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

 

1980. 4. 13. 주후

 

본문: 빌립보서 3장 7절 - 12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절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무엇을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여게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고 또 잡은 줄로 여기지 안하고 지금  계속 달음질을 하고 달려가는데 그거는 어떤 것을 위함이냐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 잡으려고 좇아간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리스도 예수가  종착한 이 종착 달성한 이 달성 그리스도 예수가 성공한 이 성공을 자기도 지금  하려고 달려간다 자기가 이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에는 벌써 이 복음을 인해서  죽을 뻔한 그런 경우도 많이 겪었고 또 헐벗고 굶주린 일도 많이 했고 매도 많이  맞았고 아주 수고를 많이 한 이후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이제까지 애를 쓰고 이렇게 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가 성공한 그  성공을 자기도 하려고 이것을 향하여서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목숨이 남아  있고 자기의 몸이 남아 있지마는 거의 그 수지는 다 기울였다고 할 만치 이 만치  기울였지마는 바울은 아직까지 얻은 것도 아니요 성공한 것도 아니라 지금  아직까지도 미완성 이것을 향해서 완성하려고 달음질하고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가 성공한 그 성공을 자기도 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리스도  예수가 어떤 성공을 했는가 그리스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그 일 했고  또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만에 부활하신 그 일했는데 그 성공을 자기도 하려고  전심 전력을 다 기울여서 남은 것이 얼마 남지 않는 그런 벌써 자루 안에 넣어  알맹이는 다 기울이고 껍데기 빈 자루만 남아 있는 거만 그만치 아주 노경에  얼마 남지 안 했지마는 자기는 아직까지 성공됐다 생각지 안하고 남은 걸 다  기울여 가지고 그리스도 예수가 달성한 그 달성을 자기도 달성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가 달성한 달성은 뭐인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 데 영원  전 하나님이 제사장 선지 왕의 직분을 가진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이렇게 이름하셨는데 이 세 가지 직책을 가지신 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그 모든  부요와 영광을 다 내어놓아서 가난해졌지 그러면 가난해진 성공입니다.

 하나님의 부요와 영광을 존귀를 다 내어 논 아주 가난해진 성공이요 또  하나님께서 피조물이 되어서 사람되어서 세상에 왔으니 그렇츰 낮아지고 천해질  수 없는 것인데 낮아진 성공이요 천해진 성공이요 또 사람되어서 신인양성일위가  되셔 가지고 사생활이나 공생활이나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직을 하기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는 하나도 해 보지를 못한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할 만치  그래도 사람이 자기를 위하는 재미가 있는데 한번도 당신 자체를 위하는 그런  일은 해 보지를 못하고 그러다가 십자가상에서 죄 없는 당신이 정죄 받고  저주받아서 하나님에게 원수로 대적의 이 억울함을 자기가 입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러면 하나님이 이렇게 죽으시는 일을 했으면 그만해도 참 한없는 고생이요  희생인데 또 이게 부족이라 다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영원히 희생할 이 길을  선택한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가 한 일인데 그리스도 예수가 한 이 일을 뭐  좋다고 자기도 이것에게 참여해서 이 일을 자기도 선택해 가지고서 이 일을  하겠다 이 일을 하기를 원해서 세상적으로 말하면 아무도 앞세우지 안 할 만한  그렇게 민족적으로 문벌적으로 학벌적으로 또 세상 권세적으로 뭐 누구도  앞세우지 안 할 만한 그러한 아주 존귀함을 가진 그런 것을 이 직책을 하기  위해서 다 포기해 버렸고 또 자기는 이제는 이미 가진 것이나 자기에게 닥쳐오는  그 어떠한 현실이든지 현실을 닥칠 때에는 다른 것이라 하지 안하고 그저 이  직책 이거 하는 것만 자기의 소원이 되어있고 이것만 한 그거만을 자기는 자기  수입으로 보고해서 있는 것 다 이렇게 희생당했지 자기는 죽을 때가 가까운  때입니다.

 아주 죽을 때가 가까운 그때는 그리스도 예수가 성공한 이 직책을 자기도 해  보겠다고 해서 모든 청춘을 여기 다 기울였지 또 자기의 가진 것이라고 하면은  지식이나 예민이나 건강이나 활동이나 자기의 담력이나 할 것 없이 전부 이 일을  위해서 다 기울이고 남아 있는 것이 그저 이제는 다 이것을 위해서 쓰고 마치  비유컨대 자루에 있는 것 다 이거 위해서 쓰고 이제 남은 것 쪼매 붙어 있어서  뚝 쭈그러진 자루 같은 이제 얼마 남지 아니한 이것까지도 이것을 위해서  기울이고 자기의 그 죽음까지도 이것 위해서 쓰고 그러면 자기의 일생과 자기의  전부와 자기의 소유를 다 그리스도 예수가 성공한 이것을 자기도 하기 위해서 다  기울이고 그러면 이것만 기울여서 다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원히  이것을 위해서 기울일 것을 주신다면 이거 위해서 영원히 기울려 예수님이  영원히 기울이시기로 작정하신 이것을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은 소원을 가지고  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예수님의 구속을 입은 성령의 사람인데 성신이 감화 감동을 받은  사람인데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은 성령의 사람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표준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참 성령의 사람이요 그는 참사람이요 온전한 사람이라고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나를 본 받으라"고 할 만치 그는 온전한 사람이라고 지혜도 전하고  능력도 온전하고 인품이나 사상이나 모든 것이 온전한 인물인데 그 온전한  사람인 이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가 성공하여 이를 위해서 다 투자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또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안 해서 원하고 원하니까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서 그 소원을 들으셔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신인양성일위로 이제  부활을 했으니 이 부활은 끝이 없는 삶인데 끝이 없는 이 삶을 가지고 또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하시던 이 일을 무궁세계에서 영원히 계속해서 하시기로 한 이 일을  자기도 세상에 과거에는 이것저것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 많이 있어 그것 다  그 종류에 간추려 가지고 좋은 것은 다 취해서 구비했던 거 이것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가 성공한 이것을 자기도 취해 가지고서  이것이 제일이다 이것이 가장 고상하다 이것이 제일이다 이거 외에는 나는 지금  욕심이 안 난다 이거만이 욕심난다 이것만이 내 소욕이요 소망이다 또 이거 외에  다른 걸 위해서는 뭐 수고할 것이 하나도 없다 수고할 만한 가치가 없다 모든  수고는 이거 위해서 다 기울이겠고 또 이런 현실 저런 현실에서 과거에는 거기서  수입하고 영광도 권위도 지식도 행락도 수입했지마는 이제는 내게 닥친 모든  현실에서 이 그리스도 예수가 성공한 이 수입 이거 외에는 내가 수입으로 삼을  것이 없다 이렇게 해서 다 기울이고 이것으로 끝내지 아니하고 마음에 유익  부족이라 그리스도 예수가 다시 부활하심 같이 나도 하나님께서 이 생애를  영원히 할 수 있는 삶을 주신다면 할 수 있는 몸을 주신다면 생명을 주신다면  무엇을 자체를 주신다면 소유를 주신다면 그것 가지고 영원히 이 걸음을 이  생활을 이 직책하기를 원한다 했습니다. 어찌하든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나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온전한 사람 바울이 이것이 무엇이기에 그만 이것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과거에 좋아했던 것 다 버리고 과거에 욕심냈던 것 다 버리고 과거에  가치 있다고 하던 것 다 버리고 이 생활이 좋아서 여기에만 점심 전력의 소원을  가지고 다 기울여 죽기까지 이거 위하여 기울려 살고 또 여생이 있다면 이 일  계속하도록 여생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 소원을 가지고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됐던가 이것이 무엇이기에 그 평가적으로 성령의 사람 참사람  바울이 평가할 때에 이것이 제일 옳은 길이고 해서 그랬던가 그것을 우리가 좀  알아야 되겠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평가한 그 가치관 바울이 이렇게 비판한 그  이치관 그것을 우리가 가지면 우리도 우리가 지금 이 그리스도 예수가 성공한  이거 외에 우리는 거게 속한 것도 하지마는 거기에 속한 것은 참 오다가다가  어떻게 만나서 그것이 되어지고 그 외에 것만 우리는 소욕하고 힘을 쓰고 있는데  바울 같은 이런 깨달음이 있으면 우리도 두말 할 것 없이 바울이 택한 그 생애를  우리도 택하게 됩니다.

