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론


선지자선교회 1984년 8월 8일 수후집회

 

본문 : 계 17장 14절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다 들립니까? 다, 저 뒤에  들리면 손들어 보십시오. 네, 네. 여기도 들립니까? 저 뒤에 저기 들립니까,  저게?) 인류 역사가 생긴지 벌써 육천 년이 다 돼 갑니다. 그런데,  반거짓말쟁이는 육천 년이 아니라 육억만 년도 더 됐다고서 그렇게 해서 성경을  부인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있습니다. 어쨌든지 육천만 년이라 하면 더 오래  됐고 육천 년이라 하면 좀 오래 되지 안한 것인데 우리는 성경대로 고대로  믿어야합니다. 성경에는 거짓말이 없지마는 다른 거는 다 아무것도 모르고 저거  생각나는 대로 자꾸 말해요.

 육천 년 동안이나 이 역사가 계속한 셈인데. 노아 홍수 때에 한번 정리는  하기는 했지마는 그래도, 노아의 여덟 식구 가운데도 내나 원죄 본죄 그  부패성은 그대로 유전으로 따라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그 지식에 욕심이 있어서 어쩌든지 한 가지라도 좀 더 알고 똑똑히 알고 또 깊이  알고 넓게 길게 알라고 노력하는 일은 뭐 쉬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이 계시 지식 외에는 인간들이 단합하고 또  연구에서 연구를 상속시켜서 오늘까지 나왔지마는 이 모든 존재들이 어떻게 돼서  존재했느냐 하는 그런 것은 바로 안 사람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바로  안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 옳고 바르게 정확히 아는 지식의 은혜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이것도 우리가 너무 유치해서 여기에 대해서 감사함이 적지,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나 또 모든 인생의 존재에 대해서나 만물의  존재에 대해서 그것을 알라고 하나 그 지식이 다 일치되지 안하고서 뭐 백  명이면 백 명이 다 각각 다른 말을 하고 또 시대마다 다른 말을 해서 하나도  일정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이 지식은 그 상고 때나 지금이나  수정한 것이 없고, 더 우리에게 좀 더 알려주시고 똑똑히 알려주시는 일은  있어도 과거에 하나님이 나타낸 지식이 잘못돼서 다시 수정되는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세상 지식은 마치 갈 지(之) 자 걸음과 같습니다. 갈지 자는 이리  삐치고 이래 가지고 이라고, 이래 이래 이라면 갈 지 자입니다. 그거 모양으로  이랬다가, 이랬다가, 이랬다가 모두 다 세상 지식은 그렇지 일관으로 쪽 곧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은 창조할 그때의 선포한 지식이나 지금 지식이나 조금 더  그때 말하지 않은 것이 더 첨부된 것뿐이지 그때 말한 그 지식이 틀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옳고 바르고 참된 지식을 주신 데 대해서 우리는  감사할 줄 모르나 참 감사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지 안했으면 우리는 무슨 문제라도 그 문제가 어떻게 됐나  하는 알고 싶은 궁금한 그 마음은 가졌지마는 아무리 알라 해야 배울 데가 없고  가르쳐 줄자가 없습니다.

 수많은 책을 내가 읽어보지는 안했지마는 대략 이래 일생 동안을 거기에다가  기울여 가지고 연구한 그런 사람들을 접해 가지고서 이 종류 저 종류 수많은  종류를 접촉해 봐야 깜깜하게 그만 정직하게 말하면은 '모른다' 하는 것이  정직할 것이고, 안다는 거는 다 거짓말쟁입니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모른다고  이렇게 말했는데, 이 불교에서도 모른다 하는 게 처음에 정직인데 대략 이렇게  추측하고 추론하는 것을 '이럴 것이라' 이래 말했는데 고 다음에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말해 가지고서 그걸 그만 바꾸어서 '이렇다' 한다고 했지마는 그것이  지금 다 틀려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모든 만물을 지으셨고, 또 이 영계에 있는 것도 언제  지었다는 말은 없지마는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우주를 지으실  때에 우리가 가서 살 영주처인 하늘나라도 그때 그 동시에 예비했다 하는 그  근거의 한 마디가 나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영계도 이 물질계의 이 우주를  지으실 때에 그때에 지었다, 그러면, 지은 순위는 영계를 먼저 짓고 이 물질계를  두번째 다음으로 짓지 아니했느냐 하는 그런 것을 약간 우리가 추론할 수  있습니다.

 엿새 동안에 만물을 지으실 때에 마지막에 지은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을  마지막에 지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다른 만물을 지을 때와 같이 짓지 아니하시고  삼위 일체의 하나님께서 특별한 회의를 열어 가지고 회의해서 사람은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지을꼬' 이렇게 의논한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지으실 때에 첫째 결정한 것이 '우리 형상대로 짓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짓자 하는 그것이 결의가 되었고, 그 다음에는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도록 짓자  하는 그것이 결의가 되었고, 그 다음에 모든 것을 통치할 수 있는 자로 짓자  하는 이 세 가지 결의 끝에 사람을 지었습니다. 사람을 지으실 때에 이 육체는  흙으로 지었고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것으로 지어 졌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형체가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그 자체가 완전자이기 때문에 완전자는 어떤 형 속에 들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완전자에게는 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래서, 그분은 형을 가질 수 없는 무형의 존재입니다. 영체도 없고 물체도  없고 무형의 존재로서 완전자요 영원 불변자요 또 그는 자존자요, 또 그는  생겨졌는데 우리 모양으로 이 종합체로 되어 있지 안하고 단일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속성이 있고 두 가지 속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수많은  속성으로 역사에 나타나지마는 이 속성은 이 속성대로 따로 있고 저 속성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속성이 전부의 속성이고 전부의 속성이 한 속성입니다.

그래서 단일성으로 그렇게 존재하신 분이십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 하는데 그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어떤  형상인지 볼 수 없고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의 형상이 성경 가운데에 약간  나타났습니다. 나타난 것은 그리스도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셔서 예수님의 그 인격성, 예수님의 그 인격성을,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신성의 모형인 인격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인격성을 하나님의 형상이라 그렇게 발표를 하셨습니다.

 또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신성은 알 수 없지마는 만물을 창조하신 그  만물에게, 창조된 모든 만물에게 하나님의 신성이 나타났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성을 우리가 약간 짐작할 수가 있고 초  하나님의 형상을 짐작할 수가 있으니 그 하나님의 형상을 이런 데다 참고해  가지고 우리가 연구할 때에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인데 그분의  무형의 존재가 나타나신 것은 그분이 모든 만물을 지었는데 만물이 하나님의  신성대로 지음 받았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성대로 치음을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형상이 지으신 만물에 나타났고, 또 하나님의 그 신성이  성경에 우리에게 나타내서 가르쳐 주셨으니 하나님의 신성이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짓자고 했는데 사람을 그 형상대로 짓자고  했으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원형이 되겠고 사람은 모형이 되겠는데, 모형인 이  사람의 인성 그 인성을 살펴볼 때에 만물에게 없는 그 인격이라는 격위성이 있고  또 사람에게 여러 가지 참 깨끗하고 거룩하고 온전한 그 신성 신성의 그 속성이  있는 것을 우리들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 하나님의 모형이라 하는 것은 무형의  존재인 그 신성의 모형의 그 인격성이라, 그래 인격성인데, 하나님의 그 속성을  성경에 나타냈고 만물에서 그 속성을 더듬어서 찾을 수 있는데 하나님의  속성같이 사람이 지어 있는, 사람에게 있는 것을 볼 때에 사람에게 속성이  있는데 그 속성이 역연 하나님의 속성과 같다 하는 것을 성경에서 찾아보고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신성대로 지음  받았다 하나님의 속성대로 지음 받았다, 그렇게 우리가 성경을 보고 만물을 보고  우리 인간 자체를 보아서 그렇게 판정을 하고 우리들이 믿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인데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님의 형상을 우리들로 하여금 입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입을 수 있는 예수님의 형상이요 예수님은 또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그러면, 거기에서 여러 군데로 이래 맞추어서 볼 때에 '아,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 사람들에게 있는 그 인격성, 그 인격성의 근본 바탕으로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이로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고 인정하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은 사람의 영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서 하나님은 원형이라. 하나님은 원  형상이 있으면 마치 생화가 있고 조화가 있고 생화는 근본이요 조화는 생화를  닮도록 생화같이 만들어 놓은 조화인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근본이시요  근본이신 하나님과 비슷하게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사람이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완전하심을 따라서 우리도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은 육이 아니고 영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 하나님의 신성과 같은 그 인격성으로, 그는 창조주이기 때문에  신성이요 우리는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인격성이라. 이래서, 우리들로  하여금 지극히 큰 소망을 주셨으니 무슨 소망을 주셨느냐? 하나님의 신성에  참예하게 하려 함이라, 썩어져 가는, '육체의 정욕대로 썩어져 가는 것을 피하고  하나님의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에 참예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신성을 우리가  이루어 갈 수 있다 하는 그것을 이래 더듬어서 봐서 우리 사람들에게 있는  인격성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성의 모형이요, 우리는 인격성이요 그분은  신성이라. 이래서, 그분의 속성의 모형적으로 우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어 놓으시고 지어 놓으신 대로 만물을 다스리고 만물을  통치하는 존재로 지으셨는데, 그래 놓고 하나님이 시험하시기를 만물을 아담  앞에 갖다 놔 놓고 이 만물을 아담이 다 통치하고 또 그걸 정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하나님이 한번 시험해 보시면서 '네가 이 이름을 지어라'  간단하게는 이름을 지어라 하는 것이지마는 이름이면은 너는 곧 그 자체의 모든  본질 본성 활동 생애 그 전부를 총칭한 것을 표함이라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사람도 그 사람의 이름이 점점 커진다 하는 그 말은 그 사람의  본질과 본성과 활동성과 가치성과 모든 기능성이 커진다 그 말이오. 그 이름이  볼 것 없이 자꾸 지금 파묻혀 가고 있다 하면은 이런 모든 것이 자꾸 쇠퇴해서  그것이 지금 점점 타락해 가고 있다 하는 그런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지어라 하는 것은 만물을 이것이 어떻게 정복하며 어떻게  통치하느냐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을 보실라고 떡 데려다 놓고 아담더러  지어라 하니까 아담이 거기에 대해서 그 모든, '너는 뭐이 되라 너는 뭐이 되라  뭐이 되라' 이렇게 딱 이름을 지었는데 그 이름 지은 것이 다 이름이.

 우리 사람들이 이름을 가지면, 이름 부르면 그 사람 '이거는 아무것이라'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름을 지은 그 이름은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단순히 호랑이라,  사자라, 가령 뭐 범이라 이렇게만 생각하지마는 이름을 지었는데 그 이름지은 그  이름 하나 가지고서고 존재의 본질과 본성과 그의 활동성과 그의 모든 처소성  그의 또 결과성 이 모든 것을 고 이름 하나 가지고 다 알 수 있고,  고 이름에 그 전재가 다 발표될 수 있는 그 이름, 하나님의 지식이 볼 때에  '요거는 어떻다' 요렇게 거기에 대해서 평가하고 비판하고, 어떻게 딱  평가적으로 요거는 어떤 가치가 있고 요거는 어떤 존재다 요렇게 평가하고  정가해서 '요거는 요런 자다' 하나님이 보시는 고대로 아담 해와도 '요런 자라'  요렇게 해서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이름지은 것을 보시고 잘 지었다 아주  선하게 지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때는 타락하기 전인데, 타락 전인데, 모든 만물이 사람이 거기에  대해서 할 때에 만물은 사람에게 복종을 하고 사람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복종하고 이 질서가 아주 정연하게 잘됐던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복종하고 또 만물은 사람에게 복종하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명령하고 사람은 만물에게 명령하고 이렇게 그 질서가 잘 됐는데, 그 다음에  배암이 들어와 가지고 유혹을 진서 그만 하나님과의 이 연결줄이  삐뚤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줄이 삐뚤어졌는데 어떻게 삐뚤어졌느냐?  하나님에게 연결줄 이것이 다른 것에게 연결이 됐지마는, 사탄에게 연결이  됐지마는 그것이 외부적으로는 자기에게로 연결이 됐습니다.

 이래서, 하나님 위주요 하나님에게 소속해 살았는데, 사람이 자기 위주로  자기가 자기에게 속해 가지고서 살도록 되어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원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원죄가 자기중심이 원죄요 자기 위주가 원죄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벌써 타락 이후에는 그 사람의 본질과 본성과 본능이 자기만을  위주로 하고 아는 것이 그것이 벌써 사람의 본질과 본성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원죄성입니다. 타락 후에는 다 그런 것입니다.

