지로나 또 인간의 인격성으로, 인간의 자존성으로, 인간의 그 인간성으로  이긴다는 그런 얕은 자리에서 네가 헤매지 말고 얼마나 어렵기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자존자의 유일의  소망이신 이 지극히 큰 것인데 네가 너무 헐하게 보고 쉽게 봤다가는 넘어지니까  거게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영원한 소망과 그 배경을 바라보면서 네가  "인내에 온전함을 이루라"  이렇게 수많은 그 시험, 열 가지 시험에 인내로 그 시험에도 떨어지지 안하고  그 시험에도 여전히 합격돼 나가라 그말이요, 인내라 말은. 그 시험에도 믿음을  그대로 지켜 나가 하나님께 대해서나, 진리에 대해서나,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나, 자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낙제하지 말고 그대로,  믿음으로 그대로 승리로 계속해 나가라. 열 시험을 네가 바로 계속했으면 열  면이 네가 온전해졌고, 백 시험을 통과했으면 백 면이 네가 온전해졌고, 네게  대해서 하나님이 정한 그 시험이 얼마가 되든지 그 시험의 수대로 다 네가  인내로 통과해서 이루었으면 너는 너로서는 만물에 대해서 온전하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온전하고, 네게 대해서 온전하는,  온전한 인내는 온전한 너를 만들고 온전한 너는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온전한 필요한 존재가 되어지는 이 비밀이 있으니 네가 그냥 닥치는 그 시험을  그저 속단적으로 좋다 나쁘다 그렇게 네가 평가하지 말아라. 피흘려 주신  하나님께서 전지 전능자가 네게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것을 다 만드신 것인데  너는 만들어 놓은 데에 바로 알면 되고 그저 참고 견뎌서 종전대로 변질되지  안하고, 변질되지 안하고 변성되지 안하고 그대로만 지내가면 되지마는 너 하나  지나가면 될 그 일을 만들기 위해서 그 현실을 만드는 데는 하나님께서는 큰  힘이 들으셨다  손양원 목사님은 그저 주님을 구주로 믿고 신앙 지키고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 그거 몇 가지 하면 되지마는 하나님은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6·25를 만드는  데는 오랜 전부터 이북에 공산주의를 만들었고, 세계적으로 널리 말하면  공산주의를 만들었고 또 그때에 전쟁이 일어났고 이래 가지고서 큰 넓고 큰  배경을 자본을 많이 투자해 가지고서 그와 같이 한 것이니 네 현실에 경솔히  여기지 말고 얼마나 그것이 가치가 크다는 것을 깨달아서 충분한 거게 대한  구비한 지식을 가지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것은 네 믿음의 시련이다. 네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에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빠진 것이 없이 다 구비해 놓은 것인데 그 구비한  것을 네가 참으로 인정하는 그 인정, 또 거게 대해서 네가 어떻게 관계를 가지는  그 행위, 그것을 네가 깨닫고 그 두 가지를 시험해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이니까 온전히 기쁘게 여기고 경솔히 취급하지 말아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자는 제일 우리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것이 뭐 이냐? 중요한  것은 부지런한 것, 부지런하는 것, 또 둘째로 중요한 것은 다 들이는 것, 남김  없이 다 들이는 것, 부지런하고 다 들여서 해야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렇게 게을밧고 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로 주는 구원이라 하니까 벌로 아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거는 다  공짜배기인 줄로 이래 알지마는 예수 믿는 것은 우리 피조물이 창조주같이 되는  것, 이렇게 성글고 둔탁한 우리가 하나님처럼 예민하고 하나님처럼 세밀하고,  하나님처럼 철저하고, 하나님처럼 인내하고, 하나님처럼 구비하게 되는  이것인데, 물론 우리가 공으로 받기야 받습니다.

 공으로 받으나 받은 그것을 우리가 강직하는 것도 우리가 강직해야 되고 또  받은 그것을 우리 것으로 누리고 사용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되고 이러기 때문에  참 눈도 안팎에, 그저 눈이 뭐 헤아릴 수 없이 안팎에 가득 차야 되고 또 우리의  노력도 쉴새 없이 정신 노력도, 생각 노력도 마음의 노력도, 성품의 노력도,  의지의 노력도, 몸의 노력도 부지런해야 됩니다.