 아직까지 바울이 깨달음 같이 우리가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바울이 이 모든 것을 이제는 잃어버린 아,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뒤떨어지지  안하고 앞선 제일 앞선 참 대갈락 같이 모든 것을 다 쭉쭉 구비하게 뭐 지식도  그 이상 가는 사람도 없었고 세상 권세도 그 이상 가는 사람 없었고 의지도  그렇고 담력도 그러하고 열심도 그러하고 생활에 대쪽같은 곧은 것도 그러하고  율법으로서는 뭐 흠 할 기 없다 했으니까 이랬는데 이렇게 이 구비한 이것을  포기한 거와 같이 우리들도 그런 것이 마련됐다 할지라도 그런 것을 의례히  포기하고 이 바울이 취한 거와 같은 이 걸음을 취할 터인데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마는 바울이 취한 그 가치를 그 존귀를 그 보배를 그 길을 우리가  선택해서 자기 길로 삼았는지 아직도 바울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마는  이제까지는 버릴 것이 깨닫고 보니까 다 버려 버렸습니다.

 깨닫고 나니 버릴 것 이런 데에 전심 전력 기울이 가지고서 이것을 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하고 있지를 아니하는지 베드로도 이면을 약간 깨닫고 난  다음에 배와 그물과 고기를 다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 취하신 그 가치관 예수님이 걸으시는 그 길 이것을 깨닫고 난  다음에 자기는 너무도 허무하고 삐뚤어진 자인 것을 깨달아 기막혀서 그 앞에  죽은 자와 같이 거꾸러지게 됐습니다. 뭐 별 수 없이 바울과 같은 깨달음을  가지면 여게 있는 우리들도 이 길을 택하지 안 할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이  길을 택한 사람은 자기의 소유나 자기의 일생이나 몸이나 생명이나 전부를 이 길  이것 성공하기 위해서 투자하지 안 할 사람 하나도 없고 아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다 투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깨닫게 된 것은 그에게 성신의 감화가 충만히 임해서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정확무오의 영감의 사람이 될 때에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바울에게 임한 그 영감이 우리에게 임해서 우리의 심령이 환하게  밝아진다고 하면 바울이 이렇게 정평하고 정가한 이것을 우리도 가져서 인간의  수천도 만도 넘은 이 인생 길 인생이 각각 자기 마음에는 이 길이 제일이다 해서  이 길을 택하고 저 길을 택한 역사에 왔다가 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대로는 그  길이 제일 좋다고 선택한 그 길이 천도만도 넘습니다.

 거게는 '아무래도 내가 한 자리 해서 권세를 가져 봐야 되겠다 내가 한번  세계를 한번 손에 쥐고 한번 통치해 봐야 되겠다 내가 인간에게 아주 노벨상을  얻어서 아주 명망을 높이는 그런 사람이 한번 돼 봐야 되겠다' 뭐 제대로의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수많은 인생길이 있지마는 바울이 받은 영감을 우리가  받아서 우리가 밝아지면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바울이 정평한 그 정평을  우리도 가질 것이고 정가한 그 정가도 우리가 가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정평  정가를 가지게 되면 역사에 왔던 수많은 인생이 걸은 그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어 자기에게 유익 없는 다 속아 사는 것이요 속여 사는  것이요 인생 길에는 그리스도 예수가 걸어서 성공한 이 길 외에는 가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이 길을 잡을 것이요 이 길을 잡은 자는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전부를 이 선택한 이 길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  길에 성공하기 위해서 투자하지 아니할 자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 길이 천국에 길인데 "천국은 마치 보화를, 진주를 만난 자가 만난 자는 다  자기의 있는 것을 팔아 가지고서 이것을 샀다" 하는 그 비유가 이 비유입니다.

누구든지 인생의 수 없는 길 중에 가장 완전한 이 길 성령의 사람 바울이 택한  이 길을 발견만 했다고 하면 누구든지 자기 있는 전부를 여게 기울이지 아니할  자들은 안 할 사람이 없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이 길을 택했는데 하나님은 그분은 완전자시며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며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니까 그분이야말로 후회할 일을 하지 안 하셨고  가장 가치 있는 옳은 것을 택했을 터인데 그분은 무엇을 택하셨는가 그분도  하나님 그분도 영원 전에 이 길을 택해서 당신의 목적으로 정했고 이 길을  택하신 당신이 이 길을 택하신 것으로서 당신의 이름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이렇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이 길을 택해서 나는 이 길을 걷는 자라 하는 그  자기 직책을 나타내서 하나님의 이름을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 전 이름인데 그리스도란 이름은 하나님의  직명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직명이라 하나님의 직분의 이름이라  하나님이 당신이 걸어가실 선택하신 당신의 길의 이름이라 당신의 길의 이름이라  하나님께서 엿새만에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이 능력 있는 이분이 당신이 할 일은  어떤 것을 할 일로 택정했는가 이제 이 길을 택정 했고 그리스도 예수가 걸어갈  이 길을 택정했고 또 당신의 노력은 뭐 했는가 전부 이 길을 위해서 예정도 했고  창조도 하셨고 섭리도 하십니다. 하나님도 이 그리스도의 길이 가장 고귀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길을 걸으시려고 그리스도직을 택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택했습니다. 하나님도 이 길 외에는 택할 길이 없어.