 타락하고 난 다음에는 아담은 만물을 통치할 통치권이 없었고, 고깃덩어리는  변하지 안했습니다. 고깃덩어리는 변하지 안하고 그대로 있는데 만물의 통치권은  전연히 없었고 고만 만물이 대항합니다. 만물이 대항해서 만물이 사람에게  저주를 했습니다. 저주하고 대항했습니다.

 저주를 하고 대항한 것은 왜 그러냐? 사람이 만물을 통치할 때에 사람이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저주받는 그 저주로 인해서 만물들도  다, 만물의 대표자인 만물의 그 주인이 되는 사람이 잘못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저주받았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해서 만물들도 저주를 받았는고로, 만물이  사람으로 인해서 저주받았습니다. 그때 저주는 사람만 이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  만물도 다 같이 저주받았습니다. 저주받았기 때문에 그 다음에 만물들이 사람을  다 저주했습니다.

 사람을 저주해서 사람에게 응하지 않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에는  아름다운 과실만 맺게 했는데 이제는 가시와 엉겅퀴가 나도록 고만 땅이 저주를  해서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을 때에 통치권이 있다고 말을 했는데,  그러면, 통치권이 있다고 했는데 그때는 영이 죽었지 고깃덩어리는 살아  있습니다. 고깃덩어리는 살아 있고 이랬는데 영만 죽었습니다. 범죄한 즉시로  영은 즉시 죽었고 그 심신은 죽지 안하고 그대로 서서히 죽도록 되어졌습니다.

 만일 그 만물의 통치권이 육에게 있다고 하면은 통치권이 서서히 갈 것인데  그때 당장 그 시로부터 통치권이 전혀 없어지고 박멸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물을 정복하고 통치하라는 그 권은 그 영에게 증지 고기 덩어리에게  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거기에서 판명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종종 창세기 6장에 노아 홍수 때에도 하나님이 말씀 하시기를  사람이 육체가 됐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이 영원히 그들과 같이 할 수 없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육체가 됐다 말은 영이 벌써 아니고 영이 없어지고  육의 위주로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육에게 같이 있을 수 가 없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통해서 나타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모형인 영이 있었고, 또 영의 모형인 이 마음 이  있었고 또 마음의 모형인 이 고깃덩어리가 있어서, 크게 말하면, 크게 말하면  이중으로 되어 가지고 있고, 세밀히 말하면 삼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분설도 있고 삼분설도 있고 이라는데 이분설도 장점이 있고 삼분 설도  장점이 있습니다.

 이분설의 장점은 어떤 것이 이분설의 장점인고 하니 영육했는데 영은 영계에  속한 영물이요 또 육은 물질계에 속한 물질의 것인데, 영육으로 나누면 영에  속한 영물은 영물로 물질은 물질로 이래 둘로 나누니까 그 면은 좋습니다.

 그 면은 좋으나마 단점은 어디가 단점이냐? 이제 육이, 육은 육이라 했는데  육이 어디까지가 육이고 뭣이 육이냐 하는 거기에 대해서 그저 이 고기 덩어리가  육인지 뭐인지 이것이 혼돈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늘은 사람들이 마음은 영,  마음은 영 고깃덩어리는 육 이렇게 나누어서 이것 복잡해 가지고서 도무지 그  진상을 모르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설은 마음과 몸 이것을  나누는 데에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면이 단점입니다. 그 면이  단점이고, 영계와 물질계 둘을 나눌 때에는 그것이 장점으로서 둘을 나눌 수  있게 되겠습니다.

 또 삼분설이라 하는 것은 영 하나 또 혼 하나 또 몸 하나 이래 가지고서 셋이  합해서 사람이라 이라는 그것은 영, 혼, 이 몸, 이 세 가지로 나누는 데에,  구별하는 데는 아주 세밀하고 참 알기 쉽게 돼 가지고 있어서 그 면은 장점이  있습니다. 마는 이 마음이 영계에 속한 것인지 물질계에 속한 것인지 거기에  대해서 명확하지 못하고 희미하기 때문에 그것이 단점이라 그 말이오.

 그래서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분설 하는 사람들은 그 단점 때문에, 단점 때문에 영이니 육이니 둘은  있으니까 둘 말하는데 영이 무엇인지 해서 외나 영은 파묻혀 버렸고 마음을  영이라 이래 돼 버렸습니다. 또 육은 이 고깃덩어리가 육이라 이렇게 돼서  분명치 못한 그런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분설 학자들 가운데에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분설  학자들 가운데에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죽기는 죽었지마는 다 죽지 안하고  조금 남아 있다 그러기 때문에, 남아 있는데 뭐가 남아 있느냐? 사람의 마음에  짐승에서 볼 수 없는 사람에게 도덕성이 있으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 다  죽지 안하고 조금 남아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전적 전멸설이 아니고 다만 얼마  부분적으로 죽었지 다 죽지 않았다 하는 그 설을 가지고서 주장하는 그런 설이  있습니다. (자, 우리 ○○○ 목사님 교리학 박사 어디 갔습니까? 어디 앉았어?  어디 숨어 버렸노? 예. 어째, 그런 거 뭐이요. 그거 이름이? 저 우리 저 ○  목사는 교리사 교회사 사학 박사입니다.)  그래, 그래 가지고 사람에게 그 도덕심이나 있는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좀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말하니까 대단히 혼잡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오형은 영입니다. 영이기 때문에 영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에베소  2장에 죄와 허물로 완전히 죽었다 했습니다.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죽었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완전히 죽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신성은  완전히 죽었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속성이 사람에게 완전히 죽었다 그거요.

 삼분설의 단점은 이제 말한 대로, 그러면, 혼이 영계에 속한 것이냐 물질계에  속한 것이냐 이것이 혼돈 돼 가지고 있어서, -언제 미국에서 나온 박사 쳐 놓고  무슨 칼빈 개혁 신학이라 하는 개혁 신학의 윤리학 교수인가 되는 분이, 스톱  박사라고 그때 와서 말을 하는데 내가 똑똑히 잘 모르겠는데 그분이지, 아마?  말하는데, 양심에 대해서 말할 때에 양심은 인적 요소가 아니라 신적 요소라  이래서, 양심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특사라, 하나님의 특사라.

이래서 사람의 것을 하나님께 고발하는 것이 그것이 인간의 양심이라. 그러기  때문에, 양심은 인간에게 속한 인적 요소가 아니고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특사적인 개별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을 제가 스톱  박사에게 아마 들은 것 같습니다. 그이가 와서 강론을 하는데, 제가 듣는 대로는  선교사 쳐 놓고는 제일 권위 있게 강론했습니다. 제일 권위 있는 강론을  했습니다.

 뭐 다른 선교사들은 강론해야 우리 주일학교 학생들도 그만한 설교는 다 할 수  있습니다. 보면은. 그래요. 그 이상해요. 우리 한 부선 목사님도 얼마나  성자입니까? 그래도 한 부선 목사님 설교하는 거 주일학교 학생들 설교하는 것도  그렇츰 그보다 더 맵게 따갑게 설교할 수 있습니다. 부흥회 해 봐야 맵게 뜨겁게  하는 설교가 없어요.

 그래서 이 마음이 마음에 속한 그 마음도 여러 분자로 돼 가지고 있고 여러  기관으로 돼 가지고 있는데, 그것에 소속한 것 중에 하나가 양심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에 너희 안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크겠느냐  하는 그 빛은 곧 인간의 빛, 자연의 빛, 인간의 빛, 그 양심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데, 양심은 인적 요소지 신적 요소도 아니고, 신과 인 사이에 공중에 떠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그런 요소도 아닙니다. 사람의 요소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을 때에 어떻게 되느냐? 사람이 죽을 때에는, 이 마음이나 이  고깃덩어리나 이것은 다 물질로 되어 있는 존재인데, 이것이 물질로 되어 있는  존재이나 마음이라 하는 것은 신비성을 가지고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비록  물질에 있지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가지고 이런데 제재를 받지 않는 그런  존재로 신비하게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의 혼은 다 안 믿는 사람이라도  죽을 때 물질이 고깃덩어리와 같이 무덤 속에 장사를 지내든지 또 화장막에 가  가지고 불이 타든지 그렇게 타지 않습니다. 않고, 사람의 그 마음이라 하는 것은  안 믿는 사람도 죽은 영과 한꺼번에 같이 음부로 가서 있고, 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중생된 영과 그 사람의 마음이라는 이 요소와는 같이 낙원에 가서 있게  돼 있습니다.

 그러기에, 낙원에 가 있는 나사로도 홍포 입은 부자도 보면 음부에 가 있으면서  그가 영은 작용을 못 했고, 영은 작용을 못했고 그 마음이 작용을 해 가지고서  아브라함에게 호소를 했고. 또 아브라함도 영계에 가 가지고서 영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말한 마음이라 하는 요소가 홍포 입은 부자에게 대화를  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 믿는 사람은 영과 혼, 영과 혼, 이 둘은 같이 낙원에  갑니다. 또 고깃덩어리는 남아 있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 때에 이제 그  사람의 영과 혼 같이 와 가지고 자기의 가졌던 몸을 부활시켜 가지고, 바다에  죽은 것은 바다에서 죽은 자를 내놓고, 불에 탄 것은 또 원소에서 내놓고, 땅에  있는 것은 땅에서 내놓고 다 내놔 가지고서 부활되면 자기의 영과 혼이 몸을  입고 그래 가지고 부활해서 몸을 입고 이제 자기가 생활한 것을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때에 행동록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고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심판을 받게 돼서 사람들이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게 되는데,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생명책에 기록된 그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유황불 구렁텅이는 가지는 안하지마는 그 사람의 육체의 기능은 그때 부활해  가지고 다 안 된 것은 다 제거해 가지고서 음부로 가 버리게 됩니다.

 이래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서 각각 행한 대로 갚음을 받는다 하는 그  갚음을 받는다는 것이 좋은 점의 상급만 갚아 주는 것인지 그때에 둘째 죽음의  해를 받아서 현실이라는 현실에서 자기가 그리스도의 대속을 벗지 안하고 입고  있음으로써, 대속을 벗지 안하고 입고 있음으로써 그것 이 이제는 영생으로,  영생하는 기능으로 확정이 지워져서 부활할 때에 영생하는 기능으로, 몸의  기능이 영생하는 기능으로 부활을 받는데 그때 영생하는 기능으로 부활을 받는  것인지 그것만 받는 것인지, 혹 죽었던 것이 그때 같이 부활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다 정죄받아 가지고 그런 것들 다 제거해  버리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좀 분명치를 못합니다.

 그래서 어쨌든지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는 영과 혼이 함께 낙원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같이 와 가지고 자기의 육체를  부활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아 가지고 무궁세계로 가게  되는데 그때 부활할 때에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은 그 육체가 고만 즉시 그  현실에서 사망의 해를 받아 가지고 제거돼 버려서 다시 그거는 부활 해 가지고  심판에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 제거되는 것인지 그때 살 아나 가지고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제거되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확실히 장담하지는 못하지마는 저는 생각하기를 그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을 벗었기 때문에 현실에서 마음의 기능은 다 저주받아 가지고  즉시 사망하게 된다, 즉시 사망하게 되고, 이다음에 재림했을 때에 부활한 것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안하고 영생의 기능이 된 것들만 이제 그때 가서 다  부활해 가지고 심판받게 된다,  그러면, 그때 부활해 가지고서 심판받게 되면 다 정죄는 없을 것이고 또 멸망은  없을 것이고, 심판 받는 것은 다 영생의 기능이 되기는 됐지마는 영생의 기능이  되기는 됐지마는 죽지 안했다 할지라도 사망선 이상에서 그것이 가치가, 예를  들어 비유컨대 가치가 적은 가치의 승리한 것도 있고 많은 가치의 승리한 것도  있기 때문에 부활 후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보상하는 그 보상의 심판이라, 상을  주는 심판이라, 벌을 주는 심판이 아니고 상을 주는 심판이라, 그러니까, 많은  상 적은 상 그것을 구별해서 행한 대로 갚아 준다고 그렇게 고린도후서 5장에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저는 생각하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있다가 '그거는 아니다. 그때 다 그것도 부활해 가지고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심판받아 가지고 유황불 구렁텅이로 가게 된다'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하면은 거기에 대해서 별 변증할 말이 없으나 심판의 부활과 생명의  부활이 있으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생명의 부활이라고 했기 때문에 생명 부활  받았으면 그게 어찌 다시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사망을 받을 것이 있겠느냐?  그러기 때문에 즉시 즉시 그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을 벗으면 그만 거기에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아 가지고 유황불 구렁텅이에 그리 다 몰려 들어가게 된다,  현실에서 죽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 기능이 우리 현실에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주님의 대속을  현실에서 벗지 아니하면, 벗지 아니하면 그때의 우리의 기능 요소는 다 영생으로  영생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그것을 벗으면 고만 그 다음에 둘째 사망의 해를 받아서 영멸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 수족의 기능, 내 수족의 기능이니까 내 수족 아닙니까? 내  수족의 기능, 내 모든 총명의 기능, 내게 있는 내 기능 곧 내인데, 내 기능인데,  내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벗고 임시 이 세상 처세하기에 좋은 것을 택해서  대속의 공로를 벗고, 또 이 세상에서 대속의 공로를 입을라고 하니까 너무  마찰의 핍박이 많으니까 그 곤난을 견디지 못해 가지고서 대속의 공로를 벗어  버려서, 벗으면 자기의 이 심신의 마음의 요소, 심신의 기능 요소가 그 시간  즉시 자기 팔을 끊어서 죽여 버렸어요. 자기 팔을 끊어서 죽였고, 자기 혀를  빼서 죽였고, 자기 눈을 빼서 죽였고, 자기 다리를 끊어서 죽여 버렸고, 죽였고,  다 한목 다 죽지 안하니까 남아 있지만 기능으로는 쑥쑥 빠져 가지고서 다  죽었다 말이오.

