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기도와 진실한 기도


선지자선교회 1988년 3월 5일 토새

 

본문 : 눅 16:9-13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여기에 다섯 가지, 첫째,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둘째,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세 째,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네째,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다섯째,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예수님의 형상이라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또 우리를 예수 믿도록 만든 것은 예수님의 형상을 본 받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믿게 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형상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인데 그 형상이라 말한 것은 첫째  하나님의 그 자체의 형상-하나님 자체가 어떻게 생겼는가, 또 그분이 원하는  소원은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는가-소원의 형상, 자체의 형상, 그분의 또 지식의  형상-그분의 지식은 어떤 모양인가, 그분의 능력의 형상, 또 그분이 소원하시는  그 소원은 어떤 모양을 소원하고 계시는가 -소원의 형상, 그분이 그러면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할 때에는 어떤 모양으로 비완하고 평가하는가, 또 그분이  모든 행위를 하실 때에는 어떤 모양의 행위를 하시는가 하는 그것을 기록한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사람들이 만질 수 있었고 만날 수 있었고 볼 수 있었는데  그분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은 어떤 정신을 가졌으며 어떤 마음을 가졌으며 어떤 소원을 가졌으며  어떤 뜻을 가졌으며 어떤 성질을 가졌으며 어떤 욕심을 가졌으며 어떤 지식을  가졌으며 어떻게 어떤 비판을 가졌고 어떤 평가를 가졌고 어떤 경영을 가졌고  어떤. 행동을 가지셨는가 하는 것을 알라거든 예수님의 모든 것을 보라.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예수 믿도록 부른 것은 무슨 까닭인가?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떤 성질을 가졌는가? 그 성질을, 예수님의 성질을  본받도록, 예수님의 지식을 본받도록, 예수님의 뜻을 본받도록, 예수님의 소원을  본받도록, 예수님의 모든 언행 심사를 본받도록, 예수님의 비판이나 평가를  본받도록, '예수님이 무슨 소망을 가졌는가' 예수님의 소망을 본받도록, '그러면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접할 때에 어떻게 접촉을 하셨는가?' 그 접촉을 본받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본받기 위해서 부르셨다.

 그러기 때문에, 아침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말씀을 주실  때에 이 말씀은 곧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예수님의 형상을 우리에게 이  문서로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경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배우든지 할 때에는 이는 곧 예수님이  이렇게 살았다. 예수님이 이런 정신, 이런 마음, 이런 속성. 이런 뜻, 이런  견해, 이런 지식, 이런 소망, 이런 언행 심사 이렇게 살았으니까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서 예수님의 모양을 본받기 위해서 이렇게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면, 예수님이 어떤 성질을 가졌느냐 하는 것을 알라면은 성경을 보고서 알  수가 있고 예수님의 그 뜻은 어떠냐 하는 것도, 예수님의 성품은 어떠냐 하는  것도, 예수님이 이런 일을 당할 때에는 어떻게 판단했는가 하는 것도 성경을  봐서,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그 판단하신 것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러므로 전부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말씀은 예수님의 온갖 언행 심사 모든 자체, 또 당신의  경영, 소원, 지식, 비판이 모든 것을 나타낸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듣든지 읽든지 배울 때에 이는 예수님의  형상이시니, 그러면 예수님의 형상이 어떠나 이것을 한번 살펴보고 '예수님의  형상은 이런데 내 형상은 어떤가?' 내 형상과 예수님의 형상이 다른 것을  그것을, 예수님의 형상은 고치지 않는 그거는 완전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형상을  따라서 내가 닮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으려고 예수님의 형상과 같이  닮아갈라고 이렇게 애를 쓰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생활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아침으로 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시니까 말씀주신 것은  주님이 사람을 통해서 다 주시는 것인데 혹 인간이 제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하는 것도 있지마는 대개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세운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이  면을 말씀하고 저 면을 말씀하시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침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말씀은 곧 예수님의 형상, 예수님의 모양이라 말이오.

 예수님의 생활 모양, 지식 모양, 소원 모양 뭐 각양의 예수님의 모양이니까  나는 예수님의 모양을 닮아야 되겠으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서 하니까  예수님의 모양을 내가 본받아야 되겠고 닮아야 되겠으니까,   본받는다 말은 배워. 가지고 그와같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닮는다는  것은 내가 그 형상과 꼭 같은 자 되어지는 것을 가리켜서 닮는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아침마다 기도하는 것이 다르다 그거요 항상 주문 기도로 그저 항상  하는 그 기도만 하는 사람은 주문 기도하는 사람이오.

 그날 아침에 하나님께서 네가 이 면을 생각해 봐라 하면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그날 아침에 주시는 그 말씀을 하나님이 당신은 나는 이렇게 살았다.

