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

 

1984. 8. 22. 새벽 

 

본문: 야고보서 1장 2절∼4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러가지 시험이라는 이 말은 '여러가지 현실을'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현실이라면 자기에게 닥쳐진 그 형편, 시간으로 말하면 현재이고. 또  장소로 말하면 어느 자리든지 자기 있는 그 자리이고, 또 모든 사물로 말하면  자기가 현재 당도하고 있는 그 모든 사물. 사람들 그런 것이 다 자기 현실이오.

현실인데, 그 현실을 그러면 '여러가지 현실을 만나거든 이래야 될 터인데 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렇게 말했는가? '여러가지 현실을 만나거든' 하는  말과 꼭 같은 말입니다 같은 말인데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하는 것은 그  현실이 신앙 생활 하기에 유지하기에 어려움울 나타내서 시험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하는 말은 '여러가지 현실을  만나거든' 또 그것을 겸해서 말할라면 '너희가 여러가지 어려운 현실을 만나거든'  하는 그런 말입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뭐 조금도 억지로 기쁘게 여기지 말고 참속속들이  기뻐하고 참 너희들이 모든 면으로 기뻐해야 된다. 왜, 기뻐해야 되느냐?  기뻐해야 되는 이유 중에 첫째는 그 현실을 만든 것이 우리가 볼 때에는 누구로  말미암아 만들어졌다 누구 누구로 됐다 이렇게, 사람이나, 뭐좋은 현실은 또 어떤  사람이 들어서 좋은 현실을 만들어 줬다, 또 자기가 들어서 그래 만들었다. 우연히  그렇게 만들어졌다, 좋은 것은, 좋은 현실 만들어졌으면 좋다고 기뻐하고 나쁜  현실 만들어졌으면 나쁘다고 원방 불평 짜증 또 근심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현실을 첫째 알 것은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이 우리를  하나님과 같은 그런 온전한 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 목적을 가지시고  우리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주님이 큰 힘 들여서 우리 현실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시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므로 현실을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현실은 사랑하시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므로 나를 복되도록  하기 위해서 만든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럴 때에 그 현실에  대해서 여러가지 오해가 다 풀릴 것입니다.

 둘째로 또 그 현실에 대해서 기뻐할 이유는 뭐인고 하니 그 현실은 우리에게 다  유익하지 해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우리가 이해하는 '아, 이 현실은  좋겠다.' 우리가 좋다고 이해하는 그 현실은 실은 그 현실이 우리의 그 신앙  인격적으로는 그렇게 별 유익이 없는 것이고 우리가 이해 못 할 그런 현실은 참  우리 인격, 신앙 인격에 대해서 크게 수입 있는 그런 현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저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그 현실은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이렇게 저렇게 모두 다 평가하기를 뭐 좋다 나쁘다, 더 좋다 덜 좋다 많이 나쁘다  덜 나쁘다 이렇게 우리가 평가하지마는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 하신 것은 그  현실은 우리의 구원 이루는 가치에 있어서는 꼭 같습니다. 뭐 이 현실이나 저  현실이나 꼭 같은 무한한 유익이 있습니다. 무한한 유익 무한한 수입, 무한한  성장, 무한한 온전을 이루는 그런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이 내게 대해서 이용 가치.

또 그 결과의 효력, 이용 가치나 결과의 효력이 꼭 같다, 또 현실은 사랑하시는  주님이 만들어 주신 현실이다. 요 것을 우리가 두 가지 생각해야 되겠고  세째로 생각할 것은 여게서 참 주님이 만들어 주신 한없는 유익의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는 이런 현실인데 여게는 제일 중요한 게 뭐이냐 하면 요 현실을  내가 복되도록, 유익하도록, 좋은 결과가 맺도록 좋은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이렇게  하는데에는 다른 것 아무것도 없고 인내가 중요하다 인내라야 된다. 인내라 말은  참을 인(忍)자 견딜 내(耐)자, 참고 견딘다는 말이 인내라 말인데, 그 인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계속이라는 말입니다, 계속.

