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2 18:26
외식 회개와 3가지 살 것
1987. 8. 9. 주일오후
본문:요한계시록 3장 19절∼22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19절에, 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고 징계합니다. 우리는 자기 살아가는 앞길이 형통치 않고 장애되는 일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징계는 벌이 아닙니다. 징계는 죄의 값이 아닙니다. 요것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죄는 주님이 다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에게는 죄의 값인 형벌은 없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죄를 지어서 죄로 인해서 자기에게 어떤 징계되는 일이 왔다 할지라도 우리는 내가 지은 죄값으로 징계 온 것이 아닌 것을 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왜? 내가 범죄함으로 징계가 오게 된 그 범죄도 예수님이 다 대형으로 담당하신 범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형을 담당하신 것은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죄를 다 예수님이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언제 범죄를 하든지 그것은 주님이 다 대신 형을 받아서 담당한 죄입니다. 만일 담당치 아니한 죄가 하나라도 있으면 우리는 그 죄값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게 아니고 그 죄값으로 영원한 사망을 계속 받아야 하는 그것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죄에 영원한 형벌은 주님이 받으셔서 담당하셨고 다만 자기가 담당한 그 죄를 범할 때에 그 죄에서 나를 돌이킬라고 할 때에는 그만한 어려움을 주지 안하면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에 어려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자에게 어떤 죄를 범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죄값이 아니고 범죄하는 저를, 그 범죄하는 자기를 범죄한 거기에서 고치기 위해서 주님이 하신 요 사실을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요 알아듣기가 좀 어려운 말인데.
그러면 범죄함으로 징계가 왔습니다. 그러면 범죄의 값은 누가 받았는가? 주님이 벌써 받으셨기 때문에 그 범죄는 우리에게 사망을 주지 못합니다. 주님이 담당하시지 안했으면 크나 작으나 그 범죄는 영원히 우리를 사망을 주는 것인데 주님이 담당하셨기 때문에 그 죄는 이미 담당하신 죄이기 때문에 사망의 독을 우리에게 가지지 못합니다. 다만 그 범죄한 그 범죄는 주님이 담당한 범죄인데 범죄한 그 상태에 있는 그자를 돌이켜서 고치는 데에는 그만한 징계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징계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징계는 두 가지를 인해서 징계가 오는 것입니다. 하나는 잘못된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징계가 오는 것이고,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옳은 일을 하되 그것을 완성에 미달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완성되게 하시려고 징계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징계를 만날 때에 두 가지로 힘을 써야 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그것이 순종에 미달된 그 면이 있어서 징계하실 때도 있고 우리가 또 잘못됐을 때에 징계하는 것도 있습니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하고 미달된 것은 열심을 내서 계속해야 됩니다. 그래서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이렇게 두 가지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이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되고, 사랑하는 자는 잘못되면 책망하고 징계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나아가는 길에 뭣이 형통치 안합니다. 절대 형통한 것입니다.
이래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그 위치를 점령하기까지 우리 가는 길은 형통하는 것입니다. “무릇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했습니다. 모든 면이 잘 됩니다. 세상도 잘 되고 하늘나라도 잘 되고, 영도 잘 되고 또 몸도 잘 되고, 또 자기도 잘 되고 자기와 관련된 자들도 다 잘 되는 이 길인데 뭣인가 형통치 아니하고 장애가 있을 때에는 그 장애 있는 것을,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장애를 하고 또 사물을 통해서 장애를 합니다. 장애라 말은 방해한다 그말이오. 고장이 나서 안 된다 그말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이는 사람이 이렇게 했다 해 가지고서 자기에게 여러가지 장애가 있는 그 책임을 사람에게 전가시켜 가지고서 사람으로 더불어 시비하고 원수를 맺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 ‘이것은 이 자연의 관계로 이렇게 됐다’ 자연에 원망 불평하는 것도 그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장애가 있는 것은 이런 저런 핑계 의논하지 말고 어떤 장애든지 있으면 이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이루신다’ 하는 요것을 확정짓고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여러가지 장애가 있을 때에 이 장애는 ‘주님이 나에게 이와같이 하신다’ 하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이래서 어떤 장애라도 징계가 있으면 이것은 ‘하나님이신 주님의 책망이다’ 요거 알아야 됩니다. `주님의 책망이다' 어떤 장애가 있든지 ‘요것은 주님의 책망이다. 뭐인가 잘못돼서 주님이 지금 책망하고 계신다.’ 그러면 이 책망은 어떻게 할 건가? 책망하고 계시니 자기가 그 장애하는 데에, 방해하시는 데에 이용되는 이런 저런 피조물들에게 대해서 부담을 시켜서 시비하고 원망하지 말고 이것은 사랑하시는 주님이 나에게 하시는 것이니 이 징계는 두 가지 종류라 했는데 미달되는 거 있고 잘못된 거 있고 둘이라고 하셨으니 ‘보자, 내 생활에서 주님에게 순종하는 데에 순종 미달이 있나? 혹은 어기는 게 있나?’ 순종 미달이 있나 어기는 게 있는가 생각해서 미달은 열심내서 달성을 시킬 것이요 또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합니다.