나는'이렇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읽든지 듣든지 배워 가지고는 '보자. 내  형상과 예수님의 형상을 대조해 보자.'  그러면, 내 형상과 예수님의 형상이 다르면은 내 형상을 예수님으로 따라오게  할 것이 아니라, 그 우리 형상은 거짓되기 때문에 내 모든 자체의 형상이나 모든  지식 형상이나 행동 형상이나 소원이나 계획 형상이나 그 모든 형상이 다를  때에는 나를 버리고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야 되겠는데 나와 다를 때에는 다른 거  그것을 없애는 것을 하고 또 예수님과 같은 것으로 닮는 것, 본받는 것, 배우는  것 이것을 하는 것이 우리의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아침마다 기도할 때에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자기가 그면으로 자기  형상도 살펴보고, 또 그 면으로 예수님의 형상은 성경에 나타났기 때문에  예수님의 형상도 살펴보고, 오늘 아침에도 다섯 가지를 말했는데 다섯 가지  이것이 예수님의 형상이라 말이오. 예수님이 이렇게 예수님은 세상에서 사는  생활관을 소망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거요.

 이러니까, 자기와 예수님과 같지 앓는 것을 버리고 자기가 예수님을 닮아서  같은 이 형상을 가질라고 애를 쓰니까 이 말씀에 이런데 자꾸 이 말씀을  가지고서 생각해 보면 '아, 예수님은 과연 이렇게 살았다.' 성경을 퍼뜩 보면은  그렇지마는 한 말씀을 가지고 자꾸 생각하니까 그속이 자꾸, 깊이가 자꾸  알아진다 말이오. 깊이가 알아지고 넓이가 알아지고,   사람이 들어갈 때에는 조그만한 성문으로, 성에 성문으로 들어가지마는 성에  들어가 놓으면 그 안에는 아주 너른 거와 마찬가지로 한 진리를 가지고 그  진리를 자꾸 연구해서 들어가 보니까 그 안은 뭐 하나님의 진리는 끝이  없습니다.

 자기가 그 형상을 살펴보니까 처음에는 간단한 것 갈지마는 보니까 또 그 면이  있고 그 면이 있고 자꾸 그 면으로, 그러면 자기가 찾아 들어가는 대로 찾아  들어가서 예수님의 형상을 사람의 정도에 따라서 다 자기 나름대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지식이나 또 심령의 실력이나 이런 걸 가지고 자꾸 이렇게 살펴  들어가 보니까 그 면으로 예수님의 형상에 대해서 과거에는 손바닥만치 알았는데  그날 아침에는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형상을 자꾸 살펴보니까 나중에 이  예배당만한 면적을 봤옵니다. '아, 예수님은 이러하신 예수님이로구나!'  또, 더 거석하면은 어떤 사람은 이 지구 땅덩어리만치 보는 사람, 어떤 사람은  지구 땅덩어리만 하게가 아니라 무한히 '예수님의 형상은 무한히 광대하다.

무한이 깊다, 무한히 길다. 무한히 높다.'  그래서, 이것을 성경에 가리켜 말하기를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의  그 넓이와 깊이와 길이와 높이를 너희들이 측량해 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을 말씀했어. 그게 뭐이냐? 모든 말씀이 다 그래.

 이러니까, 그날 아침에는 이 면을 생각하고 연구해서 기도할라 하니까 자꾸,  고함을 지를 때에는 그거 언제 생각할 여가가 없어.

 이러니까, 그렇게 할 때는 자꾸 이래 생각을 가지고 또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넓게 생각하고 자꾸 이래 생각하니까 자꾸 생각이 나지니 거기에서  회개할 것도 생기고 하나님 앞에 간구할 것도 생기고 자기가 지금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 되는 결심도 생겨지고 자꾸 이래 해 나가는데,  옆에서 그만 고함을 지르기를 예수님의 재림! 재림! 재림! 재림! 재림이  거짓말이 아니라 재림 해. 재림! 재림! 또 뭣을 하나님의 전능! 전능! 자꾸 이래  쌓으니까 그만 그 소리에 내 마음이 끌려가서 그날 아침에 지금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났는데 그 형상을 찾아서 나와 대조해 가지고서 닮아갈라 하는 그 시간에  자꾸 그런 것을 하니까 그거 자기가 모를 때에 마귀, 소리나 아주 딴 세상사람  소리 같으면 까짓 것 상관없지마는 그 말씀도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과  자기가 상관이 없지 안하니까 자기 생각이 그만 그리 기울어지더라 말이오. 그리  기울어지니까 그만 그날 아침에 나타나신 주님의 형상은 자기는 찾아보지도  못하고 본받지도 못하고 닮아가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알지도 못하게 돼 버렸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렇게 기도를 하다가, 신앙이 장성하면 그 사람이야 고함을  지르든지 말든지 뭐 그것은 자기가 다 들을 것 아니고 지워 버리고 자기는  거기에서 자꾸 형상을 찾아 들어가지마는 그만 이러니까 마음이 그만 그리 가  버리고 자꾸 형상 찾을라 해야 아슴아슴하게 겨우 찾을라하던 것 그 떠드는 데  그리 한 번 갔다 오고 나서 새로 그날 아침에 나타나신 주님의 형상을 찾을라  하니 그만 찾지 못하게 된다 말이오. 찾지 못하게 되지, 기도도 워하고 찾아서  닮지도 못하고 시간은 돼버렸으니까 부애가 난다 말이오. 부애가 나서 아마 다  욕을 다 할 거라. 그뭐 '그놈의 자식이 소리는 안 해도 '아따, 그 사람 그거 참  기도하는 그거 방해 많이 된다.' 다 그럴 거라. 그렇게 그라고 나서는 '에이'  혀는 안 차도 '에이 오늘 또 기도 헛일이다. 가자! 뭐 기도도 못 하고 그럴게 뭐  있나?' 이래 가지고 기도에 방해를 자꾸 한다 말이오.

