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1979. 7 30. 월새

 

본문: 마태복음 23장 13절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들이 멸망하게 된 그 원인인 화라는 것은 복의 반대인  것을 화라고 하는데 멸망 받는 그 원인이 되는 것을 외식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외식이라는 것은 겉꾸미기를 위주로 하고 속 꾸미는 것을 등한히 하는 것과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과 힘쓰지 않는, 이 속을 꾸미는 면에 힘쓰는 것보다 겉꾸미는데  힘쓰는 것이 더 힘써지는 그런 것을 가르쳐서 외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물론 겉을 꾸미면 다소라도 속도 되어지는 수도 있지마는 하나는 자꾸 타락하고  또 속화되고. 타락은 어떤 게 타락인고 하니 하나님과 떨어지는 것이 타락이요  속화는 세상에게 끌려가는 것이 속화입니다. 타락한다고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아니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하루 신앙생활 하므로 하나님과 그만치 멀어지고 일  년 신앙생활 하므로 하나님과 더 멀어지고 자기가 신앙생활을 해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지는 그것이 타락입니다.

 장성했던 사람이 타락을 하면 어린 신앙의 사람보다는 훨씬 앞서있지마는 그래도  어려도 그 사람은 한 행동 행동에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사람 있고 아무리 성자  성녀라도 그 사람이 한 생활, 한 생활, 한 행동, 한 행동에서 하나님과 멀어지는  사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것은 이전보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그것이 타락입니다.

 또 속화는 하나님께 끌리지 아니하고 세상에게 끌려서 움직이는 것이 속화입니다.

외식은, 물론 안도 있고 겉도 있지마는 안 보다 겉을 더 힘쓰는 그것이 외식  자입니다.

 진실은 겉을 꾸미는 것보다 자기의 속을 꾸미는 거기에 더 주력하면 그 사람의  겉이 아무리 어리고 나빠도 그 사람은 외식자가 아닙니다.

 여기에 일곱 가지 외식을 말씀했는데 이 외식은 그 속도 말해놓고 겉도  말해놓았는데 속 보다 겉을 힘쓰고 속 보다 겉을 중하게 여기고 겉 보다 속을  무시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외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우리 믿는 사람은 겉도 꾸며야 되고 속도 꾸며야 되지마는 속을 꾸미는 데에  힘을 쓰고, 속을 꾸미다가 보니까 겉도 꾸며지는 것, 속을 위해서 겉을 꾸미고,  속을 이렇게 잘 만들다 보니까 겉도 자연히 잘 만들어지는 이런 순서가 되어야  되는데, 속 보다 겉을 중하게 여기고 속 보다 겉에다가 더 힘쓰는 이것이  외식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신앙으로 차차 병들고 죽어지고 망하는 것이 무엇 때문이냐 아주  간단하게도 주님이 우리에게 요령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사람의 신앙생활이 왜  점점 식어지고 점점 타락하고 하나님 앞에 화를 마련하게 되느냐 그 사람이 예수를  늘 대대로 믿는 사람인데 아무런 하나님의 축복은 받지 못하고 불신자와 다름이  없는 것, 그 하나님의 축복 받는 것은 살림살이가 부요해지는 그것도 축복이지마는  그것은 축복 중에 들지를 아니합니다.

 믿는 사람이 축복을 받는 것은 첫째가 그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책임을 점점 많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책임을 많이 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져서 하나님의 돕는 은혜 보호하는  은혜가 많아지는 이것이 축복을 받는 것이요,   다음에는 이러므로 인해서 자기라는 사람이 차차 거룩한 사람으로 성화 되어  나가는 것, 성화라는 말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나가는 것을 가르쳐서 성화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 성화 되어 나가는 것 자기라는 사람이 성화 되어 나가는 이것이 축복이요, 또  자기의 모든 생활이 고쳐져 가는, 회개되어 나가는 이것이 축복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의 축복은 회개가 축복이요, 성화가 축복이요,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셔서  책임지시는 이것이 축복입니다.

 그러기에 일반 생활에서는 이 축복을 받은 사람이나 받지 못한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지 마는 어려운 역경을 당하든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척 당할  때에 하나님이 책임지는 사람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책임을. 믿는  사람이고 택한 사람이지마는 제 행동이 너무나 허무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제는  너 이놈 한 번 당해봐라 하고서 버리는 사람과는 참 차이가 큰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의 축복은 이것이 축복이요 사람들은 유물주의 공산주의 아닌  것 같아도 공산주의자들이라 이런 신자는 그 사람들의 재산이나 좀 늘어가면 아 저  사람은 축복 받았다 그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그만 절단 나면 아이구 그 사람은 화  받았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금년에는 우리가 어려서 이 껍데기 이것을 표준으로  삼자 이랬습니다. 믿음이 어릴 때는 하나님께서 자타가 볼 수 있는 껍데기 그것을  잘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금년에 목표한 이것은 우리 교회 신앙 정도로서는 합당한  것입니다.