 제가 처음에 예수 믿을 때에 하나님의 종을 몇 사람을 접촉했는데 제일 처음에  느낀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저렇게 부지런하다'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간도 그 마음이 쉬지 않고, 정신이 쉬지 않고, 생각이  쉬지 않고, 지혜가 쉬지 않고, 총명이 쉬지 않고 조심이 쉬지 않고, 쉬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특색이라 그렇게 제가 느꼈습니다. 또 그분들을  접촉하면서 '저분들은 무엇이든지 옳다 아니다. 인정하면 뒤로 미루지 안하고  즉시 한다.' 그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언제 거창읍에서 사경회를 하는데 손병익  목사님이 그때 와서 요한일서를 공부하면서 사랑에 대해서 설교를 하는데  '우리가 지금 출입하고 있는 교회 대문밖에 구걸하는 거지가 헐벗은 거지가  있는데 그 거지를 봤습니까? 여러분들이,' 병신이니까. 병신이 아니면 뭐 주는  것이 도리어 그 사람에게 대해서 나쁘게 만들 수 있지만 병신이니까. '그 사람이  그 추운데-그렇게 겨울인데-추운데 그 누가 자기의 그 따뜻함과 그 추움을 한테  합해 가지고 느껴본 사람이 있습니까?' 이래 설교를 하면서 잠깐 지나갔습니다.

 지나갔는데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니까 다른 사람 갈 여가 없이 고우서  목사님이란 그 목사님이 어느녘에 일어나 가지고서 자기의 외투를 벗어서 거기,  다른 사람은 가 보니까 벌써 가 버렸어. 제가 열두 살 먹어서 전도 받기를 고  사람에게 전도를 받았습니다. 고운서 목사라고 여게 아는 분이 아마 없을  것입니다. 벌써 세상을 떴고 순교했습니다. 인민군에게.

 그걸 보고서, 나도 그때 거기서 참석했는데 믿음은 어리지마는 '나도 거기 가서  좀 내가 뭘 좀 돕겠다. 나도 내가 옷을 입혀 주겠다.' 이런 생각을 가졌는데  남의 눈도 보이고 이것저것 보이고 또 '그 소리 듣고 나 당장 가서 또 저란다'  다른 사람들의 입도 보이고, 눈도 보이고, 생각도 보이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논평하리라 하는 그것도 보이고, 이러다 보니까 쭈물쭈물했는데 그분은 그  목사로서 그 말 듣고 가는 것이 내 위신에 비하면 천배 만배 더 큰 위신인데 그  어른이 그 말 듣고 딱 설교 그치고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니까 일호로 뛰어가  가지고 그래 하는 것을 볼 때에 '저분들은 예수 믿는 사람은 할 일을 뒤로  미루지 안하고 즉시 하는 사람들이로구나. 부지런한 사람들이구나.'  뭐 그분들의 그 부지런, 하나 예를 들면은 여기 가지고 다니는 데에 오만 게  없는 게 없습니다. 오만 게 없는 게 없어. 실도 있고, 바늘도 있고, 침도 있고,  뭣도 있고 뭐 다 있는데 그저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봉사할 봉사거리는 없지  않습니다. 이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에게 봉사할 봉사거리가 있고 저 사람을  만나도 봉사거리가 있고 또 자기는 이 시간도 쉴 여가 없이 손을 놀려야 되고  마음을 놀려야 되고,마음 놀리면서 손을 놀리면서 자기 생각 놀리면서 정신  놀리면서 이중 삼중 몇중의 쉬지 않고 부지런히 활동하는지?  손으로는 일을 하면서 속으로는 기도하고, 또 입으로는 전도하고, 또  정신으로는 그에게 또 사랑을 베풀고 덕을 세우고 '예수 믿는 사람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로구나. 또 할 일은 '즉시 하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그때 인상깊게 가졌습니다.