 이러니까, 죽어져 가는 그 지체가 원망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불평이 얼마나  많겠느냐? 그럴 때는 내 육체의 기능만 죽을 것이 아니라 그때에 관련된 모든  만물들도 다 죽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때 그리스도의 대속을 그 현실에서 벗지 안하며는 내 기능도 다  영생으로 확정되고, 또 그때에 관련된 모든 만물들도 다 그것은 만물을 새롭게  하는 구원을 입어서 다 영생으로 만물들도 다 만물 회복하는 그 회복의 은총을  입게 되기 때문에 만물들은 고대하기를 이 성도들의 현실 현실의 생활에서  진리와 영감으로 중생된 자가, 진리와 영감대로 중생됐으니까, 진리 영감대로  중생된 자가 진리 영감대로 사는 이 자유, 이 자유 말이요. 진리와 영감대로  난자이니까 진리와 영감대로 사는 것은 제 자유 아니소? 진리 영감대로 살지  않는 것은 제 자유가 아니라 말이오. 제 본능이 아니고 다른 것에게 끊겨서 강제  당하는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자유함에 이르기를 원한다 그 말은 성도들이 대속의 기능을 벗지  안하고 살면 거기에 관련된 모든 만물들도 다 구원에, 거기에 속한 사람 이 구원  얻기 때문에 자신들도 다 구원 얻게 되는 것으로 만물들이 탄식하면서 고대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뭐 발발발발 떨면서, 탄식이라 했소. 만물이 발발발발 떨면서 이  현실을 닥치면 이 현실에 어쩌든지 저 심신 거기에 매였으니까 고 심신이 고만  어떤 박해를 받아도 그리스도의 대속만 벗지 안하고 하면은 그게 영감 진리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라 그 말이오. 자유, 안 그렇습니까?  자유라면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 아니소? 진리와 영감대로 산, 진리와  영감대로 중생된 자는 진리와 영감대로 사는 것이 자유지 악령과 악성대로 사는  것이 제 자유가 아니라 말이오.

 자유대로 살아서, 죽어도 영감과 진리대로 살면, 진리대로 살아서 고 시간이,  현실이 딱 통과되면 이제 거기에 따른 만물들도 다 살아나서 저거 대장으로  말미암아 살아났다고 좋아서 찬송을 하면서 이제 할렐루야 찬송을 할 것이고,  또 고 기능도, 기능도 요 심신 이것이 회의를 해 가지고 단합을 해서 여기에  자유하면은 그 기능은 살아나는데 그만 그때에 자유하지 안하고서 요 심신  여기에 회의를 해 가지고, 심신의 요 요소가 하나 둘 아닙니다. 이 큰 우주 중의  우주요 나라 중에 나라입니다. 그 많은 기관들이 단합해 가지고 의논해 가지고  회의해서 '아무래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벗을 수 없다' 이렇게 결정이  되면 이제 그대로 되는데,  거기에서 어떤 간교한 욕심이나, 욕심이나 세상 욕심, 또 정욕의 욕심, 음욕의  욕심, 명예욕, 요런 욕심, 요놈이 강력해 가지고 아무래도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어서는 안 된다, 이거 뺏겨서는 안 된다, 이 명예를 벗겨서는 안 된다 이  지위를 뺏겨서는 안 된다, 이 재물을 뺏겨서는 안 된다, 이 권세를 뺏겨서는 안  된다, 안 된다고 이 욕심 이놈이 내가 아닌데 이놈이 강하게 주장하니까 그놈이  제인 줄 알고 그놈 하자는 대로 해 버리면, 그만 그때 탁 져버리면 이제 자기의  심신 기능 요소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아서 쭉 뻗으러져서 그만 마귀에게로 매여  갑니다. 마귀에게 매여 갑니다.

 그러니까, 이제 자기의 심신의 기능을 얼마나 죽여 놨는지 이다음에 가면은  그런 일이 없을까 그래 생각합니다. 없는 것은, 가면 예수님의 대속이 있기  때문에 다 문제는 대속이 다 담당하시기는 담당하시지마는 그때 지옥에 가 있는  내 요소가, 나는 하늘나라 가 있기는 있는데 내게 있는 그 심신의 기능의 요소는  저 지옥에 가서 다 지금 형벌받고 썩어져 가고 있으니 그들이 내게 대해서  원망할 때 그 원망이 들릴는지 안 들릴는지 그거는 아직까지 의문입니다.

들릴는지 안 들릴는지.

 또 만물들이 자기만 바라며,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우리는 다 지옥 가지  안했느냐' 이래 가지고서 그 만물의 그 호소가 있지 않겠느냐, 지금 미리서 안  갈라고, 저주받아 사망하지 안하려고서 '어쨌든지 우리는 당신에게 매였습니다.

당신의 그리스도의 대속을 벗느냐 입느냐 하는 거기에 매였으니까 어쩌든지  대속을 입고 영감과, 진리대로 살아 주십시오.' 탄식하면서 고대하는데 픽  자빠져 버리면 그게 다 죽으니까 그것들의 호소가 있지 않겠느냐 이것이  하늘나라에 가도, 하늘나라에 가도 그 기쁨과 영광에 그 무슨 구름 끼이는 게  있지 않겠느냐?  지금도 우리가 심령이, 조금 기도 가운데에 들어가고, 골방에 들어가면 심령이  밝아져서, 심령이 어두울 때 한 가지 밖에 생각 못 하는 것을 심령이 밝아지면  두 가지 세 가지 열 가지를 다 연상해서 생각할 수가 있고 또 직접 요것만  아니라 그로 말미암은, 말미암은, 말미암은, 말미암은, 거기에까지 연상해  가지고서 책임을 짊어지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괴수 죄인이라 하는 것은 뭐  그런 면에서 자꾸 연상되니까 자꾸 책임이 많다 그거요.

 이러니까, 하늘나라는 광명의 나라요 빛의 나라이니까 그때 우리의 심령이  밝아질 터이니까 그때 내 잘못으로 말미암아 멸망 받은 내 심신의 기능 요소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답변을 하며 거기에서 어떻게 알맹이를 가질 것이며 나로  말미암아 멸망 받게 된 그 만물의 멸망의 호소에 대해서 내가 아무 부담감을  가지지 안할까, 거기에서 어떻게 될까 하는 그런 것을 생각 해 봅니다.

 그래서 후란시스란 사람은 그렇게 했어요. 자기가 빈민굴에서 다 거지들을 예수  믿구로 만드는 그 일을 하면서, 일은 할 수가 없으니까 그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이래 하니까 밥을 얻어다가 저 바위 위에 가 가지고서 먹으면서 제자들이  있다가서 '우리는 맨날 거지들이냐'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이 천장이 됐고  반석이 방바닥이 됐으니까 이만하면 좋지 다른 것이 뭐 있겠느냐' 이라면서,  그 식사를 대해 가지고서 그분이 기도하기를 그래 기도했어요. '너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내가 얼마든지 먹는 대로 내게 먹혀지고 얼마든지 삭히는 대로  삭혀지고 내게 이용을 당하는데 너를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이용해  가지고 내가 정말로 하나님에게 원하는 대로 이용을 당하면 좋을 건데 너희를  내가 내 마음대로 이용을 하고서 나는 하나님에게 이용을 당하지 안하니 내가 너  보기에게 부끄러워서 내가 견디지를 못하겠다. 만물아 내가 너한테 부끄럽다.

밥아 내가 널 먹을 자격이 없다' 이라면서 밥에게 사정을 한 것을 기록을 해  놨어요.

 어제 내가 ○○○씨한테 말하지마는 보니까 가다가서 뭐, 길가 가다가 뭣이  하나 안 부러질게 부러졌다 말이오. 그래 놓으니까 찔찔찔찔 우는 것처럼  '아이구' 내가 하도 그래 싸니까 말은 듣게는 안하고 '아이구, 아프제? 내가 널  그만 안 상해도 되는 건데, 안 상해도 되는데 내가 조심하지 안해서 이거  부러트렸다' 이래 가지고 끙끙끙 앓아. 그거 지금 모를 거야, 본인은,  저 개바우에 말이오. 개바우로 예배 보러 가면서 동네 어귀에, 길이 솔 아요.

요만 손 데, 거기에 가면서 풀 한 포기를 분질러 놓고서 끙끙끙 앓는 걸 봤어.

그래 가지고 내가 야단을 쳤어. '뭐 그까짓 거 발로 문태 버리면 없어질 건데 뭐  그거 끙끙끙 거리노' 야단을 지기기는 지겨도 참 자기 마음을 그렇게 연한  새살같이 그렇게 부드럽게 마련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어쩌든지 우리는 부드럽게 참 자비롭게 긍휼하게 이렇게 자기의 심신을 기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동정하는 자가 되기를 힘써라' '선에 부요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기를 힘써라' 그렇게 디모데전서 6장에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영이요, 또 영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은 육입니다.

 이래서, 영은,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피조물에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것이 없습니다. 이거  여러분들이 알지요? 피조물에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것이 없어요. 영계에  가도 사람같이 된 것은 없어요. 사람같이 된 것이 없어요. 사람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는 사람 뿐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무궁세계에서는 사람이 모든 천군 천사를 다 통치하고,  하나님과 머리와 몸이라는 이 활동적인 이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지체 노릇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몸 노릇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성전  노릇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모형 노릇, 하나님을 꼭 고대로 나타내 보이기를  제일 잘 모형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다 고대로 모형했기 때문에, 모형했기 때문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뭣 때문에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말하느냐  나를 본 이는 아버지를 봤다 내가 꼭 아버지와 꼭 같다' 이렇게 말한 것같이  우리는 또 예수님의 형상을 덧입도록 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다  나타낼 수 있는 그런 것이 우리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이 하나님의 속성대로 지음 받은 것은  피조물 가운데에 뛰어난 존재입니다. 뛰어난 존재인데, 천군 천사는 또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는지 그거는 우리가 똑똑히는 모르고 이제 천군  천사로서 이랬지마는 우리 성경에는 천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 그런  말은 없는데 그게 어찌 됐는지 그거는 모르겠으나 어쨌든지 우리가 천군 천사를  통솔하고, 천군 천사를 재판하고, 천군 천사를 다스리고 천군 천사 위에 있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해 놨다 그 말이오.

 너희들이 천사도 판단할 것이어늘 하물며 너희들이 사람을 판단하지 못 하느냐  이렇게 말해서 세상 법관에게 가 가지고서 판단을 구하느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이 영인데, 그 영은 피조물을  탁월했기 때문에 영이 범죄해서 하나님과 끊어졌다고 해 가지고서 그 영이  마귀에게 이용당한다는 그것 아닙니다. 이 영은 다른 피조물을 탁월한 아주  고차원의 것이기 때문에, 이와 수준이 다른 데 있기 때문에, 악령은 그 밑의  존재이기 때문에 영을 제가. 하나님 배반했다고서 그 영을 제가 이용할 수가  없다 말이오.