 아주 신앙이 장성한 그런 사람은 껍데기 그런 것은 초월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보호를 입기 위해서 보이는 것이 절단 나는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성화를 입기  위해서 보이는 것이 절단 나는 수도 있고 그 사람을 철두철미하게 회개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이는 것을 절단 내는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벌써 다른 사람이 저 사람 망했다 흥했다 해도 요동되지 아니하고  자기 받은 증거가 있고 자기 아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요동치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금년 우리 목표는 꼭 이것을 가지고서 금년 안에 달성하도록 그렇게  합시다.

 벌써 칠월 달이니까 반이 다 지나갔는데 어느 정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지  하나님의 축복, 금년에는 보이는 것을 위주로 이렇게 어린 신앙 정도를 말했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축복 받은 정말 축복, 참 영원한 축복,  완전한 축복, 다 영생에 속한 축복, 이 축복은 이제 말한 대로 이 세 가지가  축복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책임 맡는 것 이제 아브라함에게 '나는 네 방패와 네  상급이 된다 또 하나님이 인을 쳤다' 는 그 말은 도장을 꾹 찍었다는 그 말은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그 말이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책임지는 것, 이것이 제일  큰 축복이고,   둘째 축복은 자기가 거룩한 사람으로 성화 되어 나가는 이것이 성화가 둘째  축복이고,  셋째 마지막 축복은 그 사람의 생활이 회개되어 나가는 이 회개가 셋째로 마지막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복의 반대가 화입니다. 화이기 때문에 화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버리는 것이 화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버리는 것이 화입니다. 그 사람이 점점 세상  사람과 같이 되어지고 성화가 점점 악화되어진다. 악화라는 말은 자기중심 피조물  중심. 점점 그 사람이 피조물 중심이 되고 자기중심이 되고 하나님 중심은 자꾸  깨어지고 희미해집니다. 그것이 화요 그 사람의 생활이 성경대로 고쳐지지  아니하고 이 세상대로의 생활이 되어집니다. 그러면 그것이 화입니다. 그것으로서  믿는 사람은 멸망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이 것 외에 온 천하가 다 달려들어도 멸망하지 못하는  것이 기독자들이요 기독자들이 내적으로 축복 받아서 하나님이 그 사람을 책임져,  그 사람이 거룩한 사람으로 성화가 되어가, 그 사람의 생활이 하나씩 둘씩  성경대로 자꾸 고쳐가, 이런 사람은 천하가 다 달려들어도 그 사람을 해하지  못합니다.

 해하려고 했는데 도로여 그것이 유익 되요 다니엘 같은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해하려고 한 그것이 들어서 다니엘을 인격에 실패했습니까? 다윗을 하나님이  책임졌기 때문에 사울 왕은 권세가 있고 다윗은 아무 권세 없는 사람인데 권세  있는 왕이 다윗왕을 해하려고 이렇게 했지마는 해하려고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자꾸 유익만 되어집니다.

