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1 13:57
예수님 재림 징조와 준비와 조심할 것
본문 : 마24:15-28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성경 말씀은 다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모르고 하나님만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과 그 계획을 사람들에게 알려 준 것이 다 예언입니다. 예언은 다 진리입니다. 진리는 참된 이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 말씀은 사람들이 모르는 하나님의 그 뜻을 사람들에게 알린 이치라 하는 말입니다. 이치는 한번만 쓰여지는 것이 아니고 몇 번이든지 그 이치가 해당되는 데에는 다 그 이치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가 구원 이루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가르치신 이치기 때문에 그 이치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이 시대도 그 이치는 역사하고 있고 저 시대도 그 이치는 역사하고 있고, 동양에도 그 이치는 서양에도 그 이치는, 이 사람에게도 그 이치는 저 사람에게도 그 이치는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혹 어떤 사람은 '이 일은 한번 지나갔으니까 다시는 닥치지 않는다' 그렇게 시대나 시간이나 장소에 국한을 시켜서 역사적안 해석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런 일이 한번 있는 것을 있었던 것을 우리가 알고 참고로 삼으면 더 믿음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끝났기 때문에 다음에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노아 흥수의 그 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역사적인 그 사실을 가지고, 그 형식이 있는 그 사실을 가지고 우리에게 교훈하신 것이기 때문에 교훈하신 그 구원의 이치는 몇 번이든지 우리에게 해 당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자의 임함도 노아 때와 같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노아 방주의 그 외형의 물이 오고 배가 있고 뭐 있는 그런 것은 다를지라도 속에 이처는 꼭 같고 그 이치는 언제든지 해당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조성된 것이 자기의 피난처가 된다 하는 것입니다.
여게도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일차적으로는 주후 칠십 년에 역사적으로는 한번 이루어겼습니다. 로마에서 예루살셈을 산헤립 대장을 보내 가지고서 포위해서 예루살렘을 참 멸망을 시켰는데 역사에 없는 그런 참혹한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것을 역사적으로 지나갔으니까 다시 우리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형식적인 그런 것은 지나갔지마는 그 이치는 우리에게 언제든지 예언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치는 우리가 가지고 구원 얻을 수도 있고 그 이치를 거슬리면 멸망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주님이 몇 가지 말씀하시기를 주님이 재림 직전에 재림이 가까울수록 신약 교회에 역사가 차차 깊어지고 오래 됐기 때문에 거게서 차차 다른 잡것이 많이 일어나고 재림이 가까울수록 징조 중에 하나는 구원이 여게 있다 그리스도가 여게 있다 저게 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일이 있을 터이니까 그럴 때에 네가 그런 미혹을 받지 말아라 그리스도가 여게 있다 저게 있다, (말씀을 들어야 되지. 말씀을 들어야 환난을 면하지. 저, 서울에서 온 분 말이오. 안 들으면 다른 것 가지호 구원 못 해요. 하나님의 진리가 구원하지.) 그런 유혹들이 많이 있을 것이나 너희들은 그런 유혹을 받지 말아라 그저 이 산에 가야 구원이 있다, 들에 가야 구원이 있다, 굴에 가야 구원이 있다, 또 여게 있다 저게 있다 그렇게 공간을 가지고 구원으로 너희들이 생각지 말아라.
뭐 어느 강대국에 가야 구원이 있다 하는 그런 것도 다 공간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인데 그런 유혹을 받지 말아라. 여게 구원이 있다 저게 구원이 있다 해도 받지 마라. 그런 미혹을 받지 마라.
다만 하나 알 것은 예수님이 구원하시는 것은 번개가 동에서 번쩍 거리면 서에 번쩍거리는 것같이 그 지역에 그뭐 번개가 다 같이 동시에 환하게 보이는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은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되어 있지 안하고 전면적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또 그 시대적으로 구원하는 그런 일이나 또 개인으로 구원하는 그런 일이나 구원하는 일이 전면 적으로 세계적으로 구원 역사가 같이 이렇게 있는 것이니까 이리저리 치우쳐 가지고서 어떤 지역으로 구원의 지역이라 그렇게 한정하지 말아라.
다만 알 것은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그 말씀을 했습니다.