 그것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오전에도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계속해야 될 것,  첫째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일을 계속하라 했는데 그 구원이 뭐이 구원인가?  하나님의 형상을 내가 갖추는 것이 구원이요, 하나님과 진리와 내가 결합되는  것이 구원이요, 모든 피조물에게 봉사하는 것이 구원이요 봉사할 실력을 갖추는  것이 구원이요 영원한 봉사자로 하나님에게 등용을 받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니까  그 세 가지만 계속을 할라고 해도 우리는 죄지을 여가가 없고 우리는 정신이나  마음이나 손이나 놀 시간이 없이 우리에게는 쉬지 않는 참 우리의 생애가 구원을  계속한다고 구원 이루는 일을 계속한다고 하면 이 일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에스겔이나 다른 데 말씀하신 걸 보면 번개갈이 움직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이  구원 이 세 가지만 이룰라고 해도 자기는 쉴새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가치 있고 영원한 것, 하면은 그 효력이 얼마나 큰지 그 값이 얼마나  큰지, 이렇게 큰 댓가가 오는 이것을 마귀란 놈이 우리에게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만들어 버리고,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거게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 하지  말라는 것, 기껏 돈, 기껏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 속에 더러운 죄악의 욕심 그것  달성시키는 것,  풀과 같은 모든 육체의 욕심을 달성하는 것 풀의 꽃과 같이 있다가 없어지는  그런 그것을 탐해서, 떨어지면 후회하지마는 피기까지는 죽을똥 살똥 모르고  달라드는 것, 우리가 다 속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가지라도 잡으면, 일파동 만파동이라고 한 물결이 일어나면  일만 물결이 일어난다고 우리는 어데든지 좋습니다. 어데든지 좋으니까 어느  모퉁이 어느 진리를 붙들어도 하나를 붙들고 계속하면 따라서 모든 진리는 다  일어납니다. 진리는 하나요. 하나인데 하나가 수억억만도 넘게 빛으로 퍼져 나  갑니다. 억억만 개도 넘지마는 그 많은 그거 어느 한 개라도 거머쥐고  찾아들어가 보면은 그 참이 하나인데 거게서 수많은 것이 퍼져나갔기 때문에  하나 잡고 들어가면 모든 것을 다 잡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첩경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를 알면 다 아는,  하나가 해결되면 다 되는, 하나만 얻으면 다 얻는, 하나만 정말 이기면 다  이기는, 하나 성공하면 다 성공되는 요 단일성의 것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저 많은 사람들이 허탄한 길을 걷고 있으니까 이 길에 가는 사람을 붙들기  위해서 이 면으로 한 끈을 풀어 놨고 저 면에 가는 사람을 붙들기 위해서 끈을  풀어 놔서 수많은 끄내끼가 있지마는 한 끄내끼로 잡고 진실되게 들어가면  진리는 저의 것이요 하나님은 저의 것이요 하나님의 모든 충만은 다 자기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성공의 유일한 열쇠요 비결이요 믿음을 떠나서는 제가 천하의  총명을 다 가지고도 이루지 못합니다. 믿음은 인정과 그 대로 행동하는 것이  그것이 믿음입니다. 자기 지식에 인정을 화합하지 안했기 때문에 능력이 안  나오고, 인정에다가, 지식에 인정에 거게다가 행합을 화합하지 안했기 때문에  자타에게 보여주는 그 영광스러운 일이 드러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라도 우리가 실행해 봅시다.

 인내를 계속하라 그말은 하나님의 형상,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갖추는 것,  나는 하나님의 모형이 되기 위해서, 시편 17편에도 보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것 저걸 많은 선물을 받아 가지고 잘 먹고 잘 살고 난 다음에 남은  것은 자기의 새끼라고 어린 것 감당도 못할 어린 것에게 상속해 주는 것으로서  만족을 하지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의로운 중에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고  일편단심 노력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그 행동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그것만 소망하고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로다 죽었다가 부  활해 가지고 하나님 심판 너머 영원 무궁을 향할 때에 자기가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그것만치 자기는 만족하게 됩니다. 그것만 무궁세계에 쓸모 있는  것이요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어찌 생겼는지 모르지마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형상 나는 예수님과 같이 될란다. 나는 예수님의 모형, 나는 예수님같이 되겠다  하는 이 생각을 환난에서도, 위급할 때도, 전쟁이 일어나도, 고문과 고형  속에서도, 질병이 걸려도, 먹을 것 없어 기근을 당하고 적신을 당하고, 칼날을  당하고, 위험을 당하고, 어떤 매장을 당하고 해도 '나는 주님의 형상을 입겠.