 이 길이 가장 옳고 바르고 이 이상 좋은 길이 없고 가치 있는 길이 없고  보배로운 길이 없고 참 바른 곧은 길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 길을 택했고  하나님의 성신의 감동을 받은 바울도 이 길을 택했고 또 신약교회가 창설한지  벌써 2천년이 돼 가는데 이 구석 저 지역에서 자기의 일생을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저 미친 사람이라'고 할 만치 자기의 일생을 다른 데 하나도 허비하지  아니하고 자기 앞에 온 세상에 얼른거리면서 단번에 취할 만한 그런 것이 와도  그런데 눈 하나도 뜨지 아니하고 이 길을 발견하고 길을 택하여 이 길을  성공하려고 이 길을 자기가 걸어갈라고 이 직책을 감당하려고 자기의 그  강대국에 그 시민권도 다 그 부강한 모든 문화도 다 돌아보지 안하고 저 미개한  야만들 가서 말해야 듣지 안하고 하다 하다가 말해도 안 들어도 거기서 다  기울이다가 자기 기울이다가 아들에게 유언하기를 '네가 내 아들이라면 내가 이  민족을 위해서 해서 성공을 보지 못했으나 나는 이것을 다 기울이고 지금  성공하지 못했으니까 네가 이 일을 위해서 대를 이어서 해 달라' 아들대 아들도  이 길을 택해 가지고서 이 길에 있는 전부를 다 세상부귀 영광을 다 여기에  투자하고 이 길을 걸으려고 걸어 봐도 눈앞에 큰 희특한 일이 없었지마는 다시  아들에게 유언을 해 가지고서 삼대 사대가 자기의 호화로운 나라를 버리고  미개한 그 야만족 미개한 인물들 해 봤자 하나도 깨닫지도 못하고 감사치도  못하는 거기에서 이 일을 삼 사대를 기울여서 하고 거기서 성과를 보고 끝맺은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일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아끼지 안하고 이것을  위해서 다 기울이고도 오히려 부족해서 아들에게 유언하고 또 부족해서 자기  아들 이제 삼 대째 유언하고 또 부족해서 유언해서 사 대째 이렇게 기울이는  이런 사람들이 여기 제게서 나는 것은 다 이 길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함부선 목사님도 지금 여게 안 계시지마는 그분도 자기 아버지가 그 호화로운  미국 나라에서 이 우리나라 지금은 아주 말할 수 없는 그 개명이 되고서 부강한  나라가 됐지마는 그때는 굉장히 미개하고 또 미신적인 사람들이고 모두 다  주관적인 그 동양적인 이런 사람이어서 미학이라 해 가지고서 이 도 들어오는  것은 수없이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가는 곳마다 조롱입니다. 길가 가다가도 그  사람을 보고서 그때도 미국이라 하는 나라는 강대국이기 때문에 미국 사람이라  하면 사람들이 모두 이 두려워하고 이래 떨다가 '예수를 믿으시오' 하면 그만  침을 뱉습니다. 저도 그걸 봤습니다. 함부선 목사와 같이 가는데 함부선  목사님이 떡 타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합니다.

 해방 직후에 뭐 미국이라면 굉장히 그 우상 만치 그래 여길 만치 됐으니까  이런데 떡 가 가지고서 '예수를 믿으시오' 하면 그만 놓습니다. 그만 막 먹소.

'아, 이거도 예수 믿는 거로구나' 그만 천대하고서 이렇습니다. 이래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유언해서 그 아들 함부선 목사님이 그 유언을 받고 미국의 그 호화로운  문화 생활하지 못하고 이 미개국에 와 가지고서 그 뭐 병신, 우리 교회도 지금  그 딸이 와서 인제 커서 반사가 됐습니다. 소경이요, 또 아내는 아편쟁이고  이런데 그를 위해서 그 노력을 하고 이래 가지고 그 끝에 그 딸이 지금 우리  주일학교 반사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네들의 일생을 여기 기울이고 아, 안식년에 미국에 갔는데 안식년에  미국에 돌아가니까 그런 인물이 없으니 당장에 자기 교파에서 총회장으로  총회장으로 당장에 등록을 시켰습니다. 이런데 그분들이 취하려면 얼마든지 그  자기 문화 본국에서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지마는 그것을 버리고 우리나라에 와  가지고서 2대를 희생해 주는 그것이 이 길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 바울이 깨달은 이 길의 가치를 이 길에 그 참됨을 깨달았기 때문에 다  거게다가 희생을 했습니다. 하나님도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면 이 길  선택한 그 길이 무슨 길인가? 그리스도 길이요 예수의 길입니다. 그리스도  길이라 이 그리스도 길이라 말은 제사장 길이요 선지자 길이요 왕의 길이라는  말입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의 길이라 이 그 무슨 길인데 자기의 원수를 하나님처럼  온전한 자가 되어 이 절대자이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친교를 맺는 데에 이르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통하는 지혜 지식이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과 합치된 그  능력이 아니면 아무래도 멸망할 끝이 있겠고 그는 사망할 끝이 있기 때문에 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어지는  요게 까지 원수가 행복 되기를 원수가 온전해지기를 원수가 금생과 내세에  영원히 온전해져서 이 완전자에게 거침이 없이 이분이 그의 모든 것을 책임질  만치 이런 든든한 관계를 맺어지게 하지 안하고는 견딜 수 없는 그 사랑의  뜨거운 욕심을 가지고 이 일을 달성하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에 재물로 잘못한 게  있으면 그 벌을 자기가 받고 행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자기가 그것을 대신  행하고 원수 된 것 있으면 원수 된 것의 벌을 대신 받고 또 서로 화목을 하려고  하면 거게 밑천 든 기 있으면 자기가 대신 밑천 들여 가지고서 화목을 한 화목  제물로 속죄 제물로 속건 제물로 하나님과 한 덩어리가 되게 하는 이 번제물로  당신의 신성과 인성이 있는 것을 다 기울인 그것이 제사장직이요 이분들이  하나님 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 길을 택했습니다.