이것은 예언은, 모두 예언인데 예언 중에도 어떤 예언은 바로 문자로 기록하지 안하고 상징적으로 그렇게 나타냈습니다. 그 이유는 점점 세대가 악해질 터이니까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바로 거석해 놓으면 악의 세력에게 직접 거슬림이 되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그 진리를 보수하기가 어렵고 신앙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해서 영감받은 자들은 알고 참 관심을 가진 자들은 알고 관심 가지지 않는 자들은 알지 못하도록 그렇게 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여게 있다 저게 있다 해서 구원을 어데로 가야 구원 얻을까 또 피난을 어데로 갈까 그렇게 하지 마라. 구원은 천하에 일반적으로 공통적으로 다 구원이 오는 것이고 멸망도 공통적으로 오는 것인데 다만 죄악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그러니까 네가 피난하는 것은 죄악을 벗어나는 그것을 네 피난처로 그렇게 삼아야 되고 구원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는 하나님 영접하는 것이 구원이지, 또 피난은 죄악을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지 그 외에는 구원이 없다. 그러니까 이런 미혹을 받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왔든지 또 지역적으로 환난이 가까왔든지 이래 환난이 가까왔을 때에 예수님의 재림은 종말적 재림 환난이요 또 재림 환난 아닌 환난도, 우리가 듣는 대로 얼마 전에 월남에 닥친 그런 것도 기독자에게는 대환난입니다. 월남에서 대환난을 기독자들이 겪었고 또 캄보디아 그런 데서도 기독자들이 대환난을 겪었습니다. 그때 왜정 말년에는 일본 치하에 있는 교회들은 또 큰 환난을 겪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6·25때도 그것이 지역적인 환난입니다.큰 환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면 그런 환난 때에 피난처를 다른 것으로 삼지 말아라. 네가 주님과 가까와져서 주님과 가까와지는 그것이 구원이라. 주님이 가까 와지면 먼저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니까, 믿음을 주시니 전능하신 품 안에 안긴 자가 염려가 무엇이겠습니까? 또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데 염려가 뭐겠습니까? 이러니까 어떤 환난이라도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다 평안했습니다.
이스라엘 그 홍해에서도 믿음 가진 사람들은 다 기뻐하고 저렇게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고 앞에는 어려움이 있으니까 놀라는 사람은 참 녹아질 만치 놀랐고 믿음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능하신 솜씨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 이루시는 걸 한번 구경하자' 그러면서 같은 입장에서 평안했습니다.
또 우리가 잘 듣는대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나 다니엘이나 그런 사람들도 꼭 같은 그 입장과 형편을 당했는데 그분들은 유유하고 평안했습니다.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왜? 이제까지 신앙 경험과 체험이 아무리 어려운 때라도 어려운 현실을 만나도 믿음이면 다라.
어려운 현실을 만날 때 그때에 참 믿는 믿음의 효력이 나타나 가지고서 기이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이제까지 일생 동안 현실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의 그 믿음을 지켰고 믿음을 지키면 현실이 다 기적의 현실이 되어졌고 이래 경험하니까 그런 그 어려움의 조서를 내린 그런 참 다급한 일을 닥쳤지마는 다른 사람은 그러니까 놀라 죽겠지마는 믿음 있는 사람들은 기뻐 즐거워했고 과연 믿음으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지낸 그들의 가는 길이 제삼자들이 볼 때에 '믿음 믿음 하나님 하나님 해 봐야 무슨 소용 있노? 지금 불미 속에 집어 넣었으니까 뭐 끝났지, 또 사자구덩이에 집어넣었으니까 끝났지.' 했지마는 그들은 들어갈 때도 평안했고, 안에 있을 때도 평안했고 그 뒤에 거게서 살아나을 때도 평안했고.
뭐 별스러운 일이 아니라, 다니엘에게 대해서도 다리오 왕이 가서 물을 때에 별스러운 이상한 것을 본 것과 같이 그렇게 말하지 안했습니다. '예, 왕이여 만세수나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서 이렇게 해서 아무 무사히 지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놀라서 기절할 만한 일이지만 그들은 늘 걸어가는 보편적인 일 별스러운 일이 아닌 기적이 아닌 보편의 일이 됐다 그거요. 왜? 그들이 평소에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보편의 일로 여겨졌어.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항상 그게 주장이라. '어떻게 해서 네가 이리 됐노?' 이렇게 묻는 그 말은 없지마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 하시더냐?' 하니까 대답이 '내가, 내게 죄가 없는 것을 하나님이 아옵고 또 왕에게도, 왕이 지금 왕의 권세로 나를 사자구덩이 집어넣었지마는 왕에게도 내가 해친 일이 없습니다. 내가 아무에게도 죄를 짓지 안했고 죄를 짓지 안했으니까 죄짓지 안한 자를 멸망시킬 자가 어데 있고 또 왕에게도 해한 일이 없기 때문에 해한 일 없는데 왕이 내게 대해서 해를 주려고 해도 내게 해가 안 됩니다. 왕에게 내가 죄를 짓지 안하고 해를 안 했는데 왕이 나 해하려고 하는 그것은 내게 해로 돌아오는 게 아니고 그게 돌이켜서 그것이 큰 복으로 돌아오지 화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는 것을 다니엘에 신앙의 강령이요 표준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사자구덩이 넣었지마는 '만일 내가 왕을 해했다고 하면 사자구덩이 안 들어와도 해한 그 자체가, 지공하신 하나님 모시고 있기 때문에 나를 멸망하는 것이 되는, 자멸을 취하는 것이, 스스로 속이는 일이 되지마는 내가 그런 일 없기 때문에 왕이 사자구덩이 넣었지마는 이것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유익이 되지 해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피난을 어데다 뒀느냐? 피난은 죄를 피하는 것이 피난이요 구원은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가까와지는 것이 그의 구원입니다. 지금 이 말씀도 꼭 그와 같은 말씀입니다.