 영은 어디만 쓰이느냐? 영은 아무도 쓰지 못해. 영은 마귀도 쓰지 못 하고  사람도 쓰지 못하고 영은 아무데도 쓰이지 못합니다. 영은 한 군데 밖에는 못  쓰여요. 영은 한 군데만 쓰이지 다른 데는 쓰이지 못합니다. 영은 어떤 존재냐?  하나님 한 분에게만 쓰이지 딴 데는 쓰여지지를 못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 그는  움직여서 사용하지 딴 거는 사용하지 못해요. 영은 하나님 한 분만 사용하지 딴  거는 사용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모형이오. 하나님의 모형이기 때문에 원형을 자꾸, 모형이 원 형을  자꾸 닮고, 닮고 이래서, 원형인 하나님의 형상을 모든 피조물에게 자꾸 보여  주고 나타내는 하나님의, 원형인 하나님의 그 형상을 만물에게 받아 가지고 이래  자꾸 전해 해서 만물로 충만케 하는 이 일만 하지 딴 거는 통해요. 그러니까 또  이용도 하나님만 하지 영은 딴 거 못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에게 끊어졌으면 다시 그거는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끊어졌으면 아무것도 못 쓰요. 마귀가 쓰는 줄 알아도,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사람의 영이 죽었으니까 지금 마귀가 그 영을 이용한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말이오. 못 사용합니다.

 그것이 벌써 고차원의 것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사람이 인간 대 인간의 그 모든  수준에서는 사람이 무슨 상대방을 해했든지 이렇게 이용했든지 하면은 그것은  죄가 되지마는 하나님이 피조물을 창조해 가지고서 악하게 쓸 것도 있고 선하게  쓸 것도 있고 이용당하게 쓸 것도 있고 불에 쓸 것도 있고 이래 당신이 주권  가지고 지었기 때문에 지음을 받은 것이 원망 불평하지 못해요.

 주인이 있다가서 불집게 만들어서 이거는 평생 불에다 굽기만 굽습니다. 그래  가지고 '와 나는 불에다 굽기만 굽소?' '아, 너는 구울라고 내가 만들었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구울라고 만들었으니' '아, 나는 싫습니다.

안할랍니다.' '안할라면 말아라' 안할라면 말라 하고 퉁퉁 깨 가지고 불집게  만들어 꾹집어 쓰면 제까짓게 타기까지는 쓰여졌지 별 수가 없다 말이오. 그거는  권력 부족이라. 권력이 부족이요 그 수준에 도달하지를 못한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쓰시고 저렇게 쓰시기  위해서 만들어 쓰기 때문에 만들어진 자가 '나는 와 이렇게 만들었노? 무슨 이거  불공평이 아닌가? 이거 하후 하박이 아닌가? 이거 하나님이 만들어서 그래 놓고,  범죄하구로 해 놓고서 또 죄 지었다 이래 가지고 정죄하고 형벌 주는 거 틀리지  않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람이 간섭하지 못하고 거기에  아무 말할 권리가 없어. 없는 것인데, 자기를 짓기를 그래지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로마서에 말씀하시기를 '토기장이가 토기장이 임의로 귀하게 쓸  그릇도 만들고 천하게 쓸 그릇도 만드는데 그 그릇이 나는 왜 이래 만들었습니까  할 권리가 없다' 만들면 제가 만들어 졌지 별 수 없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든 데 대해서, 귀하게 천하게 만든 데 대해서 말할 때 성경이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을 가지고서 귀하게 쓰는 그릇 천하게 쓰는  그릇 만드는데 왜 나는 귀하게 쓰는 그릇으로 만들지 아니하고 나는 천하게 쓰는  그릇으로 만듭니까 이렇게 말할 권리가 없다. 말할 권리가 없다. 토기장이  뜻대로 만드는 것이다' 그걸로 발표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뭐 지옥 갈 자를 평생 고생해 지옥 갈 자, 또 뭐 할 자  이런 것을 고거는 고래 쓰기 위해서 하나님이 만드셨다. 왜? 하나님이 지극히  크신 목적을 정해 놨으니 그 목적은 뭐이냐? 하나님과 같은 자를 만들어  가지고서 하나님과 같은 그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만들라 하니까 이 자에게 오만  거 다 알려야 되겠다. 말이오. 이러니까, 요런 죄 지으면 요래 된다 조런 죄  지으면 요리된다 요것은 요리된다.

 이라기 때문에, 모든, -주인이 자식 하나를 양육하기 위해서 짐승이 많아.

짐승을 많이 길러 가지고 '봐라. 자. 너 요거, 요거 밟으면 요거 밟으면 너  죽는다.' '밟으면 죽기는 뭐이 죽어? 그거 뭐 밟는다고 죽겠습니까? 아버지도  거짓말 많이 하네' '볼래?' 소를 그리 몰아서 들입니다. 소가 푹 밟았다 말이오.

소가 밟으니까 꽹 하더마는 소가 그만 이래 세 쪼가리 네 쪼가리로 퍽 퍼지거든.

'어찌 됐지?' '아이구. 아버지. 참 아버지가 그 말 할 때 안 들었는데 보니까  참말로 그렇구만요. 이거 밟으면 안 될세요.' 소 한 마리를 죽여도 그 아들에게  그런 상식을 하나 넣어 주는 것이 좋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모든 만물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그러기 때문에 '애굽을  구속물로 삼았다' 애굽을 구속물로 삼았다고 하는 말은 이사야 43장에 있는데,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모든 이방인을 하나님의 목적인 선택자를 하나님  목적대로 완성을 시키기 위해서 이런 시험물로 저런 시험물로 이런 구속물로  저런 구속물로 하나님이 만드셨다 그거요.

 이거 사람들은 보면 부애를 내요. 부애를 내지마는 내 봤자 소용 이 없어요,  하나님이 그라는 것을 지금으로부터 한 오십 년, 약 오십 년 전인데, 제가  개바우 가서 전도하는데, 개바우 가서 전도하는데 그때 순경이 왔소. 순경이  왔기 때문에 전도하다가서 나중에 안 들어서 '당신이 아마 안 택한 사람인가  보다. 택하지 안한 사람은 택한 사람을 위해서 이용물로 삼았다. 택한 사람을  위해 이용물로 삼았는데 자기에게 전도하니까 안 믿는다고 빡빡 쎄우니까 내가  오늘 저녁 은혜를 받았다. 저렇게 안 믿는다고 쎄우는데 나는 예수 믿게 됐으니  참 나는 택한 자고 저 불택자인가보다. 저거는 내 구원을 위해서 이용물로  삼았는가 보다' 내가 이 말했다 말이오. 이 말 하니 그 순경이 어떻게 화가  나는지 그만 뒤로 덜컥 자빠져. 기가 차서 덜컥 자빠져. 부애가 나서.

'그렇지마는 하나님이 그래 지어 놓은 걸 어짜노? 하나님이 죽으라 하면 죽고  살라 하면 살지.'

 그래서 영은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서 존재한 것인데. 그 영은  꼭 국한돼 있습니다. 영은 하나님과 연결돼야 되지 피조물 어떤 거와 연결돼도  그 영을 움직일 자는 없습니다. 영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영은 원형인  하나님만이 움직이지 딴거는 움직이지 못해. 천하 마귀가 다 달라들어도 그 영을  움직이지를 못해요. 그 영을 살릴 수도 없고 영을 이용하지도 못해요.

 그런데, 영은 극히 절대 국한돼 가지고 있는 것은 뭐이냐? 하나님에게만  피동되지 딴 데는 피해될 수 없도록 돼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의 영인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성경 가운데에 명문을 잡지 못하고 깨달은  것을 이래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의를 달아서 말하면 '너는 너대로 믿어라.

나는 내가 깨달은 대로 나는 나대로 믿겠다.'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  그러고, 또 영은 활동을 어데 하느냐? 영은 참 귀한 존재인데. 이 영이 활동을  어디 하느냐? 이 산에도 하고 저 고을에도 저 면에도 하고 어디든지 활동하는 것  아닙니다. 영은 또 자기 활동 무대도 절대 결정돼 있습니다. 영의 활동 무대가  어디입니까? 어디라 합디까? 예? 예? 예? 뭐라 하노? 그전에 내가 가르쳤는데.

한번. 영의 활동 무대는 자기의 마음 외에는 못합니다. 자기 마음 외에는 못  해요. 자기 마음에는 해요. 자기 마음에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로마서 8장 16절이가? 한번 읽어 보이소. 아멘. 보십시오. 16절에  '성령이 친히'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  영으로 더불어' 그러니까, 성령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우리를 살릴 때는 직접  역사 했지마는, 성령이 우리를 살릴 때는 우리 영을 살릴 때에는 직접 와 가지고  영을 살렸습니다. 영을 살렸으니까 이제, 영을 살렸으니 독립국이 됐습니다.

독립국이 됐어요. 영이 죽어 있을 때에는 그거는 완전히 다 죽었기 때문에 영을  살리려는 성령이 직접 와 가지고서 영을 살렸습니다.

 영을 살렸지마는 영을 살려 놓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사람이라는 그 사람이  독립국이, 독립이 된 거와 마찬가지로 벌써 그 사람에게 주격이 살아났습니다.

영이 살아났어. 주격이 살아났습니다. 주격이 살아났으니까 그 다음에는  언제든지 주격을 통해서 성령이 역사하지 주격을 무시하고 주격은 가만히  앉았거라 하고서 성령이 직접 와 가지고서 우리에게 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법은 철두철미합니다.

 이러기에, 성령이, 처음에 발기는 성령이 하셨지마는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 영을 통해서, 우리 영을 통해서,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는 것은 누구에게  증거한다는 말입니까? 마음에게 증거합니다. 마음에게 증거해.

 마음에게 증거하면 또 마음을 통해 가지고 몸에게 증거합니다. 그 영이 직접  몸에게 증거 못 해요. 못이 마음에 증거하고 마음에 증거하면은 마음을 통해  가지고서 이제 그 고깃덩어리에게 증거해요. 고기 덩어리에게 증거하고, 또  그밖에 만물에게 증거할 때에는 고깃덩어리를 통해 가지고서 그 만물에게 증거해  가지고서 만물이 하나님의 속성대로의 움직임을 가지도록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 조직을 변경을 못 해요.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지니라'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이 고난이 무슨 고난? 이 고난이 성화 고난입니다. 이  고난이 성화 고난이라.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 얻었는데 이  대속을 공짜배기로, 이 대속을 내가 안 벗기 위한 고난이라.

 우리가 그리스도로 더불어 영광을 같이 누리는 데에는, 또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데에는 그리스도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의 것을 다  상속받은 거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상속받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해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가 나타날 때에  그 영광 중에 함께 나타나리라 하는 것을 어디 말해 놨습니까? 골로새서 3장,  옳지. 몇 절? 5절. 맞았어. 말해 놨어요.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에게 이렇게 지극히 큰 영광의 구원이 있는데 사람들이 몰라요.

 이거 알면, 진실한 사람들은 그래요. ○○○장로님이, 지금 장로 됐습니다.

집사인데 처음에 반대하다가 예수를 믿었어요. 믿어 가지고서 말하기를 이렇게  말해. '내가 택한 사람인지' 자꾸 택한 것을 말하니까 '택한 사람인지 안 택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택한 사람은 구원 얻고 택하지 않으면 구원 없다 하니까  '내가 택했는지 안 택했는지 모르겠다. 만일 택한 것을 알고 하늘나라의 구원을  얻을 것만 알진데야 땅의 것 볼게 뭐 있는가? 결사적으로 믿지' 그래요. 그래  내가 있다가 '알아도 안돼.' '아니오 참 알진데 그렇지요.' 이제 알았오. 알아  놓으니까 지금 결사적이라. 결사적으로.

 저, 아레도 보니까 왔어. 새벽에 왔는데, 새벽에 낯 씻은 모양이라. 머리에  보니까 물로 가지고 씻어서 물로 이래 발라 가지고 낯 씻고 이래 한 모양이라.

해 가지고 가지고서 뭐 찬송 부르는데 그 커다란 양반이 입이 넙쩍해 입을 아 아  이래 벌려 가지고 막 찬송을 이래 가지고. 좋아서, 그래 예배 마치고 나니까  은사라고 자기 구역장이던 ○○○권사님을 찾아서, 그 넓은데 말이오. 그  예배당이 넓이가 상당히 넓습니다. 한 사백여 평되는데, 사백여 평되는 그  예배당 이층을 양사방 돌아다니면서 사람마다 다 찾았어. 이 사람이 ○○○  권사님인가 양사방 돌아다니다가서 그래 못 찾고, 날 물으니까 또 오층에  올라갔다 하니까 오층까지 기어 올라왔어. 오층에 와가지고 그래 가지고  반가보다고 이라면서 그저 뭐 죽자 살자 해요.