나는 주와 같이 되겠다.'  이래서 어떤 사람 말 들어 보니까 그 사람은 모든 일을 할 때에 성경 가지고  하는 것은 둘째요. 성경 가지고 하는 것은 둘째고 첫째는 '이 일은 예수님이  어떻게 하시겠는가?' 꼭 '예수님이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건가? 예수님이면  이 사람을 대해서 어떻게 할 건가? 예수님이면 이 물질에 대해서 어떻게 했을  건가?'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같이 제가 할라고 애를 쓰고 그 다음에 성경  말씀을 참고로 삼아서 혹 이것이 자기 주관의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될란가  주관이 될란가 몰라서 이 계시 말씀으로 참고를 해서 모든 일을 대뜸 할 때는  '예수님이면 어떻게 할까?'그렇게 해서 자기의 평소의 늘 생활을 예수님 같이  할라고 하는 그것을 자기는 가지는 그 지혜로써 판단하니까 대개는 실수되는  일이 적더라 그렇게 하는 말을 제가 어떤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니요 남의 소망이 아닙니다. 공연한  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첫열매요 우리는 그 다음  열매입니다. 첫열매가 복숭이면 둘째열매도 복숭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당신과 같이 된다고 했고 내가 하는 일을 너희들도 할 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을 너희들이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밑바탕이 됐기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역사해서 성 공한 그  지극히 큰 능력이 경험을 가지고 이차 성공으로 우리에게 왔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역사해서 예수님을 성공케 한 그 능력이 이 차적으로 구속받은 우리  각자들에게 와 가지고 예수님과 같이 죽음도 예수님과 같은 성공 죽음,'부활도  예수님과 같은 성공 부활, 예수님과 같이 세상 접촉 이래서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심같이 우리도 세상을 이기게 할라고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했지만 우리가 이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인정  안하기 때문에 우리는 뛰지를 못합니다. 인정하면 뜁니다. 인정하면 뛰고 실행을  하면 저 혼자 좋던 것이 많은 사람에게 같이 좋아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인정했기 때문에 기뻐한 그 기쁨을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 들어가는  그 믿음 지키는 행위를 사자구덩에 들어가는 그 행위, 행위를 하니까 다니엘이  좋아하는 그 좋아하는 것을 반대하는 다리오 왕도 좋아했습니다. 그 전국의  백성들이 다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전국 사람들이 다 봤습니다.

 우리가 지식으로 하나님의 이 성경 말씀을 우리가 지식하고 영김 받아서 인정할  때에 우리는 담대함도 오겠고, 우리는 평안함도 오겠고 우리는 만족함도 오겠고,  예수 안에 오든 것 다 있으니까 다른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단정지울 것입니다. 이래서 기뻐 뛰놀 것이요 자기가 실행하면 자기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다 보닌 줄 것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 다 보여 줄  수 있습니다.

 파사 나라에 못 본 그 하나님을 다니엘의 믿음으로서 '하나님은 이렇게 사자도  자유한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죽일라고 모해한 그 모든 원수를 다니엘을 잡아  넣은 그 사자구덩이에 넣어서 사자 밥이 되게크 할 수 있다.' 믿음은 보지 못한  자들에게 모든 것을 보여 줄 수 있고 믿음은 모든 소망하는 것들을 다 실상으로  이루어 가지게 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언제나 잊지 맙시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라, 예수님의 제자란 말은 '너희들이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말은 이 세상 어떤 것에게 구애당하지 많고  다만 일편단심 예수님과 같은 자, 예수님의 제자리 말은 선생과 같은 게 제자  아닙니까? 예수님의 형상을 입는, 첫열매인 예수님과 같이 되는 이것 하나만  네가 소망해야 되지 이것 외에 무엇이든지 소망 하나를 가지면은 마귀와 세상은  그 소망 가지는 그것을 가지고 자꾸 너를 농락하기 때문에 네가 그 소망 놓지  안할라 하다가 다 끌려들어가서 다 죽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랬다.