이러니까 여게 있다 저게 있다, 피난이 여게 있다 저게 있다 해도 듣지 마라.
그저 구원은 번개가 동에서 서에까지 번쩍거리는 것같이 구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환하게 알 수 있도록 공통적으로 임한다. 그러니까 네가 별스럽게 생각지를 말아라.
또 죄악이 있으면 어데든지, 뭐 미국 가도 죄악이 있으면 당할 것이고, 또 아무리 굴에 가 있어도 죄악이 있으면 당할 것이고, 아무 데 있어도 죄악을 벗어나면, '죄의 값은 사망이라' 망하는, 기독자들에게 망하는 것과 죽는 것은 죄값이지 죄 외에는 없는 것이니까 죄만 벗어나면, 사자구덩이 속에서도 죄를 벗어났을 때에는 그뭐 상관이 없었고 불미 속에 들어갔을 때에도 죄를 벗어날 때는 상관이 없었고 하나님과 가까이 할 때는 그게 상관이 없었다
그런고로 구원의 방편과 피난 방편을 이렇게 하라 그렇게 말씀하시고, 주의 준 것은, 24절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을 주의해야 됩니다.
주님의 재림이나 또 개별로 환난이나, 그 6·25환난이나 왜정 말년 환난이나 로마의 네로 황제 때의 환난이나 그 모든 어떤 그 환난이든지 반드시 환난에는 앞서서 미혹이 있습니다.
미혹이 있는 건 어떤 미혹이 있느냐? 이래야 구원 얻는다 이래야 피난 간다 하는 그런 미혹이 있으니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공간에 네가, 공간을 네가 피난처로 삼지를 말아라. 또 어떤 사람이나 단체나 그런 것을 네가 피난처로 삼지를 말아라.
그날이 가까와 올수록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 난다. 거짓 유혹의 도들이 많이 일어난다. 일어나서 이리 가야 구원 얻는다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말을 하지마는 죄를 피하는 것만이 피난이요 주님을 가까이 맞이해서 주와 연결이 돼서 주님이 구원해 주시는 그것만이 구원이지 딴거는 없는 네가 이 사상을 견고히 잡아야 될 것이고, 환난 전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그런 모든 무리들이 일어나 가지고서 마귀란 놈이 사람들을 통해서 이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낸다. 이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내서 그만 이적과 기사가 나타나니까 여게 구원이 있는갑다 해 가지고 그리 기울어지다가 멸망을 받습니다.
이러니까 요새도 우리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보고 참 자기를 깨끗게 하는 이런 중요한 시기인데 깨끗게 할 수 있는 그런그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한다 말이오. 똑 무당 굿하듯이. 무당 굿을 덜렁거리고 막 이렇게 울렁거리고 이래 가지고 사람들의 울렁거려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자기 이성과 양심으로 힘써서 영감에 도달 하기까지 하는 이 참 세미한 음성에 구원이 있는데, 세미한 음성에 고요히 참 묵상하고 '주야로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는도다' 하는 거게는 모든 일이 형통했다 말은 뭐 죄짓는 일이 형통한 게 아니리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구원을 이루어 가는 의의 길은 다 형통했습니다.
이렇게 묵상해야 될 것인데 그럴 여가가 없어, 어떻게 뚱땅거리는지 마귀 법은, 마귀의 하는 일은 전부 분주하게 하고 떠들고 이래 가지고서 사람들의 마음을 집착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 조심하지 못하게 합니다. 마구 떠들어 이래 가지고서 이러지, 또 거게 휩쓸려 가지고서 자기 구원을 명상으로 묵상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해서 그 말씀과 나와 대조해 가지고서 그 말씀과 나와 대조하는 데는 다른 것도 보지 안하면 눈을 감고 정신을 차려 가지고서 세밀히 대조해야 되는데 언제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말이오. 그런 일들에 네가 미혹받지 마라.