 사람이 참되다고 하면 이 세상 죄악에게 속해 가지고서 너무 낡아지고 썩어지고  모두가 다 풀어져서 저것도 저것도 의문 가문하는 기진맥진한 사람이 되니까  아무 감각이 없어 그렇지 이렇게 존영한 이 소망이 우리에게 지극히 큰 소망이  우리에게 있으니까 땅의 것 볼게 뭐 있어요? 땅의 것 봐 봤자 그까짓 거 오늘  끝날지 내일 끝날지 모르는데 뭐 그것 때문에 이 지극히 큰 구원을 허비를 한다  말입니까? 진실한 사람은 허비 안 해요. 여기에 전심전력 다 기울여요. 진실한  사람들은 다 그래요.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된다는 것은, 영광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영광이 됐으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가야 같이 영광을  받는데 대속의 영광을 입고 갈라고 하니까 이 마귀의 나라에서 입고 가구로  놔둡니까?  자, 우리를 이 세상에서 이런 고문 고행 박해 모두 다 핍박하는데 뭣 때문에  핍박합니까? 뭣 때문에 핍박하요? 예? 두루마기 벗으라고. 두루마기, 흰옷을  사서 입어야 될 때에 흰 옷 벗으라고 그래요, 횐 옷 벗으라고. 횐 옷 벗으라고.

그리스도의 대속을 벗기려고 대속 벗으라고 그래 지금. 안 벗는다고 두드려  패요, 안 벗는다고. 그리스도의 대속을 안 벗느냐고 두드려 팹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이 뭐인데? 사죄이거든. 사죄, 사죄를 입었기 때문에 다시는 죄  안 짓는다, 죄를 벗었기 때문에 다시는 죄 안 짓는다. 죄를 안 짓고 다시는,  사죄를 입었으니까 사죄 벗어 놓으라고. 사죄를 벗을라면 어째 벗어요? 사죄를  벗을라면 유죄가, 유죄가 되면 사죄를 벗지. 유죄면 사죄를 벗은 것이고 이제  사죄되면 유죄를 벗어버리는 것이고. 이러니까, 사죄를 안 벗을라고. 또 칭의를  안 벗을라고. 죄 안 지을라고, 의롭게 살라고,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려고,  진리대로만 살라고, 하나님을 모시고 제일로 모시고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고  할라 하니까 그거 못하게 이렇게 박해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불어함께 영광중에 살라 하면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어야 되니까 이 대속을 입을라고 하면은 세상에서 어려움이 있는데  어려움이 있으니까 벗어 내버리는 사람은 그 대속을 가치 없이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대속이 없어야 되고, 벗어야 되고,  죽어도 대속을 벗지 안하는 사람은 그 대속의 가치를 아는 것이고, 어떻게  힘들여서 대속을 만든 것을 알고 그 대속을 입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대속을 입고 살 만한 자격이 있다 말이오. 이 고난이 그거라.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릴라면 그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지니라'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않을려 하면은 우리가 고난이 옵니다. 대속을 벗으면 문제가 없어. 뭐  직장에서 대속을 그만, 죄 지으라 할 때 죄 짓고. 또 인간에게 피동되라 하면  인간에게 피동되고 하면 친구라고 좋아하지요.

왜정 말년에도 목사들이 대속을 안 벗을라고서 이러니까 막 형벌을 주고 감옥에  가두고 이라다가 그만 그때 대속을 척 벗어 놓으니까 좋다고 그만 돈주면서  일본에, 그때 목사들 전부 일본 관광 다 갔습니다. 일본 관광 한번 다 갔어요.

돈 줘 가지고 일본 관광 다 시키고 당장 차 태워 가지고서 일본에 그때 가서  신사 참배 한 목사들은 일본에 관광 안 간 사람 없소. 전부 한번 다 공짜로 구경  다 시켰오. 얼마나 저거 편이라고 환영을 합니까? 그러나 그거 안 벗을라 하니까  몽둥이로 두드리고 오만 거 다 했다 그거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지니라'  자, 그리스도의 대속을 벗지 일기 위해서 고난 받고 주님의 영광에 같이 영광  가운데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예, 우리도 원하지요.

우리도 원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고난 그것 참 무서워요. 이 고난을, 어떻게 무서운지. 이 고난을  견딜라면 말로 그렇지 이 고난이 어떻게 무서운지. 내 요번에 이빨 해 넣으면서  이를 갈고, 이 신경에다가 뭣 넣는지 아픈 그것도 얼마나. 내 속으로 '아이구  주님이여, 어쩌든지 이제는 앞으로 그만 어금니 없어도 그냥 어물거려 먹지 이  치료 못 받겠습니다.' 어떻게 아픈지. '다시 이 치과에 오지 않도록 해  주옵소서' 그랬어.

 그라며 가만히 내가 거기서 기도하면서 생각하기를 이것도 이런데 주님의  고난을 이거 아픈 거 이거 없어지기까지 주님의 고난을 생각할라 해도 이 아픈  것이 자꾸 나오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고 이 아픈 것이 잊어 버려지지를 않는다  그거요. 이래서, '이거 거짓부리다' 그라면서 그걸 잊어버리기까지. 아픈 걸  잊어버리기까지 주님의 고난을 생각 해 볼라고 그때 자꾸 이래 한번 생각해  보니까 조금 낫기는 낫지마는 그래도 옥신 옥신하고 따갑고 해서 '이거 참  이렇츰 거짓부리다'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그때. 이 죽음이라는 것이 제일 무서워요, 뭐라고 쌓아도.

 우리의 고통은 영의 고통이 있고. 마음의 고통이 있고, 고깃덩어리의 고통이  있는데,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고통은 어디 집중됩니까? 마음에 집중됩니까 고기  덩어리에 집중됩니까? 예? 예? 아니오. 고기 덩어리에 집중 돼요, 고기 덩어리.

마귀들은 우리 고깃덩어리만 제가 형벌할 수 있지 마음에는 형벌 못 해. 어느  단계 지나가면 마음은 건드리지 못해. '옥중에 있으나 양심은 자유 있도다'  그랬어. 이런데 이 고깃덩어리는 저거가 할 수 있으니까 막 고깃덩어리를  거머쥐고 전기 고문도 하고 신경도 잡아 빼고 눈도 빼고 또 귀에 말뚝도 박고  이렇게 살도 빗고 깎고.

 그래 있다가 면도할 때마다 말이지, 면도할 때에 기도하기를 '이 면도칼로  가지고서 살을 이래 자꾸 가죽을 슬슬 벗겨서 가죽을 개가죽 벗기듯이 벗기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래 벗겨도 그때 변치 않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는 늘  이발할 때마다 시작하면 면도 다 할 때까지 그 기도해요. 그런 기도를 하기는  하지마는 그러다가도 어찌 그만 요래 조그매씩 귀떼기 살짝 요라니까 깜짝  놀랬어.

 이러니까, 앞으로 이걸 껍데기를 벗겨 놓으면 어찌 되나, 그런 것도 하도  연습을 많이 해 놓으면 이 다음에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우리 준비가 당장  준비 있고, 하나 준비는 무슨 준비라 했지요? 예? 진합태산 준비. 자, 따라해요.

진합태산 준비! 티끌 모아 태산 준비! 티끌 모아 태산 준비! 네, 보스러기  십자가도 자꾸 모아 놓으면 나중에 금십자가 됩니다. 큰 십자가 됩니다.

보스러기 십자가도 자꾸 모아 놓으면 돼요.

 이러니까, 그 준비밖에는 취할게 없어. 당장 준비는 아무래도 안 되겠어  보니까, 이래서, '봐라' 그러니까 약자들은 진합태산 준비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약자들이 뒤에 승리했지 그 뭐 간 크고 잘난 사람들 승리 못 했어요.

 제가 해방 직후에 대구에서 전국 장로회가 총회를 모였는데. 그때 보니까 신사  참배 진 사람들은 보니까 그 사람들 배짱 좋고 간 크고 담대하고 웅변 좋고 모두  생기기를 잘 생겼어요. 위에는 넓덕하고 아래는 쪽 빠져서 영웅으로 생겼어. 또  옆에서 보니까 이게 쭉 나오고 위보다 이래 이래 삼각으로 생겼어. 위에는 좁고  밑에는 너르고. 또 옆에는 위에는 넓고 밑에는 좁고 삼각 그러면 영웅입니다.

상쟁이들이 영웅이라 해요. 영웅인데, 다 그래 잘 생겼어.

 잘 생긴 그 사람들 쳐 놓고는 신사참배 이긴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 모두  보니까 뒷 꼭지가 똑 뽈가지고 모가지는 새 모가지 모양으로 달랑 드러나고 요런  간쟁이 못난 사람들이 전부 다 이겼어. 이러니까 그 사람들이 모두 티끌 모아  태산 방식을 해 가지고서 다 승리한 것 같애요. 이러니까, 우리는 못났으니까  티끌 모아 태산되는 이 방식을 해야 돼요. 이러니까, 매일 미래의 환난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 안 하면 안돼요.

 우리도 '고난을 받을지니라' 이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  놓으시고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그 권리를 예수님께서 다 가지셨습니다. 또  우리를 자유로 할 수 있도록 다 값을 주고서 다 샀습니다.

 이래도 아무리 그래도 거기에도 영원한 불변의 질서가 있습니다. 불변의 질서와  조직이 있기 때문에 그 지위를 엄격하게 지켜요. 지위를, 요 지위 위에 요  지위지 권리 있다고 해 가지고서 이 지위 무시하고서 이 위에 월권해서 올라가는  그런 일을 안 한다 말이오. 그 지위를 지키는 것을 아주 엄격히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다서에 보면 지위를 지키지 안한 천사들을 다 영원한 어두움의  결박으로 다 가두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영에 대해서, 영은 하나님의 모형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것인데  하나님의 형상은 볼 수 없는 것이니, 무형의 존재이니까,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속성밖에는 나타난 것이 없다. 나타난 것이 없는데 만물의  '하나님의 그 신성을 아무도 본 사람 없지마는 지으신 만물에게 나타났느니라'  이랬으니까, 하나님의, 하나님의 그 존재가 우리에게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님으로 나타났고, 또 하나님의 형상이 성경에 하나님의 속성이  나타났고,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속성은 나타나기를 열 두 가지로 나타나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속성이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형상이라. 또 예수님이 나타나셔 가지고 하신 예수님의 인격성은 다 이 속성  그대로 가지고서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형, 하나님의 신성대로 지음 받은  인격성을 가진 그것이 곧 우리의 영이라.

 영이, 타락하고 난 다음에, 사람의 영이 타락하고 난 다음에 죄와 허물로 그  영은 죽었다 이랬지 죽은 영을 마귀가 이제는 하나님이 이용하던 것을 마귀가  이용했다 하는 그런 것이 성경에 없다 말이오. 죽은 영이지마는 죽은 영을,  마귀가 사람의 영을 이용했다는 것이 성경에 없습니다. 이용 안 하니까, 마귀가  이용할 수 없다 하는 것을 우리가 단정 지울 수가 있다 그 말이오  또 마귀가 역할을 많이 했지마는 사람들의 몸은 제가 거머쥐고 사람들의 마음은  거머쥐고 '내가 네다. 내가 네다' 이래 가지고서 뭐 제가 아주 우리 주격은 영이  주격인데, 육의 주격은 영이 주격인데, 영이 주격인데 제가 영이라고 해  가지고서 마음을 제맘대로 제것이라고 이용하고서 이래 몸도 이용했지마는 영은  내가 네 하나님이라 이라지도 못했고 영을 이래라 저래라 부려, 보지는 못 했다  말이오.

 하나님, 영. 고 다음에 모든 만물이 있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은 영 밑에 있는  수준에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그 위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용 못 한다  말이오. 하나님의 모형을 어떻게 이용합니까? 하나님의 모형을 이용 못 한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모형은 불가침이라. 하나님만이 관리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모형인 영은 하나님만이 그를 움직일 수 있고 이용 할 수가 있지 하나님 외에는  사람의 영은 이용하지 못한다, 움직이지 못 한다 요것을 확고히 가지고  있습시다. 그라면 마귀가 다른 면으로 유혹시키는 그런 유혹이 앞으로 들어오는  것을 많이 방어가 됩니다.