 또, 그래 좀 참는 사람은 이래 참아 가지고 있으니까 고함을 질러 이  기도하니까 그 사람이 고함을 질러 기도하니 나도 멋 모르고, 고함을 질러  하니까 나도 고함을 질러 기도해야 되겠다 그래 기도하니까 자기도 큰 소리로  해서 기도했다 말이오.

 큰 소리로 기도하는데, 비 오다가 갑자기 날이 버쩍 들면 그만 아랫도리 둥둥  걷었지 어째 뭐 얄궂게 이래 가지고 있다가 날이 걷히면, 날이 들면. 비정상의  태도라 말이오.

 이거 모양으로 이렇게 이라는데 그 고함을 지르니까 자기도 고함지르다가 그만  그 고함이 뚝 그쳐 버리니까 그만 전부 온 교인들의 소리내서 기도하는 게 딱  그쳐 버려.

 고함을 지르다가 딱 그치니까 사람의 신경이라 하는 거와 정신이라하는 것은  그반 거기에 따라서 피동돼서 완전히 변동이 되고 만다 말이오. 변동이 되고  마니까, 그란 그럴 때는 기도를 한창 한다고 이래 하다가 그리만 한 번 고함질러  가지고 뚝 그쳐 버리면은 온 교인들 뭐 몇백 명있는 기도하는 그 기도도 딱  중단을 시켜 버릴 수가 있다 말이오.

 중단시키고 나니까 또 기분이 좋습니다. 하, 그거 내가 이렇게 하면 쫙 따라서  하고 안 하면 안 한다 하는, 자기가 앞에서 지휘를 하면서 '갓!' 하니까 다 가고  '차렸!' 하니까 차렸하고 하니까 그거 모양으로 그만 이래 되고 만다 말이오.

 또, 그라니까 다시 '보자' 또 고함을 질러 하니까 새로 또 소리를 내서  응성응성 이래 기도를 하다가 또 딱 그쳐 버리니까 딱 그쳐 버린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기도를 가로막고 있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어제 아침  오늘 아침에는 말 안 했습니다.

 그게 자기도 모르게 대마귀에게, 기도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벗어나야 됩니다. 이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그것을 하지말고, 자기는  소리를 내는 거는 괜찮아. 소리라도 뭐 여기에서 무슨 소리가날 때에 아무  소리라도 응, , , , , , 이라면 그만 그 소리 나는 데는 괜찮지마는 뭣을 말을  어음이 똑똑하게 무슨 말을 무슨 말을 할 때에는 마음이 그리 끌려지고. 말을  한다고 해도 자기에게 상관없는 말을 할때에는 끌리지 안하지만 자기에게  관련되는 말을 할 때에는 자연히 마음이 그리 간다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이래 얘기를 하는데 누구 지나가는 사람 얘기야 그렇지마는  자기 집에 식구 얘기를 하고 자기 집 얘기를 하고 자기 얘기를 하게 되면은  자연히 사람 마음은 그리 끌려가게 된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여러분들이  기도의 방해를 안 받아야 되지 그 뭐 그 사람이야 그라든지 저라든지 상관없이  하도록 애를 쓸라고 이래서 고함을 앙만 질러도 나는 고함 따라 지르지 안하고  또 고함을 질러서 기도했으면 그 사람 뚝 그쳐도 나는 그대로 고함을 질러  기도하고 이거 좀 역항력이 있어야 되고 반항력이 있어야 되는 것인데 언제든지  그만 거기에서 따라서 피동만 장 되면, 우리가,   피동이라 하는 것은 따라 움직이는 게 피동입니다. 그러면 이 종이지금 이렇게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이거는 누구에게 피동 돼? 내가 종에게 피동됩니까 종이  내 힘에게 피동됩니까? 뭐이요? 이 종이 내손에 피동됩니다. 내가 이리이리  하니까 이리 와. 뚱글뚱글 이래 하니까 이라고 이리이리 흔드니까 이리 되고  이게 피동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는 피동을 하되 애를 쓰기를 하나님 한 분에게 만 피동하고, 한  분은 워 하나님 한 분이 뭐로 나타나? 하나님 한 분이 우리에게 나타나셨는데 몇  가지로 나타났습니까, 손가락으로? 세 가지로 나타났어. 피, 성령 진리. 성령과  물과 피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곧 하나이라' 말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이렇게 아침마다 나타나는 하나님의 형상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는  거기에 따라서 피동될라고 해야 될 터인데 어만 데 피동된다 말이오, 우리는  하나님 한 분에게만 피동되고 환경에 피동 안 돼야 돼. 암만 옆에 잘난 사람이  와도 하나님 한 분에게만 피동되고 거기에 피동되지 안하고, 또 아무리,'  지난밤에 설교할 때 그라데요. 죽음이 와도 죽음에 피동되지 안하고 암만 죽음  앞에서라도 주님이 하라는 대로 주님에게 걸 따라서 동하고 정하지, 죽음이 와도  주님에게 동하고 정하고 수억만 금이 와도 주님에게만 피동되어 동하고 정하고  급한 일이 있어도 그래. 이제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은 몇 가지로  나타나셨다고요, 몇 가지로, 손가락으로? 세 가지로 나타났어.