 이 길 이제 제사장 되는 길 자기의 사랑하는 자는 물론이요 원수까지 그를 행복  되게 참 온전하게 영원하고 이 완전자와 서로 배치됨이 하나도 없이 이 완전자와  어짜든지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완전자가 그를 책임지고 영원히 그이의 배경이  되고 그이에 밑절미가 되어지게 하려는 요 뜨거운 사랑 요 사랑에 큰 욕심  요것을 인하여 자기의 전부를 다 투자할 수 있고 또 그 자체 그 지혜와 지식과  능력도 이렇게 완전자와 모순된 것을 다 고쳐 완전자와 둘은 한테 합해서 자기의  삐뚤어진 것을 다 고쳐 완전자와 합하여 완전자의 그 완전자의 완전이 그 무한한  지혜 지식이 능력이 그의 것이 되어지고 그의 무슨 것은 잘못됐든지 잘됐든지  하나님이 그걸 다 책임져 가지고서 이렇게 하게 하려는 이것을 위하여 자기의  전부를 다 움직임도 생각도 소유도 몸도 생명도 지위도 권세도 하늘의 영광도  부요도 전부 이것만을 위해서 다 기울일 수 있는 이 길을 택한 것이 하나님이  택하신 길이요 이 길을 택해서 하나님이 근본 부요하신 자가 가난해졌고  하나님이 영광이 지혜 있는 분이 지옥까지 내려가셨고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서  33년 4개월 십자가에 죽으시고 이래도 유익 부족이라 다시 이 생활을 계속하기를  원해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영원히 이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이것으로 부활하신  이것이 하나님이 택하신 길이요 성령의 사람이 택하신 길이요 모든 성도의 택한  길이요 모든 순교자들이 이 길을 택해서 이 길을 깨닫고 난 다음에 순교했고  자기의 일생을 자기 욕심대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 성미대로 하나도 살지 못하고  자기 오기대로 자기 감정대로 살지를 못하고 전부 이 직책을 위해서 다  세상살이를 한 이 순생자 순교자 이들이 전부이 이 길을 깨닫고 난 다음에 이  길을 택해서 걸어간 걸음입니다.

 그래 순교자는 다 이 길의 가치를 알았고 이 길의 그 권위를 알았고 이 길의  참됨을 알아서 이 길을 걷기 위해서 생명 바친 것이 순교자요 자기의 전 생애를  바친 자가 다 순생자요 구속받은 성도로서 일찍 영감의 사람이 되든지 늦게  영감의 사람이 되든지 영감의 사람이 되는 그 시간부터 이 길을 걸어서 원하다가  또 이길 걷다가 또 시험에 들어서 또 돌아서다가 또 이 길 걷다가 이 길  걷는다는 것이 오산해 가지고서 가고 보니까 삐뚤어진 걸어서 걸음을 걸어서  다시 고치고 고쳐 이렇게 연습하고 다시 재시하고 재시하고 이렇게 시작을 해  가지고 죽는 날까지 이 걸음을 걸으려고 자기대로는 순생을 했고 생애를 여기다  바쳤고 자기의 생명을 바치고도 마지막에 세상을 떠날 때에 자기는 독사와  시랭이와 같은 죄인이며 이제 주님이 이렇게 사랑하셔서 이 사랑을 받았고 이  길을 깨닫고 내가 이 길을 걷지 못한 빚진 자라고 이 길을 걷지 못한 그런  악독한 자라고 자기가 느끼면서 어짜든지 이제 일생에 생애라 하는 것을  이래저래 다 지나가 버렸고 진액도 없고 다 노쇠해졌으니까 늙어 쪼그라진  이것이나마 생명이라도 이거 위해서 마지막 바치고 가게 해 달라고서 간청하는  것이 순교를 원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길을 깨달은 사람은 자기의 전부를 이 길을 위해서 기울이지 안한  자가 없고 성령의 사람이 됐다면 이 길을 깨닫지 못한 자가 하나도 없었고 이  길을 깨달은 중생 된 사람이라면 못 가도 가기를 원하고 가다가 넘어져도 또  일어서 이 길을 가기를 원하고 어쨌든지 머리는 이 길을 향해서 얻었다 함도  아니요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그 당신이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그 긍휼이 내가 잡힐 때까지 이것을 향하여서 달음질한다  바울이 말한 대로 다 이 길을 걷게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길 외에는 인생이 걸을 만한 가치 있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길 중에 이 길이 제일 가치 있다고 존귀한 길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길을 선택했고 하나님이이 이 길을 선택해서 그리스도가 예수가  되어 세상에 와 가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고 예수님의  사활로 인해서 중생 성화 받은 성신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도 참된 그 영광에  도달한 사람들은 다 이 길을 택했고 영감에 비추어서 조그마치 라도 영감 받은  사람은 아 내가 걷지는 못하지마는 그 일이 가치는 있다 걷지는 못했지마는 그  길이 가치는 있다 나도 그 길 걸었으며 좋다 모든 사람이 전기를 읽을 때에 이  길을 걸은 사람의 전기를 볼 때에는 마음에 머리가 숙어지고 존경이 되어지고 이  길을 자기도 사모하는 이 평가하고 사모하는 이것은 다 가지게 되는 것이  성령으로 중생 된 사람들의 그 영감인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갈 하늘나라는 이 길을 택해서 이 길을 제일 가치 있다고 깨달은  이 평가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하늘나라입니다. 이것이 제일 옳은  길이라고 정평한 이 사람들이 가서 살고 있는 나라가 하늘나라입니다. 또 이것을  위해서 세상살이로서 이거 하는 것을 만족이 안되어 무궁토록 이 생애를 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진 자들이 가서 이 소원대로 하는 그 나라가 하늘나라입니다. 이  소원을 가지지 못한 자는 하늘나라에 가기는 가지마는 하늘나라는 할 일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할 일이 없습니다.

 또 그 사람은 할 만한 실력도 없고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사람들은 다 하늘나라  부활해서 가기는 가지마는 세상에서 이 길을 자기의 생애로 선택해서 하던 그  사람이 그 소원 가진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도 무궁히 그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맡겨 주시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원을 주시고 구속을 받았지마는 이  세상에서 이 일을 이 걸음을 이 생애를 이 길을 원치 아니하는 그 사람은  하늘나라 갔지마는 자기가 세상에서 원하던 것은 다 없어졌습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원하던 권세를 탐하고 지위를 탐하고 돈을 탐하고 행락을 탐하고 땅에  있는 것을 탐하던 그런 소원은 다 세상에서 죽는 그 시간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그 나라에는 그런 소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에 부활해도 하늘나라 갔지마는 서도 어떤 자는 자기의 소원하는 그  걸음은 그 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자기 소원하는 길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  길을 걸어갈 것이 없어 그 자기 소원은 하나도 없소 자기 소원이 없는  자기소원은 하나도 없는 그 나라에 가 가지고 영생하니 그에게는 고통이  있을는지 기쁨이 있을는지 성경은 말하기를 "구원은 얻었으나 불로 구원 얻은  자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해석을 우리가 어떻게 할는지 저는 볼 때에  화닥거리고 뜨겁다 그 말 부끄럽다 그 말입니다. 하늘나라는 이 길을 택하여 이  길을 걷고 걸은 것 만치 네가 세상에서 이 길을 가치 있는 것을 깨닫고 이 길을  네가 택했기 때문에 이 길을 준다 이 길을 택했지마는 네가 소원을 요만치 밖에  안 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요만한 소원대로 살도록 준다 너는 세상에서 이렇게  소원했기 때문에 이제는 네 소원대로 하늘나라에서 이 만치 하라고 준다 네  소원은 세상에서 이것이 무한한 소원이었으니 하늘에서 무한한 소원을 네 소원  성취하게 해 준다하여 무궁한 세계에서 이것을 부활시켜 가지고서 영원하게 하는  것이 하늘나라에 생애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하늘나라에 가져갈 그 역사 가져갈  생애 가져갈 그 움직임 그것을 하려면 예수 박에 있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은  우리의 길로 삼지를 안 해야 됩니다. 우리의 소원을 삼지를 안 해야 됩니다.