 하나님이 책임진 모르드개같은 그런 사람도 총리대신 하만이가 모르드개를  해하려고 이렇게 꾀하고 애쓴 것이 결과적으로는 모르드개를 유익 되게 했지  해하지를 못했다 그거요, 아 오십 척 나무에 사형하려고 벌써 왕도 허락을 했고 다  법적으로 다 죽이기로 딱 결안이 되었고 내일이면 오십 척 나무에 달아 죽이기로  한 전날 밤이라 그 말이요 그날 밤에 변동되어 버렸어 이렇게 간섭하니까 모든  사람이 볼 때에 이제는 틀렸다 이랬지마는 하룻밤 사이에 확 뒤집어 놓은 그것이  하나님이시다 그 말이요,  아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왕이 잠을 자지 못하도록 번민케 하니까 왕이 잠이 안  와서 고민해서 걱정이 되고 무엇인가 불쾌해서 견디지를 못해서 자기 밑에 있는  비서를 불러서 우리나라에 이 국내에 있는 역사를 읽어 봐라 그래 하필 읽는데 그  페이지를 딱 들고 모르드개라는 사람이 이렇게 왕에게 충성하고 역적들이 일어날  때에 왕을 위해서 왕의 생명을 구출했다 이게 나오거든 그러니까 그러면 그  사람에게 상을 베푼 것이 무엇이냐 아무 상 베푼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말없이 충성한다 말이요,   하나님이 마음을 감동시켜서 하만이가 죽이려고 하던 그 계획을 왕이 알고 어떻게  분개했는지 그 하만이를 불러들이라 불렀다 말이요, 그러니까 하만이를  불러들이니까 하만이 자기 딴에는 지금 평소에 제일 자기를 신임하고 사랑하니까  이 밤중에 불러들이는 것 보니까 또 이제 한 층 올라가서 존영하게 되겠다 싶어서  기뻐서 지금 '예' 하고 들어갔다 이거요,   네가 이제 네 하인들을 불러 가지고서 왕이 타는 짐승에다가 안장을 지우고 다  해라 이제는 하인들 시켜서 그래놓으면 저 태워가지고서 영광 받을 줄 알았는데 떡  그라더니마는 네가 가서 저 모르드개를 모셔다가 그 짐승 위에 태워라 하 그만  그때 하만이 그만 죽었어,  떡 태우라 하더니마는 네가 말 구장(꼬삐)을 잡고 너는 마부가 되어 가지고 이  모르드개를 모시고 이 시가에 행진을 해라. 그날 밤에 하만이가 총리대신이  모르드개를 왕의 짐승에다가 떡 태워 가지고서 시가행진 한 번 해라 그래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역사들을 시켜서 모르드개를 달려고 하던 오십 척 나무에 하만이를  달아라 하만이가 달려 가지고 사형을 받았어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아 그것보다 다니엘은 더하지요, 사자 구덩이 다 들어갔으면 이제는 끝났다  이랬는데. 사람들 은 '야 이놈 이제는 끝장났다' 이랬는데 사자 입을 막아  가지고서 . 그것이 내나 마귀역사 끝장나고 하나님의 돕는 일이 시작되게 한  것이라 그거요 그 이튿날 아침에 나오지 안했오 이렇게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만 있으면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해했습니까? 6.25 때 순교했습니다. 해했습니까? 해하지  못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을 위해서 6.25가 났소 손양원 목사님 인민군한테  잡혀가서 감나무 골에 가 가지고서 총 맞아 세상 떳는데, 그러면 손양원 목사님이  안 죽을걸 그때 가서 죽었습니까 ? 인민군들 아니면 애양원 문둥이 있는 데에서  거시서 앓다가 죽어 버립니다. 앓다가 죽을 건데, 순교는 못할 건데 인민군에게  사지에서도 주를 사랑하는 것을 세상에게 보여주었고 사지에서도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손 양원 목사님은 거기에서 사형을 받는, 그 죽음에서 죽음  속에서 죽음을 무릅써 죽음의 종이 되지 아니하고, 죽음에게 피동 되는, 죽음에  관심 가진 자가 되지 아니하고 죽음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과 그 가운데서 인간을 구출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자기 생명보다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했지마는 그걸 누가  압니까? 모르는데 6.25를 인해서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몸과 생명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몸과 생명보다 형제를 사랑했다는 것이 환하게 드러났다 이거요,  갈 때 형제들이여 지금이라도 예수 믿으면 구원 얻으니까 지금이라도 예수  믿으라고 서 이라니까 총으로 입을 쥐어박고 이래가지고 감나무 골에 가서  죽었는데 나는 성경을 연구하는 때문에 그게 맞은가? 안 맞은가 해서 한번 손양원  목사님에 대해서 바로 부 목사로 있던 그 목사님 성이 무엇이더라 아! 서목사, 그  서목사하고 나하고 부흥회 인도하러가면서 같이 타고 가는데 그 감나무 골에  내려서 '바로 손양원 목사님이 여기 그 시신이 여기 있었습니다.' 그래 말해요  얼마나 상했더냐 어디를 맞아서 피를 많이 흘렸던가 이라니까 손 여기 이래  철환(탄환)이 지나갔는데 찍해야 껍데기 살짝 벗겨지고 피는 하나도 나지도 않고, 그 뭐 그걸 몰라 놓으니까 그래 죽었다 하니까 그것이 좀 허무해서 바로 직통으로  맞아 가지고 피를 많이 쏟고 죽었다 이래야 될 터인데 요래 놓으니까 그걸 그래  말하면 너무 허무하니까 그 때 고신에서 모두 다 장례하러 가서 막 피를 흘려서  그게 성도들이 입을 대고 빨고 이랬다고 하는데 그게 자기네들 보기에는 피를 많이  쏟고 죽었어야 참 멋지게 죽고 이런 것인데 그게 아니고 성경대로 보면 그것도  좋지마는 조금 그래가지고 죽은 그것이 증거를 다 했다 그거요, 요한 계시록에 보면 증거인이 자기 증거를 다 마치매 자기 생애 다 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 이제 짐승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일 분 일 초도 덜 사는 것  아니요 참 순교자들은 일 분 일초도 덜 사는 것 아니요 의에 지나쳤던지  미달했던지 진짜가 되지 않은 그 것이 자기의 생명에 대해서 지장이 있지 기한  전에 죽는다고 해서 바로된 선지자는 자기 생명의 일 분 일 초도 희생당하지  아니하고 자기 이미 끝나는 그 생명 - 그 것 아니라도 끝날 그 생명 - 거기에서 살  것 다 살고 자기 생명보다 주를,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것을 나타내는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래서 예수님도 다 그 하시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십자가상에서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는 사람은 온 세상이 달라들어도 그 사람을 해하지를 못합니다.