또 거기서 그런 것을 벗어나서 좀 한적하고 정숙하고 고요히 이렇게 침묵으로 참 심각하게 이성으로 살고 이성보다도 양심으로 사는 데는 더 조용해야 된다 말이오. 양심으로 살라 하는 데는 더 조용하게 정신차려야 되는 것인데 이래 떠들어 쌓는 거기에 그 그물 가지고 일단 훑치고, 그런 떠드는 그것 가지고 훑친다 말이오.
고요히 할라 하면 잠 오고 성경 말씀 보면 잠 오고 이러니까 마구 이 세상과 같이 떠들어야 좀 기분이 나니까 이 그물 가지고서 훑칠 자를 훑치고, 거게서 훑치고 남아 있는 자는 뭘로 훑치느냐 하면 기적이라. 여게 기적이라. 기이한 기적이 나타납니다.
마귀도 병 낫우는 일도 있고 마귀도 신기한 역사도 있어. 심지어 마지막 예수님 재림 때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불이 떨어지게 하는 그런 이적이 있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 말하면 불이 내려오고 말하면 비가 안 오고 하는 이런 기이한 역사들이 있을 터이니까 그런 것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해서 또 여게 그리스도가 있는갑다 구원이 있는갑다 해 가지고 그리 빠지도록 하는 그런 미혹이 있을 터이니까 그런 미혹을 너희들이 받지 말아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려고 하는 그런 일이 있으니까 그런 데에 미혹을 받지 말아라.
지금도 이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이 모든, 우리가 표적도 그저, 믿는 사람이 병났으면 위생 부주의로 병이 났거나 자기 잘못으로 병이 났으면 이 무슨 물질적 잘못으로 병났으면 그것은 참 자연 치료를 하든지 의사에 가 가지고서 치료를 하든지 해야 되고 자기가 무슨 종교적이나 도덕적이나 그런 것을 잘못해 가지고서 병이 났으면 그거는 회개를 해야 낫지 회개 안 하고 다른 것 가지고서는 낫지를 많습니다.
이러기에 이적은 안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과연 하나님이 계시구나 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이적이 있는 것이지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적이 없다. 믿는 사람에게는 이적이 필요가 없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필요 있다 했지요? 녜, 예언이 필요하다 했습니다.
예언은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의 도리를. 도리가 자기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이 도리를 자기가 깨닫지 못하면 깨달음에 도움을 받아 가지고서 이렇게 서로 깨달아 나가는 이것이 중요하지 그런 것이 필요 없다 이러는데 지금 세계적으로 불파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불파들이 움직이고 있는데 그분들은 뭐 교리나 신조는 그게 상관 없습니다. 어찌됐든지 많이 떠들어 가지고서 사람의 그 감정을 일으키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의 감정 이것은 '네가 욕과 정을 죽이라' 했어. 감정이나 애정이나 그것 다 정입니다. 정을 죽이라 했어. 죽이고, 그게 우리 구원을 하지 못하고 우리를 바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죽이고 다만 성령으로 너를 인도하도록 영감 받기를 노력해야 되지 그렇게 정으로 움직이는 걸 하지 말라 했는데 이제 세계가, 그거는 내나 세상 운동이니까.
이래 함으로써 불파, 또 그거 그런 모양을 하나 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서 방언파 방언이라는 것도 방언을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성경에 지난 주일도 데살로니가후서에 봤는데 미친 자들이라 또 일만 마디 방언이 한 성경에 대해서 한 댓 마디 깨닫는 것만 못하다. 그러면 깨닫고 그와 자기와 대조해 가지고서 지금 이래서 그저 요는 죄를 벗어나는 것이 멸망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암만 천인 만인이 멸망하는 그 속에 들었을지라도 네가 죄를 벗어났으면 멸망은 너를 해하지 못 한다.
이것이 이런 가운데서도 어떻게 이거 멸망을 벗어나겠느냐? 그때에도 죄를 주님을 믿음으로 죄를 벗어나면 당신이 멸망을 나에게 가하지 못하도록 해하지 못하도록 하신다 하는 그걸 믿는 게 믿음이라 말이오. 그분이 모든 세밀한 개별 세밀한 것까지 주권으로 다 섭리 하시는데 그러기에 '천인 만인이 네 곁에서 엎드러져도 재앙이 네게는 오지 못한다' 말씀했다 그말이오.
그러고 어데서든지 네가 주님을 가까이 연결하면 그분이 너를 구원해 준다.