다만 하늘나라는 제사장 길 선지자 길 왕 길 이것뿐입니다. 역사는 이 역사  뿐입니다. 하늘에는 이 세 가지 역사 뿐입니다. 하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  하늘의 사람은 이 세 가지 역사를 할 수 있는 사랑을 가진 사랑의 사람들입니다.

구속을 받았지마는 이 사람은 이 사랑을 가지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되어있는 사람이지 능동할 자체로는 없습니다.

능동할 자체로는 하나도 그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와 가지고서  사랑으로 만들어지고 된 그 사람뿐이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된 사람뿐이지 그  자체가 사랑을 행할 수 있는 사랑의 능동자 사랑의 피동자 된 것뿐이지 사랑의  능동자는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죽은 자입니다.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부동의 자입니다. 다만 세상에서 자기가 요 사랑을 사랑화 되어서 자기가 사랑화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사랑의 연습을 해서 사랑화 된 것 만치 사랑화  중량이 사랑화 된 중량 만치 하늘나라에 가선 자기는 사랑의 중량을 가진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또 사랑의 욕심을 가진 것 만치 하늘나라에 가서 사랑의 욕망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세상에서 사랑을 가지되 사랑을 가지되 그저 내 비위에  맞을 때는 그가 행복 되기를 원하고 예수 잘 믿기를 원하고 뭐 이 거슬릴 때는  그만 그것도 저것도 없어서 그만 미워져 버리고 내가 또 상대방을 행복 되게  하는 사랑의 욕심이 있되 그 예수 믿고 예배당에 나왔으면 좋겠다 예수 믿었으면  좋겠다 이런 정도의 그 사랑의 욕심도 있을 것이고 이래서 하늘나라는 그 사랑의  덩어리가 어느 정도 세상에서 키웠으며 사랑의 욕심이 어느 정도 크며 사랑의  욕심으로 인해서 자체를 어느 정도 이것을 위해서 투자하게 됐는가 요대로  무궁한 세계에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딴 게 아닙니다. 다만 이 세상에는  거짓뿌리가 가득 찼기 때문에 세상과 하늘나라가 다른 것이지 세상에서 만든 것  외에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서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그것은 아주 오판입니다. 그  성경에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은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이  심판대를 거칩니다. 그 이 심판대 이름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네가 제사장 노릇을 얼마나 했으며 선지자 노릇을 얼마나 했으며 왕 노릇  얼마나 했느냐 선지자 노릇한 것이 문제가 아니고 제사장 노릇 왕 노릇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사장 선지자 왕 노릇은 이것은 방편입니다. 이건 역사입니다.

역사.

 네가 제사장 선지자 왕 노릇 할 만한 네게 그 사랑이 얼마나 강했으며 얼마나  뜨거웠으며 얼마나 컸느냐 너에게 사랑의 분량이 있는 것 만치 너는 반드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욕망이 있고 네 사랑의 분량 만치 욕망이 있고 사랑과  욕망이 있는 그 사이에 너는 필연적으로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하여 그  욕망이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서 네가 희생되어지는 양이 있으니 그것이 얼마나  되는지 거기 따라서 무궁세계에 갚음을 받기 위해서 기독자들을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닫고 이 세상살이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살이를 하도록 모든 것을 구비해 주신 이유가 뭐냐 좋은 가정을 가졌으니  부부를 가졌으니 미남 미녀를 가졌으니 건강을 가졌으니 지위 권세 재벌 사업  이런 걸 가졌으니 이거는 좋은 것이니까 이대로 하늘나라에 가져 갈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아주 잘못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 두고 가는  것은 다 두고 갈 것들인데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부활할 것은 부활시키고 나머지  것은 땅에 그대로 있습니다.

이런 것 저런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거기에서 그것을 이용해  가지고 무얼 하라고 줬는가 그것을 이용해 가지고 자기에게 사랑을 키우도록  사랑을 견고하게 사랑을 강하게 사랑을 뜨겁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을  우리에게 줬습니다. 바울은 바로 깨달았소 자기에게 주는 현실에서 이런 것들을  수입하도록 하기 위해서 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원수를 만났을 때에 원수를 주신 것은 거기서 내  사랑을 시험하고 사랑을 견고케 키우게 뜨겁게 하려는 것이요 이런 물건 저런  물건 이런 사건 저런 사건 모든 부딪혀진 세상 것에서 우리의 안에 있는 사랑의  속성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에게 지극히 보배로운 소망이  있으니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소망이 있으니 그 소망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서 힘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라  말은 하나님의 그 사랑의 성품에 우리가 참여해서 어디서든지 자체를 그 사랑의  성품을 새롭게 하고 가꾸고 길러서 점점 사랑이 커지고 사랑이 강해지고 사랑이  뜨거워짐으로 사랑이 뜨거워짐으로 이 사랑이 커지고 사랑이 뜨거워지니까  욕심이 생겨집니다.

 자기가 그 자기 집에 와 가지고서 아주 밉상을 드리던 그 만신창 되어있는  그것이 자기 집에 기 들어와서 들어다가 내 버리지도 못하고 온 식구가  돌아앉아서 냄새난다고 하면서 이것을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두고서 약을 쓰니까  이기 나았습니다. 나아서 거기다 공이든 기 많이 있고 이라니까 그게 나으니까  마음에 차차 차차 하루 이틀 지나니까 정이 붙고 또 사랑이 가고 사랑이  생겨집니다.

 사랑이 없을 때에는 '고만 저거 얼른 죽어 버리든지 어데 그만 제 발로 그만  걸어가 버렸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차차 사랑이 들고나니까 '아이구, 저기 커  가지고 일자 무식 되면 안되지 그래도 글을 가르쳐야지' 아, 사랑의 글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납니다. 그 다음에 또 사랑이 드니까 '저거 학교 가  가지고서 우등이 돼야 되지 꼼발 돼 가지고 눈물 찔찔 흘리면 안되지' 또 이제  우등생이 되고 싶습니다. 아니고 '저것이 세상에 처세할 때에 무지 무능자가  되어 가지고서 여기서 충격 되고 저게서 쫓겨나고 이라면 안되지' 어짜든지  무엇을 가르쳐서라도 이제 여자면 '피아노를 가르쳐 가지고 제 직업을 하나  돈벌이해서 의식 생활할 수 있도록 해 줘야 되겠다' 자꾸 거게 대한 욕심이  생겨진다 그 말이요.

