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

 

1980. 4. 13. 주전 

 

분문 : 누가복음 10장 25절 -28절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 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내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내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영생에 대한 질문을 율법사가 했고, 또 그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이 되게 하시려고 내가 모든 율법에 가르치신 율법에서 네가 어떻게  가르쳤으며 어떻게 읽었느냐 반문 할 때에 율법사가 자기가 성경보고 깨달은  대로 말을 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이렇게 기록된 것을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할 때에 예수님께서 그 깨달음에 대해서 평하시기를 "네  대답이 옳다 바른 대답을 했다. 네가 이렇게 하면 영생을 얻게 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생명과 영생은 다릅니다. 생명은 하나님과 결합된 그것이 생명입니다. 사망은  하나님과 절단된 그것이 사망이요.

 비유가 될지 모르나 얼음은 차가운 것과 떨어지면 녹습니다. 물이 끓는 것은 그  더운 열과 나눠지면 물이 끓는 것은 없어집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유를 받은 것들이요 또 하나님으로 인하여만 보존도 되고, 살기도  하고, 성장도 되도록 그렇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식물이 햇빛이나 온도를 떠나면  그것이 얼어죽지 살 수 없는 것같이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면  그것이 바로 사망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범위 좁게 생각해서 '하나님은 없다고  하는 무신론의 사람들도 살고 있는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천년 만년만 있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있는 것이  사람인데 영원한 그 시간에 비출 때에 이 세상살이라는 것은 억억만 분지  일이라고도 할 수 없을 만치 짧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다는 그것이  어디까지 없다고 하던지 그 양이 차고 나면 이제는 영원히 하나님 없는 곳으로  저는 가야하고, 하나님 지으신 것도 하나도 없는 곳으로 가야 됩니다. 그러면,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는 곳이면서, 하나님의 것은 하나도 없는 순전히  사망되는 것만 가득한 곳으로 가서 영원히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생명은 하나님과 관계가 잘 맺어지는 것이 생명이요. 사망은 하나님과  잘 맺어진 관계는 다 끊어져 버리고 하나님과 아주 대립되는 끊겨진 자체가  되어지는 그것이 사망인 것이다.

 영생은 어떤 것이 영생인고 하니, 생명이 세상에서 생명 생활을 할 때에 생명이  생명 생활을 했을 때에 세상에서 한 생명 생활이 영원 무궁토록 그대로  움직이는, 그대로 생활하는, 활동하는, 그대로 역사 하는, 그것을 가르쳐서  영생이라 말합니다.

 생명이 사망에게 해를 받지 아니하고 생명이 승리해서 생명이 생명 생활을  계속했으면 계속한 그것이 영생이요 계속한 그 행동은 영원히 역사 합니다.

영원히 움직입니다.

 그러기에, 영생은 움직임을 가르쳐서 말하고, 생명은 생명 자체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영생은 생명이 움직이는 것을 가르쳐서 영생이라. 생명이 생명  생활하는 것을 가르쳐서 영생이라. 생명은 영생을 할 수 있는 그 생명, 그 힘을  가르쳐서 생명이라 말합니다.

 우리 기독자들이 생명을 얻은 것은 예수님의 대형 대행 대 화평으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절단된 그것을 예수님이 대신 형벌 받아서  절단 된 것을 없앴고,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할 의무 책임을 순종을 하지 못한  것을 예수님이 대신 행하셔서 하나님과 결합을 시켰고, 예수님이 형벌 받으신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끊겨진 것을 해결한 대속이요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만들어 놓은 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결합이 될 수  있는 그런 행위를 마련한 것입니다.

 대신 형벌 받으므로 하나님과 절단되게 된 그 원인을 다 제거하셨고 대행으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결합 될 수 있는 그 의를 그 행위를 마련한 것이 대행이요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제 화목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끊겨진 것을 결합시킨  것이 단합을 시킨 것이 화합을 시킨 것이 친합을 시킨 그것이 예수님이 화목  제물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사생활 30년과 공생활 3년  4개월과 십자가 못박여 죽으시고 살아나신 이 대속으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끊쳐질 수밖에 없는 죄의 문제를, 하나님과 결합이 되려면 의가 마련되어야 할  이 의의 문제를, 이 둘이 마련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화병을 이루지는  못했는데 예수님이 이 두 가지를 하시고 마지막에 화목 제물로 당신이 다 드려서  하나님과의 이 화평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택한 자들은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이 세 가지를 다 받아서 사죄로서  하나님의 심판에 정죄 받지 않게 됐고, 칭의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게  됐고, 하나님과 결합으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 것이 우리 기독자들인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이 세 가지가 된 것이지  사람의 어떤 행동으로 된 것 아닙니다.