 우리는 자기 현실이 바꿔지면 그만 우리의 그 모든 신앙 행위가 바꾸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바꾸어지면 실패하는 것이고 죽는 것이고 어떤 현실이 와도  자기가 시작한 신앙 생활. 그러면 시작한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성경을 보고서  '내가 이래야 되겠다' 하고서 옳은 행위를 시작한 것, 옳은 행위를 시작해 놓은 것,  옳은 행위를 시작해 놓은 그 행위를 그것을 계속 하는 거기에서 이제 성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래 읽어본 고 최 덕지 선생도, 그 책을 기록한 분이 며칠 전에 한번  찾아와서 서로 만났습니다. 그분 남편은 재건 교회 목사님이고 또 그 분은 재건  교회 전도사님이고 이런데, 그분을 만나 봤는데 그분이 최 덕지 선생님을 내치  모시고서 별세할 때까지 그렇게 수종들고 같이 다니면서 은혜를 받은 분이.

자기가 그때 필기해 놓은 것이 너무 거석해. 벌써 별세 하신 지가 한 이십 년 된  후에 오늘 그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셔서 그것을 책에 옮겨 썼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그랍디다.

 그런데, 그래 내가 그분을 만나 가지고 그래 물었습니다. 그분이 어데서 난  태생이며 또 그분의 신앙 계통이 어데며 누구에게 은혜 받아 그래 됐느냐? 좁고  깨끗한 그 신앙이 어데서부터 시작됐느냐 이렇게 물으니차 그분이 말하기를  그분의 신앙은 환난을 만나 가지고 그 환난 때에 그런 신앙을 발견도 했고 그  신앙 생활이 시작됐다 그렇게 말합디다. 환난 때 발견됐다 했는데, 저는 제가 또  생각하는 대로 꼭 같습니다. 저도, 그분의 신앙이 뭐 우리 한국에서 무슨  선교사들이 그런 참 깨끗한 좁은 신앙을 가져서 그 선교사들에게 은혜받아 그런  것도 아닙니다. 또 그때에 유력한 부흥사들이 있었지마는 그 부흥사들의 신앙이  아주 유치했고 아주 뭐 널펑했지 그렇게 뾰족한 그런 참 족은 문을 찾지  못했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의 신앙이 어데서 씨가 떨어져 가지고 그와 같이 됐는가'  이렇게 궁금해서 늘 평소에 늘 궁금해 가지고 있던 문제가 돼 놔서 그래 만날  때에 그분의 신앙의 종자를 어데서 받았으며 그 유래가 어째 됐느냐 그걸 제가  물었습니다. 물으니까 그분이 대답하기를 그분의 신앙은 뭐 그 전기를 보면은  같이 내치 살았으니까, 보면은 다 늘 평범한 신앙을 가졌었는데 환난을 만나는  그럴 때부터 그 신앙이 생겨져서 그렇게 깨끗한 신앙을 가지게 됐다, 그 환난에서  그런 신앙을 찾았다 그래 말합디다. 저는 제가 생각한 거와 동감이 돼서 오늘  아침에 또 아 말씀을 증거합니다.