 또 그러고, 사람의 영은 하는 것이, 자기의 전공은 뭐이 전공이냐? 자기의 전공  전력이 뭐인가? 하나님만을 나타내는 것이 영이라. 하나님만을 나타내는 거,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하나님의 모형만 자꾸 나타내는 하나님의 형상만  나타내서 하나님의 모형을 나타내는 그것이 영의 직분이요 천직이라. 그 외 딴걸  못 해요.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그 외딴 것은 못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그 외에 딴것을 못합니다.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그 외에 딴거는 못 합니다.

 또 그러면, 그 영의 활동할 수 있는 무대는 어디냐? 활동할 수 있는 무대는  극히 제한되어 있으니 자기의 마음에게만 그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지 자기가  가진 마음 외에는 활동 못 해. 남의 마음에 가 가지고서 그 영이 활동하지  못해요. 이 영 저 영이, 이 영 저 영이 단합은 이렇게 되기는, 단합은 되기는  됐지마는 이 영이 남의 마음에 가 가지고서 활동하고 남의 영이 내 마음에  활동하지는 절대 못해요. 이거는 절대 인격성이기 때문에 요거는 고 계통이 돼  가지고 거기에 변동을 못합니다.

 그러기에, 영은 주격. 고 다음에 마음은 그 소유격 또 몸도 영의 소유 격. 영은  마음에게만 작용할 수 있는데 무슨 작용하느냐? 마음에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거기다가 나타내는 그것만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그것만해요.

 그러면, 남의 영에도 하지 못하고 영의 활무대는 영의 활무대는 자기의 소유인  마음 뿐이라. 그러면 마음에다가 무슨 일을 하느냐? 그 마음에 하나님의 형상을  담뿍 채워서 그 마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어지도록 제가 하나님의 형상을  거기다 줘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어지게 하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오늘은 성령이 중생된 영을 통해 가지고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를 해서 자꾸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을 가져라 하나님의 속성대로 된 네라 하나님의, 개 아들도 아니고 소  아들도 아니고 너는 고깃덩어리 아들도 아니고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형이 돼야 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자라야 된다 해서 우리 마음에게  하나님의 속성을 자꾸 우리에게 연결 전달해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속성화. 하나님의 형상화 하려고서 애를 쓴다 그거요.

 그러면, 우리 마음에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 '또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진실,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주권 이걸 우리에게 줘 가지고서. 미래적으로는 안 되지마는 회고적으로는 영원  불변적인 그 완전한 거, 영원 불변적인 완전인 것을 회고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은 영원불변이요, 완전이요 불변이요 그런 것입니다. 또  그것은, 만들어 놓은 것들은 그것은 다 단일성적, 단일성적의 것들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으로부터 내리보면은 새 예루살렘은 거기에 모든 만물들이 다  있는데, 거리고 문이고 사람이고 뭐 성전이고 뭐 전부 다 동질 동성이라. 동질  동성, 그것 보입디까. 성경 보니까? 그 동질 동성을 봐요? 전부 하나님의  형상대로 돼 있습니다. 전부 거기 있는 거는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돼 있습니다.

전부, 이것 봐도 하나님이 거기 있고 이거 봐도 하나님이 거기 있고 저거 봐도  하나님이 거기 있고 전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어 있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면, 또 그 다음에 마음은 영의 충격을 받아 가지고서 영의 충격을 받은  그것을 몸에다가 전달해 주고, 그 마음은 어디서 역할을 하느냐? 마음은 또,  마음도 활동지가 국한돼 있어요, 그 마음은 자기 고깃덩어리에게만 한해서  활동하지 딴 데 가서 활동을 못합니다. 내 마음이 딴 고깃덩어리에 가서 활동 못  해요. 내 마음은 내 고깃덩어리에 가서만 활동할 수 있다 그거요.

 그러면 그 다음에 고깃덩어리, 고깃덩어리는, 고깃덩어리는 어데 활동할 수  있느냐? 고깃덩어리는 자기에게 분담된 사물에게만 활동합니다. 다른 데  월권으로 활동하지 못해. 제딴에는 여기에 저게 활동하는 것 같지마는 활동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그 마음에 활무대로 준 그것에만 활동합니다. 여기에 딱  예정으로 딱 됐기 때문에 절대 불변이오. 이거 변개를 못합니다.

 그러면, 거기서 무슨 활동하고 있느냐? 거기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거기에  내나 성령이, 성령이 영에게 이와 같이 하는 것은 뭐이냐? 하나님의 원형을 이  영에게다 자기가, 영이 하나님의 형상을 고대로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고대로 나타내는 것 중에 피조물 중에는 제일 영이 잘 나타내고 정확하게  나타내도록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이 영이라 말이오.

 나타내면 하나님의 형상을 그것을 이제 영이 자기 마음에게다 나타내. 마음에  뭐 하느냐? 마음에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속성,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속성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고대로 전달해서 하나님의 속성화되도록 그 마음을  해서, 하나님의 속성화되도록 하면 그 마음은 또 거기서 받아 가지고서 자기  고깃덩어리를 또 하나님의 속성화되도록 또 이렇게 하고, 그러면, 고깃덩어리는  또 하나님이 자기에게 관련시켜 준 모든 사물에게 하나님의 속성화하는 것을  전파해 가지고 그 모든 하나님의 속성화시키는 이것이 뭐이냐? 그것이 세상의  빛이요 그것이 만물을 구원하는 의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국한된 것을 우리가  이 시간에 배웠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형상만이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영이라 또  하나님으로 인해서만. 하나님으로 인해서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영이라.

마귀나 무엇이 이용을 못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사람의 영이 죽었으니까  하나님과 끊어졌으니까, 마귀가 하나님과 끊어지게 만들었으니까 이제는 마귀가  사람의 영을 제 마음대로 자유할 줄 알지마는 아니오. 그 영이 범죄해서 죽은 것  아닙니다.

 영이 범죄해 죽은 것이 아니고 이 고깃덩어리, 고깃덩어리, 육이라는 이 심신이  범죄했기 때문에 주격 위치에서 죽었습니다. 주격 위치에서 죽었기 때문에 죽어  있는 것은 저 하나로 스스로 살아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객관의 능력으로  독단 능력으로 영을 살려 놓고, 영을 살리고 난 다음에 이제는 영이  고깃덩어리로 말미암아 주격 책임으로 죽었으니까 이제는 우리 영이 자기의  고깃덩어리를, 자기 심신을 살릴 책임을 가졌습니다. 살릴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격됨으로 죽을 뿐 아니라 주격으로 또 살리는 일을 해야 돼. 처음에는 주격  의무에서 죽였지만, 주격 의무에서 자기는 죽었지만, 주격 의무에서 죽었지마는  이제는 살아났기 때문에 살아난 그 의무에서. 주격 의무에서 심신을 살려야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영은 마음을 살려야 되고, 마음을 살릴 그 주격 의무가 있고 또  마음은 육을 살릴 주격 의무나 있고, 또 육은 자기의 활무대이니 하나님이  자기에게 소속시켜 준 모든 사물들을 살릴 의무가 있다.

 살리는 것은 어떤 것이 살리는가? 하나님의 형상이 건너와 하나님의 형상화되면  산다. 하나님의 형상화되면 산다. 하나님의 형상화되고 하나님과 연결되면 산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중생된 영에게만 하고 또 육에게까지 건너가되 이제는  성령이 영으로 더불어 함께. 영을 앞세우고, 우리 영을 앞세우고 우리 마음에  건너와 가지고서 우리 마음을 살렸습니다.

 그 다음에 몸에 건너갈 때에는 누가 제일 앞섭니까? 몸에 건너갈 때에는 누가  제일 앞섭니까? 마음이 앞잡이로 서고, 고 다음에 또 뒤에는 누가 서요? 영이  서고 고 뒤에는 누가 섭니까? 하나님의 영이 서 가지고 이렇게 갑니다. 이래 가  가지고서 이제 마음을 하나님의 형상화시킵니다. 하나님의 속성화시킵니다.

 속성화시킨다 말은 하나님의 지혜대로의, 지혜대로의 그 몸이 되고, 하나님의  지식대로의 몸이 되고 하나님의 그 중심대로의 몸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대로의  몸이 되고, 하나님의 진실대로의 몸이 되고, 하나님의의 대로의 몸이 되고,  하나님 한 분에게 주권되는 그것이 거기까지 다 통치해, 하나님 한 분의 주권의  통치하는 것이 거기까지 쭉 뻗쳐서 하나님이 동하니까 쭉 동하고 하나님이  정하니까 쭉 정하고 이렇게 되도록 하는 그것이 이제 하늘과 땅의 것이 통일되는  것이라 그 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월권은 없다 그것을 이제 생각하고,

 그러면, 사람의 마음이라 하는 것은 어떻게 생겼는가? 사람의 마음이라 하는  것은 무색의 존재라 그렇게 생각하면 좀 쉬울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라 하는  것은 색깔이 없는 존재라. 아무 무색의 존재라, 색깔이 없는 존재라 색깔이라  말은 공산의 사상이나 불교의 사상이나 유교의 사상이나 무슨 마호메트교  사상이나 무슨 미신의 사상이나 아무 물이 없는 아주 백지라 색이 없는 것이라.

다만 그에게 있는 것은 뭐이냐? 그에게 있는 것은 그 생의 본능으로써 사는  것뿐이라.

 이러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생겼느냐 하는 것을 알라 하면은 갓난  어린아이의 마음과 같습니다. 갓난 어린아이의 마음을 보면 압니다. 갓난  어린아이의 마음은 그에게 아무 색이 없소. 이런 관념이나 저런 지식이나 저런  체험이나 이런 사상이나 아무것도 없소. 그에게 있는 것은 다만 본능밖에 없으니  다만 그것은 살라 하는 그 본능밖에 없습니다. 그때 어린 아이 갓난아이의  마음에는 살라고 하는 본능밖에는 없지 딴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없는데, 거기에서 하나씩 둘씩 물이 들어간다 말이오. 물이 들어가 가지고서  이제 그래서 - 물이 어데서 들어가는고? 먼저는 어머니에게서 물이 들어가고.

가까이 접촉해서 물이 들어가서, 그게 아무것도 없는 백지이기 때문에, 백지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물이 잘 든다 말이오. 감염이 잘 들어요. 감염이 잘 들고  피동이 잘 돼요.

 이러기 때문에, 아마 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사람의 뱃속의 교육이 더  중요하다.' 네, 뱃속의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유전성이 아니고. 유전성이  아니고, 유전성이 아니고 행동 그것을 거기에서, 백지니까 그 행동이 자꾸  사상이나 그 어머니에게 있는 물, 어머니에게 있는 색깔이 자꾸 거기서 염색이  돼진다 말이오. 어머니에게 있는 것이 다 감염이 돼집니다. 감염이 돼 가지고서  그렇게 되어지기 때문에 사람은 그것을 보고서 유전성이라 그렇게 말하지마는  유전성이 아니고 감염성이라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 유전성이 안 된  것이 있거든. 그걸 볼 때에 감염성이라 하면, 감염성이라 하면 다 맞지마는  유전성이 아닌 것도 있다 그거요.

 아무 색깔이 없는 그것이 이제 차차 차차 접촉하는 가운데서, 이게 듣고 보고  접하고 하는 가운데에서 외계에. 외계에 있는 이런 색깔 저런 색깔이 자꾸 물이  듭니다.