 인간의 행동은 아무리 잘된다 할지라도 완전 무결의 완전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공 심판을 면하고 지성자이신 하나님과의 결합할 만한 그런 근거는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결합이  됐습니다.

 영생은, 이렇게 결합된 이 결합은 가졌지마는 그 마음과 고깃덩이가 이 결합된  이 결합으로 세상에 있는 동안에 움직이느냐. 이미 결합은 되어 있지마는 이  결합을 버리고 마음과 몸은 제대로 또 악령으로 인하여 혹은 어떤 피조물로  인하여 움직이고 결합된 하나님으로 더불어 움직이지 않느냐 이것으로서 영생이  이루어지고, 영원한 사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택한 사람들도 꼭 같은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은 가졌지마는  영생은 죽는 날까지 하나도 마련 못하고 가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부활해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서 살지마는 살아 있기는 있지마는  활동성은 활동은 없습니다. 그저 안 죽고 하늘나라에 가서 살아 있기는 있지마는  그 사람의 작용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활동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은 꼭 같이 가졌는데 그 사람은  세상에서 이 사죄 칭의 새 생명 받은 하나님과의 결합된 이 자로 마음도 쓰고  몸도 써서 그 생활 전체가 심신의 움직임 전체가 자기대로 움직인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으로 인하여 움직인 것도 아니고 어떤 물질이나 일로 인해서 움직인  것도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과 결합된 이 결합으로 움직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 받은 하나님과 결합이 된 (결합 그것을 새 생명이라 함) 그 결합으로  움직여서 하나님에게만 순전히 피동으로 움직인 그것은 영생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인 그 생애는 그 기능은 그 생애를 한 모든 사물은  전체가 영생입니다. 무궁 세계의 하늘나라에 가서 그렇게 움직인 그 기능도  영생이요. 마음의 움직임도 영원히 움직입니다. 몸의 기능도 영원히 움직입니다.