 증거하는 것은, 환난에서 찾았다 하지마는, 환난에서 보기에는 찾은 거 같지마는  실은 환난에서 찾은 것이 아니고 인내에서 찾았습니다, 인내. 우리는 그 인내에서  신앙이 깨끗한 신앙이 움트는 것을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평소에  신앙 생활 요렇게, 평소에는 하기 쉬운 신앙이지 마는 평소에 요것이 옳다 해서  옳은 신앙 생활을 자기가 뭐 기도하는 것이든지. 또 예배드리는 것이라든지,  자기의 경제 생활하는 것이라든지. 또 사람으로 더불어 사교 생활하는 것이라든지  모든 것을 요렇게 신앙 생활 하는 것어 좋다 해서 그 신앙 생활은 다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그 신앙 생활을 우리가 평소에 쉬운 때는 그 신앙 생활 안 하는  사람이, 뭐 물론 신앙이 어린 사람은 못 하지마는 그래도 좀 예수님을 믿을라  하는 사람들은 성경 말씀대로 신앙 생활 할라고 그것을 작정을 하고 그렇게 신앙  생활을 모두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는데. 그 신앙 생활 하다가 이 현실이라 하는 것이 이런 현실이 되면은  그만 그 신앙 생활을 또 양보하고 또 저런 현실이 되면은 그 신앙 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시작했던 신앙 생활을 계속하지를 못하고 시작했던 신앙 생활을 또  중단했다가 또 새로 시작했다가 중단했다가 시작했다가 이러니까, 탑을 쌓는  사람으로 말하면 항상 기초 않고, 한층 놓고 나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은 그만  탑을 쌓던 사람이. 탑은, 망대를 세우던 사람이 그 망대를 그만두고 또 이제 아무  어려움이 없으니까 또 새로 망대 터대를 쌓아 가지고서 또 새로 시작했고 또  시작했다가 혹 한 층이나 두 층이나 쌓고 난 다음에 어려움이 있으니까 탑 쌓던  것을 그만 둬 버리고 중단해 버리고 또 새로 쌓고,  그러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가 그 신앙 생활이 현실로  인해서 중단됐다가 또 새로 하면은 내나 그 탑 위에 쌓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마는 그게 아닙니다.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가 그 신앙생활이 어떤  어려움을 인해서 그만 중단당했습니다. 중단을 당해서 하루를 중단당했든지 한  시간을 중단당했든지 또 뭐 한 달을 중단당했든지, 한달 중단당하나 하루  중단당하나 한 시간 중단당하나 당한 것은 한가지입니다. 요건 알아야 됩니다.

 자, 그 사람이 예를 들어서 기도해야 된다, 하루 세 번이면 세 번 네 번이면 네  번 기도해야 된다 이렇게, '나는 하루 네 번씩 기도하기로 작정 하고 기도하겠다.'  사도들도 세 번씩 기도하고 또 아침까지 말하면 네 번 기도한 셈입니다. 그렇게  기도했는데, 그분도 네 번 기도한 것을 했다는 것이 새벽이고 아홉시고 열 두시고  오후 세시고 아마 그래서 네 번씩을 기도하지 안했느냐 그래 생각이 돼집니다.

 그러면, 요렇게 나도 계속해서 기도하겠다 이렇게 했는데. 그만 어떤어려움을  인해서 고 시간에 그 기도를 계속 못 했습니다. 한 번 계속 못했습니다. 그  어려움을 인해서 한 번 계속 못 하고 고 이튿날은 고 시간에 또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어제는 그만 계속 못 했지마는 어제 못 한 것을 오늘  또 계속하자 이렇게 우리는 자꾸 생각하는데 그게 계산이 틀린 것입니다.

 어제 하던 신앙이 환경에게 져서 그 신앙을 계속하지 못하면 환경에게 그  신앙은 뺏겼습니다. 이제까지 환경에 뺏겼고 환경에 져서 그 기도하던 신앙생활은  패전이라 말이오. 패전했으니까 원수가 벌써 따 먹어 버렸어. 원수가 따 먹고  자기는 그걸 계속하지 못했으니까 그거는 패전했는데 패전한 것을 패전한 줄을  모르고 또 어제 것 계속한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실상은 자꾸 망대를  지으면서 터를 닦고 한 층 쌓다가 또 그만 못 쌓고 그라니까 중단했다가 또 그  다음에 새로 자기가 시작하는 그것이 새로 터 닦고 새로 망대를 새로 시작한  것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자꾸 그전에 쌓던 것이 계속됐다고 이래 하는 요  계산에서 우리는 다 실패됐다 말이오.