 이북에는 어릴 때부터 아예 공산 사상으로 자꾸 물을 들이니까 그 아이들은  지금, 이북에서 어릴 때부터 공산주의에 없는 아이들은 딴 거 모릅니다. 딴걸  지금 몰라요. 고것만 알고 있지 딴 거는 알지를 못합니다. 이래 가지고 참으로  김일성이가 이거 신이라, 그는 대 이파리를 하나 타고 온다, 조그만한 종이  쪼가리 하나 타고 공중에 날라 다닌다 이걸 참말로 믿어요. 다른 거 없이 고것만  자꾸 하거든. 딴 데, 다른 색깔이 가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색깔이 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 색깔에 자꾸 감염돼서 이제 그 색깔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 색깔의 것이 되어졌는데 사람들은 무슨 색깔을 입었느냐? 전부 입은 것이 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색깔만 자꾸 지었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옛사람을  벗어 버려라 새사람을 입어라. 벗어 버려라, 그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에베소서  몇 장? 4장 23절 보자. 읽어보자. 맞았는가 보자. 23절에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입으라' 새사람을 입으라 요렇게 말했고,  또 고 위에서는 보면 22절에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벗으라 입으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벗으라 입어라,  이래 벗으라 입어라 말은, 벗으라 말은 탈색하라 말이오. 탈색을 해라, 이거  탈색을 해라. 그라면 하얗게 탈색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심신을 죄악이라 하는 것은 벌써 그것은 정통 교계에서  그거는 이단이라 그렇게 정죄를 합니다. 그렇게 이 육체의, 육체의 죄악시하는  것은 그것은 다, 이것은 이단이라, 이렇기 때문에, 육체는 깨끗한 것인데 물이  거기 들어서, 나쁜 물이 들었다 좋은 물이 들었다, 붉은 물이 들었다 횐 물이  들었다 누른 물이 들었다 뭐 물이 들었다 이렇기 때문에 그것은 탈색만 하면은  깨끗하게 되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가 죄악화 된 것은 아니다. 자체가 죄악은  아니다. 그거는 죄악화되었기 때문에 의화 되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감염된 것을 나쁜 색깔을 빼 버리고 좋은 색깔 입히면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이 심신은 무색의 존재요 생의 본능밖에는 없는다. 그저 자꾸  살고, 사는 본능만 가지고 있고 아무 무색인데 거기에서 자꾸 가까이 접촉하는데  따라 물이 든다. 그러니까 자꾸 탈색을 시킬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성령과 진리는 탈색하러 왔다. 성령과  진리는 무슨 일 하러 왔는고 하니 예수님의 대속에 수종들러 왔으니 예수님의  대속의 이 공로를 사람들에게 입힐라고 왔다. 입히고, 입힐라고 오고 또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것을 탈색시키는 것은 어데까지나 강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살살 달개서 '그것을 벗으라. 그것을 대적해라, 대적하면 대적이 된다 그런 것을  벗어 버려라' 자꾸 달갭니다. 우리가 벗으면 돼요. 벗고 입으면 돼요.

 그러기 때문에 심신은 무색의 존재라, 그는 다만 생의 본능밖에 없다. 아무  주장도 없다. 주장도 없기 때문에, 생의 본능밖에 없는데. 아무 기능도 없어.

다만 생의 본능밖에 없다. 이러니까 그것이 죄에게 붙들리면 불의의 도구가  된다. 죄에게 붙들리면 불의의 도구가 된다. 또 하나님에게 바치면 의의 도구가  된다. 이것은 그저 어디까지나 그 심신 이상의 것에게. 삼신 이상의 것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것이 뭐 능동적으로 무엇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살라고 하는 그것만 만들어 놨다.

 그래 만들어 놨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래 만든 것은 그것은 하나님에게만  어쩌든지 아무 편리 없이 요것이 얼마든지 하나님에게만 이용돼서 하나님이  쓰고자 하는 대로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이렇게 만들어 놨으니까 하나님이  만들어 쓸 수 있으니까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쓰시니까 그에게 나타나는 것은  전부 하나님의 역사만 나타나니까 그것이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것인데 이렇게  존재한 것인데,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것이 그만 어만 것에게 인류 시조  아담으로 말미암아 어만 것에게 쓰여져 가지고서 불의의 병기가 됐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 하는 것은 뭐이냐? 탈색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다. 또 우리  마음과 고깃덩어리를 붙들고 사용하고 있는 그 주인을 바꾸는 것이 문제다. 우리  심신을 거머쥐고 바로, 우리 심신을 거머쥐고 사용할 수 있는 주인은  누구입니까? 우리 심신을 붙들고 사용할 수 있는 주인은 뭐입니까? 여기 ○집사,  영(靈). 고함질러 봐. 한번 크게 해 봐. 크게 말해 봐요 크게 말해 봐. 영  '영.-영!' 힘이 그렇게 없어? '영!' 하지. '아, 이가 아파서? 그래. 영입니다.

 영이 붙들고 사용할 수가 있는데, 지금, 지금은. 이 영이 붙들고 사용해야  정상인데-우리 고깃덩어리는 우리 마음이 붙들고 사용할 권리가 있고 마음은  영이 붙들고 사용할 권리가 있고, 영은 하나님이 붙들고 사용 할 권리가 있는데  이게 그만 에덴동산에서 고장이 나 가지고 이거 막 혼합되고서 이래 가지고  삐끄러끄다 말이오. 삐끄러졌으니까 이것을 바로 수축하러 오신 이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할 일은 뭐 할 일인가? 우리는 감염된 그 색깔. 잘 못된  색깔을 벗겨서 이제 하나님의 형상의 색깔을 우리가 입혀야 된다. 우리  심신에게는 하나님의 형상 색깔을 지금 입혀야 되니까 악령 악성 악습의 그  색깔을 다 벗겨 버리고, 탈색을 시켜 버리고 이제 하나님의 형상의 색깔을  입혀야 된다. 이런고로, 탈색하고 또 이제 염색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고 있다.

 또 하나는 뭐입니까? 또 하나는 이 이용하는, 이용하는 참 하나님이 정해 놓은  그 주인이 있기 때문에 주인이 이용해야 될 건데 도적이 와 가지고 이용을 하고  있다. 이러기 때문에 이용하는 주인에게 이용당하려고 우리가 주인 찾는 것을  노력하고 있다. 고깃덩어리는 자기를 바로 이용할 수 있는 본 주인이  누구입니까? 마음이오. 마음이 자기를 인도하도록, 주관하도록 그렇게 한다  말이오. 마음은 누가 이용합니까? 영이 이용합니다. 영은 누가 이용합니까?  하나님이 이용하고, 이용하는데, 이용하기는 이용하는데, 이용하는데 이용하는  법칙은 뭐입니까? 이용하는 법칙은 뭐이요?  그 법칙은, 영이 이용하는 법칙이 따로 있고 마음이 이용하는 법칙 따로 있고  고깃덩어리가 이용하는 법칙이 따로 있고 그 이용하는 법칙은 몇 개나 됩니까?  예? 대번에 아네. 하나, 기도 열심히 하더니마는 알 만하다. 하나, 하나. 신구약  성경. 하나님의 진리인 이 진리가 그 법칙이라. 그러면, 영도 그 법칙, 성령도  그 법칙, 우리 영도 그 법칙 마음도 그 법칙 몸도 그 법칙. 이래 가지고 모든  만물에게도 그 법칙대로 쭉 해서 이러니까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통일되는 것은 하나님 법칙대로 다 통일이 되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우리의 이 마음과 고깃덩어리 이것을 잘못 색깔이 들어 왔기  때문에 탈색을 시켜서 올바른 색깔을 입힐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색깔 무슨  색깔? 올바른 색깔이 무슨 색깔이소? 예? 예? 하나님, 옳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형.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 심신에게  입혀 가지고서 하나님의 속성과 꼭 같은, 붉은 물들여 놓으면, 횐 베  쪼가리에다가 붉은 물들여 놓으면 빨갛지 많아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속성으로 딱 물을 들여서 하나님의 속성을 입혀 놨다 말이오. 딱 입혀 놓으니까  그 속에는 무색이 들어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속성을 입어 놓으니까 고만 그게  보니까 하나님과 꼭 같애. 하나님의 속성과 같애. 그것이 우리의 성화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자기에게, 욕심은, 우리에게 아무 기능이 없었는데, 그저  생의 본능뿐이오. 본능뿐인데, 본능에다가, 본능에다가 돈 욕심, 이 우리  마음에다가 돈 욕심 색깔을 딱 들여놓으니까 그 마음 전체가 돈 욕심이 돼  버리고 말았다 말이오. 거기다가 무슨 정욕의, 정욕의, 정욕이라는 이 악령이 와  가지고서 정욕이라는 색깔을 이 마음에 들이면 전 마음 전체가 정욕의 마음이 돼  버리고 맙니다. 또 명예욕이라는 그 색깔을 들이면 그게 돼 버리고 맙니다.

 이거 딱,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어 가지고 탁 탈색해 버리면 된다  말이오. 이거 다 물리치면 돼. 이제 정욕도 물리치고 물욕도 물리치고 명예욕도  '물러가라' 해 버리면, 다 물리쳐 버리면 아무것도 없소. 욕심이 하나도 없어.

 거기다가 이제는 성령의 소욕이 들어옵니다. 성령의 소욕이 들어와 가지고서  이제 하나님의 지혜의 욕심 들어오면 지혜가 들어오고 지식의 욕심이 들면  지식이 들어오고 하나님의 사랑의 욕심이 들면 사랑이 들어와 가지고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물을 딱 들여놓으면 그만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애,  하나님과 꼭 같애.

 이래이라고 그 다음에 이제 이용하는 주인이 와 가지고서 바른 주인이 이용만  하면은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에게만 마음은 이용당해야 바로 순리대로 바로  되는 것이지 그래 안 하면 안 됩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우리 마음에 무슨  성경에 위반되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까? 성경에 위반되는 생각이 나옵니다.

우리의 마음에 성경에 위반된 생각이 나옵니다.

 생각이 나오면 우리의 마음이 그 생각을 가진 것입니까, 우리의 마음은  무색인데 우리 마음에다가 하나님에게 위반된 그것이 무슨 생각 그것을,  하나님께 위반된 그 생각이 우리 마음 밖에서 들어와 가지고서 우리의  마음에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된, 위반된 그 생각으로 이 마음에 물을  들여놓으니까 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된 그 생각의 마음이 되어집니까?  어떻습니까? 밖에서 와서 물을 들여서 그렇습니까, 그 자체에 하나님에게 위반된  생각이 우리 마음에게 있습니까? 마음 자체에 있습니까, 마음 밖에서 들어와  가지고서 감염을 시키는 것입니까? 밖에서 들어와서 감염을 시킨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몸은 우리의 육인데, 우리 육은 죄가  아니고 우리 육 자체는 깨끗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깨끗합니다.

깨끗한데 다른 데서 감염이 들어와 가지고 그래 돼요. 이거는 선한 것도 아니요  이거는 무색이라. 아무것도 색이 없어. 이런데, 하나님의 온전하신 그 속성이  들어와 가지고서 우리 마음에 가득 들면은 우리의 마음은 누구의 마음 같습니까?  하나님의 마음 같애. 하나님과 꼭 같애요 우리 몸도 하나님과 꼭 같애. 우리  행동도 하나님의 행동과 꼭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된 그것이 올 때에, 고것이 벌써  들어와 가지고서 마음에 감염시키기 때문에 마음이고 마음이 됐으니까 고것을  제인 줄 압니다. 고것이, 고거 마음은 저도 모르게 감염이 돼 가지고 제가 그만  붉은 자가 됐어, 그만. 붉은 자가 돼 버렸으니까 그것이 제인 줄 알아. 자기인  줄 알고 이 마음은 그것의 것이 돼 가지고 하나가 돼 가지고 그거 하자는 대로  얼마든지 복종하고서 이렇습니다.

 이거 왜? 우리의 마음이라 하는 것은 절대 복종의 존재로 하나님이 지었어.

절대 복종의 존재로 하나님에게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복종의 존재로 지음을  받았지, 요거는 또 순응의 존재로 지음을 받았지, 요거는 감염의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말이오.

 이 받은 것은 좋은 것을 그래 가지고 하나님같이 되어지도록 만들기 위해  그랬는데 이 악령 이놈이 와 가지고 그만 달리 해서 다른 색깔로 들이니 색깔이  얼마나 잘 듭니까? 색깔이 잘 드요. 복종을 얼마나 잘하요.

 이러니까, 고럴 때에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 것이 내 생각에 나오면'아, 요것은  내 마음이 아니고 내 마음을 요 밖에서 하나님 말씀을 위반된 생각 요놈이  들어와 가지고서 내 마음에 감염을 시켜서 내 마음이 요거 됐구나. 그러면 내  마음은 자체에 있는 것인지 한번 알아보자.' 그 자체 자기 마음에서 하나님의  진리에 위반된 그 생각 그런 걸 벗어 버려요 이놈을 벗겨 버려요. 이놈을  벗기라, '물러가라 물러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된 생각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이래 가지고 어떤 사람은 그거 생각 못 하게 '에이 에이  물러가라. 씩 물러가라.' 이래 가지고 기도하다 씩씩 하는 '씩 물러가라, 씩  물러가라, 에이 물러가라' 이라고 보면 어디로 갔는지 간 곳이 없어져 버려.