이래서, 징계가 올 때에는 ‘이는 하나님의 책망이다.’ 하나님의 책망은 사랑하는 자에게 하시니 ‘이 책망이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심이다.’ 징계에서 하나님의 책망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책망에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릇 사랑하는 자에게는 몇 번이든지 징계하고 징계가 없으면 하나님이 사랑치 않는 자요 그는 참아들이 아니고 사생자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징계에 대해서 책망인 것을 깨닫고 주님이 책망하시는 것은 나를 사랑하심으로 책망하시는 것이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이상 희망이 더 큰 희망이 없습니다. 그는 유망한 자요 만물 위에 뛰어날 자입니다.
그런고로 이 징계를 벗어나는 데에는 열심을 내는 것과 회개하는 거 두 가지 길 외에 딴 길이 없습니다. 만일 자기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데에 순종에 미달된 것이 있으면 그걸 어서 열심내 가지고서 달성을 시킬 것이요 잘못된 게 있으면 어서 고쳐야 할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 말은 마음 문 마음 밖에서 두드린다 그말입니다, 우리 마음 밖에서. 마음 밖에서 두드린다.
그러면 주님은 어데 계시면서 마음 밖에서 두드리고 계시는가? 우리 중생된 영 안에 계시면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실려고 마음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문을 여는 그 문은 뭐이냐? 주님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놓은 닫아놓은 문입니다. 닫아놓은 문을 열면 주님이 들어오실 수가 있습니다.
닫겨 있는 문은 뭐인고 하니 자기 주관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기 주관을 인정하는 거. 제 생각, 제 마음, 제 주장, 제 뜻, 제 지식 저를 인정하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인정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인정하느냐 하나님을 인정하느냐? 자기는 이미 마귀에게 끌려 가지고 마귀하고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전부 부정이 됩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대립이요 반대입니다. 마귀의 유혹, 악령 악성 악습에 그 마음이 유혹받아 끌려 가지고 있는 마음이기 때문에 그 마음은 전부 악령적이요 악성적이요 악습적이라. 악령 악성 악습적이라 말은 다 자기 중심이요 자기 위주라 말입니다.
악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 이거 전부 악입니다. 인류 중심도 악이요, 국가 중심도 악이요, 민족 중심도 악이요, 가정 중심도 악이요, 자기 중심도 악이라. 무엇이든지 피조물 중심은 다 악입니다. 그러면 선은 뭐인가? 창조주 주재자 완전자이신 그분 중심, 그분 위주, 그분 본위 이것이 선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문을 닫아 있다. 이 문은 자기 주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 악령 악성 악습, 자기 주관, 옛사람 그것이 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옛사람 그것이. 옛사람이 딱 주님 들어오지 못하게 딱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들어오는고 하니 중생된 영하고 또 진리하고 성령하고 이 셋이 들어올라고 하는데 막기를 어떤 놈이 막는가? 악령 악성 악습 이놈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자기 주관입니다. 자기 주관이 막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게 막고 있는데 마음이 문을 연다는 것은 자기 주관을 부인하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부인하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을 부인하면 무엇이 열려지느냐? 부인하면 믿음이 열려집니다. 알아듣습니까? 부인하면 중생된 영과 진리와 성령과 자기와는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길이 확 열려 버립니다. 자기를 부인하면은 자기 마음과 중생된 영과 진리와 영감과 탁 트여서 하나가 되고 아무 경계가 없고 층어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옛사람 그놈을 부인해서 쫓아버리고 나면은 중생된 영 a음, 진리 a음, 영감 a음은 한 덩어리입니다. 그만 우리 마음에 중생된 영도 들어오고 진리도 들어오고 성신의 감동도 들어와 가지고서 한 덩어리가 됩니다.