 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인내를 이루지 못하면 패전한 것입니다. 계속 못  했으면 패전한 것인데 계속 못 한 걸 패전인 줄 모르고 그렇게 하고도 됐다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신앙 생활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간부를 더불어 음행한다, 또  음녀로 더불어 음행한다. 음행의 포도주를 마신다 이랬는데 어떤 여인이, 정절  여인이 자기가 남편으로 더불어 밀접한 그런 참 정절을 지키고 있다가 그만  현실에 어떤 사람에게 강제를 당했든지 어째 당해 가지고서 그 정조를  팔았습니다. 그 정조를 뺏겨서 그만 한 번 음행했습니다. 간음을 했습니다. 한 번  음행했지마는 또 새로 남편 만나니까 어제는 간부하고 음행을 했지마는 오늘은  본남편하고 이거 음행하니까 과거가 계속되는 게 아니라 실은 그 사람은 정조를  팔았고 지금 새로 결혼하는 것입니다. 새로 부부 되는 것이지, 그걸 알면 새로  부부 되는 것이지 그게 어제 부부가 계속되는 거 아니라 말이오. 그걸로 벌써  끊어졌다 그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그 최 덕지 선생은 그이의 신앙을 약간 내가 한 토막만 읽어  봤습니다. 읽어 보고도 내가 깨달아진 것은 이분의 신앙은 과연 어데서 나왔던가  궁금한 문제가 있었는데, 궁금한 문제인 신앙의 종자가 어데서 나왔느냐? 별  종자가 아니고 그분이 신앙을 양보하지 안하고 계속하는 그 계속에서 이 신앙이  자라 나왔다. 계속하니까 자꾸, 이런 형편에서 계속할라 하니 그런 뾰족한 신앙이  됐고 저런 현실에서 계속할라 하다 보니까 그렇게 강한 신앙이 됐고 이러니까  모두는 다 좁고 강하고 또 깨끗하고. 그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자기 시작한  신앙을 양보하지 안하고 계속할라는 거기서 전부 다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하고 얘기할 때에 제 속으로는 '아, 참 인내가 복이 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너희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 된다. 그분의 신앙은 인내에서 얻었다. 인내에서 마련했다.' 그것은 저도  체험입니다. 인내하면 그런데 그만 인내 안 하고 뺏겼으면, 새로 신앙이라. 어제  신앙이 아니라.

 그런데, 저도 그런 시험을 늘 당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그것을 계속하던 것을  계속하지 못하고 중단했다가 새로 시작하면은 계속인 줄 아는 그런 오해를 가진  그것이 가끔가다 나와서 자꾸 시험한다 그말이오. 계속한다. 이것은 다, 과거 신앙  생활은 다 패전해서 원수에게 뺏겨서 헛일했고 지금 또 새로 출발을 하는 그걸  생각지 못하고 계속이라고 이렇게 오해하는 거게서 자꾸 낙관이 되어지고  실패되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계속이 중단되면 중단이라. 계속이 중단되는 것은 완전히  원수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원수에게 그 신앙은 뺏겼기 때문에 그 신앙은 못 쓰고  또 새로 시작해야 됩니다.