 거기 따라 움직인 모든 사건들도 그런 사건들은 다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역사 하는 사건들입니다. 물건들도 거기 같이 움직이는 물건들도 무궁 세계에  가서도 그 사람의 움직임이 영원히 움직입니다. 같이 움직여서 영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탄식하면서 고대하는 것이 구속받은 성도가 그 심신은  하나님과 결합된 그 결합으로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로 하나님에게 피동 된  하나님의 요소의 역사가 자기에게 건너와서 거기 피동으로 자기가 움직였을 때에  마음의 기능도 영생하고 몸의 기능도 영생하고 사건도 그 사건은 영원히 역사 할  사건이고 그때에 이용된 만물도 영원히 살아서 무궁 세계에서 이렇게 역사 하는  데에 있는 만물이기 때문에 만물도 영생, 사건도 영생, 몸의 힘도 영생, 마음의  힘도 영생, 그 모든 움직임이 무궁 세계에 가 가지고 영원히 역사 하는 그것을  가르쳐서 영생이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은 같은 생명이지만 영생은 사람마다 각각 다릅니다. 생명은 꼭  같은 생명을 가졌지마는 영생은 하나도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영생으로  무한히 충만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영생은 생명 얻은 자가 생명 얻게 된 그 결합을 이해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인 것. "내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영생한다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어떤 사람은 부활도 생명도 다 가지고 하늘나라에서 생명을 가지고  죽지 아니하고 살아 있지마는 영생이라는 그 생명이 활동하는 그 활동이라는  그것을 보면 없는 사람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생명을 받아 가지고 활동을  했느냐 안 했느냐, 활동을 많이 했느냐 적게 했느냐 생명으로 움직인 그  움직임은 그 움직임이 영원한 움직임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영생이라  그렇게 말했고 생명은 하나님과 결합되어 있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세 가지 대속도 같고 영이 하나님과 결합된 것도 같고 심신이  하나님과 결합된 것 같지마는, 다른 거 하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심신이  하나님과 결합된 결합으로 움직임이 있느냐 없느냐 그의 중생 된 영이 자기의  심신을 세상에 있는 동안 하나님과의 결합의 움직임으로 심신의 주격이 된 영이  그 심신을 다스렸느냐, 못 다스렸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이 심신을 전혀 다스리지 못한 사람도 있고 많이 다스린 사람도 있어  예수님의 대속으로 생명은 얻었기 때문에 영도 생명을 얻었고 마음도 고기  덩어리도 다 생명을 얻었는 고로, 심판이 정죄 하지 못합니다. 사죄 받았기  때문에, 하늘나라 갈려고 할 때에 금지 할 법이 없습니다. 칭의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결합이 되었기 때문에 죽일 자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몸도 죽지 아니할 몸으로 마음도 죽지 아니할 마음으로 영도 죽지  아니할 영으로 하늘나라에 가서 다 영원히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동안에 이 생명을 가지고 세상에서 역사를 했느냐 안 했느냐 하는  여기에 따라서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이 생명이 역사 할 수 있는 자도 되고 할  수 없는 자도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 생명을 가졌지마는 세상에서 살 동안에 이 생명이 생명 생활을  하는 것을 하나도 안 하는 사람 있고, 하나님과 결합을 가졌지마는 돈에 피동,  인간에게 피동, 자기 욕심에 피동, 감정에 피동, 사건에 피동, 물건에 피동,  어떤 권세에 피동, 전부 피조물에게 피동이지 하나님과 결합은 됐지마는  하나님에게 피동 되어서 움직인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그는 영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 가지 대속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을 주신 것이지 영생은 성령님이 오셔 가지고서 세 가지 대속을 받은 자로  하여금 이 세 가지 대속의 은혜를 힘입는 활동을 세상에서 하게 하셔서  활동했으면 그 활동이 무궁 세계에 가서 활동하게 되고 세상에서 전혀 활동하지  안 했으면 무궁 세계에 가서도 활동이라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 영생은 없는 사람 있고, 있는 사람 있고, 생명은 중생 된  사람이면 다 가졌습니다. 사죄도 꼭 같이 가졌고, 칭의도 꼭 같이 가졌고,  하나님과 결합인 결합도 꼭 같이 가졌는데,  이 세 가지 구속을 받은 자가 이 세 가지를 써먹는 이 세 가지 은혜를 힘입어서  행동한 그 변화의 행동이 어떠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세 가지가 꼭 같이  있지마는 이 세 가지에 피동 된 이 세 가지의 생활은 이 세 가지를 가졌지만 이  세 가지에 생활은 하나도 안 하는 사람 있습니다. 이거는 가졌지마는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이 사죄와 상관없이 의와 상관없이 하나님과 결합과 상관없이 안  믿을 때와 꼭 같이 사는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영생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요한1서 3장 15절에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이니 살인하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없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지마는 서도 미워하는 일을  어떤 사람은 종종 하고 어떤 사람은 실수해서 하고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계속  이것이 있습니다. 미워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을 해하고자 다른 사람이 잘되기를  원치 않는 그것이 미움이요 해하지 못 할지라도 안되기를 원하는 그것이 다  미움인데 그것이 우리 속에 있는 동안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늘은 영생을 했는데 무슨 충격으로 인해서 그만 자기 속에 영생이  없습니다. 그러면 영생한 것은 영원히 영원히 영생이 되어 있지마는, 무슨  충격이든지 이유를 인해서 자기 속에 미워하는 것이 있는 그 때부터는 그것이  완전히 물러가기 전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영생을 시작했다가 그 다음에 불행스러운 어떤 사건이나  어떤 사람을 하나 만나 가지고 죽는 날까지 그 마음 속에 미움이라는 것을  버리지 못하고 참으로 일생 동안 마련한 영생을 시작 만하고 마련 못했습니다.

그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면 시작한 그것은 영생이 있기 때문에 그만한 양으로 그  종류로 그 성질로 그 부분은 영생하지마는 그 다음에는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시간에 영생하다가 그 다음 시간에 영생이 떠나고 사망이 그 속에  있어! 영생을 시작해서 영생을 한 토막하고 그 다음에 사망하고 영생 한  토막하고 사망하고 영생이 계속하고 그만 사망이 일생 동안 계속하고, 이렇게  우리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인인 관계도 사물 관계도 이 복음 운동 관계도  있는데 무엇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자기 목숨을 앗아간 원수라도 우리는 그  원수로 인해서 자기 속에 미워하는 미움이 자기 속에 있으면 그까짓 것 지나가고  말 것 사소한 원수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 속에 영원한 세계의 권위와 영광과  존귀가 후회가 될 수 있는 이 영생을 손해 보기 때문에 미움이라는 것은, 어떤  원인으로 된 미움이든지 어리석게 그것을 일시라도 용납하면 안됩니다. 그것을  물리쳐야 됩니다.