 그러니까, 피동된다 말은 바쁘든지 수월하든지 두렵든지 죽음이오든지  공산주의가 오든지 언제든지 이 세 가지에게만 피동될라고 애를 쓴다 그 말이오.

주님의 진리에게 성경 말씀에 피동될라고, 성신의 감화에만 피동될라고, 또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활의 대속에만 피동될라고 하는 이것이 우리가 주님에게  피동되는 것이라 말이오. 이렇게 살라했다 말이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산다'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나로 인하여  살리라 말은, 주님으로 인하여 산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주님에게 피동되어  산다 말이오. 주님에게 피동되어 산다 그 말입니다.

 이러니까, 에덴동산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에게만 피동될 터인데 배암에게  피동되니까 당장 그렇게 비참하게 됐다 그거요.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배암에게 피동되니까 피조물에게 피동되니까 그와같이 비참하고 악한 자가  되어졌더라 그 말이오.

 인간에게 피동되어서 생사를 무릅쓰고 거기에 피동되는 거, 땅 위에 있는 모든  뭐 충신이나 뭐이나 피조물, 국가에나 사회나 민족에나 뭐 인류에게나  문화에게나 어떤 것에게 피동돼도 그것은 주님에게 피동되지 안한 것이기 때문에  전체는 뭐입니까? 그거 사망입니까 생명입니까? 사망이야!   이걸 알면 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을 염려하거나 뭐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는 것을 환하게 알기 때문에 항상 그렇게 못 살아서  문제이고 그렇게 살라고 애쓸 것뿐이지 딴 거는 없다 그거요.

그러니까, 산에 가서 기도하든지 들에 가서 기도하든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말씀은 뭐입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은 누구의 형상입니까? 누구의 형상입니까?  그리스도의 형상이라.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 말씀은 그 중심이 하나님 중심이라. 하나님  중심이라 그렇게 하는 말들은 더러 합니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이라,  예수님의 형상이라.

 제가 그전에, 예수님의 사진 박혀 놓은 것이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라하는  그것을 제가 많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생겼노 하는 거, 사진을 보면은  대략 아는 거와 마찬가지로 실상만은 못하지마는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의 사진과  같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을 보면은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며, 소원은 어떠며,  뜻은 어떠며, 정신은 어떠며, 지식은 어떠며. 비판은 어떠며, 평가는 어떠냐?  이런 일을 닥쳤을 때에 예수님은 어떻게 했느냐? 예수님의 판단의 형상이  나타나니까 그 판단의 형상을 따라서 내가 판단하는 것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이런 것을 말하면 복잡하지? 예수 믿으면 천국간다 하는 거야 얼마나  좋아요, 그 말만 하면? 복잡한 거는 듣기도 싫어하고 알지도 못해.

 그래 내가 어떤 사람을 내가 들었는데, 이번에 위원으로 갔던 ○○○장로님이  말하는데 '안 되겠습디다. 그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할 때에 말이 통해야 되는데  말이 통하지 않습디다. 전혀 뭐 성경 말씀 말하는 거는 그거 무슨 말인고  도무지. 성경 말씀을 들고서 이렇고 이래 성경에 이렇지 않느냐 할 때에 그거  무슨 말인가 전연히 모릅디다.' '모르고 다만 그들이 말하는 것 보니까 전부  요새 세상의 학문 가지고 말하는 세상 지식, 이 세상에 인간들이 말해 놓은 다  불타버릴 이거 마귀 신학 그 신학 그런 것들만 있지 하나님의 말씀은 전연히  모릅디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들이 뭣을 역부러 그래 하는 게 아니라 그분들이  사실상 지금 그렇게 알고 그렇게 하니까 그걸 고칠 희망이 어렵습디다.'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어.