 그러면, 과거에 내가 신앙 생활을 할 때에 얻은 그 힘은 없어지지 안하기 때문에,  서로, 나는 신앙 생활 계속 할라 하고 악령은 '계속하지 못하게 하고 이라니까  계속하던 이것을 빼앗겨서 패전은 하기는 했지마는 탑을 쌓는데 기초 닦고서  탑을 쌓으니까 쌓다가 그만 못 쌓구로 못 쌓는다' 중단을 시켜서 그만 중단을  당했습니다. 못 쌓게 해서 중단을 당했습니다. 중단을 당했으면 원수에게  점령당했기 때문에. 원수가 못 쌓구로. 원수의 것이 되었으니까, 원수의 것이  됐어요. 그 탑 쌓던 것은 원수에게 뺏겨서 원수의 것이 됐습니다. 원수의 것이  됐으니까 다서 그 자리에 탑을 쌓을라 하면 원수가 원수의 종이 되면 그 탑을  쌓으라고 하겠지마는 원수의 종이 아니고 원수의 대립편에서 가지고는 탑을  쌓을라 하면은 그 탑은 원수가 전쟁해서 이긴 것이니까, 시비해서 이겼으니까  이긴 자의 것이니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인데, 이긴 자의 것인데 제것인  줄 알고 탑을 쌓을라 하면은 그만 '이거는 내것이니까 내것으로 쌓아라' 그 탑을  쌓을려면 마귀의 종 노릇 해야 쌓을 것이고 그렇지 안하면 못 할 거라 말이지요.

 이러니까, 그러면, 탑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시작하니까 또 기초 닦아야 되고  이래 되지마는 처음에 기초 닦고 쌓을 때와 한 여나무 번 실패를 했으니까 기초  닦고 시작해서 쌓는 것이 처음보다 좀 능숙해졌습니까, 처음보다 더 어렵습니까?  어렵겠소 쉽겠소? 쉽습니다. 쌓았으니까,  그러면, 자기가 쌓는 그 기술은, 자기에게 있는 기능은 그것은 그대로 있으니까  쉽지마는, 그 기능은 빼앗아 가지를 못했지마는 전투적인, 전투적인 신앙의  정조면으로 또 전투적으로, 그걸 쌓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과 나는 쌓는다는 것.

서로 투쟁적인 그 건설, 우리 신앙 생활은 전부 전투인데 싸우지 안하는 거는  하나도 없는데, 투쟁적인 그 면에서는 나는 완전히 패전이요 그에게 뺏겨졌고, 또  정조면에서는 벌써 정조가 더러워졌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다만 그렇게 하면은  그것을 새로 하고. 새로 했더란대도 망대를 건축하는 기능은 우리가 뺏기지  안하고 기능은 가지고 있지마는 전투적으로는 패전했고, 정조적으로는 뺏겼고,  계속적으로는 절단돼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것을 알아서 무슨 신앙이든지 자기가, 기도하는 것이든지,  '나는, 내가 말에 대해서 거짓말하지 않겠다' 한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제는 말하는 것이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주님이 말하게 하시는 고 말만 하자  내 말대로 하지 않겠다.' 어떤 사람은 '이제는 내가 무슨 말하든지 주님에게  물어보고 하겠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말할 때에 성경 말씀에 위반되지 안하는  그런 말 하고 성경 말씀에 합당한 말만 하겠다.' '나는 성경 말씀에 합당한  말이라도 주님에게 물어보고 주님이 하라는 말만 하겠다' 두 가지, '또 한 사람은  '내가 주님에게 물어보고 할 게 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서 하게 하시는, 그분이 내  안에서 하게 하실 때에 그로 인해서 내가 동하고 정해 가지고서 그로 인해서  내가 말하겠다.' 그러면 사람들의 신앙에 따라서 작정한 것이 각각 다를 거라  말이지요  그러면, 자기가 작정한 그 말에 대해서 '나는 주님이 내 안에서 역사해서 그분이  동함을 인해서 내가 동하지 내가 먼저 동해 가지고, 이 말 하랍니까 안 하랍니까  내가 동해 가지고 그분에게 물어 가지고 그분의 허락을 받아 가지고 내가 하는  그런 일 하지 안하고 당신으로 인해서 동하고, 내가 동해 가지고 할까 말까 그런  일 하지 말고 당신으로 인해서 내가 말하는 그분으로 동하고 정하는 그 일  하겠다' 만일 그렇게 했다고 하면은, 그렇게 하다가 그것이 그만 어떤 복잡한 일로  인해서든지 또 어떤 사람을 만나서 그랬든지 무슨 사건을 만났든지 그래 그만 그  일이 졸졸 계속해서 잘 나오다가 그 일을 인해서 딱 중단돼 버렸다 말이오. 그만  계속하지 못하고 자기대로 말을 했고 또 성경 말씀에 위반되지 안하는 정도의  말을 했지 자기가 그분에게 물어 보지도 못하고 뭐 어째 그만 성경에 위반되지  안하는 말만 했고 더군다나 더 그분으로 인해서 그분으로 동하고 정해서 말한  그거는 아예 그만 중단이 돼 버렸소.