 그놈 거머쥐고 자기 속에 품고 있다가는 영생 수입이 다 절단 나기 때문에 자기  생애와 관계된 자기 생애에 기다리고 있는 모든 만물과 사건들이 전체가 다  사망합니다. 모든 자기 사회의 움직임도 다 사망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제 영생이 무엇이며, 생명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생명  가진 자가 영생은 하나도 가지지 못한 자가 있습니다. 영생은 지금 하나님과  결합되어서 움직인 그 생애, 이 영생이라 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거리끼면 영생 못합니다. 잘못 생각해서 거리끼다 하는  그까짓 거는 상관없습니다. 어쨌든지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펴 볼 때에 조그만  치라도 흠점이 있든지 누가 원망 불평할 사실이 있든지 또 무엇인가 다른 이에게  피해를 끼친 일이 있든지 이 평가적으로 완전치 못한 것은 만물 심판에서 정죄를  받아서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인간의 노력인데 이거는 어려운  노력입니다. 그 문제가 오늘 여기 들고 나왔습니다. 율법사가 예수님이 뭐  아는가 싶어서 와서 물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사가 묻고 싶어 묻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라고 영원 전 예정 속에서 그런 사건이 있게 예정했고  율법사는 그것 때문에 나왔고 또 말을 했고 예수님이 그것에 대해서 답변한 이  전부가 우리에게 구원 얻는 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것을 계시 기관으로  쓰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영생을 얻겠습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 율법사가 제  단독이 물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묻는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그 사람은 그 때가 되니까 물은 것입니다.

우연히 물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가 성경을 어떻게 읽었느냐? 성경이 뭐라고  가르치더냐?" 이러니까 이 사람이 성경을 보고 깨달은 대로, 율법이라는 것은  성경을 말합니다. 말하기를 여기 말해 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하나, 목숨을  다하며 둘, 힘을 다하며 셋, 뜻을 다하여 넷,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와  같이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이렇게 대답 할 때에 "네 대답이 옳다  그래야 영생 얻는다 네가 이렇게 하면 네가 살리라 네가 영생하리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 「네 마음을 다하라」말은 마음의 작용이 전부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 두 가지 사랑의 작용 외에는 그 마음에 다른 작용이 없어야 된다 하는  이것입니다. 이것 아주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되지 인간으로서는 이걸  가질 수 없습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과 이웃 사랑하는 마음 이  두 사랑 두 사랑의 마음뿐이지 그 마음에는 딴 것이 하나도 없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마음이 경영도 하겠고 계획도 하겠고 희로 애락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전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움직임을 하느라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지 그 마음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그 마음의 동기로 그 마음의 힘으로  그 마음으로 이것저것 하지 그 마음 제외하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무엇 때문에  이것하고 저것 하는 것이 없어야 되는 것을 여기 말씀했습니다.

 「목숨을 다하며」목숨을 다한다는 말은 이것을 언제까지, 자기 생명이 끝날  때까지 자기 생명도 이 일을 위해서 가진 생명이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자기 생명도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느냐? 자기 생명이 이것 때문에,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이것 때문에 있는 생명 이것만을 위하는 생명 이것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그 생명이어야 하고.

 「힘을 다하며」힘은 자기가 역사 하는 마음의 힘, 의지의 힘이든지, 감각의  힘이든지, 몸의 힘이든지, 그 심신의 힘, 그 힘 전부는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그 힘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그 힘, 힘은  전부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그 사랑의 힘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입니다.

 「뜻을 다하며」뜻을 다한다는 말은, 경영을 말합니다. 네가 무슨 경영을  하느냐. 이런 것도 경영하고 저런 것도 경영하는데 그 모든 계획하고 경영하고  예산하는 자기가 땅위에서 움직이려는 그 모든 계획 전부가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그 계획이어야 한다 하는 것을 여기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야 영생한다. 영생이 토막토막 됩니다. 영생이 한 시간 계속할 때도 있고  두 시간 계속 할 때도 있고 일년 계속 할 때가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잠깐  비추이고 마는 것도 있습니다. 어쨌든지 한 시간 영생이 계속 된다면, 한 시간  그 생애가 영생하는 생애가 된다고 하면 마음, 목숨, 힘, 뜻 다 이 전부가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것으로만 되어지는 그 때만 그게 영생이  이루어지지 그렇게 그것이 되어졌다가 즉시 변해져서 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반은 이웃을 사랑하고, 반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반은 돈  사랑했으면 그 때 영생은 끝났습니다. 중단됐습니다. 중단됐지마는 그 다음  시간에 후회하고 자기 마음 목숨 힘 뜻 자기의 인격과 심신의 이 전부가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것으로 다시 이 사랑의 것이 되어졌으면 그때는 또  영생합니다. 그때 한 그 생애는 영생이 됩니다.