 여러분들이 여기에서도 배워 가지고 이 배운 걸 버리니까 그렇지 이 배운 것을  바로 들으면 천하 인간이 다 꾀워도 끌려 안 갑니다. 안 끌려가. 말씀 배운 걸  다 잊어버려 그렇지

 여기에 다섯 가지도, 뭐 다섯 가지 다 말했으니까 그것을 지금 말 할 시간도  없고 한 가지만 여러분들이 여기에 우리에게 즐거운 것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 하니라' 그러면 인간의 그 의는 충성이 의라. 그런데  '지극히 작은 것에' '것에' 하는 그것은 그거 뭐인고?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다'  그러면 것이라는 그게 뭐인지? '작은 것' '큰 것' 그것이 뭐입니까? 것을 그것만  알면 여기에 먼 데서, 서울사이까지 와서 차비 들여 가지고 온 사람 '것'이라는  요것만 알고 가면은차비의 천 배도 만 배도 넘습니다.

 작은 것이 뭐이요? '지극히 작은 것' '지극히 큰 것' 그것이 내나 위에 해석해  놨다 말이오. 그거 뭐인가? 불의의 재물로 친구 사귀는 것이라. 친구 사귀는  것이 뭐인데?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라.

 그러면 우리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없어질 때에 그가 영원한 처소로  너를 영접하리라' 이제' 불의의 재물' 없어질 물질계의 것, 없어질 물질계의 것  우리 마음은 이거 불의의 재물에 들었소 안 들었소? 마음도 들었고 몸도 들었고  생각도 들었고 지식도 들었고 모든 정력도 들었고 전부가다 들었다 그 말이오.

이거 없어질 것이라 말이오. 왜 이거? 불의해서. 왜? 인간이 원죄와 본죄와,  이래 타락했기 때문에 이것이 다 없어집니다.

 없어지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피와 성령으로 진리로 없어지면  이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심는 것이 돼서 영원한 것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없어질 것을 진리로 없어지고 영감으로 없어지고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없어지면 없어질 것이 영원한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걸 가리켜서 불의라  이거 모두 말했는데 충성이라 말은 주님을 생각하고 잘하는 것을 가리켜  말했습니다.

 그러면, 것이라 하는 그 것이 뭐인가? 자기가 주님을 생각하고 사람을 죄에서  구원해서 의의 사람으로 만들라고, 죄인을 죄에서 해방시켜서 의인을 만들라고,  그 사람을, 죄는 여러 가지 죄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이탈된 그 모든  것을 그 사람으로. 하여금 고쳐서 하나님의 뜻에 들어맞도록 하는 요 사람을  고칠라고. 사람을 고치고 행위를 고쳐서 참사람이 돼지고 참사람의 행위가  되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것이라 말이오. 노력하는 그것. 노력하는  그것,  이것은 뭘로 되는가? 이것은 감화 감동으로 되고 또 하나는 뭐이라 했습니까?  두려움으로 돼. 감화 감동으로 되고, 내가 하는 것을 그 사람이 뭐 이래라  저래라 말할 게 아니라 감화 감동으로 '야 저 사람은 보니까 일단 정신이, 뭐  하늘나라 어데 있노? 그런데 하늘나라 소망만가지고 하네. 일단 정신이  하늘나라에 소망이네.' 또 '그 사람은 뭐 세상에 배울 것 많은데 꼭 그리스도의  형상을 배울라고 애를 쓰네. 그리스도를 본받을라고만 애를 쓰네.'  '저 사람은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뭐 그래 두려워 해?'진리를 어길까 싶어서  진리 어긴 것을 두려워하고 이러니까 하나님 두려워하지 진리 어길까 싶어  두려워하지 영감을 소멸할까 두려워하지 이러니까 그 사람 두려워하는 것을,  나를 보고서 그 사람이 나의 두려워하는 걸 보고 그 사람도 과거에는 뭐 칼을  두려워했고 호랑이를 두려워했지마는 이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까 두려워하고 범죄할까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게 영 다르다 그  말이오.

 그러면, 두려워함으로 그 사람이 회개해서 사람이 변화되고 행위가 변화되고 또  감화 감동으로 변화되고, 이래서 내가 다른 사람을 범죄케 할까, 내가 다른  사람을 더럽힐까, 내가 술에 취해서 형제를 때릴라, 내가 세상주의에 도취돼  가지고서 형제의 신앙 인격을 내가 해칠라? 이런 것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지금  자기가 애를 쓰고 있다 말이오.