 중단이 됐으면 그 중단된 것이 하나님 앞에 신앙적인,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  말이오. 신앙적으로는 벌써 패전한 것입니다. 신앙이라 하는 것은 주님에게  피동되는 게 신앙 아닙니까? 피동되는 게 신앙인데, 주님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환경에 피동되어서 주님으로 인해서 말하던 그거는 벌써 중단돼 버리고 환경으로  인해서 말했으니까 신앙적으로는 벌써 패전이라. 신앙적으로 패전이요 또 자기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으로 인한다는 신앙의 정조면으로서도, 신앙의 그  결백면으로도 벌써 패전이오. 또 신앙의 전투면 내 환경은 내 신앙 생활하지  못하게 쉽겠고 나는 하겠다 하는 이 전투면에서도 완전히 점령당하고 패전당했다  말이오. 패전당한 것이니까 우리는 패전인 줄 알고 이제까지 한 거는 실패인 줄  알고 새로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새벽기도를 꼭 계속하것다 했는데, 한 일 년 계속하다가 그만 어떤  일로 인해서 하루 새벽을 빼 버렸습니다. 하루 새벽을 빼 버렸으면 그걸 '아, 하루  새벽 빠졌다. 이제 다시 또 계속해야 되겠다' 이런데, 일 년 계속하다가 하루 새벽  빠진 이것을 그저 '한 층 더 놓을 건데 한 층 안 놨으니까 이제 다시 시작해서,  그전에 삼백 육십 오 층을 놨는데 또 이제 새로 시작해서 한 층을 놔야 되겠다.'  그러면, 과거에 삼백 육십오 층 쌓아 놓는 게 신앙적으로는 다 패전하고 원수에게  뺏겼고, 정조적으로도 완전히 더러워졌고, 전투적으로도 패전했고 이러니까 그것을  새로 시작한 다, 이제는 새로 시작한다는 고것을, 고거 새로 시작하는 것인데.

새로 시작한다는 그것을,  그렇지 않습니까? 정조면으로는 새로 시작하는 것 아닙니까? 결혼해 가지고  결혼해 가지고서 음행했으니까 결혼은 이혼돼 버렸다 말이오. 파혼됐다 말이오.

됐으면 또 새로 신혼으로 새로 결혼하는 것이지 과거의 결혼은 벌써 더러워졌다  말이오. 또 하나님에게 피동이라. 하나님 시키는 대로만 한다 하는 그 시키는  대로만 하는 고 피동이라는 것이 계속이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계속이 안 됐다  말이오. 계속 안 됐으니까 피동 그것이 끊어지지 안했습니까? 뭣 때문에  끊어졌습니까? 환경에서 하지 못하게 하니까 환경에 피동돼 가지고서 주님에게  피동되는 것이 끊어졌으니까 그건 다 절단난 것이라 말이오. 절단난 것이니까,  그러면 일 년 새벽기도 하다가 일년 새벽기도 한 거는 완전히 뺏겨서  헛일했습니다. 헛일했는데, 새로 시작해야 돼, 그러면, 새로 시작해야 된다는 것,  일년 했더란대도 그걸 패전해서 원수에게 뺏겼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라 하는  요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그러면, 새로 시작하면 일년 동안 새벽기도 한 것은 다 헛일이라. 아무 소용 없이  완전히 헛일했다. 거게서 완전히 헛일입니까, 거게서 그래도 자기가 신앙면으로  정조면으로 전투면으로는 완전히 원수에게 뺏겼지마는 거게서 얻어진 수입은  뭐입니까? 한번 말해 보이소 ○○○씨, 기능을, 기능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하나는 또 뭐? 그것뿐입니까? 그것뿐입니까? 기능은 남아 있습니다. 기능은 남아  있으니까 과거에는 그 탑을 쌓을 때에 힘이 들었지마는 삼백 육십 오 일 들어서  새벽기도 해 가지고 자기가 요만치 자랐던 고 기능은 있으니까 다시 새벽기도  시작해 가지고서 하면은 고만한 기능으로 속성으로 쌓아 올라간다 말이오.