그러면 무슨 결과를 맺느냐? 이제는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하는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주님은 그 사람으로 더불어, 주님은 그 사람을 붙들고 그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의 뜻을 다 성취합니다. 그 사람에게 대한 주님의 뜻, 주님의 목적, 그 사람에게 대한 그 사람의 구원 이것을 완성을 하게 됩니다.
내라는 놈 이놈이 방해해 가지고 우리 구원은 절단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아닌 자기, 옛사람 자기, 자기를 죽인 자기, 악령 악성 악습,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라는 요놈이 원수인데 요놈을 원수인 줄을 모르고 그놈이 저인 줄 착각해 가지고서 항상 그놈 좋게 하는 통에 자기는 영원히 망쳐지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망친 자가 누군가? 악령과 자기와 이 악습이 들어서 자기를 망친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자기를 부인하면, 자기 부인하면 뭣 됩니까? 자기를 부인하면 뭣 됩니까? 자기 부인하면 믿음 됩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이래라 저래라 말씀하는데 자기가 반대하기 때문에 안 되는데 자기를 부인하면은 하나님 말씀을 긍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면 믿음 됩니다. 자기 부인하면 믿음 되고 믿음 되면은 거게는 중생된 영과 진리와 성령이 들어오시게 됩니다.
들어와서 무슨 일을 하는고 하니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로 더불어 먹고” 그런데 먹는다는 말을, 이 먹는다는 단어를 모르면 이것 또 곤란합니다. 먹는다는 것은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시장하셔서 할 때에 마을에 먹을 것을 사러 갔다가 제자들이 오니까 사마리아 여인하고 주님하고 둘이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선생님 여게 음식을 가져 왔으니까 잡수십시오’ 이라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게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내 양식이 있다’ 이라니까 제자들이 ‘저 여인이 아마 주님에게 자실 것을 드렸는가보다’ 이렇게 말하는 그것을 주님이 아시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 내 양식은 다른 것이 내 양식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과 온전히 행하는 것이 나의 양식이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멸망 가운데 있는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해서 이 여인을 구원하는 것이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요 이것이 나의 양식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인격의 양식은 입으로 먹지 않습니다. 인격의 양식은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믿음으로 먹는 것입니다. 인격의 양식은 믿음으로 먹습니다.
주님은 주님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주님의 양식이요 우리의 양식은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 내게 해당된 내 구원, 하나님의 뜻은 내 구원이기 때문에. 이 구원을,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 행하는 그것이 우리의 양식입니다. 알아듣겠습니까? 이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피와 성령과 진리를 믿으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하나되어 있는, 피와 성령과 진리가 하나되어 있는 곧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믿으면 주님이 들어오십니다. 주님을 영접합니다. 영접하면 무슨 결과를 맺는고 하니 주님은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주로 더불어 먹는다. 요걸 여러분들이 기억을 하십시오. 기억해서 요 진리를 알아야 돼요.
그러면 주님은 나로 더불어 먹는다 말은 주님은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내게 대해서 다 이룬다는 말입니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룹니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내게 대해서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구원하시려고 하는 그 목표를 달성한다 그말입니다.