 '어떤 명예, 어떤 영광, 어떤 지위, 어떤 부강, 어떤 애정, 어떤 정실, 어떤  물질, 어떤 네게 타락한 범죄의 요소, 무엇이라도 하나를 가져가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도 이제는 무슨 일을 닥치면 그 사람을 본받는 게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 말합디다. 너무 거리 머니까. 무슨 일 닥치면 '우리 권찰님은  이 일을 어떻게 랬을까?' 내가 얼마 전에도 어떤 교인 만나니까 추 집사님이  그립다고 이라면서 '그래 추 집사님이 계셨으면 이렇게 하지는 안할 건데.'  '그래 추 집사님이 계셨으면 어떻게 했겠나?' '추 집사님이 계셨으면 이리 이리  이리 했을 것입니다.' '나도 동감이다. 그리 되면 옳게 한다. 네가 죽은 추  집사나 네게 대해서는 살아서 역사를 할 수가 있다. 그의 모든 평생의 생애를  네가 적용해라. 아벨은 죽었으나 아벨의 그 역사는 지금도 우리 속에 역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종들을 생각하면서 '목사님이면 이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지도하고  판정하실 건가?' 자기가 존경하는 어떤 그 성자면 성녀면 권찰님이면은  장로님이면온 조사님이면 어떻게 할 건가? 이것 가지고  자기가 반 숨이나 쉬고, 그 다음에 '주님이면 어떻게 하시겠느냐?'하는 것을  생각해 가지고서 거의 해결을 분명히 받고, 그라고 난 다음에 나머지기는 성경을  가지고서 성경에 요렇다 명문됐을 때는 안심하고 담대히 딱 한다 말이오.

 왜? 주님이 이랬으리라 저랬으리라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잘못될지 모르나  성경에 명문돼 있으면 이야말로 이는 뭐 천지가 눌러도 요동치 않는다 하는  것으로 판정을 지운다 말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돈의 종이 아니요 지위와 권세의  종이 아니오. 직장의 종이 아니오. 가족 밥 벌어먹이고 옷 입히는 그 종이  아니오. 우리는 다 예수의 피를 입었으면 다 하나님의 종이오.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형상을 이루어 갈라고 하는 이 일 하면 다 모든 것 다  너거들에게 있어야 될 것이라고 알았습니다. 주의 말씀대로 주님의 신성을  닮아가는 그 인성에게 밥이 없겠습니까 옷이 없겠습니까, 그가 쓸모가  없겠습니까? 일터가 없겠습니까? 참으로 세상에는 사람이 많지마는 쓸모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할 수 없어 인생을 인생으로 쓰지 않습니다. 인생의 기계로  쓰고 있습니다. 기계 노동은 인(人) 변이 없고 움직일 동(動) 자릍 쓰고 사람의  노동이라는 데는 사람 인(人)을 써서 사람답게라야 한다는 그 뜻을 나타냅니다.

이러니까 그저 하나 기계로 쓰지 그걸 뭐 인격 이라고,  그러니까 어데든지 보면은 그 큰 회사가 움직이고 있다 하면은 거게 사람 하나  있어. 거게 사람 하나 있어. 그 민족이 어떻다 하는 그 민족에 사람만 있으면  사람 하나 있으면 그 민족은 행복됩니다. 그 정계에 그 정권이 어떤 징권이든지  거게 뭐 제일 정권자든지 그 밑에 이정권자든지 어떤 부하자든지 어떤  참모자든지 거게 사람이 하나 있으면 그 정권은 수명이 깁니다. 사람이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이 가는데 그 사람이 먹을 게 없고 입을 게  없겠습니까? 어리석지 맙시다 "이런 것은 이방인들이 구할 것이라.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인 줄 아시느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어데서든지 '나는 예수 닮겠다. 나는 예수 제자 되겠다.나는 예수님과  같은 자 되겠다. 나는 주부의 자리에서, 나는 종의 자리에서,' 어데서든지 종의  종의 자리에서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가질 수도 있고, 예수님의 그 미덕을 가질  수도 있고, 예수님의 절제도 가질 수가 있고, 예수님의 담력도 가질 수 있고,  예수님의 희생도 가질 수 있고, 예수님의 인내도 배울 수 있고 어데서든지 안  배울 데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형상은 이루지 못할 장소가 없고, 이루지 못할  곳이 없고, 이루지 못할 종별이 없습니다. 이루지 못할 계급이 없고, 이루지  못할 그런 가난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을 통해서 어짜든지 나도 근본은 못났지마는 내 배후에  주의 피가 있고 성령이 있고 진리가 있고 모든 만물을 나 이것 이루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같이 되는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놨고 이 순서도 저 순서도 모든 순서가 다 이것 때문에 예정돼  있으니까 내가 얼마나 큰 자이며 우리는, 공연히 자기를 모르고 못난 자로  여기지 맙시다.