 애를 쓰고, 다른 사람을 더럽힐라, 다문 얼마라도 다른 사람을 좀 좋게 되도록  할라고, 의인되도록 할라고 애쓰는 그것이 자기가 무슨 말로 해가지고도 되고  하지마는서도 하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은 말에 감동을 받아서 말을 암만해도 그  말에 감동을 받아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그 말을 들을 때에 두려움이 생겨  가지고도 되고 말을 들을 때에 설교할때에 그 사람에게 감동되든지 두려움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가 안 되면 아무 변동이 없습니다. 이게 있어야 변화가  됩니다.

 이래 말도 하는 것도 있지마는 말보다도 그 사람의 하는 행동에서 상대방이  보고 감동받아서 변화되는 것, 두려워하는 것 보고 변화되는 것,  베드로전서 3장에 보면은 믿지 않는 강퍅한 남편이 그 아내의 두려워함을 보고  회개를 합니다. 또 그 사람의 절제하는 걸 보고 회개를 합니다.

 어떤, 제가 개명 있을 때에 그 남편이 참 불량했소. 다른 이에게는 불량 안  촤는데 자기 마누라에게는 참 불량했소. 얼마나 애를 먹이고 애를 먹였든지 아주  뭐 핍박을 그렇게 많이 하는데, 그러니까 안 믿는 남편을 만나면 내가  조그매라도 거리낌이 될까 싶어 막 벌벌 떨어. 여러분들 안 그렇습디까?  심방 갔다가 여자면 그 남편이니까 그렇지만 남편이면 그 여자에게 대해서 내가  가 가지고 잘못하면 거리낌이 돼서 그 아내의 믿음을 떨어뜨릴라 애쓸 거라  말이오.

 이라는데, 한 번 장을 가면서 같이 만났어. 같이 만나서, 그 사람 뭐 전도해야  잘 안 들어요. 안 듣는 사람인데 어째 말이 되니까' 그거 참 이상하긴 이상해요.

'네, 뭐입니까?' 좋은 게 나올 것 같다 말이오. 인제 뭐 재미가, '뭐입니까?'  이라니까,  공상 타작을 했는데, 공상 타작하면 한 섬에, 한 섬 머리에 홉 되로 한 홉씩을  삯을 주는 건데 나중에 하다 보니까 한 섬도 안 되고 반 섬도 좀 못 되는데 그걸  새가 말해 '얼마면 됐다'이래 온 섬은 딱 삯을 되어 놓고 이라니까 '그거 얼마  남았는데 그걸 되어야 안 됩니까?' '이거 되는 사람이 어대 있노, 있기를? 다  이래 거석하지.' 밉상이라 그 말이오. '이거 되는 사람 어데 있노? 잔소리 마라.

이만하면 삯을 많이 준 택이다.' 이래 가지고 턱 잡아넣는데 나중에 보니까 자기  아내가 가가지고 살며시 가더니마는 그만치 그걸 집어넣는 걸 저게 딴데 가다 고  봤다 말이오.

 보니까, 속으로 '저놈의 인간, 참 저거 저래 놓으니까 집구석이 안 돼.'이래도,  그게 속에 아마 감동이 됐던 모양이라.

 그래, 믿는 사람은 참 이상하기는 이상해요. 그 야단쳐도 보니까 나중에 그것을  털끝만치라도 틀리게 안할라고 이라면 하나님 앞에 죄된다고 이래 쌓는데 그  죄가 뭐인지 그렇더라고서. 그 이야기를 해. 그거 좀 감동을 받은 모양이라.

그게 여기 ○○○저거 아버지라. ○○○집사의 저거 아버지라.

 그래 가지고서 그 사람이 뭐 아내 예수 못 믿구로 할라고서 일본을 가 가지고  막 일본서 독촉을 해서 들어오라고 애를 쓰고 별별 일 다 했소. 돈도 안 부쳐  줘서 꼭 석 달인가 나물만 먹고 살았어. 이래도 요동치 안했어.

 이랬는데, 지금은 늙으니까 신앙이 자꾸 노쇠하게 된다 말이오. 아마 그래도,  저게 와 앉았네. 저게 손 들어 봐. 봐 저게 앉았어. 그래도 다 아름다운  신앙들을 가졌어요.

 이래서, 아내의 두려움을 인해서 그 남편이 회개했다. 또 남편이, 뭐 두려운  것은 죄 안 지을라고 벌벌 떨고 하나님 노엽게 안 할라고 벌벌떨고 하나님의  축복 못, 받고 저주 받을까 두려워하고 자꾸 이래 벌벌떤다 그 말이오.

 그래 이래서, 우리가 지극히 작은 것 그것은 뭐이냐? 다른 사람을 감동으로든지  그 사람을 하나님이나 지옥이나 죄나 하나님 축복 못 받을까 전부 옳은 하늘에  속한 두려움, 하늘에 속한 감동 이것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양식을 주고 해를 주지 안할라고 요마음을 가지고 요것을 애를 쓰면 지극히 작은  것-이까짓 거야 뭐 볼거나 뭐 있나-지극히 작은 그런 것을 그렇게 할라고 애를  쓰면 지극히 큰 것도 된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도 됐다. 요 말씀이 우리에게  소망이라.