 그러기에 생명은 가졌으나 영생은 가지지 못한 사람도 있어, 영생은 구원 얻은  자의 차이가 많기를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땅에 있는 형체와 하늘에 있는  형체와 다 형체는 형체이지만 영광이 다르다. 모래알 하나 그곳도 형체인데 그  똥덩이 그것도 형체인데 이 지구 덩어리 이것도 형체인데 태양도 형체인데 다  형체는 가졌지마는 그 영광이 각각 다른 것처럼 부활하여 하늘나라에 가서  살기는 살지마는 그의 영광은 부활의 영광은 차이가 크다 이것을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성령의 사람 바울이 이것 외에는 자기가 소망도 가지지 않았고, 이것  외에는 노력도 안 했고, 자기 현실에서 이 수입 외에는 하지도 않았고, 이  수입을 하기 위해서 자기 있는 것 다 기울여 투자하고, 그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다 기울여 투자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인성을 다 투자하고 마음에  원했기 때문에 영원 무궁토록 투자할 수 있는 것으로 부활시켜 주심을 받은 거와  같이 자기도 이렇게 되기를 원하여 이것만을 위하여 달음질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은 제사장, 선지, 왕인데, 제사장은 어떤 것이  제사장이냐? 제사장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존재 자기 아닌 모든  자기 이웃 그런 것이 허물로 하나님과 가리어져 있고, 죄로 하나님과 절단되어  있고, 불목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어서 가리어져 있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이것을 자기가 자기 자체의 기능 자기 전부로 무엇을 가지든지 가져 가지고  하나님과 잘못되어 있는 이것을 고쳐서 하나님과 바로 되고 이제는 그것이  하나님과 바로 됨으로 하나님의 충만이 제것이 되어져서 그것이 하나님과 완전  관계가 맺어지는 하나님의 그 충만으로 이제는 그의 배경 되고 하나님이  책임자가 되어져서 하나님과 결합되어 하나님의 충만이 그에 것이 되어 하나님의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 같이 온전자가 되어지게 하기 위해서 이것이 소원이  되어서 자기라는 그 자체를 그것을 위해서 그 소원으로 인해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라는 것을 돌보지 못하고 자기라는 것이 그것을 위해서 완전히  희생이 되어지고 투자가 되어 그것만을 위해서 쓰여지고 활동하고 이러다가  녹아지고 없어지는 이것이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이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대 제사장으로 이일을 이루기 위해서 당신의  전부는 다 희생되어서 녹아진 것입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과의 그 사이에 허물이 끼어 있고 죄가 끼어 있고 불목이 끼어  있고 하나님과 완전히 독립되어서 떨어져 가지고서 개별체로 개체로 독립체로  되어있는 이 문제를 해결 짓기 위해서 이 문제를 해결 지으려고 하니까, 영광을  내 놔야 될 때는 영광을 아낌없이 영광을 내놨고 존귀를 내 놔라 할 때는 존귀를  아낌없이 내 놨고 고생하라 할 때 고생했고 죽으라 할 때 죽어 오만 것을 이  일을 해결 짓기 위해서 당신의 전체가 다 없어진 이것이 십자가의 죽으심인  것입니다.

 선지자는, 이 그리스도는 그의 지혜와 지식이 하나님과 절단되어 가지고 있으니  지혜 지식이 전부 삐뚤어져서 망하고 있는데 그 삐뚤어져 있는 지혜 지식을  하나님의 지혜 지식과 결합을 시켜서 하나님의 지혜 지식으로 그의 지혜 지식을  만들지 않고는 이 연결을 이어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이 연결을 이으려고  이거 잇기 위해서 자기의 자체가 다 쓰여진 그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입니다.