 못난 자로 여기라 그말은 자기 단독이는 못난 자로 여기십시오. 못난 자보다 더  못쓸 것으로, 못쓸 것으로 커지니까 아주 없는 것보다 더 못난 자요. 못난  자지마는 예수님의 구속과 성령과 진리와 모든 존재의 이 이용의 배경 속에서는  우리는 적어도 우주와 영계를 상속받을 자 들입니다. 우주와 영계를 상속받을  자들이오. 세계에 미국이 크고 소련이 커도 그 나라가 다 내것이오. 내것으로  상속받을 자입니다. 거게 예수 믿는 사람은 형제요 믿지 안하는 사람은 다 그건  내 모든 소유물로 다 될 수 있는 이런 지위를 가진 것입니다. 이러면 참람되다  하지마는 털끝만치도 거짓은 없는 말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자기를 어떤 비참한 자기가 어떠한 존귀한 자기라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저 혼자 아는 것을 이것을 그만 나타내면  다른 사람들이 이해 못 하니까 미친 사람이라 할 것이오. 그러니까 절제가  필요하다 했습니다. 절제가 없으면은 그러다가 남한테 맞아 죽어버립니다. 그만  일도 이루지 못하고 헛일해 버려. 그러나 실상은 참 존귀합니다. 실상은 참  우주와 영계를 다 주고도 자기 하나 가지고는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예수 밖에서 한없이 천하고 예수로 말미암아서 한없이 존귀할  자가 될 자인 것입니다. 이러기에 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에 이게 있기 때문에  그는 말하기를 '너거가 이 구원에만 전심전력 기울이는 것이 더 귀하다'  했습니다. 죄 때문에 어짤 수 없어 결혼도 하지 실은 이 구원 하나 이루는  여기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잘하는 것인 줄 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진리와 연결되는 것, 하나님과 진리와 연결되는 것. 이 현실은  하나님과 진리와 막바로 연결입니다. 직통이오. 직접 연결입니다. 이 현실에서는  반드시 진리가 나타납니다. 거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거게 대해서  네가 이렇게 해야 된다 하는 그 진리가 반드시 거게 동참해 가지고 있고,  거게는 마귀란 놈이 하나님의 뜻 밖에 여러 수많은 인간들의 의사를, 김가가 와  가지고서 '야, 이 사람아 여기서는 이리 해야 되네.' 이가가 와 가지고 '이리  해야 되네.' 박가가 와 가지고 '이리 해야 되네.' 도서실에 가서 독서를 하니까  이 책은 이래야 된다 저 책은 저래야 된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지마는 하나님의  뜻 외에는 백도 천도 넘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지능의 그 보따리에 따라서  미혹물은 많습니다. 수많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기를 '이 세상  지혜는 자기를 빠지게 하는 궤계라' 자기를 빠지게 하는 꾀우는 꾀라 그렇게  말했소.

 이러니까 거게서 모든 주장을 부인하는 것이 세상을 부인하는 것이오. 세상을  이기는 것이오. 모든 지식을, 모든 방편을, 모든 조건을 다 부 인하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것이오. 세상은 세상 저거 조건에 복종하라 하는데 나는 세상  조건에 복종하지 안하니까 그를 이겼소. 하나님의 조건에 복종했으니까 그를  나는 다스릴 왕이 됐소. 이래 가지고 왕권 하나 하나는 점령됩니다.

 이래서 현실 현실에서 진리와 나와 연결되는 요 연결, 진리는 인간 보다  큽니다. 인간은 진리에게 속한 것이오. 진리로 말미암아 만들어 졌소. 진리와  나와 하나되면 그 하나된 진리는 없는 가운데 모든 만물을 창조한 창조의 능력  가진 존재입니다. 현실에 진리와 나와 하나되는 이것이 현실에서만  이루어집니다.