피난은 죄를 벗어나는 것이요 구원은 당신의 이 구속을 입는 것이 그것이 구원이라. 구속 입으면 하나님하고 하나되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아무래도 제 마음에는 제가 세상을 떠날 때가 돼서 제게 대해서 그런 것인지, 또 지방적으로 남한에 대해서 그런 것인지, 또 예수님의 재림으로 그런지 어쨌든지 가깝기는 가까왔습니다. 가까왔으니까 그저 지금은 무엇보다도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자기를 깨끗게 하고 주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끊어지지 안 하도록 자꾸 이 면에 주력을 해야 될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런데 그 면을 주력한다고 해서 못 먹고 삽니까? 먹고 사는 건 당신이 다 주십니다. 당신의 법을 지키면 이렇게 하라 할 때에 돈이 나오고, 하라 하는 대로 할 때에 돈도 나오고 지위도 나오고 권세도 나오는 것이지 그렇게 하라 하는 대로 해서 나오지 않는 것은 죄를 지어 나오는 것은 마귀가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다 화근이지 그게 들어서 화로 바꾸어져 화근이지 복되지를 많습니다.
그러기에 여기 이런 말씀했습니다. '거룩한 곳이 미운 물건이 서거든 너는 짐작하라' 거룩한 곳은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거룩한 곳입니다. 그러면 예배당 이것이 거룩한 곳이라고 할 수 있지마는 성도들이 있는 곳이 거룩한 곳인데 성도들 거룩한 곳에 미운 물건이 서거든 네가 짐작을 해라. 그 미운 물건은 그때는 무슨 미운 물건이 섰던고 하니 성전에 로마 국기가 섰습니다.
성전에는 그런, 로마 국기가 선 것은 로마 국기가 성전을 점령했다는 표입니다.
국기가 섰는데, 그것을 강제로 세우고 난 다음에 얼마 있다가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지금 신령한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거룩한 곳에 미운 물건이 선 게 뭐인가?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과 진리 영감과 진리가 교회를 주장하지 안하고 영감과 진리 외에 다른 것들이 교회를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거룩한 곳에 미운 물건이 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 13장에는 '말하는 우상들이 생겨진다' 그렇게 말했어. 말하는 우상들.
그것 다 우상이 뭐이냐? 사람이라 그말이오. 사람들이 전부 하나님 노릇을 해서 제가 모두 주장을 하고서 성경과 진리는 그건 다 뒤로 돌아보지 않고 제가 주장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가 천주교로서 일단 다 멸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황은, 신구약 성경만이 정확무오한데 천주교에서는 '교황이 말한 것은 정확무오하다' 교황의 말에 정확무오성. 하나님이 말씀한 신구약 성경만이 이런데 교황의 말하는 게 정확무오라 이것이 이렇게 돼져도 오늘 교회들이 그 아무 구별할 줄을 모르고 천주교와 개혁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서 했지만 그 천주교와 개혁교를 이 렇게 구별해서 서로 다른 것을 말하고 구별해서 '합할 수 없다' 하는 이걸 반대를 합니다.
요새도 보니까 어떤 대학교수인데 그 대학교수가 ○○○목사를 만나 가지고서 대교회주의를 지금 공박하는, '교회가 백오십 명 그게 일백 오십 마리 생선 잡은 게 그게 교회라. 그러니까 교회는 백오십 명 이상 되면 그 성경적이 아니다.' 어떤 자는 삼백 명 그렇게 말합니다.
그게 지금 그래 가지고서 '이렇게 대교회를 일으키는데 이게 옳은 줄 아느냐?' 이러니 나중에 가서 무슨 말이 나오는 게 아니라 그래 나오다가서 '그러면 이 사회는 생각지 안하고 연보 전부 다 해 가지고 이와같이 이렇게 지금 교회 운동만 이렇게 하는 것이 이거 옳으냐 사회와 관련 안 가져 되겠느냐?' 이러니까 나중에 무슨 말까지 나오느냐 하면 '이 모든 그래도 이 단체가 돼야 사회에 대해서도 도울 수 있다. 이 건물에 대한 이 건물은 나중에 사회도 다 이렇게 이용할 수 있도록 그렇게 다 될 수가 있지 않느냐? ' 말하는데, 안 됩니다. 서부 교회 지은 거는 내가 그때 이거 불로 사를 수 없어 그렇지 만일 인민군이나 뭐나 이 사회나 정부가 와 가지고 이걸 이용하려고 하면 불로 사를 게 아니라 탁 깨서 없애서 밖에서 예배보지 절대 허락 안 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으로만 이래 만들어 놓은 건데 어떻게 그래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사회에 얼마든지 돈이 많은데 연보한 것 가지고는 그걸 이 세상에 육덩이 구제는 세상 구제 많이 하기 때문에 그 연보 가지고는 사람들이 다 알지도 못하는 영혼 구원하는, 영혼을 복옴으로 구원하는 거게 복음 운동에 쓸 일이지 뭘 그걸 딴데 가서 줄 게 뭐 있습니까? 그게 성경적이지.