 왕은, 이제 다른 면은 됐지마는 그가 지금 가진 그 활동이라는 활동이 이것이  하나님과 이질적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활동하는 그 활동이 하나님으로  인한 활동이 되어야 되겠고 또 하나님으로 인한 활동이 돼야 하나님의 힘이 제  힘이 되지 아무리 제가 힘을 많이 받았다 할지라도 이 힘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안 하면 전선 끊어지면 불이 가는 것 마찬가지로 그 힘이라는 것이 한정이  있어 끝나고 마는 것이니 활동과 힘에 대해서 완전자와 결합이 되어지지  아니하면 안되기 때문에 이것을 원하는 자체가 녹아져 없어지는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죽으심은 우리를 하나님과 같은 우리로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입어 하나님과 꼭 같은 하나님 모양으로 하나님 닮은 자로 우리가 하나님은  아닌데 하나님과 같이 되어지도록 하기 전에는 욕심에 만족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꼭 같은 자가 되어져야 이제 이 욕심의 만족이지 하나님과 같은 자가  되어지게 하려는 이 사랑의 욕심, 하나님의 지혜 지식과 같은 자가 되도록  이것을 길으려는 이 사랑의 욕심, 하나님의 능력과 같은 능력의 실력가가  하나님의 신성과 같은 그 인격성 하나님의 지능과 같은 지능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원하여서 이렇게 하나님과 같은 자를 만들지 않고는 하나님의 지능과  같은 자를 만들지 않고는 마음에 만족이 없어 이 사랑의 욕심으로 이 욕심이  강함을 인해서 이 소원을 가지니까 이 소원 이 사랑의 욕심이 자기 목숨 뺏기는  것보다 강하고 세상 무슨 좋아하는 것보다 강하고 고생 당하는 그 고통보다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성과 같은 자를 하나님의 지능과 같은 자를 만들지  않고는 마음의 견딜 수 없는 뜨거운 사랑이 들어서 이것저것 이루는 대에 자기를  잊어버리고 여기에 다 드려서 끝난 그것이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이것이 이렇게 죽어서 투자해서 만들었다 해 가고 이것이 돼졌느냐? 시작만  했지 안됐기 때문에 이제는 더할라 해도 몸도 마음도 생명도 아무것도 없어  없으니까 이 사랑의 욕심에서 이것을 하나님처럼 완전케 해야 되겠는데,  완전케 되지 않고는 마음에 만족이 없는 이 사랑의 뜨거움에서 완전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신의 성품에 참가하는 신성과 같은 인격성 하나님의 지능과  같은 이 지능 이것을 가진 이 자를 만들라고 이 자 되기를 원해서 이 자를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애를 쓰다 보니까 그는 죽어서 끝나 버렸는데  이러니까 자기 소원의 사랑의 욕심의 소원의 밑천은 다 들었고 소원 성취는  이루어지지는 못했고 이러기 때문에 이 소원을 가지고, 있는 대로는 다했지마는  서도 이 사랑의 욕심의 소원을 가지고 이룰 만한 자원이 없는 안타까움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셔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해서 이제는 내가 부활한 그  심신은 내가 사랑의 욕심으로 그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지능대로의 것이  되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내게 있는 것을 다 투자하고 이제 마음에 투자할 것이  없어 안타깝게 여긴 자야 영원히 영원히 투자할 자로 내가 변화를 시켜 줄  터이니까 내가 이 생애를 영원히 하라 하신 대로 변화시켜 주신 것이 예수님의  부활인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그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욕심이 '저놈 여남은 살 먹었으니까  이제는 공장에 보내서 부려 가지고서 좀 편안하게 살겠다' 하는 그런 사람도  있겠고 어떤 부모는 '내가 어쩌든지 힘을 다해 가지고 공부를 시켜 유식한 사람  만들고 사회 나오면 남한테 비참하게 되지 않는 자를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사람,  그러면 그것을 아무 누구 만치 됐으면 좋겠네 이런데 자기가 아는 대로 제일  높은 도덕가 권세가, 제일 실력가, 이런 사람을 표준을 들고 그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저 자기 마르는 것도 굶는 것도 힘든 것도 뭐 손에 피가 나는 것도  자기가 지금 어떤지도 모르고 그 욕심의 힘으로 다른 사람이 볼 때 저 사람 왜  말랐나 해도 마른 것도 뭐도 모르고 그 욕심에서 그 아들 그와 같이 되어지도록  하기 위한 그 사랑의 욕심에서 자꾸 전부 기울이다가 자기가 다 기울였지마는  되지도 안하고 그러다가 죽어 버렸다 죽으면서 저걸 놔두고서 못해 주고  죽으려고 하니 철천지 소원이다. 하면서 죽으면서도 저걸 소원대로 만들지  못하고 그 밑천이 되지도 못하고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 하는 그 사랑의 욕심  그 사랑의 욕심과 같은,  그것은 하나의 형상의 계시오 이 성질이 같은 무한의 사랑의 욕심에서 세상을  떠나신 그 예수님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셔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을  시키셔서 영원한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남편이  자기가 병들어서 치료할라 하니까 있는 재물 다 털어 넣어야 그 치료를 할 수  있겠고, 이랬는데 식구들이 많고 이러니까 병든 사람 하나 때문에 있는 재산 다  드려서 자기 병 그것 치료하려고 하면 가정이 다 절단 날 터이니까 아내는  그렇게 말라고 하는데 그 남편은 뭐 죽을둥 살둥 재산 다 팔고 그래도  모자라니까 자기가 어떤 돈에 팔리는 참혹한 직장에 계약을 해서 팔려 가지고  라도 자기 아내의 병을 고쳐 놨습니다.