 또 현실에는 하나님이냐 내냐? 하나님 생각하면, 하나님을 생각하면 이래야  되고 너를 생각하면 이래야 되고, 하나님 생각하면 이래야 되고 너거 가족  생각하면 이래야 되고, 하나님 생각하면 이래야 되고 네가 사회 생각하면 이래야  되고 국가 생각하면 민족 생각하면 인류 생각하면 이래야 되고 하나님 생각하면  이래야 되고, 같이 될 새도 있지마는 반대될 때 많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  버리고 딴거와 하나되라고 수많은 것들이 와서 부르짖을 때에 그때에 우리는  깨야 합니다. '좋다. 기쁘다. 이때에 나는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다. 이때에  하나님의 것이 되지 못하게 하는 이 모든 피조물들은 내것이 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것 모든 것은 내것 이 전투의 이 지극히 큰 승리 이것이 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이것을 사실을 깨닫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러기 때문에 돈만 보고 계산하는 사람은 신앙 걸음이 실패지마는 이 면을  보고 계산하는 사람은 신앙 걸음이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의 계산은 이걸 보고  계산하지 땅의 것을 보고 계산하는 우리의 계산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자기 매일 생활하는 그 시간표를 정해 놓고서 모든 것에  계산하는 것이 세상과 달라. 그날은 세상의 모든 것에 대 성공을 했는데  그날밤에는 계산하기를 '오늘 나는 종일 상전을 거짓 말쟁이 악한 상전을  마련했고, 내 모든 만물은 다 빼앗겼고, 만물을 통치할 수 있는 나도 빼앗겨서  대실패자다.' 하는 것으로서 돌뱅이를 그려서 대실패자라 전공 생활이라,  거기다가 그리면서 '대실패자라.'  그날 현실 현실에서 주의 것이 되고 진리의 것이 되는 이것은 세상이 볼 때는  미련하고 죽는 일이지마는 오늘은 성공이라 성공이라, 승리라 승리라 하는  승리의 표를 하고 지나가는 것이 그 시간표를 두고서 생활하는 그 성도들의 매일  계산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모세도 날수 계산 하는 지혜를 주셔서 항상 날수  계산하는 이 계산을 게을리 하지 말고 하루도 띄우지 말고 계산하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에게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됐고 모든 피조물에게는  봉사자 됐습니다. 우리는-말씀했습니다.-우리는 뭐할라고 불렀느냐? 선한 일을  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 이랬어. 선한 일을 시키기 위해서 불렀다 이랬어.

하나님 중심의 일을 영원히 시키기 위 해서 우리를 불렀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만물들에게 나눠 줘서 만물들에게 충만하도록 이 일 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 했습니다.

 우리는 봉사자입니다. 영원한 봉사자입니다. 우리가 없으면 안 될 그런  봉사자가 되어져 가는 것이 우리가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큰 봉사자 예수님이,  만일 봉사자 예수님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창조는 다 박멸입니다. 이 한 분의  봉사자로서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이 됐다고 요한계시 5장에 말씀했습니다.

다시는 인봉한 것을 뗄 자가 없어.'인봉 뗄 자 없으면 다시 전개가 없다 말이오.

다시 역사에 전개가 없는데 어린양이 인봉을 뗐어. 어린양이 이 다시 새로운  전개,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는 새로운 역사 전개 계속이 어린양으로 말미암아  됐습니다. 그분의 봉사로 말미암아 됐어.

 우리는 이렇게 크게 쓸모 있는 자요 또 유익되게 필요한 존재들입니다.그런고로  우리가 어떤 자에게 봉사 될지 뭐 압니까? 저 지난 번에도, 무궁세계 가  가지고서 억만 년이 지냈는데 억만 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한 군데 가니까, 억만  년이 지냈는데 한쪽 구석에 가니까 거게 뭐 있는 줄 몰랐는데 한쪽 구석에  가니까 수많은 존재들이 마구 환영식 한다고 하면서 잔치를 하고 야단이  났습니다. '여게도 세계가 있나? 여기 모두 뭐한다고 이래 떠들고 있느냐?'  만물에게 물으니까 '우리 모두 환영식 할라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환영식이라니? 누구를 환영하는데? 누구를 환영하는데?'  자기가 몇억만 년 후에 거기 가니까 이 세상에 있으면서 억만 년 후에 만날  그것들에게 큰 봉사를 일으켜 그들이 구출되어 만물이 새롭게 돼서 무궁한  세계에 무궁을 누리고 있는 그것이 한 성도가 땅위에서 믿음을 지키는 그것으로  인해서 그들이 구속받고 구원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구속의 저거 중보자가 되는 '당신 오시기를 우리가 기다리고 환영식을  베풀고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할 때에 그 사람은 놀라 '내가 언제 그랬으며  내가 어떻게 그렇게 했으며 내가 알지도 못했는데 다 그게 성도입니다.