또 대교회주의는 안 된다 하는 그거 순 마귀들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설교하니까 당장에, 그때는, 그때 오천 명이라면 지금 오천만 명이 모인 것보다도 더 많습니다. 그때는 상고 시대라 사람이 그렇게 모이는 그런 게 없습니다. 지금 모이는 연습도 많아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만 예수님이 설교하고 이래 다닐 때에 오천 명이 와 가지고서, 떡 먹은 사람이 사나이 수만 해도 오천 명이라고 하지 안했습니까? 또 오순절 성령 강림하고 난 다음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설교하니까 그때 모여 가지고 그날 세례받은 사람이 삼천명이 되지 안했습니까? 이렇게 오늘도 하나님의 역사로서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모여들 거라 말이오.
이 서부교회도 내가 하나님과 가까와지는 영능이 없어서 이렇지 만일 예수님이 설교한 것과 같은, 예수님이 만족하시는 그렇게 권능 있는 설교하면 막 모여 들어서 지금 이 대신동에 사람들이 걸려서 살지 못할 거라. 그거 만일 여기서 밀어내고 쫓아내서 그러면 저 덕유산 꼭대기가 있으면 덕유산 꼭대기가 전부 사람 산 무더기가 사람 산이 될 거라 그거요.
그러면 아버지께서 보낸 자 바로 가르치고 은혜 있으면 자꾸 들이 모여들 것인데 모여드는 걸 반대하지, 그러면 또 그러면 그 사람들은 삼백 명이라 한정해 버리고 삼백 명 넘은 사람들은 구원할 필요가 없으니까 오는 사람을 못 오구로 보낼 것이오. 그러면 전도할 필요가 없는 것이오. 그게 성경입니까? 순 마귀 말을 하지마는 이 마귀 말을 도무지 그 반박을 못 한다 그말이오. 너무 다 속화가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요새는 보면 그저 이렇게 입체적으로 이리도 화살을 놓고 저리도 화살을 놔 가지고 어쨌든지 예수교를 절단내려고 하는 그것이 오늘입니다. 이러니까 거짓 선지자들을 아주 조심해야 됩니다.
교회 안에, 교회 안에 인간이 있어. 그것 다 인간들이 주장하는 것이오. 신구약 성경 말씀이 주장하는 게 아니고 어떤 교파든지 어떤 교회든지 개인이든지 '성경이 뭐라 하느냐? 성경이 뭐라 하느냐?' 성경이 말하는 그것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성경에 틀렸으면 아무리 다 정통 뭐라 한다 해도 성경에 틀렸으면 '틀렸다!' 해 버려야 되고 천하 사람이 다 이단이라 해도 성경적이면 거게 따라야 되고 지지를 하고 영접을 해야 되는 것이라.
이러니까 영감과 진리를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외형인데 이 걸로 하지 안하고 그만 유력한 사람들이 이 모든 정계에, 정계에 정권도 이용하고, 요한계시 13장에는 보면 '용의 권세를 쓰더라' 용의 권세를 쓰다니? 용은 그다음에 보면 세상을 용이라고 했다 말이오. 세상 권세를 쓰더라.
이 세상 권세 가지고서 무슨 과학의 권세, 또 문화의 권세, 또 정권의 권세, 이 모든 세상 그 인간 지식의 권세 이것 가지고서 이와 같이 뭐 둘둘 모니까 그게 인제 왕입니다. 그게 왕이 돼 가지고서 하나님이라 제 자칭 자기를 가리켜서 하나님이라 하는 자들이 다 그거라 그거요.
제가 엑스포 74에 그때 가 봤는데 순전히 사람 말이라 말이오.
빌리그레함이라고 유명하다 하는데 그 사람이 그때 오니까 그때 가 보니까 박 대통령이 거기 나왔습디다. 왜? 미국에 정권을 의지해 가지고서 '내가 지금 한국에 가겠으니까' 그 사람이 하도 이래 정권적으로 움직이고 하니까 그 사람을 환영을 해야 투표를 받지 그리 안 하면 안 되니까 미국에 대통령도 '지금 한국에 빌리그레함 목사가 가니까 좀 많이 협조를 해 주십시오' 하니까 어데라고 박 대통령이 거기 안 갈 수 있습니까? 거기 나와서 앉아서 거기 참여했다 말이오.
그게 디 세상 운동이지 아닙니다.
그래서 가 보고서, '이거 뭣인가?' 아무래도 가기 전에 이 벌써 운동하는 것이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거는 아니다.' 알았지마는 그래도 한번 가서 보고 해야 되지 알아야 되겠다 해서 가 봤습니다. 가니까 그때는 한 오십만 가량 거기 모였다고 이랍디다. 그 뒤에 홍보 보니까 신문에 보니까. 이랬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주일 학생들도 그런 설교는 안 합니다. 저거 딸 자랑 하더니마는 또 뭐 자랑하더니만, 책이라 하는 것이 다 전부 기독교 사회주의요 기독교 정치주의요, 기독교 도덕주의도 별로 없어요.