 이러니까 그 아내가 그 남편을 이제 깨닫고 난 다음에는 남편의 사랑에  감격해서 내가 죽으면 저분이 다시 그에게 대해서 화를 줄 터이니까 죽지도  못하겠고 이 남편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남편의 소원하는 일이 있다면 이 남편을  위하는 것이 있다면 은 내가 몸과 생명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다 드려서 이  남편의 기뻐하는 일이라면 나는 하겠다 하는 이 사랑에 감격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러니까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시니 이 사랑에 내가 감격  되가지고서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몸 다하고 뜻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제 주님이 소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면 주님이 일단 소원하시는 것이 내  이웃을 이와 같이 당신처럼 구출하려는 이것이 당신의 소원이요 또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는 당신의 심정을 알았고 당신의 성품을 알았고  당신의 뜻을 알았고 당신의 포부를 알았고, 당신의 신성을 알고 보니 당신을  위하여 그 분의 그 신성을 내가 알고 보니 나로 그 신성을 품지 않을 수 없어 그  신성을 품어,  내가 이웃을 위하여 이웃이 행복 되기를 그 자체면이나 지능면에 이면을 완전케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이제 위로 주님 사랑하는 이 사랑과 이웃 사랑하는  사랑에서 자기는 잊어버리고 자기는 어찌 되는 지도 모르고 이것이 그리 다  투자가 돼버려서 하나님과 이웃 사랑하는 것으로 자기라는 것을 돌보지 안하고  이것 때문에 자기가 녹아졌고 희생돼지고 희생한다 가 아니라 이러다 보니까  자기가 그 사랑으로 인해서 희생이 돼지고 녹아지는 이 성격의 본질 본성, 이  성격, 이 사상, 이 움직임, 이 인품, 이것이 영생합니다.