나는 주로 더불어 먹는다 그말은 나는 주님에게 연결돼 가지고 주님에게 연결돼 가지고 연결된 주님으로 인하여서 내게 해당된 주님의 뜻, 내게 해당된 주님의 뜻 그것을 다 이룰 수 있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주님은 내게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고 나는 주님이 내게 대하신 뜻을 내가 다 이루고, 그러면 그 둘은 하나입니다.
그러면 그 뜻을 이루면 뭐이 되는가?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먹으리라” 21절에 “이기는 그에게는” “이기는 그에게는” 이기는 그에게는. 이기는 것이 뭐이 이기는 것인가?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해서 주님의 소원도 이루어지고 우리 소원도 이루어져. 주님이 내게 대한 구원도 다 성취하시고 나도 내게 대한 주님의 뜻인 구원을 다 성취하는 구원 성취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구원 성취가 됩니다.
이기는 것은 뭐이냐? 자기를 부인하고 믿어 주님이 들어오셔서 주님은 나로 더불어 나는 주님으로 더불어 내게 대한 구원을 다 완성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완성하는 거.
“이기는 그에게는” 완성하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이기는 그자는 주님의 보좌에, 주님의 보좌에 주님이 함께 앉혀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한다” 그랬습니다.
주님이 이기시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이래서 영계나 물질계나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완전히 단일 통치를 하십니다.
단독 통치를 하시기 때문에 주님은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요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이기고 보좌에 앉았다. 예수님은 이기기를 뭘로 이겼는가? 예수님이 이기시는 것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상을 받아 사람같이 되어져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복종함이라” 하는 이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 앞에 자기를 부인하고 전적 순종하는 것으로 끝마쳤기 때문에 이것으로 이기심으로써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상속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기는 것은 꼭 같습니다. 이기는 건 자기 부인하고 전적 주님에게 믿음으로 순종하면 우리는 주님의 보좌에 앉게 됩니다. 주님의 보좌에 앉는다 말은 주님이 영원히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통치하는 이 왕으로, 왕위ㅡ보좌라 말은 왕위라 말입니다, 왕위.ㅡ왕위에 앉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합니다. 그리스도로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하고 그리스도로 더불어 영원히 선지자노릇 하고 그리스도로 더불어 영원히 제사장노릇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이요 우리는 모든 피조물과 주님 사이에 영원한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이십니다. 이것이 주님이 피흘려 구속하신 우리에게 약속한 이 구원에 본격적 지위가 완전히 성립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거와 같이 하리라” 그러면 이 보좌라 말도 또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보좌라 말은 보배 보자 앉을 좌자 해 놨기 때문에 아주 보배로운 무슨 금은 보석으로 만든 그런 자리인가? 이 보좌라 말은 제일 존귀한 위치라 그말입니다, 존귀한 위치.
옛날 군왕 시대에는 왕이 앉는 자리는 용상이라 그렇게 이름을 했습니다, 용상.
아무리 역적이라도 용상에만 앉으면 그 밑에 백성은 그 용상을 범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역적이라도 어쨌든지 용상에 임금만 죽여버리고 앉으면 그만 그는 왕의 권세를 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지위, 그러기 때문에 이 보좌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위를 가지신 그 보좌가 아버지의 보좌니 주님이 앉으신 자리요 또 우리는 이기면 주님과 모든 피조물과 그 사이에 위치인 그 보좌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이긴 자에게 대한 영광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이 귀는 양심을 말하는데 양심을 가진 자들은 이 사실을 들으라.