 사랑이 생겨진 것 만치 욕심이 생겨지고 그 사랑의 욕심은 상대방에 그것에  행복과 그것에 잘 되기를 원하는 그 욕심이 생겨지고 보니 그게 저절로 잘될  수는 없고 부득이 해서 사랑으로 인해서 그 사랑의 욕심이 생겨지고 보니까 그  가운데 들 것은 자기 희생 밖에는 없고 자기 투자할 것 밖에는 없는 것이 이거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세상에 있는 동안에 우리에게 이 사랑의 성품을 길러서 여게서도 이  사랑을 꺾지 안하고 이 사랑이 도말 되지 안 하도록 그만 미움이 들어서 사랑을  덮었으면 다시 자기가 기도하고 깨달아 가지고서 미움을 물리치고 사랑으로 또  거게서 나타나게 하고 이래서 사랑이 점점 자라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하고 이렇게 사랑이 점점 강해지고  뜨거워짐으로 이 사랑으로 인해서 상대방에 행복을 상대방에 그 성공을 상대방에  그 유익을 이것을 사랑의 욕심으로 필연적으로 그 욕망이 생겨지게 되고 이  욕망으로 인해서 자기 사랑과 욕망 이 둘 때문에 십자가에 안 죽을 수가 없고 이  사랑과 이 욕망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되어 안 올 수가 없고 이것 때문에  신인양성일위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이 욕심과 이 사랑의 뜨거움으로 인해서  죽은 걸로 인제 나 할 일 다 했다 할 수 없어 다시 부활을 간청해 가지고서  부활을 받으신 것이 이것이 사랑의 그 발작이요 사랑의 욕심이요 그 사랑의  발작과 사랑에 욕심으로서 이 욕심을 달성하려고 하니까 이 달성하는 그 방편은  그걸 대속하지 안 하면 안되기 때문에 제사장으로 대속 제물이 됐고 선지자로  대속 제물이 됐고 왕으로 대속 제물이 된 것이 예수님이시오 그리스도신데  하나님이 이것을 택했고 피조물로서는 예수님의 인성이 이것을 택했는데 정말로  모든 존재 가운데에서 이일을 제일 먼저 택하신 이 그리스도 이 하나님이 참  옳은 것을 택했고 이차적으로 피조물로서는 예수님의 인성이 정말로 이 이상  없는 옳은 길을 택했고 이것을 알고 보니까 바울도 자기도 이 길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발견해서 이 길을 걸어 그리스도 예수가 달성한 그 그리스도 예수가  잡은 바 된 그것을 자기도 잡으려고 달아난다고 이렇게 바울이 소원을 가진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이 나라입니다. 이 소원을 가진 자들이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에  일거리는 이 소원을 가진 자들이 소원을 영원히 하도록 되어있는 것이 소원  성취를 하도록 되어있는 것이 하늘나라의 생활이요 하늘나라의 정치요  하늘나라의 운동이요 하늘나라 갔지마는 세상에서 이 소원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는 저의 소원도 아무것도 없고 할 일도 없고 할 재료도  없고 할 힘도 없고 그저 그들은 거게서 부활해 가지고서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사랑만 받고 있습니다. 자기는 사랑하지를 못합니다. 사랑은 양면 사랑이  영광이지 일면 사랑은 영광이 아닙니다. 사랑을 받는 데가 있고 사랑을 주는  데가 있어야 영광이 됩니다. 세상에서 어떤 기독자들은 사랑을 받기만 하고 주는  힘은 없어 주는 그 사랑은 없어 반 쪼가리 사랑으로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영생은 이것이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것이 영생입니다. 그 영생은  사랑함으로 사랑이 힘으로 그 대상에게 대해서 이웃에게 대해서 자기 아닌  하나님에게 대해서 사랑함으로 그 상대방이 좋아하고 상대방이 유익 되고  상대방이 존귀해지고 영광스러워지고 구비해지고 참 가치 있게 되어지려는 이  사랑에 욕심으로 인하여 자기 마음이나 목숨이나 힘이나 뜻이나 요것을 인하여  투자된 고 양 투자된 고것 투자된 요소 요것만이 영원히 삽니다. 요것만이  영원히 사는 하늘나라입니다. 하나님도 이것이 제일 가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선택했고 양성일위에 예수님의 인성도 이것을 선택했고 성령의 사람도 사람들도  다 이것을 선택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것을 선택한 자가 지혜 있는 자고  눈이 넓어서 가치를 보는 자입니다.

 이러기에 "사랑에 온전을 이룬 자는 심판을 심판 받을 것이 없다" 했습니다.

두려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 밖에는 소원이 없는 그 자에게 무슨 흠점을  잡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만물이 거게 대해서 원망할 것이 어느 구석이  있습니까 불평할 것이 어느 구석이 있습니까 모든 존재들이 감사할 것뿐이지  거게 대해서 뭐 불만 불평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사람으로 변화하려는  것이 그리스도가 소원하신 바요 그 사랑이 소원하신 바요 그리하여 우리가 이미  기본적으로 되었으니 우리들도 이 사랑을 받아서 우리가 이 사람으로 세상에서  자기를 만드는 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어짜든지 미움은 우리에게 용납하면  안됩니다. 미움은 우리에게 용납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무자비나 잔인이나  미련이나 그런 것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자기만 좋고 남에게는  사욕이라 하는 것을 원수로 삼아야 됩니다.

 이 길을 선택한 자가 사욕이 밉고 미워 이 길을 선택했고 이 길을 선택한 자가  사욕이 밉고 주관이 밉고 미움이 밉고 잔인이 밉고 무자비가 밉고 남을 해하는  것이 밉고 이것이 밉고 이것이 미운데 남에게 있는 것은 밉지 안하고 자기에게  있는 것이 이것이 미워서 다시는 이것이 용납되지 아니하도록 하는 것이  일생동안 자기 안에 있는 사랑과 이것으로 더불어 싸우고 다른 사람에게 이런  것이 있을 때에는 원망이나 논평으로 정죄로 그치지 안하고 그게 있을 때에는  이것이 없어 온전한 자가 되도록 하려는 그 욕심에서 자기도 모르게 자기라는  것은 완전히 희생에 제물로 되어져 녹아지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의 생애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떤 현실에서든지 자기를 사랑의 사람으로 자꾸 변화시키기를  노력해야 됩니다. 이래서 말씀하시기를 "선에 참가하고 선한 일로 부요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들이 되게 하라 이것이 자기를 위하여 영원한  터를 쌓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모저모에서 어짜든지 자기를  자비의 사람으로 긍휼의 사람으로 동정의 사람으로 사랑의 사람으로 원수 진정  그가 행복 되기를 원하는 요 사람으로 되려고 애를 쓰면 됩니다.