 그러기에 배설물로 여긴다. 자기 현실에서 어떤 현실이든지 그 현실 닥친  데에서 거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 감격해서 당신의 사랑에 감격해서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 그 사랑에 충격 받아 이웃을 사랑하는 그 사랑,  이웃에 대해서 진정 그 자체가 행복 되고 그 신행이 행복 되어,  사랑하는 부모가 자기가 어떻게 사랑할지라도 사랑하는 자식이 아무데도 꿰일  것이 없이 늙을 때까지라도 아주 흠점이 없는 자 되어지려는 그 사랑의 성격과  같이 심판에 가도 무궁 세계 가도 하나님에게 가도 이것이 아무런 흠점이 없는  그 자체가 자체적으로 신행적으로 완전한 자가 되어지게 하려는 이 사랑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겠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사랑에 감격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사랑의 마음, 사랑의 역사 , 사랑의  뜨거움, 사랑의 움직임으로 인하여서 자기가 본능적으로 희생됐고 필연적으로  희생됐고 희생되는 줄도 모르고 희생되는 이 성품, 이 인격성, 이 사상, 이  성질, 이 움직임의 힘, 움직인 요소 이것만이 영생하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는  영생하지 못한 것을 여기에 말해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일조 일 석에는 안되나 이것을 연습하고  연습해서 어쩌든지 자기가 처음에 쉬운 사랑하는 자가 그 자가 모든 면에 행복  되기를 행복 되되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이 성질대로의 하나님의  법칙대로 이대로 그 자체가 행복 되기를, 금생과 내세에 행복 되기를, 나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 원수라도 그 원수에 대해서 진정 하나님이 보실 때에 흠  없는 사랑으로 사랑한다 인정을 할 수 있을 만치 그에게 대해서 자체와 지능과  영원에 있어서 행복 되기를 원하는 뜨거운 사랑을 가지려고 애를 써야  되겠습니다. 애를 써서 그 사랑을 가져 보고 가져 보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가지고 또 가져서 이웃을 사랑하여 이웃이 행되기를 원하는 그 마음에 내가 불이  붙어 그것으로 인해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방편이라면 내게 고통도 무릅쓰고 또  사랑이 뜨거워지도록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 그 사랑을 내가 깨달아서 그 사랑을  깨닫고 보니까 내가 당신 위해서 살고 싶고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 위해서  수고도 더하고 고생도 더하고 나도 당신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어려운데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이 사랑으로 뜨거워지는 자기가 되어지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다, 연구를 해야 되겠고, 연습을 해야 되겠고 기도도 해야 되겠고 이것을  연습해서 연성 시키고 발달시키고 성장시켜 사랑이 뜨거워지는 이 뜨거워짐을 더  뜨거워지게 하기 위해서 이것이 장성하게 하기 위해서 이제는 이 수입 외에는  자기 수입으로 이 욕망 외에는 다른 욕망이 없는 이 욕망만으로 이것 위해서  노력하고 이것 외에는 할 노력이 없는 것으로서 현실마다 이것을 수입해서  이것이 뜨거워지고 강해지고, 뜨거워지고 강해지므로 서 이웃을 위하여 다문  얼마라도 이 일을 위해서 자기가 역사 했고 도움이 되어졌고 그것이 이루어졌고,  이러므로 나를 사랑하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이 일이 되어지는, 이것을 바울은  일생 동안 연습하여 여기에 다 투자되고 이것이 영원히 계속하는 이 생애가  계속되기를 원하는 것이, 어찌하든지 죽음에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아 나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 하는  이것을 자기는 노력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힘 그것만  갑니다. 사랑의 성품 그것만 갑니다. 사랑에 쓰여진 그것만 영생으로 갑니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해도 변소를 푸면 그 냄새가 내 몸에 베고 아무리 자기가  씻고 해도, 화장품 만드는, 향수 만드는 공장에 가서 일을 하면 자기 몸에  향수가 벱니다. 저도 둘 다 해 봤습니다. 베는데,  이와 같이 환경에도 내가 이웃을 사랑 할 수 있는 그 환경,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 환경을 만들어야 되겠고 찾아가야 되겠고, 직업도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직업이 있다면 취해야 되겠고, 이렇게 분위기도,  환경도, 직업도, 형편도, 이렇게 해서 어찌하든지 내라는 이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이웃이 행복 되고, 하나님이 영광스럽고, 이웃이 존귀해지는, 행복 되어지는 이  일을 위하여 자기의 전체가 거기에 쓰여지지 아니할 수 없는 이 사랑이 되어지는  힘으로 우리가 자라 가도록 우리가 노력하고 연습해야 됩니다. 이것만  영생합니다.

 이것 외에는 아무리 의를 이루어도 아무리 거룩해도 아무리 투자하고 희생해도  이 사랑의 성질, 이 사랑의 본질 본성 사랑의 힘 이것이 작용해 가지고 한  이것만 거기 쓰여진 모든 사물만 영생하고 그 힘만 영생하는 힘입니다.

 그 외에는 자기가 개혁 운동을 하고 자기가 사람을 몇 천 몇 만을 구원했다  할지라도 이것이 작용되지 아니하고 이 힘으로 살아가는 이것이 아니라면 자기가  도구로만 이용을 당했지 자체 성화는 없습니다. 이 영생은 그에게는 없습니다.

상급은 있지마는 영생은 없습니다. 일한 공로는 있지마는 자체 변화는 아닌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현재에서 이것을 연습합시다. 이웃을 내가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거기서 사랑하는 것 외에 잘못 쓰여 있는 것 제거하고, 사랑하는 연습을  위해서 사랑하는 일을 위해서 자기가 투자하는, 이러기 때문에 주일학교  반사들이 복입니다. 권찰들이 복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복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전할 그때는 어쨌든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그런 마음  없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는 이 사람이 믿어 구원 얻어야 되겠고, 천국을 가야  되겠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해야 되겠고, 그 사람 속에 그 때에는 썩어지지  아니하는 그 시간을 오랫동안 한 시간 두 시간 지내면 습성이 되어서 본능이  되고 자기가 완전히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고 아버지의 성령으로만 가능하다고 말씀하신 대로  이는 다 하늘에 속한 것이오니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음을 압니다. 간구합니다.

주님의 이 구속을 깨달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명령 따라 이웃을 사랑하는 이  사랑으로 우리에게 뜨거워지고 충만케 하사 남은 여생의 전부가 이 사랑을  인하여 제물 되지 안 할 수 없는 저희들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 곧 원수까지  이웃에 영원한 자체와 모든 생애에 행복을 원하는 이 뜨거움에 사랑에서 우리의  전부가 다 투자할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변화 시켜 주시고 이 생애가  이루어지도록 성령님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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