속성으로 쌓아올라갈 수가 있어. 그러니까 얼마 안 가서 거게는 그만한 정도의  회복이 된다 말이오. 신앙 회복이 돼  그런데 또 뭐 하나 수입이 있습니까? 우리가 인제 뭣이 하나 수입이 있는가  그것도 모르면은 벌써 원수에게 다 빼앗겼으니까 소용이 없다 말이오. 하나  수입이 있는 것은, 내가 삼백 육십 오 일을. 내가 이렇게 삼백 육십 오 차례를  승리했는데 승리했는데 그만 삼백 육십 오 일 승리했던 것을 원수에게 싸워서  패전해 가지고서 완전히 빼앗겼다. 그러면, 삼백 육십오 일을 쌓았던 그 탑을  원수에게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사람에게는 뭐이 나옵니까?  뭐이 생겨집니까? 예? 그런 패전을 하기전과 한 후와 그에게 있는 것이  뭐입니까? 예? 그래, '이제는 내가 패전하지 않겠다' 하는고 각오 그게. '이제는  패전 안 하고 믿은 걸 계속하겠다' 고걸 요게 가리켜서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러니까, 패전하고 나니까 '이제는 내가 계속하겠다' 인내를 만들어 냈다 말이오.

믿음의 시련이 들어서 딱 패전하고 나니까, 패전했으니까 그거는 다 뺏겼지마는  기능은 그대로 남아 있고 거게서 인내는 만들어 냈다 말이오. '아, 이제는, 내가  실패했지마는 이제는 양보하지 않겠다 이제는 실패하지 않겠다. 이제는 빼지  않겠다' 하는 그런 것이 자기에게 있게 된 것이니까 그것이 인내가 생겨졌습니다.