해할라 하는 것이 그로 인해서 도로여 그것이 유익이 됐어 그 해할라 하던 것이  없었으면 큰 일 날 뻔했어 해할려 하는 것이 도로여 그를 위하는 것이 되었고 그를  죽이려고 하던 것이 그를 살게 하는 것이 되고 정 반대로 되었지 하나님이 그만  역사 하셔서 뒤집어 버린다 그 말이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 사람을 저주해서 축복의 반대, 화를 줄 때에는 그것을 구원할  자가 없습니다. 위하는 그것도 나중에 보니까 화가 되고 모든 모든 것들이 그를  위하거나 말거나 하는 그 전체가 그를 뒤에 결과적으로 보니까 해하고 망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화를 받으면 그는 절단이요, 축복을 받으면 이것으로서  다 인데, 그래 이스라엘의 화를 일곱 번이나 말했습니다. 화 있을진저, 또 두 번째  화 있을진저, 세 번째 화 있을진저, 네 번째 화 있을진저, 다섯 번째 화 있을진저,  여섯 번째 화 있을진저, 일곱 번째 화 있을진저 이렇게 화 있다고 하신 그 화의  원인이 무엇이었는고 하니 전부 외식이라 그 말입니다. 외식이라 알맹이를  무시하고 껍데기만 위주로 하니 그 것 때문에 화를 받았습니다. 알맹이를 무시하고  껍데기만 위주로 한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생활 할 때에 알맹이를 껍데기 보다 더 중하게 여겨서  알맹이 위주로 살아야 되지 알맹이는 무시하고 껍데기를 위주로 하면은 안됩니다.

그러면 알맹이 위주로 살고 껍데기 위주로 살지 안 하려고 하면은 무엇이 있어야  되겠습니까? 그러면 알맹이가 무엇인지 껍데기가 무엇인지 그걸 알아야 알맹이  위주로 하고 껍데기 위주로 안하지요 껍데기 위주로 취하려면 껍데기를 모두  알아야지요 알맹이를 위주로 하려면 알맹이를 알아야지요  이러니까 여기 일곱 가지 알맹이와 껍데기를 말해 놓았는데 요것을 자기가 잘  알아서 알맹이와 껍데기를 알아 알맹이 위주로 살고, 껍데기 위주로 살았던 것을  고치면 그 나머지 수많은 알맹이 껍데기를 다 압니다. 그만 닥치면 아 이 일에  대해서는 알맹이가 무엇이고 껍데기가 무엇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알맹이  위주가 아니고 껍데기 위주다. 내가 이렇게 주장하면 알맹이 위주가 아니고 껍데기  위주다. 이렇게 이라면 외식이다. 화 받을 행동이다. 축복 받을 행동이다. 환하게  구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오늘 아침에는 다시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을 축복하시면 그 사람을  아무도 해하지 못해 또 하나님이 그 사람을 벌써 화를 주면 좋은 것도 나쁜 것이  되고 위하는 것도 해하는 것이 되고 전체가 그 사람을 멸하시는 것이 되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이냐 하나님의 화냐 이것이요  하나님의 축복 받으면 다라 하나님에게 화를 받으면 제가 아무리 애쓰고 해도  소용없어 저만 골고 저만 녹아나지  이러기 때문에 사람을 접촉해 보면 알맹이와 껍데기 이것을 구별 못하는 사람  있습니다. 여기 대해서 깜깜한 사람 있어, 껍데기 그것만이가 전부고 다 인줄  알아서 껍데기만 자꾸 주력하여서 껍데기만 주력하는 그것이 속에 무엇이냐 하면은  자기가 자기를 주관하고 피동 되는 일을 관심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기중심으로 내나 악에게 속해 가지고서 나가는 것이라 그것이요   그러나 시기가 있는데 시기를 놓치면 안됩니다. 어찌하던지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의 축복이냐 화냐? 하나님의 축복이냐 화냐? 이것 기억하고   하나님의 축복은 거룩하고 진실해야 된다. 진실이라야 축복에 나아간다. 화는  외식하면 화에 나아간다. 진실하다니 진실하다는 말은 껍데기 보다 알맹이 위주  그것이 진실이다.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그 행동을 가르쳐서 거룩이라 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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