그러면 우리에게는 들려오는 소리가 많지마는 성령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 그런 소리는 전부 다 멸망할 소리입니다. 다 도둑놈 소리요. 알겠습니까?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는 그것은 전부 우리를 꾀우는 말이요 도둑놈 말이요 우리를 죽이는 말입니다. 요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성령이 우리 양심에게 가르쳐 주시는 요 말만 우리를 살리는 말이요, 참된 말이요, 신실한 말이요, 거짓이 없는 말이요, 성취될 말이지 성령이 말해 주는 말 아닌 것은 부모의 말도, 형제의 말도, 군왕의 말도, 누구의 말도 그것은 다 악령으로 말미암아 오는 말이기 때문에 이 성령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은 전부 마귀 말이요 원수의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가 말해도 성령의 말씀이면 우리는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복종해야 되고 아무리 군왕의 말이요 부모의 말이라도 성령이 말씀하신 말씀과 정반대 되면은 그말은 죽어도 우리는 복종을 안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기에 세상에는 많은 말이 있으나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이 하나만 우리를 살리는 말이요 복된 말이지 다른 말은 전부 꾀우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해 주시는 말씀은 뭐인가? 신구약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 말씀이 성령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되는데 성령의 말씀에 위반될 때에는 우리는 눈물을 흘려 울면서 부모에게 간청해서 ‘이거는 하나님에게 위반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제가 부모를 거역하는 게 아니라 이거는 부모가 하는 말이지만 악령의 말이요 하나님 말씀에 위반된 말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나도 죽고 부모도 죽고 다 망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거는 들을 수가 없다는 그 간청을 해서라도, 참 ‘부모에게 불효하니까 이놈 맞아라’ 맞으면 맞는 것으로써 부모에게 효성을 하고 자기는 범하는 일은 하지 안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상관이 말해도 성경 말씀이 아니면 성령이 하신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이거는 다 자타를 속이고 죽이는 말하기 때문에 우리는 안 들어야 됩니다. 안 듣는 거는 상관을 거역하는 그것이 아니고 상관을 지배하고 있는 악령적의 말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역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역함으로써 상관에게는 벌을 받으면 그 거역하는 벌을 받았기 때문에 거역은 다 때우는 것이 되어지고 우리는 거역하는 일은 하지는 안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우리는 생명으로써라도 값을 내고, 삐뚤어지면 생명으로라도 그 값을 내고 우리는 성령의 음성 외에 것은 순종하지 안해야 되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여게 대해서 잠깐 좀 말하고 끝내겠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성공을 바라고 모두 다 승리를 바라고 있습니다. 뭐 이런 지금 세계에 유명한 무슨 대학 무슨 대학 뭐 그런 대학에 가면은 아주 위대한 성공을 한다고 야단입니다.
영국에서는 제일 좋은 대학이 무슨 대학입니까, ○장로님? 옥스포드 대학이 영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입니까? 또 독일에서는? 그 자유대학은 어데 있지? 자유대학은 어데 있어? 화란에 그 좋은 학교 있다 하더구만. 그 자유대학.
유명해요. 그래 뭐 옥스포드, 또 자유대학, 또 미국에서는 또 무슨 대학교가 제일 좋아? 하바드. 이런 대학, 우리 나라에서는? 서울대학, 또 일본서는? 동경대학, 또 소련에는? 소련에는 무슨 대학이고? 중공에는 무슨 대학인고? 그거는 우리가 박식이 아니기 때문에 모르는 거로구먼.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 알 건데.
그런 데다가 들어가 놓으면 이는 참 최고의 성공을 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최고의 성공을 해도 그것은 해 봤자 요 지구 땅덩어리 안에서 날뛰는 것입니다.
여게 주님의 보좌에 앉으면 이 지구만 아니고 태양계도 또 그 외에 모든 십억만이나 되는 항성계 또 영계 이거 전부 다 통치하는 그런 능력을 얻습니다.
이거 다 통치하는 그 직위를 자기가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학교는 없습니다. 더 위대한 거는 없어.
그렇지 않습니까? 이거 지구 땅덩어리 몇 개나 차지하는데? 지구 땅덩어리 이런 거 억억억억??만 개도 더 되는 것을 다 차지해. 우주에도 지구 땅덩어리 이거 억억억억??만 개도 더 돼요. 더 되는 게 많이 있어. 그것도 다 통치하고 영계 것도 다 통치하는데 이 학교는 참 일등 학교입니다. 이 학교는 일등 학교요.
이 학교가 어데 있습니까? 이 학교가 어데 있습니까? 이 학교가 어데 있소, ○○○선생? 현실에 어데? 자기 뭐? 자기 안에 있어. 자기 안에 있어, 자기 안에.