 이래서 지혜 있는 사람들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은 의례히 그렇고 자기와 먼  사람에게는 그것이 성글어질까 해서 가까운 사람보다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고  자기의 대립이 되어 있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자기에게 그의 행복이  자기 속에 차여져서 이 욕심 그가 의에 면으로 그가 지능면으로 자기의  자체면으로 온전함이 되어지기를 원하는 그에게 그 욕심이 자기 욕심이 거게  대해서 그 욕심이 그에게 이 사랑에 욕심이 그에게 가지 안 했을 때에 사랑의  욕심이 그에게 가기 위해서 그를 이 욕심이 가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일이  생기기 전보다도 생긴 이후로는 매일 몇 번이나 기도해서 가다가서 이 사랑의  욕심이 그에게 없는 그 끊어지는 때 희박 하는 때가 있는가 해서 다시 기도하여  그것이 쌓여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랑의 욕심이 여게나 저게나 가득 차서  어짜든지 이것들을 이 욕심대로 이렇게 소원 성취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의 재물로 희생되는 것을 잊어버리고 되는 줄도 알지 못하고 이렇게 하는  사람이 되어지도록 스스로 힘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환경이 나를 만듭니다. 인간은 환경에 소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에 그 인격이라 하는 것은 그 지역에 따라서 생겨난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또 사업을 따라서 갑니다. 이래서 웃는 얼굴을 삼 년을 그리면  웃음의 안면이 되고 짜증지기는 그 얼굴을 삼 년을 그리면은 짜증지기는  안면으로 바꿔진다는 것 같이 사람은 이렇게 순응성이 많아서 자꾸 바꿔집니다.

 이러기에 자기가 이길 수 없는 미움이 생겨지는 업이라면 이기도록 노력해 보고  못 이기면 아야 그 업을 치워야 됩니다. 어짜든지 우리는 모든 접촉하는 이웃을  진정 행복 되기를 원하는 이 뜨거운 욕심이 있어지도록 노력을 해서 이 욕심이  있어야 되겠고 내 자체는 그를 이렇게 행복 되게 하려는 이 뜨거운 사랑이 있고  사랑과 이 그의 행복을 욕망 하는 이 사랑의 욕심에서 사랑의 욕심에서 움직일  수 있는 그 자리가 좋습니다. 사랑의 욕심에서 자기의 일생을 지겹지 않게  사랑의 욕심에서 늙는 줄도 모르게 봄여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사랑의 욕심에 그  환경 속에서 일생을 끝마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미움의 사람으로  미움의 욕심인 그 망하기를 원하는 요것으로 살지 안 할수 없는 그 환경이라면  무엇으로 인하여 거게 있겠습니까 죽어도 그 자리를 피해 나와야 됩니다. 거게  있으면 죽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짜든지 우리의 현실은 사랑의 뜨거움으로 상대방에 대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대한 욕심 같은 이 사랑의 욕심이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모든 사람을 멸망해 봐도 아, 이 사람에게도 진정 내가 그리 되기를  저 사람에게 진정 그리 되기를 진정 그래 되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그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를 투자할 수 있는 이 발작이 이 사랑의 뜨거운 역사가  자기에게 계속 있도록 이것을 위해서 노력해야 되겠고 또 이런 것이 안되면 이런  환경을 찾아가서 그런 입장을 그런 처지를 그런 소속에 찾아가 가지고라도 이  사람으로 하루 이틀을 지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자기는 그만 이런 그 사랑의  그 사랑이 되었고 자기 욕심이라는 돈 욕심도 뭐도 아무것도 없고 그 욕심이 그  사람이 세상에서 부귀 영광을 가지는 그런 욕심이 아니야,  그러면 이 사랑의 욕심으로서 아무래도 이 사람이 하나님하고 해결 지어야 될  터인데 하나님으로 자본을 삼아야 될 터인데 그 자체로서는 하나님의 모형이  되어져야 되겠고 그의 지능으로서는 하나님에 연결되어서 하나님에 지능이 그의  밑천이 돼야 되겠고 이렇게 제사장 선지자 왕의 역사로 이룰 수 있는 이 욕심  그것이 우리에게 있도록 해서 그것으로 자기가 녹아지게 되는 안 녹을래야 안  녹아질 수 없는, 자 피곤해서 자지마는 잘라하지마는 그런 일이 있으니까 또 잘  수 없고 모른다 하면 그만이지마는 이래서 자기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사랑의  이 힘과 사랑의 욕심과 이 두 사이에서 자기는 그리스도 노릇을 이 세 가지  희생을 안 할 수 없는 이 자리에서 사는 사람이 좋고 자기가 이 생활을 안  하려고 해도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가지고서 이 일만 하도록 이 일을  하게 자꾸 와서 찾아와 가지고 이 일을 하게 하니까 안 할 수 없고 제가 찾아서  이 일을 하고 이 일을 얼마 동안하고 나면은 모든 사람이 알고 내가 이년을 걸어  논 것이 이 일 때문에 걸어 놓기 때문에 암만 피해서 산골짜기라도 또 그 사람이  그 일 하려고 찾아오니까 안 할 수가 없어.

 자기로 하여금 뜨거운 사랑이 주동이 되고 사랑의 욕심으로 사는 대상들이 되고  이것이 자기의 노력한 사회가 돼서 이 생활을 하고 싶어도 하고 하기 싫어도  하고 이제는 이 생활 외에는 다른 생활을 할래야 할 수 없는 이 생활만이  하여지게 되어진 이 사람이 복입니다.

 베드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네가 어렸을 때에는 네 임의로 다니지마는 서도  이제 장성하여서는 다른 사람이 너희에게 띠 띄우고 너를 원치 아니하는 데로  끌어가리라" 환경이 이래 되기 때문에 이 제사장 선지 왕의 노릇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고 이 사랑의 발작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 없고 사랑의 욕심을  그에게 안 가질 수 없는 이 사람과 보이는 것 접촉하는 모든 자기 사회가 이런  사회가 되어지도록 이렇게 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을 가리켜서 베드로의  순교를 가리킨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기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맙시다. 무자비한 사람으로 만들지  맙시다. 완패한 사람으로 만들지 맙시다. 자기 마음에나 자기 입에나 악독이나  잔인이나 강퍅이나 남을 해하는 것이나 빗고 깎는 것이나 허는 것이나 이제  사랑이 아닌 이런 자기의 작용이 나오면 이것을 뿌리까지 뽑도록 노력을 하고  이것을 한 번 두 번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습성이 돼서 이 사람으로 자라게  됩니다.