 저는 요 가운데에서 제일 제가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다' 그 작은 것 그게 뭐인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될라 하고 양식이  될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일이 될라 하고 다른 사람을 그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이 될라 하고 성화시키는 일이 될라 하고 그 일을 할라고 그  마음을, 말을 가지고. 할 때는 소용이 없습니다. 말하지 말고 자기 속에 중심에  그 마음을 가지고서. 그렇게 하고 애를 쓰고 요라면은 그 효력이 나타나. 주님이  얼마나 기뻐해.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그렇게 할 때에는 어떻게 지극히 작은  것 잘하지만 큰 걸 잘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거기에는 하나님이  동행하시기 때문에, 동행하시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걸로 시작해도 지극히 큰  것도 할 수 있다. 네가 지극히 작은 것을 그렇게 시작할때에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능과 모든 것이 같이 하기 때문에 시작은작은 걸로 시작했지만  그것을 계속만 하면 지극히 큰 것도 할 수 있다. 그거는 네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동행해 주신다 하는 것이요 가운데 들어 있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뭐 얼마든지 복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또 우리는  얼마든지 비참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지난밤에도 이원일 목사님이 설교하시는데 얼마나 우리가 참 성도의 마음을  가지면 된다 하는 거기에 대해서 핑계 못 할 만치 세밀히 가르쳐 주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그게 얼마든지 그 면으로 나가면 나는 그 설교 뭐 한 십분지 일이나 했을까?  십분지 일이나 해도 그 줄기만 말해 놨다 말이오. 줄기는 말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깨달아서 자꾸 살을 붙이니까 얼마든지 붙여서 뭐 그 속에 설교를 몇  배도 더 할 것입니다.

 그 래서, 고려파 제일 머리가 되는, 여기에 송도에 있는 그 고신은 이거  환원이지 고신이 아니야. 그건 고신이 아니고 환원이고 고려파는 석원태 목사가  고려파입니다. 고려신학교는 거기에 있어, 고려신학교. 고려신학교가 고려파  아닙니까?   이런데, 그분은 말하기를 '나는 백 목사님 설교 하나 들으면 설교 서른번은 할  수가 있다' 서른 번 아니라 마흔 번도 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그거 하나 깨달아서 그 깨달음을 가지고 자꾸 그랴면 얼마든지  무한정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높은 산에 올라가는 것 같아.

 사람이 산에 올라가지 못해 그렇지 산에서 일 미터를 올라가 놓으면, 일 미터  올라가면 얼마나 보입니까? 일 미터 더 올라가면 얼마나, 일 미터 올라가면 이  방안만치 보입니까? 그만치 더 넓게 보입니다 만일 백 미터를 더 올라갔다고  하면은 그만치 면적이 넓게 보입니다'.

 이래서, 요게서 들어 깨달은 것 이것 가지고서 제가 새김질하고 이래 나가면  한없이 나가는데, 그러나 그것이 올라가기는 힘들어. 거기에서 한층 전진해서  새로운 발견을 해 가지고 올라가기는 어려워. 그걸 한번들은 그걸 가지고 자꾸  옆으로 퍼걱 나가기는 이거는 놀기라, 얼마든지. 산싸 올라가서 옆으로 퍼져  나가는 거야 눈만 잡아 돌리면 되지 안해요?  돌리면 다 보이지 안해요?  올라가는 건 제가 걸어 올라가야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한 진리를 발견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가진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고 깨달음 그걸 가지고 자꾸 이래 써먹어서 넓혀서 옆으로 그와 같은 종류를  자꾸 이래 발견하고 내가 하는 거는 얼마든지 쉽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이 말씀을 오늘 아침에도 여러분들이 이 새벽으로 지금  기도하는 데에 자꾸 그런 것을 말했는데 오늘 아침에 ○○○ 집사님이 안 온 것  같네. 왔으면, 저 뒤에 왔나? 손 들어 봐요. 옳지 왔네. 어짜든지 우리 기도의  대장이라고 내가 장로를 세울라 했어. 장로를 세울라 하는데 모두 말하기를  '장로를 세우면 혹 자꾸 좀 위험성이 있고 자꾸 기도할 때 그러니까 그라면  장로의 이름이 훼방될자 모르겠습니다' 이래서 안 세웠다 말이오,  내가 그 기도하는 걸 좋아해요. 좋아하는 데는 그 기도, 그런 열심기도를  가지고서 오늘 아침에는 무슨 말씀을 주셨으면 그게 예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내가 그와같이 될라고 그 면으로 자꾸 이렇게 해서 자기가 할  대로 다했다 말이오. 그 면에 대해서 자기 지능대로 할 대로 다 발견하고 잘못된  것 회개하고 하나님께 간구하고난 다음에는 또 일반 기도를 해야 된다 말이오.