없어져 버리고 우리 마음은 깨끗이 있는데 하나님의 이 또 성령에 대한 감화를  입으면 감화만 입어 가지고서 입어진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 마음과 몸이라 하는 것은 무죄한 깨끗이요  그거는 색이 없는 무색의 존재라, 그러나 그것은 잘 감염되는 존재라 순응 잘  하는 존재라. 복종 잘하는 존재라. 왜? 그거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무한한 것을  거기다가 입힐 수 있고 잘 입혀지고 잘 순종해서 잘 이용되어지도록 좋게 하기  위함인데 이 마귀란 놈이 갑자기 취해 가지고서 이것을 제 마음대로 이용해  가지고 경쟁을 만들어 놨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는 벗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중요한 것이 내 심신은 무색의 존재라, 또 있는 것은 다만  생의 본능뿐이라, 생각하려면 갓난아이와 꼭 같은 것이라 갓난아이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거는 생의 본능뿐이라. 그저 먹고 살라 하는 그것뿐이라.

딴거는 아무것도 없어. 먹고살라는 본능뿐이라. 본능뿐인데, 거기에서 딴게 자꾸  물이 들어 가지고 차차차차 나빠져서 이제 한 살 먹으며 고게 좀 더 나빠지고 두  살 먹으면 조금 더 나빠지고 이래서, 자꾸 배고프면 밥 먹으려는 그 본능이 악이  아니라. 그걸 욕심이라 하면, 그거는 욕심이 아니라. 본능이라 말이오. 본능이  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본능을 준거라 말이오.

 자꾸 그래야 자기가 안 죽고 살 것 아닙니까? 먹고 싶고 자꾸 이라는 것은  그런데 거기에 다만 이 사상적의 것, 도덕적의 것, 또 모든 소욕적의 것 이게  모두 색깔이 있는 것인데, 이 색깔, 마귀란 놈이 이 못된 삐뚤어 진 도덕의 색  삐뚤어진 소욕 색 삐뚤어진 모든 감상 색 삐뚤어진 행락 색 삐뚤어진 모든 욕심  색 이런 걸 자꾸 들이니까 자꾸 사람이 그 사람이 되겠는데 이것을 뭘로 깨끗이  하느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함으로 깨끗해진다' 이랬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기도함으로 깨끗해집니다.

 자꾸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읽고 자꾸 생각하고 이거 주야로 자꾸 묵상 하니까,  묵상하니 이놈이 자꾸, 그 색깔은 자꾸 들이지 안하고 자꾸 그 색 깔을  탈색시키는 하나님의 말씀과 묵상만 자꾸 하니까 색깔이 자꾸 벗어지고,  벗어지고 자수 벗어지니까 이거 자연히 벗어지게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  청년들의 행실을 무엇으로 깨끗하게 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읽고 자꾸 묵상하고 새김질하고  기도하면 자꾸 깨끗해진다 그거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자기에게 있는 그 옛사람 한번 벗어 보라 말이오. 벗겨  보면, 쏵 벗겨집니다. 벗겨 보면 쏵 벗겨져. 벗기고 나면 그놈이 벗기고 난  다음에는 정이 없습니다. 그놈 벗겨 내 버리고 나면 그놈과 정이 떨어지는데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날 입혀 가지고 있을 때에는 내가 그놈과 한짝이 돼  가지고 딱 들어붙는다 그거요.

 그래서 여기에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했는데 진실한 자들은 뭣이냐?  마음의 진실, 몸의 진실, 행위의 진실, 그러니까 그 둘이 합해서 인격의  진실이라, 사람의 진실이라. 영은 돼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만 진실하면 다 돼  버려요.

 그런데, 그걸 할 때에는 성령이 월권하지를 안하시고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고,  또 영도, 영도 마음에게 가 가지고서 성령이 우리 마음에게 할 때에, 마음에게  할 때에 성령이 영을 다 떼 내 놓고 직접 하지 안하고 영을 통해서 마음에게  이제 하나님의 색깔로 자꾸 염색을 해서 자꾸 입힌다 말이오. 하나님의 형상을  입힌다 말이오. 하나님의 형상을 입히고, 그러면 그 영이 입히니까 마음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서 마음이 하나님의 형상화되었다 말이오.

 형상화되었으니까 이제 또 영이 있다가 '마음이 형상화됐으니까 육을 입혀야  되겠다.' 육에게 건너가서 하면은 그 마음이 삐꿔요. 마음이 삐꿔요 마음이 그만  이의를 달아. 왜 내가 등잔같이 있는데 뭣 때문에 날 떼놓고 지위를 지키지  안하고 월권적으로 내 몸뚱이에 와서 덤비고 있냐고 이라며 그 영이 혼나요.

영이 혼나니까 영이 있다가서 이제 마음에게 '야, 이 몸에게 가 가지고서 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혀야 되겠는데 어째 어째야 되겠노?' 살살 달개면은 마음이  '예, 그래 합시다.'  '그라면 내가 앞잡이 설 터이니까 뒤에 날 미십시오.' 이러니까 영이 있다가  '내 밀어 주지' 영이 '밀어주지' 이러니까 또 영이 '뒤에 성령이 밀어 주십시오'  '내 밀어 주지' 이래 가지고 밀어 가지고, 쭉 밀어 가지고서 몸에게 가서 살살  달갠다 말이오. 달개서 그 마음이 이래 점령이 됩니다. 마음이 점령이 돼서  심신이 다 통일됩니다. 영, 진리, 우리 영, 성령과 진리와 우리 영과 우리  마음과 우리 고깃덩어리 이것이 똘똘 뭉쳐서 하나가 돼 놓으면 하늘과 땅의 것을  다 통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밖에 있는 사물은 뭐 얼마든지 정리할 수  있다 말이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의 기능은 어디서 자라느냐? 우리의, 우리의 몸의 기능은  사물에서 자라고 우리의 마음의 기능은 그 몸에서 자라고, 우리의 영의 기능은  마음에서 자라고, 또 성령의 기능은 우리의 영에게서 확대됩니다. 자라는 것이  아니오. 널리 퍼진다 말이오. 확대되고 더 많이 나타내.

 이러니까 하나님의 목적은 뭐이냐? 하나님 목적은 당신의 자존하신 무한하신  분을 당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목적을 정하셨고, 나타내기 위해서 예정을 하셨고,  나타내기 위해서 창조를 하셨고. 나타내기 위해서 구속을 하셨고 나타내기  위해서 이와 같이 모든 교회를 세우시기 때문에, 교회 세우는 것이 우리 위해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우리를 삼았다'  그러기 때문에, 당신 위해서 한 일이기 때문에 만세 반석이오. 이거 변동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실한 자가 되는 데에는 고 탈색하고서 감염해야 되는데,  탈색을 무슨 탈색하느냐? 세상 지식대로 물들어 있는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고깃덩어리를 이것을 벗겨 버리고 신구약 성경의 영감의 말씀대로 자꾸 물을  들여서 입히는 것이 그것이 이제 진실한 사람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탈색은 언제 되며 감색은 언제 되느냐? 탈색은 언제 되며 염색은 언제  되느냐? 탈색과 염색은 언제 되지요? 고 되는 거 한번 알아보자. 그래, 여러분들  잘 알아요. 현실에서만 탈색도 되고 현실에서만 염색도 되지 다른 때는 염색과  탈색을 못합니다. 현실에서 탈색과 염색이 됩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탈색은 어떻게 하며 염색은 어떻게 하느냐? 현실에, 우리  현실에는 지금 모든 사물과 사람과 모든 접촉하는 게 있으니까, 사물 사람,  만물이 관련돼 가지고 있는 것이 열 가지가 관련돼 가지고 내 현실이 될 때도  있고 스무 가지가 관련돼 가지고 현실이 되는 때도 있고 또 한 두 가지가 관련  돼 가지고 현실이 되는 때도 있고. 현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적합하게 다  만들어 놓은 것인데, 그분이 현실을 만들었기 때문에 현실을 만드는데 대해서는  착오가 없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현실을 만들어 줬는데 고  현실을 만들어 준 거기에는 반드시 그때 현실을 만들어 줄 때에는 고 현실에서  하나님의 요구는 뭐이냐? 하나님의 요구는 뭐이냐? '잘못된 색깔을 탈색시키고  올바른 참 좋은 색깔을 입어라.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 입는 방법이 뭐이냐? 고 현실에 이제 새 색깔이 나와 있고  옛 색깔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옛 색깔을 입을 수도 있고 새 색깔도 입을  수도 있고 이렇는데 거기에서 옛 색깔은 다 이미 입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옛  색깔을 벗어 버려야 되겠고 새 색깔을 입어야 되기 때문에 옛 색깔은 이 세상  인간의 지식대로의, 인간 지식대로의 그 모든 악성 악습 악령으로 되어 있는  그게 꽉 물이 들어 가지고 있다 말이오.

 물이 들어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하나님의 색깔이 영감과 진리로 나타나 옆에  와 있습니다. 옆에 와 있는데 내가 자유성이 있어요. 내가 자유성이 떡 있는데.

이 현실에, 현실에서 이러니까 악령이 있다가서 '네가 단단히 서라. 네가 단단히  서야 되지 안 서면 안 된다. 네가 굳게 서라' 자꾸 이래 가지고서 그 악령과  악성과 악습대로의 그 색깔이 와 가지고서 자꾸 이래 굳게 서고 '요 색깔이  변하면 안 된다. 네가 변하지 말고 굳게 서라' 이라는데, 또 성령은 사람들을  통해서, 직접 또 영을 통해서 이렇게 우리 마음을 통해서 와 가지고 말하기를  '아무래도 그것은 벗어야 된다. 새사람을 입어라.'  이러니까 네 현실에서 네가 하나님의 색깔인 신구약 성경의 영감과 진리의  말씀이 여기 와 있으니까 요 말씀을 취택해서, 네가 이 시간에 요 말씀을  영접해서 요 말씀대로의 네 마음, 몸, 행사 요것이요 말씀대로 되어 지면은 고만  이제 새로운 하늘에서 내려온 색깔을 입게 되니까 이제 옛날에 입었던 색깔은  저절로 그만 확 벗겨진다. 왜? 안 벗겨질 수가 없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겨서 해  놨기 때문에 벗을라 하면 저는 나 못 나간다 소리를 못 한다 말이오.

 왕권 같으면 옛날에는 왕권을 가지고 못 나간다 하지만 버틸 권리가 없소. 이제  나가라면 당장, 나가라면 당장 나가야 됩니다. 이래서, 죄와 악령과 악성의  마귀들이 우리에게 왕권을 가지지 못합니다. 사망도 왕권을 가지지 못해.

예수님의 대속으로 호령치고 가라 하면 가야 된다 말이오. 그걸 왕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택자들에게는 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고때에 우리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속성대로인데, 또 그는 진리인데.

그리스도의 형상인데 이래 와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말씀대로 고대로  현실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용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가 지식을 삼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 '마귀 지식은 안 한다.' 하나님의 지식을 내가 다 내 지식으로  삼고, 또 마귀의 지식대로 순종하라 해도 '마귀의 지식 안 한다. 물러가라.'  하나님의 지식대로 내가 복종을 하고, 또 '나는 하나님의 지식대로의 모든  속성을 갖춘 사람이 되겠다.' 이래 버리면 고 현실에서는 그만 그 현실에  해당되는 옛사람은 확 벗겨 버려요. 옛사람은 확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돼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자기가 이 세상 인간의 뜻이냐? 하나님의 뜻이 냐?  다시 말하면 세상 인간 지식대로냐? 하나님의 지식대로냐? 이 둘 중에, 네가  하나님에게 복종하느냐? 인간에게 복종하느냐? 네가 하나님을 위하느냐? 널  위하느냐? 이렇게 이 두 가지 시비가 있을 때에 그때에 자기와 모든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에게 복종하여 하나님의 지식으로 자기 지식을  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아 하나님의 지식이 비판하고  평가하는 대로 비판하고 평가를 하고, 하나님의 지식이 가지라고 주시는 욕심 그  욕심대로 그 욕심을 내가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이 움직이라 하는 대로 움직여  버리면 고 현실에 해당되는 것은 완전히 탈색과 염색이 돼 버렸습니다. 완전히  옛것을 벗어버리고 새것으로서 입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요거 현실에서 거기에서 되는 것이지 뭐 평소에 성경을 여러 수 백 번  읽어도 소용없어. 그 현실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할 때 그 현실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할 때에 이거 버리고 이거라 할 때 거기에서만 입고 벗을 수 있는  것이지 딴 데서는 암만 외워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벗는 것도  입는 것도 현실에서만 된다 하는 요것을 명심하고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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