그래서 한 시간 참여하고 나서 그래 제가 오면서, 뭐 다른 사람은 말해야 소용도 없을 것이고 우리 진영에 '거기 가 참여하지 마라. 필요가 없다. 그것이 다 인간 운동이다.' 말을 했었습니다.
그때에 그분 한 분 온다고 해서 한국에서 이 오든 광고비가 얼마가 들었느냐 하면 그때 뭐 몇억이 들었다 하더나? 이래 들었다고 말 들었습니다.
여게도 그래 가지고서, 여게는 온다 하기에 가까와서 내가 그 목사 빌리그레함 목사가 온다 하기 때문에 가 보니까 ○○○목사가 대신 하고 또 ○○○목사, ○? ○무슨 ○? ○○○목사님이 와서 대신하고 그렇게 대신 하고 그분은 온다 하고 오지 않았었습니다. 그때.
그러기에 이제 여러분들이 말세에 잘난 사람들이 전부 교주가 되고 잘난 사람들이 다 하나님 대신 돼 가지고서 그 사람의 주장을 따르는 요새는 지금 뭐 기독교가 이 사회와 서로 하나가 안 되면 이 기독교 안 된 이거는 변질이라고, 좀 있으면 인제 죽여버립니다. 좀 있으면 그런 말 들을라 해도 못 듣소. 그는 다 죽여버리요.
기독교 교회와 정치는 분리가 되는 그것이 성경이요 분리돼야 교회도 홍하고 정치도 흥하지 교회가 벌써 정치를 삼키고 정치가 교회를 삼 키면 망합니다.
천주교가 어데서 나왔느냐 하면 로마에서 교회가 정치를 삼키고 정치가 교회를 삼키고 이래 가지고 한덩어리 돼 가지고서 교황 권세가 그때에 로마의 황제 권세보다도 더 앞서 가는 그게 좋은 줄 알았지마는 그것으로써 기독교는 완전히 세상화되어 버리고 부패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니까 '거룩한 곳에 미운 물건이 서는 것을 봐라. 그러고 그때 거석하거든' 거기 말했습니다. '유대에 있는 사람은 산으로 도망 가라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물건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아라. 또 밭에 있는 자들은 겉옷을 가지러 오지 말아라. 아이 밴 여인과 젖먹이는 여인에게 화가 있다.' 다급하니까 자기 단신 몸보다 화가 있다 말이오.
그때는 로마로서 주후 칠십 년 때에는 있는 사람들은 다 죽었고 '아 이거 환난이 왔다. 왔으니까 지금 다문 물건이라도 좀 가져가자.' 물건 가지러 들어갔다가 다 포위돼 가지고 다 죽었습니다. '다른 물건은 다 못 가져가도 내가 일하다가 이래 가지고 있을 수가 있나? 일하다가 일복 입고 갈 수가 있느냐? 이러니까 겉옷이라도 가져와야 되겠다.' 그거 다 들어가서 다 포위돼 가지고 다 죽었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역사에 우리에게 형식계시입니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들도, 유대는, 멸망 그때 예루살셈이 멸망 구덩이 인데,멸망의 중심인데 멸망에서 유대는 좀 멉니다. 유대에 있는 사람은 멸망에서 좀 멀리 떨어져서 그래도 멸망에서 많이 떨어져 가지고 있는 자들아. 주님과 가까워져 있는 자들아 너희들은 산으로 도망해라. 산으로 도망해라. 너희들은 어서 성결로 도망쳐라. 성결산으로 도망쳐라.또 '지붕 위에 있는 자들아 세간 가지러 내려가지 마라' 거게서 예루살셈이지마는 조금 공간적으로 떠서, 기도하러 올라갔지요 조금 공간적으로 떠 가지고 있는, 멸망에서 조금 떨어진 자들아. 너거는 이 지금 급한 다급한 때를 만나 가지고서 네게 필요한 것, '그래도 아무래도 다 냅두지마는 필요한 뭣뭣은 가져가야 되겠다' 그런 것 너희들이 생각지 말아라.
또 밭에 있는 사람은 좀 또 멉니다.좀 먼 자들은 다른 거는 '가져갈 필요 없지마는 겉옷이나 가져가야 되겠다.' 너거 신앙 여하에 따라서 세상 것이 필요한 것이 많은 사람 적은 사람 최소한의 사람 있을 터인데 그것도 저것도 필요 없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맡아서 하는 것인데 당신이 시켜서 일하라면 일하고 가라면 가고 그저 당신 시키는 대로 하는 그 일하면 거게서 다 의식주는 다 되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네 관심에 전혀 가지지 말고 어짜든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주님이 이 현실에서 어떻게 인도하시냐 하는 주님의, 현실에서 주님이 인도하는, 현실은 믿음으로, 현실은 믿음으로, 현실에서 믿음 지키기를 네가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서 믿음만 지키라. 현실을 믿음 지키면 그것이 완전이다.