그러면, 기능이 자기에게 남아 있고, '이제는 다시 지지 않겠다. 이제는 지지  않겠다' 하는, 패전 하지 않겠다는 그 뜨거운 각오의 힘이 그 속에 있고 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뭣이든지 우리가 그것을 고렇게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 하는 것도 꼭 자기가 그 믿음을 가지고. 혹 하나님께서  새벽기도 여게 하라 할 때도 있고 여게 하라 할 때도 있고 장소는 바꿀때가 있고  장소가 바꿔질 때도 있고, 또 새벽기도 하는 방편도 바꿔질 수는 있습니다. 꼭  '나는 아무 데 가 가지고서 기도했기 때문에 고 장소라야 된다. 고 방편으로 된다'  하는 그것은 잘못하면 어두워서 고거 승리하는 것 같으나 패전하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꼭 고 장소를 양보하지 말고 하는 게 아니고 장소도 바꾸어질수 있고  방편도 바꾸어질 수 있고 있으나 자기가 첫날을 만나 가지고서 첫날 그 첫시간을  하나님 섬기는 것과 하나님에게 또 모든 것을 의논하는 것과 하나님에게  간구해서 하나님에게 은혜를 입어 가지고 사는 것 그러며 그것만 계속하면 된다  말이오. 장소와 그런 방편은 다를지라도 고게 새벽기도라 말이오. 하나님 앞에서  그날 아침에 새로운 은혜를 받는 것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 또 그 은혜의  주에게 대해서 모든 걸 의논하는 것 또 의논하고 난 다음에 자기의 어려움이  있으면은 그것을 간구할 것 또 잘못됐으면 자복할 것, 어쨌든지 새로 첫날을 만나  가지고 그 첫날을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렇게 의논하고, 교제하고, 또 그이에게  부탁하고 또 그이의 은혜를 또 감사하고, 또 그이를 힘입어서 살고 하는 요  하나님과 결합 되는 고 결합이 그것이 어떤 환경으로라도 뺏기지 않고, 하나님과  결합되는 그 결합이 뺏기지 안하고 잠 깨고 난 다음에 하나님과 결합된 그  결합이 계속됐다고 하면은 그것이 새벽기도 계속된 것이요 그것이 믿음 계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는 요 계속에서 모두 힘을 얻는다, 계속에서 능력이  생겨진다 자라게 된다. 요 계속이 끊어졌으면 끊어진 줄 알고 다시 새로 시작해야  된다. 새로 시작하면 기능은 자기에게 뺏기지 안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고,  또 자기가 이제 한 번 실패했기 때문에 한 번 실패 한 것이 자기에게 각오가 돼  가지고 이제는 다시는 그런 형편 당해서도 내가 실패하지 않겠다, 고다음에는  고런 사정 되면 요럴 때 내가 과거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제는 실패하지 않는다  하니까 고게서 뭐이냐 하면은 그 시험으로 인해서 인내가 만들어져. 인내가  생겨져 나왔다 말이오. 그 다음에는 그와 같은 과거에 실패한 그런 현실을 만나도  거게서 중단되지 안하고 계속할 수 있는 계속이 여기서 생겨 나왔나 하는  그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기도록에 등록한 사람은 육천 오백 구십 이 명입니다. 지난밤에 태풍이 불어서  숫자가 적습니다. 와서 기도한 사람은 사백 칠십 사 명 인제 이것이 이제 인내가.

보통 육백 얼마 됐는데 사백 칠십여 명이니 오백 명에서 모자라니까 한 백여  명은 벌써 여게 와 가지고 기도하던 것은 벌써 끊어졌다 그말이오. 중단됐어. 또  권사님들은 지금 딴데 가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목사님 네 분은 그대로  계속했습니다. 장로님들은 여섯분은 계속하고 또 남은 장로님들은 여게 와서 하는  거는 또 계속하지 못했다 말이오. 다른, 그라면 장소는 계속하지 못하고 기도하는  거는 계속했을 것입니다.

 그러고, 장소는 혹 여기서 하는 것보다 더 좋을 수도 있어. 여게 와서 하던 것이  산에 가서 하면 더 좋고 또 그냥 기도하던 것이 또 단식 기도 하면은 더 좋고, 또  여게서 기도하던 것이, '나는 오늘 시험삼아 내가 복잡한 시장에 가 가지고서  기도하겠다.' 시장에 가서도 양보하지 안하고 기도할라 하면 더 강한 싸움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 나는 자꾸 이래만 기도할 게 아니라 오늘은 역부러 안  가던 영화판에 내가 한번 가겠다. 영화판에 가 가지고 내가 기도를 계속해  보겠다.' 그러면, 기도할 때 영화관에 가 가지고서 영화 이래 보는 그 자리에서  영화에 마음이 뺏기지 안하고 자기가 주님으로 더불어 기도하는, 자기 마음이  주님과 연결되는 그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고, 고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도록  계속되도록 그래 할라 하면 힘이 듭니다. 그러면, 계속되는 그것이 계속했다가 또  끊어질 뻔 하다가 또 계속되다가 그만 얼마 동안 그만 뚝 끊어져 버렸으면.

끊어졌으면 그때 끊어졌으니까 그 다음에 두번째 시작할 때에는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서 우리는 자꾸 이리 저리 연단을 해서 우리 신앙을 온전한 계속을  온전한 계속을 만들어 내도록 우리는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것만 온전히 이루면 그만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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