우리 마음 안에 있어, 우리 마음 안에. 알겠습니까? 우리 마음이 이렇게 보배로운 것을 사람들이 모릅니다.
이거는 뭐 옥스포드 대학이니 뭐 자유 대학이니 뭐 그 하바드 대학이니 그런 거 억억억억??만 개도 더 되는 지극히 보배로운 학교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뭐? 우리 마음이라. 마음 안에 있어. 과장하는 말입니까? 털끝만치도 과장은 없어. 그대로라.
이 마음에 자기라는 요소, 자율이라는 요소, 모든 자기 중심이라는 거, 사욕이라는 거 모든 거 이런 것만 완전히 부인하고, 완전히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과 진리와 피를 참되다 인정하여 영접하면 제일 큰 좋은 학교 있는데 이 학교에 교장은 누굽니까? 이 학교에 교장은 누구요? 이 학교에 교장은 주님이십니다.
알겠습니까? 주님. 거게 교과서는 무슨 교과서입니까? 진리입니다.
교장은 영감인데 그 영감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영이라 이랍니다. 알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영감이니까 그리스도가 교장이요 주님이 교장이요 곧 도성인신하시고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나라의 그 학교의 교장이요 거게 교과서는 뭐입니까? 진리입니다.
이러면 거게서 무슨 공부 합니까? 거게서 공부하는 것은 주님은 당신이 내게 대한 뜻을, 하늘에서 내려올 때에 내게 대한 뜻이 있고 여러분들 각자에게 대한 뜻이 있습니다. 각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뜻이 있으니 내게 대한 뜻은 내가 부인하고 영접하면 주님이 내 안에 들어와서 영감과 진리로써 함께 하여서 나를 통해서, 나를 통해서 주님의 목적 달성을 합니다. 이래서 “나를 사랑하는 자는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이랬습니다. 목적 달성을 합니다.
또 나는 주님을 힘입어 가지고서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 내가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가지고 있는 내가 할 일은 주님을 힘입어서 합니다. 주님을 힘입어서 하다니? 주님하고 연결되어 합니다, 주님하고 연결돼서. 그러면 전지 전능을 합니다. 전지 전능을 하는 것은 주님은 전지 전능인데 전지 전능과 연결돼 전지 전능을 합니다. 완전을 합니다. 완전 승리를 합니다. 주님의 대속하신 완전 승리와 연결해 가지고 완성 승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하신 것은 나는 주님으로 더불어 먹어서 내게 대한 뜻을 다 성취한다 그말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진리와 나와의 하나되기 때문에 언제나 주님은 창조주시요 나는 피조물이지마는 하나가 돼 놓으니까 그 연결되니 내가 움직이는 건 전부 주님이 움직이는 것이요 나는 거게 피동되어서 움직이는 것이 되어질 때에 내 목적도 완성하고 주님 목적도 달성되는 것인데, 그라면 이자가 뭐하는 거라? 이자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중보돼 가지고서 만물 안에서 만물들에게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충만의 역사를 하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이 정상적인 교회가 됩니다.
이런데, 예수 믿는 사람 많습니다. 노아 때에도 하나님 섬기는 사람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많았는데 근본 기본구원은 얻지마는 행위구원 얻은 사람은 노아의 여덟 식구뿐이었습니다. 영이 하늘나라 가는 사람은 많치마는 이 건설구원을 이루어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 할 사람은 노아 홍수 때와 같이 그렇게 희귀한 것을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영접하여 주님과 나와의 연결이 됨으로 주님의 소원이 내게 다 이루어지고 내 소원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어지면 이것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한 것이요, 거룩하심같이 거룩한 것이요, 깨끗함같이 깨끗해지기 때문에 주님이 승리하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심같이 우리도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아 영원토록 만물의 중보자가 되며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한다. 영원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한다, 그리스도로 더불어 제사장노릇 한다, 그리스도로 더불어 선지자노릇 한다 하는 이 우리의 소망이 달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란놈이 땅위에 이것 저것이 좋다고 그렇게 미혹을 주는데 눈이 크단하게 뜨여져서 포부가 큰 사람, 시야가 넓은 사람, 사람이 대인, 대인은 뚱뚱해 대인이 아니라, 대인.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이 대인 그 사람은 땅위에서 자기가 제일 양육받을 수양받을, 수양받을, 닦고 기룸받을, 수양받을 곳이 어덴가? 수양받을 곳이 어덴가? 수양받을 곳은 자기 마음 안이라.