그것이 구원이요 피난처다.
이러니까 신앙 여하에 따라서 세상에 필요한 것들이 많고 적은 그 양이 결정된다. 하늘나라만 구하면 세상에 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만 구하면 모든 것이 너희들에게 있어야 될 것인 줄 안다. 먹을 것 입을 것 있어야 될 것인 줄 안다.
이러니까 의식주 그거는 주장하지 말고 어짜든지 그저 거룩한 산으로 도망칠 것. 이 현실에서 믿음만 지킬 것 이것으로만 해야 되는데 믿음이 약하면 믿음이 없으면 온 세상을 다 차지해야 되겠고 믿음이 조금 않으면 뭐 다 차지할 필요 없고 근근 생활할 것이 필요하다 할 것이고 믿음이 돼 있으면 근근 생활할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 많은 것이 필요 없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 세상 것은 내가 당신의 뜻대로 현실에서 믿음을 지킬 때에 나에게 당신이 다 책임지고 해 주실 터이니까 내 전심 전력은 내 현실에서 당신이 인도하는 그 인도를 지키는 그 믿음 지키는 요것만이 나의 전공이요 전심이요 전력이다. 요것만이 되지마는 믿음이 흐려지면 세상에서 자꾸 무엇이 생각이 나집니다. 이런 것 저런 것.
이러니까 지금은 자꾸 정리할 때입니다. 자꾸 정리할 때요. 무엇이든지 하나 둘이라도 자꾸 정리할 때입니다. 그때 가 가지고는 안 돼.
이러니까 아이 밴 여인에게 화가 있다 젖먹이는 여인에게 화가 있다. 그때는 그렇지마는 지금은 오늘 신령한 세계기 때문에 자기 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 있으면 멸망이오. 다른 사람이 들어 있으면 들어 있는 것만치 멸망입니다.
그때는 아이 뱄지마는 지금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 자기 외에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든지 뭐 권세를 사랑 하는 사람 지위를 사랑하는 사람 무엇이든지 옛사람, 옛사람이 그에게 있는 것만치 그는 그게 자기에게 고통이요 화가 됩니다.
그런고로 지금은 우리가 아주 때가 급한 때니까 오늘 아침에 말씀 요것도 집에 가서 읽어보면 뭐 대략, 내가 지금 말을 자꾸 빨리 하는 건 시간은 없지, 모두 갈라 하는데 시간은 급하지 말은 잘 안 나오지 말은 많이 해야 되지 그러니까 말도 말 같잖이 자꾸 빠르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요 성경 듣고 가 가지고서 어짜든지 지금은 땅에 있는 그런 걸 탐할 때가 아니고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기름 준비할 때입니다. 기름을 준비할 때요.
기름.
준비로만 됩니다. 준비로 된다 그말은 연습으로 된다 그말이오. 영감의 인도하는 믿음은 연습으로 자라지 딴걸로 안 됩니다. 사소한 데서 또 영감대로 살아보고 또 그보다 좀 나은 데서 살아보고 자꾸 현실에 사는 이 현실 현실 주는 데서 영감으로 사는 믿음 생활을 연습을 해야 그 절정인 천하가 깜깜해서 아무도 등불 들지 못할 때 빛을 들지 못할 때 그때도 영감 생활을 할 수 있다 그거요.
그것이 주님을 맞이하는 비결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 분 기도 후에 사층에서 결혼상담이 있는데 이 자꾸 결혼상담을 자꾸 이래 하니까 그만 기도도 못 하고 이런데 오늘 아침에는 결혼 상담을 그만 두고 모두 다 생각해 가지고서 요다음 화요일날 결혼상담 할 것이고, 또 일하다가, 밭에서 일하다가 매 갈다가 주님 맞이했습니다. 일을 하다가 주님 맞이냈소. 그러니까 자기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그 위치에서 직장에서 직분에서 거기서 믿음을 지키다가 주님 만나야 됩니다. 이러니까, 그렇다고 해 가지고 그만 뭐 과거에 시온파 모양으로 다 던져버리고 어데 산에 가서 기도하던 것 그런 거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구역장들은 이 결혼 하는 이런 것도 자기 할 일 중에 하나이니까 그것도 하고 자기에게 닥친 모든 일을 주님 인도하시는 대로 해요. 하면서 일편단심이 구원에 주력해야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결혼상담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