 알지도 못했으나 네가 만물로 더불어 관계 가질 크 현실에 진리를 양보하지  안하고 진리로서 이겨 네게 관련된 것은 다 승리가 됐고 하나님을 영접하고  만물을 배척하는 거기에서 모든 존재는 하나님괴 연결이 됐고, 너로 인해서  하나님과 연결됐고 진리와 연결됐고 생명괴 연결됐기 때문에 너로 말미암아 구원  얻었는고로 '만물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유함에 이르기를' 자유함에  이른다 말은 영감 진리대로 살기를 고대하고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비밀입니다.

 이렇게 깊고 넓은 비밀을 가진 우리들입니다. 지위를 가지면 얼마나 가지며,  부강을 가지면 얼마나 가지며, 재미있는 행락을 누리면 얼마니 가질 겁니까? 제  신경이 뒤벼져서 제 안목의 정욕 가지고 '눈에 좋다 아름답다.' 온갖 이런  신경의 일시의 만족, '안목의 정욕과 육체의 정욕과 이 세상에서 잠깐 자랑할  것들이니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되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넓어집시다. 키웁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짝 넓혀뜨립시다.

짝 늘여뜨립시다. 가죽이 툭툭 튀어 나오도록 짝 늘여뜨립시다. 우리는 영원한  포부를 가지고 지극히 큰 배경을 힘입어서 우리의 소망을 달성해야 합니다.

오늘이라는 이 현실은 가면 다시 못 옵니다. 단번에 주신 구원이오. 그런고로  현실을 우리는, 내 현실은 우주보다 귀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자기에게 속지 맙시다. 자기 지체를 죽입시다. 자기 지체 속에, 자기 이런 지체  저건 지체 속에 정욕이 들어 가지고서 그놈이 들어서 나를 꾀워서 일생을 솔빡  도적맞게 만들고 일생을 꼬여서 망치게 만드는 거게 속지 맙시다.

눈 감고 명상하면서 결심합시다. 이제는 비록 땅에 살지마는 모든 피조물을  떠나서 조물주 밑에서 삽시다. 우리의 배경, 성령과 진리외 주의 공로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힘입고 힘입고 힘입어서, 모든 피조물은 우리 위해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영감대로 진리대로 그에 게 대해서 나는 행하면  나는 그를 이겼고 그는 나의 종이 되었고 그는 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고  내가 그것에게 피동되면 내 요소는 영원히 그의 종이 되어서 영원히  멸망받습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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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 인내/ 야고보서 1장 3절-4절/ 860103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6
1672 인내/ 야고보서 1장 2절-4절 / 1983년 36공과 선지자 2015.12.16
1671 인내로 승리/ 야고보서 1장 2절/ 85053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6
1670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야고보서 1장 2절-4절/ 880426화새 선지자 2015.12.16
1669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야고보서 1장 4절/ 890519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6
1668 인내-옳은 계속은 영원히/ 야고보서 1장 4절/ 840803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6
1667 인내의 말씀-다섯가지/ 요한계시록 3장 7절-13절/ 860917수야 선지자 2015.12.16
1666 인내의 말씀-다섯가지/ 요한계시록 3장 10절-13절/ 860919금새 선지자 2015.12.16
1665 인내의 말씀-빌라델비아교회/ 요한계시록 3장 10절-11절/ 820202화새 선지자 2015.12.16
1664 인내의 말씀-신앙성공은 인내/ 요한계시록 3장 7절-13절/ 831203토새 선지자 2015.12.16
1663 인론/ 요한계시록 17장 14절/ 840808수후집회 선지자 2015.12.16
1662 인론/ 고린도후서 5장 15절/ 840716월새 선지자 2015.12.16
1661 인론/ 골로새서 3장 1절-4절/ 890430주전 선지자 2015.12.16
1660 인류시조의 범죄 순서/ 창세기 2장 15절-17절/ 810208주후 선지자 2015.12.16
1659 인류역사 중 큰 멸망/ 마태복음 12장 38절-40절/ 1976년 44공과 선지자 2015.12.16
1658 인류의 가치/ 고린도전서 15장 42절-44절/ 820114목새 선지자 2015.12.16
1657 인류의 가치/ 고린도전서 15장 39절-44절/ 820110주후 선지자 201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