 어쨌든지 이것을 뽑고 우리 자신들을 사랑의 사람으로 자비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한 그 사랑을 자기가 깨달음으로 인해서 그를  받음으로 자기가 변화를 받아 현실 현실에서 자기를 사랑의 사람으로 요렇게  자꾸 연단 시키고 섞인 것이 없이 연단 시키고 연달 시키고 기르고 또  구비시키고 또 이 사랑의 발작이 가까운 사람에게 한번 가보고 또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참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대한 소원과 같이 성자가 우리에게 소원과  같이 권찰이 식구에게 대한 소원과 같이 반사들이 학생들에게 대한 소원과 같이  교역자가 교인에게 대한 소원과 같이 이 소원을 가져 보고 차차 먼 사람에게 또  내가 이 소원을 가져야지 먼 사람에게도 이 소원을 가져 보고 이제는 원수를  찾아가서 원수를 앉아서 생각하여 그 원수에게도 내가 이 소원을 가져야지 가져  보면 가져집니다.

 이렇게 해서 이 사랑의 욕심을 기르고 사랑을 길러 이것의 힘이 이루어진 것  만치 자신은 녹아집니다. 이루어진 것 만치 자기는 녹아지는데 뭐로 녹아지는고  제사장직으로 선지직으로 왕의 직으로 상대방에게 하나님의 지능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하나님의 그 신성과 같은 인격성으로 화해지게 하려는 이거 위한  노력이 생겨지고 이 노력을 인해서 자체가 희생이 되어지는 것이 이것이 필연한  생애인 것입니다. 이 일을 하여 요것으로 된 요것이 천국 요소입니다. 요것이  천국 요소요 요것으로 기른 요 성장이 천국 실력입니다. 요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이 하늘나라요 요 생애를 계속하게 하시는 것이 하늘나라요 이 사랑의 이  자체가 하늘나라의 시민의 그 속성이요 시민의 본질과 본성입니다.

 부활은 심신은 예수님의 공로로 부활하고 영은 예수님의 공로로 부활하지마는  전체의 기능은 소유는 자기가 세상에 있으면서 사랑에 발작으로 인하여 움직이진  그 움직임의 기능이 부활하고 그 움직임에 투자된 그 자원이 무한한 것으로 변화  되어 부활하는 것이 하늘나라의 부활이니 그것이 영광입니다. 그것이 영광이요  그것이 영광의 차이요 이 영광을 사기 협잡 횡령으로 하는 그 영광이 이 나라에  용납이 되겠습니까 세상은 이 가치를 깨달으면 피할 것이 하나 없어 그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영광이라 하는 것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광이라는 것 살펴보면  부끄러워서 낯을 들 수 없는 기라 뜨거워서 거기 동참도 가까이 보지도 못해  찬송도 할 수가 없어.

 그런고로 우리를 하늘에 시민권으로 자기를 길러 가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이제 깨닫고 노력하면 됩니다. 노력하면 됩니다. 원수도 사랑하면 마지막에는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 예화에 그런 말듣지 안 했소. 며느리하고  시어머니하고 하도 원수가 돼서 그 시어머니는 며느리 죽기를 원하고 며느리는  시어머니 죽기를 원하는데 그 아들이 양 사이에 끼어 가지고 견딜 수 없어서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아 밤을 꼭 하루 때마다 한 토리씩 갖다가 하루 세  토리씩을 한 말만 끓여 먹이면 그만 죽는다네' 이러니까 그걸 저 할마이 죽이  구로 그만 그렇게 해 보자고 헤헤 웃으면서 그만 뭐 그래 되겠습니까? 뭘 갖다  있어 봤자 걸거치고 안돼. '그래 해 보자' 그래요 밤을 한말 갖다 주니까 이걸  꼭꼭 구워줍니다. 구워주니까 처음에는 삐쭉삐쭉 거리면서 이게 날 꼬울라고 '뭐  가져 오노' 이랬지마는 밤 말이 지나가니까 기다리고 또 오니까 '야야 뭐 그만  두지 뭐 하려고 또 가져 오노' 아, 이라니까 또 나중에는 '아야 그만 어린 아이  날 도라 날 주고 네가 된데 되나' 아 이러니까 한 말 구워 먹이고 나니까 그만  시어머니하고 며느리하고 둘이 사랑이 들어붙어서 '아이 안 죽어야 돼 이거  한됐네' 한번 더 알아보고 한 말 더 먹이면 된다 하는데 한 말 더 사 가지고  오지 '아이구, 안됩니다. 시어머니 죽으면 어머니 죽으면 나는 못 살겠습니다.'  이거는 미움이지마는 껍데기 사랑에 그걸 하다 보니까 알맹이가 되어졌습니다.

겉에서 되어 들어가는 것도 있고 안에서 돼 나오는 것도 있기 때문에 어짜든지  하늘에 시민은 어떤 기 시민인지 하늘의 생애는 어떤 것이 하늘의 생애인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부할 시켜 주는 것은 어떤 것인지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자기 행한 대로 갚음을 받는 이것이 하늘나라이니 우리의 준비는 무엇인가를  우리가 깨닫고 어짜든지 현실에서 죽기 전에 우리를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를  시킵시다.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된 그 양이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있는  실력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소원하는 소원은 이 사랑의 소욕이 우리에게 뜨거워져서 원수도  진정 예수님이 원수 되어 있는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 다 희생하지 않습니까  이런 사랑에 뜨거운 욕심나도 원수를 이렇게 원수의 진정 행복을 원해서 내  전부를 내가 계획적이 아니고 나도 모르게 그의 행복을 위해서 유익하다면 나도  피곤한 줄 모르고 이것을 희생할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이렇게 우리가 변화  받는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취할 길입니다. 이 길 외에는 취할 길이 없습니다.

가치 있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 길을 택했고 예수님의 인성도 이 길을  택했고 또 이 길을 택하되 일단으로 끝나지 안하고 이단으로 부활해서 영원히 이  길을 택했고 성령의 사람들도 이 길을 택했고 이 길 택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그 기쁨이 그 속에 있어서 정말로 행복을 누렸습니다. 기쁨을 누렸습니다. 죽는  기 기쁘고 녹아지는 것이 기쁘고 희생이 기쁘고 그들의 기쁨과 행복은 아무도  구름 끼우지를 못했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이것이 바른 길입니다. 이  길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감사함을 드립니다. 이 큰 건국을 주님의 성령으로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압니다. 불의한 죄인들이지마는 주님의 피 공로로 인한 성령으로 감동시켜 땅  위에 어떤 큰 것을 인하여서라도 자신을 잔인한 사람으로 악독의 사람으로  무정한 사람으로 냉정한 사람으로 훼방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없도록  성령으로 항상 깨우쳐 주시고 어데 서라도 이 전부를 어떻게 될지라도 주님을  따라 사랑의 사람으로 성장되면 이 사랑의 욕심 하나 가지고 세상살이를 끝마칠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성령님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모든 헌금을  주님이 축복하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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