자기 마음 안에서 무슨 수양을 받는가? 하나님을 영접하여 그가 동할 때에 동하고 정할 때에 정하고 그로 더불어 하나되면 그는 하나님과 꼭 같이 되는 자라. 영원히 가도 피조물은 피조물로 있지마는서도 하나님과 연결되어 모든 행동도 하나님과 동일 행동이요. 그러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는 안 되지마는 신인양성일행은 된다는 것을 과거에 많이 가르쳤습니다.
이래서, 이리되면 이것이 영원히 그리스도로 더불어 제사장노릇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더불어 하나님과 피조물에 모든 배치되는 것을 항상 조화시켜서 화합시키는 그것이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충만은 말씀을 주실 때에 말씀대로 행하면 그 충만 그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충만을 말씀으로 주는데 그 말씀을 피조물들에게 주어서 피조물들이 그 말씀대로 행함으로 하나님의 충만이 그에게 충만해지도록 하는 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선지직, 왕직, 이것을 하는 이것이 전무 후무한 유일한 우리의 구원 얻는 슬기로운 길이요 복있는 길인 줄 알기 때문에 이는 다 위대한 사람들은 알고 난 다음에는 총각으로 있는 사람은 결혼하지 안했습니다. 주님하고 한 배우가 돼서 살면 족하고 아예 결혼 그런 것을 천리 만리 멀었지 생각을 안했습니다. 또 처녀로 사는 사람들도 다시 남자로 더불어 결혼하지 안하고, 동정남으로 동정녀로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일생을 살아서 땅위에서도 하나님의 능력 다 자기가 쓰고,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가 다 써.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자기가 대리로 다 영접해서 대리자 노릇 다 해. 이래 살았습니다.
이랬는데 우리가 기본구원은 얻습니다. 우리가 영은 구원 얻어 가지마는서도, 영은 구원 얻어 가는데 얼마나 영접했으며 몇 시간이나 영접했으며 그로 더불어 먹고 마시기를 얼마나 했는가? 그가 내게 와서 당신의 목적 얼마나 달성했으며 나는 그를 힘입어서 내게 맡겨 주신, 내게 맡겨 주신 분량, “주님의 손에 들린바 상을 향하여 달음질한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주님의 손에 들린바 상을 향하여 달음질한다” 내게 주님이 예정하시고 분량으로 정해 주신 요 분량 다 완성하기 위해서 도모하고 노력하는 이 외에는 가치 있는 일이 없는 줄 알기 때문에 피와 성령과 진리를 위해서 자기 소유도 몸도 생명도 애낌 없이 다 투자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보화와 진주를 찾는 자가 만나고 난 다음에는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 것과 같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산 것은 이 구원이 자기 현실에 있기 때문에 자기 현실을 자기가 자유해서 자기 구원에 이용하는 데에는 소유도 몸도 아낌 없이, 몸을 달라 하면 몸을 주고 생명 달라 하면 생명을 줘도 자기가 자기 현실은 뺏기지 안하고 현실을 영감과 진리와 피로 살아서 자기 구원을 이루는 이것을 가리켜서 있는 자기 마음도 몸도 소유도 생명도 다 팔아서 이 구원이 있는 현실을 빼앗기지 안하고 현실을 자기 것 삼는다 하는 이 말씀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리석지 맙시다. 스스로 속지 맙시다. 여러분들, 우리가 세상에서 이것 저것 직장도 가지고, 사업도 가지고, 또 여러가지 조작하는 것도 하고, 예술도 가지고, 문학도 가지고 가지지마는 이것은 내 구원을 이루는 분야, 내 구원을 이루는 장소와 모든 형편이지 그것이 내 소유 아닙니다. 그것이 내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장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