일반 기도를 하면은 일반 기도 하는 것은,   저는 그래 기도해요. 이 서부교회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낙심한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믿어 구원 얻을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또 반사들, 또 그  다음에 이제 권찰들, 또 권사들, 장로들, 조사들, 목사들 이래 가지고 그 모든  여러 가지 기관 뭐 이거 남녀 전도회. 또 그 다음에는 그 모든 운전. 기사들,  엠프 기사들, 또 행정실 직원들, 뭐 편집실직원들, 교환 직원들, 또 이제 수위  남녀 직원들, 이거 또 이제 혈육의 가족들, 이거 분교, 또 이 기도실, 기도산  이거 전부 위해서 그것도 기도해야 돼. 그 기도할 때는 이제 그것은 다 알고  있는 기도기 때문에 그거는 빨리 진행이 됩니다.

 빨리 진행해서 이래 진행하지마는 자기가 그날 아침에 주시는 주님의 형상에  대해서는 그렇게 쉽게 되지 안해. 또 생각하고 연구하고 이렇게 자꾸 이래  생각해 가지고서 나와 이제 예수님의 형상을 거의 같도록 만든다 말이오. 같도록  만들었으니까 생각으로는 같이 만들었고 지식으로는 같이 만들었으니까 또  행동으로 또 같이 만들어 봐야 되겠다 그 말이오. 그게 우리 할 일이라. 매일  하는 일이 그게 우리 할일이라.

 이래야 되는데 그날 아침에 나타나신 주님의 형상은 예를 들면은 넙덕한데 이제  어제 아침에 나타난 동글동글한 걸 자꾸 그것만 하고 있으면 이 넙덕한 거는  생전 배우지도 못하고 이 면은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기도할 때는 그렇게 기도하라 하는 그것이야.

 그런고로, 될 수 있는 대로 고함을 질러서 하는 기도는 나타나지 안하면  좋아요. 이거 오두 다 그만 자는 것 같이 있는 데 옆에서 소리내하는 건 좋지  않는 증거라거든. 그라면 그게 이등 기도는 돼요. 이라면 뭘 응? ? 이래 자꾸  이렇게 하면 돼져요. 이래 가지고 응          이라면 벌써 그때 '믿는 모든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또 낙심한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믿어 구원 얻을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그것이 지금 응응응응 하는 가운데 다 됐다 그 말이오.

 이렇게 해서 하면은 이제? 다른 사람도 '자지 안하는데'본받아 가지고 자기도  자지 안하고 이렇게 하지마는 그만 이렇게 또록또록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낙심한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이래 버리면 그만 그리 따라가 버리고 다른  사람 기도를 다 방해되고 만다 그 말이오. 그걸 말라 하는 것이오.

 어짜든지 가르치는 대로 배우면 여러분들이 참 기독자로서 원만하다면 그런  신앙자가 되어지지마는 안 받으면 헛일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하나님 말씀은 잣대입니다. 이대로 가지고서 신앙생활해야 되지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 이러기 때문에 천하의 제일 복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복 있느냐? 천하에 제일 복있는 것은 뭐이라 했소? 말해봐요. 천하에 제일  복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저 ○집사님, 제일 복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요? 서울대학 가는 사람? 뭐라 하노? 하나님 말씀 어째? 잘 믿는  사람? 잘 믿게 하는 사람! 뭐라 해, 똑똑히 말해 봐. 아, 하나님 닮은 사람?  내가 말하는 데로는 빵점이로구만.

 제일 복있는 사람이 누구요? 제일 목사, 올바른 목회자를 만나는 사람이 제일  복있는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올바른 목회자를 만나지 안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못해요. 제일 올바른 목회자를 만난 사람이 제일 행복스러운  사람이오. 제일 불행스러운 사람이 누굽니까? 삐뚤어진 목사 만난 사람이 제일  불행스러운 사람입니다.

 둘째로는? 자기를 신앙 관리하고 있는 구역장, 옳은 구역장 만난 사람이  둘째로는 복있는 사람이오. 삐뚤어진 구역장, 돈이나 이리저리 주 끌어대고  떡이나 자주 사 주고 자꾸 등어리나 쓰다듬어 주고 칭찬이나 해 주고 이래  가지고서 사람을 제 사람 만드는 요런 구역장 만나 놓으면 그게 그만 둘째로  불행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좋은 목사가 어떤 게 좋은 목사며, 좋은 권찰이 어떤 게 좋은  권찰입니까? 좋은 목사는 그 사람을 예수님의 피와 영감과 진리와 하되는 그  중매쟁이가 제일 좋은 목사요, 좋은 권찰이오. 예수를 바로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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